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시험

 

1988. 4. 24. 주일오전

 

본문 : 야고보서 1장 1절-4절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오늘 봉독한 말씀에 목적이라고 하면 마지막 4절 하반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 온전하고  구비해서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는 원만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참 둥근 공과 같이 아무데도 죽은 데가 없고 원만한 사람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네모배기 세모배기 뭐 팔모배기 어떤 그 모로 된 것이라도  그런 것은 뾰족한 데가 있고 또 죽는 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둥근 공같이  생긴 것은 뾰족하게 튀어난 것도 없고 또 어데 푹 들어가서 죽은 것도 없습니다.

 우리 사람은 둥근 공과 같이 그렇게 원만해서 그 사람에게 무슨 뾰족한 그런  면도 없고 또 모자라는 면도 없고 둥글둥글한 그런 원만한 그런 사람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구원이라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구원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은, 다 자기를 무조건 인정하고 사랑하는 아주 못된 그 습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원죄인데 원죄는 악성 그것이 원죄입니다. 악성이라 하는 것은  자기중심, 자기 위주, 모든 것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그것이 원죄입니다.

 그것이 어데서 나왔는 고 하니 악령에게서 나왔습니다. 악령은 하늘의 천사로서  귀한 지위 가지고 있다가 쫓겨난 악령입니다.

 악령이 무엇을 하다가 쫓겨났는 고 하니 천사장으로 있다가 제가 하나님 될라고  날뛰다가 정죄 받아서 쫓겨나온 것이 타락한 천사요 곧 악령입니다. 악령이라  말은 영물인데 제 중심 제 위주로 하는 영이라 해서 이름을 악령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악령이 하늘에서 쫓겨나와 가지고 인류 시조 에덴동산에 머물 때에 이  악령이 가서 해와를 꾀워 가지고 해와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고  있는 그 해와를 꾀워 가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아니라 네 중심 네 위주로  살아라. 그러면 너도 하나님같이 된다.’ 하는 고 유혹에 빠져 가지고 범죄한  것이 원죄입니다.

 원죄는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삐뚤어진 것을 가리켜서 원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죄라는 것은 삐뚤어진 것을 죄라고 하는데 원죄라 말은 제일 죄의  종자가 되는 근본 죄입니다. 근본 죄인 원죄는 그것은 곧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죄악입니다.

 이렇게 원죄와 본죄와 악령으로 완전히 멸망받아서 영원한 멸망 속에 빠져 있는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거기에서 구출해 낸 우리들입니다.

그런고로,  제가 이제까지 설교한 가운데에 잘못된 것을 여러분들에게 하나 자복을 합니다.

설교할 때에 제일 첫 마디에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활의  대속으로 구속을 받은 우리들이라’ 하는 그 말을 언제든지 처음에 해야 되는데  그것을 하지 안하고 그만 설교하다가 거기에 대한 그 본문 해석의 설교만 하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증거하지 아니하고 혹 빠진 그런 설교가 더러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은 자복을 합니다.

 아무리 설교를 잘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증거한 증거가 빠진  설교라면 그 설교에는 생명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이 말씀도 목적이 어데 있는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원만한 사람, 둥글둥글한 사람 이런 사람이 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으로서는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이 될  수도 없고 또 원만한 사랑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하신 이 공로와 성령님과 진리가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능력을 힘입어서  우리는 온전하고 구비해서 부족함 없는 그런 사람이 다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은혜를 이미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이 세 가지 은혜를 받아서 원만하고 구비하고 온전한 영이  됐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영은 영원히 정죄받는 것이나 실수하는 것이나  사망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신은 이 세 가지 능력을 영접했다가 배척했다가 이렇게  중복적으로 실수하는 데에서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이 우리에게서 떠나가면  우리는 주홍 같고 진홍같은 붉은 아주 못쓸 죄악이 당장 되는 것입니다. 영은 안  되지마는 우리의 마음과 몸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기도 하고  또 독사와 시랑이왕 같은 그런 자가 당장 됩니다.

 그러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능력을 영접해서 피공로를 입고 영감과 진리의  인도를 따라서 움직일 때에는 그는 순간적이나마 움직일 동안에는 한 시간을  움직이든지 일 년을 움직이든지 십 년을 움직이든지 피 안에서 영감과 진리 따라  움직이는 그 기간은 몇 해가 되든지 그것은 다 온전한 생애입니다. 온전하고  구비한 원만한 인격을 이루어 하나님의 모형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소망이라 말은  희망이라 말인데 소망을 성경에 가리켜서 소망의 투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투구라는 것은 갑옷을 입는 그 갑옷에 따른 것인데 전쟁할 때에 원수의 모든  해를 방어하고 자기를 잘 호신할 수 있는 데에 중요한 것이 많지마는 투구라는  것은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 투구인데 소망이 투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  진리 가운데에 우리가 가지는 이 소망 이것은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면을 잘  보호할 수 있는 진리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망이 끊어지면  사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소망은 온전하고 구비한 부족함 없는 사람 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소망인데 이 소망을 이루는 데 대해서 거기에 관련된 말씀을 오늘  여기에 말씀해 준 것입니다.

 그러면,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이 되는 그 방편에 대해서 본문에 2절로부터  4절까지 기록된 것을 간단하게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한 단절 한 단절에 대한 뜻을 간단하게 증거 할 터이니까 깨닫고 이  말씀의 뜻은 이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난다. 시험에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하겠습니다. 시험이라는  것은 무엇이 시험인고 하니 그 사람의 그 현실이 어떻게 돼가지고 있나?  회사에서 등용할라고 시험치는 것도 있겠고 학교에 입학을 시킬라고 시험 치는  것도 있는데 그 시험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뭐 지식으로 말해도 영어 시험 독일어 시험 뭐 어학 시험도 여러 어학 시험이  있겠고 또 기술 시험도 여러 가지 기술 시험이 있습니다. 이 기술시험 저 기술  시험 여러 가지 기술 시험이 있겠고 그 사람이 또 시력에 대한 시험도 여러 가지  시험이 있겠습니다.

 또 그 사람의 그 성격 시험, 또 그 사람의 그 심리 시험, 도덕면에 시험, 또 그  사람의 사회면의 시험, 또 윤리면에 시험, 또 그 사람이 사람으로 더불어 사귀는  사교면에 시험, 뭐 여러 가지 시험이 다 있습니다.

 있는데 그 시험이라 하는 것은 대체로 뭣하는 것이 시험이냐 하면 그 사람에게  잘못된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험을 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잘못된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험을 치고 또 그 사람에게 모자라는 그 면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험을 치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면을 없다 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험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험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잘못된 거, 또 모자라는 거, 없는 거  이런 것을 드러내는 것이 시험입니다. 시험을 치면 그게 다 드러납니다.

 또 하나는 그 사람에게 좋은 점이 백점짜리가 있느냐 오십 점짜리가 있느냐? 십  점짜리가 있느냐? 또 좋은 점을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험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의 그 실력을 조사해 가지고 그 사람을 적당하게 사용하고  또 앞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험이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첫째로 못쓸 거 모자라는 거 없는 거  이것을 드러내고, 또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이 얼마나 있느냐, 몇 프로나 있느냐,  몇 점짜리나 좋은 것이 있느냐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시험이요.

 그러면, 시험치는 목적은 어데 있는가? -시험은 그것이 시험인데, 시험의  목적은 그 사람에게 나쁜 점은 본인에게 알려 가지고 그 나쁜 점을 고쳐서  온전케 하기 위해서 시험치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에게 좋은 점은 백점짜리로  백프로 좋은 점은 너는 이것은 온전하니까 견고히 잡고 요동치 말아라, 누가  뭐라 한대도 요동치 말아라, 너는 좋은 점이 있기는 있는데 한 점밖에 없으니  인제 구십 구점을 네가 마련해야 된다, 오십 점 있으니 너는 오십 점을 더  마련해야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그러면, 시험을 치를 때에는 그러기 때문에 두 가지로 시험을 치릅니다.

간단하게 아이들을 무슨 공부를 시킨다고 하면 조그만한 범위에서 그거나 큰  거나 이치는 꼭 같습니다. 시험을 치를 때에 부모가 직접 치르든지 선생을 시켜  시험을 치르든지 치를 때에는 두 가지로 치릅니다.

그 아이에게 좋은 점 있는 것을 시험을 치러서 그 아이가 이 점은 좋다 안심하고  견고해라 그에게 사기를 돋궈 주고 옳은 것을 굳게 잡고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옳은 점을 그에게 드러나도록 하는 그런 시험을 칩니다.

 또 하나는 그 아이에게 잘못된 점 모자라는 점 없는 점 그 점을 시험을 칩니다.

시험을 치면은 없는 것을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에게 하나도 없는  것도 알고 쪼그매 아는 것도 알고 또 삐뚤어지게 알았던 것도 알고 이렇게 해서  그 부모의 목적은 어데 있는 고 하니 그 아이에게 전혀 없는 시험 치르는 것은  아이를 괴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 시험을 쳐서 그 아이로 없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잘옷된 것을 깨달아서 고치도혹 하기 위해서,  모자라는 것을 깨달아서 보충하도록 하기 위해서, 좋은 점을 깨달아서 굳게 잡고  그것은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부모도 그 아이에게 좋은 목적을 가지고서  온전한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부모네들이 그렇게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치면은 자기가 알 수 있는 거 백점 맞을 수 있는 시험 문제가 낫을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것만 하면은 교만하고 맙니다. 하나도 점수 맞지  못하고 영점, 빵점 맞을, 영점 맞을 거 그런 시험도 또 칩니다. 그런 시험  치면은 또 고통을 겪습니다. 하나도 모르니까, 이제 전부 영점이 돼 놨으니  고통을 느낍니다.

 그런데, 시험이라 하는 것은 이런 것이기 때문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말은  우리에게 시험이 올 때에 여러 가지 시험이 오는데 네가 백점을 맞을 수 있는  그런 시험도 있고 빵점을 맞을 수 있는 그런 시험도 있는데 백점 맞을 시험도  네가 기뻐하고 영점 맞을 시험도 기뻐하라. 온전히 기뻐하라 말은 부분적으로  기뻐하지 말고 일방적으로 기뻐하지 말고 전부 다 기뻐하라 그말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러면, 자기에게, 백점 맞을 그 아주 쉬운 시험, 그  일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잘했다 만족했다 할 만치 그런 자기로서는 아주  백점짜리로 통과할 수 있는 그런 시험이 을 때도 기뻐하라. 그 시험은 뭐할라고  주는데 기뻐해? 시험에 백점이 됐으니까 기뻐하기도 해야 되지마는 그것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시험의 목적은 ‘이거 이면은 백점이다. 이거는  네가 누가 뭐라 한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굳게 잡고 놓지 말아라.’ 견고  하도록 하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백점 맞을 그런 시험을 닥칠 때도 기뻐해야  됩니다.

 또 자기는 그 시험을 닥쳤는데 하나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완전히 죄를 지었습니다. 완전히 실패하고 그뭐 거기에 대해서는 하나도 의를  이루지 못하고 완전한 실패 됐습니다. 그 시험도 기뻐하라.

 왜? 자기가 그렇게 완전 허무하다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 면을 지금  하나님세서 기르기 위해서, 그 면을 알려서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하고 계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면도 기뻐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또 한  삼십점, 이십 점, 팔십 점, 구십 점, 구십 구점 어떤 시험이든지 기뻐하라.

기뻐하라는 것은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니 견고히 잡고, 잘못된 것은 고쳐서 또  바로 잡고, 없는 것은 새로 구비해서 갖추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 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연단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너를 온전케  만들라고 하는 사랑의 시험이니까 기뻐하라,   ‘온전히 기뻐하라’이 시험도 기뻐하고 저 시험도 기뻐하고, 네가 이런 어려움  당할 때도 기뻐하고 저런 어려움 당할 때도 기뻐하고, 네가 실패해도 기뻐하고  성공해도 기뻐하라.

 왜? 성공한 것은 너에게 그만한 실력이 있는 면을 인해서 이제 안심하고  기뻐해야 되겠고, 완전히 실패한 면은 네가 실패한 것을 주님이 그건 현실을  닥치게 해 주시지 안했으면 자기는 실패하지 안하리라고 공연히 지나치게  어리석게 판단해 가지고서 안심하고 있을 터인데 그런 현실을 닥치게 해 가지고  ‘주여, 나는 이면은 하나도 없습니다.’ 없는 것을 알게 하신 이가 없는 것을  구비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는데 시험당하는 것은 나에게 잡고 놓지 안해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잘못 잡았으니까 내던져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이것은  모자라니까 보충해야 될 것을 알게 하시고, 이거는 아주 틀렸기, 때문에 완전히  없애 버리고 고쳐야 될 것도 알게 하시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를 만드시기 위해서 이런 환경 저런  환경을 힘들여 만들어 가지고 나에게 현실을 조성해서 주시는 것이니 네가  현실을 만날 때에 모든 현실을 기뻐하고 그 현실에 어떤 어려움이라도 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러면, 이런 시험 저런 시험 모든 시험을 다 기쁘게 여기라. 이 시험은  기뻐하고 저 시험은 슬퍼하지 말아라. 모든 것 기쁘게 여기라. 네가 백점 맞아도  기뻐하고 영점 맞아도 기뻐하라.

 백점 맞은 것은 그만치 주님이 길러 주셨으니 고것은 요거는 됐다하고서 견고히  잡고 뺏기지 안하면 되겠고 또 아주 빵점 맞은 점은 빵점 맞은 이것을 나로  하여금 알게 하신 그분이 알게 하시고 또 나를 온전하고 구비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인해서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주시는 그 현실 그 현실은  별별 그 종류의 현실을 닥치는데 그 현실은 전부 시험이라 보면 됩니다. 현실은  시험이라. 뭐 좋은 현실도 시험이요 나쁜 현실도 시험이요 전부 현실은  시험이라. 시험 아닌 현실은 없다.

 그러면, 현실이 시험이라면은 현실에서는 어떤 결과를 맺는가? 잘못된 거, 없는  거, 모자란 거, 또 바로 되어 있는 거 이것을 드러내는 것이 시험입니다.

드러내는 것이 시험.

 그러면 시험인데 시험관은 누군가? 시험을 누가 시험 문제를 내놓고서 시험을  치는가? 우리 이 현실은 다 시험인데 현실은 누가 만들어 가지고 나를  시험하실라고 이렇게 현실을 만들어 놓았는가? 나를 피로 구속하신 사랑의  주님이 나를 시험하실라고 현실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현실은 뭐할라고 만드시는가? 나에게  잘못된 점을 고쳐 주실라고, 모자란 점을 보충해 주실라고, 삐뚤어진 것을 바로  잡아 찾게 해 주실라고, 옳은 점은 견고히 잡고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를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 만들기 위해서 주님의 사랑이 다를 시험으로서 현실을  만들어 줬기 때문에 이 현실은 기쁜 현실입니다.

 이 현실은 기쁜 현실인데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말은, 기쁘게 여기라 그말은  그 시험은 여러 가지 종류인데 어떤 그 현실을 닥치든지 기쁘게 여기라. 또 그  현실을 기쁘게 여길 때에 네가 껍데기로 말로만 기쁘게 여기지 말고 마음으로도  기쁘게 여기고 성격으로도 기쁘게 여기고 소망으로도 기쁘게 여기고 이성  판단으로도 기쁘게 여기고 또  네 지식으로도 지성으로도 기쁘게 여기고 네 양심으로도 기쁘게 여기고 네  전체가 남김 없이 전 요소가 기쁘게 여기라.

 이런 종류 저런 종류의 시험을 다 기쁘게 여기라 해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은 자체 전부가 기뻐해야 되고 시험의 종류 전체를 기뻐해야 된다 하는  뜻으로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온전히 기쁘게 어기라’ 3절에, ‘이는’ 기쁘게 여겨야 할 이유를 그 밑에  말합니다. ‘이는’ 3절에 ‘이는’  나이가 많으면 글 줄이 자꾸 이래 뒤바꿔서 잘 못 봐요. 그래 여러분들 웃지  말고 어짜든지 젊을 때 앎이 봐요. 젊을 때 많이 봐서, 나는 그만 여기 부산 와  가지고서 성경을 다 잊어 버렸어. 그 공연히 다른 일로 바빠 가지고서 야단  지기다가. 이 교인들 숫자는 많아졌지마는. 뭐 성경은 아주, 그 뜻은 깨닫는  데는 그렇지마는 성구 뭐 외우는 데 몰라요.

 나는 그 성구를 모르면 묻습니다. 어떨 때는 성구를 내가 또 알고자하는 성구는  또 성구 사전에는 없는 성구라. 성구 사전은 일반적으로 다 이런 데 있지 깊은  속에 뭐 그런 것은 성구가 성경 사전에 없어요. 이래 가지고서 권사님들한테  묻다가 집사님들한테 묻다가 여기 또 반사선생한테 묻다가 이래 물어도 알아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 내가 물으면 가르쳐 주는 사람 가운데에 OOO  권찰님이 좀 나은데 그분도 물을 때는 못 가르쳐 주고 있다가서 저 나중에 오래  있다가 그 뒤에사 또 말할 때가 많이 있어. 성경을 그만 엉뚱한 짓 하다가 성경  다 잊어 버려.

 이제는 내가 총공회장도 다 내놨고, 그래 자꾸 전화가 와요. 전화가 오면은  ‘나는 이제 공회장 나 내놨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책임졌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물으십시오. 나는 그거 내가 말하면 월권이라 안 됩니다.

왜 그라면 그랍니까? 그거는 내가 교훈과 정치를 같이 하니까 교훈대로의  정치하니까 저희들이 이해를 못 하니 저거들이 해 놓은 걸 틀렸다 이래야 된다  이라니까 독재라 독재, 독재 이제 소문이 나서 백목사 독재라 하는 것이 지금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다 알고 있습니다. 저 미국에서도 한국에 백 목사라는  그분 있는데 백영희 목사 있는데 그분은 독재라 그래 소문이 났대요.

 사람들이 지혜가 있으면 독재한 것이 조금 있으면 지나가서 과거사가 되는데  독재한 것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보니까 그게 좋았나 틀렸나 그 결과가 나쁘나  틀렸나 요걸 보면 머리를 숙일 것인데 그것은 안 봐. 3절에, ‘이는’ 믿음  시험하는 것은 뭣 때문에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믿음의 시련이’  믿는 것은 뭘 믿는다 합니까? 믿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믿는 것, 이  껍데기 믿음입니다. 이건 제일 믿음은 믿음인데 제일 외부 믿음이오. 순종하는  것이 믿음 하나님 배우는 것이 믿음, 하나님 본받아가는 것이 믿음, 하나님  닮아가는 것이 믿음, 속 믿음은 하나님과 꼭 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 그것이 속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건 그게 믿음이오.

 믿음의 시련이라, 믿음을 시련한다. 믿음을 시련한다는 그 시련이라는 그 시험  시자인데, 시험 시(試)자. 시자는 시험 시(試)자요. 시험 시(試)자. 또 연단은  연단할 단(鍛) 자인데 그거는 쇠를 불에다 놓고서 자꾸 이래 달궈 가지고서  잡철이나 그 모든 나쁜 쇠는 제하고 좋은 쇠를 남궈 두는 그것이 연단이고, 또  시험이라 하는 것은 이래 시험 쳐가지고서 나쁜 거는 제거하고 좋은 거는 가려  놓고 하는 그것이 시험입니다.

 그러면, 시험이라 하는 것은 나쁜 것은 제거하고 좋은 것은 남궈두기를  목적해서 하는 것이 그것이 시험이라 그거요. 나쁜 것은 제거하고. 그러면  처음에 시험이라 하는 해석과 다르네. 꼭 같은 해석이야. 삐뚤어진 것은 없애고  좋은 것을 강직하니까 좋은 것은 강직하고 모자라서 좋은 것은 보충해서 좋게  만들고 나쁜 것은 또 시험해서 그것을 고쳐서 좋은 것 만들고 이런 것이라  말이오.

 믿음의 시험이라. 믿음의 시험이라. 그 믿음을 시험하는 것은 이 사람 믿음이  잘못된 거 삐뚤어진 거 잡탱이 그 잡탱이 믿음을 어찌 알겠소? 현실을 하나님이  줘 가지고서 현실을 줘서 아주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는다 하기가 참 어려운  그런 현실을 줘 놓으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은 아 죽어도 나는 예수님 내  구주입니다 이라는데 어떤 사람은 조금만 어려움만 있으면 그 예수님 내놔  버립니다.

 이러니까, 너는 주님을 믿는다는 믿음을 가지지마는 그렇츰 몇 닢 푼치 안 되는  껍데기 믿음 아주 물거품 같은 믿음 그런 연약한 믿음을 가졌다 하는 그것을  본인에게 말로 해 주면 안 들어요.

 이러니까, 고 현실을 딱 닥치게 해 가지고서 쿵 넘어가고 나면은 야 너 그 일을  닥쳐 가지고 그거 그만 믿는 거 그만 버렸나? 그때는 내가 이런데 뭐 믿는 게  뭐입니까 이랬지마는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아 그거 내가 고것도 견디지 못해서  그만 그 믿음을 그만 팔아 버렸다 이거 알게 된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시험은, 인제 요 처음에 시험 가르쳤기 때문에 그 다음에 이제  이학년이라. 조금 고급이기 때문에 인제 시험 해석이 달라진다 그말이오.

‘믿음의 시련이’ 믿음을 시험한다 그말은 믿음에, 믿음에 대해서 잘못된 거  없애 버리고 또 삐뚤어진 거 없애고 옳게 된 것은 작든지 크든지 많든지 적든지  옳게 된 거 바로 된 것만 남궈 놓고 나머지기는 다 없애 버리는 것이 시험이라.

 그렇지 않소? 학교 학생도 시험 치는 데 가면은 이제 옳은 것은 그대로 돌뱅이  쳐놓고. 반 틀린 것은 쭉 그어 버리고 또 조금 아주 틀린 거는 아주 그어 버리고  이래 가지고 나중에, 백 문제 시험인데 백 문제 시험 가운데에 한 문제는 바로  맞췄습니다.

 그라면, 학교 선생이 대답해 봐. 학교 선생. 학교 선생이지? 백 문제 시험에 한  푼제 맞았으면 다 작대기 그어 버리요 한 문제는 돌뱅이 해줘요? 한 문제는  돌뱅이 쳐 줘. 한 문제는 맞다고. 그러면 간단해, 시험. 이러니까, 우리 현실을  하나님이 주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조그마치라도 옳은 것은 없애지 안해요. 옳은  것은 그대로 둬 두고 나쁜 것은 다 이거 이거 틀렸다 해 가지고서 틀린 것을  알고 고치도록 그렇게 한다 말이오.

 그러면, 시험하는 것은 믿음에, 믿음에 옳은 것은 남겨 두고 잘못된 거는 다  없애 버리는 그 믿음 시험이라.

 믿음 시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 진리, 성령, 예수님의 피 이 세 가지로 된 세  가지 본질과 본성으로 된 이 순종은 남겨 두고 그 외에 순종, 이 순종은,  진리대로 순종 안 했고 제 꾀로 순종했고 제 수단으로 순종했고 예수님의  피공로를 입고 있으나 피공로 벗고 순종했고 또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이 영원한  소망을 바라고 이 소망으로 하지 안하고 이 세상의 명예로 간판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라고 이 외식쟁이 순종은 하나님은 고거 알아요. ‘요  사람은 명예를 위한 믿음이다’ 고럴 때에는 하나님은 시험하기를 주님에게  순종할라 하면은명예가 박살이 나겠고 명예를 둬둘라면 주님 명령 순종하는 걸  거역해야 되겠고 고걸 똑 현실을 만들어 놓는다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그만 그  믿음이 거기서 가짜라 하는 게 드러난다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 현실을 만들어 주는 데에 우리를 보고서 우리 믿음을  보고서 우리 믿음의 시련을 할라고 할 때에 우리 현실에 요 사람은 요 믿음은  요런 잡종이다, 조 사람은 조런 잡종이다, 요 잡종 믿음은 고 잡종 믿음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시험해 가지고 고 잡종 믿음인 것을 깨닫고 고 잡종을 고쳐서  순종으로 바로 고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십니다.

 또, 시련이라 연단이라 하는 것은 이 주먹덩이만한 이런 쇠를 불에 자꾸  태웁니다. 태우면 저는 그걸 목견을 많이 했어요. 금광에 가면은 금덩이라 하는  것이 이 주먹덩이만 합니다. 주먹덩이만 하면 그걸 이제 청강수로 하는 것도  있고 또 불에다가 용광로에 넣고서 그래 연단하는 것도 있는데,  이만한 걸 불에다 집어넣으면 제일 먼저 뭐 타느냐 하면은 흙이 타버립니다.

다음에는 돌이 탑니다. 그 다음에는 더 뜨겁게 하면 돌이 탑니다. 그 다음에는  더 뜨겁게 하면 쇠가 탑니다. 더 뜨겁게 하면은 뭐 여기에 신주니 뭐 구리쇠니  다 타 버립니다. 나중에 보면 은만 남았습니다. 되게 뜨겁게 하면 은 타  버립니다. 되게 뜨겁게 하면 뭐이냐 하면은 금만 남습니다. 금 그거는 암만  뜨겁게 해도 안 탑니다.

 그러니까, 금을 가릴라 하는 데에는 그 뜨겁게 해 가지고 자꾸 태우는거라  말이오.

 이와 같다. 연단이라 말은 그말이라. 연단이라 말은 쇠를 불어 가지고서  연단하는 그 연단인데 이 연단, 시험하고 연단한다, 믿음을 연단한다. 그러면  믿음이 처음에는 쉬울 때는 하나님을 믿는 일에 자기주관, 의사, 욕심 이런  잡탱이를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순종했지마는 차차 차차 하나님이 그 어려움을  주니까 나중에 가서 이거는 마지막에는 자기주장 가지고는 순종 못 하겠고  마지막에는 생명도 안 내놓으면 순종 못 하겠고 이러니까 전부 생명이고 뭐  생명도 그 믿음은 방해하지 못하고 돈도 방해하지 못하고 지위도 권세도  방해하지 못하고 부모 형제도 방해하지 못하고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고, 이  믿음은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다 달라들어도 방해하지 못하는 고  믿음이 이제 순금, 이십 사금이라 하면 순금 그 같은 그런 믿음이라.

 이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는 금을 연단하는 것보다 더 의로워서 영광과 칭찬과  존귀로 너를 관씌우게 하기 위함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음을 시련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시험은 기뻐해야 되겠다  그말이오. 우리 믿음을 시련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기뻐해야 되겠다 그말이오.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만들어 낸다 말은  인내라’. 말은 참고 견딘다 말이요 그대로 존속한다는 말입니다. 인내를 만들어  낸다.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낸다. 그거 그라면 인내가 뭐이냐 하면 인내를  온전케 하라. 인내가 온전하면 온전하고 구비하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  된다.

 그러면, 여기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라 말은 무슨  인내를 말하는 건고? 시험을 해도 남아 있는 인내 시험을 해도 남아 있는 인내.

연단을 해도 남아 있는 인내.

 그러면, 철물을 연단하는데 남아 있는 그 인내는 뭐이겠습니까? 철물을  연단하는데 이 주먹덩이만한 걸 자꾸 불에다 들이 굽는데, 연단이라 말은 굽는다  말인데. 연단이라 말은 굽는다 말인데 자꾸 구으니까 인내라, 남아 있는 것이라.

남아 있는 거는 뭐이 남아 있지? 저게 O집사. O 집사 됐나? O 집사. 쇠를  연단하는데 남아 있는 건 뭐 이지? 어? OOO 장로 동생 말이야. 그래.

 그러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고 인내는 뭘 말하느냐 하면은 고  비유로 말하면 쇠를 연단해 가지고는 금만 남고 시험을 쳐 가지고는 딱 들어맞은  정확한 고것만 남고 이래 가지고서 시험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이리저리  시험해 가지고서 잡탱이는 다 제거해 버리고 이제 참 촐촐 추려서 정금 같고  이는 하나님 같고 진리 같고 영감으로 된 온전한 것만 남궈 놓고 나머지기는  잡것을 다 태워 버리고 온전한 것을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이러므로 온전한  것을 온전한 것을 자꾸 만들어 낸다 말이오.

 이거 틀렸다. 또 고치자. 틀렸다 고쳤다. 이거는 모자란다 보충을 하자, 이거는  없다 새로 구비를 하자. 이거는 온전하다. 뺏기지 말고 단단히 거머 쥐어 두자.

 이러니까, 하나님의 심언에 가도 없어지지 아니할 것, 무궁세계 가도 없어지지  아니할 것. 만인간과 만물과 모든, 피조물 천군 천사들 뭐 하나님의 공심판 어데  가도 끄떡도 안하는 남아 있을 수 있는 그런 온전한 것 그것을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하나님이 너거  정도를 알고, 그 시험을 치는 데는 가정교사가 그 학생을 시험치면 그 학생 시험  칠 때에 모를 것만 칩니까? 알 것만 칩니까? 모를 것만 치요 알 것만 치요? 두  가지 칩니까? 하나 칩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네. 두 가지 쳐요.

 하나는 사기를 돋궈서 이미 아는 것을 굳게 잡고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는 모를 걸 치는 건 이놈 교만과 게을한 놈을 꺾어 가지고서 지금 부지런히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 하는 거라.

 그런데, 그 선생이 학생을 보고서 ‘조것은 요런 면이 모자라니까’ 모자라는  면을 잘 알아 가지고서 고 면을 시험을 쳐서 탁 떨어 뜨려야 고게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지. 선생이 그 학생의 단점을 모르면, 단점을 모르면 시험을 바로 치지  못해요. 또 그 사람의. 장점을 모르면 그 사람의 사기를 돋궈 주지 못해요.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점도 아시고 단점도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전지전능의 그분이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서 이 모든 걸로 우리를 시련해  가지고서 영원히 영원히 가도 없어지지 안할 인내,  인내라 말은 뭐이라요? 인내라는 건 참고 견디는 거라 말 하면 안돼요. 참고  견디는 그거는 껍데기요. 인내라 말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을 만들어 낸다  그말이오. 없어지지 않을. 불타지 아니하고 낙제되지 안하고 정죄받지 얀하고  없어지지 아니할 것을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온전한 것을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그러니까,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했으니까 인내라 말과 온전한 말이나 꼭 같은 말 아니요 ?  ‘인내에 온전을 이루라 이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려 함이라’ 이러니까 이 인내와 온전과 같은 종류입니까 다른  종류입니까? 어때요? 여기 OOO 장로님. 같지? 내가 같다고 해석하는 게  틀림없지. 같은 종류라. 인내가 온전과 같은 종류라.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온전을 만들어 내는 줘 너희가 앎이라.

온전은 뭐? 삐뚤어진 건 삐뚤어졌다고 제거하니까 이놈이 와가지고 덤비지  못하고 나갈 거라 말이지. 틀린 것은 또 고쳐야 되겠다 말이오. 모자라는 건  보충을 해야 되겠다 말이오. 또 좋은 것은 단단히 보관해 가지고 강직해 있어야  되겠다 말이오. 이래서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래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시험에 타지 안하고 남는 거, 연단에 타지 안하고 남는 거, 시험에  떨어지지 안하고 남는 거, 또 연단에 타지 안하고 남는 거, 그것을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걸 그래 가지고서 이 현실에서 어떤 시험이 와도 거기에  떨어지지 않는 그거, 어떤 연단이 와도 불타지 않는 그거,  자꾸 그것을 만들어서 온 천하에 뭐 무슨 시험이 와서 참 사이비해서 알기  어려운 문제, 알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를 떡 나타내. 복잡한 문제를 떡 나타냈을  때에 고때에 하나님의 뜻을 명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얼마나  명중하기 어려워.

 이러니까, 사람들은 말이요. 인제 나를 모두 말하기를 ‘목사님은 그저 나이가  많아서 이제 어린 아이가 됐기 때문에 선망 후실이 돼서 무엇을 그 뭐이든지 그  지도받으면 선망 후실이 된다. 자꾸 변해진다. 자꾸 변하고 뭘 또 뭐 기력이  없는데 알겠느냐?’ 이라는데 나는 내가 알아요. 내가 그 작년보다 금년에 비교  못 할 사람이 됐습니다. 금년 일월달보다 이월달에 비교 못 할 사람, 이  사월달이, 삼월달보다 사월달에는 비교 못 할 사람이 됐습니다. 나는 알아요.

내대로는 알아요. 내가 못해도. 왜? 변하는 것은 과거에는 내가 주장이 그거라.

남편이 돼 가지고 아내가 말하는 것이 옳고 남편 말하는 것이 틀렸으면 네 말한  것은 칠십 점이고 아내 말한 건 팔십 점이면 그만 그래 떡 그래 가지고서 ‘아,  나 칠십 점인데 여보 당신이 팔십 점이요 머리 숙이면서 당신이 높습니다.’  이런 그런 못난 남자가 되지 마라.

 만일 네가 칠십 점이고 팔십 점 많했거들랑은 암말도 안 하고 ‘뭐 까짓거  그까짓거 가지고 하느냐?’ 되지도 안한 소리 하고 있다고. 그래 놓고. ‘그라면  뭐 어제다 말이오? 당신 말한 그게 맞다 말이요 이게 맞다 말이오?’ 그래  그라면 ‘내가 말한 게 맞지’ 이래 놓고 막 엎드려 가지고 하나님에게 푸  주먹을 거머쥐고 막 기도합니다. 기도해 놓으면 떡 팔십점보다 나은 구십점이  나왔거든. 딱 발견해 가지고는 나, 왔다 말이오.

 ‘잔소리 말고 자기는 순종이나 해’ 여보 당신 이거 틀리고 내가 말한게  옳은데 자꾸 하느냐고서. ‘그런 소리 하지 마. 그게 뭐이 그게 맞아? 정말로  맞아? 이라니 ‘안 맞습니까?’ 구십 점짜리를 턱 내면서’ 어느게 맞아,  그래?’ 뚱하며 ‘그게 옳습니다’ ‘글쌔. 그저 순종해 순종.’ 이렇게 배짱을  가지고서 이래 하라 했는데 지금은 달라졌어, 내가 또 인제. 달라진 것이 뭐이냐  하면은 그렇게 하면 말이오. 내가 나이가 많아지니까 언제 갈지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말했다가 고 다음시간 말해 보니까 그게 틀렸어. 요게 나아.

얼른 고치요. 자존심도 뭐 아무것도 없이 틀렸으면 하루 열 번이라도 고쳐  가지고서 옳은 걸 찾아갈라 합니다.

 이러니까, 과거에는 그런 배짱 가지고 그래 했는데 자꾸 틀렸으면 자꾸 옳은  것을 하루 열 변 변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 자꾸 변해 쌓는다 이래 하거나 말거나  옳은 것은 그보다 가치 있기 때문에 변한다 소리를 듣고 욕을 얻어먹어도 옳은  걸 따라가야 되겠다. 이래 지금 이라니까 뭐 틀린 거 있으면 빨리 자꾸 옮겨서  변해집니다.

 그라면, 저 OOO장로님 변하는 게 좋아요 안 변하는 게 좋아요? 변하는 게  좋대요. 나와 동감이라. O 장로님도 그렇지? 변하는 게 좋대요. 나와 동감이야.

봐, 이 동감이야.

 이러니까, 이제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안 틀릴 수 없어요. 그러니까 틀린  것을 틀렸다고 알면은 즉시 고쳐야 됩니다. 원수가 옳은 것을 말하고 내가 틀린  것을 말해도 원수 앞에도 머리 숙이고 ‘아이구 선생님’ 옳은 것 말하면 선생님  아니요?  이러기 때문에, 옳은 것의 가치는 자기 인격이나 자존이나 이런 것보다 다 몇천  배 큰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옳은 것을 반대하고 무시하면은 망해.

 과거에 나는 그런 배짱을 가졌어. 그래서 남반들 그래 배웠지? 아내가  팔십점이고 칠십점이거든 그만 그래 ‘아이구 예 잘못됐습니다. 그게  옳습니다.’ 그 배짱 없는 그런 남자 되지 말아라. 그새 가지고 ‘뭣이 그게  옳다 하는 거라, 되지도 않는 소리 해 놓고. 그래 가지고 뭐 다 낭패 될라고?’  이래 놓고 난 다음에는 막 이제 남편 노릇은 해야 될 터이니까 마구 주님 앞에  달라붙습니다. 자꾸 하니까 아니 그 아내가 팔십점인데 구십점이 턱 나왔거든.

 구십점이 나왔으면 떡 그래 가지고서 ‘아, 그 자꾸 세워대고 그러는거라?  그렇게 순종 안 하고.’ ‘당신이 이래 하는 것보다 이게 낫지 안해요?’  ‘그거는 이걸 찾아가는 거 아니가? 이거 지금 내가 이거 생각해 봐. 자기 이게  맞다 말이요? 이렇고 이런데 그게 맞나 이게 맞나?’ ‘어? 당신이 처음에는  그때 그래 안 했는데요. 그래 했으면 내가 그 순종하지. 그래 말 안 했는데요.’  ‘안 하기는 뭘 안 해? 그러니까 좀 시험해 봤지. 그러니 무조건 순종해.’ 이래  가지고서라도 그 좀 남자 노릇을 해라 내가 이래 가르쳤는데 이제는 나도  달라졌어, 인제. 젊을 때는 그랬지마는.

 그저 하루 열 번 병신이 되고 욕을 얻어먹어도 틀렸거든 즉시 고쳐서 옳은 거  있으면 빨리 따라가라. 옳은 거 있거든 빨리빨리 따라가 가지고서 고치라. 언제  죽을 지 모른다.

 이래서, 자, 주님이 우리를 시험하심 이, 가정교사를 데릴 때에 그 가정교사가  학생의 실력과 학생의 그 은밀을 모르는 교사를 데리겠소 학생의 그 내용과  실력을 실상으로 다 알고 단점을 보충해 주고 틀린 것을 고쳐 주고 또 그 옳은  것을 옳다고 인정해 주고 이렇게 해서 그 시험을 낼 때에 사기 돋구는 면도  정확하게 사기 돋구는 면을 시험내고 그 학생의 또 교만을 탁 찌어서 딱  오글트려 가지고서 그만 복종시켜서 고치도록 그래 하고 그런 자, 능한  가정교사를 데리겠소 학생이 실력이 어데까지 인지도 모르고 단점이 뭐인지도  모르고 장점이 뭐인지도 모르고 그런 가정교사를 데리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봐요. 그런 가정교사에게 배우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봐요. 모든 것을 능하게  알아서 다 알아서 단점은 다 그것을 알려 줘서 고치도록 하고 부족한 것은  보충시키고 틀린 것은 고치고 또 좋은 점은 견고히 잡도록 그런 선생님을 원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나도 그런 선생님 원해요.

 여러분들, 우리 선생님은 이런 선생님이오. 주님이 이런 능하신 선생님으로서  우리 현실은 뭐이라고요? 현실은 우리를 시련하는 시련이라. 우리를 시련하는  시련, 시련이라 말은 련자라 말은 연단하는 련(練)자요. 시험은 시험할  시(試)자고.

 그러니까, 우리가 어짜든지 목적이 어데 있느냐?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될라고 하면은, 온전하고 구비하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될라고 하면은 이 사람은 어데서 나옵니까? 이 사람은 어데서 나오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은 어데서 나오는지? 저 O선생이지?  O아니야?  그러면,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이 될라고 하면은 뭣이 온전해야 됩니까? 인내가  온전해야 돼. 인내가 온전해야 돼, 인내가 온전하다니? 남는 게 온전해야 돼.

인내가 온전하다 말은 남는 것이 온전해야 된다말입니다. 남는 것이. 남는 게  온전해야 돼. 온전한 게 남아야 돼요. 다 불타 버리고 남은 거 없으면 헛일이라.

 그거 그런데, 남은 것이 온전하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 남은 것이 하나  밖에 없으면, 시련해 가지고서 남은 것이 하나밖에 없으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그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라 일 프로 밖에 없는  사람이라.

 이런데, 온전한 사람은 온전한 인내를 가진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다. 온전한,  남은 부분이 온전한 사람은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다.

 온전한 것을 남구는 데는, 온전한 것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뭣에서 만들어  냅니까? 온전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데서 온전한 것을 만들어 냅니까,  어데서 온전한 걸 만들어 냅니까? 이제 앞으로 장로될란가 모르겠다. 온전한  것을 만들어 낼라면 어데서 만들어 냅니까, OOO집사님? 뭐요? 뭐라 하노? 온전한  것을 만들어 낼라면 어데서 만들어 냅니까? 시험? 만점이라. 그 ‘시험’ 했소?  네, 그라면 백점이라. 어짜면 장로 될는지 모르겠다. 잘해요. 조심해요. 장로는  이제 덕이 있어야 되는데 영 많이 죽었어, 죽기는. 많이 죽기는 죽었는데 아주  좀, 그라면 뭐 다 와요, 모든 거 다 와요. 예수 잘 믿으면 모든 거 다 돼.

우리가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은 시험에서 만들어 냅니다. 시험은 어데  있습니까? 서울에 있습니까 대구 있습니까? 자기 현실이 시험이라. 현실에서  온전한 사람 만들어 내는 거라. 이리 맞춰도 맞고 저리 맞춰도 맞고 다 진리는  하나라.

 이러니까, 자기 현실은 전부 시험인 것을 깨닫고 현실에서 자기 믿음을  시련하는 현실이니까 그 현실에서 어떤 현실이 와도 남아 있는 믿음이라야 돼.

남아 있는 믿음.

 어떤 현실이 와도 순종도 남아 있는 순종이라야 되지 이 현실에서는 순종 남아  있다가 저 현실에 가서는 순종이 다 깨져 버리면 헛일이라. 이 현실에도 순종  남아 있고 또 저 현실에도 순종이 남아 있고 또 이 현실에서도 예수님 닮아가는  것이 남아 있고 또 저 현실에서도 예수님 본받는 것이 남아 있고 또 저  현실에서도 예수님 꼭 같은 게 남아 있고 나중에 가서 아무 게 와도 예수님의  형상이 변하지 안하고 요동치 안하고 남아 있는 고것이 남아 있는 것이 온전한  것이라. 온전한 인내라.

 이래서, 이거 또 너무 시간 많이 지나가는데, 이거 이제 자꾸 여러분들이  이러니까 여기에서 다 뚫고 가기 어려울 거, 뚫기 어려운 것은 다 뚫어 놨어.

여기에 해석을 하지 못하고 주석들을 대봐도 잘 모른 이거 해석하기 어려운 것은  다 뚫어 놨어. 뚫어놨기 때문에 이제 벗기면 돼. 뚫어놨기 때문에 자꾸 벗기면  그 가운데 진리가 나와요.

 이래서, 또 오후에 증거할지 모르는데 가서 자꾸 요 성경을 읽어 보고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눈감고 생각해야지 눈 뜨고 생각하면 몰라요. 눈감고  생각해야 되고 눈 감고 생각하는 것보다도, 눈감고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눈감고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알기에 좋은 방편이 있는데 그  방편은 뭐이지요? 저 O 장로님. 어렵다. 명상하면서? OOO 집사님. 어데 있어?  실행하면서. 실행하면서 이거 이제 굴복해. 실행하면서 그거 백점이고 저기는 뭐  저 한 칠십, 점이나 될까?  이랬는데, 그래도 ‘아 이거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만 이래 그라면 못써. 저거  아내는 백점 되고 나는 칠십점이라 해?’ 막 주먹을 거머쥐고 ‘주여! 주여!’  막 하며 자꾸 달라붙어. 달라붙으면 주님이 나중에 가서 떡 그 백점 이상짜리를  떡 준다 말이오.

 사람은 속에 창자가 있어야 돼. 그래 그거 그 말 있어요. 범은 불 맞은 자리 와  죽는다 해요. 불 맞은 자리 와 죽는다 해. 범은 맹수이기 때문에 속에 그 참  강한 게 있기 때문에 불 맞은 데 도망가지 안 하고 도로 기어들어가 가지고 거기  들어가 죽는다 하는 거라. 이래 사람은 속에 창자가 있고 강한 게 있어야 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 도)  주님, 외식하는 우리의 모든 거짓된 것을 다 제하시고 영원히 보존될 주님에게  인정받을 것으로만 채워 가고 자라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진실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또 이렇게 많은 형제들을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험한 세상 사망이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영생을 이루어 가는 이 비밀을 저들에게 알게 하사 믿음에 굳게  서서 주님 인도함을 딿는 여기에서만 영육의 성공이 있는 것을 확신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이렇게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 현실에 불만없이 온전히  기뻐하면서 달라들어 구원을 이루어 가는 저희들 되게 하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주님 만날 때까지 주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여 구원하는 데에 이 불이 점점 뜨거워지고 계속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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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5 현실을 다스리자/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2. 7. 8.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5424 현실을 다스려라/ 창세기 2장 15절-3장 6절/ 1984. 3. 16.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5423 현실을 다스려라/ 로마서 8장 5절-6절/ 1982. 7. 15.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 현실은 시험/ 야고보서 1장 1절-4절/ 1988. 4. 24.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5421 현실은 내것이다/ 요한복음 1장 1절-18절/ 1982. 7. 11.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5420 현실에서 힘쓸 것 다섯 가지/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 1980. 7. 21.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5419 현실에서 하나님 수입/ 창세기 14장 23절-15장 1절/ 1981. 7. 8.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5418 현실에서 지킬 법칙/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1. 5. 15.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5417 현실에서 이룰 구원과 그 방편/ 야고보서 1장 2절-4절/ 1983. 8. 2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