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 구별 할 것


선지자선교회 1987년 6월 15일 양성원경건

 

본문 : 레위기 11장 3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실 때에 점차적으로 길렀습니다. 또 이 물질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람으로 하나님에게까지 향진하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것탄 우리가 바로 구별하면 에덴동산에 인류 시조 때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관리하신 것이나, 또 구약 시대에 관리하신 것이나, 또 신약 시대 말세에 관리하시는 것이나 다 그것이 꼭 같은 방편입니다.

사람이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구약은 신약에 대해서 필요 없다. 신약은 구약에 대해서 필요 없다.' 어떤 사람은 신약에 속하고 어떤 사람은 구약에 속하고 그렇게 해서, 구약에서 신약을 배울 수 있고 신약에서 구약을 배울 수 있고 하는 이 비밑을 모르기 쉽습니다.

여게도 쪽발 가지고 새김질하는 이 짐승은 깨끗하니 너희들이 먹고 쪽발 가지지 안하고 새김질하지 않는 짐승은 너희들에게 부정하니까 먹지도 말고 하라 했습니다.

그 고기는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2가지 종류 외에는 거룩한 생명을 가진 자는 먹을 수 없다. 거룩한 생명을 가진 자는 쪽발과 새김질하는 짐승만 벅을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 짐승의 고기 피는 그것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이것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끗게 하기 위해서 깨끗게 되는 거게 관한 지혜를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모든 짐승으로 제물 한 것도 그러하고 또 산약에 와서도 베드로가 이상 가운데서 본 그 보자기의 내용도 다 그러한 것입니다. 그건 보자기 내용의 그 짐승을 말한 것이 아니고 곧 사람들에게 대해서 말씀하신 것인 것을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갈 때에 깨닫고 그렇게 의심없이 이방에게 갔던 것입니다.

그러고 또 여게뿐 아니라 에스겔서에도 보면 `영물들은 다 쪽발로 걸어가는데 앞으로만 곧게 걸어가지 그렇게 좌우로 치우치지 안하고바로 걸어간다' 하는 그것도 곧 성도들의 그 생명 걸음을 그렇게 모형해서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깨달을 것이 쪽발과 새김질하지 않는 이 짐승은 거룩지 못하기 때문에 거룩한 자가 먹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하는 이것이 무엇을 우리에게 가리켜서 말씀하시는 것인가? 그것을 우리가 바로 생각하고 거기서 자기 행동할 것을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쪽발로 가는 것만 생명이 산 자가, 거룩한 생명을 가진 자가 먹을수 있지 굽이 갈라지지 안해도 안 되고 또 굽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도 안 된다 하는 여기서 신령한 교훈을 우리에게 하고 있는데 우리 기독자들이 걸어갈 때에, 자기가 생활해 나갈 때에, 그러면 한 현실 한 현실을 돋파서 생명 걸음을 걸어갈 때에는 꼭 이 쪽발로 걸어가는 거와같이 둘로만 구볕해서 걸어가야 된다. 두 발로 양면으로 쪽발로 이렇게 양면으로 구별해서 걸어가지 안하면 생명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또 하나는, 새김질하는 것이라야 거룩한 생명 가진 자가 먹을 수 있다. 새김질은 뭣이 새김질인고 하니 새김질은 짐승이 사료를 먹었다가, 저 위까지 내려가도록 다 먹어 가지고 또 새로 게워 가지고 그것을 새로 이렇게 씹어 가지고 다시 먹는 그것이 새 김질이라. 먹었던 것을 토해가지고 다시 이제 그것을 또 씹어서 이렇게 먹는 그것이 새김질이라. 첫째로 쪽발로만 걸어가야 된다. 둘로만 구별해서 걸어가야 된다. 둘로만 구챵해서 걸어가야 된다. 셋으로 구별해도 안 된다.

하나로도 안 된다.

꼭 둘로 구별해 가지고 걸어가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에 들어가지 못한다.

둘로 구별하지 안하면 다 부정한 것이 된다 하는 그 교훈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하나의 실물을 가지고 이 형식 교훈을 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둘로 구별해야 된다 하는 거게 대해서 한번 둘로 한번 구별하는 일을, 여러번 들었기 때문에. 한번 둘로 구별하는 일을 한번 우리가 이 시간에 말해 봅시다. 뭘뭘로 둘로 구별해야 되는가? 둘로 구별해야 되는 것을 누구든지 생각나는 대로 한번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지식을 둘로 구별해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과 마귀 지식, 그겁니까? 하나님의 지식과 마귀 지식을 구별해야 된다. 그런데 거기 서이는 용납지 안한다.

하나님의 지식 아니면 마귀 지식이지 이것도, 마귀 지식이나 사람 지식 한 가지인데, 이 지식은 이렇지만 여기서도 뭐 하나님을 말하고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다 유교에서도 하나님 말하고 모든 이종교에서도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여기서도 그러하지만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또거게도 또 사람이 뭣이 있지 않느냐?' 그렇게, '사람의 지식이 있지 않느냐? 하나님의 지식이라도 사람의 지식이 있지 않느냐?' 이렇게 자꾸 혼잡해 나가면 시험에 들기 때문에 꼭 둘로만 구별해라.

네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은 무슨 지식을 공부하느냐? 구별하라. 또 네가 지금 이 시간 무슨 경영을 하는데 그 경영하는 일은 지식이 먼저 앞서 경영하고 그다음에 사람이 따라가는 것인데 네가 경영하는 일에 무슨 지식으로 경영하노? 하나님 지식이 아니면 사람 지식 마귀 지식, 하나님 지식 외에 거는 다 마귀 지식이요 다 사람의 지식도 다 마귀 지식인데.

네가 무슨 지식으로 경영하노? 지금 네가 비판하고 평가하는 데 무슨 지식으로 비판하고 평가하노? 네가 지금 현재에 행동하고 살고 있은 것은 무슨 지식으로 행동하고 살고 있노? 이렇게 2가지 지식으로만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 신앙 걸음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돼요? 그게 아니면 생명 세계에 들어가지를 못한다. "먹지 못한다" 거룩한 자가, 거룩한 생명 가진 자가 먹을 수 없다. 이 생명은 이런 것을 삼키지 안한다. 생명에게는 먹히지 안한다.

생명에 들어가지 못한다.

범사에 우리가 생활할 때에 거게 지식이 다 쓰여지는데 그러면 그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인지 하나님의 지식 외에-그만 마귀 지식이라 할 게 아니라-피조물의 지식인지 둘 중에 하나로 네가 판단해라. 그러면 그 판단하는 것이 과연 그것이 없으면 생명 세계에 들어을 수 없다는 그 말이 억설이 아닙니까? 어떻게 돼요? 요새는 이 과학적인 해석이라야 그거는 자연스러운 해석이고, 일반인들이 아는 해석이라야 자연스러운 해석이고 불신자들은 이해 못 할 하나님만이 아는 해석은 다 그거는 그 억해라, 부자연의 해석이라 해가지고 지금 다 제거를 해서 자멸하는 이런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 지금오늘입니다.

제가 의로운 체하지만 하나님보다 저를 높여서 저 주장을 내세워 가지고 나가고 하나님을 생각지 않는 이런 세대가 지금 돼 가지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 말함과 같이 차차 말세가 되어져 가면 다자기의 귀를 즐겁게 할 그런 스승을 많이 두고 그를 좇아서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요거 지금 여러분들이 요거 지금, 짜다라 공부 많이 할 게 아니라 뭐 바로만 되면, 하나님과 바로 연결만 되면 오만 거 다 할수 있어.

우리가 언행심사의 모든 생활에는 과연 그 지식이 다 개입된다. 그 지식이 다 동참하고 있다. 그말은 이해가 됩니까? 그러면 거기에 이거는 내가 하나님의 지식에다가 토대를 해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인하여 지급 지식하고 움직이는 것이냐, 이것은 하나님의 지식 외에 다른 지식을 준해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냐 그렇게 구별하지 안하면 거룩한 생명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하는 그것이 이해가 됩니까? 그런 이해가 되는데, 이해가 됩니까? 그 안 해도 생명 세계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안 됩니다.

이거 얼마나 중요한지, 이거 지금 입술로는 말하지만 이 사실을 믿고 깨달은 사람들은 천 명 가운데 하나 있거나 말거나 그렇습니다. 그런줄 알고 여러분들이 지금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가 어떤 언행심사 생활하든지 `여게는 지식이 개입돼 있다. 그라면 이 지식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지식이 여게 지금 주체가 돼 가지고 있느냐 혹은 피조물의 지식이 지금 주체가 돼 가지고 주관하고 있느냐? 뭐이냐?' 하는 그것을 가리지 안하면 생명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면 지식에 대해서.

또? 아는 대로 학생들이 하나씩 말해 보십시오. 여기는 지식을 말했고, 또 그다음에? 그러면 사랑에 대해서, 사랑. 그러면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 또, 인간의 사랑은 뱀의 사랑인데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그걸 구별하지 안하면 생명 세계는 들어갈 수가 없다. 그거 이해가 됩니까? 그거 사실 그렇습니까? 사랑과 사랑을 2가지로 구별해서, 이것도 뭐 민족 사랑이라 인류 뭐 사랑이라 할 것 없이 그만 둘로만, 사랑이라면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냐 안간의 사랑이냐? 인간의 사랑은 뭣뭣이 인간의 사랑압니까? 피조물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뱀의 사랑이 인간의 사랑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 뱀의 사랑, 우리가 뭐 행동하는 것이 사랑으로 인해서 행동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 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냐 이것이 뱀의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이냐 인간의 사랑이냐? 이 사랑과 사랑을 2가지로 구별하지 못하면 생명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게, 어째요? 그럴듯 합니까, 혹 그럴 수도 있겠습니까, 절대입니까? 이해가 됩니까? 정대입니다. 절대.

그라면 이 세상에서 하루 종일 사랑을 백 가지를 만나 봤으면 백가지 만난 가운데에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백 가지 만난 가운데에 몇 가지나 있다고 생각합니까? 방송국에서 사랑을 많이 말하고 이 세상에서 사랑을 가지고 많이 말하고 있는데 세상에 가득찬 사랑 가운데에 그 사랑과 사랑을 구별해서 2가지로 구별하는 그런 사람이, 자, 교회 안에 있습니까 사회 안에 있습니까 어떤 이종교 안에 있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없어.

하나님의 사랑은 뭐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뭐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저 무슨 선생이고? O선생 말해 봐. 도성인신하신 뭐? 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면 예수님의 구속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예수님' 하면 너무 범위가 넓어서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게 하나님의 사랑이냐?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가지고 하나님과 화친을 시킨 그것이 사랑이요. 예수님이 그거 했소. 그 외에 사랑이 있습니까? 이것은 다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하지만 그 외에 거는 다 속이는 것이지 그 결과는 사망이 되고 말지 원수가 되고 말지 뭐 있습니까? 이 사랑도 이렇게 두 쪽으로 구별해서 `이거 사랑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모두 다 사람을 형제간도 사랑하고, 부부간도 사랑하고, 또 친구간도 사랑하고, 이 민족도 사랑하고 사랑하는데 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냐 이거 뱀의 사랑이냐 이 2가지로 구별하지 못하면 영원한 생명 세계에는 들어갈 수 없다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럴 것 같습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까 절대라고 생각이 됩니까, 어떻습니까? 절대입니까? 절대요, 절대, 뭐 짜다라 많이 배울 것 없어.

이것만 하면 그만 저절로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하고 한덩어리 돼요. 이거는 민족 사랑이다 뭘 사랑이다 셋으로 가면 헛일입니다. 셋으로 가도 헛일이요, 넷으로 가도 헛일이요, 다섯으로 가도 헛일이요 꼭둘로만 구별해야 된다. 이게 과연 우리에게 생명에 다림줄을 주신 그 교훈이라 하는 것이 속으로 느껴집니까? 어떻게 이 둘로만 가지고 구별해야 된다는 이걸 모두 시시하게 보지만 이 둘로 구별하기 전에는 이 바른 길을 찾을 자가 없습니다. `아, 참 하나님이 참 전지자시다.

이 둘로만 구별해 놨다. 그외에는 과연 바른것을 찾을 길이 없겠다.' 아무리 무지해도 둘로만 구별하면 다 찾아가. 제가 둘 이상으로 아주 유식한 체하고 하면 다 헛일이라.

이제 자꾸 종류 하면 또 요다음에, 자기는 한번 대답해 봐. 네, 사람도 둘이라.

그것도 좋은 말이라. 사람이 둘이라니? 사람이 뭐 사람이둘이라, 그 뒤에 학생? 사람이 둘이라니? 예, 뭐 그래 둘이라 구별해도 맞지. 사람이 둘이라. 그러면 구원을 해치는 자, 구원을 유익되게 하는 자.

그러면 그것도 `이 사람이 지금 이래 말하는 것은 구원을 해치고 있나 구원에 유익되게 하나? 이거 지금 이라면 내가 지금 오늘 지금 이라고 있은 것은 새사람이 이라고 있나 옛사람이 이라고 있나? 이거는 택한자 생활이가 불택자 생활이가?' 뭐 그라면 둘로만 구별하면 뭐 아무리 무지해도 싹싹 갈라서 바로 딱 증거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거 어떻게 돼요? 둘로만 구별하면 된다는 그게 아! 참 그 모든 일에 열쇠를 잡았다 그렇게 한 그런 통쾌감과 그런 마음에 안정감 확신감이 생겨집니까? 둘로만 구별하면 된다. 이거 그 설교를 여러 수천 번 했지만 들어야 몰라요.

이래서 이것을 자기가 보고 '나는 이제 둘로만 구별하겠다.' 그러면 둘로 구별할라 하면 무슨 일이든지 이거하고 둘 쌍방을 찾아야 돼. 그거 못 찾으면 헛일이라.

뭣이든지 하나 탁 찾을 때는 `이거와 정반대는 뭐이냐? 이거와 정반대는 뭐이냐?' 이러면 정반대를 딱 찾아 가지고 그러면 이것이 뭐이냐 하는 걸 찾을라 하면 됩니다.

그러면 신앙이 둘이라. 신앙이 둘이라 말은 무슨 말이요? 그것도 사람이 신앙을 가지고 막 신앙을 하라고 지금 외치고 막 핏내가 서 가지고 고함을 지르고 어떻다고 야단지깁니다. 그러나 저 신앙이 인본 신앙이냐 신본 신앙이냐? 하나님을 근원으로 삼는 신앙이냐 중심으로 삼는 신앙이냐 인간을 중심으로 삽는 신앙이냐? 어느 것을 보다 앞세웠느냐? 이걸로 구별하면 그만 신앙 환하게 판단 다 나는데 뭐. 이거 참 얼마나, 쪽발로 간다는 쪽발 이게 언마나 보배인지 모르요.

쪽발의 가치성을.

신앙도 그래. 그거 그렇지 안하고 '그 신앙이 좋다 나쁘다 뭐 그 신앙이 또 그럴 수도 있다 신앙이 뭐 어떻다' 이래 하기 시작하면 그만 아무리 제가 명철한 놈이라도 그만 거기 삼켜지고 말지 판단 못 합니다. 이 신앙은 딱, 신앙만 둘로 구별하면 뭐라고 해도 `신앙은 신본주의 인본주의 신앙 아닌가?' 그라면 그만 다 돼 버려.

여러분이 요것을 딱 가지고 요것을 잡고 뭐이든지 그만 어떤 형편 현실이든지 요 열쇠를 가지고 착착 끌르면 다 끌러져 버려. `요게 만고에 보배로운 이거 진가를 구별하는 열쇠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보배를 가지고 쓰지만 가치를 몰라.

뭐이든지 다 그래. 그러면 신앙, 또 뭐이든지 자꾸 말해 봐요. 믿음. 믿음도 그래.

믿음도 그게 인본주의 믿음 신본주의 믿음도 있고, 믿음이 이것은 창조주를 믿는 것이냐 피조물을 믿는 것이냐? 이 뭘 믿는 것이냐? 창조주를 믿는 것이냐 피조물을 믿는 것이냐? 또 이 믿음은 땅의 것을 소망하는 믿음이냐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이냐? 어디 것을 소망하느냐? 자꾸 둘로만 쪼개 나가면 뭐, 믿음에 대해서 둘로 쪼개 나가면 뭐 열도 스물도 백도 쪼개 나갈 수 있습니다. 자꾸 둘로만 쪼개 나가요. 둘로만 쪼개 나가면 그만 착착 착착 열려서 지혜가 확 나타나. 둘로 쪼개지 안하면 제까짓 게 아무리 명철 인간이라도 소용 없어. 이 둘로만 쪽발로만 걸어가야 된다. 둘로만 구별해야 된다 하는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지혜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뭐 꽉 찼어. 여러분들이 뭐 꽉 찾는데, 그러면 이 소망은 `보자, 이 소망은 무슨 소망이냐? 이게 하늘에 소망이냐 땅에 소망이냐? 이 기쁨은 뭐이냐? 이 기쁨은 없어질 기쁨이냐 있을 기쁨이냐? 이거는 인간만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냐?' 어짜든지 둘로만 구별하면 전부 다 나올 수 있습니다.

이 교훈은 우리에게 유혹을 주는 교훈이냐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교훈이냐? 또 우리 힘을 새롭게 하는 교훈이냐 우리 힘을 흐려지게 하는 교훈이냐? 뭐 둘로 꼭 구별하면, 그 앉아서 둘로만 구별하면 대 번에 그 사리 진상을 쫙 갈라내 버립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이 열쇠를 쓰지 안하기 때문에 정신이 디디하다 그말이오. 이 열쇠를 쓰지 안하기 때문에 뭐 큰 교파들도 다 퍽퍽 넘어지고 유력한 사람들도 다 퍽퍽 넘어지고 다 소경노릇 하고 다 세상에게 이래 삼키고 저래 삼키고 다 삼켜지고 맙니다.

내가 요새 며칠 전에 그말 들었는데 저 OO교회에서 백팔십억을 들여 가지고 예배당을 지었어. 예배당 지었는데 백이십억은 들여서 벌써 공사해 놨고 이제 육십억만 들이면 나머지 공사를 하는데 그 하는 사람이 어떤 권사가 삼십억을 연보했어.

삼십억을 연보를 했는데 그 연보하는 그 권사가 어째 기도하다가 입신 가운데 들어갔는데 입신 가운데 들어가니까 거기서 `네가 하나를 아느냐?' 그래 말해.

`하나를 아느냐?' 그말 들었어? 못 둘었어, 모두? `하나를 아느냐?' 그라니까, `하나밖에는 내가 모른다. 너는 내가 모른다. 내가 하나밖에는 모른다.' `하나를 아는데 하나는 누굽니까?' 이라니까 `내가 아는 하나는 OOO목사다' 그분이 그래 말한다고. 그래서 그걸 듣고 난 다음에 `이거 다 헛일이고 이러니까' 그래 가지고 자기는 자기 재산이 삼십억인가 되는데 그 OO교회 예배당 짓는 데 바쳤다 이래 말 들었어요.

그런 말 들을 때에 그것도 쪽발로 구별해. 사람에게 관한 것이기 때문에 쪽발로 구별해야 되는데 뭘로 어떻게, 그런 건 어떻게 구별해야 돼요? 어떻게 구별해야 돼? 사람이 그 안에 있는 의야 그거야 모르지요. 속에 있는 의는 모르지만 우리가 아는 대로는 모든 나타난 이 신앙 행위 이것을 보고 우리가 평가하고 성경을 들어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지 그분이 한국교회에, 그보다 우리가 보는 데는 뛰어난 그런 신앙가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하나만 아느냐?' 그 말을 나는 듣지 않겠어. 삼십억 아니라 삼천억을 갖다 냈다 할지라도 그 말을 나는 듣지 안해.

그말을 그라면 귀신이 그랬다 할 건가? 나는 귀신이 그랬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 그거 성령이 그랬다고 하지 안하고 싶어.

그 어떻게 뭐, 신앙에 그런 참 말할 수 없는 그런 신앙가들이 꽉 찼었는데.

손양원 목사님 같은 그런 신앙인들이라든지 뭐 주남선 목사님같은 신앙가라든지 또 그뿐 아니라 그전에도 신앙으로서 뭐 굉장한, 이기선 목사님 같은 그런 이도 다 그런 뭐 신앙은 참 말할 수 없어. 그는 우리가 볼 때는 뭐 몇백 배도 더 되는 그런 신앙이었는데 어찌하나 그이만 그렇게 선정했는가? 그 말을 나는 믿지 못해.

그런 것도, 이거 성령이 그렇게 말해 줬겠느냐 악령이 말해 줬겠느냐, 뭐가 말했겠느냐? 그 사람이 영감이겠느냐 악령의 감화겠느냐? 자기 주관이겠느냐 객관이겠느냐? 이래 자꾸 이래 따져 나가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에는 굉장한 복잡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둘로만 구별하지 안하면 모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삼십억을 연보했다고 하는 것 보니까 커다란 뭉치를 연보했으니까 그 사람이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삼십억이나 연보를 했겠느냐? 그것 보니까 그렇다.' 또 언제 한번은 저 삼각산에 가 가지고 기도하던 어떤 교인 한 분이 동삼을 하나님께서 일곱 개를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동삼 일곱개는 내 종들이 지금 이거 일곱 개를 먹어야 일을 할 터이니까 누구누구 누구 누구 일곱 사람을 쳤는데 그 속에 양도천 목사도 하나 들었어.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동삼 일곱 개를 가지고 그 여전도사가 가져와서 그렇게 말한다는 그 말이 뭐 굉장해 가지고 모두 다. 일곱 명 속에 자기가 가담하지 안했다고 해 가지고 큰 목사들이 섭섭함을 가지고 그만 그때 별별이 다 그랬어. 별별 유혹을 다 했다고.

그것은 그때 일곱 사람을 다 볼 때에 그러면 이분들의 신앙, 우리는 나타난 것밖에 모르기 때문에. 이분들의 신앙과 남은 사람들의 신앙과 비교해 볼 때에 어찌 되느냐? 하나님께서 하필 그라면 여자를 통해가지고 그 동삼을 줘 가지고 그걸 안 먹으면 건강을 못 주겠느냐? 하나님께서 그걸 안 먹여도 얼마든지 건강을 줄 수가 있지 않겠느냐? 어떻게 또 그 여인이 아는 그 사람들만 말했겠느냐? 이래 모든 것을 자꾸 이렇게 구별해서 볼 때에 그것이 거짓부리라 하는 것을 단정을 지웠습니다.

그때 OOO목사님이 나한테 와서 말하기 때문에 '그거는 순전히 그 여인이 귀신 들렸다. 그러니까 그 들려 가지고 그러니까 그런 유혹받으면 안 된다.' 그때 일곱 사람 친 사람이 다 헛일했어. 다 신앙 다 배반하고 팔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라.

이 세상에는 별별 일들이 많다 말이오. 뭉떵 거짓말 하면 사람들이 넘어가요.

왜 하나님이 일하시면 그렇게 엉큼하게 떳떳하지 안하고 밝게 안하고 그렇게 일했겠는가? 뭐 동삼 그걸 꼭 먹여야 되지 동삼 안 먹이면 얼마든지 뭐 백 살이라도 살 수 있도록 하고 송장도 살려 가지고 강건하게 할 수 있는데 하필 동삼 그런 걸 먹여야 될 건가? 그래서 그때 OOO목사님은 거기 안 들었다 말이요. 안 들었다고. 그때 보니까 모두 좀 섭섭한 그런 감을 느껴요. 이랬는데 그 뒤에 인제 그거 지나가고 보니까 다 부끄러운 수치감을 느끼고 다 이래요.

새김질하는 건 뭘 새김질하느냐? 새김질하는 것은 먹었던 것을 다시 토해 가지고 합니다. 그러면 네가 무슨 일이든지 네가 행한 일을 뒤에 반성하고 또 지나간 후에 생각하고, 이래서 하루를 두고 새김질하는 사람도 있고, 일 년 두고 새김질하는 사람도 있고, 십 년 두고 새김질하는 사람도 있고, 몇십 년 두고 새김질을 하라.

`야, 그 사람이 그랬는데 보자. 십 년 전에는 어땠으며 이십 년 전에는 어떻게 됐느냐? 또 그 사람이 지금 하는 그 일은 지금 하는 걸 볼 게 아니라 이제 일 년 후에 보자. 십 년 후에 보자.' 이 새김질하는 데에서 마귀의 유혹에 들지 안하고 모든 것을 정평 정가 해 가지고 이 거룩한 생명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자, 저것은 자기를 증거하는 것이냐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냐? 저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 좋게 하는 것이냐 하나님 좋게 하는 것이냐? 저것은 모든 것을 다 바치게 하는 것이냐 모든 것을 남궈두고 수월하게 하는 것이냐?' 이렇게 그만 둘만 자꾸 이래서 붙여놓으면 환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성원 학생들은 요 쪽발로 가는 거와 새김질 하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자기 신앙의 열쇠로 삼으면 복이 있습니다. 뭐 그 사람이 일시에 뭐라고 떠들어 쌓아도 새김질 해. `보자, 그 사람이 일 년 전에는 어땠노? 십 년 전에는 어땠노? 이십 년 전에는 어땠노? 삼십 년 전에는 어땠노? 사십 년 전에는 어땠노? 사십 년 전에도 그 사람이 독실한 신앙가였었고 오십 년 전에도 독실한 신앙가었었 고오늘도 그러하다.'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일 년 전에는 허무했었는데 지금은 대단히 신앙에 모든 사람이 인정해 위대하게 됐다.' 그러면 그거는 새김질을 어찌 해야 됩니까? 그러면 그거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일 년 전에는 허무했었는데 지금은 그 사람이 신앙에 위대한 사람이 됐다.' 그러면 그것은 새김질을 어떻게 해야 되겠소? `일년 전에는 그 사람이 허무했는데 지금은 신앙에 참 독실한 사람이다.' 거게 대해서는 우리가 새김질을 할라면 어떻게 하면 새김질 합니까? 그러면 일 년 전에 그랬는데 지금 그러면 그걸 또 도로 토해 내쳐야 돼. 또 그것을 내 가지고 한 일 년 후에 봐서 그러면 인정할 수 있고, 일 년 후에 봐서 변해졌으면 못 해요.

이러니까 우리는 자타의 일에 대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우리가 또 뒤바꿔서 새김질하는 이것을 하지 안하면 우리는 바른 길을 걸어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하나 생각할라 한 것은 요한계시록 11장 7절에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라" 그다음에 10절에 보면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여러분들이 여기서 양성원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반드시 하나님편과 사람편이 두 편이 있습니다. 하나님편과 사람편 두 편이 있어서 하나님편은 사람편에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살릴라고 애를 쓰고 또 사람편에선 사람들은 하나님편에 선 사람들을 죽일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하나님편에 선 사람들은 사람편에 전 사람들의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려낼라고 애를 쓰고 또 사람편에 선 사람들은 하나님편에 선 그 사람을 죽일라고 애쓰는 이런 대립이 있는 이 세상이라.

그런데 하나님편에 선 두 선지자, 두 감람나무. 이 증인들이 그렇게 아주 온갖 권위를 다 가지고 비오지 안하게 하면 안 오고 출애굽에 있는 권세를 다 쓰고 사람을 몇이든지 거석하면 죽게도 하고 하는 이런 그 권능의 역사를 했지만 증거를 마칠 때에는 마지막은 짐승으로 더불어, 무저갱에서 올라온 그 짐승으로 더불어 싸워 가지고 짐승이 이기고 이 두 선지자는 죽임을 당했다.

당했는데 그 시체가 길 거리에 있고 아무도 장사하지 못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 두 선지가 죽었다고 좋다고 기뻐하면서 예물을 서로 나눠주고 그렇게 기뻐했다.

사흘반 후에 시체를 가지고 올라갔다. 그러면 이렇게 여러분들이 이 지금 여기서 양성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 하나님편에 서서 하나님 말씀과 예수를 증거하는 이 증거를 하면 반드시 그 두 편이 있는데 두 편 다 좋도록 하는 그자는 그거는 창기의 신앙이다. 두 편 다 좋게 할 수는 없다. 여게 속하든지 저게 속하든지 한 편에 속하지 두 군데 속할 수는 없다.

하나님편에 속한 자의 신앙은 반드시 이 세상에게 미움을 당해 가지고 마지막에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모두 다 죽여 놓고는 좋아서 예물을 주고 저들이 기뻐하는 이렇게 대적이 많고 외로운 걸음을 걷게 된다. 그러나 "증거를 마칠 때에"하는 것은 자기가 땅위에 생명이 존재하는 동안은 증거할 기간이요 증거를 마칠 때는 그때는 벌써 자기 땅위에 존재 기간은 다 끝난 때다. 끝난 때에 자기 생명이 병들거나 늙어서나 이래 죽을 터인데 생명이 끝나는 그 시간에 주를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죽는 죽음을 죽게 된다. 이러니까 성도들이 아무리 박해가 많아도 하나님이 정한 수명 거기서 조그마치라도 감소되지는 안한다.

또 세상에서 진리대로 살라 하면, 바울이 "사망은 내게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에게 역사한다" 말은 바울은 상대편에 자꾸 생명만 주는데 상대방은 자꾸 바울에게 사망만 줍니다.

쇠를 불에다 끌쿠면 불미에서는 자꾸 열이 지금 자꾸 쇠로 가고 쇠 저 밖에서는 자꾸 차움이 오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내게서는 생명이 나가서 자꾸 저쪽에 비취고 저 밖에서는 자꾸 사망이 와 가지고 들어오는 그것이 필연성이다.

이러기 때문에 이래 사는 것은 다 위험당하고 외롭다가 마지막에는 죽임을 당하는 그것이다. 그러나 수명이 조그마치도 수명이 감소되지 안하고 다 살 대로 다 살고 난 다음에 죽게 된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쪽발과 새김질을 해서 자신을 다스리고, 교계를 다스리고, 또 모든 성도의 서로 교통을 하고, 거룩한 공회를 정하고 모든 것을 쪽발과 새김질로 자타를 다스리지 안하면 거룩한 생명 속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면 그렇게 살게 되면 자연히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돼 가지고 고독하다가 마지막에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죽임을 당하나 생명에 일초도 살 것을 주를 위해서 죽지 안하고 이미 죽는 죽음을 주를 위해 죽게 된다. 수명에 감소되지 아니한다.

이렇게 고독을 당하다가 대립돼서 나중에 죽임 당하는 그런 일이 있다. 그러니까 순교는 옳은 것을 증거하다가 그것이 점점 대립이 생겨 대립으로 말미암아 외로와지고 또 어려워져 가지고 또 을은 생활 옳은 행동 하는 데에서 대립이 되고 대립이 돼 가지고 외로와져 가지고 죽는 그것이 순교다.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해서 밧모라 하는 섬에 갇혀졌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것이 자꾸 다 이렇게 도말되는 것이 하나님과 점점 친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서 버림당하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외로와지고 독보적으로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하늘나라에서는 환영을 받는 것이며 또 자기의 무대가 자꾸 넓어져서 커지는 것이다 하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깨닫고 그 둘이 합해서 한 교훈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세계에 가는 데는 이 쪽발과 새김질 안 하면 위험합니다. 이 세상서도 미개한 야만인들은 한 그릇 참 식물에 팍팍 넘어가고 하나의 친절과 감언이설에 넘어가지만 조금 문화인들은 그렇게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 좁지 않습니다.

적어도 문화 나라는 그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이름이 안 납니다. 적어도 십 년이 그대로 계속되면 `그 사람 십 년을 이랬으니 괜찮다.' 인정하고, 십 년보다 이십년이면 더 인정하고, 삼십 년이면 더 인정하고, 이라기 때문에 그 나라의 사람이 자꾸 신중한 사람이 돼지고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요동 안되지만 이 우리 나라 같은 나라에서는 뭐 그뭐 일조일석에 당장 의인되고 일조일석에 죄인됩니다. 하나 잘못하면 그 사람 그만 죄인이라 딱 이래 버리고 하나 잘하면 의인이라 이래 되기 때문에 모든 면에 대해서 정평정가가 없기 때문에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무리 그 사람 뭐 한다 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역자들이 뭐라고 말해도 그 사람이 교역자 되기 전에 어떻게, 교역자 되고 난 다음에 어떻게, 목사되고 난 다음에 어떻게, 목회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그것을, 그걸 다 쪽 거석해 놓으면 뭐 제가 뭐라고 한다 해도 그는 완전히 정평이 되고 정가가 되는 것인데 이것을 이 새김질 하지 안하고 그만 이래 놓으니까 당장 그 자리 일시에서 그 사람을 그만 평가를 해 가지고 정가를 매기기 때문에 실패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쪽발로 걸어가는 거와 새김질하는 이 일을 하면 우리 진영이 파괴되지 안할 것이고 그렇지 안하면 이 진영도 다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또 새김질을 해서 만일 한 이십 년 동안을 새김질 해 보면 그게 뭐이라 하는 것을 환하게 다 알기 때문에 거기서 유혹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쪽발과 새김질하는 이 양성원 학생들이 돼야 소경이 안 되겠고 좀 눈밝은 성도들이 되겠다. 또 그라고 하나님편과 인간편이 있는데 하나님편에 서서 있으면 인간편에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고 거기서 외로와집니다. 그러면 딱 보면 알아요. `저 사람은 자, 저 사람이 지금,' 모여서 두사람이 얘기하면 `보자, 저 사람 둘 다 하나님편이냐? 저게 사람 편이냐? 이 사람은 하나님편이고 이 사람은 사람 편이다.' 자꾸 그래가지고 그 모든 걸 자기가 바로 알아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성공을 하지 그 바로 모르면 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성공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사람이 자꾸 거짓말 하는 거, 거짓말 하는 거기 유혹받는 거는 제가 거짓말쟁이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겁니다. 그런 것도 자꾸 이거 좀, 쪽발로 걸어가고 새김질하는 사람은 거짓말 하는 데에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 것 좀 이해가 됩니까? 자, 기도합시다.

주님의 홑어져 있는 양들을 위하여 목자로 양성하시는 주님, 주께서 원하시는 그대로 이 양성원에 숫자보다도 주님이 누구심을 점점 깨달아 주님에게 속하고, 주님에게 피동되고, 주님의 소원을 이루는 이 사람이 점점 되어져 가게 하시고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이런 사람들이 하나도 없게 하시고, 말세에 온갖 유혹이 많사오니 이 유혹에 빠지지 안하고 주님으로 더불어 동행하고 주님에게 순종하여 에녹과 엘리야의 걸음같은 이 생명 걸음을 걷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사이비한 모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이 여기서 여러 강사들이 모두 다 가르치는 데도 그 가르치는데에서 혹 마음에 이런 거는 불만스러워서 이걸 좀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게 있으면 그것을 지금 말해도 좋고 또 교학실장에게 말하면 차차 그것을 고치도록 그렇게 해서 자꾸 고쳐서 잘해 나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과학에 대한 것을 조금 줄이고 교회 정치에 대한 것을 조금 시간을 넣어서 공부를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또 고전어에 대해서 한 주간 하던 것을 하나만 한 주간 할 게 아니라 히브리어와 또 헬라어 그 둘을 한 주간 해서, 한 주간이 몇 시간입니까? 스물세 시간이면 열두 시간씩 할 수 있으러구만. 그렇게 해서 지금 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러고 여러분들이 혹 필요한 과목을 말하면 어떤 것을 더 그외에도 필요한 과목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러고 혹 뭐 무슨 물어볼 게, 질문할 거 물어볼 게 있거들랑 여러분들이 좀 물어보도록 그렇게 하십시오.

또 이 교훈이 혼돈되면 안 되는데 자꾸 이렇게 저렇게 혼돈이 돼지면 안 되니까 그런 것은 좀 이렇게 묻고 연구를 해 가지고, 꼭 교리와 신조는 몇 가지를 가져야 됩니까? 교리와 신조는 몇 가지를 가져야합니까? 한 가지? 신조도 한 가지, 교리도 한 가지. 진리는 몇 가지나 됩니까? 진리도 하나.

꼭 여러분들이 단일 교리 신조를 가져야 됩니다. 단일 교리 신조를 가지지 안하고 그만 이렇게 단일 교리 신조로 이렇게 나가는 것은 너무 극단적이기 때문에 안 되니까 중간에 가다가 둘 서이 되는 거기서 그만 중단하고 말아서 하는 그것이 전부 인화주의요. 그래 가지고는 실패합니다.

만일 교리와 신조가 둘이 된다고 하면 그 사람 생활은 몇 갈래로 갈라지겠습니까?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두 갈래로 갈라지니까 그 사람은 기회에 따라서 이 길도 가고 저 길도 가고, 그러기 때문에 대개는 학자들이 신앙에 승리한 사람들이 없어.

승리를 못 합니다. 왜? 그 사람들은 배우기를 벌써 세 길 네 길로 배웠으니까.

그전에 내가 말했지만 김현봉 목사님이 박형룡 목사님과 또 박윤선 목사님의 그 모든 저서를 보고 `이 책에는 생명이 없는 책이다. 이 책은 전부 다 생명 없는 책이다. 이런 다 죽은 책이다. 생명이 없는 책이지 이런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말했어.

그래 가지고 서로 시비가 나 가지고 그때 그만 김현봉 목사님이 개혁신학교, 박윤선 목사님이 세운 개혁신학교에 그 강사가 나갔다가서 `나 여기 그라면 내가 와서 가르치지 않겠다 그만 안 가 버렸어.

그거는 뭐이 왜 틀리느냐 하면 이 사람 저 사람을,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해석한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거는 자꾸 이래 거석하니까 어느 길을 가야 될지 모른다 말이오. 그러면 이렇게 저렇게 자꾸 갈래길만 많이 말해 놨으니까. 이러면 그 사람은 앞으로 가면서 제 헝편에 좋은 길만 따라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길로 가는 건 고집을 피우지 안해. 그거 고집이라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잘 구별해서, 어짜든지 우리가 주관가지고 뭘 못 합니다. 못 하기 때문에 이 배우는 데에서 객관의 그 타율을 배워 가지고 그것이 내가 돼서 내라는 사람이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이 돼져야 되지 순교할 사람이 되지 안하고 제가 의지나 각오나 결심이나 그런 것 가지고 순교할 수 있는 데 못 나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기서 배우는 교리와 신조는 바로 이것이 여러분들의 신앙 행위입니다.

그래 뭐 혹 물을 것 없습니까? 의문되는 것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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