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7대속-받는3방편

 

1987. 1. 8. 새벽 (목)

 

본문:마가복음 10장 22절∼31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될 자가 많으니라

 

이 구원에 대해서 천국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이 천국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는 말씀을 하실 때에 제자들이 다 근심하고 놀랐습니다. 놀라는 걸 보시고 거듭 또 말씀하시기를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절대 안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 제자들이 근심할 때에,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 영 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구원을 얻되 영 구원은 하나님이 이 구원을 이루시고 이루는 데 있어서는 사람은 하나도 거기에 상관하지를 않습니다.

왜? 사람은 영이 주격이요 이 마음과 몸 둘로 되어 있는 이 육은 소유격인데 소유격도 사망 아래에 있고 영도 사망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것은 아무 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없습니다, 영육이 다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영은 순전히 객관 역사 하나님의 역사로서 영은 살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이 살아난 것은 다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로 살아났지, 영이 살아난 것이 그것이 중생이 영이 살아난 건데 중생은 본인이 모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바람이 어데서 부는지 그것은 사람이 보고는 모른다. 육안으로는 안 보인다는 말입니다. 바람이 육안으로 안 보이지마는 그 바람이 부는 그 결과를 보아서, 바람에게 피동되는 그런 것들을 봐서 동풍 서풍 남풍 이렇게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중생은 사람들이 모른다. 보이지 않는다. 중생은 보이지 안하나 중생된 그 사람은 뒤에 행동이 다르다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 구원은 순전히 주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으로 구원을 얻는 것인데 주님이 이 얻는 것을 역사하시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하나도 부담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에게는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 구원은 택한 자면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이 나빠도 다 하늘나라는 갑니다.

그러나 택한 자가 하늘나라 가 가지고 존비귀천, 존귀하고 낮고 천하고 영광스럽고 수치스러운, 하늘나라 간 자의 실력과 영광과 존비귀천은 각각 다릅니다. 그거는 뭐 천층 만층이 아니라 한없는 층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노력한 그 노력의 결과로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행위구원이라 성화구원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인데, 그것이 곧 오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면 다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앉은뱅이도 사람이요 누운뱅이도 사람이요 어떻게 천한 자라도 다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람이지마는 사람과 사람의 가치 차이는 어데 있는고 하니 그의 실력과 모든 자기의 행위에 따라서 영광도 대우도 존귀도 부강도 각각 다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늘나라 가기는 꼭 같이 갔지마는 그의 영광 존귀, 빈부귀천, 환영 수치, 평안 불안 그런 것은 각각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건설한 것이 다 불타 버리면 구원은 얻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자와 같다고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이렇게 어렵다 그 말은 어려운 게 아니고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보다 쉽다 이래 놨으니 이것은 뭐 어렵고 쉬운 게 아니라 이거는 절대 안 된다는 그런 뜻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물질을 말했지만, 재물을 말했지마는 그 다음에는 이제 부자를 말했습니다. 부자라고 말하면 뭐 재물 부자만 아니라 지식 부자도 있겠고, 권세 부자도 있겠고, 또 선천 후천적으로 사람이 타고 난 그런 부자도 있겠고 그런 거는 뭐 종류가 심히 많겠습니다. 많은데, 이 부자는 하늘나라 못 들어간다 그 말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이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지 안하면 부인하지 안한 것만치 하늘나라는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일곱 가지 구원을 우리가 받는데 일곱 가지 구원은 둘은 영생이요, 또 셋은 자유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의요, 하나는 하나님과 완전 화친의 완전 능력인 생명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것을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구원을 주셨기 때문에 이 구원을 자기 것 삼은 사람은 주님이 자기를 대신해서 했기 때문에 자기 구원을 삼은 사람은 자기는 주님의 것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은 내것, 그 내것 된 사람은 나는 주님의 것, 또 주님의 것이 된 사람은 이제 이 일곱 가지 대속을 가진 자기가 주님의 것 된 자는 자기가 사는 것은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자기 안에서 자기의 영육을 운영해 가지고 살고 자기 자의대로, 자기 주장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가 자기의 주장이 돼 가지고 살지 안하고 이제는 대속을 내게 주신 주님이 내 안에서 내 영육을 주관하시고 나는 그분에게 주관을 당하는 영과 육이 되는 그것이, 영은 하나님은이 그렇게 일으키셨고 이 심신은 우리가 노력을 해 가지고 지금 되는 것입니다. 된 것만치 이 심신의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자기를 백분지 일을 자기 부인했으면, 부인하고 행동에 백분지 일에 주님이 자기를 주관했으면 그만치 구원이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백의 구십구가 주님이 주관하시고 자기가 주관하는 것이 백의 일이 됐으면 백의 일 그거는 멸망받습니다. 구십구는 구원 받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자기가 주관하면은 그는 다 멸망이요 부자가 없다 말은 자기의 것이 없고 순전히 주님의 것만 자기가 가지고 자기는 주님의 것이 돼야 된다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요사이 주일학교에서도, 예수님이 죽으시고 또 부활하신 이 예수님의 사활, 예수님의 부요 영광 존귀 지위 권세 이 모든 자체의 생명까지를 다 희생해 가지고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것이 일곱 가지 대속이 있다, 이제 말한 대로 그 일곱 가지. 일곱 가지 대속이 있는데 일곱 가지 대속을 자기 것 삼은 사람은 자기는 주님의 것이 돼야 된다.

그러면 주님의 모든 걸 다 기울여 가지고 만들어 놓으신 일곱 가지 이 대속 영광스러운 이 구원 그것도 제것 저도 제것 그럴 수가 없다. 비유컨데 그 상점에 있는 물건을, 저 사람의 물건을 내것 만들면 내것이 그 사람의 것이 돼야 됩니다.

그 사람의 물건을 내가 가져오면 내게 있는 내 소유인 돈을 지불해야 되는 것이지 돈도 지불도 하지 안하고 둘 다 가져오면 그거 도둑놈이지 그거는 그 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것은, 예수님의 전부를 다 기울여 가지고 만들어 놓은 일곱 가지 대속이 내것 되면 나는 주님의 것이 돼야 되지 나는 내것은 내것대로 있고 주님의 대속만 내것 삼을라 하면은 그것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 말은 자기를 자기 것으로 가진 거 자기 것은 없어. 우리가 세례받는 것은 주님과 함께 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고, 주님이 내 대신 죽은 것이 그게 내 죽음이고 나의 살아 있는 것은 내것이 아니고 이제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결정지우는 것이 세례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받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과 함께 장사지내는 장례식을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세례라 그렇게 로마서 6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요새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거 칠삼, 칠삼. 일곱 가지 구원, 또 방편의 세 가지 순서 그것을 그래서 칠삼이라, 구원은 일곱 가지요 일곱 가지 구원을 내것 만드는 데에는 그 순서가 세 가지다. 세 가지다. 세 가지인데 그거는 뭐이냐? 주님의 것은 내것 되니까 고거 한 순서, 그러니까 나는 또 주님의 것 되는 또 순서 하나, 셋째로는 주님의 것이니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 가지고서 내 영육을 주관하신다 그것이 셋째, 이래서 구원은 일곱 가지요 그 구원을 내것 만드는 데에는 세 가지 순서를 밟아야 된다.

그러면 세 가지 순서를 밟는 데에는 어떤 사람은 세 가지 순서를 밟으면서 천분지 일을 밟는 사람 있고 천분의 백을 밟는 사람 있고 천분의 천을 다 밟은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구원은 그 층어리가 수없이 많다 그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모든 성경이 여러가지로 이리 저리 말을 하나 그 성경은 다 요 열 가지를 가르치기 위해서 말해 놓은 것입니다. 열 가지를 가르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걸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요 모로 가르쳐 주고 조 모로 가르쳐 주고, 좀 쉽게 어렵게, 또 직접으로 간접으로 간간접으로 여러 수천의 방편을 가지고 일곱 가지 세 가지 이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신구약 성경의 전부입니다.

구약 성경은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하는 것을 미리 예언적으로 가르쳐 예언으로 가르치면서 또 그것을 더 쉽게 물질적으로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이 모든 물질적의 것으로 가르쳤고 신약은 예언 성취가 된 이루어진 그 결과를 지금 가르치면서 물질로 가르치는 것보다도 좀 이치로 가르치고, 보기 어렵고 조금 알기 어려운 그런 이치로 가르치고 그 물질로 가르치지를 안한 그것이 좀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을 이 모든 물질 가지고 만들어서 뭐 성소도 있고 지성소도 있고 돌로 만들고 보석으로 만들고 휘장으로 만들고 나무로 만들고 이렇게 성전을 만들었는데 신약 교회 와 가지고는, 그것을 만들고 그렇게 쭉 육체의 이스라엘들에게 가르쳐 나오다가 신약에는 성전을 가리켜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우리의 몸이 성전이요 우리 마음이 성전이요 우리의 그 영이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러면 그 성전이 이렇게 이렇게 구조가 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이 영육이 성전이니 영육도 구약에 있는 성전의 구조와 같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구조들을 그렇게 구별하면서 구원을 이루어가야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지난밤에 우리가 신불신자가 이 세상에 상대하고 사는, 상대하고 사는, 가치로 알고 살고 있는, 상대해서 가치로 알고 살고 있는 것이 몇 가지라고 지난밤에 공부를 했습니까? 손라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녜, 다섯 가지라고 그렇게, 저○기사? 들었어, 아까? 아까 손 안 들었지? 왜 안 들어, 그래? 들지.

뭐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눈이 많이 어두운 줄 알지? 여기 다 그거 알아. 저거는 교만하다, 저거는 뭐 하나님의 도야 그렇게, 막 죽자 살자 달라드는 사람도 알고, 또 ‘뭐라고 말하는고 보자, 구경이나 하자.’ 하는 자도 있고, 구원 얻을라고 지금 이루어갈라고 애를 쓰는 자도 있고 그래요.

그런데, 병이 안 든 것보다 병이 든 것이 나은 면이 많습니다. 요새 지금 저 양산동 기도실에 ○○○집사님이 거게 가서 지금 거처를 하고 있습니다, 여게 오지도 못하고. 거처를 하고 있는데 그래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저게 건강한 모든 사람들보다, 건강해서 지금 막 천지를 모르고 날뛰는 그자보다 저게 복이 있다.’ 왜? 건강한 자는 건강하니까 이 세상만 보고 죽는 그 시간까지 건강하니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주장대로 이렇게 날뛰다가 그만 주님 부르면 아무 구원 하나도 못 가지고 하나님과 관계도 조그만치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래 가는데, 병이 들어 있으니까, 이제는, 집에 와 가지고 뭐 조금만 거석하면 또 집에 가서 이것도 해야 되고 또 영감님도 또 이거 저거 시키고 요구하고 또 조금 여유 있으면 아들딸들도 이것도 해 달라 하고 저것도 해 달라 하고 이렇게 지금 하고 있는데 이 병이 딱 들어 놓으니까 마음에는 자기도 하고 싶고 이런데 와 가지고 조금만 거석하면 아파 못 견디고 죽을 지경이고 아파 못 견디니 뭐 있어도 하지도 못하고 아파 죽을 지경이니까 또 갑니다.

가 가지고 또 기도하고 이래 자꾸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또 그게 안 아파서 또 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게서만 다닐 수 있소. 오면 죽어.

또 하나님만 사모하고 자기가 모든 털끝만한 죄도 짓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과거의 이 모든 것만 다 회개를 하고 이렇게 하면 또 평안하고 좋고 기쁘고 이런데 또 그게 그만 생각만 딴 생각을 해도 안 돼요.

내가 직접 못 들었는데 말 들으니까 하루는 자기가 가 가지고 산에 가서 이래 있다가 자기의 된 그 모든 것과 모든 과거에 모든 죄를 생각한 걸 자꾸 생각해서 하나씩 둘씩 회개를 하고 나니까 나중에는 그만 기뻐 못 견뎌서 혼자 밤새껏, 다른 사람 봤으면 미친 사람이라 할 만치 어떻게 기뻐서 속에서 자꾸 웃음이 나오고 기쁨이 나오는지 밤새껏 기뻐서 웃어서 이렇게 그런 아주 변태된 그런 사람으로 밤에 지냈다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가 남아 있고 이 세상 것 그런 성화되지 못한 것이 남아 있어 가지고 그놈이 주장해 살 때에는 아무리 건강해도, 그러니까 예를 들면은 예수를 믿지 않는 부자, 권세 많은 무슨 대통령, 또 어떤 영광스러운 무슨 대학자 그 사람하고 예수 믿는 나사로 같은 그런 천인하고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오늘 떠나도 그 가치는 아주 그만 판이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 죄짓는 그런 거 있어서 죄 많이 짓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차라리 죄를 지을 수 없는 사람, 하나님을 가까이 안 하고는 못 견디는 사람, 죄를 짓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자기에게 무슨 잘못됨이든지 죄를 두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생각하고 그 소원하고 그 사람으로 자꾸 성화될 때에는 평안하고 그게 안 될 때는 고통스러워서, 하늘나라에 가져갈 수 있는 이 성화가 될 때는 평안하고 성화가 안 되고 죄를 범할 때는 고통스러운 그 사람이 복이 있지 죄를 암만 지어도 평안하고 덤덤하고 또 하나님과 암만 대립이 돼도 평안한 그 사람은 그게 하나의 사사로운 자식이요 저주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은.

이래서 “징계가 없는 자는 사사로운 자식이요 하나님의 참아들이 아니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징계가 없는 사람 있습니다. 없다가 이제 징계가 있을 때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착수해서 구원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 징계하는 것을 징계를 받아 가면서 깨끗이 회개하면은 깨끗한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징계받아 가지고 회개하자 가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일찍부터 징계받는 사람은 징계받아 가지고 깨끗하게 돼 가지고, 깨끗하게 돼 가지고 뭐 언제든지 주님만 사모하는 그 일 아니고는 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그 사람의 모든 언행심사 하는 행동이 다 의롭고 심판받을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밤에 그 다섯 가지 우리의 소망을 가리켜서 말을 했는데 제일 천한 것 일호가? 물질, 이호가? 일, 또 삼호가? 행위, 또 사호가? 사람, 또 오호가? ‘영’ 하는 건 하나님입니다. 영은 하나님을 말해. 하나님.

그러면 이 다섯 가지의 이것을 소망해서 물질이 많은 사람은 영광스러운 사람이고, 또 모든 자기의 하는 일이 다 성사가 되는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사람이고, 또 자기의 모든 행동이 다 형통하고 권위 있는 행동이 되는 그런 사람들이 다 영광스러운 사람이고, 그 모든 하는 자기 하는 일이 실패되는 사람, 또 행동이 모두 낭파되는 사람, 또 물질에 다 실패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다 불행스러운 사람이라, 그게 많은 사람은 행복스러운 사람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세상이 다 그래 안 여깁니까? 그런데 그위에 두 가지는 뭐이냐 하면은 사람 성공이 있고 실패가 있고 또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 성공이 있고 실패가 있고, 그 사람은 세상에 돈도 많고 일도 잘되고 모든 자기의 행하는 일이 다 형통하고 이래도 하나님은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 거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도 자기 하나님 삼지 못하고 하나님 거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거지가 있고 세상 것은 뭐 구비하고 참 풍성하고 부요한 사람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성경에 기록한 데가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한 데 있습니까? 시편 73편을 보십시오. 시편 73편에 가 보면은 막 모든 것이 부요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털끝만치도 자기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또 자기라는 사람은 순전히 악한 자라 이랬습니다. 순전히 악한 자라.

그러니까 사람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이 세 가지는 부요했습니다.

또 이 세 가지를 실패한 사람으로서도 두 가지로는 부요한 사람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재산도 없지 자기 일도 다 실패지 행동도 전부 다 실패요 불통이지 이런데도 하나님은 부요하게 모셨고 또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영광스러운 사람이 있었는데 그 혹 성경에 있습니까? 녜, 그만 쉽게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습니다. 나사로가 그랬습니다.

이랬는데, 또 아브라함이라든지 롯이라든지 그런 사람들 또 뭐 여러가지, 요셉이라든지 여러가지 이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은 이 세 가지가, 이 세 가지, 이 세 가지와 두 가지는 이것은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가 아니라서 어떨 때는 이 다섯 가지가 다 성공되는 일도 있고 어떨 때는 위에 것 두 가지만 성공되고 밑에 것 세 가지만 성공되는 일도 있습니다.

있는데, 위에 것 두 가지 성공할라 하면 밑에 세 가지 실패하고 밑에 세 가지 성공할라 하면 위에 두 가지 실패하게 되고 이것이 서로 대립되고 모순되는 때가 있다 그 말이오.

모순되는 때가 있을 때에는 그 대개 사람들은 밑에 세 가지를 가치로 삼고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위에 두 가지야 어찌 되든지 밑에 세 가지를 자기의 가치로 두고 거게 표준을 두고 그래 가지고 날뛰는 사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 두 가지가 이리 될 때에 밑에 세 가지 그까짓 거야 어찌 되든지 위에 두 가지 이것을 맞춰 살아야 되겠다 두 가지를 맞춰서 사는 사람도 있고 세 가지 맞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랬는데, 두 가지를 맞춰서 두 가지 성공한 사람은 이 밑에 세 가지가 실패가 됐으나 실패가 그때만 됐지 잠시 잠깐 후에는 이 세 가지도 대성공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위에 두 가지 이까짓 거야 돌보지 안하고 밑에 세 가지가 중요하다 해 가지고 밑에 세 가지만 성공한 사람은 밑에 세 가지는 형통하고 대성공을 했는데 잠시 후에 될 때에는 이 세 가지가 대패망이 되고 말고 위에 것도 다 없어 패망되고 다섯 가지가 다 패망되는 사람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위에 두 가지와 밑에 세 가지가 같이 다 성공될 때는 다섯 다 되면 좋습니다. 밑에 것 나쁜 게 아니라. 다섯 다 되면 좋아요. 다 되면 좋은데 이게 같이 안 되고 위에 것 둘 취할라 하면 밑에 것 내놔야 되고 밑에 것 서이 취할라 하면 위에 것 내놔야 되고 요럴 때에는 위에 것만 둘 취하는 이거, 가치가 여게 다 원인이 여게 있기 때문에 ‘위에 것 두 가지만 취하고 나면은 밑에 것 세 가지는 낭파가 됐지마는 위에 것 두 가지만 취하고 나면 위에 두 가지에 밑에 세 가지 이까짓 거는 따라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위에 두 가지만 성공하면 밑에 세 가지 이거는 절로 성공이 된다.’ 그러니까 위에 두 가지 취한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은 위에 두 가지 이거는 보지 못하고 ‘위에 두 가지 그까짓 거야 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그까짓 거는 별 가치 없다.’ 밑에 세 가지 이거, 밑에 세 가지 이것만 취할라고 날뛰어서 밑에 세 가지 취해 가지고 ‘성공이다’ 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지마는 이 위에 두 가지가 없으니까 잠시 후에는 이 세 가지가 다 폭망되고 맙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가치를 밑에 세 가지를 가치로 삼고 사는 사람도 있고 위에 두 가지를 가치로 삼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밑에 것도 가치는 가치지마는 위에 두 가지만 못하다. 이러니까 둘을 취할래 서이를 취할래 이렇게 같이 취하지 못하고 서로 나뉘어지게 될 때에는 위에 두 가지를 취하고 밑에 세 가지를 내놓는 사람도 있고 밑에 세 가지를 취하고 위에 두 가지를 내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데, 지난밤에는 이렇게 될 때에는 세 가지를 취하라 했습니까 두 가지를 취하라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녜, 두 가지를 취하라 했지요.

그랬는데 여러분들, 이 두 가지를, 두 가지 취할라면 세 가지 내놔야 되고 세 가지 취할라면 두 가지 내놔야 될 요럴 때가 제일 문제입니다. 그거 다 다섯 가지 한목 다 취하게 될 때에 또 다섯 가지 다 실패될 때는 실패 다 던져 버리고 성공될 길만 걸으면 되지 않습니까? 이런데 요 둘이 갈라질 때에 사람이 참 고통이야.

갈라질 때 요때가 지금 문제인데 요때에 성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성경 가운데에서 위에 두 가지냐 밑에 세 가지냐 요렇게 지금 둘이 갈라졌을 때에 위에 두 가지를 취한 사람과 밑에 세 가지를 취한 사람이 같이 그 동시에 있었는데 동시에 있은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그 동시에 위에 두 가지 취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밑에 세 가지 취했습니까? 녜, 아브라함과 롯입니다.

아브라함은 뭐 취했습니까? 세 가지 취했습니까 두 가지 취했습니까? 아브라함은 두 가지 취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가지 취했어. 롯은? 롯은 세 가지 취했어.

롯은 세 가지 취했고 아브라함은 두 가지 취했는데 그러니까 처음에 그 당시에는 누가 성공입니까? 롯이 성공이오. 사람 보기에는 롯이 성공입니다. 아브라함은 대실패자요.

이랬는데, 해 지나고 난 다음에 한 십 년, 아마 한 뭐 십 년까지는 안 되고 한 이삼 년으로부터 둘이 두 사람이 눈으로 보이는 것이 동등되는 것은 그저 한 몇 달 후부터 동등이 됐습니다. 몇 달 후부터 동등이 됐는데 한 십여 년 후에는 어찌 됐습니까? 십여 년 후에는 롯은 비참하게 망했고 아브라함은 굉장하게 존귀한 사람이 돼졌습니다.

또 천 년 후에, 그후에 아브라함이 가고 난 다음에 몇천 년 후에는 어찌 됐습니까? 몇천 년 후에는 롯은 멸망자의 조상으로 뚜렷이 나타났고, 천하에 있는 모든 성공하는 사람은 다 누구의 자손이라 했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했습니다. 이거는 갈수록 좋아집니다. 알겠습니까? 위에 것 둘을 상대하고 밑에 것 셋을 상대하지 안한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이 좋고 내일보도 모레 좋고 모레보다 명년이 좋고 일 년 후가 더 좋고 십 년 후가 더 좋고 백 년 후가 더 좋고, ‘뭐 백 년 후 사람 죽었는데?’ 죽고 나면은 더 좋습니다. 이제 천 년 후면 더 좋습니다. 이다음에 하늘나라 가면은 전부 아브라함의 품 속에 모든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이러니까 세월이 지나갈수록이 존귀해집니다.

그러면 이 밑에 세 가지만 보고 사는 자는 세월이 지나가는데 십 년 후가 불행스럽습니까 백 년 후가 더 불행스럽습니까 어떤 게 더 불행스럽습니까? 십 년 후가 불행스럽소 백 년 후가 더 불행스럽소? 어떤 게 더 불행스럽습니까? 백 년 후가 더 불행스럽지. 천 년 후는? 천 년 후에 갈수록이 더 불행스럽지. 더 불행스럽고 이거는 갈수록이 더 좋아집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 보배피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게 온 것이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 도리가 왔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다 그 말이오. 그 사람들이 압니까? 세상 사람들이 이 두 가지가 좋다고 취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를 가치로 삼는 사람은 세상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만 이 두 가지를 가치로 삼습니다. 그 나머지 사람은 이 다 세 가지를 가치로 삼습니다.

불교에는 이 두 가지를 가치로 삼습니까 세 가지를 가치로 삼습니까? 그 사람들은 세 가지로 가치를 삼습니다. 그 사람들은 부처라고 말하지마는 그거는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내나 저거 주장하는 그 사람, 주장하는 그 행위, 이 행위가 그걸 한 사람 행위, 두 사람 행위, 열 사람 행위, 백 사 람 행위, 천 사람 행위 그거 해서 이 종교 창설자들은 조금 그 고차원에서 그 사람들은 뭘 취하고 있느냐 하면은 조금 높은 차원에서 물질을 취하고 있고, 높은 차원에서 자기의 일을 취하고 있고, 그러면 일을 하는 데에도 십 년 그 일이 유지되는 일도 있고 백 년 유지되는 일도 있고 석가모니 한 일은 몇 해나 유지가 되고 있습니까? 석가모니 한 일은 지금 몇 해나 유지되고 있지요? 오늘 이천여 년 지나갔는데도 그 일이 좋다고 이거 그거 다 유지가 되고 안 있습니까? 그 행사는 형통해서 뭐 절이 자꾸 지어지고 자꾸 성장돼 갑니다.

그러면 이러는데 이것은 언제 가서 이제 끝이 납니까? 언제 끝이 납니까? 개인으로서는 죽으면 끝나고 이것은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이 모든 것은 다 어데로 어찌됩니까? 다 절단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 가지를 취한 것은 암만 수명이 길어 봤자 예수님이 재림하면 끝나버립니다. 이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기 때문에 그 모든 철학자들이, 중세의 철학자들이 말하기를 ‘사람은 두 동가리다. 두 동가리라서 아래 동가리는 죽으면 그만 한 삼사 년 되면 썩어 버리고 한 십 년 되면 썩어버리고 이렇지마는 위에 상체는 썩지 않는다. 상체는 썩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백 년도 가고 천 년도 간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재명이요 호재피라’ 범은 가죽을 남구고 사람은 이름을 남군다 해 가지고 자기가 그거 이름을 남구기 때문에 이름이 있는 동안에는 죽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석가모니는 오래 살고 있다 그렇게 말하지마는 예수님 재림만 하면 요 위에 두 가지 취한 거 외에는 다 전멸이 되고 맙니다. 알겠습니까? 모든 이종교가.

그러니까, 우선 좋기는 세 가지가 좋습니까 두 가지가 좋습니까? 세 가지가 좋습니다. 그러니까 임시 좋은 것을 취하는 사람이 있고 임시 좋은 것을 취하지 안하고 차차 있어 갈수록이 좋은 것을 취하는 사람 있고 두 종류 있습니다.

이래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손해본 사람들은 여러 배 백 배를 얻고 또 영생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다” 하는 그 사람은 처음에는 그라면 그 사람이 그런데 손해봤는데 뒤에 많이 취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래서, “얻되 핍박을 겸하여 얻으리라” 요 말을 오늘 아침에 할라 했는데 시간이 없어 지금 다 증거를 못 하겠습니다. “핍박을” “백 배나 얻되 핍박을 겸하여 얻으리라” 꼭 그 말이 무슨 말이요?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성공은 “핍박을 겸하여 얻으리라” 주님으로 말미암아 성공되는 그 성공은 핍박을 겸하여 얻으리라 하는 그 핍박이 뭐입니까? 주님으로 인하여 성공하는 그 성공은 꼭 ‘주님 때문에 망한다 하는, 그 망한다’ 하는 그런 순서를 통해 가지고 꼭 성공합니다. 알겠습니까? 요걸 알아야 돼요.

공부하는 학생이 주일 때문에 공부도 못 하고 뭐하고 이라니까 ‘주일 때문에 공부하는 거 손해본다. 손해본다.’ 주님 때문에 손해보는 그 손해를 먼저 보고 이제 주님의 축복으로 성공하는 그것이 성공인데 ‘오늘 내가 공부 안 하면 시험에 일등 못 하겠다. 이러니까 내가 주님에게 좀 거슬려도 공부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은 처음에 성공입니까 뒤 성공입니까? 처음 성공인데 뒤가 망해 버립니다. 지혜와 총명을 감해 줘 버리지, 하나님이 암만 공부 잘해 봤자, 머리 암만 좋아 봤자 하나님이 축복 안 하니까 하는 일이 다 빼빼 말라 가니까 소용이 없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그러면 처음 좋은 것 취해요 있어 갈수록이 좋은 걸 취해야 돼요? 이것이 다 세상서도 이치가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춘향전에 ‘고진감래요 흥진비래라’ 쓰운 것 뒤에는 단 것이 오고 ‘흥진비래라’ 좋아서 날뛰는 흥 뒤에는 비참한 것이 온다 그렇게 말했어.

그 준비가 고생스러우면 그 결과가 좋아요 나빠요? 준비가 고생스러우면 그 결과가 좋아요 나빠요? 준비할 때 그때 평안하고 좋고 즐겁고 영광스러우면 그 결과는 좋아요 나빠요? 나빠, 망해요.

그러니까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요걸 못 잡으면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꼭 하나님이 주실 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이거 망하고, 이 모든 세 가지가 망하고 또 이 세 가지 이걸 실패 안 볼라면 하나님을 버려야 되고 요럴 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면서 이 세 가지 내가 손해보는 그 걸음을 걸어서만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 그래야 하나님 믿는 자거든.

그거 시험이야, 요거.

주님과 그 사람 두 가지, 요거 두 가지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가는 그 사람에게는 그거 주고 이 세 가지만 보고 두 가지 생각지 안하는 그놈에게는 줘 놓으면 그놈이 점점 그거 가지면은 악을 더 행악할 터이니까 주실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따라합시다.핍박을!겸하여!얻으리라!핍박을 겸하여 얻으리라!핍박을 겸하여 얻으리라!요 비밀을 깨닫지 못하면 안 돼.

하나님이 딱 보고서 핍박을, 주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손해를 봐도 범죄하지 안하고 손해를 봐도 주님 배반치 않는 그자에게 줘야 돼지지 우선 좋은 것 그것만 취해 가고 뭐 좋은 것 취하기 위해서 죄고 하나님이고 돌아보지 않는 그자에게 많이 주면 그 사람 많이 준 거 가지고서 뭐 하겠습니까? 죄짓고 악을 행할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걸 기억해요.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요 비밀을 깨달아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권찰님 구역에 초상이 났습니다. 아홉시까지 오시면 상가에 갈 수 있습니다. 요새는 뭐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초상이 자꾸 나는데 우리 묘지가 솔아서 이 빨리 안 가면 이거 차지 못 해요. 이 백 목사도 차지 못 하겠어. 백 목사 묘지를 하나 딱 정해 놨으면 아무도 못 가구로 하고 이랄 건데 정할 수 있지마는 그거 또 정할 수는 없거든, 내 마음에 허락지 안하니까.

이러니까, 자꾸 이라면 백 목사도 이거 차지 못 할 것 아니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묘지 부장 어찌 됐든간에 사바사바하지 마이소. 간 사람은 성공이오. 간 사람은 성공. 간 사람은 성공이고 남아 있는 사람은 걱정거리라. 남아 있는 사람은 백 목사 걱정거리 간 사람은 이제는 안심이라 성공했어, 이제는.

왜? 앞으로 어떤 환난 오면은 예수님 배반하고 그런 망령을 부릴란지 몰라요.

왜정 말년에 믿는 사람들 전부 망령 부렸습니다. 다 신사참배 하고 우상숭배 안 했습니까? 그 구원 싹 다 깨졌다 그 말이오.

이런데 이런 걸 지금 말해야 몰라요. 앞으로 그런 시험 오면은 뭐 다 떨어지지 않나?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 물으면 말은 잘해요, 알기는. 자, 순교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전부 다 이래 막 빨리 드는데, 녜, 고맙습니다. 이렇지마는 이제 그때 순교 당할 때 되면은 그때 가면은 어데로 숨을란지 썩썩 나와 당할란지 모르겠어.

세상은 나그네 세상입니다. 잠깐 살고 가는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영원을 결정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 한 토막만 보고 살면 큰일 납니다. 이 세상살이는 영원 장래를 보고 살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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