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비유

 

1982. 3. 15. 월새

 

본문 : 마태복음 13장 33절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지극히 작은 것이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천국도 그러하고 이 세상도 그러합니다. 그 사람에게 잘못된 생각이나 잘못된  해석이나 잘못된 욕심이나 잘못된 습성이나 잘못된 소용이나 잘못된 행위나 그  잘못된 그것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지마는 지극히 작은 잘못된 그 하나로 인해서  전부가 잘못 되어져 가는 것이 그것이 신앙이 실제 되는 그 순서입니다.

오만 거야 뭐 하지마는 지극히 작은 거 하나 잘못된 그것이 전체를 잘못되게  합니다. 이와 반대로 또 바로 된 것 그 하나가 그 속에 계속 있으면 바로 된 것  하나 그것을 인해서 차차차차 모든 것이 바로 되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범하실 때에는 한 사람의 죄로 자손의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고  또 한 의 의로는 그 혜택이 천 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는  불의의 그 율보다 의의 율이 높고 큰 것을 말씀합니다. 그 사람에게 이 지극히  작은 쓴 뿌리 하나 있으면 그 쓴뿌리 그 하나로 인해서 전체가 다 더러워지고  절단 나버립니다. 전체가 절단 납니다.

사람에게 쓴 뿌리가 하나 있어 그 한 사람만 더러워질 뿐만 아니라 또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다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는 그 형제에게 쓴 뿌리가 있는가 그것을 살펴라. 쓴 뿌리가  하나 있으면 그 한 사람만 더러워지는 게 아니라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더럽게  한다. 이 이치도 이 누룩 비유의 이치와 꼭 같습니다. 누룩 조각 조그마한 것  하나 넣으면 그 많은 가루가 다 그만 그 누룩으로 인해서 썩어져서 부풀부풀하게  그만 부글부글하게 그만 부글부글 개 가지고 상하게 되어 버립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쓴 뿌리가 있는가 그것을 잘 살펴서 그것을 뽑도록 쓴 뿌리  없는 네가 그것을 조심을 해서 그것을 뽑도록 노력을 해라. 왜? 그거 안 뽑으면  많은 사람들이 더러워진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이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이 의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모든 성구를 다 외우고 있지 안 할지라도 한  성구를 자기가 기억하고 이 성구대로 자기가 살려고 애를 쓰면 한 성구를 잡고  이 성구대로 살려고 애를 썼는데 나중에 보면 모든 성구를 다 아는 사람도 됐고  지키는 사람도 됐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작은 죄가 어떻게 많은 사람을 더럽히며 또 그 사람의 전부를  더럽히는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또 어떤 한 성구를 자기가 잡고 놓지 안하고 요  성구대로 실행을 한다면 이 하나로 인해서 그 사람의 전부가 다 깨끗해질 수  있고 또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깨끗해질 수가 있습니다. 죄보다  의에 대한 확률은 더 높습니다.

그런고로 기독교는 인내의 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계속 들어 있는  것이 문제고 행동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많이 알고 많이 듣고 많이 배웠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 속에 있어서 그 성구를 대우해서 그 성구에게 복종하는  이게 있으면 많은 성구를 몰라도 한 성구라도 그 사람을 구원할 수가 있는 것을  여기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인이 가루 서 말에 조그마한 누룩 하나를 갖다 넣으니까 온 가루가 더 서  말이나 되는 가루가 다 부풀어졌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치고 할 때에 그 한 성구가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새가 주어 먹지 안하고 그  안에 내주하고 있다고 하면 한 성구로 그 사람 전부가 다 그 성구들의 사람으로  변화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쓴 뿌리가 또 그 사람 전부와 많은 사람들을  더럽힐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무엇이든지 빠져나가지 안하고 그 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면 지극히 작은 불의도 지극히 작은 의도 큰 결과를 내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잘못된 생각 하나 그거 가지고 저도 가정도 저에게 속한 사람도  전부 다 망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도 자기가 한 성구를 잡고 내가 다른  성구 다 못 지킬지라도 이 성구는 지키겠다 하고 그 한 성구를 지키기로  결정하고 변동하지 안 하면 그 한 성구를 지키는 것으로 그 사람 전부가  의로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자는 지극히 큰 것에 충성될 수가 있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지극히 많은 것에 다 불의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속에 대개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버려야 하겠다 하는 것을 버리지 안한 지극히 작은 것 그것이  자기 전부를 다 못쓰게 만들고 자기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다 못쓰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지혜 있고 복 있는 사람인가 이거는 버려야 될 거다 하면  즉시 버리는 사람이 복 있습니다.

그러기에 악한 것을 기억하지 말아라 그런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악한 것을  기억하지 말라는 말은 뭐 좋은 거든지 나쁜 거든지 자기 중심으로 되어 있는  그것은 모조리 버리라 말입니다. 그거 가지면 저 죽습니다. 자기 중심 남에게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대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것이기 때문에 자기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표준한 것이기 때문에 뭐 자기 이놈이 들어서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버릴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가까이 해서는 안될  사람입니다. 멀리 해야 될 사람입니다. 그 하나가 들어서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또 아무리 그 사람이 어리고 못나고 무식하고 해도 그 하나님의 말씀 옳은 것,  그거 하나 잡고는 그걸 놓지 안하고 그대로 실행할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어디까지라도 외로워지고 위대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독교의 구원은 학문 많은 사람의 그 학문에 달린 게 아니고 또  신구약 성경에 지식을 많이 아는 그 앎에 속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모든 것이 구비해서 아주 모든 사람보다 탁월한 모든 면이  부요하고 충만한 거기 있는 것 아닙니다.

성경에는 예수 잘 믿는 사람 예수 안에서는 그런 것 많고 좋은 사람들이 있기는  있지마는 드물다 이랬어. 별로 없다 이랬소. 모두 다 그런 면이 없고 가난한 사람  못난 사람 오히려 그 사람이 주님 안에서는 큰 사람이 많고 또 큰 구원을 이룬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기독교는 꼭 자기 속에 담겨 가지고 있고 그것이 자기 행위로  이렇게 계속되는 것 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 속에 계속 내주하여 있고  요것이 계속 행해지는 것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얼마 전에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에 평강을 더하시리라 말씀하신 신앙의지가 견고해야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한  대로 기독교는 네가 인내에 도를 지켰은 즉 내가 너를 지켜 주겠다 자기 속에  계속 진리를 담아 놓고 또 담아 논 진리를 계속해서 행하는 네기 때문에 네가  힘이 약하기는 아주 빌라델비아 교회가 힘이 약하기는 아주 참 누구보다도 힘이  약한 참 연약한 빌라델비아 교회이지마는 은혜의 도를 지킨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하나를 놓지 아니하고 계속 지켜 나가기 때문에 마침내 네가 모든  도를 다 지키게 됐는 고로 열린 문을 네 앞에 두노니 아무도 닫을 사람이 없다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는 좋은 거나 나쁜 것이나 자기 속에 계속 담겨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계속 담겨 있는 것.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물재주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뭐 내가 물재주를  잘하니까 이만한 물에야' 그렇게 생각하는 거기서 그 사람이 빠져 죽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말이야 들어봤자 이런 것이야 있어봤자 그 지극히 작은 잘못된  생각이나 말이나 마음이나 이것을 요까짓 거야 내 속에 있어봤자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들어서 자기에게 앞으로 모든 비판이나 평가를 전부 다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의 것이 옳은데 그거 하나 가지고 막혀 가지고 다 막혀 버립니다.

그러기에 제일 주의할 것이 사람을 삼가라 거기서 자꾸 들려옵니다. 그런데  생각도 없이 무슨 서적이든지 읽으면 안됩니다. 종이 쪼가리 거머쥐면 읽습니다.

그런 사람은 많이 읽어도 좋은 거 있는 동시에 나쁜 것도 들어오고 들어오니까  다 그러면 아무 것도 없어집니다. 그러기에 책도 신구약 성경 외에는 그만 독서  안 하는 게 참 좋고 제일 좋은 것은 신구약 성경과 그 외에 책을 잘 선택해서  읽는 것이 좋고 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데서 한 군데서  배우는 것이 좋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여기 저기 다니면서 좋은 것을 보고  비판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하는 것이 제일 좋지마는 제일 좋은 것을 차지하기가  사람들이 어렵습니다. 제일 좋은 걸 차지하려고 하면 그래야 합니다.

자기가 여기서 배우다가 딴 데 가서 배울 때에 제일 좋은 것으로 할라고 하면  거기서 배우는 것이 아! 과거에 배운 것을 자기가 아는 것을 다시 말하면 새로  아는 데에 거기서 배워서는 안됩니다. 과거에 배워 놨기 때문에 실행하지 못한 그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죄를 회개해야 되고 또 자기가 이제까지 모르던  것을 자기가 배우게 됐습니다. 모르던 것을 배우게 됐으면 이거는 내가 모르는  것인데 처음 배우는 것이니까 이게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이것을 모르겠다  이러니까 이것은 두고 연구해봐야 되겠다 이래야 되지 처음으로 들려지는 것을  무엇이든지 그만 자루 열어 놓고 뭐 금덩이든지 똥덩이든지 뭐이든지 화약  덩어리인지 마구 주 집어넣어 놓으면 제가 죽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고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면 이것을 먹을 것이냐 안 먹을 것이냐 이  짐승들도 보면 아 소 그거 무슨 입으로 마구 대고 뜯어먹으니까 그거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이래도 무엇을 처음 닥치는 것을 닥치면 안 먹고  씩씩거려 가지고 맡아 가지고 심사를 굉장히 많이 해 가지고 나중에 못 먹을 것  같으면 안 먹고 지나가서 다른 날 먹습니다.

이렇게 짐승도 다 그렇고 안 그런 짐승이 없습니다. 이런데 믿는 사람이  무엇이든지 들으면 들은 대로 마구 집어삼키는 그런 신앙의 위생을 하지 안한  사람은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어디 가서든지 한 군데만 옳은 데서 들어 가지고 고쳐 나가는  것이 좋고 구원해 나가는 것이 좋고 제일 좋은 것은 거기뿐 아니라 딴 데 여기  저기 다니면서 좋은 것만 참 취해 가지고 나가는 것이 그게 제일 좋은 것인데 그  제일 좋은 걸음을 걸으려거든 자기가 어디 가서든지 들을 때에 이것은 내가 아는  것이다, 배운 것이다. 배운 것이면 거기서 또 새로 말하니까 다시 거기서 힘을  얻는 것은 정조를 파는 음탕한 여인과 같은 것입니다. 정조 판 남녀와 같은  것이라 그 음탕스러운 것이고 그게 간음성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일 가볍게 배웠는데 배운 것을 어렵게 다시 그것인데 거기서 어떻게  말할 때에 힘을 내는 것은 그것은 내나 정조 바꾸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구별합니다.

이것은 전에 배웠는데 왜 그것이 내가 알고 있고 이랬는데 지금 다 말하니까 다  그게 들은 것이요, 배운 것이요, 내가 안 것인데 여기서 새로 들으니까 새로 들은  소리같이 되어지니 이것은 과거에 배운 것을 내가 기억하고 지키지 안한 죄를  지었구나. 그 과거에 듣고 지키지 안한 고 죄로 돌아가면 미혹을 안 받지마는  그렇지 안하고 이번에 또 과거에 배운 것은 집어 던져 버리고 새로 배운데 또  거기 가 가지고 은혜를 받는 것같이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의 신앙은 자꾸 이래  변동되어서 자꾸 나가기 때문에 보수성이 없는 사람이라. 하나를 지키는 내  인내의 말씀을 지킨다는 요것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언제나  신앙이나 인격이 기회주의자로 새떼 모양으로 다니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지조가 없어서 희망이 없는 사람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아는 것이면 과거에 안 건데 다시 그것이 새로 들려지면 그건  들을 필요가 없고 들을 필요가 없고 과거에 안 그것을 자기가 지키지 못한 그  죄로 자기가 돌아와야 돼요. 그리 돌아가야 되고 또 자기가 이제까지 배우지 못한  것을 말을 하면 배우지 못한 것을 말을 하면 배우지 못한 것을 대번에 삼킬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많은 것을 배웠는데 옳다고 인정하는 자기 경험과 체험에서  인정되는 그런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라고 하면, 책으로 말하면 신구약 성경에서  배우는 것이라고 하면 신구약 성경을 자기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서 처음 보는 것이라도 나오면 그거는 더듬을 것 없고 심사할 것 없이  삼켜야 되겠습니다.

또 그만은 못하지만 사람도 자기가 인정하고 그 신뢰하는 그 늘 배우던 거기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을 삼킬 수가 있지요? 삼킬 수가 있어도 조심 있게 삼켜야  되겠고 자기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나 또 자기가 소문만 들었지 어떤 사람인지  자기가 실지로 체험하지 못한 거기서 배울 때에 처음으로 나온 것이 있으면  그것을 삼키는 것이 아닙니다. 삼키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기 마음에 옳다 싶어도  삼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동글뱅이를 칩니다. 이거는 내가 처음으로 들은 말이니  그 자리에서는 많은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고 인정이 되어집니다.

그러기에 약장사한테 가면 그 약장사가 완전히 속이는 거짓말이지마는 한참  들으면 사람들이 '아, 이거 참 특효약이로구나' 하고 가 돈 들여 가지고 그 약을  사기 마련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벌써 거기 그 마취제를 먹어서 벌써 마취가 되어 나가고 감염되  나가고 되어 나가는 그런 판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는 자꾸 그 주장이 인정이  되어진다 말이요. 이러나 거석한 사람은 그렇게 신앙의 사람은 어디 간다고 해  가지고 어떤데 가도 그 피동이 안됩니다. 벌써 자기에게 깨달아진 이 주장이 서  가지고 처음 들은 것이면 고것을 이거는 처음 들은 것이라 고것을 특별히 기억을  하고 동글뱅이를 칩니다.

왜 자기는 처음 들은 것 들어놓고 그게 만일 나쁘다 합시다, 나쁜 걸 들었으면  들어서 버렸습니다. 버려지지 않습니다. 버리지 안하고 그 속에 들어 있다가  언젠가 나옵니다. 그게 언젠가 그게 잘못된 것이 성공을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것이 나옵니다.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감각이 이거 한번 들어와서 담긴 것이 그것이 사그러지는 줄 알아도  자기에게 보여지지 안 하지 그것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 말이요.

그러기에 그 동글뱅이를 칩니다. 동글뱅이를 쳐 가지고 자기대로는 자기가  누구한테 물을 만한 사람이 없고 자기 이상의 사람이 없음으로 다 후배가 되면  그 성경에 대해 묻고 기도해 묻고 묻습니다. 그것을 참 바로 알려고 애를 써서  물을 때에 그거 하나로서 그 사람을 단정합니다. 이 사람이 내가 모르는 걸  가르쳤는데 이게 참 옳고 바른 건데 내가 몰랐구나 그 사람으로서의 이  사람에게는 앞으로 배울 것이 있겠다 하는 것을 판정하고 '아, 이것은 잘못됐구나'  그 하나 잘못됨으로서 그만 그 스승은 이 스승이 아니라 나를 미혹한  인간이로구나 딱 줄을 쳐버립니다. 이렇게 조심했기에 나갑니다.

또 자기에게 이제까지 배운 것보다 정 반대의 것이 나왔습니다. 정 반대의 것이  나왔으면 이거는 더 합니다. 반대의 것이 나왔으니까 이렇게 갑이라고 하는 것  배웠는데 이 갑이 아니라 을이다 이러니까, 을이라 하니까 그만 거기 따라서 아  이거 을이라 을을 인정하고 또 거기서는 또 병을 만나 병을 인정하고 어디든지  따라가서 말하며 인정해 나가는 그것이 신앙의 창기입니다. 그 신앙의 지식적  창기입니다.

이러니까 그런 자는 그것은 마귀라는 놈이 제 보배로 여깁니다. 왜 이거는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러기에 사람이 개정이 좋습니다. 고치는  개정 고칠 개(改)자 바를 정(正)자, 고쳐서 개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은 보수하는 기초 위에 있어야 되지 보수는 그것을 지켜 보호한다 말이요. 묵은  것을 보수해. 보수성이 있으면서 보수성을 가지고 개정이 되어 나가야 되지 뿌리  없이 자꾸 개정해 나가는 그 인간은 그거는 아무짝도 못 쓸 인간입니다. 그까짓  거야 천명이 많이 있어봤자 그 뭐 상대할 것도 없어. 그 갋을 것도 상대할 것도  없고 그것은 있어봤자 없는 것 한가지이기 때문에.

그런고로 앞으로 고쳐 나가는 것, 새 것을 취하는 것 새 것을 취하는 것도  좋지마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보수성이 있어야 됩니다. 그 위에 있어야  됩니다. 보수성만 가지고 개량성이 없는 사람은 미개인 야만인이 되어지기 쉽고  또 보수성 없이 개정성 개량성 이것만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은 속화인이라 몹쓸  사람입니다. 속화인이라 쓰지 못할 사람이 돼버리고 맙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속화성이 심합니다.

내가 언젠가 언제 어떤 사람을 보고 아 참 야 그거 잘 만들었다 돈을 벌려면  여자들을 꾀우는 물건을 만들어야 되지 남자들에게 대한 물건을 만들면  헛일입니다. 남자들은 보수성이 있기 때문에 뭐 새 것이 나와도 그렇게 잘 훅  걷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색깔만 하나 달라도 화 것고 실나끈만 몇 낱개 달리  달아도 와 것고, 이러기 때문에 여반을 여자로 상대해서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다 돈을 벌고 남자를 상대해서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다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 사업이 보수성을 가지고 개량성을 가진 사업이라면 이것이  제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이제까지 들은 것의 정 반대의 것이 나왔습니다. 정 반대의 것이  나오니까 이래 가르치니 이거다 또 그거 받았습니다. 또 딴 데 또 말하니 그거 다  받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뿌리가 없기 때문에 꺾어놓은 화초와 같은  고로 꽃도 마르고 그것이 무슨 열매를 맺겠소 열매는 감감합니다. 열매를 의례히  못 맺어.

그러기에 자기 배운 것과 새로 배우는 것이 다를 때에는 이제는 배운 것 그것만  인정하고 있었는데 그와 정반대의 것이 되어지니까 이제 배워질 이놈을 버리고  과거 것을 취해도 안됩니다. 과거 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해도 안됩니다. 이놈이  죽느냐 사는 것이 지금 여기서 결정되기 때문에 요 두 가지를 두고는 심히  심사해야 됩니다. 왜 처음으로 만든 것보다 더 신중히 심사해야 됩니다. 왜  과거에 배운 것과 정 반대 것이 나왔으니까 과거에 배운 것 이것을 버리면  과거에 배운 그 전부가 버려집니다. 과거에 배운 그 전부가 버려져요.

그러기에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생각하라" 그 말한 것은 그에게 배운 것  하나가 틀렸다 저버리게 되면 그 사람을 저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배운  것은 다 저버리게 된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이렇게 가르친다 그 다음에 정 반대의 것이 오면 또 듣고 그 듣고 하는  그것은 그 사람에게 봐서 이 사람은 보니까 그런 사람이로구나 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그 사람을 만나 가지고 유익을 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살려야 되겠다 하는 사람으로 접촉했으면 살았고 이 사람은  네게 속한 자이니 이것을 살려서 이용을 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해야 되지 거기  뭐 얻을 것이나 그런 것은 하나도 없는 인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하나를 부정하면 과거에 배운 모든 것이 부정이 되어지기  때문에 이것은 요 하나로 보는 것이지마는 끄트머리는 하나 나왔지마는 거기  모든 과거에 배운 것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요거 부정하면 모든 것이  부정이 된다.

이러기 때문에 그 과거에 배운 것 하나 새로 배워 가지고 정 반대 되는 것이  나왔었는데 그것 취하고 그거 바랐더면 그거 하나 버린 거 모든 걸 다 버린 거  되기 때문에 중대한 문제라 그 말이요.

이러니까 이것이 다를 때에는 놓고 뗍니다. 다를 때에는 이것을 심각하게 문제를  두고 자기가 성경을 상고해 가지고도 연구하고 자기가 들을 만한 사람에게도  가서 연구하고 자기가 이제까지 배운 모든 지식을 가지고 파고 연구를 하면  반드시 옳게 가르친 것이라고 하면 자기가 몰랐지 가르친 그 속에 있다는 것이  증거가 될 때에 자기 이미 배워놓은 것에 대해서 확신이 되고 더 강해지고 만일  그것이 새로 배운 것이 이것이 정 반대인 이것이 옳고 과거에 배운 그것이  잘못됐다 했을 때에는 심사해서 그리 됐다고 했을 때에는 이것만이 아니라 정  반대로 가르치는 이것이 좋다 이래 볼 때에는 자기가 이제까지 배운 그 모든  것을 다 이별에 붙이게 됩니다. 모든 것을 의문에 붙이고 의문에 붙이고 연구를  해야 됩니다.

이렇게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신중하게 나가는 것이지 성경보고 아무나따나  생각나는 대로 퍽 퍽 말하고 이런 줄 압니다. 한번 말을 했으면 그 뒤에 그것이  변동이 없어야 되는 것이 제일 권위인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완전자로 두시지 안  했기 때문에 자꾸 그 자기의 아는 것이 바로 알지 못했어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생겨졌고 문제가 생겨짐으로 연구 과제가 생겨졌고 연구 과제가  생겨짐으로 전문적으로 바로 자꾸 나아가지는 이렇게 자기가 몰랐어도 진보적인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역사에 속한 것도 있고 자기가 모른 것을 말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파괴적으로 나가는 것, 건설면에 속한 것인지 파괴면에 속한  것인지 이것도 또 구별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성도의 생활은 전체가 구별 없으면  다 죽고 망합니다. 구별을 자꾸 가져야 되지.

오늘 아침에는 지극히 작은 거 하나가 지극히 큰 것을 좌우한다. 옳은 것도  그러하고 삐뚤어진 것도 그러합니다. 그 사람이 모든 면에 다 좋은데 몹쓸 그  교리나 신조가 하나 있습니다. 또 잘못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또 잘못된  것이 습성이 하나 있습니다. 잘못된 욕심이 하나 있습니다. 잘못된 관념이  있습니다. 자기가 인생관이라든지 가정관이라든지 가족관이라든지 부부관이라든지  형제관이라든지 그 하나 관점이 잘못되어 있으면 그 하나 가지고 자기의 일생  생애와 모든 전체가 다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조리 예수 믿기  전에 있던 그 모든 것은 전부 다 고쳐서 다 바꾸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오 계명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효를 가르친 것, 그 이 방에서  삼강오륜에 있는 그 효를 가르친 것과 같은 효가 아닙니다. 그 효는 버려야  됩니다. 이 계명보고 다시 효자를 효를 새로 해야 되지 그거나 그거나 이 면은  같다 그거야 불교에도 유교에도 이종교에도 모든 종교라 하는 것은 다 효에  대해서 다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거 같은 것 아니라 그 말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떻게 작은 쓴 뿌리가 어떻게 많은 것을 더럽힙니다. 그러기에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아내로 인하여 남편이 죽고 남편으로 인하여 아내가 죽고 부모로  인하여 자식이 죽고 자식으로 인하여 부모가 죽고 형제로 인해서 형제가 죽고  이러기 때문에 "혈육정실을 떠나라" 그것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죽는 것을  여러분들이 많이 볼 거라 이거요. 잘못된 그 관념 그 하나를 자기가 발견해서  자꾸 구별해 나가야 됩니다. 구별해 나가지 안 하면 안 돼.

그러기에 사람을 살릴라 하는데는 얼마나 조심을 하고 얼마나 힘을 써야 되지  아무나따나 생각나는 대로 마음 나는 대로 입에 나오는데 귀에 들리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런 사람이 마구잡이로 삼키는 사람인데 뭐 살기를 바라겠소. 죽는  거 외에는 딴 거 아무 것도 없다 이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한 십 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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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느부갓네살의 회개/ 다니엘 4장 1절-3절/ 850621금야 선지자 2015.10.27
98 눈을 감고 말씀을 생각하는 명상에서/ 베드로후서 2장 1절-3절/ 1982. 3. 28. 주일오후 선지자 2015.10.27
97 눈물의 회개/ 출애굽기 20장 3절-17절/ 830213주전 선지자 2015.10.27
96 눈물의 회개/ 아가서 4장 7절-10절/ 820927월새 선지자 2015.10.27
95 눈물의 기도,경외,순종/ 히브리서 5장 7절-10절/ 830714목새 선지자 2015.10.27
94 누룩비유. 겨자씨비유. 보화비유/ 히브리서 10장 37절-39절/ 1987. 5. 6. 오전집회(수) 선지자 2015.10.27
» 누룩비유/ 마태복음 13장 33절/ 820315월새 선지자 2015.10.27
92 높여 주실 만한 사람이 되라/ 베드로전서 5장 6절-7절/ 810129목새 선지자 2015.10.27
91 녹아짐/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800222금야 선지자 2015.10.27
90 녹아짐/ 마태복음 5장 13절/ 800214목새 선지자 2015.10.27
89 노원, 소원 설립취지/ 시편 1장 1절-6절/ 880905임시총공회 선지자 2015.10.27
88 노아홍수의 교훈/ 마태복음 24장 37절-41절/ 791005금야 선지자 2015.10.27
87 아의 아들들에 대하여/ 창세기 9장 21절-27절/ 810611목새 선지자 2015.10.27
86 노아의 아들들에 대하여/ 창세기 9장 21절-27절/ 810612금새 선지자 2015.10.27
85 노아의 아들들/ 창세기 9장 21절-27절/ 810617수야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