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사망의 해

 

1987. 5. 9. 새벽 (토)

 

본문: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다른 데 그전 구역에는 “영생은 곧 이것이니 참 하나님을 아옵고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니이다” 이랬는데 이거 또 이 개역에다가 이렇게 해 놔서 자꾸 고치는 것이 자꾸 이게 좋은 줄 알아서 찬송가도 자꾸 고치기 때문에 우리가 익은 가사도 그만 새 가사를 해 놓으니까 잘 모르겠고 또 좋은 근본 뜻을 고치는 사람 제 마음대로 생각대로 고쳐버려서 성경에 맞지 않는 그런 것도 많아서 우리가 요번에 이 찬송가를 이래 한 것입니다.

찬송가를 우리가 모아 놓은 것은 많은 힘을 들여서 사백사십 몇 곡인가 모아놨는데 그것은 그대로 출판을 해 가지고 지금 이대로 쓰면 뭐 누가 말할 수 없지마는 그것을 이래 개인 개인이 돈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이렇게 판매를 그거 자유가 돼지지 그걸 이렇게 자꾸 찬조금 내고 또 책은 그냥 가져가고 이랄라 하면은 복잡해서 그리 할라 하니까 그것이 법적으로 먼저 모두 통일 찬송 만들어 낸 사람들이 각 그전 찬송가 하던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그걸 사서 자기네들 소유권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하면 남의 소유권을 침해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소송도 걸리고 시비도 하고 이라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만 자기네들이 하면 좋은 대로 은혜되는 대로 하면 될 터인데 그것을 이 잘난 사람들이 꾀를 써 가지고서 돈벌이 할라고 요렇게 하고 오만 저거 사욕 가지고 이래 하기 때문에 이 찬송가 지은 사람들은, 외나 은혜받아 찬송가 지은 사람들은 그 찬송가를 얼마든지 많은 사람들이 부르기를 원하고 있지 그 못 부르도록 제가 돈을 붙여 가지고서 저거 해 안 사면 안 된다는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는 건데 이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가서도 서울에 그 생명사라 하는 출판사가 아주 큽니다. 큰데 서울에서도 아마 한둘째 가거나 그럴 건데 그 출판사에 과장을 제가 만났었습니다, 이번 집회 가서. 집회 왔기 때문에.

만나 가지고서 ‘이 일이 어떻게 되느냐?’ 이라니까 `뭐 시비들이 있지마는 시비해 가지고 시비가 형통치를 못하고 이러고 또 벌써 찬송 지은 사람이 오십 년이 지나가면 누구든지 할 수 있도록 그래 돼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 찬송가 지은 사람들 중에 세상 떠난 사람들이 많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많지 못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그래도 우리는 시비해 가지고서 송사해서 지는 꼴 그런 꼴은 못 보니 그런 일 안 할 터이니까 단단히 좀 알아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인제 알아봐서 그게 되면 좋겠고 그리 안 되면 지금 이 찬송가로 이와같이 계속해 쓸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영에 대해서 영광에 대해서 하고, 그거 다 하나님의 자체에 대해서 먼저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 다음으로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데 생각했기 때문에 그 순서가 이렇게 그 바꿔졌습니다. 그런 것을 잘 이해하십시오.

그러고 지난밤에 영생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이것도 자꾸 누구든지 다 이래 돼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다. 아니고 거기서 깨달음이 각자가 다른데 이번에 가서 공부한 사람들은 알 건데 깨달음이라면 그것이 교리입니다. 교리라 말은 원어로는 도꾸마라 말인데 그것은 깨달음이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교리, 성경에 대해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자기 생명보다 귀합니까 천합니까? 자기 생명과 몸과 소유를 다 깨달은 그대로 바쳐서 살아야 될 것이기 때문에 바로 깨달으면 바로 바쳐 살아서 참 천한 이 땅의 것을 가지고 한없는 영광스러운 것을 바꾸게 되기 때문에 영광이지마는 만일 잘못 깨달으면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잘못 바쳐서 살기 때문에 그것은 전부 자기 뭐 소유만 돈만 헛일 하는 게 아니고 몸뚱이만 헛일 하는 게 아니고 생명까지 다 헛일이 되기 때문에 문제라 그 말이오. 눈을 똑 떠.

이러니까 우리가 이 깨달음이란 것은 이 사람이 저는 이래 깨달았다고 이래 말하고 저래 말하고 자꾸 아무나따나 많은 사람들이 제 깨달음대로 말하는 것을 그대로 아무나따나 뭐 뭐라고 깨닫든지 관계 없으니까 깨닫는 대로 받아들여서 그대로 나는 알고 믿을란다 이럴 수 없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내 생명 그거야 뭐 이래 바쳐도 저래 바쳐도 이래 써도 저래 써도 관계없다. 제 목숨을 아무나따나 바친다는 그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아무나따나 바칠 수 있어요? 목숨을 벌로 바친다면 자기의 소유 다 뺏기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깨달음이라는 중요하다 그 말이오.

그런데 영생은 뭐이 영생인고 하니 어떤 사람에게 한해서 영생을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고 영생은 어떤 사람만이 영생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중생된 자만 영생할 수 있지 중생되지 안한 사람은 천하 인간 다 달라들어도 영생할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걸 알아야 돼요.

영생이라 하면은 ‘생명이라 하면은 그뭐 생명인데 영원히 사는 생명이라면 더 귀한 것 아니가? 생명보다는 영생이 더 귀한 것 아니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 말이오.

생명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생명이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생명이고 영생은 생명 가진 자가 멸망하지 안할 그 생활 하는 것을 영생이라 이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어떤 생활 하든지 생활 하는 거게서 생명이 산 생활이면 영생이고, 생명이 산 생활이면 영생이고 생명이 살지 안하고 우리에게는 죽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생명도 있고 죽음도 있소.

죽음은 뭐 죽음입니까? 우리에게는 죽음이 있는데 죽음은 뭐이 죽음입니까? 죽음은 뭐이 죽음이지요, ○○○씨? 둘째 사망? 또? 하나님과 끊기는 것이 그게 죽음이요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생명입니다.

그러면 영생은 하나님과 연결된 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연결된 자가 영생도 할 수 있고 영생을 할 건데 영생 못 하고 그만 멸망을 할 수도 있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지 후에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것도 영생이면 ‘생명보다 더 귀중하다. 영원히 살기 때문에 귀중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깨닫는 교리가 세계에 십분지 구나 차지하고 있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잘못 하면 다 망하는 거라. 이러기 때문에 이 깨닫는 사람은, 깨닫는 사람은 자기 있는 소유를 다 기울여서 이대로 바쳐 살아요. 천국은 마치 보화를 만난 자가 있는 것 다 팔아 가지고서 보화 있는 그 밭을 산 것과 같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사는 생활에서 영생이 되느냐 영멸이 되느냐? 영생될 수 있는 살아난 것이 다시 죽을 때에 둘째 사망의 해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둘째 사망이 있고 안 믿는 사람은 둘째 사망이 없습니까?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둘째 사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둘 다 있어. 둘 다 있는데 달라.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죄로 말미암아 정죄받아 가지고 죽은 그 죽음이 언제 끝납니까? 죽음이 언제 끝나요?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했는데 그 죽음이, 그 죽음이 언제 완전히 끝나버립니까? 지금 정죄받아 가지고서 사형받아 가지고 있는데 사형받은 것이 이 세상에서 숨떨어질 때에 그때에 이제 그 죽음이 다 완전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째 죽음이요, 안 믿는 사람들.

첫째 죽음.

그라고 난 다음에, 그러면 첫째 죽음은, 죽음은 벌써 날 때에 정죄받아 가지고 났기 때문에 그때부터 죽은 자인데 그 죽은 자가, 죽은 자의 그 죽음이 그게 첫째 죽음인데 첫째 죽음이 언제 끝나느냐? 세상 뜰 때에 끝납니다.

그러면 둘째 죽음은 뭐이냐? 죽은 것이 이다음에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 가지고서 이제는 참 심판 받아 가지고서 완전히 영원히 다시 멸망받는 그것을 가리켜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것을 가리켜서 둘째 죽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믿는 사람의 죽음은 어떤 죽음인가? 믿는 사람은 이미 정죄받아서 죽은 것이, 죽은 것이 예수님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그 죽음이 다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니까 죽음이 끝났는데 죽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살아났습니다. 영은 완전히 살아났고 또 이 심신은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법적으로 살아났고, 법적으로는 살아났지마는 실상으로는 살아났지 못했지만 법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법적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살아난 그것을 벗지만 안하면 다시는 안 죽습니다.

벗지만 안하면 안 죽는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난 대속의 공로를 벗어버리면 죽는다 그 말이오. 그러면 이 현실에서 자기가 이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사느냐 벗고 사느냐 이게 문제인데 벗고 살면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고 입고 살면은 영생합니다.

벗고 사는 거는 뭐이냐? 벗고 사는 것은 현실에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열한 가지를 입고 열한 가지를 입은 자로 열한 가지 생활로 사는 것이 그것이 영생이라. 입은 열한 가지를 휘떡 벗어버리고 안 믿을 때와 같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의 법칙으로 사니까 예수님의 대속은 상관이 없다 말이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벗고 살아.

이것이 뭐이냐 하면은 “네가 흰옷을 사서 입어” 하는 그 흰옷은 뭘 말합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이 심신이 입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입으면 대속을 입은 자는, 수치가 죄가 수치 아닙니까? 대속을 입고 있으면 그에게 흠점이 있습니까? 완전한 의요.

죄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이랬는데, 영은 대속을 입고 있지마는 육으로는, 중생된 자가 대속으로 살지 안하고 그날 악령대로 삽니다. 자기 중심인 그 악령의 감화대로 살고 악성으로 삽니다. 자기 중심의 인간성을 가지고 삽니다. 악습으로 삽니다. 자기 중심으로 산 그 버르징이 모양으로 그 버릇대로 삽니다. 그 습성대로 삽니다. 이라면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사요 벗고 사요? 벗고 삽니다. 그러면 벗고 산 그 심신의 기능도 살려줘야 된다 말입니까? 상관이 없어. 그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택자의 둘째 사망은 언제 하고 있느냐 하면은 이 세상에서 현재 하고 있고 안 믿는 불택자의 둘째 사망은 언제 둘째 사망합니까? 부활해 가지고 그 다음에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것입니다. 요걸 똑똑히 배워야 돼요.

이래 놓으니까 어떤 사람이 제딴에는 아는 척하고 이래 편지를 했는데 제 이름이나 좀 기록했으면 좋을 건데 엉큼하게 이름을 기록하지 안했기 때문에, 이름도 기록하고 전화도 기록했으면 내가 고맙게 생각해서 그걸 잘 가르쳐 주고 이랄 건데 요 살며시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안하고 전화번호도 가르쳐 주지 안하고 저는 딱 숨겨 놓고서 뭐 제딴에는 이거 뭐 나를 위해서 숨겨 놓고 하는 것처럼 이렇게, 나 위하는 것은 뭐이 나 위하는 것이냐? 틀려도 옳다고 찬성해 주는 게 위하겠소 나 틀린 것을 틀렸다고 지적해 가지고 그것을 죽기 전에 고치도록 하는 것이 위하는 것이겠소, 저 뭐꼬 ○○○? 고치구로 하니까 그게 은인이고 내 선생님이지.

그 사람은 모두 다 아는 게 꺼꾸로 알았어. 그 사람이 여기 지금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여기 없는 것 같애. 그런데 자기 이름을 기록해서 나한테 좀 전달해요. 그라면 내가 그것을 바로 가르쳐 주지마는 이름을 숨겨 놓은 그자에게는 그 벌써 마귀 방법으로 하고 있는데 내가 그걸 말해 줄 수가 없어.

죽든지 살든지 그대로 내비둬야 되지 뭐 제가 제대로 해야 되지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다 그거요.

그런데 여게는, 영생은 뭐이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랬어. 하나님이 누군지 참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이유가 뭐인가 이것을 알면, 이것을 알면 다 영생해요. 이것을 알면 영생해. 이것을 알면 영생하지. 이것을 알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곧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지 엉뚱한 짓 안 해.

이래서, 어떻게 하면 내 전부를 다 바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서 할 수가 있겠느냐? 그거는 네가 참 하나님을 알고 보내신 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네가 알게 되면 영생하는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과 이웃 위해서 살 수 있다 그 말이오.

또 요한복음 6장 54절에 보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산 자들로 하여금” 뭐라 했습니까? “다시는” 그 다음에.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대신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게 하려 함이라” 이랬어.

이러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을 자꾸 연구하고, 입으로 예수님의 피를 먹어? 예수님의 피가 여기 있어야지, 뭐? 예수님의 살이 여기 있어야지? 예수님이 나 위해서 대속하신 그 공로를 설정할 때에 얼마나 힘이 들어서, 하나님 공심판 통과가 얼마나 힘들며 우리가 영원한 사망하는 데서 사망을 대신 형벌받았으니까 얼마나 한가 이것을 자꾸 새기고 새기고 해서 새기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을 자꾸 연구하니까 뭐이 생겨집니다. ‘이렇게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구나. 이렇게 해서 죄를 사해 줬구나.’ 이러니까 차차 차차 힘이 나오는 것은 죄를 범하지 안할 힘이 나고 죄를 대적할 힘이 나고 죽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다는 그 힘이 자꾸 난다 말이오.

그것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어서 얻는 힘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연구하니까 자꾸 나오는 힘이라. 이라면 거기서 참말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확실히 믿었다면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으로 인해서 살지 돈으로 인해서 살거나, 자기를 인해 살거나, 인간 위해 살거나, 자기 성질 위해 살거나, 자기 몸뚱이 위해 살거나 생명 위해 살 수 없고 주님 위해서 살지 안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이것을 가리켜서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러면 자기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참으로 자기가 믿는 자인지 아는 자인지 하는 그것은 뭘 보고 아느냐? 열매 보고 알아. 무슨 열매? 그거 무슨 열매 보고 압니까? 무슨 열매? 무슨 열매 보고 알아요?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게 열매라. 그게 없으면 거짓말쟁이라 그 말이요, 거짓말쟁이.

이러니까 주님의 대속을 자꾸 생각하고 연구하고 내가 실감으로 느낍니다. 그러면 죄의 형벌을 대신하는 데에 그 죄값은 사망인데 그 얼마나 고난당하신 그것을 자꾸 생각하고 의를 행할 때는 또 우리가 이거 뭐 한 가지 의만 행해도 거석하는데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다 대신 행할라 했으니까 어려움이 얼마나 어렵겠나? 그러니까 하나님이신 사람이신 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 법을 행하기 위해서 하다가 죽으셨다 말이오. 행하심으로써 다 바쳐서 죽었어.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와 살은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의 입법하신 그 입법을 행함으로 죽었어, 행함으로. 행함으로 끝났다 말이오. 행함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 정죄하지 못해. 행함으로 끝났기 때문에 다 행한 게 됐고 또 우리 형벌을 대신해서 형을 받다가서, 형을 받다가서 형받음으로 죽어버렸어. 이라니까 끝나버려. 우리 위해서 대신해서 죽어버렸어. 끝났어.

그랬는데 살린 것은 “하나님께서 그 많으신 긍휼대로” 죽어서 그대로 두면 죽어버리는데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사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 이랬어.

이러니까 우리는 아무래도 영생을 가지지 안하면 우리 심신의 기능은 다 타버립니다. 이걸 마귀란 놈이 제일 싫어합니다. 어찌 됐든지 우리 심신의 기능이 다 구원을 받아야 되지 심신의 기능이 구원받지 못하면 안 된다. 심신의 기능이 구원받지 못하면 둘째 사망의 해로써, 예수님의 공로를 벗어버렸으니까 안 믿는 사람 된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공로를 벗어버렸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과 같애.

예수님의 공로를 벗다니? 네것은 네것대로 있고 너는 네것이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벗어버리고, 대속의 공로를 입으면 네가 고난도 당하고, 어려움도 당하고, 박해도 당하고 이랄 터이니까 박해당하지 않기 위해 예수님의 공로 휘떡 벗어버렸고 예수님의 공로의 법칙대로 사는 것 다 벗어버렸고 또 네 몸뚱이 네 맘은 뭐 그거는 네건 네것인데.

그라면 암만 물건을 샀다가도 돈 안 주면 물건은 그 상점 주인의 물건이고 돈을 안 주면 돈은 내 돈이고 그럴 것 아니겠소? 돈을 주면 물건은, 돈은 그 사람 돈 물건은 내것 된다 말이오. 내 모두를 주님에게 바쳐 주님의 것 되면은 주님의 대속하신 것은 내것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렇게 되지 않는 것은 다 멸망이라 하면은 바로 되기 때문에 마귀란 놈이 이것 때문에 지금 죽을 지경이라. 이러니까 요번에 대창골에서 가 가지고서 이래 하는 것 마귀는 막 죽을 지경입니다. 죽을 지경이라.

이러니까 무지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여게서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셨다, 인간이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하는 것을 표적으로 이번에도 고기덩어리 병 나은 것은 내가 올 때까지는 한 사백 명밖에는 안 되는데 이번에 한 오륙백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시고 있고 또 마음병이니 그런 거 고친 거는 말할 수 없고, 많고. 이게 뭐이냐? 하나님이 말씀했다 하는 증거라. 이거는 하나님이 말씀했다는 그 증거라 증표라, 그게.

표적이라.

이랬는데 다른 데에서는 그걸 그렇게 가르치지 안해요. 가르치지 안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다 우리 심신 기능은 다 하늘나라 가고 영육이 다 하늘나라 가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가지 뭐 자기에게 예수님만 믿으면 되지.’ 믿으면 된다 말하면 믿는 게 어떤 게 믿는 것인지, 또? 믿는 게 또 그 해석이 문제라. ‘나는 예수 믿는다’ 하면은 다 믿는 것으로 이래 또 해석하는 사람 있고, 예수 믿는 것은, 그 이름을 믿는 것은, 이름이라 하는 것은 행적이라 말했지요? 예수님의 이름이라, 이름을 믿는다는 건 예수님의 행하신 모든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그대로 복종하는 것을 믿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이름 믿는 것.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하신 것을 자기가 깨닫고 대속했으니까 자기는 주님의 것이고 주님의 대속은 자기 것으로 이게 법대로 바로 되는 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그 말은 틀렸느냐? 맞아요. 맞은데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게 어떤 것이냐 그게 인제 문제라. 그 믿는 걸 ‘나는 예수 믿는다’ 그 말 한 마디에다 다 된 줄 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요번에 우리 집회에서 가르치는 걸 마귀란 놈이 아주 죽을 지경입니다. 마귀란 놈이 죽을 지경이니까 방해는 백방으로 방해해요.

방해하지마는 하나님이 그 방해를 막기 때문에 이번에도, 거기 온 사람이 누가 또 말하기를 ‘얼마나 왔느냐?’ 사천 왔다 하는데 그거 거짓말쟁이라. 어짜든지 그거는 지금 줄여뜨려서 말하는 거라. 그 정식대로 말해야지. 줄여뜨려 말하는 그거 거짓말쟁이, 과장한 거 아니라? 목사들 가운데 그런 목사 많아요. 그 속에 심보를 주님이 다 알아요. 이번에 그전에 나온 배 왔습니다. 이번에 그전 집회에 모였던 배가 모였어. 그 위에도 천막 안에 다 들어 가지고 있어요. 강사실 뒤에도 천막 속에 다 들어 가지고 있어.

이것이 뭐이냐?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기 때문에 마귀란 놈이 이렇게 반대하는 걸 지금 당신의 능력으로 해 가지고서 지금 이 말씀을 가르치고 있고 또 당신이 가르쳤다는 것을 표적으로 뭐이냐? 수백명의 자기 본인이 알다시피 그 병이 낫게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하신 증거 아닙니까? 누가 안수를 했소, 막 주물랐소, 안마를 했소, 뚜드렸소? 하나님 말씀 듣고 그대로 잘못된 거 회개하고 그대로 살라 하니까 다 나았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하신 일 아니겠소? 이렇게 하나님이 이렇게 하셔도 강퍅한 것들은 예사라. 그 소리도 듣기 싫어.

이거 뭐 이래 가지고 거기서도 우리 진영에서도 일등 목사들이 다 ‘그거 너무 그래 가지고 자꾸 그라면 병낫는 것만 자꾸 그래 위주로 하고 이래 돼 버리면, 그만 우리가 진리 가르치고 있지만 병낫는 것 위주하면은 병낫을라 하는 사람들만 오면은, 자꾸 병신들만 와아 와 가지고서 그 병신들 와 가지고 여기서 죽고 어짜고 하면 그 송장을 어떻게 하며 장례는 어찌 되며, 어찌 됩니까?’ 그거 걱정할 것 있어? 우리가 오라 했어? 하나님 말씀만 가르치는데 말씀만 가르치는데 죽었으면 천명 만명이 죽었으면 무슨 상관이 있어, 그거야? 하나님이 상관하지. 그 요럴딱 조럴딱 하는 거 가지고서 마귀 말을 자꾸 하고 있다 말이오.

또 그것은 말하기 싫어. 말하기 싫어서, 저거에게, 저는 낫지 못해. 저 설교하는 데는 안 나으니까. 저 설교하는 데는 낫지 안하니, 이제 안 나아야 되는 건데 나으니까 탈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나은 것을 반대하고 이래 가지고 자꾸 말하지 못하도록 이래 가지고서 말하지 안하는 눈총을 주고 입을 쥐박고 이라니까 ‘아이고, 이 말하면 우리 목사님은 싫어할 터이니까 말 안 해야 되지’ 이런 것을 다 교인들이 다 알고 있다 그 말이오.

모여서 물론 그랬지마는 예수님 당시 사도들 당시에도 한군데 집회에 모여서 할 때에 거게서 사백 명이고 오백 명이고 육백 명이고 칠백 명이고 그래 병나은 그런 일이 성경에는 기록돼 있지 안해. 그때는 됐는지 몰라도 그저 무슨 병 무슨 병 몇 사람 낫는 그게 기록돼 가지고 있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병 낫는 게 기록돼 가지고 있지 안해. 이 말세지 말이라 지금 하나님이 크게 역사하지마는 인제 예사라.

내가 대구에 있으니까 아이를 하나 떡, 한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이나 먹겠어요.

이거는 앉지도 못하고 이런데 이 늘어져 가지고서, 얼굴은 예쁘게 생겼어. 늘어져 가지고 이래 쭉 늘어진 걸 이래 그 아버지하고 둘이 이래 들고 왔어요, 이래. 들고 왔는데 이거는 나한테 기도해 달라고 이래 가지고 이거는 뭐 병원에 암만 다녀야 안 되지 또 똥도 꼭 그거 눌라면 그냥 또 못 눠. 똥도 누면 똑 병원에 가서 뭐 관장인가 뭐인가 해야 누고 자꾸 이래.

이러니까 이래 기도해 달라고 왔어. ‘여기는 목사 기도해 가지고 낫는 거 아니고 제가 기도해 가지고 낫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 듣고 회개하고 기도하면 낫는 것이지 목사가 기도해 낫는 거 아닙니다. 내가 여기서 그라면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나 기도 못 해 줍니다. 가서 말씀 듣고 잘못된 거 있으면 회개하고 그대로 믿고 살기로 작정하십시오.’ 이래 보냈다 말이오.

이랬는데, 쑥떡을 해 가지고 왔어. 쑥떡을 아주 잘했어요. 그래 내가 쑥떡을 거기서 한끼에 두 개씩도 먹고 이래 먹었어, 계속해 먹었어. 또 여기 와서도 또 먹었어요, 가져와서.

이랬는데 그 쑥떡을 ‘어짠 쑥떡이냐?’ 이라니까, 그 아이 어머니가 가져왔어.

`어제 우리 언니가 대구에 있는데 와서 보고 아이가 낫는 걸 보고,’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안했는데 자꾸 나아서 똥도 누고 이래 뭐 밥도 먹고, 이래 뭐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이래 가지고 차차 자꾸 낫는대 나을 것 같애. 거의 많이 나았어요.

이러니까 언니가 보고서 신기하다 하면서 그래 가 가지고서 자기가 부랴부랴 떡을 해 가지고 왔다고 이라면서 많이 가져왔어요. 그래 가지고 그 떡을 잘해서 아마 지금도 오층에 남아 있을 거라. 이런 것도 예사라.

다른 사람들은 말이지 그걸 숨겨. 나는 자꾸 나타내는 거라. 그거 내가 그 한번도 하나도 읽어보지 안했기 때문에 뭐인지를 모르지마는, 귀가 트이니까, 귀가 트인 할머니가 썼더래요. 어떤 할머니인데 이래 뭐 탁 거리더니마는 막 떠들어 쌓고 난리 났는가 싶어 눈이 뚱그래 이래 하니까, 귀가 열려 놓으니까 안 듣던 소리가 들려 놓으니까 그만 그런 거라. 그 터질 때에 턱 거리더니마는 그래 터지더라는구만.

이랬는데 또 요번에는 다리가 아파서 오그리지를 못하니까 쭉 뻗어 가지고 막 뚤뚤 뭉쳐 가지고 이래 있는데, 뭉쳐 가지고 있는데 나와 보니까 어째 언제 나았는지 다 나아버렸어. 그래 나은 사람 많아요.

우리 큰딸도 학교 다닐 때 벌써 고막이 터져 가지고서 어릴 때에 귀를 앓아 가지고 그걸 잘 치료 안 해 주니까 아주 녹아버리고 고막이 녹아서, 왼귀, 이 왼귀가 아주 그만 깜깜해 안 들리요. 안 들리니까 언제든지 말할 때는 이래 살며시 오른 귀로 돌려 대 가지고 이라니까 지혜있게 해서 그 귀머거리 소리 안 들을라고서 이래 살았는데, 이번에 어찌 이상하게 좀, 소리가 여기서 말하면 안 들리는데 거기서 해도 저기서 말해도 들리고 어째 그런지 들려서 ‘이거 어째 이런가?’ 그래 옆에 사람에게, 뽈끈 막고, 이거 막으면 그전에는 하나도 안 들리고 먹통인데 뽈끈 막고 이라니까 조그매 말해도 들려.

그래 나한테 와 가지고 ‘아버지, 내가 이상합니다. 나한테 한번 말 한번 해 보이소.’ 요 보니까 요래 뽈끈 막아. 그거 내가 보고 인제 그런 거 같애. 뽈끈 막더니마는, 내가 있다가서 그래 ‘순희야’ 이라니까 ‘예’ 또 내가, `한번 더 불러 보십시오’ 해서 더 작게 ‘순희야' 이라니까 `예' 이래. 그만 나아버렸어.

자, 그거 하나님이 하시는 것 아니요? 이러면 ‘만유의 대주재이신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내게 와 가지고 이렇게 착수하셨으니 이분이 나를 아시고 이분이 나를 치료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 이걸 생각하면 한없는 것이지만 예사라. ‘삼백 명 나았어? 사백 명이 나았어? 칠백 명이 나았어?’ 얼마나 강퍅한지? 여게 대해서 말을 해도 듣기 싫어합니다. 이거 말하면 듣기 싫어해요. 이번에 그걸 가지고서 그때 누가 읽어 놓은 녹음이 있지? 녹음돼 있지? 녹음돼 있는 거 녹음을 할라 해도 모두 듣기 싫어할 판이고 이래서 그걸 녹음으로 재독도 하지 못했어요. 읽지도 안했어요. 그렇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싫어하는 거라.

이런데 순복음교회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유가 뭐이냐? 하나만 나으면 그걸 마구 사진을 박고 글을 내고 이래 가지고 막 간증을 하고 전국에 돌아다녀.

전국에 그걸 해 가지고 돌리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이렇게 자랑하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 하시는 것을 보기 싫고 마귀 하는 일은 보기 좋아하니까, 저거가 하는 일 이 세상 하는 일은 보기 좋아하고 이라니까 하나님의 은혜 같이 하지 않지.

이렇게 우리가 바로만 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같이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게 하느냐 노엽게 하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지금. 이래 가지고 이대로만 하면 하나님께서 뭐 얼마든지 부자도 만들고 다 줄 것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제가 믿고 체험해야 됩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말이요 우리 ○○○집사님이 앉은뱅이거든. 늘 끌고 다니지 안해? 그러니까 ‘하나님이여, 앉은뱅이나 모두 다 알지, 몇십 년 앉은뱅이로 있었던 그 앉은뱅이가 훌떡 일어나 가지고 뛰어 돌아다니면 다른 사람이 좀 눈이나 좀 깜짝 놀랠까 그뭐 자기만 알지 무슨 병이 나았다 무슨 병이 나았다, 만난 사람마다 전부 병이 다 나았어. 만난 사람마다 무슨 병 안 나은 사람이 없어. 그 아마 수천 명이 나았어. 큰 병이나 작은 병이나 약도 안 먹고 의술로 치료하지 안하고 예배드리는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가운데서 나은 것이면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나은 것은 나은 것이지.

이번에 가서 나은 사람 손들어 봐, 거짓말쟁이 하지말고. 낫고 안 나았다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삼 배나 사 배나 오 배나 더 해서 줘야 분이 풀릴 거라. 나은 사람 손들어 봐, 나은 사람만. 이번에 나은 사람만. 안 나은 사람은 손 들지 말아요. 자, 손 놔요.

○○○선생은 뭐 나았어? 저거 건강한데. 코 속에 며칠 전에 혹이 났는데 나았대요. 그 거짓말 같지 안해? 거짓말 아니야? 저런 사람은 건강한데 코 속에 혹이 났는데 나았다 말이오. 그거 뭐이냐 하면은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게 착수하고 있다. 만유주 하나님 내가 너와 같이 한다는 그걸 자꾸, 표적은, 표적은 믿음 없는 자에게 믿음을 줘서 하나님이 너와 같이 하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 하는 것을 성경에 말했습니다.

또 누가 손 들더라? 누가 손 들었어? 뭐이 나았어. 마음병이 어째 나았어? 작정했어? 그 병은 사소한 병이지, 그거야? 코병 나은 것보다 그게 더 나아? 코병 요량하고, 주를 위서 남은 때, 돈 위해서 뭐 위해 사는데 주를 위해서 살고 싶은 그 마음병 고친 그거는 코병 고친 것 여러 억억만 배도 더 됩니다. 안 그래요? 실은 요번에 그거 모두 다 영이 약해서 심신을 제 맘대로 제어하지 못하던 거 제어하게 된 것, 또 자기 마음에 이 모든 전부 생활한 거는 다 거두면 땅에 퍼져 가지고 있지 하늘에 있는 건 하나도 없어. 자기 생활은 전부 다 땅에 퍼져 가지고 있는데 이거 전부 똘똘 뭉쳐 하늘을 위해서 살고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만 생각하고 땅엣 것 생각지 안하는 이 마음은 큰 마음병 고친 것 아닌가? 이 마음병 고친 사람, 자, 요번에 병 고침을 받은 사람 손들어 봐, 한번. 안 고친 사람 사람은 들지 마.

안 받은 사람은 들지 마. 안 받은 사람은, 받고 안 받았다 하는 사람은 오 배나 십 배나 도로 뒤로 후퇴해서 더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고 싶어.

○○○권사님은 그 병은 못 고쳤지? 안 고쳤지? 안 고쳤지? 마음병이 고치니까 그전보다 거기 갈 때보다 더, 오십 배나 더 되는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되지, 고쳤다고 손 안 들었으니까.

영병 마음병 고기덩어리병 이거, 고기덩어리병도 이게 고기덩어리 이놈이 죄짓던 그 습성 그 못된 버르징이 그거 고치는 것이 이 고기덩어리 병에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이제 코에 뭐 혹난 거 또 뭐 나은 거 다리가 뻐들거린 거, 내가 보니까 전부 병 다 나았어, 뭐.

이런데 이것을 감사한 줄 알고 주님이 있다가서 이거 숨기라 했어요 숨기지 말라 했어요? 혈루증 여인 보니까 숨기고 있으니까 주님이 숨기는 대로 둬 뒀어요 그걸 드러낼라 했어요? 예수님이 드러내지 안했어요? 그거 성경에 드러내지 안했어요? 드러냈는데 드러내는 것 예수님 ‘예수님이 이런 권능 있다’ 예수님 당신 위해서 드러냈는가 그 환자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드러냈는가? 어째 드러냈어? 이걸 알아야 돼요.

이러니까 영생할라면 어짜든지 자기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 다해서 주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사랑하는 요거 아니면 영생 안 됩니다. 요거 아니면 영생 안 돼. 제까짓 게 암만 전도를 많이 해도 영생 안 되고 요거 돼야 요게만 영생이 됩니다. 요게만 영생이 돼.

이러니까 이 영생할라면 이걸 다 바쳐 살아야 영생이 되는데 다 바쳐 사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참 하나님을 알고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은, 알면은 영생 안 할 수 없어. 알면은 다 바쳐 살지 안할 수가 없어.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 주님의 피와 살을 자꾸 연구해서 주님이 어떻게 피를 흘렸으며 어떻게 살을 찢었는가 하는 이것을 자꾸 연구해서 다 알고 난 다음에 자기의 전부를 기울여서 바쳐서 살지 안할 사람 하나도 없어.

이걸 가리켜서 천국은 마치 보화와 진주를 만나는 사람이 알고 난 다음에는 가서 자기 있는 것을 다 팔아 가지고서 그것을 사기 위해서 다 판다.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친다. 안 그런 사람 없어. 그 바쳐지지 안하는 사람은 발견 못한 사람이라 그 말이오. 아직까지 영생을 모르는 사람이오.

이렇게 해도 그 예사로 듣고, 이번에 받은 바의 그 말씀을 여러분들이 자꾸 새김질해야 됩니다. 편집실에 누가 있노? 복사 누가 해? 나 복사 그거 네 벌 해 줘요. 네 벌을 해 줘. 좋은 걸로 해 줘, 내가 돈을 드릴 터이니까.

왜? 나도 좀 인제 좀 혈육을 사랑해야 되겠어. 내가 요번에 나올라 하다 못 나와서 여름에 나온다 하는데 이거 한 벌씩 돈이 들어도 사 가지고 가서 보라 해야 되겠어. 이거 뭐 여러 수억만 금 주는 것보다 나아. 지금 오늘 마련해 놔요, 오늘 갈지 모르기 때문에.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사는 게 여기 있어. 모르는 사람이야 모르지. 모르는 저는 암만 해 봤자 땅의 것 보고 사는 건 소용이 없어.

이제 여러분들도 테이프를 사든지 해 가지고서 혼자 개인으로 말고 구역에 사 가지고서 자꾸 요번에 그걸 몇번이든지 재독해야 됩니다. 재독해서, 그거 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 나는 내가 증거 안 해. 내가 그 설교한 것이 뭐 준비한 것 하나도 없어요. 그때 그때 주님이 주시는 그 말씀 내가 했지 내가 한 거 아니라. 나중에 하고 나서 보니까 하나님이 하셨고 이거는 참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셨지 내가 뭐 책 보고 뒤적거리며 그 내가 선택한 거 아니라. 주님이 선택했고 주님이 또 그때 그때 알려 줘서 했지 나는 그거 그렇게 할라고 하는 그거 아니야.

지극히 큰 전지의 지혜와 전능의 능력을 우리에게 줬는데 몇이 협력해 가지고 줬어요, 손가락으로? 여기 남반은 다 갔던 사람이로구만, 보니까. 이것도 제가 평생 성경 만 독 읽어도 안 됩니다. 몰라요. 하나님이 알려 주셔야 알지. 이러니까 세계 신학자들의 이거 견해가 다 다릅니다. 요렇게 하는 게 없어. 이게 틀렸는가? 알고 보면 틀리지 안해. 알고 보면 딱 들어맞아. 알고 난 다음에는 맞았지마는 처음에는 이것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 말이오.

일곱이 협력해 가지고 줬는데 몇이 받았어요, 그라면? 육인 심신이 받았어. 영은 벌써 중생될 때 다 받아 가지고 있어.

그러면 영은 받아 가지고 있으면 영은 우리 심신이 이걸 알도록 하기 위해서, 전지 전능을 알고 전지 전능을 자기 것을 삼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데 우리 영은 어쨌어요? 영은 누워 자고 있었어요? 우리 영은 어째요? 우리 영은 뭐 했어, 그때? 중생된 우리 영은 뭣 했느냐고, 그러면 그때? 뭐 했어? 아무도 몰라요? 영은 뭘 했는고, 그때? 이 심신에게 이 전지 전능을 알리고 또 전지 전능을 제것 만들어 가지고 전지 전능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는데 그때 하나님과 성령과 진리는 역사했는데 우리 영은 뭣 했지요? 잤어요 어데 갔어요? 뭐 했어, ○? 그때에 자기 심신에게 알릴라고 역사한 것이 우리 중생된 영이라. 이러기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가르쳐 준다고 이렇게 말했지.

참 보배 진주를 하나님이 주셨는데 잘못 믿으면 뒤에 가서 벌은 더 큽니다.

봐, 오늘 아침에 보니까 사람이 이래 안 와. 뭐 한다고? 에이고, 참 답답한 일이지.

어짜든지 받은 바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아요. 놓지 말아요 요번에는, 변화받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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