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

 

 1980. 5. 18. 주전  

 

본문 :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마태복음 24장 1절∼2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태복음 24장 1절 이하에 성전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땅위에 있는 교회가 어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이 말씀은 종말론이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성경입니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에 세상 끝날에 될 일을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것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 이하에는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멸하신다." 이 말씀과,  마태복음 24장에 이스라엘 종말에 하나님의 성전의 그 외모들을 보고 모든  사람들은 다 크게 여겼고 또 성전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지어놓은 훌륭한 성전이 있으니까 이 성전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히  보호하시리라 이렇게들 안심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보시는 것이  정반대였습니다. "너희들 보기에는 이 성전 외모를 보고 깨끗하다고 의지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지만 실은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첩놓이지 않고 다  무너뜨리움을 받을 만치 벌써 성전은 변질이 됐다"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 후  한 사십 년 지낸 뒤에 이 성전은 완전히 말씀하신 대로 훼파 됐습니다.

 이 말씀들을 연결해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성전관이, 성전관이라면  교회관인데 성전을 보는 것이 껍데기만 보고 알맹이를 보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멸망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염려가 되고 두려움이 됩니다.

그때도 성전의 외모를 보고 아름답게만 여겼지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완전히 동결돼 있었으나 그 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지 못하는 고로  영육이 다 실패를 당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오늘도 교회관이라 하는 것은 볼 관(觀)자 교회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교회관이, 다시 말하면 성전관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예수믿는 그리스도인 관이  이것이 잘못되면 실패됩니다. 개인 교회나 가정 교회나 사회 교회나 이 세계  교회가 그 양이 많고 적은 것만 다르지 그 요소나 구비는 꼭 같은 것입니다.

 그때에 외모만 사람들이 치중한 것처럼 오늘도 우리가 외모만 치중하기  쉽습니다. 물론 외모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부가 충실치 못하면 그 외부도 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부가 충실한 이후에 그 외모라 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 줄 압니다.

 '그 교파가 심히 양이 많다 그 교파의 교회수가 많다.' 이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또 '그 교회는 교인 숫자가 많다' 이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그  교회는 아주 예배당이 잘 지어져 훌륭하다.' 이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그  교파나 교회는 인물들이 다 유력한 그 유지의 인물들이 많이 있다' 이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또 '그 교파 그 교회는 모든 재정들이 넉넉하다' 하는  이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또 '이런 사업 저런 사업, 무슨 문화사업, 교육사업,  자선 사업, 계몽사업, 무슨 온갖 그 사업이 많다.' 하는 그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그 교회와 그 교파가 이 세상에서 높이 평가받고 인정받고 또  대단히 권위가 있다 유명하다' 하는 그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이런 외모가 다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은, 신약 성경에서는 이치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을 했기 때문에 그 이치는 종합해서 깨닫기가 그렇게  쉽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령한 이 진리로 된 이 하나님의 성전을  어렸을 때에 한 모형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와서는 말씀으로 가르쳐 놓은 이 도리를 보고 하나님의 성전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이 깨닫는 것이 그것이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깨닫지 못할 때에는 구약을 찾아가 가지고서 구약에 말씀하신  것과 또 모형으로 해 놓으신 그것을 보고 우리가 깨닫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가르치는 이 도리만으로 깨닫지 못할 때에는 구약에서 어렸을  때에 가르친 그 도리를 찾아가서 깨달을 수가 있고 또 구약도리를 어렸을 때에만  말씀한 그 몽학 선생과 같기 때문에 그것으로 알지 못하는 것은 신약 성경을  가지고서 거게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구약은 신약으로 깨닫게 되고 신약은 구약으로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이 특별 계시인 성경과 영감은 이 자연계시인 하나님의 창조와 모든  섭리와 인간의 마음의 구조 이런 모든 자연들을 가지고서 깨달을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수차 성전에 대해서 또 듣고 배웠습니다. 오늘은 간추려서 하나님의  성전에는 특별히 네 가지 구별과 열 가지 요소적 작용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네 가지 구별이라 말은 네 가지 거룩이라 말인데 우리 개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들은 네 가지 거룩이 있어야  하고 열 가지 요소의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또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정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면 그 가정에는  반드시 네 가지 거룩이 있어야 하고 열 가지 요소의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교회가 되어 있는 우리 서부 교회도 사회 교회중에 하나요 전체 교회의  속한 한 분자라 할 수 있는데 우리 서부교회도 역연 개인 교회보다 양이 많은  것뿐이지 딴 것이 아니니까 서부교회도 네 가지 거룩이 있고 열 가지 요소가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좀 전에 외모를 여러가지로 말을 했습니다. 여러가지로 말을 한 그 외모가  아무리 좋고 훌륭하다 할지라도 네 가지 거룩과 열 가지 이 작용이 없으면 그  개인 성전은, 그 가정 성전은, 사회 성전은 교회 성전은, 교파 성전은 다 변질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다 깨뜨리고 무너뜨립니다.

 세계가 울렁거려서 모든 그 분요가 일어나는데 그 분주한 그것이 부딪히는  종말에 가서 당할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교회들입니다. 뭐 공산주의가 와  봤자 불택자들은 그들이 얼마든지 세뇌할 수도 있고 또 변질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공산주의자들이 불신자에 대해서는 저희들과 별로 이질적인 것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에 대적시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택자들은 그 속에 중생된 하나님의 영이 계시기 때문에 그들이 많은  경험 속에서 아무리 변질을 시킬라고 해도 아무리 머리를 씻어서 바꿀라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이 경험 가운데서 단정짓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종말은 그  모든 박해가 믿는 사람들에게 와서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모든 이방 운동들을 교회는 어떻게 보라고 했느냐 하면 교회가  하나님 앞에 매 맞을 맷정을 쓰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를 깨뜨릴라고 이방들을  몸둥이로 채찍으로 삼아서 그것을 보이면서 매를 맞지 아니하고 상하지 아니하고  돌이키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 그 말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있는 기독자, 구속받은 자기를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정반대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성전인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성전을 깨끗케 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그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만지지도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고 또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이 더러워지고 깨끗해지는 데에서 성전이 멸해지고 또  그대로 존속되어지는 그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기독자들은 이 열네 가지가 작용하면 깨끗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현재에 다 되지  못했을지라도 차차 되어져 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책임지시고 전능한  능력이 보호하실 것이오. 이 열네 가지의 작용이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이방이 멸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멸하시기 때문에 이방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멸하는 몽둥이로 이용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대구에서 공부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인 이 자체들이  더러워졌다가 돌이켜서 하나님의 깨끗한 성전이 되어졌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적을 단 시일에 물리치고 세계는 하나님의 전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경외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는 것을 대구 집회 때에 공부를  했습니다.

 오늘도 열네 가지, 네 가지 거룩을 가져야 된다. 첫째는 우리는 안 믿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깨끗해야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보다  우리는 깨끗해야 된다는 것을 원하고 힘쓰고 또 깨끗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째  거룩입니다.

 깨끗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바르고 참되다는 말입니다. 변질되지 아니하고  감염되지 아니하고 본질 본성 그대로 있는 것이 깨끗한 것입니다. 우리는 안  믿는 사람보다 깨끗해야 될 사람들인데 우리가 깨끗해지기를 원해야 하고 또  깨끗하려고 노력을 해야하고 또 실지로 그 결과가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된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거룩 중에 제일 외부적 거룩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되고 둘째로는 신자가 같은 신자가 아니고 좀더 깨끗하고, 좀더  덜 더럽고 이렇게 두 가지 종류의 신자가 있는데 언제나 자기는 모든 사람보다  자기가 깨끗해야 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주님의 구속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더러운 것을, 부족한 것을 보고 위로를 받을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먼저 내가 깨끗해야 될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보다 더 깨끗해지기를 원하고  깨끗해지도록 노력을 하고, 또 결과적으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이 거룩이 있어야 됩니다.

 '뭐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제가 그렇게 하니 내가 그렇게 할 게 뭐이냐, 아무  것이도 그래 믿는데 내가 별죽나게 그렇게 뭐 있겠느냐?' 다른 사람이야  어쨌든지 내가 먼저 다른 사람보다 깨끗해야 될 그 의무와 책임을 가진 줄 알고  믿는 사람가운데 내가 먼저 깨끗해져야 되겠다. 이것을 원하고 그 사람보고  더러워질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깨끗하기를 노력을 해야 됩니다. 또 실상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둘째의 거룩입니다.

 셋째의 거룩은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에도 '아, 누구의 가르치는 길이 더 바르고  옳다. 어디 은혜가 더 있다.' 하나님의 종들과 종들을 구별해서 더 바로  지도하는 것을 받기를 원하고 더 바른 지도를 받도록 노력을 하고 바른 지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한자리에서 예배를 봐도 '아, 여게서 나는 누구보다도 은혜를 더 입어 은혜  생활을 해야 될 사람이다. 주님이 내게 대해서 큰 구속을 주셨으니 다른 사람은  자면서 은혜 받는데 나도 자며 예배보면 되지 않느냐 내가 하나님의 도리를  배우는 데에 누구보다도 앞서야 되겠다.' 하나님의 도리를 자기가 배워 깨닫는  데에 자기가 먼저 앞서야 할 이 의무와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앞서기를 원하고  앞서기를 노력하고 앞서서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먼저 깨닫고 먼저 은혜를 받는  이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면 한사람이 되면 그 다음에 두사람 되고 세 사람  되고 차차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고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이것이 셋째의  거룩입니다.

 넷째의 거룩은 최종 최고의 거룩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이 생활에  성령님이 인정하고 성령님이 함께 해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그 생활에 성령님이 동행해서 감화해 주시는 진리 말씀대로 사는 그 생활에  성신의 감화가 함께 하여 주시기를 원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네가지 거룩입니다. 이것이 윤곽적 성전입니다.

 그 다음에 열 가지 요소적 작용이 있어야 하는 것은 첫째가 제단입니다. 제단  생활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제단은 하나님과의 잘못된 문제 해결하는  것인데 자기와 하나님과의 문제, 다른 사람과 하나님과의 문제에 있어서  희생하는 이 희생이 우리가 있어야 됩니다.

 주님이 제단에서 제물되어서 우리는 대속한 것처럼 자기가 하나님과의 관계점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할 줄을 알아야 되고 먼저 희생하기를 원하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 하나님과 모든 형제들과의 관계, 하나님과 가족들과의 관계,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이 관계를 인하여 자기가 희생할 정신이 있어야 되고,  희생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희생하기를 원하고, 희생하기를 노력하고,  또 실제로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남 모르게 자기가 물질적 희생이나, 정력적 희생이나, 시간적 희생이나, 정신적  희생이나, 뭐 기도로 하든지 뭘로 하든지 자기가 희생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하나님과 인간이, 자기도 인간 중에 하나인데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이 문제  때문에 자기가 희생해 가지고 이 일을 바로 해보겠다는 이 의무와 책임이 있는  줄 알고 희생을 원하고, 노력하고, 희생이 실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첫째가 희생 작용입니다. 열가지 작용 중에 첫째 순서가 희생작용 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시작이 안됩니다. 희생 작용이 있어야 되고,  둘째는 거게 있기를 세수통이 있습니다. 세수통은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인데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또 이웃의 여론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가지고 영감을 가지고 자기를 깨끗게 해야 될줄 알고 깨끗해  지기를 원하고 깨끗하기를 노력하고 또 깨끗해 져야 합니다. 마치 더러운 것을  물로 씻어서 깨끗하게 한 것처럼 이 세수통은 수족을 씻는 것이 줍니다.

 이러기에 자기의 매일매일 그 생활을 자기가 살피면서 깨끗해져야 할 그것이  자기 의무인줄 알고 깨끗게 하려는 이 작용이 있어야 성전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성전입니다. 말에나 마음에나 생각에나 생활에나 경제면이나  활동면이나 대인 관계나 명예 관계나 뭐이든지 권세든지 뭐 직장이든지 어디든지  모든면으로 깨끗해야 될 줄 알고 깨끗지 안하면 버림 당할 줄 알고 깨끗해질 이  의무가 있는 줄 알아서 깨끗해질라고 하는 이 작용이 우리 속에 있어야 하고,  셋째는 일곱 등대가 있습니다. 일곱 촛대가 있습니다. 이것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빛을 발하는데 성경에 "너희들이 사람 앞에서 착한 행실을 해서  세상에 빛의 직책을 다하라"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게 보여 주는  것. 세상이 어두운데 우리는 세상에게 밝은 것을 보여 줘야 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밝은 것을 보여 주도록 노력하는 노력이 있어야 되고 또 결과가 맺어야  됩니다.

 그러면 밝은 것이 어떤 것이 밝은 것인가? 세상에는 돈 중심으로 사는 사람, 또  명예 중심으로 자기 직장 중심으로 물질 중심으로 민족 중심으로 국가 중심으로  사회 중심으로 문화 중심으로 가족 중심으로 자아 중심으로 별 중심들이 많은데  그것은 다 어두워진 것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분을 배반하고  그것이 하나님이 아닌데 그것 중심으로 해 가지고야 하나님이 섭섭해 여기시니까  그것 되겠습니까?  온 세상은 그런 세상인데 우리들이 모든 생활에서 '아, 저 사람도 보자. 저  사람이 이제는 보자. 돈 중심인가 하나님 중심인가 보자.' 할때에 그때 뚜렷이  우리는 '아, 저 사람은 돈 중심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중심의 사람이로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보여줘야 할 사람들입니다. 어떤 때는 명예 그런 것도 있고  어떤 때는 생사 문제가 있습니다.

 '아, 저 사람도 죽음을 피하고 살기 위한 생명 중심의 사람이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볼 수 있는 그때에도 우리는 죽음을 피하고 사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거게서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그런 사람들과 같이 '저 사람은 죽음에서도 하나님 중심, 물질 앞에서도, 명예  앞에서도, 감정 앞에서도,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모욕 앞에서도 저 사람은 참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이 빛을 발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우리들인 줄  알고 이 빛으로 살기를 원하고 노력하고 또 빛으로 산 그 결과를 세상에게 보여  줘야 큰 빛이 되든지 작은 빛이 되든지 빛으로 보여 줘야 되는 이 빛의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크든지 작든지 이 운동이 있고 이것이 안되는 데에서 애타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안에는 금향로가 있습니다. 금향로는 기도의 단입니다. 우리는 기도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내가 분주한 가운데에서 느끼지 못한  이것을 우리가 내몰라라 잊어버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섭섭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찾아 감사하고 사람에게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이러니까 하나님 은혜 감사하다 보면 사람의 은혜를 감사하는 이 사은의 인격  요소가 있어야 됩니다.

 사은의 작용이 우리에게 있어서 사은하는 기도.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잘못된 것을 찾아서 자복하는 기도. 또 내게 있는 모든 사정을 내가 처리  못 하니까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의논하지만 그보다도 최종적으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이 의논의 기도. 내 사정을 모두 다 도고하는 이 고백하는 이  도고의 기도가 있어야 하고 또 우리는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하나님이 함께 해  주지 안하면 실은 안됩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의뢰하고 바라보면서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이  기도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감사의 기도, 의논의 기도, 잘못된 것을  자복하는 기도,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이 하나님과의 의논하는 이 의논의 생애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 되고 또 기도의  생활을 할라고 노력을 해야 되고 실제로 기도가 되야 됩니다. 그 사람이 기도로  유명해졌다고 하면 '아, 그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한다지' 기도의 유명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유명한 생애의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맺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인격 작용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성소와 지성소의 가로막고 있는 이 휘장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나도 모르는 잘못됨이 가로막고 있는지 내가 아는 그것을 강팍을 부려서  가로 막고 있는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그것이 물질인지 돈인지  사람인지 일인지 공부인지 그것을 우리가 찾아서 하나님과 나와의 가로 막히는  것을 틔우는, 이 휘장을 틔우는 가로막힌 이 죄, 가로막힌 죄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의지해서 용서를 받고 다시 회개를 하고 해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사이,  하나님과 우리 서부교회와 사이, 하나님과 자기 가정과의 사이, 이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이 죄를 찾아서 해결 짓는 이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또 다음에는 법궤, 곧 언약궤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계속 상고해서 이 말씀에서 교훈을 받고, 이 말씀에서 교육을 받고, 이  말씀에서 책망을 받고, 이 말씀에서 지도를 받고, 이 말씀에서 하나님과 인생과  금생과 내세 또 자기 다른 사람, 모르는 것을 이 말씀에 이 지혜를 우리가  상고해 가지고 '아, 성경에 이런 사람이 있는데 내가 곧 이 사람 아닌가, 성경에  이렇게 못쓸 사람 있는데 이 사람이 곧 내가 아닌가?'  이래서 성경을 마치 거울을 가지고서 자기가 볼 수 없는 자기 안면은 거울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자기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도 알게 되고, 하는 이 성경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배우고, 알고,  비판하고, 평가해서 성경을 자기의 법칙으로 자기의 스승으로 성경을 자기의  길로, 이렇게 성경과 자기와의 관계점 이것을 활용하는 성경과 자기와의 중요한  관계점이 있는데 이 관계점을 활용하는 이것을 원해야 되고 노력해야 되고 또  효력의 결과를 입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이리되면 그 다음에는 우리는 천사의 옹호를 입습니다. 형식으로 갖추어놓은 그  성전에는 법궤위에 천사들이 이렇게 옹호하고 있는 것을 거게 만들어 놨습니다.

이것은 한 모형, 우리가 실지로 된 하나님의 성전의 모형인데 이런 순서를 거쳐  올라오면 그 다음에 천사의 보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단식 기도 하신 뒤에 여러가지 시험을 다  이기고 난 다음에는 마귀는 패전해서 물러가고 천사들은 와서 수종들었다.

그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성전이 갖추어지게 되면 한 천사가  우주를 하나님이 허락이면 당장에 가루를 만들 수도 있고 또 이걸 보존할 수도  있는 이런 그 하나님 다음의 능력을 가진 천사인데 이 천사의 호위를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천사의 호위가 있기를 원해야 되고 또 있도록 노력해야 되고  실지로 천사의 호위를 입어야 됩니다.

 성자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다 초자연적인 걸음들을 걸었습니다. 초자연적인  걸음들을 걸은 그 걸음 걸음마다 다 천사의 옹호가 있었습니다. 왜? 인간으로서  지탄 할 수 없는 그 형편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그것은 다 천사의  옹호들입니다. 그런 것을 아마 여기서도 여러분들이 몰라도 여러분들도 수십 번  수백 번 느꼈을 것입니다. 저도 천사의 옹호를 받았다는 그 느낌을 가진 것은 뭐  수백 번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수십 번 수백 번 느꼈을 것입니다.

 그것을 예사롭게 생각해서 그렇지 미리 자기가 그것을 심사해 봤으면 '이번에  이것은 아무래도 안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라야 되지 이것은 안된다.' 하는  것을 미리 알았으면 그것이 이루어져 갈 때에 분명히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자기가 느끼고 깨달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모를 때에 실지로 환상 가운데에 천사의 역사가 나타나는 그런 일들도  있습니다. 음성으로 환상으로 징조로 그렇게 나타나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도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문제로 많이 싸웠는데 늘 해방 직전 한 사 개월  전까지 신강했었는데 매일 일본 사람 부장이 와가지고서 신사 참배에 대해서  서로 대결을 했었는데, 제가 화산이라고 그 산이름이 화산인데 불 화(火)자.

화산 만당에 가가지고 몇 일 단식하고 기도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세 번 큰  소리로 외쳐 줬습니다. '주의 재림이 불원하니 인내하라 인내하라' 하는 그것을  세 번 거듭하는 소리 듣고 마음 가운데에 평강이 있어서 내려 왔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부장이 계속 있었지만 그 뒤에 와 가지고는 다시는 나한테 '신사  참배를 어떻게 할라냐?' 하는 말을 다시 말하지 안했습니다. 그 후에 신사  참배에 대해서나 내게 대해서 말하는 소리를 나는 듣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대구도 그 후에 몇 번 갈 걸음이 있어 갔을 때에 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내가는 데 다른 사람 다 내비두고 하필 나를 부릅니다. 좀 수상하게  보이졌는가 가면 다른 걸로 질문하지 신사 참배는 어떻게 할 것이냐 했느냐  안했느냐 기독자라면 집사라면 신사참배 어떻게 했느냐 하는 그것을 질문하는 그  질문은 다시 하나님이 입을 봉해 버려서 다시는 질문을 못들어 봤습니다. 그렇게  그라다가 해방을 받았습니다. 그런 것도 하나의 천사의 옹호입니다.

 이면에 있어서는 내가 천사를 보내서 천사의 옹호를 주겠다하니까 천사가  옹호하니까 그들이 다시 입 한번도 그 뒤에는 질문 하나도 하나 못했습니다. 한  일은 없었습니다. 천사의 옹호를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자인 줄 알고 천사의  옹호를 받는데까지 나아가도록 원해야 될 것이고 노력해야 될 것이고 또 실지로  천사의 옹호를 받는 자가 되지 안하면 세상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속죄소입니다. 아홉째는 속죄소입니다. 속죄소는 자기의 모든  잘못이 주의 구속을 힘 입어서 다 해결짓고 자기로서 있는 힘 다해서 충성이  되었을 때에는 거게는 하나님과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과 문제가 해결된  그 단계가 뭐냐 속죄소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이것이 성전인데 우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완성은 이루지 못하나 이 요소들이 우리 속에 있어 가지고 이 요소적 소원과  노력과 그 결과가 양적으로 많지 못할지라도 차차 차차 다만 조금씩이라도 이  작용이 있어야 되고 결과가 이루어져서 나가는 것이 이것이 성전입니다. 이것을  버린 자가 성전이 더러워진 것이요 이 작용이 있는 것은 이것은 성전 건축이지  성전 파괴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 가지 거룩과 열 가지 이 요소 작용. 이것이 인격입니다.

이것이 사상이요. 이것이 정신이요. 이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네 가지 거룩이 양이 많든지 적든지  있어야겠고 열 가지 이 요소 작용이 적든지 많든지 양이야 어쨌든지 이것이  부지런히 노력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기도>  감사합니다. 주셨사오니 받아 간직하고 열매맺게 하시옵소서. 4대 거룩과 열  가지의 인격 작용, 사상, 소원에 이 요소가 구비하도록 성령님으로 우리  각자들에게 충만시켜 주사 진실로 지극히 크신 주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이를  통하여 소원대로 모든 것에게 충만할 수 있는 주의 전으로 복의 기관으로 생명의  역사로 살 수 있게 하시옵소서.

 주 예수님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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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백성/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1980. 5. 1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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