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주시고 명령하심

 

1987. 5. 8. 새벽 (금)

 

본문:요한복음 9장 1절∼3절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선지자선교회

이 집회에 와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한 일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에 모두 다 각각 다른 사람들이니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많은 의견 충돌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무슨 실물을 당한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모두 다 잘 참고 오히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그 사랑을 베푸시는가 해서 거게 대해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그 관계가 어떠한가 하는 것을 찾아 가지고 반성도 회개도 또 기뻐함도 그렇게 가진 줄 압니다. 또 이뿐만 아니라 고요히 은혜를 잘 받고 집에 돌아가면 또 집에서 생각 밖에 이런 저런 모든 복잡한 일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요한복음에서 공부한 거와 같이 나면서 소경된 자에게 주님이 두 가지 해 주신 거 있으니 하나는 침 뱉아서 진흙 이겨서 눈에 발라 주신 것을 해석하기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현실이라 그렇게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겉으로 보면 그것이 필요 없는 일 도리어 자기에게 부담되고 괴로운 그런 일이요 이해 못 할 일이지마는 주님이 낫아 주시기 위해서 고쳐 주시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신 이 사실을 그 소경은 알았고 바라봤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원망 불평하지 안하고 기쁨으로 소망을 가지고 주님에게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나면서 소경된 그 사람이 거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에 제일 기쁘고 행복된 사람이 됐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첫 시험으로, 말 들으니까 여게서 돈 잃어버린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무례함을 당한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들이 여게서도 있고, 이것은 별일이 아니지마는 여러분들이 반드시 돌아가면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지 안할지라도 시일을 두고서 생각 못할 여러가지 어려운 일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이 진흙 이겨서 눈에 바른 이 도리를 배웠으니 나는 지금 이 현실이라는 진흙으로 발라 주셨으니 여게서 반드시 좋은 앞날이 있겠고 이것으로 통해서 나에게는 큰 은총이 오겠다 하는 것을 기억하시고 이 복음을 쓰면 반드시 그런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제가 이 요한복음 9장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이 가운데에 여러 사람들이 등용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게 등용돼서 기록됐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종류의 사람들, 많은 주장의 사람들, 많은 행동의 사람들, 그것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신약 시대에 있는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의 형형색색의 그 모든 진상을 여게서 보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거 간단하게 한번 증거를 하고 가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 나서 이 요한복음 9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여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한 예수님을 만났고 또 한 사건인 나면서 소경된 자를 만났는데 이 건에 대해서 행동은 수많은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에 대해서 제 각각 그렇게 보고 해석하고 행동하고 그렇게 다 제 나름대로 하고 있는 이런 것을 여게서 가르쳤습니다. 이 일은 남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고서 정평할 수 있고 정가할 수가 다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래서 이것이 그저 그때에 형편 사정으로 그런 것 아니고 예수님과 예수님이 하시는 한 역사와 예수님의 은혜 역사를 받고 있는 이 사건 이 사람에게 대해서 이 역사에 대해서 별별 모양으로 이렇게 견해, 보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었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것이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거게서 고칠 것은 고치고 가질 것은 가지는 것이 이 복음을 제 복음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첫째로, 나면서 눈먼 소경이 있었습니다. 이는 사람이 날 때부터 타락한 그 이후에는 성령의 지혜와 총명, 하나님의 뜻인 그 뜻지금은 소범위로 볼 때에는 하나님의 뜻도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모든 마귀의 뜻 인간들의 뜻이 이렇게 섞여 있지마는 실은 지금도 하나님의 뜻 하나뿐입니다. 가룟유다가 행동하는 것도 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 먹은 것도 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 외에는 어떤 공작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멸망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것이 이 모든 존재에 대한 창조주의 뜻이요 계획이요 섭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시고 이런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어기고 저렇게 어겨 이렇게 어긴 것은 이런 보응을 받고 저렇게 어긴 것은 저런 보응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에 이탈되고 위반된 것은 그 정도에 따라서 세상에서도 실패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또 지옥은 어떤 것이 지옥인가 하면은 하나님의 이 뜻은 절대 뜻인데 그 법칙이 있어 그 법칙은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이 말씀이 곧 그 법칙이신데 그 법칙이 있어 그 법칙에 위반되는 그런 종류 종류마다 억억만 종류면 억억만 종류마다 이렇게 위반된 종류는 이런 보응을 받았다 하고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모두 다 적재해 놨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데에는 수많은 종류, 이렇게 애로를 닥쳐도 순종하는 것은 이런 보상을 받았고 또 저렇게 어려움을 참고 견딘 것은 그 성질대로 거게 합당한 다 보상받은 것을 실물로 남겨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지옥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에게 반대된 수많은 종류, ‘요렇게 반대된 것은 그 결과가 어떠나?’ `지옥에 가 봐라.’ ‘그것은 또 별별 모양으로 사이비하게 교묘하게 반대했으니 그거는 어찌 되느냐?’ ‘그것도 지옥에 가 봐라.'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수많은 종류가 그대로 실물로 돼 가지고, 보응된 실물로 돼 가지고 적재해 쌓여 있는 것이 지옥입니다.

 

또 하늘나라는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것은 어찌 되며, 저렇게 순종한 것은 어찌 되며, 이렇게 순종하다 만 것은 어찌 되며 중단된 것은 어찌 되며, 이렇게 순종하는데 백프로 순종한 것, 구십구프로 순종한 것, 일프로 순종한 것, 순종하려고 시작하다 만 것, 그거 다 어찌 되느냐? 낱낱이 천국에 어떻게 된다는 것을 실물로 쌓아 놓은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은 뭣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옥과 천국을 만들었는가? 이것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나 그분은 얼마나 크시며, 그분은 얼마나 세밀하시며, 얼마나 정확하시며, 얼마나 그분은 당신에게 거슬린 것은 다 멸하고 당신에게 따라서 일치되는 것은 다 생명과 평강이 된다 하는 것을 실물로 만들어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보이려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소원이십니다.

 

이것은 그 동기와 목적은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정확히 알아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참 바다에 물이 넘침같이 충만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 위반되는 거는 어찌 되고 순종되는 거는 어찌된다 하는 것을 많은 그 실물의 가르치는 재료를 교재를 둬 가지고 영원히 피조물이 하나님에게 속하고 따르면 살고 하나님을 떠나고 배반하면 망한다 하는 그것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충만히 알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옥에 있는 것들도 그것을 다 신앙이 어리기 때문에 다 말할 수 없으나 그것들도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찬양하고 과연 하나님만이 우리 피조물들의 주가 되신다. 구주가 되신다.’ 지옥에 가 있는 것들도 하나님만이 우리를 살리고 구할 수 있고 모든 좋은 것은 그에게 있다.

 

모든 나쁜 것은 그를 떠나고 그와 위반되는 데에서 발생된다.’ 하는 것을 다 알고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것들도 주님의 하시는 일을 다 시인하면서 주라 하여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공평되다 이렇게 찬양을 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땅위에 하나님을 위반되는 종류들을 가득히 쌓아놓은 동시에 하나님과 일치되는 것을 가득히 쌓아 놓은 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과 일치되는 것은 다 생명과 평강이요 영광이요 하나님과 위반된 모든 것은 다 망하고 죽는 것이라.

 

이런데 나면서 눈멀었다 하는 것은 인간이 타락 후에는 하나님을 위반하면 다 죽고 망하는 것 외에는 없다. 우리가 이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죽고 망하는 그것만 볼 줄 알고 딴거는 보지 못하는데 죽고 망하는 그것을 보면서 죽고 망하는 것인 줄 알면 이는 바로 보는 지혜가 있는 것인데 죽고 망하는 것을 살고 평강스럽고 영광스럽다고 꺼꾸로 보기 때문에 다 바로 보는 눈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심판하러 왔다 이랬습니다. 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심판한다 말은 옳고 그른 것을 규정지우는 것이 심판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옳고 그른 것을 규정지우러 왔다 그말입니다.

 

심판하러 왔으니무슨 심판인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이 세상에 있는 것은 둘인데, 하나님 위반으로 망하는 것 순종으로 사는 것 이 둘인데 망하는 것 사는 것 요렇게 보면 좋지마는 세상에 와서 거짓말하는 꼬우는 마귀가 있어 가지고 망하는 것을 흥하는 것이라고 하고 흥하고 사는 것은 보이지 안하니 가루어 놨으니 보지 못한다.

 

이래서 보지 못하는 자, 이 세상 지식대로 견해하는 그 견해는 인정 안 하기 때문에 그 지혜와 지식과 가르침을 요게 참되다 요게 맞다이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을 말해도 나는 모르겠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인정하지 않는 자. 그자는 보게 하고, 보게 하고.

 

세상이 모든 만존재관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 나는 그거 믿을 수 없고 내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모르겠다, 거게 대해서 나는 모르겠다.’ 이렇게 세상으로 만족하고 이게 참이라고 이렇게 따라가지 안하니 나는 뭐인지 모르겠다.’ 보지 못하는 자.

 

이거다세상이 가르치는 거, ‘세상이 말한다. 이거다. 일류대학에 가면 제일 행복되다.’ ‘나는 그거 모르겠다.’ 그것을 도무지 받아들여서 인정할 수가 없고 세계에 제일 큰 정권을 잡으니까, 정권을 잡으니까 모든 사람이 행복되다 이라는데 나는 그걸 참이다 시인하지 못하겠다. ? 조금만 이렇게 좀 그것을 자세히 보니까 시간이 지나가니 다르고 시대가 지나가니 다르고 환경이 지나가니 다르니까 그걸 나는 인정 못 하겠다. 나는 모르겠다.’ ‘너는 그라면 완전이니 영생이니 참을 아느냐?’ `그것도 모르겠다. 그거 뭐인지 그걸 모르겠다.’ 이렇게 나쁜 것을 따라가지도 안하고 참을 모르니까 모르고 하는 이자는 보게 하고, 보게 하고, 이자는 보게 하고, 그것은 다 속이는 거짓말쟁이가 내놓은 거짓부리다. 참으로 완전이 있고, 영생이 있고, 성결이 있고, 보이는 모든 것보다 크신 분이 있고, 모든 것에 대해서 주권 가지신 분이 있는 것을 보여주러 왔다.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심판하러모든 것을 사실대로 정확히 규정지우러 왔으니 첫째가 뭐이냐 하면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그런 것으로서 이거다그렇게 인정하지 안하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참을 그에게 보여서 참을 알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이게 옳다. 이거다 이거다.’ 과학자들은 이거다 이거다.’ 모든 이종교가들은 `이거다 이거다.' 그렇게 하여서 세상을 다 참이라고, 좋은 것이라고, 이는 참 이것이 온전한 것이라고 이렇게 하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왔다.

 

그런 것들을 예수님이 오기 전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예수 믿기 전에는 그것이 다 참인 줄 알았는데 믿고 나니까 그거 허무하구나. 아니로구나.’ 봤다는 것이 이거 잘못 봤다. 아니다.' 천하에 제일 행복이라고 일류대학에 가면 제일이라고 이렇게 해 가지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야고보서 1장에 부한 자는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낮은 자는 높아진 것으로 자랑한다?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니라하는 것을 야고보서 111? 몇절이요? 9. 거기 또 누가 ○○○ 같은 사람이 있구나. ○○이 어데 갔노? 그거는 모르나? 이래서 알고 보니까 내가 천하에 제일 행복된 사람이다하는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라. ‘내가 속고 있었다.' 이래 가지고서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아서 팍 낮아졌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까 나는 공연히 나는 높은 줄 알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자인 줄 내가 알았다.’ 폭 낮아진 것을 자랑합니다. ‘나는 이렇게 낮아졌다. 과거에는 잘못 알았다.’ 낮은 자는 높아진 것으로 자랑한다. 자기는 이 세상 지식대로 견해하니까 가장 불쌍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참을 찾아가는 데에는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나은 걸 알았다. 이래서 높아진 것으로 자랑합니다.

 

이래서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이러니까 우리가 소경이 돼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세상 지식대로의 전존재관이 완전히 부정돼야 이제 참으로 바로 모든 존재관을 할 수 있는 그 지식을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나면서 소경된 사람이 있었다나중에 보니까 이 사람이 제일 영광스러웠어.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서 우리가 제일 부러워할 사람은 무슨 사람인가? 나면서 소경된 이 사람이 자기인 것을 알고 정말 소경된 사람이 돼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누가 말하기를 40절에 바리새인 중에바리새인은 열심으로 하나님 공경하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우리도 소경인가눈이 또록또록하이 두 눈이 밝은데 우리도 소경인가 이라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소경되었더면 삐뚤어진 것이 없으려니와삐뚤어지게 본 것이 없고 삐뚤어진 행동 안 할 것인데 삐뚤어진 것이 없으려니와” “본다 하니” “본다 하니너희들의 이 세상 지식대로의 그 모든 존재관을 그것이 너희가 바로 보는 것인 줄로 앎으로 본다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너희 삐뚤어진 게 그대로 있느니라. 맞습니까? 해석이 맞소? 그러면 이 해석을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쳐서 살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확정해야 돼요, 확정. ‘하나 말쟁이가 그렇게도 말한다. 그 말이 묘하다. 나는 이 말 가지고서 강단에 가서 팔아먹을란다. 이 팔아먹으면 또 좀 돈이 나오겠다.’ 너는 물질로 망하고 너는 너 좋게만 하니까 너 좋게 하는 그거 가지고 네가 망한다. 누가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나면서 소경된 이 사람이 복있는 출발을 하는 사람입니다. 복있는 출발을 하는 사람이요. 여기서 한 사람 나왔습니다. 복있는 출발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복있는 출발하는 사람이냐? 나면서 소경된 이 사람된 사람이 복있는 출발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면 안 된다는 그 말씀을 했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땅의 것을 찾지 말고 위의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모든 세상은 하루밤 나그네와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어두운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말했고 죄 가운데 있는 것이라 삐뚤어진 가운데서 삐뚤어진 것만 가득찬 것이라고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다음에 어떤 인물이 있는고 하니 예수님에게 이 사람의 이 소경된 것이 뉘 죄로 되었나이까?’ 이렇게 물으면서 제 부모 죄입니까 저의 죄입니까?’ 이렇게 묻는 것은 예수님에게 진정 알고 싶은 그것보다도 그 속에는 뭣인가 티잡을 것이 없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들은 항상 따라다니며 물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는 이것이 이 사람의 이렇게 된 그 원인이 뭣이 원인입니까? 제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누구의 삐뚤어짐으로 이와같이 됐습니까, 죄입니까?’ 이라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제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다.’ 이러니까 그들이 그 죄관, 죄에 대해서 본 그 죄관이 맞았습니까 틀렸습니까? 주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맞다 했습니까 틀렸다 했습니까? 틀리다고 했어.

 

이러니까 이 세상에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삐뚤어진 관을 바로 보지 못하고 삐뚤어진 거는 삐뚤어지고 바른 것은 바르고 이렇게 삐뚤어진 관이 바로 되지 못했으니까 바로 보는 관도 바로 되지 못한 것 아닙니까? 여게서 삐뚤어지고 바른 것, 굽고 곧은 것, 옳고 틀린 것, 선 악, 모든 좋고 나쁜 것 이런 것을 바로 보지 못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여게 나왔습니다. 그런 분들이 나오지 안했소? 이와 같이 우리들은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아닙니다. 그렇지 안해요?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한 사람들은 바로 된 사람들이 아니니까 우리는 그 사람을 피해야 됩니다. 피해야 돼요.

 

나면서 소경된 그 사람은 우리가 피해야 됩니까 그 사람이 돼야 됩니까? 그러면 이렇게 이것이 부모 죄입니까 제 죄입니까?’ 죄는 삐뚤어진 걸 죄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 죄입니까 부모 죄입니까? 제가 삐뚤어져 그렇습니까 부모가 삐뚤어져 그렇습니까?’ 이거 삐뚤어진 데 대해서 저는 아는 척하고 말했는데 주님이 이거는 제 삐뚤어진 것도 아니고 부모 삐뚤어진 것도 아니다하고서 거부를 당했다 그말이오. 거부 안 당했습니까? 거부당했으니까, 우리가 자기 주관대로의, 자기 주관대로의 모든 시비곡직관 모든 삐뚤어진 관 그러면 옳은 관 자기 주관대로 이렇게 시관하고 있는 이 모든 전 만존재관 이것을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주장하고 그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이제 완전히 고쳐버려야 됩니다. 모든 정오, 바르고 굽은 것 이것을 자기 주관대로, 자기 주관은 세상에서 배운 것입니다. 세상에서 배워서 가진 그 자기 주관을 완전히 버려야 됩니다.

 

이 사람은 그 사람이 평생 되고 싶습니까? 예수님에게 그렇게 이게 뉘 죄오니이까?’ 이렇게 묻는 그 사람으로 평생 있고 싶습니까? 이 사람은 이거는 실패한 사람이요 이거는 잘못된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가 안 돼야 되겠습니다. 이 사람 안 돼야 되겠습니다. 이 사람 벗어나야 됩니다. 그렇지 않소? 나면서 눈먼 사람은 돼야 돼요 안 돼야 돼요? 돼야 돼고. 또 이렇게 예수님에게 질문한 사람은 돼야 돼요 안 돼야 돼요. 인제 이거는 부인해 버려야 되겠다 그거요.

 

 

이랬는데, 그다음에 또 무슨 사람이 나오느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이는 제 죄도 아니고 부모 죄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할 때에 그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도 있겠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예수님이 그 말씀하시니까 무슨 소리를 그런 소리 하는가? 다 이렇게 세상에서 불행은 죄값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으로 원인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역사가 일어났다 이렇게 말하니까 그거 뭐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 선생님은 모든 것을 옳고 바르게 가르치니까 이 선생님 말하는 것은 내가 이해는 못 해도 그 말씀이 옳기는 옳을 것이다.’ 그러면 그게 뭐인고 한번 뒤에 조용히 있으면 물어보든지 하고 이렇게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 선생이라 하는 게 잘못 알았다.’ 이렇게 제 기존 모든 존재관을 그걸 인정할 때에는 예수님의 존재관을 부정하게 되고 예수님의 존재관을 인정할라면 자기의 모든 만존재관을 부정해야 됩니다. 그러면 부정한 사람 되겠습니까 제 주관을 인정하는 사람 되겠습니까? 자기 주관을 부정하는 사람이 돼야 되겠습니다.

 

 

또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진흙을 침뱉아 이겨 가지고 눈에 바르니까 떡 대고 있고 대고 있으면서 지금 예수님이 고쳐 줄 줄 알고 내가 네 눈을 띄워 주겠다이라시면서 진흙 이겨 바르니까 좋아서 그 뚱뚱 발라 가지고 또 어짜랍니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 그라면 네가 보게 되리라.’ ‘.' 털퍽털퍽 간 이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 있었어.

 

그러면 이 사람은 그 사람이 그렇게 될 때에 많은 조롱도 받았을 것이고 웃음거리도 됐을 것이고 구경거리도 됐을 것이고 어제 히브리 10장에 공부한 것과 같이 그렇게 놀음거리 구경거리 뭐 다 우스개거리 저거 봐라, 저거.

 

눈에다가 침을 더럽구로 뱉아 가지고 이겨서 발라 주니까 좋다고 지금 눈뜬다고 저래 하고 가고 있다.’ 조롱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도 있습니다.

 

어제 진흙 이긴 것은 흙은 뭐라 했지요? 모든 우주, 물질계에 있는 피조물이 아니고 이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 흙 아니요? 그게 실은 흙이라, . 예수님의 진액을 가지고서 이기니까 이겨졌습니다.

 

우리 현실은 불택자의 현실과 다릅니다. 우리 현실에는 예수님의 그 복음의 진액이 우리 현실을 싸고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멸망케 하기 위해서 우리 현실 만든 게 아니고 우리 현실은 예수님의 열한 가지 이 대속이 얽혀 가지고서 이 현실을 이 물질계의 물질 가지고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실은 그 우리 현실 속에 예수님의 피의 대속이 사죄 칭의 화친이 그 속에 다 들어 있고, 영감과 진리가 다 들어 있고,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그 요소가 다 들어 있고, 제사장 요소도 들어 있고, 선지자 요소도 들어 있고, 모든 것이 그 안에 다 들어 가지고서 얽혀서 이래 이겨 가지고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해석이 이해가 됩니까? 이것도 묘한 말 한다하면 헛일이라.

 

? 많은 말 했는데, 이 교리와 신조는 내 소유와 몸과 생명 남은 여생을 다 거게 바쳐서 걸어갈 길이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을 어디다가 투자하느냐? 어떻게 하느냐, 지금? 망하느냐 흥하느냐 어떻게 되느냐 하는 이것을 결정지우는 것이 자기의 주관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주관을 가지지 안하면 안 돼.

 

이제는 내 현실은 이런 현실이다. 이러기 때문에 내 현실은 사랑의 피가 들었다, 여게. 사랑의 성령이 들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성장되는 이 영양이 들었다.

 

하나님의 선택의 은총이 여게 들었다. 여게 제사장 요소도 들었다. 굉장하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여게 대한 네가 충분한 구비한 지식을 가지고서 네가 기뻐해라. 그냥 시험받으면 뒤에 좋다 하더라이렇게 덧배기 하지 말고 거게 있는 내용의 그 사실의 구비한 완전한 현실관을 성경대로 가지고서 네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는 것입니다.

 

이 소경이 주님이 해 주시는 대로 좋아서 달게 받고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덜렁덜렁 가 가지고 씻었습니다. 자기에게 사자구덩이를, 사자굴에 던져넣는 현실을 만났는데 그 현실을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보니까 그 현실을 주님 명령대로 순종하고 보니까 한 토막 지나고 보니까 환한 광명이 열립니다.

 

맞습니까? 이래서 그라고 난 다음에 보니까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인제 그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아무리 그렇게 예수님의 섭리의 현실 통과 또 명령 순종 통과 이래 해도 과거 흔적이 전혀 없는 거는 아닙니다. 전혀 없는 거는 아니라. “그 사람이라하는 사람이 있었거든. 이 면도 있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나라 가면 이 세상에서 있던 사실 그것 다 가지고 갑니다. 가지고 가는데 그 전부가 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좋아졌고 치료돼졌거든. 이러니까 자랑해. 그러니까 김익두 목사님이 나는 시장에서 깡패라고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날 김익두를 안 만나면 오늘 재수 있다 하고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이거 참 뭐 염병같은 인간입니다.’ 이 술먹은 것도 자랑하고 사람 뚜드린 것도 자랑하고 자꾸 그 자랑합니다. ? 그 자랑이 누구 자랑이요? 예수님의 자랑이라.

 

이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흉하고 더러운 것 있지마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회개하고 청산하고 나면 무궁세계에서 그 흉터 있는 것이 더 매력입니다. 더 매력. ‘이런 죄인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됐습니다하니까 더 매력이라. 이런데 이것을 오늘에 이렇게 정리 정돈하면 되는데 시기를 놓쳐 놓으면 안 돼요. 자기가 할 수 있을 때 해야 되지.

 

그렇게 하면 되는 방편이 있구나.’ 그러니까 실컷 하고 싶은 대로 저 하고 싶은 대로 제 놀음 다 하고 마지막에 죽을 그때만 회개해도 되는구만.’ 그것은 회개가 자기에게 권리 있다고 보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해 줘야 된다고 보는 사람이요? 자기에게 권리 있다고 보는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제가 회개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고 회개는 제 주권에 매였다고 이렇게 예수를 믿는 잘못 깨달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거요. 요런 것 하나만 똑똑히 잡아도 복있는 사람이오.

 

며칠 와서 여기 있어도 그거 하나만 잡아도 손해는 아니라.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다하면 또 혹은 아니라” `그 사람 아니다.’ 너무 변했으니까. 너무 변했으니 그 사람 아니다.’ ‘, 아무 때 우리하고 지게 짊어지고 궁둥이에 오줌을 싸고 덜렁덜렁 해 가지고서어제 저거 딸들이 와 가지고서 그 말 한다고서, 그런데 싫어 안 하고 좋아해요, 보니까. 인제 넘어왔거든. 덜렁덜렁하고 만날 오줌싸고 돌아다니던 아홉살 먹어서부터 남의집 살던 너 ○○○이 아니가?’ ‘아니다. 그분 아니다.'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그와 비슷하다. ‘, 그 사람 그때 그 아이 모습 똑 그 아이 같다, 같기는.’ 아마 지금 보고 잘 모를 거야. 여러분들, 다 그렇습니다.

 

이제 여게서 이렇게 주로 말미암아 변화된 이 사람을 보고서 비슷하다 아니라 그 사람이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인 논평하고만 끝나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라면 주를 따라야 될 터인데 그라고도 주를 따르지 안하고 그렇게 변화된 것을 보기만 하고, 보기만 하고, 놀래서 따른 사람들은 별로이 없고 그렇게 비판하고 주목하고 그런 광경을 보고만 만 사람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이렇게 주님이 자기에게 해 주시는 것 어떻게 해 주시든지 어떤 현실을 만들어 주시든지 그 현실을 달게 받고 거게서 순종으로만 해결되면 큰 영광의 나라에 가서 모든 사람이 그 사람 같다.’ `아니다. 어데 그 사람이라? 그 사람이 저래?’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애굽 궁중에서 만나 가지고서 요셉인 줄을 몰라. 두려워 떨기만 했지. 그들이 우리 동생 요셉 같다.’ `요셉이가 천부당 만부당하지 여기 올 리가 있는가?’ 이래서 모를 만치 그렇게 변화됐어요. 이렇게 변화된 그것이 그들 형제에게 반성을 하고 옛날을 생각하고 요셉이를 닮아갈라고 했으면 그들이 복받았을 터인데 요셉을 봤으나 닮아 안 갔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여기에 이렇게 주님이 내게 해 주시는 것 둘밖에 없는데 나는 성령의 지혜와 총명을 받지 못하고 모든 것에 정관하지를 못하고 있고못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사랑이 나를 보호하고 있으니 주님이 모를 일이 있습니까? 아무리 첩첩 산중에 공산주의에게 붙들려 가지고서 지금 고문 고형 당해도 주님은 모르지 않지, 또 주님은 거게도 같이 계시지, 주님이 또 그와 같이 하는 것을 보고 있지, 전능자가 나를 사랑함으로 보고 있지, 이러니까 주님은 숨어서 창틈으로 엿보고 있습니다. ‘보자딱 숨어 가지고 모르도록 딱 숨어 가지고 보자, 네가 공산주의 앞에서는 네가 어떻게 하느냐?’ ‘나는 죽어도 주님 배반할 수 없다. 나는 믿는다.' 변판원 선생님같이 공산주의자들이 이렇게 나무에다가 팔을 이래 십자가로 이래 짜매 놓고서, 성경 장 들고 다니거든. 성경 안 들고 다녔으면 그 복 못 받아요.

 

그분은 성경 안 놓아. 성경은 장 들고 다녀, 안 놓고 다녀.

 

가지고, 성경 한 장 읽으면서 이놈아 이런 허무한 소리를 믿느냐? 이놈아 인간이 영생한다 말을 믿느냐?’ ‘믿습니다.' `이놈의 새끼' 하며 칼로 한번 쿡 찌르고 네가 죽었다가 이제 생명 부활 한다는데 생명 부활한다 부활하는 걸 네가 믿느냐?’ ‘믿습니다.’ ‘뭐 이놈의 새끼' 자꾸 성경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지금, 믿는다 해도, 믿는다 하니까 자꾸 찌르거든. 나중에 그러니까 이놈 속에 뭐이 들어서 이렇게 이거 칼에 맞아도 자꾸 이래 하고 있느냐? 속을 보자.’ 하면서 뱃구멍 있는 데를 도려서, 나는 그때 부산 있어 가 보지는 못했어. 이만치 도려졌더래요. 칼로 가지고. 막 도려서.

 

그럴 때에 자, 죽을 때가 됐으니까 그래 죽습니까 죽을 때가 안 됐는데 그렇게 증거하다가 죽었습니까? 어떻게 믿습니까? 그러면 그 변판원 선생이 주님을 증거하고 믿는다는 증거를 함으로써 혹 수명이 몇 해나 더 살 걸 감수가 됐습니까, 몇 해나 감수됐습니까? 감수는 일 분 일 초도 안 됐다고 보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아멘. 잘 배웠어. 잘 배웠어. 늘 여게 자주 오는 사람들만 모인 모양이로구만. 잘 배웠어.

 

여러분들, 요것을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은 어떤 피조물이 어떻게 된다 해도 내 생명을 일 초도 늘굴 수도 없고 줄일 수도 없다 하는 요것을 믿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불미를 펄펄 달궈 놓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말해도, 왕은 지금 약이 올라 가지고서 야단을 지기는데 이 사람은 뭐 능글능글하게, 자꾸 그래 쌓아니까, 하도 답답하니까 왕이여 암만 해도 내가 우상에게 절 안 할 줄 아십시요, 그만. 뭐 그래 쌓습니까?’ 이게 믿음입니다.

 

우리가 집을 지어도 기초가 있고 기둥 있고 위에 상량이 있는 것처럼 우리 신앙이라 하는 것은 순서 단계가 있어 가지고서 자라가야 되는 것이지 공연히 초절적으로 밑에 있는 모든 신앙 순서는 가지지 안하고 마지막에 꼭대기 결말만 제가 얻겠다고 하는 것은 다 허망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이라 하는 것은 초월 신앙이라야 되지 초절 신앙은 안 됩니다. 마치 돌담을 쌓는 것이 한 개 위에 한 개, 한 개 위에 이렇게 포개포개 포개는 거와 같은 이것이 신앙이지 포개지 안하고 그만 공중에, 밑에 순서 놓지 안하고 그 위에 놓는 거, 여러분들 돌 위에, 밑에 돌 없이 돌 위에 돌 놓을 그런 능력 있는 사람이 세계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이와같이 없는데 우리 신앙은 초절주의로 이와같이 밑에 기초로서 하나 하나 현실 현실 그날에서 순종해서 나가야 그거 되는데, 이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순서대로 현실 주는 것은 아주 그게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순서대로 만들어 주신 것인데 그러면 그 현실을 전능자가 만들었고 전지자가 만들었고 우리 사랑하는 자가 만들었지 그 현실을 우리는 만들지 못합니다. 주님의 이 열한 가지 구속이 그 속에 얽혀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일 분 일 초도 단축시킬 수 없다는 요것을 성경에서 보면 요한계시 11장이요? 증거를 다 마치매 무저갱에서 올라온 자가 그 두 감람나무 두 선지를 죽였습니다. 요한계시 몇 장에 있지? 117? 그래. 너는 그거 가지고 교만하지 마라. 행해야 되지 그까짓 뭐 아는 것만 되면 소용 있나? 117절에 있어요. 그래.

 

증거를 다 마친 후에라 말은 자기 생활 다 살고 난 다음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우리 전생활은 증거 생활입니다. 증거 생활 아닌 시간은 일 초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증거 생활 아닌 생활은 일 초도 없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라야 증거를 마친 후에 무저갱에서 나오는 마귀로 말미암아 그와 같이 순교당했다이라기 때문에 일 분 일 초의 생명도 단축되지는 않는다. 이미 죽는 그 시간에 죽는데 주를 사랑하는 자는 죽되 주를 위해서 그 죽음을 허비하지 안하고, 사람은 삶이 반 죽음이 반인데 죽음만 잘 죽으면은 일생 동안 잘 산 것에 비중이 됩니다.

 

이해가 됩니까? 비중이 돼. 비중이 되는데 이 죽음을, 이미 죽는 그 죽음을 복되게 잘 죽도록 하기 위해서 선물로 주는 것이 순교입니다.

 

나는 이렇게 깨달아서 이게 맞아 안 맞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듣지를 못했어. 이거 물어도 잘 몰라. 이래서 애양원에 있는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당하고 난 다음에 그 뒤에 부목사로 있던 그 서 목사님이 그때 애양원 교회 목사님인데 온 교인들이 청하고 손 목사님 별세하고 나니까 아무래도 백 목사님 보고 싶으니까 -그때 내가 조사라- 백 조사 보고 싶으니까 백 조사 청해 가지고 집회하자.’ 그때 나는 문둥이 거의 대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거창 있는데 문둥이라고 오면 나 안 찾아오는 사람 없어요. 문둥이들 오면. 그래서 그 문둥이들한테 은혜 많이 받았어요. 문둥이는 나를 그렇게 좋아하고 나도 또 문둥이를 그렇게 좋아했어.

 

이러니까 문둥 교회마다, 문둥이 교회마다 안 간 교회가 없어. 저 소록도 교회는 안 갔어요. 다른 이 부근 교회는 다 갔어요.

 

그래 그분에게 가다가, 가면서, ‘조사님 여게그이가 목사고 나는 조사지마는 그 옆에 들어서 나를 퍽 좋아하고 존경해요. 그래 차를 세우더니마는 여게 좀 들려 갑시다.’ `여게 뭐 빈갱 문에 뭐할라고요?’ ‘이게 손 목사님 참 무덤입니다.’ 이래. 보니까 모두 무덤이 많애. 오목하게 전부 있는데 전부 그때 인민군들이 잡아 가지고 가 가지고 거기다가서 거기 죽여버렸어. 죽여서 다 거기 이렇게 뭐 끌어묻어 놨는데. 그래서 손 목사님 유해는 애양원에다가 이장을 하고 그랬는데.

 

그래 내가 죽은 걸 물었어요. ‘그 순교할 때 어째 순교했습니까?’ 이라니까, ‘어데를 맞았습디까?' 그 서 목사님은 내 말을 내가 묻는 동기를 모르고 있어요.

 

이런데 어데 맞았습니까?’ 이 손에 맞았대요, 손에. 요 손에, 내가 그때 오른손인가 왼손인가 내가 그거는 모르지만 엄지손가락 있는 데 여게를 맞았어.

 

여게를 요래 딱 맞았는데, ‘그라면 피를 많이 흘렸지요?’ 내가 이러니까 `아니오. 피는 한 방울도 안 흘렸어요.’ 이래.

 

나는 소문 듣기에 상처에 모두 성도들이 장례하러 가서 입으로 빨고 막 이래 가지고 자꾸 이랬다 소리 들었기 때문에 나는 피가 참 많이 흘렀는가 이래도 나는 그걸 묻기 위해서 피를 많이 흘렸지요?’ ‘아니오. 여게 조금 그저 비지껍데기 껍데기만 살짝 벗겨져서 그 피만 비쳤지 뭐 피 흐르지 안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그로써 죽은 거는 아니로구만요?’ `그래야 그런 것 그래 아픈 거야, 그래 맞는 것은 열 번 맞아도 안 죽지요.’ 이 서 목사님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래 말해.

 

그래 나는 속으로 아멘, 아멘! 깨달음이 맞다. 손 목사님은 주를 위해서 생명을 일 초도 감소당하지는 안했다. 살 대로는 다 살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함으로써의 마지막에 아야 아야 하고서 병으로 죽고 늙어 죽을 것을 주님을 사랑함으로써의 죽는 죽음으로 줬으니 이것이 최후의 주님의 사랑의 선물이다. 손 목사님이 생명을 바치기까지 주님을 사랑해 보는 그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줬다.

 

주님은 손양원 목사님과 특별 연애를 한 특별한 애인이다.’ 내가 그 속에 그걸 자꾸 생각하고서 그래 그때 그 집회에 가 가지고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랬는데 거게서 집회 하는데 거게도 소방대가 있어. 은혜불을 끄는 소방대가 있어. 제가 그때 예수님은 신성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인성은 피조물이라이라니까 막 왈짝 떠들고 막 이래 나서 가지고서 어떤 장로는 나는 여기 참석 안 하겠다고서 그만 손 들고 막 나가 버려. 이래 가지고서 하루를 나가더니만 그 이튿날 자복을 하고 왔어. 그거 인제 여집사들이 깨달아요, 처음에는. ‘그러면 동정녀 피와 살을 받아 가지고 났는데 예수님의 인성이 그러면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주라 말이요?’ 자꾸 이래 따져 놓으니까 나중에는 깨닫고 제가 잘못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뭐 이 고신에 와 가지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고신에서 어떤 유력한 목사님이 그거 틀렸다 이라다가 나중에는 변동하기를 그렇지마는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그 인성에 대해서 피조물이니 뭐니 그런 말을 밝힐 게 뭐 있나? 그런 말 할 수가 있나? 그거 모욕 주는 말이다.’ 이렇게 말해 가지고 돌렸어요.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라고 밝혀야 될 이유가 있다 말이요, .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은 것은, 우편에 앉은 것은 하나님 다음 자리인데 피조물이 우편에 앉았기 때문에 영광이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지 피조물 아닌 신성이라면 내나 하나님의 본체신데 뭐 거기 앉는 것이 뭐 짜다라 뭐 영광되고 뭐 그럴 게 뭐 있어야지? 이걸 증거할라 하니까 부득이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다.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다. 죄만 없지. 이러나 이렇게 동하고 정하는 것이 신성에 따라서 동하고 정하니까 이래 됐다. 이제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 중보자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의 이 결합은 우리가 하나님과 이렇게 밀접한 결합을 할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신인 이 일위 결합은 안 돼, 일위는 안 되지마는 일행은 된다. 그 말을 지금 제가 말했는데 그 말에 대해서는 정죄를 안 줘요. 우리는 신인 일행은 됩니다.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서 한 행동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동하고 정할 수 있습니다. 일위는 안 돼요.

 

 

이렇게 예수님이 한 것 둘밖에 없어. 침 뱉아서 진흙 이겨 주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이렇게 한 거, 하나는 당신이 친히 발라 줬고 하나는 명령했고 이 둘뿐이야.

 

우리 현실은 주님이 친히 당신의 전지 전능으로서 내 구원에 필요한 것을 다 거게다 결부시켜서 얽혀 가지고 거게서 나만 현실을 원망 불평하지 말고 감사히 받고 거게서 순종으로 통과하면 눈이 열립니다. 순종으로 통과하면 눈이 열려.

 

다니엘도 현실 줄 때에 그 현실에 불만 불평하지 안하고 거게서 소망 가지고 순종으로 통과하고 나니까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들어가기 전 다니엘과 들어갔다 나오고 난 다니엘은 자체도 완전히 달랐고 다른 사람이 다니엘을 보는 것도 달랐고 다니엘이 하는 그 사역도 달랐습니다. 달랐습니까? 사역도 달랐어. 모든 게 달라졌어. 그것이 이 눈뜨는 거라, 눈뜨는 거. 성령의 지혜와 명철의 권능에 충만해.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달게 주님 명령 순종으로 통과하면 거게서 권능도 지혜도 모든 은총이 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환난을 이긴 자의 그 가치와 환난을 겪어보지 안한 자의 그 가치와 환난에 실패하고 사후에 후회하고 돌이키고 한 자는 그거는 측량 못 할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닥쳐지는 그 현실을 이 지극히 큰 가치, 주님의 열한 가지 이 구속이 그 속에 얽혀 가지고서 만들어 놓은 이 보배로운 현실을 이걸 깨닫지 못하고 그저 속단적으로 누구를 원망하고 불평하고서 이렇게 하는 이것은 우리가 어두운 까닭입니다. 여게서 순종만 하면 큰 변화가 옵니다.

 

얼마나 변화가 옵니까? 변화가 오기를 그 사람 같다.’ `그 사람 아니다. 어데 그 사람이라? 그 사람 아니다.' `그 사람이다.’ 그 사람 비슷하다, 아니다, 그 사람이다, 이렇게 잘 아는 사람도 이렇게 모를 만치 그 사람의 가치적으로나 영광적으로나 존귀적으로나 대우적으로나 지혜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모든 일에 비판하고 평가적으로나 모든 면이 이렇게 탁월해져 버립니다. 탁월해졌어요.

 

믿습니까? 저 뒤에도 믿습니까? 이러니까 여게서 인물 가운데에 이 나면서 눈먼 자가 이 순서 통과되니까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보고도 비슷하다, 같기도 하다, 아니다,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말할 만치, 모를 만치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관한 모든 은혜로 이렇게 충만해지는 것이 이것이 이 순서 통과하고에 됐으니까 자, 이 순서를 통과하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 우리가 다 원하지요.

 

 

이랬는데 거게 10절에 저희가 묻되”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이거 알지 못하는 것은 눈이 떠져 가지고, 눈이 감겨 가지고 있으니까 몰랐지 눈이 뜨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그 말을 해야 알지 사람 꽉 찼는데 누가 압니까? 누가 누군지 몰라.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 몰랐어.

 

몰랐는데 그뒤에 자꾸 이렇게 질문이 나가고 시비가 생기는 동안에 예수를 믿지 말아라. 그를 네가 눈띄웠다고 하지 말아라.’ 자꾸 이렇게, 자꾸 이 소경은 눈을 떴으니까 은혜를 받았으니까 자기는 받은 증거가 있기 때문에 자꾸 이라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꾸 이렇게 부인해 버리라고 애를 쓴다 말이오. 부인해 버리라고 애를 쓰는데 한 부인에 부인해 버릴 수 없으니까 또 인정하고 인정하고 자꾸 그라니까 자기는 예수님과 자꾸 가까와지고 친밀해집니다. 자꾸 친밀해져요.

 

저희가 전에 소경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에게 갔더라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 은혜받아서 이래 되니까 조걸 어떻게 해야 찍탈을 잡을꼬?’ 요래 가지고 다른 사람 은혜받으니까 자꾸 탈을 잡을라고, 고거 끄내끼를 잡을라고 요렇게 요라다가 요 바리새교로 말하면 그때에 바리새교는 권세가 있어서 바리새교가 아니면 구원이 없다고 봤습니다.

 

한창 그 천주교가 세력 가지고서 천주교가 아니면 구원을 못 받는다.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줬기 때문에 천국 열쇠는 천주교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주교 이 교단에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 못 받는다. 이랬어.

 

여게도 보니까 자기 아버지에게 물었다 말이오. 물으니까 번연히 알지마는 그가 장성하니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이것은 그때 바리새교에서 출회당하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거게서 쫓겨나가면 지옥 가는 것이니까 지옥 가기가 싫어서, 거게 있으면 천국 가고 거게서 쫓겨나면 지옥이라. 이러기 때문에 그말을 나는 어찌 나은지 모르니까 제가 장성하니 물어 보십시오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게 다 불의한 교권이라 말이요, 불의한 교권.

 

바리새교도 불의한 교권 가지고 망했습니다. 천주교도 하나님의 성경,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계시를 중심해서 따라갈라고 안 하고 교황 그 교리 무오주의, 교황 교리를, 교황이 내놓은 교리는 성경같이 무오하다 이라기 때문에 거게서부터 탈선돼 나가 가지고 그와같이 망해졌던 것입니다. 그게 다 불의한 교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벌써 아닌 것을 가지고 주장할 때에는 아무리 교회서 당회장이고 당회고 노회고 시찰회고 총회고 어떻게 하더란대도 아닌 거는 아니라고 당당히 세워 나와서 불의한 교권에게 꺾여지지 안할라고 하는 그것이 이 나면서 눈먼 자 이 사람의 행동이오. 이 사람은 보니까 그 암만 말해도 꺾여지지 안해.

 

그런데 거기 또 송사자도 있거든. 바리새교에게 송사해. ‘이자가 지금 뭐 눈떴다 하면서 이래 가지고서 지금 선전하고 이 야단이 났습니다.’ 고발했어. 고발만 아니라 데리고 갔어. 잡아 가지고 붙들어 가지고 바리새 교인들 교회로 갔어요.

 

저희가 전에 소경되었던 사람을 데리고전에라 하니까 오래 전이 아니라 바로 그때라, 그때. 하루 전도 전 아니요? 이 전이라 하니까 오래 전인갑다 이래 생각하면 안 돼. 그만 바로 그때라요. “소경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인제 이 고발하러 갔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여게서 은혜받고 가면 요것들도 다 나올 것이라 그말이오.

 

나오면, 와 가지고서 어째 눈떴지? 너 어떻게 해 눈떴지?’ 살살 그라니까 이 사람은 또 좋아서 , 이렇고 이렇고 해서 눈떴다.’ 그때에 동기가 어떻고 뭐 어찌 됐지?’ 분위기를, 고발할 만한 분위기를 단단히 묻고 난 다음에는 그래?’ 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 불의한 교권 옳지 못한 교권들에게 말합니다.

 

불의한 교권은 노회도 될 수 있고, 총회도 될 수 있고, 당회도 될 수 있고, 목사도 될 수 있습니다.

 

저도 거창 있을 때에 한번은 그때 뭐 나는 집사니까, 집사니까 그 장로들 목사들이라면 굉장한데 그때는 주남선 목사님이 있었으면 안 그럴 건데 주남선 목사님이 없었어. 없으니까 목사들하고 장로들하고 호출을 했어. 어느 명령이라고 안 갈 수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장로들이 죽 모여 가지고서 거기서 은혜받고 온 사람들 그 사람들을 요리 조리 물어 가지고 송사할 빙거를 잡아 가지고 자꾸 따져대요. 그래 하나님이 나에게 지혜를 줬어. 따져대서, ‘나는 그 사람들 그라라 소리도 안 하고 하나님 말씀만 가르쳤는데 그렇게 미쳐졌는지 뭐 변동이 됐는지 나는 모르지마는 그것은 주님이 했지 내가 한 것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하라 소리 안 했어. 나는 성경만 가르쳤어. 그러니까 그렇게 하신 분이 누군지 그분 찾아 가지고서 고발을 하든지 송사를 하십시오.’ 이래 놨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그만 말 안 해.

 

그 제일 똑똑하기를 대서, 사법대서 하는 박 장로라 하는 그분이 제일 똑똑해요.

 

그분이 자기 마누라가 거기 왔다가 그만 영 아주 변화가 돼 버렸거든. 이래 놓으니까 그전에는 마누라가 저 중심으로 저 위주로 살았는데 갔다 오더니마는 이거 다르다 그말이오. 그만 독점했던 마누라를 독점을 못하게 되거든. 하나님이 독점하게 됐다 그말이오. 이래 진리가 독점하고. 이래 놓으니까 분해서 나를 잡아 데렸어.

 

이랬는데 마침 그때에 공산주의자들이 와 가지고 거창읍이 사흘 동안 인민 공화국이 됐었습니다. 이랬는데 이러니까 뭐 언제 피해서 갑자기 왔으니까 도망갈 여가도 없고 이래 가지고 벌벌 떨고 있으니까 이 부인이 있다가, 다다미 집인데, 다다미 방인데 여기 다다미 방 밑에 이리 들어가십시오. 이리 들어가십시오.

 

이리 들어가면 됩니다. 이리 들어가십시오.’ 그래 들어가고 인제 그래 여기 위에 앉았으면 그 사람들 오면 나만 잡아갔으면 갔지 뭐 당신이야 상관없지 않겠소? 여기 들어가십시오.’ 들어갔다 말이오. 쥐새끼 모양으로 들어갔어.

 

들어갔는데 들어가니까 아, 그만 그 앉혀 놓고서 막 고함을 질러서 막 기도하면서 전부가 빨갱이들이 왔기 때문에 황충이떼들을 다 물리쳐 달라고 마구 고함을 질러서 기도하는데 이라면 공산주의 다니면서 들어올 터이니 이거 기가 차고 속에 녹는다 말이오. 그만 녹아 죽을 지경이라. 이런데 저놈의 계집을 내가 살기만 살면 가서 막 죽여버린다고 이렇게 지금 속에 악독을 품고 있는데, 이러니까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문을 쾅 열고 이러니까 뭐 속에 환하게 들리거든.

 

공산주의가 왔는데 왔다가는 아무도 없다. 가자.’ 공산주의가 그렇게 고함을 지르는데도 들리지도 안하는지 보이지도 안하는지 왔다 가고 왔다 가고 공산주의가 여러차례 왔다가 지나갔거든. 그만 녹아졌어. ‘이게 하나님의 권능이구나. 내가 큰 죄를 지었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 지나가고 난 다음에 이 집사님이 나와서 왜 그래 두려워해요, 하나님이 계시는데요. 나오시오.’ 쥐새끼 모양으로 막 거미줄을 두터쓰고 그래 나오거든. 나오더니만 그때부터는 그만 부인이 이 집사인데 그만 이 집사한테 머리를 숙이고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나는 참 죄인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사법대서 치워버렸습니다. 그만 바로 사법대서 치워버리고 그라고 난 다음에 바로 전도사로 나섰습니다.

 

전도사로 나서 가지고서 그때 나는 부산 있었는데 와서 자복을 하면서 나 지금 목사님 말씀 듣고 나는 지금 신학교 왔습니다. 나 전도할라고 신학교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마지막에 구원 준비를 전도사로 하다가서, 전도사 하면서도 뭐 그때 전도사 해 놓으니까 사법대서로 똑똑하지마는 설교를 잘할 수가 있소, 그뭐 목회 할 수가 있소? 목회를 얼마 동안 하면서 그 교인들에게 멸시 천대 배척 실컷 당하고 세상 떴습니다. 그게 그 사람에게는 복이라. 그래라도 주를 위해서 당한 그 고난을 당했더라 그거요.

 

이러니까 드는 칼은 여문 나무를 만나봐야 안다는 것 마찬가지로 이제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의 변화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변화가 와야 돼. 자기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봐야 돼.

 

천국은 마태 1344절에, 있는 것을 다 어째요? 다 팔아요. “다 팔아서 보화와 진주를 삼 같다참으로 우리의 구원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면 자기의 전부를 바치지 안할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바치나 안 바치나 그걸 봐서 내가 참 이 성화구원이라는 이 건설구원, 이 건설구원의 가치를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말쟁인지 뭐인지, 제가 하나도 바치지 못하면서 강단에서 하는 것은 그 거짓말쟁이요 연극쟁이지.

 

그래도 그 말 듣고 다른 사람은 구원 얻지마는 제게는 아무 수입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도구로 연장으로 쓰는 거라. 농부가 쟁기가 제일 중요한 농구지마는 그 농구는 농사를 지을 때는 필요하게 해서 큰일 많이 하지요. 많이 하지마는 농사 짓고 난 다음에는 곳간에 처박아 버립니다. 그 농구를 누가 방안에 침대에 눕힐 자가 누가 있겠소?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주님의 형상으로 성화된 그것이 자기 구원이지 다른 일한 것은 상급은 될지라도 자기 자체 구원은 안 됩니다.

 

 

여게서 이제 송사했어. “데리고 갔더라” 14절에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하나 걸렸어. 그날이 안식일이거든. 안식일이니까 , 이거 됐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았더라 하니요 진흙 이겼다는 말을 여러번 했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거 왜 여러번 했는가? 요게 중요해. 물으면 진흙 이겨 눈에 바르고 씻으니까 나았다요 말 여러번 했어.

 

우리는 요걸 자꾸 다져야 돼요. 주님이 그에게 해 주시는 대로 달게 받고 주님이 자기에게 해 주시는 대로, 뭘 해 줘요? 뭘 해 줘요? 현실을 만들어 줘요.

 

그러기에 현실을 주님이 만들어 주신다는 요 교리와 신조를 잡고 있는 사람이라야지 현실은 주님이 만들지 안하고 모든 만물들이 만들어 줬다 이렇게 보는 자는 이런 도리를 깨달을 수가 없어요. 이러기에 처음으로 오는 자는 여게서 들어봐야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이고, 이러니까 오랫 동안 들어야 이제 알게 되지.

 

기초가 있어야 그 위에 집이 되지 기초 터가 없는데 집이 어찌 됩니가?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여기 또 한 사람 나와.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니이렇게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서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온 예수가 아니다. 이거는 하나님께로서 온 게 아니고 이거 귀신으로 왔다.’ 하나님께로 안 왔다 말은 무슨 말이요? 귀신에게서 왔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권능 귀신의 권능 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 아니라 말은 귀신의 권능이라 말이오. 그말이 맞습니까?

 

아니라하며그런데 여게서 우리가 하나 깊이 깨달을 거 있습니다. 이 바리새교인들이, 바리새교인들이 만일 나면서 눈뜬 소경이 자기 아들이 됐다면, 자기 아들이 됐다면 이 예수님에게 대해서 안식일에 했다고 하나님께로서 안 왔다고 이렇게 정죄를 할까요 안 할까요? 자기 아들이 이래 눈을 떴으면 할까요 안 할까요? 똑똑히 비판해요.

 

자기 아들이 나면서 소경돼 가지고 병신돼 있는데 예수님이 진흙 발라 씻으라 해 가지고서 확 나아버렸으면 이는 귀신에게서 왔다. 이는 하나님께로서 오지 안했다. 이 안식일날 했기 때문에 아니다.’ 이런 조건으로 찍탈을 잡아질까요, 이는 참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능이다, 이는 참 선지자다.’ 그렇게만 기울어질까요 어떻게 기울어질까요? 안식일이라 하는 그런 깔탈을 잡을까요 존경되고 감사하고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께로 왔다고 그렇게 자기 견해가 자기 주관이 그래 기울어질까요 이렇게 송사하는 것으로 기울어질까요, 어떻게 되겠어요? 자기 아들 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감사로 기울어지겠소 송사로 기울어지겠소? 여러분들, 여게서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그 속에 영생이 없느니라하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거게서는 깊고 세밀한 그 내용은 팔 수가 없고 자기에게 있는 전부를 기울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말 있지 않습니까? 여인은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뭣 때문에? 사랑 때문에 강해지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하루 열두 번 거짓말 한다, 옆에 사람 볼 때에 열두 번 거짓말 한다. 어머니가 보고 아이가 이거 나를 복 웃는다 웃는다 뭐 어짜고 이래 쌓아니까 옆에 사람이 보고 엔간히 좋은가배. 공연히 순거짓말만 자꾸 지어내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 거짓말입니까 그 참말입니까? 사랑이 있기 때문에 깊이 관심 가지고 사랑 가지고 있으니까 안 보이는 게 보이는데 사랑 없는 옆에 사람은 그 보는 것을 거짓말한다고 미친 자로 그렇게 봅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내 마음에 사랑을 건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만일 사랑이 건설되어 있지 않으면 모든 것에 정평 정가는 절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랑이 건설되지 안하고 있는 사람은 모든 일 말하는 것이 깊이도 모르고, 넓이도 모르고, 세밀히도 모르고, 또 거게 대해서 자기의 투자하는 힘도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랑, 요한복음 5장에 삼십팔년된 병자가 그와 같이 나았는데 거게서도 나은 그날이 안식일이니까 찍탈잡아 가지고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아 죽일라고 그와같이 지금 그때 단결하지 안했습니까? 왜 그들이 삼십팔년된 병자를 그렇게 낫아 주셨으니까 그렇게 좋은 일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견해가 됐을까? 만일 삼십팔년된 병자를 사랑하는 그 아버지나 어머니가 있었다면은 그렇게 해석이 됐을까?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석이 됐겠소? 삼십팔년된 병자를 사랑했다면 그렇게 해석이 됐겠습니까? 그렇게 해석될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여게서 내 속에 사랑이 없으면 모든 접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견해나 내가 계획이나 소원이나 대책은 이거는 참 엉망진창으로 얼토당토 안하게 그 외식으로 흘러나가고 있겠다.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지혜와 눈이 없겠다.

 

내가 사랑으로서 화해지는 것, 그러기에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내가 사랑이 없으면 거게 대해서는 정평 정가나 정당한 내 소욕은 생겨지지 않는다. 모두가 다 껍데기요 하나님이 원하는, 주님의 정신과 주님의 소원과 주님의 하시는 일에는 정반대됐습니다.

 

그러나 이 나면서 눈먼 자의 아버지는 보고 그렇게 송사하는 것이 답답하고 이렇지 그런 마음 가지지 안했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안했어요. 이랬는데 이라니까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이라니까 암만 말해도 안 들으니까 이놈은 안 됐다. 저거 아버지를 불러라.’ 혹 저거 아버지를 부른 것은 알고 싶어 부른 게 아니라 저거 아버지를 부른 것은 저거 아버지가, 저거 아버지는, 이놈은 제가 눈이 떴기 때문에 당사자기 때문에 이렇게 막 딱딱 대고 막 좋아서 이라지마는 저거 아버지는 거석하면 출회하면 쫓겨나가면 지옥 가기 때문에 출회가 겁이 나 가지고 아마 말을 변경하지 않을까 해서 거게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그 재료를 마련하고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잘못 선전하는 그런 운동하기 위해서 불렀습니다.

 

부르니까 말하기를 그가 내 아들인 줄도 알고, 날 때부터 소경된 것도 알고, 지금 눈이 떠 가지고 있는 것도 알고 그렇지마는 어떻게 해서 눈이 떨어졌는지 나는 그것은 모릅니다. “눈이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저거 아마 내외왔던 모양이라, 내외. “알지 못하나이다”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교회서 쫓아내니까 지옥 보낸다 하는 것으로 결단하였음을 저희가 무서워함이러라” “무서워함이러라” “무서워함이러라이러니까 사랑이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이 있으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이 있으니까 이렇게 오해하고 송사하는 사람은 되지는 안했지마는, 되지는 안했지마는 예수님이 이렇게 낫았다 하는 그거를 이 본인같이 그렇게 증거는 못했습니다. 이 사실은 알았지마는 증거는 못 했어. 예수님의 하시는 이 역사를 인정은 하면서도 제게 해가 돌아올까 싶어서 증인 노릇을 바로 못하는 이런 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소경의 아버지와 같이 자기가 그때 그 교권에서 부정당할까 싶어서, 교권에서 부정당할까 싶어서 알기는 알지마는 증거를 회피하고 이렇게 증거의 책임을 전가시키는 이 사람 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 사람이 되기 싫은 사람 한번 손 들어 봅시다. , 우리는 깨달아야 됩니다.

 

제가 그때 고신에서 이 모든 교리 신조 문제 가지고서 이렇게 시비할 때에 그때 다른 사람들이 와 가지고 많은 사람이 와 가지고 우리도 그게 틀린 줄은 안다.

 

백 조사님 말한 것이 옳은 줄은 안다.’ ‘옳은 줄 알면 왜 그대로 주장하지 왜 그러느냐?' `그라면 밥통이 떨어지지 않느냐? 알고 있지 않느냐?’ 또 어떤 사람은, 이러니까 이병구 목사님은 저한테 몇 번 찾아왔었습니다. 그때 이병구 목사는 목사요 나는 조사기 때문에 노회원권이 없어. 이랬는데 와 가지고 조사님, 조사님만 깃발 들고 나서면 전부 다 따라갑니다. 어서 드이소. 드이소.’ 하는 것이 몇번 찾아와서 말한 것이 이병구 목사였습니다. 이 설교록에 나가니까 그분하고 나하고 같이 얘기를 하고 모두 했으니까 이게 나가면 다 알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있기 때문에 그분에게 물어보면 압니다.

 

그래 그때 보니까 옳은 것으로 깨달은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많았지마는 자기에게 희생을 당하면서도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별로이 없었어.

 

별별 사람들 많아요. 어떤 사람은 거게, 이름은 내가 말하지 않습니다. 이름 말하다가 하도 후회가 돼서. 이름 말하니까 그 사람 들려가니까. 지금 유력한 목사님입니다. 와 가지고서 아무래도 조사님 걷는 게 옳습니다. 나는 찬성합니다.’ 살며시 와 가지고 나는 찬성합니다. 나는 조사님하고 같은 그런 신앙 사상을 가지고 나가고 있습니다.’ 이래요. 그러니까 그 사람 내 동지니까 얼마나 좋겠소? 얼마나 좋겠소? 이랬는데 그때 노회가 없고 총노회라. 그때는 총회겸 노회겸 하나밖에 없었어, 처음 출발할 때니까. 총노회 할 때인데 그때에 거게서 이제 이 백 조사를 정죄해 가지고 치리한다고 ○○○목사님이 그렇게 장담하고 삼 일을 연기해 가지고 전국이 다 모였어. 나는 그때 팜프렛을 인제 확 팜프렛 내 가지고서 팜프렛을 이렇게 박아 가지고서 만들어 가지고 이걸 뿌릴라고 지금 갖다 놓고 이라니까 그때 말이 달라졌어. ‘정치 위원들에게 위임하겠습니다.’ 이라니까 밑에서는 뭐 당장에 뭣이 있는가 싶어서 이래 다 왔는데 이래 말하니까 이상해졌어.

 

그때에 내가 나가면서 하필 나를 소리해 나가기 때문에 나는, 내가 수양이 모자라 그래. 그때는 하도 일방적이기 때문에 잘 논다. 암만 해 봐라. 하나님은 내편인데 문제가 뭐꼬?’ 하도 우스워서 비웃으면서 빙글빙글 나갔던 모양이라, 나도 모르게. 이라니까 여기 대구 가 있는 박복달 선생님 그런 이들 있다가 조거 봐요, 조거 봐요.’ 내 귀에 들려. ‘조거 봐. 백 조사 조거 봐. 저런데도 지금 이 마당에서 나가면서도 빙글빙글 웃으면서 나간다. 조거 봐, 조거 봐.’ 그 말이 옆에서 어떻게 많이 들어오는지? 그럴수록이 웃음은 더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때 찬성하는 사람이 없어. 희생을 당해도 옳은 것을 옳다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들이 별로이 없어. 모두 저거 아버지 정도에 있는 사람들 있고 그게 옳기야 옳다.’ 미운 사람들은, 미운 사람들은 다 나를 정죄해요. 미움이 없는 사람들은 그래도 정죄하지는 안하고 옳기야 옳다.’ 그렇지마는 증거 못 해. 여기서, 여기서 요런 종류 저런 종류의 사람들의 신앙 사상을 다 발견할 수 있어. 나는 그때 요한복음 9장을 똑똑히 연구하고 있는 사람이었었어. 이러기 때문에 다 볼 때에 요동치는 안했어. 이 요한복음 9장 설교를 내가 한 지는 벌써 한 사십 년 됐습니다.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었더라 이에 저희가 소경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인제 처음에 불러 가지고 신랄하고 또 두번째 불렀어.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라하나님은 잘 팔아먹습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라. 어데든지 하나님만 찍어다 붙이면 되는 것 아니라, 여러분들.

 

어제 사자에게 찢긴 그 선지자가 어짜다가 사자한테 찢겼지요? 무슨 증거 받다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경력이 많은 노숙한 사람 보고, 선지자라는 말 듣고, 배고픈데 밥 먹으라 말 듣고, 목마른데 물 마시라 하고, 피곤한데 쉬라 하고, 외로운데 동지 나오고, 어찌 딱 들어맞았어. 어찌 먹지 말라는 그걸 알고 말을 해? 이상하다, 이상하다. , 이러니까, 그런데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는데 먹고지비, 마시고지비, 쉬고지비, 외로운데 위로하는 위로지비, 이놈이 뚤뚤 뭉쳐 가지고서 가자했다 말이오.

 

그럴 때에 저를 구원할 것은 뭣뿐입니까? 저를 구원할 것은 뭣뿐입니까? 주의 음성이지. 선지자가 말하면 , 만나니까 반갑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통해서도 이렇게 저렇게 말하라 하는 것 내가 가서 예언하니까 그대로 단이 갈라져서 재도 쏟아졌고, 나를 해할라 하는 자가 팔을 내니까, 대왕이지마는 팔을 내니까 팔이 빠짝 말라버렸고, 또 나한테 낫기를 청해서 기도하니까 성해졌고, 이랬는데 주님이 내게도 예언하시고 내게 가르쳐 주시고 하시는데 주님이 내게 대한 중대한 일이라면, 내게 지금 먹지 말라 해 놓고 먹으라 하는 것이면 중대한 일인데,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변경됐기 때문에 중대한 일인데 이런 중대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뭣 때문에 다른 선지에게 통해 말해?’ 불평을 하고, 똑똑히 말할라면 하나님께서 그거는 내 일은 내게 말하지 다른 선지에게 말할 리가 없다.’ 이거는 하나님이 나한테 실수하는 것이가 이 늙은 선지가 나한테 조화부린 것이가 환하게 알 수가 있어.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이런 안된 이 방편을 취할까? 나를 시켜서 이래 했으면 내게 대한 것은 나한테 말할 일이지 나한테 말하지 안하고 이 늙은 선지에게 말하는 거 이거는 실수 아니까?’ 하나님이 실수를 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 선지가 나한테 대해서 잘못 말하는 것인가? 둘중에 중량을 하나님께 두면은 어찌 돼요? 둘 중에 그 선지 말과 하나님과, 선지와 하나님과 둘 중에 중량을 하나님에게다가 더 중량을 크게 뒀더라면 그 선지는 어떻게 했을까요? 아니야, 주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는 동하지 안하지. 그렇지 안해요? 그것이 주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배반하게 된것은 자기 주관 요소에 배반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조건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배반했습니다. 그때에 자기를 살리는 것은 주의 음성입니다.

 

내가 구경 하나 했는데, 지금은 양복이 많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양복이 참 없었습니다. 없어서 삼베로 양복 지어서 입었고 명베로 양복 지어 었고, 양복 기지가 있어야지요? 그때도 돈 많이 주면 입지만 별로이 귀했어. 이러니까 양복을 양복 기지를 사 가지고 입고 다니는 사람 별로 없었습니다. 나도 예수 안 믿을 때에는 꼭 영국제, 영국에서 나오는 영국제 원단을 가지고서 양복 지어 입었었어.

 

믿고 난 다음에는 그게 안 돼. 그러니까 명베 삼베 이런 거 가지고서 옷지어 입었어요. 그때는 옷이 귀해.

 

이랬는데 신학교에 구호 물자가 마구 이렇게 큰 기계로 들고 실어야 되는 큰 농 몇개 합한 거와 같은 그런 큰 것이 여러 수십 개가 돌아왔어. 돌아왔는데, 아니 수십 개 돌아온 것이 아니오. 그때에 세 개인가 네 개인가 돌아왔어. 세 개인가 네 개인가 돌아왔는데 언제 그걸 헐어봤는지 벌써 소문이 쫙 돌아. ‘, 거기 좋은 양복이 세 벌 있다. 좋은 양복이 세 벌 있다. 또 외투가 좋은 외투가 몇 개 있다.’ 뭐 대번에 다 알고 광고가 쫙 돌아.

 

쫙 도는데 그라면 이거 다 신학생들에게 나눠 줘 가지고서 다 분배를 하자, 양복 좋은 것은 제비를 이것을 내 가지고서 뽑아서 그래 나눠 주자 이라는데 어떤 학생들은 말하기를 나는 그거 안 할랍니다.’ 제비 뽑으라 하니까 나는 그 제비 안 뽑고 포기합니다.' ‘?’ `나는 뭐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이라고 속으로 돌아가서 눈물로 기도하기를 주여, 나는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산 적자 아닙니까? 나는 하나님 아들 아닙니까? 하나님 아들이면 뭣 때문에 꼭 미국 사람을 통해 가지고 거지로 이래 구제로 줍니까? 주님이 직접 주지 안하면 나는 안 입습니다. 벗어서 죽어도 안 입습니다. 굶어 죽어도 안 먹겠습니다. 왜 나한테 직접 주지 뭣 때문에 간접으로 그래 통해서 그렇게 구제로 구걸로 그래 줍니까? 나는 안 합니다.’ 안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안 한 사람도 있었어. 속에 께겡이가 있어야 돼. 그 사람들은 지금도 부자라. 물질에 대해서 구애받지를 안해.

 

이러기 때문에 경험이 있으니까 주님에게 달라 하지 뭐 인간에게 비리붙어? 아무리 장로가 부자래도 장로에게 비리붙어 가지고서 장로 주는 거 안 얻어먹을라 해. 주님이 주시는 거라야 되지. 굶고 입고 먹는 것은 당신이 직접 줘야 좋지, 당신이 직접 주면 이런 거 저런 거 다 좋지마는, ‘비지떡이라도 당신이 주면 좋고 고량진미라도 남을 통해 주는 것은 나는 구제로는 안 받겠습니다.’ 요것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당신의 뜻대로 행동해서 오는 것이면 밥이나 죽이나 헐벗으나 굶주리나 당신의 뜻대로 할 때에 내게 오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 그거 위해서 내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양심에 가책되는 걸음을 걸어서 오는 것은 피조물에게 받는 것이지 주님에게 직접 받는 것 아니라.

 

 

이래 두번째 불러 가지고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이랬습니다, 눈뜬 자에게. “우리는 저 사람이예수님을 말이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모든 사람이 막 우겨 누르고, 교권이 우겨 누르고, 목사 장로들이 막 우겨 누르고, 노회서 우겨 누르고, 총회서 우겨 누르고, 이게 우겨 누르면서 예수는 죄인인 줄 안다 이렇게 말하면 그만 슬그머니 꺾여 들어갈 거라 말이오.

 

여러분들이 여게서 암만 은혜를 받아도 밖에서 지금 기다리고 있어. 이래 가지고 우겨 누르고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하니까막 거짓말 대 가지고서 이렇고 이렇고 하니까 그것은 네가 이단을 받고 왔다.’ 이라면은 제가 받아서 변화되기도 하고, 요번에 신고한 사람이 많을 건데 잘 신고 안 해. ‘이거는 신고하니까 또 신고하니까 목사님 자기 딸도 뭐 나았다고 자꾸 이래 쌓아니까 아이고 수치스럽다. 어라 써내면 그렇고 안 낸다.’ 그것도 주를 위해서 자기가 좀 희생하는 것이니까 상급이 있어.

 

가만히 숨겨놓고, 열두 해 혈루증 된 여인 주님이 어떻게 했어요? 가만히 숨어서 이랄라 하니까 누가 내옷을 만졌느냐?’ 또 제자들은 알지도 못하고, 사람이 이래 빽빽한데 뭐 옷에 대이고 누가 만졌다고 그말 하는 거 정신병자 같다 말이오. 그러니까 예수님을 같이 있어도 몰라요. 예수님의 그 심정을 몰라.

 

예수님의 심정은 그 여인에게 완전 해방을 주기 위해서 이라지마는 모르고 벌로 속단으로 껍데기로 자꾸 이래 말하고 있어.

 

이라니까 그 여인이 그때사 벌벌 떨며 와 가지고 무릎을 꿇어 가지고 엎드리며서 제가 그랬습니다.’ 이랬다 말이오. 그러면 예수님이 들냈어요 안 들냈어요? 예수님이 숨겨 놨어요 그것을 나은 것을 들냈어요? 들내는 것이 예수님의 뜻인 줄 알아요. 들내야 그 여인에게 복이 되고 유익이 되고 해방이 되기 때문에 그래.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그가 죄인인지 죄인 아닌지 그거 내가, 솔직해. “죄인인지 죄인 아닌지 나는 그걸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내가 나면서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은 보는 이것이 내가, 이거 내가 압니다. 그분이 내 눈을 띄워 줬습니다. 이거는 압니다.

 

그 소리 못 하구로 불렀는데, 그 소리 못하도록 우겨 누르고 부르고 야단인데 꺾어지지 안하고 증거했습니다.

 

보나이다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무었을 하였느냐또 물어. 또 묻는 거는 뭐할라고 묻지요? 또 묻는 거는 뭐할라고 물어요? ○○○목사님? 부인하라고 또 물어. 하도 위협 주고 이라면 인제 그랄까 싶어서 부인하도록 요렇게 요 세상은 우리들에게 주님에게 대해서 부인하도록 오만 방편 쓰고 위협 주고 이래 가지고서 우리 심리 우리 형편 정도를 봐 가면서 유도 작전을 합니다.

 

그것도 알아야 돼요.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절에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으되내가 이미 일렀어도, 내가 말했는데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요말 할 때에 주님이 얼마나 기뻐했을까? 그러면 거게 바리새교회 총회고 뭐고 전부 그 뭉텅이를 발 아래 밟았소 그 두려워했소? 발 아래 밟았어.

 

하나님이 제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편이기 때문에 그까짓 게 두려울 게 하나도 없어. 사람을 멸시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에게 반대하는 그까짓 거야 천명이고 만명이고 억만명이라도 그까짓 거 똥같이 여겨도 좋아. 하나님께 반대하고 진리에 반대하는 건 그까짓 거 사상과 운동은 세력을 볼 것이 없어.

 

하나이까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자꾸 이 쌓아니까 이 소경하고 주님하고 정이 들어붙소 안 들어붙소? 들어붙습니까 안 들어붙습니까? 주님도 좋아할 것이고 저도 자꾸 그라다 보니까 주님이 더 좋고 더 좋아서 점점 들어붙습니다, 여러분들.

 

세상에서 이렇게 하는 이런 모든 것은 햇볕이 쪼우면 진흙은 땐땐해지고 초는 물씬물씬하는 것처럼 이렇게 이런 일이 있을수록 이제 그 중심에 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더 사랑하게 돼. 핍박이 올수록이 점점 더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을 껍데기로 하던 자는 점점 껍데기가 돼 버립니다. 주님에게 대해 껍데기는 점점 껍데기가 돼지고 알맹이는 점점 알맹이가 돼지는 것이오. 이거 하기 위해서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데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또 들고 나옵니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데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거 주님이 기뻐해요.

 

여러분들은 여게 하나님이 행하신 이적 행한 것 기록해 내라 하니까 기록해 안 내는 것과 이 성경 해석과 같아요 달라요? 다릅니까 같습니까? (다릅니다) 여게 병나은 사람은 자꾸 자기가 그렇게 막 우겨 눌러도 자랑하고, 지옥 보낼라 해도 자랑하고, 쫓아내도 자랑하고, 출교 당하면 지옥 가는 줄 알았거든. 그런 거짓부리에게 눌리지 안하고 자꾸 자랑합니다. 나타냅니다.

 

나타내는데 여러분들은 자꾸 하나님이 고쳐 준 것도 숨겨 가루니까 그것이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이요 뭐 부끄러워하는 것이요? 자기 우사될까 싶어서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니까 자기 우상 가진 사람이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요? 자기 우상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들어.

 

어데라고? 하나님의 심판이 공평된데.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제 쫓아보내니라성공했어. “쫓아보내니라” “온전히 죄 가운데전부 죄 가운데 나 가지고서, 소경되니까 죄 가운데 나올밖에는. 주님은 제 죄도 부모 죄도 아니라 했는데. 이러니까 하나 반대하면 전부가 다 반대돼져요. 이러기 때문에 옳은 거 하나 잡으면, 지극히 작은 불의는 큰 데도 불의하고 지극히 작은 데 충성하는 자는 큰 데도 충성한다 하는 말씀이 맞습니다.

 

이라니까 쫓아내니라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내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들으셨더니들었다 말이요, 이제. 쫓겨나오도록 하는 것도 다 들었어. 창살틈으로 봤어. 눈에 보이지 안하는 창살틈으로 봤어.

 

아레 부르는 노래에 풍파에 옷 입고 고문과 고형의 잔치에 숨어 엿보시는숨어서 가만히 네가 어짜는가 보자, ‘숨어 엿보시는’ `고개턱 너머서 숨어 엿보시는' ‘고개턱 너머서 숨어 엿보시는밤중 너머서 절정 너머서 쫓겨날 때가지 거기 가만히 숨어 본다 말이오. ‘숨어 엿보시는 마중의 주님을주님은 마중 나와서 있어. 마중 나와 숨어 보고 있어, 어짜는고? 그럴 때에 우리는 생명을 전하고 가리이다. 생명을 전하고 가리이다.’ 멸망하는 인간을 예수가 생명인데 예수로 모두 다 살아나도록 이 생명을 전하고 가리이다. 그런 노래 한번 부르데요, 언제 보니까.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이제는 소경을 만났어. 그때는 나타나게 만났어, 늘 숨어 보다가. 여러분들 요것을 보고서 요걸 알아야 됩니다. 주님이 숨어서 내 행동 일동 일정을 지금 살피고 엿보고 계시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분이 전능의 능력을 가지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지,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는지, 당신의 이 능력을 어떻게 내가 바라보는지, 주님은 나를 사랑했는데 너는 나를 어떻게 사랑하나? 그것을 엿보시는 것을 우리는 봐야 됩니다.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주님은 믿는데 인자를 믿느냐 하니까 그거 몰라. 인자가 믿느냐 하니까 인자가 뭐인데? 인자는 뭐인데? 만유의 대주재이신 모든 것을 가지신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그 모든 것 나 주기 위해서 나를 대속하기 위해서 거지됐어. 그는 근본 부요하시더니 모든 것을 우리 위해서 가난하게 됐어. 가난하게 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고린도후서 8장에 있어, 9장에 있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그 보아도 몰랐는데 그분이 그분인 줄 모르고 네 눈이나 띄워 준 줄 알았지 그분이 그분인 줄 모르는데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예수님이 내게 대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주는 모든 기적과 능력을 주신 것도 좋지마는 주님이 하나님의 부요를 나 주시기 위해서 가난해지신 이 사랑도 알아야 됩니다. “인자를 믿느냐” “인자를 믿느냐이것은 고개턱 너머 가서 만났어. 끝까지 증거하다가. 안 되니까, 그거 뭐 겁을 내고, 위협을 하니까 겁을 내면, 저거 아버지는 겁을 냈는데 이거 겁도 안 내고 가서 건드리면 자꾸 예수만 툭툭 더 튀어 나올 터이니까, 건드리면 예수만 튀어 나오지, 주먹으로 쥐박으면 예수만 튀어 나오지, 말해 봤자 자꾸 예수 자랑만 나올 터이니까 이거 안 됐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쫓아내 버렸어. 쫓아내고 나니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들. 요 고개를 알아야 됩니다. 이 고개턱을 알아야 돼요, 고개턱. 절정의 만당을 알아야 돼요.

 

절하는지라” “내가 주를 믿나이다 절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뚱딴지 같은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듣고 깨닫지 못하니까 또 뚱딴지 같은 소리 또 한다 말이오.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우리도 소경인가예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건 전부 삐뚤어진 건데 이거 무조건 주님의 말씀이면 복종해야 되는데 자기 주관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분석이 되고 이해가 돼야, 자기 주관에 이해가 돼야 믿는다는 그것은 다 망령입니다.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여게서 많은 인물들을 오늘 아침에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은혜받은 다음에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이것은 다 이 순서입니다. 이런 인물이든지 나는 그중에 어떤 인물이 될 건가? 어떤 인물이 될 건가? 내가 될 것은 나면서 소경된 거 내가 깨닫고, 진흙 발라 가서 실로암 못에 씻고 오라는 거 내가 받아들이는 그 사람 되어서 나를 과거에 눈뜨기 전에는 영감과 진리의 이 권능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전에 보던 사람이 그후에는 보고, 그 사람 같다, 비슷하다, 아니다 할 수 있기까지 이렇게 성령과 진리의 주님의 은혜로 변화되기를 원하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다 원해.

 

이럴라면 여러분들이 이 은혜를 보존하는 데에는 고개턱이 있어. 이 은혜를 보존하는 데는 고개턱이 있어. 고개를 넘어야 주님을 새로 만나요. 알겠습니까! 세상과 환경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금번에 첫 시간부터 한 시간 한 시간 주님이 둔탁한 것을 붙드시고 주의 피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이 역사하셔서 주님의 이 뜻이요 실상인 이 구원을 우리에게 전파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은 하늘나라의 곳간에서 내어온 새것과 옛것이오니, 곧 실상이오니, 멸망과 구원과 영광과 비참의 실상이오니 이 거짓 것을 다 버리고 참의 것을 붙들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이루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 소경이 주님과 두 가지 관계로 인하여서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할 만치 영광스럽게 변화된 것을 저들에게 가르쳐 주셨사오니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이 사람 되기를 원하시고 이 사람 되게 하시려고 이 사람을 실상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믿습니다! 다 이 사람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모든 시련들이 다가올 때에 마지막 시간으로 똑똑히 가르쳐 주셨사오니 변질되지 말고 고개턱을 넘어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버림을 당했을 때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다시 온전케 하신 이 사실을 확신하고 실천하는 저희들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이여, 금번에 이렇게 사람병 고쳐 준 것, 영병 마음병 영병 고쳐 준 것 잊어버리지 말고 생각하고 금번에 들은 말씀은 지켜 행하고 회개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흰옷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가장 영광스러운 순생과 순교를 할 수 있는 이런 때를 당할 때에 기쁘고 즐거움으로 뛰어들고 주저하지 안하고 지체하지 안하고 요동치 않게 하시옵소서! 면류관을 받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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