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교만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20일 토새 

 

본문 : 베드로전서 5장 6절∼9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여기 세 가지를 말했는데,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긍휼을 입을라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되는가 하는 것을 첫째 말씀하시고. 하나님 앞에 긍휼을  입는 방편. 또 하나는 자기에게 대해서 어떻게 할까. 자기에게 대해서 어떻게  할까 하는데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또 마귀를 대적해서 마귀의 이용물이 되지  않는 마귀로 말미암아 손해 보지 않고 유익 보는 그 방편이 어떠한지 이 세 가지  방편을 여기 말씀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근신하라 말은 조심하라 그말입니다. "근신하라" 그  조심이라도 무슨 조심인고 하니 자기를 모르고 자기를 잊어버린 자 되지 말고  자기가 어떠한 자인지 알아서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무식해서 자기에게 대한  무식한 그런 일을 하지 말고 자기가 자기를 똑똑히 알기 때문에 자기로서의  자기에게 합당한 근신하는 것입니다. 근신은 죄인이 자기의 죄로 인해서 그 죄의  벌은 아니나 벌은 아니나 벌과 같은 그런 그 치리를 받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근신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내 잘못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너는 한 달 동안  근신해라. 두 달 근신해라' 그렇게 정죄해서 치리하는 그 치리를 받는 일도 있고  벌을. 교회서는 잘못 됐으면 벌주는 일이 있고, 또 그 다음에는 잘못된 것을  책망하는 일이 있고 또 그 다음에는, 근신시키는 일이 있습니다. 벌도 책망도  하지 안하고 스스로 자기를 살펴 가지고 자기가 어떤 자인 것을 알고 겸손히  조심해서 하는 행동을 가리켜서 근신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깨어라 하는 말은, 깨라 말은 자기가 자기로 바로 알고 행동하는 것을 가리켜서  깨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자기는 어떤 자가 어떤 은혜를 입어 가지고  어떻게 된 자기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자기 과정 그것을 바로 알고 그 과정을  가진 자로 자기가, 요새는 이거 뭐 그걸 뭐라 하는지 우리가 살 때는 그때는 참  뭐 이 테레비니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이래서 그 때 말은 박 첨지 놀음이라  그런 게 있었어요. 요새 그 뭐 서커스 모양으로 이렇게 하는데 박첨지 놀음이라  하는데 그때는 그게 제일 발달된 건데 바가지에다가 구멍을 뚫어서 눈같이  구멍도 뚫고 수염도 달고 그래 가지고 또 그 바가지를 얄궂게 만들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래 낮에 이래 떡 쓰면 그 사람이 금방 수염 없는 사람이 수염이  기다랗기도 하고, 또 이마가 없는 이마가 훌떡 벗겨지기도 하고 그렇게 박  첨지가 그 바가지를 쓰고 나오는 거 그것은, 자기는 가루고 자기가 이런  모양으로 저런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요새는 뭐 기묘하게 가발이라던가 뭐라던가  이래 가지고 그 뭐 별 별 색을 내 가지고 이러는데, 그래 그와 같이 박 첨지  바가지 쓴 거와 같이 그렇게 네가 장식해 가지고 나타나지 말고 네가 네 그  실상대로 그대로 나타나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깨어라 하는 것입니다.

 깨라는 데는 많은 뜻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말씀한 거기 대해서 "근신하라" 네가 어떤 자인 것을  알고 스스로 네가 자중하고 스스로 네가 너를 벌해라 말이오. 근신하라 말은  스스로 네가 너를 수치스럽게 하고 누가 죄인이라 하지 안하나 네가 너를 죄인인  줄 알고 너를 벌하고 너를 네가 수치를 당케 하고 이렇게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근신이라 여기는 말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너를 욕하기 전에 네가 너를  욕하는 사람이 돼라. 다른 사람이 너를 벌 주기 전에 네가 스스로 너를 벌을  해라. 다른 사람이 너를 아주 수치스럽게 모욕을 하기 전에 네가 너를  수치스럽게 하고 네가 너를 모욕을 줘라. 자기가 자기를 징책하는 그것을  가리켜, 징계하고 책망하는 것을 가리켜서 근신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근신이라는 이 말이 자기가 자기를 똑똑히 알고 자기에게 대해서 다른 사람이  누가 벌하기 전에 네가 너를 욕하고 수치를 시키고 천하게 여기고 그 책망을  하고 스스로 네가 너를 질책하라.

 "깨어라"고 하는 것은 네가 너를 과장하지 말고, 네가 너를 위장하지 말고 네가  박 첨지 바가지를 이 바가지 쓰면, 이 사람 되고 저 바가지 쓰면 저 사람 되는  거 모양으로 너를 이렇게 저렇게 덮어 가리워서 변색으로 나타나지 말고 네가  네대로 나타나라. 다른 사람은 너를 모르지만 너는 너를 알기 때문에 네가  너대로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나타나서 살아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깨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능하신 손 아래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때가 되면 높인다 말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긍휼 받는,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미워하시지 안하고 나를 벌하지 안하시고  나를 가증스럽다 하면서 미워하지 아니하시고 당신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 나를  동정하시고 나를 아끼시고 나를 도울 수 있는 당신이 나를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그런 사람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유일한 방법이다.

 자기가 올라가는 방법은 자기가 올라가는 방법은 자기가 올라 갈려고 애를 쓰는  그런 방법은 다 마귀 방법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과적으로 인생이, 짧아서 모르고  어두워 모르나 결산을 하고 보면 자기 올라 갈려고 하던 그 노력이나 운동은  전부 자기를 천하게 만들었고 끌어 내렸지 하나도 자기에게 결과적으로 유익 준  일은 없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자기가 올라갈라고 해서 세상에서 어떤 높은  지위나 권세나 재벌이나 영광이나 존영이나 받았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보면 자기가 자길 속인 것 밖에 없고 자기가 자기를 천하게 만든  것밖에 없고 자기가 자기를 손해 보인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하는 그말은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겨서 나에게 대해서 동정을 하시고 나를 아끼시고 나에게 자비를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되는 것이 자기에게 대해서 제일 유익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긍휼을 베푸실 수 있는 그 사람되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를 불쌍히 여길 수 있는. 하나님이 자기를 동정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나를 아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밉상이라 하고 찡그트러 내트리고  하나님이 비웃으시면서 안면을 홱 돌리도록 그렇게 하는 그 것이 참 어리석은  일이요 그거는 다 교만이 그렇게 하는 건데, 우리 요번에 거창 그 기도원에  건축하는 것도 하나님이 그 집회를 사랑하셔서 거기 일하는 사람들이 교만했고  후방에 있는 우리들은 교만해서 기도하지 안했고 이 번에 교만죄 회개한 것,  딴거는 없어. 교만죄 회개한 것 뿐이야. 교만죄 회개하니까 그 일이 척척 잘  됐어. 잘 됐는데 우리가 사람이 한 일은 다 엉뚱스럽게 해서 일을 낸 것 꾸민 것  뿐이라. 사람한 일은 일을 꾸민 것뿐이고 하나님이 전부 그 일 했는데 그 일을  해 주심을 받은 것은 다른 게 아니고 우리가 되지 못한 것이 된 척하고 지금  얼마나 지금 하나님의 그 가리워 주심을 받지 안하면 지금 당장에 어떻게 지금  박살날 것이 그것인 줄 모르고 말로 덤비고 날뛰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가증스럽고  하나님이 노엽게 보시고 아주 하나님이 욕껄스럽게 보였다 그거요. 그래서  그것을 우리가 아는 대로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지금은  불쌍히 여겨주셔서 불쌍히 여겨 주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 있는 일군들도 외출 장부를 그날부터 만들라고 해 가지고 한  사람이 밖에 나가면 어디 간다. 몇 시 몇 분에 나서 가지고 거기 갔다 오면 몇  시 몇 분에 돌아온다. 이래서 그 모든 일군들의 일동 일정을 다 조사를 해서  모두 다 조심해 가지고 기도하도록 이렇게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라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해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고 자기를 뭐 자기가 높아질라고 하면 다 헛일이오.

기독교는 높아질라고 하지 안하고 낮아질라고 할 때에 높아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자기 단독 생활이 아니고 절대자이신  그분을 상대로 살기 때문에 그분으로 인하여서 내가 뭐 이렇게 되고 저렇게  돼지는 것이지 제힘으로 제가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 것이  기독자요, 기독자는 하나님의 절대자이신 그분의 주권대로 뭣이 되지지 제대로  된 것은 털끝 만한 것도 없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또 세상에 속한 불택자들은  전부 다 제힘으로 제 지혜로 제힘으로 제 지능으로 모든 것 다 제가 한 것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전부 제 지능 가지고 제가 한것이 세상 사람들이오,  기독자는 제가 하는 것은 털끝만치도 없고 절대자 그분이 주권을 가지시고 그  분이 모든 것을 주권하셔 가지고서 하시는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지능으로 제일 잘했는데 가 보니까 자기 망친거 그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 위해서 한 거는 자기가 자기 망친 거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다  영생입니다.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잘해 주기를 바라는 그것도 우리가 가증스러운  일이요, 뭐 당신이 다 아셔서 내가 알기 전에도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까지  하셨는데 뭐 잘해 주기를 부탁한다는 거 그 가증스러운 것이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요, 그게 아니고 하나님 앞에 지금 진노 받아 가지고 어떤 멸망을  받아야 될란지 모르는 죄인이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용서해 주시기를,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다려서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 하나님이 나를 밉게 보시지 안하고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동정하시는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이 이해하시고 모든 노가  풀리고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오히려 동정할 수 있는 그런 동정을 입을 수 있는  그 자기가 되어지는 그것이 자기를 높이고 위하는 데는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확고히 잡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긍휼을 입고 동정을 입고 불쌍히 여김을 입을 수 있는 그  사람되는 것이 제일 우리로서는 참 급선무요 그것으로 전부지 뭐 그외 딴거는  우리가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는 데는 하나님의 동정,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내게 대해서 참 애연스럽게 여기심을 받을 수 있는 그  방편이 뭐인가? 그 방편은 겸손인데, 겸손이라 말은 그 방편은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대로의 나의 가련, 내 가련한 점, 나의 더러운 점, 나의 가증스러운 점,  나의 외식하는 점, 내가 나를 높여서 교만하고 내가 나를 자만하는 그 모든  자긍하는 점, 하나님이 내게서 참 가련하게 보고 미련하게 보고 어리석게 보고  가증스럽게 보고 안타깝게 보시고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그 모든 도덕면이나  언행심사면이나 자기 의무면이나 책임면이나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행동하는  것,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취급하나 하는 그런 점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를  가증스럽게, 또 노엽게, 밉상스럽게 하나님이 볼 때에 속히 용욕해서 토하여  내친다 이랬습니다. 토하여 내친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용욕스러울 수 있는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그렇게 가증스럽게 밉게 거짓되게 참 하나님이  용욕스러워서 입에서 토하여 내친다고 토해서 내칠 만치 그렇게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진상을 바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  그것을 자기가 찾아서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으로 하나님에게도 그러하고  사람에게도, 사람에게 그런 뭐 더러운 것을 자꾸 광고하고 선포하고 이랄 거는  없지만 다른 사람은 자기를 모르지만 자기가 자기를 알기 때문에 그런 사람으로  사람 앞에, 하나님이 날 어떻게 보고 있는 그대로 사람 앞에 하나님 앞에 요렇게  자기로 나타나서 언행심사에 행동하고 있는 그것이 하나님의 동정을 끌어오는  제일 중요한 요긴한 점입니다. 그 사람이 인간으로서는 제일 위대한 사람이요.

앞으로 가보면 제일 존귀한 사람이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만삭되지 못하여서  낳은 아이와 같은 자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 앞에 겸손하다는  그렇게, 이 입술만 가증스럽게 하나님이 보실 때에 '주여 나는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아이와 같은 참 무지 무능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 속에는 제가 잘난  척하고 다른 사람 앞에 기도 인도할 때에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그것이 버릇이 돼서, 사람 앞에 그렇게 외식하는 게 버릇이 돼서 하나님 앞에도  그렇게 함부로, 속에는 그렇지도 안한 것이 그런 척하는 거 하나님까지 꼬와  먹을라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그렇게 입술만 가지고 하는 그런 것이 아주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나를 가증스럽게, 밉게, 참 용욕스럽게 그렇게 하나님이 내게  보시는 그것을 자기가 발견해서 그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그 사람으로 모든  사람 앞에, 사람이 알든지 모르든지 그 사람으로 사람 앞에, 그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신대로 밉상스러운 것을 자기가 깨달아 '아. 나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밉상을 지기고 밉상스럽게 보일 자라. 가증스럽게 여기실 수 있는  자라. 가증스럽게 여기심을 받을 자라. 하나님이 나에게 대해서 노여워하고 지금  노여워함을 받는 자라.' 요렇게 자기가 자기를 잊어버리지 말고, 자기가 자기를  과장해서 변색시키지 말고 자기를 덮어 가리워서 외식해서 그렇게 가증스럽게  껍데기를 꾸며서,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을 만홀히 여기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죄인으로 이런 때에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동정하시고 너무 그라니까 오히려 위로를 하시고 할 수 있는 그것을 입을 수  있는 그 사람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제일 지혜로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불쌍히 여기심과 동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받는 게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는 죄인으로 가 가지고는 동정을 받지만 의인으로  가 가지고는 다 쫓겨남을 받은 것을, 세리와 바리새교인이 나타났을 때에 세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고 바리새교인은 하나님 앞에 쫓겨남을 받고 버림을 받은  것을 우리에게 비유로 이용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동정  받고, 하나님 앞에 불쌍히 여김 받고 용서받고,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셨다가,  하나님이 노여워 하시는, 하나님이 한없는 노여워하시는 것은 우리는 영원히  죽어야 될 그런 노여워하는 그런 가증스러움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그 하나님이, 하나님이 나를 멸하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나를 질책해서 우리를 이렇게 드러내서 천하게 수치스럽게 이렇게  할라고 하시는 그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시는 그 하나님이 오히려 나를 불쌍히  여겨서 '야, 너무 근심하지 말아라.' 이렇게 동정하실 수 있는, 그분의 진노를  벗어나서 오히려, 그 분이 나를 가증스럽게 봄을 벗어나서, 내가 너무,  가증스러운 그것이 가증스러운 자로 나타나고 하니까 하나님이 사랑으로 볼 수  없어서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그 사람되는 것.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냉정스럽게 살펴서, 인간은 자기를 자꾸  동정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 없으면 신앙생활 못 한다  그말은, 양심은 자기나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사정을 두지 안하고 꼭 아무 데도  사정 두지 안하고 공평되게 판정하는 그 마음을 가리켜서 양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에게 대해서는 무조건 동정하고 무조건 옹호하고  무조건 과대 평가하고 무조건 호평하고 이런 그게, 전부 다 자기의 눈이  어두워서 자기 망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벗어나서 자기가 자기 양심으로  자기를 생각할 때에 자기는 어떤 그 언행심사의 과거를 가진 자이며 자기는 어떤  그런 소욕을 가진 자며 어떻게 태만하며 어떻게 교만하며 어떻게 자기를, 사울왕  모양으로 가증스럽게 선전하고 자기를 높이는 자이며 이런지, 자기가 자기를  정평 정가해서 자기를 정당하게 대우하지 못하고 자기를 가증스럽게, 지나치게  대우하는 것, 자기가 자기를 덮어 가리워서 자기가 똥인데 금덩이로 보여지도록  이렇게 외식 과장하는 그것을 자기가 아는 대로 자기를 찾는 그것이 우리  기독자의 제일 슬기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 설교할 때에 그런 말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 곳은  흉측한 죄인 그 죄인들이 있는 그곳이 우리 곳이라.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

왜? 나는 그곳에 밖에는 가 있을 곳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이  우리 곳이라 하는 말을 서울 어떤 목사님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말에 대해서 뒤에 칭찬을 했습니다. 대단히 좋은 것 발견하고 아주 참  주님 만난 그 빛을 말해 줘서 고맙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냉정스럽게, 자기를 아는 대로의 자기가 자기를 대우하고 취급하고  단속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나타내고, 자기가 자기를 사정 두지 말고 바로  양심대로 자기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계획이나 소원을 하는 그런 것을 꼭  바로 보고 정평 정가해 가지고 그런 자로 자기를 취급하고 단속하고, 사람들  앞에 그런 자로 자기가 나타나고 그라면서, 바울은 '내가 양심에 자책할 것을  찾지 못한다' 그렇게 자기가 자기를 찾는 대로 찾아 가지고 그런 자로 살고,  그가 갈급한 것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 그분이 나를 보실 때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분이 보시는 거기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나는 지금 알지  못하는 죄가 얼마나 내가 있는지 모른다' 하면서 말한 것이 바울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이 큰 벌을 받고 하나님의 그 복수를 받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될 우리들인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동정을 받고 불쌍히  여김을 받고 오히려 애착럽게 애연스럽게 여겨서 내게 대해서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그런 내 자신이 되어지는 그 자신이 되어질라고 그 자기를 찾는 일에 자기  신앙양심으로 자기를 찾고 그래서 자기를 찾아 가지고 자기가 자기에게 그렇게  대우를 하고, 그렇게 인정하고,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가 그것을  찾을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제일 동정을 받고 불쌍히 여김을 받고  이해를 받는, 그것이 제일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바로 알고 바로 찾아서 바로 사는 것이 그것이 겸손이라 하는  것을 내가 여러 해 전에 늘 말했습니다. 겸손이 뭐이 겸손이냐? 겸손은 자기가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가 자기를 자기대로 바로 취급하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 자기가 자기를 과장하지 말고 외식하지 말고 자기가 자기로서 바로 알고  취급하고 나타나는 것이 겸손이라. 둘 있는 것을 하나 있다고 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사람들은 말하나 그거는 틀렸다. 자기가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가  자기를 사람 앞에서 자기가 자기를 바로 취급하고 바로 그대로 대우하고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도 그와 같이 하는 것이 그것이 겸손이라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럴 때는 그 모든 세밀한 마음은 모를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안했었습니다.

 또,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바로  하는 것이냐?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바로 하는 것은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자기에게 대해서는 뭐 욕이 왔든지 벌이 왔든지 환난이 왔든지 뭐이  왔든지 그만 일체 자기에게 대한 일은 자기는 못 압니다. 포도나무 가지에 어떤  그 해충이 와 가지고 갉아먹어도 포도나무 가지는 그 해충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방어할 수가 없습니다. 갉아먹으면 제가 한다 하면 먹으니까 자꾸  대항한다 하는 것이 속에서 물이 자꾸 그 양분만 자꾸 올라오니까 올라오면  버러지 이놈은 꿀떡꿀떡 삼켜 가지고 며칠만에 보면 포도나무 벌레는  이만합니다. 굵닥하이 깨벌갱이같이 이만한 게 자꾸 살만 찌지 소용 없어.

자기는 자기에게 대해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치료도 못 하는 것이요  복되게도 못 합니다. 자기는 자기에게 대해서 털끝만치도 할 지능이라는 것은  없다 하는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자기를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 이것이 제일  지혜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라고 그와 같이 하셨기 때문에 내가 내게  대한 모든 것은 경제면이나 사회면이나 활동면이나 위신면이나 영광면이나  존귀면이냐 무슨 면이든지 거기 대해서는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믿음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맡길 때는 당신은  약속을 했기 때문에 맡긴 자는 당신이 맡아서 책임지지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제일 슬기로운  일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은 뭐인가?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과,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과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어떻다고 나타내신 그  하나님이 있으니까 그 하나님이 누구냐? 곧 예수 그리스도가 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시나 하나님의 독생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나타내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나님.

이러니까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곧 도성 인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났으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자기에게 영감시켜 준 그 영감과 자기에게 문서  계시로 나타난 이 문서 계시와 자기와 대조해 가지고 대조해 가지고 이 세  가지와 자기와 다른 것은 자기가 고치고 이 세 가지와 같도록 이 세 가지와 다른  것은 끊어 버리고 이 세 가지와 같도록 노력하는 거 요번 회에는 마귀를  대적하는 길이 없습니다. 이것만이 마귀를 대적하는 길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문서 계시와 영감과 나타나신 그 하나님과 자기와 대조해서  하나님과 다른 것을 빨리 빨리 끊어 버릴 것, 빨리 빨리 끊어 버릴 것, 빨리  빨리 태워 버릴 것, 하나님과 자기와 같지 못한 것 하나님과 같도록. 이 셋과  다른 것은 어서 끊어 버리고 이 셋과 같도록 어서 만들어 가질 것, 모자라는 것  있으면 어서 만들어 가지고, 조금 틀린 것 있으면 고쳐 가지고 그래서 이 세  분과 꼭 같이 하는 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이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요  사망을 대적하는 것이요 저주를 대적하는 것이요, 모든 그 그리스도의 심판을 다  대적해서 벗어 이겨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여덟시 반부터 하기 아동 성경 학교인데 어짜든지 심방 많이 하시고  일찍부터 단속을 해 가지고 합시다. 하나님에게 기도해요. 기도하면 여기에 암만  많이 모아도 덥지 않습니다. 어제도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밖에는 막  뜨끈뜨끈한데 여기에는 찔 것 같아도 그래도 덥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더운 것  몰라. 우리가 다 기도로 해야 돼, 기도로. 작년에 장생골 집회 때에 그때에 이  근년에 제일 더운 때입니다, 제일. 이 근년 가다가 제일 폭서라. 그 주간이.

제일 폭서인데 우리는 장생골 집회할 때에 더운 건 하나도 몰랐어. 날마다  비오고 옷은 적지도 안하고 더운 것 몰랐어. 하나님이 구름 기둥으로 가룬 것을  그건 모르면 눈이 먼 사람이라. 눈이 어두운 사람이라.

 그러므로, 이 하기 아동 성경 학교, 만 이천 오백 명이 여기 모였으니까 어찌  되겠습니까? 그 광안동 교회도 내가 어제 전화 왔는데 물어 보니까 사백 이십  명이 모였는데 주일학교 학생이 사백 이십 명이 모였는데 뭐 강단에 책상말고는  전부 다 올라앉아. 그런데 그리 하면 뭐 더워서 찌는 것 같을 건데 그래도 더운  줄 몰랐다고, 더운 줄 몰랐어.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야. 이분의 해 주는걸  가지고 우리가 해야 되지 뭐 에어콘 두 개 설치했지만 저게 인제 돈 갚자면 빚  갚자면 큰일입니다. 그것보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간구하면 그분이 해 주는 그게  더 좋지 그거 뭐 틀어 놔 봤자 소용없소. 그러니까 실은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 삼아 가지고 하는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은.

 어짜든지 기도하고 심방 부지런히 해서 오늘은 아마 어제보다 줄란지 몰라.

모두 반사들이 마음을 놓고 있거든. 오늘은 그 통반할 때에 설교는 제가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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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61 겸손/ 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820602수밤 선지자 2015.10.24
560 겸손/ 베드로전서 5장 5-9절/ 840406금야 선지자 2015.10.24
559 겸손/ 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840723월새 선지자 2015.10.24
558 겸손/ 베드로전서 5장 5절-7절/ 840916주전 선지자 2015.10.24
557 겸손/ 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820603목새 선지자 2015.10.24
556 겸손/ 빌립보서 2장 5절-11절/ 820317수새 선지자 2015.10.24
555 겸손/ 벧전 5장 5절-11절/ 810828주후 선지자 2015.10.24
554 겸손/ 베드로전서 5장 5절-11절/ 810828주전 선지자 2015.10.24
553 겸손/ 베드로전서 5장 6절-11절/ 810408수새 선지자 2015.10.24
552 겸손/ 학개 1장 8절-9절/ 890728금새 선지자 2015.10.24
551 겸손/ 베드로전서 5장 5절-10절/ 890726수새 선지자 2015.10.24
550 겸손, 세 지식/ 에베소서 1장 17절-23절/ 1987. 8. 5. 새벽집회(수) 선지자 2015.10.24
» 겸손과 교만/ 베드로전서 5장 6절-9절/ 850720토새 선지자 2015.10.24
548 겸손과 교만/ 베드로전서 5장 6절/ 800226화새 선지자 2015.10.24
547 겸손과 교만/ 베드로전서 5장 5절-6절/ 800222금새 선지자 2015.10.24
546 겸손과 교만/ 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850701월새 선지자 2015.10.24
545 겸손과 교만/ 베드로전서 5장 6절-11절/ 850719금야 선지자 2015.10.24
544 겸손과 맡김/ 베드로전서 5장 6절-7절/ 811016금야 선지자 2015.10.24
543 겸손과 순복/ 베드로전서 5장 5절-11절/ 820604금야 선지자 2015.10.24
542 겸손-맡기라/ 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821017주전 선지자 201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