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말씀을 생각하는 명상에서

 

1982.  3.  28.  주일오후

 

본문: 베드로후서 2장 1절 - 3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우리가 버릴 것, 예수님 믿는 우리가 버려야 할 것. 악독, 궤휼, 외식, 시기, 비방  이 다섯 가지를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독을 버리라. 자기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으로 언행심사를 해서 자기도 죽고  망하고 접촉하는 다른 사람들도 죽고 망치는 이런 일을 버리라 했습니다.

가정에서나 어떤 단체에서나 서로 교제하는 데에 하나님 빼 놓고 저거끼리 저거  중심으로 위주로 이렇게 계획도하고 행동도 하는 것이 아주 달고 맛이 있기를  꿀같이 달지마는 그것이 자기 망치는 일이요, 또 저 혼자 그 행동하면 저만  망하지마는 옆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본보이고 또 그런  행동하도록 권유를 하고 하는 그런 것이 다 악독한 심판 받을 행동들입니다.

 내가 며칠 전에도 어떤 장로에게, 너 장로끼리 친하지 마라. 사귀지 마라. 사귀면  반드시 네가 망한다 둘 다 죽는다. 네가 죽을 때면 똑똑히 깨달을 것이다 내가  말을 했는데, 사람이 어리석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떠난 행동은 전체가 어리석은  것이요, 영감과 진리대로 하는 것만 지혜롭지 나머지기는 천하가 다 인정하는  지혜로운 일이라도 다 그것이 망령된 허탄한 이야기입니다.

 그런고로 악독을 버리라. 우리는 가정 중심으로 살라고 두신 것도 아닙니다.

자기 개인 중심으로 살라고 두는 것도 아닙니다. 민족이나 국가 중심으로 살라고  두신 것도 아닙니다. 인류 중심으로 살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  위주로 가정생활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고, 국민생활도 하고, 단체생활도 하고  이럴 때에 하나님이 거기에 복을 내려 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것이 잘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 중심을 버리고 개인 중심이나 돈 중심이나 아이들이  소꼽장난 하는 중심이나 세계 인류를 위한 중심이나 인간 보기에는 크고 작은 것  같지마는 전체는 우상 놀음입니다. 전체는 악이요 멸망의 운동들입니다. 아무리  제가 복음운동을 하고 설교를 잘하고 목회를 잘한다 할지라도 자기 중심으로  했으면 자기 그렇게 하는 일을 인해서 다른 사람은 구원 얻을지라도 저는  멸망합니다. 껍데기는 잘했다 할지라도 속이 구속하신 하나님 위주와 중심이  아니라면 겉이 잘됐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악독을 버리고 모든 궤휼을 버리라" 궤휼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꾀우는  것이 궤휼인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주님의 뜻대로 고락간에 살려고 한 이  권면이나 교훈은 옳고 바르고 참된 말을 한 것이지마는 이 외의 말은 뭐  문화운동이나 민족운동이나 인류 박애운동이나 무슨 과학운동이나 무엇을 해도  종말에는 그거 다 사람 꼬우는 것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꾀우는 것만 결과를 맺고  맙니다.

 왜. 인간이 구속주 주님의 공로를 믿고 주의 뜻대로 사는 것 이 외에는 다  멸망할 생활이요 옳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슨 공로가 있다 해도 소용없어.

공연히 사람 보기에 큰 공로가 있으니까 그 사람을 인정하고 그 사람 말을 잘  듣도록 만들었으니까 사람을 꾀우는 터를 장만했고, 사람을 꾀우는 그런 권위와  간판을 만든 것뿐이지 그것이 들어서 사람 구원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궤휼을 버리고 외식을 버리라" 껍데기만 꾸미는 일을 버리라. 하나님 없이  인간끼리 날뛴 것은 암만 꾸며 봤자 껍데기 꾸민 것입니다. 하나님 안 계시면  안됩니다.

 또 사람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과 지능을 가지고 세밀히 철저하게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주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면, 주님의 뜻대로 된 것이 아니면 그거 다  외식입니다. 다 불탈 것이오. 그런 것을 다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기를 버리라" 시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고 하니 자기가 중심이 돼서  자기라는 주체가 있은 지 후에 자기 대 어떤 것과의 관계에 이 시기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시기는 다른 사람의 것이 저보다 좋든지 하면 좋은 것보고 독을 품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시기라고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 한 분에게 속해서 이런  주의로, 한 분의 주의로 소속해서 사는 이 위치를 떠나면 전체는 자기보다 더  나은 것은 대할 때에 시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기 죄를 회개하는 것은 자기가  완전히 주의 것이 되고, 주님 한 분이 주격이 되고 주체되어 나는 거기 소속해서  그의 것으로 사는 거기서부터 시기라는 것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자기와 같은 수준 비슷비슷한 데에서 이런 것 저런 것으로 시기심이 나올 때에  그때에 자기가 왕이요, 하나님에게 소속한 하나님의 지체로 분자로 소속자로 사는  자가 아니고 자기가 자주 하는 왕된 자라는 것을 거기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비방하는 것을 버리라" 다른 것을 헐고 하는 것을 버리라. 허는 것도 자기  중심에서부터 시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한 분에게 속해서 나아갈  때에 그때에는 마귀의 하는 일도 헐지는 않습니다. 마귀의 하는 일도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이에서 더 지나갈 수는 필연적으로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적 맞는 줄 모르고 이런 면으로 자기 일생을 헛일합니다. 한 시간도  헛일해도 손해인 줄 알고, 또 하루 번 돈만 잊어버려도 도적 맞은 줄 알면서 일생  살이를 자기 아닌 자기라는 놈 그놈에게 도적을 다 맞지마는 그놈을 원수인 줄을  모릅니다.

 실은 도적 맞는 것인데 그놈이 하고 싶은 대로했으면 제 성공인 줄 알고, 그놈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자기에게 유익 되고 자기 소원인 줄 알고 그 일을  열심히 해서 일생동안 악령에게 이용물로 끝내고 마는 이런 크게 도적 맞는 일을  가리켜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한다, 주님이 오시면 이렇게 살던 자들의 것은 다  그것은 자기의 소유권이 다 끝나 버리고 맙니다.

 버리고 2절에, "갓난아이들 같이" 이것은 하나의 예화입니다. "아이들 같이"  갓난아이들은 어머니의 젖만 사모하지, 어머니 젖을 안 주고 뭐 다른 젖을 먹여도  어머니 젖만 사모하지 딴것은 그 아이들에게는 사모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는 것은 사모한 다는 말인데, 울면 젖 물리면 됩니다. 젖을 물려도 안  되거든 몸에 고장난 것을 살펴보면 돼요. 그 외에 딴것 없습니다.

 이것을 인용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순전하고 신령한 이 양식을 사모해라.

어린아이들이 젖만 사모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어린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만 사모하라.

 순전하다 말은 완전하다 말입니다, 완전하다 말이오. 완전한 양식. 완전한 양식.

영원한 양식. 먹어 힘 얻은 힘은 영원하고 자란 것도 영원합니다. 신령한 양식,  신령하다 말은 시간과 공간과 모든 운동의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을 가리켜서  신령하다 그렇게 말합니다. 영계나 물질계나, 천 년 후나 만 년 후나 억만 년  후나 어디서나 조금도 변함이 없고 조금도 요동치 않는, 이 모든 제한들을  벗어나고 제재를 벗어나고 자유의 완전성에 있는 것을 가리켜서 신령하다 그렇게  여기 표현을 했습니다.

 "이 젖을 사모하라" 이 양식을 사모하라. 이 양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계시 곧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이는 신구약  성경이 외부적 지식이요, 이 지식의 내재적 능력은 영감입니다. 우리가 아는 데에  알리는 능력도 영감이 가졌고 인정하게 하는 능력도 깊이 높게 깊게 세밀히  깨닫게 하는 것도 성령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하나도 빠짐이 없이 다 모아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신구약 66권 도리인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한  필요한 지식은 다 말해 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지식, 하나님 역사에 대한 지식, 마지막에 하나님이 계산대는 심판과 무궁에  대한 지식, 또 사람에 대한 지식, 일과 물건에 대한 지식, 모든 존재와 시간에  대한 지식,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는 빠짐없이 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지식으로  구비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66권 도리인 것입니다.

 이 지식 안에는 성신의 감화 감동이 이 지식 안에서 역사를 합니다. 이 감동  안에는 곧 하나님이 내주 해 계십니다.

 이것이 사람이 먹을 양식입니다. 고기 덩어리가 먹을 양식이 아니고 사람이 먹을  양식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먹을 양식이요, 새사람 인격들이 먹을 양식입니다. 이  양식을 먹고 얻은 힘은 영생하는 힘입니다. 그 힘은 다시는 죽지 않고 쇠하지  않습니다. 이 힘은 영영한 힘입니다. 제가 양식을 먹고 힘을 적게 얻었든지 많이  얻었든지 얻은 것은 다 영생하는 힘입니다. 육신의 양식은 장사가 됐다가도  시간이 지나가면 다 쇠해서 없어지지마는 이 힘은 다 영생하는 힘입니다. 또 이  양식 먹고 자란 그 자체도 영존 존재입니다. 영존 합니다. 자란 자체도 늙거나  쇠하는 일이 없습니다. 늙지도 쇠하지도 썩지도 죽지도 아니하는 영원히 청청한  자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신령한 지혜도 능력도 와서 있고 우리가 가지고 있고 자란  바가 있지마는 아무리 눈이 밝아도 눈에다가 새까만 보자기로 탁 덮어 써 놓으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것처럼 이렇게 있지마는 마귀가 세상 보자기를 가지고 눈을  딱 가루어 버렸기 때문에 보이는 것은 세상밖에 안 보입니다.

 그러면 이 양식을 우리가 어떻게 먹으면 먹을 수 있느냐. 물체로 되어 있는 이  고기 덩어리 양식은 순전히 물질입니다. 공기도 물질이요, 광선도 물질이요,  고기나 곡식이나 채소도 물질이오. 이런 것을 먹는 것은, 공기는 코로 먹을  것이고, 이 모든 공기 가운데 있는 여러 가지 요소는 제가 피부로 느껴서도 먹고  입으로도 먹고 이렇게 해서 먹으면 음식을 먹지 못해 가지고 기진하던 사람이  먹으면 힘이 생겨집니다.

 아무리 건강체고 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제가 안 먹으면 쓰러집니다. 안 먹고  힘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먹지 않고 쓰러지지 않을 자가 있습니까. 쓰러지면  눈도 어둡고, 팔도 다리도 힘도 없고, 정신도 없고, 아무런 희로애락의 감각이  없지. 그는 기진맥진해서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신령한 새사람, 구속을 받은 우리의 심령이, 우리  영혼이, 우리의 몸이, 구속받은 자의 몸이 왜 명랑하고 쾌활하고 너무 교만할까  염려지 무엇 때문에 자부심이 없습니까. 무엇 때문에 산 자가 죽은 자들을 보고  두려워하고 꺾어집니까. 만유의 대주재의 하나님의 아들이 종지 종, 종지 종, 종지  종, 종의 종 그것을 보고 왜 두려워하고 두려워합니까. 이는 정상의 비판이나  평가나 이성이 아닌 것입니다. 기진맥진하면 아무 것도 모릅니다. 숨만 붙어 있지  송장 한가지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도 그러하고 우리의 심령도 그러하고 예수 믿는  사람의 영육이 다 그러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이 다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굶은 연고입니다.

 이스라엘이 농사 지어서 먹은 양식보다 광야에서 맛나 먹은 것은 더 신령한  양식이겠습니다. 그 신령한 양식을 먹어도 얻은 힘이 좀 있으면 다 쇠약해지고  없어지지마는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하늘에서 온 이 산 떡, 이 양식을 먹는  자마다 다시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쇠약해지지 않고 다 영생하고 마지막  부활할 때에 다 영생으로 부활한다. 그때 부활합니까. 지금 있는데. 그때에  자기라는 개체라는 그것이 조직체로 이제 모든 것이 종합되어서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시로부터 영생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리 좋은 영양 있는 식품이 자기 눈앞에 있다 할지라도 입에 넣어야,  먹어야, 소화가 돼야 비로소 자기에게 힘이 오지 않습니까, 입에 안 넣어도  효력은 납니다. 배가 되게 고플 때에 좋은 음식이 앞에 가득 차려 있으면 벌써  허기는 면해집니다. 사람이 목이 말라서 못 견뎌 그럴 때에 아주 심히 신, 쓴  그런 음식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도는 것이 목축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먹어서 영양을, 소화돼 가지고 영양을 취해야 실지의 효력을 얻게  되는 것처럼 계시의 지식이, 또 이 지식과 안에서 내재해서 역사 하는 영감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목적, 우리의 구원,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이 모든 존재를 창조하신 그 목적,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모든 예정의 목적  이렇게 무한하고 이 큰 것을 신구약 성경에 다 말씀해 주셨지마는 책을 탁  덮어놓고 자기와 상관없으면, 아무리 영양 있는 식품을 자기 옆에 창고에 하나  가득 채워 놨다 할지라도 제가 그 식물과 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제 허기 난 것이,  기진한 것이 무슨 그 식물과의 관계가 있겠습니까, 이와 꼭 같습니다.

 이것을 자기가 성경을 읽어서, 성경이 뭐라고 가르치는가 보자. 하나님이 뭐라고  가르치는가 보자. 모든 존재 가운데 제일 큰 자가 누구고, 강한 자가 누구고, 내가  어떤 분을 제일 두려워해야 되겠느냐. 벌로 알고 달려들었다가는 박살이 될  터이니까 누가 강하고 덜 강하고 제일 약하고 그런가 강약을 보자. 대소를 보자.

그의 권위와 가치를 보자.

 하도 인간들이 마귀가 꾀우기 위해서 무책임하게 지걸 거려 놓은 모든 학자들,  가증스러운 학자들, 무책임하고 제 생각나는 대로 마구 글을 써 가지고 세상을  어지럽게 복잡하게 하는 수 없는 종교, 수 없는 철학, 수 없는 사상, 수 없는  주의, 수 없는 도 이런 것들이 세상에 가득 차 있어서 사람들이 여기 감염되어  가지고 다 죽습니다. 이래서 여기 감염되는 이것을 가리켜서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 문화가 어떤 자에게는 음행의 포도주가 됩니다. 그것이 나를 구속하신  주님이 지으신 것이며, 섭리해서 모두 다 건설해 놓은 것이며, 그것은 영원  자존자이신 하나님을 그로 인하여서 더 깨닫고 그분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섬기고  그분의 것이 아닌 것은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했다는 이 사실을 바로 깨달으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 되겠고,  이것이 제일인 줄로, 이거 있으면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고,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말씀이라고, 여기에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비판하고  평가하고 동등 될 것으로 여기고 오히려 낫게 여기고, 그자에게는 다 음행의  포도주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순전하고 신령한 양식, 문서 계시와 내재 영감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고 강하게 하는 이 내재적 영감, 하나님을 접한 이 생명 이것을 성경 안에  다 기록해 놨으니까, 성경을 읽든지 보든지 해서 이 안에 뭐 있나 이렇게 보아  가지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자기가 하나 알고 둘 알면 이것이 자기 앞에  신령한 양식을 차려 놓은 것입니다. 신령한 양식을 밥상을 자기 앞에 차려 놓는  것이오.

 어떤 사람은 식탁에 가 보니까 마른 쌀 한 움큼만 있고, 어떤 사람은 반찬 한  가지 있고, 두 가지 있고, 세 가지 있고, 오만 것이 구비한 것처럼 그 사람은  여기서 가르치는 이 도리를, 이 참된 이치를 하나만 알고, 둘만 알고, 어떤 사람은  백 가지를 아니까 백 가지를 차려 놓은, 아주 만반인수로 상을 걸판지게 차려  왔소. 암만 차려 놔 봤자, 백 가지 좋은 식품을 차려 놓은 그것보고 안 먹는  것보다는 아주 형편없는 빈약한 식품 하나를 놨다 할지라도 그것 먹으면 허기 날  때 도움됩니다. 먹으면 도움됩니다. 아무리 많이 차려 놔도 안 먹으면 자기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많이 차려 놨고, 어떤 사람은 적게 차려 놓고,  어떤 사람은 차려만 놓고 먹지는 않고, 어떤 사람은 적게 차려 놔도 하나씩 둘씩  먹습니다.

 먹는 것이 뭐입니까. 먹는 것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정하면 입에다 꾹꾹  씹어서 벌써 넘깁니다. 인정하면 벌써 영양이 오게 됩니다. 씹기만 하고 속에 안  넘어 삼켜도 허기가 면해집니다.

 "입에는 다나 배에는 쓰리라" 이것을 인정을 하고 실행을 하려고 하니까 쓰다  그말이오. 실행하려 하니까 힘이 듭니다. 실행하는 그것이 뭐이냐. 소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화요. 실행하면, 이 양식을 먹고 실행하니, 소화를 시키니  영양이 자기 몸에 들어오니까 피도 되고 기름도 되고 나중에는 힘도 되고 이리  됩니다. 행해 보니, 깨닫고 인정만 해도 힘이 나오고 행하리까 더 힘이 나오고.

힘이. 새사람의 힘이 나오지, 사랑의 힘이 나오지, 죄를 이길 힘이 나오지, 의를  보수하고 건설할 힘이 나오지, 어떻게 악한 자라도 관용할 수 있는 힘이 나오지,  천하 사람이 참지 못할 그런 형편을 당해도 끄떡없이 아무 어려움 없이 참고  나갈 수 있지, 천하 사람이 그 지경 되면 발발 떨고 새파랗게 송장처럼 지낼 만한  그런 일이 있어도 담력의 힘이 있으니까 기쁘고 즐겁고 담대하지. 다니엘은 그런  담력의 힘이 강했던 것이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그런 담력의 힘이 세고 벌써  장성했기 때문에 그 담력을 꺾을 세상이 없었지.

 이러니까 작은 일에도 진실하고 큰 일에도 진실하고, 마구 제게 해로워서 절  바로 산 매장하려는 원수에게라도 상대방이 그렇다고 해서 제가 거짓을 행하지  못하지, 수단을 부리지 못하지, 방편을 쓰지 못하지, 죄를 쓰지 못하지, 진실이  너무 강해서 꺾을래야 꺾을 수 없지, 제가 제 진실을 꺾을래야 꺾을 수가 없지.

 예루살렘에서 나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지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지마는 마음에 매인 바 되어 내가 안 가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것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 순종의 힘이 강해 놓으니까 자기가 암만 안 가려 해야  안갈 수가 없지.

 아무리 천인 만인이 이것이 옳다 해도, 그 말 듣고 옳다 하려고 해도 자기가  길러 놓은 거룩, 구별이 벌써 힘을 얻어 장성해 갔기 때문에, 구별력이 장성했기  때문에 천인 만인이 옳다 해도 내가 구별해 보고라야 인정이 되지 그리 아니면  따라가지 못합니다. 천인 만인이 악하다 해도 내가 따라서 악하다 소리를 못하지.

내가 구별해 보고 내 속에 구별성이 됐다 해야 인정하지.

 이래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종자적으로는 우리에게 와서 있지마는 눈만 텄지  아무 힘 없는데 이것을 양식을 먹여서 길러 놓으니 하나님의 속성이 자랐지,  장성해졌지, 이것이 그리스도 형상을 입은 것이지, 이것이 피조물에게 창조주의  그 신성을 입었지, 이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때문에 더욱 힘써 썩어져 가는 정욕의 생활을 죽이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한  것이니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이 여덟 가지를 지켜 행해라  말씀하셨지.

 오후에도 다시 이 말씀 하는 것은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일이  취미가 없고, 왜 기진맥진하고, 왜 흥미가 없고, 왜 재미가 없는가. 왜 주께  헌신하는 생활이 자다가도 뛰어날 만침 속에 불이 없는가. 왜 용감이 없는가.

예수 밖에 천하의 선을 똘똘 뭉쳐도 내가 말한 한 마디의 선만치 중량이  못된다는 이것을 왜 믿는 사람들이 모르는가. 왜 이렇게 새사람이 참사람이  기진맥진해서 이 참사람은 옛사람에게 파묻혀 가지고 찍소리도 못하고 깊이 깊이  파 묻혀 있는, 왜 자기의 영혼이 곤비한 도의 함정 속에 빠져 있는 것을 왜  이것을 파내서 일으키지를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내 영혼아 왜 네가  피곤해 하느냐. 말씀을 들어 봐라. 하나님의 약속을 들어 봐라. 하나님의 계약을  하나 봐라. 예언을 하나 들어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들어라.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인 것을 들어라.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다 내것으로 장차 상속받을  네것인 것을 알아라.

 내 영혼아 왜 네가 기진해 있느냐, 왜 네가 피곤해 있느냐. 중생 된 영이 내  심신아 네가 왜 기진맥진하냐, 내 영혼아 네가 기진맥진하냐, 내 심령아 네가 왜  기진맥진하냐, 너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의 심신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것을 증거해 주는 것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건강하고 잘나고 선천적으로 강하게 타고났다 할지라도 안  먹으면 죽습니다. 안 먹으면 기진해져요. 별 수 없습니다. 안 먹으면 기진하고  맥진하고 죽습니다. 뻐뜨러져. 굶은 장사가 어디 있습니까. 굶은 건강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그 사람이 옛날 성자라는 말을 듣고 성녀라는 말을 듣고 신앙가라는  말을 듣고 신앙의 위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할지라도 저는 계속해서 신령한  양식을 먹지 않으면 저는 기진맥진해서 넘어지지.

 이 양식을 뭘로 먹는데. 마음으로 먹지, 이성으로 먹지, 감각으로 먹지. 어떻게  먹는데. 생각해 보지. 생각해 봐. 생각해. 말씀을 보면서 말씀이 뭐라 하는고  들어보고 생각해 봐. 씹으면, 자꾸 생각을 하면, 씹으면, 이성으로 비판을 하면,  씹으면, 이리 저리 하나님 말씀을 상고해서 대조를 하면 이렇다 하는데. 내가  믿을 때에, 내가 믿을 때에 내 속에 있는 지극히 큰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서 설교를 들을 때에, 설교하는 사람도 듣는 그 자리에 그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가지고 어떻게 되도록 하려고 오만 정성의 수단 방법을 쓰나 그것도 다  허공치는 일입니다. 허공치는 일이오. 그것도 말씀을 증거하는 자의 사욕이오,  사욕.

 하나님의 도를 그대로 자기는 전할 것이요 그 도를 제가 믿고 순종하는, 제가  받아 제 복음으로 가진 그 복음을, 제가 영감 받은 그 영감을, 제가 그 복음 그  영감으로 만들어진 그 자기로서 그에게 전달할 때에 고함 질러도 좋고 조용히  해도 좋고 귓속에 대고 말해도 좋습니다. 귓속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  외칩니다. 세계에 퍼져 나갑니다.

 이렇게 양식, 이성이 이치를 생각해 보고 예수 믿는 마음이 하늘의 소망이  희미하더니마는 하늘의 소망이 든든하구나. 나는 저걸 보고 두려워했더니마는 내  주가 창조주요, 세상의 주인, 세상을 지으신 주재시로구나. 이렇게 자기가  생각해지고 깨달아질 때에 그때에, 자기 혼자 공연히 앉아서 명상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기도하면서 기도로, 내가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그 말씀을 지금  나비면서 기도한 것이, 나비는 것이 내 앞에 상을 차려 놓은 것이요, 나비면서 이  말씀을 새김질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꾹꾹 씹는 거라. 씹으니까 영양이 나옵니다.

 기도하다가 주여, 기도하다가 할렐루야 찬송을 하니까 빌립보 옥이 진동해서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다 푹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 힘이라야 환난도 이기고 마귀도 이기고 악령도 이기고 자기 안밖에 있는  것들을 이기지, 남이 고함 지르는 그 소리에 감동받은 그것 가지고 일하려고,  그렇게 좋은 분위기 같으면 핍박이 어디 있겠소. 공산주의 속에 그렇게 좋은  분위기가 있습니까. 아름다운 경치에, 아주 자연 동산 속에서, 자연의 모든 분위기  속에, 풍경 속에서 나는 감정, 힘, 용감 그것이 옥중에 따라 옵니까. 기진맥진한  고통스러운 현실에 따라 옵니까. 외롭고 매장되는 그 속에 따라 옵니까. 못 따라  옵니다. 안 따라 옵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이 도리를,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허락한 소망을,  하나님이 나를 보증해 주신 보증을, 진리가 나를 보증하는 보증을, 주의 세 가지  대속은 이것은 끝이 없고 한없는데. 한없는 사죄요 한없는 칭의요 한없는  화친입니다. 이 대속이 보증하고, 모든 조그만한 것 이거 하나도 주님의 지으신  것이고, 이 꽃 피는 것도 주님의 섭리요, 이것도 다 예정에 갖다 놓은 예정인데,  이 전체가 내 구원을 위해서 있는 마구 주님의 구속에 지금 태 속인데, 구속의  사랑 속인데, 공산주의나 뭐이나 피조물은 그는 내 구원을 위해서 나 위해서 있는  것이지, 나 위하는 일 외에는 그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일이지마는 다만  그것이 나를 위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자유성 가지고 이렇게 할  수 있지 나 외에는 거기 대해서 아무도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가 깨달아 마음에 속에서 각오도 되고 결심이 되고 해도, 벌써  입에서 씹을 때에 벌써 영양이 된 것처럼 힘이 나. 이대로 인정하고 행하면,  "네가 주의 자비하심을 맛보았거든 이대로 하라" 3절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행해 보아야 맛을 알지. 행해 봐야 체험이 있지.

 이래 가지고 주님의 도리를 내가 알아 보려고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고 알아  보려 하니까 깨달아지고, 깨달아지니까 무엇인가 좀 힘이 나옵니다. 여러분들, 그  힘이 바로 영생하는 힘입니다. 그 힘이 전능의 힘이오. 그 힘을 시뻐보지  마십시오. 그 힘이 우리 힘 아닙니다. 그 힘이 전능의 힘이요, 그 지혜가 전지의  지혜요, 그는 벌써 영생을 가진 힘이오.

 나만 그에게 대해서 자유할 수 있어. 그 힘을 꺾으려면 꺾고 처 박으려면 처박고  하지마는 죽이지는 못합니다. 그 힘은 벌써 영생이 되어 가지고 있는 힘이오.

여기에서 자기가 온갖 속성의 힘이 생겨진 이 힘은, 이 힘이 제 힘이지마는 그  힘이 무슨 힘이냐. 하나님의 힘에 연결이 되어 가지고 그 힘이 자기 속에 와서  자기 힘이 된 힘입니다, 이 힘이.

 우리 집에 꼭지 트니까 저수지의 물이 관을 통해서 우리 집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 집에 나왔지마는 그 물은 저수지 물인 것처럼, 내가 이렇게 양식을 먹어 내  온갖 속성에게 힘이 나고 지식의 힘이 나고 모든 내 행위의 힘이 나니까, 마음에  힘이 나니까 몸에 힘이 납니다. 이 힘이 내 힘은 내 힘이지마는 그 힘이 하나님의  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와진 믿음으로 우리에게 온 그분의  힘입니다. 이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 임하였나니 이  능력이 예수님 붙들고 사활의 성공을 한 것입니다.

 이런데 이 힘을 제 마음의 힘인 줄로 알고 버리도록 악령이 꾀워서, 됐지.

그것이 네 생각 아니냐, 네 마음이 아니냐 이래 가지고 우리를 망칩니다.

 이렇게 해서 힘을 얻으면, 새사람이 힘을 얻으면 옛사람 이놈은 기진해지지  옛사람이 있다가 야, 아무 것이가 주일 범하고 남 꾀우는 계 해 가지고 아들  공부시켜서 대학 졸업했단다, 영광이다 하니까 망할 일 많이 마련했구나, 그  멸망의 봉우리를 어떻게 네가 벗어나겠느냐, 멸망의 함정을 어떻게 벗어  나겠느냐. 영광이라 하는데 축하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저주하는  것이지마는 저주하는 것이 아니고 저주스러우니까 돌아서라 그말이오.

 왜 이제는 견해가 다릅니까. 왜 평가가 다릅니까. 왜 비판이 다릅니까. 견해가  다르고 가치를 정하는 것이 다르니까 소원도 달라지고 욕망도 달라지지. 자기가  힘쓰는 면도 달라지지.

 이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도무지 예수 믿는 일을 생각하지 않으니 우리가 안  죽고 어쩌겠소. 생각해야, 생각하는 이것이 먹는 것인데 생각하는 이것이 양식을  지금 먹으려고 시작하는 것인데. 믿는 사람이 생각해 보지 않고 환경과 주위로  말미암아 기뻐 뛰었거든 너는 네 웃음을 근심으로 바꿔라. 네 웃음을 울음으로  바꿔라. 믿는 사람이 성경을 근거해서 생각하지 않은 생각에서 나온 기쁨을  어떻게 가질 수 있으며, 생각에서 나오지 않은 평강을 어떻게 가질 수 있으며,  생각에서 나오지 않은 힘을 어떻게 가질 수 있으며, 생각에서 나오지 않은 소욕을  어떻게 가질 수가 있습니까.

 테레비를 보니까 기쁘다, 생각하고 생각에서 나왔습니까. 테레비를 보고  기쁘거든 양식을 새사람을 먹여서 강건 시켜 보지. 좀 생각해 보지. 테레비를  보고 기쁨으로 이 기쁨이 어떤 기쁨인지, 정말 기쁨인지 좀 생각해 보지 그  기쁨이 어디서 나왔으며, 그 기쁨 가지고 나니까 하나님과 가까워지는지 하나님과  멀어지는지, 천국이 가까운지 세상이 멀어지는지, 두려운 것이 하늘과 하나님께  있는지 세상과 세상 것에게 있는지 어찌 됐는지 결과를 보면 알지.

 우리는 직관에서, 직접 보는 데에서, 직감에서, 직시, 직감 느끼는 데에서 그대로  우리는 피동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대로 살 수 없는 영의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내 눈에 바로 이렇게 보여져도 그것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을  가지고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분석해 봐야 되겠습니다. 따져 봐야 되겠습니다.

계산을 대 봐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내게 슬픈 느낌이 와도, 기쁜 느낌이 와도,  두려운 느낌이 와도, 어떤 감이 내게 직접 나에게 직감이 되어졌을지라도 나는  그대로 느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 나는 죽어 있는 옛사람도 있지마는 새사람도 있기 때문에, 옛사람이 그렇게  죽은 것이 그와 같이 환경에 따라서 피동 되어 움직이고, 물이 빙빙 돌아가니  저도 돌아가고 물이 넘쳐야 저도, 그만 살수로 내려가야 살수로 내려가지.

 나는 생명이 있는 산 자인데 어떻게 환경에 몰려서 그렇게 직감으로 갈 수  있습니까, 아무리 두려워도 좀 생각해 보고, 양식을 먹고 숨 좀 쉬어 가지고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니까 이까짓 것은 두려울 것이 아니고 참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될 일이로구나. 이것은 참 기쁜  일인데, 아니 생각해 보니까 큰 화가 났고 큰 난리가 났구나, 큰 멸망이 눈앞에  다다랐구나. 이렇게 엎드려 성경 말씀 가지고 새기고 보니까 아주 이렇게  판정되고 소원되던 것이 눈을 뜨고 잠깐 인간하고 버글거리다 보니까 내가 기도  가운데 생각한 것은 그때 내가 미쳤더나, 정신 이상이다. 막바로 그것이  광신이로구나, 막바로 그것이 미치광이인 광신이로구나. 내가 미쳤지. 그 생각이  미쳤어. 내가 지금 미쳤지. 기도 가운 데에서 본 것이 미쳤어 이래 가지고  옛사람으로 새사람을 매장시키고 죽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양쪽 기로 가운데 있으니 이 사망을 먹으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주는 이 쑥물을 먹으면, 악령의 감화를 받으면,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면,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재제조해서 죽이는 쑥물로 만들어 놓은 이 이단을  먹으면 자기가 여기에 취해서 정신도 다르고 사상도 다르고 지식도 다르고  비판도 다르고 평가도 다르고 소원도 다르고 힘도 다른 힘 되고 희로애락이 막  달라지는데, 신령하고 신령한, 순전하고 순전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도의 젖을  먹으면 영 또 딴 사람 되는데.

 이런 가운데 끼어 있는 우리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사업만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사업만 생각하고, 저거 가정만 생각하고, 저만  생각하고, 학문에 미친 자는 학문만 생각하고, 권세에 미친 자는 권세만 생각하고,  행락에 미친 자는 행락만 생각하고, 오락에 미친 자는 오락만 생각하고, 예술에  미친 자는 예술만 생각하고, 일생동안 이것만 먹이고, 생각이 사람이 먹는 것인데  그 생각이 먹는 것은 옛사람이 먹든지 새사람이 먹든지 사람은 생각으로 먹고  이성으로 먹습니다.

 음식이 그 사람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소. 그 사람의 생각이 이리 저리 변화시킬  수가 있지. 그 사람의 생각이 불교의 지식을 따라서 생각하면 불교인이  되어지겠지, 기독자의 지식을 따라서 생각하면 기독자인이 되겠지. 이렇게 위험한  기로 가운데 있으면서 예수 믿는 사람이 그저 예수 믿는다는 이름만 가지고  주일날 되면 오고, 밥 먹을 때 눈 감고 응얼거리고, 잘 때 응얼거리고, 예수 믿는  척하고, 예수 믿는 사람의 말만 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 중생 된 영이  자기의 가르치는 이를 힘입어서 자기 현재에 당면된 자기 형편 사정을 생각해  봐야지. 어떻게 생각 않고 바로 합니까. 생각 않는 여기서 죽습니다. 일단  생각해야 됩니다. 뭘 가지고 생각해 자기가 아는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생각하지.

생각 생각하면 또 하나님의 지식이 새로 또 나오지.

 이렇게 이 하나님의 도를 생각해 가지고 여기에서 깨닫고 자기가 인정함으로  나오는 힘 이 힘 가지고 설교도 해야 되고, 목회도 해야 되고, 전도도 해야 되고,  이 힘 가지고 사업도 경영해야 되고, 이 힘 가지고 인간 관리도 해야 되고, 이  힘을 가지고 모든 활동을 해야 될 터인데, 이 힘은 묻어 놓고, 이 힘은 나오지  못하게 매장을 시켜 놓고 순전히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인간 지식, 세상 지식,  자기 주관, 자기 욕심, 자기 자율 이것만 가지고 자꾸 새기니까 멸망시키는  그놈만 자꾸 살을 먹여서, 양식을 먹여서 자꾸 튼튼하게 만듭니다.

 이러니까 일년 이태 지나가니 작년보다 욕심이 더 강하고 고집이 더 강하고  세상 생각이 더 강하고 세상 소망이 더 강해지고 자기 위주가 더 강해지고 자기  중심이 더 강해지고 세본 인본이 더 강해지고, 이러니까 세상에 속한 인간은  강해서 세상 말만 하면, 설교하다가도 그 말만 하면 눈이 똑바로 뜨여서 동그라이  뜨여지는데 하나님에게 대한 말씀만 하면 그만 졸음이 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고기 덩어리와 마음이 죄 아닙니다. 고기 덩어리와 마음이 죄  아닌데, 아니지마는 마귀에게 붙들렸으니까 마귀의 도구가 됐으니까 그러하지.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의 병기가 됐으면 그렇지를 아니 하지. 성경 보면 잠  오고 하나님만 생각하면 그만 생각하기 싫고 잡탱이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말,  암만 성경 말씀이라도, 성경 말씀을 해석해 놓은 것이라도 성경 읽는 것보다는  그것이 잠이 덜 오고, 그것보다 거짓부리로, 거짓부리들이 성경 해석을 해 놓은  것을 보면 잠이 더 안 오고, 그것보다 라디오 들으면 잠이 더 안 오고,  라디오보다 테레비 보면 잠 더 안 오고, 테레비보다 죄악이 벅썰거리면서 춤추는  것 보니까 마음이 기울여지고 이리 되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옛사람 아닙니까.

그것이 죽여야 할 사람을 자꾸 배를 불려서 강건하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이 뭐라고 하는가,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 것을  자기가 기억하고 있다 힐도 안 읽으면 안되니까 읽으면서 기억하면서 이 성경  말씀대로 생각해 보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생각해 보는 것이 있어야 되고.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눈 감고 생각하는 명상이 있어야 됩니다. 눈 감고 명상이  있어야 됩니다. 스웨덴부르크라는 사람을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말하지마는 나는  그 사람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입신 가운데에 보고 증거하기를  하늘나라 가서 보니까 명상 제일 많이 한 사람이 봉사도 많이 했고 희생도 많이  했고 복음운동도 많이 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많이 했고 옳은 것을 많이  했더라. 제일 좋은 자리 앉아 있더라 명상이라, 눈감고 생각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불교인들은 가만히 이래 가지고 가만히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인들의 얼굴은  보면 압니다. 부처 모양으로 아무 속에 힘이 없는 바보 같은 환하이 둥그런  달같이 이렇소. 기독자의 명상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  지식으로 생각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의 이 지식을 가지고 생각해 생각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까끌까끌하고 밤송이 같애. 밤송이  같애. 칼날 같애. 까끌까끌해. 겉은 물렁 물렁하면 만나 보니까 단쇠라. 쇳물 녹여  놓은 것 모양으로 둘러 마시면 좋은 줄 알아도 탈 물건은 닿으면 타.

 이렇게 하나님 말씀 가지고 많이 생각하니 그가 죄 짓는 시간이 적고, 탈선된  행위를 적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 정확히 깨달았고, 하나님과 교제가 많았고,  이러니까 그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를 할 것이고 그 사람이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 하나라도 순종만 딱딱 바른 일 했으니까, 헛일 안 하니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이 게을해서 못 사는 것 아니다. 헛일해서  못 산다. 하나님이 근본 지으신 것은 아담 하와에게 분주한 것이 없어. 범죄하고  난 다음에는 등골에 땀이 찼지.

 이러니까 우리가 좀 무슨 생각을 가져야 되겠는데, 내가 이 지위에 있는 것이  뭐이냐. 내가 오늘 종일 산 생활은 보자. 성경 가지고 생각해 보자. 과거를  추억하면서 오늘 하루 생활을 성경 가지고 생각해 보자 이러면 가슴이 치일 걸,  썩은 일 했다는 것이 분명할 걸, 허공을 쳤다는 것이 분명할 걸, 자기는 비참하고  가련해서 하루라는 귀한 세월을 팔아먹은 어리석은 자인 것이 분명할 걸.

 복잡한 범죄자가 술을 먹고 만취되어 가지고 잊어버림으로써 평강을 누리려는  자, 술 깨면 안되니까 그것보다는 아주 평안할 자는 독약 먹고 자살하면  이것으로써 평안하고 끝마치겠지.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오. 저는 죽고 보면 살았을 때 해결지을 것을 죽은  것이 후회되지. 만취가 되어 가지고 기회를 놓쳤으면 그때 술 먹지 말고 그때  노력을 했더라면 될 걸. 인간들의 후회 후회가 지옥의 생활인 것입니다.

 뭘 좀 생각해야 될 것인데 도무지 눈에 보이는 대로 바로 반사되어 가지고 눈에  보이는 대로 그만 받아들여 가지고 그대로 움직이여. 귀에 들린 대로 움직여.

전부 직감자들, 직관자들, 맞보기로 보는 자들, 자기에게 느껴지는 대로, 직접  듣는 직청자로, 이것은 옛사람이 사는 법입니다. 옛사람이 먹는 법이요, 옛사람이  사는 법이오. 하나님의 사람의 양식은 그래 먹지 않습니다. 옛사람은 그래 먹소.

옛사람은 보이는 것으로 산다 그말이오. 옛사람은 보이는 것으로 산다 그말이오.

옛사람은 들리는 것으로 산다 그말이오. 느껴지는 대로 산다 그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은 보는 것으로 행치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하느니라. 하나님이  뭐라고 말했느냐 거기에 피동으로 산다 그말이오. 생각해 봐야 되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도무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마귀에게는 신실하고 씩씩하게 종노릇  하면서 하나님과 진리에게는 종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제 속에는 피 흘려 구속하신 주님이 진리로 말씀하시고 성신의 감동으로 말해도  안 들어도 제 귀에 직감적으로 마귀가 속삭 속삭 하이 말 한 마디만 하면 휘뜩  넘어가 버려요. 주여 주여 하던 자가 말 한 마디 들어 가지고 휘뜩 뒤집어져  가지고 마귀가 되고 맙니다. 진리 진리 하던 자가 땅에 있는 사소한 이해로  완전히 마귀가 돼 버리고 맙니다.

 믿음을 연단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점에서 이런  일이 와도 내가 요동했다가는 또 후회하고 다시 요동하지 않고 이래서 수많은  경험과 체험, 수많은 들려오는 것 보여지는 것 느껴지는 것, 수많은 것이  왔지마는 처음에는 거기에 피동 됐고 이렇게 했지마는 이제는 어떤 것이 와도  거기에 피동되지 않는다. 다만 믿음으로 문서계시에 순종하고 그 속에 영감계시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연결된 거기에서만 움직이지 세상이 나를 추호도 피동할 수  없는 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을 불로 연단한 것과 같이 연단하는 것입니다.

 아예 믿는 사람이 자기가 성경 말씀을 가지고 모든 일을 눈 감고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두고 생각해 보고 살아야 되지 성경 말씀은 집어던져 버리고 인간  말, 선배 말, 후배 말, 상관 말, 부하 말, 친구 말, 가족 말, 남편 말, 애인 말,  학자 말, 권위 말, 눈에 보이는 것,  세상이, 바벨론이 이렇게 좋은데 성경에 보니까 하루 밤에 다 불 살라져 버리고  말았어. 노아 홍수 때에 네피림이 그렇게 많지마는 그들이 홍수로 매장될 것을  그들이 모른 것 같이 예수님 재림 때도 그렇다고 말했어.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좀 생각해 봐야 될 것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하지 않는 이것이 지금 큰 병이요,  천국 문이 딱 가로막혀 있는 것입니다.

 악령이 이거 하게 해 놨으니 서부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데의 이 외모에 피동 되지 않겠다, 말씀을 가지고 생각해 보고 여기에  피동 되겠다, 생각해 보는 이것이 일차 피동, 생각해 보고 대략 윤곽을 잡아서  찾아 들어가면 그 안에 양심 속에서 성신의 감화 감동이 나에게 알려 주는  거기에 피동,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크신 분이 내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해서 그분에게 피동 되어 사는 이것이 영생이요 생명이 사는  생활입니다.

 이렇게 살기로 작정을 해야 될 터인데 도무지 이 작정이 없이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은 생각으로 이렇게 세상 썩은 양식만 먹고 이래 사니까 언제 우리가  신앙생활 하겠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북 이것은 신앙이 있는 줄로 보여져도 가서 만져 보면 딴것이라. 너무  허무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회개합시다. 이제는 보는 것으로 행치 않고 믿음으로  하는 자 됩시다.

 믿음으로 한다 말은 제일 초기 계단은 문서계시에 복종하는 자로 산다 그말이요,  그 안에는 영감으로,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그분이 움직이는데 따라서  움직인다 말이오. 내가 말하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그 일이 내 입으로 통해서 말로 나왔다고 주님이 말씀했소. 이것이 승리인데  우리도 주와 같이 그렇게 되라고 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직감으로, 직견으로 이래 하는 것과 속에 알맹이는 영 판이하게 다릅니다.

세상에 지혜로운 자가 가장 어리석은 자라고 성경이 말해놨어. 이렇게 판이한데  세상 그것들 보고 거기에서 그 지혜 가지고 자기 구원을 이루려고, 그 지혜  가지고 복음의 일을 하려고. 어림도 없습니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 되고  맙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04 능력이 나타나는 비결/ 마태복음 8장 5절-13절/ 800708화새 선지자 2015.10.27
103 능력관/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850908주새 선지자 2015.10.27
102 능동믿음-죽은믿음/ 출애굽기 20장 1절-3절/ 851213금새 선지자 2015.10.27
101 늙을수록 귀한 권찰직/ 베드로전서 1장 24절-25절/ 86120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7
100 느부갓네살의 회개/ 다니엘 4장 28절-37절/ 850621금새 선지자 2015.10.27
99 느부갓네살의 회개/ 다니엘 4장 1절-3절/ 850621금야 선지자 2015.10.27
» 눈을 감고 말씀을 생각하는 명상에서/ 베드로후서 2장 1절-3절/ 1982. 3. 28. 주일오후 선지자 2015.10.27
97 눈물의 회개/ 출애굽기 20장 3절-17절/ 830213주전 선지자 2015.10.27
96 눈물의 회개/ 아가서 4장 7절-10절/ 820927월새 선지자 2015.10.27
95 눈물의 기도,경외,순종/ 히브리서 5장 7절-10절/ 830714목새 선지자 2015.10.27
94 누룩비유. 겨자씨비유. 보화비유/ 히브리서 10장 37절-39절/ 1987. 5. 6. 오전집회(수) 선지자 2015.10.27
93 누룩비유/ 마태복음 13장 33절/ 820315월새 선지자 2015.10.27
92 높여 주실 만한 사람이 되라/ 베드로전서 5장 6절-7절/ 810129목새 선지자 2015.10.27
91 녹아짐/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800222금야 선지자 2015.10.27
90 녹아짐/ 마태복음 5장 13절/ 800214목새 선지자 2015.10.27
89 노원, 소원 설립취지/ 시편 1장 1절-6절/ 880905임시총공회 선지자 2015.10.27
88 노아홍수의 교훈/ 마태복음 24장 37절-41절/ 791005금야 선지자 2015.10.27
87 아의 아들들에 대하여/ 창세기 9장 21절-27절/ 810611목새 선지자 2015.10.27
86 노아의 아들들에 대하여/ 창세기 9장 21절-27절/ 810612금새 선지자 2015.10.27
85 노아의 아들들/ 창세기 9장 21절-27절/ 810617수야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