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1980. 12. 7. 주일오전

 

본문: 요한복음 5: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우리 구원의 근원부터 유래를 증거하겠습니다. 우리 구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고 하니 영원전 홀로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시작된 구원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떠나서 멸망된 것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옴으로 살게  되는 것을 가르쳐서 구원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종교에서 말하는 그런 하나님과 다릅니다. 모든 철학에서도 그 이상이 없는  이디아를 주장을 하고 또 중국에서도 이 큰 하늘 가운데에 주재되는 분이라고  그렇게 그들도 말을 하고 또 일본은 이 하늘가운데에 주인되는 신이라  우중주신라 우주가운데에 주인되는 신이라 뭐 이렇게들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가지고 판단해 볼 때에 그는 다 알지 못하는 말이요.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은 전혀 모르고 다 인간 생각대로 이러리라는 추측 추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 나타낸 그 지식에서 밝히 들어내서  하나님께서 알리러 하는 자들에게는 바로 알리시는 그 역사가 있어서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말하면 하나님은 영원전 홀로 계셨습니다. 또  홀로 계신 것이 어떤 것으로 인하여 계심이 아니고 스스로 계신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영원전 스스로 홀로 계신 자라 말했습니다. 영계 것이나 이  물질계의 것이나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다 있게 된 그 원인이 있어 가지고 있게  됐습니다. 땅도 원인이 있어 가지고 있었고 하늘도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도  원인이 있어 가지고 새겨졌지만은 하나님은 그 존재의 원인이 없고 영원전  스스로 홀로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모든 존재는 그 원인이 무엇인가 스스로  홀로 계시는 이 하나님이 지으신 그것이 그들의 존재의 원인입니다.

원인이 없이 영원전 스스로 계시는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는 지음  받아서 있게 된 것입니다. 무한히 크고 넓고 높고 깊은 영계도 하나님이  지으심으로 말미암아 있게 됐고 이 물질로 되어 있는 이 우주도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만물도 이 하나님이 지으심으로 말미암아 있게 됐습니다. 스스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귀도 의도 죄도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전부는 자존하신  유일하신 이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지음을 받아 있고 또 섭리를  인해서 있게 된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이 하나님은 모든 것의 원인이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자입니다.

이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생겨진 것이 하나도 없고 이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움직이지는 것도 없고 보존되는 것도 없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자존하신  이 하나님이 당신의 본성이신 사랑이 역사해서 사랑의 역사로 사랑의 발동으로  또 이 하나님이 홀로 기뻐하시는 이 기쁨으로 또 하나님의 이 온전하신 당신의  뜻으로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목적은 자존자의 목적이요 자존자의 사랑이 목적하신 바요  자존자의 기쁨이 목적하신 바요 자존자의 온전한 의사로 목적하신 목적인  것입니다. 그 후에 차차 이루워져서 이 목적은 곧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성도로 어목적하신 것인 것을 또 성경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목적하신 이 목적 안에 것을  구원이라 합니다. 이 목적대로의 되는 그것이 구원입니다. 우리는 그때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으로 정한 목적이 있었으니 그때는 하나님의  목적만 있었지 예정도 없었습니다. 창조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그 안에  하나님의 온전하신 온전하심과 그 안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기뻐하심과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람의 사랑하심과 그 안에 영존하신 자존하신 홀로 계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목적이 이 정해지신 것입니다. 이 목적은 원인이 여럿이  있습니다. 이 목적의 원인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이 목적의 원인이요.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목적에 원인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이 목적의 원인이요,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은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서 피조물이지만은 당신과 꼭  같은 자 만드시려는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인데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지의 단독 지혜를 가지시고 영원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영원을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예정은 예정이 무엇 때문에 생겨졌느냐 예정의 근원은 하나님의  목적이요 목적의 근원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기쁨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하나님의 기쁨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정하시고 예정하신 대로 당신이 앞에 지으실 것은  앞에 지으시고 다음에 지으실 것은 다음에 지으시고, 크고 작게 많고 적게 이런  것 저런 것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그대로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일차 창조하신 것도 있고 창조하신 것을 써 가지고 창조하신 것을 통해서  재창조하신 것도 있고 창조하신 것을 써 가지고 창조하신 것을 통해서  재창조하신 것도 있고 하나님이 땅을 지으시고 땅으로 말미암아 땅위에 사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고 바다를 지으시고 바다로 통하여 바다로 바다를 통하여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지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일차 창조의 것을 가지고  재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에  창조하신 것이 있고 그후 오늘도 앞으로도 이미 지으신 그것을 가지고서  재창조는 계속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재창조를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있게 됐느냐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그때에 우리는 창조 받은 그 사람으로 통해서 때를 따라 창조를 받도록 되어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래 사람은 두 종류로 분리할 수 있으니 하나는 하나님이  목적하신 이 목적 때로의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있고  목적 안심이 목적에 원인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이 목적의 원인이요,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은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서 피조물이지만은 당신과 꼭 같은 자 아  만드시려는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인데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지의 단독 지혜를 가지시고 영원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영원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예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예정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영원을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지의 단독  지혜를 가지시고 영원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영원능력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예정을 예정이 무엇 때문에 생겨졌느냐 예정의 근원은  하나님의 목적이요 목적의 근원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기쁨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하나님의 기쁨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정하시고 예정하신대로 당신이 앞에 지으실 것은 앞에  지으시고 다음에 지으실 것은 다음에 지으시고 크고 작게 많고 적게 이런 것  저런 것 저런 것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그때로 창조를 을 하신 것입니다. 일차  창조하신 것 도 있고 창조하신 것을 써가지고 창조하신 것을 통해서 재창조하신  것도 있고 하나님이 당을 지으시고 땅으로 말미암아 땅위에 사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고 바다를 지으시고 바다로 통하여 바다고 바다를 통하여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지었습니다. 이런 것은 일치 창조의 것을 가지고 재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습니다. 엿새 도안에 창조하신 것이 있고  그후 오늘도 앞으로도 이미 지으신 그것을 가지고서 재창조는 계속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재창조를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있게 됐느냐 하나님이 예정하신대로 사람을 창조하실 그때에  우리는 창조받은 그 사람으로 통해서 때를 따라 창조를 받도록 되어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래 사람은 두 종류로 분리할 수 있으니 하나는 하나님이  목적하신 이 목적 때로의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있고  목적 안에 창조한 것이 있고 하나는 이 목적 밖에서 목적을 위하여 이용되도록  목적이 이루워 지도록 목적의 것을 위해서 지음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게 사람은  두 종류로 창조 됐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지음을 받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영원전  그리스도안에서 택함을 입었다 택함을 입지 못했다 이렇게 성경에 구분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세 가지 역사하는 그 직책은  가진 그 직책 이행을 책임 맡은 하나님을 가르쳐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이름했습니다. 한 하나님이지만은 한 하나님이 이런 직책을 맡았을 때에는 이런  이름을 을 이름으로 나타났고 저런 직책을 맡았을 때에는 저런 이름으로  나타났습니다.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유한의 것을 가지고는 비유로 할 수  없지만은 한 사람이 호주로 나타날 때도 있고, 남편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아버지로 나타날 때도 있고, 이렇게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면에 역사하실  때에는 이름을 이렇게 나타냈고 또 저 면을 역사할 때면 이름을 저렇게 나타내서  그리스도라 말은 사랑의 완전이요 지혜지식의 완전이요 능력의 완전을 이루는 그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쳐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달성할라고  하신 이 목적 안에서 지음 받았다 그말입니다. 목적 안에서 택함을 입었다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았다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정하시고 창조를  하시고 그 후에 하나님이 이제는 예정하신 때로 섭리를 하십니다. 섭리하신다  말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 하늘을 지으셨다  땅을 지으셨다 그렇게 지으신 그 속에 하나님이 운행하시더라 하나님이 거게  다니시더라 운행하시더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속했습니다.

하나님 모든 존재는 영계나 물질계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지음 받은  것들이 예정대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이 섭리대로 이렇게 저렇게 보존되고  운행되고 파괴되고 건설되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중에서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때로의 그 온전한 사람을 만드시는 데에는 온전한 지혜와  능력과 온전한 성품을 가진 것이여야만 하는데 온전한 지식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모든 창조하신 만물을 사람들에게 온전한 지식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이 실물로 가지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실물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그 뜻도 하나님의 성품도 하나님의  그 역사도 깨닫을 수 있도록 그렇게 실물을 가지고서 알도록 인물을 지었습니다.

이러기에 이 만물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자연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모든  자연들을 가지고서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후에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으로서 하나님과는 세로 갈라지게 됐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삐뚤어지니까 하나님과는 대립이 됐고 삐뚤어지게 한 하나님과  삐뚤어져 있는 자 뱀 곧 마귀 마귀로 더불어 하나 가 되었고 하나님은  배반하게됐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시조의 범죄요 이 범죄는 보통 생육법으로 나는  아담의 전 자손을 대표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한 것이기 때문에 아담이  계약을 어긴 것은 보통생육 법으로 나는 모든 사람은 이 어긴 계약에 동참해서  정죄함을 받았다. 이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런 것을 다시 하나님께서 실물 교재를 가지고 이 목적 달성에 실패한 것을  거게에다가 특별계시인 영감도리를 을 주시가지고서 일반계시에서 모르는 것을  영감도리로 알도록 육십 육 권 성경으로 아는데에 보충을 하고 육십 육 권  도리로도 보지라는 것을 이제는 성령님이 직접 감화감동으로 가르치는 것으로서  지식에 온전함을 이루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라고  난다음에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인간이 알게 됐습니다.

거게서 사람은 영원히 사망하게 사망했는데 사망을 영은 당장 사망했고 육은  서서히 사망하는 이 사망속에 들어있던 우리들입니다. 어떻게 해서 사망하게  됐는가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존귀한 천사장의 그 자위를 범죄함으로 다 잊어  버렸고 거게는 타락해서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 그 타락한 천사 곧 마귀 이  마귀가 그때는 이 우주밖에 영계에 있었는데 이 마귀가 우주 안에 들어와 우주의  주인공이 되는 아담과 해와을 유혹시켜 가지고 해와는 이 마귀에게 유혹을 받고  아담은 해와에게 유혹은 받아 인류라는 것은 이 마귀에게 유혹받아 마귀에게  정복을 당했고 마귀는 익여 마귀에게 짐으로 마귀의 것이 됐습니다.

이래서 마귀는 세상의 왕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면 이대로라면 하나님의 목적은 실패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을 하나님님이면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서 꼭 하나님과  같은자 되어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때리 행위를 할 수가  있고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고 위임 통치할 수 있도록 이렇게  지으려 하는 것은 마귀에게 패전해서 실패한 것입니다.

게 하나님이 이제는 당신이 하나님이면서 피조물의 형상을 입으시고 피조물되어  오시가지고 인간이 마귀로 더불어 대결해서 마귀에게 패전한 이 패전을  예수님께서 이제는 마귀로 더불어 싸워서 이기야 마귀에게 구출할 수가 있고 또  죄값은 사망인데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원수되고 사망되었고 한 것을 이 형벌을  받아 야 여게서 구출할 수가 있고 또 이 인간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이  요구를 다응해야될터인데 요구를 하나도 응하지 아니함으로 죽은 택자의 이  순종치 못한 것을 예수님이 때신 순종해서 하나님의지공법과 지성법에는 형을  받아서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서 조는 그 죄에 때한 정당한 형을 받으면 그  죄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순종에는 순종의 요구에 만족안 그 순종이  이루워지면 이제 불순종으로 대립되어 있는 것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로마인서 8장에 보면은 인간이 이루지 못한 율법의 의를 예수님이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밖히셨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가지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원수되어 있는 이 원수의 난제를 주재자와 원수되어 있는 이  난제를 하나님이 사람입고 오시가지고 원수의 입장에서 원수된 그 벌과 형과 그  댓가를 다 받으시고 받으시되 예수님은 그댓가의 원수의 댓가만 정당하게 다  받으셨지 하나님과 원수되는 그 입장에서지 아니하고 원수의 댓가를 받으시면서  이것을 능가하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이루시는 화평에 재물이 되심으로  예수님이 화목의 제물이 되어가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이루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인간의 타락의 순서를 거쳐 먼 저 하나님을  떠나는 그 값이 어떠하다 하는 것을 하나님의 목적안에 지음받은 자들이 알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에게 순종하면 어찌된다 하는 그것을 먼저 알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에게 거역하면 어찌된다 하는 그 순위를 일차로 해서 여게  때한 지식도 본성도 그 결과도 행동도 있게 하시가지고 먼저 하나님을 어기고  대립함으로 죽는 순서를 먼저 통과한다 할지라도 사는 순서를 맞이할 권리가  없습니다. 죽는 순서를 통과해서 가진 자는 죽는 순서에서 죽은 자는 영원히 죽지  살아나지 못합니다. 죄의 값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이러기에 여기에서 죄를 때신  형을 받은 받는 이 분이 이썽야 되고 또 때신 행할 수 있는 대행의 분이 있어야  되고 원수 된 것을 화목케할 수 있는 이런 중보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일장에 보면은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영원전 자존자시요 모든 만물을 그분이 지으신 분이요  세상도 그분이 지으신 분이요 세상은 그의 것이요 모든 것은 다 그의 것인데  그분이 사람되어왔다고 요한 복음 일장 십사 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목적하신대로 이 온전자 영원자 불변자 영생자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 같은자 이자를 만드시는 그 순위가 일차 순위가 예정이요 창조요 섭리요  하나님을 배반하므올 사망하는 것을 알리는 타락이요 이 타락에서 대속으로 다시  타락하기 이전과같은그 본지위에 올려세운 것이 그것이 사죄와 칭의와 화평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타락 이전의 본지위 그 지위보다 낫은 지위 타락 이전의  지위는 타락할 수 있는 지위이지 만은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가져지게 된 이 지위는 타락 할 수 없는 지위로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하나님의 권속으로 하나님에게 속한자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타락은 이 타락을 택한 자들에게 인식시키서 타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 어기는 것이 얼마나 댓가가 크며 그 어긴 그것은  변동할 수 없 다는 것을 선악과 한개 딱 먹음ㅇ로 대대손의 전인류가 죽고 죽은  이것을 인류가 제일 싫어하고 대항하지만은 이것을 대항해서 피한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여기 그 값이 얼마나 크면 그는 인간이 어떻게  해서라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알린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일타로 베푸신 행동의 사랑입니다. 지음을 주신 것은 지어 주신 것은 우리의  자체에 대해서 은혜주신 것이요 우리에게 때한 하나님의 이 섭리로서 관리  은혜는 일차은혜가 타락입니다. 이 타락이라는 지식을 이 값을 이에 때한  하나님의 지공지성 심판에 절때성의 두려움을 알려주신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만일 이 타락만 아릴고 여기에서 벗어나게 하지를 아니했으면 우리에게는  이것이은혜될 것이 없고 살아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지극히 큰 은혜요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을 어기는  그 값이 얼마나 무섭고 크다는 이 지식을 우리에게 알리는데에는 이 학비가  얼마나 들었느냐 이거 하나 알일려면 얼마나 들었느냐 하나님이 친히 피조물  되어 당신이 정한 법에당신이 형을 받고 당신이 복종하는 하는 당신의  희생이라는 이 학자를 드리지 아니하면 안도리 것을 당신이 작정하시고 이  순서를 거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택한 자의 타락에서 하나님의 사람의 그 높고 깊고 넓은 것을  완전성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고 이 타락에서 우리를 우리의 지식만되고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아니하고 유익이 되게 하시는데에는 당신이 어떤 그 부요로 어떤  영광과 존귀를 어떻게 희생해서 우리에게 이것을 지식으로만 알게 되고 이것에  손해는 보지 않게 손해는 당신이다 담당하시고 지식으로만 이용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 이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 지식을 초월한 그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택한자를 때신해서 베프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는 십자가로만  된 것이 아니고 도성인신 하나님이 사람되시 가지고 거기에서 큰 희생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큰부요를 내논 희생을 했습니다. 거게서  삼십년우리의대속하시는 사생활을 하셨고 삼년 사개월 우리를 대속하시는  희생공생활의 희생을 하셨고 이 절정으로 마지막에 십자가 상에서 대속하시는 이  때소을 완성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도성인신해서 베들레헴에서 말구유에 나실 그때부터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은 시작됐습니다. 그때부터 사웠습니다. 이래서 그 헤롯왕을  통하여 베들레헴에 이렇게 메시야가 낳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 베들레헴에 두살  이하의 남아는 몰살을 시켰습니다. 희생을 당해 몰살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안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통지해서 애굽으로 피난을 하셨습니다. 그 후에  계속 사생활 공생활에서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어기는 이 일을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일을 하게할라고 어릴때 부터 계속해서 투쟁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번도 하나님을 배반 한 일이 없었고 악령의 유혹에 빠진 일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둘로 떡을 되게 하라 성전에서 뛰어 내라라 한번 머리 숙이면  천하 영광을 다주마하는 이것 이그가 성경 말씀을 오용하면서 예수님을  유혹했지만은 예수님은 그 유혹을 빠지지안했고 이제는 사생활에서 공생활에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신이 범죄지아니해야하고 또 우리르 때신해서 형벌을  받아야 되고 순종을 헤야 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우리를 때신해서 원수  취급의값을 다 받아도 하나니므로더불어 우리르 때신해서 원수 취급의값을 다  받아도 하나님으로더불어 원수 되지 안해야 이것이 대속이 되어지기 때문에 이  지극히 어려움의 대속을 베푸시는데 성령은 사생활에서 공생활에서 하다가  이제는 안되어서 마지막으로는 무력적 형으로 달라 들었습니다.


선지자선교회 이래서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박는 이런 일로서 마지막에 예수님으로 시험할 때에  예수님은 그때에 아픔으로 아픔에 신경이 옮겨 갔으면 그것으로서 넉넉히  패전입니다. 겠세마네 동산에서 죽기까지 고민한 것은 택한자의 전형을 때신해서  그형을 꼭같은 그 중량으로 받으나 아픔의 그 마음이 가질 아니하고 지성 지공의  하나님에게 가고 아픔의 억지가 아니고 단 마음으로 원하는 마음으로 때형  때행의 데 원수 취급을 지원함으로 해야 하나님의 지공법에 충족이 되어지기  때문에 이것이 어려워서 심히 고민하셨습니다. 이라다가 예수님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가지고 이 얼을 완성했습니다. 예베소 일장에 보면은 지극히 큰  능력의 성령의 도우심으로서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대속의 공로를 완성해서 구약 시때에 예수님의 종말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이 되어지는 제물에 표를 짐승이 때신 죽는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은 죄를 짐승의 머리에 안수해서 자기의 지은 죄를 짐승에게 전가를  시켜 짐승이 그 죄를 받아 가지고서 제단에서 죽어 제물되어 짐으로 속죄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모형하고 예표하는 하나님의 계약을 예표  계약을 구약시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믿어서 법적으로 사유함을 받고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은 이것은 하나님과  인생이 죄에 가리워서 볼수 없다는 그 표시로 휘장을 가리워 놨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때에 그 휘장이 사람이 손때지 아니하고 위로부터  밑까지다 짜게 졌습니다. 이것은 예언한 그때로 입니다.

게 예수님이 삼일만에 부활하셨을 때에 무덤 가운데 묻어서 수천년 된 자던  성인들의 츄ㄱ체가 살아났습니다. 살아나가지고서 예수님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같이 들어가기는 들어가가지고 고 다음에는 다시 자기 있던  무덤윽로 들어가 버리고 예수님의 잭림을 기다립니다. 여게서 자던  성인들이일어나고 바위가 타지고 지진이 나고 해가 어두워졌다 하는 것으로  예수님은 세상에 빛이신 것과 이제 바위돌 같은 인간의 죄악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깨어지는 것과 사망의 무덤이 깨어지고 살아나는 것과 하나님과 원수된  죄악의 담이 헐어지는 것을 예루살렘성전 그 하나의 모형으로 되어 있는 성전에  모든 기구로서 증표를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지금은 어떤 단계에 있느냐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지성법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의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서 구원을  환성해 놓고 이제는 이 구원을 각자들이자기 구원으로 입어 가지도록 하려는  이것이 지금의 단계입니다. 이 일을 할려고 오신 분이 사도 행전 2장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시 가지고서 이 일을 하시기로 책임졌습니다. 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니리 그가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주리라 그들이 너희들을 진리 안으로 이끌어 들이리라 말씀하신 때로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대속은 하나님의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목적안에서 지음을 받은 이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지  목적하신 자들을 목적때로 달성하기 위해서 이용도리 사람들을 위해서 대속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은 전인류를 위해서 대속했다  고하는 그 교리는 성경적이 아닙니다. 보면은 때단히 아름답고 좋은  말같으니예수님게서는 택함을 입은 자들을 한해서 대속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은 제한적 대속이지 전체적 대속이 아니라는 것이 성경때로입니다.

그러면 대속받지 못한 사람들은 불평을 품겠다고 생각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가운데서 당신이 지으실때에 없는 가운데서 당신이 지으실 때에 당신에게  필요하게 당신을 중심해서 지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지어 주신 재료를  가지고 내가 요렇게 조립하고 저렇게 조립하고 요렇게 조렇게 개조하는것도 내가  쓰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가지고 내가 쓰는 것은 내가 만들어  내가 쓸일이지 만듬을 받은 그것이 내게 대해서 항의 을 못합니다. 항의해야 항의  그게 오지를 않습니다. 항의받지를 않습니다.

항의받지를 않습니다. 하필 어떤 것은 자기에 몸중에도 가장 아름다운 몸이라고  하는 목걸이를 만들어서 목에 만날 매고 다니면서 나는 와 이렇게갖다가서  연탄불을 찍어서 항상타고 타서 ㅇ리제 갖다가서 큰 쇠가 타서 가느다란하게  남기까지 북ㄹ속에 태우는 것으로 만들었느냐 항의를 못하는 것입니다. 항의해야  항의가 안됩니다. 마음때로 쓰기 위해서 지은 것이요 그러므로 지음을 받은 것은  지은 자와 그 지위가 무한히 차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뜻때로 지어서 뜻때로  씁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토기 장이가 큰 그릇도 만들고  작은 그릇도만들고 귀히 쓸 그릇도 만들고 천히 쓸 그릇도만드느데 그는  토기장이의 듯때로요 만들어 진때도 만뜰고 천히 쓸 그릇도 만드는데 그는  토기장이의 뜻때로요 만들어 진때로 만들어지고 쓰는때로 쓰이지지 저는  항거하지 못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은 이러하니라 말씀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사람들이 무시하지만은서도 이 일을 차차차차 이루워 집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위하여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놓으시고 (절안들으면 몰라 똑똑히 들어 잘 안들으면 몰라 응내가 다 보고 있어  내가 안보는기 아니라 다본다 말이요)어게 대속의 공로를 가지시고 지공법과  지성법에서 법적 구출은 됐지만은 이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받지 아니하지만은  실질적으로 이것이 실력을 가지야 살지 아무리 법으로는 감옥에 있는 것을 너는  해방됐다 너는 이제갖다가서 죄가 없는 자라 너는 이제 갖다가서 양민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은 그 죽어 버렷으면 소용없어 죽어 버렸으면 갖다가서 죽은  송장이 양민으로 인정받은 양민의 송장은 됐지만은서도 살았다는 그것이  활동이나 작용은 못한다 말이요 이러므로 법적으로는 살았지만은 실질적으로는  이것이 살아야 되지 지옥은 가지 안하고 천국간다 할지라도 천국에 산자로 살지  못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천국에 가가지고서 그 산자로 살지 못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로는 기본 구원을 얻는다고 구별했습니다.

게 이래가지고 이 대속의 공로로 다시말하면 이제 죄없는 의로운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가진 하나님으로 인하아 보호를 받고 생명과 평강을 받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 사는자 이 자가 되는 것이 실질적인 구원인데 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성령님이 오시가지고 살아남아 있는 자에게 때한 실질  구원을 이루는 순서가 이러하니 첫째가 그 사람의 영을 그살립니다. 사람이열을  사립니다사람은 영광 육 둘로되어있는 것이 사람인데 영은 하나님의 모형으로 된  것이 영이요 육은 어떤 성경에 어떨때는 유근 둘로 나눠서 혼과 골수라고 이렇게  나눴고 어떤 데는 육이라고 이렇게 합해서 말했습니다. 영은 영물이요 육은  순전히 물질입니다. 물질로되어 있는 육은 혼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음 부분을  가르쳐서 말하고 관절과 골수라고 이렇게말하는 것은 곧 몸을 가르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생도 혼은 있다가 성경에 말했습니다.

영은 영물이요 육은 순전히 물질입니다. 물질로되어 있는 육은 혼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 부분을 가르쳐서 말하고 관절과 골수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곧 몸을  가르쳐서 말하고 관절과 골수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곧 몸을 가르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생도 혼은 있다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짐승도 마음같은  우리 마음과 같은 이런 고급은 아니지만은서도 우리 마음같은 그런 저급의  본능이라고 표시를 성경에는 해쓴ㄴ데 그것을 사람의 마음과 다른것을  구별하기ㅜ이해서 본능리라했으나 그 본능이라를 것을 사람의 마음과 비슷합니다.

짐승도 정이 있고 옥심이 이고 감정이 있고 희로애락이있고 에산이있고  게산이있고 추측이 있고 추억이 있고 기억이 있고 연구가 있습니다.

그런것을 그들에게 서 볼수 있습니다. 사람보다 저급이나 사람과같은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이래서 사람은 영과 육 이 두가지로되어 있는 것이 사람인데 영은  주격이요 육은 영의 소유가 되어있는 소육격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모형으로  하나님 같이 되어 있는 하나님 모혀응로 되어있는 것이 영이고 영을 모형해서  만들어진 것이 인간의 마음이요 마음을 둔하게 모형해서 마음을 나타낼수 있는  기관으로 만들어 있는 것이 몸입니다. 그러기에 몸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나타내고 마음은 보이징않는 영을 나타내고 영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영입니다. 이러기에 천사도 영물 뿐이요 물질이 없고 짐승도 물질 뿐이요 영은  없습니다. 영의 역과 물질의 양세계의 것을 양세계의 존재로 지음받은 것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양세계의 존재로 지음 받앗습니다.

하나님은 영체도 없고 물체도 없는 피창조물을 탁월하신 영원자존 하신  완전자시요 여원불변자시요 여원자십니다. 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가지 대속을  가지고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착수하신이 책임자가 누군고 하니 성령님과 진리  아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보증을 성경으로 보증하셨다 보증자를 성령으로  세우셨다 성경에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대속해놓으신 이 공로때로  실질적으로 구원해서 살리는 책임은 누가 짊어졌느냐 하면 성령님과 진리가  책임을 졌습니다. 성령님은 누구를 가르쳐서 성령님이라고 말하는고 하니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말은 그릿도가 누군고 하니  예수님의 인성이 신성이 그리스도입니다. 이러기에 한 하나님을 이런 직책에  표현할 때에 이런 성호로 저런 직책을 표현 할 때에 저런 성호를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기 쉽게 나타내서 주셨습니다.

그래 성령과 함께 진리가 우리 영육으로 된 우리를 실질적으로 살리기 위해서  머저 영은 진리와 성령이 살렸습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새오댔다 이랬습니다. 우리가 이 영이살아 난 것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됐다  이랬습니다. 우리가 이 영이 살아 난 것은 진리로 살아났고 성경으로 살아낫기  때문에 우리의 영은 힘은 진리요 성령의 힘이요 우리의 영의 지혜는 진리의  지혜요 성령의 지혜요 우리 영의 속성은 진리의 속성이요 성령의 속성입니다.

이래서 닮앗씁니다. 이렇게 살아난 영은 재한 된 것은 하나님과 진리만 표사한  하나님과 진리만 나타내지 다른 것을 나타내지 못하도록 재한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영입니다. 영은 하나님만 나타냅니다. 마귀로만 나타냅니다.

사람들 이 말 못 깨닫고 사람들의 영이 죽었으니까 마귀의 도구가 되서 마귀를  타나내는 줄로 알지만은 서도 고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되면 고것으로 동결이요 아무것도 작용을 못합니다. 그것은 다른  작용을 못하고 하나님과 연결이 되었을 때에만 작용을 하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작용을 못하는 것이 영으로 중복적으로 이 다음에 또 진리를 떠날 수  있도록 하나님과 떠날 수 있도록 이렇게 살리게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영원한 대속이기 때문에 다시는 하나님과 떨어질래야 제가 자신은 있을 수  없도록 영원한 예수님의 때형의 사죄를 업혔고 영원한 대행의 칭의를 주셨고  영원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의 결합의 대행을 입혀서 이 영이 공로로 인하여  성령이신 하나님과 이 진리로 살아났고 진리가 책임져서 결합됐기 때문에 영이  중생된 것은 영생으로 중생했습니다. 우리의 영이 중생한 것은 영생으로 중생됐기  때문에 다시는 죽는기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생된 것은 영이라고 말했고 우리의 육은 중생이 아닙니다. 로마인서  3장에 보면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이로 인해서 살았지 만 아직까지도 육은  죄로인하여 그때로 죽어 있다고 했습니다. 살리지를 안했습니다. 영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살아났으니 이 산 것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와 결합이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결합으로 됐습니다.

하나님이신 성령으로 더불어 결합이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결합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러기에 영이 이 중생된 영은 영생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이러기에  진리와 성령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완전히 입어 가지고 영생으로 중생된  이 영이 범죄하면 죽습니다.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지키시매 죄가  만지지도 못하고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범할 수 없다고 요한일서에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난자라 말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과 하나님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인 진리를 가르쳐서 말한 것입니다. 이렇기에 진리와 성령으로 영이  중생된 것은 예수님의 삼대 대속을 완전히 입고 중생됐는데 중생된 이 영이 다시  범죄한다고 하면 예수교는 다 거짓뿌리입니다.

요것이 예수교는 완전히 박살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교는 박살날것이 아닌데 그  사람이 요렇게 중생관을 가지고 요렇게 신앙관을 가지고 구원관을 가졌으면 그  사람이 구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박살이 날 그것 가지고 있는 것이지 살아 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가지고 강조하면은 어리석어서 강팍한  마음에서 반발하는 내들 사람에게는 끝까지 썩었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아는  사람들도 고요히 종용히 잠잠하게 연구제목으로만 내어 주고 하나님에게  기도해서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요 충돌 없이 애껴서 살아나게 하려는 역사를  해서 거게 대해서 강조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이 하나의 구원의 사랑의 방편인  것입니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아직까지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들도 있고 또 중생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래서 기도하기를 주의 구속으로 인하여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받아 주의 자체가  된 이것을 깨끗한 주의 공로밖에 나가면 더러운데 주의 공로로 인하여 깨끗해진  이것을 주님이 쓰셔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받은 자들에게 받을 자들에게  사죄와 새생명의도리요 진리요 도리와 성령와 능력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중생되는 자는 중생되고 중생된 자는 이 공로를 잎어 남은 몸의구속을 받도록  이렇게 구속을 받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 감사해서 증거하는 자들의  증거입니다. 요것 밑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이 이것이  당연한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되지 아니한 자들은 성령과 진리로만  살아나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정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주관이라는 그 주관이  내기에 설복을 받고 설득을 당해서 예 믿겠습니다. 하는 그 말을 들어때는 것  아닙니다. 그 말을 들어 때는 사람은 외식자입니다.

이거는 알지도 못하는 것이요 그 말을 들어 다니는 것이 아니고 전능한 이  성령님이 전능한 전지한 이 진리가 영원한 예수님의 삼대 대속의 공로를 입어  삼대 대속과 주관이 이 책임자가 나와 함께 해서 죽은 자를 살리러 가는것입니다.

이해를 받으라는기 아니요 죽은 영에게 영밖에 하나님께서 살리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때가 됐으면 내가 전하는 말은 성령이요 진리요 예수님의 삼때대속이요  이 다섯가지가 한몫가는 것이니 다시 말하면 성령과 물과 피와 이셋이  증거한다고 요한복음에 말씀하심 같이 이 셋이 하나 되어서 내가 증거할 때에  하나님이 그 영을 살릴 때가 됐으면 중생합니다. 중생 할 때가 됐으면 택한자를  중생시킵니다. 아무리 전해도 중생할 시기가 안됐으면 아직까지 중생 안합니다.

교회와도 중생안 합니다. 중생될 시기가 됐으면 중생하면 그때부터 자기라는 이  자기 주관자기라는 옛사람 자기와 자기 아닌 중생된 영 자기 속에 죽었던 주격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서 전선에 끊어진 전구가 깜깜했지만은 전선을  연결하니까 반짝 밝은 빛이 켜지는 것처럼 죽은 영이 진리와 성령과 연결이 되고  보니 이 산영이 되어 가지고 자기 속에 진리가 역사하고 성령이 역사합니다.

이러니까 자기라는 자기는 예수를 믿기를 싫어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다 잡아  죽이면 싶으지만은서도 중생됐으면 자기 속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래가지고  안믿을라고 부정하니 속에 서 자꾸 인정이 되어지고 하나님을 반대하고 부정하니  그속에 이분을 가까이 해야 되겠다 것이 속에 역사가 생겨지고 자기 속에 이런  걸로 두 가지 싸움이 생겨졌다는 것을 자기가 얼마 후면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를 믿는 것을 믿고 싶다고 믿는 것이 아니고 믿기 싫다고  안믿는 것이 아니고 실은 믿고 싶어 믿는 것은 벌써 중생된 영에게 감화를 많이  받았고 설복을 했고 그것이 변화 된 것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창 끄뜨머리가  아니라 창끄뜨머리가 아니고 창자루입니다. 예수를 믿고싶은 것은 창자루택이요  이말단의 냉냉 끄뜨머리 지금 뚫고 들어가는 냄냉 끄드머리는 자기는 예수를  안믿을라고 고 속에서는 예수를 믿을라고 하고 이두가지 싸움이 이것이 창날  끄뜨머리입니다. 발단이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의 구원에 발단에서는 발단에서는 아무래도 이라면 죽겠는데  이라면 안되겠는데 이것만은 안한다 이것 만은 못한다 이번에 이 산사참배  안하면은 죽이는데 이 산사참배 안하면은 죽이는데 공산주의가 와가지고서  죽일라고 지금 갖다가 믿을래 안믿을래하고 있는데 여게서 믿는다면 죽는데  여게서는 죽는다는 소릴 못합니다. 이거는 못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네가 배반을 하면은 너는 영원이 죽고 이것이 네가 죽는  것이아니고 하나님에게 속하고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기 사는 것이다 그  속에서는 네가 죽어도 예수님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네가 예수를 부인하고  살아남았다 고것이 발단적으로 냉냉 끄드머리에 서 시비하고 있는 고게가 구원의  그 말단 냉냄 식물로 말하면 연한 세순입니다. 연한 세순 고것이 자기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자기 안에 반대하는 자와 환영하는 자 둘이 있어 가지고 하기  때문에 로마인서 7장에 말하기를 '원하는 선은 되지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고 악이  되도다 내기에 선을 구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선을 원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악을 범하는데 내속에 속마음으로서는 선을 원한다 의를 원한다 이러기에 자기  속에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이 영을 중생시켜서 전도를 하면 중생됩니다. 중생되면 중생된  그 사람이 속에서 중생된 영과 그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고기덩어리하고  마음하고는 거의 한 덩어리입니다. 중생된 영은 영 딴판입니다.

이러니까 중생된 영하고 마음하고 둘이 싸우고 싸우다가 어떤 사람은 싸움을  빨리 끝내고 아무래도 믿자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속히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고 (줄면 못 들어 이것 못 들으면 예수 믿어야 헛일입니다.)  아! 영계와 우주의 이것을 차지하고 믿음으로 영원히 영계에서 우주에서  왕노릇하는 그 구원의 그렇게 쉬운 것인 줄 압니까 은 그렇소 일단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 그것은 그것은 뭐이냐 영의 구원을 하는 것 아닙니다.

성령이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자꾸 증거하니까 마음과  고기 덩어리가 솔곳이 듣고 아 그래 아무래도 구원 얻어 하늘나라가야 되지 이제  이렇게 죄짓다가 멸망할 수가 있느냐 인간이 땅위에 것 암만 해봤자 그까짓 거  소용없다 하는 걸 차차차차 깨달아 가지고서 예수 믿고 싶은 마음이 낫다가 또  세상 것 보니까 아니 난 싫다 낳다가 싫다가 낳다가 싫다가 이러니까 옆에  사람이 권해 싸으니까 권면에 우쭐해서 가볼 마음이 있다가 가보니 여기 와  앉았어도 또 딴 마음 있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중생 후에  육의 구원이 빨이 시작되고 어떤 사람은 그 육이 강한 사람은 육이 부패성이  강한 사람은 중생되고 난 다음에 오래 동안 예수를 못 믿게 됩니다.

이래서 대개 스무살 안쪽에 중생된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 일찍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은 일찍 시작하지 안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스물 다섯  살이라는 그때가 제일 심리에 제일 변동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변동되는 그  일생에 가장 많이 변동되는 시기가 스물 다섯 살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변동될 그때에 중생된 사람은 예수 믿기로 시작하기를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니까 아마 통계를 맞춰보면 스물 다섯 살 먹어서 예수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기가 중생되고 난 다음에 오랫동안 있는  것인데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중생을 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반대해도 좋소 반대해서 중생만 됐으면 그만입니다.

저는 이제 갖다가서 믿어야 됩니다. 그 속에 아무리 화분에 흙이 많지만은 그  속에 생명있는 생명 알을 심어 버렸으면 결국은 그것이 나서 무성해지고 이 흙은  그 다 삼켜지기 먹혀지기 마련입니다. 그 중생됐으면 이 고기덩어리가 이 모든  것은 중생에게 삼켜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치 계란에도 생명이 없는 계란이 있고 생명이 있는 계란이 있어서  생명이 있는 계란을 유정란이라고 하고 생명없는 계란을 가르쳐 무정란이라고  말하는데 생명있는 계란은 그 생명이 눈에 보이지 안하고 생명이 거처하고 있는  핵 고것만 보이지요 핵 그것 생명 아닙니다.

고게 보이지 않는 생명이지만은 고 생명이 마지막에는 고 핵을 통해 가지고서  흰자를 먹고 노란자를 먹고 마지막에 남은 노란자는 자기 궁둥이에다 감추어  가지고 나와 가지고서 이 알밖에 나와 가지고 사흘동안 제 양식으로 삼가지고 서  안에 있는 노란자를 먹고 비로서 이 계란 밖에 있는 사료를 접해서 먹을 수  있도록 그렇게 장성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꼭 고와 같습니다.

영이 살앗으나 고 영이 지금 생명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영이 고 마음과  몸 고것을 생명화시켜서 생명화시켜 요것도 영생하도록 하려는 것이 우리가 지금  노력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이래서 전도하면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은 중생되고 중생이 되었으나 그것이  아직까지 육의 구원을 출발 못한 자는 육의 구원을 시작하고 육의 구원을  시작했으나 이것이 힘있 찬양을 할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는 호별방문으로  전했지만은 그것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만 하니까 그것으로 구원을 얻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은 은혜받는 사람은 은혜를 받지만은서도 새벽찬양으로 은혜받을  사람은 또 갖다가서 몇해를 못해서 못받으니까 또 새벽찬양으로 은혜를 받을  사람을 우리가 구원하자 해서 올해는 새벽찬양을 나갈 것입니다. 두시로부터  네시까지 부산시내를 다다닐라고 합니다.

멀면 차를 타고 집집마다는 못하고 타를 타고 이 거리에서 한번 저 거리에서  한번 저 교도소에서 한번 또 갖다가서 소년원에서도 교도소에서도 한번 또 대신  또 내려서 이래서 이래 가지고서 찬송을 하자는 그 찬송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얻는 찬송이니까 그 찬송 소리만 들어도 그 찬송과 그 성령과 진리가  동행하니까 동행으로 인해서 중생되는 자는 중생되고 중생되어 가지고 육체의  구원을 시작하지 안한 자는 아이구 나도 예수를 믿어야 되겠다 내가 언제  주일학교 다녔는데 이래 가지고서 다시 소생되어서 믿어 구원얻는 사람이 뭐 내  교파 네 교파 내 교회 할 것 없이 다 하나이기 때문에 이제 모든 택한 자를  중생시키고 중생되어 잔다는 자를 다시 깨우고 신앙 생활 하다가서 늘어진 자를  다시 소생시키려해서 새벽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어떤 단계에 나와 있느냐 하면 중생하지 아니한 자는  중생을 시키고 또 중생된 자로서 육의 구원을 이루지 못한 자는 육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고 중생된 우리들은 우리의 육이 중생된 내 영에게 완전히 통치를  받고 중생된 영에게 속하고 중생된 영의 것이 되고 그러면 중생된 영의 것이  됐으면 성령의 것이 됐고 성령의 것이 됐으면 진리의 것이 됐고 진리의 것이  됐으면 하나님의 것이 되어서 이것으로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중생된 사람들은 육의 구원을 이룰라고 지금 애쓰는 단계입니다.

또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중생되지 안한 사람을 중생시킬라고 중생된  사람으로서 육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을 육의 구원을 이루도록 이렇게  협조해줄라고 하는 것이 설교요 또 전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 서론입니다.

이제 우리가 당면한 중요한 것 우리가 당면한 중요한 것, 우리 육의 구원을  이루어야 될 터인데 마귀라는 놈이 우리를 꼬아 가지고서 착각시키고 오해를  시키고 오산을 시켜 가지고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악령의 이  궤휼을 오후에 말하겠고, 또 우리의 육의 구원의 그 방편을 오후에 증거하겠고,  육의 구원에 대한 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오후에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나누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전에 증거한 요 뿌리를 요 근거를 요 터를 여러분들이 굳게 잡고  있어야 오후에 증거하는 그 설교를 깨달을 수가 있지 요것을 또 버려버리면  오후에 또 터 닦아야 되니까 헛일이라 말이요 이런고로 터를 굳게 잡고 터 위에  건설해야 됩니다

요것은 다 터입니다. 터이기 때문에 요 터 위에 오후에 우리는 이제 건설을 해야  됩니다. 건축을 해야 됩니다. 건축해야 한다 말은 마음과 몸의 구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의 구원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잘 안 들으면  모릅니다. 잘 알고 있는 목사님들도 많지만은 목사님들 가운데서도 잘 모르고  있는 목사님들도 많고 삐뚤어지게 알고 있는 목사님으로 많습니다. 마물며  평신도겠습니까 모르면 헛일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이 교계에 교파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다이는 기 하나는 한  교파밖에 없어 모르기 때문에 갈래길이 났으니 이 갈래길 이것이 이때로 다 갈  것입니까 아니요 한 교회만 구원하기 때문에 이제 한 교회는 누구입니까  우리입니까 다른이 입니까 아니요 완전한 교회이니 성경대로 진리대로 딱 맞은  거 요기라야 이제 갖다가서 참 교회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성경과 영감을 받아서 믿지만은 성경과 영감대로 딱들어 맞으면  그때 들어갈 때에 깍일 것 하나도 없어 깍일 것 하나도 없고 솔박 다  들어가지만은 마구 사람보기에 유명하고 크지만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마구  먹줄을 잡고 빗습니다. 먹줄을 잡고 빗소 톱으로 써요 이래놓으니까 이런  아람들이인데 톱으로 써니까 꾸부정하니까 여게 동가리씩 당하고 동가리 다나고  난중에 보니까 쭉곧게 껍데기 깍고 나니까 꼭 손가락만한 것 이런 것만  손가락만한 것 남아 있고 얻너 거는 이런 나무인데 난중에 그 척수루 때고  거석하니까 요래동가리나고 조래동가리나고 요만한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러기에 구원을 정말 이룰려면 새벽으로 와서 설교를  듣는 것이 옳고 어지간한 부끄럽지 안한 구원이라도 이룰라면 오전 오후 삼일  오일예배 참석해야 되지 제가 뭐 똑똑하고 안다고 뭐 여러분들이 아요 여러분들  아는 거쇼은 어릭석은거 조그만한 것 인간의 때가리에서 난 것뿐인데 무한한  지식입니다. 이런데 제 아는 것 그것 가지고서 오전마나 와서 들어도 다 안다  멸망할 지식가지고 멸망아니 알지 네가 산걸 뭐 안다 하느냐 아는 이는 나와요  내가 문제를 내게 백문제 내줄 때에 답을 갖다가서 한 문제라도 맞추면 내가  상을 주겠소 내가 그 앞에 절을 하겠고 백 문제를 내어도 오전예배한 보고 가는  사람으로서는 한문제도 정답을 내지 못할 기라 그게요 그렇게 넓고 크고  많습니다.

오후에 빠짐없이 다 참석하십시요 빠지면 헛일입니다. 세상 지식 그것도 몇십년  머리를 싸잡아매도 될동 말동 하면서 생명이 되는 무한한 지식을 자기가 받아서  무한한 구원을 이루워 나가는데 전부 엿새동안 죄만 짓고 돌아다니다가 주일도  죄짓고 전부 갖다가 원하는 기 죄요 마시는기 뭐요 먹는 것이 뭐요 모아논기  죄요 이래가지고 있다가서 주일날만 삐꿈와가지고서 지끄러기 가가지고서 찔끔  한마디 듣고 이게 다인줄 알고 어림도 없습니다. 스스로 속지 마십시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증거한 우리의 구원에 근거 영원자존하신 하나님께로부터 거게서부터  이루워 우리는 깨닫고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공산주의자도 하나님이 창조하기  때문에 요것도 내 구원을 위해서 창조했다는 것을 믿는 기 믿음입니다. 그게  믿음이요 내기에 산벼락같은 벼락이 딱가 쳐도 요것도 주님이 하시를 것인데  요것도 내 구원에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달라드는 것이  믿는 사람이요 그런 믿음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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