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맡기라


선지자선교회 1982년 10월 17일 주전

 

본문 : 벧전5:5-9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씀은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약속된 모든 하나님의 그 완전한  것을 값없이 주신다 그말입니다.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 베푸신다는 말씀은 값  안받고 공짜로 우리에게 약속한 것 다 준다 그 말씀이며, 교만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대적해 싸운다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겸손한 자는 어떤 자가 겸손한 자입니까? 사람 앞에 굽신거리는 것이  겸손한 자입니까? 아니요 사람 좋도록만 하려고 인화주의로 날뛰는 것이  겸손입니까? 아니요. 겸손은 간단하게 말하면 주와 연결이 바로 되어있는 그것이  겸손입니다. 주는 우리의 생명이시요. 닭의 생명이 머리와 몸뚱이가 붙어 있으면  생명이 있고 그 목이 끊기면 생명이 없습니다. 인간이나 피조물은 창조주와  자기가 가질 연결을 바로 가지며 그것이 산 것이고 연결만 바로 가지면 하나님의  충만을 그에게 공짜로 다 줄 수 있소.

 교만한 자는 대적하신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끊어진 자는 하나님이 절단이  나든지 자기가 절단이 나든지 기어코라도 시비하고 투쟁해 약자가 절다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강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치 머리와 몸둥이가  끊기면 이미 있는 힘 그 닭이 힘이 없을 때까 지는 뛰는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과  연결로 인하억서 움직이지 안하고 저혼자 어떤 민족으로, 국가로, 과학으로,  어쨌던 인생의 원형인 하나님과 연결을 끊고 다른 무엇하고 움직여도 움직이는  그것은 목이 끊긴 닭과 같습니다 날뛰봐야 잠깐 있으면 뻐들어지요. 네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주신다. 요것  하나만 해도 여러분들이 오늘 주일날 충분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그 말씀은 허리를 동이면 힘이  세지는 것인데 튼튼해지는 것인데, 네가 무슨 과학을 준비함으로 세상 지식을  준비함으로 너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그 인성을 만듦으로 너를 튼튼케 하려는  그런 썩은 방법은 버려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과 너와의 연결되는  그것만이 너를 든든케하지 딴걸로는 든든케 하는 것이 없다. 목끊는 것 한가지다.

하나님과 연결없이 무신론자들이 아무리 주장하고 세상 과학자들이 떠들어싸도  하나님 관계없이 하는 것, 그것은 목끊긴 몸뚱이가 훌훌 뛰니까 힘있게 뛰고,  있는대로 힘을 다해 뛴다만은 좀 있으면 뻐들어 죽겠구나 이것을 보는 눈이  성령의 눈입니다. 하나님의 안약 사 바른 자요. 안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안약입니다. 말씀의 지식대로 견해한 것이요.

 그러므로 주님은 능하신 분이시니 그의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그이에게  속해가지고 그와 연결된 네가 되도록 해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네게 대해서 줘서 네가 복되게 가질 만하면 주는  것이야 뭐 돈 주는 것 권세 주는 것 문제가 없다. 옥중에 있는 죄수를 당장에  총리대신을 만들었는데, 모든 것을 당신이 전능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서 그것이 복되게 활용될 수 있고 이용될 수만 있으면 주시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다만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이 있나 없나 그 자격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려.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오늘은  맡겨 버리는 데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하겠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맡겨버리라. 염려는 그것에 대해서 잘되게 할 염려. 잘못되면  어찌할꼬 하는 염려. 그것에 대해서 잘되기를 원하는 염려. 잘못되면 큰일났다  하는 잘못된 그것을 피하려는 염려. 그 염려는 두가지 종류 염려인데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했으니까 우리가 어떤 것이 잘되고 못되기를 원하는  그 종류를 좀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염려하는 종류가 얼마나 됩니까? 염려하는 종류를 간추려서  생각한다고 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것 잘못되면 안되니까 그  염려가 제일 크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잘 봐 주셔야 되겠는데 나를 기뻐하셔야  되겠는데 내게 잘해 주셔야 되겠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됨이 없어야겠는데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것이 제일 큰 염려가 될 것입니다. 이 염려는 제일 큰  염려인데 무신론자들은 하나도 가지지 않는 염려입니다 그들 인생이 가져야 될  제일 큰 염려를 그들은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결과가 무엇 되겠습니까? 첫째 우리가 하나님과 나와의 그 염려점이  제일 큽니다. 그 다음에는 나와 가까운 사람 먼사람, 친한 사람 원수, 모든 사람과  나와의 관계 점의 염려가 둘째 염려가 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 염려는 내가  내게 대해서 자신이 자신 망치는 일이 세상에 가득찼기 때문에 내가 내게대 해서  어떤 잘못을 저질까 기회를 놓칠까 어떻게 하면 후회없이 할까 자신에 대한  염려가 셋째번쯤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사건에 대한 염려 그 사건이 백도 될 수 있고 천도 될 수  있고 만도 될 수 있으니 수는 헤아리지 못하지마는 사건에 대한 염려, 별별  사건들이 있지요. 인인 사건 무슨 물리사건 무슨 시비사건 국제사건 꽉  안찼겠습니까? 사건에 대한 염려. 또 모든 물질에 대한 염려. 내가 어떻게 무엇을  경영할까 경영에 대한 염려. 그런 염려들이 대충 우리의 염려입니다. 사람이 마음  하나 잘못 가지면 일생을 망치고도 몇 대를 망치야 되는 것인데 염려 안할 수가  있습니까? 염려. 이 염려가 있겠습니다. 그것을 분류한다면 분석을 한다면 자체에  대한 염려가 있겠고, 나라는 자기를 어떻게 하느냐? 자기 자체에 대해서, 또  자기의 모든 소유에 대해서 행동에 대해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대한 염려,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심판대앞에 설 염려 무궁세계 가서 살 염려 그것이 영과  육의 염려가 되겠습니다.

 모든 염려의 종류가 심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 염려의 많은 종류를 가진 것이  우리의 염려인데 그 염려중에 한 가지라도 인간으로서 원만히 해결할만한 그런  종류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 알아야 됩니다. 인간들 이 제게 대한 염려를 척척  해결해 나간다고 사십 오십까지는 해결해 나 간다고 솜씨있게 떠들지마는 나중에  가서 보면 전부가 다 저질러 논 것 뿐이지 바로 그 염려를 해결 지워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것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일사 천리로 만사  형통으로 나가면 그것이 제가 염려되는 것 다 인간으로 다 잘 해결을 지운 줄로  알지마는 전부가 다 절단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에 인간이 해 아래서  수고한 것이 다 자기에게 유익된 것 하나도 없다. 염려 그걸 해결 지우면  자기에게 유익되게 해결 지워야되지 해되게 해결된 그 까짓 것이야 해결되나마나  해결입니까?  또 모두가 다 심판거리나 마련하지 인간이 하나도 해결 못하도록 하나님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대해서는 지위 위치를 그렇게 정해줬습니다. 인간 염려는  하나님이 해결하고 모든 물질에 대한 것들은 인간들 이 주권해 가지도록 그렇게  해논 것입니다. 이런데 이렇게 많은 심려를 모두 다 자기가 검어쥐고 해보겠다고  하는 그것을 가르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데가  필요없는 수고 필요없는 짐을 졌다. 네가 책임 못질 것을 책임지고 암만 해봤자  잘못 저질기만 저질지 하나도 좋게 하지는 못하는데 네가 그런 짓을 하니 내게로  오라. 인생의 중보자 예수님에게 와서 그와 연결이 되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모든 은혜로 주시는데 이거야 다 교만한 자들이라 그말이요.

 이렇게 많은 염려를 주님께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맡기라. 다 내게 맡기라. 모든  염려되는 것을 내가 다 잘해 주겠다.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권고라는 그 말은  애매한 말로 되어 있지마는 그 말의 뜻은 그렇게 애매한 것 아닙니다.

권고하심이라 그말은 너를 책임지신다 그말이요. 맡기라 책임지신다 그말입니다.

 우리 나라 말은 단어가 적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선진국의 말을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하려 하면 단어의 종류가 없는 것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더욱이나  더 히브리어 헬라어는 옛날 말이기 때문에 그 한마디 가운데에 수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 말이라야 뜻을 바로 안다는 위협주고 자랑하는 협박하는  소리가지고 안됩니다. 그런데 눌리면 안 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저가 너를 책임지시니라 네가 믿음에 굳게  서서 대적해라. 너를 삼킬 자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 네가 믿음으로 이걸 대적해라. 네가 이런 일을 할 때에 예수 믿기  까다롭다 생각하나 세상 일도 승리를 바라는 데에 투쟁없는 일이 없고, 투쟁에는  실력 다툼이기 때문에 연단 연성이 없을 수 없고 또 거기에는 모든 준비가 없을  수 없다 아, 잠깐 있다가 없어질 이 세상 썩음에 속한 것도 성공을 하려면 거기에  대한 상당한 자본은 애로와 노고가 있는 것인데 영원을 마련하는데 네가 그것  없으리라고 생각하느냐 아 은혜로 주신다고 하지 안했느냐. 그 가치가 너무 커서  너희에게는 댓가가 없기 때문에 은혜를 준다는 것인데, 그 은혜를 주는 것을  너희가 받는 데에는 너희는 받을 자격도 없기 때문에 마음 다하고 목숨 다 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성품 다하고 네게 있는 것을 다해야 공짜로 주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

 그럴 때 이 보배로운 것을 너희에게 주시고 지나간 마음으로 다른데 욕망가지고  그까짓것 예수님의 은혜는 그저 열홀에 한번 하루 한번 제하고 싶은대로 다하고  나머지기 찌꺼기 가지고서 한번 생각하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다. 네가  자격은 없어도 있는 걸 다 기우려 받으려고 할 때에 네 전부를 다 해도 자격의  대가에는 억만분의 일도 안되는 그 큰 것을 너에게 공짜로 주시지 않고  가치없어서 공으로 주는 것 아니다.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께 받는 은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우리 전부를 다해야 되지 또 말씀하시기를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지 안했소. 자 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라고 하지 안했소. 자기보다 자기 목숨보다 자기 가정보다 세상 무엇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된다고 하지 안했소. 십자가를 지고 따르란 말씀은 주님 명령  순종하는데에 죽는 그 고통 죽음까지 각오하고 따라와야 된다 그말이요. 성경은  전부 통일적으로 이렇 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값싸게 준다 말이 어디  있습니까? 있기를. 어리석소.

 하나님이 이렇게 다 은혜로 주실 터인데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주님이 책임지신다. 그러면 맡기는 것이 어떤 것인가 맡기는 것은 자신을 맡기는  것도 있고, 내 자신을 맡기니까 내 자신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내 자신에, 내  자체에 대해서 이걸 맡아서 좀 잘해 주십시요. 자체에 대해서 그분에게 맡기는  것도 있고, 맡길 수 없는 것도 있어서 내가 사건 하나 닥쳤으니까 이 사건만 좀  감당해 주십시요 하는 사건 위임도 있겠고 아, 사건도 다 맡기지 못합니다. 다만  이 일에 대해서 좀 내게 필요한 잠언이나 주십시요. 필요있는 그런 요긴한 참고될  것을 나 에게 알려주십시요. 자체를 맡기는 자체에 대한 염러를 맡기는 것도  있겠고 자체는 못맡기지만 자기가 하는 사업을 맡기는 것도 있겠고 또 사업  전부는 못 맡기고 이중에 부서뜨리는 파괴하는 집 뜯는 것 이것만 맡으십시요.

이렇게 파괴만 맡기는 것도 있겠고 또 건설만 맡기는 것도 있겠고 며칠 동안만  맡기는 것도 있겠고 영원히 맡기는 것도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보니까 그것은 자기의 육체에 대한 어떤 그 종목의 병을,  병 치료를 맡기는 사람도 있고 또 자기의 전신을 맡기는 사람도 있어 전체를  모르니까 종합진찰을 해가지고서 어쩌든지 내 건강을 책임져 주십시요. 책임질  수가 없지마는 책임져 주십시요 하고 맡긴 후 그 다음에 할일이 뭣 입니까?  의사가 굶으라면 굶어야 될 것이고 먹으라면 먹어야 될 것이고 뛰라면 뛰어야 될  것이고 가만히 누워자라하면 자야될 것이고 많이 먹어라하면 많이 먹어야 될  것이고 시키는대로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가 옆사람이 말하기를 데가 의사한테  맡겼다가는 네 신세는 간 다 데 몸은 절단난다 봐라 현재 지금 병이 악화되어  나가고 있지 않느냐? 그럴 때에 아, 네 말을 들으니까 과연 그렇구나. 의사한테  이제까지는 내가 맡겠지마는 지금부터는 못 맡기겠습니다. 다시 맡긴 그 계약을  해약하겠습니다. 이제는 안 맡기겠습니다 다 해약하는 수 있고 옆에 사람이 암만  말해도 네 말 안듣는다 나는 맡겼는데 그분에게 맡겼으니까 좀 몸이 나빠져도  맡긴다. 이 등신아! 몸이 더 악화되어도 맡긴다 숨끊어지는 시간까지 맡긴다. 그  맡기는 정도가 각각 다른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맡길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맡기는 법이 그렇다 그말이 요. 그러나  주님은 완전자시요 없는 가운데 우리를 지은 분이시요. 십 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우리를 맡겼으면 그분에게 내 자체를 말겼으면  내 자체에 대해서 아무도 자유하지 못 해야 됩니다. 내 자체에 대해서는 맡은  그분만 내 자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할 권리를 가졌습니다. 또 어떤 사건에  대해 맡겼으면 거기에 대해서는 그분이 주권하고 그 분이 하는대로 하고 그분이  시키는대로 하고 이러다가 이러면 안되겠는데요 하면 견뎌봐라. 암만해도 염려가  되어 안되겠습니다 못맡기겠습니다. 그때부터 해약되는 것입니다 이와 꼭같은  것이요. 주님에게 맡긴다는 것은 어떤 종류에 대해서 자신이 간섭을 안하고  책임을 안지고 주권을 가지지 안하면 내가 맡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등이 많이 와 말할 때에 아무래도 좀 염려스리워 하 면 그  맡긴 것이 전적 맡긴 것 아니고 옆사람들의 그 말 듣고 맡겨서는 안되겠다 하고  그분의 처행을 따르지 안하며 거부하는 것은 그때부터 해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맡기는 것은 맡긴 그것에 대해서는 주님에게 주권을 주어 주님이  주장할 때까지 그분이 맡았지. 주장하는 그 주장이 제재를 받으며 다 맡긴 것  못됩니다. 반대를 하면 그 맡긴 짓은 도리어 도로 찾은 것입니다 또 맡겼지마는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는 맡겼지 바싹 부서져서 없어지고 절단나기까지 맡겨서  절단났으면 절단난 그것은 맡은 그부이 책임져야 될 것입니다.

 맡기는 것도 시간이 있고 정도가 있어 맡긴데에는 참고 기다려야 되는데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인간보기에는 완전히 부서져서 없어지는 완전히  절단난 거기까지 당신에게 맡겨 인간보기 에는 완전히 절다 나고 그분이  책임지고 완전케 해 내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러기에 맡긴데 대해서는 그분이 주권하고 자기가 간섭안해야 됩니다 또  맡긴데 대해서는 천인 만인이 와서 틀렸다고 이래도 그 말하던 사람들의 말을  듣고 변동하면 내가 맡긴 그 분을 이 모든 중론과 비교 해서 중론을 크게 여길  때에 맡긴 걸 도로 찾겠습니다, 천하 인간이 다 틀렸다해도 천하 인간보다 그  분을 더 인정하고 크다 생각하면 그것이 맡긴 그것을 요동시키지를 못할  것입니다 또 맡긴 것을, 자기가 사업을 사건을 맡겼다면은 이래라 저래라 할때에  그분이 시키는대로 안하면 즉 내가 꼭 해야 될 부분이 있고 양이 있는데 그걸  나한테 시킬 때에 내가 응하지 안하고 순종치 안하면 그분이 일 못합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시키는대로 하지 안하니까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모든 우리의 닥치는 현실과 생활이, 맡겼느냐 안 맡겼느냐.

이 시비를 판정하고 어느 정도 맡겼느냐 도수와 강약을 시험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다 맡기되 인간이 다 달라들어서 그 맡긴 것을 의피심하도록  해도 의심하지 안하고 맡긴 것이 요동치 아니하는 것 인간들의 모든 마귀와  인간들의 유혹에 맡긴 것이 요동치 않는 것 그것 때문에 여기에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다니며 상대를 잡는다 했습니다. 인간에게 충격받아 맡긴 것이 요동치  안할 모든 충격주는 인간의 수많은 미혹에, 맡기지 말라고 도로 찾으라고  요것만큼은 요렇게 해야 된다 맡기지 말라고 해도 그 말을 듣지 않고 주님에게  맡겨서 주님이 하라 하신대로 또박 또박, 불에 들어가라. 할 때에 불에 들어가서  타 죽는 것인데 야, 이 등신아! 불에 들어가서 타 죽는데 불에 들어가는 것이냐?  불에 들어가 타죽어 재가 되어도 잘 해줄 능력있다고 할 때 그 걸 초월한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세상살이는 당신을 알고 맡기는지 어느 정도 아는지 어느 정도  인정을 하는지 그 권능을 그 지혜를 그 약속을 그 신실을 그 사랑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요 맡긴 요것에 대해서 환경과 주위의 모든 것이 바꾸어질 때마다,  맡기나 도로 찾나? 이래도 맡기나 또 이래도 맡기나?  맡긴다면 맡기지 못할만한 그 이유보다 그 분을 크게 여기는 것이고 믿는  것이고 맡긴 것이 의심나고 해약될만한 그런 이유가 있어 맡겨둔 것을 중단하면  그 사람은 내가 맡긴 주님보다도 그 맡긴 것을 해약할만 한 인간들의 유혹이나  그 자체가 악화된 것이나 자체가 악화된 것이나 모든 사업이 악화된 것이나 모든  건설이 악화된 것이나. 아 파괴를 맡겼는데 파괴시키면 그것이 다시 건설되나?  거기서 맡기고 안 맡기는 데에서 주님보다 무엇을 믿으며 바라며 의지하며 크다  인정하느냐?  우리의 전 생애는 내가 모든 것을 맡기고 바라보는 주님과 나와 내 주관으로  보이고 접하고 들려지는 내 지식의 견해에 그 모든 것을 부인하 고 주님을  믿느냐? 믿으면 맡기는 것이 믿는 증거요. 맡기지 못하면 안 믿는 증거 이래서  우리의 일생 생애는 주님과 나와 모든 피조물 피조물과 주님과 이 중량을 달아서  어느 것이냐? 보다 어느 것을 믿느냐 바라보느냐 의지하느냐? 그의 사랑을 어느  정도 그의 지능을 어느 정도 그의 약속을 어느 정도 결정지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맡기지만 저 혼자 있을 때에는 맡겼지마는 다른 사람이 와서 말할 때에는  맡긴 것이 변동됩니다, 나와 인간들이 뭐라고 해도 변동 없지만 그 자체가 악화될  때에는 변동됩니다 그 자체가 모든 여론들의 형편과 사정과 자기 눈 자기 보기에  자기 지식에 이 모든 것으로 볼 때에는 이번에 맡겨서 안되겠다. 이럴 때에  맡기는 그것이 맡기는 도수 을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부인하고 맡기는 것 인류 부인하고 맡기는 것 20세기 문화  부인하고 맡기는 것 수 천년 역사 통계 부인하고 맡기는 것 자기 지식 부인하는  것 내 눈에는 파괴가 완전히 됐는데 파괴가 됐다 이 파괴된 것보다도 그분의  사랑과 신실과 그분의 약속과 그분의 능력은 이런 것을 능히 구출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 지금 그분에 대해서 맡긴 것 변동없다. 이것을 당신이 찾습니다.

이러니까 자 보자. 이 정도에서는 그래도 맡기는구나 그래, 또 이면 맡기느냐  안맡기느냐? 어느 정도 맡기느냐 맡긴 그 범위를 그 정도를 그 장단을 다 맡기면  다 됐소. 맡기면 옳고 참되게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게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당신이 하는 것은 시간 걸리지 안해. 문제가 없어. 아 그분이  엿새동안에 전 인류를 지었는데 뭐 그 솜씨에 맡기게 하기는 문제가 없소.

 이런데 맡기느냐 안 맡기느냐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란 말씀은  보자 네가 맡기느냐 안 맡기느냐? 맡겼으면 다른 사람 맡기지 안해 제가 도로  찾지 안하지. 맡기는 것은 그 맡긴 그것에 대해서는 그 분 마음대로 하고 그분  주권대로 하고 그분이 혼자 하는대로 하지 간섭하지 않는 것이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다가도 그래서는 안되겠습니다 하고 인간 생각대로 과학대로 제 주관대로 할  때에는 하나님께 맡긴 것은 그때 해약이 되고 무엇이든지 그 자가 책임집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또 이 면으로 내가 맡기냐 안 맡기나 여기서도 맡긴 것이  변동되나 안되나 이것 시험하는 것이로구나, 주여! 의심없이 맡깁니다. 내 모든  자체 완전도, 내가 인류에 대해서 가까운 사람 먼사람 에 대해서도 내가 주님에게  다 맡깁니다. 가족에도 맡깁니다. 어떻게? 당신이 잘해 줄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내가 할 것. 당신이 이래라 저래라. 내가 지금 치료 할려고 하니까 이 약을  먹어라. 써도 마십니다. 이 원수 어째야 됩니까. 네가 나한테 맡기지 안했느냐,  맡겼으니까 너는 거기서 이래라 저래라 생각지 말아라. 다만 나 시키는대로만 할  것뿐이지 네가 책임지지 말아라. 아이구! 이러면 그 사람하고 나하고 원수가  십배나 더 될 것인데 내가 맡았어. 나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러기에 자체에 대해서 인류에 대해서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되 겠습니까? 그것도 나한테 맡기라. 당신 시키는대로 하면 됩니다 이렇게  당신이 모든 염려를 다 맡겨 주기를 원하시고 맡기고 도로 찾지 않는 거기에  대해서 내가 간섭하지 안하고 주장하지 안하면 내 마음 대로 하지 안해. 그분  마음대로 주장대로 하도록 한다면 그분이 내가 해야 될 것을 이래라 저래라  시키면 시킨 그대로만 할 일이지 거기에 대해서 내 눈에 보기에 잘되간다  못되간다 해도 그 과정이 수많기 때문에 망했다가도 잘되고 내 눈에  잘돼간다고서 잘돼가는 것 아니라 어쨌든지 종말로 그분이 완전을 이루어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보이는 것 들리는 것 현재 형편 돼 가는 것 그런 것 하나도  이러니까 되는 것 같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만을 믿어 그분의 그 완전하신,  믿음으로 그분이 해주지 다 돼 간다고? 다 돼 가는 것이 아니라 바싹 부서져도  그분이 할 수 있어. 다 돼 가는 것 다 깨져가는 것 상관없소. 그 모든 것을  능가하시는 그분이 맡았기 때문에 그분이 최종으로 잘해줄 것을 자기가 확실히  인정하고 맡기는 것을 변동 안하면 그분이 책임져.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세상살이는 그분에게 맡기라고 권고하는 현실이요  또 맡겼느냐 시험하는 현실이요 맡긴 것을 도로 찾으라고 우는 사자와 같이 모든  것들이 맡긴 것을 도로 찾으라고, 믿고 맡길수 없다고 도로 찾으라고 내 속에도  그 놈이 발동하고 내밖에도 발동할 때에 나는 맡긴 이것을 되찾지 안하고  그분에게 전적 맡겨놓는 것 이것만 하나 지켜 행하면 그분이 쉽게 빨리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닥치는 현실은 아, 이것은 날 맡기라 하는 것이구나 내가  맡기지 안하고 공연히 이랬으니 헛수고 했구나. 요 현실은 맡기라는  현실이로구나. 또 요 현실은 내가 그 전에 맡겼는데 정말로 맡겼나 안 맡겼나  나를 시험하는 것이구나 현실은 맡긴 것을 도로 되찾으라고 피조물들이 이렇게  유혹주는 현실. 또 맡긴 것이 나 보기에 바싹 부서져 버렸는데 희망이 없는데  그것보다 주님을 더 인정하고 그분의 신실과 사랑을 인정하고 맡기느냐 이것은  나의 맡긴 것을 부인케하려는 현실을 하나님이 만드려고 시험하시는구나. 요것은  그 자체에 대해서 이래도 맡기느냐 하는 것이로구나. 아, 요것은 맡겼으니 네가  시키는대로 이것해라 저것해라 하라 하시는 것이로구나. 그 맡김에 관계되는  현실이 맡김에 대한 해약이냐 그 계약에 의심없이 다시 날인을 하는 결성이냐  이것을 결정 지우는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절대자 그분과 나와의 관계되는 모든 것이 영원히 결정되는데 거기는  상관도 없이 피조물 저회끼리 뭉쳐서 많이 뭉치면 뭐할 것인고 크면 뭐 할  것인고 너무도 외식이고 허무한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이런 것 다 불타지고  없어지는 것 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기를 지나기 전에 빨리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맡긴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맡김을 도로 찾고 안찾고 하는 그것이 그분을  내가 알고 모르는 인정하는 도수입니다 이러니까 자기보다 피조물보다 주님을  크다 참되다 인정하는 모든 것을 영원히 결성 지우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이것이 진리입니다.

 나는 정말로 맡기는 지, 이름만 가지고 그분은 거짓말쟁이요, 그분은 신실치  못하고 그분은 능력없고 그분은 허무하니 내가 해야 되겠다 어떤 사람  시키는대로 해야 되겠다 요기서 그분에게 맡기지 안하고 제가 하는 자, 어떤  인간에게 맡기는 자, 맡기지마는, 맡겼다는 것이 조그마한 무슨 일 있으면 아,  맡길 수 없습니다. 도로 찾는 자 우리 인격도 우리 관계도 결정되고 모든 사물과  관계도 다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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