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다스리자


선지자선교회 1982년 7월 8일 목새

 

본문 : 창 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를 인도하여 머물게 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인도하여 머물게 한 곳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해서  머물게 하십니까? 현실이라는 현실로 인도해서 현실에 머물게 합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 삽니다. 자기가 어데 가든지 자기 현실에서 사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을 상징해서 표시한 것입니다.

 동산에는 먹지 말아야 할 과실도 있고 또 먹어야 할 실과도 있었습니다.

먹으라고 하신 실과는 먹어야 살고, 먹지 말라는 실과는 안 먹어야 죽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현실에는 우리가 먹어야 할 것도 있고 먹지 아니하여야 할  것도 있습니다.

 성경에 먹는 것을, 인격이 먹는 것을 그 행위를 가리켜서 먹는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생명 양식이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은 사망케  죽는 양식입니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 두 가지 있는데 그 두 가지를  지키지 아니함으로 실패했습니다. 성경에는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어서 죽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선악과 먹고 죽는 것보다 앞서 벌써 선악과를 먹고  죽도록 한 그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라고 했는데 동산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지키지 아니함으로 뱀이 들어와 가지고 그렇게 먹지 말라는 실과를 먹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제일 중요한 것은, 에덴동상을 제일 먼저 말씀하시기를 다스리고  지키라 했는데, 자기 현실을 다스리는 것이 우리의 생활 중에 제일 중요하고,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자기 현실을 지키는 것이고, 세 번째 중요한 것은 자기  현실에서 하라는 것을 하는 것이고, 네 번째 중요한 것은 자기 현실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가 중요한데도 그 중요성에 대해서 순위가 있습니다. 일 순위를  범하면 이 순위 범하는 것은 필연적이고, 이 순위를 범하면 삼 순위 범하는 것도  필연적이요, 삼 순위 범하면 사 순위 범하는 것도 필연적입니다. 필연적이라  말은 안 해도 그대로 틀림없이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일 순위만 범하면 그  나머지기는 반드시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 순위는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것이 일순위인데,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현실을 자기가 지배하고, 다스리고 지배하고 현실에게  피동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자기가 그것에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 피동을  현실에게 대해서 행하는 것이 그것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동산을 다스리라' 하신 그 명령대로 하는 그것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을 만났을 때에 현실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현실에 행하는 것이 그것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을 어떤 현실을 만나든지 그 현실에 내가 하나님이 나에게  움직임의 법칙으로 준 그 법칙대로 내가 움직여 그것에게 대해서, 현실 그것에게  대해서 현실을 피하는 것도 아니요, 현실을 물러가게 하는 것도 아니요, 현실을  내가 정복하는 것도 아니요, 그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동산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현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스리는 것의 반대는 어떤 것인가? 그것에게 피동되는 것이 다스리는  것의 반대입니다. 피동되는 것의 반대는 그 현실이 나에게 대해서 칼을 들고  오든지, 달콤한 사탕을 들고 오든지, 뭐 번쩍 번쩍한 것을 들고 오든지, 사자가  오든지 뭐이 오든지, 나는 그것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법규대로 행하는 그것이  우리가 제일 첫째로 할 일입니다.

 대개는 보면, 현실 중에도 여러 가지 현실이 있는데 그 현실은 한 가지 두  가지로 된 것이 아닌데, 그 현실에 어느 것 한 가지만 자기가 행하고 다 믿음을  지킨 줄로 아는 거기에서 실패가 됩니다.

 학개서에 보면 성전 기초를 내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한없는 축복을 주셨는데  그 안 되는 것은 자기 옷자락에 거룩한 제물을 싸고 있으니까 그만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 전부가 다 깨끗하고 옷자락만 닿은 데는 다 깨끗해지는 줄로 이렇게  계산하고 암만 더러운 것이라도 그것 하나 깨끗하면 깨끗한 줄 알았는데, 하나님  계산은 '깨끗한 거는 고것 하나만 깨끗하다. 더러운 것은 하나 더러우면 전체가  더럽다 이렇게 계산했는데 그 계산이 틀려서 실패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씨름은 어데 있느냐? 현실에게 피동되느냐 그 현실이야 뭐  현실이 무슨 현실이든지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거기에 대해서 행하느냐 그것이  인제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러면 현실이 어떤 것인지 그걸 알아야 그것에게 대해서 피동되지 아니하지  현실이 뭐인지 모르면 알지도 못하니까 현실에게 피동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은 이 물질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현실은 첫째 사람이 거기에 들어  있습니다. 또 사건들이 들어 있습니다. 또 물건들이 들어 있습니다. 또 자연들이  들어 있습니다. 또 거기에는 장소가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뭐 그 외에 별별 큰 소리 작은 소리 소리들도 들어 있겠습니다.

이것이 합해서 현실이라 우리는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에는 사람이 들어 있다, 사람이 들어 있으면 그 사람은 내 현실  속에 들어 가지고 어떤 작용을 합니까? 사람은 어떤 작용을 하지요? 사람은  첫째는 사랑하는 작용 하겠습니다. 미워하는 작용 하겠고, 웃는 작용 하겠고,  성내는 작용 하겠고, 나를 침노하는, 나를 상해하는 작용을 하겠고, 나를  유익되게 북돋우는 작용을 하겠고, 나를 허는 작용을 하겠고, 또 내게 대해서  온갖 그 언행심사의 작용을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현실에 요소로 들어 있는 그 사람이, 사람 그것이요 현실에서는 웃었다가 조  현실에는 성냈다가, 또 요 현실에는 나를 대적했다가 조 현실에는 나를  환영하다가, 요 현실에서는 나를 꾀우다가 조 현실에는 나를 달래다가, 요  현실에서는 나를 침략하다가 조 현실에는 나를 삣고 깎다가 오만 작용을 합니다.

 그 사람이 말을 하다가. 그 사람에게서 소리가 나오다가. 무슨 태도가  나오다가, 그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내게 공작을 하다가 뭐 별별, 사람도  그러하고 물건도 그러하고 공간도 그러하고 시간도 그러하고 자연도 그러하고  모든 만물들도 그러하고 현실에 이것들이 자꾸 바꾸어서 역사합니다.

 이러니까, 자 사람들이 자기를 억울하게 이렇게, 아주 억울하게, 억울하게 한,  억울한 소리를 합니다. 억울하게 매장을 합니다. 개인이 하는 것도 있고 어떨  때는 교계가 하는 것도 있다 그거요. 교계가, 교계에서, 마구 그 교파 전부가 다  달려들어서, 어떤 때는 세상이 다 달려들어서 이렇게 억울하게 매장하는 그런  말도 있고 글도 있고 또 공작도 있습니다.

 어제 보니까 어떤 장로님이 책을 한권 가지고 왔는데 그 책에다가, '이런 것  이런 것이 기록되어 있습디다.' 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욕하는 사람 중에  첫째는 안 가지만 몇째는 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매일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책을 썼다고 그런 걸 보이는데 내가  그 책을 보지 않고 그저 내 웃기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 책을 어떻게 써 놨는지 모르지만 나를 욕해서 썼는데 욕을 해서 썼더란대도  그래도 그것이 큰 증거입니다. 그러면 그 책을 자세히 보는 사람은 '그때는 이  공기가 이렇고 분위기가 이랬구나.' 하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어서 결국은 사실이 드러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도 그 책을  나에게 전하려 하는 거나 그런 소리 들리는 그것도 하나의 현실입니다.

 이러니까 현실은 무엇이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여간 필기하는 것보다도 시청각이라고, 나를 쳐다보면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을 터이니 나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그것이 자기 속에 잘 박힐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글을 쓴 그것이 내게 현실에 글로 나을 때도 있고,  욕으로 나올 때도 있고, 칭찬으로 나올 때도 있고, 공연히 자기에게 없는데  이렇게 높여 주는 것으로 나올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게 다 현실이라. 욕하는  소리, 칭찬하는 소리, 허는 소리, 또 자기를 공연히 미워하는 소리. 이런  미워하는 것 이런 것이 모두 다 현실인데,  그 현실이야 무엇으로 모든지, 현실이야 무엇이든지 '다스리라!' 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성경 법칙대로 행할  것뿐이라. 법칙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이것이 첫째 우리가 할 일입니다. 이것만이  할 일이라. 이러니까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 내가 현실을 이렇게  다스렸으면 그 현실은 내것 됐습니다. 요거 지혜를 배우라 그 말이오.

 어떤 사람이 나를 욕하는 말을 했는데 그 욕하는 말을 했을 때에 욕 얻어먹을  일이 있었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리는 게 뭐이냐? 욕 얻어먹을 일이 있으면  그 욕 얻어먹는 것을 회개를 해야지. 회개하면 다스리는 것이지. 회개하면 욕한  그것은 완전히 나를 위한 것이 되어 지고 마는 것입니다.

 또 욕을 하는데 억울하게 욕을 합니다. 억울하게 욕을 할 때에 그때에 말씀대로  하면 '거짓 걸로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도로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하늘의 상급이 크다' 이러니까 그런 소리 들어도 복수하지 아니하고, 그 사람이  욕하는데 욕하지 아니하고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하면 그것이  현실을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은 내 것이 아니지만 이제 죽고 난  다음에 심판 앞에서는 영원히 내 것 됩니다. 영원히 내 종이 되어서 내가 그것을  이용하고 나를 섬기는 자가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오묘한 공평된 보응의 법을 세워 놓고 있는데 이걸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판판히 떨어지고 속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고, 먹고, 먹지 말아라. 이 네 가지가 우리  인류 시조에게 하나님께서 주셔서 살게 하신 생애입니다. 요 네 가지가 살게  하신 생애요. 그 다음 생활은 많이 했지만 요 네 가지를 어기고 동산을 쫓겨나서  이제 사망 속에서 사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요 네 가지만 하면  됩니다.

 범죄해서 멸망하는 생활하는 것은 얼마든지 숫자가 많지만 그것은 망하는  법칙이지 사는 법칙은 아닙니다. 그 다음 것은 망하는 법칙이지 사는 법칙은  아니라.

 내가 여기에 어떤 반사, 여기 와 알았네. 내가 요새 좀 조겨 댑니다. 처음에  나한테 말하기 때문에 그러면 다른 사람 같으면 그러면 그만 언간하면 통과가  되고 그 말 하면 그만 그 말에 쏠려지고 이럴 건데 나는 그런 것을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쏠리지 않아 그걸 다스렸다 말이오.

 '요게 대해서는 하나님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겠느냐' 다스려  가지고 그 사람에게 이런 말을 딱 했소. 하니까, 왔다가는 그만 손해를  봤습니다. 왔다가 자기주장대로 될 줄 알았는데 손해 봤던 것은, 손해는  옛사람이 손해봤으니까 그 사람에게 새사람의 유익을 내가 주고 말았다 말이오.

 또 그 뒤에 엿대서 그 이튿날 갔소. 어제 아침에 가 가지고, 또 그것을 공격해  댑니다. '네가 말은 안 해도, 요 말 안 해도 네가 동산을 다스릴 일이지  다스리지는 아니하고 뱀 오니까 뱀에게 피동되고, 이 말 오니까 이 말에  피동되고, 네 귓속으로, 귀구멍으로 들어오는 그것에게 피동이 되어 가지고  하니까 네가 그거 할일이 아닌데 너 할 일은 내비두고 엉뚱한 일을 한다.' 어제  아침에 가 가지고 또 공격을 했소. 또 오늘 아침에도 공격할는지 모릅니다.

만나면 공격입니다. 이래 가지고 기어코라도 내게 닥쳤으면 그놈을 잡아서 아주  없애 버리고 난 다음에, 이제 그래야 그게 자유가 있고 그게 살아나지 그리  안하면 죽는다 그거요.

 이러니까 한번 착수하면 그놈을 잡아서 죽여서 기어코 새사람의 양식을 삼아  주지 않고는 내비두지 않는 내 성미입니다. 이러니까 자꾸만 한번 시작해 놓으면  공격이오. 또 고치고 공격하고 새사람을 먹이고 옛사람은 죽여서 새사람의  양식을 요리를 만들어 먹이고 자꾸 그렇게 합니다.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지 못하고 현실에게 피동되는 것, 피동되는 것, 감동되는  것, 또 동화되는 것, 감염되는 것 이것 한 다음에는 산 생활은 없습니다.

거기에서 돌아서야 되지. 이것도 못하는 자가....

 어떤 사람 보니까 목사인데 그래도 지금 아주 거기서는 머리 노릇하고  있습니다. 내가, 총회에서 하도 날 욕을 해 쌓아서 내가 총회서 이렇게 나오면서  내 얼굴이 아마 좀 비웃는 그런 얼굴이 됐던 모양이오. 그 목사님이 날 이래서  내가 나오며 좀, 하도 가소로운 일들을 하고 있어서 좀 비웃었다 말이오.

 비웃으니까, 그 사람 만났는데 그만 내가 조심을 안 해서 거기에 비웃은 걸  그대로 계속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 사람이 악수를 하고 나중에 식사하러  저한테로 같이 가자 하니까 '안 가겠습니다. 안 가렵니다.' 그 사람이 이제까지  날 지지하고 나를 따르고 날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 핍박할 때에 옹호한  사람인데 그만 갑자기 180도로 탁 변해 버려. 그 이상해서 '이 사람이 어찌  그럴까? 의례히 내가 가자 하면 갈 것이고 이럴 건데 어쩐 일인가?' 그 사람을  내가 만나니까 상이 새파래 가지고 그만 그래. 어찌 그러냐고 나중에 타이르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또 편지도 하고 이래도 다시 돌아서지 아니하고 그 다음에  편지가 왔는데 그대로라.

 뭐라고 왔느냐? '나는 조사님에게 대해서 어데까지나 옹호하고 지지하고 내가,  옳은 줄 알기 때문에 이랬는데 조사님은 내게 무슨 감정이 있습니까? 내게  무엇이 있습니까? 왜 나를 보면 그렇게 나를 비웃습니까?' 이거 참 기가 막히는  소리라 그말이오. 그것을 그 다음에 암만 돌이키려 해도 돌이키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만 이래 가지고 다시 만나지 못하고 맙니다.

 그분이 내가 자기가 뭐라 했든지 간에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대로만 피동되고 내  얼굴이 그런데 피동 안 됐더라면 되는데 그만 거기 피동되어서 참 지극히 큰  구원이 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전에 또 제 밑에 조사로 한분 있던 분 있는데 그분이 크리스마스 축하를-  아동 주일학교 부장으로 있었는데-크리스마스 축하하고 난 다음에 그만 그  이튿날 새벽에 보니까, 새벽 예배 때에 보니까 새파래 가지고 영 그만 마귀상이  됐어. 그래 내가 '저 왜 저런가?' 그래도 내가 그렇게, 나는 대번에는 좀 말 안  하고 그걸 좀 내버려 둬 보기 때문에, 영 아주 보니까 며칠 동안 마귀 노릇을  하고 아주 그만 사람이 죽은 상이라.

 그래 내가 불러 가지고 '너 왜 그러노?' 이러니까 '예. 제가 시험에  들었습니다.' '왜 시험에 들었노?' '그런데 그 축하할 때에 그때에 조사님이  저를 보고, 나는 뭐 조사님에게 대해서 그렇게 조심해 한다고 하는데 뭣 때문에,  성을 내면 그만 날 직접 불러 가지고 말을 하시지 그래 가지고 그만 그렇게  아주, 무엇인가 그걸 말을 하이소. 말하면 제가 고치면 안 됩니까?' 그날 아이들  예배 보는데 뭐 내 얼굴이 보면서 안면 쳐다보는 안면이 좀 좋지를 못했던  모양이라. 그만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그렇게 돌아가 버렸어 나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 그런 게 아닌데, 그런 게 없었는데 뭐 다른 일로 뭐이 그랬던  모양이라.

 그러니까 이거 얼굴이 아무나 따나 라도 장 좋은 얼굴 가지고 있는 것 참  복입니다. 내 얼굴은 그게 아니라. 속에, 그만 겉어머리가, 오히려 속보다  겉어머리가 더 똑똑해. 여러분들 그걸 알아야 돼. 그러니까 용모가 못났다 그  말이오. 속보다 겉어머리가 더 똑똑해. 속에 요만침 하찮은 것 있으면  겉어머리는 이만침 하찮은 것 나옵니다. 이러니까 이 얼굴 캄프러치를 못해.

아이들 말로 캄프러치를 못해. 이걸 가식을 하지를 못해.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일이 많다 그거요.

 이래 가지고 모두 말하기를 '아, 그 사람은 면도칼. 면도 이 같은 사람, 면도날  같은 사람이라' 그 사람은 가까이 하지 못한다고 이렇게 모두 욕을 하는데 또  접촉하고 난 다음에는 또 좋아 못 견딘다 말이오.

 이러니까 얼굴 이거 나쁘게 생기면 참 안 됐어. 생각해 보면 속으로는 안  그런데 겉어머리 다른 사람에게 좋게 여겨지는 그것도, 외나 고치는 면에  있어서는 손해 갈런지 모르겠소, 그것이.

 여러분들 동산을 다스립시다. 동산에게, 자기가 다스리지 못하고 동산에 있는  거기에 있는 존재들에게 피동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이 뭐라고  움직이든지 거기에 피동되면 안 됩니다.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든지. 그 사람이  이런 걸로 움직이든지, 내게 이런 걸로 움직이든지 저런 걸로 움직이든지 어떤  걸로 동하든지 내가 거기에 피동되지 아니하고 나는 하나님이 주신 법칙대로  거기 대해서 행하여야 합니다.

 또 비가 오면 어찌 됩니까? 폭우가 떨어지면 어찌 됩니까? 아주 날이 추워서,  갑자기 추워 가지고 얼어 죽게 되면 어찌 됩니까? 얼어 죽는, 얼어 죽게 되는 그  추위는, 그것은 자기에게 있어서 무엇이지요? 현실이오. 그것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다스립니까? 다스리는 것은 그 얼어 죽게 되는 그 추위에 대해서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칙을 행하면서 얼어 죽으면 그것은  현실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면 현실을 다스리다가 죽은 그것이 다  순교자들입니다.

 그러기에 기묘한 역사들이 있는 것이니까, 자 다른 사람 말 한 마디 듣고 그만  거기에 피동되지, 다른 사람 얼굴 찡그리고 또 웃고 하는 데서 피동되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한 마디 옹호해 준다고 거기에 피동되지, 말 한 마디 삣고  깎는다고 피동되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자기를 말 한 마디 옹호해  준다고 그만 거기에 피동이 되면 큰일 납니다.

 이러니까 자기를 옹호해 주는데, 옹호해 주는 데 거기에도 피동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니까 '나는 옹호를 했는데 나를 대접하지 않는다.' 고  하면서 예배당까지 팔아먹고 간 조사 한분이 있는데. 그 터도 우리가 사 줬고  예배당도 우리가 거석해 줬는데 예배당하고 터하고 팔아먹고 가 버렸는데, 그만  그러고 난 다음에 그분은 교역자 노릇은 못하고 대구 어데 가서 숨어 있다  하는데 한번 내가 만나 가지고, 만나 가지고 할 수 있으면 다시 그 사람이 와  가지고 남권찰이라도 하도록 한번 붙들어 볼까 이러는데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해서 늘 수소문 하고 있습니다. 대구 어데 있는가? 아마 있으면 저 시장가에  가 가지고 소꿉장난 하는 것 그런 것 만들어 가지고 팔고 있을는지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들! 피동되면, 암만 나를 마구 전적 옹호하고 나를 위한다고 해도 위하는  그것도 현실이오. 위하니까 내가 웃고 또 삣고 깎으니까 내가 미워하고 그거 다  현실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것들에게 피동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첫째  싸움입니다. 현실에 요소가 뭣뭣들이 모여 가지고 현실이 되어지느냐? 요  현실에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고 현실에 대해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기에  대해서 행할 것.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독침을 가지고 '이놈이 독침으로 찌른다  찌른다' 할 때에 그거는 뭐입니까? 그거는 뭐이요? 그거 에덴동산이오. 그거  현실이오.

 그거 현실인데 그 현실에 대해서 나는 뭣 할 건가? 요게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되는데, '너 예수 내 놓지 않으면 찌른다' 이럴 때에 하나님  말씀은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 앞에서 나를 아노라 하면 내가 아노라 할 것이요  모른다 하면 나도 모른다 한다' 했으니까 '예수님은 내 구주다' 이렇게 증거하는  것이 내가 그 때 할일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거기에 피동되지 않고 다스리는  것이라 말이오.

 다스린 것이면 그것은 내가 그 자리에 죽든지 안 죽든지 그거는 영원히  내것입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에게 보냈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내것이 된다  말이오. 공산주의를 완전히 자기 것을 삼고 간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오. 순교  안 하고도 삼고 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6. 25 때에 공산주의를 내것을 삼아 버렸어. 삼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삼아져 가지고 있어서 무궁세계 나타날런지 모르지만 그것은 뭐라고 해도 내게  정복을 당해서 내 소유물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추워도 추위에게, 추우니까 진리를 떠날 게 아니라 추워도  진리대로 하면 그 추위라는 현실을 다스린 것이오. 더워도 그런 것이오.

배고프면, 먹을 게 없어서 배고프면 배고픈 그것은 뭐입니까? 그것도 현실이오.

그러면 배 고플 때에 그때에 배 고프니까 내가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행동하는  것은 배 고프다는 그 현실에게 피동되는 것이지만 배가 고파도 하나님 말씀대로  먹을 것은 먹고 안 먹을 것은 안 먹고 이러면 동산을 다스리는 것이지.

 그런고로 요것을 잘 생각하고 놓지 맙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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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을 다스리자/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2. 7. 8.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5424 현실을 다스려라/ 창세기 2장 15절-3장 6절/ 1984. 3. 16.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5423 현실을 다스려라/ 로마서 8장 5절-6절/ 1982. 7. 15.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5422 현실은 시험/ 야고보서 1장 1절-4절/ 1988. 4. 24.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5421 현실은 내것이다/ 요한복음 1장 1절-18절/ 1982. 7. 11.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5420 현실에서 힘쓸 것 다섯 가지/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 1980. 7. 21.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5419 현실에서 하나님 수입/ 창세기 14장 23절-15장 1절/ 1981. 7. 8.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5418 현실에서 지킬 법칙/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1. 5. 15.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5417 현실에서 이룰 구원과 그 방편/ 야고보서 1장 2절-4절/ 1983. 8. 2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