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정하여 일하라

 

1984. 7. 2. 교역자회

 

본문 : 다니엘 1장 8절∼9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선지자선교회  '다니엘이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기로 뜻을 정했다' 하는 이것은, 그가 자기  선조들과 자기네들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여 그에게만  모든 주권이 있는 것을 믿고 행하라고 하나님이 이스라엘들에게 말씀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에게 주권을 돌리고 또 소망을 가지고  그렇케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멸망시킨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는 하나님에게만 주권과 소망을 두고 그저  저희들은 그분의 뜻에 복종하는 그거 하나로써 모든 방편을 삼기로 그렇게 해  나오는데 뜻밖에 그들에게 큰 시험이 닥쳤습니다.

 닥친 것은, 앞에 그 큰 나라의 정권을 다 인계 받고 정권에 크게 등용 될 수  있는 그런 희망을 두고 번쩍거리면서 이 희망에 도달하고 합격되는 데에는 왕의  진미를 먹어서 첫째는 영양에 보충이 있어야 된다 하는 그런 뜻을 두고 왕의  진미로 그 학생들에게 먹이라고 이렇게 한 것이, 그것을 그 나라의 실력가를  배양하는 데에 유일한 방편으로 그렇게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니엘이 잘못하면, 건강이나 또 죄 되지 안하는 그런 모든 실력  갖춤이나 그런 것이 자기네들의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는 것으로 이렇게 믿고  그대로 행해야 될 터인데, 미혹이 들어온 거기에 대해서, 이 미혹에서 하나님 한  분에게 주권이 있는 것과 전 소망이 있는 것과 복종하는 하나 가지고 방편이  되는 이것을 변동하지 안하겠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작정을 하고,  더럽히지 않는다 말은 이 작정을 계속하지 못하고 이것이, 이 작정이 변해질  때에는 모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 변질되어지기 때문에 그런 변질됨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뜻을 정한 것입니다.

 이 성구를 보게 된 동기는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도 각각 자기대로는 받아서  가지고 있고, 또 세상 지식도 가지고 있고, 또 영감도 우리에게는 와서 역사하고  있고, 또 우리 인간들의 모든 감정들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범사에 계획을 세워 놓고 그대로 추진해서 달성하는 이런 방편이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미리부터 계획을 세워 놓고 계획대로 추진하는 그런 방편이  하나 있겠고, 그때 그때 닥쳐지는 대로 취사 선택을 해서 살아 나가는 그런  방편이 하나 있고 이 둘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면 우리는 전자도 사옹하고  후자도 사용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나간 과거를 이렇게 열람해서 조사해 보면 전자를 택한 데는  우리가 그대로 이행을 못 해서 좀 문제지 별 후회될 것은 적고. 후자를 택한  데는 우리에게 조사해 보면 그저 잘못된 그런 실수들이 많이 있게 되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자를 택해서 모든 것을 미리부터  생각을 하고 또 비판도 충분히 할 수 있고 평가도 할 수 있고 또 거기에 대해서  충분히 모든 관계된 구비 요소들을 다 구비하게 이렇게 연구할 수도 있고 또  준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편을 쓰지 안하고 후자의 방편을  우리가 쓸 때에는 그런 것이 다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는 대개 보면 자기 현실이라는 그 현실 자기의 그  환경이라는 환경 그만 거기에 충격 돼 가지고 그대로 움직여서 행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우리는 이성이 활용한 것같이 생각하지만 이성 없는  본능으로 움직이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후자보다 전자를 택하는 게  좋겠고, 또 전자를 택하는 데는 우리가 복잡할 때나 또 무슨 다급한 일이 있을  때나 어떤 특수한 그런 일들이 있을 때에 우리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작정하는  일이 좋지 못한 줄 압니다. 왜? 그럴 때는 어떤 것이 우리에게 돌격을 해  왔던지, 그래도 우리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 충격 받아 가지고  피동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지남침이 남쪽을 가리키는 것이 저의 본질이지만  거기에 대소를 무론하고 조그만치라도 자극물이 거기에 있었다고 하면 반드시 그  영향을 받아서 정남은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미리 미리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끝까지 잘  달성하도록 인내를 가지고 계속하는 것이 그것이 지혜 있는 방편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계획을 가질 때에 그때에 가장 평온하고 안정하고, 무슨  돌출물들이, 돌출의 그 사건들이 없을 그럴 때에, 평안 무사한 그런 시기를  우리가 찾아야 되겠고. 또 그런 시기에도 우리가 좋은 진리나 영감이나 그거야  좋지 않겠는가 이라지만, 진리와 영감은 좋지만, 우리가 진리와 영감은 좋은  것이기 때문에 충만히 감동될 때야 '그때 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이  돼지지만. 그때는 우리가 진리와 영감의 충격을 받아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신과 조화를 맞추지 못하고 자기로서의 정도 이상의 그런 일을 사람들이  선택해서 계획하기 쉽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기 미달로써 실패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평범하고 평안하고 아무런 그런 인간적 충돌이나  또 사물의 충돌이나 또 자기의 신체상 충돌이나 또 심지어 영감과 진리의  감동까지라도 우리는 평온하게 만들어 가지고, 가장 평온하고 안정한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그런 심정을 만들어 가지고 그럴 때에 나는 어떻게 무엇 무엇은  해야 되고 무엇 무엇은 안 해야 되겠다 또 무엇 무엇은 몇 프로를 해야 되고  무엇은 한 뭐 구십 프로나 해야 되겠다든지, 그럴 때에 우리가 해야 될 그런  종류를 우리가 그때에 선택을 하고 또 종류의 그 양을 우리가 선택을 하고,  선택을 할 때에 그때에 선택해 가지고 그것을 요 대로 하겠다 결정을 지우면  그것은 그때부터 뜻을 정하게 되는, 그게 뜻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뜻을 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뜻을 정하지 말고 원만히 그것을 구비하게 그렇게 해  가지고. 뜻을 정할 때에 그때에 시간을 두고 걸쳐서 뜻을 정하면서 조그만치라도  무슨 자기의 허욕이나 허영이나 어떤 충격을 받아 하는 그런 것으로 하지 말고  '이는 아무래도 해야 될 것이요 이것만큼은 할 수 있다' 해서, 가장 약소한 그런  계획의 뜻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거야 못해? 뭐 이거야 할 수 있다' 하는  그런 아주 어리고 약한, 유약한 정도의 계획을 딱 세워 놓고 또 보고 보고 해서  '이것이야 넉넉히 할 수 있지 않겠나? 이것을 못한다면 뭐 되겠느냐? 이거야 뭐  노인이라도 할 수 있고 이것은 그렇게 힘 안 써도 할 수 있다' 하는 그런 쉬운  정도로, 거기에다가 허욕이나 허영을 붙이지 말고 쉬운 정도로 그렇게 뜻을 정해  놓고 그대로 우리가 행하면서 나갈 때에 그 때 작정된 것은 가장 우리에게는  평범한 것이면서 보편적의 것이요, 또 우리로서는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하고 그저 수월하게 감당할 수 있는 그런 도수의 것들인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또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이는 뭐 틀림없다.'  그렇게 몇 번 다져서 재심사하고 재심사하고 재심사해서 작정을 해 놔도 자기도  모르게 어떤 때 가면 '이거는 무리한 작정이다' 하는, 자기가 계획을 세워  놨지만 그 계획에 대해서 찬동이 가지 안하고 그 계획에 대해서 이의가 나오는  그런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도, 이의가 나와도 원첨 계획 할 때에 충분한 거기에 대해서 다짐을 가졌고  또 심사를 했고 몇 번이나 느꼈기 때문에 '이것은 이 작정된 계획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돌변적으로 변해서 이런 것이지 그 계획이 틀린 것이 아니라' 해서,  먼저 정죄를 자기에게 두고 그것을 고 쳐 나가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계획 한 것을 여간 따지고 이래 하면 나중에 가 보면 이것은 자기가 봐도  무슨 최면술에 걸려서 다 치우쳐서 지나친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만 계획을 자기가 벌써 부인하게 돼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그 생애는 엉망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 때 가도 그 계획이 불신임을, 자기에게 불신임을 받지  안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가지도록 그렇게 해서, 계획할 때에는 아주 쉽게 아주  어리고 약하게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계속해서 나가면  계속하는 가운데에서 자기는 여러 가지 애로가 부딪히는 것을 자기가 볼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어떤 것이 그때에 고 계획에 대해서 대적이 되어지느냐?  대적이 되어지는 것은 내나 옛 사람인데, 악습이 대적이 되어집니다. 악습.

자기에게 이제까지 습관 되어 있는 그 악습이 들어서. 악습이 대개 우리의  계획을 실패케 하는 것은 우리의 계획을 자기가 실수하게 해 버립니다. 그만  그습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거는 투쟁도 해 보지 안하고 그만 선뜻 그만  그것이 돼 버렸다 말이오. 돼 버려서 우리의 계획을 그만 실패하도록 그렇게,  자기하고 자기하고 계약한. 스스로 계획한 자계약인데, 자계약이요 자치요  자율인데 그만 거기에 위반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내게는 이 참된 길을 걸어가려고 할 때에 방해하는 이 악습이  얼마나 교묘하게 뱀처럼 이렇게 나서 가지고 미혹한다 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저놈을 참 어쩌든지 제어하고 방어하고 악습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 여기서부터 비로소 노골적으로 나옵니다.

 어떨 때는 이 계획 안 하고 해 나가면 악습이 하는 일이 그만 자기 안에 모든  주관들에게 다 통과가 돼 가지고, 이것은 의례히 할 일인데, 그 악습을 거역하는  것이 비정상이지 악습 그대로 하는 것은 정상으로 이래 여겨지게 돼지지만  우리가 평소에 심사숙고해 가지고 계획한 거, 이거는 틀림이 없는 것이 확고한  건데 그때에 그 악습이 들어 가지고 이것을 '아니라' 하니까 그때는 의심할 거  없이 '이거는 악습이다. 이거는 이게 틀렸지 내 계획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해서. 악습을 그놈을 악습으로 정죄를 해서 확실히 사로잡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쉬운 그런 계획에서 악습을 잡고, 악습으로 더불어 싸워서 악습을  잡는 그 일을 해 보면 쉽게 했지만 우리는 쉬운 때 계획할 때에 악습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안하고 하기 쉽습니다. 악습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안하고 하기  때문에, 아주 쉽다고 생각했는데 악습 그놈이 돌출해 가지고 돌격을 해서 오는  거기서 우리가 넘어지는 일이 많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아예 이것은 이길 듯 말듯 이라기 때문에 싸워서 투쟁해서 이길  그런 용기도 생겨지고 또 이겨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안하고 벌로 계획한 사람은  말뿐이지, 그러기 때문에, 벌로 계획한 사람은 미래에 대해서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만 과거에 대해서는 후회로만 이루 어지지 현실에 대해서는  전혀 해당되지 안하는 그런 공상 계획을 하기 쉽습니다. 또 그라고 나면 그  다음에는 '저게 뭐이냐?' 악성인데, 악성이라 하는 것은 자기중심이 악성  아닙니까? 요 계획대로 해 나가려고 하면 요 계획에 배치가 될 때에 자기 때문에  요 계획이 배치되고, 자기 사정, 처지 형편, 또 자기의 모든 경영한 그 모든  경영들 이런 것이 요 계획에 배치가 되는 그럴 때가옵니다. 그럴 때가 오면,  이걸 계획을 안 세워 놓고 나가면 그만 그때에 그 자기가 자기인 줄 알기 때문에  싸울 용기도 없고 오히려 그와 같이 해 나가려고 할 때에 방해하는 것을 원수라  합니다. 만일 성령이 와서 방해하면 성령을 대적할 것이고, 목사가 와서  방해하면 목사를 대적할 것이고, 자기의 동지가 대적하면 동지를 대적하게  되지만 자기가 스스로 계획을 세워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심사숙고해서 해  놨기 때문에 이 제약에 위반된 자기라는 것을 발견 할 때에 그때에 '이는  틀림없는 참 옛사람이라 하는 악성 이놈이로구나' 하는 것을 발견할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쉬운 계획에서 거기서 악습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기는 일을  연습해서 이것을 이기도록 성장시키고, 또 여기에서 악성으로 더불어 싸워서  성장을 시켜서 이렇게 나가면 그래 나가는 가운데에 악령의 감화가 우리에게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악령의 감화는 반드시 주위와 환경. 형편. 사정,  처지, 자기에게 가장 갈급한 그 면을, 모자라는 그 면을, 돈이 없을 때에는  돈이라는 그 면을 잘 알기 때문에 돈이라는 문제 가지고 들어오고. 인정 문제일  때는 인정이라는 그 문제를 가지고 들어오고, 그는 우리의 요소를 잘 알기  때문에, 잘 압니다. 악령은 우리가 모르는 것은 제가 모르지만 우리 아는 것은  우리 심령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심령에 벌써 가진 것은 그가 볼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 점쟁이 심사할 때에, 점쟁이는 무엇이든지 말하면  딱딱 들어 맞추니까 '아. 점쟁이를 인가를 해 허야 되지 인가 안해 줄 수는  없다' 이럴 때에 어떤 기독자가 나서 가지고 '점쟁이는 본인이, 그 점치러 간  사람이 아는 것을 알아내지 모르는 것을 못 알아냅니다. 한 번 시험해 보십시오.

콩을 가지고 몇 개를 헤아려 가지고 물어보십시오. 딱딱 맞습니다. 그러나 이  콩을 푹 집어 가지고 내가 몇 개인 줄 모르고 몇 개고? 이래 물으면 나중에 보면  다 틀립니다.' 이래 가지고. 참 그래 보니까 그렇거든. 그래 가지고 그때  점쟁이를 아주 모두 참 박멸하는 그런 일이 왜정 말년에 한번, 토벌이 한번  있었습니다.

 악령은 이것을, 우리 처지와 형편과 심리를 잘 알기 때문에 우리의 형편을 타  가지고, 꼭 그럴 때 그것을 타 가지고 들어와서 내 계획을 이루지 못하도록  박멸케 하는 그런 역사를 하게 됩니다. 요런 경험이 많이 있는 사람은 '아, 요럴  때에 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요럴 때에 어떤 사람을 통해 가지고 내게 대해서 이  방해가 오겠다. 또 반드시 어떤 일을 충돌을 시켜 가지고 오겠다. 내가 또 요런  마음이 내게 들어오겠다.' 그것까지 알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악령이 와서 감화시킬 그 악령의 감화를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악령의 감화를 가지고 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그런 일이 있으리라'  하는 그것을 생각하고, 그러면,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인지 계획하는. 자기가  대략 아는 사람이 있지만 생전 초면의 사람이 온다 말이오. 초면의 사람이 와도  '아. 요것은 반드시 내 계획을 깨기 위해서 보낸 악령의 사자이기 때문에. 요  어떤 문제를 가지고 나을 것이다.' 미리 그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 말 가지고  딱 나을 때에 그때는 참 야 나지게 맞고 '아멘. 옳습니다.' 하고 우리는 대항해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도 있고, 또 그때에 자기 속에서도 '내가 반드시  이래 이래 되니까 어떤 마음이 나오겠네. 내가 벌써 내 자신이 시험에 들어  가지고 이 계획을 이루어 갈 수 없는 이런 의심 있는 마음, 약한 마음이  나오겠네' 하고 있었는데 그 마음이 나옵니다. 그 마음이 나와요. 나을 때에는  '요놈이 그 마음이라 하는 것을 가지고 알고 단속해서 잡으려고 해도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계획을 세워 놓고 사는 그 사람이 악습을 토벌하는 데에  아주 유리합니다. 악습을 토벌하는 데에 유리하고, 악성을 토벌하는 데에  유리하고, 악령을 바로 깨달아서 토벌하는 데에 유리합니다. 이런 것을 많이 해  보면 그만 나중에 가서는 '아, 이거는 악습의 방해다. 이거는 악성의 방해다.

이거는 악령의 방해다.' 이것을 알게 되고, 또 미리 '오늘 이 일이 진행 돼  나갈라 할 때에는 무엇 무엇이 방해물이 있겠다' 하는 그것도 짐작하기 때문에  그 면에 대해서 벌써 미리 하나님께 기도한다 말이오. '오늘은 주님이여, 이런  내게 악습이 등장을 하겠고. 악성이 등장을 하겠고, 악령이 이렇게 등장을  하겠는데, 혹은 내가 아는 거 모르는 거 별별 걸 통해 가지고 이와 같이 올텐데  여기에 대해서 싸워서 이기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어도 막상 닥쳐 놓으면 흔들리는데, 그것을 미리 알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은혜 입고 있고, 방어하고 단속을 하고 있고, 또 자기  나가는 길이 벌써 평안 무사할 때에, 평범하고 참 그런 아주 조용한 때에  심사숙고해 가지고, 몇 번이든지 심사 심사 해 가지고 확정 지운 그 일이라도  그때 그만 그게 흔들려서 '이거 할까 말까? 이거 지나친 생각이 아닐까? 이거는  잘못된 계획이 아닌가?' 이렇게 되어지는데, 이렇게 하지 안하그 그날 그날에  닥치는 대로 자기가 무엇을 이성 비판이라든지 영감이라든지 해 가지고 그렇게  나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는 참 천부당 만부당의 전투입니다.

 이거는 도무지 그냥 세월만 자꾸 가고 말고. 나중에 그런 생활 하면 외식해서  스스로 교만해 가지고, 된 줄 아는데 하나도 안된 거짓부리 외식만 되고 말고,  또 그것이 자꾸 자라게 되면 나중에 가서 뭐만 되느냐 하면 자기 구습만 자꾸  강세하게 되고, 악성만 강세하게 되고, 악령의 감화만 강세하게 되기 때문에.

자기는 이름만 예수 믿는 사람이요 예수님의 복음의 일군이지, 실은 겉만 아니라  그 속에는 새카맣게 다 그것이 돼 가지고 있고 겉으머리까지도 눈이 밝은 사람이  보면 전부 그것으로써 전부라고 할 만치 그렇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진실이 아니면 이거는 뭐 근방에 가지도 못합니다.

진실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양성원 학생들 유다서 시험을  쳤는데. 모르는 것을 많이 배웠는데 그 배움의 자도를 아는 사람들은 좀 그  각도를 깨달은 사람도 있고. 그 각도를 모르고 그만 모든 것을 보편으로 이렇게  해서 고 모때기 있는 거, 그 속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거, 고 깊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은 신앙생활이 그걸 고치지 안 하면 그저 언제든지 무사주의로  그만 이렇게 무드미미하게 이렇게 술술 이래 나가 가지고, 무엇인가 악령이  미혹하는 그런 것을 세밀히 감찰하지는 못하고 실패하기 쉬운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고, 또 대개는 전부가 다 처음에는 어수이 좀 마음을 써다가 고 한 장  해석을 하는 데에 중간쯤 가 가지고 마음이 방종해 가지고 그만 열심을 내지  안하고 그만 끝에 가 가지고는 영 아주 그만 힘이 떨어져서 아주 힘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래도 끝까지 고 진실의 힘을 가지고 꾸준히 일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봤습니다.

 내가 그때 여기, ○○○씨 여기 있는데, 고 시험을 친 걸 보고 '○○○이걸  내가 오늘까지 내비 뒀는데 이제는 몽둥이를 들어 두드려야 되겠다.' 왜? 보니까  고 진리를 좀 깨닫고 있다 말이오. 진리 깨달은 놈이야 제가 진리 깨달으면 저  망할 짓 안하지. 이래서, '이거 좀 강퍅이나 하면 좀 몽둥이로 두드려야  되겠다.' 내가 그걸 속에 작정을 했어. 이제 진리를 보니까 알거든. 요번에  시험을 쳤는데 80점이라. '이거 뭐 되겠나?' 이랬는데 보니까 진리의 그 각도를  깨닫고 있다 말이오. 그러면, 됩니다. 어느 사람이 92점이지? 누구지? ○○씨가  둘째 점수를 받았어, 보니까 92점 하나 있어요.

 우리는 성경을 연구해도 이렇게 수박 겉핥기로 둘둘 이래 하지 말고 고 속에  반드시 하나 아닌 둘은 안 있습니다. 무슨 성구든지. 여기서 요 교훈의 목적이  뭐이냐 고거 있어요. 교훈의 목적이 뭐이냐? 그 목적이 하나지 둘이 아니라고.

고거, 하나인 그걸 꼭 잡기 전에는 마음에 안심을 하지 안하고 찾도록 노력하는  고 사람이 거룩을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이래도 해석할 수 있고 저래도 해석할 수 있다. 이래도 저래도 해석할 수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게 아니고 고 하나가 있다 말이오.

하나를 찾기 전에 '이래도 저래도 되다' 하는 이런 사람으로 자기는 나가게 되면  그 사람은 구별성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다 아는 것 같으나 실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다 알 것 같으나 나중에 가서 보면 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 되기 쉽습니다.

 이래서 요 간단한 시간에 우리가, 모든 일을 닥치는 대로 그때 그때 비판해서  나아가는 그런 교만한 일을 우리가 하지 안해야 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닥치면 다 그만 만사를 다 전지 하는 자로 그렇게 할  수 없고. 그것을 또 한 번 생각하면 거기서 잘못이 나 오고 또 두 번 생각하면  또 거기서 더 나은 것이 나오고, 세 번 생각하면 보다 나은 거 보다 나은 거  보다 나은 거, 틀린 게 하나 있다가 또 둘 있고 셋 있고 자꾸 이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을 자기가 계획을 세워가지고 그대로 추진해 나가도록 하는 이  방편을 사용하는 것이 좋고, 계획을 세울 때에는 가장 무난하고 무사하고  평안하고 안정하고 해서 아무런 충격이 없는 그런 시기에 자기가 계획을 세우되  그 계획을 세우면서 지나치게 세우지 말고 아주 쉽게, 아주 헐하게  '이것만큼이야 누구든지 할 수 가 있지 않느냐? 이거야 아무래도 할 수 있지  않아?' 그렇게 쉬운 것을 계획을 세워 놓고 자기 계획 세운 것이 '이것은 아무  때라도 이거는. 이 계획은 옳은 것이지 틀리지는 안했다. 이 계획이 틀렸다 할  때에는 틀렸다 하는 그게 틀렸지 이거는 틀리지 않다.' 그렇게 심사숙고 해  가지고 '이는 원만하고 온전한 계획이라' 하는 그것을 우리가 확정을 지우는  그런 계획을 세우되 쉽게, 쉬운 계획을 세워서 자기 힘으로 말하면 '그런 거 한  이 배라도, 할 수 있고 삼 배라도 할 수 있는데' 하는 가장 쉬운 정도에서  계획을 세워 놓고 고 일을 그대로 추진해 나가 보면 반드시 거기에서 방해하는  자가 셋이 있습니다.

 방해하는 자가 셋이 있는데, 그 방해하는 자가 어떤 자가 방해를 하는고 하니  악습이 방해한다는 것을 봅니다. 악습이 방해하는 것은 실수하게 악습은  실수하게 해. 실수를 만듭니다. 악습은 세력적이 아니고 실수를 그 계획에  실수하게 하는 것은 거의가 다 악습이 들어서 실수하게 만듭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계획을 해 나갈 때에 참 가장 요긴한, 이제는 참 성공이  온다고 하는 중요한 시기에 가서 딱 걸고 물고 늘어 앉아 가지고 방해하는  그자를 봅니다. 그자가 곧 악성입니다. 악성. 그것이 옛사람 자기입니다.

악성입니다. 악성이고,  또 그라고 나서 나오면. 악령이 우리에게 와서 방해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악령이 환경을 잡아 몰아칩니다. 악령이란 놈이 주위 환경을 이렇게 막. 그  악령은 아주 고등 술책을 가졌고 또 그는 아주 지혜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렇게 단번에 단도직입으로 그래 하지 않습니다. 그만 칼로 푹 찌르고 그렇게  하지 안해요. 그 악령은 우리를 계획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범위 넓게  생각도 안한 먼데서, 먼데서 범위를 넓혀서 벌써 자기는 그 생각도 하지  못할만한 그런 범위에서부터 슬슬 조아 가지고 자기 환경이 조여 와서, 그  환경이 하루도 걸리고 한 달도 걸리고 두 달도 걸리고 이리 이리 와 가지고 차차  차차 몰아넣어 가지고 나중에 가서 자기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에게 마음을 변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데 우리는 그것을, 악령이 넓은  범위에서 우리의 짜 놓은 깨끗한 그 계획을 파괴시키기 위해서 저도 넓은 범위의  계획을 세워 가지고 우리 계획을 뺏들라 한다는 이것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그때에 바로 내게 직접 이용되는, 직접 이용되는 사람이든지 물건이든지 그것을  대적으로 삼아서 거기에 대해서. 투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용당하는  것이요, 그 밖에 넓은 범위 내에서 벌써 그는 오래 전부터 계획을 가졌다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거는 사전에는 알기 어렵고, 사전에도 이제 늘 익숙하게 되면 '아,  이게 뭐로 돌아오겠다. 이게 이다음에는 무슨 계획으로 무슨 운동으로 돌아오고  변해 돌아오겠다.' 이걸 짐작을 하지만 어릴 때는 그걸 몰라도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이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면 벌써 일찍부터 시작이 돼  가지고, 먼데부터 범위를 잡아 가지고 슬슬 짜고 들어왔다는 거, 아주 그물도  조고매만 탁 덮치는 게. 아니라 바다 같은 넓은 그물로 가지고 이렇게 해서,  그물 안에도 얼마든지 자유 할 수 있고, 그물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물에게 포위가 되도록 하는 것처럼 이런 전법을 써 가지고 우리를 삼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럴 때에 인제 한번 두 번 속고 나면 나중에 가서 우리가 무엇을 볼  때에. 소리를 들어도, 공연히 길 가 가는 사람을 봐도 '저게 무심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마귀를  써서도 우리를 시험할 때는 마귀를 이용해 가지고 움직이고 하니까 저게는. 뭐  하나님이 그 배경의 주권자라 하는 건 틀림이 없지만 그분이 뉘에게 시켜 가지고  무슨 목적으로 뭐하고 있는가? 저렇게 하는 저것이 돌아서 돌아서 나중에 바로  직면에 부딪힐 때에는 나에게 어떤 면으로 부딪히지 않는가?'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여러 번 경험해서 찾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을 대하든지 계획하든지 할 때에 대번에  직면적으로 보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직면을 보지 안하고 고 좀 범위를 넓혀서,  그 범위를 넓혀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또 범위를 더 넓혀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이래서, 그 범위를 넓혀 말하는 사람은 일이 하는 줄 모르나,  모르나 그것이 슬슬 조여 불어오기 때문에 완고한 성공이 되어지고, 고거 아주  범위를 좁게 해 가지고 아주 바로 직면적으로, 바로 직접적으로 이렇게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뭐 이런 의도 있고 저런, 의도 있고 선행이 많이  있지만 실은 선행 그것이 우리의 목적 아닙니다. 선행 그게 목적이 아니고,  어쨌든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기르는 것인데,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 그  다음에는 인정할 수 있는 것. 경험 체험에서 자꾸 인정이 돼 나옵니다.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이제 복종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인데, 우리에게  모든 것을 바로 아는 실력 또 그 다음에는 바로 알아도 인정이라 하는 거.

인정이라 하면 욕망이라 알과 같은 알인데, 인정하는 실력, 그 다음에는 실행할  수 있는 실력 그 실력이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면으로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왜 지옥 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지옥  가구로 만들어 놨습니까? 안 만들어놨습니까? 그거 만들어 놨다는 소리를 지금  일반 교계에서 말하면 그게 크게 정죄 받습니다. 그러나 지옥 가는 거 하나님이  전부 다 만들었습니다. 지옥 가는 거 하나님이 만들지 안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혼자 다 만들었습니다. 지옥 가는 거 혼자 다, 혼자 다 만들었습니다.

지옥 가는 계획도 혼자 다 했소. 천국 가는 것도 혼자 계획 다 했소. 만일 이  말이 나가면 굉장히, 뭐 세계가 들어서 이단이라고 달려 들겁니다만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러면, 어떻게 누구에게는 그래 하고 누구에게는 그래 안  하고' 없는 가운데 당신이 당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용하실 목적으로 창조해  가지고. 지어 가지고 당신의 목적대로 쓰시는데, 없는 걸 만들어 가지고  쓰시는데 그 만들어진 것이 뭐라고 말할 거라? 말해 봤자 거기는 또 도달하지도  안해요.

 이런데, 그 전부를, 전체를 다 총괄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당신은 어떤  분이시다 하는 것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또 당신에게 복종이라면 소속이나 다  그런 것인데 당신에게 속한 것은 어떻게 복되며. 당신을 떠난 것은 어떻게  망한다 하는 그것을 알리는 이 두 가지 지식을 알리는 것과 이 두 가지 지식에  행함까지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확고한 그 지식과 소망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하고 난 다음에. 죄를 범하고 나서 '내가 이런 죄를  지었다.' 깡깡 울면서 내가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겠다고 회개를 하고 그렇게  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답답해하십니다. 그것만 그라면 그 사람은 그 죄 안  지으면 다른 죄를 지어도 또 짓습니다. 하나님은, 이 죄를 짓게 한 하나님의  목적이 어디 있느냐? 이 죄가 어디서부터 시발해 나왔느냐? 그 범위는  어디서부터 시발해 나왔느냐? 또 어디까지를 목표를 두고 지금 달리고 있는  것이냐? 거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기의 잘못을 인해서 하나님이 그것으로  자기에게 알려 주고자 하시는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면, 잘못 그것을  하나님이 저질게 하셨는데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이용을 하느냐? 어떻게 사용을  하느냐? 그것을 알게 하시는 그대로 사용하는 그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그것을 자기가 후회한다고 울기만  했으면 무가치합니다. 그것을 뒤에 많이 활용을 했고, 또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가?' 하는 것을 알아서. 다윗은 모태에서부터 벌써 죄악 중에 잉태 했다  하는 것을 미루어 아는 것 모양으로 우리는 한 가지 범죄에서. 과거에 아주  깊숙이 과거를 연상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고, 그것이 또 미래적으로 얼마나  지금 가다가서 끝이 날 것이냐 그것을 깨달아서 알아서. 실은 범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셔서, 그렇게. 해 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난 다음에 그런 단계로 올라가게 될 때에 그런 것은 완전히 다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멀리 떨어져 버리고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이렇게 넓어지고 커지고 자라가야만 하겠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체험하는 데서 자라가지 그리 안 하면 안 자라가기 때문에  자라가는 방편 중의 하나, 우리가 계획을 세워 가지고, 계획을 세울 때에는 가장  평범하고 평안 무사한 때의 계획을 세워라. 그래야 아무데 도 충격 받지 않는다.

또 계획을 세워놓고 난 다음에는 몇 번이든지 재심 재심해서 '이것이야 만고에,  이걸 틀렸다 하면 그거는 그게 틀렸지 이거는 틀리지 않겠다.' 그렇게 언제든지  자기가 자기 계획을 인정할 수 있고 확실히 신임할 수 있고, 그 계획에 대해서  충돌이 있으면 그게 대적이 되지 그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 의심나지 안할 그런  계획을 세워놓고 그런데, 그 계획을 세울 때는 '이거야 아무도 할 수도 있지  않느냐?' 아주 쉬운 정도로서. 쉬운 것을. 쉬운 정도의 계획을 세워라. 쉬운  정도의 계획을 세워라. 그래도 만일 어려운 것이 와 놓으면 나중에 가서 뒤에  가서 뭐이 자빠지느냐 하면 '아, 이것이야 그때는 그랬지만 어떻게 이리나 갈  수가 있겠느냐?' 이러기 때문에, 너무 자기에게 멀면, 못 올라갈 나무에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자기와 거리 멀기 때문에, 우리가 잡을똥 잡을똥 해야 일이  되어지는 것이지 그리안 하면 안 된다 말이오. 그게 다 하나의 초절이요 허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쉬운 걸 계획 세워 놓고, 그렇게 해 나가 보면 거기서 무슨 전투가 벌어지느냐?  구습으로부터, 악습으로 더불어 전투하는 전투가 있고 악성으로 더불어 전투하는  전투가 있고, 악령으로 더불어 전투하는 전투가 있어서 거기서 하나 둘 싸워서  자꾸 나가는 거기에 자기가 변화되면 계획도 변화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정도에 맞는, 그러기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있으라' 하고, '아닙니다. 맹세하고 따라갈렵니다.' '그라면 가자.' 하는 고  간단하게 가르쳤지만 신앙생활은 전부 이렇게 가기 쉽고 쉬운 걸음을 하는 이  평범에서 승리해 나가야 되는 것이지. 무슨 호기심을 가지고 그렇게 별스러운  특수한 그런 방편을 쓰는 데에는 대단히 위험하고, 되는 것 같으나 마지막에  가서는 실패로 돌아가기가 쉽습니다.

 이래서,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 했는데 우리는 오늘 이 첫 시간에서 우리가 가서  쉬운 뜻을, 다는 못 해도 그래도 그걸 한번 정해 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나는' 예를 들면 시간으로 말하면 '아침에는 언제로부터 어느 시간까지는 뭘  한다. 또 거기서는 어떻다.' 아주 뭐 쉬운 거, 암만 놀면서 할 수 있는 쉬운 거.

쉬운 것을 그렇게 정해 놓고 해도, 그렇게 쉬운 데 나중에 가서 하루해를 지나고  나서 계산을 대면 전부 실패입니다. 그대로 하지를 못했어요. 이러니까, 계획을  세울 때와 마지막 계산을 지나가고 나서 뒤에 결산을 낼 때와는 너무 차이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이거 차이 있는 것을 없도록 자꾸 애를  써 가지고 계획과 마지막에 결말이 일치가 되어 지도록 노력 하려는 데에서  거기서 우 전투할 전투가 있고 양육할 그 양육이 있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잠깐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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