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부갓네살의 회개


선지자선교회 1985년 6월 21일 새벽(금) 

 

본문 : 다니엘 4장 28절∼37절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열 두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로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그 동시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라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조회하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입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 나라의 왕인데, 그때 세계에서 바벨론 나라가 제일  강대했습니다. 아주 강하고 크고 한 나라입니다. 거의 뭐 온 천하를 통일하다시피  그렇게 한 나라입니다. 직접 자기 영토를 삼아 가지고 하지 아니한 그런 나라들이  있었지만 모든 행정적으로 다 그 밑에 있었고 그 세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 왕은 온 천하에서 제일 강한 나라며 또 유력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이 자기가 한번 꿈을 꾸니까 이상한 그런 꿈을 꾸고 난 다음에 고민하다가  다니엘에게 꿈 해석을 받았습니다. 받았는데, 그 해석을 받아도 뭐 그저 그런갑다  이렇게 여겼지 그렇게 별로 거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안했었는데 그 일이  자기에게 닥칠 때에 된 일을 오늘 아침에 봉독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가 바벨론 궁전 지붕에서, 뭐 그때는 지금 모양으로 옥상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지 옥상이 있는 그 옥상에서 온 바벨론을 자기  눈으로 보는 대로 이래 쓰윽 돌아보고 그 바벨론 나라가 세계에 제일 강하고 큰  강대국이 된 것과 또 그 바벨론 성이 온 세계에 제일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권세적으로 제일 으뜸이 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고 자기가 위에서 그 광경을  보면서 자기 속으로 느낀 것입니다.

 30절에, '나 왕이' 나 왕이란 말은 바벨론 왕 자기라 말입니다.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자기가 말하기를,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자기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을 해 놓고. 내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인해서 내가 아주 위엄도 크고 영광도  크게 되었다 이라면서 스스로 만족을 했습니다. 이 세계에 강대한 바벨론 나라는  이것은 내 능력으로 이렇게 세웠고 내 권세로 이렇게 세웠다. 또 세계 중에도  찬란하고 모든 것이 구비하고 온 세계에 탁월한 이 바벨론 성을 내가 만들었다.

또 온 세계가 다 나에게 조공을 바치고 대왕으로 모시고 두려워하며 그 모든 다  생사가 내게 매여 있는 그런 권위와 위엄을 가졌고 또 모든 사람들이 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이렇게 대단히 존귀하고 위엄스럽게 되었다  하는 그 자기 형편과 모든 그 건설해 놓은 것과 자기 위치와 권위와 영광을  생각하면서 아주 만족을 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이 찬란한 도성을 만들어 놓고 내가 누리고 있으며 또 온 세계가 나에게 다  조공을 바치도록 이렇게 하고, 두려워 떨게 하고 그들의 생사가 다 내게 매인  것같이 여기고 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이렇게 참 위대한 일을 내가 해 놨다.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요 생각을 가졌다 말입니다  '하였더니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일곱 때는 그때는 칠 년이었습니다. 뒤에 보니까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 가지고 이런 소리를  느부갓네살 왕에게 내렸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그 바벨론 궁전 지붕에 올라 가 가지고 바벨론을 이렇게  보면서 마음에 참 기뻤고, 또 세계의 정복하고 복종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위엄이나 권위나 그 영광을 보면서 아주 만족히 하고 기뻐했습니다. 기뻐하면서  '아 참 내 능력과 내 권세가지고 이렇게 만들어 놨다.' 좀 마음에 우쭐해지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통쾌감을 가졌습니다. 가졌는데, 고 마음만 가지고 말하기 전에.

마음만 가지고 지금 가만히 있었으면 마음만 가지고 자기가 거기 대해서 혼자  구시렁거리면서 말도 했을 것이고, 또 좀 있으면 거기 대해서 한번 노래도 한번  불렀을 것이고 또 거기 대해서 한 번 눈을 한번 부릅 떠 보기도 하고 이랬을  터인데 아예 말하기도 전에 마음을 그렇게 가졌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  가지고 네가 네 위에서 다 쫓겨 사람에게 쫓겨나서 그렇게 네가 위엄스럽다  권위있다 이러지만 사람들에게 쫓겨나 가지고 네가 짐승처럼 밤 이슬을 맞을  것이고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고 네 머리털은 다 짐승의 그 독수리털같이 그만  전부 나뉘서 그래 될 것이고. 네 손톱은 마치 새 짐승 매 발톱같이 그렇게 네가  되어지리라 이런 소리가 들려졌습니다.

 들려졌는데. 그 꿈에 이 사실을 꿈을 꾸고 난 다음에 다니엘이 꿈 해석을 해  줬지만 그저 그렇다는 것만 생각했지 뭐 그렇츰 그러리라고는 생각지를 못했지요  그랬는데, 그 뒤에 자기도 모르게 그만 그런 생각이 한번 우쭐한 생각이 한번  나왔었습니다. 꿈꾼지 한 열두 달이나 됐는데 되고 난 다음에 자기는 그럭 저럭  세월이 지나가니까 잊어 버렸습니다. 꿈꾼 지가 열두 달이나 됐으니까 열두 달  동안에 자기가 준비할려면 준비하고 근신할려면 근신하고 회개할려면 회개하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회개할 그런 기한으로 주셨지만 우리 사람들은 회개할  기한으로 받지 못하고 그만 잊어버리는 그런 기한으로 받는다 그말이요. 그러면  아마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 꾼 것이 다 잊어 버려졌을 거라. 그것 가지고  회개해서 준비해야 될 터인데 회개하고 준비는 하지 안하고 그만 완전히  잊어버리는 게 이제 성공됐어. 잊어버리는 게 성공됐다 말이오. 그라고 나니까 척  제가 궁전에 올라가 가지고 한 번 자기의 그 장기를 생각하면서 아주 우쭐해져  가지고 내 권세와 내 위력을 가지고 이렇게 했다. 온 천하가 내게 다 복종하고 또  조공을 드리고 영광을 나에게 돌리는 이렇게 됐다, 이렇게 자기 속에 그 생각을  턱 가졌는데, 그 생각을 턱 가졌는데 생각만 가지고 입으로 발표하기도 전에,  혼자 구시렁거리며 말하기도 전에 그만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와 가지고 '네가  지금 그 세계의 제일 대왕의 위에서 네 가 떨어져 가지고 짐승처럼 들에서 일곱  때를 칠 년 동안을 네가 지낼 터인데 네가 지내되 사람들이 천하 사람이 널  두려워하는데 사람에게 네가 쫓겨나 가지고 그와 같이 비참하게 되어지리라'  그렇게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생각만 가졌을 때에 그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나자 마자 즉시, 33절에 보면 '그  동시에' 자기가 말도 하지도 못하고 생각만 가졌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소리  들었고 언제 거기 대해 뭐 이런 저런 말 한 마디도 할 여가도 없이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그만 사람에게 쫓겨나 가지고 그만 배척을 당했습니다.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고 손톱이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이제 지나가고 난 다음에 지금 이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기한이 차매' 이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곱 때가 찼습니다. 일곱  때가 칠 년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이거 소처럼  먹는다 하니까 칠 년 동안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소는 위로 못 보는  것입니다. 소는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요. 소는 언제든지 밑만 보고 많이 봐야 앞  보고 밑 보지 위에는 보지 못하는 것이 소입니다. 이랬는데 칠 년 동안 위에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뭐 생각지 못하고 위에 대해서 위의 것을 생각지 못했는데  이제 칠 년 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니까 위를 쳐다 봤다 말이오.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이제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는 말은 하늘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렇게 마음을 돌이 켜 회개를 합니다.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러니까 그 총명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뭐 총명이 돌아오고 나면 세계 인류를 마구 잡아 흔들 수 있는 그런  총명이니까 문제가 없지요. 그랬는데 하나님이 총명을 거두고 나니까 그만 금방  총명 거두지 다른 사람들을 다 진동시켜 가지고 느부갓네살 왕을 당장 대왕이고  뭐이고 그만 당장 쫓아내 버리니까 쫓아내니까 쫓겨 나갔다 말이오.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하늘을 우러러 보았고, 그 다음에는 우러러 보니까  총명이 돌아왔고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그 동시에' 그렇게 자기가 지금 생각을 하고 이거 하나님의  주권을 지금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그것을 사랑하시고 아 끼시기는 아끼시지만 피조물 그까짓 것 안전에  하나도 두지 않는다 그 말이오. 모든 피조물 그거 다 뭉쳐봤자 그까짓 걸 다  어디,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것이지 거기 대해서 뭐 두려워서 제재받거나 거기  꺾여지거나 눌리거나 호소하거나 그런 게 없다 그 말이오.

 노아 홍수 때도 천하 모든 인간이 홍수로써 물 속에 빠져 죽으니까 그 뭐 아마  그때 굉장했을 것입니다. 물이 차차 차차 올라오니까 밑에서 높은 데로 자꾸  올라갔다 그 말이오. 아, 높은 데로 올라가니까 마구 서로 올라 갈라고 이래  가지고 산만당까지 서로 살겠다고 옆에 사람, 그 사람 다 힘센 사람은 집어던지고  막 앞으로, 지금 죽겠다고 거기 올라가, 가만이 그때, 노아 홍수 때에. 그 노래를  누가 짓기를 그래 지었어요. '아라랏산 꼭대기서 배를 모았다. 노아 할아버지 배를  모았다. 아라랏산 꼭대기에서 배를 모았다.' 이라는데 그 노래를 잘못 지었어. 아,  산꼭대기에서 배를 모았으면 노아가 그 구원 못 얻습니다. 그럴 것 아니겠소?  그때 물이 자꾸 들어오니까 자꾸 사람들이 높은 데로 찾아서 뭐 산꼭대기 그때는  사람들이 박실박실할 것인데 그때 배가 있어 보이소, 막 거머쥐고 달라들 터인데  어찌 있겠소? 배는 평지에 모았다 말이오. 평지에 모아 놓니까 비가 오니까 모든  사람들은 다 그만 물이 들어오는데 아, 이거 배가 더부렁 더부렁 뜨니까 그 배  위에 가 가지고 구원 얻을라고 하지 안하고 아무라도 다 산으로 올라갈 것  아닙니까? 이래 가니까 나중에 다 올라가니까 사람들은 다 노아의 배를 피해서  저 산으로 다 올라가 버렸고 노아 배는 혼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평안했지 그  옆에 있었으면 달려들어서 안 될 거라. 올라가서 물이 자꾸 채여 가니까 그때  어렵겠습니까? 마구 죽겠다고, 뭐 불교인들이 저거가 뭐라고 쌓지만 공산주의가  뭐라지만 마지막에 죽을 때 되면 '하나님 내 살려 주십시요' 안 하는 인간이  없습니다. 고 망령을 부려 가지고 그래 하고 있는 것이지 무신론 하는 뭐  김일성이도 만일 그럴 일이 되면 하나님 날 살려 달라 하지 그냥 있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게 얼마나 부르짖었겠습니까? 부르짖었지만  당신의 그 뜻을 변개하지 않습니다. 않고, 그 수많은 사람이 홍수에 매장되지만  거기에 대해서 뭐 꼼짝도 안 합니다. 요동도 안 해.

 거기에 하나님이 후회하셨다 하는 그것을 여기 성경 공부하면서 묻더란 말을  교학실장이 말하는데 그것이 난해절 중에 난해절인데 그것을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모릅니다. 후회했다 그 말은 인간의 말로 표시가 그런 것이나 그것은  뭐냐? 하나님의 근본 중심 뜻은 아니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중심 뜻은 아니고,  하나님의 중심 뜻을 이루기 위해서 제일 목적의 뜻이 있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뜻이 있고, 또 그 뜻을 이루기 위한 뜻이 있고, 하나님의 그 주체가 되는 뜻  거기에 속하고, 또 거기에 속하고 속하고 소속해서 간간접으로 된 일이지  하나님의 원 뜻은 사람을 구원하려는 그게 뜻이지 사람을 멸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주체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셨다 하는  그 말입니나.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요  느부갓네살 왕이 이제는 참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그말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하늘을, 하나님에게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라야 되지 아무 것도 안 된다. 하나님을 소망했다 말이오. 우러러  보니까 하나님을 소망하니까 그에게 지혜와 총명과 능력이 왔습니다. 오고 나니까  그가 있다가서 하나님의 주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이분이 주권하셔 가지고  모든 거 하는데 피조물들이 거기에 대해서 누가 간섭할 자가 있으며 불만 불평을  품을 자가 있으며 누가 스스로 뭐 하는 자가 있느냐? 그분 혼자 모든 것을  주권해 가지고 하신다 하는 이것을 그이가 감상을 하고 깨닫고 감상하니까.

35절에 '그 동시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그러니까 그 총명이 임하더니만  그 다음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그만 총명이 돼 버렸습니다.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조회하니' 다 쭉 이제 느부갓네살 왕에게 다 조공을 바치고,  조회를 하면서 굴복을 하고 다 그 앞에 모셔 섭니다. '조회하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입고' 이제는 바로 됩니다. 바로 돼. 인제. '다시 세움을 입고' '아.

내가 이렇게 내 권세와 위엄 가지고 이렇게 했다. 이랬는데 이제는 한 대 맞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입고 바벨론 나라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세워 주셔서 다시 서게 됐다. '세움을 입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하나님이 또 권세를 줘 가지고 권세가 더하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분의 하시는 일은 진실하다. 그분의 하시는 일은  피조물들에게 제재받지도 안하고. 피조물들이 한다고 매수당하지도 안하고, 거기  충격받지도 안하고 언제든지 옳고 바르고 참되시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그의 행하심이 다 옳고 바르다.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느부갓네살 왕이 깨달았어, 고라고 난  다음에 그 왕이 바벨론 왕 노릇을 바로 했습니다.

 요게서, 이 말씀을 제가 어제 오후에 산에 가 가지고 받았는데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증거할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 죄를 많이 짓습니다. 나는 이 주님을 우리가, 우리 언행심사가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야만 자꾸 되는 것인데. 주님 마음을 감동시켜서 감동시키는 것은  자기가 자기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자기를 자기되게 만드셨고. 또 자기는  그러면 어떤 자냐? 인류 중에 제일 천하고 무지 무능한 그 자나 내나 꼭 같을 수  있는 자입니다. 꼭 같을 수 있는 자요. 하나님께서 그자 만들면 그 자 돼지지 뭐  별 수가 없었습니다. 없는데, 그 자와 같을 자인데 제일 낮은 자보다 높다고 하면,  제일 낮은 자보다 자기가 제일 어리석고 무능한 자보다 낫다고 하면 나은 것은  그 자 보다 낫도록, 그 자 제일 못난 자 그 자보다 낫게 해 주신 것은 낫게 해  주신 분이 그분이 낫게 해 주셨지 제가 나은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런고로  제일 낮은 자도 자기와 같을 수 있는 자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면 그래 되지 뭐  별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제일 낮은 자보다 둘째로 낮은 자가 됐다 할지라도  둘째 낮은 자가 되도록 제일 낮은 자보다 높게 한 것은 하나님이 높게 해 주신  것이지 자기가 스스로 높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걸 깨달아야 되는데 나는 그런  죄를 많이 지었어요.

 내가 어제 회개를 했는데. 혹 뭐 일을 시키다가서 거석하면 너무 좀 느리고 좀  이렇게 뭐 답답하면 '왜 쇠근이 그따위로 그러냐? 바보같이 그래 하느냐? 내가  이런 말을 종종하는데 어제 내가 톡톡히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게  하나님 앞에서 '이놈' 하고, 그라니까 거기에서 총명이 감해지고 거기에서 위엄이  감해 지고 거기에서 권위가 감해지고. 자기가 자기를 나타내고 이렇게 자기를  높이면 자꾸 하나님은 낮추시고. 자기는 자기를 자꾸 낮추고, 그게 순전히  하나님의 것인데 나는 자꾸 밑의 사람보고, 나 보다 밑의 사람을 보고 나도 저와  같을 사람이 저보다 나은 건 주님이 나에게 더 많이 주셨다. 또 그보다 밑의  사람을 또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많이 줘서 이와 같이 높아졌다.

천하에 제일 낮은 자의 그 자의 자리에 있고, 천하에 제일 어리석고 등신이고  정신 이상자고 미친 자고 이와 같이 제일 낮은 자의 자리에 자기는 있고, 자기는  있으면서 이 자인데. 내가 이럴 수 있는 자인데, 주님이 나를 이렇게 높여 주셨다  하면 그 다음으로서는 주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고, 이라면 자꾸  주님께서 자기를 높이는데, 그러기 때문에 이 통계를 말하면 우리는 내려가고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고 이래야 될 터인데 그래 가지고 다른 사람을 뭐 바보라.

저 왜 저리 쇠근이 없는가, 저렇게 왜 저래 게을할까, 저렇게 왜 그래 저렇게  망령될까, 교만할까. 저렇게 악독할까, 저렇게 잔인할까, 저렇게 불량할까, 저렇게.

무도하고 무례할까? 이렇게 모두 한 그게 전부 하나님을 노엽게 한 죄를 범한 것.

이 느부갓네살 왕이 죄지은 거 거와 같은 그런 죄를 범한 거라. 내나 내가  느부갓네살 왕이 됐다 하는 그 게 그거나 제일 못난 사람보고 그 사람  멸시하니까 나는 그 사람보다 낫기 때문에 멸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으니까  멸시하니까 나은 거 그거 생각하는 것이나 느부갓네살 생각한 거나 성질은 꼭  같다 그거야. 같은 성질이라.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낮춤을,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하나님이 낮추시기 전에 우리는 요거를 회개하고 감사해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낮춰 주심을 받지 안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보호해 주심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처음에 뭘 하니까 하나님께서 총명을 주셨습니까? 뭘 하니까  총명 주셨지요? 예? 하늘을 우러러 보니까. 34절에.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것을  기억합시다.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총명이 왔다.

 그러면, 우리가 참 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가 돼 놔서 옛날 뭐 사도들보다  우리가 더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은 성경을 기록했고 이렇지만  그들이 성경 기록한 것을 그들이 못 깨달은 것도 우리는 깨닫게 해 주십니다. 왜?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이거는 자꾸 그리 될 수밖에 없어. 세례 요한을 가리켜서  여인으로 난 자 중에는 세례 요한보다 더 큰이가 없다는 말은 구약에 있는 모든  선지자들을 다 총칭한 그 전체 중에 구약 선지자 전체 중에 세례 요한이가  마지막 선지자인데, 구약 시대의 제일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 요한인데 세례  요한이는 구약에 있는 모든 선지자보다 예수님에게 대해서는 제일 많이 깨닫고  바로 깨닫고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이 세례 요한보다 크다 하는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늘나라는  예수님의 동행하시는 나라 곧 신약 시대를 가리켜서 하늘 나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택한 자로서는 세례  요한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대해서는 세례 요한보다 그거는  훨씬 예수님에게 대한 메시야 지식이 낫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에게  대한 것을 세례 요한이 모르는 것을 십 배가 아니라 백 배도 더 알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세가 점점 돼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 커지고 또 우리에게는  미혹도 크고. 또 힘도 그때보다 더 많이 쓰고 해야 이 마지막에 주실 은혜를  우리가 다 받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 '하나님을 믿으며' 이거 얼마나  진주입니다. 진주 중에.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에게만 복종하고 든든히 참고 인내해  있으라. 그러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된다. 이거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 하나를 줄 때에 큰 시대를  다 움직여 가지고 이런 한 진리가 나왔고 그저 여러 민족이나 국가를 다 움직여  가지고 이런 진리들이 다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네가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그러면 위에 것 찾으라 말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찾으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찾으라. 그러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자꾸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어떻게 받았으며' 받은 것을 자기가 어릴 때부터 주욱  미루어서 생각해 보고, 다윗은 자기가 어머니 뱃속에 잉태됐을 그때까지 다  미루어서 생각해 봤어. 자기가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할 때에 거기에서 자기의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 받은 것을 생각하기를 어머니 뱃속에 잉태했을 때까지부터  거기까지 미루어서 생각해 나갔어. 이러니까 내가 죄악 중에 잉태했다 거기까지  깨달았다 말이오. 이러니까 성군이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항상 다윗을 자랑을  했습니다. 다윗의 열쇠. 다윗의 위에 너를 앉힌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하늘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것은 우리에게 총명이라고  하면 뭐이냐 하면 내가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나 자신에게  대해서 밝히 알고 바로 처리할 수 있는 고 지능이 오는 것을 가리켜서 총명이라  말합니다. 뭐냐?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왔어.

 또 고 다음에는 보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주권 말하는  거와는 영 틀립니다. 아주 입학도 안 했어. 이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 이거는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예정론을 믿고 있는 이 예정론 믿는  것은 지금까지의 조직 신학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예정론을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조직 신학에 없다 말은 그 말은 지금이 우리가 낫다는 그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때는 열어 주시지 안했고 그때는 그만침 알아도 되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예정론에 대해 하나님이 다 예정하되 어느 부분적 예정, 또  기독자의 구원만 예정 이랬지 심지어 개미 한 마리가 나고 죽는 것도 예정이다.

고 개미가 수염 하나를 요리 조리 흔드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다. 절대 예정이다  하는 이런 예정을 주장하는 것은 그때 사람들은 그 예정을 주장하면 알지도 못  하고 오히려 오해를 받아 가지고 안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예정을  알려 주시지 안했다 그 말이오. 지금 우리는 그런 예정을 믿지 않습니까? 지금도  안 믿는 사람은 안 믿어요.

 이 예정 믿는 것을 다른 교계 나가 가지고 말하면 그 억설이라고 이래 말합니다.

그래 가지고 예정을 언제 말했더니만 ○○○목사님이 편지를 열 다섯 건을 했어.

열 다섯 건을 정죄를 해 가지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틀렸다, 틀렸다 하는 그  편지를 내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데 그 편지가 그 분이 틀렸지  그분은 그때는 전 시대 사람이라 그런지 지금 말하면 틀렸다고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요. 어느 교계 나서도 하지 않을 것이요. 그거 다 이렇게 하나님의 개별,  예정, 그 절대 예정. 그러고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섭리한다. 이 주권을 믿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주권을 믿어야 돼.

 이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어. 다 하나님에게 주권되어서 이것  저것도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다. 몇 가지 그라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좋아하셔서  그만 그에게 권세를 회복시키고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앞에 굴복을 하도록 이렇게  하셨다 그거요.

 그런데 우리는 주권을 믿기를, 그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데 주권 개별 섭리를  우리가 지금 믿고 있습니다. 주권 개별 섭리, 공산주의 독침을 가져 왔을 때에 그  공산주의를 누가 일으켰으며. 공산주의 독침을 누가 만들도룩 지혜를 주었으며,  독침을 가지고 내게 와 가지고 찌른다고 하는 그것이 누구냐? 주님이 사랑의  개별 섭리로 나 한테 왔기 때문에 그을 뜨고 보면 겉에 앞에는 공산주의요, 그  앞에는 독침이요, 공산주의 뒤에는 김일성이요, 김일성이 뒤에는 하늘의 왕.

주님이 주권하셔 가지고 그 모든 걸 하다 보니까 이제 그게 다 사랑의 주님이  우리 중에 오셔 가지고 역사하시는 것이라. 요걸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그걸  주님이 시험하는 거라. 믿는 자에게는 능력이 오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능력이  올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믿는 자는 평강으로 기쁨으로 승리할  것이요. 믿지 못하는 자들은 다 굴할 것이라 말이오. 승리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것이 승리가 아니고 안 죽은 게 승리가 아니라 죽든지 살든지 승리가 있고  또 패전은 죽든지 살든지 패전이 있습니다. 암만 그래 살아나도, 살아나도 그게  승리 아니라. 죽었다고 실패가 아니라. 우리는 뭐이냐? 하나님에게 대해서  털끝만치라도 범하지 안하고 그분과 함께 동하고 정했으면 죽어도 승리요 살아도  승리입니다. 그분과 떨어졌으면 우리는 살아도 패전이요 죽어도 패전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요게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대해서 벌써 이 성경에 기록했지만 오래  전에 된 구약 성경이니까 오늘 우리는 그 후에 신약 성경을 주셨으니까 미루어  가지고 우리가 무얼 회개 할 것이냐? 자기가 스스로 자기 됐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회개해야 되겠고, 또 자기가 자기 되어 남보다도 나은 점 고걸 스스로 된  줄 알고 그거 가지고 교만하면 하나님이 그거 뺏들어 버린다는 것을 이것을  깨달아야 되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말하면 어떤 자라.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추가해 주셔서 그렇지, 추가해 주신 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추가해 주신 것을 다 떼버리고 나면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 본전은  뭐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가공을 시켜 가지고 이런 거 저런 거 보태 주셔서  그렇지. 그거 다 하나님이 가공하신 걸 떼고 나면 우리 본전 본 밑천은 어떤  자입니까? 어떤 자입니까? 천하에 제일 못나고 어리석고 등신이고 정신 이상자고  병신이고 그자라 말이오. 예? 그 인간으로서는 그 자가 제일 밑에 제일  천물이라면 나도 제일 천물 될 수 있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조금 주시니까  거기에서 일 천물이, 제일 천물이 일 천물이 이 천물되고 이 천물이 세째  천물되고. 세째 천물이 네째 천물이 되고 네째 천물이 백째 천물이 되고, 그  다음에 차차 차차 올라와 가지고 오늘까지 요래된 것을 그것을 기억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노를 푸는 것이요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오.

 그러면, 그것은 자꾸 올라가는 거라. 그것은 자꾸 올라가는 방편이요, 그것을  모르고 제가 남보다 높은 거, 높은 그거 있는 것보고 제가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가 하나님께 진노가 돼 가지고 끌어내리는 그 사상이요 방편이요 행동이라  하는 그것을 우리가 기억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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