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1980. 4. 2. 수새

 

본문: 빌립보서 3장 10-14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다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폿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해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러면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부활이라는 것은 죽어야 부활이 있지 죽기 전에는  부활이 없는 것인데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러면 그리스도를  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무엇이며 그리스도를 무엇인지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그리스도를 알려고 위에도 많이 말했는데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이라  그리스도가 또 죽으심 그리스도가 죽으신 권능과 또 그리스도가 살아나신  권능과 또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러면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러면 그 고난에 그리스도의 이 죽으신 이 고난, 부활에 또 그리스도가  참예해서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의 이름인데 하나님과 사람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  죽으신 그 일과 또 죽어 가지고 또 부활하신 그 부활의 일과 그 죽으신 일과  부활하신 일이 그것이 지극히 큰 능력으로 된 그 능력 죽으신 그 능력 또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 능력 그 능력과 거기 또 참여하여 하신  그러면 참예 했으면 자기가 당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당하는데 참여하는 것이  참예하는 것인데 그리스도가 고난과 부활을 당하는데 거게 인성이 참예했고  인성이 당하는데 신성이 참예했고  이래서 신인양성일위가 같이 죽고 사는 이 고난을 받으셨는데 그것을 알려하여  그것을 알려하여, 알려하여 그것을 알려하여 그러면 그것을 연구하기 위하여  고렇게 생각하기 쉽겠습니다.

 "그것을 알려하여" 하는 것은 그것을 물론 자기가 깨달아 인식도 하지마는  깨달아 인식도 하지마는 깨달아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깨달아 거기에 자기도  참예하고 또 그 역사로 그 역사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오는 그 구원을 다  받으려고  또 그 역사로 말미암아 오는 구원을 받아 가지고 그 구원만 받을 것이 아니라  그 구원을 받아 그 구원 역사에 자기도 책임지고 하기 위해서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 구원 역사에 자기도 책임지고 하기 위해서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이제 그래 가지고 그것 때문에 자기도 죽으심을 본받아 계대해서 그리스도가  죽고 산 그 능력으로 그 공로로 인해서 자기에게 온 구원받기 위하여 "알려하여"  받기 위하여  또 거게 참예해서 그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구원 역사를 자기도 거기  참예해 가지고서 계승해서 그 구원 역사를 자기도 거기 참예해 가지고서  계승해서 그 구원 역사를 그가 죽으심 같이 자기도 죽고 그가 부활하심 같이  부활하여 그 구원을 전파하는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알려하여" 감당하기 위하여 자기도 계대하기 위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 하든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 계대해서 그와 같은  동질 동성으로, 그 역사로 역사 하여   "어찌 하든지" 어찌 하든지 자기는 어찌 하든지 그 말은 자기에게 주께서 어떤  환경 형편을 어떤 현실을 주셔 가지고 이 일을 감당하게 하시든지 어찌하든지 그  말은 어떤 현실을 주셔 가지고서 하게 하든지 상관없이 그 현실 그것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현실이 좋다 나쁘다 그런  것은 가리지 안하고 어찌 하든지 어떤 현실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시든지 그  현실에서 그걸 감당하기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자기도 먼저 죽고 또 부활하는 죽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는 죽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는 죽고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러면 "죽고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러면 죽어 가지고 부활하는 것은  좋으니까 죽을 때에 부활하는 그 부활을 소망하면서 한다 그 죽는 것은 죽어  가지고 부활하는 것은 좋으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고 그 소망  가지고 한다 이렇게만 보기 쉽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우리는 죽는 게 제일 싫습니다. 죽는 게 제일 싫고 사는 게  제일 좋소. 이러니까 죽을 때에 살아나는 그 소망을 인해서 담대히 죽는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이제 죽는다. 그렇게만 보기 쉽습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부활의 권능 그러면 에베소 1장에는  보면은 그 능력이 우리에게 온 지극히 큰 능력이 예수님 안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고 그렇게 하니 그 능력이 예수님 안에서 죽는 일 했고 부활하는 일 했다 그  능력이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 죽는 일을 단 마음으로 죽도록 하셨고 그  능력이 예수님을 또 부활할 때에 단 마음으로 부활하게 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죽으신 그 죽으심은 우리가 볼 때에 참 우리를 위해서 고난  당하신 그 큰 어려운 고난을 당하셔서 큰 희생을 해줬다 감사하다 또 주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부활은 죽었지마는 부활을 하셨기 때문에 손해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주님이 죽으신 그 고난에 우리 위한 사랑의 그 양과 희생의 양 우리 위해서  희생한 양 죽음의 희생의 양과 부활의 희생의 양이 꼭 같은데 우리는 죽으심의  희생의 양만 우리가 알지 부활하심의 희생의 양은 모르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희생의 양이 도리어 그것이 이제 보상돼서, 보상돼서 죽음의 희생의 양이 오히려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래도 그 희생이 그렇츰 허무하게 많은 희생은 안됐다  부활하심은 오히려 죽으심으로 희생당한 그 희생의 보상이 돼서 죽음의 희생의  그 양을 다소라도 보상해 줘서 죽음의 희생의 양이 적어지게 된 것 같이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희생의 양이나 부활하심의 희생의 양이나 그 양이 꼭 같습니다. 그 양이  꼭 같은데 얼마나 되는가 죽음의 희생의 양이 한 냥쭝이라면 부활의 희생의 양도  한 냥쭝이고 죽음의 희생의 양만 알지 부활의 희생의 양은 우리는 모릅니다.

 오히려 부활은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부활은 죽음의 희생의 양을  보상해서 죽음뿐이라면 참 큰 희생했는데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래도 죽음의  희생의 양이 다소라도 값을 받아서 보상이 됐다 이렇게 해서 부활하심의  부활하심에는 부활하심은 희생이라고 생각지를 아니하고 부활하심은 도리어  보상받고 손해 봤는데 그것을 갚음을 받는 것 같이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그 나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이 죽으심에 대해서는 감사를 하지마는 부활에 대해서는 감사함을  가지기를 덜 가지고 또 그 가져도 잘못 생각하고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여게 열 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러면 고난에  참예함은 신성 고난에 인성 참예 인성 고난에 신성 참예 또 죽으심의 고난  부활의 고난 그러면 그리스도의 그 고난과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이라면 그리스도와 인성 둘 합해서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그리스도라고  말함은 신성만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말하는데 예수님의 인성만 죽은 것으로  이렇게 여길 것이기 때문에 여게는 그리스도의 그 고난이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라 그의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 부활은 벌써 죽은 것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입니다.

 이래서 그 고난에 그러면 그 고난은 어떤 고난인가?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 고난은 어떤 고난인가? 그 고난은 신성과 인성이 죽음의 고난  부활의 고난 죽음의 고난 부활의 고난 그 두 고난 신성 고난에 인성 참예 했고  인성 고난에 신성 참예 해서 신성과 인성이 둘이 한꺼번에 고난을 받으신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고난을 받으신 그 고난을 내가 연구해서 지식하기 위하여  하는 고것도 요게 들었습니다.

그러면 알기만 하려고 그런 기 아니라 지식하고 또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온 그 구원을 내가 차지하려고 구원을 내가 가지려고 고것이 아는 것입니다. 또  구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이 구원을 가지고 계대해서 이 구원을 다른 이에게  예수님이 내게 전해줌같이 나도 다른 이에게 전해주기 위하여 고 책임성 가지는  것을 말하고 고 베푸는 은혜를 자기가 받아 감당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이  사실에 이 진리를 또 아는 것을 가리켜서 요 세 가지를 합해서 알려하여 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좁아지려고 애를 씁니다. 좁아져서 좁아지려고 애를 써요. 그  전체 면을 전체 면을 상대해서 우리가 지금 커 나가기는 어떻게 커 나가느냐?  우리가 커 나가는 것은 모든 존재 창조주와 모든 피조물 전체와 상대해서 살  우리들입니다.

 전체와 관계를 가지고 살 우리들인데 그 악령은 우리로 하여금 좁혀서 열을  상대하던 것을 아홉을 상대하고 아홉을 상대하던 것을 하나 상대하고 하나를  상대하던 그것을 나중에는 저만 상대하고 이렇게 자꾸 좁혀 들어 가지고서  죽도록 만드는 것이 악령의 역사고  성령의 역사는 이제 나만 알던 것을 다른 사람을 알도록 다른 사람이 나 알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알게 하고 모든 사람만 알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을  알게 하고 만물 물질을 알게만 할게 아니라 영계까지의 것을 다 알게 하고  피조물만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도 알게 해서 이렇게 우리가 생기기를  그래 생겼고 또 그것이 영생이고 그렇게 돼 있는데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는  전부 다르다 그거요.

이래서 사람들은 말씀을 들어도 제게 있는 거 고거 들어야 좋아하고 자꾸  좁아져야 좋아하지 넓어지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만 기가 찹니다. 자기는 자기  아는 것이 하나면 하나 고게 다인 줄 알았으면 통달하고 이제 됐는데 그 위에 알  것이 또 하나 나오니 기가 찬단 말이요. 기가 차.

 이러니까 고만 또 하나가 나오면 죽을 지경입니다. 여러분들 속에 그럴 거라.

그만 '아이구,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고만 나왔으면 좋게 나온 것도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그것이 자꾸 우리에게 있는 악령의 말미암은  이 원죄 본죄성이 들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집회 때에 다 그런 그  과정을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밀양에 가 가지고서 집회를 하는데 여 그거는 다 아는 것이니까 어제 그  말한 그런 것은 내가 여러분들이 자꾸 안 듣고 강퍅하기 때문에 강퍅해서 귀만  가지고서 평하지 안하고 벌써 10년이면 알고 20년이면 아는데 10년 20년이면  사람을 알 수가 있고  또 하나님의 그 하시는 일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는데 자꾸 구원받는 일을  모르고 헛되이 교만하고 망령되어 하기 때문에 부득이 해서 여러분들 때문에  내가 어제 아침에는 참 큰 대 미치광이라도 큰 미치광이 같은 소리를 했다  그거요. 그래서 내가 종일 그 문제를 들고서 내가 그 마귀가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기도를 했습니다.

이런데 고 어제 말한 고 이름은 고것은 노트에든지 또 녹음에든지 고것을 삭제해  주십시오. 고거 취소합니다. 고 사실은 사실이나 취소합니다. 있어 봤자 유익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 하도 그 본인들 있는데 말해서 알기는 아는데 아는 사람은  알지마는 그것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이것은 다 아는 것이고 또 괜찮을  것이기 때문에 말합니다.

밀양 여 박 손혁 목사님 아버지가 장로인데 그 모교에 가지고서 집회를 하는데  여 박인순 선생님이라 하면 여러분들이 다 알 것입니다. 그분의 모교입니다.

거게 가서 집회를 하는데 그 때 박 인순 선생님 박인순 선생님도 거기 와서  참예하기는 했는데 보니까 그이 모친이 참 은혜 생활하는 아주 믿음 좋은 분인데  집회를 하니까 처음에 한 두시간 들을 때에 어떤 은혜를 받고 좋아하고 한 이틀  지내가니까 그만 그분에게 자기가 이제까지 알던 도리 외에 이제 딴 도리가 넓은  도리가 나오니까 금방 조금 거게서 자기의 감각적으로 부담을 느껴요.

 자기가 느끼고 깨닫는 그 면으로 부담을 느껴서 그 바당 바당하게 따라  오더니만 그 다음부터는 그만 보니까 그만 그 다음에 듣는데 발동을 쳐. 못  들어서 겁나 듣기 싫어 발동을 치고 이러더니 마는 고 시간이 딱 마치고 나니까  저 무슨 고장이 났다 싶어서 내가 마치고 나니까 좀 있다가 박 인순 선생님이  왔어요.

 와 가지고서 '아, 어머니가 저 이상합니다. 갑자기 뭐 강사가 어떻게 말 한  마디도 듣기가 싫고 막 밉고 이래서 영 막 자기가 뭐 속이 당장이라도 강사를  죽이라면 죽일 만치 죽여 버리면 싶을 만치 그렇츰 밉고 밉상이고 보기 싫고  듣기 싫고 막 이래서 지금 그 뭐 갈라하는데 아무리 붙잡아야 갈라하는데 안하고  꼭 갈라 합니다.' 이제 걱정을 하러 왔어.

 저는 많은 그런 것을 겪어 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인제 된다 자기 속에 이미  성령님이 점령해 가지고 있는 점령을 해 가지고서 있고 마귀가 쫓겨나는 그  단계가 있는데 이미 점령되어 있는 그것을 청소하고 그것을 더 강하게 하고  거게다가 채우니까 저와 동감이요 또 동지요 또 동상이라 사상이 같애  이러니까 좋고 이렇지마는 이제는 거게 채워 가지고 이것이 그 다음에 아직까지  성령이 점령하지 못한 지식적으로 점령하지 못했고 감각적으로 점령하지 못했고  각오적으로 점령하지 못했고 또 능력으로 점령하지를 못했어  거게는 순전히 참 남한의 그때 남한의 정부는 다 민주주의였는데 저 위천 북상  마리 삼면만 사흘동안 공산주의였습니다. 또 다 인민군들이 패전해서 후퇴해서  올라갔는데 저 지리산 그 깊은 속에만이 올라가도 못하고 내려가도 못하고  그렇게 갇혀있는 공산 그 세계가 되어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이름을 공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모양으로 이렇게 아직까지 그 심령 속에 그 사람의 지식 고 속에 그 사람의  감각 속에 그 사람의 인격 속에 그 사람의 그 인질 속에 그 사람의 그 속성 속에  아직까지도 성령님이 점령하지 못하고 있는 그 부분이 있는데 이미 점령되어  있는 이 부분에 차 가지고서 점령하지 못한 거게 지금 넘어 갈라 하니까 이것이  넘어 서 거게 넘어 들어갈라고 하니까 그 안에 있는, 지금 마귀가 제가 점령지를  뺏길 터이니까 있는 발악을 다한다 그 말이요. 발악을 다하고 발동을 다합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그때에 어쩌든지 다 몰려 가지고서 고것을 본인이 알고 본인이  알고 요것을 지금 나를 지금 더 성화 되고 성령님이 나를 더 점령할라 하니까  성령이 나를 더 점령하려고 하니까 요거 마귀라는 놈이 지금 자기 점령 지역을  뺏기고 쫓겨나가야 될 판이니까 마귀 이놈이, 이놈이 있는 힘을 다 해 가지고서  투쟁하고 제가 점령해 가지고 있는 내 요소를 제 군대를 삼아 가지고서 지금  들어오지 못 하구로 대항하고 있는 요 전쟁이기 때문에 요 전쟁이기 때문에  고게서 고 전쟁으로 다시 자기가 새로운 성화를 받는 거 새로운 부분이 주님의  것이 되어지는 것 요것은 되는 때에는 어떤 사람은 요걸 알기 때문에 자기하고  싸웁니다. 스스로 싸우는 사람이요 요걸 알기 때문에 알기 때문에 자기하고  싸워서 그놈을 요놈이 지금 성화 되지 못하고 주의 것 되지 못한 요놈이 서둘러  하기 때문에 요것이 내 심신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 지금 붙들려 가지고  날뛰기 때문에 요것을 심령 그에게 점령해야겠다 하고서 제 마음을 제가 꺾고  지치고 그 이기고 제 육체를 쳐서 복종하는 요기 자기 복종인데 심신 복종인데  요래 가지고서 요걸 제가 스스로 싸워 가지고 참고 견뎌 나가면은 한 토막이  지내 가면 달라집니다. 고것을 자기가 해 본 사람은 수십 번 경험하는 가운데서  깨달아져서 비로소 고것을 발견을 해 가지고 말하는데 고걸 남의 말만 듣고 이래  말한 고것은 앵무새 같이 암만 옮겨 봤자 안 된다 그거요.

 왜 모두 다 듣기 싫어합니까 산에 가서 기도하러 가도 그렇습니다. 기도하러  가도 단식 기도하러 가도 그렇습니다. 기도하러 가면 벌써 어느 정도 이미  점령지에 충만해질 때까지는 괜찮은데 점령지에 충만해져 가지고서 새로 지금 미  점령 지역에 점령하려고 하면은 그만 그 때는 기도하기가 싫습니다. 그만 가고  싶소 집에. 이만 하면 됐다 하고 자꾸 갈라 합니다.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됐으니까 내가 가 가지고 지금 결심한 거 요것만  결심하고 요대로만 하면 되니까 내려가자, 내려가자' 자꾸 내려가자 합니다.

그때 가고 싶소. 고것이 인제 고비입니다. 고것이 고비요.

 그럴 때에 내려오지 안하고 거게서 '요게 내가 미혹하니까 내가 처음에 올라올  때 생각하던 고대로의 끝을 마치고 가야 되지 요것이 벌써 됐다고 하는 기  미혹이니까 견디자' 그래 가지고서 내려오고 싶은 고것이 어떨 때는 하루가  계속하고 어떨 때는 이틀이 계속해도 계속하는 고것을 척 이기면 그 다음에 새  세계가 나온다 말이요.

 새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이제 내려갈  마음이 없어. 내려갈 마음이 없고 이제 그럴 때에 아, 새로운 세계도 발견했고  새롭게 자기가 이전보다 주님의 것이 더 됐고 또 마귀란 놈이 벌써 점령지를  하나 양보하고 뺏기고 쫓겨 나가게 됐고 재미가 있다 그거요.

 거기에서 또 넘치는데 그 넘치고 그 다음에 또 들어가는데 그렇게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못 들어가고 그렇게 자꾸 점령돼 들어가는 것이라 그거요. 그분이  그만 달아날라고 하는데 '그건 인제 된다 어쩌든지 그럴 때는 마구 싸울  터이니까 옆에 사람 보면 우사를 할거다 딸들이 옆에 사람 붙잡으면 욕질을 하고  막 이래 가지고서 고함을 질러서 욕을 해도 뭐인지 그렇게 날뛸 터이니까 그래도  놓지 말고 붙들어라' 이래 놨다 말이요.

 그분이 참 점잖은 분이고 수양된 분이니까 막 욕질하고 이래 날뛰지는 안  하지마는 그렇게까지 날뛰지는 안 했지마는 갈라고는 발악을 치고 야단을  지깁니다. '불끈 붙잡아라 놓지 말고' 그래 가지고 강제로 붙들어 가지고서 두  시간을 지냈어. 두 시간을 참예 했어.

 그러고 나니까 그만 턱 거꾸러져 가지고서 그만 죽은 듯이 그만 자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니고 이래 이래 가지고서 그 시간 지나고  나더니마는 그 다음 시간 한 서너 시간 지내고 나니까 살살 깨나더니마는 고만  그 다음 집회에 그 시간에 어떻게 은혜를 받았던지 이제는 주를 위해서 과거에는  '주를 위해 죽겠다' 죽겠다 말한 기 다 헛됐고 참 이렇게 어리석었는데 공연히  각오했다 이제는 주를 위해서 나도 죽을 각오 있다 나도 주를 위해 살아야  되겠다 하는 그래 가지고서 그분이 참 남은 때에 어려운 그 입장을 잘 감당해서  나갔습니다.

 우리에게 악령이 점령해 가지고 있는 고 한 지역 지역을 점령해 나갈려 하면은  그때에 싸움이 있는 건데 고것을 본인이 알고 스스로 자기를 쳐서 복종해서 되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게 안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시로 담으로  막는다"고 말씀한 대로 입장에 이리도 못하고 저리도 못하고 죽을 이리도 못하고  저리도 못하는 고런 징계 속에 넣어 가지고서 고 고비를 넘기게 하고  이래서 어떤 사람은 징계로 한 칸씩 한 칸씩을 지내 가니까 지나가기는  지나가지마는 거기다가 정력 소모가 많이 돼버리니까 결국은 도달할 때 다  도달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어떤 사람은 그 자기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런 걸 포기하지 못하고 있던  이북에 있는 신자들은 거의 다 땅에 있는 선지자들입니다. 땅에 속한 소망을  가지고 살았어요.

 이랬는데 그러니까 그 6.25가 나 가지고 거게서 인제 못 견디니까 고만 이리  월남하려고 애를 써서 이러다가 이제는 내 놓지를 못했는데 마구 죽을  지경이니까 돈 보따리를 내놓고 왔단 말이요. 죽을 지경이니까 금을 묻어놓은 금  도가지를 내어놓고 오면서 이제 삼팔선을 넘어올 때 죽을 지경이니까 거기서  이제 각오와 깨달음으로서 한층 더 들어갑니다. '주여, 이제는 내가 이번에만  살려 주면은 아, 돈 위해 살지 않겠습니다. 세상 것보고 살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만 살려 주면 내가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이미 이리 죽을 몸 여기서 죽는  거니까 살려만 주면 주를 위해서 생명도 내 놓겠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왔다  그거요. 왔는데 와 가지고도 또 보니까 달라.

 이래서 월남한 신자들을 보면은 그분들이 물질에게 대해서는 그때 각오가  그것은 그래도 서 있습니다. 그때 각오가 그대로 서 있어서 물질면에 대해서는  그때 각오 그대로 이 이남의 사람이 믿는 사람보다 이북에 사람은 그때 넘어올  때 다 한번씩 시험을 치렀고 물질에 대해 똑똑히 느꼈고 각오가 있기 때문에  물질에 대해서는 훨씬 충성합니다. 물질면에 대해서는 이남 사람들은 있는 걸  아끼고 있지마는 거기 사람들은 퍽퍽 아끼지 안하고 하나님께 바친다는 그  뜨거운 각오와 그때 한번 결심한 그 은혜가 있단 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북 사람들만 모인 거기는 물질은 풍성합니다. 이남 사람들만  모인 데는 물질에는 빈곤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물질 받아서 바치고 물질  받아서 바치고 이것은 하지마는 자기를 바치는 데에는 빈약합니다. 자기를  바치는 데에는 이남에 있는 신자를 못 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뭐 여게도  뭐 이북에서 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 반은 안 될는지 몰라도 거의 뭐  그러큼 그러큼 하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도 자기를 바치는데 대해서는 빈약합니다. 몸과 생명을 바치는데 대해서는  빈약해. 우리가 자꾸 한 칸 한 칸 점령해서 들어가야 됩니다. 주님이 하나 하나  나를 점령해서 점령하셔야 되고 나는 주님에게 점점 이것이 빼앗겨지고 주의  것이 되어져야 되고  그러면 마귀가 내기에 백 프로 점령하고 있던 것을 마지막에 성령님이 나를 백  프로 다 점령하는 고것이 뭐이냐 순교입니다. 어쩌든지 나와서 배워서 깨달아야  되지 감감해.

 그러니까 거리가 머니까 말을 해야 잘 못 듣는다 그 말이요. 못 들으니까  자연히 그 말이 나오게 된다 그 말이요.

어제 아침에도 어떤 말했는데 오늘 아침에 말한 이 이름은 취소하지 말고 그것은  이제 ○○○ 선생님이 나온다고 해서 여비 붙여 보내서 나올는지 모릅니다.

나오면 그분들 다 얘기를 많이 한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말해도 자기들에게 뭐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니까 좋지마는 어제 아침에 말한 고것은 이름을 다 삭제해  주십시오. 내가 그 이름 말한 것은 취소합니다. 고 사건은 내가 취소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안 듣는다 이거요. 바른 거 하나 알아 가지고 삐뚤어진 게 천이고  만이고 고거 다 아는 긴데 하나만 알아 가지고 삐뚤어진 게 천만을 다 아니까  얼마나 그 지름길로 질러가는 것입니까 얼마나 폭리입니까 얼마나 속성입니까?  이런데 어리석게 이거는 아니다 아닌 이거 잘못 된 거 그런 것을 많이 배워  가지고서 나중에 보니까 이거는 아니라 하더라 이거는 아니라 하더라 그만  보니까 이거는 아니라 하던데 아니라 하던데 아니라 하던데 그래 가지고서 옳은  것이 나와서 그걸 배울라 하면은 하나 배워 옳은 것 하나 배워 가지고서 그 만  가지 알 때에 이제 만 가지 배우는 그 힘을 가지고서 하나밖에 못 배웠는데 하나  배워 가지고 만 가지를 다 알 수 있는 그런 첩경 아니요.

 그런데 어리석게 여기고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자꾸 저거는 사도가 아니다  사도가 아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것은 멸시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부득이  해서 '너희를 위해서 내가 미친 자와 같이 미친 사람이 하는 말을 내가 한다' 해  가지고서 '나도 사도다' 하는 것을 증거 했다 그거요.

 그것도 참 내가 또 회개를 했습니다.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만 하면  되는데 뭐 한다고 안 알아들으면 말고 못 알아들으면 말고 무시하면 그대로고  제재하는 것인데 그거 뭐 하려고 꼭 알리고 그렇게까지 해 가지고서 뒤에 후회할  일까지 할 필요가 뭐 있나? 말해서 멸시하면 멸시하고 달게 받으면 달게 받고 너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 할 게 뭐 있느냐?  "옳은 건 옳다 아닌 건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면 그 악으로 좇아나는  것이니라" 그 성구가 여기는 해당되지 않느냐 고 성구가 해당되는데 그래도,  그래도 고것만 가지고는 놓을 수가 없어 고게 인간의 연약성은 언약성입니다.

 아, 제 사랑하는 자식 '공부하라' 하다가 '해라 안 하면 안 된다 아 공부하라'  하고 '안 하면 안 된다' 하고 했으면 됐지 안 한다고 한다고 노할 것이 뭐  있으며 거게서 분히 여길 것이 뭐이며 못 견뎌서 벌벌 떨어 가지고서 떨어서  매를 때리고 뭐 그럴 게 뭐 있는가? 안 그러면 좋기는 좋은데 그런다고 되는 것  아니고 그런데도 그 수양이 모자라는 데서 자기 자식에게 대해서는 안 그럴 수가  없어. 그러니까 자식은 바꿔 가르쳐라 자식은 바꾸어 가르쳐야 되지 제 자식  제가 못 가르친다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 그 말이요.

그런 격으로 내가 수양이 모자라서 여러분들이 듣거나 안 들으면 말지 모르면  모르고 나 할 것만 하면 된다 요렇게 요 냉정스럽게 나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하게 된다 말이요. 뭐 멸시하는 사람은 저만 불행합니다. 불행합니다.

 나는 그렇게 성경 외에 책을 읽은 책이 참 성자들 전기 같은 그런 것만 내가 좀  그 몇 권 읽었지 교리 신조에 대한 책은 내가 한 권도 안 잃었습니다. 반쯤씩  쪼그매 씩 읽어 봤지 쪼그매 씩은 시작해서 여게 저게 띄엄띄엄 쪼매 읽어  봤지마는 온 권은 한 권도 안 읽어 봤어. 그랬는데 나에게 깨닫게 해서 증거  하는 그것을 나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이요.

 여러분들 또 저거 또 자기 자랑한다, 자랑한다 하거나 말거나 좋은데 내가 나  된 것이 하나님이 나 되게 해서 하나님이 나는 그런 걸 전혀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셔서 그 모든 올바른 교리 신조에 하나도 틀리지 안 하게  깨닫게 해주는 그것이 내 지능으로 깨닫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또 그때 것과 지금 내가 말한 것과 틀린 것은 (돌)을 두고 이래  대조를 할 때에 이것이 더 성경적이고 바르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게 사람이 알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막대기를 통해도 하려면 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막대기 같은 나,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이 모르는 대로 나는  내가 말을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고 말을 하지 안 해도 이제 나 같이 무식하고  무능하고 나 같이 악하고 더러운 인간이 없다는 걸 내가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알고 있어. 내가 초등학교도 못 마쳤어.

 이런데 하나님이 유식한 사람 가지고서 알리시면 유식 그것 때문에 이것 됐다  하는 인간 지식을 높일 것이기 때문에 없는 자를 통해 가지고서 알렸다 그  말이요.

 어제 ○○○ 조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 조사는 여기 공부할 자격이 없어.

이래 가지고 한 20일 낙망을 했어. 그만 아프다 하고 낙망하는 데 내가 말하기를  너는 초등학교밖에 안 했는데 여 지금 다 대학을 일류 대학들을 졸업한 사람들이  전부다 학생 돼 가지고 있고 또 일류 대학을 안 하면 목회를 벌써 몇 십 년 한  사람들이 와 가지고 학생 돼 있는데 네가 지금 이제 와서는 초등학교 밖에는  나오지 못하고 그 교역자로 나가는 것도 그런데 네가 나갈 자격이 없어.

 내가 희망을 보고 내가 널 내 보냈지 네게 있는 싹수있는 걸보고 내 보냈지  자격이 없는데 네가 여기 와서 공부할라 하니까 따라 가지 못할 뻔히 정한  이치인데 다른 사람 4년에 졸업하면 나는 그 사람들 공부한 걸 비교해 봐서  14년은 걸려서 이거 졸업을 해야 될 거다 그걸 알아야 네가 겸손해지지 그  요량하고 네가 공부해야 되지 같이 따라 가지 못한다고 낙망하고 뭐 하느냐  나무란 사람이란 말이요.

 나무란 사람인데 그는 무식하지마는 경건회를 맡아 놓고서 '아이구, 내가 이  무식한 것이 이거 경건회를 맡아 설교를 해야 될 터이니까 이거 어짜꼬' 이리  걱정해 가지고 사흘 동안 뭐 그저 자꾸 공부하는 시간에는 자꾸 기도하고,  기도하고 이러니까 주님이 알려 줬다면서 설교하는데 고것이 다 배웠지마는 여러  수십 번 수백 번 귀에 들었지마는 고 고렇게 깨달아서 자기가 증거 할 수 있는  고런 능력이 역사 한 것은 성령의 능력이라 말이요.

 그러니까 어제 설교하는데 잘 했습니다. 잘 했어 모두 다 보니까 은혜를 받았을  거라 말이요. 하나님이 성령이 붙들고 역사하면 여러분들이 다 제가 하나 하나  그런 말이 있어요. 문일 지식이라 하나를 들으니 열 가지를 안다 우리는 열  가지가 아니라 백 가지도 더 알아.

 이러기 때문에 66권위 도리 요 조그마한 책 한 권 66권 성경이 그거 뭐 얼마  됩니까? 세상 책에 비하면 조그마한 책이요 조그마한 책 요 하나로써 무한을 알  수 있다 말이요. 영감이 역사해서 문일 지식이 아니라 문일지 억억억억도 더 돼,  이런 영감이 있어.

 자기가 설교할 때에 영감 없으면 내나 그 설교해도 교인도 듣기 싫고 저도 듣기  싫고 은혜도 없고 이런데 또 성령의 감화가 오면은 자기가 은혜가 되고 다른  사람도 은혜가 되고 성령의 감화가 와서 설교를 하면은 설교하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 회개보다도 제가 더 회개가 되고 다른 사람 자복보다도 속에 자기가 더  자복이 되어지고 회개할 것이 더 있고 기가 막혀서 설교하고 난 다음에는 고만  다른 사람보다 제가 거꾸러져 가지고 이렇고  설교 반쯤 할 때는 성령이 역사 하다가 성령 떠나고 나면은 고만 제가 우쭐해  가지고서 설교만 하고 저 회개할 것은 하나도 없고 저는 그만 하나님처럼  나타나서 대접이나 받을라 하고 교만하면 그 다음 시간에 또 죽을 쓰고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걸 여러분들이 볼 거라 그 말이요.

 이걸 제가 체험하면서도 성령이 와 가지고서 제가 체험하면서도 성령이 와  가지고서 역사해서 한 것은 듣기 싫어하고 세상 인간들이 말한 간판 가지고  말해야 된다 그거요. 어리석으면 참 어리석은 자는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귀가 있는 자는 깨달을 자가 귀가 뭐 양심인데 양심을 가진 사람은  알면 알 수가 있다 말이요. 양심을 안 쓰고 껍데기로 명예주의라 자기의  명예주의 공로주의 자기주의 자기중심 이것이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놈이  들어서 다 듣고 가리워서 깜깜해 모르는 것입니다. 그 여기서 암만 배워야  소용이 없어.

 그래서 어제 아침에도 그런 말을 자꾸 하게 됐다 이기요. 이 양성원 학생들이  여기 있는 동안에 요거 파악을 하면 딱 잡으면 돼. 잡으면 된다 말이요. 그 어제  ○ 조사님 설교하는데 마태복음 20장에 있는 고 성구를 들어 "너희들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 같지 않다" 그걸 잡았다 그 말이요. 잡으면 돼.

 제가 그 전에 설교할 때에 지금도 지금 늘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주일 학교  새벽기도를 인도하는데 그게 다 저 5층 스피커에 나옵니다. 이러면 그 권찰회 할  때에는 권찰회 한다고 일찍 올라가지 권찰회 안 할 때는 벌써 일찍 마쳤으면  내가 좀 거석 하지마는 좀 늦게 마치면 새벽기도 몇 시부터 시작하지요?  주일하교 그 5시 반에 시작하니까 어떤 때는 5시 반이 되니까 내가 그만 쫓아  올라갑니다.

 올라가 가지고서 설교하는 거 보면 고만 고게서 요 사람이 어려도 좋고 설교  못해도 좋습니다. 척 돌아섰으면 척 돌아섰으면 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와  주님과 바꿨으면 어려도 좋습니다. 어려도 좋아 고것만 됐으면 고만 아, 어린  아이야 키우면 되지 그렇지 않소? 송장이야 아무리 장사의 송장이라도 그야 썩는  거 뿐이지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암만 어려도 빨개둥이라도 고거는 살아만  있으면 키우면 돼.

 여게 지금 어느 교회가 있노? 그저 저게 ○○○ 집사님 사위 이 무슨 조사지?  뭐 ○○○ 조사 설교하라 하는데 설교가 뭐 설교를 그 뭐 교인들은 '아이구,  저게 조사로 나가?' 그럴 겁니다. 꼭 한 마디 하는 고것 보고서 세웠단 말이요  ○○○이도 그래.

 그러기에 아무리 막 청산유수로 해도 '아이구, 저거 두통거리다. 저거 인제 큰  이단 나타내겠고 저게 지금 아마 신신학 나타내겠고 이거는 큰 두통거리다' 싶은  게 있고 암만 작아도 생겼으면 돼. 돌아섰으면 돼. 자기가 주님의 것이 되려고  하면 된다 그 말이요. 주님을 자기가 이용하면 안 돼.

어제 ○○○ 조사 설교도 고기라. 고만 주의 것만 될라 하면 뭐 무식해도  상관없소. 그 사람 주님 붙들고 얼마든지 가르쳐 줍니다. 그 여기 와서 실은  성경을 지금 배울 필요가 없다 그거요.

 왜? 여기서 성경 배우는 걸 성경 배운다고 생각하면 헛일입니다. 여기 오는  것이 자기 혼자 자기를 죽이지를 못하고 자기를 죽여야 된다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자기를 죽여야 된다는 것을 깨달아 자기 죽이는 공부를 여기서  하는 것이지 자기만 죽이면 되는 것이지 자기 죽이는 공부를 하지 안하고서  이걸 배워 가지고서 '아이구, 하나 알았으니 내가 이만큼 크다 이만치 크다'  이래 가지고서 '좀 더 자라야 더 나타내겠다' 여게서 배워 가지고서 자기를  키운다면 그놈은 그건 뭐냐하면 살인이요 그거는 도적입니다. 도적 강도요 양을  잡아먹는 이리요 삯군입니다.

 여게 오는 것은 뭐이냐? 자기를 모르는 자에게 '자기 이는 참 자기요 이거는  나쁜 자기다 이거는 죽여야 될 자기다' 죽여야 될 자기를 알려 주는 것이고 자기  혼자 힘으로 안 되는 자기를 죽이는 것이지 자기를 죽이지 못하는 자는 암만  있어야 안 된다 그 말이요. 성경 암만 읽어 봤자 소용없어. 백 독 아니라 천  독해도 소용없어. 자기를 죽여야 됩니다. 고기 고만 고기 제일이요.

 저 지난 아침에도 말하기를 모든 죄보다 세상에 가득 찬 그 죄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내 죄 하나만치 내게는 손해 안 보이요. 이렇게 층하로 내려가다가  자기가 모르는 죄 하나가 해독이 큰데 모르는 죄 전부보다도, 전부보다도 자기를  바꾸지 안하고 주인을 바꾸지 안하고 주님이 자기 주인이 되고 자기가 자기 주인  돼 있는 요 해독이 제일 크다 하는 그것을 말했습니다. 고걸 못 알아들어.

 그게 벌써 이십 한 육칠 년 전에 저 남 교회에서 고신 진영에서 그 전국 학생  신앙운동이라면 그때는 거기서 제일 위대했었어. 고신이 고신이 제일 진리  운동이 자타들이 다 인정했어. 그 전국 학생 신앙 운동할 때에 그때 그 주인  바꾸는 일 하라 하는 그걸 일주일 동안을 계속 집회 동안에 했습니다.

 내가 그 때 말한 것이 환해. 밀을 보라 밀 속에 다 같은 밀이지마는 고게  보이지 않는 핵 속에 생명이 있는 밀이 있고 없는 거 있다 핵 그것이 생명이  있는 그것은 그 밀에 들어 있는 분 그놈을 달콤하게 질금을 만들어 달콤해. 그게  다 빨아먹고 자란다 고것이 자기의 지체 전부를 점령을 하고 고게 뭐이냐 하면은  고게 새생명인데 고게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된 중생 된 고 영인데 그게 육체를  다 점령해야 산다 알속에 무정란과 유정란이 있으니까 똑 같은 알이지마는 고게  보이지 아니하는 고 생명이 들었다 고기 중요하다.

 고 보이지 않는 생명이 그걸 다 삼켜서 다 점령을 해야 비로소 알속에 터져  나온다 고것을 내가 그 때에 많이 말을 했다 그 말이요. 그래도 못 알아듣는  사람은 못 알아듣습니다. 그 교만하면 못 알아들어요 암만 해도 알아 들리지를  안 해. 그러니까 자기는 자기 세계대로 가르치면 가르치는 세계대로 따로 있다  그거요.

 제가 송도에 가 가지고서 집회를 하는데 그 이병규 목사 자기가 그 말하는  말입니다. 이제 그 개 교회로 이래 나가기로 하고 난 다음에 명륜동 교회에 날  청해서 집회를 하는데 그때 그저 그만 한 4년 동안 서로 소식이 단절돼  끊어졌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네들이 김현봉 목사에게 배우면서 꼭 그 비슷하다 해 가지고서  청해서 갔었는데 그분이 그때 말해요. 송도 와 가지고서 집회 할 때에 일주일  집회했지마는 한마디도 그 때 내가 못 알아들었습니다.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설교 하니까 다 알아듣겠는데 그때도 이런  설교했느냐 그분들이 그때는 말해요.

 말해서 교역자들이 다 모여 가지고 말하기를 '우리가 양 사방서 설교사에서도  많이 배웠고 모두다 많이 배웠고 많이 배웠는데 한국에서 우리를 신앙을 바로  지도할 수 있는 스승 두 분을 만났다. 김현봉 목사 만났고 그 백 조사 만났고 두  분 만났다 어쩌든지 이래 모시고 배워야 되겠다' 그때에 그랬는데 얼마 배우고  난 다음에는 그만 달라져 버렸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 이래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그만 나와 가지고서 와  가지고서 저를 그리 서울로 끄는 것을 나 안 갔어요 며칠 전에도 거게 있는 그  신학교 고교장 겸 이사장 겸한 그 로고스 신학교라고 신학교 그 교장 겸 이사장  겸한 그 로고스 신학교라고 신학교 그 교장 겸 이사장 겸한 그 안길흥 목사님이  어떤 분하고 두 분 찾아 왔습니다.

 찾아와 가지고서 몇 시간 얘기를 하고 '서로 교류하자'고 하는 것을 그 나는  힘없어 안 된다고 그만 말았는데 이 양심을 쓰지 않으면 안 들려요. 양심을 쓰지  않으면 안 들립니다. 양심을 쓰는 것은 듣는데 양심은 자기가 책임을 지고  들으면 돼요. 그리고 고대로 살면 알아집니다. 고대로 살면 고 뭐이라는 것을  알아집니다.

 그 배움의 지식에 그 자기가 실행하면 체험의 지식이 증거 해주고 보강해 주고  경험의 지식이 보강을 해주고 그로 인해서 성과 된 고것이 고 지식을 보강해  주는 이 지식은 요동이 없습니다. 아무가 와도 안 들어요 요동이 없어.

그러니까 무슨 지식이라도 요 잣대만 거머쥐면 다 잴 수가 있다 그거요. 어데 가  가지고서 속화되지 안 해. 이러면 이리 변동 저러면 저리 변동 그거는 아직까지  잡지를 못해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요 양성원 벌써 다 지내가 가지고서 앞으로 두 주간 밖에는  안 남았는데 두 주간 며칠 밖에 안 남았는데 요 때에 여러분들이 여기 지식으로  배워 가지고 뭘 안다는 그게 정신이 틀렸습니다. 어쩌든지 요게서 완전히 주인을  바꿔야 됩니다.

 요게서 자기를 죽이지 못하는 자기를 죽이도록 노력하고 요게서 완전히  예수님의 것이 되어서 참 어떻게 하면 주를 위해서 내가 죽을까 주님 나 위해  죽었기 때문에 주님 위해서 죽을 공을 들여야 되지 그걸 연습해서 그 일을  성공해 가지고 가야 되지 '아, 가서 한마디 자랑할 거 생겼다' 소용없습니다. 요  지금 앞으로 배울 게 고거요. 그리스도 죽는 권능이 뭐인데 죽는 권능이라 지금  우리가 배우는 건 죽는, 죽는 권능을 배우는 기라. 죽는 권능을 배우고 사는  권능을 배웁니다. 천국에는 죽는 권능과 사는 권능이 권능만이 하늘나라의  권능입니다. 그거 아니면 만물들이 다 싫어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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