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1982. 3. 17. 수새

 

본문: 빌립보서 2장 5절 - 11절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이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선지자선교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마음을 말하는  것은 마음에서 모든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행동까지를 포함해서 한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너희들이 이 행동을 가져라 행동을 가져라 하면  마음은 얼마든지 방탕하면서 행동가지는 그 의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가져라 말씀하신 이 마음과 행동을 같이 가져라 하는  말씀입니다. 거기 첫째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과 동등 될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이 첫째입니다. 동등이면 서로 비교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이길 때도 있고 저것이 이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서 제가 시비를 거는 것. 또 어떨 때는 하나님과 진리에게 제가 져서 끌리게  어떨 때는 하나님과 진리가 저희에게 져서 끌려지는 이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등 됨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첫째 회개를 해야 되지 이것을  해결하기 전에는 잘 믿는 것 같아도 그게 마귀입니다. 열심이 있어도 마귀입니다.

다 주관 행위는 하나님의 적이요. 인간이 근본이 된 행위는 다 하나님의  적입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어떤 자는  하나님과 동등 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보다 자기가 훨씬  위에 뛰어나 있습니다. 있어서 하나님과 진리가 뭐라고 한다고 해도 제 주장  대로요.

 그 사람은 하나님보다 높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보다 진리보다 높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자기에게 우상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우상  하나님보다 진리보다 자기를 더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자가 그자가 그자에게  우상이지 자기를 하나님이 주관하심보다 진리가 주관하심보다 자기가 더 강한  주장을 세력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와 둘이 시비할 때에 결국은  하나님이 하나님과 진리가 끌려지고 자기가 승리하면 그게 우상이지 딴 게 뭐  있습니까, 그 우상이 아니라고 어떻게 해석을 합니까? 우상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아예 우상 섬기는 자기 때문에 어디든지 피동되고  복종하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에게도 복종합니다. 하나님과 진리에게  복종한다고 다 좋은 것 아니요. 하나님과 진리에게 복종을 하는데 복종하는  습성이 있고 복종하는 그런 종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든지 복종하는  자입니다. 어디든지 하나님과 진리에게 복종하되 어떤 피조물에게도 복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진리에게만 복종하는 그 자라야 가치 있는 것이지 하나님과  진리는 신구약 성경이지마는 신구약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인 영감이지마는  신구약 성경을 자기가 구구절절을 다 외우고 있습니까. 외우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 아이를 통해서도 어떨 때는 진리와 영감이 자기에게 명령할 때  있습니다.

어린 아이 원수를 통해서도 영감과 진리가 명령할 때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런  것을 얼마든지 당신의 도구로 쓰십니다. 발람에게는 나귀를 통해서 하나님이  진리와 영감으로 명령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명령했든지 하나님과 진리의  명령이라면 거기에 복종을 하는 자라야 자기를 비운 자지 아 훌륭한 간판을 가진  자가 말할 때는 복종하고 아주 빈약한 자가 말할 때는 짐승이 말할 때는 아무리  진리고 영감이라도 복종하지 않고 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인정하는 그 사람  그에게 복종하는 그 사람이 자기에게는 우상 되어있는 자입니다. 맹종이요 그거는  맹종 또 자기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는 자기를 비어서 양보를 한다 할지라도 그런  양보하는 습성과 복종하는 습성이 있어서 어디든지 대면 대가리 숙입니다.

어디든지 그것은 어디서 그런 버릇이 생겨졌느냐 하면 자기가 복종하는 어떤 그  우상이 있습니다.

사람이든지 돈이든지 권세든지 어떤 기간이든지 자기의 애정이든지 무슨 다른  정실이든지 우상 되어있는 그것이 하나 있어서 그 우상에게 복종을 하다 보니까  그것이 습성이 되어서 그만 어디든지 저 보기에 좀 큰상 바르면 복종하고 좋을상  바르면 복종하고 무섭고 어렵다 싶으면 복종하고 이것은 종의 근성이 있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자는 인격이 없습니다.

그런 자에게 일을 맡기면 낭패가 됩니다. 왜 그것이 이럴 때에는 옳은 것에  복종할 때에는 옳은 일하는 것 같지마는 그것이 옳은 일에 복종해 가지고 일을  만들어 논 것을 어떤 자에게 복종을 해 가지고 다 한꺼번에 삼켜질는지 아들  말로 호박씨 깔라 하면 참 힘이 있어야 돼. 힘이 드는데 자잔한 것 호박씨 까  가지고 한 입에 털어 넣는다 그런 말을 다른데 없는가 몰라도 저 지방에는  있습니다. 어릴 때 호박씨를 톡톡 까면 힘이 들어 한 개 까 모으고 두 개 까  모으고 세 개 까 모으고 이렇게 모아 가지고 이만치 모아 가지고는 한 입에 톡  털어 넣는 것 호박씨 까서 한 입에 넣는다 이 말과 같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는 것 같이 하지마는 마지막에 어떨 자에게 그 전체를 똘똘 뭉쳐 한 입에  털어 넣어서 뺏길는지 모른다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등 된 것으로 여기지 안 한 이것이 첫째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동등 될 것으로 하나님 말하면 진리와 언제든지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동등 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이것이 있어야 되어야 되지  자기를 낮추고 남을 자기보다 낮게 여긴다 하고 이 해석을 거꾸로 해 가지고  언제든지 내 의사보다 남의 의사를 따라야 된다 언제든지 나는 남의 밑에 가야  되고 해야 된다. 그것은 인본의 해석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창자 없는 것 아닙니다. 겉은 복종하는 것 같아도  정말로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혹 복종하는 것 같은 그런 방편을 쓰는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거 억억만 배도 더 큰 더 크고 더 무서운 것 있어도  세상에게는 복종하지 않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기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께서 어머니라고 마리아와 동등 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은 그때 다 스승의 자리에서 신학자 자리에서 있었고 전통  자리에서 있었고 전통 자리에 있었다고 그들에게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렇게 하지 안 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포도주를 만들 때에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 있느뇨"  이랬는데 이 인본 신학자들이 걸리니까 인본 신학자들이 예수님은 우리가 다  인격으로는 존경하고 신격으로서는 숭배하고 이러는 분인데 아 어머니에게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뇨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은 큰 모순이고 아주  이것은 참 다른 사람이 볼 때는 흠점으로 보여지니까 이것은 잘못됐다 이것을  고쳐야 되겠다 오랫동안 나오다가 요 근년에 번역하는 자들은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인이라는 것은 이것은 여성을 존경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렇게 경어를 썼다 요래 번역을 딱 해  놨습니다. 그거 성구 그거 하나만 봐도 성경 모르는 자들이라 그 말이요.

그거 하나만 봐도 성경 모르는 자들이라 그래 물로 포도주 만드는 그것은  그리스도의 위치에서 구세주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에서 구주의  위치에서 하시는 일인데 구주의 위치에서 하시는 일인데 예수님이 순전히  육으로만 말할 때 육으로 돌아갈 때는 어머니요 그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자라  나왔지만 하나님의 위치에서는 하나님이 마리아 그거 지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피조물이요 이러니까 일에 대해서는 여인 너와 상관이 없다 네가 이런 일 관여할 일이  아니다 너는 복종만 해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뇨" 요 말을 써야 된다  말이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 먹이는 집에 사람을 보내 가지고 몰아 오라 하니까  '아, 남의 외양간 안에 키워놓은 나귀 새끼를 몰아오려면 돈을 줘야 되는데 돈을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가서 돈 가지고 가지말고' 안하고 몰아오는 것이 그게  도적 아닌가 그 도적의 행위가 아닌가 아마 박태선이는 조금 있으면 그거 도적의  행위라고 그거 눈이 아니요. 성경을 그 사람이 몰라요 모르는데 그 주장대로  한다면 보라 예수는 이렇게 무례한 사람 아니냐 남이 힘들여 키워놓은 그 나귀를  대금도 치지 안하고 내가 쓴다 해라 한 것을 강제로 모은 이것이 강도가 아닌지  뭐 무례한 자가 아니냐 예수님은 가장 죄인 중에 죄인으로 몰려 가지고 있는  것이 박태선이의 주장입니다.

지금 인제 언제 한 번 신문에 뭐 났는데 '아, 이 사람이 지금 인제 이 지금  향방을 돌렸구나 앞으로 이게 나올 것이다' 하는 것을 이 강단에서 내가 말했어.

언제 신문 한 쪼가리 났는데 벌써 여러 해 됐어 이랬는데 지금 인제 들고나섰어.

그것은 나귀 타고 입성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창조주로 대주재로 강림하실  재림하실 것을 모형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는 모든 그걸 없는 가운데에서  만들어서 오늘까지 기르신 주인이 쓰는데 제가 무슨 상관이 있어. 그것이 조물주  주재인 주재성과 조물주성을 거기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역사 그 역사는  조물주로 강림 재림하시고 창조주로 재림하시고 주재로 재림하시는 그 역사를  모형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는 주인이 딴 것이 없어 주님 혼자 주인이지.

이러기 때문에 '내가 쓴다' 하라 하니까 모든 활동계와 심리계를 주권하시는 분이  주권하시니까 제가 '녜, 몰고 가십시오' 하고 내 놓은 거요.

가장 신구약 성경이 참된 말씀이요 이 외에는 참된 말씀이 없어 다 반거짓말이지  있다고 해도 반거짓말이라. 이러기 때문에 제일 가짜는 어디 많으냐 신구약  성경에 대한 가짜가 제일 많습니다. 가짜는 가치 없는 것에게는 가짜를 안  만듭니다. 가짜를 만들어 유익을 있을 것에게 가짜를 만들지 어떤 그 학자의 말에  대해서도 가짜 만날 필요가 없어. 약간 있지 대 정치가나 큰 위대한 그런  인물들에 대해서는 적이 많기 때문에 가짜 만들 만한 그런 요소가 지금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 대해서 거짓을 지워놨습니다. 어떤 사람이  역사책보고 '아, 역사책이라야 되겠다' 그 한 시간에 한 사람을 한 시간에 한  자리에서 한 사람을 열 명이 보는데 그 사람에게 대한 판단이 열로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도 보면 공부 많이 하고 한 사람 가운데에 진실한 사람이 많지를  못해요. 진실한 사람이야 참으로 위대하지 위대하지마는 그런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것 자꾸 책을 지어내고 말을 써내고 보면 전부 자기 간판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많아.

저서한 중에 그 사람 저서가 몇 권이다. 이 권수 늘리기 위해서 저서 하는 사람이  제일 많고 또 자기 포부를 위해서 자기 나타내기 위해서 저서 하는 사람들이  많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 구원, 인생을 위해서 참 이것만이 순전히 위해서 저서  하는 일은 많지를 못합니다. 그걸 보면 과거에서부터 남아온 모든 책들도 이런  면에서 삼가야 할 수 있는 그런 점이 있습니다. 역사가라고 그걸 다 옳다고 볼 게  아니라 아, 그걸 보면 그 분위기를 알고 참고로만 삼지 그것을 성경 정확무오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경만이 정확무오요.

그러기에 성경 해석에 대해서 가짜가 제일 많습니다. 또 성경 권수로 말하면 가짜  해석이 어디 제일 많으냐 하면 요한계시록에 제일 많습니다. 요한계시록  주석으로서 가짜가 제일 많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이  참이요 그 외에 다른 것은 모두 다 반거짓말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인간들이 자유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 참이요 보배이기 때문에  여기는 가짜가 많겠다 하는 그 생각을 가지고 어짜든지 하나님에게 바른  깨달음을 주고 바른 깨달음을 배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이 기도를 자기가  기도하는 중에 제일 많이 해야 됩니다. 이 기도가 제일 많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기도를 하루 수십 번 한답니다. 수십 번 주여 66권 도리를 낱낱이 바로  깨닫게 해 주시고 그 다음에 이것저것 있어. 아무나따나 성경 해석이면 다  뭐이든지 다 먹어야 된다. 사경회면 어디든지 다 참여해 다 받아들여야 된다.

부흥회면 다 받아들여야 된다 하는 그 사람이 잡탱이 신앙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우리나라는 복음이 들어올 때에 아주 저급의 사람들로서 서면으로부터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일본나라는 아주 고관대작 공후백작으로부터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상위 인물로부터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까지도 일본나라는  비빔밥 신앙을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한국은 왜정말년 하나님의 종들이 다 갇히고  난 다음에 비빔밥이 들어 왔습니다. 그때 신신학이 들어왔소. 그 전에는 신신학이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눈을 열어서 모든 것은 좀 넓게 봐야 합니다. 그때 언제  일본 목사가 하나 왔는데 그 목사가 그때 아주 한국을 한참 좀 휩쓸었는데 그  사람이 어디 가서 강의하는 걸 제가 들었습니다. 그 이름이 뭐이던고 아, 뭐인데  자기가 말하데요 '우리 일본 신앙은 비빔밥 신앙이라'고 그 자랑이라 '철학도  과학도 모든 것 다 종합한 신앙이라' 제 딴에는 자랑으로 하는 것인데 제 정체를  들어냈다 그 말이요. 여기 누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나요? 예 아, 옳지  직전이라는 그 목사입니다. 그 사람이 이북에 와서 일하다 들어가고 그래 가지고  또 다시 왔습니다.

신앙생활에는 하나님과 동등 될 걸 여기시지 여기지 안 해야 되지 하나님과 동등  될 것으로 여기지 안 해야 되지 "하나님과 동등 될 걸로 여기지 않는다" 말은  하나님과 진리와 동등 될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말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동등  될 것으로 여기지 안하고 인간으로서는 어떤 인간이든지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자기와 동등입니다. 자기와 동등이기 때문에 자기도 그를 지도할 수 있고 그도  나를 지도할 수 있고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이 그에게 갈 수도 있고  하나님의 명령이 그를 통해서 자기에게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등 될 걸로 여기면 안돼요. 하나님에게는 자기를 비어야 돼. 진리에는 자기를  비어야 돼. 이 사람의 지조가 없고 창자가 없어 속에 인격이 들어 있지를 안 해.

조그마한 인격 자기 자존심 자기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그 인격은 자기가 콩낱만  밖에 못 하니까 자기 자존심은 암만 커봤자 콩낱 밖에는 만치 크지 못합니다.

하나님으로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 하나님께 속한 사람 구속을 받은 자라  하나님의 자녀라. 하나님의 지체라 하나님께 속한 자라. 하나님으로 인한 자기를  높이는 자존자는 우주와 영계는 자기 주먹 안에 들어갑니다. 자기 주먹 안에  들어가. 그건 내 가야 그까짓 거 내 소유야. 하나님 다음으로는 큰 자가 돼. 저기  보면 자존심을 가지고 있기는 있는데 그게 그 크기가 얼마나 크뇨? 팥낱만 하나  콩낱만 하나 자기만침한 그것은 어디서나 언젠가 종 됩니다. 언젠가 기회주의자로  종 됩니다. 하나님으로 큰 자는 피조물에게는 어두워서 잠깐 종이 되도 퍼뜩 벗어  나와. 벗어나올 수 있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그것이 자기를 비우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하여 자기를 비우지 진리를 상대해서 자기를 비우지 인간을  상대해서 자기를 비워.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말은 지식면이나 뭐  권위면이나 그런 걸 말하는 것 아닙니다. 귀중히 여기라 말이요 귀중히 그 무슨  말입니까? 자기는 존재 목적이 첫째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고 둘째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자기가 존재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는 것이지. 뭐이든지 양보해야 된다. 의사도  양보해야 된다. 뭐이든지 남 앞에 숙여야 된다. 그자는 팔방미인으로써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마는 창자 없는 창기적인 그 인격성을 가진 자입니다.

그자는 아무 일도 못해요. 종노릇이나 할까. 아무 것도 못해. 하나님의 종노릇은  못해. 중간에 주인이 많이 있으니까 날쌔게 날뛰는 인간들이 날뛰니까 인간의  종이나 되지 하나님의 종노릇은 못해.

기독자는 절대성인 인간에게 절대성이 없지마는 인간에게 절대성입니다. 절대성인  그 인격을 조성해 가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절대성인 자존성을 성장시켜 가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그 기독자가 뼈 없는 것 아니요. 그저 여기도 굽신 여기도  굽신 그저 이런 말 들어도 굽신 저런 말 들어도 굽신 하는 것은 하나의 철이  없어 모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를 아무래도 구원해야 되기 때문에 미운 애기  안 품에 품기로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참사람들이 그렇게 간 작은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비겁한 것도 아니고  옹졸한 것도 아니고 어떤 그 뭐 돈이나 뭐이나 권세나 사람에게 눌리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율법 없는 자에게 율법 없는 자와  같이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와 같이 야만인에게는 야만인같이  지혜로운 자에게는 지혜로운 자 같이 그렇게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함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만 뭐라고 해도 자기 가족에게는 그만 자기를 비워  버립니다. 아무리 하나님에게라도 자기 가족에게 대해서 자기를 비우는 자는  하나님이 아무리 오라 해도 자기 가족이 가지 말라 하면 못 가. 신앙을 암만  가져도 가족이 여기서 꼬랑 꼬랑 요래 요래하면 가라 하면 가고 앉으라 하면  앉고 서라 하면 서고 그 면이 어두워서 그만 이게 내가 무엇의 종이고 내가  무엇의 종이고 이 계집의 종이가 남자의 종이가 사장의 종이가? 어떤 인간의  종이가 목사의 종이가 누구 종이가? 나를 주관한 자가 누구? 이걸 보는 눈이  있으면 주여 일어설 것인데 이 눈이 뜨이지 안하고 감겼기 때문에 그걸 못  일어서고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하는 그것을 몰라. 그 성구가 그런  사람들에게 해당이 안 돼. 여기 와야 배우지 다른 교회 있는 사람도 새벽기도  나가야 배우지. 서부교회 속한 사람은 여기 와야 배워 진리를 모르면 주님을 팔지  안 할 수 없어.

"네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내 말이 네 속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했어.

마귀는, 예수 믿는 사람들 많아도 이것은 내 부하 이것의 종이고 저것의 종이고  다 종 돼 있기 때문에 뭐라고 해도 그때 최고적으로 오라고 명령하면 내게로  오지 절대로 예수에게는 가지 않는다 하는 그런 배짱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거요. 그 줄을 끊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 될 것 동등 됨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본체라 본체지마는 이 본체지만 이 구속에 역사  하는 이 구속 역사에 있어서는 구속 방편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본체시지마는  거기는 복종으로 나가야 되는 것이지 예 동등 됨으로 하면 이 구속이라는 것은  깨져버리고 안 된다 그거요. 자기를 비어 동등 하나님과 동등 될 것으로 동등이면  서로 시비가 있지 않소. 동등이면 이겼다 졌다 할 수 있지 않소? 동등 됨이  없으니까 그 결과는 언제든지 그에게 복종이지. 동등이냐 하는 거기 있으니까 그  결과는 언제든지 그에게 복종이지. 동등이냐 하는 거기에는 자기를 비었어.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 버렸어. 하나님과 시비하고 하나님과 밀고 땅기는 거기서는  완전히 죽은 자 됐다 그 말이요. 완전히 없는 자 됐어 자기를 비워서 완전히 없는  자 됐어. 이래 가면 피동 돼야지. 이 말씀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인간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은 나보다 낫고 나는 모든 사람보다 못난 자라. 요런 해석은 마귀가 주는  해석입니다. 그 밑에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그 말은 '모든 사람과 자기는  동등 될 것으로 여기지 말고 모든 사람을 자기 위해 되고 자기는 모든 사람과  동등 될 걸로 여기지 말아라'고 말씀으로 해석하니까 그 딱 들어맞는다 그거요.

그게 마귀 해석입니다.

잘 봐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그  위에 보면 뭐를 말했는고 하니 3절에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러고 그  다음에 있기 때문에 이 말씀과 연결돼서 인간들은 어짜든지 인간들에게 양보해야  된다 이게 겸손이다.

이래서 자기 의사보다 남의 의사를 위에 남의 의사에 따라야 된다 이것은 종의  근성이 있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복종하는 이 근성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어떤 천인이 원수가 말해도 옳은 것이면 예 복종합니다. 왕이 말하고  목을 걸어 놓고 말해도 자기가 아는 대로의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면 복종 안  합니다. 그게 다 순교자들입니다. 제가 고신에 있을 때에 고신에서 저를 반대를  하고 축출 운동을 할 때에 그때인데 ○○○ 목사님은 그럴 때에도 자꾸 그렇게  할수록 절 청해서 동성로 교회 시무 하실 때에 동성로교회 저를 청해서 집회를  했습니다. 집회를 하니까 그 반발심에서 그랬는지 고신 대구에 있는 고려  성경학교에 가서 경건회 인도를 해 달라고 만일 알았으면 그분들이 알았으면  순회 목사가 알았으면 ○○○ 목사가 치리를 할 건데 그때 좀 담대해서 날  세워서 대구 고려고등 성경학교 학생들 경건회에 제가 가서 설교하기를 이  성구를 설교했습니다. 빌립보 이 장 일 절로부터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학생들을 내가 보니까 알아듣는 학생 하나도 없고 알아듣는 학생 하나도 없고  알아듣는 강사들도 하나도 없고 기막혀서 내가 돌아와 가지고 오늘 그 말씀을  증거 했는데 어떻습니까? 그 좀 소식을 들어 보이소. 내가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무 쓸데없는 말 한 마디하고 가는 것처럼 내가 그때 말한 그거요.

'권면이나 위로나 사랑이나 자비나 긍휼이나 그것이 하나에게서 나온 일원성을  가진 것이라야 되지 다원성 가진 건 소용없다' 하는 그것을 말했는데 그 무슨  말인지 몰라 전혀. 왜 거기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도 양성원 학생들이  그런 학생 될는지 몰라요.

자기를 비우기 전에는 절대로 옳은 것은 안 들어갑니다. 마귀만 들어가지. 암만  옳은 것이라도 중간에 마귀란 놈이 거머쥐고 주인은 제가 돼 가지고 갖다 넣어  줍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안 하지 인간은 동등입니다.

인간은 동등이요. 동등이기 때문에 그는 나보다 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그를 가르칠 수도 있고 그를 통해서 나를 가르칠 수도 있고 그를  통해 나를 명령할 수도 나를 통해서 그를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거기는 절대성이 없습니다. 내가 천 번 옳은 명령을 그가 나에게 했다  할지라도 하나의 잘못된 명령을 하면 내가 천 번이나 옳아서 복종했기 때문에  하나 잘못된 것 그거 가지고 배신은 할 수 없지마는 천 번 맞았으니까 그것을  복종할 것인가 과제로 둬야 됩니다. 이거는 복종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자기  속에 영감으로 '아, 이거는 복종해서는 안 된다 이건 틀렸다' 생각되면 그것은  말해야 될 것입니다. '이거 틀렸습니다. 이거 이렇지 않습니까?' 말할 때에 안  들으면 자기 수하는 명령을 하지마는 자기 선배요 수상이라면 몇 번이든지 또  말하고 또 말하고 '이건 이렇지 않습니까 이렇지 않습니까?' 몇 번이든지 말해서  듣든지 안 듣든지 자기 선배이니까 선배가 삐뚤어지면 큰 게 삐뚤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진리는 옳은 것이 진리입니다. 옳은 것을 생각해서 옳은 걸  살리기 위해서 밑에 사람보다 위에 사람에겐 더 많이 공을 들여도 그걸 고쳐야  되겠습니다. 안 고치면 많은 것이 삐뚤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그것을 고치고  거기 복종하지 안 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거기서 뭐이냐? 하나님에게 복종하느냐 진리에 복종하느냐 인간에게  복종하느냐 그것이 그때에 구별됩니다. 아주 보잘것없는 것 원수가 말하는데  원수가 옳은 말 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 복종하느냐 진리에 복종하느냐 네가  인간에게 복종하느냐 진리에 복종한다면 원수든지 뭐이든지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너에게 진리를 말하는데 왜 네가 복종하지 않느냐 그 인본주의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데 장로 쳐놓고 새벽기도 안나오면 위험합니다. 이번에 장로 다섯 분이  장립을 하고 또 전도사 세 분이 인허를 받고 여덟이 인물은 하나님도 귀중히  여기고 크게 여길 뿐만 아니라 마귀도 귀중히 여기고 크게 여깁니다. 크게 마귀  노릇 할 수 있고 크게 하나님의 일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가 대 활동하고 있소 우리 교회 이 사찰들 수위들 수위 세  사람 다 사표 내놨소. 수위 세 사람 아무 뭐 이쪽에서 잘못했거나 뭐 폐단된 일  했거나 뭐 하나도 없습니다. 공연히 자기네들 마음이 어떻게 됐는지 그 서로 우째  '나도 사표 내 나도 사표 내' 이래 가지고 사표 서이 다 내놨어. 서이 다 내놔도  하나님의 일은 손해가지 안 해. 그러나 자기네들이 잘못했다고 회개를 하고  돌아오면은 또 채용할 수 있어. 회개하지 안하고 그거 옳다고 하든지 사정에  그래서 그렇다든지 해서 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좋습니다. 또 여기서도 부글부글  저기서도 부글부글 마귀라는 부글부글해서 굉장히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에게 속한 자들이 있으면 절대 변동 없습니다.

절대 변동 없습니다. 하나님 혼자 계시고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그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직접 일하지 안하고 사람을 통해서 일하도록 그렇게 약속을  선언해놨기 때문에 숫자가 많지 안 해도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함께 가서  심부름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상관없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로 단정을 지웠지마는 네가 예루살렘 거리를 빨리 왕림해서  공의와 진리를 찾는 자가 한 사람이 있으면 이 성을 내가 참고 기다리겠다 그 한  사람만 하면 당신이 그 한 사람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이 말을 하는 것은 얼마나 우리가 커져 갈수록 기도 많이 해야 되고 힘  많이 써야 되고 조심해야 되고 안팎에 눈을 가지고 잘못된 것을 자꾸 성별해서  나가야 되지 몸뚱이는 큰데 힘은 그대로 있으면 그거 허약증이 들어서  넘어집니다. 속에 힘이 있어 가지고 힘에 못 견뎌서 커져 나가야 됩니다. 크는  것은 힘에 못 견뎌서 벌어지고 늘어지고 하는 것이 그게 커나가는 것이요. 나무를  껍질이 딱 싸고 있는데 속에서 자꾸 힘이 있어 속에서 자꾸 벌여 트려 재끼니까  나무 껍질이 툭 터져 가지고 나무 껍질에 뿍 덜 뿔라가 지기겁이 껍질이 나오는  것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 말이요. 아 이놈이 이거 이 두꺼운 껍질을 이렇게 벌여  트려 나오려고 툭툭 튄다 그 말이요. 이렇게 나올라 하니까 힘이 드니 껍데기를  좀 갉아줘야 되겠다 껍데기를 갉아주면 그게 그리 약하니까 툭 튀어 나와서 혹이  돼버린다 말이요 혹이 불룩 나와버려. 힘에 못 견뎌서 이것이 성장 확대보다도  성장은 더 강한 말입니다.

이래야 되는 것인데 점점 교회는 커지지 주일학교는 지금 세계에 제일이라는  것이 세계에 각 국에 신문에 나지. 이러니까 마귀라는 놈들이 이리 얼마나 집중  사격할 것이요. 얼마나 마귀가 지금 노리고 지금 달라들 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도 많이 하고 또 조심도 하고 옛날보다 회개도 더  하고 깨끗해져야 되고 또 주님을 힘입는 일도 더 많이 힘입어야 되고 이런데  이럴 때에 벌로 덤비면 대 마귀입니다. 어떤 때인지도 모르고 말을 해도 안 된다  안 된다 말은 해도 그걸 죽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날뛰어 그걸 죽이지도 못하고  내가 말을 다 하는 대도 옛사람 죽이지 안 하면 새사람 죽지 별 수 있소. 옛사람  죽이지 안 하면 새사람은 파묻혀 멸망은 받지 안 하지마는 벌거벗은 자로  무궁세계가 여러분들 바로 평가합시다. 세상이 잠깐이요.

오늘 제 시간이 끝날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주의 재림과 인생의 종말 시간은  오늘인지 내일인지 그 시를 아무도 모른다 그 말이요. '내가 오늘이야 안 죽겠지'  아니야 오늘 끝날지 몰라 오늘 끝나고 주님 심판 앞에 서면 어떻게 설 것이냐  말이요. 저거 무슨 사람이야 어리석어. 오늘 주님 앞에 설는지 끝일는지 끝날는지  몰라 뭘 뒤로 미룹니까. 회개는 뒤로 미루면 안됩니다. 세상 사람과 된 일은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소. 연기해서 뒤에 여유 있으면 하고 못해도 그만이오.

못해도 세상 떠나면 내나 했으나 못했으나 끝나는 것입니다.

이러나 하나님과 관계는 뒤로 미룰 수 없어 즉시 해야 돼 언제든지 그 날 결산을  봐야 돼. "한날에 괴로움이 족하니라" 말은 오늘 하루 내가 종결 결산을 해야  되기 때문에 오늘 결산하는 이것이 네 하루 일에 빡빡하지 언제 여유가 없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어제 아침에는 일원의 말을 해라 누구에게 말을 하면 이 사람도 그 건에 대해서  가 말할 때 그래 말하고 저 사람도 그래 말하고 권면을 해도 같은 말 열 사람이  가도 같은 권면 장로가 가서 권면해도 같은 권면 목사가 가서 권면해도 같은  권면 구역장이 가서 권면해도 같은 권면 친구가 가서 권면해도 같은 권면 동일한  권면이라야 되지 간사하게 '요래야 요 사람을 요 기회에 내 사람 만들까' 아,  총공회를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총공회에서 그런 암들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잘못됐다고 이거 고치라 말하면 '마치라' 말하고 '이 기회에 저게 또 제 사람  만들려고 갈 거다' 하고 보면 얼른 가서 '야, 우리 점심이나 같이 하자 차나 한 잔  같이 하자' 하면서 끌고 갑니다. 저 다방에 가요. 또 식당에 갑니다. 그걸 나는  '미리 가리라' 생각하고 간 소식이 '인자 올 것이다' 가리라 생각했는데 그 뒤에  보면 간 소식이 들려.

 그게 산 자가 하나 있으면 이 자도 그런 줄 알고 갔는데 가서 보니까 그거는  이거 우리가 모임 말 못 믿어 옳은 일은 고칠 일이지 고쳐서 거석할 일이지  위로가 뭐이고 고치는 게 위로지 옳은 말했을 때에는 고치는 고치라는 것이  위로고 고치라는 것은 살리는 것이지. '그 꾸중들었는데 너도 꾸중들었지 나도  꾸중들었지 너무 박하다' 이렇게 해 가지고 그 교훈에 반대하는 거는 마귀  역사다. 그 사람은 지금 살아서 목회를 잘 하고 있어.

 그러면 그럴 때에 꾸중들었으니 이럴 때 살짝 제 사람 만들려고 가 가지고 그래  너무 박하게 말해 너무 박절하게 아, 치료를 해서 수술만 해서 죽기만 해서 병만  고쳐졌으면 뭐 박하나 안 하나 모르고 툭툭거리는 것보다 낫지 수술 받는 자가  언제든지 수술해 주면 감사히 받아서 고쳐야 될 일이지 제 비유 성미에 맞추어서  아픈 것 없이 마취 하나도 시키지 말고 수술해 달라고 하면 수술이 되어지는가  그것이 양성원에 없어야 됩니다. 양성원에 그게 있는 걸 내가 봅니다. 제 사람  만드는 그런 마귀 역사를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십시오.

여러분들은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사람 만드는 그 훈련을 받고 그 연습을 해서  자기의 평생 직책은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 만드는 것이 자기 직책인 줄 알아야  되지 거기서 피차 나는 네 사람되고 너는 내 사람 만드는 것이 자기 직책인 줄  알아야 되지 거기서 피차 나는 네 사람되고 너는 내 사람되고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지.

 양성원에 농담하는 것 하지 말아요. 내가 안 가봐도 환하게 다 알고 있어요.

지걸거리기나 하고 하나님의 도가 주장하지 안하고 딴 게 주장하고 있어.

하나님의 사랑이 주장하지 못하고 인간들이 서로 화합해 가지고 이렇게 해서  인간에게 자기 비우는 이게 지금 주장하고 있소. 하나님 앞에 자기를 비우는 것이  주장되지 못하고 있고 거기서 갈지 못한 것이 거기서 못하는 것이 딴 데 가서  무슨 노릇을 하겠소 거기 사 년 동안이라는 데서 자기를 비우는 것, 완전히 한  분에게 복종하는 이 일원성을 완전히 마련해야 되지 일원성 마련하지 못하면  헛일이라.

아버지가 말하니까 장자는 대답하고 안 갔고 차자는 거역하고 나중에 순종했어.

이것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입니다. 들어올  때는 그렇다고 한 것이 거기서 원수가 뭐인지 모르고 자기 주위의 원수가 뭐인지  모르고 인간이 빠져 들어가야 돼. 인간은 죽어야 돼. 가치 없어. 아무 것도  아니야. 지금이라도 공산주의 내려오면 벌벌 떨고 개미같이 파고 들어갈 것이야.

무슨 인격이 있다고 무슨 존재가 있다고 교만하지 말고 어짜든지 동등 될 걸로  여기지 말고 자기를 비우십시오 복종하는 자 만드십시오.

그것은 놔두고 어떤 대대학을 공부하고 어떤 학위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하실 일을 대용할라 하면 그만 헛일입니다. 일 학년은 그만치  알밤 만치 비우면 되면 이 학년은 감 만치 비워야 되고 대학생은 이만한 것  비워야 되고 커지면 커질수록 비울 것이 많습니다. 많이 비워야 됩니다. 크게  비워야 됩니다. 그래야 쓸모가 있어집니다. 그래야 산 자가 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에게 누가 인정받습니까? 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높였습니다. 어떰으로? 동등 됨을 취할 걸로  여기지 안하고 자기를 비어 복종을 하되 창조주가 피조물같이 복종했어. 우리가  뭐 만드요. 작대기도 만들고 우리 손으로 만드는 그것이 나에게 복종하는  절대성이지 만들어 놨다가 불에 태우면 암말도 안하고 타지지 만들어 가지고 똥  구더기에 집어 던지면 암말도 안하고 던져지지 만들어 놨던걸 저 어데 던져  버리고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안 찾아도 가만히 거기 있지 우리가 만든 것이  우리에게 이렇게 복종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 말은 하나님의 지으심을 창조주에게 대해서  피조물 그가 지은 피조물 같이 맺어졌다 그 말이요. 그것이 자기 올라가는  것이요. 무엇이 올라가는 건데 하나님이 뭘 인정하는데 하나님이 어떤 자를  높이는데 모든 피조물이 그를 피조물이 어떤 자를 높이는데 "주라 시인한다" 말은  지옥에 있는 자들이 감사해서 시은하는 게 아니고 평가적으로 시인합니다.

아, 그는 옳고 참되다 지옥에 있는 자들도 다 옳으니까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복종하고 그로 인하여 있는 것이 그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그에게 귀속되는 것이  옳지 않소. 지옥에 가 있는 자들도 우리는 망해야 되고 그는 옳다 이렇게  시인한다는 말입니다. 이래야 자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래야 자기가 자유가  있습니다. 자기가 있는 것 만치 반드시 그는 부자유자입니다. 그는 반드시 종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없어져야 참 자유가 있고 참된 행복이 있고 능력이  거침없이 옵니다. 교만을 뽑아 버려요.

그리고 양성원에 조심해요 조심해서 교학실장에게 순종하고 복종하고 교학실장은  갈고 빗고 닦아서 좀 구별해서 깨끗하게 정확하고 무오한 사람되어야 해.

지금까지 그러면 안 돼. 흐리멍덩해서 그러면 못써.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런 양성원에 하니까 우리는 여러분들도 더 해요. 여러분들도 양성원생이요  여러분들도 내나 이름만 없지 목자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요 아닌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 일을 못해요.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들 주일학교 반사들도 새벽기도 나와야 되고 중간반 반사들도  새벽기도 나와야 되지 새벽기도 안나오는 사람은 일 제가 해도 못해요. 결국은  마귀 일만 하지 안 돼. 진리가 그 속에 없는데 뭐 일 할 게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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