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6가지 큰 축복

 

1989. 4. 26. 수야.

 

본문: 엡 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안 믿는 사람들은 조상이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조상이  둘입니다. 첫째 아담이 우리 조상이요 또 둘째 아담도 우리 조상입니다. 첫째  아담은 우리 영육을 낳아 준 조상입니다. 영육을 낳아 준 조상인데 그 영은 어떤  영인고 하니 죄를 범할 수 있는 영이요 또 하나님과 원수될 수 있는 영이요  영원히 사망할 수 있는 영입니다. 육도 또 그러합니다.

 그런데 둘째 조상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우리 영과 육은 첫째 아담의 조상에서 난 그 영육뿐입니다. 또 딴 영육이 있는 것  아닙니다. 그 영육뿐인데 그 영에게, 피조물로 되어 있는 그 영에게 창조주의  것으로 우리를 다시 나게했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든 불완전하고 사망할 그런  것으로서 첫째 조상 아담에게서 우리가 생겨 나왔는데 생겨 나온 이것이 근본  생겨 나올 때부터 범죄할 수 있고, 타락할 수 있고 또 죽을 수 있고 또 늙어  쇠해질 수 있고 하는 그런 영육으로 타고 났기 때문에 이것이 나고 난 다음에  즉시 악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첫째 조상인 첫 아담부터가 그만 그 영도 범죄했고  육도 범죄했고 영도 육도 다 죽어서 멸망 가운데에 빠져 있게 됐습니다.

 됐는데 이제 둘째 아담이 오셔 가지고 첫째 아담에게서 태어난 생겨난 영육으로  된 우리들을 둘째 아담이 다시 우리를 생산했습니다. 다시 우리를  출생시켰습니다. 그러면 출생시킨 것은 그 영과 육이 첫째 아담에게서 난 그  영육이 있고 그 영육 외에 딴 영육을 우리에게 나게 하신 것 아니고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은 그 영육은 범죄할 수 있는 영육이었는데 둘째 아담이 다시는  범죄할 수 없는 영육으로 다시 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영육의 본체는  그것이지마는 이제 그것이 모든 소속이나 본질이나 본성이나 그런 것이 완전히  새것으로 다시 창조하게 됐습니다 이래서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은 '새로운  창조물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로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것은 어떤 영인가? 이제는 범죄할 수 없는 영  또 죽을 수 없는 영, 늙을 수 없는 영, 쇠할 수 없는 영 또 하나님과 영원히  관계가 끊어질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영 이것으로서 다시 나게 하셔서  우리는 나고 또 나서 중생된 우리들입니다.

 또 몸은 어떤 몸이냐? 몸은 늙어지고 쇠해지고 병들고 죽고 할 수 있는 이  몸인데 이 몸을 이 몸이 없어지기 전에 이 몸을 늙지 아니할 몸으로 쇠하지  아니할 몸으로, 병들지 아니할 몸으로, 죽지 아니할 몸으로 이렇게 첫째  아담에게서 난 이 육을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 본질과 본성을 완전히  승격시키고 변화시켜서 그 첫째 아담의 그 몸을 근거하여 그 몸을 변화시켜서  완전히 새 영과 새 몸을 만드신 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가 이 몸이 첫째 아담의 자손의 몸을 입고 있으면서  이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 이 몸을 벗지 아니하고 이 몸이 본질과 본성으로  변화를 해서, 변화를 해서 그렇게 이 첫째 아담 해와의 자손인 영육을 벗지  아니하고 속에 속성적으로, 기능적으로, 생명적으로 또 소속적으로 영원한 그  희망적으로 이렇게 완전히 새 영육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만들어 가고 있다가 이 세상을 끝낼 때에는 다시 이 영은 영원한 영생을 가진  영으로 영생하고, 이 몸이라는 것은 다시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해서 아주 그  기능이나 모든 본질이나 본성이나 그런 것들이 첫째 아담의 자손인 그  끌터러기를 가지고 거게서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새로 생겨져 난 이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되어졌고 또 이 자손으로 점점 자라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첫째 아담의 자손인 우리가 이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완전히 질적으로 변화되고 또 그 속성적으로 변화가 되고, 생명적으로  변화가 되고 또 소속적으로 권위적으로 희망적으로 완전하 변화받아 새것으로  나서 '새로운 창조물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새로운 창조물이라'  그러면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우리의 영육이 그것이 다시 딴 영육이 생겨지는 거  아니고 내나 그 영육이나 그 본질과 본성을 완전히 변화시켜 가지고 새로운  본질과 본성을 만들어 그러면 첫째 아담에게 소속한 그 영육이지마는 그 영육이  본질적으로 아주 딴 영육으로 변화가 되고, 소속적으로 변화가 되고 또 그 모든  기능적으로 희망적으로 완전히 변화가 돼서 우리는 첫째 아담의 자손이면서 또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이래서, 첫째 아담의 자손된 우리들이 둘째 아담의 자손된 것은 어떤 것이냐?  첫째 아담의 자손된 것은 순전히 피조물 요소로 된 우리들입니다. 피조물 요소로  된 우리 영육인데 이제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우리들은 피조물 요소로 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그 완전 요소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은 '처음의  것은 땅에 속한 것이고 둘째 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라' 이렇게 말했어.

 그건 땅에 속한 자손은 첫 아담의 자손이요 또 둘째 아담의 자손은 하늘에 속한  것들입니다. 처음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것은 다 유한한 것들이요 또 변하는  것들이요, 일시의 것들이요, 약한 것들이요 다 범죄할 수 있는 것들인데 다 범죄한  것들이요, 사망 아래에 있는 것들입니다. 이랬는데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것은 영원한 것이요 완전한 것이요, 불변의 것이요 다 신적 요소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그 자손은 우리가 나는 데에 유전돼 나온  유전돼 유통돼 나온 그것이 얼마가 됐느냐? 지금까지 말하면 약 육천 년  걸렸습니다. 약 육천 년 걸려서 우리는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유통돼 가지고  우리에게까지 와서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 아담의 자손은 얼마나 걸렸느냐 하면은 그거는 시일이 없이 창세  전 영원 전이라 했습니다. 영원 전부터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될 것을 하나님이  목적으로 정하시고 택함으로 정하시고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셔 가지고 우리들이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이래서 이번 공과의 첫째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땅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는데, 하늘에 속했다 말은 이  피조물로 된 복이 아니고 창조주의 요소로 된 복이라 그말입니다. '하늘에 속한'  또 신령한 복이라 하는 신령한 복이라 말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안하고  모든 죽음이나 병이나 이런 것들에게 제한받지 아니하는 이 피조물들이  상관할래야 상관하지 못하고 침노할래야 침노하지 못하는 이런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 신령한 복으로 줬다 말은 무한한 복이라 말도 되고, 영원한 복이라는 말도  되고, 불변의 복이라는 말도 되고 완전 복이라는 그 말도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줬다.

 또 하늘에 속한 복 줬다 말은 이는 가치적으로 최고의 것인데 곧 이거는 피조물  요소가 아니고 신적 요소의 축복을 우리에게 줬다 하는 걸 가리켜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는데 그 복 주신 것을 차혜로 친다고 하면은  제일 첫째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 아들되게  했다 말은 그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창조주이신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출생되게 하셨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출생되게 하셨다 하는  그말입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은 아담 해와의, 그 간단하게 말하면  부정모혈이지마는, 부정모혈이지마는 아버지의 그 모든 요소를 다 가지고  생겨났고 어머니의 요소를 다 가지고 그로 말미암아 생겨져 나왔기 때문에  아버지라 어머니라 부모의 자녀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뭐  아버지는 부정모혈이니까 아버지에게서는 정충밖에 안 나왔으니까 그뭐 거석하다  이렇지마는 정충이 나와 가지고 배란으로 이렇게 합작해 가지고 우리가  생겨나왔는데 아버지의 그 모든 속성이라든지 본질과 본성이라든지 그 모든 피의  관련이라든지 그런 것이 다 거게서 뽑혀 나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피를 알면  아들의 피를 알 수 있고, 아버지의 성격을 알면 아들의 성격을 알 수가 있고,  아버지의 그 모양을 알면 처음 본 사람도 그 아버지 아들의 모양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어머니도 그러합니다. 이건 순전히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것도  그 요소로 말미암아 우리가 났습니다.

 그러면 둘째 아담으로 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나느냐? 우리가 둘째 아담으로 난 우리도 첫째 아담으로 난 거와 같이 순전히  하나님의 요소로 우리가 났습니다. 그게 조금 다른 것은 첫째 아담의 자손은 첫째  아담의 요소가 이렇게 분류돼 가지고, 첫째 아담의 요소가 이렇게 거게서 쪼개져  나와 가지고, 쪼그매 쪼개져 나와 가지고 우리가 생겨졌지마는, 둘째 아담의  자손된 우리들도 순전히 둘째 아담인 창조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겨  나왔는데 여게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쪼갱이가 쪼개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그  세포가 나와 가지고 뭐 정충 나오듯이 그래 가지고 된 것이 아닌 것은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이는 분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이기 때문에 그 분류할 수가 없어 하나님께 나온  것은 다만 하나님의 그 속성 지능, 당신의 지능 속성의 그 능력이 나와 가지고  우리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 능력이 와서 되어졌기 때문에 아담 해와는 물질로  분류가 됐지마는 우리는 물질로 분류가 되지 안하고 그 모든 속성과 지능이, 그  지능과 속성이 우리에게 분류가 돼 가지고 나왔습니다. 나왔으면 그러면 하나님의  그 속성과 분류가 갈라져 가지고 된 것이냐? 갈라져 가지고 된 것이 아니고 그는  완전이기 때문에 갈라질 수 없는 그 본질과 본성이기 때문에 그 본질과 본성으로  말미암아 갈라질 수 없는 방편으로 갈라져 가지고 나온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가운데에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 된 데  대해서 어떤 교파에서는 유출설을 말합니다. 유출설. 마치 첫째 아담에게서  정충과 또 배란이 나와 가지고 그래 가지고 생겨진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그 신적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생겨졌기 때문에 신적 요소의 그  분류된 그 지극히 적은 세포가 나와 가지고 우리가 됐다' 이렇게 해서 유출설을  말하는 그런 설들이 있는데 그거는 이단입니다. 그는 완전자이기 때문에 거기서  갈라져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유출설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유출설이  아니고 다만 거게서 본체는 완전이기 때문에 유출할 수 없고 그분의 속성이나  기능이나 그것은 얼마든지 갈라져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속성과 기능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생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첫째 아담의  자손이면서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의 자손으로 우리가 돼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첫째 아담의 자손인 것과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거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데, 그러면 첫째 아담의 자손도  우리는 벗을 수 없고 없앨 수 없고 내나 자기입니다. 그 자기가 이제는 멸해질 수  있는 요소로 첫째 아담의 자손된 그것이, 거게다가 멸해질 수 없는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서 우리가 다시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게 무슨 양자 한 것 모양으로 이렇게 하나의 논리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이 아니고 또 하나의 무슨 제도로 된 것 아닙니다.

제도로 된 것, 무슨 논리로 된 것, 무슨 약속으로 말미암아 된 것 그것이 아니고  실질로 하나님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하기를 '땅에 속한 우리가 있고 하늘에 속한 우리가 있으니  땅에 속한 자는 땅에 속한 자의 형체를 입었고,' 땅에 속한 자는 땅에 속한 자의  형체를 입었다. 첫째 아담의 이목구비 수족, 이거 다 눈이 둘이고 코가 둘이고  귀가 둘이고 이거 수족이 다 있는 이것은 첫째 아담의 그 형체대로 된  우리들입니다.

 이랬는데 '하늘에 속한 자의 또 형체를 입는다'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를 입는  것은 어떤 걸 입느냐 하면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를 입는다는 말은 곧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에서,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에서 난 자와 같이 된다 요래 돼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둘째 아담으로 난 우리들은 꼭 예수님의 그 인격성, 그 속성 또  그 완전성, 그 모든 지능성이나 도덕성이나 사랑성이나 또 영원성이나 그  예수님의, 예수님의 그 모형과 꼭 같은 그런 요소로 우리가 나 가지고 지금  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중생된 것은 무슨 법적으로 이렇게  중생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실질적으로 중생이 됐습니다. 또 우리는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요소로 우리가 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요소로 났는데 첫째 아담의  자손은 아담의 그 피와 살, 피와 살, 물질. 피와 살, 물질로 거게서 갈라져 나와  가지고 우리가 됐지마는 둘째 아담의 자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은 그 물질로  갈라져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갈라져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갈라져 나왔고, 지혜가 갈라져 나왔고,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 갈라져 나왔고,  하나님의 진실과 거룩과 의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이 우리에게 갈라져 나왔으니  그거는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할 그 요소인데 그것이 우리에게 갈라져 나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거게 주의할 것은 갈라져 나와서 됐으니까, 아무리 커도, 아무리 커도  거게 먼지 하나라도 떨어지면 그 원 뭉치가 적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안해요?  아무리 큰 태산이라도 거게 논리적으로 말하면 먼지 하나가 떨어졌으면은 태산은  그만치 작아졌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서 그 신적 요소로 우리가  거게서 갈라져 가지고 나왔으니까 신적 요소인 하나님의 모든 본체 냅두고  하나님의 그 속성의 모든 요소들이 우리가 갈라져 나왔으니까 하나님의 그  본체인 그 요소가 양이 줄어졌겠느냐 그대로 있겠느냐 하는 요것을 지금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양이 줄어졌겠습니까 그대로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는데 본체는  완전이라 해서 그는 불변하기 때문에 갈라질 수도 가감도 할 수가 없지마는 그의  그 속성이 실질적으로 그 속성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 속성이 됐어. 그의  완전성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완전성이 됐고 그의 지식성, 지혜성, 사랑성, 선성,  진실성, 거룩성, 의성 이런 모든 속성이 실지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됐습니다.

 됐으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본체인 그 속성은 원, 본 뭉텅이는 말이요, 비유컨대  말이지 조금 말이 좀 어폐가 있을란지 몰라도 본 근본 뭉텅이인 하나님의 그  속성이 줄어졌습니까 그대로 있습니까? 우리가 거기서 쪼개져 나왔으니까,  수억억만 명이 쪼개져 나왔으니까 하나님의 원, 본 둥치가 양이 적어졌겠습니까  그대로 있겠습니까? 적어졌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녜, 바로 알았어  적어지지 안했습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왜? 그도 다 속성도 다 완전입니다. 완전이기 때문에 그 완전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이렇게 우리가 그 자녀가 돼 가지고 이래 난 것이지 그거  무슨 갈라져 가지고 줄어진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만일 갈라져 가지고 그래  된다면은 그것이 완전입니까 영원이 되겠습니까? 불변이 되겠습니까? 불변도 될  수 없고 완전도 될 수 없고 영원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자손이 된 것이 그 선조의 모든 요소가 그것이 갈라져 나와 가지고  우리가 됐습니다. 그러면 거게서 우리가 분식돼 가지고 나와서 됐습니다. 그  실질로 분식돼 가지고 나와서 돼서 그러면 아버지를 보면은 그 아들을 안 보고도  어떻게 생겼으리라 대략 짐작하고 어머니를 보면은 그 어머니 생김새 대로,  아버지 어머니의 요소를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그와 같다고, 환경을 따라서  자라니까 꼭 그렇지는 안하지만 비슷하게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도 하나님의 이 본체는  아니나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능력, 무한하신 사랑, 무한하신 속성, 그 모든  하나님의 신적 요소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입니다. 그 뭐  말로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된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그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입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이 첫째 아담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에게 된 것처럼 둘째 아담의 요소 곧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자손이 됐으면 첫째 아담의 것은 이게 줄어지는데, 그거 분류되니까  줄어지는데 둘째 아닸의 자손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에게 됐지마는 줄어지지  않습니다. 줄어지지 안는 거 그거는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의 그  능력이, 순의 지혜가, 완전의 그 본질과 본성이, 완전의 그 생명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됐기 때문에 그 요소로 됐지마는 그 본체의 요소가 줄어진 것은 아니라.

그는 왜 그 본체의 요소가 다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의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이지 이제 그것이 갈라겨 가지고 분산돼 가지고 우리가 분식으로 된 것은  아니라 하는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말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또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내나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하는 것이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  하는 것이나 꼭 같은 말인데 거게 그 우리라고 붙이는 우리는 왜 붙이는가?  우리는, 우리라 하면은 복수고 내라 하면 단수인데, 이번에 그 메모 나온 데  대해서 아버지에 대해서 거게 우리 아버지라 말에 우리가 빠졌는데, 우리가  빠졌는데 그 조금 어색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빠져도 다른 사람이 정죄는 못  합니다. 그거 내 아버지 했으면 그거 그만 정죄되고 그라면 안 됩니다. 안  되지마는 그냥 아버지 했으니까 우리가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붙이지 안해서 좀  분명치 못한 것이나 언제든지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에는 우리를 붙어야 됩니다.

우리.

 제 단독은 안 돼. 단독 하면은 아주 오붓하고 자기 독차지해서 좋을 것같이, 우리  아버지 하니까 여럿이 아버지 같고 내 아버지 하면 직접 단독이 이와같이 지금  부자간이 되니까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내 아버지 내 단독이 내  단수로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안 됩니다. 내 단수로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돼야 됩니다.

 우리가 돼야 되는 것은, 복수가 왜 돼야 되느냐? 복수가 되는 것은 예수님과  나와 연합이 돼야 이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되지 그리 안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어데 어림이나 있습니까? 이거는 뭐 어떤 세계가 다 달라들어  가지고 한다 해도 한 사람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을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하는 데에 우리라 한 것을 예수님의 대속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예수님과 나와 둘이 합해서 우리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는 거  우리라 말한 것은 어데 뭐 이웃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합해서 우리가 된 게  아니고 예수님과 나와 둘이 합해 가지고 우리가 된 이 복수입니다. 이 복수가  아니면 그것이 안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했는데 이 아버지가 된  데 대해서 우리가 무슨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법적으로 그래 됐다,  하나님의 그 제도적으로 그래 됐다, 하나님의 명령적으로 그래 됐다 이렇게  하나의 논리로 된 것이고, 제도로 된 것이고, 법으로 된 것이지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요소가 와 가지고 내가 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은  아니라는 요렇게 생각하도록 마귀란 놈이 유혹을 주기 때문에 요것을 오늘 밤에  지금 완전히, 똑똑히 우리에게 증거해서 요런 미혹을 받지 안하도록 말한  것입니다. 지금 다만 양자 하는 것을 말한 것, 양자를 말하는 것은 예수님은  적자라는 것,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오, 하나님. 예수님은 독생 하신  하나님이라, 근본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하나님의 본체시요 우리는,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데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이 예수님의,  하나님의 본체로 우리가 아들된 게 아니라 그 말이오. 본체로 아들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를 양자라고 한 것이지 하나의 무슨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이렇게  논리적으로 되는 그런 것으로 됐기 때문에 우리를 가리켜서 양자라 말한 것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적자요 우리는 양자라 한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본체시요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본체로 된  성자와 같은 그런 아들은 아니라는 그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양자라는 것을  말하고 또 다만 본체로 된 것은 아니지마는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주신 그 모든  상속권이나 모든 관계권이나 하는 이런 것은 본체가 된 그 성자나 우리나 꼭  같은 그런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그거 또 인간이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양자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양자라 한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이래서 오늘 밤에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신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이렇게 됐기 때문에 하나의 논리적으로, 법적으로, 이치적으로, 제도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된 것이지 하나님의 그 요소가 친히 내게 와 가지고 내가 된  거는 아니라 이렇게 우리가 미 혹받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기는 뭘로 나? 진리로 낫고 영감으로 났어. 진리로 났고  영감으로 났고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 칭의, 화친으로 났고, 또 하늘나라의 이  소망으로 우리가 났어, 생겼습니다. 소망으로 생겼습니다. 이것이 첫째 아담의  자손에게는 없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된 것이 왜 우리를 붙이느냐? 예수님의 대속을 인하지 안하면, 그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됐기 때문에  우리라는 이 복수를 붙이게 됐고 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된 것이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된 게 아니라 실질로 하나님의 그 신적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내가 돼 가지고 됐다 그 말이오. 내가 돼 가지고. 그러면 신적 요소가 와 가지고  내가 됐으면 신적 요소가 와 가지고 내게 와서 피조물 됐다 말 아니오. 창조주의  그 신적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첫째 아담이라는 이 껍데기를 거머쥐고 그  속에서 둘째 아담의 자손의 그 신적 요소가 속에서 작용해 가지고 이렇게  역사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껍데기는 첫째 아담의 자손이지마는 속에  작용하는 움직임은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움직이는 것은 다 그것은 다 죽여  버리고 완전히 둘째 아담의 자손이라면 전지, 전능, 완전, 영원의 그분의 요소로  우리가 움직인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이 하나님의 아들된  것을 우리가 자꾸 이렇게 생각하고 또 성경을 가지고 연구하고 이 자연 계시를  가지고 연구해서 언제든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을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 그저 자꾸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불러서 아버지와 우리가 그 밀접한 거,  이걸 자꾸 부르게 되면은 우리 속에 아버지의 씨가 와서, 아버지의 씨가 와서,  아버지의 씨가 와 가지고 내가 돼 있습니다. 우리 속에 말이요, 우리 속에는 첫째  아담의 자손의 요소가 있고 그거 아닌 것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내가 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더 권리가 있고 능력 있게 역사하고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다고 해 가지고 그것이 내가 됐으면 그것을 내가 주관하는 게 아니라 내가  주관하는 게 아니라 그가 나를 주관합니다. 그 신적 요소의, 하나 예를 들면은  하나님의 성질이 하나 내게 왔 으면은 하나님의 성질을 내것 됐으니까 내맘대로  그 성질을 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성질이 내게 와 가지고 나를 주관합니다.

그러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그 속성이나  요소들은 첫째 아담의 자손을 주장합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의 자손을 둘째 아담의 자손이 주관해 가지고 첫째 아담의  자손은 말하자면 이 기계와 같다고 하면은 둘째 아담의 자손은 주인과 같이 돼  가지고 첫째 아담의 자손을 이것울 거머쥐고 활용하고 작용하는 것은 순전히  둘째 아담의 자손된 그 요소가 주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생된 것이 뭘로  중생됐느냐? 진리로 중생됐습니다. 그러면 진리로 중생했으니까, 진리로  중생됐으니까 내가 진리입니까? 내가 진리입니다. 내가 진리면 그라면 진리가  피조물 됐습니까? 아니오. 창조주입니다. 진리가 나를 주관해서 내가 된 것입니다.

진리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진리는 우리 생명이요, 영감도 우리  생명이요, 예수님의 대속이 우리 생명이요, 하늘에 소망이 우리 생명입니다.

 마치 장사라도 생명이 떠나 버리면 그 모든 지체가 다 썩어져 버리고 소용 없고  생명이 다시 희생이 되면은 그 지체를 움직여서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는 이 네 가지 생명으로 중생됐기 때문에 네 가지 생명이  우리의 모든 이목구비 수족을 주관해 가지고 이렇게 움직이게 되면 그것은 다  뭐입니까? 그것이 뭐이지요? 그게 뭐입니까? 중생된 요소가 몇 가지로  중생됐습니까? 손가락으로? 네 가지로 중생됐습니다. 네 가지로 중생됐는데 요 네  가지가 내 영육을 붙들고 역사해 가지고 하는 그 행동은 그거는 무슨 행동  됩니까? 그거는 뭐이지요? 그거 죽습니까 늙습니까? 죽지도 늙지도 않습니다.

죽지도 늙지도 안하고 영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요것을 연구해서 우리  속에는 우리 속에는 겉어머리는 첫째 아담의 자손인 껍데기 속에 둘째 아담의  자손이 내 속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첫째 아담의 자손도 있고 둘째 아담의  자손도 있는데 둘째 아담의 자손이 첫째 아담의 자손을 거머쥐고 주관을 하고 또  첫째 아담의 자손이 둘째 아담의 자손에게 주관을 당하면 영생이 되고, 이거 첫째  아담의 자손이 주관하면은 멸망을 받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다 이렇게 영생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중생한 것은 중생한 거는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명을 둘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는 죽을 생명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죽는 생명.

죽는 생명 가지고 있고 영생하는 생명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죽는 생명으로 살  수도 있고, 죽는 생명으로 하루를 지낼 수도 있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하루를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예를 들면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루 살았으면 그 사람들은 죽는  생명으로 하루를 지냈습니까 영생하는 생명으로 하루를 지냈습니까? 여기 O선생?  안 믿는 사람들은 무슨 생명으로 하루를 지냈습니까? 죽는 생명으로 지냈습니다.

이러니까 제딴에는 하루 산 줄 알아도 하루 살았으면은 그만치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 년 살면 다 죽는 사람, 팔십 년 살면 다 죽는 사람, 구십 년 살면 다  죽는 사람 이 첫째 아담의 자손은 그것은 죽는 생명입니다.

 나도 예수 믿는 사람이지마는 첫째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첫째 아담의 자손은  내가 지금 팔십인데 이제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이거 첫째 아담의 자손은  죽습니다. 죽지마는 둘째 아담의 자손은 죽지 않습니다. 둘째 아담의 자손은 죽지  안해요.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사는데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하루 생활 하느냐?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하루 생활 하느냐? 뭘로 하느냐 그거요. 그러니까 요것을  똑 비교해 가지고 그러면 하루 살면 하루 살면 하루 죽을 수도 있고 하루 살면  하루 영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비를  하고 지금 땅에 있는 것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땅에 있는 걸 돌아보지 안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이 두 가지 생명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무슨 영생을 요  다음에 천국 가서 받는 게 아니라 지금 모두, 영생을 우리가 언제 받았습니까?  영생을 언제 받았습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영생을 가지고 영생으로 살라면 살  수가 있고, 죽는 생명으로 하루 지낼라면 지낼 수가 있고, 하루 산다 하지만 사는  게 아니라 죽는건데, 자 죽는 생명으로 하루 죽는 게 있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하루 사는 게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하는 생명을 우리가 가진 것이 언제부터  가졌습니까? 언제 가졌습니까? 예수 믿을 때 가졌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우리가 중생될 때에 이 생명을 우리가 가졌다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을 언제 가졌습니까? 중생할 때 그때  가졌습니다. 중생이라 말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내가 살아났다 그 말이오.

살아나는 거 뭘로?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진리가 죽습니까? 영감으로 살아났고  사죄로 살아났고, 칭의로 살아났고, 화친으로 살아났고, 하늘의 소망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이거는 늙지도 쇠하지도 죽지도 않고 자꾸 자라가고 견고해지고 커져  가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구별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나는 첫째 아담의 자손  들째 아담의 자손,'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그 말은 이제는 네가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살지 말고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살아라 그 말이오. 우리는 또  영생하는 생명과 죽어가는 이 살이가 있기 때문에 제 자유라. 오늘도 죽는  생명으로 하루를 지낼라면 지내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하루 살아 가지고 이  생명으로 자라고 튼튼하고 할 수도 있다 그거요. 이걸 기억하고,  또 우리는 우리는 지금은 이 몸뚱이인데 죽기를 싫어하지마는 죽기 싫으면 이  몸뚱이가 안 죽으면 이거 어찌 되겠소? 안 죽으면 이거 쭈글쭈글하고 쇠해지고  더러워 집니다. 쇠해지고 더러워져요. 그러니까 뭐 나도 나이가 팔십인데 그뭐 참  쭈글쭈글한 송장 한 가지라. 송장 한 가지. 그래 또 예수 믿으니까 그래도 덕을  좀 보기는 본 모양이라. 다른 사람들이 안 늙었다 이래요. 안 늙었다 해도 그뭐뭐  송장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이 껍데기 첫째 아담의 자손은 점점 쇠해지고  늙어져 가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 중생된  이것은 자꾸 갈수록 커집니다. 어떤 사람은 자꾸 죽어지고 작아지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커지는 사람 있어 한 사람은 자꾸 커져가고, 한 사람은 자꾸 죽어져  가고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껍데기는 자꾸 쇠해지고 낡아지지마는 속은  날마다 새로와지고 장성 해간다. 이것을 우리가 가지고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이 이것이 이래 있다가 아무래도 이 몸 가지고 있으면 자, 이  몸 가지고 이 몸 가지고 영생하고 싶온 사람 손 들어 봐요. 죽지 안하고. 죽지  안하고 영생하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봐요. 이 몸 가지고 죽지 안하고 영생하고  싶은 사람 한번 손을 들어 봐요. 나중에 영생을 한다 하면 그게 처음에는 늙어져  내음새나고 송장이 됐다가 뒤에 가서는 막 흐물흐물 그 송장물갈이 돼 가지고  그거 어찌 되겠소, 그렇게 되면? 그런 거는 좀, 그러기 때문에 '혈과 육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못 받는다' 이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죽는 거는 뭐이냐? 죽는 거는 낡아질 수 있는 이  옷을 벗어내 버리고 영원히 낡아지지 안 할 수 있는 신령한 옷으로 바꿔 입기  위해서 우리가 벗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나쁜 거 벗고 좋은  거 갈아입을라고 벗는 것이고,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떠날 때는 그는 완전히  멸망을 하기 위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 아버지 아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뒨 거 또 우리는  영생을 영생을 가졌습니까 앞으로 받아 가집니까? 영생 가진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우리는 영생 가졌어요. 영생을 가지고 지금 영생이 삽니다. 영생 가졌고 또  신령한 몸으로 우리가 부활할 것이고 이제 이것이 첫째 둘째 세째 큰 축복입니다.

큰 축복.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영생' '신령한 몸으로 부활' 이것도 느껴지지를  안해 그래요. 사람들이 자꾸 안 늙어질라고 뭐 요새 뭐 무슨 그 박사더라? 그  박사 이름이 뭐이야? 어? OOO? OOO박사가 조금 덜 늙는다는 거 해 놓으니까  막 죽을라고 환장하고 돌아다녀, 돌아다니기를. 그거 암만 안 늙는다 해도 나중에  늙어서 죽어버려. 송장돼요.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늙지 안하는 신령한 부활이  있고, 자꾸 지금 이게 어떤 사람은 자꾸 죽어져가니까 텅 비어. 이 기능이 점점  썩어서 죽는 걸로 하니까 기능이 돼서 나중에 보니까 한 자루 커다란  쌀가마니만한 덩어리가 날마다 죽는 생할 하니까 줄어지고 줄어져 가지고 이  껍데기가 늙어져 가며 속도 늙어져 간다 그 말이오. 줄어져가고 줄어져가고  이라는데 한 사람은 껍데기는 늙어져가지만 속에는 자꾸 썩지 안할 걸로 자라고  자라고 이라니까 속은 탄탄하게, 껍데기를 확 벗어보니까 영생할, 늙지도 쇠하지도  않을 완전한 생명으로 튼튼하게 돼 가지고 이 사람으로 사는 사람 있고, 죽어가는  이 죽음으로 하루를 지내는 그런 사람 있으니까 이거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되겠다  말이오.

 우리의 또 축복, 직업 축복이 뭐 축복이요? 제사장 축복, 선지 축복, 왕 축복.

제사장 축복은 하나님과,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를 화평케 해서 창조주도 우리  아니면 안 돼요. 피조물도 우리 아니면 안 돼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를 화합을  시키는 이 역할이 우리의 제사장직이라. 또 선지직은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갖다 주면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 좋아해요.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에게 갖다 줘서 피조물에게 충만하도록 영원히 하는 것이 그 직업이라.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아이들도 뭐 갖다 주라 하면 서로 가져갈라 한대요.

얻으러 가라면 마다 한대요. 그렇지 안해요? 주는 것 재미 있습니다. 이런데  영원히 하나님의 충만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충만시켜 주는 이 직책이 얼마나  좋아요? 이 선지직도 생각하면 기가 막히게 좋아요. 목사노릇 하면 욕 얻어먹는  그런 거야 뭐 그런 거 보면 그렇지마는 재미 있는 것은 뭐이냐 하면 오늘  저녁에도 이 하나님 말씀을, 이 충만한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전해 주면  여러분들이 이대로 살면은 하나님의 충만이 이제 여러분들의 것 되니까 이 속에  굉장한 수입이 알맹이 있다 그 말이오. 이래서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도 이거 뭐  측량 못 해요.

 이것을 반사 선생님들이 외우고 또 자기가 그대로 실행을 해 보고 이라면 그  경험과 체험이 나와요. 이라면 능력이 나와서 이거 학생들에게 이거 안 넣어 주면  안 되겠고, 이거 모르면 이 학생들 죽겠다, 큰일 나겠다. 그러니까 자기 속에  오늘은, 뭐 테레비를 보면 '야, 너 지금 오늘 이거 어떤 날이라고 지금 이거 지금  하나님의 큰 축복 여섯 가지를 네가 지금 알고 뺏기지 안해야 될 터인데 뭐하고  있어?' 그 불이 나와 가지고 말할 수 있고 그럴 때 그 학생들도 성신의 감동으로  깨닫게 되지마는, 이게 뭐 새김질도 안 했지, 외우지도 안했지, 지키지도  안했으니까 속에 텅 빈 게 '여섯 가지 축복해도 여섯 가지 축복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뭐 알겠나?' 속에 제가 믿어지지도 안하는 그걸 누구한테 가르쳐 줘,  가르치기를? 그래 놓으니까 힘이 없다 말이오. 시간 너무 갔어.

 그래 그러면 이거 '찬송하리로다' 하는 것은 여섯 가지 이 축복을 밤낮 우리는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그 사람이 여섯 가지 축복으로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은 밥맛도 있고 그 사람 얼굴도 좋아지고 기운도 좋아지고 다  좋아져요, 이거는.

 반사 선생님들 공과 외우고 실천해서 체험과 경험의 지식을 가지고 가르칠 것,  삼십 분 기도 이거 잃지 맙시다.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나와요 또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꼭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자기 심령 속에 품어 놓고 기르도록  할 것. 대구 집회에 대해서 기도로 모든 것을 준비해서 그때 지장 없도록 잘  준비해 가지고 그때, 임시 당황해서 날뛰지 말고 잘 준비해 가지고 지장없이  참석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또 강사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면 저거에게 은혜 가요.

저거에게 은혜가 가. 또 전국과 세계에서 지금 모아들 터인데 그 사람들에게 교통  안보를 달라고 우리가 기도하고, 강의 안보도 줘야 되고 모든 안보를 다 줘야 될  것이라. 뭐 관민의 협조도 있고, 만물의 자연의 협조도 있고 곤충 한 마리까지도  은혜받는 데에 지장을 안 줘야 돼. 지장 주면 안 돼요.

 이러니까 이 소망을 가지고 살고, 마귀란 놈은 땅의 것을 지지하이 해 가지고  자꾸 우리 이 믿음을 흔들어서 이 소망으로 살지 못하게 그놈들이 꼬운다 말이오.

꼬우는 데 그래 꼬이지 말아요. 하거나 말거나 우리 구원만 이루어 가면 그만이지  뭐, 앞서 달아나면 그놈이 뒤에, 앞서 달아나면 뒤에 와서 중얼중얼 있다가 자꾸  좀 지체하라 해도 달아나 버려. 달아나면, 그까짓 거 갋을 거 없이 앞서 달아나면  돼.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흘러 떠내려 보내지 말고 확정을 짓고 단행하면 돼요, 단행.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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