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고전 15:37-38/ 880610금새

2015.11.02 13:04

선지자 조회 수:

부활


선지자선교회 1988년 6월 10일 금새

 

본문 : 고전 15:37-38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여게 씨는 우리의 생활 곧 우리의 행동 그것을 비유했고, 또 씨를 땅에 심는다  땅은 각자의 세상 현실을 비유했고, 또 심는 것은 그 행동해 끝난 것을  비유했습니다.

 씨의 형체와 씨가 심기워져 가지고 뒤에 나는 장래 형체가 같지 않고 다르다.

사람이 반드시 이 세상에서 현실 생활을 했으면 그 현실, 생활해서 그 현실이  지나갔으면 자기 행동은 심어진 게 됐고 행동한 그대로의 다시 부활 형체가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부활 형체가 있고 또 믿는 사람도 부활 형체가 있습니다.

사람은 죽었다가서 끝나는 게 아니고 신불신자간에 반드시 났으면 원죄 값으로  죽고 또 죽은 다음에는 부활합니다.

 예수님은 자연인이 아니기 때문에 원죄와 본죄와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그 죽는  일을 당하지 안할 수 있는데 우리 대신 죽었지마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제  죄값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슨 행동을 하고 살았든지 현실을 산 고 다음에는 반드시  신불신자간에 부활이 있습니다.

 그러면, 생활할 때의, 현실 생활할 때의 형체와 부활할 때의 형체는 다르다  그렇게 여게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이 생활할 때의 형체와 부활할 때의 형체를 사람들이 연관시키지를  못하기 때문에 생활할 때의 그 형체와 부활의 형체를 연관시키지 못하는  거기에서 생활 형체만 보고 부활 형체는 생각지를 않습니다.

 부활 형체를 이 생각지 않는 것이 얼마나 범위가 큰고 하니 불신자의 그 모든  지식에는 머리에는 부활이라는 것과 부활 형체라 하는 것을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불신자 이종교나 뭐 철학이나 이런 모든 유사 잡종교들 그 모든 무책임한  사기성 있는 미신들 이런 것들은 뭐 부활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거는 다  기독교에 그 교리를 저희들이 따다가 그렇게 구설하는 것이지 저희 본질에서는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그게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계시해 주는 것으로서만  이렇게 나타났지 하나님의 계시 외에는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또  알아야 됩니다.

 그저, 이러니까 뭐 너무 기가 차. 금방 그 아주 거짓말이, 거짓말 한사람이, 그  다음 시간에 이렇다 이렇게 거짓말을 또 돌려서 말하면 그말 듣고 또 거짓말하면  또 듣고 그까짓 게 무슨 일을 영원 불변의 도를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소,  있기를?  우리는 자기 말한 것도 책임져야 되고 행동하는 것도 책임져야, 되고 듣는 것도  책임져야 되고 모두가 다 책임을 져서 이거 그래야 될 터인데 그만 뭐 시간을  두고 바꿔 버려. 아무리 사람 마음이 조석변이라 하지마는 변치 않는 것도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래서, 행동할 때의 형체와 부활 형체가 다르다. ‘그 행동이 무슨 형체가  있어?’ 이것도 여러분들이 들어서 이해가 돼야 돼. 행동도 형체라면 행동  형체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행동이 이런 형체다. 저 사람은 행동이 저런 형체다. 사람의 뭐, 백  명이 행동하면 백 명 행동의 그 형체가 다 다릅니다. 우리가 눈이 어두워 잘  몰라서 그러나 아는 사람은 잘 압니다.

 이러기에, 사람이 여게 오늘 아침에는 몇 백 명 여기서 앉았지마는 얼굴 형체가  각각 달라서 다 우리가 보면 압니다. 이 사람과 저 사람과 혼돈하지를 않습니다.

여게서 수천 명이 주르르 나와도 자기 마중 나온 사람을 착각해 가지고 다른  사람을 거머쥐고 이제 오느냐고 그렇게 반갑게 인사할 사람 없습니다.

 다 그 착각하지 않고 그렇게 얼굴과 얼굴을 구별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렇게  조그만한 한 자 미만의 면적에서, 만 명 얼굴을 만들어도, 한자 미만의 면적을  가지고 전부 만들기는 또 이목 구비 수족 다 있습니다. 이런데 그걸 아무리  예술가가 제까짓 게 다르게 그릴라 해도 예술가 그린 거는 백 개도 다르게 못  그립니다.

 하나님은 만 개도 우리가 만 명 온대도 자기가 찾는 사람 저거 아버지 찾아와  가지고서 다른 사람보고 아이구 아버지 오십니까 이렇게 할 사람 없습니다. 다  안다 말이오. 이렇게 하나님은 예술적도 무한하다 말이오.

 그분이 인간에게 대한 영원한 보응을 시키실라고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전부 행동록에 다 기록된다고 요한계시 20장 11절  이하에 말씀해 놨습니다. 행동록에 다 기록케 돼. 또, 그 모든 태도들도 다,  사람들도 뭐 필름에다 촬영해 놓으면 촬영이 되고 또 녹음기에 그라면 그 음성이  다 녹음되는데 하나님이 그걸 못하겠소? 이 우주는 하나님의 녹음기와 하나님의  필름이 있어 가지고서, 그런 사람들도 지금 발견을 했어. 음파 가운데서는 몇 백  년 지난 사람도 그 사람의 돈만 많이 들이고 공만 많이 들이면 그 사람의 음파를  음성을 빼낼 수가 있다, 구별할 수가 잇다 그렇게 까지는 지금 과학들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러니까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각각 그 형체가 있고, 행동의  형체라면 형체일 것이고 형태라고 말할라면 또 형태라고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고 또 색깔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저 사람의 행동은 색깔이 어떻다, 뭐  공산주의 색깔이라 또 적색이라 뭣을 백색이라 또 이거는 회색이라 뭐 하는  그것도 그 행동의, 행동을 색깔로 비유해 가지고 그와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동에 대해서도 색깔도 있고 형태도 있고 형체도 있고 다 모양들이  있는 것이라. 또 부활한 그 부활의 형체도 있고.

 이런데, 사람들은 그 행동과 부활을 연관시켜서 저 행동과 저 부활은 이런  연관이 있다. 이런 행동에는 이런 부활이 있다. 저런 행동은 저런 부활이 있다  하는 그것을 연관시켜서 아는 지식을 가진 것이, 아는 지식을 가지면 자기가  행동을 선택할 때에 그때에 부활을 선택할 수가 있을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나, 행동의 형체와 부활의 형체를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 모르는  사람은 행동의 형체와 부활의 형체가 딴게 아니고 연관되어 있고 하나되어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 행동을 선택할 때에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행동을  선택할 때에 어떤 것을 선택하겠어? 부활에 좋은 것을 선택하겠소 부활에 나쁜  것을 선택하겠소? 어떤걸 선택하겠습니까?, 여기 양성원 학생들? 어떤 걸  선택하겠지, 양성원 학생들? 행동을 선택할 때에 부활에 좋은 형체를 선택하겠소  어떤 것을 선택하겠소? 행동 좋은 것을 선택하겠소 부활 형체의 좋은 것을  선택하겠소? 부활 형체의 좋은 것을? 현재의 행동 형체 좋은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행동 형체의 좋은 것이 부활 형체에 아주 나쁜 줄 알면 그걸 안 택하지마는  그저 그걸 모르고 행동 형체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은 행동 형체만을 보고서  거기서 평가해 가지고서 좋은 거 제 비위에 맞은 거 그것을 선택할 것이라  그거요. 인생들이 다 이렇습니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행동만 보기 때문에 모두  행동 형체 좋은 거, 행동 형체가 좋은 거, 행동 형태가 좋은 거, 행동 빛깔이  좋은 거, 행동의 그 가치를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거,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고 환영하는 거, 그 행동이 제가 좋고 남이 좋다는 거 그런 거 사람들이  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막바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다 이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돼요?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서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이 멸시할  그런 행동 안 합니라.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행동, 다른 사람이 존대하는  행동, 다른 사람이 욕심을 내고 시기 낼 만치 그렇게 모두 다 돈 많고, 권세  많고, 지위 많고, 영광 많고, 행락 많고, 자유 많고, 권세 많고, 취미 많고,  재미 많고 하는 그런 행동을 다 취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그 행동에 재미 있는 행동은 이 행동이 부활할 때의 형체로  말하면 참 비참하고 가결하다 하는 거 알면은 그걸 안 택하지마는 그걸 모르기  때문에. 행동의 형체만 알고 고 행동이 부활할 때는 무슨 형체로 부활되느냐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행동에다만 전부 소망을 가치를 두고서  행동하니까 부활에 대해서는 엉망이 된다 그말이오. 부활에 대해서는 엉망이 돼.

 그러면, 이 세상에서 행동과 부활의 그 형체가, 행동 형체와 부활 형체가  다르다 옳다, 이 행동에는 저런 부활 형체가 따른다, 또 그 행동에는 저 부활  형체다. 행동 형체에서 부활 형체를 사람들이 압니까 모릅니까? 사람들이 압니까  모릅니까? 불신자들의 세계에 제일 높은 학자 박사들이 그걸 압니까 모릅니까?  모릅니다. 석가모니가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몰랐습니다. 공자는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몰랐습니다. 소크라테스도 몰랐습니다. 톨스토이도  몰랐습니다. 노자도 몰랐고 다 몰라. 다 몰랐어. 이걸 누가 알아야지? 알 사람이  있어야지?  이런데, 누구만 고것을 요런 행동에는 요런 부활이 된다 조런 행동에는 조런  부활이 된다 하는 것을 알자는 누굽니까? 알자는 누구십니까?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고대로 영원 부활에 보웅을, 시키실 그 분만, 주권자 그분만 알지 딴  분은 모른다 그말이오. 맞습니까? 그분만 알고 딴 분은 모른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딴 분은 모릅니다.

 모르는데, 그분이 그 비밀을 요런 행동에는 요런 부활이 따른다 조런 행동에는  조런 부활이 따른다, 그 행동과 부활에 대해서 어떤 행동에는 어떤 부활이  따른다는 것을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해 주신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어. 신구약에 있어.

 그러니까, 신구약. 성경을 보는 사람은 지금 부활에 좋고 나쁜 것을,  부활이라면은 그거는 천년 만년이 아니고 영원인데. 영원 좋고 나쁜 거, 영원  좋고 나쁜 것을 그것을 아는 사람은 영원 좋고 나쁜 것을 언제 그것을  선택하겠습니까? 현재 행동에서 선택한다. 현재 행동에 선택해.

 그걸 모르는 사람은 뚝 떼놓고 보면 행동은 행동대로만 보고서, 그걸 가리켜서  일방적 지식이라 해. 일방적 지식이라. 이 세상에는 요것만 가지고 지식하고  있지 이 세상과 무궁세계와 연결시켜서 그걸 관철해가지고 뚝 뚫어 가져 가지고  관철시켜서 지식하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기독자들 가운데에서도 이것을 말로도 뭐 신구약 성경에 있는 것을 살펴보지  안했기 때문에 성경에서 이런 행동에는 무슨 부활이 있다 하는 것을 그것을  살펴보지 안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배우지 안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배워서 알지마는 다 잊어버리고 현재에 행동할 때에는 그만 현재로만  치우쳐 가지고 거게만 주력하지 부활할 때에 어떻다 하는 거게 대해서는  연관시켜 가지고서 자기의 영원, ‘오늘은 영원이다. 지금 이 현재라 하는 현재  이것은 영원을 결정 지우는 것이다. 바로 이 오늘 현재 이것이 영원이다.’ 하는  그것을 자기가 계산 대 가지고 행동에 조심하는 그런 사람들은 많지를 못하다  그거요.

 그러면,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요게서 ‘이 세상 행동형체와  부활 형체가 다르구나’ 하는 요것을 요게서 발견해야 돼. 이 껍데기로 줄줄  읽어 가지고 이게 발견돼지는 게 아닌 거라.

 이걸 알아서 겨우 이걸 모르는 놈을 뭐 알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수십 번 말해  가지고 껍데기를 일켜서 겨우 알도록 눈을 띄워 놓으면은 말하기를 ‘그렇게 뭐  그럴 게 뭐 있느냐? 보편으로 하지 자꾸 성경을 쪼개고 그래 까달스러울 게. 뭐  있느냐? 그저 믿으면 성신이 와 가지고 역사하지.’ 어데 성신이, 믿으면 성신이  역사한다고서 그런 게 어데 있어? 깨닫고 그대로 실행을 해야 되는 것이지.

 믿음이 뭐인데? 믿음은 하나님의 도리를 아는 것과 그라고 난 다음에 자기가  행할 것이 뭐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과 고 다음에 자기가 뭐입니까? 실행하는  거. 고게 믿음이오,  실행하는 고거까지면 다 믿음입니까? 실행함으로써 그 사람이 되는 고것도  믿음이라. 고 믿음이 뭐이냐? 하나님 따라가는 형체 하나님의 모양을 닮은  데까지가 믿음이라. 뭐이 믿음이라고?  이러니까, 믿음도 오늘까지 나와도 믿음의 정의를 믿음이 뭐이냐? 믿는 걸  ‘믿사옵나이다’ 이것만 믿음인 줄 알고 있어.

 ‘믿음으로 사는 자는’고 찬송도 가만히 불러 보면 ‘믿사옵나이다’하는  고것을 주장을 했지 고 믿음을 먼저 알고 인정하고 고라고 난 다음에는 고대로  행동하고 맨 마지막으로는 고대로의 사람이 된 것, 사람된 거, 그거는 하나님  따라간 거라. 하나님 닮아간 거라.

 믿음이라 하는 건 하나님께 순종이요 순종은 자기가 마음으로 순종하는 거 있고  행동으로 순종하는 거 있고 자체로 순종하는 거 있고, 자체로 순종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자체로 순종하는 것입니까? 양성원 학생들. 자체로 순종하는  것은 어떤 게 순종하는 것이야? 자체로 순종하는 것은? 자체가 순종이 됐다  말이오. 어떤 거요? 자체가 하나님에게 순종된 거는 뭐이냐? 하나님 따라간 거.

순종이라 말은 따라갔다 말이오. 하나님 따라간 거는 뭐이요? 닮은 거. 닮은 거.

거게까지가 믿음이라.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그러면 종자마다 하나님이 형체를 주시는 거 그거 하나님께서 형체를 주시니까  종자마다 뿌릴 때에 장래 형체를 모르는 것은 사람이 모릅니까 하나님도  모릅니까? 사람이 모르지 하나님은 압니다.

 그러면, 장래 형체 부활. 형체가 그 종자에게 벌써 변치 못하도록‘ 그  종자마다 절대적인 확정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뿌려서 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 종자는 이런 형체로 나서 자라게 할까 저런 형체로 나자라게 할까  심고 난 다음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벌써 씨 만들 때 하나님께서 벌써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까? 씨 만들 때 벌써. 만들어 놨어.

 그러기 때문에, 왜 요것을 우리에게 말씀하는고 하니 네가 오늘 행동하는 그  행동은 영원 장래가 벌써 결정된다. 네 행동 고 행동에 대해서는 어떤 부활 그  행동에서는 어떤 부활 네 행동은 영원 장래의 부활을 벌써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다. 네 행동은 영원 장래의 부활을 가지고 있다. -이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  자꾸 이렇게 말하는데. 네 행동은 행동대로 떨어지고 이다음에 부활해서  하늘나라든지 영원 부활할 때에는 어떤 기이한 거 좋은 걸 네가 바라고 있지마는  그래 하지 마라. 네 요 행동 그 행동은, 밀알은 벌써 네가 무식한 사람은 밀알  이거는 심으면, 밀알씨가 크요 솔씨가 크요, 뭐이 커? 밀알씨가 크요 솔씨가  크요? 밀알씨가 크지. 밀알씨가 크지.

 밀알씨가 크니까 ‘이거는’ 그러면 이 둘을 심어 놓으면 어느 것이 크게  자라겠느냐? 밀이 솔씨의 한 아마 이배나 이배 반이나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거  밀알 이게 많이 자랄 것이다 이라지마는 아는 사람은 ‘밀알 이거는 암만  자라봤자 썩해야 사람의, 암만 자라도 사람의 두길을 못 자란다. 또 이거는 암만  잘 가꿔도 한 칠팔 개월이면 그만 생명이 끝나 버린다.’ 소나무 이거는 솔도 한  칠팔백 년 팔구백 년 삽니다. ‘이건 팔구백 년 살고 이거는 큰 거는 사람들이  아람으로 하면 여러 아람 된다.’ 그걸 그라면 모르는 사람은 그걸 씨 보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그말이오.

 그런데, 우리에게는 벌써 씨를 보고 장래 형체를 알도록 신구약 성경에서  가르쳐 놨다 그말이오. 씨를 보고 영원한 형체를 가르쳐 놨어. 씨를 보고 영원한  형체를 가르쳐 놨어.

 가르쳐 놨는데 이 마귀들이 거석해 가지고서 ‘씨와 장래의 형체는 상관없다.

믿으면 좋은 거 준다. 좋은 거 주시도록 믿기만 믿으면 좋은 거 제 모가치 되면  ‘믿으면 다 되거든’ 안 돼.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행동과 부활체에 대해서 연결성을 모르고 이 행동에서  부활체를 몰라. 부활체가 어데서, 이런 부활 저런 부활은 어데서 결정됩니까  행동에서 결정돼. 자기의 행동 선택에서 영원 부활체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인간들이 무시하기 때문에 요걸 꼭 요걸 요렇게 해 가지고서 말씀해 놨다  말이오.

 자기가 영원무궁에 어떤 부활할 건가! 어떤 부활을 할 그거는 지금이 세상에서  행동한 데서 다 결정돼. 네 행동이 이렇게 이렇게 했으니까 네 행동에 부활은  어떤 비참한 부활해. 비참한 부활을 지금 제가 알면 그것을 안 할 수가 있는  거지. 이걸 믿지 않기 때문에.

 자, 영원무궁토록 영광스러운 그 부활은 언제 그걸 자기가 차지할 수 있습니까?  현재 행동에서 차지할 수 있어. 영원히 가슴치고 비참하고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타면서 가슴치면서 세세토록 영원토록 고통 당하는 그 고통이 세세토록 있다  했어. 영원 고통할 그 고통은 어데서 지금 그것을 제가 선택한 것입니까? 세상  행동에서 선택한 것이라. 요것을 알아야 돼요.

 이래서,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르다  그말이오. 장래 형체와 제 씨 형체가 다르다 그말이오.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그 심고 난 다음에 형체가 변동됩니까 심기  전에 벌써 씨에서 벌써 그 형체가 다 정해져 가지고 있습니까? 씨에서 정해져  가지고 있어.

 그러면, 장래 형체의 좋은 거 나쁜 것을 선택할라면은 자기가 어데서 선택해야  됩니까? 이 세상 행동에서 선택해야 됩니다. 그러면 행동에 나쁜 그 부활의 그  형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 행동 해 놓고 좋은 부활의 형체가 올 것이라고  바라면 그게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변할 수가 없어.

 갈라디아 6장 6절 이하에 보면은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러니까 성령으로 심은 자 자기 육체를 위해 심은 자가 각각 그대로  받는다 이렇게 말씀했어.

 이러니까, 여게서 부활에 대해서 또 하나 배웠다 그말이오, 우리의 영원무궁의  흥망 성쇠 영원무궁에 비참하고 가련한 거 존비귀천이 이 세상 행동에서  결정되는데 마치 종자와 종자가 뒤에 나는 고거와 꼭 같이 그렇게 고정돼 있다.

변동 못 한다. 네가 이 행동했는데 뒤에 장래는 이런 거 받을라고 생각지 마라.

이 행동에는 이 무궁 저 행동에는 저 무궁이 그대로에 벌써 종자가 그 뒤에  어떻게 나서 자란다는 장래 형체가 결정된 거와 꼭 같이 그렇게 되어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84 부활/ 요한 1서 5장 18절-19절/ 811017토새 선지자 2015.11.02
83 부활/ 야고보서 1장 12절/ 811013화새 선지자 2015.11.02
82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49절/ 800611수새 선지자 2015.11.02
81 부활/ 요한복음 5장 29절/ 880529주새 선지자 2015.11.02
80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46절-49절/ 790821화새 선지자 2015.11.02
79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39절-44절/ 790820월새 선지자 2015.11.02
78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36절/ 880524화새 선지자 2015.11.02
77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16-19절/ 790819주전 선지자 2015.11.02
76 부활/ 요한계시록 20장 1절 10절/ 811125수새 선지자 2015.11.02
» 부활/ 고전 15:37-38/ 880610금새 선지자 2015.11.02
74 부활/ 빌립보서 3장 10절-14절/ 800402수새 선지자 2015.11.02
73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49절/ 800609월새 선지자 2015.11.02
72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 800608주후 선지자 2015.11.02
71 부활/ 고린도전도 15장 49절/ 800610화새 선지자 2015.11.02
70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39절-44절/ 800206수야 선지자 2015.11.02
69 부활/ 빌립보서 3장10절 -12절/ 800408화새 선지자 2015.11.02
68 부활 소망으로 주님 위하여/ 요한계시록 18장 4절-8절/ 840715주새 선지자 2015.11.02
67 부활과 믿음/ 야고보서 2장 22절/ 830109주후 선지자 2015.11.02
66 부활과 믿음/ 마태복음 28장 1절-7절/ 830403주후 선지자 2015.11.02
65 부활과 생명/ 요한복음 11장 25절-27절/ 811108주전 선지자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