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나사로

 

1984. 12. 5. 수새벽

 

본문 : 누가복음 16장 19절∼21절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 홍포 입은 부자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어서 자기를 호화롭게 했다 그  호화롭게 했다 말은 호걸 호(豪)자 화려할 화 자. 빛날 화(華)자 자기를 아주  광채있게 그렇게 아주 아름답게 그렇게 꾸몄다 그 말입니다. 또 날마다  연락했다, 그러면, 연락했다 말은 잔치 연(宴)자 기쁠 락(樂)자, 잔치를 가지고  자기를 기쁘게 했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 이 홍포 입은 부자가 잘못 살았느냐? 잘못 산 것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가장 바로 살았고 옳게 살았고 또 지혜롭게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실 때에 다 지음받은 그만물들은 각각 그 자체를 위해서  살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피조물은 다 개체 개체로  되어 있고 또 다 그것이 모두 다 독립성을 가지고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 주관하는 것은 저희의 생명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잘 안 들으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생명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식물이든지 동물이든지 무슨 곤충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모든 존재는  생명이 주관하고, 또 생명은 생명 그 자체를 위하는 본능을 가지고 생명은  역사하는 것이 무엇을 역사하는고 하니 생명 자기가 거처하고 있는 자기의 그  모든 형체를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들 속에는 생명이 있고 또  생명에게서 힘이 나오고 또 그 힘이 모든 형체를 잘 보호하고 또 아름답게  꾸미고 그것을 잘 성장시켜 나가고 그렇게 하는 그것이 다 모든 피조물들의  본능이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슨 식물, 풀 포기 하나라도, 또 풀 포기에 붙어 있는 그 잎사귀  하나라도, 또 버러지 한 마리라도, 짐승 하나라도 이렇게 보면은 다 자기를  호화롭게 만듭니다.

 이 자주색 옷과 이 고운 베옷을 가지고서 홍포 입은 부자가 자기를 아주  호걸스럽게, 아주 호걸 호(豪)자 아주 화려할 화(華)자, 자기를 아주 호걸스럽게  보기 좋게 꾸미고, 또 모든 것이 자기를 기쁘게 하도록 하는 그것을 일생 동안  했습니다.

 그러면, 일생 동안 한 그것이 홍포 입은 부자로서 잘못한 것 아닙니다. 그는  그렇게 사는 것이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 정상이 왜 정상이라 할 수 있는고  하니, 이런 식물 하나도 그 식물이 죽었으면 그 식물을 처박아 놓으면 처박아  놓은 대로 그대로 있지마는서도 그 식물에게 생명이 있는 한 그 생명은 자기가  가진, 힘을 발휘해 가지고서 어짜든지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그렇게 합니다.

 혹 여러분들이 그걸 거게 대한 시안을 가지지, 그, 눈을 가지지 못했을 때는  거짓으로 봤을지 모르지마는서도 듣고 나서 가서 새로 보면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 잎사귀를 어째 보면 그 잎을 보기 싫게 처넣어 놨습니다. 보기 싫게 처넣어  놨으면은 얼마 가다 보면 그 잎사귀가 어짜든지 자기 보기 좋도록 자기  편리하도록 자체가 강건해지도록 잘 자라도록 그렇게 꾸며 가지고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시골에서 농부들은 고것을 논리적으로는 그래 못 할지라도 다 알고는 있습니다.

'이거 모두 다 잎사귀가 다 모두 묻히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거 어찌됩니까'  이라면 '내비 둬라. 인제 오늘 밤 자고 나면은 모두 다 털고 일어설 것이다.'  과연 이튿날 아침에 보면은 털고 일어섰습니다. 또 '이거 이래 놨으니까 이게  무슨, 옮겨 놨으니까 날씨가 더웁고 이 마른 땅에서 이거 어찌되겠습니까?'  '괜찮다. 제가 살라고 애를 써서 뿌리를 박을 것이다.' '제가 살라고 애를 써  뿌리 박을, 뭐 그게 어째 그럴까?' 이치에 안 맞는 것 같지마는서도 그 이튿날  가서 뽑아 보면 벌써 살라고 거게서 새뿌리를 내 가지고서, 지금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뿌리를 만들어서 벌써 밤사이에 뿌리가 하얗게 내리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식물이 옆에 치여 가지고서 이렇게 눌리고 붙이고 이래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보기에도 그게 만일 사람 같으면, 사람 같으면 대단히 불편하겠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렇게 보여지는데 며칠 지나고 나서 보면은 어떻게 애를 썼던지 그  나무에서 좀 띄워 가지고서 좀 자유할 수 있도록 굽어질지라도 거게서 좀 자유할  수 있도록 그 간격을 두고서 이렇게 제가 서고 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또 나무와 나무를 이렇게 세워 놨는데 나무를 보면은 그들도 무언 가운데에  아주 다 정당성이 있고 다 그들도 다 그들대로의 법규가 있어 가지고서 서로  침략은 안 할라고 벌써 이쪽에는 나무가 가까이 있고 이쪽에는 나무가 없으면은  나무 없는 곳으로 가지가 뻗어 나가지. 나무 있는 곳에는 거게 서로 대이지  안하도록, 될 수 있으면 대이지 안하도록 이렇게 거리를 두고서 자라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고 곤충도 그러하고 동물도 그러합니다. 곤충들도 보면은 그것이  그저 그들도. 밤이 저들이 쉬는 곤충이 있고 낮이 쉬는 곤충이 있는데 낮에 쉬는  곤충은 낮에. 밤에 활동을 해 가지고서 자기의 모든 것을 먹고 마실 것을 준비를  하고 자기의 거처를 준비하고 낮이 되면은 그때는 쉬면서 자기를 단장을 합니다.

뭐 단장을 해서 참 별별 모양으로 자기를 꾸미고 자기를 깨끗게 하고 그래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이런 동물도 그렇습니다. 금수 같은 것도 보면은, 제가 얼마 동안 새를 길러  봤는데 새를 기른 가운데에 특별히 느껴진 것은 뭐이냐 하면은 밤에 떡 자고  나서 집에서 나오면은 제일 먼저 자기가 운동을 합니다. 자기 몸을 이래 털어  가지고서 날개를 털어서 이렇게 운동을 해 보고 이래 털고 이래 가지고 또 자기  몸에 무슨 묻은 티 그런 걸 없어지도록 털라고 애를 새고 또 그라다가 안 되면  자기 입을 가지고서 자꾸 그 털을 정리합니다. 부수수 한 것이 있으면 자꾸 이래  정리를 해서 깨끗게 만들고 또 안 되면 자기 발로 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그것을  깨끗게 만드는 생명 있는 생물들의 그 자체가 자체를 아름답게 꾸미고 단장하고  하는 그 본능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동물들도 그렇습니다. 모두 사람들이 말하기를 고양이가 낯을 씻는다 그렇게  말합니다. 네, 고양이만 낯 씻는게 아니라 뭐 사슴도 낯을 씻고 양도 낯을 씻고  소도 낯을 씻고 안 씻는게 없습니다. 그저 자기가 할 수 없는 데는 못  하지마는서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할라고 애를 씁니다. 고양이는 자기 발을  가지고서 이렇게 입에다 침을 묻혀 가지고서 온 몸을 닦고 얼굴을 닦고 그렇게  아름답게 꾸밉니다. 소 같은 것도 보면은 그저 일어나면은 한번 자기 몸을  운동해 가지고서 '내가 오늘 활동하기에 족하냐 이거 편리하게 되겠느냐' 자기  지체를 운동을 다 합니다. 이래서, 여게 모두 다 사람들 춤 춘다는 춤 추는 것이  사람에 게선 나오는 것도 있지마는서도 짐승에게서 나온 것이 많습니다.

짐승들이 이렇게 자기 몸을 위해서 운동을 하더라 춤을 추더라 하는 그런 것을  다 본받아 가지고서 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소 같은 거는 보면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혀로  닦습니다. 혀로 가지고서 자기 뭐 궁둥이도 닦고 자기 배도 닦고 옆구리도 닦고  등허리도 그저 혀가 자라가는 데까지는 닦아서 곱게 하고 깨끗게 할라고 하는  그것이 본능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들이 다 각각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은 동물대로  개별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식물은 식물대로 개별 생명을 가지고 있고 모두 개별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마다 그 생명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데, 그 생명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느냐 하면은, 자기라는 그 내부가 있고 외부가 있는데, 그 자기라는  그 내부를 잘 정리해서 내부가 바로 잘되도록 그렇게 하고, 또 그 다음에는  외부, 외부를 정리해 가지고 잘되도록 하고, 외모를 그것을 잘 정리해 가지고서  그것이 잘되도록 그렇게 합니다. 그라다가 생명이 떠나 버리면 그만 뭐 다른  사람이 발질로 찬다 해도 그것도 모르고 또 아무데 쳐박아 놔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한에는, 만일 그것을 어데 가둬 놨으면 생명이  끊어지기까지는 나갈라고 애를 쓰다가 나갈라고 애를 써도 나가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 안에서 유지하고 할 수 있는 그런 방편으로 연구를 해서 얼마 지나고  나면은 고 안에서 살 수 있는 그런 본능화되고 또 그렇게 모든 것이 개조 개량이  돼 가는 것을 우리가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홍포 입은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홍포 입은 부자가 타락한,  타락한 자이기 때문에, 타락한 자는 뭘로 죽었느냐 하면은 원죄로 죽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원죄는 뭐이 원죄냐 하면은 자기중심이 그것이 원죄입니다.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가 개별적으로 원둥치에서 끊어져 나온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다른 모든 만물과 달리 지음을 받았습니다. 달리 지음받은 것은 만물은  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성대로 이렇게 속성의 기능을 바탕 삼아 가지고서  그대로 지으셨지마는 사람은 특별히 하나님의 모형으로 지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서 그 사람이 살기를 어떻게 살도록  만드셨느냐? 하나님은 원형이요 사람은 모형입니다. 그러기에 독립성을 가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소속한 것으로서 만들어서 모든 피조물 중에 특수  창조물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속했고, 하나님에게 속했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고,  또 하나님의 그 역사, 하나님의 그 움직이는 그 움직임이 자기의 움직임이 되고,  또 하나님의 움직임 그 움직임이 곧 자기의 움직임이 되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으로 살고, 하나님으로 움직이고, 하나님으로 또 모든 비판과  평가를 가지고. 또 하나님으로 존귀하게 되고, 하나님으로 영광스럽게 되고.

하나님으로 기뻐하게 되고, 또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모든 형상이  나타나고 당신의 모든 움직임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니서 모든 피조물은 아주  간간접으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라 하는 것을 나타내는 그런 존재로  지었지마는서도 사람은 달리 하나님의 그 온갖 원형을 가장 잘 정확하게 그렇게  나타내도록 지음받은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서, 타락하기 전에 아담 이 어떻게  모든 그 피조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지었느냐? 그걸 지었을 때에 하나님이 보시고  잘됐다 그랬습니다. 그거는 아담이 지은 것 아니고, 보기에는 아담이  지었지마는서도 그 이름이 나오기는 어데서 나왔느냐 하면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담을 통해서 그렇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했습니다.

 또, 그들은 벗었어도 몰랐고. 또 아담과 해와가 있었지마는서도 아담도 해와도  서로 이렇게 있기만 있었지 아담도 하나님에게 속했고 해와도 하나님에게  속했고, 아담도 하나님만 소망했고 해와도 하나님만 소망 했고 하나님으로  인했기 때문에 그들이 벗은 거 모릅니다. 그들이 만일 누가 죽인다 해도 죽이는  거 모릅니다. 죽이는 거 아는 이는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알아서 막았으면  막았지 그들이 무슨 독립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도록 그렇게 지음 받은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마치 어떤 동물이 개별의 생명을 가졌으니까 생명체인데 그 생명이  자기의 안에 있는 힘이나 외형의 그 형체인 몸이나 그런 것을 위해서 노력을  해서, 생명은 그것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그것들은 생명을 위해서 있고 생명을  인해서 있도록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의 정상이요 본성인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으로 생명을 삼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고  하나님으로 소망 삼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고 고렇게 되도록 사람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독립 존재가 아니고, 독립 존재가 아니고 독존성 가진  것이, 아니고 전부 하나님께 소속해서, 하나님은 창조주요 이는  피조물이지마는서도 창조주는 생명으로 되어 있고, 창조주는 그 주인으로 되어  있고. 이 피조물인 사람은 그의 성전으로 되어 있고, 그의 지체로 되어 있고,  그의 몸으로 되어 있고. 그의 것이 되어 있고, 그의 형상이 되어 있도록 요렇게  해서 참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천군 천사에게도 볼 수 없는 그런 존재로 지음을  받았는데, 그것이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고, 하나님께서 당신 위해서 당신이, 생명이 역사하는 것처럼 당신이 당신을  위해서 모든 사람들을 오만 면을 다 이렇게 관리하시고, 또 나쁜 것 있으면  치료하시고, 또 이렇게 약한게 있으면 그것을 길러서 자라게 하시고, 이  하나님이 그 생명의 주가 되셔 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머리시요 또  우리는 몸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에베소서 1장 12절에 보면은 '우리가 바라는 바 그의 영광의 찬미가 되려  함이라' '전부터 우리가 바라던 바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뭐이 소망하는 것이냐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는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소망으로서,  그러면, 그렇게 하는 것을 우리가 하는 것 같지마는서도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게 할라고서 애를  씁니다. 이래서, 타락한 그것이 하나님에게 속해서 창조주와 피조물이 그렇게  한몸이 된다는 그것도 우리 지식으로써는 논술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되어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하나님은 몸이시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이니'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하는 일이 뭐이냐 하면은 '만물 안에서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충만이니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사람 되어 가지고서, 당신이 세우신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사람 되어 오셔 가지고서 신인 양성 일위로서 이렇게 역사하셨는데, 그분이 신인  양성 일위로서 신성이 인성을 붙들고 완전을 이룬 것이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완전한 사람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흠이 없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또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입니다. 그래서 '주는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덧입게 하기 위함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타락해서 그만, 하나님 한 분에게 속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 영육으로 지음받은 인생은 그의 몸이  되어져서. 창조주는 머리요, 그는, 피조물은 몸이 된 이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서, 순전히 그렇게 관계 가지고 있을 때가 어떤 때인고 하니 타락하기  전에 전부, 하나님 한 분의 것이 전부 저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저의  기쁨이요, 하나님의 또 평강이 저의 평강이요, 하나님의 힘이 저의 힘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지혜이요, 하나님의 소망이 저의 소망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 영광이요,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을 배암이 와 가지고 그 사이를 쪼개 놔 버렸습니다. 쪼개  놓기를 어떻게 쪼개 놨는고 하니 '네가 왜 독립할 수 있는데 네가 뭐 거기서  속했느냐? 네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으면 네가 이제 독립성을  가지게 된다. 개체의 개성을 가지게 된다. 이래서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 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중심으로 주체로 삼아 가지고서 모든 것을 당신에게  끌어 붙이고 당신에게 소속 시킬라고 이렇게 하는 거와 같이 네가 이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면 장 그 생활, 거기 소속한 그 생활 하지마는서도 네가 일단  하나님의 말씀을 딱 어기고 뚝 떨어져 나오면 네가 이제 개체가 돼지고 독립성이  돼 가지고서 모든 선악을 구별하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네 개체 네 중심으로  모든 것을 구별하고 하도록 그렇게 할 수 있는 걸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그렇게 먹지 말라 한 것이다.' 요 마귀는 고 말이 참, 그 말은 참 말이요 바른  말이오. 바른 말인데, 그 연약성을 이용해 가지고서 그것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동기와 목적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서 자기가 개체로 독립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고 목적을 가지고해서고 목적 달성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따 먹은 이후로부터 그 다음에 처음에 있는 것이 뭐인고 하면은 이제  아담에게 무엇을 먹일라고 이래서, 그전에는 그전에는 해와가 아담을 위할 줄  모릅니다. 아담이 해와도 위할 줄 모릅니다. 해와도 하나님만 위할 줄 알고  아담도 하나님만 위할 줄 알았는데, 떡 떨어져 나오니까 이제 해와가 그때부터  아담을 위할라고 생각한 것은, 아담을 위할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중심이 뭐이냐  하면 자기를 위해서 아담도 자기 같은 자가 되어져야 되겠다 하기 때문에  위할라고 그와 같이 한 것입니다.

 이라니까, 그때부터 독마체가 되었고 독립 생활 하게 되어져서 처음에 그 일  했고. 그 다음에는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해서 무화과 나무를  엮어서 치마를 해 가지고 입었습니다. 그때부터 이제 자기가 자기를 보호해야  되겠고 자기가 자기 일을 해야 되겠고 자기가 자기 동무를 만들어야 되겠고 자기  부하를 만들어야 되겠고 자기에게 소속한 것을 만들어야 하겠다 하는, 이제는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그 독립성을 가지게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보호도 자기가 자기를 보호해야 되지 하나님이 보호해 주지를. 보호해 줄  것이 벌써 믿어지지를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또 보호도 안 해 주십니다.

 그것이,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에 눈 띄인 것이 그 눈입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은 자기가 자기중심의 눈이 띄였고 자기 위주의 눈이 띄였고 자기 독립성  개별성 이것의 눈이 띄여져 가지고서. 첫째는, 나는 보호가 없다. 날 보호해야  되겠다.' 선악과 먹기 전에는 자기 보호에 대하러 거는 상관을 안해. 그런 거는  몰랐어요. 보호가 뭐, 죽느냐 사느냐, 뭘 태워 죽인다 하더란대도 거게 대해서  아무 모릅니다. 아무 생각이었습니다. 없는데, 다만 이제 머리되신, 성명된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든 걸 다 책임지고 이래 했는데, 완전히 거게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자기가 독립적으로 스스로 독존성, 독립성 그것을 하지 안하면 안  되는 그런 자로 이렇게 그만 완전히 변질돼 버렸습니다. 그것이 원죄요 그것이  타락입니다.

 이랬는데, 뭐 시간이 없으니까, 이랬는데, 주님이 이렇게 타락한 것을  도성인신해 가지고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공로를 베푼 것은 뭣때문에  그렇게 했느냐? 베푼 것은, 이와 같이 모두 삐뚤어진 거 삐뚤어진 거 이것을 다  정리하러 오셔서 삐뚤어진 것을 다 대신 담당해 가지고서 그것을 없에서  삐뚤어진 거 없는 자를 만들었고, 그게 제일 외부이고 그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자를 만든  것이 그것이 칭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한 그것이 없었는 것을  당신이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이 일을 대행해 가지고서 이 잘못된 모든 것을  다 정리해서 하나님에게만 완전 피동 그 분에게만 피동으로 사는 이 공로를  베풀어 놓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만 완전 피동되도록 하려는 이런 자로  대속을 하시고  이제는 그 두 가지를 해 놨으니까 이제는 하나님 하고 딱 요래 하나로 아주  결합만 되면 되겠다 해서 마지막에는 화친의, 화목의 화합되는, 하나님과 이렇게  결합되는 화합으로써 새생명, 새생명 얻었다는 말은, 이제는 하나님으로 살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 돼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이렇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됐습니다. 그래서 골로새 3장에도 보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도 그 영광 중에 같이  나타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이 하나님이 생명이 되시고 거게 모두 다 소속해 가지고서 이렇게 살아서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몸으로 삼아 가지고서 우리의 몸이 얼마나 아름답든지  아름답게 만들어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이 보고서 '영광이라 영광이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모든 만물들이 보고서. 우리 자체를 보고서  '영광이라'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실라고 하나님이 우리와 다시  새결합을 한 것이 이것이 화친의 대속이요, 또 사죄와 칭의는 화친을 할 수 있는  모든 방해되는 것을 다 치료해 가지고서 준비 공작을 해 가지고서 마지막에  결말은 그 화친을 이룬 것이 주님의 대속인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머리가 돼서 가지고서 우리를 당신의 몸으로 만들어 가지고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한다 그 말은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 보고서 우리 보고서,  하나님을 '하나님의 영광이라. 참 하나님은 저런 분이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그 아름다움을 보고서 놀라도록 마치 이 홍포 입은 부자가  좋은 옷을 입었을 때에 다른 사람이 보면은 그 몸을 화려하게 보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자체로 되어 있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 몸이 아름답게 되어지는 그것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몸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만들어 가지고서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몸으로 만들어 가지고 우리를 통해서 당신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모든 피조물들에게 갈 때에 피조물들이 깜짝 깜짝 놀랠  만치 참 감사하고 기뻐하고, 아, 이렇게 감사 하다고서.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모든 피조물 모든 것들에게 가 가지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해 주고 그들에게 잘못된 것을 치료해 주고, 예수님께서 세 가지 대속을 한 거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치료할 것을 치료해 주시고 그들에게 또 부족한 것을 다  건설해 주고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온전함에 자꾸 결합이 되어지도록 이라니까  그분들이 하나님의 몸인 성도를 통해서 많은 은택을 입었고 많은 필요의 것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에 '감사하다' 이라니까 이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자체가 아름답게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하나님이 곱게 되고 아름다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 양원 목사님을 가리켜서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그런 책이 나왔는데.

그 손 양원 목사님이 그렇게 두 아들로 인했을 때에 그분이 사랑의 사람으로서  나타냈기 때문에. 사랑의 사람으로 나타냈기 때문에 손 목사님을 인해서,  하나님의 어느 지체가 됐는지, 하나님의 입이 됐는지 하나님의 뭐 귀가 됐는지  하나님의 손이 됐는지 그거는 모르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손 양원 목사님에게 그  하나님의 지체 중에 어느 지체가 되게 했든지 그 지체는 사랑의 지체가 돼  가지고서 '아, 참 사랑이라'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을 사랑으로써 옷을 입힌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으로 그렇게 옷을 입혔고, 또 다른 무슨 모든 성도들 다  그러합니다. 요셉이라든지 뭐 다니엘이라든지 아브라함이라든지 욥이라든지  모두가 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소속한 자로서 그들이 사랑의 사람이 됐다, 인내의  사람이 됐다. 믿음의 사람이 됐다, 관용의 사람이 됐다. 봉사의 사람이 됐다,  희생의 사람이 됐다 이렇게 모두 다 되는 그것으로써, 그것이 하나님의 몸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에게 아름다운 옷을, 홍포 입은 부자가 아름다운  옷을 지어서 자기를 호화롭게 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사랑의 사람이 되고, 믿음의 사람이 되고, 또 담대의  사람이 되고, 견고한 사람이 되고, 그렇게 요동되지 일는 불변의 사람이 되고  이게 다 전부 참 영광스러운 것이요 아주 광채나는 일인데, 이렇게 우리가 우리  자체가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주님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지체이기 때문에, 내가 사랑의 지체가 되면  이제 하나님께는 사랑의 옷을 내가 입힌 것이 돼집니다.

 그러면, 내가 입힌 것이 돼지는데. 그 일을 누가 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신 하나님이 제일 주력하고 하나님이 주력하시는 데 주력이 이제 성령으로  나와 가지고서 성령으로 나온 그 주력이 진리로 나와 가지고서 그와 같이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주력이 우리에게 어떻게 올 수가 있었더냐? 올 수가 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의 역사가 우리를 붙들고 당신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할려고서. 당신을 아름답게 꾸밀려고 이 흥포 입은 부자가 그와  같이 지금 모든 걸 될 수 있는대로 나쁜 거는 자꾸 좋은 걸 입고 아름답게  꾸며서 몸을 단장하고 깨끗하게 할라고 이라고 또 기쁘게 할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그들의 타락자의 본능이라 그말이오. 타락자의 본능인데, 우리는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타락에서 다시 근본을 회복시켜 가지고서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라 그 말은 그 기업에 대해서 하는 면이요, 하나님의  신부라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 비밀의 참 애정의 두꺼운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또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면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움을 우리로 하여금 나타내서 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보여줘서 그들이  보고 '참 아름답다' 이렇게 '참 감사하다, 이는 참 영원히 찬양할 만  하다'그렇게 그들이 덕을 봤기 때문에 그래. 덕을 안 보면 그렇게 하지를 안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대속을 입어서  본지위를 우리가 회복을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근본 관계됐던 그 관계를 다시  우리가 복구했습니다. 복구했는데, 좀 다른 것은 뭐이냐 하면은 처음에 타락하기  전 아담은 변동될 수 있는 그런, 변동될 수 있는 그런 가능, 변동의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지마는서도 이제는 예수님께서 완전히, 변동되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변동되고 거역으로 말미암아 변동되고 하나님과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변동되는  건데, 이 떨어지는 것을 당신이 전부 다 대신해서 영원히 현재 과거  영원무궁에까지 그 세 가지 면을 완전히 이것을 완전 설정을 해 놨기 때문에  다시는 떨어질 수 없고 변동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었고 하나님의 몸이 되었고 하나님의 것이 되었고 하나님의  그 영광의 찬미가 될 수 있는 자로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우리들이, 어제 그 목사님도 말하는 그 말의  표시는 안 해도 그 말 하는 중심은 그런 것일 것입니다. '이제 주인이 완전히  바꿔져야 된다.' 과거에는 우리가 주인이었지마는서도 우리가 주인이었고,  주인이, 자기중심이라 말은 자기가 주인이라 말이오. 주인이었지마는서도 이제는  우리가 주인이 아니고 자존하신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라.

 그러면, 우리의 주인은 주님이 우리 주인이라. 그러면, 주님이 우리 주인이신데  그분과 우리와의 거리가 먼데 그 거리를 어떻게 결합할 수가 있느냐? 그 결합이  신인 양성 일위가 되셨는데 그 인성이 우리 사람이다. 그 인성과 우리가 연결돼  가지고 하나님과 완전 결합이 되어지는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의 머리가 되셔 가지고서 어짜든지 마치 누구든지  자기의 몸을 미워하는 자가 없고 어짜든지 자기 몸을 깨끗게 할라고, 아름답게  할라고, 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치료할라고 이렇게 애를 쓰고 이렇게 하는  그것처럼,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인성으로 인해서,  인성으로 인해서 연결이 됐습니다. 인성의 대속으로 연결이 됐는데, 그분.

그분이 그 연결을 가지고서 이래 연결됐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의 몸이  되었는고로 당신의 그 전지 전능의 그 전부의 힘을 다 가지시고, 당신의 욕망이  뭐이냐? 다른데 욕망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 욕망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하나뿐이오. 이러기 때문에 '영광의 기업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래 또  했습니다. '영광의 기업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러니까 우리의 기업은  당신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당신의 그 전부를 기울이셔 가지고서 우리를 온전케 하고 깨끗게  하고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해서, 우리 각자들이 뭐 손이 됐든지 발이 됐든지  이래서, 손이라면 손을 아름답게 또 꾸미고 발은 발대로 아름답게 꾸미고 또  눈은 눈대로 눈이 성하고 아름답게 하도록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주님에게  대속을 받은 우리들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다시 살아났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진리가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됐고 영감이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됐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피가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돼서,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됐으니  우리의 생명이 됐다 말이오. 생명과 힘은 같은 성질을 가졌습니다. 생명은 힘  뭉텅이가 생명이요 생명에서 거게서 발산돼서 발휘돼서 나오는 것을 가리켜서  힘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생명을 가리켜서 뭐 힘이라 말하고 또 영을 가리켜서 그렇게  말해서. 이 모든 이단들이 많이 나와 가지고 있는데 그 이단들이 필요합니다.

이단이 있는 것이 그 이단을 능히 해석하고 그 이단이 뭣 때문에 있다는 것을  그것을 확실히 분석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아직까지도 앎에. 지금고  면에는 미달되어 있다고 그렇게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단이 아니면 우리가  모를 것을 그 이단이 들어서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단이 들어, 이단이  보면은 사이비해서 옳은 것을, 진리의 정통에 선 사람들이 옳은 것을 빠쳐 놨을  때에 그들은 그 옳은 거 하나를 들고 나와 가지고 '이거 봐라' 자랑을 합니다.

자랑하면 우리가 다 평가적으로 옳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 저거 옳은 거  말하는 것 보니까 저게 옳은갑다' 이래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서 빠쳐놓은  옳은 걸 들고 나오고, 또 그들이 또 하나 뭣 들고 나오느냐 하면은 옳은 것의  정반대되는 것을 들고 나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걸 한번. 이단들이 왔을 때에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것은 저 이단에게 삐뚤어진 거냐 옳은 거냐 볼 때에 옳은  것 있으면 우리가 암만 이단이 말해도 '우리가 빠쳐 놓은 것을 저들이 그래  하는구나' 우리가 얼른 따라서 거머 쥐어야 되지 안 거머쥐면 안 됩니다. 뭐  내것 네것 그라면 벌써 거게도 내것 네것이라 하는 것이 있으면 헛일이오. 주님  한 분으로 생명 돼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 것이 돼질 때에 옳은 것이면 빨리 취할  것이고 삐뚤어진 거면 정반대. 삐뚤어진 거 반대적으로 우리가 나가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한 생명으로 우리 모두가 다 살고 있는, 우리 몸의 여러  지체가 있고 여러 세포가 있지마는서도, 그 세포마다 다 생명을 가졌지마는서도  한 생명입니다. 그 사람의 육체의 생명이 끊어지면 그 지체도 다 죽고 세포도 다  죽습니다. 한 생명을 가지고서 사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신 하나님.

자존자 창조주가 움직이시는 그 움직임의 그 움직임의 그 힘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한 힘이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도 한 분이시요 대속도 하나요 또  성령도 하나요 진리도 하나요 다 우리가 소망도 하나요 하나라 그렇게 말한  것이, 그것을 들어서 해석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주님에게 속해서 주님의 지체가 되고 주님 한  분으로 살아지는 이것이 되어질 때에는 하나님의 그 전지 전능 하신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그분이 우리 중에 우리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언제 그런 말 한번 한 일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의 우리요 나중의  내요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원수로 이렇게 하는 그것은  다 옛사람이 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다 한덩어리가 돼서 우리가 된다 우리가  된다. 우리가 되는데, 우리가 나중에는 내가 된다 내가 된다. 내가 되는데. 내  안의 나는 곧 그리스도 주시요 하나님이시다. 나 안의 내가 하나님이시다. 내  안의 내인 그분은 자존자시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내가 지음을 받았고 또 앞으로  그분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내가 움직이고 살게 된다.

그분의 모든 것은 내것이라. 그분의 것이 내게 와 가지고서 나로 하여금  충만해서 영원히 살게 되는데, 나만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분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중보자 돼 가지고서 그분에게 모든 것이 내게 와서. 내게와서  내가 그걸 얻어 가지고서 그 모든 것을 만물들에게 주어서 만물까지  충만해지도록 하는 이 중보자 되게 된 것이 우리들이다 하는 것을 그전에 많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명이 하나요. 생명이 둘 아닙니다. 생명이 하나요, 지혜가  하나요, 능력이 하나요, 소망도 하나요. 이러기 때문에, 이 모든 속성도  하나입니다. 뭐 속성이 여러가지 속성이 있지마는서도 그분의 속성이 우리  속성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은 원형이요 우리는 모형입니다  이런데, 여게서 제일 원수는 뭐이 원수냐 하면은 원죄가 제일 원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속하여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것이 되어졌을 때에  그때에 그 모든 무한한 능력이 나오고 생명 역사가 이루어져서 영광의 찬미가  되어지고 만물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지는 것이지 거게서 내라는 것이 나와  가지고서 내 개체가 나오고 내 중심이 나올 때에는 벌써 그거는 원죄의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끊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나올 때에 하나님이 끊어집니다. 자기가 아무리 좋은  부흥 운동을, 아무리 개혁 운동을 한다 할지라도 개혁 운동을 할 때에 자기가  부인되고 주님이, 마치 타락 전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아무것도 안  보이고 하그님만 보여지고 하나님께만 향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으로 자기의 전부가 되어져서 그분으로 인할 때에, 아무리 훌륭한 개혁  운동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역사해서 그 하나님의 힘이 쭉 자기를  통해 나와 가지고 나와서 이래 역사하고 그것이 모두 다 영광의 찬미가 되고  생명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거게서 이렇게 내가 이거 개혁 운동을 했다고서  내라는 그 개체의 개별 생명이 나올 때에, 개별 주체가 나올 때에. 개별 중심이  나올 때에, 그 개체의 자기라는 것이. 내라는 것이 나왔을 때에는 벌써 거게는  사망이요 하나님과는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목회하는 것도, 와 내가 오늘 아침에 이 말을 자꾸 이래 하느냐 하면은 이  말하는 것은, 우리 교역자들도 보면 자기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뭐인지  자기를 구별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원수인 자기가 들어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있고 원수가 들어서 목회를 할라고 하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말이오. 얼마 전에  다 주먹덩이 가지고서 주먹 가지고 지금 내밀고 하는 그게 다 전부 자기 아니오.

그게 다 마귀에게 속한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것이지 중생된 자기는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으로 나를 삼고 주님이  내 머리되시고 그분으로 인하여 내가 동하고 정할 그때만 그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하시지, 그러기 때문에 그게 뭐이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오신 것을 너희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알기를 원한다.' 그 능력이 뭐이냐 하면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한  그 능력이 내나 이차적으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내나 그  능력이 뭐이냐 하면 그 능력이 주님이 완성의 공로를. 대속의 공로를, 그 대속의  공로는 우리 완성이라 말이오. 우리 대신, 우리 대신해서 완성한 그 완성을  이루신 그 능력이 이제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주님이 이뤄 놓은 그 완성을  이루어 놓은 그 완성을 우리 개별들이 다 나눠 가지고서 우리 개별들이 또 완성  생애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능력이 왔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얼마 전에는 형체를 가르켰고, 형체 안에는 힘을 가르쳤고 힘  안에는, 지극히 큰 능력이 있다. 지극히 큰 능력을 받기 전에 사람들이 형체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형체 안에 있는 힘만 보고 사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은  다 자연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망 이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꿰뚫고 오지 못한다.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만 꿰뚫고 올라갈 수가 있다  하는 그것을 많이 말했지만 아는 사람은 알 거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데, 그저  알라고 자꾸 애를 쓰면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십니다. 그분과 연결이 되면  됩니다. 연결이 되면 돼요.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를 구별해서, 자기는, 자기는 있으나 없는 것 한  가지입니다. 있으나 없는 거 한가지라. 자기는 있으나 없는 것은 기능적으로는  없습니다. 기능적으로 없고, 존재적으로는 있지마는서도 어떤 존재로 있느냐?  그리스도의 지체로, 그리스도의 지체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 그리스도의,  피조물인데 창조주의 분자 된다 말이 아니고 피조물이면서 창조주 그분의 지체가  돼야 됩니다. 그분의 지체가 되어질 때에 그때에 그분의 모든 것이 와 가지고서  연결돼서 오는 이것을 비유해서 이제 접을 붙일 때에는 밑의 나무의 모든 것을  빨아 올려 가지고서 다 살게 된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가 빨아 가지고서 다  그분으로 살게 된다 이래서, 그분은 둥치요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원수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 내가 어떤 사람에게도  얼마 전에 그것을 말했습니다. 그분이 몸이 좀 약해서 그러는데, 말하기를 '네가  치료하는 것은 약으로도 치료 못 한다. 약으로 치료 못 한다. 못 하는 것은,  이것을 고쳐라. 이것 고쳐서 너 없는 데서 살아라. 네가 살아 있기 때운에  그놈을 지금 하나님이 사랑해서 죽일라고서 애를 쓰는 것이니까 너 없는 데서,  너를 부인해라. 너를 부인하고 하나님으로 너를 삼아라. 그러면 네 병이 뭐 당장  그 시간에 낫는 걸 네가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을 며칠 전에 내가 권면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게는 없습니다. 안 와서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가 원수인 것을 깨닫고,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지체인 것을 생각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하면 본능적으로 하나님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당신이 그 전지 전능을  가지고 역사하시고, 또 주님에게 우리가 소속하게 되면은 그 본능이 주님의  영광이 되도록 그렇게 하려는 그것이 본능적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역부로  건너다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그 본능으로 되어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죄를 우리가 회개하는 이것이 방향 전환인데, 기본 회개  이것은 했지마는서도 자꾸 우리가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분의 한 지체요 한 분자라. 내 영광은 그에게 있고 내  힘은 그에게 있고 내 소망은 그에게 있고 내 기쁨은 그에게 있다. 그분은 나의  전부다 하는 요것을 깨달아서, 그리스도의 지체된 것을 알고 그분의 그 모든  것이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하고 그분의 그 전지 전능이 나를 당신의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할려고 당신이 만들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가 하면은 그것이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방해하고서 자꾸 내가 한다 하면  벌써 그것이 방해되는 것입니다. 내가 뭣을 한다 할 때에 내라는 놈이 원수  중에는 제일 원수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바로 서야만 할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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