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1981. 10. 17. 토새

 

본문 : 요한 1서 5장 18절 - 19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서 처한 것이며

 

"하나님께로서 났다"하는 말씀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아났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새로 생겨났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중생이라 말은 죽었던것이 다시 살아났다  하는 말이요, 또 부활이란 말도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났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본구원에 속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있으니 영과 육이 다 죽었는데 죽은  것이 첫째로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그는 영생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우리가 죽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난 자들이지마는 실상은 우리가 법적으로 살아난 그것을 실상으로  산자되어 살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택자가 중생되기 전입니다. 중생되기 전에도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대속을 받은 자이지마는 실상은 그가 새 생명은 얻지를  못하고 있는 때입니다. 이러다가 영이 하나님과 진리로 다시 살아났을 때에  그때에 법적으로 구속을 받은 것이 실상으로 구속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구속을 받았지마는 아직까지 육은 구속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의 구속은 단번이요, 육의 구속은 중복적입니다. 육에 종합체라서 구속이  중복될 뿐 또 육은 신령한 면이 있고 외모의 면이 있습니다. 그 형체가 있고 형체  안에 신령한 물질이어서 형체를 가지지 아니한 신령한 물체가 있으니 곧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육의 생명도 신령한데 속해서 육에 생명이 보이지 아니하나  그것이 육에게 제일 중요하고 또 육에 힘이 보이지 아니하나 그것이 육에게  있어서 중요하고 또 육에 온갖 연성한 지식과 지혜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지마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것이 부활되는 부활은 그 육에 형제가 부활하는 것인데 이 부활은  예수님 재림때에 그것이 부활합니다. 예수님 재림때에 그것이 부활하나 육에  신령한 그것은 죽기전에 부활을 해야 합니다. 영이나 육이나 부활 전에는 다  사망에 속해 있고 부활한 후에는 하나님에게 속해서 다시는 사망의 것이 가까이  하지도 만지지도 못 합니다. 왜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그를 책임지기 때문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누군가 그는 성자 성령을 하나님께로 난자입니다.

하나님께로 났다 말은 하나님의 본체에서 각각 직책을 맡은 지위가 있어 그  본체에 속한 지위라 본체에 속한 그 지위를 가진 그 삼위라 하는 그런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셨다고 하므로 그는 하나님과 차이 있는 것이 아니고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내나 그 하나님이 하나님의 본체의 그 하나님인데 그  직책을 맡은 것은 시작의 때가 있고 본체가 계신 것은 시작의 때가 없습니다.

본체에 속한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께로서 난자라 시발된 그때를 가르쳐서 난때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법적으로 영육에 구속을 받은 택한 자들이 실상으로 구속을 받아야  영생하게 되는데 구속을 받아 영생하게 된다는, 다시는 범죄하지도 아니하고  사망의 것이나 악한 것들이 가까이 하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만지고 범죄케 하면 중생된 그것도 죽습니다. 다시 살아난 것도 죽습니다.

만일 논리적으로 죽는다고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속은 구속받기 전에 죽은  것을 대신해서 죽어 살렸지 구속을 받아 가지고 중생 부활한 것이 범죄해서  죽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속의 공로는 거기에는 해당치 않습니다. 두 번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됩니다.

된다면 예수님에 이차적인 대속은 있다고 우리가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단번 구속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근거해서 이차적으로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아 가지고 대속하시는 일은 없다고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법적으로 구속을 받은 것이 실질적으로 구속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에 공로를  근거해서 실질적으로 구속을 받은 그것은 다 영생으로 구속받았다.

영생으로 구속받았다 말은 다시는 죄나 악한 자나 침노할 수 없는 것으로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은 영원히 범죄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실질적으로 구속받은 자라고 이 죄악과 악령이 강한데  거기에 침노를 받지 않겠느냐 그거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느냐 구속을 받은  그자로서는 불가능하지마는 하나님께로 나신자 곧 예수님에 구속과 성령과 또  하나님에 뜻인 그 진리 이 셋이 놓지 아니하고 지키고 영원히 같이 있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살아났기 때문에 이를 죽일자가 없는 것입니다.

성자를 죽일자가 없고 성령을 죽일자가 없고 진리를 멸할자가 없기 때문에 이  모든 시험하는 악령이나 피조물 그런 것들을 이분들에게 지음을 받은 것들이요,  다 여기에서는 하늘과 땅같이 그렇게 차이있는 피조물이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여기에 간섭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고 실상은 그것들이 이 구속받은  자를 훼방하는 거 같은나 그 훼방하는 것이 아니고 실상은 찬양하고 협조하고  협동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방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해 하는 것 같이 보여지는 것은 마치 금을 연단하는 그 불길이 금을 해하는 것  같지마는 정금만 드러나게 하고 정금에 권위를 떨어뜨리는 모든 잡것들을 다  제하여 버리는 것처럼 세상이 신앙을 방해 하는거 같으나 구속으로 다시 살아난  그것만이 남아 드러나고 그 외에 인본으로 된 피조물로 된 그런 것은 다 불살라  버리고 그것을 드러나서 구속으로 살아난 그것의 권위와 가치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이용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에 구원은 법적으로 구원하는 구속을 해 주셨고 실질적으로  구속을 받아야 되는데 영은 단번에 받고 이 육에 구속은 중복적으로 여러 차례  받는데 크게 나누면 죽기 전 세상에 있는 자기 행동에서 구속을 받는 것입니다.

그때 부활을 받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부활입니다. 어쨌든지 죽은것이 다시  살아나는 중생입니다.

중생이라는 말은 붙이든지 (구속이라는) 부활이라는 말을 붙이든지 거듭난다는  말을 붙이든지 똑같은 말입니다. 이것은 부활도 죽은것이 살아나는 것이고 중생도  죽은것이 살아나는 것이고 다시 살아나는 것도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은 것이 살아나기 때문에 죽은 것이 죽은 것으로 확정지을 때에  살아나는 것도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확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육의 구속은 자연으로 죽는 죽음이 있으니 자연으로 죽는 그 죽음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에 효력을 받습니다. 자연적으로 죽지 아니하고  자연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으로 믿음으로 죽는 이 죽음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고 이것이 초자연적인 죽음이요 역사적인 죽음입니다. 세상을 거슬리는  죽음입니다. 자연 죽음입니다. 스스로 죽는 것입니다. 이 죽음을 통해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자연 죽음으로 자연 부활을 얻게 되고 자연 죽음으로  예수님이 누구든지 부활시키는 그 일반부활 얻게 되고 자원해서 죽는 이 특수  죽음으로 특수한 부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부분적으로 죽고 다시 살아나는 이  부활을 받게 되는것입니다.

그런고로 죽어야 살아나는 그 죽는 것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그것이 죽는  것이요 다시 말하면 옛사람 자기가 죽는 것이요. 자기가 주격 그 권세를 박탈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점령해서 하나님의 것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육체의 부활은 기능 부활인데 각 요소 부활인데 이것도 다 죽음을  통해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서 살아난다 말은 죽어야 살아납니다.

옛사람으로 살던 그게 죽어야 새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지배하고 있는 그것의 것이 되어 있던 그것이 주인을 바꾸어서 그것에 것이던  거기에서 벗어나야 하나님과 진리에 것이 됩니다.

벗어나는 방편은 그들이 놓지 안하려고 하니까 사정하고 내가 이제는 여기에  있다가 예수님에 구속이 있으니까 너는 배반하고 예수님 만나러 가겠다 한다고  마음과 몸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해방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은  본질상 악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을 가르쳐서 육체라 하는데 육체는 본질이  악한 것 아닙니다. 악한 자가 거머쥐고 사용하면 악의 도구가 되고 의로운 자가  거머쥐고 사용하면 의의 도구가 됩니다. 우리의 심신이 하나님에게 쓰여짐을 받을  때에는 의로운 병기가 되고 악에게 쓰여질 때에는 악의 병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심신이라는 심신의 기능이라는 이것이 악에게서 벗어나고  악령에게서 벗어나려고 할 때에 그것이 해방을 시켜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나는 너를 떠나서 하나님께로 간다고 해도 해방시켜 주지 않기 때문에 못가구로  이렇게 하니까 간다고 씌우다가는 몽둥이 맞고, 간다고 씌우다가는 살림 뺏기고,  간다고 씌우다가는 가정이 절단나고, 간다고 씌우다가는 감옥에 갇히고, 간다고  싸우다가 씌우다가는 멸시를 당하고, 마지막 간다고 씌우면 죽인다 할 때에  죽음까지 도달해서 죽어도 간다 하고서 생명을 내놓고 갈 때에 그때가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 사로잡혀 있는 이 심신의 육이 해방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가 어떤땐고 하니 이 심신의 전부가 하나도 섞인것 없이 모조리  반대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다 해서 하기 때문에 그런 잡을 건데기가  없는데 백분에 일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요소가 있을 때에는 그는  악령이 저의 것이요. 할 수 있기 때문에 백분에 일을 붙들면 백의 구십구가 갈 수  없는 것이 그것이 인격성인 것입니다. 육체도 손가락 하나 짜매면 온 전신이 갈라  해도 손가락을 끊어내버리면 갈까 끊어내지 않고는 손가락 하나만 단단히 붙들어  있으면 못가는 것입니다. 끊어낸 버리면 갈 수 있지요. 지극히 작은것이  붙들렸으나 전체가 붙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고 심신이 부활 중생을 해야 되는데 중생을 해야 된다  말은 영생을 해야 되는데 다시는 사망이나 악한 것들이 만지지 못하도록 돼야  되겠는데, 이 둘째 죽음을 받지 않는 자가 되야 되겠는데, 생명이 승리한 자가  되어야 하겠는데, 영생을 얻어야 하겠는데 그러는 데에는 이제 해석한 대로 다  반대해야 되지 다 반대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중생을 다 원한다. 심신의 요소 전부가 마음도 다, 뜻도 다, 성품도 다, 생명도 다  원한다 전체가 다 원하니까 저희 요소는 털끝만치도 없으니 전체가 다 원해도  강제로 잡을 수 있는데 구속받은 자에게는 강제로 잡지를 못 합니다. 강제로 잡을  수 있는 그 권세를 가진 것은 왕권을 가졌기 때문에 강제로 잡을 수 있습니다.

만일 불택자가 가려고 하면은 강제로 잡아서 다 반대를 하고 여기서 탈퇴하겠다  해도 강제로 압도해서 가지를 못하게 됩니다. 왜 왕권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에게  왕권을 가져 있기 때문에 택한자는 전체가 반대하면 해방시켜줘야 됩니다. 왕권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래서 로마서 5장 1절에 보면 그 왕권은 가지지 못한 것을 말했습니다. 그가  죄가 우리에게 왕노릇 못한다 하는 말씀을 몇 번이나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왕노릇 못하니까 다 반대할 때는 할 수 없어 놔 줘야 되지마는 거기에  조금만치라도 해방을 싫어하고 거기에 속한 것을 원하는 부분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잡고서 놓지 안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잡고 놓지 안해 주면 그것에게  인해서 붙들려서 한쪽은 가자 하고 한쪽은 안 가려하고 쪼개지지 안하니까  싱강중에 있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들이 부활하려고 원은 있지마는 되지 않는  때입니다.

싱강만 하고 이것이 완성되지 안한 때입니다. 요것이 다 될 때에 고게 대해서  요것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다 원할 때에 다 원한 고것을 해방을 받습니다.

고것을 부인을 그것을 부인하고 악령과 악성을 부인하고 자기로 되어 있던  그것을 부인할 때에 고 요소는 해방을 받고 해방을 받으면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부활을 받아야 이것이 영생하지 부활받지 못한 것은 영생을 못 합니다.

영이 중생하지 못한 영은 하늘나라를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지 못한  요소는 하늘나라에 가지 못 합니다.

그러면 부활에 부활받을 요소는 뭐이냐? 형체 부활이냐? 형체 부활은 그것은  죽었다가 일반 자연 죽음으로 죽은 것을 하나님께서 부활시키는 그 부활 그거는  형체 부활인데 그것은 우리가 힘도 쓰지 안하고 원치 안해도 됩니다. 그거는  됩니다. 그러나 지금 부활을 받아야 되는 것은 형체 부활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그 힘의 부활입니다. 지혜의 힘, 지식의 힘, 또 그에 활동의 힘, 연습의  힘, 그것을 한말로 말하면 심신의 기능이라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것들이 부활을  받는 부활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박힌 이 주의  고난에 참예하는 고 주의 고난에 참예하는 고 고난을 통해서 부활의 권능을  얻으려 함이라 하는 것이 그말입니다.

주님이 고난받은 그것이 전적 부인하는 것이요, 부인할 때에 해방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권능을 입는 것은 무궁세계에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형체는 부활했지마는 기능을 입지 못한 사람이 있고  입은 사람이 있으니 요사이 학벌을 따진다 기술을 따진다 그의 소유권을 따진다  하는 것은 자체는 아닙니다. 자체는 아니지마는 소유권 또 지식권 연습권 기술권  그 권세 이것은 자체가 있고 난 다음에 하나씩 둘씩 갖추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학교 졸업 맡으면 그만한 지식을 제가 입었고 또 대학을 졸업했으면  대학에서 그만한 지식을 입었고 일 년을 그것을 숙달시켰으면 그만큼 기술이  늘었으니까 그 기술을 입었고, 이와 마찬가지로 땅에 있는 장막이 자기가 입고  있는 것이 그말이오. 땅에 있는 장막이 무너지면 영원한 장막 하늘에 있는 장막이  있으니 그 장막을 거기 가서 입고 살 터인데 지금 떠나기 전에 이것을 입으려고  지금 세상 것 입고 있는 여기에다가 그것을 덧입어서 요것 벗고, 고거 입고, 요거  벗고, 고거 입고 이래 가지고 세상에서 덧입고 가는 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이 일이 무거운 짐진거같이 너에게 큰 짐이 된다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부활해야 되는데 부활하는 그 상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면 자기에게 남은거 없다  말입니다. 전부가 다 해방 받기를 원하고 주로 말미암아 살아나기를 원하는 것이  전체가 총결입니다. 자기 심신에 모든 거 총결의 다하는거 총결의 다할 때에  영생이 된다.

영생을 어떻게 얻겠습니까? 다하면 영생된다 말했습니다. 다하면 영생된다 이렇게  부활하는 그 부활이 장난삼아 되는 거 아니고 말만 가지고 되는 것 아니고  원함만 가지고 되는 것 아니고 결심만 가지면 되는게 아니라, 저 (신)조사님 뭐  가지고 해야 됩니까? 부활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원함만 가져도 안되고 이름만  가져가도 안되고 말만 가져가도 안되고 힘만 쓰는 것만 가지고도 안되고 어째야  됩니까? 뭐래? (김용)목사 그래 다하기를 원한 총결의 빠짐없이 그게 있어야  됩니다. 생명도 너 죽어도 아, 죽어도 난 안 원한다. 최종이 생명인데 그 전체가  다 되어야 영생 얻습니다. 그래 안하면 부활 못합니다.

그러기에 죽음이라는 것은 최종 역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종 운동이  안되면 부활은 안됩니다. 그래 믿는 사람들이 우리가 이것을 생각지 안하고  마음으로 원하면 된다 또 좀 힘만 쓰면 된다. 꾸준히 계속만 하면 된다 암만  해봤자 백도가 돼야, 녹을 것은 백도가 돼야 녹지 구십도로 일년 삶아도 백도  안되면 안 녹습니다. 백도가 돼야 녹습니다. 한 시간 놔두고 십분이라도 백도만  되면 팍 녹아버리고 백도에 녹는 것은 백도가 돼야 녹지 백도 이하 구십도에는  일년 삶아봤자 안 녹는다 이거야. 백도가 되면 즉시 녹지 이렇게 다하는 청결히  다하는 요게 되면 즉시 고게 부활되는데 고 요소는 즉시 부활 다하면 즉시  부활되는데 다하지 안하고 평생 제가 노력하고 붙들고 애써도 다하는 그 도수에  올라가지 안하면 그는 부활의 생명은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시험을 받고 참는자 복이 있다 참는거는 계속 한다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시험인데 마구 강한 시험, 불시험 이렇게  불시험이 닥쳐서 이제는 다 내놓지 안하면 그 시험을 통과 못합니다. 다 내놓지  안하면 시험을 통과 못하는데 다 내놓으니까 그때는 됐다 하시고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 그 부활준다  그말이오. 그게 다시 살아났다 그말이오. 영생을 가졌다 그말이오.

"또 네가 시험을 받을 터인데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살고 애쓰고 노력하고  열심으로 된다는 말 아니요. 생명 내놔야 된다 그말이오. 죽도록 충성하라 이제  생명까지 다 내놔라 그러면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 곧 영생인데 그것이 부활인데  다시 죽지 안하는 부활인데 다 내놔야 된다 그말이오. 이 도수에 도달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부활은 언제 받느냐? 다 내놔야 받는데 받는 우리의 준비는 우리 편의 준비는 다  내놔야 되고 하나님 편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우리에게 주의 날로  줬습니다. 주의 날입니다. 그건 주의 성경에 보면 주의 날인데, 주의 날이라 말은  주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구원한 그것을 가르칠 때에 주라 이랬습니다. 주,  이렇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 주 하는 그말은 우리를 책임졌다 하는 그것을  발표해서 주라 말했습니다. 주의 날이라 말은 우리의 구원을 책임지신 그분이  책임지신 이 구원을 하신 날이라 그말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은 우리의 부활날로 주신 것입니다. 구약에 아니, 안시일 지킬  때에도 부활에 속한 새생명에 속한 역사는 전부 주일이 아니지마는 안식일 다음  첫날 그 행사들을 한 것으로 우리에게 계시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주일날 하나님은 부활시켜 주시는 날로 날로서는 정했고 날은 주일날을  부활시켜 주시는 날로 정했고 또 부활을 받는 도수는 다해야 되는 것으로 정했고  주일날로 주님이 그날을 정했기 때문에 그날은 우리가 모든 일을 다 제외해 놓고  전적 여기만 달라붙어 가지고 이 일만 하라 말은 관심 가졌던 거 다 치우고 마음  다하고 성품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목숨은 다 하기가 힘은 들지마는  이것은 집중되겠습니다.

이래서 다 하니까 주님이 주시니 우리는 다하기 쉽고 평소 일은 약속돼 있고  모든 거 다 복잡하기 때문에 다하기 어렵지마는 이 주일날은 다하기가 우리  편에서 다하기가 쉽고 주님은 그날 날짜로 정했고 하니까 이날 주일날 이 날에  성화받는거 이 날에 변화받는 거 이날에 부활받는거 이날에 영생얻는 거 이것이  제일 용이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주일을 지키되 지장없이 지키는 그것보다도 주일을 지킬라 한다고  죽인다는 그런 어려움이 있을 때에 주일이면 참 그런 수입이 매우 클 것입니다.

부활을 받는 우리편 준비가 다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일이 아닐지라도 자기와  주와 진리를 모셔서 주와 진리에게 자기가 속하고 자기가 주와 진리의 것이 되기  위해서 자기 소유 몸 생명 뜻 전부 솔빡 다 뺏들라 해도 뺏겨도 나는 주님과  진리의 것이 되겠다. 다하는 고런 경우를 만났으면 고때는 부활되는 것이니  우리가 장기간의 고문과 고행될 때에 요것을 생각하고 어짜든지 다하기 쉬운  때를 당했습니다. 다하기 쉬운 때가 어려운 때입니다. 다하기도 쉽고 안하기도  쉬운 때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또 못알아 듣는지 모르겠는데 사람이 힘을 다한다는 것, 힘을  다해야 짊어질 수 있는 무거운 짐을 지고 힘을 다 쓰기는 쉽습니다. 다 쓰지  안하면 그 짐을 질 수 없는 거기서는 힘을 다 쓰기가 쉽지마는 등에는 아무 것도  얹혀 있지 안했는데 힘을 다 쓴다는 그거는 참 어렵습니다. 된 것 같지마는  안돼요. 자기 힘을 다 써야 짊어질 수 있는 짊어질 수 있는 그 짐을 짊어지고  힘을 다 쓰는 것과 등어리 아무 것도 없는데 힘을 다 썼다고 하는 그것은 다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 시골에서 올라온 뭐이지요? 시몬. 시몬인데 그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그에게 좀 지웠으니까 예수님을 무거운데 도와준 걸로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도와준겁니까? 지고 가는 그 힘을 들이기가 더 어렵게  만든겁니까 쉽게 만든 것입니까? 어렵게 만든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에게는 큰 시험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당할 때는 내 등에다  힘을 다하지 안하면 넘어가든지 다하든지 계명을 지키려면 다해야 되고 다하지  안하면 계명을 못 지킨게 되어지고 급한게 되니까 등어리 짐지워진거 같이 내가  다하기에 쉬운 것이고 자기가 모든 것을 아무 어려움 없는 데에 계명을 지키는  것은 지키는 것 같지마는 다해서 지킨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해서 지키는 것은  어려울 때에 다해서 지키기가 쉽지. 쉬울 때에 다해서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런고로 나 혼자 다하기가 힘이 드니까 만물이 공산주의의 독침이 들이대면서  다하라는 것은 나 혼자 다하기에 어려우니 그것이 다하는 일을 협조해서 다하게  해주시는 주님이 나를 도와서 그것으로 도와서 다하기가 쉽도록 이렇게 해주시는  이 사실인 것을 우리가 알고 전투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지 안한 것은 영생은 없다. 부활을 해야 영생한다. 부활은 주일날,  주님이 부활하신 그날은 우리에게 부활의 날로 당신이 정하시고 주신 것이다.

우리가 다하기에는 모든 일 다 마치고 하기 때문에 다하기가 쉽다. 어디서든지  다할 때에 비로소 주인이 바꾸어진다 다할 때에 소속이 바꾸어진다. 사망의 것 된  것이 사망에서 완전히 옮겨져야 생명의 것이 되어진다 하는 것이니 예수님 믿는  사람이 허툴하게 믿는 것을 믿는 것도 자기 이용물로 삼고 믿는 것도  구멍가게같이 삼고 믿는 것도 자기 직업같이 삼고 이 세상 일을 수단 방법 써서  자기 있는 힘 다해서 사업해서 성공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 힘 남기고 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 제가 한 것보다도 남이 한 것을 딱 가로취해서 뺏드는 자는 더  지혜있는 자 이것은 세상의 법칙인데 하늘나라의 이런 법칙은 용납 않습니다.

어리석습니다. 수단 가지고 안되고 꾀도 가지고 안되고 잘난 것 가지고도 안되고  실력 가지고도 안됩니다. 다하는 것뿐이요. 다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요것을  잡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는 자가 다하기 힘들고 작고 적은 자가 다하기 힘들기 쉽기  때문에 가난한 자가 더 천국에서 부요한 자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면 안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십자가의 도라. 십자가는 죽고 사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새벽으로 안 나와서 참 이 도리를 듣지 않는 것은 이거는 이런 것은 안  들으면 저거가 딴데 가서는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할 것이고 그저 여기서 들어도  또 잊어버려지고 이런데 새벽기도를 나오지 안하는 그것은 대마귀가 붙들어서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 비참하고 가련한 것입니다. 길을 모르고 제가 어떻게  구원을 이루겠습니까? 길 모르는 목사들이 사람을 인도하는 목사들이 하나님  앞으로 갈라 하면 지금 천리나 남았는데 십리 가고 난 다음에 구백 구십리가  남았는데 구백 구십리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십리만 오라 해 가지고  거기만 알아 가지고 이것이라고 자꾸 하니까 사람들이 옆으로 삐뚤어져 나가서  뭐 무슨 지시파로 간다 계시파로 간다 불파로 간다 뭐 파로 간다 흩어져 탈선해  가는 것입니다. 가는 길을 알면 그 길로만 달리면 죽자껏 달려도 그 길이 남아  있고 달릴 길이 있는데 다른 데에 삐뚤어진 갈래길을 택할 이유거 있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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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 부활/ 요한 1서 5장 18절-19절/ 811017토새 선지자 2015.11.02
83 부활/ 야고보서 1장 12절/ 811013화새 선지자 2015.11.02
82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49절/ 800611수새 선지자 2015.11.02
81 부활/ 요한복음 5장 29절/ 880529주새 선지자 2015.11.02
80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46절-49절/ 790821화새 선지자 2015.11.02
79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39절-44절/ 790820월새 선지자 2015.11.02
78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36절/ 880524화새 선지자 2015.11.02
77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16-19절/ 790819주전 선지자 2015.11.02
76 부활/ 요한계시록 20장 1절 10절/ 811125수새 선지자 2015.11.02
75 부활/ 고전 15:37-38/ 880610금새 선지자 2015.11.02
74 부활/ 빌립보서 3장 10절-14절/ 800402수새 선지자 2015.11.02
73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49절/ 800609월새 선지자 2015.11.02
72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 800608주후 선지자 2015.11.02
71 부활/ 고린도전도 15장 49절/ 800610화새 선지자 2015.11.02
70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39절-44절/ 800206수야 선지자 2015.11.02
69 부활/ 빌립보서 3장10절 -12절/ 800408화새 선지자 2015.11.02
68 부활 소망으로 주님 위하여/ 요한계시록 18장 4절-8절/ 840715주새 선지자 2015.11.02
67 부활과 믿음/ 야고보서 2장 22절/ 830109주후 선지자 2015.11.02
66 부활과 믿음/ 마태복음 28장 1절-7절/ 830403주후 선지자 2015.11.02
65 부활과 생명/ 요한복음 11장 25절-27절/ 811108주전 선지자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