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전능

 

1984. 8. 19. 주일오후

 

본문: 누가복음 1장 27절∼38절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하나님은 영원전 자존하신 분이십니다. 자존하다 말은 무엇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계심이 아니고 아무것으로도 인하지 않고 스스로 홀로 계신 분이 십니다. 그후에  하나님께서 영계와 물질계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들을 다  창조하시고 오늘까지 보존도 하시고 섭리도 하시고 모든 것을 관리하셔서 당신의  목적하신 그 목적을 성취해 나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과 인류시조 아담이 하나님과의 그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 관계를 하나님이 세우신 그 법을 어김으로써 그 관계가 끊어져서 하나님과  끊겨지고 사람은 본지위에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오게 됐고, 또 저주라는 것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 후부터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주 절단돼서 일반적인 피조물에게 베푸시는 그  은혜와 같은 일반적 은총은 있지마는 만물의 영장으로 특수하게 지음받은  특수적인 그런 은총은 없게 됐습니다.

 거게서 구약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 특수적인 은총을 복구하시기 위해서  짐승으로 잡아 제사 드리는 그 제도를 내셔 가지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가까와지는 그런 약속을 세우시고 그 일을 해 나오셨습니다  그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하실 것을 예표하시고 예약으로 그렇게  이행해 나오는 그 일이 계속하다가 예수님이 사람을 입고 오시는 신인 양성  일위가 되신 후에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원수되었던 것이 다 치워져서 다 화합이 되었고, 또 사람은 모든 불의에 매인 바  되었는데, 불의라 하는 것은 주관대로 사는 거 자율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주관대로 살 수 있고 자율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부터 자율대로 살 수 없는 자로 주관대로 살 수  없는 자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어떤 존재에게 의존 해야 되고 또  거기에 소속해야 되고 또 피동돼야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하나님에게 소속했고 하나님에게 피동했고 하나님만을  소망하고 있던 이 사람이 배암에게 꼬임 받고 난 다음부터는 이제 배암이 사람을  주관하게 되고 배암에게 속하게 됐습니다. 배암이 주관되고 배암에게 속하게 된  그 배암이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켜 가지고서 그 마음을 제가 주관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과 몸은 꼭 저를 주관하고 있는 악령이 주관하고 있는데,  주관하고 있는 악령을 자기인 줄로 알고 또 그 악성이라는 그것이 원죄 부패성  원죄인데 악성이 자기를 주관하고 있는 것을 자기 본성인 줄로 이리 알고 완전히  자기 아닌 자기를 자기로 착각해 가지고서 이로 인해서 사망으로 계속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온전하시고 거룩하시고 또 무한하시고 무궁하시고 생명이신  그 능력이 사람들에게 올 때에, 그 능력이 사람들에게 오는데 세 가지로  사람들에게 오도록 됐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죄를 멸하는  능력이 사람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멸하는 그 능력을 사람에게 갖다가 준  것이 예수님의 사죄요, 또 자율 주관대로 사는 것을 하나님에게 소속해 가지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그 능력을 갖다 준 것이 칭의의 대속이요 또 사람이  피조물에게 속해 가지고 피조물의 것으로 살았는데 하나님에게 속해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것으로 살게 되는 하나님의 것으로 살 수 있는 그  관계를 사람에게 연결시켜 주신 것이 예수님의 화친입니나.

 그러기에 사람은 자기가 아무리 죄를 대항해서 죄를 이길라고 해도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라. 사람은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대행하셔서  우리의 죄를 다 멸하신 예수님의 대형의 그 대속 공로를 자기가 알고 힘입어서  예수님이 내 죄에 대해서 대형하심으로 내게 있는 모든 죄악의 권세를 다  도말하신 이 사실을 알고 자기가 인정하고, '주님이 나를 죄에서 온전히 해방시켜  주셨으니 나는 다시 죄에서 종노릇하지 않겠다' 하는 요 지식과 요 인정과 요  믿음을 가지고 대항할 때에 죄는 꺾어지고 죄는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뭐 그렇게 생각한다고 또 그렇게 인정한다고 무슨 죄를  이기는, 실제의 힘이 있을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마는 하나님의 도는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도는 말씀하신 그 말씀을 계약의 말씀을 해놓은 그 계약의  말씀을 사람들이 다 의심하는 자는 그대로 의심하다가 망하고, 계약의 말씀이  고대로 된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다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구원되지 않습니다.

 죄를 멸하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사죄의 이 공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죄를 생각하고 사죄를 힘입어 사죄를 생각하고 사죄를  인정하고 사죄를 인해서 나는 다시 죄에게 얽매이지 않겠다 하고 죄를 대항할  때에 그 죄악은 물러갈 수 있고 그 죄악은 그 사람에게 끊어져서 침노하지를  못할 수 있지 그 외 달리는 뭐 결심을 해도 안 되고, 또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도 안됐고 자기의 무슨 양심이나 의지나 아무 걸 해 가지고서 죄를 대항해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지을 수 있나? 절대 죄 안 짓겠다.'  결심을 하고 결사적인 결심을 하고 죽어도 안 됩니다. 예수님의 사죄의 공로를  인정하고 힘입어서 죄를 대항할 때에 죄는 우리에게 꺾어지고 물리침을 당합니다.

 또, 자기가 아무리-의라 말하면은 하나님께 피동 된 것이 의인데-아무리 자기가  의롭게 살겠다고 아무리 해 봤자 소용 없습니다. 절대 의롭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종교 창설자들이 의로 살겠다고 그렇게 결심한 그것이 깊은 죄  가운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대형으로 사죄해 주신 사죄해  주시고 칭의를 베풀어 주신 이 칭의의 공로를 힘입어서 나는 이제는 절대자에게  피동되는 의롭게 살겠다 할 때에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 때에 악령은 방해하지를 못합니다. 죄악은 방해하지  못합니다. 우주에 가득 찬 죄악이요 악령의 세력이지마는 약령의 세력은 거게서만  물러갑니다. 죄에 대해서는 주님의 사죄의 공로를 입고 사죄의 공로를 힘입어서  죄를 대항할 때에 죄를 대항해서 멸할 수가 있고 자기에게 오는 죄를 멸해서  자기를 해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고 또 불의도 예수님의 칭의를 힘입어서만  불의를 이길 수 있지 그 외 다른 길로는 이 길 수가 없습니다.

 또, 아무리 자기가 피조물 이런 것 저런 것에게 주관을 당하지 안하고 그런  것들에게 주관을 당하지 안할라고 아무리 해도 결국은 주관을 당하고 맙니다. 그  불교 같은 데서는 피조물에게 주관당하지 안하고 자기는 자기 단독이 똑똑하게  살겠다고 하는 것이 불교요, 모든 철학은 자기 속에 완전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자기 속에 들어 있는 그 완전을 가지고서 완전히 살겠다 아무것에게도 피동되지  안하고 자기가 천상 천하의 유아 독존이라는 그 이념을 가지고서 그래 살라고  했지마는 모든 이종교들은 결국은 피조물 이런 것 저런 것에게 다 종이 돼  가지고 피동되고 맙니다. 다만 예수님이 하나님과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을  대화친의 대속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결합됐으니 하나님과 결합된 요 대속으로  결합된 요 결합으로 하나님에게 피동되고 어떤 피조물에게도 피동되지 않는다는  요 믿음을 가지고 요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고 알고 자기가 또 말하고 느끼고  인정하고 힘입어서 할 때에 이 세 가지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이것은 아주 뭐 사람들이 말하면 그 참 미신같이 그렇게 들려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죄를 이기는 거, 불의를 끊는 거. 또 피조물에게 피동되는 걸  끊는 거, 피조물에게 피동되는 것을 끊고 절대자이신 자존자에게만 피동되고 모든  불의를 다 꺾고 자기 주관대로 자기 자율대로 이렇게 사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사는 그 피동 생활을, 또 모든 죄를 다 대적해 벗고 죄 없는  자로 살 수 있는 이것은 꼭 예수님의 대속의 세 가지 공로를 자기가 안 되면  자기가 지식하고 있는 것을 말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공로를 힘입었기 때문에  나는 이거 대항해야 된다' 말을 하면서 인정하면서 대항할 때에 그 죄는 물러가고  맙니다.

 그러기에 그걸 체험한 사람이 '보혈의 능력 보혈의 능력 보혈의 능력 크도다'  하는 것은 자기 신앙 체험에서 말하는 것이지 논리는 도무지 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논리는 왜 서지 않는가? 논리가 서지 않는 것은 인간의 지식의 범위는  조그만한 거 그까짓 거 똑 꿀밤덩이 같은 건데 그 지식 범위는 무한한 범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을 초월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이 이해할 그  범위 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로  실행을 하면은 자기는 경험하고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능력을 실질적으로 자기에게 역사하는 것을 체험할  자는 고대로 실행한 자라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횐 돌을 줄 터인데  받은 자 밖에는 모른다. 횐 돌 준다는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온전해진  그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받은 자 밖에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뭐 그걸 말로서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심은 큽니다. 이 세상에는 크다 해 봤자 뭐 동양을 차지하거나  서양을 차지하거나 동서양을 차지하면 그까짓 거 몇 닢 푼치 됩니까? 동서양을  차지해 봤자 우주의 이 지구 땅덩어리와 같은 것의 수억 억억억억억도 넘습니다.

항성만 해도 십억만이고 그 모든 위성까지를 다 말하면 말하기를 뭐  사백억만이라든가 사천억만이라든가 그렇게 뭐 요새 천문학자들이 그렇게 발표를  했다고 나 한번 들었는데 잊어 버렸습니다. 보기는 봤는데. 그래 그걸 다 차지 해  봤자 그렇습니다. 다만 이 지구라는고 범위내에 있기 때문에 그게 크고 좋지마는  조금 널리 봐서 이백 년 만 지나가면 그 소유자가 다 없앴습니다. 다 내놓고  송장이 돼 가지고 다 썩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지혜나 능력이나 사랑이나 권능이나 그 부요가  무한하시고 무궁하신데. 무한하시고 무궁하시니 우리 사람들에게 전달돼 오는  길이 주님의 대속의 피로 옵니다. 대속의 피로만 오게 됩니다.

 대속의 피로 우리에게 오고 대속의 피로 오는데. 그 피로 오는 그것을 우리  사람들이 모두 다 무한성을 가졌고 영원성을 가졌고 완전성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측량도 못하고 감당도 못 하고 이해도 못 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무한한 것을 주님의 십자가의 보배 피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게 되는데 오는  그것을 성령님이 역사하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올 수 있는 그 일을 돕고 있습니다.

또 진리가 역사해 가지고서 돕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이 우리에게 오는 길은 주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오는데.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우리에게 오는 그 일을  협조해 가지고 우리에게 오도록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이 성신의 감화와 진리 이  세 가지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에 지금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사죄의  능력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칭의의 능력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화친의 능력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이 세 가지 길로만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우리에게 옵니다.

이래서 내가 길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길로만  오는데, 이 세 가지 길르오는 일을 잘 올 수 있도록 협조해서 이루시는 그  역사자가 있으니 그 역사자가 뭐이냐? 곧 진리와 영감이 둘이 역사하십니다.

 제가 오전에 약간 말했던가 모르겠는데, 제가 거창 집회 가 가지고서 최 덕지 그  선생의 말을 약간 했습니다. 그랬더니마는 최덕지 선생의 그 전기 비슷한 그의  사상집이 신앙 사상집이 한 권 어제 제게 왔습니다. 그래 와서 가져오기를  ○○○라는 여기 기도록 등록하는 그 반사 선생이 그 책을 가져 왔습니다. 그래  가져 와서 내가 좀 읽어 보라 했습니다. 주일에 대한 것을 그분이 주일을 어떻게  지켰으며 하는가 그것을 읽어 봤는데 그때는 한 사십 분 걸려서 읽었는데 이제  집에 가서 몇번 좀 여러번 읽어 보고서 읽도록 해라. 읽으니까 한 삼십 분 되면  읽는답니다. 그것을 혹 여러분들이 최덕지 선생이 그 신앙에 대해서 한번 듣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간단하게 예배를 끝내고 고걸 요 자리에서 한번 읽을  것이고 다 모두 마다 하면 읽을 필요가 없고 그렇습니다.

 그분이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때 이길 때에도 그분은 흠이 없이 다 이겼습니다.

그분은 하나도 꺾어지지 안하고 꼭 신앙대로 다 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가기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별로이 자유 가진 분이 없었고 손 양원 목사님이  감옥에 들어 가서도 신앙의 자유는 가졌고 다른 분들은 다 신앙의 자유를 별로이  가진 분들이 뭐 옥에 들어간 분들 가운데도 없었습니다.

 그 동방 요배라 하는 그 요배는 벌써 여러 수천 리 밖에 있는 그 사람에게  여기서 절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천황 폐하는 신성화한 그 신성화에  따라가서 그 신으로 했기 때문에 그게 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천황 폐하  제가 초지장 너머 것도 모르는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인데 그렇게 신성화로  숭배했기 때문에 그게 여전 죄입니다.

 동방 요배를 거석한 사람들은 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은 그 동방  요배가 뭐인지도 몰랐는데 동방 요배라는 말을 듣고서 다 반대하고서 동방  요배를 안 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여기서 내가 지금 알기로는 ○○○집사님이  동방 요배를 안 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뭐 안했는가 그건 모르겠고,  그분은 동방 요배 때문에 말할 때 동방 요배 교회서 다 하는데 그분은 동방 요배  안 했다는 말을 그런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아무것도 몰랐는데도 동방  요배라는 그 말 첫말 듣고서 반대하고서 안 했었습니다.

 그분은 신앙으로 지켰는데, 오늘 여러분이 듣고자 하면 이 설교는 내가 간단하게  할려면 간단하게 하고 또 길게 할라 하면 뭐 길게할 수 있는데 간단하게 하는  것은 오늘 오후에 설교 증거할라 하는 것은 그저 거의 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무궁하시고 영원하시고 완전하심은 한없는 은혜, 한 없는  그것을 우리에게 갖다 줘 가지고서 우리에게 충만케 하고 우리에게 한없이  돼지고 우리에게 한없이 있는 그것이 이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한없이 건너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려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소원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일차 중보자로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가지고 중보자됐고, 그 중보자로 말미암아 이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수족같이 된 사람들을 세워서 만물 안에 만물  안에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은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충만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충만을 만물에게 충만케 해 주는데, 그 충만이 오는 길이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세 구멍으로만 하나님의 무한한 것이 온다. 이 무한한  것이 세 구멍으로만 통해 가지고 우리 사람들에게 온다.

 그래서,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하는 그 말은 자기가 금방은 그냥은 안 되는데  주의 피를 가지고서 죄를 대하니까 죄악이 깨어지고 피를 가지고서 자기의  주관을 깨트리니까 자기 주관이 깨트려지고, 피를 가지고서 모든 만물이 나를  주관할라 하는 그 주관을 피의 그 화친의 그 피의 능력 가지고 하니까 그런  것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서 자유할 수 있는 그것을 체험 해 가지고 그와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 가지 능력을 통해 오는데 세 가지 능력 세 가지로 통해서는 그 모든  구속의 그 역사를 보조하는 것이 누가 보조하느냐? 성령이 보조하고 진리가  보조합니다.

 그래서, 듣고자 하면 하나만 말하고 간단하게 설교를 할 거고 다 하기는 설교 다  하는데 간단하게 할 것이고, 또 그렇지 않으면 설교할 대로 한 사십 분이나 오십  분 할 것이고, 자 듣기를 여러분들이 원하면 내가 여게서 읽힐 거고 그래 안 하면  안 읽힐 겁니다. 듣기를 원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아, 이만하면 절대  다수이니까 한번 읽어 봅시다. 저는 어제 그걸 보고서 읽어 보고 그 참 신앙이요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산 사람입니다.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신앙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지금 오후의 설교는 다른 거 아닙니다.

 여게 37절에, 누가복음 1장 37절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대저' 하는 것은  오히려, 오히려 하는 그런뜻을 가졌어요. 오히려 이제 모든 거 오히려, 이제 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해 가지고서 그 부정(父精) 없이 사람이 난다, 부정 없이  사람이 난다 하는 이거 될 수 있는 일입니까? 이거 초자연의 일 아닙니까?  인간으로서 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될 수 없는 일인데. '대저' 될 수 없는  일이지마는 이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은 더 능치 못하심이 없다 그 말씀입니다  대저라는 그 뜻은.

 따라합시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우리가 요걸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지극히 큰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지극히 큰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 능력이 그 능력이 없는 가운데서 천지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그래  이 말씀 안에 있는 능력이 천지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누가 말했나? 이 말씀은 말씀이신 제이위 성자 예수님의  신성이 이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 안에는 지극히 큰 능력이 있어 가지고서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신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없는 가운데서 우주 만물을  창조 하실 수 있는 능력을 내포해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또 창조하신 이것을  다 당장에 멸해서 없앨 수 있는 그런 파괴의 능력을 가지신 말씀입니다. 파괴의  능력을, 또 창조의 능력을. 건설의 능력을 가지신 이 말씀입니다. 그래, 말씀 안에  능력이 있는 것을 믿어야 합시다.

 그러기에, 디모데후서 3장 16절 이하에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능력 온전, 사람 온전을 이루는  것이 이 말씀의 능력이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순종하면 그 순종하는 모든 말씀대로 순종한 그 일은  완전한 일입니다. 그 일은 아무도 깨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을이 없어서 '이  말씀대로 이거 형사 앞에서 또 공산주의 앞에서 이 말씀대로 하면 어찌 되느냐?'  내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전능의 그 전능한 그 능력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내가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전능의 능력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그런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피조물은 이 창조의 능력 가진 이  능력 앞에서 굴하지 항거를 못하는 것입니다. 요걸 잡은 사람들은 다 승리를  했습니다. 요걸 잡은 사람들은 원수 앞에서 승리했고 못 할 일이 없었고 다만  죄만 못 짓지 하나님 말씀에 위반되는 것만 못 했지 하나님 말씀에 합당된 것은  다 했습니다.

 이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하면 그 말씀과 지극히 큰 능력이  함께 하기 때문에 자기가 말씀대로 한 것은 전능의 행위요 전지의 행위요 주재의  행위요 주권의, 행위요 모든 피조물을 짓고 마구 부숴서 멸할 수 있는 그 능력의  행위기 때문에 무슨 피조물이 항거를 합니까? 이런데 이 말씀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다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은 그 순종한 행위가 전능한 행위요 전지의 행위요 완전의  행위요 창조의 능력의 행위기 때문에 피조물은 그 앞에 복종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 말씀을 순종함으로 된 사람, 말씀을 순종함으로 된 행위. 말씀을  순종하는 그 능력 그것이 다 전능이요 전지요 완전이기 때문에, 이 말씀대로  행함으로 된 사람, 또 말씀대로 행함으로 된 일. 말씀대로 행하는 그 기술 그 연습  그 능력, 말씀대로 행한 사람, 또 말씀대로 행한 능력 그것이 모든 피조물.

피조물은 피조물이지마는, 모든 피조물 위에 있습니까 피조물 중간에 있습니까  피조물 위에 있오? 껍데기는 피조물 위에 있고 알맹이는 창조주가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창조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순종으로 해서 된 그 사람이 하늘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하고 다 소유합니다.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정하지 아하는 사람은  인정안하지마는 인정하는 사람은 날마다 그거 체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의 일생 동안 해도 뭐 몇억대 되는 빌딩 한 칸도 못  마련할 것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바울과  게바와 아볼로와 모든 것이 다 내것이라. 그 미친 사람 소리 같지마는 정말로  정신 차린 소리요 미친 소리가 아닙니다. 그거는 털끝만치도 가장이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말씀 안에 지극히 큰 능력, 전지 전능의 주권의  그 권세가 이 말씀안에 내주해 계시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명할 때에 말씀대로 하는 것은 피조물이 복종하지  피해를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인간들이 한 말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제가 지키느라고 마치 일선에 가 가지고 일선에 가  가지고, 그 뭐라 하노? 전쟁에서 다져 상하면 상이군인이라하나, 뭐라 합니까  그걸? 부상자라 하나? 녜, 부상자가 하나 있으면 부상자 이거 끌어 안고 이거  하나 간수하느라고 데리고 다니고 이거 보호하고 다닐라 하니까 힘이 드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지킬라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제가 애를  먹고 지키는 줄로 이렇게 알기 때문에 그런 신앙들은 다 깨지고 맙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나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는 하나님에게 일찍부터 동정녀 마리아에게 똑 그 구주가 나시도록  하기 위해서 일찍부터 유대 나라는 다른 나라 국법보다도 엄중한 것이 있습니다.

뭐이냐? 아주 이성면에 엄격합니다 만일 처녀가 부정한 행위를 했으면은 그냥  사형하지 않습니다. 저 빈들판에 갖다 놓고서 거게다가 이름을 크게 씁니다. 이는  어느 족속 누구 누구의 고손, 증손, 손자, 아들 딸 뭐 이래 가지고 아무 것이라  그래 놓고서 돌로 던져 죽입니다. 돌을 던져 죽이니까 조산이 커다랗게 모이면은  그 조산이 뭐 백 년도 이백 년도 헐어지지 안하고 그대로 있으면 길가 가면서  침을 틱틱 모두 뱉고 이렇게 조산을 모아서 그래 죽입니다. 이러니까 처녀로서  부정한 행위는 전혀 없습니다.

 이랬는데 마리아에게 남편 없이 아이가 배었으니까 그거는 사람들이그 내용을  압니까? 음행했다 할 거 아닙니까? 이러니까 마리아는 놀랬습니다. 놀래고 '아  말씀을 내가 순종할라 하면 내가 이제 목숨을 내놔야 되겠다' 이랬는데 천사가  말하기를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전능의  능력이 내주해 그랬는데 그 말씀대로 네가 순종만하면 네가 전능자가 되는  것인데 뭐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호하고 간수하고 보수 하겠다고 그런 망령을  부리느냐?' 마리아가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하고, 열 달 동안이니까 그 친족하고 같이 사니까 보일 것 아닙니까?  마리아는 그때 나이가 아주 어렸습니다. 아이밸 때가 안 됐어. 아주 어렸어.

조그만한 게 아이를 뱄으니까 배는 부르지 이럴 거 아닙니까?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본다 말이오. 모든 사람이 보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당장에 돌로 던져  가지고서 조산 모아 죽일 것이지마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지키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해서 잉태되니까 말씀이 마리아를 지켰지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까? 네가 잉태해서 아이를 배어서 장성하게 되고 생산할 것이라 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계약을 자기가 지키느라고 욕봤습니까,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이  마리아를 지켰습니까? 마리아가 그 속에서 죽지 안하고 열 달 동안 해 가지고 또  아이 낳을 때도 하필 숨어 낳으면 하지마는 그 베들레헴에 가 가지고 자기  가까운 친족들, 이 전부 호적한다고 전부이 다 모였는데 거게서 아이를  낳았으니까 얼마나 광고가 됐습니까? 아무도 입도 못 벌렸습니다. 아무도 해하지  못했어. 이렇게 배가 불러 띠글띠글 돌아 다니는 이걸 하나님의 말씀이 마리아를  지켜서 피조물들이 꼼짝도 못 했지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까?  아니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제가  무슨 능력 없는 짐덩이, 그 또 뭣이라 했노? 무슨 군대라 했노? 다친 군대, 어?  부상자, 옳지. 부상자 메고 다니듯이 제가 하나님 말씀을 이 짐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메고 다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말씀을 지키면  말씀의 능력이 보호해 가지고 그 보호로 업혀 다니고 들려다니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지킨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다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전능한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면은  어데서든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할 때는 고통이고 말씀을 깨닫고 고 말씀대로 딱  할 때에는 모든 피조물이 그 명령 아래에 복종하기 마련입니다. 복종하기  마련이고 그거 다 정복하고 다 그 모든 피조물의 주가 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오늘까지의 모든 일이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내주 하시는데, 말씀을 버리는 것은  지극히 큰 능력을 버리는 것이요 말씀을 떠나지 안하고 말씀을 제가 말씀에게  복종하는 것은 지극히 큰 능력의 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조물은 거게  복종하기 뿐이지 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있는 것을 알고 말씀을 모시고 말씀의 슬하를  떠나지만 안하면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이요, 여호와로 피난처 삼는 것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계약으로 피난처 삼는 것입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그 계약을 모시고 있으니까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는  것입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는데 어떤 자가 해하겠습니까? 이런 신앙으로 다  나간 사람은 사상을 다 이겼고 그는 또 무궁세계의 그 영광스러운 것은 측량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그 신앙을, 지킨 실천의 성도의 것을  한번 왔습니다. 지금 잠깐 우리 통성으로 기도하고 간단하게 예배 마치고 한번  읽으면 한번 들어봅시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주: 최 덕지 선생 옥중간중설교집 '모든 것 다 버리고' 내용 중에서 '예배의  중대성'에 관한 부분을 반사선생이 낭독함]  너무 요새는 다우리가 평안하고 안일에 빠져서 지나간 왜정 말년 때 그 때에 그  어려움 당한 것을 한번 잠깐 좀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그 읽는 소리를 듣고 감격한 것은 예배를 양보하지 안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를 양보하지 안했다. 그 양보하지 안한 그것이 생명을 내놓고 안  했는데 양보 안한 사람들은 다 살았고 살기 위해서 예배를 양보한 사람들은 다  죽었고. 또 그 최덕지 선생은 무엇이든지 사건만 일어나면 그날 하나님앞에 그만  기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사건만 있으면 그만 하나님 앞에 단식  기도하기로 며칠 작정하고 단식 기도, 단식 기도하고 나면 해결되고 그러면 모든  감당못 할 일은 단식 기도로 전부 해결 다 지었습니다.

 상상도 못하게 그뭐 어려움 당한 것은 그분은 늘 뒷젖힘을 해 가지고서 이래  고랑을 차 가지고 그래 있었습니다. 여름이든지 겨울이든지 그래 있었습니다.

그것은 뭣 때문에 있었느냐? 황거 요배를 안 할라고 함으로서 그랬습니다. 황거  요배하는 사람들은 다 감옥에 갇혀도 뒷젖힘으로 요래 고랑을 채워 가지고서  그래 여름이고 겨울이고 계속해 있는 사람은 고거 안 할라고 황거 요배 안  할라고 해서 그때 그리 됐습니다. 그러니까, 여름에는 모두 이 살은 다 썩어서  뼈만 남고 모두 구더기가 있었고 손은 새파랗이 죽었고 물 마실 때는 다른  사간이 마셔 줘야 되고 밥은 오면은 개 모양으로 엎드려 가지고 그래 먹어야  하고 그 뭐 덮을라도 손이 뒤로 되니까 아무것도 덮지도 못하고 그래서 한  그래지낸 것이 한 삼 년 반 약사년 동 안 뒤로 고랑채워 가지고서 늘 그렇게  계속 견뎠습니다.

 오늘 뭐 좀 성도의 소식을 좀 들었습니다. 요새 책이 나오는데 순교자  복자전이라는 그 책도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에 들어올 때는 천주교서  들어왔는데 순교자 복자전이라 하는 그 책에 기록된 순교자들은 대개 천주교  교인들입니다.

 천주교에서도 잘 믿는 사람들도 있는데, 천주교 교리가 틀렸고 교권 그들이 다  틀렸지 그때는 천주교 밖에는 없었습니다. 개혁하기 전에는 천주교 밖에  없었으니까 그 안에도 참된 그 성도들도 다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교권을 가지고서 베드로 숭배하고 마리아 숭배하고 성경 못 읽게 하고 기도 못  하게 하는 그 교권, 마귀가 들어서 교권주의로 한 그것만이가 천주교에서는  교리상 틀리고 그거는 이단입니다.

 그때에 개혁하기 위해서 개혁할라고 하는 사람은 여러 수십 만 순교를  당했습니다. 수십만 순교를 당하면서 기어코라도 이 교리를 주장해 가지고 이  개혁교가 생겨진 것인데, 이렇게 힘드는 개혁교 받아 가지고 오늘은 천주교가  뭐인지도 모르고 그만 천주교와 합동 번역 한다 하는 그 번역에 대해서 다  이렇게 타협적으로 나가고 하는 것이 그게 뭐이냐 하면은 어린양의 대적으로 다  한 뭉치로 뭉쳐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합동 번역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우리 한국 교회서는 ○○○목사  저 아래 여기 설교했던 사람 그 목사 밖에는 합동 번역에 반대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반대했지마는 은밀히 반대했고 그분은 팜프렛을 해  가지고서 없는 돈에다가 전국에 뿌리면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그래도 신앙의 지조를 지킨다고 해 가지고서 그 아이 시시 (I.C.C) 계통에서  명예 학위를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입니다. 논문 박사는 글만 읽으면 되지마는  명예 박사는 한 이력이 있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그 분은 그래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교리를 지키고 그렇게 있기는 있습니다. 그래서 요게 오면  가끔 가다가 올 때마다 내가 강단에 세우는 것은 그분이 그래도 속화를 방지하고  대립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분이 기도원 세우고 난 다음에 뭐 이리 저리 좀  여러 가지 속화된 그런 일들은 많이 있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어떤 환난을 당할란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자라 하면은  순교자 들의 그 전기 같은 것, 순교자 복자전이라는 것. 또 순교자에 대한 책을  읽어 보는 게 좋습니다. 왜? 우리가 그런 일을 반드시 당하게 될 터이니까 그때  당할 때에 그때 당황하지 말고 미리부터 읽어서 예비 지식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기게 하셔야 되지 하나님 이기게 하지 안하면은 안  됩니다.

 그래 오늘 오전에도 설교했지마는 기름은 뭐이 기름인가? 기름은 주의 피의  능력, 진리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우리속에 와 차여 가지고 있는 그거는 다  창조적인 능력이요 근본적인 능력이기 때문에 피조물들이 상관하지를 못합니다.

그 능력 가진 것만 남고 나머지기는 확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로  순금 외에는 다 은이고 금이고 돈이고 다 타 버리고 순금만 남는 것처럼 순전히  신적 요소로 되어지는 완전 영원 불변의 요소로 되어진 그것만 남고 나머지기는  다 꺾어지고 멸해지고 다 굽어지도록 흩어지도록 이런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불시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이길라면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 기도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기도하면 기도하는 것으로써 자기 현실에서 피를 배반치 아니하고 진리를  배반치 아니하고 영감을 배반치 안하고 이 셋을 배반치 아니하고 이 셋을  현실에서 이 셋을 보수하는 고 현실로 지킬 때에 이셋은 자기 속에 들어 와  가지고서 자기 안에 계시는 능력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능력으로만 승리하기 때문에, 이 기독자의 참된 성도들을 하나님이 선출 할라  하는 것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위임 통치할 수 있는 이편  절대자이신 그런 자를 다 선출하고 육성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 있는  무슨 훈련과 그런 육성과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 완전의 것으로서 완전의  요소 가지고 자기가 성장해야 되지 뭐 썩을 요소 그까짓 거는 암만 해 봤자 아무  소용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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