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중요성과 해결법


선지자선교회 1983년 7월 9일 토새

 

본문 :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말은 복음을 자랑한다, 언제든지 복음만  내놓는다 그말입니다. 아플 때도 복음, 아플 때도 복음입니다. 또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복음, 좋은 일이 있어도 복음, 두려울 때도 복음, 원수 앞에 포위됐을  때도 복음, 답답할 때도 복음, 돈 없을 때도 복음, 또 어떠한 형편에든지  사정에서든지 어떤 장소 어떤 때든지 언제든지 복음뿐입니다.

 예를 들어 묻기를 '너는 복음을 만병통치로 아는구나.' '그래, 나는 복음을  만병통치로 안다. 무슨 병이 들었든지 복음이다. 복음은 만병 통치다.' 복음은  그러면 만사형통이로구나.' '그래, 복음은 만사형통이다.' '그러면 복음은  전능이네.' '그래,복음은 전능이지.' '복음은 그러면 부자방망이가?' '그래,  복음은 부자 방망이지.' '어데든지 복음만 내놓 으면 되는 줄 아는구나.'  '그래.' '그러면 복음은 언제든지 숭리가?' '복음은 숭리지.' 어데든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그저 복음 외에 딴게 쓸 게 없다. 복음이면 다  된다.

 자기는 복음 가지고 못 할 것 없고, 복음 외에 쓸 것 없고, 복음 외에 필요한  것 없고 복음 하나만이 필요하고 복음 하나면 다 되는 그 사상을 가지고 그대로  사는 것을 나타내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게는 뭐 약을 써야 되지 여게도 복음이냐?' '복음이다.' 사형을 받았는데  지금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거게도 복음입니다. '네가 사형 선고 받은 여기도  복음이가?' '여기도 복음이지.'  복음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안하고 또 복음이면 다 되는 그러기에  복음은 전능이라, 전지라, 복음은 만사 형통이라, 복음은 매사에 승리와  성공이라, 복음은 만병통치라. 복음은 행복이라, 복음은 쾌락이라, 복음은  만족이라. 뭐 '복음 가지고 안 되는 것 없다. 복음 가지고 다 된다.'  복음이 뭐이기 때문에 다 되느냐? 하나님의 독생자가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서 영원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새생명을 주셔서 구속한  자들에게, 이렇게 큰 힘 들여서 구속한 자들에게 '네가 이래 해라. 이리만 하면  내가 무슨 일이든지 책임지겠다.' 하는 그게 복음입니다.

 이렇게 하라니, 어떻게? '신구약 성경 말씀 이 영감 도리대로 해라. 그러면  내가 책임지겠다.' '그러면 병들었을 때도 책임질랍니까?' '책임지지.'  '원수에게 포위됐을 때도 책임질랍니까?' '책임지지' '바다에 빠졌을 때도  책임질랍니까?' '책임지지.'  어데든지 주님이 피로 대속하신 그자에게 신구약 성경 말씀의 이 도리를  나타내시면서 '네가 이 도리대로만 하라. 그러면 무슨 일이든지 언제든지  어데서든지 뭐 큰 일 작은 일 상관 없다. 내게는 크고 작은 것이 상관 없다.

내가 하려면 다 하는 것이지. 엿새 동안에 만물을 지었는데 지은 만물 그것 뭐  이리 저리 활용하고 운영하고 이용하는 것이야 내가 얼마든지 자유가 있다.

이러니까 뭣 이든지, 또 나는 능치 못함이 없다. 이러니까 구속받은 자들아 내가  너희들에게 복음을 주노니 이 복음만 네가 순종하면 이 복음만 믿으면  무엇이든지 내가 책임지고 다해 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육십육 권의 영감  도리를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믿는 자들에게' 그말은 이 복음대로 하는 자, 복음을 믿고 복음대로 행하는 자.

 복음을 믿다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고 자기는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이니 언제든지 '이렇게 복음대로만 하면 만사 형통이다. 영원 승리다.

만병통치다.' 이렇게 믿고 '복음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복음만 하면 다다.'  하는 그것을 말해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데 복음, 어데든지, '여게야  복음 가지고 되겠느냐?' '아니다.'  '야, 여게는 복음이 안 된다.' '그래 여게는 복음이 안 될 것 같다.' 하면  거게는 복음이 그 수치를 당하고 복음이 큰소리를 못 칩니다. 그러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게도 복음이가?' '여게도 복음이지.' 그 뜻을 가리켜,  그것을 가리켜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 그러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느냐?'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대로 하는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책임을 지고 그  일을 잘해 주시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을 믿는 게 뭣이냐?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신인양성 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나를 대속하신 그 대속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이요 그 대속을 자기가 입고 있는 것이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대속을 의심하면 자기는 안 믿는 것이요, 대속을 벗어놨으면, 인정 해도  벗어놨으면 안 믿는 것이요, 대속을 입고 있으면 그것어 믿는 것입니다. 대속을  입고 있으면. '대속 믿고 대속 입고 신구약 육십육 권의 영감 도리대로 하면  전능하신, 자존하신, 지존하신, 주권자이신 주재자이신 하나님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  구원이라 말은 일방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나쁜 데서  구출하는 것도 구원이요 좋은 데에서 더 좋게 하는 것도 구원이요, 이러니까  '내가 내 능력으로 구원한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마 요새 각 교회에 어떤 사람이 자기가 선지자라 해 가지고서, 이렇게  팜프렛트를 보냈는데 거게 보니까 목사 신부 교역자들에게 이렇게 보내면서 '돈  의지하는 것 하지 마라, 그런 짓 회개해라. 음행죄 회개해라.' 녜, 그런 것은 참  좋습니다. 그런 말은 좀 자꾸 누가 좀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아마 누가  그거 좀 그 사람을 좀 꾸중을 한 모양입니다. 꾸중을 하니까 그 사람이 지금  인제 꾸중 거기 대해서 해명삼아 복수삼아 말하는데 잘 말하는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조금 중간까지 읽어가다가, 읽어나가면서 조금 다른 사람을  읽으라 하고 내가 들으면서 내 생각에 '이 사람을 우리 교회 청해다가서 좀  그러면 며칠 좀 가르침을 받아야 되겠다' 이렇게 지금 생각을 하고 읽어  내려가는데 나중에 보니까 '신구약 성경 이 말씀 가지고 다가 아니고 또 새로운  예언이 있다. 이것 가지고 다 되겠느냐? 이것 가지고 다 안 된다.' 새로운  예언이 있는데 지금 자기가 말하는 그것이 새로운 예언이라 그러는데 거게 그만  들통이 나 버렸어.

 '이것이 순 주관이요 이단자요 감정적으로 하는 자로구나.' 그래서 제가  그것을, '요거 참 깨닫지 못한, 이단이라고는 하지 못하지마는 요 깨닫지 못한  자가 하는 일이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 육십육 권 도리면 다입니다. 그 안에는 세상에 둬도 다 두지 못할 만한 그런  복잡한 것이 있지마는 그 안에 다 내포되어 있고, '내포되어 있는 그것을 문서로  되지 안하면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러면 알겠느냐?' 그것을 책임지느라고 내재적  영감이 있습니다. 성경 안에 성령의 감화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모든 그 육십육 권 도리 안에 내포되어 있는 우리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다 내포되어 있는데 그 내포되어 있는 그것을  문자적으로는 거게 표현되지 안해도 그 진리 안에 내포 되어 있는 고 세밀한  진리, 우리 개별개별에 해당되는 그 진리를 성신의 감화가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이러니까 그만하면 족합니다. 부족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써 부족하다 하는 그런 것은 그것이 잘못 깨달은 사람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문서의지, 문서로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내고 또 하나님의 은밀의지  하나님의 은밀한 의지는 사람들이 뭐 섭리로 이런 걸로 가지고서 이래  깨달아지지마는 실은 문서의지 이 성문되어 있는 이 성문 의지 안에 다 포함되어  있는 진리인데 그는 자기가 진실되이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면 성령님이  책임을 지고 계속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네 안에 기름부음이 너를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준다' 하는 이  기름부음은 성령의 역사인데 그 성령의 역사는 진리 안에서 역사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너희들을 진리 안으로 이끌어 들인다. 내것을 가지고 말한다.

보혜사가 오면 그렇게 하리라.' 하는 것이 내나 성경 외에 또 성경이 더 나오는  것이 아니고 성경 안에 있는 그 진리로 우리를 구원하는 그것으로 다인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자들에게 영감도리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러니까 복음은 이렇게 윤곽적으로 돼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윤곽안에 다 보자기안에 싸인 것처럼 복음안에 다 싸였으니까  복음안에 싸인 것은 그것은 성신의 감화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인데 성신의  감화로 자기가 알려고 하는데에는 자기가 그만치 애를 써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아무나따나, 그 현실을 살때에 아무나따나 사는 그게 있고,  아무나따나 사는 거기에서 조금 정신차려 가지고서 환경에 맞추어서 피동돼서  환경에 맞추어가지고 제딴에는 지혜를 써 가지고서 환경에 맞추어서 그렇게 사는  생활이 있고, 환경에서 맞춰 사는 거게서, 환경에 피동돼서 사는 거게서 이제는  자기가 그 현실에서 이래야 좋겠다 저래야 좋겠다고 하는 자기 욕심대로 하는,  자기에게 피동되어 사는 그런 순서가 있습니다.

 아무나따나 마구잡이로 아무 미친 사람모양으로 정신없이 그저 휘떡 아무  질팡갈팡 그저 그렇게 아무 비판이나 결정이나 규정 없이 그렇게 사는 거게서  조금 이제 정신 차려 나온 사람이 뭐이냐? '환경이 이러니까 이때는 말을 해야  되겠다 이때는 손을 내야 되겠다 이때는 잡아 취해야 되겠다' 그렇게 자기가  자기현실에 피동으로, 현실에 피동으로 그래 사는 그 생활을 하는 거기에  나아가고,  그러면 자기 현실에, 환경에 피동이란 말이오. 그 피동에 거게서 이제는 조금  정신차린 자는 환경에 피동될 것이 아니라 제가 뭘 생각해 가지고서 제  욕심대로, 제 비판대로, 제 사욕대로, 제 육체의 소욕대로, 육체의 생각대로  해서 사는 그런 살이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 사망아래에 세상  사람들이 사는 생활입니다.

 거기서 자기가 무슨 불교를 믿는다, 유교를 믿는다, 뭐 공산주의 사상을  유물주의 사상을 가졌다 해서 자기가 가진 그 지식, 자기가 가진 지식, 그러면  불교자는 불교의 지식을 가졌을 것이고 또 유교자는 유교의 지식을 가진 것처럼  자기의 지식을 가진 그 지식으로 판단해 가지고 사는 생활이 그것이 이성  판단의, 이성의 생활입니다. 이성적 생활입니다.

 거게서, 안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거게서 갈라집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거게서 세상 그 어떤 지식적인 이성이 아니고 그 신앙적 이성,  신구약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아 가지고서 성경 지식대로 사는 그 계산 따져  가지고서 판단해 가지고 사는 생활을 가리켜서 이성적 생활이라, 믿음의 신앙  이성적 생활이라.

 현실을 신앙 이성적으로 해결하는 통과하는 이제 거게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앙 양심적 행동이라, 그러면 그 현실을 신앙 양심적 행동이라, 그러면  그현실을 신앙 양심적으로서 행동하는 그 행동에 나아가 가지고 거게서 마음이  안심이 되지 안해서 "내 양심에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은 내가 알지 못하지마는  나는 하나님처럼 온전한 지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내 마음에는 틀린 것이  없지마는 내가 어둡기 때문에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가서 검사를 맡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온전타 함을 느끼지 못하고 항상 불안중에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거게서 자기 먕심가지은 자기 주관 생활을 하는 그것이면 다라고 생각 하는게  아니라 그 너머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이 인도하는 그 인도를 내가 받아야만  이제 안심이 되겠는데하여 그분의 인도를 갈망하면서 무거운 짐진것과 같이,  아주 자기가 그렇게 일을 해 놨으니까 능숙하고 하니까 뭐 쉽게 죌 줄 알아도  그저 항상 자기 양심에 가책할 것이 없는데 그거는 자기 주관 행위요 무지의  것이기 때문에 객관인 영감이 와 가지고서 인도해 주셔야만 되기 때문에 그  영감의 인도를 기다리고 받으려고 하니까 항상 거게 마음이 눌린 것을 가리켜서  무거운 짐진 것과 같이 내가 참 탄식하면서, 자기의 부족을 탄식하면서 이렇게  고대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어데서부터 시작하는고 하니 이성적, 신앙 이성적  생활에서 믿음이 시작하나 그것은 아직까지 주관적 믿음이기 때문에 확고성이  없습니다. 거게서 자기의 양심적 그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해도 그것도 또 내나  자기에게 있는 빛이요 주관이기 때문에 안심이 안 됩니다. 거게서 갈급해서 갈구  간구하는 사람, 영감의 그 생활 거게 도달돼야 안심이 되는 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고대하는 갈망하는 인제 그것이 우리에게  참 바로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 생활이라고 해도 주관적 신앙 생활이 있고 그  객관적 신앙 생활이 있는데 '믿음을 연단한다' 그말은 주관적 신앙 생활을 다  제거하고 객관적인 신앙 생활, 영감 복종의 그 생활을 고대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이것을 하려고 하니까 뭘 해야 되느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자기 목숨을 다하고 이렇게, 뭣 이든지 '요것은  빼놓고 내가 당신의 뜻에 복종하겠습니다.' 하면 그것이 우상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를 부인치 안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거게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들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다한다는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바로 다 믿는다는  것. 그럴 때에 믿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도 히브리서 5장에 보면 그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애를 얼마나 썼느냐 하면 그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려고 애쓸 때에 심한  통곡으로 가지고서 아버지 앞에 간구했다 이랬어. 심한 통곡으로 아버지 앞에  간구했지마는 그 간구 가지고서 통과가 안 됐습니다. 그 밑에 보면 '심한  통곡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였으나 하나님을 경외하심을 인하여 허락하심을  받았다'  그것이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그렇게 간구를 하는 그것이 다 주관 행위요.

그러다 그 모자라서 하나님 앞에 육체의 연약한 걸 말씀할 때에 천사를 보내  가지고 천사의 도움을 받아 가지고서 간구를 했지만 그게 주관 행위입니다.

간구한 그 위에다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았다 그말이오.

그가 '경외하심을 인하여' 하는 건 하나님을 바로 믿은 것입니다. 바로 인정한  것이오. 바로 인정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다. 그럴때에 비로소  주관이 객관을 만나 가지고서 주객이 일치가 돼서 하나님에게 연결이 됐을  때에게 '이제 쉬고 자라' 그때부터 우리로 말하면 그 단계에 가 가지고 영생이  되는 것이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는 것은 복음이면 다 된다.

어데서든지, 어느 장소 어느 때 무엇에서든지 복음이면 다 된다. 복음 가지고  모자라지 않는다, 복음이면 넉넉하고 남음이 있다 하는 요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이 그것이 '복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는 것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은 언제 써먹느냐? 복음은 어데든지 써먹을 수 있어. 어데든지  써먹을 수 있고 무엇에든지 써먹을 수 있고 써 먹을 수 있는데 복음을 써먹는 그  시간은 현재라는 그 시간입니다. 현재에서만 써먹지 딴데는 써먹지 못합니다.

딴데는 암만 써봤자 그것은 실 효력은 나타나지 안하고 그것이 준비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라도 효력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그 현장에서, 현 그 모든 현물에서, 자기 현실이라는 거게서만 이 복음은  이렇세 가치 있게 역사하지 그 현실을 떠나면 자기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그 도우심을 받는 것도 현실에서뿐입니다. 현실  외에는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현실에서만 도움온 받습니다. 또 현실에서만  도우십니다. 또 우리외 그 성패,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언제 있는고 하니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현실에만 있지 다른 데는 있는 것 아닙니다. 또 우리가 조심할  것도 뭐 현실에만 조심하면 되지 현실 외에는 조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패도 현실에만 있고, 또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도 현실에만 있고,  우리의 그 계획도, 계획은 미래에 속한 일이지마는 우리의 계획도 현실에만  있습니다. 현실만 우리의 것이지 현실 외에는 우리의 것이 하나도 아닙니다.

 이런데 마귀란 놈은 현실만을 우리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현실  외에, 자꾸 현실을 말하면 과거로 끌고 가 가지고서 과거에 우리를 머물게 해서  과거에 뭐 소용 있는 것이 있는 줄 알고 과거에 필요한 게 있는 줄 알고 과거에  가 가지고서 나를 거게 머물고 지체하도록 하려고 하고, 그러다 안 되면 미래에  끌고 가 가지고서 미래에 가서 또 우리의 모든 욕망을 미래에서 이루려고 하도록  그렇게 유혹을 시킵니다. 그것 다 유혹입니다.

 현실 외에 과거에나 미래에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동경을, 우리의 생사화복 그  흥망성쇠를 다른 데 있다고 그렇게 하는 것은 전부 마귀의 미혹입니다. 현실에만  있지 딴데는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 복음이 이렇츰 가치 있고 무소불능의 복음이지마는 요 복음은  현실에서만 이렇게 무소불능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지 현실을 떠나면 주지를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자기가 이 세상살이에서 좀 나아가서 성경 진리를 보고서 이성적 믿음을 가지고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성적 믿음 그거는  언제든지 그것이 이성적 믿음만 가진 사람은 과거에만 쓰고 미래에만 쓰지  현재에는 쓰지 않는 그 언제든지 주관 행위입니다.

 또 자기가 양심적 믿음이라 하면 그만하면 다 원만하고 층만한 줄 알지만  아닙니다. 그것도 잡것이오. 그것도 불탈 것들이오. 그것도 다 주관입니다.

그것이 다 모래 위에 지은 집들입니다. 그것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들입니다. 그게 다 소멸 될 요소들이오. 인적 요소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그 구원은 다 완전한 것들이요 불변의 것들이요 영원한  것들인데 그거는 신적 요소의 것이 신적 본체가 와 가지고서 분열돼 가지고 우리  되는 것이 아니고 신의 지극한 그 능력이 역사하는 신적 요소의, 신적 요소의 그  능력 요소, 역사 요소, 그 역사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에게 이루어 가지고 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사망에 이르지 안하는 것이요, 그것이  불변하는 것이요, 다 영원한 것이요, 다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성적 신앙, 양심적 신앙, 거기에서 자기가 만족을 하는  사람은 벌써 지식이 그래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게서 만족하기 때문에 그것은 다  불탈 것이요, 귀하기는 귀하지마는 주관적 신앙이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최고의  주관적 신앙이니까 육백육십육은 되지마는 칠수에는 가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교만한 사람들이 다 실패하고 또 실력 있는 사람들이 다 실패합니다.

어리석게 그것은 다 주관 신앙에서 만족을 하고, 주관 신앙은 객관 신앙을, 인적  요소는 신적 요소를 끌어오는 하나의 준비와, 맞이해서 그 신적의 역사를 받을  수 있는 그 자격은 있지마는 신적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구원 얻은 것은 우리 자체는 인적 요소지마는 우리 자체의  인적 요소인 이 인적 요소를 신적 요소인, 그 신적 요소인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와 가지고서 인적 요소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인적 요소를 힘있게 한 것이오. 인적 요소를 힘있게 한 것. 살게 한 것. 그것이  성령과 잔리로 중생시킨 것입니다. 성령과 진리로 중생시킨 것.

 그러니까 우리의 영을 물과 성령으로, 성령과 진리로 중생시킨 우리 영을  중생시킴 같이 우리의 이 심신의 요소 육에 속한 것도 다 그렇게 다 중생이 돼야  되는 것이지 중생이 안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중생되는 것은 내나 그 죽은 영을 물과 성령이, 물은 진리를 말한 것인데.

물과 성령으로 살아난 것. 물과 성령으로 살아나면 물과 성령이 됐다 말이  아니고 물과 성령의 그 능력으로 이제 움직이게 됐다 말이오. 살아난 것은 그  생명은 힘인데 진리와 성령의 역사의 힘, 진리와 성령의 역사의 힘, 그 역사의  힘으로써 이제는 그 힘에 연결돼 가지고 진리와 영감의, 영감이라면 곧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진리 역사 그 두 가지 역사하는 그 힘으로 살아난  것이 그것이 중생이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기 때문에 그 자체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 게 아니고 생명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거게만 끊어지면 언제든지 죽습니다. 연결돼 가지고 있을 때만  사는 것이지.

 그러니까 우리의 중생이 영생하는 중생으로 된 것은 영원히 끊어지지 안할 수  있는 연결로서 연결된 것인데 또 우리의 이 심신 요소의 육체의 구원, 육체의  구속, 육체의 이 구속도 다시는 끊어질 수 없는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와  진리의 역사의 그 힘을 가지고서 그 힘에, 역사하는 그 힘에 연결돼 가지고서 그  힘으로 움직이는 것, 끊어질 수 없는 그 힘으로 움직여지는 그 연결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성화라, 죽은 것이 살아났다,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또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는 그것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주관 신앙 가지고는 안 되고 주관 신앙온 그저  도화선이오. 거게서 주관 신앙은 도화선인데 이제 주관 신앙이 하나님의 객관  신앙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그 신앙으로 연결이 됐을 때 그때에 폭발이 되는  것이라. 폭발이 되는 것은 나타나는 폭발도 되지 마는 그것으로 그때에 비로소  영생이 돼 버린다.

 그러기에 중생된 사람의 생활이라고 다 영생되는 것 아니오. 중생 사람의  생활도 영온 영생하고 있지마는 심신외 요소인 육의 요소 그것이 현실에서  영생도 되고 영멸도 됩니다. 영생도 되고 영멸도 되고  그러면 심신의 기능, 형체는 다 그대로 있지마는 속에 심신의 기능은 영생으로  살아나기도 하고 또 영멸로 그만 죽어버리기도 하는 것이 그것 현실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자기가 이 부활하니까 부활하면 다 같은 부활 되리라  생각하지마는 사람은 말이요, 용모도 꼭 같고,키도 같고, 체중 같고 꼭 같은데  한 사람은 종이를 갖다 주면서 글을 쓰라 하니까 아무것도 쓰지 못합니다. 또 한  사람은 똑 같은 사람이 쓰라 하니까 기역자를 써냅니다. '기역자 써 봐라.'  기역자 씁니다. 또 그러다가, 기역 자는 잘 쓰는데 또 에이비시, 영어가  에이비시라던가? '에이비시 써봐라.' 하니까 그건 또 모릅니다. 또 에이비시는  손으로 잘 쓰는데 '네가 자, 이 피아노 한번 타 봐라.' 하니까 거게는 뭐 이래  쭈르륵 드르르르 해 버리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이게 뭐냐 하면 다 갈은 손이지마는, 다 같은 손이지마는 그 기능 각각 다르다  말이오. 한번 연습을 해 보고 배워 보고 연습해 봐야 되는 것이지 그거 하기  전에는 그걸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껍데기 손이야 뭐 네 손이나 내 손이나 똑 같지마는 속 보이지 않는  그 기능은 각각 다릅니다. 기능 그거는 해 본 것이라 되지 해 보지 않은 것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는 영감과 진리에 순종, 영감 순종이 곧 영감이 나타날 때는  진리인데 하나님에게서 나올 때에, 하나님에게서 그 역사가 나올 때 그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이렇게 합니다. 그러면 영감이 나와 가지고서 이 피조물을  접할 때에 그걸 뭐라고 하느냐? 그걸 진리라.

 그러면 하나님에게서 나올 때 그때에 그 나옴을 영감이라, 그다옴에 나타나  가지고서 이 피조물과 접촉할 때 가리켜서 진리라.

 이러니까 진리가 영감에서 나왔고 영감이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나왔지마는 하나님의 그 분열의 분자적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온 유출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라 그말이오. 역사니까 본체와는 상관이 없고 본체의  능력으로 역사한 역사가 나온 것이 영감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현실은 우리의 그 성패도 현실, 주력할 것도 현실, 현실에만  우리의 생사화복과 성패가 다 있는 것인데 그러기에 현재 현실만 실패 안 했으몇  그 사람은 백 년 살아도 현실만 실패 안 하면 그 사람은 백 년 다 실패 안 한  사람이오.

 그 사람이 뭐 '내가 앞으로 이런 포부를 가지고 이렇게 하겠다.' 미래에 대해서  어떤 기이한 이상을 가지고 또 과거에 대해 가지고서 어떤 그 무슨 각오를  가지고 무엇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현실을 빼놨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라.

그거는 다 탄환 없는 총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만이 필요한데, 그러기에 현실만 우리가 필요하다는 것,우리의 할  일은 현실에만 있다. 우리 할 일은 현실에 있는 것. 자기기 뭐 공부하고 뭐 하고  하는 그런 것은 그거는 현실과 상관이 없는가 하면 그것도 그 현실의 것입니다.

그 현실에서만 제가 공부할 수 있지 현실 아니면 공부하지 못합니다.

 또 자기가 공부하는 그것도 현실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거게서도 영생도  되어지고 영멸도 되어집니다. 공부하는 그것도 다 현실에 속한 것인데 그  현실에서 공부를 할 때에 믿음으로 하면 영생이 되고 또 믿음을 떠나서 하면  영원한 멸망이 되어지고.

 그러면 우리가 자꾸 요새는 지식 우상이 들어 가지고 사람을 망치기 때문에  그걸 많이 말하니까 '저 목사님은 무식한 목사님이니까 반지식론이다  반지식이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그 필요 없는 지식은 그것은 내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관계 없는 것, 그거 나 영어 몰라도 영어 몰라 가지고 나 낭패될 것  하나도 없습니다. 만일 내가 미국 사람을 상대해 가지고 있으면 영어 몰라도  영어 아는 사람에게 뭐 통역시키면 얼마든지 될 것 아닙니까? 그저 그때 그때 쓸  것 있는데 그것을 참으로 강제같이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그말이오. 좀 남  시키려는 것보다 그래 하면 좀 편리하기는 편리하지마는, 조금 더디고 힘들기는  힘들지마는 다 될 수 있는데 이것 참 속에 기름 준비는 이거는 다른 사람에게  꾸어 달라 해도 안 되는 것이고 꾸어도 안 되는 것, 둘러 가도 안 되는 거니까,  이것 이거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 뭐, 빌려도 되겠고 남 시켜도 되겠고 그런  것은 가져도 그렇게, 내 힘은 가지는 힘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가지는 힘은  한정돼 있으니까 이 한정된 그릇에 다른 사람에게 빌리지도 못하겠고 이거는  내가 안 가지면 안 될 제일 중요하고 요긴한 것 그거나 한 그릇 담뿍 담아  가지고서 짊어지고 돌아다니지 뭐 내게 짊어지고 안 다녀도 가다가 주워도 되고  또 남한테 시켜도 되고 할 수 있는 그런 거는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그말이요, 사실에 있어서는.

 그러니까 공부하는 사람들이 무슨 공부를 못 하게 하느냐 하면, 믿음으로 하는  공부는 못 하게 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공부는 믿음으로 안 하면,  믿음으로 하는 공부를 안 하면 그거 죄가 됩니다. 믿음으로 하는 공부는 해야  그것이 구원이 되어지지 안 하면 죄가 된디 말이오.

 믿음으로 하는 공부가 무엇이 믿음으로 하는 공부인가? 믿음으로 하는 공부가  어떤 것이 믿음으로 하는 공부입니까? 이거 좀 내가 하니 묻고 갔으면 좋겠는데.

저 ○○○목사님입니까? ○○○목사님, 믿음으로 공부하는 게 어떻게 하는 게  믿음으로 공부하는 것이지요? 그거 쉬운데 뭐, 오늘 아침 내 믿음 공부인데.

 믿음으로 공부하는 게 어떤 것이 믿음으로 공부하는 것입니까? 저  ○○○목사님? 영감으로 공부하는 것. 영감으로 공부하는 것. 그것도 좀  애매한데 좀 알아듣기 좀 힘드는데, 알아듣기 좀 쉽도록 한번 말해 줬으면. 좀  암만 해도 똑똑히 꽉 잡지를 못한 것 같애. 믿음으로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이  시키는 공부 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시키는 공부 하나님이 시키는 공부.

하나님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시키는 공부.

하나님이 시켜서 공부하는 그것이 믿음으로 공부하는 그거라 말이오. 하나님이  시켜서 공부하는 것.

 믿음으로 아는 게 뭣입니까? 믿음으로 아는 게 뭣이지요, ○○○ 목사님? 예?  그걸 시키는 대로 안다 하는데 '시키는 것' 또 써놓으면 말이 좀 알아듣기가  어려워. 하나님이 알라 하는 대로 아는 거라. '네가 요거는 요래 알아라.'  이거 떡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걸 종이라, 예를 들면 말이지요. 사람들은 종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만일 하나님이 그거는 떡이라 이러면 어떻게 아는 것이  믿음으로 아는 겁니까? 어떻게 아는 게 믿음으로 아는 거요? 떡으로 아는 것이요  종으로 아는 것이요? 떡으로 아는 것. 그게 믿음으로 아는 겁니다. '우리  보기에는 그게 종인데 그게 떡이 될 리가 있나?' 이래도, 그렇게, 그렇게  하나님이 틀리게 하시지는 안하지마는 인간들의 전지식은 이걸 종이라 해도  하나님이 떡이라 하면 '나는 이거 떡이라.' '그게 어째 떡이고?' '하나님이  떡이라 하더라.' '천인 만인이 와도 이건 종이라.' 이래도 '너거 말은 안 믿어.

너거 말은 내가 따라가지 안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그게 믿음으로 아는  것이오. 믿음으로 아는 것. 믿음으로 행하는 것. 믿음으로 말하는 것.

 믿음으로 말하는 것이 어떤 것이 믿음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 ○선생?  하나님이 말하라 하는 그말 하는 것이 믿음으로 하는 말이라 하나님이 말하라  하는 것 말하는 게 믿음으로 말하는 거라.

 또 이것은 이래 알아라 저래 알아라 하는 지식도 믿음으로, 믿음의 지식  하나님이 그렇게 지식하라 하기 때문에 내가 지식하는 것. 이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복종으로, 하나님께 순종으로 된다는 요 것만 잡으면 요 쉬워요.

 이런데 우리의 영원 문제와 이 세상 문제 또, 그 문제가 뭐 우리 지식으로서는  볼 때에 몇 가지 요건이 있지요. 우리 마음으로, 우리로 보면 사람에게 대해서,  물건에 대해서, 짐승에 대해서, 뭐 자기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 몇 가지 안  돼요. 우리 현실이라는 것온 우리가 아는 대로의 몇 가지와의 관련되는 그런  현실이 아닙니다. 우리 현실은 우리가 어떤 자가 될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  만물의 중보자입니다. 만물의 중보자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 그말은 왕은 예수님을 가리킨 건데 애수님 같은 제사장,  제사장이라는 것은 창조주 피조물 사이를 조화 붙이는 것이 그것이  제사장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지금 현실에는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느냐 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피조물, 억억만만인지, 억 억억억…만만도 더 될 거라.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그 전부와의 영원한 관계를 현재얘서 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현재에, 현재가 어데 해당된 것이며, 어떤 준비를 하는  것이며, 어떤 것을, 어떤 면에 성공하는 건지 그것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는  몰라요. 다만 당신만 알지.

 그런데 우리가 이 현실은 영원에 모든 것에게 이 관계가 되어지는 이것을  결정지우고 성패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이 현실의 중요성, 이 현실의 중요성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현실이 그러면 어떤 면으로 관계되느냐?  어떤 성도가 이제 무궁세계 가 가지고서 억억만 년, 억억만 년 지난 뒤, 억억만  년 후에, 억억만 년 후에 어떤 구석에 갔습니다. 구석에 가니까 나온다고  환영식을 막 하고 모두 모여 가지고 환영식을 하고 야단을 합니다. '이 환영식이  어쩐 환영식이냐?' '아무것이 당신 온다고 지금 환영식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환영 받을 게 없는데 나를 언제 알았다고?' '그때 세상에 있을 때에 아무  년, 아무 달, 아무 날, 아무 시, 어데에서 믿음 지킨 그것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나는 모르는데 그렇게 환영식을 한다 그거요.

 그러면 나는 몰랐는데 그 현실에 믿음을 지키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시키는 대로 한 그 시키시는 분은 거게까지 다 전체를 다 맞춰 가지고서  고거 하나만 하면 다 되도록 그렇게 해 놓은 건데 믿음 지켰으니까 모든 억만 년  뒤에 가 가지고 자기가 그때 처음으로 봤는데 그게 환영식을 한다 그거요.

 그런데 '언제 나를 봤다고 환영식 하느냐?' '아무 날, 아무 시, 아무 데에서,  아무 장소에 어떤 데에서 이제 그때 요렇게 했기 때문에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구원이 되고 우리에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감사해서 기다리고 있다가서,  이제까지 기다리고 있다가서 온다 하기 때문에 환영식을 합니다. 그걸 누가  알아서 그걸 맞춰서 할 거냐 그말이요?  그것은 창조주 전지 전능 그분의 주관하시는, 개별섭리를 하시는, 모든  피조물이 않지마는 머리털만한 것도 다 주관하시고 이래 아시는 그분이 알고  그분이 할 수 있는데 그분이 시키시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모든 펴조물에게  이렇게 다 주라 칭한 것과 같이,  주님을 주라 칭한 것과 같이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가치  있는 성공적인 그런 행사를 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 있는 것인데 그것을 무슨  지식으로 제가, 인간들의 머리로 나온 그 도서를 전부, 그 책을 전부 다 읽고 그  지식을 전부 다 활용했다 할지라도 그까짓 것은,  인간이 아는 것이 뭣뿐이요? 아는 것이 자꾸 몇 가지 안 되는 요리 말하고 조리  말하고 자꾸 복잡하게만 하는 것뿐이지 몇 가지 된다 그말이오. 억만분의 일도  모르는 제까짓 게 거게 대해서 어떻게 해당된 것을 올바르게 되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며 또 거기 대해서 올바른 그 성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보면 현실은 지극히 보배롭고 지극히 참 중요한 이  현실인데 현실을 이렇게 중요한 현실, 복잡한 문제, 수많은 관련, 억억억만도 더  되는 이 모든 관계, 이런 관계를 제 지혜로 이것을 설계하고 제 능력으로 해  보겠다는 것은 이거는 우매무지 마귀에게 속아서 어리석은 생각이요 이것은  공중으로 참 총을 놔 놓고 거게서 잉어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그것보다도 더  기막히는 일이라 그말이오.

 억억억억만분의 일도 모르는 그게 억억억억만 가지의 관계되는 그 일을  억억억억만의 그 일(一)도 모르는 그 일(一) 그걸 가지고서, 지식 가지고서 그  지식 가지고 다 하겠다고, 그 지식대로 하면 된다고. 그렇게 미약한 힘 가지고  된다고. 현실을 제가 책임지고 할라 하는 그것이 아주 우매무지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요 중요한 이 말입니다. 이것을  성경에는 다 있는 것이지마는 사람들이 이걸 발견해 가지고 말을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거요. 현실이 이렇게 중요한 줄을 몰라요.

 이런데 이러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나의 영원의 성패 그 모든 것을 현실에서만  할 수 있는데 현실은 이렇게 중요한대 이 현실을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현실은 나는 할 실력 없어. 이러니까 이 현실읕 주님에게 맡기는 거라. '주님이  이 현실을 잘해 주십시오.' 맡기는 것  그 맡기면 어떻게 맡기는가? 당신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당신이 책임진다고  했어. 시키는 대로,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성경에  말해 놓은 그 몇 가지 안 되는 그것만, 믿는 그 믿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구원하는 것이라.

 그러기에 현실을 믿음으로 행동하면 그것이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그분에게  현실을 맡기는 것이라 그말이오. 현실을 맡기는 것이니까 그러면 현실은 옳고  바르고 참되게 그분이 하나도 잘못됨이 없이 해 준다 그거요.

 그러니까 자기의 현실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 현실은 '아무도 이 현실을 잘할  자가 없다. 이 현실은 하나님밖에는 잘할 이가 없다.' 그런데 그분이 맡아  줘야지? 그분이 구속받은 자들에게는 당신이 이 조건 내세웠기 때문에 이대로  시키시는 대로 하면 해 주시겠다고 했다 그거요.

 예를 들어서 하나 예를 든다면 홍해바다를 건너가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이오. 하나님이 구속받은 자들에게 홍해바다로 건너가라. 당신이 그래  시키는 것이 그것이 복음이라 말이오. 내나 신구약 성경 말씀에 기록한 것과  같은 이와 같은 당신의 명령이라 말이오. 그럴 때에 이제 사람 보기에는  들어가면 죽을 것 같지마는 죽고 사는 건 당신이 다 책임진다 했으니까 물에  뿍뿍 들어가서 건너가니까 물을 갈라지게 해 가지고서 육지같이 건너가게 해  가지고 원수를 다 소멸하고 거게서 모든 원수에 대한 난제가 다 끝이 나게 하는  것은 그분이 한 것이라 말이오. 그분이 한 것이고 그저 물에 들어가라 할 때  들어가서 건너간 것만은 사람이 한 것이라.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이.

 '여리고 성을 열세 바퀴 돌아라' 하는 그것이 복음이오. 돌라 할 때에 어리석게  '그 강한 성을 삥삥 열세 바퀴 돌면 너거에게 점령시켜 주마' 하는 그말 듣고  그걸 믿고 열세 바퀴 뿍뿍 도는 그게 믿음이오. 믿음은 미련한 것이라. 믿음은  미련한 것 어리석은 것. 그렇지마는 약속하신 그분을 믿기 때문에 열세 바퀴를  돌았다 말이오. 도니까 이제 당신이 그 일을 약속하신 대로 여리고 성 함락은  당신이 시키셨다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오. 믿는 것은 둘의 일입니다. 믿는 것은  우리 일이요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인데, 믿는 것은 우리 하는 일인데 우리 하는 일은  무엇이냐? 우리 하는 일 그게 무슨 성공? 아니야. 우리 하는 일은 하나님 일하게  하시는 것뿐이야.

 우리가 믿는 것은, 요 현실에, 어떤 믿음이든지 그 현실에 믿음이라는 그  믿음은, 그 믿음은 우리가 하는 일이요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일 시키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요, 우리가 할 일 해 놓고 나면 이제는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뭐  사자 입도 막고, 불기운도 해하지도 못하게도 했고, 홍해 바다도 갈라지기도  했고, 죽은 자가 살아 나기도 하고 모두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의 귀중성, 또 이 현실은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이 중요한  것을 누가 할 수가 있느냐? 이거는 하나님밖에는 하실 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부탁을 하면 청부를 시키면 된다. 하나님께 해 달라 하면  된다.

 하나님에게 어떻게 해 달라 하느냐? 하나님이 해 주시느냐? 하나님이 안 해 줄  수 없는 그런 법이 있다. 하나님이 안 해 주실 수 없는 법이 있어. 구속받은  자들이 그 현실에 영감에 순종하는 믿음, 현실에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은 안 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그 본능이 해 주기를 원하고 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현실은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위임을 시켜 버려. 그러면  하나님이 그것을 책임을 져요. 이러니까 믿음은 이렇게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그 현실에서 믿음 지키는 것, 현실에서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는 믿음 지키는 것 그게 뭐인데 그렇게 그러면 큰 일 아주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느냐? 그것이, 그것이, 현실에 믿음 지키는 것이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오.

그것이 자기를 하나님에게 복종시키는 것이오. 그것이 자기와 세상은 세상, 세상  간부들이 이렇게 미혹시키는데 모든 세상을 배척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오.

 그 현실에서 믿음 지키는 그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요, 그게 그만 하나님에게 대해서 좋은 걸 다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믿음 지키는 그것이 하나님에게 대한 좋은 것을 다 하는  것이오. 하나님이 만족 만족, 그 이상 요구가 없이, 그 이상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없이 하나님께 만족하시도록 다 하는 것이오.

 그것이 이제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할 때 그것이, 현실에서 믿음 지키는 것이  그것이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것이, 믿음 지키는 그것이 이 온 세상을 자기로서는 하나님의 발 밑에 갖다  넣는 것이오. 그것이 자기를 하나님익 종으로 갖다 넣는 것이오.

 이러니까 모든 자기대로의 자기의 세상, 자기가 관련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세상은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복종을 시키는 것이요, 하나님 발등상이 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 것 되는 것이요, 그것이 자기로서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모든 면에 구비하고 완전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해서 자기로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요구에 만족한  하나님께 대해 완전을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대한 완전의 행위요, 완전한  대우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그것이 모든 세상보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 그것이 세상이냐  하나님이냐 할 때, '세상이냐 하나님이냐? 어느 걸 차지할래?' 세상 버리고  하나님 차지하는 것이오.

 그것이 하나님과 피조물의 모든 것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섬기고 다른 것은 그다음으로 다 제외해 놓는 그것이 현실에서 믿음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 지키는 그것 외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 두려워하는  게 좋습니다. '하나님울 두려워합니다. 하나님 두려워합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입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말을 한다 할지라도  현실에 가 가지고서 믿음 딱 배반하면 그거 거짓말쟁이오. 거짓말쟁이입니다.

입술로만 나를 공경하지 실상은 멀리 됐다 그거요.

 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암만 사랑한다 노래를 불러도 그  현실에 믿음 지키는 것 안 했으면 그 사람 하나님 사랑한다는 게 거짓말이오.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 안 해도 현실에 믿음만 딱 지키면 그것이 하나님을 만족히  사랑했고, 만족하게 하나님을 높였고, 하나님을 위했고, 하나님을 섬겼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무서운 그 관련을 가지고 있는, 관련된 그 조건이 그 각도가  억억억만도 넘은 그런 무수함에 대한 거기 대해서 완전 해결지운 완성을 이루는  이 중대한 일, 이 중대한 일을 이것을 아무도 할 수 없어. 천상 천하에 아무도  할 수 없고 다만 자존하신 전지 전 능하신 그분 한 분밖에 할 수 없는데  그분에게 '내 현실을 해 주십시오.' 현실을 그분에게 딱 전임을 딱 시키고  책임을 딱 지운 것이 그 믿음입니다.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이 책임을 딱 졌다  말이오.

 그러면 그분이 뭐 죽어도 살아도 뭐, '명예와 친척과 재물과 생명을 원수가  취한들 상관이 뭐 있느냐?' 그분이 모든 것 다 가지고 계시고. 그런데 그분이  맡았으니까, 맡아서 죽으면 죽는 게 더 좋기 때문에 가진 것이요 죽어도 살고  그런 걸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우리의 모든 것이 있지마는 현실이 제일  중요하다. 현실은 내가 아는 그 범위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모든 면, 하나님의 그 면이, 하나님은 다각형이라 하나님은 모가 뭐  억억억억만도 넘어. 요래 보면 요런 하나님 조래 보면 조런 하나님 그래 보면  그전 하나님, 모든 피조물도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데 그 복잡한 그  전부에 그것을 영원 완전 무결의, 완전 무결의 후회없는 그 관계를 그 친교를  관계를 맺는 것이 현실에 있는데 그 현실을 누가 이것을 실수 없이 흠없이 바로  할 자가 누가 있느니 말이요? 하나님밖에는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분이 해 줄라 해야지? 그분이 해 주려고 하면 좋지마는 그분이 해  주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네가 요 현실에서 요렇게 해라 당신이 나에게 복음으로서 요리조리  하라고 시키시는 그대로 나만 하면 거기 대해서는 내가 맡아 하겠다. 네가  요렇게 안 하면 내가 맡아 하지마는 네가 요렇게 안 하면 내가 맡을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게 뭣인데?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자기를 버리는 것이오 하나님꼐 맡기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현실에 믿음 지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께 대해서 피조물에게 대해서  자기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피조물에게 대해서 자기에게 대해서 어떻게  한다는 것, 어떻게 하는 것이 되어진다는 그것을 우리가 깨닫고 현재에서 믿음  하나로 모든 것을 해 나가야 합니다.

 지난밤에도 그랬지마는, 이것 뭐 간단해요. 자기가 무슨 문제 있으면 '이 문제  어떻게?' 그 문제도, 그러면 무슨 문제 '그 문제가 앞으로 장래 그런 문제가  있을 터인데' 그런 것 생각할 필요 없어.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이 그날에 족하다' 했어. 우리는 현실만 실수 없이 해 나가면 돼.

현실만. 미래를 걱정하는 건 내일 일은 내일에 할 것이라.

 이런데 현실만 하면 돼. 현실을 어떻게? 현실을 복음 믿으면 돼요. 현실을  복음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지금 내가 장사하다가 부도 난 것도 그 믿으면?' '믿으면  되지.' 믿으면 되다니? 부도 난 것도 자기 현실에서 믿으면 되지. 현실에서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하면, 그대로 하면 하는 것이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되련지 그것이 자복하는 일이 되련지 어쨌든지 하나님이 뭐라고 시키련지  시키는 대로 그대로만 하면 거게 대해서는 후회 없는, 영원히 후회 없는, 모든  만물이 다 타나 볼 때도 '잘됐다' 찬성할 수 있는 그런 처리가 될 수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뭣이든지 현실 외에 우리는, 현실 외에는 존재에게도 상관 없고,  하나님에게도 상관 없고, 내게도 상관 없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상관 없고,  현실에 것만 하면 됩니다. 현실에 하나님만 우리는 섬기면 돼요. 미래에  하나님도 아니고. 현실에 하나님만 섬깁니다.

 현실에 하나님, 현실에 나, 현실에 모든 피조물, 그 모든 전부가 현실에  해당되는 거게만 내가 하면 되는데 그걸 뭘로 할 것이냐? 믿음으로 할 것.

 믿음이 뭣인데? 복음을 따르는 것이 믿음이 따르는 것입니다. 복음을 따르다니?  하나님의 대속을 자기가 현실에 입은 것. 현실에 대속을 입고 그때에 자기  주관적인 신앙을 버리고 객관적인 신앙, 영감이 와 가지고서 요렇게 해라 하는  대로 그대로만 해 버렸으면 그만 안심입니다. 하나님이 책임맡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맡았으니까, 그때 하나님이 책임맡았는데 죽입니다. 사자구덩이에  넣어 죽입니다. 죽이든지 말든지 그 전지 전능의 사랑의 주님이 책임맡았으니까  문제 없어. 사자구덩이 넣어도 하나님이 책임을 맡고 하나님께 책임을  지웠으니까 안심이라. 사자구덩이 들어가도 사자가, 사자가 물면? 물든지 말든지  완전자 그분이 책임졌으니까 문제 없다는 그것을 믿고, 그분을 믿고 믿음을  지키기 때문에 그 일에는 안심하고 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자구덩이에서 안 잡아먹히고 나온 그것만이 아니고 잡아먹혀도  성공, 안 잡아먹혀도 성공, 하나님이 맡았기 때문에 그분이 맡았기 때문에 모든  면에 후회 없이 완성을 한다 그거요. 요것이 믿음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광고 하나 합니다.

 거창집회가 있고 또 거창지방에서는 참 집회 준비가 중요한 일인데 우리는 그  한 교회뿐 아니라 전 우리 진영에뿐 아니라 우리 교계에 중요한 일인데 거창  ○○교회 거창읍교회 교역자가 비어서 벌써 여러달을 지냈습니다. 이러니까 그  집회는 다가오는데 아무도 거기 일할 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엊저녁에 열두시까지 신강을 했습니다. 열두시까지 신강한 것은 내가,  ○○○장로님에게 막 빌었습니다. '천상 우리 대를 위해서 소가 희생돼야 되니까  어짜든지 장로님이 좀 석 달 동안만 이 맡으시고 교역자가 지금 모자라니까 그  안에 어찌될지 몰라도 석 달 동안만 좀 맡아 수고를 하시고 교역자를 좀 보내  달라'고서 인제, ○○교회로 보내달라 이러니까 '그러면 석 달 있다가 석 달이  딱 되면 ○○교회로 돌아오시기로 그렇게 약속을 하고 그런 조건부에서 합시다'  이런데 그거는 또 안 되겠다 말이오. 왔다가서 도로 오면 또 그 교회가 문제기  때문에 그때에 어짜든지 실력 있는 유력한 그런 교역자를 바꾸어 줄 터이니까 좀  그렇게 해 달라고서 아래 사정 사정 해 가지고서 나중에 열두시 뭐 얼마던가?  시간 봤나, 누가? 내가 보니까 열두시 얼마더라 누가 봤어, 시계? 그때사, 안  된다고 하다가 허락을 해서, 어짤 수 없어서 '그러면 우리가 나는 모르니까  교인들한테 가서 얘기를 하고 직접 뭐 하십시오. 나는 정 그렇다면 그때까지는  내가 허락하겠습니다. 이래 됐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오늘 아침에 ○○○교회 교인들이 여기 더러 왔으리라  생각하고 여러분들에게 좀 자기 교회만 생각할 게 아니고 이 전체에 집회나 모든  걸 생각해서 좀, 참 예수 믿는 법, 좀 희생하는 법을 배워서 좀 이 일을 양보해  달라 그것을 지금 제가 사정하는 것입니다.

 ○○○교회 교인들 손 한번 들어 보이소. ○○○교회 교인들 손 한번 들어  보이소. 또? 두 분 또 어데 있어? 더 있을 건데, 있는 줄 아는데 또 어데  있습니까? ○○○교회 교인들? 두 분밖에 안 왔습니까? 내가 아까 보니까 한 분  있더니만 안 보인다. 그래. 그러니까, 또 ○○○목사님이 올라가다가 그 모일 수  있으면 제직회가 모일 수 있으면 모일 것이고 모이지 못하면 몇이라도 모여  가지고 또 그런 얘기할 겁니다.

 그러니까 부득이해서 그런 것이니까 그런 줄 알고 여러분들이 한 석 달 동안은,  ○○교회도 빈 지가 한 서너 달 됐습니까? ○○교회 빈 지가 얼마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아무도 모릅니까? ○○교회 빈 지가? 아니, 한 달은,  한 달 넘었어. 그렇습니까? 그래서 석 달 동안은 좀 아마 희생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석 달 동안은 여러분들이 기도가 산 기도가 되고 힘이 있는 기도라면  그저 ○장로님을 성령의 충만함을 달라고 그렇게 마구 기도하고 졸라대이소.

그러면 거게서 그만 젖과 꿀이 흘러나오면 나중에 '다른 목사 필요 없다. 우리  장로님이 제일이다.' 그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좀 산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됩니다. 그걸 좀 양보하시고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십 분 기도 후에 사층에서 권찰회 있습니다.

 요 현실 뺏기면 안 됩니다. 현실이 얼마나 중요한 것.

 그 믿으면 돼요. 안 믿기 때문에 안 돼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게야 복음 가지고 되겠나? 여게 복음 믿는 것 가지고 이 일도 해결되겠나?'  아니오. 믿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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