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적

 

1981. 3. 27. 밤 (금)

 

본문:요한복음 14장 1절∼6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압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음녀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히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는고로 제자들이 모두 근심에 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이런 근심을 하지 말아라 이것은 너희들이 믿음이 없는고로 이렇게 근심하는  것이니 근심을 버려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이 길을 걷게 될 때에 이것을 한없는 행복스러운 생활인 것을 알고 심히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지마느 또 믿는 사람 중에는 구원 되는 길은 근심하고  싫어하고 멸망이 되는 그런 길은 기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근심하고 기뻐하는 이것으로도 자기 속에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해 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만일  아버지 집에 영원히 사는 이것이 없으면 너희들에게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이것라도 주겠지마는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은 집이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이런 것을 주지 않는다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 집에 가서 있을 곳을 예비해놓으면 내가다시 와서 너희들을 내가  아버지 못시고 사는 그곳에 너희들도 같이 살게 되리라 가서 준비해 놓으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들을 나있는 곳으로 인도해서 나와 영원히 함께 살리라 말씀을  하시고 이렇게 영광스러운 세계를 얻고 시민권을 얻는 이런 영광스러운 이  성공을 하려고 내가 지금 가는데 어느 길로 내가 가는지 내가 가는 길을  너희들이 알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따라다니는 제자들은 가는 곳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가는 길을 알겠습까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사람이 없다 그렇게 예수님이 대답을 하셨습니다. 좀 어려운  일인데,  여러분들이 양심을 가지고 마음을 쓰면 나단하게 깨달을 수가 있고 그렇지  안하면 깨닫기가 어렵고 또 책을 쓰려 하면 수없이 써도 모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가시는 이 걸음은 참 영광스러운 걸음인데 당신도 한 분 하나님  밑에 모든 피조물 위에 존영한 그 위치를 마련하러 가는 걸음이고 또 당신에게  속한 모든 택한 자들까지도 아버지 집에 가서 영원히 살 이 처소를 마련하러  가는 이 걸음이니 이 걸음은 참 그 유익이 무한하고 가치가 무한하고 참 큰  승리하고 성공하는 아주 큰 유익이 있는 이런 영광스러운 걸음으로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 영원히 없을 이렇게 영광의 절정이 되고 생명의 절정이 되고  승리의 아주 최고가 되는 이런 영광스러운 걸음을 걸어가시는데 이 제자들은  보고 그만 근심이 꽉 차 가지고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지고 낙망이 돼서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가는 곳에 길을 너희가 알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든 문제를 두고 기도하시는 그 기도가 골고다 십자가상에서 외부적으로는  악령과 죄와 사망으로 더불어 싸우고 이면에는 하나님과 한덩어리가 되는 이  결합 역사를 이루어서 영원한 것을 완성하는 예수님의 그신인양성일위로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을 완수를 해서 만족케 하며 또 모든 택한 자들의 죄와  불의와 원수된 것을 완전히 해결해서 정반대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이루는 이  영광스러운 이 승리의 길 다시 말하면 유한한 것이 무한으로 승리해서 이루는 이  영광스러운 걸음을 걸어가는데 이 제자들은 근심했습니다.

오늘 믿는 사람들도 이 하늘나라 아버지 집을 준비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이 걸음을 걸어가려고 일생 동안 기도하고 원하고 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이 길은 꿈에도 원치 아니하고 이 길은 조금도 걷지 아니하고 살살 이  길을 피해서 어쩌든지 멸망받**은 그 길만 총총 걷고 이렇** 가치 있는  영광스러운 승리하고 영생하는 이 길은 한 자욱도 걷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있을  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고 믿는 사람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믿는 사람 가운데에 멸망으로 가는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영광스러운 생명의 길로 가는 사람들을 미련타 어리석다 불쌍하다  애처롭다 가련하다 이렇게 허무하게 평가를 합니다. 멸망으로 가는 저희들의  길은 영광스러운 길이며 존귀한길이며 권위 있는 길이며 참 행복**스러운  길이라고 그렇게 인정을 하고 정 비판하는 것과 평가하는 것이 아주  꺼꾸로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에게 직접 따라다니던 그 사도들도 문도들도 모든  무리들이 다 이렇게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히신 데 대해서 근심했습니다. 얼마  전에 열두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이 좌의정 우의정 앉으려고 하는 그것 때문에  시비가 있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이 일을 그들에게  말씀하시니까 모두 근심에 꽉 싸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우리 믿는  사람들이 생명으로 가는 이 영광스러운 알속 있는 승리의 길은 망하는 길로  불행스러운 길로 이렇게 판단을 하고 있고 참 영원에 하나도 소용이 없고 자기도  속고 다른 사람도 속이고 순전히 속고 멸망받는 이 걸**므은 복된 걸음이라 *  이렇게 아주 꺼꾸로 오판하고 있는 이런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이것을 빌립보서  3장에는 말씀하기를 십자가의 원수라 십자기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걸으면서 행복되다고 십자가의 워눗의 길을 걸으려고 애를 * 쓰고 십자가 길은  걷지 안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 마침은 멸망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믿는  신자들도 이렇게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자기가 소원하고 있는 사람인지 십자가의  길을 소원하고 있는 사람인지 이것을 스스로 판단을 해서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원하는 그 사람이라면 그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원수의 길이 어떤 길인가? 땅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요 세상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요 세상에 살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그 **든 생각대로의 사는  것이 다 십자가의 원수의 *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사람들**른 땅의 것만  생각하지 안하고 하늘의 것을 먼저 생각하고 또 자기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조물주 생각하고 그다으메 피조물을 생각해서 이렇게  순위대로 바로 생각하고 바로 아는 사람들이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이 이 근심했던 것은 아버지도모르고 주님도 모르고 아버지의 집도  모르고 이 셋을 모르고 또 이렇게 복된 길을 걸어가는길도 모르고 걸음도 모르고  전연이 몰라 놓으니까 예수 믿는다는 이름만 가졌지 실은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따라다니고 무 성직을 가지고 몇십  년을 믿었다고 해도 이대로 믿는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너희들은 마음에  근심하지말라 그 근심은 잘못된 근심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믿으니 ** * 나를 믿으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말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그때에 구약 성경도 있는때고 **또 예수님의 교훈에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성경에서 배워서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인정하지를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을 성경과 내 교훈이  말한 대로 인정을 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따라라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 것을 네가 알고 그를 바라보면서 따라라 이것을 가지고  언제 한번 기도한 일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만 하나님에게 대해서 너무 연구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한 공부를 안 합니다.

요새 신학이라고 하면은 쉽게 신학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 어떤 분이냐 하는 거기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을공부하는 것이  신학인데 요새 신학은 그 소리 하면은 저 케케묵은 순무식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저거가 유식하다고. 그것 그것으로 망해버립니다.

유식 그것으로 망하는 것이오. 저거가 신학이란 이름을 지었으면 신학이라는  것은 하나님 신(神)자 배울 학(學)자, 성경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해 놓은 그대로 상고하고 대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라고 이렇게말씀했다 하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 신학이 돼야 될  터인데 신학 박사가 신구약 성경을 두서너 번도 못 읽고 인간들이 말한 그 말만  전부 통달해 가지고서 박사가 돼 가지고 교역자를 길러낸다 하니까 참 앞으로  비참하고 가련한 것입니다.

후란시스는 그 제자들이 모시고 기도하러 갔는데 얼마 동안 기도하러 가자 해서  그 모시고 기도하러 갔는데 하루 식사를 한 끼씩만 해다가 달라. 하시고  기도하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보자 우리 선생님 후란시스는 무슨 기도를 하시는고  보자 보니까 기도하다가 쉬시고 쉬다가 기도하시고 하는데 이 제자들이 선생님  모르게 살살 가 가지고서 엿들었습니다.

엿들으니까 항상 기도라는 것이 그 기도라. 하나님 아버지여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아버지는 어떠한 분이십니까? 이래 이러고 한참 있다가 벌벌 떨고 또  눈물을 주르르르 흘리고 또 주님은 누구십니까? 이러면서 주님에게 대해서  생각을 하고 또 눈물을 흘리면서 떨고 대체 내라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주님에게 자기를 묻고 너무도 자기가 허무한 자기라서 또 놀라면서 떨고  기도한다는 것이 석 달 동안 기도한다는 것이 항상 이 기도만 하더라고.

제자들은 그때에 따라다녀도 그걸 몰라서 우리 선생님은 석 달 동안 내내 기도가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누굽니까 그게 기도네. 그  기도밖에 안 하네. 마지막에는 주님이  십자가에게 달리신 것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 십자가에 달리신 고난이  어떠했습니까 그 고난을 알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벌벌 떨고  이랬는데 나중에 제자들이 가서 보니까 이 손에 구멍이뚫렸고 양손에 구멍이  뚫렸고 이 종조리뼈에 구멍이 뚫려서 주님의 십자가의 아프심을자기도 맛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서 그 수족에 못구멍이 뚫리셨다고 그렇게 책에 기록돼 있습디다.

제자들도 다 그렇게 봤고. 우리는 너무 하나님에게 대한 공부가 없습니다.

신학교에서도 하나님 가르쳐 주지 않지 교회서도 하나님에게 대해서 가르쳐 주지  않지 성경에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지마는 성경을 읽지 않지  성경을 읽어도줄줄 내리 읽어서 장수나 맞추고 몇 독 하는 독수나 맞추고 이렇지  성경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여게 대해서  자기가 참 성경이 하나님 어떤 분 알고 싶어서 하지도 안하지 또 입술로는 안다  해도 내가 어느 정도 인정하는가 여게 대해서 살펴보려고도 하지 안하고 전적  부인해도 마귀가들어서너는 항상 인정한다 하니까 그만 인정하는 줄 알고 이렇게  지내가 버려서 우리가 만 가지 일에 모자라지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데  대해서 너무 우리는 진실이없습니다. 너무 허무합니다. 하나님 아는 것이  돈벌이만 못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는 것이 세상 학을 공부하고 이런 출세 저런  성공의 운동하는 것만 못지 않습니다.

왜? 저가 나를 안즉 저가 하나님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나님**을 바로  알면 그 사람은 높아질 수밖에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알면  하나님에게 대햇 * 바른 관계를 가지지 안할 수 없고 하나님을 바로 알아 바른  관계를 가진 자를 피조물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피조물은 그 앞에 굴복할  것뿐이지 어떤 피조물도 그는 그를 해하지 못합니다. 왜? 그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벌써 모든 피조물의 주인공입니다.

모든 피조물의 주인공이요 하나님께 벌써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에게 기업으로  상속시켜서 하나님의 계대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는 여게서  하나님을아는 데에서 참 평안은 참 평안은 하나님 아는 데서 나온 평안이 참  평안이고 두려움도 가짜 두려움 그까짓 것은 아무 소용 없어. 참 두려움은  하나님 아는 데에서 참 두려움이 나오고 참 지혜도 하나님 아는 데서 참 담대도  하나님 아는 데서 참 두려워 굉장한 참 두려움도 하나님 아는 데서 모두 다 참은  하나님 아는 데서 나오지 전부 가짜입니다.

간이 커도 그까짓 것 가짜, 두려워 떨어 쌓아도 공연히 그것은 어리석어서 제가  속고 있는 것, 좋아하는 것도 하나님을 참 바로 안 거기에서 참 좋아하는,  좋아할 것을 좋아하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것은 자기를 망치는 것도  좋아합니다. 모든 지식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데에서 바른 지식이 생겨지고 또  하나님을 바로 아는 데에서 바른 소원도 생겨지고 바른 비판도 평가도 생겨지고  바른 정리도 정비도 정돈도 준비도 생겨집니다.

하나님이 모든 걸 주권하시고 당신의 것으로 당신 마지막은 당신의 뜻대로 당신  그분을 모르고 인간들이 살고 경영하고 계획하고 비판하고 하니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분 무슨 소용 있습니까? 참 어리석습니다. 오늘 신학교를 신학교  수준이 낮으니까 이 사회의 대학 수준을 가져야 된다 해 가지고 대학이 사회  대학이지 세상 대학이지 성경 대학입니까? 이래 가지고 이제는 성경만 아는 것은  암만 알아야 소용 없고 알아도 다 궤변이고 케케묵은 소리고 소용 없는 소리고  이 세상 학문 그것이 다 있어야 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성경은 신구약 일독도 안  해도 상관 없어. 성경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면 돼. 이래서요새는 신학교가  전부 신학대학이 다 돼 버렸습니다. 이제 신학교는 천하고 대학은 가치가  높으니까 신학이 대학이 돼야 되겠다 신학이 이제는 승격이 대학이돼야 되겠다.

대학이 되고 나니 단과대학보다도 종합대학이 돼야 되겠다. 이래가지고서 종합  돼서 다 가지게 됩니다.

이러니까 모든 과 중에 별별 과가 많이 있겠지요? 그중에는 돈벌이 명철 돈벌이  전부 의과로 가니까 머리 좋은 의과생들이 머리 좋은 법과생들이 많고 머리 좋은  뭐 전자과 학생들 경영과 별별 이런 학생들이 다 세상적으로 머리가 좋고 지식이  훌륭 신과 신과 신과가 하나 끼어 있습니다.있으면 이 학생 시험 보는 것도 세상  것 보니까 세상 것 보니까 전부 백점짜리는 전부 다 거기 가 있고 신과 가느 ***  것은 아주 낙제 안 될 만치 그런 아주 허무한 점수 받은 것만 신과를 갑니다.

이러니까 **두 알기를 신과는 본야 저능자들 뭐 병신들 허무한사람들 아예  자타가 다 그리 아니까 신과하면 시시하 서울 신과 없는 종합대학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만 신과 * 학생이라면은 그 학교서부터 머리를 숙입니다. 이러니까  그게 사회 나가 가지고서 아예 학 교서부터 저능가고 무식가인데 무슨 그 일을 하겠습니까 이러니까 나도 어쩌든지  세상 이것으로 실력을 솔빡 하나님과 천국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완전히 버리고 세상 다른 지식으로만 전력을 기울이다가 보니까그 사람의 속에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없습니다.

또 이러니까 교회들도 교인들도 꼭그와 같습니다. 하나님 * 하나님 하는 것은  천대받고교회도 세상에서 높은 사람이 교회서도 높 교회서 천대 세상에 천대받는  사람이고 이러니까 평가가 비판이 세상과 꼭 같이 됐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으로  부요하 그 사람 광신자라고 정죄할 것입니다. 세상이 그렇지 교회안에서도  평가가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도 돈이더라 돈이 제일이더라, 교회 안에서도  권세가 제일이더라 세상 지식이 제일이더라 이름만 다르지 세상과 같더라. 예수  무슨 소용 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교를 찾아볼 수가 없고 믿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돈 예수 믿는 사람 아니오. 하나님으로 부요한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요 성경 지식으로 유식한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요 이러니까 예수교는  점점 도태를 당합니다. 이러니까 자녀를 낳아도 똑똑한 자식은 의과를 보내든지  법과를 보내든지 해야 되겠고 이것은 팔푼이 병신 저능가 이러니까 이것은  신학이나 보낼까 이러고 있는 것이 오늘 현실입니다. 왜? 왜 이리 됐을까 왜  이리 됐을까 이는 신학자들**리 책임을 져야지. 신학교가 책임을 져야지.

신학교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무식하니까 하나님 하나님보다 큰 것이 세상에 가득 찼지 하나님을 바로 알면  하나님보다 큰 것이 세상에 없어. 하나님 * 세상에 없어. 하나님보다 잘 아시는  분이 세상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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