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1988. 5. 3. 오후집회

 

본문 : 창세기 12장 1절-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세기 12장 8절-10절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세기 13장 6절-13절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세 시간이 지나갔는데 세 시간 동안에는 계속 사람병 고치는 진리를  증거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병을 고쳐서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과 그 경건한  사람이 살 때에 사용할 수 있는 몸의 건강을 가지면 그만하면 모든 것은  족합니다. 거기에 다 따라서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사람병 고치기를 모두 다 힘쓰고 원해서 노력을 하고 또 두번째는  우리 몸의, 병을 고쳐서 자기 영원한 구원을 이루기에 족한 그 몸이 되도록  주님에게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몸의 건강은 어떤 것을 표준을 하는 고 하니 뭐 밥 잘먹고 잘 뛰어 돌아다니고  잠 잘자고 하는 그것을 자기에게 가장 강건하고 필요한 몸이라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새사람이 되어서 새사람 생활을 할 때에 새사람이 쓰기에  적당한 그 건강이 자기에게는 병없는 건강이지 새사람 생활할라 할 때에  새사람이 쓰기에 너무 건강해도 병, 또 약해도 병, 그저 새사람 생활하기에  알맞는 그 몸이 되어 있는 것.

 또 젊은 사람으로서 새사람 생활하기에 적절한 몸, 또 중치기 됐을때에 새사람  생활하기에 적절한 몸, 또 노인이 되었을 때에 새사람 생활하는 적절한 몸  그것이 다 또 육체의 병이 없는 건강한 몸이라 그렇게 우리는 평가를 합니다.

 이래서, 마태복음 6장에 ‘몸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런 것은 다 너희 천부께서 너희들에게 있어야할 것인 줄  아시느니라 그런고로 너희는 그것은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욕망하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들에게 더하여 주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더하여 준다는 그것은 더욱 유익되게 해 주시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의식주를 많게 해 주신다는 말도 아니요 또 적게 해 주신다는 말도 아니요  많아서 판단되는 일도 없고 적어서 판단되는 일도 없고 모든 것이 알맞고  적절해서 자기 구원 이루기에 가장 좋은 성도의 그 소유를 주시겠다 하는 그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병을 고치는 것은 자기의 지식병 고쳐지는 것이요, 또 모든 마음의 작용인  사상이나 성품이나 모든 욕망이나 자기의 심신의 온갖 생활하는 그 생활의  본질과 본성과 기능이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생활하기에 적절하도록 되어지는  것이 사람병이 고쳐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람병은 알지도 못하고 그것은 사람병은 자기에게 화가 된다고도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고기 덩어리의 병은 병인 줄 알지마는 사람병은 그  중하게 여기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고깃덩어리의 병은 자기에게 그렇게 큰 해를 주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병은 자기의 금생과 영원을 멸망시킬 수 있는 큰 해의 결과를 가져 올  수가 있는 것이 사람병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성질 하나 잘못돼. 가지고서 금생과 내세를 망치는  사람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안 가질 욕심을 하나 가져 가지고서 욕심이  병들어서 안 가질 욕심을 가지는 그 안 가질 욕심 하나가 있어 가지고서, 이게  사람병인데. 그거 가지고서 금생과 내세를 망치고온 가족들도 다 거기에 속한  자를 다 연결시켜서 망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잘못된 감정병 하나 들어 가지고서 그것으로써 금생과 내세를 망치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병이라 하는 것은 참 해독이 굉장히 많은데 여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별로 이 이 사람병에 불행이라는 그 느낌을 가지지 묵해서 사람병 든  데에 탄식도 안하고 고칠라고 애를 쓰지도 안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병을 고치는 그 방편을 이것도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셔 가지고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사람병이 고쳐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계획을  짜 놨기 때문에 이 방법 외에는 사람병 고쳐지는 그런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병 고치는 방법은 다 믿음이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산다  말은 영생한다 말이요 완전하다는 뜻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첫날밤, 또 오늘 아침, 오늘 오전 주신 이 말씀이 사람병  고치는 이 약이라, 사람병을 고치는 유일한 치료제라 하는 이것을 생각하고 내가  아무래도 이 사람병을 고쳐야 되겠다 요 소원을 가지지 안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온갖 병자들을 다 고쳤는데 그 벙자들을 고칠 때는 다  그 환자들이 낫기를 원했고 또 환자들이 본인이 낫기를 원하지 못할 만치 짙어져  가지고 있는 그런 위급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옆에 있는 건강한 사람들이 거기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그 병에서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형식을 가지고 계시해 주신 것인데 그거는  육체만이 아니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병 치료받는 것과 모든 자기의  생애라든지 육체라든지 그런 치료받는 것을 다 가르쳐 주셔서 하나의 도리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 도리입니다.

 구원 도리로 봐야 되지, 그것을 무슨 역사적인 그 어떤 한 사실 그것만을  생각하고 그것이 나에게 예수 믿는 이치를 가르쳐 주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그 사람이 성경을 읽어도 거기에 계시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그  목적은 잡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 복음의 실효는 자기가 얻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모든 데서 다 보면 환자가 환자인 것을 알고 그 병 고침방기를 원하는  그 순서가 있도록 하셔 가지고서 그래 그 병이 고쳐졌지 그거없이 고쳐진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서 자기가 사람병 들었다는 그것을 깨닫고 이 사람병이  육체의 온갖 그 모진 병보다 자기에게 해독이 크다 하는 것을 이걸 깨달아서  느껴야 주님 앞에 고쳐 달라고 간구를 하고 고칠라고 치료를 받을라고 애를 쓰고  이래야 비로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우리가 많이 듣고 보는 것인데 그 무슨 병에 대해서, 그 어떤 사람은  그만 나무에 올라가다가 잘못 뻐끌어져 가지고서 다리가 얄궂게 그만 꿈쳐져  가지고서 뼈가 뿌러졌는데 그거 치료받는다고 뭐 몇 번 전신 몽혼을 해 가지고서  그래 수술받을 때에 얼마나 아픕니까? 굉장히 아프답니다.

 이래도 아파도 치료를 받아야 되겠다 하는 그걸 느끼기 때문에 전신몽혼 해  가지고서, 전신 마취를 시켜 가지고 만일 안 깨어나면 그대로 죽어버리고 마는  건데 이제 그런 위험스러운 전신 마취를 시키지, 또 그래 가지고서 뭐 뼈를  톱으로 썰어내지, 살을 깎아 내지 이렇게 하는 그 어려운 수술을 받는 것은  본인이 그것보다 병신돼 있는 것이 더 자기에게는 아픈 일이요 불행하다 하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그 수술받는 고통이 크지마는 그것보다 병신 그대로 있는  것이 더 자기에게는 중한 고통이 된다 하는 것을 느낄 때에 큰 고통을 작은  고통으로 바꿀라고 다 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병을 고치는 데도 어려운 그런 수술 그건 단계가  있습니다. 자기가 못쓸 사람이 참사람이 되어지는 데에는 참 자기가 걸어가기  어려운 아주 애로의 어려운 시험이 있습니다.

 어려운 시험이 있어도 내가 이 시험을 잘 참고 견뎌 통과하지 안하면 나는 이제  쓸모 있는 참사랑이 되지 못한다 하는 이것을 깨닫고 자기가 금생과 내세에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 앞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데에는 아무래도 내가 이  수술을 받지 안하고 치료받지 안하면 안되니까 이 수술을 받는 데에는 내가 이런  생활에 애로가 있다 하는 그것을 느끼고 그 애로를 달게 받을 수 있는 자기  사람병든데 대한 불행과 고통성을 느끼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그걸 못 느끼는  사람은 참사람이 되는 그런 치료를 받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죽을 때까지 사는 생활이 하나는 그 병을  수술해서 끊어내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것을 끊어내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건강을  만드는 것이요 그 두 가지 생활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병을 잘라내는 그 떼 내는 수술받는 생애와 또 자기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건전하고 건강한 인격이 되어지는 그 건강을 자기가 육성시키는,  길러가는 이거 외에 다른 생활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 두 생활해서 치료 다  되고 건강 다 회복됐으면 하늘나라에 갑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 사람은 다 치료받을 것 다 치료 받았고 건강 회복할  것 다 회복했으니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땅 위에 두지 안하고 아마 데려갈  것이다 이래서 모든 그 의인들은 거의가 다 단명했습니다. 짤막하게 살고  갔어요.

 그런 사람들은 보면 그 참 치료받을 것도 다 치료받았고 또 건강해서 무궁세계  가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건강한 사람으로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서  봉사할 수 있는 그 실력 있는 조금도 흠 없이 기쁘고 즐거움으로써 봉사할 수  있는 그런 실력을 다 갖춰 가지고서 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여기에서, 나는 지금 이 집회 와 가지고서 사람병을 꼭 고쳐  가지고 가야 되겠다. 이것을 욕망해야 되는데 그것은 생각지 안하고 여기에서  무슨 나 좋고 내 욕심에 맞은 이런 복을 받아야 되겠다 저런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이런 것만 생각하는 것은 오늘 지금 어찌될지 내일 어찌 될지 모르는 그  병신이 자꾸 돈만 탐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병 고치고자  하는 그것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의 고통이라 하는 것은 자기 밖에서 다른 것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오는  고통이 있고 또 자기 안에서 생겨지는 고통이 있는데 그 대외의 고통이나 대내의  고통이나 인간의 고통이라 하는 것은 전부 사람병 자기에게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행복도 물론 대외에서 객관에서 오는 행복도 있고 -주관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도 있지마는 행복이라는 것도 전부 하나님이 주시는 그 현실에서  자기가 만들어서 행복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는 한 말씀 한 말씀이 사람병을 고쳐서 온전한 사람 만드는  이 치료를 하고 있는 것 또 치료받은 자가 건강해지는 것, 이- 사람병 든 것이  치료되어지는 것 또 수술해서 치료는 해서 병은 떨어지지마는 이 약해서  아무짝도 쓰지 못할 그 몸을 건강으로 회복시키는 것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가 논리로 알고 있어도 수술 안 받으면 그것은  치료가 안 되는 것이고 또 아무리 건강 요법을 자기가 안다 할지라도 건강에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을 구비하게 자기가 사용하지 안하면, 복용하지 안하면,  사용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사람병을 고쳐서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고 이 병을  고치는 유일한 방편과 치료제는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치료제요 또 건강제라. 건강하게 하는 약이라. 치료하는 약이라,  이러니까, 이 건강하는 약도 치료하는 약도 먹을 때 먹어야 되지 자기가 먹지  안하고 보고만 있어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가 먹어야 되고 이  약이 자기 속에 소화가 돼 가지고 이 약의 그 효력이 병에 닿아야 그 병을  치료할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음식의 그 효력이 영양으로, 돼서 자기 몸에  부딪혀져야 자기에게 효력 있는 것이지 아무리 좋은 그 영양제 요리법을 알고  요리를 갖다 놨다 할지라도 그 요리를 자기가 안 먹으면 그것이 자기에게 피와  살이 될 리는 없는 것입니다. 꼭 이와 같습니다. 이래서 야고보서 2장에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병을 다스리는 치료제이니 실행안 하면 안  되고 또, 이 약은, 이 구약 신약의 이 하나님 말씀은 자기의 완전하고 건강하고  온전한 그 인격, 인간성, 하나님의 신성을 닮은 하나님의 신성과 꼭 같은  인간성을 만드는 그것이 자기가 사람으로서 건강체가 인격이 건강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데에는 꼭 사용을 해야 되지, 실행을 해야 되지 실행 안하면 아무 소용  없다는 이것을 우리들이 굳게 잡아야 합니다. 실행하지 않고도 뭐 되는 방법이  있다고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실행 안하면 안 됩니다.

 여기에서 창세기 12장 1절 이하에 읽었는데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그렇게 다 성경이 말했고 우리가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말은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의 표본이라 말이요, 또  아브라함이 신앙생활한 그 신앙의 줄기의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안하면 그거는 절로 마르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포도나무의 영양을 빨고 성장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고 포도나무 비유에 말씀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이 신앙 사상을 우리가 본받아 가지고서  아브라함의 이 신앙 사상과 같은 신앙 사상을 가지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소망한 거와 같은 이 소망을 가져야 되고 아브라함이 이 자기를 하나님께 맡겨  놓고 순종한 대로의 그 순종의 그 신앙을 가져야만 되는 것이지 안 가지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첫째 선포한 것이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본토라 말은 자기 난 고향을 말합니다.

친척은 자기의 혈육의 친척도 있겠고 또 여러 가지 사지사의 친척도 있겠고  자기의 인정으로써 그렇게 사귀어진 정리의 친척도 있겠습니다.

 타락한 후에 사람은 하나님에게 붙어서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이 만족하고 살던  사람을 마귀란 놈이 와서 그 사이를 이간을 붙여 가지고서 하나님과 벌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벌어지게 만들어 가지고 사람을 하나님 대신 어데 붙어서 살도록 했느냐 하면  본토라는, 자기가 어릴 때부터 나서 거기에서 뛰어 논, 물도 있고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모든 흙 돌들도 있고 나무도 있고 하는 그런 것에게 붙어서  거기에다가 정을 붙여 가지고 살도록 마귀란 놈이 만들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인간에게 붙어 가지고 살도록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에  붙어서 모든 인정 거기에 붙여 가지고서 살도록 만들어서 사람은거기에 아주  강한 결합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말만 들을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해서 실제로 우리가 그 실물을  구경한 일이 있습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뚜렷이 나타난 것은  지역이었습니다. 또 국회의원 선거 때도 또 지역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친척이니 인정이니 그것보다도 지역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거처하는 거기에 속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거처하는 그 거처를 따른 사람이 되어지고 또 접촉하는 사람을 따라서  사람이 되어진다.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은 이 두 가지를 따라서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우리 나라는 앞으로 아마 이 지역이라 하는 이것이 여간해서 이거 없어지지를  안할 것입니다. 혹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거는 그만 전부 둥글둥글하게 되어  있는 것을 대님짝 모양으로 납짝하게 요래 끊어서 전부 예를 들어서 경상남도  하면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라남북도, 충청남북도, 강원도, 경기도 이것을  쭈루루루 동가리를 내 가지고, 쭈루루루 이 실나끈 모양으로 이래 따 가져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지금,   지금 몇 도입니까? 남한이 몇 도이지요? 팔 도입니까? 이 팔 도를 이것을 팔  도를 전부 한테다 합해 가지고서 어느 도가 안 든 것도 없이 이래 대님짝  모양으로 이렇게 경계를 그어 가지고서 이 도라는 것을 완전히 한 번 형태를  변질을 시키든지 그래 가지고 모두 다 그, 문화라든지 또 생산이라든지  생활이든지 그런 것을 이렇게 하면 이게 흑이 지역이 변화되고 지금 지역  구별이라는 이거 이 지역성이라는 이 감정이 없어질까 그전에는 없어지기가  어렵다 그렇게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게 다 자연 계시인데, 자연 계시인데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나고 자란 그 지역에 붙어 있는 것이 그것이 참 강한 그  결박력과 또 강한 끄는 인력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서 연구해  보면 얼마든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본토를 떠나라 이랬어. 본토를 떠나라.

너희가 타락 후에 하나님 배반하고 자기 본토라는 지방 정실에 거기에 매여  가지고서 사는 완전히 그거부터 떠나야 주님을 따라갈 수 있지 그걸 떠나지  안하면 주님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본토를 떠나서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이랬는데, 본토를 떠나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이랬었는데 아브라함은 그 본토를  안 떠나면 주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는 이 공간계를 가지고, 이  공간계를 가지고 여기를 떠나지 안하면 저게 갈 수 없는 걸로 이래 했지마는,   우리,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말씀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의 그 심령에,  우리의 인격이 어데 매여 있느냐 하는 그 인격성 이것을 가리켜 말하기 때문에  이거는 그렇게 뚜렸히 아브라함에게 안 떠나면 안 된다 하는 거와같은 그런  틀림없는 정확한 느낌을 우리가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공회에 산하에 있는 교역자들이나 이런 사람들에게 이 창세기  12장을 가지고서 많이 설교를 했습니다. 어짜든지 우리가 이 지방 정실이라든지  또 그 혈육 정실 이것을 우리가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내가 매여 있는  것이 더 강하게 매여 있어서 나는 지방정실에 속해 있고. 혈육 정실에 속해  있으면은 아무리 하나님 그 정실에 매일라고 해도 매이지 못한다.

 그런 것이 대두되지 안할 때에는 나는 하나님을 따라서 가는 것 같지마는 만일  그 면에 딱 대두가 되면은 하나님은 뭐, 하나님은 그까짓 것 아주 똥같이  버려버립니다. 하나님은 똥같이 버려.

 오늘까지 ‘진리가 좋다, 이 교훈이 좋다, 이 정치가 좋다.’ 아무리 해도 자기  지방 정실과 대두가 될 때에는 하나님도 진리도 당장에 버려서 원수로  삼아버리고 또 자기 혈육 정실과 이렇게 대립되는 마찰이 되는 대두가 되면은  당장 버립니다.

 이래서, 그 혈육 정실과 지방 정실보다 하나님과의 이 정실이, 강하게 매여지지  안하면 그분을 따라서 피동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나를 대속하신, 날마다 주님을 부르고 이라지마는 주님과 나와의  벌어져 있는 그 관계, 주님은 우리에게 나타나기를 셋으로 나타났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나타났고 성령의 감동으로 나타났고 진리로  나타났습니다. 이래서, 증거하는 것은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이니 이 셋은 하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물을 말한 것은 곧 진리를 말합니다. 이래서 진리 말한 것을 물을 진리로  말한 것을 어데서 알 수가 있느냐 하면은 요한복음 3장에는 ‘성령과 풀로  거듭나지 안하면’ 그때 거기 물을 말했는데 거듭난 것을 베드로전서 1장 20절  이하에는 보면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거듭났다, 거기에 그 물을 말씀으로 그렇게  나타내서 우리에게 물은 말씀을 가르친다 하는 것을 똑똑히 알려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나타날 때에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으로  우리에게 나타났기 때문에 진리와 나와 하나되는 것이 주님과 하나되는 것이요  영감과 하나되는 것이 주님과 하나되는 것이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과 하나되는  것이 주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지방 정실과의 문제가 될 때에 그러면 그때에 지방정실에  끌려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은 버리지 안한다고 말합니다. 안 버리는 거는 네  맣로 안 버리고 네 주장으로 안 버리지 네가 실상은 버렸다. 진리는 버리고  주님의 대속은 버리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 버리면 주님의 대속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좋다고, 이 진리가 좋다고 이렇게 했는데 오늘 당장에 ‘그 진리는  아무짝도 쓰지 못한다. 그 모든 행정은 쓰지 못한다,’ 돌변되어지는 그것은  자기는 진리를 버려도, 그러면 어제 거짓말을 했든지 오늘 거짓말을 했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어제 말을 참말로 말했으면 오늘이 거짓말일 것이고 오늘을  참말로 삼을라. 하면은 과거에는 거짓말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지도 안하면서 다만 지방 정실의 세 력에 끌려서 원치도  아니하는 그런 외부의 형태의 못쓸 형태를 가지게 되는 ‘그것이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 믿는 첫 걸음이 말이요, 아브라함에게 제일 처음에, 제일 처음에  순종을 뭘 말했느냐 하면은 뭐 네가 벧엘로 가라 오라 하는 그런 것을 말하지  안했습니다. 제일 첫 순종이 본토를 떠나라 이거 순종 안 했으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이거 순종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그 다음에 순종은 명령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인본주의로 인간들이 만들기 때문에 첫째 명령 순종 안 해도, 저 혼자  만드는 것이니까. 순종 안 하고 둘째 명령 순종 안 해도 순종하는 줄로 이래  알고 있지마는 그게 아니라 그거요.

 이것을 우리들이 진실되게 깨닫고 자기를 심사해야 되지, 고린도후서 3장 5절  이하에 보면 네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네가 믿음에 있는지 믿음을 떠났는지  네가 스스로 너를 시험해 가지고서 확정을 지우라. ‘나는 믿음이 없는 자다.

나는 그래도 믿음이 있는 자다.’ 네가 너를 심사해 보면 알 터이니까 심사해  가지고서 확정하라.

 그러면,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심사해서 스스로 만드는 사심판, 스스로 만드는  사심판을 받아서 사심판을 항상 받아 가지고서, 심판받아서 자기를 정죄하고  자기를 회개시키고 자기를 경고시키고 하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공심판을  받지를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심사할라고 애를 쓰지 않기 때문에  주님이 또 애를 써서 당신이 우리를 중간 시험, 예비 시험으로서 시험을 자주  치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예비 시험을 치르는데 그 시험에 대해서 원망  불평하고 발동도 하고 낙망도 하고 뭐 하나님을 배척도 하고 오만 발광을 다  지기지, 오만 배짱을 다 지겨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발광지기는 데에 피동되지  안하고 발광을 초월한, 그 발광의 정도를 초월한 이 하나님의 불변의 관대하고  완전한 이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를 계속 시험해서 우리를 만드십니다.

 그러면, 시험은 뭐이 시험이냐 하면 우리에게 오는 그 현실은 전체가 우리를  시험하는 시험입니다. 그 시험이라는 것은 내가 공연히- 없는 것을 있다고  오인하는 것, 또 있는 것을 없다고 마귀란 놈이 하니까 그것도 오인하는 것,  또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도 빨간 그거는 사망 뭉텅이인데 그걸 성자라고 모든  사람들이 말하니까 또 그걸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것.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이런 것을 다 정평 정가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현실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현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있고 없는 것, 또 장단점, 또  모자라는 것, 삐뚤어진 것, 또 구비해야 될 것 이런 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시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그 전체를 시험으로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보면 알기 때문에 제가 일시에 아무리 성자라고 해도, 이  우리 나라는 그 사람 뭐 아무리 무슨 사람이라도 말 도 마디만 잘하면 그만  천하에 제일이오. 또 말을 잘해도 무책임하게 거짓말 해 막 주대면 제일입니다.

 그래도, 조금 그 문화의 차이가 있다 하는 문화국이라, 그 사람들은 조금 문화  수준이 높다 낮다 하는 그렇게 하는 좀 높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일시를  보고서 전 평가로 정하지 않습니다. ‘보자’  적어도, 그러면 그 사람이 십 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가? 십 년 간의 그 사람의  역사를 한 번 나벼보자. 또 이십 년을 나벼보자. 삼십 년을 나벼보자, 오십 년을  나벼보자 그렇게 많이 나벼볼수록 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 하는 것이 환하게  정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해 보지 안하고 당장 일시에 보고 뭐 이렇다고 쭉 딿고 저렇다고 쭉  딿고 다 말하자면 정신병자들이요, 정신병자들.

 일시에 그 사람 말을 듣고서 그 말을 믿고서 그 사람 쭉 따라가는 사람은 자,  그 사람이 정상의 사람입니까 비정상의 사람입니까? ‘비정상의 사람인 줄 아는  사람들 손 들어 보십시오. 저 뒤에는 안 듭니까? 네, 그래.

 말을 듣고 따라가지 마십시오. 그 사람의 언행 심사의 행동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말 보고 따라는 것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언행 심사의 행동도 얼마든지  둔갑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야바위놀음 할 수가 있고 연극할 수가 있어.

그러니까 그것보다도 사람보고 따라가는 것이 그보다 낫아.

 그러면, 사람보고 따라가는 그것보다 뭐 보고 따라가는 게 낫습니까? 그 뭣  보고 따라가는 게 낫소? 뭐, 요거는 좀 어려운 건데 뭐? 예? 겪어보고 따라가자.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그라면 그 사람의 십 년 겪은 것을 통계를 보자, 삼십 년  겪은 통계를 보자, 오십 년 겪은 통계를 보자.

 우리나라 해방된 지가 얼마입니까? 사십 몇 년? 사십 삼 년? 그러면 사십 삼  년이면, 해방 후만 해도 사십 삼 년이라. 해방 전 우리는 왜정 말년에  살았습니다. 그러면 왜정 말년 때로부터 그 해방 후 사십삼 년, 벌써 한 오십여  년을 그 사람의 그 모든 것을 겪어봐서, 그 모든 것을 각각 겪은 것이 다 기록  이 안 돼 있어도 다 남아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은 슬기 있는 사람이지마는 당장  한 말에 쏟아져 가지고 마구 거기에 반하고 미쳐서! 반하고 미쳐서! 남편보다  애정이 거기에 더 가 가지고서 환장을 해서 살아 있어도 ‘저거 얼른 뒈져버리면  나는 지금 그런 데 내 맘대로 가서 한번 잘 살겠다’ 뭐 속담에 비둘기가 남기에  앉았어도 마음은 어데 있다고요? 콩밭에 있다는 말같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진노를 막 쌓고 있어도 회개할 줄 모르고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 그거요!  비참합니다.

 하나님께서 안 된다 하고, 신령한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들이 보고 저거 틀렸다  하면 거기에서 돌아서지 안하면 잠시 후면 비참해 갑니다. 자기가 자기를 알 수  있어. 자기가 더듬어 보면. ‘내가 정말로 오늘 저 말이 내게 해당되나? 억울한  소리가?’ 자신이 안다 그말이오.

 이래서, 지방 정실에 끌리는 것도 큰 병이고 또 혈육 정실에 끌리는 것도  병이고 이 간교한 동류 정실, 동류 정실은 연애하는 연애의 정실도 그것을 동류  정실이라 합니다. 동류 정실, 애정, 연애 정실,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서, 별별  것을 이루는 그 모든 정욕 정실 이런 데에 자기가 끌리고 있다면 벌써 스스로  앉아서 내가 멸망이다 하고서 일어설 줄 모르고 돌아설 줄 모르고 거기에서 항상  그 미철을 가지고서 밤낮으로 고런 거 생각하고 있으면 자기에게 하나님의  멸망의 몽둥이가 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이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이 이것을 회개를 해야 될 것입니다. 지방정실, 혈육  정실, 동류 정실, 모든 정욕 정실도 다 동류 정실이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정실에도 내가 매이지 안하고 진리와 이 정실문제가 대두될 때에는 뭐 두말 할  것 없이 그 정실은 다 그까짓 거는 팽개쳐버리고 진리에 속하고 영감에 속하고  예수님의 대속에 속한사람이 돼져야 되지,  요새는 말세가 돼 놔서 전부 애인 다 가지고 있어. 전부 애인 다 가지고 있어.

더러워! 이거는 뭐 참 지남철하고 쇠하고 거뜩 하면 들어붙는다하는 거 모양으로  이거는 한 시간만 동행을 해도, 한자리만 같이 무슨 일을 해도 그만 떡 들어붙어  버려. 여러분들이 이 더러운 말이지요. 음욕 정실 이것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는 주님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압니까?   이게 원수인 줄 알고 단식해도 이놈을 떼기 어렵고 또 여러 가지로 온갖 노력을  해도 떼기 어려운 이것이 무서운 말세에, 그러기에 망하는 것은 처음에 일차  인간들이 멸망받는 것도 이 다 지방 정실, 혈육 정실보다도 모든 정욕 정실에서  다 망했습니다.

 정욕 정실에서, 일호의 일차 멸망도 정욕 정실에서 망했어. 이호멸망도 다 정욕  정실에서 망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뭉떵뭉떵 멸망받은 뭉텅이 멸망, 아주 그만  영천 명씩 뭉떵뭉떵 멸망받은 것은 전부 이 정욕 정실로 다 멸망 받았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지금 이제 예수님 재림 때에 멸망할 멸망은 뭘로 멸망받는가?  이 멸망도 정욕 정실로 멸망받는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요한계시 18장에 똑똑히  기록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것이 사람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뭐 아무리 진리고 뭐고 뭣보다도 내 혈통이니까 뭐 이래 가지고서  피는 뭐 물보다 진하다 이런 말을 누가 해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서 그렇게  혈육 정실에 붙들린 사람은 그 사람은 하나님만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왜  그놈을 떠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심히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은 인제 뭐 다니지를 안하지마는 전에는 전국으로 다니면서 집회를 안  간 곳이 별로 이 없었습니다. 거의 갔었는데 그때 갈 때 보면 어떤 곳은 그  지방끼리 모여 있습니다. 거기에는 경남 사람만 모여 있다, 호남 사람만 모여  있다, 강원도 사람만 모여 있다, 충청도사람만 모여 있다. 교회도 이렇게 지방  지방끼리 모여 가지고 있는데내가 그럴 데 가서는 그것을 반드시 이 말씀을 내가  증거했습니다. 그것을 초월하기 전에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저희들은  예수님과 직접 결합된다는 그 결합은 그 사이 그게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직접  결합은 불가능입니다.

 사람은 그만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 아니오. 사람이 전도하는 것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했기 때문에 자기의 집안  가까운 집에서 전도하고 자기 동리에 전도하고 차차 이래 가지고서 나가는  그것이 전도가 주님이 가리켜 주신 그 정상적인 전도의 그 순서요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래 모여 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지마는 그 위험하고 거석한  것은 만일 그래 가지고서 지방 정실이 주가 돼 가지고서 그렇게 모이는 단체라고  하면은 그거는 당파입니다.

 천하에 있는 교회는 한 단체뿐인데 이것을 가리켜서 단일 교회라 이라는데 그  단일 교회에 들어가지 못할 지방 정실적인 그런 단체가 된 걸 가리켜서 이것이  당을 짓는 것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당은 예수님 한 분으로써 뭉쳐지는데 진리의 띠로, 또 영감의 띠로, 예수님의  피의 이 노끈으로 가지고 창창 묶어서 한 덩어리되지 안한 그 모든 것은 이것은  다? 당이 뵈는, 당을 만든 그 당, 마귀당, 이 다 죄악의 단체인 인간 단체기  때문에 거기에는, 하나님과 결합은 절대 없습니다.

 그걸 자치 혼자 자꾸 기도해야 돼요. 주여! 내가 진리에 거슬릴 때에는 내  목숨도 내가 생각지 안하고 내가 따라갈라 하는 생명인데 뭐 지방정실 이  중하지마는 진리 위에서, 진리를 지키면서 지방 정실도 혈육정실도 동류 정실도  있는 것이지 이 정실에 내가 중심이 되고 거기에 매이고 끌려 있는 그 세력이  강해져 가지고 그것이 우상이 돼 가지고서 뭐 이게 변동될 때는 진리가 뭐이냐!  이제까지 좋다고 말하던 그 진리도다 내 던져 버리고 온갖 거짓말을 꾸며 가지고  그와같이 하는 것. 우리가 요것을 해결짓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말하기를 ‘백 목사님의 교훈은 좋지마는 행정이 나쁘다’ 그 교훈대로 그대로  하자 하는 그 행정인데 뭐 다를 게 없는데 그거 뭐이냐 하면은 그 몇 가지, 저는  그거는 있었어요. 생일잔치 하지 말아라. 또 환갑잔치 하지 말아라. 또 이 장로  장립 잔치 하지 말아라. 목사 장립 잔치 하지 말아라. 뭐 이제까지의 이  총공회에서 장로 목사된 사람들은 참 너무 돈 안 들이고 밑천 없이 해 놓으니까  그만 천하게 본다 그거야, 또. 그라면 그래 돼 버려요.

 그거 결혼하는 데도 결혼비를 적게 들이라. 우리 교회서는 결혼비가 부자는 한  사람 앞에 오십만 원이고 제일 낮은 사람들은 오만 원이고, 우리는 자녀  결혼시킬 때에 오만 원 이상을 해보지 안했습니다. 아들 치울 때도 그렇고 딸  치울 때도 그렇고 오만 원씩 내 가지고 그래 했습니다. 나는 오만 원 이상 내  보지는 안했어.

 이런데 이라니까 ‘뭐, 저 백 목사는 아마도 지금 저런 자리에 있으니까 아마  그 아들 딸, 모두 집이야 다 한 채씩 사줬겠지’ 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말합니다. 미국간 그 자녀들 수속 비용 내가 한 푼도 대 준 일  없습니다. 여비도 내가 한 푼 대 준 일 없습니다.

 여기에 집회 참석하러 왔을 때에는 ‘ 너희들이 집회 참석 오는데 여비 없으면  내가 여비를 대 줄께’ 그걸로 가지고 좀 낚아 가지고서 집회나 좀 참석 시킬까  해서 그래 내가 여비를 좀 보태 줄 터이니까 오너라 하는 그것은 내가 꼭 한 번  했습니다. 작년에 한 번 했어. 그 외에는 뭐 큰 아들이고 작은 아들이고 큰  딸이고 작은 딸이고 내가 그렇게 그들에게 내가 돈 보태 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니까, 말하기를, 자기네들 생각하거든. 그래 가지고서 ‘아마 돈을 많이  저축해 놨을 것이다’ 저는 지금 내가 말하는 대로 아마 요새는 내가 좀 빚진  것이 사백만 원이라 했는데 한 육백만 원쯤 빚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만일 오늘 저녁이라도 죽으면 육백만원 빚 그거는 우리 교회의  십일조부에서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거 내가 저축해 놓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자입니다. 왜? 내가 돈 쓸라 할 때에 돈이 없어서 못 써본 일은  없습니다. 예수 믿은 이후에. 내게 쓸라 해도 돈이 없을 때에는 이게 쓰는 것이  불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주시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또  필요한 거는 보니까 생각도 없이 얼마든지 돈이 또 마련 돼 가지고 쓸 수  있습니다.

 써서 필요 하면 당신이 뭐 다 주시고, 또 내 맘에는 필요 하다 싶은데 없는  것은 당신 보시기에는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안 주시는 것, 그분이 내 전주니까  내가 부자지 모자라는 게 뭐 있을 게 뭐이요, 있기를! 이래서, 그러니까 그  정치를 나쁘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것은 왜? 사람들이 거기에 매여 있기 때문에  그걸 하지 말아라 이랬습니다.

 이래서, 작년부터는 해방을 해 놨습니다. 해방해 ‘이제는 너희들이 너무  이와같이 지금 해서 다 그거는 끊어져 있기 때문에 아예 이거는 끊는 것이 좋고  없는 것인 줄 알고 모든 윤리에 대한 일을 하지 안하니까 이거 모두 윤리가 다  헝클어져서 도리어 안 믿는 사람보다도 못하기 때문에’ 그래 나는 그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산 부모를 섬길 수 없으면 제사를  지내라. 제사를 지내라.’  나는 우리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산 부모를 너희들이 섬길 마음이 없는 자가  제사 못 지내구로 하니까 ‘제사장 보기에 돈들고 다슨 사람 또 이웃 사람 또  한턱 씩 먹여야 되고 이러니까 제사 안 지내니까 돈없이 안 하고 허비 안 되고  참 좋다, 이러니까 제사도 안 지내는데 뭐 산 부모에게 뭐 효성할 게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자는 안 믿는 자보다 오계명을 더 범하는 악한 자이기 때문에  너는 제사를 지내야 된다.’ 나는 제사를 지내라 합니다.

 ‘너는 제사를 지내야 된다. 너는 제사 안 지낼 그런 자가 아니고 너는 제사 안  지내는 게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게 아니고 너는 도둑놈이라 흉측한 예의도  체면도 윤리도 없는 흉측한 도적 중에는 아주 모진 악한 도둑놈이기 때문에 너는  제사를 지내야 된다. 지내라. 제사를 안 지낼라거든 네가 산 부모를 섬겨라. 산  부모 섬기기 싫거들랑 제사를 지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라니까, 제사 지내는 사람은 없고 산 부모 섬기는 그런 일은 뭐 조그매씩 해  나가는데 그래도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나라에 노인당을 많이 두고 또 경로당을 이렇게 누고 그뭐 방송에서도  부모에게 효성한 그런 것을 들어서 표창을 하고 이렇게 아주 방송을 해서 선전을  하고 이라는 이것이 우리 나라의 복받을 일중에 좋은 자료입니다. 이거는 모두  다 가졌어.

 그러나, 이거 속으로 보면 세상에 며느리 쳐놓고 자기의 나이 많아서 무의탁의  그 시부모를 모시고자 하는 그 며느리는 그거는 보지를 못합니다. 보지를  못해요. 다 모시기 싫어해요. 아들 제까짓 게 모시고 싶어도 전부 남자들은 다  죽은 남자들이고 다 여자가 살았는데,   그러니까 누가 말하기를 ‘야, 요새는 전부이 마누라 말 듣는다.’ 이라니까  ‘마누라 말 안 듣는다는 사람 있는가 보자’이라면서 ‘너거 마누라 말 듣는  사람은 다 이리 나오너라’ 이라니까 자기가 가만히. 생각하니 양심으로  생각하니까 자기도 마누라 말 듣거든, 다 나갔는데 한 놈은 안 나오고 있더래,  요. ‘너는 마누라 말 안 듣나?’ ‘우리 마누라가 많은 사람 가는 데로 못  가구로 하더라’ 그놈은 더 듣는 놈이라.

 그 말을 나는 여기 OOO목사님한테 그걸 배웠어요. 나는 처음 들었어요. 나는 이  켸켸묵은 이 고풍에서 살았기 때문에 의례히 여필종부요 또 남존 여비로  이렇게만 살았기 때문에 그면을 몰랐었어. 이랬는데 그말 듣고 내가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모든 세상이 이렇게 사는데 나는 정반대로 살기 때문에 이해를 못  하고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 암만 남편이 효성하자 해도 그까짓 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부모 못  모시요. 어떻게 모시요?   옛날도 그래요. 남편이 모시자 하는데 아내가 부모를 안 모실라고해서 그래서  고려장은 거기에서 나왔습니다. 고려장은 거기에서 나왔어. 그래 가지고 저  고려장이, 우리 마을 옆에 고려장터라 하는 곳이 있는데 그 아주 흙이 좋습니다.

진흙밭인데 아주 물도 안 끼고 좋은 곳이 있어요. 거기에 가면은 고려기라고  고려 때에 그릇이 많이 나와요. 조그매만 파면 꽉 찼어요.

 이런데, 그때에 고려 말년에 귀덕을 할라 하니까 소부 허유가 송아지를 먹여  가지고 오다가서 물을 먹이려다, ‘자네 야 사람아 왜 귀를 씻고 있는가?’  ‘나를 정승 하라 하는 더러운 소리를 들어서 내가 귀씻고 있네’ ‘그 더러운  놈의 소리 듣고 씻는 그 물 나는 우리 송아지 안 먹일라네’ 그럴 때라 말이오.

 그때는 귀덕을 했다가 이래 가지고 나중에 벼슬 살 사람이 없으니까 그  다음에는 귀작 정치를 했다가 귀작 정치 하니까 전부 글 읽는 사람뿐이고 다  피덕석이 떠내려가고 지금 그래도 글만 읽고 앉았고 이라니까 안 돼서 이거  나라가 점점 가난해지니까 고려 말년에는 귀부정치를 했어. 귀부 정치.

 부자가 귀하다는 귀부 정치를 이렇게 하게 되니까 그뭐 부자는 돼 나가지마는,  부자는 돼 나가는데 ‘우리 집에 그 영감 할마니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자꾸 고기  먹고 싶다고 고기 사다 달라 뭐 달라 하고 있으니까 어째야 됩니까?’ ‘그라면  저 산에다가 굴을 파놓고 거기에다가 그래 구멍을 딱 뚫어 놓고서 그저 안 굶어  죽을 만치 그렇게 음식을 갖다 주고 그렇게 해라.’ 그것이 고려장입니다.

 그라다가 며느리가 갖다 주기가 싫으니까, 그 갖다 주기 싫은데 그걸, 없으면  이거 그만 굶겨 죽였다 할 터이니까 요 숨구멍을 내 놓은 걸 숨구멍을 딱 막아  버려. 갖다 줘 놓고 숨구멍을 탁아 버려. 그라면 죽었는데 밥은 있고 사람은  죽었거든. ‘이거 굶겨 죽이지는 안했다’ 이래 가지고서 전부 며느리네들이  전부 고려장 하는 그것을 주장을 해 가지고 했고 고려장 하러 영감을 짊어지고  가는 것은 다 아들이 짊어지고 갔고,  그래서, 가면서 뭘 보니까 짊어지고 가니 뭐 똑딱똑딱 이렇게 뭐 뿌질러  쌓거든. 그래 있다가서 나중에 턱 갖다가 내려다가 고려장 구덩이를 파 놨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놓고서 그래 들어 가시라 하고서 이래 떡 넣고 이라니까  말하기를 ‘야야 야야 내가 올 때에 내가 나뭇가지를 네가 하도 이거 산골짝을  이래 오기 때문에 나무가지를 꺾어서 내가 그래 놨으니까 나뭇가지 꺾어놓은 그  자리를 따라가면은 네 왔던 길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그 길을 바로 찾아 갈  것이다.’ 그래도 부모의 사랑은 자식에 대해서 변하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런  그 말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려 말년에 고려장이라 하는 이거, 이라니까 삼강오륜이 다  부패해져 버렸지 이 사람이 돈만 알지 딴 걸 몰라. 그뭐 사람이라는 건 그래  변해지는 거는 하나나 뭐이 표준이 있고 자기 그 표준하는 무슨 중심이 바로 돼  있지 안하면 다 그럴 수밖에 없어.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문화인입니까?  문화인이지마는 왜정말년에는 그랬습니다. 늙어서 지금 걷지도 못하는 영감을  짊어져다가서 밭에 갖다 놓으면은, 발에 갖다 놓으면서 하루 종일 그 밭에  앉아서 지심을 뽑았는데 한 평을 뽑았다, 반 평을 뽑았다, 아주 신문에 내놓고  자랑을 많이 했습니다. 하, 몇 십 세 되는 그 노인이 이제 져다가 밭에 놔서  풀을 한 평을 제초했다. 이래 가지고 이것을 막 칭찬하고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그 져다 놓은 그건 영감탕구라도 일을 해야 되고 부려먹어야 되는  그것이 일본 사람들이 그랬는데 아마 지금은 그건 것을 수치고 부끄러운 줄 알  것입니다. 그때는 그걸 또 자랑거리로 알았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때 식민  정책 할 때에 우리나라에는 그것을 아주 자랑삼아 말하고 그렇게 됐습니다. 뭐  사람이라 하는 것은 짐승보다 더 악해지는 것은 잠깐이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오늘도 아, 테레비 방송에 좀 그런 것 좀 그 연속으로 내놓으면 좋을  터인데, 또, 그라면 영감 할마니들이 환장을 할까 싶어서 안 내는지 모르기는  모르지. 모르지마는 도무지 늙은 영감 할마니 누가 거천할 사람이 있어야지?  이래 놓으니까 아무것도 못 먹으니 다 굶어 죽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노인들은 다 좁어 죽었다 하는 것이 통계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 뭐 일도 안  하는데 젊은 사람이 밥 많이 먹지 나이 쌀은 사람이야 밥 많이 먹을 게 있는가?  연명만 하면 되지.’ 나이가 많으면 값어치로서는 더 많이 먹어야 됩니다.

 젊을 때는, 요새 돈으로 말하면 젊을 때는 삼백 원만 하면은 한 끼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은 한 끼 잘 먹을라 하면은 삼천, 원  이상 들어야 돼. 양은 작고 비싸고 영양 있고 하는 그런 것 먹을라 하니까  어떻게 힘이 드는데 이놈 제일 영양 없는 것 찌끄러기 조그매 썩어야 되니까  그거 안 굶어 죽겠소? 전부 영양실조로 다 굶어 죽었다 하는 그게 통계라.

 이러면서도 이 정실에 가질 것은 가지지 안하고 이라면서도 예수님믿는 데에는  이 정실 세력이 어떻게 강한지. 마귀 그놈이 요럴 때는 정실 없애서 망치고 요럴  때는 정실을 강하게 만들어 가지고 망치고 이래 가지고 사람을 멸망을 시킵니다.

 이러기에, 오늘 이 말씀에서 여러분들이 우리가 다 같이 회개를 해야할  것입니다. 회개를 해서,  내가 저 작년부터는 그랬어요. 일년에 한 번씩 그 형제간들이 한 번씩 모아  가지고 그때는 형제간 집에 돌아가면서 오늘은 큰아들 집에 다음에는 둘째 아들  집에 다음은 또 셋째 딸네 집에 이렇게 모아 가지고서 한번씩 부모와 한자라  앉아 가지고서 식사도 하고 또 서로 만나보기도하고 이렇토록 한번씩 그래 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래 놓으니까 그게 얼마나 좋겠소?   이래 놓으니까 뭐 외양간에 매 놨던 천리마를 끌러 놓으니까 맛 좋다고 달리는  것처럼 어떻게 가속도로 달리는지, 아마 그거 우리 서부교인들은 한번씩 다 했을  것입니다. 뭐 그런 일은 잘 해요.

 인제 그 결혼도 쫌 결혼비 그런 걸 아주 그저 오만원만 하면 된다. 이라니까 그  돈 없는 사람이 있어야지! 이러니까 우리 서부교회는 결혼안 하고 사는 사람이  내가 알기에는 뭐 혹 한 사람 있다든가 그렇고 없습니다. 한 사람 되는가 두  사람 있다 해.

 이런데, 다른 데는 가면 결혼식 안 하고서 그 아이 둘 서이 낳은 사람이 많고  그라고 난 다음에 새삼스럽게 새로 결혼식을 할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결혼식을 할라 하면 그래도 자기 안목은 있으니까 돈이 이래  드는데 그 결혼식 비용에 십분지 일도 없어놨으니까 할 수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못 한다 말이오.

 우리 교회는 이거 제일 처음에는 오천 원 가지고 했습니다. 제일 처음 오천  원으로 했어. 오천 원 가지고 결혼식을 시켰는데 그 사람이 지금 남편은  장로됐고 아들은 뭐 서울대학 다닌다 하더나? 여기 보자, 있나? 자, O 장로 여기  왔어요? O 장로, 없나? 여기 왔을 건데. 아, 저기 있어. 아들 뭐 서울대학?  서울대학 다니고, 또 딸도 뭐 무슨 대하 나오고 뭐 하고, 아주 오천 원짜리 결혼  비용 가지고서 들인 그 신랑 각시가 지금 뭐 부자입니다. 지금 부자라. 하나님  뜻대로 사니까 그게 어떻게 되리라 생각을 못 해.

 이랬는데, 가다가 한 번 망할 뻔 했지. 왜 그러냐 하면은 그 OO교회 있었는데  ‘아이구 여기에 있으니까 뭐 생활도 어렵고 이거 닭 먹여 봤자 고생만 하고 안  되고 이러니까 그만 여기에서 하는 것보다도 좀 멀찍하게 나가 가지고서 김해  가서 그거 좀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밭때기 조금 있는 그까짓 거  아무 뭐 지어 봤자 농사도 안 되고 박토라 말이오, 못쓸 땅인데. ‘이거 팔아  가지고 김해 가 가지고 그래도 좀 좋은 토지를 사 가지고서 거기에서 살아야  되겠다’ 이런데 그때 갔으면, 그거 팔아 가지고 거기에 가서 그 땅 뭐 몇백 평  사고 말았을 것이라.

 이랬는데, 그래, 말하기를 ‘너거 어머니가 이 교회를 세우고 이 교회를 너거가  이렇게, 어머니가 눈물로 세운 이 교회인데 이 교회를 냅두고 살기 좋은 곳을  따라가는 것이 그게 누구의 자손이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가 롯의 자손이가?’  이래 물었다 말이오. 물으니까 ‘아이구 그라면 안 가겠습니다’  그 안 간다고 있었는데, 그 박토가 갑자기 어떻게 값이 올라갔는지? 지금은  부자라. 자, 내가 또 하나 더 물어봐야겠어. 그래 인제 좀, 자, 자기 집에서  셋방 놓은 것이 몇 세대라요? 대답해 봐. OO조사 대답해봐. 사십 세대? 자기  집만 해도 사십 세대라. 제법 부자 됐어요 안됐어요? 주를 위해서 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자기 위해서 한 것이 됐지, 주를 위해서 한 사람이 없습니다. 주를  위해서 했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전부이 자기 위해서 한 결과가 맺어지기  때문에 ‘주님 위해서 한 일은 한 번도 없다. 전부 보니까 다 나 위해서 했지  딴거 한 것이 나에게 없다.’ 요것이 하나님이 복 주시는 비결이라 그말이오.

 오천 원짜리 결혼식, 그것도 없어서 오천 원은 내가 임시 빌려 줬어. 임시 빌려  줘, 가지고서 오천 원 그걸 갚을 때에 마늘 농사를 지어가지고서 그래 마늘을  그걸 다 팔아 가지고서 오천 원을 갚으러 왔습디다. 이래도 하나님이 부자되게  할라면, 자기 집을 셋집 놓은 것만 해도 사십 세대라 하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당신의 얻은 것보다 수입이  더 크다 가치가 더 크다 그말이오. 이것도 순종해야 됩니다.

 말씀은 참 천천 금은보다 낫습니다. 그 말씀 하나 순종하고 보니까 천천 금은을  그말이오. 이익이 더 크다 그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거부터 떠나야 하나님의 지시를 받지, 인도를  받지. 이거 떠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정지우십시오. 확정을 지워요,   이번에 우리 총공회서 일어난 일인데 보니까 그뭐 아무리 내가 양심적으로  더듬어 보고 따져 보고 암만 해도 이거는 창세기 12창 1절에 저촉되지 않나 그런  염려가 됩니다.

 여기에 여러분들도 뭐 그 그것을 따져 가지고 나도 그럴 자다 하는자는  거기에서 헤어 나올 수가 있지마는 나는 그렇지 않다 하는 그자는 벌써 그 속에  파묻혀 가지고서 알지도 못하는 자입니다.

 지방 정실과 혈육 정실과 주님의 이 말씀인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과  셋이 한목이 아니고 하나씩 대두될 때에 이제 하나 대두 되면 셋이 다  대두됩니까, 피와 성령은 상관없고 진리만 자기의 그 현실에 대두가 됩니까,  하나되면 다 되는 것입니까? 하나되면 다 되는 것입니까 하나만 되는 수가  있습니까? 하나만 되는 수가 없어, 하나 되면 다 돼.

 주님 버리는 게 진리 버리는 것이요 영감 버리는 것이요 예수님의 대속을 벗는  것이요, 주님을 영접하고 환영하는 것이 진리를 영접하고 영감을 영접하고  소멸하지 안하고 또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않는 것이 주님 영접하는 것이요 모신  것이요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뭐 잘 알아야 되지.

 자기는 진리를 어기면서도 이제 주님이라고 자꾸 부르기만 하고 주여 주여 하고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면은 사랑하는 줄로 이래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마귀에게 유혹을 받아 가지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에게 진리와 내 혈육 정실과 대두될는지, 서로 견제가 될는지, 어느  비중이 높으냐 하는 비중의 저울이 될는지 모릅니다. 혈육 정실, 지방 정실,  동류 정실,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기 전에는 예수의 제자는 못 됩니다.

예수님은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라니까, ‘지방 정실, 혈육 정실을 이걸 떠나라고 했기 때문에 그 뭐뭐  부모에게는 효성 할 게 없다. 자기 그 본토 고향이야 떠났으면 그까짓 거야  이렇든지 말든지 거기에 대해서 아무 상관없다.’ 자기가 떠났지마는 자기 거기  있던 사람이 떠났는데 자기 이름이 없어집니까?  그래서, 저는 제 본토는 도평이고, 제가 그때 어렸을 때에, 예수 믿지 안할  때에 아무래도 편리상 내가 고제라 하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고제로 옮겨서  본적이 고제에 있습니다. 이랬는데 그것을 옮길 기회도 옮기라는 사람들도 많고  하지마는 그것을 옮기지 안하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대로 있었는데 하도 자녀들이 있으니까 옮겼는지, 나 모르게 옮겼는지 내가  그거는 모르기는 모르겠어요. 나는 옮기지 말라 했어. 왜? 거기에서 자녀를  낳았기 때문에 자녀의 그 본토를 떠나지 안할라고서 그곳을 옮기지 말아라  그렇게 말했어.

 지금도 그곳 뭣을 이렇게 종종 뭐 연락을 가지고 ‘이 우리 면에서 그분이  나갔는데 그분 나간 분이 지금 어데 가 있는데 우리 면을 기억하고 있다’ 또 그  면민 중에 하나로 인정하고 있고 나 하는 행동을 그 분들이 보고 좋아하고  찬양하고 협동하도록 그렇게 자기의 본토에 대해서 인정을 둡니다.

 그래서, 도평에서도 저 먼저 보니까 도평 면사무소 지었다고 이런 무슨  감사장인가 뭐 온거, 그게 감사장이더나? 감사패든가? 감사패 이래 좋은 걸  만들어서 번들번들 이래 둥그러이 이래 만들었는데 그래 가지고 그걸 보내  왔어요. 그래 내 책상 위에 지금 그래 놔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의무와 책임은 하나 의무와 책임은 하고 거기에 대해서 자기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에 복음 전할 의무도 책임도 있고 이런고로서 제가 나온  곳이지마는 도평교회는 제가 일 년에 십 오만원을 보조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도평교회. 또 다른 사람이 가도, 그전에는 내가 할 줄 몰랐었는데  그거 너무 교회가 어려워서 내가 하기 시작해서 앞으로도 그 도평교회는 제가 힘  있는 한은 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내 본토기 때문에. 본토에 대한 의무와 책임으로서 본토에서 그 복음이  막혀지지 안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마는 아무리  좋은 본토고 혈육이지마는 하나님과 대두될 때에, 거기에 비중을 달 때에  거기에다가서 비중을 할라 하면은 망해버리고 말아. 거기에는 완전히 본토도  비우고 친척도 비우고 하나님만 뚜렸히 높여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리저리 치우치면 안 되는데 그만 믿는 사람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한다고 거기에 대해서 아무 상관없이 배척하고 그만  완전히 인연을 끊어버린다는 그말 아니라. 끝까지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기 본토에 대한 모든 면에 자기가 그 면에 사는 거와같이 그렇게 의무와  책임을 복음적으로도 져야 되겠고 세상적으로도 져야 되겠고 모든 사회적으로도  지고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그라면  내가 너를 지도하겠고 너를 인도하겠다. 그 전에는 이 지도를 받지 못한다.

 그러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는데 이 떠나지 안한 사람은 하나님이  암만 지시해 봤자 순종할 리도 없고 순종할 수도 없기 때문에 거기 매여 있는  줄이 있는고로 그 줄을 끊기 전에는 이거 순종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시는 그 다음에 없습니다. 평생이라도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도는 없습니다.

 내가 너를 지시한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인도하는 곳으로 가라. 그 인도는  없습니다. 인도는 없고 평생 그러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주님이 뭐라고  말씀할까요? 뭐하고 있을까요? 그 사람에게는 평생 주님이, 예수 믿는 사람인데,  젊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예수 믿는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러면  무슨 지도를 하고 계실까요? 무슨 지도하고 계시겠소? 돈벌이 잘하라는  지도할까?  하나님은 지도 안 해요. 지도 안 합니다. 일호 지도를 순종 안 하면은 항상  일호요. 일호 지. 도 순종 안 하면 항상 일호를 말합니다. 오늘도 일호, 내일도  일호, 명년에도 일호, 십 년 후도 일호, 일호를 순종해야 이호를 말하지. 일호  이호를 순종하지 안하는 자는 평생 하나님의 지도는 받지 못하고 저 혼자  움직여서 저 혼자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이렇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의 인도를 보지 못하는고로 항상  조급하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조급할 것이 뭐 있소?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나는 몰라요. 당신이 인도하시지.

 이러니까, ‘여호와께서’ 하는 것은 이 신구약 이 계약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그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은 신구약 성경의 이 계약을 선포하시고 그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라 말은.

 여호와라 말은 하나님의 계약을 선포해 놓고 그 계약대로 추호도 가감없이  그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는 그 이름을 가리켜서 여호와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여호와란 뜻은 어데 명문돼 있는 건 아니나 여호와가 어떻게 했는가?  여호와란 이름을 말하면서 행하시기를 어떻게 행하셨는가? 여호와의 이름이 이  인간들에게 대해서 행한 그 일을 보면 ‘나는 여호와로라’  ‘나는 만군의 여호와라’ 할 때는 그 계약을 선포해 놓고 이 계약대로  이행하나 안 하나 하는 전투하는 내가 하나님이라 하는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일호가 뭐이냐? 너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이랬는데 이걸 떠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지시도 없고 저 혼자 예수 믿소. 왜? 이거 순종하기 전에는  하나님 명령 순종할 수도 없고 또 하나님이 명령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일호를 거절하는 자에게, 일호를 순종해야 이호를 순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그 모든 순서가 있는 것인데 이거 순종하지 못하면은 그 본토에 결박을  당해 있고 친척에 결박돼 있고 이 모든 지방 정실 그 혈육 정실 이런 정실에  결박을 당해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아무리 나오라 한들 나을 수가 있습니까,  거기에 매였기 때문에? 먼저 그 줄부터 끊어 가지고 거기에서 해방을 받아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하요.

 교인들 그러며 예수 잘 믿다고 뭐 떠들어 쌓고 주여 주여 해도 아주 너무  허무합니다. 번연히 이것이야 혈육 정실이지 딴것이 아니라. 이것을 암만  따져봐도 그건데도 눈을 가리워 놓으면 몰라.

 내가 어떤 여기 OOO교회에 있는 집사님인데 그 집사님이 지금 세상을 떴는지  나는 모르겠소. 그 저 OOO목사님 장포님 지금 세상 계십니까, 장로님? 세상  떴어?  그런데, 그 집사님이 뭐 주여 주여 하면서 따라다녔어, 아주 좋다하며, 그래  내가 말했어. ‘집사님에게는 그 하나 시험이 있는데 암만 주여 주여 하지마는  사위하고 나하고 조금 있으면 서로 신앙 사상으로 이래 벌어지게 될 터인데 신앙  사상으로 벌어지게 되면은 집사님이 진리 따라 오겠소 혈육 정실로 사위  따라가겠소? 아마. 자기는 사위 따라가지 진리 못 따라 올 것 같은데.’  이라니까 안 그렇다고 쌓습니다.

 이랬는데, 나중에 떡 그래 가지고 난 다음에 거기 따라가지는 안하고 있었지?  따라가지는 안하고 있기는 있어도 고통당했지요. 내가 미리부터 한 번 따져 놨기  때문에 그리 따라가지는 안했어.

 여기에도 뭐 암만 이래 쌓아도 목사님은 진리를 말해도 저거 자녀하고 목사하고  서로 신앙에 대립이 되면은 ‘우리 아들에게 그렇게 해?’ 그만 당장에 떡  벌어집니다. 여러분들은 혈육의 종이오. 지방 정실의 종이오. 그 멍에를  벗어나고 그 결박에서 풀려 나와야 되지 그 결박에서 풀려나오기 전에는 신앙의  자유는 절대 못 합니다.

 신앙 자유라 말은 뭣을 말하는 고 하니 신앙이라 말은 하나님이 이래라 하면은  그대로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할 수  있는 자가 자유이지 하나님의 뜻을 암만 깨달아도 그대로 할 수 없는 그자는  신앙의 자유가 없는 자입니다.

 공연히 신앙 자유, 양심 자유, 뭐 교회 자유 무슨 뜻도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모두 말하고 있어

 이러니까, 오후에는 이제 사람병 고치는데, 사람에게는 이 원수의 결박을 받아  가지고서 안팎이 마음도 결박돼 있고 정신도 결박돼 있고 생각도 결박돼 있고  모든 행위도 결박돼 있고 처세도 결박돼 있고 모든 것 다 이 지방 정실 혈육  정실에 결박을 딱 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결박부터 풀어야 이 사람병이  고쳐지지 그 결박되어 있는 그자는 치료를 받을 수가 없어.

 OOO권사님 그거 좀 생각해 봤어요? 이 결박에서 풀렸나. 안 풀렸나 좀 생각해  봤어요? ‘생각해 봤어. 풀렸다고 생각을 해요 지금 풀릴라고 애를 써요, 해방을  받을라고 애를 써요 해방을 완전히 받았다고 생각해요?  자, 지방 정실 혈육 정실, ‘네 본토 아비 친척 집을 떠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그 지시를 따라서 가라’ 이렇게 말씀했는데 이  지방 정실과 혈육 정실의 그 결박에서 해방을 자기는 받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아이구, 이거 하나도 없네. 왜 못 들어, 못 들기를? 아,  이렇게 없어요? 이렇게 없어, 여기에? 이거 다 참 죽었구나, 다 모두. 정말로  이래요? 이라면 낙심이오. 그래도 여러분들 다 그래도 나는 낙심하지는 안 해요.

모두 거짓말 하는가배.

 자, 여기 목사들 자, 혈육 정실 지방 정실에서 해방을 나는 받았다. 그  해방받은 경험이 있는지, 해방은 눈물 많이 흐르고 참 심한 고통을 겪고 굉장한  연단으로써 그렇게 해방되는 것이지 쉽게 해방되는 것 아닙니다.

 잘못하면 해방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무시해 버리는 염세주의자, 비윤리주의자,  흉한 불효 호로 새끼 그자 되기 쉽습니다. 그자는 그것을 거기에서 해방당한 것  아니오.

 이러니까, 거기에 결박을 당해서 그걸 주인으로 삼아 있다가서 이제는 주인이  바뀌어서 나는 예수의 피에 팔린 주님의 것이 됐고 주님의 종이 됐고 주님의  성전이 됐고 주님의 지체가 됐고 주님의 몸이 됐고 주님의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됐기 때문에 이제 이것으로써 모든 본토를 도로다시 찾아갑니다.

 자기 본토에 가 가지고서 이제 제사장노릇을 거기에서 하고 선지노릇을  거기에서 하고 왕노릇을 거기에서 하고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고 말씀을 증거하고  이렇게 증거하는 일을 해서 다시, 일단 세상을 버리고 세상과 재결합되어서 하는  것은 세상을 구출하기 위해서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안 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예 그 악한 자가 악이 불신자보다도 자기중심에 사욕이  강해 가지고서 이게 사욕이 강해 가지고 제사 안 지낼라하니까 좋다. 또 생일  잔치 하지 말라 하니까 좋다. 이래 가지고서 생일잔치 하라 하면 뭐 모두  싫어하고 야단을 지기요. 지금은 그거 다 해방을 해서 하라 했습니다.

 그래 내가 하나 자랑하는데 여기 OOO 집사님이라고 목발이 있어요. 목발 타고  다녀요. OOO 집사라고 노인 목발 타고 다니는데 그 젊을때 기차 타고 가면서  너무 꺼뜩거려 쌓다가 그만 툭 떨어져 가지고서 다리를 끊어서 지금 목발 타고  다녀요.

 이래도 그집이 나는 부러워요. 내가 묻습니다. 요번 그라면 설은 뉘집에 가  쇱니까? ‘하, 이거 하도 오라 해서 아침에는 큰아들 집에 낮에 점심에는 작은  아들 집에 그 다음에는 또 그 다음 아들 집에,’ 아들이 몇이지? 몇인지 아나요?  아들이 몇이야? OOO씨 여기 있어요? 어데 있노? 어데 빠지지는 안 했을 것인데,  육 명? 아들이 여섯? 허허 아들이 여섯인데 어떨 때는 시비가 나. 우리 집에 안  온다고, 그래 놓으니까 할 수 없어서 그만 인제 행하기를 나이 수 대로 일호  아들에게 첫째, 이호 아들에게 둘째, 삼호 아들에게 셋째 이래 그래 가서  생일잔치도 꼭 그래 뭐 여섯 번인가 일곱 번인가 해요. 이라는데, 그래 놓고 떡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너거한테 성경 읽을 만치 내가 가르쳤으니까 내가  교육에 대해서 모자라는 게 뭐꼬? 그래도 너거가 다 한글 성경만 읽을 만치  가르쳤으니까 됐지. 또 너거 예수 믿구로 만들었으니까 그 이상 너거에 할 일 할  게 어데 있노?’ 이렇게 호통을 치고,  그 할멈도 똑똑한 할멈인데 여기 왔을 거요. 할멈이 절절 매요. 나는 그거,  우리한테는 뭐 억세요. 억세게 해서 이 할멈이 집에서도 왕노릇할거다 이래  봤는데-뭐 나와 보면 등신 같은 것도 저거 집에 가면 왕노릇하거든-이라는데  왕노릇할 거다 이랬는데 그뭐 OOO 집사님한테 벌벌 떨어. ‘하이구 지금 뭐,  시간 어기면,’ ‘어짠다고 그래 떱니까?’ 이라니까 돋으면 목발을, 목발,  나무로 만들지 안했소? 목발로 마구 뚜드려 댄대요.

 그래 가지고서, 아들네들이 누워 자며, 어릴 때 말이지요. 그 모두 가난하게  지내요. 방도 조그만한데 뭐 한 방에 오글오글하게 이래 누워자는데 새벽기도.

안 나가니, 새벽기도 나오라고 깨워 놓고 가니까 안나오고 일찍 가니까 누워  자거든. 그래 시골에는 추우니까 나와 오줌누지도 못하고 요강 단지가  이만합니다. 큽니다. 커단한 요강 단지에 밤새껏 오줌 누어 놓은 건데 그만 요강  단지를 들어 저거 누웠는데 한 가운데다 막 탁 내던져 버렸어. 그래 놓으니까  전부이 오줌으로 전부 목욕을 다 해버렸어.

 이라고 뭐 예수 믿는 신앙생활 안 한다고 어떻게 호통을 치고 이라니까  오죽하면 그 아들이 예수 잘 안 믿는다고 호통을 치고 그 몽둥이맞지, 목발로  가지고 막 뚜드려 패고 이라니까 그 아들이 얼마나 뚜드려 놨든지 에이 그만 나  자살한다고, 그 앞에 못이 있어요. 무월 있을때 인데. 그 못에 가 빠져 죽을라고  이와같이 가서 생각하니까,  그 하나님이 도우셨지. 아이고 죽지는 못한다. 내가 그만 도망을 튀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서울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서울로 도망갔는데 또 결혼을  잘해서 효자, 아주 효자된 그 마누라 얻어 왔지 부자가 돼가지고 찾아왔어. 전부  똘똘 뭉쳐 다 찾아왔어요. 그래 뚜드려 패고, 예수 잘 안 믿는다고 뚜드려 패고  꼭 주를 위해서 했는데 그래 놓으니까 지금도 절절 매고 뭐 면장이라면 절절  맵니다. 주를 위해서 한 사람은 손해 본 일이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새벽기도  안나온다고 그만 요강 단지 버뜩 들어서 막 방바닥에 뚜드려 깨는 그런 믿음의  용기가 없어. 그 죄에 대해서 그렇게 미워하거든.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셔.

 여기에 그저 저 조그만한 목발이 있어요. 이런데 그뭐 지금 나이가 칠십 몇  살인가 되는데 지금 뭐 한창 때입니다. 젊은 사람 이상이라. 그 매일  전도합니다. 매일 하루도, 하루 익 마혼 몇 집 한다 하든가 쉰 몇 집 한다든가  매일 꼭 그래 놓고 전도해요. 계속 전도해요.

 우리가 이리도 치우치면 안 되고 저리 치우쳐도 안 되고 꼭 성경 말씀대로 하는  데에는 주를 바라보는 자는 절대로 수치를 당하지 안한다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창세기 12장 1절에 있는 이 말씀을 순종하치 안하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주를 위해서, 거기에 속한 자가 거기에서 그를 버리고 주님에게  소속된 이 일이 돼야 자기 본토도 마지막에는 구원할 수 있고 친척도 구원할  수가 있지 주님은 생명이시요 축복의 근원이신데 내가 주님과 연결이 돼져야 뭐  본토도 구원할 수 있고 친척도 구원할 수 있지 거기에 생명과 떨어지면 나도  썩을 판인데 뭘합니까? 복의, 근원과 떨어지면 누구를 어떻게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요 진리를 깨닫고 요걸 순종하지 안하면 그 다음 하나님의  지도를 받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이런 것을 버릴 때에는 무시해서 버리면 못  씁니다. 참 내가 버릴 때에는 버리기가 어려워서 눈물을 흘리면서 버리고 그저  할 수만 있으면 안 버리고 되는 길이 있으면은 좋은데 할 수 없어서 버리는 그  사람이 주를 위해서 버리는 것이지,  주님만 위해서 버리는 것이라야 돼지 자기가 자기 유익을 위해서 버리는 것,  자기가 수고 하기 싫어서 버리는 것, 자기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서 게을을  자유를 달성하기 위해서 버리는 그런 것은 주를 위해서 버리는 게 아닙니다.

 본토 아비 친척 버리는 것이 주님이 버리라 했기 때문에 주님 명령 순종으로  버리는 요것이라야 되기 때문에 요걸 요리조리 치우치지 안하고 요 계명을  지켜야 그 다음에 하나님의 지도를 받고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지키는 줄 알았는데 가다 보니까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현실에 당면해 가지고 ‘나는 지키는 줄 알았는데 못  지켰습니다’ 이렇게 수십 번 가르쳐 가지고라도 어떻게 하든지 이 첫째 둘째의  이 계명을 지켜야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지  후라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고요히 생각해서 이 시간 작정합시다. 이 시간 확실히 작정해요.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명령 순종으로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버린 사람은 주를 위해서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위해서 자기가 얼마든지 희생하고 수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를 위해서 주의 명령으로 버리라 할 때에 버리고  취하라 할 때에 취하고 이제 섬기라 할 때에 섬기고 끊어라 할 때에 끊고 주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 헛일입니다.

 제 오계명에 부모에게 공경하라, 효를 하라 했는데 우리가 산 부모를 섬기는  것은 싫어하고 제사 지내지 말라 하는 건 좋아하는 그자는 아주 살인 강도 같은  그 악한 자입니다. 그런 자는 제사를 지내야 됩니다. 그자는 하나님의 도를 지킬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묘한 말을,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안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말을 배우러 오고 묘한 말을 배우러 온 사람은 재미가 없을 것이오.

 자기가 사람병을 고칠라고 와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이 되고자하는 사람은  이 말씀은 자기에게 천천 금은보다 나올 것입니다. 이 사람병이 둘어서 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의 이 성을 고치지 못해 가지고서 있는 이것을 자기가 탄식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이 말씀으로써 크게 해방의 자유를 자기가 얻을 것이요 크게  무서운 그 사람병이 치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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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반은 오후 일곱시에 강단 옆에 모여서 산기도 가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기도에 대해서 요번 기도는 특별히 두 가지를 주력해서 기도합시다. 하나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을 자기와 모든 교우들 속에 이놈을 죽여서,  악령 악성 이놈이 들어서 다 사고의 원인이기 때문에 이것을 죽여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합시다.

 우리는 잘못하면 그 사람의 악을 보고서, 그 악은 악령, 악성 악습이 들어서 그  모든 죄를 범하는 원인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 사람을 악령,악성,악습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이 기도는 하지 안하고 우리가 거기에 피동돼 가지고 잘못하면  살인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미워하는 거는 살인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정에나 모든 문제 있는 사람들은 악령, 악성 악습을 이것을  옛사람인데, 이놈을 죽여달라고 기도하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강건케 해 달라는 이 기도를 몇 번이고 몇천 번이고 하나님 앞에  강하게 합시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시행하겠다고 주님이 약속했습니다. 주님이 약속한  것을 믿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이 옛사람을 죽여 주시고 새사람으로 강건케 해  주십시오 하는 그 기도를 우리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네, 오늘밤에는 산기도 갑니다. 모두 다 갈 사람들은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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