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의 실력

 

1981. 2. 5. 새벽 (목)

 

본문:창세기 18장 1절∼15절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이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 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짐승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버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데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네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창세기 19장 1절∼3절 날이 저물매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으니 그들이  먹으니라

 하나님께서 천사와 함께 아브라함을 방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방문하실 때에  그 목적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약속하신 아들을, 아들 이삭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걸음이요 또 하나는 소돔 고모라 성에 죄악이 관영함으로 천사들을  보내서 그 성의 죄악과 그 성민을 함께 멸하시려고 오시는 걸음입니다.

 그때 오실 때에 어떤 그런 영광스러운 그런 모양으로 오시지를 아니하시고 그저  지나가는 과객처럼 그렇게 오십니다, 지나가는 과객처럼. 아브라함이 자기의 장막  문에 있는데 어떤 세 사람이, 행인 세 사람이 자기 장막 앞을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때 그 아브라함이 속히 달려가서 ‘이렇게 저의 장막 가까이 손님이  오셨으니 내가 당신들을 그저 이렇게 보내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  하시는 일이요 당신들을 내가 대접해 보내는 것이 이것이 나로서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고 축복받을 일이니 우리집에 와서 들려서 대접을 받으시고 떠나라’고  그렇게 간청했습니다.

 그때에 ‘아니라. 우리가 그저 가겠다.’ 이러니까 ‘나를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게 하시고 은혜를 입게 하려거든 우리 장막으로 들어와 가지고서 그래 대접을  받고 가라’고 그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아주 엎드려 절을 하면서 간청했습니다.

그제야 그분들이 장막 앞에 있는 정자나무 밑에 거기서 좀 쉬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빨리 가서 물을 떠다가 발을 씻도록 하고 또 자기 아내 사라에게  떡을 구으라고도 하고 또 자기 짐승떼에 가 가지고 아주 참 좋은 소 새끼를 하나  끌어다가 하인들에게 주면서 요리를 하라고 해서 그래 대접을 했습니다.

 그 대접을 받고 난 다음에 떠날 때 하는 말이 ‘명년 이맘때가 되면 너의 아내  사라가 이제 아들을 낳아서 너에게 줄 것이다. 내가 그때 내가 너에게 다시  오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그것이 이삭이 나게 되는 큰 조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또 그 19장에 읽어본 데에 거게는 두 천사가 거게서 아브라함 집을 다녀서  여호와 하나님은 거게 계시고 두 천사는 소돔 성에 갔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소돔 성이 죄악이 관영했으니  내가 그 성을 가서 보고 멸하려고 그래 내가 지금 천사들을 보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아브라함이 듣고, 그때에 자기 조카가 거게 소돔 성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서로 그 종업자들을 인해서 시비가 생겼을 때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그 가족들은 자기 숙부도 생각지 아니하고 ‘우리가 이 좋은 목장  하기에 좋은 곳을 우리가 택하자’ 이러니까 롯이 ‘그렇지마는 그래도 좋은  곳을 삼촌에게 드리고, 우리가 그래 해 되겠느냐?’ 이래도 그 하인들과 너무  심하게 세워서 그것이 롯에게 아주 걱정이 되고 가정에 문제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그걸 알고 조카 롯에게 말하기를 ‘내나 네나 한 혈육이요  또 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이런 것 가지고 시비해서 안 되니까 네 앞에  목축하기에 좋은 곳도 있고 나쁜 곳도 있으니까 내가 네 사정을 알고 네 가족  사정을 아니까 네 마음에 좋은 대로 택하라.’ 그러니까 롯이 좋은 곳 소돔 들을  택했는데 그때는 아주 물이 좋고 기름져서 목축이 잘되는 곳입니다. 그때 그곳을  말하기를, 그후에 말하면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같이 그 기름진 곳이라”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후에 계시를 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때 롯이 하나님도 생각지 아니하고, 윤리도 생각지 아니하고, 도의도 생각지  아니하고 온 식구들이 욕심만 따라서 보기에 우선 좋다고 취했던 소돔 고모라  성이었습니다.

 이랬는데 그 성민들의 죄악이 관영함으로 하나님이 유황불로 멸하시려고 하는  그 경영으로 천사 둘을 보내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에 ‘아브라함아, 내가 하는 일을 너한테 숨길 수가 있겠느냐?’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도 숨기지를 아니하시고 같이  통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그 당시에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대략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자기 조카 롯이 거기 있으니까 이 성을 멸하면 내  조카가 다 조카의 가족들이 다 절난나겠다 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여섯 번을  했습니다. ‘의인 오십 인이 있으면 의인과 이 죄인들을 함께 멸하시렵니까?’  ‘오십 인이 있으면 내가 참겠다.' `사십오 인, 사십 인, 삼십 인, 이십 인, 십 인,  이렇게 하나님 앞에 구해서 ‘의인 열 사람이 있으면 내가 열 사람을 인해서 그  성을 용서하겠다.’  이러니까 아브라함은 그 이상 더 기도하지 안했습니다. 설마 롯이 그 곳에  갔으니까 의인, 저거 가족만 해도 네 사람이라 외에 여섯 사람이면 됐으니까 의인  여섯 사람만 됐으면 그 성이 구원 얻을 수 있으니까 열 사람이야 안 됐겠느냐  이래서 열 사람 이상을 구하지 못했는데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소돔 고모라  성은 유황 불비로 다 소멸됐습니다. 인제 그러려고 그 천사를 보내는 판입니다.

 천사가 저물 때에 그 성에 들어가서 롯의 있는 근처로 지났습니다. 롯이 이 두  천사가 길가는 나그네처럼 이렇게 지내가니까 쫓아가서 영접을 하면서 어쩌든지  우리집에 들어서 날도 저물고 이러니까 오늘밤에 유숙하시고 내일 아침에  일찌거니 출발하시도록 행장 준비를 해 드릴 터이니까 집에 가서 유하라고,  아니라고 간다고. 하도 만류하고 이러니까 ‘그러면 그러겠다. 우리는 여기  길가에 자고 가려 했더니마는 하도 그러면 내가 들어가겠다.’ 그래 가지고 그  집에 들어가서 대접을 받고 롯에게 그 전달을 해서 롯의 가족이 구원 얻었습니다.

 천사가, 그 성민들이 모르는 사람 두 사람이 그 집에 들어오니까 그 사람들을  욕을 보이려고 와 가지고서 분쟁을 일으킬 때에 롯은 말하기를 ‘내게 지금  아직까지 사나이를 모르는 두 딸이 있으니까 두 딸을 내 줄 터이니까 내 집에 온  이 손님은 너희들이 해하지 말라’고 사생 결단으로 만류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거게 있는 사람들이 ‘이놈이 들어온 놈이 돼 가지고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느냐? 너거 딸이 무슨 필요 있느냐 오늘밤에 들어온 이 두 사람을 우리에게  내 달라.’ 그래 가지고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롯은 천사인 줄 모르고 길 가는 하나의 불쌍한 과객으로 그렇개 본 것입니다.

롯이 싸우고 있는데 롯을 끌어들이면서 그들이 능력으로 그만 거기 있는  사람들의 눈을 당장 다 멀게 해 버리니까 롯의 집이 어덴지 어만 데를 찾고 그리  들어오지 못합니다.

 문을 닫고 롯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죄악이 관영해서 하나님이 멸하시려고  해서 왔으니까 네게 속한 그 가족들이 있으면 다 동원해 가지고 빨리 이 성을  떠나라. 이 성이 다 전멸될 것이다.’ 롯이 말하기를 ‘아무도 없습니다. 없고  우리 약혼한 사위 두 사람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가서 전달하겠다.’  사위 두 사람에게 가서 전달하니까 사위 두 사람이 있다가 ‘이 영감 또 실없는  소리 한다.’ 싶어서 ‘갈라면 자기네들이나 가십시오. 우리는 안 갈랍니다.'  `그러면 딸도 다, 우리 딸도 다 가는데 너거는 안 갈래?’ ‘안 갈랍니다.' 이렇게  조롱하고 농담인 줄 알고 거절했습니다.

 롯이 땅에 있는 물질만 생각하고 또 그다음에는 자기 식구들만 생각하고  하나님도 생각지 아니하고 윤리도 예의도 생각지 아니하고 물질과 저거 가족만  안 그 롯의 신세가 뭣이 됐느냐? 자기들의 약혼한 사위 두 사람에게도 사람  같잖이 보여서 그 말을 신청하지를 안했습니다.

 반드시 세상 것만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지 아니하고 다음에는 인간을 다른  사람을 생각지 아니하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자기 가족이 비참하게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 나중에 그들이 달아났는데 유황 불비로 소돔 고모라 성은 다  전멸이 됐습니다.

 오늘 아침에 증거하려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래 복을 빌려고 백  세 될 때에 아들을 주려고 오시면서도 길 가는 하나의 과객처럼 이런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때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 근처에 오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존중히 여기는 일이 없었으면 그만 하나님은 이삭을 축복으로 주려고 오셨던 그  걸음이 그저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나가는 행인 이 세 사람을 하나님이 인간 사랑을 기뻐하시는 줄 알고, 또 자기  앞에 지나는 그런 사람을 빈입으로 보내는 그것이 자기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예의가 아닌 줄로 아는 그 계명을 지키는 데에서 영접해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롯의 집에도 갈 때도 길거리에서 가서 잘 수 있는 그런 행인과 나그네같이  그 모양 해 가지고서 갔었습니다. 그때에 만일 롯이 ‘그까짓 것 뭐 날이  저물지마는 지나가거나 말거나 생각할 게 뭐 있는가?’ 하고서 푸대접을 해서  그렇게 보냈더라면 소돔 고모라 성을 멸할 때에 그대로 멸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거게서 같이 멸해지지 아니할 수 있는 그것은 롯이 그래도 그 성민  중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과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존중히 후대하는 그 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멸망하러 오는 그 천사들에게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그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자꾸 기도를  지금 하는 그때인데 자기가 식사를 하니까 어떤 거지가 와 가지고서 밥 좀  달라고 말하는 것을, 그분이 뭐 일정 때에 아주 불량한 그런 경관입니다. 이랬는데  와서 이러니까 어른 식사하는 데 와가지고 버릇이 없이 한다고 호통을 치고, 또  자꾸 밥 좀 달라고 애걸하니까 호통을 쳤습니다. ‘이놈 안 가나?’ 안 가면 당장  어떻게 한다고 아주 노해 가지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분이 가 버렸다 말이오.

 가고 나서 그 이튿날 새벽에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를 하면서 또 하나님  사랑하게 해 달라고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내가 배가 고파서  너한테 갔을 때에 네가 나한테 이렇게 노한 박대를 해 놓고 또 나를  사랑하겠다고 하는 그런 입술의 말을 하느냐?’ 이래서 그분이 그때에 곧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함이요 인간을 참 박대함이 하나님을 박대함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소자 하나에게 접대한 것이 나 접대하는 것이고 접대 안 한  것이 나 접대 안 한 것이라 하는 말씀을 깨닫고 아주 그가 뜨거운 회개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후에 앉은뱅이에게 전도한 수가 한 칠십여 명 됐고  거지에게 전도한 것은 숫자가 심히 많았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김의근씨라 하는 그 사람이,  나는 직접 못 들었는데 집회할 때에 내가 김천 그때 가서 하루밤 유하는데 거게  같이 있는 사람이 집회에 갔다 와 가지고서 그런 얘기를 해서 내가 그 사람  만나려고 그 말 듣고서 즉시 달려갔습니다. 달려가니까 벌써 집회는 끝났고  앉아서 접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 가지고서 잠깐 얘기하고  나뉜 일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 얘기를 들으면 성마틴이라 하면은 아주 위대한 성자입니다. 성마틴이  군인인데 군인 대장인데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보니까 어떤 그 아주 거지가 하나,  거지가 하나 길가에 오글쳐 앉아 떨고 있기 때문에 말을 멈추고 자기가 내려  가지고서 내복을 벗어서 그 거지에게 입히고 말을 타고 갔습니다. 가니까 또  거지가 하나 그런 거지가 있는데 이제는 뭐 내의는 벗었고 겉옷을 인제 다  벗어주면 자기가 벗을 모양이고, 제 겉어머리 옷을 내 가지고서 반을 쪼개서  그이에게 둘러주고 자기는 그것을 가지고 몸을 가리고 말을 타고 갔었습니다.

 갔었는데 그후에 자기가 기도하는 가운데에 주님이 나타나셔 가지고서,  나타나셨는데 겉옷 그 반쪽을 몸에다 두르고 나타나셔 가지고서 왔더라고. 주님이  어찌 이렇게 해 가지고 오십니까?’ ‘내가 추워서 아주 견디기 어려웠는데 네가  이 겉옷 반쪽을 쪼개서 나를 입혀줘서 내가 추위를 면하고 그랬다’고 반쪽 그  외투 반쪽을 입고 주님이 나타나셨더라고. 그것이 성마틴전에 기록돼 있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연보하라 하는 그런 연보 그런 것이 연보를  하나님이 가져가는 것 아닙니다. 연보하는 것은 자기가 사람을 직접 이렇게  구제하고 하는 것보다도 연보하는 이 돈은 사람을 구제하되 육으로 구제하거나  또 자기 개인의 생각으로 구제하는 것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에 바쳐서 이  공적으로, 자기보다 신앙이 나은 모든 사람들이 연구해 가지고서 가장 구제를  하는 데에는 제일 급한 구제가 무엇이며 요긴한 구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찾아  가지고 요긴한 구제를 하는 것이 그것이 연보인 것입니다.

 어제도 봤지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사람은 남보다 건강을 주시고, 남보다  많은 물질을 주시고, 남보다 많은 진리 깨달음을 주시고, 또 남보다 귀한 믿음을  많이 주시고 이렇게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래서 그렇게 주시는 것은 뭣이냐? 어떤 자에게 주면은 그것 가지고서 도로  악용할 수 있는 그런 자들의 모가치를 어떤 사람에게 줘 가지고 그 사람이  그들에게 다 뿌어서 같이 하고, 진리를 다 같이 그렇게 깨닫게 해 주면 그게  교만해 가지고서 얄궂게 될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많이 맡겨서 이 진리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도록 진리를 맡기고,  물질을 또 어떤 사람에게, 다른 사람에게 주면 그 물질 가지고 제가 죄나 짓고  악을 행할 것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물질을 줘 가지고서 없는 자에게  줘서 나눠 주도록 이래 하시고,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어떤 사람은 건강을 줘 가지고서, 어떤 자에게 건강을 주면  그 건강 가지고 죄짓고 도로 망할 그런 자를 위해서 건강 어떤 자에게 줘 가지고  그이가 가서 봉사하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하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뭣이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이  은혜로 가지고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여 다른 사람을 돕고 이래 가지고서 자기로  인하여 다른 사람도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이런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반드시 건강이든지 뭣이든지 하나님이 주시지 안한 것이  없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다 이것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같이 좋은  것을 누리도록 하려는 그 봉사의 사명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러면 그것 가지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참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주니까, 악한  자에게 주는 것보다 그들에게 주니까 서로 같이 이렇게 나누게 되니 그 사람이  미련한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할 줄은 모르고 그 사람에게 감사하고, 또 그  사람에게 감사하는 동시에 그 사람에게 다스림을 받아서, 못된 짓 하면은 자기를  도와 준 사람이 와 가지고 ‘그러면 안 된다’ 이러니까 `아이구, 네,  조심하겠습니다.' 이래서 이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의 영장된  인간들이 다 행복되게 살고 또 만물을 잘 행복되게 이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하시기 위해서 했는데 인간이 타락했습니다.

 타락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세워 가지고서 이 일을 하도록 위해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성경 에베소 1장 끝절에 보면, 교회라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말함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을 뭐하려고 이래 구속했느냐?  무궁세계 이 우주도 굉장히 넓지마는 영계도 더 무한히 넓은데 이 우주와  영계에 있는 하나님이 지으신 별별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나타나지  안했지만 이 우주에도 어떤 별에는 뭣이 살고 어떤 별에는 뭣이 사는지 모릅니다.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교회인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성도들이 그들에게 또 은혜를  베풀어서 “만물 가운데에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시는 그 직책을 맡은  것이 교회들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다른 데 성경에 보면은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가 뭣 하느냐? 봉사의 일을  하게 한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가지고서 모든 것을 이래 뿌려서  복되게 이렇게 해 주시는 이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출한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같은 사랑이 없는 자이지마는 그래도 자기 속에서 난 자식이 한  육칠 칠팔 됩니다.

 요새는 아이를 안 낳으려 하는 것은 아이 낳는 것이 손해라 그말이요, 두말 할  것 없이. 아이 안 낳는 것이 뭐 에너지 문제니 뭐 하는 그것도 아닙니다.

 아이 낳는 것이, 아무리 이 공중에 유익된 걸 말한다고 해도 제가 하고 싶으면  하지 그것 안 합니까? 아이 안 낳으려 하는 것은 아이 낳을 필요가 없다  그말이오. 제가 남의 자식이 돼 봤지마는 자식이 필요 없고 그 부모는 자식 낳은  게 속은 것뿐이지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이게 뭣이냐? 윤리가 끊어지고 효가  끊어지고 인간들이 악해졌기 때문에 낳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봐도 참 ‘부모에게는 자식밖에는 없다.’ 자기가 안다 그말이오.

남의 자식이 돼 가지고 우리 부모를 볼 때에 ‘부모에게는 참 자식밖에는 없다.’  그리 인정돼 보십시오. 나라에서 낳지 말라 해도 자꾸 낳을 것입니다. 필요  없다는 걸 제가 느낀다 말이오. 제가 남의 자식이 돼 가지고 하는 걸 봐도 자식  키우는 데만 애만 먹었지 무슨 이 자식 이것도 키워 놓으면 내나 그럴 것  아니겠느냐? 이러기 때문에 필요성을 안 느끼는 그게 모두 아이 안 낳으려 하는  건 그것 때문입니다. 그게 자기에 참 유익된 줄 알아 보십시오.

 이것이 뭣이냐? 이러니까 윤리가 끊어지는 것인데, 아들 칠 형제나 팔 형제나  아들이 있는데 가만히 보면 어떤 아들은 이놈이 저만 알고 그 형제간은 하나도  돕지 안한다면은 그 아들에게 그 재산을 주겠소? 아무리 봐도 ‘어느 아들에게  이것 주면은 저것이 제가 가지고 있지마는 나중에 저거 형제들이 어려우면 저거  형제들이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이 그 형제들을 생각할 것이다’ 하면은 그  부모가 어느 자에게 그 유업을 맡기겠습니까? 그런 아들에게 맡길 것 아닙니까,  쉽게 말해서. 또 그것이 그래 할 때 부모 마음이 얼마나 좋겠소? 자, 부모가 직접  자식에게 주는 것보다도 자식을 통해서 주면 저거 형제끼리 우애가 있어지지, 또  그러면서 그 아들이 부모를 섬기면 으례히 따라 섬길 줄 알고, 꼭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말하기를 ‘너거가 너거 마음에 좋아하는 그것을 해라. 너거  마음에 너거 아들들이 어떻게 했으면 네 마음에 좋겠노? 그대로 네가 인간에게  해라. 네가 다른 사람이 너에게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노? 그대로 네가 다른  사람에게 해라.’ 그것 말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모든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연보하는 것이 뭣이냐? 그것이 자, 내가 직접 그 사람에게  옷을 주고 돈을 주고 밥을 주어 가지고 사람 못쓰게도 하기 쉽지만 우리가 내는  것은 이것 뭣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피공로를 그들에게 전해 가지고서 구속을  받게 하는 이 비용으로 쓰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 사람들이 이 도리에 대한 말을  못 들으니까 이 말을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 가서 타이르고, 그 사람들 멸망  가운데 빠지니까 그런 데 빠지지 말라고 권면을 하고, 이 가르치고, 또 그들이  아무리 가르침을 받으려고 애를 써도 앉을 자리가 있어야지? 가르침을 받으려고  애를 써도 앉을 자리가 없다 그말이오.

 여게 지금 팔천이니 구천이니 와서 앉으려 하니까 마구 지하실까지, 아니지. 약  만 명이 되지. 지하실까지 만 명이 지금, 중간반 주일학교 한 만 명 되는데 이  사람들이 예배보려 해야 예배볼 장소가 있어야지?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와도 와 가지고 들을 장소가 있어야지?  이러니, 이런데 이때에 우리가 연보를 해 가지고서 예배당 장소를 넓히는 이게  뭣이냐? 이게 내나 사람을 구제하고 봉사하는 것 중에 제일 요긴하게 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렇지 않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굶어 죽을 사람 없습니다. 그것은 다  어쩌든지 할 수 있게 돼 가지고 있어. 그러나 복음이 없어 죽습니다.

 이러니까 전도를 해 가르쳐, 또 가르치려고 하니까 가르칠 사람이 밥을 못 먹어,  이래서 우리 교회에서 한 달에 사람 구원하는 데에 한 천만 원 들어갑니다. 매월  한 천만 원 들어가요. 사람 구원하는 데 천만 원 이래 들어가지마는 그래도 지금  중간반 반사들 한 달에 사십만 원 삼십만 원 이 수입하던 사람들이 한 달에 월급  오만 원입니다. 월급 오만 원이오.

 오만 원이니까 그 밥값을 지금 저거 집에서 먹으면 시간을 또 그런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어 또 밥값 삼만 원 내요. 오만 원에서 오천 원 또 십일조 떼요.

사만오천 원에서 삼만 원 떼니까 얼마 남았소? 얼마 남았지요? 만오천 원 안  남았소? 만오천 원 가지고서 다른 연보하고 이래 삽니다.

 이래도 인간 구원하는 이것이 자기에 난 보람이 있고 이것 때문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사람 구원하는 일에 이 일을 위해서, 누가 시켜서 합니까? 밤  늦게까지 뭐 달려 돌아다니면서 하는 이게 뭣이냐? 깨닫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연보하는 것은 인간을 봉사 구제하는 것 중에 제일 요긴하게 중요하게 이렇게  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뭣 때문에 자기, 등신 같은 그런 사람은  목사 노릇 해도 옳게 못 하요. 다 목사 노릇 바로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으면 굉장한 일을 할 사람들입니다, 다. 정계에 나가도, 뭐 물질적으로도. 이러나  이래 다 헌신하는 것은 그 이유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하려는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다” ‘내가 옷을 벗었을 때에 내게 옷을 입혀 줬다.’  `언제 벗었는데 우리가 입혔습니까?’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다.’‘너는 내가 병들어도 와서  찾아보지 안하더라.’ ‘언제 병들었을 때에 찾아보지 안했습니까?' `아무 소자  하나 병들었을 때 네가 찾아보지 안한 그것이 곧 나를 찾아보지 안한 것이다.’  그렇게 마태복음 25장에 말씀했어. 그것을 낱낱이 갚았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마음 좋게 하기  위해서, 자식이 부모 마음 좋게 하기 위해서 형제의 어려운 것을 도울 때 부모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렇지 안하요? 이것 보니까 조그만한 것들이 둘아 나가 놀다가 동생이  엎어지니까 이걸 엎어졌다고 울면서 업고 이래 가지고 와서 부모에게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동생이 엎어져서 그말 이래 다쳤다고 이러면서, 다치지도  안했는데 백지 우니까 이래 가지고 눈물을 흘리고 오면 그 부모 마음이 그 형이  동생이 우는 울음에 같은 눈물을 흘릴 때에 얼마나 마음이 기쁘겠소? 그 기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쁘면 우리 억억억억만 배도 더 되는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은  억억억억만 배도 더 기쁩니다.

 하나님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구원하고, ‘이러는 데는  작은 것 가지고 구원하려 하니까 어떻게 구원하겠느냐? 그 사람에게 돈을 줄까?  아니다.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것이 이것이 옳겠다.’ 이래 가지고,  좀전에 얼마 전에 내가 이 말을 했지마는, 신문에 보니까 루마니라라는 그  나라에 기독교 청년 이십 명이 다른 나라에서 성경 이만 부를 가지고서  들어가다가 붙들려 가지고 하나는 맞아 당장 죽었고 열아홉 사람은 지금 맞아서  고문 중에 있는데 그것 어찌 됐는지 모르겠고,  또 내가 들을 때 여기 보니까 홍콩, 이 홍콩에서 가까운 사람인데 홍콩에서  보니까 이 성경을 거석해 가지고 거게서 중국 사람이라고 그렇게 이 중국 말을  배워 가지고서 비슷하게 모양을 해 가지고서 성경을 가지고 저 중공에 가 가지고  지금 자꾸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성경 말씀을 전하고 있다고.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그래도 이것 좀 미국과 조금 관계가 있어서 예수를  믿어도 방 안에서만 믿지 방 밖에서는 못 믿어. 방 안에서 믿는 것은 괜찮답니다.

모르구로 믿는 것은 괜찮대요. 모르구로 믿는 것은 용납하고 있어.

 그래 가지고, 또 그렇다고 해서 우리 말대로 그런 건 아닙니다. 알면 발견만  되면은 잡혀 가지고 죽기도 하고 이러지마는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뭣이냐 하면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  왜 그래 죽으면 그만인데 왜 그러는고? 죽으면 그만인데 그러는 게 왜  그러느냐? 우리는 죽었다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 심판을 통과해서 영원 무궁토록  이 하나님 앞에 가서 살 사람들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나라에서 영원히  봉사할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생명 버려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형제를  위하는 그 사람을 무궁세계에 무궁토록 하나님과 형제를 위해서 만물 위해서  가장 높은 중요한 역할로서 영광스럽게 살 수 있도록 하시는 그것을 마련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런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또 중간반 반사들도 같이  참석을 하시고, 장로님들도 시간이 있으면 참석을 하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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