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다스려라


선지자선교회 1982년 7월 15일 목새

 

본문 : 롬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우리는 날마다 변하는 현실을 만나면서 걸어갑니다. 자기가 장소가 같고 또  접하는 사람들과 사물이 같으니까 같은 처지에서 사는 것으로 그렇게 아는  어두운 사람들 있지마는 실은 그 장소, 그 사람, 그 사물이라도 때마다  바꾸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은 자꾸 변해지고 바꾸어 가져지게 됩니다. 자기 현실을  변하는 줄 모르고 변하지 않는 그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벌써 그 현실에게  종이 되어서 죽은 생활 하고 있는 사람이오. 만일 자기가 거기에서 산 생활을  하려고 하면 현실은 그 회사, 그 집, 그 상점, 그 사람들 이렇게 접하지마는  살은 그 현실은 거기에 껍데기만 같지 알맹이는 점점 바꾸어져서 같은 현실이  없습니다. 자꾸 바꾸어집니다.

 인간의 마음의 구조도 바꾸어지고, 마음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성품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또 사람이 변해지니까 사건도 이렇게 변해졌다가 저렇게 변해졌다가,  그러면 물건도 따라서 그래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현실이 변해간다는 그것을 발견을 해야 됩니다. 자기 현실이  변해간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언제든지 같은 현실이라 하는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 그거요. 죽었기 때문에 그것이 변해지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껍데기로 주의할 것 '내 현실은 이 시간도 바꾸어졌다 또 다른  현실이로구나. 그러면 이 현실에서는 내가 할 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미리  생각하고 살아야 되는데 그것을 생각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뭐 세월은 항상  있는 세월, 또 자기 형편 사정은 바꿔지지 않고 언제든지 그 형편 그 사정 그  처지' 이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 현실에 대해서 완전히 무식한 사람이 돼 버리고  현실에 대해서 죽어도 살아도 그것도 없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승리했는지  패전했는지 그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사람이 제인 불쌍한 사람이오.

 자기 현실이 바꾸어진다는 그것을 자기가 깨달은 사람은 자기에게 '낭패났다.

낭패를 당했다.' 놀랄 만한 그런 현실이 오지 않습니다. 놀랄 만한 현실이 오지  않는다 그말은 아무리 놀랄 만한 그 현실이 와도 자기는 벌써 그 현실을 여러번  겪었습니다.

 겪어서 변화됐기 때문에, 천 미터 산을 올라간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한 자욱씩  또박또박 걸어 올라갔으면 마지막, 천 미터 되는 마지막 발자욱도 내나 한 두  자만 건너뛰면 마지막 절정에 올라가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힘들지 않고 능히 올라갈 수 있지마는 천 미터를 제가  한 자욱도 걷지 않고 있다가 한꺼번에, 한꺼번에 천 미터 높이를 이래  올라가려고 하면 그게 되겠습니까? 안 된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현실이 어떤 낭패됐다 하는 그런 현실이 오기 전에 벌써  그 현실을 여러번 겪었다 말이오. '이 현실이 바꿔지는구나. 변해지는구나.'  그러면 그 현실이 변해지는데 그 현실 변해지는데 따라서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올바른 걸음을 걸어서 처리 해 나갔다면 그 다음에 제 3자들은 볼 때에 '그  사람의 형편이 아주 변해졌다' 하지만 변해짐이 없다 말이오. 그 변해짐이  조금씩 변해져서 늘 거기 대해서 대비해 나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이것은 좀, 사람이 참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야  돼요. 하고자 하는 그것이라야 되지 하기 싫은 그거는 안 됩니다. 하고자 하는  것이라야 되지. 하고 싶도록 하기 위해서 요래 하는 것이지 하기 싫은 것은 안  됩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도 합니다. 인간이 그 힘이 하나님의 요구에  죽지 아니할 것 썩지 아니할 것 그걸 못하지 그 안의 것은 인간들이 다 할 수  있다 말이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뭐 공부든지 명예든지 행락이든지 죄를 짓는  것이든지 뭐이든지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어느 틈으로 어깨 해도 제가 합니다.

막는 뭐 열 명이 한 사람 막지 못합니다. 그거는 어떻게 해도 합니다.

 이런데 이 뭣을 신앙 생활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될 터인데 아무나따나 '되는  대로 하자' 이래 놓으니까, 또 신앙 생활 하는 것을 이것을 억지로 끌려서 이래  가니 암만 끌어 가 봤자 놓으면 뒤에 되돌아가는 것이 더 심해집니다.

 새란 놈이 몇 해 동안을 그 제 새집에 있어도 거기 있는 게 항상 제가 있고  싶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문만 열리면 어디로든지 날아가 버립니다. 날아가면  저는 죽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기회만 있으면 얼마든지 달려 버리고  마니까 그것은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고 싶어야 돼요.

'낫고자 하느냐?'

 이 말도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사람의 현실이라는 것이 환경인데, 현실은  날마다 변해간다. 변해가는 그것을 보는 눈이 있어 변해가는 그것을 착착 처리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무슨 놀랄 만한 이상스러운 무슨 그런 일이 오지를 않는다.

낭패될 그런 일이 절대 안 온다.

 낭패될 일이 안 오다니? 낭패될 일이 안 온다는 말은 낭패될 그런 일을 닥치지  않는다는 말이오, 닥치나 그것이 낭패될 일이 아니고 도리어 그것으로 이제  수입을 보는 일이 된다 말이오? 어떻습니까? 시험을 닥치지 아니합니까? 그  시험을 잘 이용해서 그 시험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봅니까?  (전부 조네, 중간반 반사들은 거의 다 졸아, 보니까. 나는 그래 말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왜 조는 거야, 졸기를? 인제 죄를 지었다고 봐. 죄는 뭐 무슨  뚜렷이 일반 세상이 아는 죄만 죄입니까? 삐뚤어진 생각이나 행위가 다 그것 다  죄이지.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안 오면 뭣 합니까?)  이러니까 자기가, '행인과 나그네라' 말한 것은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습니다. 걸어가면 어째 걸어갑니까? 현실 현실, 요 현실에서 그 다음  현실 그 다음 현실로 자꾸 이래야 걸어가는 것이지, 현실이 바꾸어져야 걸어가지  현실이 바꾸어 오지 않으면 걸어갑니까?  자리는 그 자리 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걸어갈 수 있어? 여기에서 이 자리는,  요 알았는 자리 요 자리서 변동 안 하고 이래 있는데 자기가 열 시간 지나간다고  저거 집에 갈 수 있소? 여기에서 요 의자에 앉았다가 요 나서고 또 한 걸음.

이제 밟았던 자리는 뒤로 두고 새 자리를 밟고 새 자리 밟고 이래 밟아  가지고라야 집을 가는 것 아닙니까?  그게 뭐이냐? 새 자리 밟는 것과 같이 자기 현실이라 말이오. 또 딴 현실을  밟고 딴 현실을 밟고, 현실에서 현실, 이 현실에서 다음 오는 현실로 옮기고  다음 현실에서 또 그 다음 현실로 옮기고 이러는 것이 자기 생활이 걸어가는  것이요 자기의 모든 지능이 걸어가는 것이요 그것이 점점 자기가 자라가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에 자기의 현실이라는 현실이 변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죽은 자입니다.

송장은 변하지 않소. 송장은 그거는 무덤에 묻어 놓은 대로 그대로 둬 그 시간도  그것 그 다음 시간도 그것, 이제 썩는 것뿐이지 딴게 없어. 산 사람은 그렇지  않아. 자꾸 현실이 변해져 간다 요걸 여러분들이 발견하도록.

 '변해져 가다니? 나는 꼭 같은 현실인데.' 저거 내외 단간방에서 가내공업을  하고 있습니다. 가내공업을 하고 있소. 있으면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거기에서도 한 시간도 그대로 계속은 없습니다. 거기에서도 변해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해지고, 뜻이 변해지고, 말이 변해지고, 또 모든 대외 접촉이  변해지고, 들어오는 소식이 변해지고, 자꾸 변해지고, 자기 신체상 변해지고  모든 게 자꾸 변해진다 말이오  '변해진다, 요렇게 변해지는구나.' 변해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변해지니 여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요 변해지는데 요것을 바로 정리 처리해야 되겠다'  하면서 하는 사람에게는 낭패될 일이 닥치지 않아.

 낭패될 일이 닥치지 않는다 그 말은 낭패될 그 사건이 오지 않는다는 말  아니오. 암만 와 봤자 아예 그거는 미리부터 자꾸 이래 돋파 나갔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에게 낭패될 사건이 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수월하고, 내나 과거에  평소에 닥치던 그 변하는 것과 같은 그렇게 변해 나가는 것이지 크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면 천 미터 길을 올라가는 사람이 자꾸 한 자욱씩 밟아 올라 갔는데  마지막에는 한 자욱 남았어. 이제 한 자욱이면 찍해야 많이 올라가 봤자 높은 산  올라가면 한 자 더 올라갑니까? 한 자 반이나 올라갈런지? 자 반 올라가면, 자  반 올라가면 그 산 절정을 올라가는데 자기에게는, 밑에 사람들은 '이제 천  미터니까 위에 절정이라면 저렇게 높으다. 감감하다.' 사람들이 놀라지마는 이  사람은 내나 절정이 지금 남아 있기를 얼마 남아 있습니까? 얼마 남아 있어? 자  반밖에 안 남았어. 자 반 그것 이러니까 절정 올라간다 그말이오.

 그렇게 높은 데이지만 미리부터 밟아 올라갔기 때문에, 그것이 안 밟아 올라간  사람은 볼 때 '높다' 그는 날아 올라가려 해도 안 되고, 당장에 못 올라가지 뭐,  암만 해도.

 이렇지마는 밟아 온 사람은 그래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현실이 자꾸  바꿔 올 때 바꿔 오는 그 현실 현실을 자기가 벌써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비책을 해서 나간 사람은 다른 사람이 다 볼 때 '저 사람 큰 낭패 닥쳤다'  해도 그걸 미리부터 다 대비해 나왔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어려움도 되지 않고  손해도 되지 않고 다 자기가 얻을 유익을 거기에서 완전히 얻어 나간다 그거요.

 이것 하나만 해도 알려면, 이것 모르고 평생 사는 사람이 아마 백의 70이나  80이나 될런지 모릅니다. 사람은 허무하요. 너무도 허무하게 삽니다. 죽은  송장으로 사요. 너무 허무해. 이것을 알고 사는 집사 장로 목사도 많지를 못할  것입니다. 또 안다고 해도 실제로 이것을 걷고 가는 사람은 얼마나 드물런지  모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환경은 그대로 있는 거는 하나도 없다. 바꾸어진다.

바꾸어지니까 그게 내 에덴동산이니, 내가 사는 처소이니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내가 다스릴 것이어야 돼. 다스려야 할 것이라 말이오.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걸 다스릴 수가 없겠소?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낭패당하는 그것은 자꾸 바꿔 오는 그 현실을 그대로  해결짓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게을부리고 이래 있다가 이제 그 일이 종착 끝이  다 왔고 끝나려고 지금 턱 나서니까, 미리 아는 사람은 그것 다 대비해서 그런  것이 오지마는 꿈쩍 없고 오히려 그것으로 큰 성공을 하고 유익을 보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자는 그걸로 꽝 넘어져 버립니다. 멋모르고 벌로 덤비는 사람이오.

눈이 없는 소경이라.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바꾸어 온다. 여러분들이 요것 들어도 그걸 새김질해서  자기가 실감하고 또 실제로 그 행동이 개시되는 데에는 얼마나 순서를 겪고 힘을  써야 됩니다. 그러기에 새김질이라는 것이 자꾸 그런 게 새김질이오.

 현실은 바꾸어 온다 하는 걸 깨닫고, 그런데 사람들은 현실이 바꾸어 오는데  현실이 바꾸어 오는 줄도 모르는 사람은 말할 것 없고, 그건 죽은 자이고,  현실이 바꾸어 오는 줄 알고 '현실에게 내가 피동되지 않아야 된다. 현실에게  피동되면 현실에 종이 되는 것이니 현실이라는 것은 다 죽어 있는 것이요 산  것이 아니다.'  현실은 에덴동산인데 에덴동산에게 피동되면 죽지 않습니까? 인류 시조가  에덴동산에게 피동돼서 죽었다 그말이오. '에덴동산을 다스리라' 현실을 자기가  지배한다 그말이오. 현실을 지배해 현실을 다스리면 현실을 지배한다 그거요.

 현실을 자기가 다스려야 되지 현실에게 다스림을 받으면 안 된다. 현실이 슬픈  현실이 오면 자기가 슬퍼지는 것은 거기에 다스림 받는 것입니까 그것이 슬픔을  다스리는 것입니까? 어떻소? 다스림 받는 것, 다스림 받는 것이지.

 현실이 깜짝 놀랄 일이 오니까 그만 자기는, 현실이 놀랄 일 오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만 놀란 사람이 돼 가지고 야단을 지깁니다. 그러면 현실에게 다스림  받는 사람입니까 현실을 자기가 리드하는 사람입니까? 다스림 받는 사람이지 그  사람 되지 말라 그말이오.

 또 현실이 아주 자기를 이렇게 추켜 올려서 영광스러운 현실이 옵니다.

이러니까 그만 사람이 우쭐해 가지고 어쩔 줄을 모르며 우쭐해집니다. 그 사람이  현실을 다스리는 사람입니까 현실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입니까?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런 것을 해서는 안 된다 그거요. 현실에게 지배를 받으면  안 된다 그거요. 현실을 내가 다스려야 되지.

 모든 행복이 자기에게 있고 불행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보면 알아요. '저거는  망하겠다' 이렇게 망하겠다 저렇게 망하겠다. 자기 망할 것은 몰라도 다른 사람  망할 것은 보면 알기가 쉬워. 이러기 때문에 '남을 보아 깨쳐라. 허다한  간증자들이 있다.' 자기 망할 것은 모르지만 다른 사람 보면 '저래 행동하니  저것 망하겠다. 저런 사상이니 망하겠다. 저런 정신이니 망하겠다. 저 사람은  저것 때문에 망한다. 저 사람은 저것 때문에 망한다.' 환하게 볼 수 있다  말이오. 자기에게 대해서는, 왜?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 중심이라는 원죄 그놈이  들어서 가리워 가지고 자기에게 대해서는 모르게 만듭니다.

 이러니까 현실에게 다스림 받으면 안 된다. 그러면 현실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다스리느냐? '생각해 보자.' 현실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현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현실을 전부 극복하고 이용해 가지고 성공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성공한 사람은 현실을 생각해서 사는 사람이오. 생각해서 사는  사람. 생각 없이 휘떡거리는 사람은 그 사람은 그걸로 망한다는 걸 환하게 볼 수  있다 그거요. 현실을 그 사람이 생각해서 현실에게 지배받지 않고 현실을  이용합니다. 그 사람이 믿는 사람이든지 안 믿는 사람이든지 다 성공합니다.

 안 믿는 사람은 현실을 생각할 때에 뭘 가지고 생각하느냐? 육신 가지고  생각합니다. 육신으로 생각하요. 육신 가지고 생각해. 육신 가지고 생각한다는  그 육신은 무엇을 가리킨다고 말했지요? 네, 마음과 몸의 생각이라는 이것이  맞은데 그러면 또 못 알아듣는다 그거요. 그것은 하나님 없는 인간 생각이라  하면 그만 쉽습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끼리 생각하는 것 그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천 명이 생각해도 만 명이 생각해도, 억억만 명이 생각하면 그까짓 거 다 죽은  것들인데 죽은 것 생각하는 것이지 무슨 거기에서 나올 거요?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라' 육이라 말은 인간끼리라 인간은 사람의  마음과 고기덩어리 둘이 합한 것이 그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게 육신이오.

 '육신의 생각' 그러면 하나님 없이 인간 생각만 가지는 그 생각은 많이  생각하든지 적게 생각했든지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그것은 다 망하고 죽는  것뿐이라. 그러면 생각 없이 가는 사람은 환경에게 종이 돼 가지고 세상에서 종  노릇 하게 되고, 그 생각을 육신의 생각이라도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이용해서 세상에서는 왕 노릇 합니다. 세상에 잘사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 다  생각 가지고 사는 사람이오. 환경 되는 대로 사는 것 아니오.

 결혼하는 것도 좀 생각해 가지고 사는 것이지 썩은 제 생각대로 이래 가지고,  어떤 자는 낯빤대기만 빤들빤들하면 그것만 보고 갑니다. 뭐인지도 모르고, 키만  말꿈하면 또 좋대요. 간들간들하면 좋대요. 세상 그 인간 생각 많으면 좋답니다.

그게 망할 장본입니다. 그것이 너는 한정이 어데까지라 하는 것을 한정한 수가  있는 것이라.

 사업도 다 그래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그 성공은  성공해도 망할 성공이요 죽는 성공이라 그말이오. 예수밖에 있는 것은 전부 망할  성공이요 죽을 성공인데, 그 성공 하는 사람도 어떻게 하는 사람이냐? 자기의  환경이 변해간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거기에 피동되지 않고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이용해 먹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세상 성공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공해 봤자 죽을 성공, 성공해 봤자 죽는 성공, 죽을 성공 죽는 성공인데,  그러면 우리는 셍각이 죽는 생각 있고 망하는 생각 있고, 생각이 참 사는 생각  있고 평안한 생각 있어 그것도 생명과 평강화 시키는, 거기에서 생명과 평강을  수입하는 이런 생각이 있으니 그 생각을 가리켜서 무슨 생각이라 했습니까?  ○○○선생? 영의 생각.

 영의 생각이라 말이 우리 중생된 영의 생각이라 말이오. 하나님 영인 그 영의  생각이라 말이오? 하나님 영, 그냥 영이라 말하니까, 사람 영도 영이라 하나님  영도 영이라 같은 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사람 영으로 알기 쉽다  말이오. 하나님 영입니다. 하나님 영, 그는 성신의 감화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라 그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 생각은 뭐 해 봤자 세상에서 왕 노릇 하다가 죄 많이 짓고 죽고 또 생각  안 하는 사람은 환경에 종이 되기 때문에 인간의 종 지 종이 돼 가지고 평생  천물로 이용만 당하고, 천물로 이용당하는 그것이 오히려 죄로써 세상을  다스리는 자보다는 낫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가 못나면 자식의 거름이 되고  부모가 잘나면 자식에게 서리가 된다 그렇게 말해 잘난 사람의 끝이 없다 이렇게  말해. 그 까짓 생각은 뭐 해 봤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선지자는 돈을 위해 점치고' 믿는 사람들이 이 지혜의  명철, '집을 깨끗하게 쓸고 나니까 악한 것이 일곱이 들어왔다' 인간이 모든  심령과 의지를 이것을 깨끗하게 정리하니까 안 믿을 때보다 그 사람이 훨씬 좀  슬기로운 사람이 됐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예수 잘 믿으라고  했는데 요것 가지고 순전히 이 세상 것을 생각하는 육신의 생각을 가집니다.

그자는 배나 지옥의 자식이 돼.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시골서 자기가 제일 천꾸러기로 살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네가 여기에서 믿음 지키는 데는 지능을 좀 받아야 되지 지능 안 받으면  여기에서 천꾸러기로 사는 사람이 정직하게 살려 하니까 더 천꾸러기로 살게  되니 지능을 줘야 되겠다' 지능을 줬다 말이오. 지능을 줘 놓으니까, 예수 믿기  전에는 그 사람이 그 동리에서 아주 밑에 발치 가던 자가 지능을 주니까 그  동리에서 머리가 된다 그말이오.

 가만히 보니까 그 동리에서 제가 척척 이래 생각해 보니 소견도 있고 의견도  있고 이래 좀 지혜롭고 이러니까 '내가 못난 게 아니라 내가 잘났구나. 내가  잘났으니 내가, 잘난 내가 이 동리에 있을 게 아니라 좀 도시로 살살 기어나가  봐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뭐 하러 기어 나가느냐? 신앙 생활하러 기어  나가느냐? 아니야, 돈을 위해서, 어쩌든지 그것 가지고 어떻게 좀 육신이 잘살아  볼려고 기어 나간다 말이오. 기어 나가 가지고 죄만 짓고 망하고 떨어진다  그거요.

 이런데 어떤 사람은 '내가 하나님이 지능을 주셔서 이제는 과거와 같이 그렇게  마구잡이로 살지 않고 의롭게 살아도 이 동리에서는 내가 천대 생활 받지 않고  여기에서는 잘살 수가 있다. 내가 예수 믿기 전에는 여기에서 의롭게 살지  않아도 못살았고, 의롭게 살려 했으면 더 망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지능을 나에게  줘서 이 동리에서는 내가 의롭게 살아도 밥먹고 옷입고 잘살 수 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여기에서 죄짓지 않고 의롭게 살라고 하나님이 이와 같이 해 주신  것이니까 이 자리에 살아야 되겠다.' 이러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이고 그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위대한 사람이 될 수가 있다 그거요. 얼마든지 위대한  사람이 될 수가 있어.

 이런데 사람들이 주시면 그것 가지고 '돈을 위해서 점친다' 말하자면 자기의  모든 기관, 마음이나 고기덩어리나 이 기관을 깨끗하게 해 주시니까 이것을  가지고 육신의 생각에 이용해서 육신의 생각 가지고, 이제 이것 가지고 인간의  생각, 인간의 생각,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보자. 이 일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어떻게 말했는가 보자. 모든 인간들의 의사가 어떤가? 여기에 대해 인간들의  의사가 어떤가?' 인간들의 의사 인간들의 생각 이것만 가지고 자꾸 공부를 하고  달통을 해 가지고 하니까 그게 많아지지. 인간의 생각이, 육신의 생각이  능합니다. 육신의 생각이 범위 넓습니다. 아주 육신의 생각이 빠릅니다.

 빠르면, 빠르든지 느리든지 많든지 적든지 마지막에 결론은 뭐입니까? 그게 뭣  만들어 냅니까? 그게 뭣 만늘어 내요? 저 ○집사 한 번 대답해 봐요. 그게 뭣  만들어 내지? 사망 만들어 내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사망밖에 만들어  내는 게 없어. 그것만 만들어 내. ○집사, 어떻지? 사망 만들어 내지? ○집사,  육신의 생각 많이 하다가 볼기 많이 맞았지? 이제는 육신의 생각을 하지 말라  그말이오. 되는 것 같은데 망하거든 성공 같은데 실패요. 되는 것 같은데 망한다  그거요.

 하나님이 의지도 좀 안 믿을 때보다 강하게 해 주고, 또 명철도 해 주고,  지혜롭게도 해 주고, 이렇게 조성할 수 있는 것도 해 주고 이러니까 이것 가지고  성령의 생각을 사용해야 될 터인데 이것 가지고 육신의 생각을 사용하니까 안  믿는 사람보다도 툭툭 뛰어나지. 뛰어났으나 그 결과는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망할 길을 가니까 사랑하는 자에게 매를 때려서 가시로 남으로  막으니까 가다가 팍 꺼꾸러져야 안 가지. 왜 낭패를 당하느냐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현실이 바꿔 온다. 그 현실에게 다스림 받지 말고 현실을  다스려라. 현실을 다스리려면 네가 생각해야 된다. 생각에는 둘이 있다. 육신의  생각으로 생각하면 자꾸 망하는 길을 기어 들어간다 성령으로 생각해라.

성령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생각으로 그것을 생각하라 그말이오.

 하나님 생각을,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생각을 가질 수가 있는가? 그것은 자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하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신앙 양심이요,  그것이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대로 생각하려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생각을 찾아 가는 것이라 말이오.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가는 것이니라' 베드로전서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해 본다 말이오. '요런 현실  닥쳤을 때는 하나님 말씀이 뭐라고 했노? 하나님 말씀이 그건 그래 하지 말라  했다.' 그러면 그대로 하면 되는 거라.

 그대로 왜 안 하느냐?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낭패된다' 이리 보여지니까 '이때  이것만큼은 하나님 말씀대로 해서는 안 되겠고, 말씀대로 해서는 안 되겠고,  이때는 요번만큼은 사람의 생각대로 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망쳐지고  망쳐진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그래 가지고 '돈을 벌었으니까 성공이다.' 돈 그놈 때문에 저는  저도 망하고 가족도 망하고 완전히 다 망해버려! 왜! 영원히 망하니까 망했지요.

돈 때문에 영원히 망했으니까 망했지 돈 때문에 구원이 망했으니까 망했지.

어리석소.

 이러니까 자기가, 생각 중에는 두 생각이 있으니까, 한 생각 이것은 망할  성공만 하고 망할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잘돼 봤자 못돼 봤자 다 사망뿐이다,  육신의 생각으로 해 가지고 처리한 것은 전부 사망뿐이지 다른 게 섞인 것이  없습니다. 사망을 당하는데 당장 당하는 것 늦게 당하는 것 이것뿐이지, 일생  동안 잘 먹고 잘 입고 부자로 살았으니까 예수 믿어 성공했습니까?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 불쌍한 자 있습니다. 가련한 자 있소.

 그저 그것을 몰라 주면 튀어나갈 것이기 때문에 교회 들어오면 '예예 예예'  이러고 있지마는 '너는 송장이라, 너는 송장이라, 불쌍하고 가련하다' 이러니까,  대번에 그것 병을 고치려면 안 되니까 한 마디씩, 가끔 가다 한 마디씩 하면 팩  돌아가 가지고 분해 갑니다. 그것 많이 하면 영 그만 원수가 돼 버리지만  조그매만 해서 주사를 조금만 줍니다.

 아, 분해 가지고 이래 쌓더니마는 좀 있으면 차차 차차 그게 치료가 돼서 그게  인제 굴지가 메일 상바르면, 메이면 또 주사를 한 개 딱 놓습니다. 또 놓으면 또  이렇게 대립이 돼 가지고 흔듭니다. 흔들어도 '가만히 보자' 더 말하면 안  됩니다. 가만히 둬 두면, 요게 차차 차차 살살 달개면 치표가 돼서 인제 그  굴지가 메어지면 또 한 개 주사를 딱 놔 버립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세월을 걸쳐서 이래 하면 그 사람이 이제는 주사를 맞아야 될  줄 알고, 이 주사를 맞아야 살 줄 알고 그럴 때에 감사할 줄 알고 이래 가지고  사람이 변해지니 사람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의사가 돈을 보고 의사 노릇 하는 사람은 그 사람 목 말라 못 사요. 사람 병을  치료하는 그 재미로 삽니다. 그래프를 딱 정해 놓고 보니까, 그 사람들 보니까  어제보다 뭐 나아지는 것이 참 아이들 말로 적게 말하면 눈꼽재기라.

눈꼽재기만치 나아져. 나아지니까 '됐다' 보니까 조금 조금 이래 가지고 그것이  많은 세월 걸쳐 가지고 이리 돼지니까 이리 돼진다 그말이오.

 그 재미에, '요걸 써 보니까 좀 나아지고' 이러니까 사람 병 고치는 데 취미를  붙이고, 인간을 구원하는 데 취미를 붙이고 거기다가, 인간 영생의 구원을  이루는 데 취미를 붙여서 하는 사람은 참 의사직을 해도 거기에서 목사 노릇  하고 있는 것이요, 장로 노릇 하는 것이요, 선교사 노릇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든지 복되고 행복되고 기쁘고 즐거울 것이 막 꽉 찼지마는 제가  들어서 다 막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영으로 생각하라. 그것은 내가 진리로 생각하려고 진리대로 생각하는  것은 성령의 생각을 찾아가는 것이라. 그것이 신앙 양심의 생활이라. 그러면  성신의 감화가 가르쳐 줘. 가르쳐 주면 그 분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그대로  행하니까 만가지가 성공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 권찰회요? 네, 오늘 아침에 좀 일찍 합니다. 10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

 이 권찰회가 '아이구 또 권찰회 시작한다'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성령의  지혜를 얻지 못해요. 권찰회 할 때는 전부 성령의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각으로 세상을 살고, 성령의 생각으로 자기 현실을 탁탁 돋파서,  현실을 착착 끊어서 나가는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니까 요것을 가치를 알고 맛을  누리는 사람은 얼마 안 가서 되는데 그만 조금 배우다가 말아.

 권찰 가운데 참여하는 사람 가운데에 처음에 들어와 가지고도 그걸 모르고  짜증지기는 사람 있고, 그것을 맛을 알고 한 두서너 달 보는 사람 있어.

○○○권찰님이 권찰회 들어오더니마는 하, 눈을 똑 바로 해 가지고 '보자.'  요것이 막바로 인간 처리요, 신앙 행정이요. 성령의 생각이니까 아주 눈을 딱  그래 뜨고 마구 들어서 하나도 빠지지 않으려고 이래 듣는데 내 보기에 '저  사람이 저렇게 들어서 자라가면 좀 있으면 굉장하겠다.'  이랬는데, 한 서너 달 갔는지 대여섯 달 갔는지 그러고 나더니마는 그만  '이제는 됐다.' 아직까지 30점도 안 됐는데 '됐다.' 이러기 때문에 그 처리하는  것이 다 바르지를 못하고 삐뚤어진 게 맘이 있다 그말이오.

 또 그걸 듣지 아니하고 자기 인간 생각을 가지고, 명철 가지고 하는 사람은  그때는 줄은 것 같은데 뒤가 틀립니다. 그러기에 그것도 '권찰회 가 가지고 또  성령의 생각을 또 배우자.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성령의 생각으로 처리하는 건  어떻게 하는고 배우자.' 소망을 가지고 달려들면 귀중한 시간일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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