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1984. 12. 6. 목새벽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 성경 말씀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한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  말씀은 천지는 없어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획 하나도 변동되거나 없어지거나 그런  일이 없이 다 이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도 거짓됨이 없이 다 그대로 이루어지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하겠습니다.

 성경 안에는 사람이 한 말도 있고. 또 배암이 한 말도 있고. 나귀가 한 말도  있고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어떻게 할 수가  있는가 혹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은, 나귀가 한 그  말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란 말씀이 아니고 나귀가 말을 했다 나귀가 춤을 췄다  나귀가 뭐 하늘로 올라갔다 이렇게 했다는 그런 말이 만일 성경에 기록됐다고  하면 우리는, 천 인 만 인이 그런 말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곧이 듣지 않습니다.

'그건 다 거짓말이다' 이렇게 할 수 있지마는 만일 하나님께서 성경에 '나귀가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이렇게 기록했다고 하면 그 말씀이 거짓말이 아니고  참으로 나귀가 하늘로 날아 올라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말이 있었다.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기 때문에  그 말이야 나귀 말이든지 사람의 말이든지 배암의 말이든지 뭐 어떤 것의  말이든지 우리에게 '이런 말이 있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짓 증거를 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 때문에. 나는 보지 못했지마는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사실이 사실인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기록한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어떤  말이든지, 우리에게 거짓말 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참된 말만 사실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암의 말을 해 줬든지 뭐 나귀가 한 말을 했든지  뭐 누가 말을, 어떤 것이 말을 한 말을 했든지 어떤 소리를 했든지, 또 어떤,  '이런 존재가 있다'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든지 그것은 우리가 사실인  것을 믿어야 됩니다. 실상인 것을 믿어야 됩니다.

 악어 입에서는 불이 나온다 하는 것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악어가 어떻게  생겼다는 것은 알지마는서도, 봤지마는 그 악어가 입에서 불이 나오는가 그거는  나는 보지를 안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와 같이 하나님이 이렇다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는 악어의 입에서는 불이 나온다 하는 것을 고대로, 실상 고대로  사실 나오는 그 사실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또 배암이 말한 것도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뭐 이런 말 저런 말 여러 가지 말을 성경에 말씀을 해 놨고 또  무슨 과학적인 말도 말씀을 해 놨습니다. 성경에 물질의 이치에 대해서도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말씀을 해 놨을 때에 혹 우리가 보면 이 세상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성경에서 과학의 단 어느 한 부분이라도 말씀해 놓은 것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공통으로 다 알고 있는 아주 공통성 있는 그런 과학과 이  성경에서 말씀해 놓은 그 부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해 준 그 말씀과 서로  정반대되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거야 모든 사람들이 다 환하게 다  공통적으로 인식을 하고 있는 일인데 성경에는 이렇게 아주 틀린 이런 말을 해  놨다' 그렇게 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천 인 만 인이, 이십 세기의 전  인류가 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성경에 그와 달리 말씀했으면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말씀대로 믿습니다. 그래야 됩니다.

 우리는 조브라운 생각에서 모르지마는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줬기  때문에 틀린 말은 한 마디도 없는 그 사실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그런 것도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하는 데에는 '이 성경에 말 해 놓은게 틀렸다. 이  모든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이 이것이 맞다' 이렇게 보여져도,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아무리 이십 세기의 전 과학이 다 공통적으로 그렇다고 다 알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의 반대되는 말씀을 성경이 말씀해 놨다 할지라도 그 성경은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또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실  분이, 또 전지하신 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꼭 참말  바른 말만 사실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분이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세상과 다른 말씀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세상을 부인하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을 때에 우리는 그 사실이 자꾸 뭐  고고학에서 발견되고 또 사람들이 연구한 그 결과의 현실로 빤하이 우리 눈에  보기에 발견돼서 그게 옳고 성경 말씀은 틀렸다 이렇게 사람들이 여길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한 것을 참이라 이것이  옳고 바르게 말씀한 것이라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믿는 이유는 왜 믿느냐? 우리가 믿는 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과학이  말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요. 또 전지하신 분이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요. 우리에게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감이 없는, 변동이  없는 말씀을 해 주신다고 당신이 보증을 하고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믿기를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인류 전부보다도 그분을 믿고 그분이 또 더  능하시고 더 바로 아시고 우리에게 참을 말씀해 주시는 분인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한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번연히 보기에 '이거는 참 성경에 이거 모르는 말을 했다. 틀린  말을 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그렇게 생각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보기에는 그렇다. 우리 보기에는 나도 보기에는 그렇다. 그러나 이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전지하신 분이 말씀하신 것이 옳고  인간이 말하는 것이 틀렸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틀리지 안했다.

 왜? 하나님은 전부를 다 아실 뿐 아니라 당신이 창조하셨고 또 당신이 창조하신  그 창조에 대해시 그 창조의 범위가 얼마나 넓으며 그 종류가 얼마나 많으며 또  하나라도 창조된 그것에 대해서 확실한 지식을 지극히 작은 거 하나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확실한 지식을 모르고 있다. 왜 모르고 있느냐? 그것은 세월이  지나가니까 창세 이후 백 년 후에 알았던 것과 고것에 대해서 천 년 후에 알았던  것과 오천 년이 지나간 오늘에 아는 것과 또 육천 년이 가까운 오늘에 아는 것과  그 아는 것이 자꾸 몰랐던 새것이 발견이 된다. 새것이 발견이 되는데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깨닫는 지혜있는 사람들은 다 말하기를 '세상에 어떤 종류에  대해서든지 그 종류에 대한 지식이 다 나왔다 할 수는 없다.' 어떤 종류에 대한  지식이든지 거게 대해서 이제 빠진 것이 없이 사람들이 다 거게 대한 전체의  지식을 다 발견했다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왜? 또 보니까 또 새 부분의  지식이 또 나옵니다.

 이런데, 그것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신 분이시니까 그분의 지혜가 얼마나 크며  그분의 세밀이 얼마나 세밀하며 또 그분의 능하심이 얼마나 능하신가 그것을  우리의 지식으로는 측량 못 할 만치 우리의 지식을 완전히 그 초월한 무한한  분이라 그렇게 우리가 모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만물을 보아서도 알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씀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성경에 기록하기를, 천 년 이상 산 사람이 없었는데 영생한다 하니까  그보다 더, 우리가 경험으로써 사람은 암만 그래도 천 년 더는 못 산다 하는  것이 우리의 체험이요 경험이요 우리가 다 보고 있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마는  성경에 영생한다 하니까 그 영생한다 하는 그 사실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전부 우리의 지식을, 지식 범위 내에 있는 걸 믿는게 아니고 지식 범위를 무한히  초월한 그 지식 밖에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도 다 우리가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한 것이면 다 믿어야 합니다. 믿는데 사람들의  지식과 서로 대조할 때에 맞지 않는 그것은 사람들의 지식이 아직까지 거게  도달하지 못해서 맞지 않는 것이고 아직까지 전체적이 아니고 부분적이라서 맞지  않는 것이지 하나님이 몰라서 틀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럴 때에, 그 말씀에 대해서는 우리 지식으로는  아무리 비판하고 네가 하고 연구해도 이 말씀이 이해되지 아니할 때에는 우리  사람이 아직까지 미숙하고 아직까지 거게 대해서 너무 어려서 미달돼서 우리가  모르는 것이지 하나님이 혹 착각하거나 하나님이 혹 미숙해서 모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우리가 모르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우주에 그분이  창조하신 그 창조의 범위를 오늘 사람들이 다 아는가? 우리가 모릅니다.

모른다는 그것은 자꾸 해마다 새것이 발견이 됩니다. 새것이 발명이 됩니다.

'아, 이런 것이 있다 이런 것이 있다.' 지금 우리의 이십 세기의 과학이  종류로도 많은 종류를 알아냈고 또 한 종류에 대한 이치에 대해서도 모르는  이치를 많이 알아내서. 그것을 가리켜서 발명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새로  발명됐다 이라는데, 그러면, 발명된 그것이 새로 창조된 것이 아니고 이미  창조돼 있지마는서도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서 몰랐던 것을, 못 봤던 것을 새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 보여지는 것이 그것이 끝이 없는 그 사실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그분의 지혜와 우리의 지혜가 비교가 안 된다. 또 그분의 지식과  우리의 지식이 비교가 안 된다. 또 그분이 하신 그 능력과 우리의 그 능력을. 그  능력을 시찰하는 우리의 시찰의 눈이 그분이 지어 놓은 것의 억억만분의 일도  우리의 눈은 따라가지 못하고 우리의 지식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얼마든지 측량하고 알 수 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경 말씀에 세상 사람들의 지식과 틀린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분이 사람보다 참되고 무한히 크지 때문에 사람이 틀렸지 그분이 틀린  것은 아니라 하는 것을 우리가 결정 지우는 것이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것이 역사에도 많이 일어 납니다.

 진화론이라는 그 진화론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마 국민학교 졸업한 사람들은  다 알 터인데, 그 진화론이라는 그 아주 학설이 대단히 권위 있어서,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때 한창 그 진화론이 떠들 그때입니다. 그때인데. 그때 혹 사람들을  만날 때에 '사람은 아메에바가 들어서 사람 됐다. 그 아메에바가 원숭이가 돼  가지고 원숭이가 사람 됐다' 하는 그것을 주장하지 안하는 사람이면 다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두 다 사람은 부모가 낳고 이래 됐지 원숭이가 사람 된 거  아니다. 하면은 그만 그 사람은 상식 이하의 사람이라 무식한 사람이라 다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렇게 알리가 있는가? 하지마는서도 아마 지금 한 칠십 세  이상 되는 사람들은 그때에 뭐 학교 교장이고 무슨 또 어떤 정치가 군수나도  지사나 무슨 박사나 어떤 학자나 어떤 사람이라도 사람은 원숭이가 사람 된  것이지, 사람이 본야부터 사람이 아니고 원숭이가 사람 됐다 하는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이면 '저거는 무식한 인간이라' 다 무식한 것으로서 멸시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한 사람도 빠지지 안하고 다 그랬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게 지질학에서 발견돼서 그렇게 됐었는데, 지질학의 그  지층, 땅에 있는 층어리를 보고서, 보니까 처음에는 아주 아메에 바라는 그런  균의 지층이 있고 그 다음에 차차 차차 또 이제 그것이 진화된 그런 지층이 있고  그 다음에는 원숭이가 있고 원숭이 지층이 있고 난 다음에는 사람들이 죽어서  이렇게 지층이 있는, 사람 지층이 있는 그것을 보고서 다 과학이 증거하니까,  보이는 과학을 가지고 내 대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유혹을 받아서  그랬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층이 변동됐습니다. 저 구미 지역에서 아주  아메에바 지층보다도 사람 지층이 그 밑에 가서 있는 것이 조그만한게 발견된게  아니라 큰 아주 광야 같은 그런 아주 큰 면적이 발견됐기 때문에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진화론 주장이라는 것이 팍 꺾어져 버렸습니다. 그때. 그게 나오기  전에는 이 성경은 거짓말 하는 것이라 이거는 무식한 성경이라 그렇게 멸시를  당한 것이 뭐 예수 믿는 사람들도 큰 의문을 가졌고 세상 사람들은 다 조롱을  했지마는서도 그라고 난 다음에는 성경을 인정합니다.

 그와 같이 이런 뭐 과학에서 저런 과학에서, 저런 지질학에서, 이런사람들이  새로운 발명에서 거게서 부인했던 성경이 자꾸 믿어지고 인정되기 때문에 지금은  세계의 모든 서적 중에 제일 권위있는 서적으로 일 호를 누구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든지 제일 권위의 일위로 성경을 두는 것이 현실의 모든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 권위도 그러하고, 또 어느 책을 사람들이 제일 많이 믿고 있느냐?  사람들이 그 책을 제일 인정하고 딿고 있는 것으로서도 다 성경을 일호로 두고  있습니다. 또 제일 세계의 여러 많은 나라의 말로 번역되어 있는 제일 많은 그  방언으로 번역된 그 번역 수가 제일 많기도 성경이 일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의 권위를 사람들이 자꾸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한 것은 사람의 말뿐 아니라 여러 말을 주님이  인용했기 때문에 성경에 무슨 말이 기록되어 있든지. 거짓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했다 하는 것을 성경에 말씀해 놨습니다. 또 이렇게  꼬우는 말을 했다 하는 것도 성경에 기록해 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에는  꾀우는 말도 기록되어 있고 거짓말도 기록 되어 있고 있으나 성경에 그렇게 그  말을 우리에게 끌어다가서 이런 말이 있었다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에 성경에  말씀한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그걸 크게 말하면 하라 말도 기록되어 있고 하지 마라 하는  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에 하지 마라는 말은 안 해야 될 것으로  우리가 알고, 또 성경에 하라는 말은 어떻게 하든지 그 말은 하는 자가 복이  있다. 그대로 말씀대로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그렇게 우리가 인정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한 말씀은 무엇이든지 그 말 자체에는 거짓말도  들어 있고 오만 거 다 들어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이런 거짓말이  있다' 이렇게 인정했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해 말씀해 주신 것은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그거는 '틀림없는 참말이라' 틀림없는 참 말이라 그 말은  거짓말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그 거짓말은 틀림없는 거짓말이라 그말이오. 참  그거는 거짓말이라 그말이오. 알아 듣겠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거는 봐라. 마귀가 이렇게 말했다. 뱀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짐승이 이렇게 말했다. 이거 이 거짓말을 이렇게  했다, 너희들을 꼬우는 말을 이렇게 했다, 이거는 너거 죽는 말을 이렇게 했다.'  여러가지 별별 말을 다 말씀했으나 주님이 그렇다고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을 '아, 이 말은 배암의 말이다. 이 말은 들으면 죽는다. 이 말은 우리를  꾀우는 말이다. 이 말은 우리를 살리는 말이다. 이 말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말이다.' 이 사실로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말씀에는 여러 말이 있으나 주님이, 틀림없는 주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그 말을 우리가 사실인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 배암 말은 배암 말로 사실  믿습니다. '뱀이 이런 말. 했다. 마귀가 이런 말 했다. 짐승이 이런 말 했다'  그것을. '그 짐승이 그렇게 말했을까?' 그렇게 안 믿는게 아니라 우리는 사실로  믿습니다. 믿고,  또 우리가 성경에 우리 생각과 이 성경에 말씀한 것이 맞지 안하고, 도무지  '아무리 해도 성경 말씀보다도 이 사람 말 한 것이 맞다' 이렇게 우리는  보여져도 사람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이렇게 비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분이요 그분은 지혜와 지식이 무한하신 분이요 또 무한한 그분은 사람을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사람보다 그분의 지식이 무한하고 영원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그분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 못 하는 것도 그분이 말씀하는 것을 믿어  둡니다. 우리는 '나는 이해를, 분석 못 한다. 해석을. 어때서 이런지 이거  우리는 분석 못 하나 이 인간들보다 그분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말씀했기  때문에 그분 말이 옳다 인정하는데' '왜 옳으냐, 보기에 이런데?' '어째서  이것이 옳은지 거게 대해서 해석은 못 하겠다. 말씀하신 그분이 참되기 때문에  나는, 그분이 모든 것보다 다 참되고 우리에게 참말 해 주시기 때문에 이것도  내가 몰라 그렇고 내가 이 지식을 이해를 못 해 그렇지 이 지식만은 참 된 것을  나는 믿고 있다.' 그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믿어 두면, 믿어  두면 세월이 지나가면 아니라는 것이 차차 이해가 돼집니다.

 어린 아이를 두고서 어린 아이보다 지식이 능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이를  가르칠 때에 '이거는 이렇다' 이라면 그 아이가 그걸 들을 때에 제 지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있어도 '아 이것은,  아버지, 이것은 그렇찮은데'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말한다 할지라도 부모는 그럴  것입니다. '네가 지금 몰라 그렇지, 그거 사실인데 네가 아는 건 잘못 생각한  것이고 네가 모르는 네가 네 생각대로 그걸 생각한 것이지 사실에는 틀리는  것이니까 이걸 이렇게 알아라' 그러면, 가르쳐 줄 때에 그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고 '아, 그렇습니까?' 자꾸 이렇게 배워 나가면, 이제 차차 차차 나중에  배워서 그 지식의 정도가 넘어갔을 때에 묻습니다. 물을 때에 '야. 너 이거 지금  이것이 네가 그때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너는 그렇게 말했는데  그러면 지금 생각하니까 어찌 됐노? 네가 말한 것이 맞나 내가 가르친게 맞나'  이렇게 만일 물으면 그 아이의 지식이 자랐으면 '아, 그때 나는 모르고 벌로  말한 것입니다. 내가 한 말은 그거 틀렸습니다.' 하는 것을 그 아이가 지식이  자라가면서 이해를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선생을 만났을 때에 아주 거짓부리 선생을 만났으면은. 거짓부리  선생을 만났으면은 우리는 그 선생이 말한 것을 '그 모두 다 거짓이라' 이렇게만  인식하고서 그것을 다 반대하면 그것이 바로 자라가게 되겠습니다. 또 반거짓말,  반은 참말 반은 거짓말 이렇게 하는 그런 선생을 만난 줄 자기가 알았으먼 그  사람은 가르침을 받을 때에 '이 반은 옳은 말하고 반은 거짓말 하는 것이니까  이거 옳은 말이가 이거 거짓말이가' 그거 옳은 말인지 거짓말인지 그 둘을  구별하는 것이 그것이 중대한 문제요 그걸 구별하지 못하면 그 학생은 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선생이 틀림없는, 이는 참 틀림이  없는 바로 아는 바른 지식을 가지고 바른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하면,  선생이라 하면 그 학생이 배울 때에는, 그거 배울 때에 이건 참말인가 거짓  말인가 이렇게 뭐 주저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말을 하면 예예 하고 고대로  받아서 길러서 고대로 지식을 하면 그 사람의 지식이 빨리 자라 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가르치신 분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창조주시요  자존자이시요 지금도 주권자시요 지금도 그분이 모든 것을 다 하고 계시는데 또  그분이 우리 위해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우리를 구출 하신 참이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니까 그분이 성경에 말씀하신 이 말씀은 우리가 무조건 믿고 따르면  우리 지식이 빨리 자라갈 것이고. 또 그분이 이라면 된다 이라면 안 된다 하시는  것은. 된다 하는 것은 우리가 하면 될 것이고 안 된다 하는 것은 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우리가 믿는 것은 그분이 참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습니다. 뭘 보고 믿느냐? 그분이 성경에 당신이 이렇다 저렇다  하신 그 말씀에 참되다고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을 믿습니다. 그분을 믿기  때문에 그분이 말씀하신 말씀을 다 사실인 것을 우리가 믿읍니다. 사실인 것을  믿는데. 그러면, 그분이 우리에게 몇 번 몇 마디나 말해 줬느냐?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은 신 구약 성경 육십 육 권에 있는 말씀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씀해 주셨으면 우리가 그 말을 반만 믿어야 되느냐 다  믿어야 되느냐? 우리는 다 믿어야 됩니다. 다 믿으면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그 목적의 효력을 우리가 다 받을 것이고 반을 믿으면 반만 받을  것이고 안 믿으면 하나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데,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 것이 무엇이냐? 그분의 말씀하신  것을 믿는 것이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 것이 그분을  믿는 것이요 아무리 그분을 어떤 분이라고 믿는다 할지라도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아니하면 그분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믿지  일는 것은 그분을 믿지 않는 증거요 또 그분을 믿는 것은 성경을 다 믿는  증거입니다.

 성경이 무슨 말인지 얼토당토 안한 말이라도 '이 말은 참이라. 이 말은  틀림없는 참말씀이라' '이 배암 말도 참말?' '배암 말도 주님 말씀에 했기  때문에 배암이 한 말이라.' 이거는, 배암이 한 말이 가치있어 그 말대로 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고 배암이 한 말을 주님이 '배암이 너거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배암이 우리에게 말한 그 말을 우리는 듣지  안했지마는서도 주님의 말씀에 배암이 이렇게 말했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참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배암이 한 말이 그 말한 말이 참말이기 때문에 배암 말을  순종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거 배암 말이라' 이라기 때문에 우리는 배암  말이라는 것을 확실히 참으로 인식하고 있다. 배암 말이 옳은 말이 아니라, 배암  말이 옳은게 아니라 배암 말을 했다는 배암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기 때문에 말씀해 주신 그 말을 우리가 믿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것은, 벌써 예수님께서 우리 할  일 대신 다해서 대형도 했고, 또 행할 것도 대행 했고, 대 화친도 해서 우리의  구원은 다 이루어져 가지고 있습니다. 다 이루어져 가지고 있는 그 구원을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받으면 됩니다. 믿으면 되는데 믿지 안하면 그 구원이, 그  구원을 우리가 반대하는 사람이요 배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다고 하는  자에게는 그 구원이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가 된다' 그분이 해 놓은 일에 우리가 인정할 때에  되지만 인정 안 하고 부인하면은 그거 그에게 줄 수가 없는 것이고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다 이루어 놓은 구원을 우리에게 지금 받아 가지고 우리  것을 삼으라고 이렇게 주님이 하신 것인데, 구원을 우리가 참되다 인정하고  받으면 되는데 우리가 '아, 나는 인정 못 한다. 나는 인정 못 한다. 나는 반대다  거부한다' 하면은 믿지 않기 때문에 그 구원을 우리에게 주실수가, 우리 구원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성경으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당신이 말씀해 놓은 것도 많고, 하실 일도 많고 약속한 것도  많고, 우리에게 교훈한 것도 많고 이런데, 이교훈과 이 약속과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으니까 주의해라' 주의 시킨 것도 많고 '이런 거짓말들이 많다. 세상에는  이런 유혹들도 많다' 이렇게 했는데, 그분이 말씀하신 그것을 반 믿으면 주님을  반 믿는 것이요 다 믿으면 다 믿는 것이요 안 믿으면 안 믿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으로써 그분을 믿고 안 믿는 것이 표시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우리에게 주시고 세상에 두시는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믿었느냐,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얼마나 인정을 하느냐, 또 그분이 하신  일을 얼마나 따랐느냐, 얼마나 사실로 인정하고 네가 받아 들였느냐 하는 그것을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면, 심판은 공심판과 사심판이 있는데 그 심판은 뭣 하는 것이오? 심판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렇게 이렇게 해 놓으셨는데 그분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따랐느냐, 그분을 얼마나 믿었느냐? 그분을 믿은 것만치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있고 그분을 부인하는 것 만치 성경 말씀을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믿느냐 또 거부하느냐 그것을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이 이 세상 살이입니다.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하나님이, 당신이 신구약 성경에 말씀해 놨는데 이것을 믿는 자는, 믿은 자는  믿은 것만치 당신이 책임을 져서 그 일을 무궁세계에서 그대로 이루어 그대로  주실 것이고, 믿지 안한 자는 안 믿은 것만치 그와 같이 해 주시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그 사실을, 사실을 이다음에 판단해  가지고 그대로 갚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일이 이거 참 제일 복이 있고, 하나님 믿는  것이 제일 풍요하고 제일 큰일이고, 이것은 그만 하나님 믿는 것이 전부인데  전부 다 되는데, 하나님을 우리가 믿을라고 하지마는서도, 하지마는서도 믿는지  안 믿는지 우리가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연습을 크게 말하면, 하는, 우리 하는, 세상에 살면서  하는 일이 무슨 일이냐? 우리 하는 일을 크게 한 마디로 말하면 무슨 일 하고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을 믿는 일을, 하나님을 믿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을 우리가 할라고, 믿음을 만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만들라고. 하나님을 믿을라고 우리가 애를 씁니다. 하나님을 믿을라고 애를  쓰고, 그래서 차차차 하나님 믿는 것이 커져서 하나님 믿는 일을 다 하면 완전  다 성공입니다. 하나님 믿는 일을 다 할라고 이렇게 하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뭣을 하고 있는가? 믿음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만들고 있다. 또 뭐 하는가? 믿음을 만들고 있는데 믿음을  써먹고 있다. 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또 뭘 하는가? 믿음으로 믿음으로, 그  지극히 보배로운 것이 있는데 믿음을 가지고서 그 하나 둘 셋 그것을 우리가  끌어다가 내것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 믿음을 만든다, 믿음을 써먹는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무궁세계에 내가 가지고 살 내것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그런  세상이다 이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러면, 믿음은 어떻게 만드느냐? 그것은 성경 말씀과 우리 현실을  닥치는데 현실에 그 성경 말씀대로 내가 믿으면 성경 말씀대로 해야 될 터인데  현실 당해서 할라 하니까 안 됩니다. 처음에는 '성경 말씀대로 해야 될 터인데'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이 참되다 인정하면 우리가 행할 수 있는데 우리가  아무래도 그 현실에서는 염려가 되고 겁이 나고 의심이 나서 믿지 못합니다.

이라다가. 처음에는 실패하고 또 고다음에 고런 현실 닥치면 고다음에는 조금 더  하고, 몇 번 닥치고 난 다음에 고 다음에는 고 현실에서 말씀대로 그대로  행합니다. 그러면 고 말씀을 믿는 사람이 됐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자꾸, 처음에 대번에 믿는게 아니고 차차 차차 믿음이 자라서,  그러기에,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간다. 믿음이 키워져 가고 믿음이 확고해져  가고, 또 백 가지 가운데에 한 가지만 믿었다가 그 다음에는 백 가지 중에 두  가지 믿고 세 가지 믿고 네 가지 믿고 자꾸 하는 그것은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의  한 말씀대로 고대로 행하고 안 하는 거게서 우리가 자꾸 믿음이 하나 둘  만들어져 가지고서 커져 가지고 돼져 간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이 현실은 믿음을 만드는 현실인 것을 알고, 내가 현실에서  그 말씀을 인정 안 하면 그 말씀대로 안 할 것이고 그 말씀을 인정하면 그  말씀대로 하게 될 것이니까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내 현실에 내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그 행동은. 내 마음이 그런지 안 그런지 하는 것은 그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또 내 마음이 그렇고 안 그런 그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와 가지고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그만치 아니고 그거고 하는 거 나타납니다. 인정하게  역사하시면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안 하면 안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그만한 접선이 되어 있다 안 있다 하는 그것입니다.

 이래서, 과거에는 그것을 내 몸이 행동하지 못한 것은 그 속에 내 마음에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행동하지 못했다는 것이요, 내 마음에 거게 믿어지지  아니한 것은 주님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접선이 돼 가지고서 주님이 내 안에 와  가지고 내 마음을 주장하지 못한 증거라 그 말입니다. 못 한 증거라. 그러니까,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날뛰었지 그분이 내 마음을 주장했더라면 내 마음이  그분에게 주장을 당해 가지고서 그분에게 피동됐을 터이니까 내가 그 마음이  됐을 거고 그 마음이 됐으면 내 행동이 그렇게 나타났을 거고 내 행동이  그랬으면 모든 이루어지는 사건들이 그와 같이 됐을 것이라 그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꾸 믿음을 만드는 세상인 줄 알고, 내가  현실에서고 말씀대로 고것은 하지 못했으면 '나는 요번에는 믿음 만드는 믿음을  만들지 못했다. 만들지 못했다 실패했다.' 그러면 그 현실이 지나가 버렸으니까  그 뒤에 후회가 되지요. '그렇게 할 걸' 아무리 후회를 해 봤자 그 현실에서만  만들기 때문에, 말로만 그랬지마는 현실이 탁 닥치니까 안 됐더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고걸 만들지를 못했어. 하나님을 믿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치  못한 것이 되고 말았다 말이오. 인정했으면 내가 됐을 터인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또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재불 그런 현실을 줍니다. 재불 현실을  줄 때에 '아, 지난번에는 고렇게 못 했지? 그래 내게 의심이 있고 염려가 됐고  내 주관이 들어서 못 하게 했는데 요번에는 닥치면 하겠다' 고 다음에는 고 현실  닥치니까 고대로 기다리고 있다가 고대로 딱 실행해 버립니다. 실행했으니까 고  때에 하나님의 말씀 고 말씀을 자기가 믿은 것이요 고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믿은 것이요 고 말씀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은 것이요 고렇게  행동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믿은 것이 돼 버렸다 그말이오. 믿은  것이 되어, 되어 지나갔다 말이오. 믿음으로 통과됐다 그말이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자꾸 믿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하는 이유가 뭐이냐? 이거 다 서론입니다. 서론인데,  본론은 뭐인고 하니 성경에 우리가 얼마든지 존귀해지고, 얼마든지  영광스러워지고,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이 막 우러러 보고 이렇게 높이고, 우리가  존귀해지고 영광스러워지고 모든 사람이 우리를 환영하고 모든 사람이 우리 앞에  머리를 숙이고 우리 발의, 우리 발의 티끌을 핥으리라 하고 우리 발의, 우리  발을 핥으리라. 우리 발을 핥는다 했어. 우리 발바닥을, 우리를 얼마나 존귀히  여겨 발바닥을 핥는다 했어.

 이렇게 성경에 우리가 존귀해진다는 이 사실을, 거짓말 안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이렇게 존귀해질 수 있다' 이렇게 성경에 말씀을 해  놨는데 우리가 그렇게 되고 싶기도 하고 그런 사람 되길 참 원해서 이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엊저녁에 말한 거와 같이 그렇게 오늘 좋았다가 내일 당장  멸망받을 그것도 좋아서 막 이와 같이 지금 탐을 하고 있는데 영원히 이렇게  존귀해진다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했으니까 이 존귀해지는게 얼마나 좋습니까?  이거 얼마나 취하면 가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존귀해진 것을 취할 만하고 가치가 있는데. 우리가 하고 싶지마는서도  그것을. 그렇게 되고 싶지마는 되지 못하는 것이 그게 뭐이냐?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될 수 없는, 그런 희망이 없는 자라서 우리가 되지 못하는 거 아닙니다.

우리가 또 그렇게 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없어서 안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는 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들이요 그렇게 될 수 있는 길도 있는 것이요 그렇게 될 수 있는 그  능력도 우리가 가진 사람들입니다.

 다만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안한 그것만이가 지금 문제입니다. 그렇게 안 하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이 이라면 된다 이리 이리 하면 된다 하는데 그리  그리 하면 된다 하는데 그렇게 안 하니까 우리가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될  터인데.

 지난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말했는데 소금이 맛을 잃으면 그렇게 아주  쓸 데 없는 거 되고 밖에 버리는 거 되고 사람에게 밟히는 거 되고, 소금이 맛이  있으면은 밖에 버리지 안하고 안으로 영접해 들이고 또 쓸데 없는 것이 아니라  쓸모 있는 것이 되고 또 사람에게 밟히는 거 반대의 그것은 존대함을 받게 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지난번에 반이 공부했습니다. 그거 다 잊어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고 그대로 행해야 되겠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 말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오늘  아침에 말한 것은, 천지는 변해도 이 말씀에는 변하지 않다, 하나도 가감이  없다, 다 정확무오하다 그것을 지금까지 말을 했고.

 또, 성경에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모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편집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 모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도 빠진 것이 없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해 놨습니다. 하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진 것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말 하는 건 뭐이냐 하면 성경에는 짝 없는 말이 없다 또 그렇게  말했습니다. 짝 없는 말이 없다 말은 이렇게 상대 없는 말이 없다 그 말입니다.

된다 했으면은 안 된다는 것을 거게서 된다, 이라면 된다 했으면은, 이라면 된다  했으면은 이렇게 안 하면 안 된다 하는 말입니다. 네가 소금이 맛을 잃으면  이렇게 된다 하는 것은 소금이 맛을 잃지 안하면 이와 같이 된다 하는 말입니다.

이 반대로 된다. 그러기 때문에, 된다는 말이 있을 때에는 된다는 그걸 된다는  걸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반대는 뭐이냐? 안 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라면 존귀해진다 했으면은 그 존귀해진 것에 천한 것이 대립으로 상대방이  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존귀해진다 할 때에 '아, 이렇게 존귀해진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안하면 천해지겠구나' 존귀한 걸 말할 때에 천한 것이 거게  같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고, 되는 길을 말했을 때에 안 되는 길이 또 거게 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또 우리가 산다는 말씀이 있을 때에는 거게는  죽는다는 것이 같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짝 없는 말씀이  하나도 없다 하는 주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는 믿어야 되고 여게는 빠진 것이  없다 하는 말씀을 우리가 또 믿어야 되겠고, 이 말씀은 털끝만치도 가감이나  변함이 없다 틀림이 없다 거짓이 없다 하는 것도 우리가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거게서 믿을 때에 우리는 모든 것이 되어집니다.

 다음으로 시간 있으면 또 증거하겠습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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