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적

 

1989. 6. 6. 화새벽.

 

본문: 요한계시록 1장 7절∼19절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횐 양털같고 눈같으며 그의 옷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우리 예수교는 다른 모든 종교들과 다롭니다. 다른 모든 종교들은 자기가  주체가 돼 가지고 모든 것을 받아 들이기도 하고 또 제게서 발생하기도 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 모든 이종교들입니다.

 불교 그런 것도 교를 들어 자기가 인정하고 그렇게 따르는 그 순서를 받는 거와  또 제가 궁구해 가지고 자기 속에서 또 이렇게 내놔 가지고 이래 하는 것,  그래서 이종교의 범위는 이웃 사람으로 말미암고 또 자기로 말미암고 이렇게 그  근거가 다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고 순전히 영원  자존하신 그분이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그대로 창조해서  있게도 하셨고, 또 있는 것들을 어떻게 당신이 보존도 하시고 관리도 하시고 또  있게도 하시고 없어지게도 하셔서 말하자면 양성도 하시고 또 소멸도 하시고  하는 것이 순전히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또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 간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모든 것이 그분으로 인해서 존재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고, 또 건설도 돼 나가고, 또 생장도 돼 나가는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시발함이 아니고 자존자 하나님에게서 시발이 돼  가지고 모든 것이 나오는데 시작만 그렇게 되고 혹은 도중에는 또 그렇지 않고  무슨 다른 힘이 나오느냐? 전부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시작도 되고  진행도 되고 결과도 맺어지고 다 그렇게 되는 것을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을  인해서 우리에게 아는 지혜를 줘서 알게 하시고, 또 인정하게 하시고, 또 그대로  살게 하셔 가지고 이루어지는 구원입니다.

 그래서, 존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됐고, 또 존재한 것이 움직임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또 모든 움직임들이 어디를 향해, 가느냐 하면  하나님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작도 방편도 결과도 전부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되어 있는 이것을 알고 여기에 맞주어 살아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우리가 이제 계시해 주시는 그 은혜로 알았고  그분의 목적이 그분의 역사의 제일 시작되는 것이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예정하셨고 또 예정하신 그것을 창조도 하시고 또 관리도 하셔  가지고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주권의 어느 부분적 주권을 우리는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개별 섭리의 그 주권자라 그렇게 우리가 믿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일반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것은 '어떤 하나를 만들어 놓으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른 것이 다 모두 움직여 나간다, 그러기 때문에 굵닥굵닥한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예정하셨지마는 그것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또 이루어져  나가고 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강령적인 것은 관계를 가지지마는 세부적인  그런 것은 하나님이 직접 관련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게 믿는, 그런 주의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으로 뭐, 그분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 아니면 다 그것은 시작된  것이 있으나 그분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지 안한 그런 것은 있을 수도 없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진행되지 아니하는 것도 있을 수 없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결과가 맺어지지 않는 것도 하나도 없다. 전부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라 그렇게 믿는 것이 우리들이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신에 다닐 때에 졸업 논문을 마음대로 제목을 가지고 써라해서  제가 제목 가지고 쓴 것은 쉽게 말해서 '죄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 하는  그것이 하나 주제였습니다. 그 너무도 모두 다 거석하기 때문에 그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썼었는데 모두 논문 발표를 하라고 거석한 사람들을 불러서 해서  제가 그것을 초두를 쪼그매 낭독하니까 그때 그 OOO목사님이 담당 교수인데  중단을 시키면서 아주 자기 밑에 가르친 제자가 이렇게 돼 놓으니까 그만 너무  당창하고 겁이 나서 중단을 시키면서 큰일난다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 내가  '큰일나는 게 아니고 이게 처음이니까 그거 다 발표를 하도록 좀 허락해 달라'  해도 허락 안 해 줘서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겁니다. '죄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의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다. 또 마지막에 결론도 다  하나님이 다 지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결론이 되어진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는 것은 없다' 하는 그런 것이 내용 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우리가 시발도, 기독교라면 내 구원인데 우리 개인 개인의 구원도 그 시발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그러면 그 시발보다 먼저 있는 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것인데 존재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순전히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이 생겨졌든지 있어졌든지 하는 그 전부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지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좁은 범위에서 이래 사람들이 보고 오해와 오산을 해서 이해 못  할 그런 모순들이 있다 이렇게 말을 하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한 것 하나도  없고 또 하나님의 속성을 닮지 안한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하나님의  속성대로 다 돼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변질이 되니까 모든 것이 다 변하게  보여지지, 모든 존재 가운데에 그 악령이 변질됐고 또 사람이 악령으로 말미암아  변질돼서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께 모순되게 하는 거와 같은 그런 움직임을  가지고 있지 만물은 그대로 지으신 그대로 있습니다. 그대로 있고 마귀와 사람만  변질됐는데 좁은 눈으로 볼 때에 변질된 것 같으나 그것이 한 순서를 더 거쳐서  하나님과 대립같고 변질같지마는 결국은 하나님 한 분의 근본에 다 맞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대로 지음받았고 속성대로 움직이고 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하나님 한 분에게 반대가 되면 그 모든 존재에게 반대되고 하나님 한  분과 일치되면 모든 거와 다 일치가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모든 존재론입니다.

 그러기에 다만 우리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볼 때에 그것이 모순이  많이 있고 대립이 많이 있지 그 대립되는 것을 한 범위를 넘어서 보면 대립이  없고 다 하나입니다.

 이래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다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다 인정을 해서 주라 시인하여' 주라 시인한다 말은  주님으로 말미암지 아니하면 존재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인정해서 다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다, 주님을 인정하고 환영하는 그런 표현입니다.

 '주를 시인하여' 주님은 자기들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그것을 이제 눈이 열려서  범위 넓게 보니까 다 저희들은 그로 말미암아서만 사는 길이 있고 복된 길이  있지 다른 길이 없다 하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하는 그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다만 하나님의 객관 역사가 있고 우리의 주관 역사가  있어서 우리의 기본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객관 역사로 이루어지는 구원이요  우리의 건설구원은 하나님의 객관 역사로 이루어지는 그것을 내가 어느 정도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어느 정도로 거기에 화합이 되느냐 하는 그것을 발표된  것이 그것이 다 건설구원이요 부활한 자의 영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정하는 그것도 한 범위를 더 넓은 범위에서 보니까 인정하고 안  하는 그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러기에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또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감이라' 하는 요것을 요 세 가지 모든 존재의  강령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요것을 우리는 확고하게 깨달아서 믿어야 하겠고,  쪼 하나님은 주재시며 주권자시다 하는 요것도 우리가 확고히 믿어야 합니다. 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다. 또 예정 그것을 그만 예정만 해 놓고 건설은  무슨 어떤 피조물이 하느냐? 예정도 그분 단독 주권으로 예정하셨고, 또 예정을  성취하는 것도 그분의 주권으로 성취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또 단독 성취, 또 이라면서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보응 이런 것은 아주 마치 바둑 두는 사람이 순장점을 여기에 저게 놔  가지고 연결을 시키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하나님의 그  지식인 계시는 범위 넓은 면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때에 그 전체면을 말씀해  주실 때에 우리는 이해 못해서 모순되는 거와 같은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일원론 이라 모든 것이 이래 생겨나는 그 원인은 하나라,  일원론을 또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런 근본되는 교리와 저 교리 이 신조와 저 신조가 서로 배치가 되고  모순이 되고 마찰이 되는 것같이 이렇게 보여져서 그 모순이 그것이 그 일치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역사하는 그 과정에서 그렇게  되어지는 그 과정을 사람들은 이해 못 하고 과정 속에 파묻힌 사람은 그 모순  과정에서 그것이, 하나에서 나왔고 또 하나를 이루어 가고 있다는 그 결과를  보지 못하는 가운데서 항상 마찰이 있고 모순이 있고 이와같이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기에 8절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러면, 이것은  주님은, 주님은 어떤 그 범위를 가지고 계시며 어떤 것을 지금 책임지고  관리하고 계시느냐 하는 주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주님의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라 말은, 여기에 이걸로만 표시했는데  시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시간 존재의 영원 전 영원 후, 시간으로 말하면  영원 전과 영원 후의 그 범위 내에 들어 있는 전부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또  존재로 말하면 영원 자존하신 분과 또 모든 창조된 것, 창조의 어데까지의 그  세미한 것 또 어데까지의 말단적인 것, 모든 존재 그 전부를 상대해서  역사하시고 또 계획하시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이라,  이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 범위를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시간적 범위도 말해  주고, 공간적 범위도 말해 주고, 종류적 범위도 말해 주고, 또 움직이는 모든  활동적인 그 범위도 말을해서 그 범위에 한 부분적이요 한 세포적인 분자적인  그런 것을 말하지 안하고 전체를 말하시면서 전체를 만드셨고 전체를 상대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전능자라 그말은 이  알파와 오메가라는 이 내용의 뜻을 사람들이 깨닫고 생각해 보면은 그렇게 범위  넓고 그렇게 다수하고 무한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어떻게 관리를 하며  어떻게 그것을 처리를 하시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 모순되게 그렇게 생각이  되어질 그것을 우리에게 방비하기 위해서, 알리기 위해서 전능자라는 것을  거기에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라고 난 다음에 9절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그러면  예수님의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그 나라가 이렇게 범위가 넓다고 할 게  아니라 전체를 상대하는 나라입니다. 전체를 상대한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입니다. 전체를 상대한 나라입니다. 이러니까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라는 요 말씀은 아주 큰 말씀이요 강령의  말씀인데 예수님의 나라를 자기 나라로 삼으면 환난은 필연적으로 환난이 있는  것이고 또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계속해야 성공을 하지 계속하지 못하면 성공을  못한다는 것을 여기에 간단하게 표시해서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그러면 이 세 가지로서 이루는 구원을 얻는 여기에 참여한 자라.

 그런데 '나 요한은 너희 형제라' 또 나는 너희들과 같은 사람이다 하는, 꼭  같은 사람이라. 그러니까 소망도 같고, 또 우리의 그 모든 각종의 좋은 은혜의  근원인 그 원천도 같고, 또 그 방편도 같다. 그 방편은 뭐인가? 그 방편은  환난이다. 또 그러면 종결인, 마지막 결실하는 종결인 종착은 뭐이냐? 그것은  참음이다 계속해서, 참음이라 말은 요 계속성을 말하는데 계속이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것을 9절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 환난은 하나님과 배치가 돼서 하나님과 대립이 돼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환난도 있고 또 세상과 대립이 돼서 세상으로  말미암아 오는 환난도 있습니다. 환난도 두 종류입니다. 뭐 두 종류라 하는 것을  이거 참 얼마나 강령을 우리에게 말씀했는지 '쪽발로 걸어가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오는 것,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  배치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일치. 되도록 일치를 만들기  위해서 어려움을 주시는 것도 있고 또 세상과 하나가 되지 안하고 배치가 돼서  또 세상은 제것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어려움을 우리에게 주는 것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좁게 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환난 세상으로 말미암아  오는 환난인데 한 층을 더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은 그것이 하나입니다.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도 하나님에게서 왔고 또 피조물 세상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도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예수 믿는다고 사형을 시릴라고 우리 모든 성도들을  순교시킨 그 대적의 역사를 한 막을 걷고 한 휘장을 걷고 휘장 속을 들여다 보면  내나 주님 한 분이 그것을 역사하셔 가지고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왜 환난을 만나느냐?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왜 우리가 환난을 만나는가? 환난을  만나는 것은 예수님의 나라가 우리 나라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환난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우리 나라이기 때문에 환난이 오는 거, 예수님의  나라는 무슨 나라인데? 예수님의 나라는 무슨 나라입니까? 예수님을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전존재의 전부를 다 망라한,  상대한 나라입니다. 그러면 전존재를 상대한 나라요 또 전움직임이 다 자기 것이  되어 있는 나라가 예수님의 나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좁은 범위를 보고 사는  사람들과 넓은 범위를 보고 사는 사람들, 이러니까 그것은 마찰이나 모순이 없을  수 없는 것이오 없을 수 없는 것이나 그것은 있음으로 말미암아 자꾸 빛이  나타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점점 좋아지고 이렇게 넓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이 세상과 마찰이 되는 건 세상은, 예를 들어서 만일 일을 이를 때에  구비 조건이 만일 백 가지라 하면은 백 가지를 다 상대해 가지고 이와 같이 모든  계획이나 역사를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백 가지 보지 안하고 백 가지 중에 한  가지만 보고 해 나가니까 힘도 있는 것 같고 하나 모순이 되고 마찰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차차 차차 이제 전체에 상대한 그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점점 이루어져 가고 있지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것도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해치는 것도 하나도 없고 전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 외에는 딴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조부랍게 말하면은 우리 기독교는 비유해서 거기에서 그 일을 하는  데는 구비 조건이 서이인데 삼 면을 맞춰서 해 나가야 되기 때문에 삼 면을  맞춰서 해 나갈라고 하고 있는데 세상은 삼 면은 모르고 일 면만 맞춰 나갈라  하기 때문에 그 삼 면 맞출라 하는 것과 서로 대립이 되고 모순이 돼집니다.

 그러나 그게 넓은 범위에 볼 때에 일 면 말하는 그것과 삼 면 말하는 게 서로  모순돼서 마찰돼서 분쟁이 있고 환난이 있는 그것이 차차 차차 일 면이, 일 면이  성장해서 이 면을 상대하고 또 이 면이 성장에서 삼 면을 상대해서 이렇게 점점  상대하는 면적이 넓어져서 결국은 하나님 한 분의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간단하게 말하면 세상은 세상 이거 죽음 이쪽편만 보고 그  사람들은 살기 때문에 그 계산과 평가와 또 모든 계획과 우리는 죽음 이편만  아니라 죽음 이편과 죽음 저편, 죽음 너머 저편 양편을 보고 양면을 보고 우리는  계획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 보고 등신이라 하고 우리는 그들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이 우리로 더불어 마찰봐. 때에 우리가 보는 세계를  보지 못하고, 우리가 상대하는 그 상대하는 것을 가치로 삼지 안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전연히 무식하고 그거는 무시하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일방적을 가지고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또는 높이 평가해서  두려워하거나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세상이 말해도 그들은 지금 우리를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를 따라와야 되고, 우리를 배워야 되고, 우리에게 들어야 되고,  우리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세상은 보는 시야가 좁고, 상대하는 게 좁고, 가치로 여기는 것이  좁고, 시간적으로도 좁고, 공간적으로도 좁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를 우리의 나라로 삼았기 때문에 세상과 모순이 되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자꾸 이렇게 근본으로 가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이것이  아니면 그것은 다 하나의 이용 과정에 있는 것이지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일성의 나라입니다.

 여기 모두 지상 교회가 단일 교회라 하는 말을 많이 말하는데 그 말은 잘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모든 것이 거룩 거룩으로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거룩의  종착은 진실이 되고 맙니다. 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단일 교회,  그것이 곧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이 단일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은 단일성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이  이렇게 발휘해서 속성이 활동하는 그 속성은 수억억만도 넘게 이렇게 면으로  활동하지마는 하나님의 그 한 본성, 하나님의 그 한 본성이 이렇게 모두 다  거기에서 나와 가지고 이렇게 많은 색깔로 많은 종류로 많은 힘으로 역사해  가지고 이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단일 교회를 찾아가야 되고 자꾸 그 단일성을 찾아가서  이 참인 하나 여기에 가서, 그러면 우리는 하늘나라 가 사는데 생명도 하나요  지혜도 하나요 힘도 하나요 희로애락도 하나입니다. 이제 이것의 적은 뭐이냐  하면은 사욕이라고 하는, 개별이라 하는, 개체라 하는, 개성이라 하는 이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개성이 없습니다. 단일성, 하나님의 단일성인데 그  단일성이 그게 완전한 단일성이기 때문에 그 단일성이 나타나 역사할 때는 뭐  억억만의 개성으로도 더 많이 나타나 가지고 역사하지마는 그 개성이 찾아들어  가면은 내나 한 단일성의 거기에서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사욕이라 하는 것을 대금물로  삼아야 됩니다. 마귀란 놈은 우리의 일생 동안 이 사욕 '너 좋게 해라, 너 좋게  해라.' 이렇게 자꾸 사욕을 자꾸 이래 가지도록 이렇게 하기 때문에 어두운  마음에서는 '요거 내것이 돼야 요게 알뜰 하고 참 내게는 필요하다' 하는데 그  내라는 그것이 다 미혹받아서 그것이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또, 내나  그것도 그 과정을 찾아가는 것인데 그거 언젠간가 그거 변질이어서 없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파괴하는 나라요 건설하는 나라입니다. 자꾸 있는  것이 파괴되고 건실되고 자꾸 그래서 날로 새로와져 가는 그런 나라인 것입니다.

 이래서, 조금만 지금 말했는데 시간이 다 돼서, 우리의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라 하는 그것만 여러분들이 단단이 기억을 하십시오.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는 끝이 없다 말이요 시작이 없다 말입니다. 끝도 시작도 없는 전부라  그말입니다. 뭐. 전부라 그말입니다. 이거 가가 없고 가새가 없고 전부라.

그것이 우리의 나라라. 그러면 예수의 나라는 그 나라라.

 그러기 때문에 단일성을 향하여서 가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모든 개성들과 이  마찰이 될 수밖에 없고 그들은 일방적 지식을 가지고 하나만 보고 사는데 우리는  양면을 보고 살라 하니까 거기서 마찰이 되고 모순이 되어진다 하는 요것을 알고  거석하면 그 모르는 사람들이 몰라서 말하는 것이고 그분들은 앞으로 알아야  되겠고 우리는 또 가르쳐야 되겠고 그거 그러면 답답합만 있는 것이지 그에게  대해서 적대시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땅위에 적대시할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뭐 대립이 되고 적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무슨 힘이  둘입니까? 힘이 둘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 분의 힘이오. 마귀 그놈도 내나,  하나님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지 하나님 빼 버리면 그것도 아무것도  없어집니다. 존재도 없어져 버리고 힘도 없어지고 움직임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이 기독교는 근본인 이 근본에서 모순되게 떨어져 나온 이걸 다시 근본과  재연결시킨 것이 그것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입니다.

 이래서 그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라,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 모든 존재를  상대해서 움직이는 행동이 되니까 일방적인 세상하고는 모순되니까 틀렸다  틀렸다 하면서도 결국은 따라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지금 홍수 심판으로 그랬고  이 불심판으로 또 이래 하는 것도 이거 큰 하나의 하나 수술하고 하나 치료하는  이런 큰 심판의 역사인데 이것으로서 끝이 나는지. 이것으로 완전히 끝이 나는지  또 앞으로 또 어떻게 돼 가지고 하는지 그거는 우리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세세토록 있다. 세세토록 있다.' 하는 그런 의문되는 말들을  우리에게 더러 말해 줬는데 해석 못 하는 것 많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니라 하는, 마지막에 종착은  사랑으로 또 시발의 원인은 사랑으로 이런데 그 과정들은 여러 과정이 있다 그  믿음의 과정이라 말은 우리가 새로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또 이거 소망이라는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미래에 있는 것을 내가 지금  가질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망도 항상 있을 것인데 소망도 항상 있으니까 우리가  얻어 가질 것이 항상 있다는 말이요 믿음이 항상 있다 말은 우리가 회개해서  자꾸 고쳐 나갈 것이 항상 있다는 말인데 그 근본은 사랑이요 종착도 사랑이라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것을 모르는 가운데에서 자꾸 지금 마찰이 됩니다. 마찰되는 그걸 또 고치기  위해서 이렇지 아무 대적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이의 모든 그  만물관, 존재관, 구원관, 모든 가치관이 그것의 범위의 차이로서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꾸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자꾸 범위가 커져.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우리가 더 커지는 것이 없습니다. 더 커지고 또 온전해지고 참  돼집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우는 거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것, 하루 삼십분  기도 잊어버리면 우리의 심령은 어두워집니다. 은사 위치에 있는 분들은 자기  마음 속에 품어 놓고 길러야 할 것, 한 말씀이라도 듣고 귀가 열려야 됩니다.

귀가 열려서 알아야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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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436 하나님의 도는 계속하는 도/ 요한계시록 3장 10절/ 1987. 10. 2.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435 하나님의 도는 영광의 도/ 요한복음 1장 14절/ 1982. 7. 12.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434 하나님의 독재/ 이사야 3장 1절-4장 1절/ 1989. 5. 13.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433 하나님의 뜻 구별법/ 고린도전서 1장 20절-21절/ 1985. 12. 8.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02
432 하나님의 뜻 찾는 법/ 출애굽기 19장 24절-25절/ 1982. 2. 8.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431 하나님의 뜻만 지키면/ 출애굽기 15장 25절-26절/ 1981. 4. 2.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30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 누가복음 1장 37절-38절/ 1984. 8. 22. 수저녁 선지자 2016.01.02
429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 누가복음 1장 27절-38절/ 1984. 8. 19.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428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1984. 12. 6.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27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신명기 28장 1절/ 1985. 1. 1.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426 하나님의 명령/ 신명기 28장 14절/ 1985. 1. 9.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425 하나님의 명령 순종/ 신명기 28장 1절/ 1985. 1. 20.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424 하나님의 명령 순종/ 신명기 28장 1절-6절/ 1985. 1. 20.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3
423 하나님의 목적/ 요한복음 14장 1절-6절/ 1981. 3. 27. 금저녁 선지자 2016.01.03
» 하나님의 목적/ 요한계시록 1장 7절-19절/ 1989. 6. 6. 화새벽 선지자 2016.01.03
421 하나님의 백성/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1980. 5. 1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3
420 하나님의 백성/ 에스라 8장 21절-23절/ 1975. 6. 1. 제 22과 선지자 2016.01.03
419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 예레미야 2장 1절-8절/ 1980. 10. 15. 수저녁 선지자 2016.01.03
418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 예레미야 2장 1절-13절/ 1980. 10. 17. 금저녁 선지자 2016.01.03
417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 예레미야 2장 7절-13절/ 1980. 10. 17. 금새벽 선지자 201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