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하나님의 뜻-지극히 큰 능력

 

1983. 11. 4. 금야.

 

본문 : 마 25: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천국이 이루어지는데 대해서 비유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비유는  실상만치는 정확지를 못한 것입니다. 비유보다 실상은 더 정확한 것입니다. 이  비유를 봐서 비유에 이러하거든 그 실상은 어떠하겠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추상해야 하겠습니다.

 간단한 비유로 우리 구원에 필요한 여러가지 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중에  여러 면을 여러 시간을 걸쳐서 증거를 했기 때문에 새벽기도 나온 사람들은 거의  다 알 것이고, 또 아니라도 몇 번은 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기에 13절에 '그 날과 그 시를 너희는 알지 못하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날과 그 시를 모른다는 이 말씀은 우리의 이 준비할 시기가  언제 끝날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우리가 준비할 그런 시기는 언제든지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준비할 그 시기가 언제 끝날는지 그것도 모르고, 또 준비한 기름이 필요한  밤중도 언제 올런지 우리는 모릅니다. 밤중은 신앙 생활 하기에 가장 어려운  때를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우리가 바라보는 이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해 가지고 결혼할 때가 언제 인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의 준비의 기간이 언제 끝날는지 모르는 것을 가리켜서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함이니라" 그렇게 우리에게 경고해 주시고, 또 준비한 그 효력이 필요한  밤중도 언제 닥칠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또 바라보는 주님을 영원한 신랑으로  남편으로 결혼식이 언제 될런지 그것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약혼한 처녀들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참  처녀에게 대해서 결혼한 그 남편이 처녀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것을  다 허급해 주는 것과 같이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부분적으로 받고 있고  또 제한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뒤에는 그 신랑의 모든 것이 신부의 것이 되는 것과 신부에 대한  모든 것을 신랑이 다 책임지는 것과, 신랑과 신부의 동거 동행, 동역, 동락,  같은 영광, 지위, 권세, 이렇게 하나님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모든 잘못이나 잘이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 되어지는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참 결합이 되어지는 이런 일이 언제 될런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로 하나님의 신부되기로 그렇게  약속이 됐고 벌써 약혼은 돼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혹 생각하기를 '우리는  신부요 하나님은 남편으로 이렇게 하는 것은 한 비유지 실상은 그런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이 부부적인 이런 결합은  이것이 원형입니다. 이것이 근본이오.

 근본인 이 사실을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성경 말씀으로도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요, 하나님은 본 남편이요 세상은 간부라'고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고, 또 이 자연계시, 자연계시인 인간의 남녀를 하나님이  지으셔 가지고 남녀의 결혼으로 부부가 되는 이것은 하나의 자연계시입니다. 이  인간의 부부 제도를 가지고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하나  알려 주는 하나의 계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다 그림자와 같고 하나님과  후리와의 관계는 실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하기를 '일남일녀가 결혼하는 것인데 어떻게 일남에게 열 처녀나  결혼 상대가 되느냐?'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이 열 처녀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열이라 이래 말했지마는 이 비유는 하나의 그저 상징적으로  해 놓은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만수는 열이 만수입니다. 열 하고 나면  그다음에 또 열 하나 이래 가지고 스물이 만수고, 또 스물 하고 나면 스물 하나  이래 하고, 서른 이래서, 성경에 보면 열 자 수는 인간의 만수라 그렇게  계시록에도 인용하고 그렇게 많이 인용이 됐습니다. 거기에 열 처녀라고 비유한  것은 택한 자 전부를 총칭해서 열 처녀로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택한 자 수많은 기독자와 한 하나님과 결혼을 한다면 하나님은  일부다처주의라 이렇게 사람들이 조부랗게 생각을 하기 쉽겠습니다. 여기에  신부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개인도 그러하지마는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켜서  신부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교회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역사의 교회나 세계 교회나  아담 하와 때부터 예수님 재림 때까지의 모든 교회는 한 교회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한 몸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한 몸이요 수많은 성도들은 한  몸에 붙은 지체라 말했습니다.

 우리의 육체의 몸도 일남과 일녀가 결혼하는 그 한 처녀는 그 처녀를  지체적으로 말하면 수많은 지체로 되어 있고 또 세포적으로 말하면 셀 수 없을  만치 많은 숫자의 세포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들은 자기가 교회의 전부가 아니고 자기는 교회에 속한 한  교회의 분자이며 하나의 지체이며 하나의 그 세포로서 한 몸에 많은 세포가  있지마는 그 세포들은 다 한 생명으로 살코 있고, 또 한 힘으로 살고 있고, 또  한 영양으로 먹고 있고, 한 순종으로 다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세포는 영광도 같습니다. 이 세포가 영광스러울 때에 저 세포도  영광스럽고, 눈의 세포가 영광스러울 때에 발의 세포도 영광스럽고 귀의 세포도  영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이 합해서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고, 한 교회가 되고, 단일  교회, 단일 생명으로 사는 단일 교회요, 단일 능력으로 사는 단일 교회요 단일의  그 영광으로 희로애락을 누리고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육신이 한 사람이 한 여자와 이렇게 결혼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교회는 한 성신으로, 한 그리스도의 피로, 한 진리로, 한 택함 속에서  이렇게 된 것이기 때문에 한, 교회논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문제는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기에 열 처녀는 신부가 아니고 결혼할  때에 거기에 들러리 선 그런 모든 방청인들이요 거기에 축하인들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뿐이라는 단일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고 하나님이 신부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대해서 말씀하신 것인 것을  몰라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그러고 열 처녀 가운데에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했고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으니까 다섯 처녀는 구원을 얻지 못했고 다섯 처녀는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라 그렇게들 해석하는 것이 일반 세계적인 해석입니다. 세계에서 다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게 된 것이 기름을 준비한 그 기름  준비한 행위로써 신랑을 맞이하게 됐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 준비하는 그  행동을 하지 안했기 때문에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신랑을 맞이해서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것이 그것이  객관의 하나님의 역사에 근거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소행에 근거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어데까지나 행위구원이지 기본구원이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열 처녀는 다 하늘나라 갈 수 있는 하늘나라 갈 하나님의  택자들이요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환영을 받고 환영을 받지 못하고, 또 하나님이 그 행위에 따라서  책임을 지시고 행위에 따라서 책임을 지지 안하는,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하나님의 책임성과 하나님과 관계성이 다르다 하는 것을 여기에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에뿐 아니고 다른 성경에도 보면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하나님의 행사가  다르고 또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원근에 따라서 다른 것을 얼마든지 말씀해  놨습니다.

 '택한 자는 택한 자들은 다 올바른 행위가 있어서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같이  살아 가지고 구원을 얻는다.' 그렇게 주장을 하는 그런 벼증들을 하기 쉬울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이 그렇게 자기 행동한 것이 하나도 하나님의 심판에 남아 있지  안하고 전부 징죄받아서 다 멸망 받았습니다. 건설이 다 불탔습니다. 행위  건설도 불탔고, 자기 건설도 불탔고 인력적으로 한 것은 전부 다 불탔는데  그래도 그 사람이 지옥 가지 안했고 자기의 하는 행동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안한  사람들도 구원을 얻어서 하늘나라 갔는데 다만 영광이 없고 그에게는 불가운데  구원 얻은 것과 같다고 이렇게 말씀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여기서 넉넉히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것은 이 밖에 나가면 '슬기 없는 다섯 처녀도 하늘나라 갈  처녀인데 그 행동에 따라서 하나님을 신랑적으로, 결혼한 그런 결혼하는 그런  관계와 같은 영원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하는 이런 말을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그러기 때문에 우리와 다르다. 그 이단이다.' 그렇게 말할 때에 여러분들이  속지를 말라고 지금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이 맞습니다. 이 해석이  맞습니다. 어데까지 이 해석이 맞습니다. 어데까지 성경으로 변증해 나가도 이  해석이 맞습니다.

 다른 해석은 다섯 처녀는 불택자라 멸망이라 하는 그런 해석은 성경을 감당치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유혹을 받지 마십시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 하는 말씀은 이 기름 준비할 시간이 언제  끝날는지 모른다. 그저 언제든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냐 아무 때라도 기름  준비 하면 되리라 생각 하지마는 기름 준비를 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언제  끝날는지 그것 우리가 모릅니다.

 또 이 기름 준비한 것이 항상 기름을 가지고 다니기만 불편할 게 아니라 이  기름이 없으면 큰 낭파가 되고 이 기름이 아주 필요하게 요긴하게 쓰여지는  밤중에 언제 올지 또 모릅니다. 이 기름이 필요한 밤중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밤중은 기독자로서 개인으로 대환난 때든지 또 교회적으로 환난 때든지,  교계적으로 환난 때든지, 또 국가적으로 환난 때든지, 그 시 대적으로  지역적으로 환난 때이든지 어쨌든지 환난 때를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밤중도 언제 올지 모릅니다. 밤중에 언제 올지 모르요.

 또 언제 내가 바라보는 주님이, 내가 바라보는 주님이 영원히 나로 더불어  결혼해 가지고 영원히 나에게 남편으로 상관을 가지고 나는 남편의 아내로  관계를 가지는 이 유별한 관계 이런 관계가 언제 하나님과 나와의 이 관계가  맺어질, 비유로 말하면 결혼식이 언제 될지 모른다 그말이오.

 결혼식이 언제 될지 모르는데 이 결혼식에 그만 소박을 당해 버려서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 말씀했어. 이러니까 하늘나라에 가지마는 하나님이,  대주재이신 이 하나님이 당신의 전부를 가지고서 내게 필요한 대로 다 내게  맡기고, 다 주시고, 내게 모든 부족한 것을 당신이 다 책임지시고, 그분의 줘은  것은 다 내것이요 내 부족한 것은 다 그분이 다 책임지고 이런 영원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이 관계의 결정 이, 이 관계의 결정이, 이 결혼이 언제 될런지  모릅니다.

 그 결정은 뭘로 됐느냐? 등불을 든 것으로써 됐고 등불을 들지 못하고 등불이  꺼진 것으로써 실패했습니다. 밤중은 깜깜한 어두운 때인데 전체가 깜깜하게  어두운데 이 등불 든 그 등불만이 밝습니다. 등불만이 밝아요  그러면 온 자기 주변이나, 또는 교계나, 전국이나 이북 같은 데는 벌써 깜깜한  밤입니다. 밤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는 거기에서 등불 든 사람, 거기에  등불 든 사람은 주님과의 영원한 부부적인 그런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고,  거기에서 이북에 무신론 유물주의의 그 깜깜한 어두움의 세력에 견디지 못해서  자기도 무신론의 사상이나 유물주의의 사상을 자기 정신에 받았든지 감염됐든지  그 행동을 하든지 해서 거기서 빛, 영감과 진리의 그 빛을 자기가 들지 못한  사람은 뭐 수십 년 주님을 바라봤지마는 주님과 결정되는 그 시간에는 다 진리  팔고, 주님 팔고, 영감 다 팔 아버리면 그때에 주님과의, 택자니까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부부 적인 그 결혼 관계는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이 되는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여기 말씀하시기를 '기름을 나눠 달라' 이러니까 '나눠 주는 데는 너와 나와  다 부족하다. 너도 그만 나눠 주면 너도 헛일 나도 헛일 다 헛일이다.'  그렇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기름은, 이 기름은 자기가 나눠 주지는 못합니다. 이 기름을  자기가 많이 가질수록 그 기름이 제삼자에게 그 넘어가지, 넘어가지 자기 가지고  있는 기름을 자기가 덜어서, 덜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면 자기 그릇에  기름도 통통 비고 다른 사람의 그릇에 기름도 통통 빕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이 기름이 무슨 물질이 아니고 영감이요 진리입니다. 진리요  영감인데 진리를 그 사람에게 주면 내게 없습니다. 진리를 내가 충만히 내가  가짐으로써 넘어나가는 것이지, 넘쳐서 흘러가는 것이지 그렇게 내게 진리를  쪼개 가지고서 나눠 가지고서 주는 그럴 수 있는 그런 물질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파는데 가서 사라.' 이 슬기 있는 다섯 처녀가 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안 되니까 파는 집에 가서 네가 사야 된다' 그렇게  말을 했어. 그 사러 간 동안에 헛일했습니다.

 '파는 집에 가서 사라' 파는 집이 어데인가? 파는 집은 기름 주인의 집입니다.

기름 주인의 집에서 팝니다. 팔기는 누가 파는가? 주인이 팝니다. 주인이  파는데, 그러면 파는데 댓가를 내야 되는데 그 값을 내는 기름 값을 내야  되니까, 성경에 "값이 없어도 사라"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이 기름의  댓가는 안 되지마는, 댓가는 안 되지마는 네게 있는 것을 주고 사라 그말이오.

네게 있는 것을 주고 사라. 이 기름은 진리요 영감입니다. 진리요 영감이요 곧  성령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댓가를 값이 없어도 자기에게 있는 대로 주고서 사야 되는 것은  자기의 뜻을, 자기의 뜻을 주님에게 맡겨야 주의 뜻을 내것 삼을 수 있습니다.

또 자기의 마음을 주님에게 바쳐야 주님의 그 마음, 영감은 주님의 마음인데  주님의 마음을 내가 받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주님에게 바쳐야, 주의  것으로 주님에게 바쳐야 주님이신 그 성령님이 자기에게 와 가지고서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되어집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내놓지 안하면 안 되고, 그러면 파는 집은 어데가 파는  집인가? 파는 집은 기름 파는 집을 만든 주인의 집인데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현실을 만드셨습니다. 우리 현실은 하나님이 만드셨지 아무도  거기에 털끝만치라도 간섭하지 못합니다. 혼자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우리 현실은 혼자 만드신 것인데 당신이 만들어 놓으신 이 재료 저 재료  모든 재료를 필요한 대로 모든 재료를 당신이 사용해 가지고 내 현실을  만들었는데 내 현실은 주님 혼자 독단으로 만들었습니다.

 만든 이유가 뭐인가? 만든 이유는 우리 현실에서 우리에게 진리 팔려고  만들었고, 영감 팔려고 만들었고, 성령 팔려고 만들었습니다. 진리와 영감과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현실에 진리와 영감과 성령을 내가 받는 데에는 내 뜻을, 내 뜻을 내가  주장하지 안하고 내 뜻을, 내 뜻을 내가 주장하지 안하고 내 뜻은 하나님에게  맡겨버렸고, 내 마음은 하나님에게 맡겨버렸고,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하나님 마음하고 내 마음하고 바꿔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하고 내 뜻하고  바꿨습니다.

 내 뜻은, 내가 주장하고 내 뜻으로 살았는데 내 뜻으로 살던 사람이 내 뜻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부인하라 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뜻에  맡겨버 렸고, 내 뜻도, 내 마음도, 나도 다 맡겨버렸고 그럴 때에 나를,  자기가 자기의 자체나 마음이나 그 뜻을 사용하는 사용하는 면에 있어서는  사용하지 말고 부인하라 그렇게 말했고, 부인하라 그렇게 말했고 또 이것을 자기  것으로 가지려고 하는 데에는 네가 그것을 가지지 말아라. 그런 것은 다 내게  맡겨버려라 이랬습니다.

 사용하는 면에서는 그걸 사용하지 말아라 말을 가리켜서 부인하라 그렇게  말했고 또 네가 가지지 마라 하는 것은 당신에게 맡기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서 그걸 맡겨 주고 현실을 만드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기름을  사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이 아니고는 사지를 못하고 또 자기  것을 내 주지 안하고는 이 기름을 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기름이 이것이 평소 자기 현실을 닥쳤을 때에 그때에 반드시  현실에는 인간의 내 뜻이냐, 내나 다른 사람이나 나도 사람이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의 뜻이냐 하나님의 뜻이냐 이 둘이 양편에서 지금 어느 걸 취하겠느냐 하는  것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뜻을 취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버려야 되고 하나님의 뜻을 취하려  하면 사람의 뜻을 버려야 되고, 또 내 마음이냐 성령의 감화의 마음이냐? 내  마음을 내가 채우려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버려야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영접하려 하면 내 마음을 부인해서 하나님께 맡겨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자기 현실에서 내 마음대로 살 것이가 하나님의 마음대로 살  것이가? 내 뜻대로 살 것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 이가? 내대로 살 것이가  하나님대로 살 것이가? 하나님대로 살려 하는 그것이 이제 성령을 자기 안에  모셔서 자기는 하나님에게 맡겨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피로 값주고 산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자기 안에 자기입니다. 이래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말씀했어  그러기에 자기와 하나님을 바꿀 수 있고, 자기 마음과 하나님 마음을 바꿀 수  있고, 자기 뜻과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가 있고, 그러니까 자기 욕심과 하나님의  욕심을 바꿀 수가 있고, 자기 취미와 하나님의 취미를 바꿀 수가 있고 자기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을 바꿀 수 있는 이것이 자기 것을 이것을, 자기 것을  하나님에게 내 맡겨서 그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부인해라  할 때에 부인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에게  맡겨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아 가지고서 자기 것을 삼는 것이 그것이  기름 준비입니다.

 기름 준비는 평소에 해야 되는데 이 기름 준비하는 이 기름이, 이 기름이 차차  차차 밤이 어두워 갈수록, 어두워 갈수록 이 기름의 효력은 많이 나타납니다. :  어두워 갈수록 기름의 효력은 많이 나타납니다. 이제 밤중에는 참 기름의 효력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등불이 꺼져간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진리와 영감과 성령의  은사를 받았지마는 그것이 평안 무사할 때는 다 그대로 살 수 있지마는 차차  자기 환경이 어려워져 가면 진리대로 살기가 어렵고, 영감대로 살기가'어렵고,  하나님으로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이 기름이, 기름이 이 밤중에 가 가지고는, 이 기름이 밤중에는 이  기름이 무엇으로서 변했습니까? 이 기름이, 밤중에 가서는 무엇으로 변했습니까?  이 기름이 밤중에는 등불로 변했습니다. 이 기름이 밤중에는 빛으로 변했습니다.

이 빛은 뭘로 변했습니까? 이 빛은 신랑으로 변했습니다. 신랑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신랑이 더디 오므로 졸며 잔다 맞으라" 이렇게 말하니까, 이것  비유인데, 비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유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내가 이  현실에서 어느 것을 영접하느냐 하는 내게 온 진리와 영감과 성령님은 그분이,  그분이 내가 영접할 수 있도록 접촉할 수 있도록 이렇게 내게 와서 그렇지, 오늘  내 현실에 내 뜻이냐 하나님의 뜻이냐 요 둘을 놓고 우리는 생각할 때에 자기  뜻이나 하나님의 뜻이 동둥으로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자기 뜻은 피조물의 뜻이요  그것은 마귀에게 삼켜진 악령으로 말미암은 뜻이요 자기에게 현실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 그것이 막바로 그 뜻이 뭐인고 하니 그 뜻이 없는  가운데서 우주를 창조한 능력입니다. 우주를 창조한 능력입니다.

 또 그때 자기 마음은 부인하고 자기 마음과 성신의 감동의 마음을 받아서  영감을 영접해 가지고 자기 마음이 영감을 영접해서 영감의 마음이 됐는데 그  영감이 뭐이냐? 그 영감이 우주를 창조할 때에 우주를 창조하도록 진리에게  명령한 그 명령의 권위자입니다. 명령의 권위자입니다. 그 영감이 우주를 창조할  때 명령한 권위자요.

 또 자기가 현실에 그 영감을 영접해 가지고서 성령이 자기 안에 내주하게  되는데, 성령님께서 근본 하나님시요 이분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주인입니다. 제일 주인이오. 주인이요 영감은 그 주인이 창조할 자에게 명령한  명령이오. 그 명령을 받아 가지고서 없는 가운데서 창조한 것이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동일이요 하나라는 것을 우리가 꼭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것을 지금 오늘밤에 지금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 현실에, 내 현실에 우리가 사람의 뜻대로 내가 하느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느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그 하나님의 뜻을 하나의 인간의 뜻과 같은 그런  것으로서 이렇게 생각을 가지나 곧 그 뜻이 진리입니다. 그 뜻이 진리요 그 뜻  그것이 우주를 지었어. 그는 창조의 능력을 가 졌습니다. 그 뜻 배후에는 영감이  있는데 그 영감은 우주를 창조하도록 명령한 명령이요, 하나님의 명령이오. 그  안에 있는 성령님은 명령하신 자존하신 독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지극한 능력, 재창조를, 이차 창조 이차 창조를  하실 이 능력을 우리가 접하는 것이 자유롭게 접하도록 가장 자유롭게 접해서  우리가 그 접촉을 자유롭게 할 수가 있고 또 그 접해도 우리가 상하지 안하고  죽지 안하고 이렇게 가장 졉할 수 있는 아주 부드럽게, 부드럽게 우리에게 그  지극한 능력이 진리가 우 리에게 와서 우리를 접하도록 온 것이 내 현실에  하나님의 뜻입니다.

 부드럽게 와서 우리가 접할 수 있지 그 뜻이 내나 우주를 심판할 앞으로 모든  우주 만물을 심판해서 영원한 지옥으로 보낼 걸 보내고 할 그 심판할, 그 심판할  권세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 하면 내게 지금 와 가지고서 영감시키는 하나님의 뜻  그 뜻이 권위를 가졌어.

 그 뜻이 이런 권리를 가졌고 그 뜻은 누구를 따라서 그 뜻이 지금 움직이느냐?  그 뜻은 영감 따라서 움직입니다. 진리를 지배하는 것이 영감이요, 영감을 내  보낸 이가 자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역사인 지극히 큰 역사, 명령할 때에  명령대로, 명령대로 진리는 나가 가지고서 실상을 창조한 이렇게 지극히 크신  분이요 지극한 그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 믿음인데 이 믿는  대로 되고 안 믿으면 헛일입니다. 이것을 믿는 데서 모든 일은 이루어지고 믿지  안하면 안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왜 우리가 그것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좀 엄하게  위엄스럽게, 용감스럽게, 권위 있게 이렇게 오시지 안하고 우리가 뭐 내  마음이냐 하나님의, 내 뜻이냐, 하나님의 뜻이냐 해 가지고 하나님 뜻, '아,  하나님 뜻.' 척 버려도 척 버려지고 또 하나님 뜻을 영접하면 영접해지고,  이렇게 아주 시뻐보게 약하게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오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이요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오시지 아니하시고 사람을 입고 사람 돼  가지고 오신 도성인신하신 그 사랑의 그 성질대로 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우리가  영접할 수 있도록 온 지극히 큰 우주를 창조한 그 능력이, 그 능력을 우리가  받아서 내 능력을 삼을 수 있도록, 삼을 수 있도록 오시기 위해서 온 것이  우리예게 현실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버려도 되니까 이 뜻이  힘없는 줄 알아도 이 뜻이 우주를 창조한 내나 그 진리입니다. 그 능력을 가진  진리요.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에서 우리가 시뻐 여기는 하나님의 그 뜻은 그 뜻이  우주를 창조한 뜻인데 이번에는 진동되지 아니할 제이차 창조를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그 뜻은 그 뜻을 영접하면 내가 이차 창조 받아  가지고서 영원히 멸망받지 아니할 완전의 것 영원의 것이 나에게 창조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이 어둡기 때문에 무시합니다.

 또 그 진리 배후에 영감, 우리 마음을 영감시켜서 진리로 우리 몸을 다스려, 이  진리가 우리 몸에 와 가지고 우리 몸을 다스려서 진리에게 복종하고 진리를 모셔  진리에 복종하게 하고, 영감이 와 가지고 우리 마음이 영감에게 다스림 받고  영감을 모셔서 영감화되도록 하고, 성령이 오셔 가지고서 내 안에 주인이 되고  나는 성전이 돼 가지고 성령님이 내 안에 주인이 되고 나는 그 껍데기 성전이  되고 주님은 내 안에 왕으로 계셔 좌정하게 되시는 이것이 현실에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내나 그분이 그분이오.

 우리에게 온 하나님의 뜻인 이 뜻이 이차 창조를, 우리에게 썩지 안하고,  쇠하지 안하고, 더러워지지 안하고, 낡아지지 아니할 이 창조를 하기 위해서 이  창조하려고 창조의 능력을 가지시고 이 창조의 능력이 우리에게 온 것이 우리  현실에 우리를 찾아온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것 믿으면 구원되고 안 믿으면 헛일입니다. 믿으면 구원됩니다. 믿으면  구원이오. 믿는데 되지 믿지 안하고는 헛일입니다.

 능력이요 곧 그는 이 진리는 와 가지고 내 행위를 내 몸뚱이를 주관해 가지고서  내 몸의 기능을 내 몸의 기능을 이것을 살려서 제이차 창조로 온전케 만들고 이  진리는 와 가지고 내 행위를 주관해 가지고 내 행위를 변화시키고, 영감은 와  가지고서 내 마음을 변화시킵닛다. 마음을 변 화시키는 이 영감은 곧 없는  가운데서 이 진리를, 진리로 가지고서, 진리가 일하고, 진리가 일차 창조할 때도  이 영감이 진리에게 명해서 진리가 영감의 명령을 따라서 일차 창조의 것을  창조했고 이차도 이 영감이 명령할 때 이 진리가 이차 창조를 하는데 이 진리는  영감에서 파송한 것입니다.

 영감에서 파송한 것이 진리요 영감은 성령님이 파송한, 성령님이 파송한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왔을 때에 영감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내 현실에서 내가 만난 이 진리는, 하나님의 뜻은 지극히 큰 능력,  지극히 큰 능력, 엿새 동안에 모든 우주를 창조하고 영계를 창조한 지극히 큰  능력이 진동되지 아니할 영원한 것을 창조하러 오신 이 능력인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이 능력이오.

 지금은 뭐 버려도 됩니다. 지금은 물리치고 버리니까 시쁘게 보이니까 능력이  없는 줄 알아도 그 능력 가졌는데 왜 이렇게 우리에게 지금 약하게 부드럽게  아주 권력 없는 것같이 이래 왔느냐 하면 우리를 상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부드럽게 유하게, 또 얼마든지 배척당하면 또 쫓겨나갔다가  다시 또 오고 이렇게 해 가지고서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하나님이 신성으로만 나타나시면 인간은 다 멸망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사람이 되어 왔기 때문에 같이 한 솥에 밥을 먹고, 한 자리에  잠을 누워자고 또, 이렇게 뭐 서로 손도 잡고, 또 욕도 하고 이렇게 해도  괜찮았지마는 그랬으나 그분이 하나님이시라 그거요.

 하나님이신 그, 하나님이 왔을 때에 그때에 사람들이 하나님이 오신  예수님이지마는 예수님을 그렇게 크신 분인 줄을 몰랐습니다. 부드럽게 오니까,  부드럽게 오니까.

 아무 광채도 없고 무슨 아주 볼품 없이 이래 오니까 약하게 오니까 그랬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우리 약하고 우리의 어리석고 아주 그런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를 살리기에 합당한 자로 오시기 위해 가지고 사람되어  오심과 꼭 같이 우리 현실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것이 예수님이 도성인신 해  가지고서 인간이 하나님을 접해서 '만져서 같이 밥 먹을 수 있고 손 잡을 수  있고 이렇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나타나 가지고서 오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긍휼로 부드럽게 온 것이지 우리 현실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뜻이 곧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신 그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한다'  그렇게 에베소 1장에 말했는데 믿음으로 말미암은 그런, 이 능력이 하나님의  뜻이 내게 온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왔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오신 이 뜻이 왔는데 내가 그 뜻을 영접하고 보니까 그 뜻인 그  능력은 내게 지극히 큰 능력이라 말이오. 못 할 것이 없는 능력이라.

 그러니까 우리 현실에서는 능치 못한이 없는 능력을 우리가 영접하는 현실이요  알지 뭇합이 없는 전지를 영접하는 것이요, 완전을 영접하는 것이요 영원히  진동되지 안하고 변동되지 아니하는 이런 이차 창조를 할 수 잇는 이 지극히 큰  능력을 우리가 요 현실에 영접하는 것인데 이걸 모르기 때문에 현실을 썩어질  자기 마음과, 썩어질 자기 마음과 썩어질 인간의 뜻, 썩어질 인간의 뜻,  인간들이 지금 세계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학문이라 하는 걸 똘똘 뭉쳐서 그게  인간의 뜻인데 그까짓 걸 다 뭉쳐봤자 내게 온 하나님의 뜻인 그 하나와 비중을  달면 그런 것 억억억억 만 배, 인류에게 있는 지식을 다 똘똘 뭉쳐 억억만 개를  합해 봤자 여기 털끝만치도 당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이런 지극히 큰 능력을  우리가 어리석고 미련해서 몰라 그렇지 그 자체가 약하거나 무능한 것 아닙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고 자기 뜻은 하나님에게  맡겨버리고, 맡기는 것은 뭘 맡기느냐? 하나님께서 "네 뜻대로 하지 말고 네  뜻을 부인하라" 하는 그 말대로 해서 부인하는 것도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놓고 "모든 염려를 맡기라" 할 때 맡기는 것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게 있는 내 뜻을 하나님의 뜻인 시키는 대로 당신에게  맡겨버리고 이제는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삽니다.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하나님의 뜻 이것이 지극히 큰 능력을 지존의 능력을 가진 이 사실을  우리가 아는 것이 영감입니다. 이 모르는 것이 마귀 것이요 아는 것이 영감이오.

 현실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으로, 영감은 하나님의 마음인데 하나님의  마음인데 영감은 무형의 존재인 완전자가 무형의 존재가 당신이 유형의 역사를  한 것이 영감입니다. 무형의 존재가 역사해서 유형의 영체 영형으로서 유형의  역사로 나타난 것이 영감이요 그를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영접할 수 있고, 또 영감을 영접할 수 있고, 또  성령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자기와 바꾸고, 또 영감은 자기 마음과 바꿨고, 또 하나님의 뜻은 자기  뜻과 바꾸는 것입니다. 이 바꾸지 안하면 가질 수 없습니다.

 바꾸는 장소는 어데인고 하니 자기 현실, 기름집, 기름 파는 집, 기름 파는 집,  자기 현실. 자기 현실을 만든 현실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뭐 하려고 만들었느냐? 우리에게 현실 만든 것은 기름을 파시려고,  기름을 우리로 하여금 사 가지고서 기름 준비 하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현실에서 이렇게 기름 준비는 미리 해야 되지, 현실에서 미리 해야  되지 그때 밤중에는 못 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밤중에 기름이 빛이 되는  필요한 그때에, 세상이 어두워지니까 신랑이 오는데 신랑은 빛을 가진 자만  영접하게 되는데 그때에 이 기름 준비를 하려 하는 것이 미련한 처녀요 암만  해도 그는 신랑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미리 기름 준비를 해야 된다  하는 것을 여기에서 간단하게 비유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평소에 우리가 이 기름 준비는 세 가지인데 하나님의 뜻 진리, 또  하나님의 감동인 영감, 영감은 내 마음에 받아들이고 진리는 내 행위에  받아들이고 또 성령은 내 안에 받아들여서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  너희들이 알지 못하느냐?" 성령은 우리 안에 영접하면 내가 자주자가 되지  안하고서, 내가 주권자가 되지 안하고, 원죄를 완전히 회개했을 때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 와 가지고서 내주하시게 됩니다.

 이 세 가지가 기름 준비인데 이 평소에 우리는 이 준비를 해야 되는데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한다' 그말은 밤중에 등불을 들 수 있는, 밤중에 등불로  화해지는, 밤중에 등불로 화해지는, 환난 때에, 환난 때에 빛으로 화해지는,  환난 때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환난 때에 참 믿는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환난 때에 기독자로 나타날 수 있는,  환난 때에 신앙을 버리지 안하고 성자로 나타날 수 있고, 성녀로 나타날 수  있고, 선지자로 나타날 수 있고, 왕으로 나타날 수 있고, 제사장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환난 때에 자기가 그 환난에게 삼키워져서, 환난에게 삼키워져서 자기도  환난과 같은 그런 자가 되지 안하고 환난을 거스려서, 환난을 대항하는 환난에게  삼켜지지 안하고 환난케 하는 그 세상에게 삼켜지지 안하고 세상을 반대하는  빤짝빤짝하는 이 진리의 빛을, 성도의 정조를, 성도의 절개를, 성도의 신앙을  이것을 자기가 가지게 되는 것은 평소에 준비한 진리 영감 하나님의 그  권능으로만 되어지는 것인데 이 준비하는 그 준비 기간이 '뭐 쇠털같이 많은 날,  오늘 못 해도 내일 하지.'  "아무 성에 유하면서 일 년을 유하면서 장사의 이를 얻겠다 하는 자들아"  오늘은 이것 하지마는 오늘은 이것 해 놓고 이것부터 해 놓고 자식 키워 놓고  공부 시켜 놓고, 뭐 해 놓고 요렇게 해 놓고 나서 이제 기름 준비해야  되겠다고서 이렇게 망령되게 말하는 자야.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이 언제 끝날는지 모른다."  또 준비 기간이 언제 끝날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요새 기도 한다고 해  가지고 기도록에 기록을 하고서 기도하자 하는데 기도록에 기록을 하고서  기도하는 사람이 기록한 대로 다 하는지 덜 하는지 기도록에는-여러분들이  기도를 하면서 들어요, 아이들 그 마귀가 침노하지 못하도록. 아이들을 울리면  여러분들이 다 지옥 된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에게 다 구원이 안돼. 그러기  때문에 아이 울면 그 아이만 우는 게 아니라 해는 여러분들이 다 같이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여 아이를 마귀가 침노하지 못하도록 주여 막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 하면서 들으라 그말이오.

 기도록에 등록된 사람들이 이천팔백구십이 명이 등록을 하고서 기도를 하는데  하루밤에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이 지난밤에는 육백육십삼 명이 여기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기록 안 하고 자기 집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아마 많고  여기 기록하지 안한 사람들도 다 기도를 하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이 기도하는 기도가 뭐이냐? 기름 준비할 수 있는 자 되도록 기름  준비하는 깬 운동이라 말이오. 기름 준비하는 것.

 자기가 기도하지 안하면 자기 현실에서 인간의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뜻을 부인하는 그것이 자기의 멸망을 다 벗어버리는 것이오.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는 것이 전능의 그 이차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서 와서 나를 썩지  안하고 쇠하지 안할 산 소망의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도록 그 능력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평소에 진리인 하나님의 뜻과 영감, 또 성령, 이렇게 영접하는 이  준비가 언제 끝날는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그말은,  네가 깨어 있으라 말은 성령의 생활을 해라 진리의 생활을 해라, 진리와  성령으로 거듭난 자이기 때문에 내 생활 네가 해라. 진려와 성령의 생활 해라.

'깨어 있으라' 성령과 진리의 생활을 하라, 깨어 있으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기억합시다. 평소에 왜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내가 버리면 버려지고 영접하면 영접해지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아주 시뻐 보입니다. 왕의 뜻이 자기에게 와도, 왕의 뜻이  자기에게 와도 그 뜻을 거역하려 하면 참 힘이 들 터인데, 뭐 이것-내가  하나님의 뜻이 내게 왔는데 나는 그 뜻 안 하고 나는 내 맘대로 할랍니다. 하면  턱 물러가고 이러니까 아주 자기에게 시쁘게 보이지마는,  그것은 내 현실에 온 하나님의 뜻이 현실을 당신이 만들어 놓고 요 현실에  요떻게 하라고 하나님의 뜻이 인도하는 그 뜻이 우리가 쫓아내면 밀어내 면  밀려나가고, 쫓아내면 쫓겨나가고, 영접하면 영접하고 이렇게 자기 보기에 아주  보잘것 없이 그렇게 아주 쉽게 약하게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자기에게 보여지는  것은 사람의 눈이 어두워 그렇습니까 그 뜻이 정말로 그렇게 약해 그렇습니까?  자, 그 뜻이, 밀어내면 밀려나가는 그 뜻이 전능의 능력을 안 가져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전능의 능력을 가졌는데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로 죽지 안하고 그 능력을 영접해서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하려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긍휼로 그와 같이 오신 것을 아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왜 이 가운데는 손 안 드노? 안 든 사람 있네.

 요걸 잡아요. 이걸 믿어요. 돌아다니면서 막 떠들고 불이 왔다 뭐 왔다 뭐  죽자껏 고함질러 봐야 소용 없어. 요걸 믿고, 가는 소리라도 요 소리를 요  사실을 믿고 요대로 믿고 요동치 안하고 현실에 '내게 온 하나님의 뜻, 이  시간에 성경 말씀. 이 시간에 영감, 이는 전능의 하나님의 역사다. 영감은  하나님의 역사다. 진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시공할 하나님의 지극한 능력이다.

이때에 영감을 통해서 내가 영접하면 성령이 내 안에 오시니 이분은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믿는 게 믿음입니다. 믿을 때에 역사할 수 있고 안  믿으면 소용이 없어.

 그런고로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훌로서 이와 같이 오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러면 이 평소에 영접했는데 자기가 환난 때에 참 자기에게 어려움을 당하는  개인 환난이든지, 가정 환난이든지, 혹은 시대적인 환난이든지, 국가적인  환난이든지, 공산주의 환난이든지 무슨 환난이 든지 아주 그 환난에서 참  웃음으로 지낼 수 없고, 기쁨으로 지낼 수 없고, 평안으로 지낼 수 없고,  담대함으로 지낼 수 없고, 진리로 지낼 수 없고, 승리로 지낼 수 없고, 그만 그  죄와 마귀들이 시키는 대로 얼마든지 해서 참 창기같이 더러운 신앙, 아주  더럽고 신앙을 팔아서 더럽고 추하고 더러운 신앙, 마귀에게 이리 저리 유린을  당하는 그런 더러운 신앙으로 살지 안하고,  그때에 진리를 든, 등불 든, 그때 진리를 든, 온 세상이 깜깜한데 자기는  '백설이 분분한데 낙락장송 되리로라' 하는 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그런 데도  자기는 아주 진리와 영감대로 그대로 횃불을 들고 그때에 등불을 들고 있는  그것이 뭐이냐? 그때에 그 등불이 무엇입니까? 그 등불이 뭐이지요? 그 등불이  무슨 힘입니까? 저 남반에? 등불 그것이 진리의 힘이요, 등불이 진리의 힘이요  영감의 힘이요 성령의 힘입니다.

 그게 누굽니까? 평소에 자기에게 물리치면 물리칠 수 있는 자기 평소에 온  부드럽게 온 하나님의 뜻 그 뜻인 하나님의 뜻인 진리요, 부드럽게 자기에게  감화 온 영감입니다. "성신의 감화를 소멸치 마라"* 그 감화요.

 그때에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자기 주로서 영접하는, 자기를 부 인하고  주님을 영접할 때에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해서 계시는 성령님의 능력과, 영감과  능력과, 진리의 능력이 그 환난 때에 자기를 담대케 하고, 평안하게 하고,  기쁘게 하고, 소망에 굳게 서게 하고 용감스럽게 하고, 털끝만치도 진리를  양보치 안하고, 진리를 양보지 안하고 영감을 양보치 안하고 영감대로의  마음으로, 진리대로의 행위로, 하나님의 성전으로 그렇게 자기가 그때에  행동하는 그 행동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여기 비유에?  그 행동을 가리켜서 이 비유에 뭐라고 말했지요? 저 남반에 한번 큰 소리로  대답해 보십시오. 뭐라고 말했습니까? 억기 ○목사님, 대 전에 있는 ○목사님  대답해 보이소. 뭐입니까? 진리와 영감과 성령의 그 능력을 가리켜서 무엇이라  했습니까, 환난 때? 뭐라고 말했지요?  여러분들이 알아듣습니까 못 알아듣습니까? 못 알아들으면 헛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환난 오면 다 쓰러지고 다 쭉징이 되고 마요. 이렇게 가르칠  때에 자기 속에 마음에 뜨거운 결심이 없고 마음에 '아멘!' 이게 없으면 안  됩니다.

 그 왜정 말년 그 시험은 조그만한 시험이요 앞으로의 시험이 점점 큰 시험  됩니다. 그럴 때에 한국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있지마는 그 어려운 신사참배  때에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렇게 산 사람들이 선천 고을에는 넷 집  말고는 다 예수 믿는다 하지만 그 고을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 사하도.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압니까?  이게 막바로 지금 복음이요 진리입니다. 이걸 들어서 마음에 변화가 안 되면  헛일이라.

 그러면 내가 내가 환난 때에, 환난 때 그때에 나를 담대하게 해 줄 능력 이,  나를 담대하게 해 줄 능력이, 언제 테레비를 보니까 공산주 의자들이 목사님을  데려다 놓고서 고문과 고형을 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신앙을 지키고 그래도  팔지는 안해도, 팔지는 안해도 참 한없이 고생을 당합디다.

 이러니까, 예수를 팔 수는 없지. 진리를 내놓을 수는 없지. 안 내놓으려 하니까  두려워 죽을 지경이지. 발발발발발발발 떨면서, 그들이 말하니까 어짤 줄을  모르고 그저 뭐 참 죽을 고비를 넘깁디다. 죽을 고비 넘겨. 보니까, 그럴 때에  손양원 목사님 같은 이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러니까 뭐 그들이 올 때  우습고 기쁘고 즐견고 이랬는데 그렇게 떠는 그 고생이 아마 며칠 동안  고생이지마는 그 고생을 일생 동안에 뿌어 놔도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도회 때에 지금 회개하고 지금 기도하는 것이 힘이 들지마는  그때에 순간에 자기가 고통당하는 그 중량만 못합니다.

 지금 영접한 그 힘이 그때에 담대케 하는 능력이오. 내가 평소에 괄시하지  안하고 영접한 하나기의 뜻이 그 뜻이, 그 뜻이 지극히 큰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 뜻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이 벌벌 떨 때에 평안하고 담대하게 지낼 수  있었고, 또 그때에 성신의 감동을 영접한 그 감동의 그 능력이 그때 웃음으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아무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넘겼다 그거요. 넘기게 했다  그거요, 기쁨으로.

 그때에 등불을 들었는데 비유로 등불을 들었는데 등불이 밝은 빛인데 밝은 빛이  뭣이 그렇게 그때에 밝은 빛으로 나타났습니까? 뭣이 빪은 빛으로 나타났지요?  그때 등불이 뭐이요? 뭣이 등불 됐어? 뭣이 등불 됐어? 평소에 제가 영접한  진리와 영감 성령님이 그때 등불 됐습니다. 그때 등불 됐어. 등불이 됐는데,  둥'불을 들었다 그말은 영감을 버리지 안했다 말이요, 진리를 버리지 안했다  말이요, 주님을 배반하지 안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때 신랑으로 찾아온 이는  누구요? 신랑으로 찾아욘 이는 누굽니까'? 그이는 누구요? 그이가 진리요,  그이가 영감이요, 그이가 성령님이십니다. 다른 이 아니라. 그분이 그분이오.

 이러니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니까 신랑이 그 다섯 처녀에게  대'해서 너무 박절하다 하지마는 그래 신부가 주님을 먼저 버 렸습니까 신랑이  신부를 먼저 버렸습니까? 누가 먼저 버렸어?  자, 신랑이 신부를 먼저 버렸소 신부가 신랑을 먼저 버렸소? 신랑이 신부를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한다' 먼저 버렸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신부가 신랑을 버렸기 때문에 신랑이 그다음에 신부를 보고 내가  도무지 알지를 못한다고 신부가 신랑을 먼저 버렸기 때문에 신랑이 버린 것으로  이렇게 아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이겁니다.

 무엇이 그러면 신랑을 버린 것입니까? 처녀가 신랑을 버린 것이 어떻게 한 것이  신랑 버린 것입니까? 어떻게 한 것이 신랑 버린 것 이지요? 한번 여기 대답 한번  해 봐. 진리와 영감을 버린 것이 뭐이지 그때 비유로 말하면? 등불 꺼진 것이지.

그렇지 안해? 등불 꺼진 것이 진리와 영감을 팔고 버렸다 말이오.

 진리와 영감과 성령을 버린 것이 내나 신랑 버린 것입니다. 신랑 버린 자인데  그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때에 이제 결혼이 되고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때에 자기가 영감과 진리와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배반치 아니하고  모시고 있는 그것이 그때에 뭘로 나타났습니까? 빛으로 나타났습니다. 빛으로  나타났는데 그 빛이 무엇으로서 바꿔졌습니까? 신랑으로 바꿔졌습니다. 신랑으로  바꿔졌어.

 지금 진리와 영감과 성령님이, 성령님은 자기와 바꿔야 되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중심으로 모실 때에 성령은 들어와서 내주하시고 자기는 성전이  되어지고, 자기의 마음을 주의 뜻대로 자기 마음을 주의 뜻대로 시키는 대로  하고 성령님의 감동의 마음을 받을 때에 영감이 자기 마음에 와서 영감의  마음으로 바꿔지고, 자기 뜻을 부인할 때에 진리의 하나님의 뜻으로서  바꾸어지고,  이래서 진리는 자기 행동을 주관하고, 영감은 자기 마음을 주관하고 성령은  자기를 주관하도록 이렇게 한 이것이 환난 때는, 환난 때는 빛이 됐습니다.

 환난 때는 빛이 됐다 말은 무슨 말인고? 세상에 반대자가 됐다 말이오. 세삯의  반대자가 됐다 말이오. 죄악의 반대자가 됐다 그말이오. 공산주의자의 반대가  됐다, 무신론의 반대자가 됐다 예수 믿는 사람이 됐다, 예수 믿는 사람이 되고  예수를 배반하지 안하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배반하지  안했다 말이오.

 예수님을 배반하지 안하니까 주님이 '이제는 나는 영원히 네 신랑이 되겠다'  이게 결혼식입니다. 이게 결혼식이오.

 이러니까 주여 주여 하지마는 자기가 주님을 다 배반하고 말았으니까 주님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뭣을 신임하고 뭘 맡기겠소? 뭘 맡겨 가지고 그 사람이 무슨  재를 저지를 줄 알고 뭘 맡기겠소?  그러니까 우리가 평소에 이렇게 내게 온 진리와 영감과 성령님이 환난 때에는  그 능력이, 그 능력이 내게 빛으로 나타나 세상 빛으로 나타나고, 그 능력이  나를 통해서 빛으로 나타나고, 빛으로 나타나는 그 능력이, 빛을 나타내게 하는  그 능력이 곧 영원히 내 신랑으로 책임지고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주를 이렇게 믿지마는 지금 주님을 배반하느냐  영접하느냐 이래 거석하고 자기가 주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주님은 그후에  자기에게 대해서 "내가 도무지 모른다 이랬어. 대답 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힉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이것이 언제 될지 모릅니다.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러니까 나는 하늘나라 가 가지고 있지마는 여기  옛날 왕들에게 그 시녀, 시녀라, 또 궁녀라, 황후라, 황후는 왕하고 항상 동거  동락 동행하지마는 시녀나 궁녀나 그거는 왕하고 결혼하려고 다 천거를 당해  가지고서 추천을 당해서 갔다가서 평생 혼자 왕궁에 있기 때문에 딴데 시집도 못  가고 거기에서 비참하게 평생을 참 비참한 신세로 지낸 것이 시녀들이요  궁녀들입니다.

 하늘나라는 다 영광이지마는 불가운데 구원 얻었으니까 그 구원이 좋을 게 뭐  있겠소? 그러나 택한 자들은 지옥 못 갑니다. 택한 자들은 가지 못해. 하나님이  택한 자들은 지옥을 가려 해야 갈 수 없습니다.

 지옥을 못 가니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주님을 아노라 했으면 주님도 나를  아노라 했을 것이고, 내가 주님을 배반 안 했으면 나를 배반치 안할 것이고 내게  있는 것 다 주님에게 드렸으면 주님도 내게 당신의 있는 것 다 내게 주실 터인데  내가 당신을 배반하니까 당신이 나를 배반하고 내가 당신을 모른다 하니까  당신이 나를 모른다 하고, 이것이 하늘나라에 구원 얻은 성도들의 성도와 성도  차이라 그말이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됩니다. 지금 무엇 때문에 무엇이 탐이 나서 이렇게  지극히 큰 일을 마귀란 놈이 감춰 놓고 우리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게 한다 말이요, 믿어지지 않게 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저 완전히 변화가 돼요. 자기 주관 그런 것 다 욕심 사욕 다 치우고, 그것  암만 해 봤자 해 봤자 그것 별 필요 없는 것이고 또 그게 필요 있는 기간이 오늘  끝날지 내일 끝날지 모릅니다. 또 이렇게 이 준비 잘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너희에게 다 잘해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염려 없는 신앙을 가지고, 그저 몇 사람이든지 햐나님이 요 사람을  원하시지 나머지기 지저분한 것이야 그것 택한 자는 천국에 올 건데 천국에 못  올까 싶어 하는 것 아니오. 당신의 신부 만들기를 원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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