하나님의 단일성

 

1987. 1. 13. 새벽 (화)

 

본문: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기도합시다.

다시 새 날을 하루 주사 주님을 향하여 영원을 달리게 하심을 진실로 감사합니다.

오늘은 심히 혹한으로 시험되는 이 기후입니다.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모든 주의 사람들을 깨게 하시고 새롭게 하사 이 어두움에, 이 추움에, 이 사나움에 피동되지 아니하고 자유할 수 있게 하여 주셔서 범사에 온유하고 담대하고 강건하여 당황하지 않게 하시고 실족하지 않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오늘 아침에도 이 추위에게 피동되어 주님 앞에서 쌓는 제단에 조금도 차이가 없도록 붙들어 지켜 주시고, 모든 상한에서 구원하시고, 교통 안보로 구원하시고, 모든 위생에도 구원하사 이 모든 위험하고 모든 문제들에게서 깨어서 살아 하나에게도 피해받지 아니하고 모든 세상 현실 현실을 자기의 구원을 위하여 양식삼아 이로 인하여 더욱 믿음에 굳게 서고 깨달음이 더하는 저희들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다 함께 하사 주님의 오실 때가 가까운 이때에 다 깨어 주님의 이 사활의 대속을 받은 이 대속에 합당한 자로 살아 흠과 점과 주름잡힘이 없게 하셔서 언제든지 온유하고 언제든지 평안하고 언제든지 담대하여 평강 가운데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위엣 것을 생각하고 항상 주님에게만 소망 가지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으로만 사나운 세상 험한 세상을 시온의 대로로 자유롭게 염려없이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다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성경과 또 지극히 큰 능력과 믿음과 구원과 지혜와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하시는 일하나님의 역사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함과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이것이 다 하나입니다. 요것을 자꾸 여러분들이 새겨서 이것이 하나라. 이거 각각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하나입니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도 하나님과 성경과 능력과 믿음과 구원과 교훈과 바르게 함과 책망과 의와 하나입니다. 이것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안하고 하나가 나타날 때에 이렇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하나인데 이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이 사람같이, 사람은 여러 수많은 사람이 있고 수많은 종류가 있고 또 수많은 사상들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는 대립되는 것이 오히려 저 사람에게는 친합될 수도 있고 또 저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이 사람과 손 잡았다 안 되면 저 사람과 손 잡고, 이 사람과 비위 상하면 저 사람하고 합작해 가지고 대항하고 이렇게 사람이 여러 종류, 여러 사상, 여러 소원, 여러 지혜, 여러 주장, 여러 가지의 뜻 이것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틀리면 저 사람, 저 사람에게 틀리면 이 사람 이렇게 돌아다니는 이런 버릇이 우리 사람들에게는 가득 습관되어 있습니다.

다 익혀져 있습니다.

습성이라, 습관이라, 버릇이라 하는 그 말은 그 익힐 습자입니다. 자꾸 그래 하고 하고 하면은 습관이 되고 습성이 됩니다. 그래서, 습관은 제이의 천성이라. 사람이 자꾸 익히고 익히면 그 사람의 천성이 된다, 그 말은 그 사람의 본성이 된다 그래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이런 줄 알고 자기가 이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안 될 때는 저 사람을 통하고 이 사람과의 옳은 진리에 대립이 되나 자기는 또 저게 다른 면으로 하나님하고 일치가 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을 해서 사람들은 공연히 분주 복잡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여러 뭐 수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상대하지마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사상도 하나요, 뜻도 하나요, 주장도 하나요, 지식도 하나요, 소원도 하나요, 비판도 하나요, 평가도 하나요, 성품도 하나요, 노도 하나요, 기쁨도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과의 관계로 하나님과 삐뚤어졌으면 어데 가든지 그거는 삐뚤어진 것입니다. ‘뭐 네까짓 거 나와 그러면 나는 또 달리 하면 되지’ 이래 생각하지마는 달리 하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직까지 좀 깨달음이 어리니까 하나님의 단일성이라 하는 것을 늘 말을 해도 좀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잘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천도 만도 넘은 수많은 각도로 역사합니다. 이런 모로 역사하시고 저런 모로 역사하고 수많은 각도로 역사하나 들어가면 하나입니다. 하나에서 그 모든 이런 저런 수많은 사상 같고, 수많은 주장 같고, 수많은 뜻 같은 것이 나왔지마는 실은 하나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 뜻이 상대방이 되어 있는 우리 사람의 천태 만상에 따라서 거게 따라서 그 완전이 온전이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서 접하는 것이지 근본은 하나입니다.

우리도 그 자녀가 어떨 때는 좋은 옷을 입히고 싶고 어떨 때는 입은 옷을 벗기면 싶으고, 어떨 때는 그 몸이 조그마치라도 상하는가 염려되고 어떨 때는 종아리를 깔려서 형을 주고, 어떨 때는 미워하고 어떨 때는 사랑하고 이와같이 하는 것이 그것이 부모가, 뭐 우리는 아주 천하고 무식하고 사람들은 온전치를 못합니다.

그래도 부모는 그 자녀에게 대한 사랑이나 욕심이나 그거는 하나입니다.

욕심도 사랑의 욕심이고, 사랑도 사랑의 사랑이고, 또 미움도 사랑의 미움이고, 애끼는 것도 사랑의 애낌이고, 벌을 켜고 형을 켜고 종아리를 치는 것도 사랑의 종아리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완전이신데 그 완전이 우리 사람의 됨에 따라서,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사람의 모든 이런 사상 저런 소원 저런 모든 욕심 희망 그런 데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이 적절하게 나타나서 잘못된 것은 다 제재해서 없애 버리고 좋은 것은 북돋아서 기르려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한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이렇게 대립이 되고 또 저 자리에 가 가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사귀리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또 이 사람과 관계에서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그런 행동을 하고 돌아서서 저 사람하고는 그것이 서로 하나님을 아주 열심히 섬기는 것같이 그렇게 하지마는 그것은 다 오산입니다.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총괄하고 계시는데 수많은 죄가 있지마는 그 죄도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 한 분이 그것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죄를 아무도 관리하지 못합니다. 죄에 대해서 간섭도 못 하고 관리도 못 합니다. 죄도 하나님 혼자 그것을 취급하시고 또 의도 혼자 취급하십니다. 또 복도 화도 혼자 취급하십니다. 생명도 사망도 혼자 취급하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이 모든 사람을 다 상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사람들이 하나도 간섭 못 합니다.

사람 보기에는 이 사람을 통해서 꾸중이 나오고 저 사람을 통해서 칭찬이 나오고, 또 저 사람을 통해서 배척이 나오고 어떤 사람을 통해서 환영과 협조가 나오고 이렇게 보이는 것은 껍데기요. 껍데기 보기에는 사람이 저 사람은 나에게 친절히 한다 저 사람은 나에게 배척한다, 저 사람은 환영한다 저 사람은 협조한다 저 사람은 반대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보여지니까 사람들은 외식자라 껍데기만 보고서 사람들의 관계는 좋은 거 나쁜 거 꽉 찼습니다.

이래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나 성경은 가르치기를 그것이 다 제 인간이 주권으로 그렇게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단독으로 그와같이 하지를 못하고 그 하는 전부는 다 주님 혼자 그 일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일이 있으면은 그것을 ‘저 사람은 언제든지 나를 미워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오판입니다. 저 사람은 나를 미워한다 하는데 그 미움은 곧 주님이 하고 계시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님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 미워하시는데 억울하게 미워하는 것도 있고 미워할 만해서 미워하는 것도 있습니다. 억울하게 미워하는 것도 주님이 하시고 또 정당하게 미워하는 것도 주님이 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요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요 우리를 사랑하시되 당신의 생명까지를 다 기울여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주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우리가 이해 못 할 일은 그게 일이 잘못돼 그런 게 아니고 내가 이해를 못 해 그렇지 없어서 안 될 일이 생긴 일이 없고 또 필요 없는 일이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필요 없는 미움이 없고, 또 필요 없는 징계가 없고, 필요 없는 사랑이 없고, 필요 없는 유혹이 없습니다. 필요 없는 범죄케 하는 역사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전지 전능의 완전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이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요것을 우리가 믿으면 거게서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또, 주권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주권이라 말은 그 움직여 역사하는데 역사하는 것을 그 환경에 피동이 되든지 사람에게 피동이 되든지 뭐 형편 사정 어떤 것으로서든지 하나님이 역사하심이 하나님 당신 혼자 역사하시지 어떤 피조물에게도 조그마치도 피동되지 아니하고 당신 혼자의 판단대로 뜻대로 소원대로 혼자의 능력으로 하시지 어떤 피조물에 조그마치라도 피동을 입어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사람은 뭐 이것은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전체에 피동을 받습니다. 눈은 바른 줄 알아도 눈이 이거 쪽 곧은 걸 볼라 하는데 여기 환경을 만드는 데 따라서 아주 이리 삐뚤어진 게 발라지고 또 이리 삐뚤어진 게 발라지고 사람 눈도 아무것도 정확지 못합니다.

그와같이 사람은 이런 거 저런 것에게 피동을 받아 가지고 침노를 받지마는 하나님은 아무데도 침노를 받지 않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주권이라 이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믿는데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도 여러 층어리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책을 보니까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데 하나님이 주권으로, 주권이라 말은 당신의 주장대로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하고 계신다 그라는데, ‘하나님이 주권하시는 것은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만 주권하고 계신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으로부터 한 삼사십 년 한 사오십 년 전까지의 세계 신학이 다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이 기독자의 구원에 대해서만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시지 나머지기는 주권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이 깨달았고 또, 뭐 제일 잘 깨달은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잘 깨달은 거. 그 밑에 지저분하게 잘못 깨달은 거 그런 거는 뭐 말하지만 제일 일등으로 잘 깨달은 걸 말합니다.

그렇게 깨달았고, 그후에는 또 사람들이 깨닫기를 ‘하나님이 이 굵닥굵닥한 모든 강령적인 윤곽 그것만 하나님이 주권하셨다. 윤곽 그것만 하나님이 주권하셔 가지고 하셨다.’ 또 이렇게 또 깨달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또 깨닫는 사람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개미 수염 하나 요리조리 흔드는 것도 하나님이 주권으로 그렇지 제맘대로 흔드는 건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 거슬려서 흔드는 거는 하나도 없고 그거 하나도 다 하나님이 주권으로 그 모든 것을 다 역사하시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개미 한 마리가 나고 죽는 것이야 으례히 주권이고 그 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요래 흔들고 그것도 하나님의 주권으로 요래 흔들게 하니까 흔들고 요래 흔드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으로 요래 흔들게 하니까 흔든다.’ 요렇게 하나님의 개별 섭리 주권을,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 모든 개별 섭리도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신다 이렇게 깨닫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뭐 어떤 거 믿습니까? 뭐 하나님의 주권을 어떻게 믿습니까? 어떻게 믿소? 구원에 대한 것만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시는 것으로 믿습니까 혹은 이 세상에 굵닥굵닥한,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또 흥하고 하는, 사람이 죽고 사는 그런 것만을 주권하고 계시는 것으로 그래 믿습니까 지극히 작은 머리털 하나까지도 하나님이 다 주권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의 주권을 그렇게 믿습니까 어느 것입니까? 마지막에 그라면 머리털만한 지극히 작은 것까지도 하나님이 다 홀로 주권하고 계신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이것이 우리가 깨달아 가지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이렇게 믿지 안했지마는 믿지 안한 그 이유는 그들이 여게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깊이 기도하고 명상해 보지를 안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일 털끝만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주권하지 안하시는 그런 것이 있다고 하면은 그것은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가?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뭐 움직이는 그것이 뭐 있지 않는가?’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일원론에서 이원론으로, 이원론에서 삼원론으로, 나중에 가 가지고는 지금 다원론으로 자꾸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원인은, 다원론이라 말은 원인이, 원이 하나라. 원이 많다. ‘하나님 한 분이 자존하셨고 그분이 원인이 돼 가지고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생겨졌다.’ 하는 이것이 일원론인데 또 ‘이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다.’ 이라는데 사람들이 착각하고 오산되어 가지고 없는, 모든 것이 없는 가운데에 하나님 한 분만 자존하셨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생겨졌다 하는 요것을 좀 계산을 똑똑히 대면은 ‘그분 없는 원인이 둘은 있을 수가 없다’ 이런데 요새 신학자들은 이원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대학에 있는 ○○○박사는 신학 박사인데 그분은 이원론 논문을 써 가지고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씨가 성경 연구한 데에 이원론을 말했는메 그것은 잘못 됐습니다.

제가 그때 삼각산 집회 가고 할 때 그때에 그분의 말이 나서 ‘그것은 잘못 됐다.

그건 깨달음이 잘못 됐다.’ 그런 것을 제가 그때 삼각산 집회 때에, 지금 벌써 한 삼십여 년 넘어 됐습니다. 말했었어.

이런데, 하나님 한 분만 자존하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창조됐다 하는 것을 그 계산을 다 이렇게 대 보면 그분이 없이 그분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움직임이 있다면은 무슨 다른 존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것 저런 것을 통해서 모든 운동을 하시고 역사하시고 이렇게 섭리하시나 총사령장관은 그분 혼자입니다. 그분 혼자 모든 것을 주권하셔 가지고 그분 혼자가 모든 것을 역사하시고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자존과 창조와 또 하나님의 전지 전능과 또 모든 것을 믿으면 사소한 개별까지의 모든 그 섭리도 하나님이 다 주권하셔서 생겨졌다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예정에 도달하지 안한 그 믿음은 아직까지 어린 믿음이라 가다가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또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는 그 믿음은 가다가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믿고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믿는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요동하지를 않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천태 만상의 일들이 다 있습니다. 또 그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내게 대해서 행동하는 것이 참 천태 만상이라고 할 만치 변하게 이렇게, 변해 가지고 나한테 상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라.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그 사람에게서 오는 게 아니고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온다는 요 사실을 믿고 ‘그러면 이거는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이 나한테 애매하게 하고 있느냐?’ 그 애매하게 하고 있는 거, 나를 돕는 거, 나를 해치는 거 그 모든 것이 다 나를 사랑하심으로 하는 것이니 내가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지고 고쳐지고 깨달아지고 알게 되어지고 나에게 또 이런 면을 기르고 저런 면을 기르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억울함에서도 계속할 수 있고, 억울함에서도 꺾어지지 안하고, 억울함에서도 일곱 가지 이 사활의 대속을 우리가 보존하고, 억울함에서도 자유하고, 어떤 억울함이 와도 나는 그 억울함을 인해서 불의를 행하지 안하고, 죄를 범하지 안하고, 그 어떤 뭐 높이 칭찬 옹호함을 인해 가지고 내가 하후하박으로 조그마치라도 삐뚤어진 일을 하지 안하고,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삐뚤어지지 않는 것을, 삐뚤어지지 않는 것을 의라 하고 삐뚤어진 걸 죄라 합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고, 또 죽음의 요소에 침해받지 아니하고, 또 마귀에게 침해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서 언제나 영감과 진리대로 영생하고,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 하나도 걸리지 안하고, 하나님과 이 친밀한 상호 내주할 수 있는 이 화친의 완전 능력 완전 생명을 가지고 사는 이 일이 자라지, 이 일이 자라지 이 일이 침해되지 않는다 그 말이오.

그러기에 우리를 기르시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환경에 얼마나 우리 환경에 종류를 주느냐? 열 종류를 준다고 하면 열 종류에 대한 연단을 받고 연습을 하고 연성하기 때문에 열 종류에는 이는 온전타 할 수 있지마는 열한 종류가 나오면 그것은 아직까지 처음 일이기 때문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하시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뭐 열 가지 스무 가지 백 가지 천 가지가 아니오. 하나님의 욕심은 말이요. 우리가 이 간단한 세상 사는 동안에 그 천 가지 만 가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환경 모든 종별의 것들을 우리에게 다 응하게 해 가지고 그 모든 것들에서 다 우리는 연습하다가 넘어지니까 또 연단받고 이래서 연습하다가 연단이 오니까 넘어졌다가 연단에서 이제는 뭐 방해하는 것이 열이 와도 스물이 와도 서른이 와도 사이비하게 기이하게 와도 거게서 타지 안하고 거게서 우리 믿음이 끊어지지 안하고 흔들리지 안하고 그 믿음이 꾸준히 나가서, 이렇게 모든 연단을 받아 가지고 연성된 것은, 이러기에 모든 면에 다 연습 연단 연성된 그 신앙이 되게 하실라고 하나님께서는 별별 그 모든 환경, 주위 환경에 연습거리, 연단거리, 연성거리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의 사랑하시는 주님이 주권하셔 가지고 온 것이기 때문에 ‘이게 왜 왔는고?’ 할 때에 우리는 속단적으로 그만 원망하고 불평하고 또 감사하고 이러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말하기를 “너희들이 원망하지 말아라” 그 말은 환경에 불평하지 말아라. “원망하지 말아라 그래야” 뭐라 했습니까? 아니. 뭐라고 말했지, 야고보서에? 뭐라고 말했던고? 야고보서 5장 9절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심판을 면하리라” 네가 이해 못 해 가지고 사람에게 원망 이 자연에게 원망 뭐 이런 무슨 원망이든지 원망하지 말아라. 그리해야 네가 심판을 면한다.

그 말은 그 원망하는 그거는 원망할 게 아니라 원망할 그 일을 네게 닥친 것은 그로 인해서 또 믿음 준비하고 그로 인해서 네 일곱 가지 대속이 온전해지고 이렇게 해서 거게서 네가 연습하고 연단받고 연성해서 온전함을 받지 안하면은 하나님의 심판에 가 가지고 그 면은 모자라기 때문에 걸리고 그거는 타서 죽게 된다.

이러니까 어떤 것이 오든지 거게서 원망하지 말고 네가 사랑하시는 주님이 주권으로 이와같이 하고 계시는 것이니까 요게서 내게 필요해서 주신 것이니까 요게서 내가 ‘요게 뭣 때문에 필요하며 요게서 내가 연습할 게 무엇이며 요게서 참고 견뎌서 연단받을 것이 무엇이며 요게서 연성될 것이 무엇이냐?’ 이러기 때문에 보이는 거 들려지는 거, 생각하는 거 접촉되는 거, 나타난 거 나타나지 않은 거 모든 것이 주님의,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떤 사람이 깨달아서 말하기를 ‘이 세상은 사랑하시는 주님의 태 속에 내가 들어 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태 속에 있으면은 주위 환경은 전부 어머니요. 위도 어머니 아래도 어머니 아닙니까? 전부가 어머니 아닙니까? 어머니요, 전부는 어머니가 자기를 기르는 모든 그 사랑이요 양식이요 은혜요 다 유익인 것처럼 이 땅위에 모든 자기 현실이라는 거 이 우주 전부는 주님의 사랑 태 속에 내가 들어 있다 이렇게 깨닫고 감사한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는 이 단일성에 대해서 지금 말하다가 시간 다 갔는데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모든 것이 그분의 다 예정대로 창조됐고 그분이 다 창조했고 그분이 다 창조, 모든 존재는 크나 작으나 구더기 한 마리라도, 요새 뭐 바이러스 균이라 하면은 아주 작은 걸 말하는데 바이러스 균 그것도 다 주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창조하지 안한 것이 없어.

어떤 또 순서라도 순서는 다 주님이 예정하신 것입니다. 전부 순서는 주님의 예정이요 모든 존재는 주님의 창조인데 그거 뭐하기 위해서 했습니까? 뭐하기 위해서 예정했소? 우리 구원 위해서 예정했소. 뭣 하기 위해서 창조했습니까? 우리 구원 위해서 창조했소.

요 두 가지만 믿어도 자기가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이거는 왜 이런가?’ 그럴 것 없어. `이 일은 내 구원을 위해서 이 순서가 왔는데 이 순서에서는 내가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야 되느냐?’ 아는 대로 연구해 가지고 ‘요 구원을 이루어야 되는구나’ 고거 깨닫는 사람이 많지를 못하고, 못 깨달을 때에는 ‘반드시 유익을 위해서 있는 일이니까 여게 대해서 내가 가만히 무슨 유익이 있는가 참고 견디면서 살펴보자’ 지나가면 알아요. 지나가면 다 ‘요 유익이로구나 조 유익이로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러면 장성한 사람들은 많이 알고 어린 사람들은 적게 알고 이런데 그래도 간절한 마음을 바치면 다 알게 돼 버려요. 알게 돼요.

어떤 사람이 병이 들어 가지고 저게서 하루 종일 깨닫고 나니까 어떻게 기쁘던지 하루 종일 다른 사람 봤으면 똑 미친 사람이라고 할 만치 하도 기쁘고 자기의 과거 생활한 것이 우습고 참 어리고 어리석어서 혼자 밤새껏 웃고 밤새껏 기뻐했다고. 그렇습니다, 자꾸 깨달아지면.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도 구원 위해서, 예정대로 순서가 나옵니다. 모든 순서. 내게 대해서 다른 사람이 금방 좋아했는데 금방 욕을 합니다. 그것도 뭐이냐? 새 순서 아니요, 새 순서. 또 다른 사람이 나를 협조하다가 나를 속였습니다. 그것도 또 순서요. 그거 다 예정이라.

그게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단다는 요 사실을, 모든 예정 모든 창조 모든 섭리는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단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에서 모든 게 해결 다 돼 버려.

또 거게라야, 그렇게 해결이 되면 원망이 없고 감사하고 거기서 구원 준비하지요.

“그래야 네가 심판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랑하셔 너에게 이렇게 세밀히 하시는데 이 하나님의 광대하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네가 경거 망동으로 그와같이 하면은 너는 전부 구원 준비 할 수 있을 때 하지 못했으니까 전부 심판거리만 너는 만들게 된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꾸 나와요. 새벽으로 나와야 되지. 나와야 배우지 안 배우면 뭘 압니까? 모르면 못 행해요. 안 행하면 구원이 안 돼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나와야 배우고 또 안 나올라면 주님에게 직접 배워요. 성경이 교훈하는 것은 하나님의 감동이 교훈하는 것인데 성경에 배우는 것은 누구한테 배우는 거라요? 하나님에게 직접 배우는 거라. 그라면 직접 못 배우면 사람을 통해서 배우든지 배워야 된다 그거요.

어짜든지 성경 공부 시켜요. 나는 엊저녁에 보니까 성경 공부를 했는데 조그만한 뭐 다섯 살 먹었다 했던가 했는데 어떻게 그 보니까 성경 공부를 해서 일문제 이문제 자꾸 외워 재끼는데 어떻게 마음에 고마운지. 그래서 내가 어제 상급을 천 원을 줬어요. ‘야, 네가 이거 참,’ 참 놀래겠어.

이런데 그래 모두 공부시킨 사람마다 다 해요. 이 학생들이 뭐 가르쳐 주면 뻐뜩뻐뜩, 어른들이 말할 여가도 없이 그만 성경 공부를 해 나가는데 자기네들이 문제도 ‘자, 여게서는 뭘 하나님이 공부하라고 문제를 주겠느냐?’ 문제를 딱딱 말한대요. 또 그 문제 답은 뭐냐? 답도 말하고. 이거는 뭐 천재라, 모두가 다 말이지. 이 성경 공부 하면 이래 되는데 우리 노인들은 그거 안 되고 장성한 사람들은 안 돼. 왜? 더러운 욕심이 가득 들어와 가지고 막 이런데 그것들은 깨끗하니까 막 돼.

그러니까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이 성경 가르친 이걸 내가 하지 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 내가 자복을 했습니다. 이거 나는 이렇게 아이들이 이런 줄 모르고 아이들은 이렇게 ‘그게 뭐 지금 뭐 하겠느냐?’ 이랬는데, 아니야. 성경을 공부하는 데는 뭐 어른들보다도 어린 게 제일 잘해. 한글만 읽을 줄 알면 그만 그 사람이, 어린아이가 제일 빨리 하고 속히 외우고 또 뭐 말하면 자꾸 뻐뜩뻐뜩, 말하면 외워 버린대요.

이러니까, 어릴 때 이거 성경을 가르쳐서 이랬으면 될 터인데 이 성경 가르칠 줄 모르고 ‘아이들이 뭐 알겠나?’ 그러면 쉽게 가르치고 뭐 이래 가지고 이 세상이 말이요 이야기 성경, 또 아따 그거 뭐꼬, 이야기 설교하는 거 그거 뭐야? 동화, 성경을 전부 거짓말로 꾸며 가지고 동화 그래야 아이들이 알아듣지 이 동화 가지고 설교하는데 이 서부교회는 동화가 아니라 성경 말씀만 그대로 가르친다 하니까 요것 때문에 또 하나님께서 우리 서부교회 세계 제일 큰 어린이 교회라 하는 이런 은혜를 주셨어요.

이랬는데 내가 깨달으니까 그것도 가짜 가짜, 엉터이 엉터리, 엉터리 중에 엉터리라. 이 성경을 막바로 가르쳐야 되는데, 성경에 이거 성경 공부를 시켜서, 이제 내가 어떤 사람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아이들 방학동안에 산기도도 가지 말고 집에서 기도하고 어찌 됐든간에 학생들에게 성경 가르치는 여게 전력을 기울여라. 그래 가지고 우리 서부교회서 아무것이가 학생 성경 가르치는 데는 제일 달통해서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숫자가 많은 성경 연구했다 하는 이 모본이 돼 달라 .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 보고 또 깨달아질 터이니까 해 달라.’ 내가 그걸 부탁을 했습니다. 말할 것 없어, 어떻게 성경을 잘 알고 공부하는지.

이러니까, 이렇게 성경을 가르쳐서 방학 동안에 가르쳐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딱 붙들려 놓으면 그게 세상 그까짓 거 쭉덩이 암만 있어봤자 그 세상 지식에 붙들리지 않습니다. 세상 지식에 붙들리지 안하요, 하나님의 지식에 붙들리지.

그러니까 내가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내가 나무래 쌓았는데 이제 제가 이거 좀 새벽기도 나온다 했는데 새벽기도 나왔는가 모르겠어. 한번 내가 손 한번 들려 보지. ○○○목사님 큰아들 새벽기도 나왔습니까, 손 들어 보십시오. 손 들었는가 저 뒤에 쳐다봐. 손 들어 보십시오. 없어. 없어, 안 나왔어.

제가 처음에는 ‘뭐 그까짓 거 내가 다른 것 하고 그렇지.’ 이랬지마는 지금부터는 암만 나오고 싶어도 안 돼.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됩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내가 뭐 결심하면 새벽기도 나오지.’ 어림도 없어. 결심 가지고 되는가? 하나님이 나오게 해 주셔야 되지. 안 돼. 인간 힘으로 안 돼요. 나한테 약속도 했는데 오늘 아침에 못 나왔네, 보니까. 나오고 싶어도 못 나와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는 물리치십니다. ‘주여, 내가 당신 아니면 죽습니다.’ 애걸복걸 달라붙어 부르짖는 자라야 되지 ‘내가 뭐 내 의지도 강하고 강하기 때문에 할라면 하고 안 할라면 하고 안 할라면 안 하지, 그거.’ 어림도 없어.

그자에게는 하나님이 딱 오글트려 버립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주권의 하나님이시라. 그분에게 부르짖고 호소하고 이렇게 해야 되지, 하나님에게 겸손히 부르짖어야지 아무리 학박사라도 성경 안다 하면 ‘네까짓 놈이 성경 알아?’ 이렇기 때문에 학사박사들이 모르는 것을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꾼이 성경을 잘 알아 가지고 진리를 캐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지. 교만한 자는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응해 주시는 하나님인 걸 알고 겸손히 벌벌 떨며 달라들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돼요.

녜, 오늘 아침에 하나님의 단일성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서 연구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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