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명령 순종

 

1985. 1. 20. 주일오후

 

본문 : 신명기 28장 1절∼6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기독교의 구원은 이 피조물들에게서 이루어지는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서 영계와 물질계 모든 것을 지으셨고 그다음에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영원하고 신령한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영원하고  신령한 것을 창조하신 것이 곧 우리들의 구원인 것입니다.

 다른 이종교는 피조물끼리 이렇게 저렇게 그 모든 지능과 욕망과 계획을 가지고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하나님의 정죄하신 저주하신 사망 아래에서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고 이렇게 망하고 저렇게 망하는 그런 방편들을 다 그들이  모색해 가지고 하는 일들이지 거게 생명은 하나도 섞여 있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 멸망 가운데에서 구출하시기 위해서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첫째  아담으로 하나님의 창조한 것을 실패케 한 거게서 둘째 아담으로 도전하셔  가지고 이미 사망케 된 그것을 변화시켜서 재생시킬 뿐만 아니라 영원한 것으로  다서 창조 하셔서 이루시는 나라가 기독교의 나라요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피조물들이 이렇게 저렇게 공작하고 협력해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창조주가 하시는 역사인데. 창조주가 하시는 역사이면서  앞으로 변동될 것이나 또 사망할 것이나 그 불완전한 것들을 지으시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이 아니고, 이제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것도 신령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재생을 해서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동되지 아니할 것으로  성화시키시고 또 그 외에는 영원한 그 완전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만드시는  이 구원이기 때문에 이것은 피조물로서는 털끝만치도 거기에 가담을 하거나  협력을 하거나 보충을 하거나 할 수가 없는 근원이 다른 그런 이질의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거는 다 영원성의 것이요 완전성의 것이요 불변성의 것이요  다 참의 성의 것들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은 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구원을 베풀어 주실 때에는 그  주시는 구원을 받는 방편은 다만 그가 하시는 그 일을 또 그가 해놓으신  그것들을 인정하고 받는 거 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어떤 추호의 그 지능의 역사라도 거게 가담되면 그것은 다 죽은 것이었고 다  저주 아래의 것들이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런고로. 기독교의 구원은 순전히 믿음으로만 받아서 가지는 구원이지 믿음  외에는 받는 방편이 있을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이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그 심령은 어두운 심령이요 어린 심령이니까 거게 대해서 여러분들이 땀을  빼고 진통을 앓고 그렇게 애를 쓰지 안하면 이 도리가 알려지지 안할 것이요 또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이 믿음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고통을 앓고 땀을 빼야 된다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의  마음과 몸이라는 것은 근본 색깔이 없는 무색의 존재인데 이 배암으로 말미암아  감염 되어서 악령과 악성화 되었고 우리 생활은 악습화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이 구원을 방해합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그 초자연의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달리는 우리는 할 길이 없고 다만 인정하고 받으면  됩니다. 인정하고 받으면 되는데,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있고 받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자기 아닌 자기 곧  자기를 죽인 원수인 자기인데,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악령이 대장됐고  악령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우리 마음을 자기중심으로 살게 유혹을 시키고 우리  몸을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살게 유혹시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곧 배암으로  인해서 유혹받은 원죄인 것입니다.

 사람은 원죄와 본죄로 죽는데 원죄라는 이 원죄가 자기중심으로 하늘에서  범죄해서 쫓겨 내려온 사탄이가 인간계에 들어와 가지고 인간도 자기. 중심으로  살게 유혹시킬 때에 해와가 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으로 선악과를 먹었고, 또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에 아담도 하나님 잊어버리고 제 중심으로 살아 해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멸망을 받은 그 죄를 가리켜서 원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원죄가 들어서 하나님의 것을 이것은 댓가를 낼 수도 없고 공으로 받을 수밖에  없고, 받는 데에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구원이기 때문에 어디까지 나 유한한 자유성이지마는 자유성을 가진  귀중한 구원입니다. 동물이나 이런 식물 이런 거와같이 일방적으로 다만 거기에  인격 없고 자유성 없이 피동적으로 본능적으로만 이런 것들을 구원할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이유도 없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성을  주어서 어디까지나 우리 구원은 이 자유성을 살려 가지고 유기적으로 해서  구원할라고 하시기 때문에 거기에 자기중심이라는 이것이 방해를 합니다.

 자기중심이라는 이 원죄가 방해하는 것을 하나님께 그것을 소멸해서 없애  버릴려고 하면 없애 버리지마는서도 그러면 강제가 되고 자유적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모양으로 가르치시고 타일러서 자기를 주관하고 있는  자기중심이라는 그 악령의 유혹인 원죄를 부인하고 자존자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그분의 하신 것을 참되다 인정을 하는 것과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받는 이 두 가지로만 자유성을 살리고 하나님이 주신 초자연적인  초피조물적인 피조물이 가질 수 없는 초피조물적인 이 시공과 모든 면에 제한을  벗어서 완전히 영생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얻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구원은 믿음으로만 받을 자격이 있고 받을 능력이 있고 또  순종으로만 받을 능력이 있고 자격이 있습니다. 인정치 안하면 거부하게 되고 또  인정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안하면 그 구원이 와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령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믿는 거 외에 다른 방편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해서 이것은 초인간적의  것이기 때문에 그 관계에는 믿는 거 외에는 관계가 있을 수가 없고 믿는 거  외에는 당신에게 도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씀하는데 당신을  인정하라는 대로 인정하고 믿으라는 대로 믿고 당신이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거 그 외에는 그분에게 손이 닿을 수가 없고 그분에 미쳐 갈 수가  없고 가까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령은 이 물질을 초월한 이 피조물을 초월한 하나님의 구원을  피조물과의 관계만 가지고 따져서 이 이치를 가지고 이 이치를 무한히 초월해  있는 이치와는 상관도 없는 거리 높은 이것을 끌어 내려 가지고서 이 이치로  가지고 사람들을 자꾸 유혹시켜 가지고 이 이치대로의 자기 주관대로의 다시  말하면 물리대로의, 또 타락한 인간들의 생의 법칙대로의 것을 가지고 따져서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여게 유혹받아 가지고 이 구원을 얻지 못 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성신의 감화를 받았을 때에 비로소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또 바다 위에 뛰어 내리는 거와같은 그런 순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저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 하나를 세밀히 이거 따져서 절대  기독교는 비판적입니다. 비판을 해 가지고서 비판이 없으면 그거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비판하고 비판해서 과연 이는 이럴 수밖에 없다 세상에 모든 이치가  다 와도 이 이치를 소멸할 수가 없고. 또 피조물의 어떤 것의 그 가치를 가지고  올지라도 이 가치를 능가할 수 없다는 이 사실을 깨달아 이 구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구원은 비판의 구원이며 평가의 구원이며  실지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능력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된다는 이것을 확고히 잡아야 되지 이것을 잡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성경은 전부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믿을 때에  병신이 나았다, 믿을 때에 손대지 안하고 죽은 자가 살아 났다, 믿을 때에 그  홍해가 말랐다 또 믿을 때에 그 열 가지 재앙에도 보면은 하늘에서 이런 저런  기적이 나타났다 또 땅에서도 이런 저런 기적이 나타났다. 모두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말하면 교훈은 무슨 교훈을 하고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허무 하나 믿으라. 허무한 것 같으나 네가 그 부패성을 근본 삼아 가저고 하기  때문에 허무하지 하나님에게는 참되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믿어 봐라. 그래서  기독교는 순전히 믿음으로 시작해 가지고 믿음으로 완성을 이루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에, 순전히 기독교는 믿음으로 된 도입니다. 지식도 믿음의  지식이라야 되고 행동도 믿음의 행동이라야 되고 회로애락도 믿음의  희로애락이라야 되고 생명도 믿음의 생명이라야 되고 자기의 그 자존하는 존재도  믿음의 존재라야 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가 좀 힘들 것입니다. 너무도 우리는 도에 먼  유치한 인간적인 면에서만 날뛰고 있기 때문에 암만 해 봤자 게를 잡아서 물에  넣는 거와 마찬가지로 내나 그리 해봤자 인간 주관으로 돌아가고 인간 주관으로  돌아가고 이래서 구원이 된 것 같으나 구원이 이루어지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지식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땅위에 수많은 지식이 있지마는  하나님이 당신이 당신의 지식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그 지식을 내가 받아  들임으로 내 지식된 그것이 믿음의 지식입니다. 당신이 이렇다 할 때에 천하가  다 반대해도 '그렇습니까?' 하고 그렇다고 받아 들여서 그런 것으로 지식하는  것이 그게 믿음의 지식입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뭐 암만 위생주의를 한다고 해도 이백 년 살았다는 사람이  없는데 영원히 죽지 안하고 산다는 그것이 이치로 따져서 되어집니까? 무슨  이치로 따져서 되어집니까? 그런 것 다 이치로 따져 가지고서 안 됩니다. 제까짓  게 무슨 컴퓨터의 세상에 세계라고 해 가지고서 뭐 컴퓨터에 천억이라든지  억억억억만을 가지고 있어서 계산을 되어도 사람이 영생한다는 것은 절대 계산이  안 맞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인간의 지식에 이해가 안 됩니다. 다만 이것은  하나님이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하는 그 계약의 선포를  믿으므로 영생할 것을 자기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기전에 우주가 생겨졌는데 우주가 어떻게 생겨겼는가? 모든 그 명철한  과학자들이 똘똘 뭉쳐서 한덩어리가 되어 가지고서 해봤자 저거가 어떻게 해서  이 우주가 생겼는가 하는 그것을 제 머리 가지고 짜내리라 생각해 가지고서 뭐  지질학이니 우주학이니 또 모든 음파학이니 공간학이니 이런 모든 망령을 부려  가지고서 이 우주는 억억만 년 걸려서 창조됐다 하나마 마지막에 다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암만 연구해봤자 여게서 나왔다 할 만한 그런 답안이 나오지  안할 것이요 그런 계산이 나오지 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는 요 말씀을 믿는 자에게 믿음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리켜 주시는 그 지식을 내가 믿으므로 네  지식을 가진 그 지식이 살았고 믿음의 지식이 허무한 것 같지마는서도 믿음의  지식만 살았지 믿음의 지식이 아닌 것은 다 죽은 지식입니다. 믿음의 지식만  살았습니다. 믿음의 지식은 어떤 게 믿음의 지식이냐? 하나님의 지식이 이렇다  할 때에 내가 고대로 받아서 '아,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 나는 그렇게  알겠습니다.' 하는 요게 믿음의 지식입니다. 믿음으로 된 지식이라야 되지  믿음으로 되지 안한 지식은 천하 지식을 다 갖춰도 너는 사망이라, 너는 저주  아래 있다, 너는 너 죽이고 남 죽이고 속이고 속는 그 지식뿐이지 산 지식은  네게는 하나도 없다고 단언을 지을 수 있습니다. 단언을 지을 수 있어. 온  세계의 지식이 똘똘 뭉쳐 가지고서 한 덩어리가 되어 가지고서 내 앞에 오면은  내가 말하겠어. '너거 지식은 사망 아래에 있다. 산 것은 하나도 없다. 완전히  죽었다. 믿음의 지식을 가져라. 하나님이 이렇다 하시면 그 지식을 받아 가지고  예, 그렇습니까? 나는 그대로 압니다. 요 믿음의 지식을 가지라.' 거기서  정죄하겠습니다. 뭐 그런 형펀에 그것도 호기심인지는 모르기는 모르지마는서도  만일 뭉쳐서 그리 된다 하면은 좋다 하고 정죄하고서 그 자리서 죽고 정죄하고서  하늘나라 가서 호령치겠습니다.

 믿음의 지식. 또 믿음의 생명, 하나님이 '이렇다' 할 때에 '아, 그렇습니까?'  그 생명을 받아서 가진 그 생명이 완전한 생명입니다. 영생도 믿음의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영생한다 하기 때문에 '예, 영생합니다. 영생 할 걸 나는  믿습니다.' 그게 믿음의 영생입니다. 믿음의 기쁨 하나님께서 기뻐하라 하면  아무리 천인 만인이 울 자리라도 하나님이 기뻐하라 했으니 기뻐하는 그것이  믿음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에게 지식이나 희로 애락이나 생사나 모든 성패나  모든 능력이나 모든 종별의 그 종별의 존재성이나 목적성이나 그 전부에게서  하나님이 빠진 것 없이 이렇다 저렇다 이렇다 저렇다 낱낱이 말하기 때문에  '고대로 믿습니다. 고대로 믿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모든 존재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빠짐없이 가르쳐 주신 그대로 믿습니다. 천하 대학이 다 똘똘  뭉쳐서 반대해도 나는 고대로 믿습니다.' 하는 요 믿음으로 지식하고 믿음의  것만 가집니다. 하나님께 피동된 이 피동의 것으로만 가지는 것이 기독교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의 구원은 믿음으로 된다는 이런 말을 제가 소경 같은 이  과학의 물리 가지고서 더듬어서 천 년 만 년 가 봤자 한 뼘도 못 가는 그까짓 거  역사 육 천 년이 됐지마는 기껏 별에 한번 갔다 와 가지고서 큰 야단지기는  그따위 그 병신 같은 앉은뱅이 노름을, 우리의 구원은 우주 이거는 일 초 동안에  억억만번이라도 돌 수 있는 이 구원이 우리 구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부활할  것입니다. 당신이 말씀했기 때문에 믿습니다. 우리는.

 그러기 때문에 오늘 이 봉독한 이 말씀에도 천하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난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만 뛰어나는 것이 아니고 천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다는 말은  다른 성경에는 보면은 천하뿐 아니라 천상 천하의 자존하신 하나님 다음에는  뛰어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하늘에 수많은 영물들도 있고 이 물질제는 수많은  그 물질들도 있지마는서도 그 모든 것 위에 뛰어난 것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거는 뛰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보다 실력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아 그대로 지식하지, 그분과 연결되어  가지고서 그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지, 이러니까 그분의 수족이 됐지 그분의  몸이 됐지, 그분의 전지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지, 전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지, 그분의 통치가 우리에게 와서 우리가 그분의 통치 받아 가지고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니까 피조물 위에 뛰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거는 필연한  사실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없고 이보다 더 정확한  것이 없고 이보다 더 이 의심 없이 학고한 것이 없습니다. 믿음을 안 가진  자에게는 이거는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믿음으로 되는 구원이요  도입니다.

 우리가 '내가 네게 명하노니' 하는 이 말씀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나님 당신이 '내가 네게 말한다' 대화적으로 대화적으로서 '내가 네게 말한다'  이 지극히 크신 분이 그분이 우리 믿는 각자에게 대해서 일대 일로 직접 상대해  가지고 당신이 말씀하시는 이 말씀을 자기가 믿는 대로 그이에게 역사가 나고  결과가 맺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그 나라에 정권자의 말만치 정권자의 그  권위만치 인정 안 하는 자는 인정도 안 할 것이고 이 우주를 다 뭉쳐봤자 여게  이 말씀의 권위에 뭐 비교도 억억 만도 할 수 없는 하늘과 땅이 높은 것처럼  그렇게 차이있게 그렇게 인정하는 사람도 그 믿음으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근본을 다 말할라면 시간 없으니까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네게 명하는' 내가 직접, 오늘날이라 하는 것은 요 현재를 말했습니다.

'오늘날'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내가 대면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내가 네게  명하는' 요 누구는 너희에게 명한다는 그 단체에 두고서 말하는 그런 말씀이  아니고 개별적으로 '내가 네게' 주님이 개인 상대로 네게 하신 이 말씀인  것입니다. '네게' '오늘날' 많은 세월 가운데에서 네가 언제 그렇게 말했지가  아니고 오늘날 지금 바로 이 현재 네게 명하노니 이 모든 명령을 네가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고  그렇게 약속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그 명령, 이 명령을 오늘날 네게  명한다고 말씀하시는 요거 똑똑히 못을 박아 말해놨습니다. 네가 어제 순종한 것  아래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오늘 네게 명하는 요 명령 순종, 요게  생명입니다. 요걸 에누리해서 다 깨트려 버리고 마귀라는 놈이 팍 파묻어서 요걸  파묻어 놨기 때문에 요 교훈이 다 죽었고 우리 구원들이 다 이루어지지 못하고  마귀에게 삼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네게 명하는' 우리 요 현실에  현실에만 기독자들이 아무리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지마는서도 실지로 건설  구원을 이루는 역사적으로는 활동적으로서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대면되는 것이  고것이 현실에서만 대면되지 현실을 벗어나 서는 대면이 없다하는 요것을 말씀해  놨는데 여게 대해서 언급을 해놓지 안했습니다.

 제가 여게 대해서 누가 좀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너무 나 혼자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꾸 신임하지 안하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좀 말하는 동무가  있는가 해서 뭐 주석이 있는 대로 찾아보고 양성원에 주석이 나는 뭐 어학을  공부하지 안했기 때문에 모르니까 어학 아는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라  하니까 아무 주석에도 여게 대해서는 언급을 해놓지 안앴습니다. '오늘날 네게'  내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중대 한 것이요 안에 함축되어 있고  있지마는서도 요게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안했습니다. 그 밖에 것만 자꾸 이렇고  저렇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주님과 대면하는 것은 현실에서만  대면할 수 있다. 대화도 현실에서만 대화할 수 있다, 동행도 현실에서만 동행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여게 밝혀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네게 명한다는 것은 이 현실에 내가 지킬 당신의 명령입니다.

내 현실에서 내가 지켜야 할 당신의 명령 이 명령을 찾는 데 대해서 베드로후서  1장 5절도 들어서 과거에 말씀을 했고. 요한계시 3장 3절 이하에 있는 말씀도  들어서 말씀을 했고, 또 오늘은 오늘 오전에는 이 명령에 대해서 부득히 자꾸  이래 말하면 모르니까 이 명령을 또 좀 찾기 쉽고 알기 쉽도록 한번 또 발표해야  되겠다 해서 이 명령을 할 수 없어서 그 두 가지로 갈랐습니다.

 우리 구원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가른데 대해서 논평하는 사람들이  많지마는서도 우리는 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분리하지 안하면 우리가  혼돈되고 구원 이루는 데에 많이 불편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가지로 기본구원  건설구원으로 분리해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 신앙도 그 신앙의 씨라 하는 것으로  구별을 씨라 하는 것을 분별해서 신앙의 씨를 말하고, 또 신앙의 씨가 점점  자라가는 것으로서도 말을 했고. 이제는 이 신앙에 대해서 기본명령과 건설명령  이 두 가지로 나누어서 우리는 여게서 궁구 할때에 명령 찾기가 대단히 쉽고 또  아주 좋은 편리한 그런 방편이 되어 있습니다.

 기본 명령을 우리가 순종하면 기본 명령을 우리가 순종하는 것이 기본 명령을  지키는 것이 기본 명령을 지켜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구원에 대한 일이요  기본 구원을 우리가 얻은 우리들은 기본 명령을 지켜서 순종을 하면 건설 명령을  찾아서 행할 수 있는 그 능력이 필연적으로 오게 되고 필연적으로. 이거는 무슨  그 비합리적으로 모순적으로 오는 게 아니라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오게  되고, 건설 명령을 우리가 찾아서 지켜 행하게 되면 이 건설 명령을 지켜  행함으로 통하여서 우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 또 그 속에서 우리에게 건너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와의 대면은 이 현실에서만 된다 하는 요 사실을  믿을 때에 요 믿을 때에 요 믿음에서 뭐이 나오는고 하니 기본 명령이 나오고,  기본 명령을 지켜 행할 때에 요게서 필연적으로 건설 명령이 거게서 발견되어  나오게 되고 건설 명령을 지켜 행할 때에 필연적으로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오게 되고,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오면 각양으로 역사하는데 이 능력이  먼저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우리의 유한한 그 속에 무한한  능력이 오고, 무지한 속에 전지 한 지혜가 오고, 죽은 우리 속에 영원한 생명이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는 이것이  그것이 우리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 능력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것을  우리가 긍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와 가지고   그리 가면 여러분이 또 복잡할 터이니까    우리 안에 와 가지고서 역사를 합니다. 그저 이래 놓으면 이것이 수 없는 모순  속에 모순 같아서 정반대로 모순인데, 모든 신구약 성경의 이 구원 도리는  전체가 보면은 모순으로 보입니다. 정반대인 모순성을 찾아 가지고 이 모순이  일치되기까지 명상을 하십시요. 일치되기까지 궁구를 하십시요. 명상해서 안  되거든 실행을 해 보십시오. 실행하면 대번에 압니다. 제가 책상 위에 앉아  가지고 논리적으로 발명가가 발명하면서 논리적으로 자기가 암만 발명해 가지고  해도 책상을 떠나지 않고 고게서 제가 십 년 발명해 봤자 그 발명하지 못할 것을  가서 실지로 해보면 아이구 이거야 될 건데 왜 안 되느냐? 이게 와 될 건데 안  되겠느냐? 이거는 천에 만에 하나도 틀리지 안하고 이거는 될 건데 와 안 되노?  될 건데 안될 때에 그 사람은 새로 거게서 각성이 나오고 거게서 틀린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서 첫째는 우리 속에 와 가지고  역사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 1장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그 역사하심의 그  능력의 강력이 역사하심을 말미암아 믿는 우리에게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 하노라'  믿는 우리에게 믿을 때에 그 능력이 온다 그말이오 믿는 우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 오는데 그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가 가지고서 사망으로 사망에 속한  것을 다 이겼습니다. 죄인됨으로서 모든 것을 죄를 다 이겼습니다. 사망으로  사망을 이겼고 사망으로 죄를 이겼고 사망으로 마귀를 이겼고 사망으로 유혹을  이겼고 사망으로 불목을 이겼고 사망으로 모든 난제를 다 해결했고 모든 것을  역사하신 그 역사를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예수님 안에 가 가지고 역사해 가지고  역사하셨는데 우리가 믿을 때에 이 능력이 우리에게 들어온다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네게 명하는 요 명령을 지켜 행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 와께서  너를 새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한다' 하는 요 말씀 가운데에는 그 밑에  있는 것이 다 함축됐습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 말은 넓은 범위에서  말하면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다는 말이니까 피조물 위에 뛰어난다면은 주관과  객관의 양면의 역사가 있지 안하면은 안 됩니다. 우리 자체가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날 만한 그 실력을 가진 것이라야 되지 실력이 없는 그것이 피조물 위에  올라가면은 자기 실력 이상의 지위나 그 대우를 받을 때에는 그는 사망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뛰어난다는 그 말씀은 벌써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 안에 와  가지고서 우리 자체로서 하나님 다음의 모든 피조물 중에는 뛰어나는 이 자체가  되는 우리 내재 역사의 이 지극히 큰 능력의 성화 역사, 곧 이 피조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되는 이믿을 때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지극하심  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겉은 사람이나 속은 하나님이 십니다. 겉은 사람이나  속은 하나님 되신 이로서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이 능력이 역사하시고,  그다음에는 이 능력이 우리 안에만 역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 밖에 와서 역사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네가 들에서도 복을 받는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는다 그 말은  네 자체에 대해서 말함이 아니고 지극히 큰 능력이 나 아닌 내 밖에 모든  존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서 그것이 나에게 복되게 역사하도록  그렇게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당신이 우리가 믿는 믿음을 통해서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서 나를  통해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어서 이렇게 모든 것이 풍성하게  되겠다. 이럼으로서 네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고 꾸어줄지라도 꾸지  아니할 것이다.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라 말은 우리 안에 와 가지고서 우리를  통해 가지고서 그 모든 것을 또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할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 안에 와 가지고서 우리를 변화시켜서 우리  자체를 지극히 큰 능력이 내재하셔 가지고 변화시켜서 겉은 사람이나마 우리는  집같이 돼 버리고 지극히 큰 능력이 무형의 전지가 내 안에 역사하니 내가  전지자요 무형의 전능이 역사하니까 내가 전능자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안에  역사하시고, 내 밖에 환경으로 나를 위해서 있도록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그 신인 양성 일위의 자체를 말한 것이고  자체가 올라갔고 모든 것을 그 앞에 무릎을 끓게 하는 것은 그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으로 하여금 이 능력으로 인해서 복종하도록 했고, 또 주라 시인 하도록  이렇게 한 것도 그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지극히 큰 능력이 붙들고 역사하신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그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나 그 나사로나 주님이 부르실 때에  살아난 것은 지극히 큰 능력이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를 예수님을 통해서 살린  역사를 했습니다. 오늘도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를 통해  가지고서 역사하시고, 또 이 지극히 큰 능력이 내 안에서 역사하고 내 밖에서  역사하고 이 둘을 같이 역사하는 그 역사를 또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능력이 와 가지고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고 우리 밖에 역사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안팎에 역사하시고 이래 가지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과학적이요 이 물질 과학이 아니라 인간  과학적이요 이거는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이 거짓말쟁이면 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이  거짓말쟁이가 아니고 진실한 자이고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이라면 이는 틀림없이  변할 수 없는 필연성의 모든 일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는 복이 오고 안 믿는 자는 저만 망합니다. 언제 내가 누구  설교할 때에 그런 말을 들었는데. 누가 설교할 때에 그런 말 하던고? 하나님께서  지금은, 우리에게 은혜의 하나님으로 왔다가 그다음에 율법의 하나님으로  오셨다가 그 다음에는 은혜의 하나님으로 왔다 그 순서를 잘라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은혜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지 안하면 이 다음에는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이 율법의 하나님으로 심판의 하나님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신명기 28장에도 내려다 보면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너거들을 복되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나 믿는 모든 이 민족을 봐라 나 믿는  자를 봐라 내게 순종하는 자를 봐라. 나를 믿고 나를 바라 보고 나를 인정하고  나를 딿는 자를 봐라 하여서 세계에 자랑하고 싶어서 이렇게 될라고 애를 써도  오만 애를 써도 강퍅을 부리고 패역을 부리고 안 할 때에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여서 너희들을 존귀케 하기 위해서 견디지 못하고 열심을 다  기울인 것같이 이제는 내가 정반대로 너희들을 망치기 위해서 내 전심전력을  기울인다.' 요렇게 말씀했습니다. 요 신명기 28장에 말해 놨어.

 그런고로, 우리는 믿읍시다. 그저 당신이 선포해 놓으신 계약을 믿고 당신이  우리에게 기본 구원으로 주신 구원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본 구원 열  가지를 말했지마는서도 그 열 가지가 퍼져 나가면 얼마든지 얼마든지 우리가  거기서 연상되어서 우리에게는 깨달아질 것입니다. 전능자가우리 아버지입니다.

전능자가 우리 아버지요 전지자가 우리 아버지요 창조주가 우리 아버지요  대주재자가 우리 아버지요 만왕의 왕이 우리 아버지요 만주의 주가 우리  아버지요 주권 개별 섭리자가 우리 아버지요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주님이시요 이분이 우리를 당신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실라고  주님이 볼 수 없는 아버지의 형상이 이루어지 것같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대속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에 하나님은 그 약속하신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지마는  믿지 안한 것은 거부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자에게는 준다면 강제이니까 하나님이  계약 위약자가 됩니다. 믿음으로 준다 말은 순종으로 준다 말이요 인정으로 준다  말이오. 당신을 인정하실 때에 준다는 말이지 인정하지 안하고 부인하는 자에게  죽다면 당신이 위약자 안 됩니까? 당신은 위약하지 안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기본 명령을 믿을 때에 지켜 행할 때에 지켜 행하는 것은  '아, 주님은 나에게 이 어떤 분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나에게 사죄를  주셨다. 이렇게 큰 힘들여 사죄 주셨으니 나는 이 사죄를 현실에 지켜야 된다.'  이것이 기본 명령입니다. 현실에 지켜야 됩니다. 칭의도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과 화친한 이 화친도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그 칭의를  지켜야 됩니다. 영생 가진 자로 살아야 합니다. 새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당신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져서 모든 피조물 위 하나님의 몸과  같이 되어서 만물의 중보자가 되어지는 이 소망을 당신의 지극히 큰 능력으로  충만해지는 이것이 되게 하시는 이 사실을 믿고, 이 소망을 가지고 이 잊을  이루시는 데에는 자기의 옛사람의 자기를 부인하는 것, 사욕의 자기도 부인하고  주관의 자기도 부인하고 모든 자기의 자율의 자기도 부인하고 이 모든 것  부인하고 자기의 지식도 자기의 심신도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부인하고 하나님과  대립이 될 때에는 모든 것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제 너는 영이다. 너는 중생된 영이다, 너는 구속받은 마음이다, 구속받은  몸이다, 너는 이 법칙대로 살아야 될 자다, 너는 영생을 가졌다, 널 죽일 자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은 일차 아담에게 속한 것이 둘째 아담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것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변화를 받아야 된다. 변화를 받는 데에는 현실에서  이것을 부인하고 이 새것을 네가 받아 영접할 때에 변화가 된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아버지의 그 아버지의 주신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서 고 예수님의 당신의 몸이나 당신의 마음이나 당신의  영이나 당신의 이 심지어 신성인 이 신성 인성, 신인 양성 일위는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비어서 이 신인 양성 일위는 신성은 내나 하나님이시지마는서도  삼위일체 중에 제 이위이신 신성이기 때문에 이 신성도 삼위일체의 그 신성에게  신인 양성 일위는 그를 바라보고 그가 주는 것을 소망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그에게 복종 완성, 그의 소망 완성, 그의 그로 더불어 이 한 덩어리 되는 화친  완성 요것을 이루기 위해서 요것을 이루기 위해서 있는 자체요, 또 자체의  기능이요 전부라고 요것을 믿었기 때문에 요 순종하는 일을 위해서 요것을  투자해 가지고 요 순종하는 데에만 쓰여질 것으로서 요 목적을 위해서 순종하는  데에만 쓰여지는 것을 존재의 목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못박히셔서  운명하실 때에 당신이 다 이루었다 하시는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이제는  요거 다 아버지를 소망하는 이 소망을 소망을 위한 이 소유 전부 신인 양성 일위  전부, 신인 양성 일위 전부가 이 소망을 위한 전부로, 또 이분을 대우하고  사랑하는 전부로, 이분에게 복종하는 전부로, 이 분에게 맡기는 전부로 요렇게  했는데 이제는 요 맡기고 요 일을 위해서 요 일을 위해서 이것이 다 쓰여져 가니  쓰여져 가니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고,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는  것은 이제는 다 이루었으니까 다 이루었으니. 다 이제는 완성을 이룬 다  이루었으니 다 이루어 놓은 것, 다 이룬 것, 완성을 한것, 완전 승리한 것  받으시옵소서 하고서 낙원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첫 열매로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은 이 구원을 우리가 이 구원을 다 받는 이 구원  받는 내 마음이 되어야 되겠고 이 구원 받는 내 몸이 되어야 되겠고 내게 있는  모든 기능도 이 구원 받는 전부가 되면 살았습니다. 이 구원 받는 요것만 위해서  할 것이 우리의 이 땅위에 있는 동안에 이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이루기 위한 요것만을 하기 위해서 있는 이존 재요  이것은 딴거 하기 위해서 있는 존재가 아니니 주님이 주신 이 대속을 내가  완전히 받는 내 심신이 되려는 이 받는 심신이 되면은 이 받는 심신이 되어서  이것을 받기 위해서 내 심신을 다 기울였는데 이 심신이 이것을 받음으로서  이것이 다 끝났으면 이 심신은 다 이것을 받는 심신이 됐는데, 아직까지 끝나지  안하고 남은 것이 있으면 아직까지 이거는 지금 심신을 받을란지 안 받을란지  미결에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미완성품입니다. 이제 이거 심신이 주님의 이  구속을 받는 요 구속 받은 심신이 되도록 구속 받는 심신이 다 되는 것은 이  구속 받는 이 심신으로서 이제는 남은 것이 없이 구속 받는 요 심신이 다 돼  버렸으면 언제 다 되느냐? 구속 받은 심신으로서 이제 미결되어 있는 것. 앞으로  구속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남아 있지 안하고 구속을 다 받고 이것이 없어져야  비로소 이 다 이루었다 하게 되는 것이지 남은 것이 있으면 아직까지 이거는  남은 때에 구속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요것이 십자가 상에서 요렇게 쓰실 요것 인것을  깨닫고 요대로 해서 다 바쳐서 요 전부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아버지의 목적  곧 전체의 구원을 위해서 요것이 다 투자되어 전체의 구원의 것이 되어지는 요  일을 하시고 난 다음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고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한 거는 승리하고 난 다음에 이제는 다 승리했기 때문에 승리했기  때문에 나를 영접해 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기본구원은 이것이 우리 기본구원 얻는 것이니까 기본구원  얻는 것은 내 심신이 사죄의 것이 완전이 되어지고 칭의 것이 와전히 되어지고  화친의 것이 완전히 되어지면 아직까지 칭의의 것이 되지 못하고 화친의 것이  되지 못하고 사죄의 것이 되지 못하고 아직까지 미완성 미결의 것으로서  아직까지 사죄를 받을라고 칭의를 받을라고 화친을 받을라고 요 받을라고 애쓰는  아직까지 미결 존재가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요 요것이 완전히 끝나 버렸으면  비로소 요게 대해서는 완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땅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본 명령을 우리가 순종할 것은 요 현실에서 이것을 어제든지  주님이 명령하신 명령인 줄 알고 자기의 그 영은 다 받았기 때문에 심신은  주님의 대속을 받기 위해서 있기 때문에 대속을 아직까지 다 받지 못 하고 남아  있는 미결에 있는 것이 없이 다 받기를 원하는 요것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다  받는 요 계명을 지키는 요 일을 우리가 언제든지 현실에서 지키고 현실에서  요렇게 생각하고 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고것이 현실에서 기본 명령을  지키는 것이요, 요 기본 명령을 지키면 건설 명령이 나오는 것이니까 건설  명령은 기본 명령을 지킬려고 하는 요 사람에게 건설 명령을 지킬 수 있는 요  필연의 것이 나오게 되고, 기본 명령 요것이 건설 명령을 지키는 고 속에서  사죄도 완성이 되고 칭의도 완성되고 화친도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거게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자기가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그것이 완성되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그 능력과 그 모든 속성은 우리 속에 와 가지고 와전히  우리 안에 와 가지고서 나 아닌 내요 또 내 중에 내요 그는 하나님이시면서 나의  주인이요 나는 그의 성전으로서 내가 아닌데 그분이 나같이 오셔 가지고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이래 하는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이 구원을 우리가  이루는 데에는 현실에서 건설 명령을 지키는 데에서 그 기본 명령의 성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본 명령의 성공은 어디서 되어지느냐? 건설 명령을 복종하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건설 명령은 장소와 때에 따라서 자꾸 변해지는 것인데  변해지는 그것은 당신이 전지한 지혜로 운전하시니까 경영 하시니까 거게 따라서  우리는 그저 믿음 지킬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그 영과 육 금생과 내세의 성공은 우리 현실에서 당신의  그 명령을 그것을 지켜 행하는 여기에 모든 것이 다 근거되어 있는데 요게 다  똘똘 뭉쳐 있는데 그러면 이 현실에서 당신의 그 명령을 찾는 것도 힘들고 또  찾는다 할지라도 행하는 것도 힘드는데 찾는 것도 행하는 것도 어디서 나오느냐?  그것은 위에서 '내가 네게' 하는 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직접 대화하는 요 사실을  자기가 깨달아야 할 것이고, 그러면 왜 이렇게 됐느냐? 이렇게 된 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되어진 우리가 기본 명령적으로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이 명령을 지키고 있을 것, 이것을 이 명령을 지키고 있으면 건설  명령을 우리가 필연적으로 거게서 발견하게 될 것이고 건설 명령을 지킬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우리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그 공장에 수천 톤의 그런 기계들이 많이 설치가 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거게 어떤 뭉텅이 커다란 뭉텅이 모타가 하나 있는데 모타가 아  돌아가면 그만 그 모든 것은 다 그대로 멈추어 가지고 있습니다. 있는데 거게  저기 스위치를 끼우니까 전기 들어가니까 모타 돌아가고 모타 돌아가니까 그  공장에 수많은 모든 기계들이 다 돌아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연결이 되고, 믿음으로 연결된 그다는 것은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고 지식을 내가 받아서 지식하고 고대로 내가 참되다 인정하고 고대로  내가 지켜 행하면 고것이 믿음이니까 알고 인식하고 지켜 행하면 믿음이니까 이  외에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되는길 이 없습니다. 왜? 이거 원 재료가  다릅니다. 재료가 다르고 이 본질과 본성이 다르기 때문에 피조물 본 거  가지고는 그거 아니기 때문에 믿음만 가지고서 그분과 우리와 연결되지 딴  걸로는 연결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만히 좀 생각해 보십시오. 연결될 수 있는가? 없기 때문에 이  믿음으로 연결되면 그 모타에 전기가 가니까 전기가 가니까 그게 돌아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능력이 믿는 우리를 통해 가지고서 우리 안에 와서 역사해서  우리가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 위에 뛰어나는 자체로 우리가 성화되어지고, 또  이 능력이 우리 밖에. 가 가지고 우리 밖에 가 가지고 모든 것을 그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서 나에게 복종하게 하고 나를 협조하게 하고 나를 위해서 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을 잘 체험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실 때에는 그 뭐 어제같이 원수로 이와같이 떨어져 있는 사람이 그 많은  사람을 통해 가지고서 교섭을 해도 안 되고 친목을 가지고도 안 되는데 하나님이  돌아볼 때에는 그 사람이 이상하게도 백 팔십 도로 변화돼 가지고서 우리를  호응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밖에서 모든 사람들을 만물들을 이 모든 그  자연의 풍조들을 그 당신이 역사하시는 것은 마치 바다가에 구멍을 웅덩이를  파면은 물이 어데 들었는지 모르게 들어오는 것처럼 이거 뭐 봄이 닥치면 이  모든 얼은 것이 언 것이 어디서 어찌 되는지 자꾸 녹아서 움이 터오는 것처럼  당신이 우리 주위 환경에 모든 데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서 우리를  협조해서 우리를 존귀케 하도록 하지 우리속에 와 가지고 역사하지, 또 우리를  통해 가지고서 모두 다 역사를 하지 우리 통해 가지고 우리 안에 역사하고 우리  밖에 역사하고 이 둘이 합해 가지고 되어지도록 또 이래 하시지 이래 가지고  우리 기독자들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 없으면 헛일입니다. 믿음으로만 꼭 됩니다. 믿음은 당신이  기본 명령이 있고 건설 명령이 있으니까 고 명령 순종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기본 구원을 지키는 그것이 그 기본 명령을 우리가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오. 이러나 기본 명령을 지키고 순종하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건설  명령으로 어떨 때에는 하나님의 전능을 네가 믿나 안 믿나 시험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 전능을 내가 믿을 수도 있고 부인할 수도 있을 그럴 때에 내가  믿으므로서 하나님의 전능이 나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전능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지, 하나님의 심판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지  하나님이 기적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지.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그 하나님의 속성 중에 이런 속성을 지켜 행하게 하고 저런 속성을 지켜서  행하게 할 때에 고럴 때에 우리가 그 속성을 지켜서 행할 때에 그분의 속성은  우리가 그분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그 행함을 통해 가시고 그 속성이 모든  인간에게 들어나 가지고서 영광을 돌리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허무한 것 같으나 이 믿음. 당신의 지식을 내가 믿고 또 당신의  지식을 내 마음으로 복종하는 그것이 당신의 지식을 내가 받아 들여서 인정하는  것이고 그대로 내가 행하는 것, 이라면은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됩니다.

이 외에는 딴걸로 되는 길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자꾸 믿음을 떠나 가지고  뭐 할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음 떠나는 자가 잘되도록 하면은 당신 일 다  파괴 아닙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서 영원한 구원 줄라 하는 거는 헛일  아닙니까? 마귀만 성공할 것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중생된 자에게는 믿음을 떠나면 당신이 방해를 합니다.

전능자가 방해합니다. 전능자가 방해해서 나중에 모든 사람이 볼 때에 '아 저  믿음 떠나도 잘된다' 하는 모든 사람에게 '봐라. 믿음 떠난 그 결과가  어쩌되느냐? 봐라.' 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도 환하게 볼 수 있게 그렇게  역사하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은 요 믿음 떠나  가지고는 사는 길이 없습니다. 중생된 자는 믿음만 지키면 우리가 천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납니다. 이는 신령한 것으로만 뛰어나는 게 아니고 이  물질적으로도 뛰어납니다.

 옛날 영국에 있는 청교도들이 지금 미국에 와 가지고 그와 같이 모든 자원에  부강한 것은 그들은 청교도들의 신앙이면 이렇지마는서도 그대로 그들은 육적인  것이 가깝습니다. 그때는 미개한 때입니다. 지금 한 삼 사백 년 전이니까 미개한  때요, 육적에 가까운 때입니다. 육적으로도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지  안했습니까? 영국은 해적이지마는서도 그들이 믿음 지킬 때에 일시적이나마 세계  모든 민족 위에 영국이 뛰어나지 안했습니까? 영국은 북해의 해적질 해 먹는  해적이 아닙니까? 미국도 그런 것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일본 나라도 우리보다 이 동양에서는 믿는 것을 사십 년 먼저  받았습니다. 기독교를 사십 년 먼저 받았오. 먼저 받아 가지고 그들이 그래도  믿는 것을 형식이나마 지켰습니다. 이러니까 그분들은 우리보다 사십 년 앞서  가지고 그만침 우리는 그 압제를 받은 것입니다. 삼십 육 년 받았다는 것이 사십  년 앞서 받았었습니다. 그들은 명치 천왕이 기독교를 영접했습니다.

 그런고로, 아무래도 금년에는 우리가 둘째 주일에 이 말씀을 했는데 우리가  금년에는 믿는 사람 됩시다. 우리가 기본 명령이 있고 건설 명령이 있는데  우리가 곧 고 현실에서 주님이 이것은 버리라, 이것은 버리라 할 때에 버리지  안하면 저는 저주입니다. 이 하나님이 저주를 퍼붓는데 골빠지게 일하면  소용있습니까? 암만 일해야 소용 없어. 암만 경영해야 소용 없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면 뭐 석 달이면 효력 나옵니다.

삼 년도 안 가요. 석 달이면 당장 효력나요. 석 달이면 그 사람이 변화될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시간 없어서 대조하지 못했으나 가서 이십 팔 장. 신명기 이십 팔 장을 졸졸  읽어 나가면서 고래만 해 보십시오. 지극히 큰 능력이 요게는 속에 와서  역사하는 걸 말합니다. '속에 와서 역사하시는 것을 요거 말씀하신 말씀이로구나  요게서는 밖에 와서 역사하시는 걸 말씀하신 말씀이로구나, 요게는 안팎에 와서  역사하는 것을 말씀하신 말씀이로구나.' 고렇게 가르면 쪽 갈라집니다.

 신앙은 개인적입니다. 축복과 저주는 개인적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백 칠십  일곱 번을 개인적으로 말했습니다. 네게 네게 네게 너 너 요렇게 개인적으로  말씀했습니다. 단체적으로 말한 것은 거게 열 한 번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하는 이 대면을 세 번이나 거게 말씀했습니다. 세번이나.

'내가 네게 내가 네게'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놓치고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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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 하나님의 도는 영광의 도/ 요한복음 1장 14절/ 1982. 7. 12.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434 하나님의 독재/ 이사야 3장 1절-4장 1절/ 1989. 5. 13.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433 하나님의 뜻 구별법/ 고린도전서 1장 20절-21절/ 1985. 12. 8.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02
432 하나님의 뜻 찾는 법/ 출애굽기 19장 24절-25절/ 1982. 2. 8.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431 하나님의 뜻만 지키면/ 출애굽기 15장 25절-26절/ 1981. 4. 2.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30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 누가복음 1장 37절-38절/ 1984. 8. 22. 수저녁 선지자 2016.01.02
429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 누가복음 1장 27절-38절/ 1984. 8. 19.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428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1984. 12. 6.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27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신명기 28장 1절/ 1985. 1. 1.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426 하나님의 명령/ 신명기 28장 14절/ 1985. 1. 9.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425 하나님의 명령 순종/ 신명기 28장 1절/ 1985. 1. 20.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 하나님의 명령 순종/ 신명기 28장 1절-6절/ 1985. 1. 20.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3
423 하나님의 목적/ 요한복음 14장 1절-6절/ 1981. 3. 27. 금저녁 선지자 2016.01.03
422 하나님의 목적/ 요한계시록 1장 7절-19절/ 1989. 6. 6. 화새벽 선지자 2016.01.03
421 하나님의 백성/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1980. 5. 1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3
420 하나님의 백성/ 에스라 8장 21절-23절/ 1975. 6. 1. 제 22과 선지자 2016.01.03
419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 예레미야 2장 1절-8절/ 1980. 10. 15. 수저녁 선지자 2016.01.03
418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 예레미야 2장 1절-13절/ 1980. 10. 17. 금저녁 선지자 2016.01.03
417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 예레미야 2장 7절-13절/ 1980. 10. 17. 금새벽 선지자 201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