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1981. 10. 12. 월새

 

본문: 요한복음 3장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영도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있고 육도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영은 단번에 거듭나고  육은 수없는 차례를 거쳐서 거듭납니다.

로마서 8장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영으로 된 것이 사람인데, 영육이 한몫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영은 거듭나서 예수님을 믿으나 육은 아직까지 거듭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이 거듭나지 안했으면 그 사람이 참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영이 거듭나야 그 사람이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이 거듭나서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는다고 해서 육이 다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그 심신은 아직까지 거듭나지 못한 부분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위대한 신앙을 가졌지마는 육이 다 거듭난 것이 아니고 육은  거듭나 나가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불의한 것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말을 했습니다. 그다음에 15절에 8장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영이 중생돼  가지고 하나님의 양자가 됐기 때문에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었느니라  영이 중생되고 난 다음에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부르게 됩니다.

16절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 그러면 성령이 중생된 영과  함께 일합니다. 누구에게 증거하는가 자기 육에게 자꾸 증거를 합니다. 성령이  중생된 영과 함께 해 가지고 아직까지 중생되지 못한 우리 육체에게 증거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된다는 것도 하늘나라에  소망이 있는 것 온갖 증거를 성령이 중생된 영과 함께 우리 마음에게 증거를  해줍니다. 우리 몸에서 증거를 해서 마음과 몸을 중생시키려고 부활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다음에 23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그러면 우리 몸은 아직까지 구속을 받지  못해서 하나님의 양자가 안됐습니다. 그말은 구속받지 못했다 말은 구속을 입지  못했다 말인데 구속의 은혜를 입지 못한 것은 영은 구속을 입었다 했고 육은  구속을 입지 안했기 때문에 양자가 되지 못했다 하는 것입니다.

영은 위에 벌써 양자가 돼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데 육은 아직까질 구속을  입지 못해서 양자가 되지 안했다 이랬습니다. 양자 될 것을 기다리니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라 그러면 거듭나지 안하면 진리와 성령과 주의 구속으로  인하여 거듭나지 안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되지 못했으면 그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를 못합니다.

양자가 된 후에 비로소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영은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우리 육은 그것이 부활된 부분은 아버지라고  부르고 부활되지 안한 그것은 아버지라고 부르나 그저 하나의 따라서 그렇지  속에 아버지로 그렇게 인정적으로 부르짖는 그 도수가 다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말은 같고 지식은 같아도 그 정도는 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영은 주님의 구속을 입어서 진리와 성령과 주의 구속으로  더불어 살려줌을 받았습니다. 살려줌을 받아서 주의 구속에는 사죄 칭의 새생명  받아 주의 구속 입는 것이고, 또 진리와 성령으로 더불어 연결이 돼 가지고  중생되는데 영이 중생됐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인정해서 본능적으로  부르게 되었고 예수 믿기 시작하였고 믿고 난 다음에 그의 마음과 몸의 요소들이  중생되야 부활이 되야 된 것만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그를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은 중생됐으나 육은 중생되지 못한 부분이 있고 영이 중생된 후에  하나님의 아들 양자가 되어서 본능적으로 아버지라 부르고 또 육은 중생되지  못한 것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를 못하고 또 그는 하늘나라를  보지 못합니다. 육이 거듭나지 못한 것은 육은 보지 못합니다.

하늘나라가 어떤 사람에게는 이 보이는 세상보다도 더 확고히 믿어지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하늘나라가 없다고는 안하고 있는 줄 알기는 알면서도 하늘나라를  인정하는 것이 빈약합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과 고기덩어리에 하늘나라를 본  요소는 적고 보지 못한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가 있는 것을 인정하는 그 차도가 심합니다. 어떤 사람은  중생이 되어서 그 속에 영으로 안믿을래야 안 믿을 수 없고 하늘나라가 있는  줄로 인정이 되고 인정이 되나 자기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참 하늘나라가 있나  없나 이렇게 흐미해지고 이런 것은 중생만 되고 영만 중생되고 이 심신이 중생이  하나도 안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차차 그것이 주님의 역사를 통해서 이  심신으로 된 육이 중생이 되어지면 중생되는 그대로 하늘나라가 보여지게 됩니다.

그러면 중생이 다 되면 하늘나라가 환하게 다 보이고 중생이 영만 중생했지 이  심신 이것이 중생 곧 주님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받지 못한 자는 안믿을래야 안  믿을 수 없이 믿기는 믿지마는 하늘나라를 부정할라 해도 부정이 안되고 또  하늘나라를 인정하기는 인정하는데 자기 마음에는 자꾸 의심이 가득히 들어오고  하늘나라가 확실히 믿어지지 안하고 그거는 심신이 중생되지 안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고 그러므로 중생되기 전에는 하늘나라를 보지 못합니다. 또 중생되기 전에는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로 본능적으로 불러지지를 아니한다, 또 영은 중생했으나  육은 중생 아니할 수 있다. 또 영이 중생되고 육이 중생되데 육의 몇부분만  중생되고 남은 부분은 중생 안 될 수가 있다. 육은 한꺼번에 다 되는게 아니고  부분적으로 되기 때문에 중생된 부분도 있고 중생되지 아니한 부분도 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되고 육이 중생이 되면 중생된 고것은 양자가  되었고 중생되지 안한 것은 양자가 안됐다. 양자된 것만치 하늘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고 양자되지 안한 것만치 하늘나라는 가리워져  보이지 안하고 또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것도 본능적으로 부르지 않고 의심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거듭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거듭난 것 아닙니다. 거듭나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가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로 안하여 거듭나게 되는데 거듭나게 할 때는 무엇이  들어서 거듭나게 하는가? 첫째는 예수님의 피공로와 그 피공로를 인한 우리에게  접선된 진리와 또 피공로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접선이 돼 가지고  거듭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진리는 우리와 원수가 되어서 우리를  정죄합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진리는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이 됩니다.

예수님의 피공로가 있기 때문에 이 진리는 우리는 정죄할 수는 없고 그거 다  지나갔기 때문에 정죄는 못하고 이 진리는 우리에게 복음이 됩니다. 우리를 돕는  구원이 됩니다. 또 예수님의 이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와 원수되어  있지마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공로와 진리와 하나님이 우리 영을 거듭나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는데 거듭나게 하는 건 저걸 제일 처음에 거듭나게 단번에 거듭나게 되고 이  심신은 그 후에 거듭나게 되는데 이것은 한꺼번에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를 거쳐서 거듭난다. 거듭난 것만치 하늘나라를 볼 수 있고 거듭난 것만치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거듭나지 안한 것은 모른다.

그러면 거듭나는 그것이 이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그것이 영은 거듭나서 영은  거듭나서 구원을 받았지마는 육은 거듭나지 안해서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부활은 끝나. 마지막에 죽었다가 부활하는 그것은 다 받습니다. 받으면  예수님 재림 때에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은 죽기 전에 구속받은 것과 죽고 난  다음에 부활받는 거는 다릅니다. 죽기 전에 부활받는 부활과 죽었다가 부활받는  부활은 다릅니다. 죽기 전에 부활받는 것은 그 기능이 부활받고 죽고 난 다음에  부활받는 것은 그의 형체가 부활받습니다.

이러니까 중생도 했고 부활도 했지마는 그 사람이 하늘나라에 실력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죽기 전에 부활받는 그 부활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능 부활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문제는 죽고 난 다음에 부활 그것은 예수님의 공로만 하는 것이지  우리 노력에 상관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는 그 부활은  우리가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기본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기 전에 이 심신으로 된 육이 부활받는이것이 우리에게는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영이 중생하는 것도 우리는 애쓸 필요 없습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고  영이 중생되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은 왜 영 중생도 하나님 혼자 중생을  시켰습니다. 중생할 때가 되면은 중생시킵니다. 그러면 중생할 때에는 어떤  사람을 통해서 중생하도록 작정한 그대로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설득을 시켜서 정복을  했다고 성공되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첫째 전하려는 것은 안믿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그 사람을 중생시키는 것이 첫째 할 일이요, 그러면 중생시키는 것은  하나님일 중생시켜서 되지 안했는데 내가 중생을 시키려고 한다고 중생되는 것  아닙니다. 중생할 시기가 됐으면 그 사람을 통해서 중생시키기로 작정한 그대로  그 사람이 가서 전하면 중생이 됩니다.

그러면 중생된 사람이 아직까지 부름을 받지 못해 가지고 믿지를 못하는 사람  있습니다. 속에는 중생이 됐지마는 그러면 그 사람을 또 우리가 전도를 하는 그  전도를 통해서 그 사람이 그 중생된 영과 성령과 우리 사람과 합해 가지고  삼합이 돼 가지고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중생된 그 영이 가지고 있는  육이 중생을 합니다. 그게 조금 중생되면 비로소 예배당에 나옵니다. 예배당에  나온다는 것이 중생되지 안하고 마귀가 보내서 나오는 것 있고 또 그렇지 않고  중생돼 가지고 나오는 그게 있는데 나오면 그게 끌려서 나오면 벌써 중생을 받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중생하는 것이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인데,  영이 중생도 우리는 관심 가질 필요가 없고 육의 죽었다가 부활하는 이 거듭  살아나는 것도 우리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다만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할 것은 어떤 것인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할 것은 우리의 심신이 중생되는  것입니다. 심신이, 다시 말하면 부활하는 것입니다. 심신이 구속받아 가지고  양자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신이 양자가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양자가 되는가? 주님의 부활로  인해서 우리가 부활하는데 그 시기는 언젠가? 주님이 부활하신 그 부활의 주일을  주신 것은 이 주일은 우리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때도 신령한 이스라엘에게 관한 영생에 속한 일, 완전에 속한 일,  다시 죽지 안하는 일, 이런 역사는 안식일 지킬 때에도 이 역사는 어느날  했습니까 이 역사를 어느날 했습니까? 월요일 했소 화요일 했소 수요일 했소  목요일 했소 금요일 했소 토요일 했소 어느날 했습니까? 주일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도 새생명이 속한 역사는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안식일  다음 이레 중 첫날 했습니다. 거기 이레라 말은 천지 창조를 근거해서 첫째날  둘째날 마지막 일곱째날 그 숫자로 말한 것,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요. 이레 중  첫날은 일곱째날 지나고 난 다음에 그다음의 것입니다. 첫째날 둘째날 우리 말은  월 화 수 목 이러지마는 그거는 귀신 섬기는 날짜입니다. 귀신 섬기는 날짜인데  모든 사람이 그래 알기 때문에 그래 말하지마는 월요일 말하는 거 아니고 천지  창조 둘째날 그걸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수요일을 가리켜서 삼일예배라, 또 금요일을 가리켜서  오일예배로 이렇게 말을 하날 일반들이 알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거는 모르는  자에게는 말해봤자 오랑캐 말이니까 부득이 그들이 상식하는 대로 수요일이라  금요일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심신으로 된 육이 거듭나는 데에는 시기는 언제입니까?  어느날이요? 주일날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을 주장은 못합니다. 이  주장하면 반대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싸우지 안하고  그들도 깨달아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요, 지금은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충돌하지 안하고 내비뒀기 때문에 자꾸 이게 번져 나가서  지금은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는 그걸 이단이라고 자꾸 말하는 것은 소수입니다.

벌써 거의 가 되 가버렸소. 거의 다 되고 있습니다.

미국에 간 (최순직) 목사님도 그분이 저를 따라다니며 은혜를 받는 분인데 대한  신학교 그때 자기 장인 죽고 난 다음에는 잠깐동안 그 교장으로도 있었고 총무로  있었는데 교수로 있고 그분이 날 말해서 내가 강의를 얼마동안 좀 해 주고  그다음에는 오라 해도 내 안 갔습니다. 내가 안 가고 난 다음에는 그분이 나를  반대해서 왜 반대했느냐?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그 사상을 받아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 가르칠 때에 내 밑에 있는 학생들이 몇이  거기 가 있었는데 그 학생들과 대립이 되어서 서로 변론이 됐습니다.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 것이 발원돼. '왜 지금 교수님은 그렇게 말합니까?' 이래 가지고  반대가 됐었습니다. 전적 날 반대했소. 반대했었는데 그분이 미국 갔습니다.

미국갈 때는 자기는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는 그 교리를 지금 세워보려고 그  연구차로 간 줄로 압니다. 갔는데 가서 봐야 접촉을 해야 그들- 그 미국에 있는  대대학 박사는- 그 변론에 대해서, 변증에 대해서 저 밑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얼마 전에는 사람을 일부러 보내서 그  신학, 미국 가 지금 신학교를 경영하고 있는데 거기 교수로 있는데 일부러  그분하고 또 나는 몰랐는데 내 뒤에서 배우던 그분하고 두 분이 '아무래도 이  백목사님을 청해 와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일부러 사람이 나와서 보름 동안만  와서 좀 강의를 해 달라 하는 그걸 말을 했었습니다. 그 제가 허락을 안  했습니다. 제가 거기 갈 만한 건강이, 왜? 내가 건강없는 것 아니요.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안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서 거석할 터인데 꼭 와 달라고 이래서  나는 미결로 지우고 안 한다고 하고 그리고 서로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중생, 영의 중생의 범죄에 대해서 아마 거의 다 알게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또 이 육일에 말하는 것은 그들이 또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여러분들만 믿어 가지고 그대로 잘 알고 요리 알고 어째 됐든간에 몸의 요소가  다시 살아나야 된다는 그것은 구속을 받아야 되는 건 성경에 명문되어 있기  때문에 믿지마는 이 구속은 주일날 구속받는다. 이 날자로 정하는 것은 이것은  사람들이 반박을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말, 주일날만 이 심신의 요소가 구속을 받아 부활한다 중생한다 나는  그렇게 믿지마는 여러분들에게 내가 그렇게 내가 주장을 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나는 고렇게 믿소. 주일날 이거는 부활한다. 주일날 그러기 때문에 이레 중에  제일 중요한 날이 주일날이요, 주일 중에 예배보는 시간이 중요하다. 이때에  부활해야 되지 다른 데는 부활하기 어렵다.

그 부활을 하려면 어느 정도 해야 부활하느냐? 그것은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27절에 10장 27절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했습니다. "그리하면 살리라" "영생을 얻으리까"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영생은 영의 영생을 말합니까 육의 영생을  말합니까? 영의 영생은 벌써 했습니다. 됐습니다. 녜 육의 영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은 영생을 얻으리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이러니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몸같이 하라 네몸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녜 이러니까 이것이 산다 영생한다  그러면 산다 영생받는다 하는 이것을 영을 말한 게 아니고 육을 말한 것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녜. 영을 말했는지 육을 말했는지 이렇게 알리라  했는데 그것은 영을 말한게 아니고 육을 말한 것이라고 그렇게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누가 대답해 보십시오. 녜 두 사람이 다 백점 대답을 했습니다.

이 영생 얻는 것이 인간의 노력이 들어가 가지고 노력의 댓가로 이제 영생을  얻는다고 했으니까 영의 중생은 아닙니다. 알 수 있지 안해요? 영의 중생은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영의 중생은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면 육의, 육이 영생하는 육이 영생하는 육의 요소가 영생하려고  하면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육의 요소가 영생될 수 있습니까? 녜 전부를 다 해야  육이 부활한다 그말입니다. 이거 다 하기가 주일날 다 하기가 제일 쉽습니다.

주일날은 딴 거 다 제거해 놓고 이거 위해서 다 기울일 수 있소. 주일날도 못하는  그거 다른때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러면 주일이 아니라도 특별히 무슨 집회를 한다든지 어짜든지 여기는 우리가  주일날 그날이 제일 쉽고 이러나 또 말씀하시기를 다 하면 된다 했으니까  주일날이라도 다 하면 되겠지요. 다 하면 되지요. 그러나 우리가 주일날 제일  되기 쉽지요.

이러니까 우리 육체의 요소가 부활되는데는 마음 목숨 힘 뜻 다해야 된다 요게는  고렇게 말했고. 그래야 고게서 육의 요소가, 심신의 요소가 부활돼서 영생을  가진다 그말이오. 부활된건 벌써 영생입니다. 영도 영생이요. 이 육도 부활된 것은  진리와 성령과 주의 공로로서 이렇게 연결이 딱 된 고 요소는 살아났기 때문에  요거는 죽지 안해.

이런데 중생된 영이 범죄해. 범죄하면 죽지. 이것은 너무 그 목사들이 그  신학자들이 너무 천국에 거리가 멉니다. 너무 천국에 거리가 멀고 있소. 이걸 말  안하는 것은 쾅 말하면 그들이 반대를 이래 하다 보면은 너무 반대해 놓으면  뒤에 따라가기가 싫고 이렇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은 나중에 따라오지 못한다  그말이오. (박은석)목사 저런 이는 속으로만 그렇지 중생된 영이 범죄했다 저런  소리를 지금 못한다 그말이오. 앞으로 지금 왜 너무 대립을 해놨기 때문에 이럴까  싶어서 말을 안한 것이지 자꾸 그 말을 하면은 그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 되고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내가 옳다는 것은 나타나고 아무것이  말이 옳게 말했다고 하는 내 명예는 올라가고 나중에 그 고치게 되면 그분이  나는 유명해지지마는 실은 그 사람들이 돌아오게 하는 데에는 도로 방해한 일이  됐기 때문에 주님은 기뻐하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것은 내 명예욕이나 나를 위해서 도로 복음을 가룬 것이 되기 때문에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해서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 안한다 그 큰소리  하면은 나는 가만히 있고 안그런, 안그렇다고 확신이 없다고 할만치 스스르르 그  모가지를 숙이고 이래 거석하고 나참해지니까 그 사람들 그 범죄한다 이런  주장을 하다가도 대개 싸우지 안하고 이래 저거끼리 가만히 이러니까 저 사람들  알송달송하는갑다 이러니까 내가 알송달송함 같이 이러니까 자기도 알송달송  이래 된다 말이오. 내가 아니라 하면 저거는 또 그거라 이럴 거라 말이오. 그거  없이 그래 되면은 저 사람들이 알송달송하니까 '야 한번 생각해보자' 자꾸 이래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들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이 교리에  따라오기가 쉽도록 자기들이 연구해서 된 것만치 따라오기 쉽도록 이래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분들이 만일 그 논문을 써내면 나는 반박 논문을 쓸 수밖에 없소. 왜  그들이 논문을 써 냈는데 내비두면 안되기 때문에 반박 논문을 써도 내가 쓸  때에는 알송달송해서 요런가 조런가 모르는 사람이 거서 연구제목이 되어지도록  내가 고래 씁니다. 왜? 돌아오기 위해서.

그러기에 자기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자기를 생각하고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자기가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똥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어찌 되든지 하나님의 뜻만 이루려고 애를 써야 되지 자기 명예  자기 취미 자기 영광 자기 권위 자기 위신 자기 유명 이런 것 같고 하나님도  나타낼라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다 도적이요.

(한상동) 목사님의 전기를 나는 시력도 그렇고 또 그 읽을 힘이 적어 그래서 내가  누구에게 읽어보라 했습니다. 그 읽어보라 했어. 어떤 반사 선생에게 읽어보라  했어. 좀 읽어봐라 오면 내가 자꾸 그런 걸 읽힙니다. 읽어봐라. 그 읽는데  마지막에 보니까 (한상동) 목사님 전기에 유언할 게 없습니까? 하면서 목사님들이  모여 가지고 유언을 해 달라 하니까 그분이 말하기를 '나는 가도 하나님이  계시니까 문제가 없습니다. 이 일은 다 하나님이 하셨지요. 하나님이 하셨는데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것으로 해서 이런데 나는 중간에 내가 한 것  같이 다른 사람들이 인정했으니까 나는 도둑놈이지요' 고 말 한마디가 그가  성도의 참 생활한 것이 분면합니다.

하나님이 혼자 하셨고 하나님의 것으로만 했는데 사람들이 내가 한 것같이  인정을 하게 됐으니 나는 하나님 혼자이신 것을 내가 한 것같이 나는  도둑놈이지요. 나는 도둑놈이지요. 하는 것을 말한 걸 거기 기록을 했습니다. 거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껍데기로 듣는지 알맹이로 듣는지 몰라도 그말은 참  자기가 진실된 깨달음에서 마지막에 유언으로 말한 것입니다.

유언 가운데 그 말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돼. 이런데 거듭나는  데는 여러분들 요거 아십시요. 거듭나는 데는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이렇게 다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해 가지고 하나님 좋아한다  말이오. 다해 가지고 하나님 좋아해. 다해 가지고 하나님 좋아하는 요 기회에  접선이 되어서 이 심신의 요소가 부활됩니다.

또 다른 데는 뭐라고 말했소?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승리의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라 말이오.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주겠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겠다 그 무슨 말입니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안하니까 이 거듭났다 말  아니요? 거듭나는 거기도 거듭나는 방편이 자기의 전부를 다해서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을 다 기울여서 충성하라 내나 다하라 말이나 꼭같은  말입니다.

또 다른 데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말하기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그 속에 영생이 없느니라" 하나님과 인간과 원수와 모든 것을  사랑하는 자가 전적 될 때에 그때에 중생된다 영생된다 그말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예수믿어 구원은 모든 것 다해서 주님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주님도 사랑하고 인간도  사랑해 가지고 되는 것 아니요.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 영생얻는 것 내비두고 땅 위에 돈을  사랑했든지 인간을 사랑했든지 애인을 사랑했든지 뭘 사랑했는지 그자는  저주받은 자요, 회개하기 전에는 안됩니다.

모든 것 다 없고 주님만 사랑스런 요게 있어야 그때 영생이 되는 것이고 부활이  되는 것인데 이게 없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무엇을 사랑해서 거기 환장이  들어있고 마음이 요동이 되고 그것이 들어서 기쁘게 하면 기뻐지고 그것이 들어  슬퍼하게 하면 슬퍼지고 그것이 많아지면 또 기뻐하고 그것이 줄어지면 싫어하는  그것은 다 마귀에게 속했지 이 영생하는 몸의 부활이라 하는 것은, 영의 부활은  하나님이 하시니까 됐지마는 몸의 부활이라 하는 것이 그게 있는 동안에  안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 구원얻는 부활이 어려운 것이요. 이래 가지고 차차차 부활이 돼  놓으면 부활된 그것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공산주의가 와서  뚜드리고 어찌 해도 그 부활되지 안한 그것이 굴복했지. 굴복하는데 속에 부활된  것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쪽 구리를 그에게 굴복을 하는데 속에서는  그 굴복하지 안한 요소가 있으니까 백분지 구십 구가 굴복을 해도 백분지 일이  부활된 것은 굴복 안하고 껍데기는 부활해 부활하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그 속에  부활된 것은 속으로 인정하고 반발합니다.

그게 자기속에 전적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부분은 부인하고 속에  부인하는 그것을 부인하면서 내가 부인해 안되는데 내가 이거 그러면서 속으로는  더 주님 앞에 회개를 하고 껍데기는 형벌이 무서워서 부인을 하고 이래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평소에 부활을 많이 시켜놓으면 그들이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상관이  없어 하늘나라를 보고서 하나님 은혜를 들기 때문에 그들이 해하지 못해.

이러니가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주의자들이 해하지를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죽이려고 이 전기줄로 묶어 가지고 이래 갈때에 갈때도 묶어 가지고 가면서  거기에서도 '형제들이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지금가서 죽어도 구원 얻습니다.'  '여러분들 이제 죽기는 죽는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십시요.' 이러니까 총뿌리로 입을 때려서 입에 피가나고 이러면서도 외쳤어. 이랬으니까  공산주의가 손양원 목사님을 영광스럽게 존귀케 하나님 앞에 설때에 이래도  주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했다고 했으니까 공산주의가 손양원 목사님을  하나님과에 사이를 떨어지게 만들었소? 구원을 손해를 보였소? 삼켰소? 예 그를  영광되게 했소! 천하게 만들었소? 자 공산주의가 손양원 목사님을 삼켰소 손양원  목사님이 공산주의를 삼켰소? 누가 밥이 되었습니까 껍데기는 공산주의가 손양원 목사님을 삼킨 것같지만 속에 알맹이는 공산주의를  손양원 목사님은 완전히 사켜서 밥을 만들었습니다. 그 6.25는 그분 때문에 나지  아니했는가 하는 그런 생각을 내가 많이 가졌습니다.

평소에 부활해야 됩니다. 부활 안하면 안돼. 부활 안하면 안돼 뭐이든지 마음과  뜻 목숨 힘 죽도록 주님을 사랑하는 이것이 될때에 고때에 고게 접선된 것만치가  부활됩니다. 고 현실에서 부활하요. 그것이 되기 전에는 부활이 성립이 안된다  그말이오. 접선이 안돼 다 하지안하면 접선이 안돼. 아무리 아내와 남편과 둘이  한자리 누워자도 이 부부 결합이 안되면 새끼가 나옵니까 자녀가 안 나온다  그말이오.

이 모양으로 주님과 우리가 접선이 되져야 돼 접선이 되는 데에는 어떻게 우리  준비가 어째야 접선되는가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죽도록 충성하고, 미워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사랑뿐이고 요럴때 접선된다 하지  안했소. 이것을 받아서 가져본 자는 점점 더 가져 이것이 되기전에 안 되는데  마음은 다른데 있고, 애정은 다른데 있고, 사모는 다른데 있고, 자기 욕망은 딴데  있고 껍데기 가지고 주여! 주여! 한다고 그게 되지는 줄 압니까. 다 자기 속이는  것이지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학박사가 되 가지고 성경을 암만 통달을 외워도 영은 중생했지마는 육은 부활  한게 하나도 부활되지 안한 사람 있어. 이러니까 신사참배 있을 때에도 다  부인하고 신사참배 하자 안했어. 부산서 제일 유명한 목사 (김길창) 목사님도  그렇게 예수님을 이용해서 복음도 많이 전하고 부흥도 아주 권위 있었지마는  신사참배 올때에는 고만 그들에게 꺾여서 겁이 나 가지고 꼼작 못하고 천조대신  이름으로 세례 받아야 된다고 부산에 있는 목사들 다 그때는 총회장이니까 다  끌고 가 가지고 저 송도 앞바다에 가 가지고 천조대신 이름으로 세례 받았답니다.

네 유명해도 소용없어, 유명해도 소용없고, 대학자도 소용없고, 커도 소용없어,  큰일을 해도 소용이 없어 자신이 심신이 부활해야 됩니다. 심신 부활은 요렇게  되게하지 않으면 부활 안돼 요렇게 되게하지 안하면 하나님과 접선이 될 수 없어.

왜 요렇게 되게하지 안하면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가로막고 끼어있는 것이 꽉  찼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걸 강제로 독제로 제거해 버리고 이리 되집니까.

이거는 뭐이요 유기적 결합입니다. 인격 결합이요.

우리의 사람과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과 하는 이 결합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돈 사랑한 것이 가로막고 있소, 인간 사랑한 것이 가로막고 있소, 모든  정욕이 가로막고 있소, 명예욕이 가로막고 있소, 물욕이 가로막고 있소, 애정이  가로막고 있소, 음욕이 가로막고 있소, 모든게 가로막고 있는데 이걸 뚫고  하나님께서 강제로 하면 할 수 있지마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강제로  하면은 이것은 한 기계같이 되져버리고 짐승같이 되져버리지 유기적인 자유성을  가지고 살아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든지 이게 자유성으로 그것을 치워라.

그것을 치워라 그것을 치우면 접선이 되는데 치우라 하지만 고걸 치우지 안 하면  안되니까 요걸 치우기 쉬운 고때가 부활하기 쉬운 때요 요걸 치운때가 부활한  때입니다. 어떻게 부활하는가? 네 가지를 다해야 된다는 그것은 네 가지만  말했지마는 자기 전부를 기울이는 것 말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그것도  말하는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주일날 우리가 부활하게 되고 주일날 아닌날도  부활 못한다 이말은 세우지는 뭇하겠습니다. 그거는 왜 무슨 집회 할때든지 또  주일이 아니라도 자기 목숨이 죽게 될때에 죽느냐 사느냐? 죽느냐 사느냐?  할때에 그때에 목숨을 척 내대고서 주님을 사랑하고 고때는 잡탱이가 다 세상  욕심 그런 기경에는 그런 지경이 될 때에는 물욕도 다 달아나 버립니다.

물욕도 없애버려 지금 내 목숨이 예수님 믿으려 하면은 목숨이 끊어지고 목숨을  보존하려 하면은 주님 부인해야 되고 요런 단계에 딱 될때에는 그때는 돈  욕심이고 명예고 그런것 다 가버립니다. 마지막에는 제 욕심 요거 하나 살리느냐  마느냐? 요것이요 다 전부 돈도 제거되 버리고, 애정도 제거되 버리고, 뭐 애인도  제거되 버리고, 명예도 제거되 버리고, 음욕도 제거되 버리고, 정욕도 제거되  버리고, 뭐 식욕도 제거되고 다 제거되요.

예의도 체면도 다 제거되 버리고 단 내 목숨이 죽느냐 사느냐? 요것이  외통목으로 똘똘 뭉친 뭉쳐있는 이때에 목숨 고거 하나만 부인해 버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써 결합되기 때문에 요때에 결합이 많이되지 않느냐? 그러기에 마지막에 다 할 수 있는데 요것만 다하면 되는 고때에 많은 것을  다해야 될때는 그거 다하기가 힘이 들어 똘똘 뭉쳐 가지고 요것만 다하면 이제  나머지기는 다하게 되는 고때가 뭐이냐 하면은 자기 생명이 오느냐 가느냐?  죽느냐 사느냐? 하는 고때라 그때에 생명만 다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생명이 승리한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네가 생명의 면류관 얻는다 그러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으로써 다 중생이 되게 된다 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요걸 깨닫고 믿읍시다. 요거 중요합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 테이프를 나한테 돌려주십시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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