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인

 

1987. 7. 31. 새벽 <금>

 

본문:마태복음 6장 24절∼34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가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에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사람은 근본부터 두 종류로 아주 판이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예택한 사람이요 하나는 예택한 사람들의 구원 달성을 위해서 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외부에는 꼭 같은 것 같지마는 실은 두 종류입니다.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나 또 택함을 위해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나 대동소이합니다. 같은 점이 많고 다른 점은 잘 모를 만치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 그게 근본이요 크고 껍데기 그거는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준비 또 결실 그것은 다 가졌습니다. 그러면 택한 자들의 준비는 이 세상에서 준비하는 데 그 결실은 어떤 게 결실인가? 영원 무궁한 완전한 것이 결실이요 안 믿는 불택자들은 그 준비도 세상에 있고 결실도 세상에 있습니다. 세상에 있지마는 자기의 생시에 있는 것도 있고 먼 것이 자기 죽고 난 다음에 후손에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안 믿는 사람은 자기 당대가 잘되고 또 자기 후세가 잘되면 그만하면 성공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세상도 잘되고 또 무궁세계도 잘되고 그러니까 소망과 목적이 다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생활은 중요한 것이 어떤 게 중요한 것인고 하니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아는 것입니다. 불택자들도 바로 아는 것이고 택자들도 바로 아는 것입니다. 바로 모르면 그만 성공에 길도 찾지 못한 것입니다. 바로 아는 것.

또 다음에는 바로 알고 바로 안 그것을 그대로 바로 행하는 것이 둘째입니다.

또 바로 알고 바로 행하는데 그게 바로 알았는지 바로 행했는지 그것에 이제 결과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마다 다 자기대로는 바로 알았고 바로 행했다고 생각을 가지지마는 그것만으로서는 바로 알았는지 바로 행했는지 모릅니다. 바로 알고 잘못 알고 바로 행하고 잘못 행한 그 결과는 성공입니다. 그 결과는 성공입니다. 그러면 성공이 있으면 바로 알고 바로 행했고 성공 없으면 제가 아무리 뭐 바로 알고 바로 행했다고 해도 스스로 제가 속았지 잘못 알고 잘못 행한 것입니다.

안 믿는 불택자들의 성공은 이 세상에서 첫째는 자기 이 육체적인 그런 모든 성공이고 다음에는 이 세상 모든 부귀 영화 그 성공이 성공입니다.

사람은 불택자도 택자도 다 자기의 그 행함의 결과를 먹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이래서 그 사람이 실패가 오는 것도 실패보다 먼저 잘못 안 것이 먼저 왔고 잘못 행하는 것이 먼저 왔고 잘못 알고 잘못 행했으면 실패가 오고 또 바로 알고 바로 행했으면 성공이 오는 것이 변치 않습니다. 이거는 뭐 천 인이나 만 인이나 꼭 그대로지 요거는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안하고 꼭 그대로입니다.

그대로면 혹 생각하기를 ‘그대로면, 그러면 사람이 잘 하면 성공하고 잘못 하면 실패하니 성공과 실패가 사람에게 근원이 있고 주권이 있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바로 알고 바로 행하면 성공, 결과가 성공, 잘못 알고 잘못 행하면 결과가 실패, 그러면 이것은 순전히 사람이 근원이 돼 가지고서 하는 것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불신자들이 생각하는 것인데 실은 그렇지 않고 안 믿는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그 사람이 잘못 압니다. 그걸 봐서 ‘저게 복이 없는 사람이다’ 할 수 있어. 또 잘못 행합니다. ‘저 사람이 지금 복이 없는 사람이다.' 또 그라면 뒤에 짐작을 합니다. 통계를 맞춰서 많이 아는 사람들은, 인간을 경험하고 모든 인생을 경험한 사람들은 ‘저거 잘못 알고 잘못 행하는 것 보니까 아마 실패의 결과를 가져오겠다’ 생각하는 대로 실패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면 그것이 인간이 잘못 알고 잘못 행해 가지고서 그 잘못 알고 잘못 행함의 결과는 실패가 오는 것인데 인간이 인간 단독이 잘못 알고 잘못 행해 가지고서 오는 실패는 그 실패 오는 것이 인간만치 옵니다. 인간의 힘만치 옵니다.

또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벌써 잘못 알도록, 잘못 알도록 잘못 행하도록 그렇게 예정을 돼 가지고서 그것이 실패가 오면은 그 실패는 뭣만치 실패가 옵니까? 뭐 무슨 힘만치 실패가 옵니까? 하나님의 힘만치 실패가 옵니다.

인간이 하는 것 같으면은 인간 힘만치 실패가 오니까 뭐 암만 해 봤자 인간을 초월하지 못하고 인간이 재를 저질러도 인간 힘으로 재를 저지른 게 되지마는 이것은 실은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다 정하셔 가지고 하기 때문에 실패는 하나님의 능력만치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그 실패는 하나님과 인간의 그 차이가 그뭐 억억만 차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 차이가 무한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차이가 무한한데 무한한 것이 인간 생각대로의 실패보다도 무한한 실패가 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그 사람이 바로 알면 ‘저 사람은 하나님이 작정하시기를 복되게 바로 알도록은 해 놨다.’ 또 바로 행합니다. 바로 행하면 ‘하나님이 저 사람은 복되게 바로 행할 수 있도록 그렇게 예정을 하셔 가지고서 또 섭리를 하신다.’ 그러면 그 사람이 그래 가지고서 나중에 바른 성공이 오게 되면 ‘저 사람은 하나님이 성공되게 예정해 가지고 성공이 저렇게 왔다.’ 그러면 그 성공이 뿌리가 얼마나 깊으냐 하면은 인간의 힘으로 이리 저리 해서 되고 안 되는 그게 근거가 아니고 하나님으로 근거됐기 때문에 심히 근거가 그 무한하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도 그러합니다. 믿는 사람도 바로 아는 것이 아는 범위가 이 육에 대해서 바로 알고 영에 대해서 바로 알고, 세상에 대해서 바로 알고 내세에 대해서 바로 알고 바로 아는 그 지식 범위가 불택자와 다릅니다.

불택자는 그는 육만 알고 이 세상만 아니까 그의 아는 지식의 범위가 육이요 세상이요, 해 봤자 그거. 또 택자들은 그 바로 알고 바로 모르는 그 범위가 어떠한가? 육뿐 아니라 영까지, 또 금생뿐 아니라 내세까지, 또 자기뿐 아니라 하나님에게까지 이렇게 그 범위가 넓습니다.

그래서 바로 알고 바로 행하면 택자는 육도 성공이요 영도 성공이요, 자기도 성공이요 하나님도 성공이오. 또 잘못 알고 잘못 행하고 실패의 그 결과가 맺어지는 그것은 자기에게만 한계되는 게 아니라 육 영, 금생 내세, 자기 하나님 그 범위 넓게 그렇게 실패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은 뭐이냐? 이 세상은 인간이 알 수 없는 하나님편의 예정이 어떻게 됐는가보다 하는 것을 하나님이, 하나님만 아시고 예정하신 그 예정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예정이 표시되는 것이 이 세상이요 또 이 세상은 ‘하늘나라 가서는 어찌되겠느냐? 무궁세계 가서는 어찌 되겠느냐?’ 하는데 무궁세계가 표시되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무궁세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세상 살이에서 ‘그 사람에게 대한 예정이 어찌됐으며 또 결과인 무궁세계의 하늘나라에서는 그 사람이 어찌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짐작을 할 수가 있는 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이래서 세상에서 벌써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대해서나 천국에 대해서나, 또 피조물에 대해서나 창조주에 대해서나, 자기에게 대해서나 자기 아닌 모든 다른 거 타에 대해서나 거게 대해서 바로 알려고 애를 쓰는, 바로 알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하나님편에서 벌써 복된 자로 예정된 증거입니다. 바로 알라고 애를 쓰는 것.

그러면 바로 알라고 애를 쓰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바로 알려고 하는 그 욕망의 범위가 심히 좁고 짜릅니다. 그러나 택자들에게 대해서는 바로 알고자 하는 그 욕망의 범위가 심히 넓고 깊고 높고 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짐작하는 것이 그 사람이 뭘 바로 알라고 자꾸 이래 애를 쓰면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거게 대해서 가치를 봅니다. 바로 알라고 애를 쓰면 그것을 가치로 봅니다. 불신자에 바로 아는 것 말고 믿는 택한 자로서의 알아야 되는 택한 자에 대한 지식을 바로 가질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지식도 인간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둘이 있는데 성경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요 이 사회에서는 뭐 대학이니 대학원이니 세계에 학문과 지식을 과학을 통달했다고 해도 그거는 인간 지식입니다.

인간 지식과 하나님 지식, 인간과 하나님이 차이가 그 무한한 차이지 어느 정도 몇 억억억만 배 차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지식도 그러합니다. 간단하나마 신구약 성경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으로서 무한한 지식이고 인간의 지식은 다 그거는 유한한 지식이요 또 인간 지식은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또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입니다. 이런 것은 심령이 어두운 사람은 이것을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안하고 깨닫기 어렵습니다.

이래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서 바로 알라고 애를 쓰면 바로 아는 데에는 자기가 바로 아는 사람들에게 듣는 것으로서 바로 알게 되고 또 하나님의 이 바른 지식을 주신 이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자기가 읽고 연구해 가지고서 바로 알게 되는 이 두 가지 방편이 있고 그 두 가지 방편 가지고서 사람들이 받은 자밖에는 모르는, 이 두 가지 방편 가지고 노력을 하면은 영감이라는 그 영감이 와 가지고서 그 사람에게 바로 알리는 그 은혜가 있습니다.

이래서 그 사람이 바로 아는, 바로 아는 이것이 참 중요하다 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느껴지는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사람들이나 하나님은 가치로 봅니다. 알겠습니까? ‘이 바로 아는 것이 이게 참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생각이 그 속에 있으면 그것을 가치로 봅니다.

자기가 뭐 이 세상에서 뭣을 뭐 왕을 한다, 대통령 한다, 부자 된다, 사장 한다 그까짓 거는 가치로 하나도 보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그게 달라. 그러기 때문에 복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도 그러하고 하나님도 그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이 일치된 그것만이 산 것이요 가치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는, 내나 당신이 예정해 놓은 것이지마는 복되고 복 안 된 가치를 평하는 평가, 가치 평가, ‘이 사람은 가치가 있는 사람 복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가치 평가를 할 때에 뭘 가지고 가치 평가를 하는고 하니 그 사람이 아주 세상에서 일류 대학에 들어갔다. 또 수재로 지금 공부하고 있고 졸업을 했다. 또 세상에 아주 제일 높은 지위와 권세를 차지했다. 그 사람이 체육도 구비해서 아주 남이 못 갈 그 뛰어난 건강을 가졌다 하는 이런 것을 가치로 삼지 않습니다. 요 말도 여러분들이 잘 이해가 안 될 거라.

가치로 삼지 않습니다. 전혀 가치로 삼지 않습니다. 그것을 다 죽은 것이라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죽은 것이라, 썩은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가치는 뭘로 가치를 삼느냐? 그 사람이 ‘이거 바로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먼저 제일 일호가 바로 알아야 되겠다.’ 바로 아는 데에는 이 세상에 과학자에게 과학 문서를 가지고서 상고하고 인간 통계 문서, 통계 문서라 말하는 것은 몇백 년 몇천 년 계속해서 그대로 된다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통계를 말합니다. 통계 지식, 이 물질 이치의 과학 지식, 또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인류의 뭐 인문지식이나 과학 지식이나 또 이 활동하고 있는 모든 사회 지식이나 이런 것들을 지금 가지고서 ‘내가 이거 바로 알아야 되겠다’ 그걸 가서 찾아 가지고서 뒤적거리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저 사람은 세상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이요 복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나님도 보고 또 하나님의 사람들도 그렇게 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것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사람들을 속이는 지식이요 정확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지식을 잣대를 삼아 가지고 쟀다가는 실패한다, 안 된다. 이러니까 정확무오하고 산 지식이 있고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할 수 없는 정확무오한 절대의 지식이 있으니 이거는 하나님의 지식인데 신구약 성경 지식이다.’ 이래 가지고 그게 뭐 무식하든지 유식하든지 ‘나는 바로 알아야 되겠다. 바로 아는 게 제일 중요하다. 바로 아는 게 제일 중요하다.’ 바로 아는 데에는 그라면 바로 알라면 네가 뭐 대학을 가야 되겠느냐 일류 대학을 가겠느냐 또 외국에 다니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면은 ‘저거 벌써 탈선돼 나간다’ 요렇게 봅니다. ‘탈선돼 나간다.' 그게 무식하고 바보 같은 것이 ‘바로 아는 게 제일 중요하다. 바로 알아야 된다.’ 요걸 딱 가지고서 ‘바로 아는 데는, 바로 아는 데는 이건 바른 지식을 내가 찾아야 바로 알지, 바른 지식을 찾아야 바른 지식에게 바로 배우지 바른 지식 안 하고 삐뚤어진 지식을 내가 찾아서 만난다고 하면은 아는 것이 다 삐뚤어지게 알기 때문에 아는 그것이 다 아는 것만치 망하게 된다. 많이 알면 많이 망하고 넓게 알면 넓게 망하고, 망하게 된다. 이러니까 바로 알아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신구약 성경을 이 등신 같은 게 자꾸 상고합니다. 자꾸 성경을 읽습니다.

‘보자 성경에 뭐라 했노?’ 성경을 보고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바로 알라고, 인제 뭐 하나님께 대해서든지, 사람에게 대해서든지, 피조물에 대해서든지, 금생에 대해서든지, 영에 대해서든지, 육에 대해서든지 모든 면에 대해서 바로 알라고, 바로 알라고 하면서 신구약 성경을 들고 자꾸 거기서 보니까 읽어가는 가운데서 하나 바로 알고 난 다음에는 ‘하, 요거 바로 알았다. 요게 바르다.’ 그래 딱딱 잡고 이렇게 만일 신구약 성경을 보고서 바로 알라고 애를 써서 하나 둘 잡으면서 바로 알고 난 다음에 요거 하나 알았다 둘 알았다 차각차각 바른 지식으로 자꾸 자기가 그것을 준비해서 구비해 나간다고 하면 그 사람이 인류 중에 이것입니다. 하나님도 이래 보고 하나님의 사람들도 이래 보고 실상 가치가 이렇습니다. 실상이 이렇습니다. 자, 그러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 어데 있어?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이 이제 바로 아는 게 중요하니 바로 알아야 되겠고서 바로 알라고 애를 쓰는데 또 바로 알라고 애를 쓸 뿐만 아니라 바로 안 대로, 바로 안 대로 요거 바로 안 것을 내가 그대로 바로 알고만 있고 행하지 안하면은 실상은 만들어지지 안하고 바로 알고만 있고 행하지 안했기 때문에 바로 아는 지식이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 된다.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 되지 오히려 ‘너는 이라면 산다’ 하는데 안 했으니까 죽는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자기를 누가, 하나님의 법이 자기를 뭐 심판할 게 아니라 자기가 아는 지식이 알고 행하지 안했기 때문에 ‘너는 왜 이라면 살고 이라면 죽는데 네가 행하지 안했으니까 요렇게 죽는 일 했으니까 네가 죽어야 되고 사는 일 했으니까 살아야 될것 아니냐?’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는 심판하는 지식이 되지, 심판만 하는 지식이 되지 자기를 구원하는 지식은 못 된다.

이러니까 ‘내가 바로 아는 데에 노력했으니 또 바로 안 그대로 내가 행하는 데 노력을 해야 되겠다’ 그것이 바로 아는 데에 노력하더니마는 바로 행하는 데 노력합니다.

그게 앉은뱅이입니다. 앉은뱅이가 그랍니다. 이 앉은뱅이가 그라면 좀 낫지마는 이거는 누운뱅이입니다. 누운뱅이가 그랍니다, 누운뱅이. 누운뱅이가 그라면 또 낫지마는 누운뱅이가 또 그것이 소경이고 또 벙어리고 귀머거리고 등신인데 이것이 바로 알라고 애를 쓰고 바로 행할라고 애쓰는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소경이 눈으로 보지는 못하니까 손으로 더듬더듬 이래 가지고서 소경 글을 가지고서 성경을 읽으면서 바로 알라고 애를 쓰고, 귀머거리가 듣지 못하지마는 손으로 이래 가지고 할라고 애를 쓰고, 그것은 전심 전력이 하나님의 성경,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서 바로 알라고 애를 쓰고 아는 대로 행할라고 애를 쓴다고 하면은, 거게 전심 전력을 기울였다면은 인류 가운데에 전심 전력 기울이는 중에 이 세상 모든 것이 구비한 사람만은 못하지마는 자기 있는 대로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됐으니까 그것이 제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마지막에 등장되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러기에 하, 재주가 있습니다. 아주 제일 좋은 학교에 가 가지고서 공부하고 또 세상에서 자꾸 어떻게 뭐 성장돼 나가든지 다른 사람이 따라가지 못할 만치 국민학교에 우등으로, 또 중학교 고등학교 우등으로, 또 대학도 일류로 그만, 또 대학 하고 난 다음에 이 세상에 출세도 앞서서 그뭐 아주 고성능으로, 아주 고속으로, 고성능으로 뭐 달린다 합시다.

달려도, 딱 봅니다. ‘보자, 네가 바로 알고 바로 행하고 하면은 바른 성공이 있고, 잘못 알고 잘못 행하면은 실패가 오고 그런 건데, 보자, 너는 보니까’ 저 사람 보니 바로 알아야 되고 또 바로 행해야 되고 그래야 바른 성공이 있지, 바로 알고 바로 행한 그 결과에 성공이 있지 어데 노름하는 사람 모양으로 이렇게 의외에 횡재수가 닥친다, 요행이 닥친다 그렇게 생각하면, ‘요행도 올 수 있지 않느냐? 요행으로 혹 오다가다 보면은 요행으로 복덩어리 만나 가지고서 복될 수가 있지 않느냐?’ 요행심이라 하는 것은 사람을 망치는 것입니다. 벌써 그 사람이 요행심을 가졌으면 ‘아이고, 저놈은 망하겠다’ 딱 찍어서 그만 결정해 놓고, 왜? 틀림없습니다. 요행심을 가진 놈은 망하지 요행심 가지고서 안 망하는 놈이 없습니다.

요행심을 가지고서 성공이 됐습니다. 성공이 됐으면 성공인 줄 알지마는 ‘저 사람이 요행심 가지고 성공됐으니까 또 요행심 가지고 또 망한다.’ 그런 것은 성공으로 보지 않습니다. 조만간에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행심을 가지지 안하고 이 세상에서도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그래 착착 해 가지고서 ‘바로 알고 바로 행해야 바른 성과가 있다’ 그렇게, 이 과학적이라고 말하면은 물리라고도 할 수가 있고, 물리라고도 할 수 있고 물리만 과학이 아니고 공자의 도덕은 그게 과학입니까 그거는, 과학이라 하면 이 과학이라는 과학과를 범위 넓게 잡으면은 이 모든 이 세상에 도덕가들의 하는 그 도덕은 그것은 과학과에 속했습니까 신과에 속했습니까, 뭐입니까? 어데 속했습니까? 과학과에 속했어.

과학과라 말은 인간은 물질로 돼 있는 것이라. 사람에게 영이 있으면 하지마는 영은 죽었고 전부 이 물질인 심신만 살았기 때문에 심신의 작용으로 된 그것도 전부 물질 작용입니다. 그것도 넓은 범위에서 과학이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제 그 지식을 이 피조물 지식을 가지고서 그것을 탐구할라고 애를 쓰면은 볼 때 뭐라고 봅니까? ‘저거는, 저거는 택한 자는 택한 자일지라도 저 사람이 택한 자로서 최고의 복있는 사람은 아니다. 최고의 복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봐집니다. ‘최고의 복있는 사람은 아니다. 저 사람은 아무래도 세상으로서는 성공을 할 사람 같은데 영적으로는 성공할 사람이 못된다.’ 그래 봅니다.

그게 이 세상 것도 하기는 하지마는 바로 알고 바로 행하는 것을 하나님의 지식 외에는 다른 지식은 다 바른 지식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지식만 바르니까 하나님의 지식에서 바른 것을 알라고 애를 쓰고 바른 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행할라고 애를 쓰고 벌써 어릴 때부터 그렇게 거게다가 위주를 하는 그것을 가지게 되면은 ‘저거는 굉장한 이제 성공자가 되겠고 위대한 자가 되어서 과연 세상과 영계를 차지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라’ 그렇게 싹수를 봅니다. 이 말이 여러분들에게 어때요? 어찌 보입니까? 사람을 그렇게 평가합니다. 야곱이 열두 아들을 놓고서 축복한 것이 그 야곱이 축복을 잘 해 주면 되고 안 되고 그 야곱의 축복에 따라서 돼졌습니까? 그거 아니오.

야곱은 영안이 밝은 믿음의 사람이요 의인이기 때문에 그는 인간을 탁월한 신령한 지혜와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축복한 것을 보면은 야곱의 열두 아들의 그 인간성, 인질성, 그이의 본능성, 평가성, 지식성, 그이가 소욕하는 이 소욕성 그런 것을 야곱이 세밀히 보고서 그 자체가 어떤 종류며 또 하나님이 어떻게 예정했으며 앞으로 어떤 결과를 맺을 것이라 하는 것을 예언해 놓은 것입니다. 예언해 놓은 것이오.

그것을 사람들은 대개는 보면은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축복을 해서 축복한 대로 됐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야곱이 뭐이기 때문에 축복한 대로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거 보고서 예언했습니다.

예언한 것, ‘너는 이러니까 인류 중에 제일 이게 되겠다. 너는 제일 천한 종이 되어지겠다. 너는 또 어떤 면으로 어떤 방향으로 너는 진출하겠다. 너는 어떤 면이 결핍하겠다.’ 그것을 간단하나마 그 사람의 인간성 인질성, 본질과 본성을 보고서 그대로에 너는 결과가 맺어진다 하는 것을 예언한 것이라 그거요.

그래서 하나님도 그러하고 하나님의 사람도 그러하고 사람을 평가하기를 벌써 이 사람이 뭣을 욕심을 부려서 눈 앞에 있으면, 눈 안에 있으면 욕심을 부려 가지고서 어짜든지 자기 욕심대로 성공할라고 모든 거 욕심을 내고, 또 자기를 내세워서 자기 주장대로 할라고,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 설복을 시키고 자기에게 굴복을 시키고 자기 주장대로 할라고 또 애를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만 압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를 제일로 해 가지고 자기를 중심으로 삼아서 모든 것을 자기에게 귀속시킬라고 애를 쓰는 사람 그런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은 보고서 잘난 사람이라 이라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볼 때에 ‘너는 전적 패망뿐이로구나. 너는 전적 패망뿐이다.’ 왜 패망뿐이라? ‘야, 너보다 이웃이 강하다.' 알겠습니까? ‘너보다 이웃이 강하다. 너보다 너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강하다. 너는 네가 주장할라 해서 네 단독이 주장하고 또 많은 사람들을 네가 정복하고 네가 굴복시킬라고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그 뭉텅이 힘이 세기 때문에 결국은 너는 실패를 보고야 만다. 그러기 때문에 너보다 피조물 중에 타가 강하다. 네 자체와 많은 모든 피조물들이 있는데 타가 강하다.’ 그러기 때문에 그 타를 네게 굴복시켜 가지고 네가 살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네가 타와 화합을 해서 타와 대립되지 안하고 타와 화합이 돼 가지고서 협동해서 성공할라고 타와 화합할라고서 애를 쓰는 그것이, 약자가 강자에게 속해야 되지 약자가 강자를 대항하면 망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뭐 과거에 모두 사대주의라, 큰 걸 섬긴다고 사대주의를 뭐 조롱하고 하지마는 그거 무식한 사람들이라. 모든 존재들은 사대주의가 바릅니다.

저보다 강한 자를 자기가 섬겨야 덕이 있지 강한 자를 대항하면 깨지고 만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 모두 지식의 범위가 좁아서 하고 있는 건데 ‘우리 뭐 한국은 사대주의라서 어짜고’ 하는데 사대주의 아닌 나라는 망합니다.

사대주의, 그러기 때문에 나보다 이웃이 강하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나 아닌 모든 피조물에게 이 화합되도록, 전인류에게 화합이 되도록 해서 전인류와 나와 화합되니까 내가 전인류에게 속해 가지고서 전인류의 그 혜택을 입어 가지고 내가 살라고 하는 그것이 인간으로서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또 인류밖에도 더 많은 피조물이 있습니다. 이 많은 피조물들이 있어서 우주도 있고 또 이 지구상에도 모든 만물들이 있기 때문에 자기 밖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또 자기보다 더 큽니다. 인류보다 더 큽니다. 그러면 그와 또 화합해 가지고 살라고 애를 씁니다. 이 화합해 가지고 살라고 애를 쓰는 요 눈이 떨어진 사람은 그 사람이 처세술이 있는 사람입니다.

또 그보다 제일 큰 것이 누굽니까? 저 ○○○? ○목사님, ○목사님은 제일 큰 것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제일 큰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대항하면 망하니까 하나님에게 내가 붙어 살아야 되겠다, 하나님께 붙어 살아야 되겠다.’ 그분에게 붙어서, ‘그분과 대항하면 안 되니까 그분에 붙어 가지고서 그분과 서로 화합이 돼 가지고 그분의 도움을 입고 그분의 혜택을 입어 가지고서 내가 살아야 되지 그분을 대항하면 안 된다.’ 이래가지고서 또 하나님과 화합할라고서 그렇게 하고서 자기 생애를 방편을 그렇게 삼습니다.

이래서 이거 뭐 시간 다 갔는데 혹 시간이 있으면은, 이런 것을 알아야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이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뭘 ‘신앙 생활 하는 것이 옳으니 신앙 생활을 해야 되겠다. 또 신앙 생활 하는 것은 천국 간다 하니까 신앙 생활 해야 되겠다. 또 신앙 생활 하는 것은 ‘복받는다 하니 신앙 생활 해야 되겠다.’ 그런 게 아니고 신앙 생활을 똑똑히 성경을 알고 보면 ‘내가 불에 들어가면 타 죽기 때문에 불에는 안 들어가야 되겠다.’ 그러면 불이 있으면 불에 들어가야 되느냐 불에 나와야 되느냐? 불에 나와야 된다는 것이 누가 어데 칭찬 받을라고 누구를 위해서 불에 나오는 게 아니라 안 타죽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의 이 신앙 생활이라 하는 거는 필연성인 겁니다.

필연적으로 안 그라면 안 되는 필연성이라는 거.

그러기 때문에 이 신앙 생활은 성경 지식을 알고, 미신적인 신앙 생활은, 그것은 이치를 알아서 ‘이치에 이러니 이 이치를 벗어날 수 없다.’ 이치를 알아서, 이 물리 과학이 아니고 이는 인간을 조성하는 인간 과학인데 인간 과학,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그 관계를 바로 알아 가지고서 신앙 하는 그신앙이 그것이 산 신앙이요 바른 신앙이라 말이요, 이것이 없고 그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복되지 않느냐?’ 또 ‘하나님을 대접하고 섬기는 것이 복되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것은 깊이 파고 들어가면 일종의 미신의 신앙입니다, 미신 신앙. 바로 알면 예수님을 안 믿을 수가 없는 거라.

바로 아는 그게 그라면 바로 아는 그게 어찌 돼서 바로 알지요? 바로 아는 것.

○? 바른 걸 어떻게 바로 알아, ○○이? 어찌 알아, 바로 아는 게? 어찌 알아? 어떻게 알아, 어찌 해서 바로 알아? 바로 아는 게 어째 그래? 하나님이 바로 알도록 예정되어 있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섭리하시기 때문에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바로 알게 되는 것이오.

인간 노력으로 바로 알게 된다 하면은 바로 아는 그것이 가치가 인간만치 가치 있소 하나님만치 가치 있습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바로 알게 되면은 바로 아는 그 가치의 실력이 인간만치입니까 하나님만치입니까? 하나님만치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어지기 때문에 예정대로 된 것이 복되게 된 것은 하나님이 하셔서 하나님처럼 됐기 때문에 가치가 크고, 예정이 있기 때문에 크지 예정 없이 인간들이 마구 들고 인간들이 이와같이 힘을 쓰고 애를 쓰니까 되어지는 것으로 돼져 버리면 그까짓 거 잘돼봤자 인간만치 되기 때문에 ‘나도 지금이라도 또 힘쓰면 될 수가 있겠다’ 하지마는 그게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기 때문에 그 바로 된 것을 인간이 따라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지금 딱까리만 떼 놨는데 이걸 좀 알아서 배워야 되는데 하나도 모르거든. 하나도 몰라. 모르니까, 모르지마는 그걸 제대로 안다 하는 것을 꺾으면 안 될 터이니까 이 설설 이라고 그래 이라니까 이라면 그게 아는 줄 알고 바로 된 줄 알고 날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바로 아는 것 모르는 그것도 또 그만 지혜 있는 사람은 바로 압니다. 왜 알게 돼? 바른 말인지 꺼꾸른 말인지 잠시 잠깐 후면 그 결과가 나와 버립니다.

이 미래라 하는 것은, 미래라 하는 것은 그만 바로 현재 되고 현재는 바로 과거로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성공이 미래와 현재에 있습니다.

미래와 현재는 미래를 바로 알고 현재를 바로 행해야 과거라 하는 이 성공으로 가지, 성공이라는 과거가 이렇게 나오는 것이지 자기가 미래를 바로 알지 못하면은 현재를 바로 행하지 못하니까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나 미래를 두고는 세웁니다. 미래를 두고는 세워요. ‘이렇다 저렇다’ 자꾸 서로 세워대요. 세워대지만 세워댈 만합니다. 그러나 그게 세워대는 것이 현재를 닥쳐 가지고 행할 때도 세울 만합니다. ‘이래 하는 게 옳다 저래 하는 게 옳다.’ 미래와 현재까지는 시비할 수 있지마는 어데 가서는 시비를 못 합니까? 어데 가서는 시비를 못 합니까, ○○○? 미래에 두고는 시비할 수 있고 현재에 두고는 시비할 수 있지마는 퍼뜩 벌써 지내갔는데 그만 미래가 현재 돼 버리고 현재가 그만 과거돼 버리니까 과거가 뭐입니까? 과거면 그 결과의 승패가 싹 나와 버렸다 말이오. 제까짓 게 무슨 입을 벌리겠소? 이러니까 이제 우리가 첫째는 하나님 알아야 되고 둘째는 사람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 하나님 아는 것도 신구약 성경 말씀 가지고 알고 이거는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그 계시 지식을 가지고 알고 또 자기로서 아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자기 지식, 하나님 지식이 있고 인류 지식이 있고 자기 지식이 있고 세 가지 지식 속에서 사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인류 지식은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그 지식이 인류 지식, 다른 사람들이 깨닫고 말하는 그 모든 지식이 인류 지식이요,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이 계시해 놓은 영감의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이요, 또 자기 지식은 자기가 경험해 보고 체험해 본 것입니다.

자기가 경험해 보고 체험해 보고, 보니까 ‘저 사람은 이렇다 하고 이 사람은 이렇다 하고 이 사람은 이러고 다섯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하는데 나는 보니까 선생님이 다섯 사람이니까 저 사람도 맞고 저 사람도 맞으니까 뭐인지 모르겠다.

보자, 저 사람을 선생님으로 모셔야 되겠느냐 이 사람을 일등 선생으로 모셔야 되겠느냐 이걸 봐야 되겠다.’ 그 볼라면 그 사람이 그 연구할라면, 연구할라면 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는 것인데 그러면 어느 사람이 참 선생이고 일등 선생, 이등 선생, 삼등 선생, 사등 선생 오등 선생인지 그것을 알라면 인간이 알라면 알 수가 있어요 없어요? 알 수가 있어요 없어요? 알 수가 있어요 없어요? ○○○선생? 알 수가 있어? 또 여반에는 알 수 있어 없어? 어? 뭐라 하노? 없어? 있어? 알 수 있어? ○목사님은? 알 수 있어요? 정말로 알 수가 있어? ○○○집사님은? 예? 알 수 없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또 ○○○목사님은? 알 수 없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왜 알 수 없습니까 한번 설명해 보십시오. 알 수 없다 하고 알 수 있다 하니까 둘이니까 누구를 따라갈지 또 그것도 모를세. 자, 알 수 없는 이 한번 설명 한번 해 보라고. 설명 안 해요? 그러면 알 수 있는 이 또 한번 설명 한번 해 봐요. 알 수 있는 이 또 설명 한번 해 봐. 결과를 봐서 안다, 결과를 봐서? 그라면 미래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과거가 될 때는 안다 그말이구만.

답이 맞아요 안 맞아요? 맞아요 안 맞아요?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저 뒤에는 멍충하게 왔지? 모르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 저 뒤에. 저 중간에는 바보라 모르는구만. 바보라 하면 듣기 싫지만 바보를 바보라 하지 뭐라 할 거라? 맞았어, 맞았어. 백점이라. 미래에 두고는 몰라요. 이 사람 저 사람 하니까 누가 맞은지 몰라. ‘어느 사람 말을 들어야 될란지, 어느 사람이 선생님인지 이거 뭣인지 모르겠다. 이걸 연구를 해서 알아야 되겠다. 어느 사람을 선생님으로 모셔 가지고 일등으로 모셔야 될란지 이등으로 모셔야 될란지 알아봐야 되겠다.’ 연구하면은 연구해서 알 수가 있어요 없어요? 한번 대답해 봐요. 있어? 있어, 있어. 어째 있어? 어떻게 해서 있어,○선생? 어떻게 해서 있어? 이거 봐, 다그쳐 물으면 다 몰라. 다그쳐 물으면 그만 몰라. 그거 그래 아는 것은 확실히 아는 게 아니거든. 다그쳐 물으면 그만 대답 못 해.

알 수 있어.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어? ‘보자, 모르겠다.’ 그걸 잊어버리지 말고 `저 사람은 저랬지, 요 사람은 요랬지.’ 자기가 딱 짐작해 놓고 ‘보자' 떡 좀 그것이 현재가 돼도 잘 안 보입니다. 이 사람은 이래 말하는데 이래 행하고 저 사람은 저래 하니까 어느 게 옳을란지 모르겠다 말이오. 그게 딱 지나가니까 마지막에 과거가 될 때는 성패로 딱 결과가 나온다 말이오.

성패로 딱 결과 나오기 때문에 ‘저 사람 말한 것은 저거는 통통 거짓말이고 틀린 말이다. 장단이 헛장단이라. 이 사람 말한 거는 이거는 틀림 없이 맞다.’ 그러면 그거 ‘저 사람은 전적 맞다, 저 사람은 오분지 일 맞다, 오분지 이 맞다, 오분지 삼이 맞다, 오분지 사가 맞다, 오분지 오가 맞다.’ 요래 딱 가치를 결정지운 그것은 무슨 지식이라요? 하나님의 지식이라요 그게 인간 지식이라요 자기 지식이라요? 어? 그거 누구 지식이라? 그것이 자기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전인류의 지식보다, 자기 지식이 크고, 알겠소? 자기 지식보다 또 뭐이 커? 하나님의 지식이 커. 요렇게 조직적으로 알고 나가는 자는 이 세상에서 뭐 저거딴에는 뭐 박사니 뭐니 그런 거 찾지만 그런 걸 아예 안전에 보지 않습니다.

그까짓 거 지금 여러 수만 길 밑에 저 밑에 있는 찌끄러기기 때문에 그걸 찾을 게 뭐 있어야지? 그보다 높은 말이지 고차원의 이 위에 가 가지고서 지금 찾고 있는데.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인간은 세 가지 지식 속에서 방황하고 있구나. 하나님의 지식, 인류 지식, 인류 지식은 이 세상에 그걸 가리켜서 문화 지식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전 통계 지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 지식.

자기가 실제로 살면서 연구해서 경험과 체험에서 아는 지식, 이러니까 전인류 지식보다도 자기 지식이 낫고 자기 지식보다 하나님의 지식이 낫다.

이 세 가지 지식 가운데서 사는데 첫째로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서 살아야 되겠고 둘째로는 내가 경험하고 체험한 그거 잊어버리지 말고 ‘보자, 사람은 누구를 따라가야?’ 그래 가지고 사람을 딱 평가합니다.

평가해서 해 놓은 사람은 그 사람에게는 벌써 말은 안 해도 ‘예예 선생님 선생님’ 이래 쌓지마는 그게 처세술이라. 처세술이라서, 안 하면 구렁이도 구렁이라 하면 성낼 터이니까 구렁이도 용이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설설 이래 두지마는 속으로는 ‘조거는 몇닢푼치밖에 안 되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는 말 안 듣는다. 요거는 요 사람에게는 백분지 일프로는 참고로 할 수 있지마는 이프로도 안 된다. 요 사람은 백의 오십프로는 요 사람 말은 참고할 수 있다. 요 사람 말은 백프로 참고로 할 수 있다.’ 이래 놓으니까 자기가 관계하는 모든 인간 평가가 다 정가가, 정평 정가가 딱 돼 가지고 있지, 또 그래 나가니까 이 세상에는 말들이 막 주 모아 가지고 날뛰고 하지마는 ‘보자, 그게 결과는 어떻느냐?’ 다 그 지식 가지고 딱 자기 지식 가지고 딱 들어맞추니까 결과가 환하게 판명이 나온다 말이오. 이렇게 사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런데 오늘 새벽에도 뭐 조금 많이 나왔는데 안 나오면 뭐할 거라? 제까짓 게 어떤 뭐 박사 아니라 박박사 억만 박사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다 썩은 지식이라. 알면 여기 새벽에 나와서 빨리 배우지. 몰라, 또. 알아요? 몰라요.

이러니까, 모르면 못 행합니다. 모르고 행하면 그거는 모험적으로 행하기 때문에 성공은 적고 실패가 많습니다. 바로 아는 것이 첫째 길이오. 둘째로는 바로 행하는 것이 둘째 길이오. 그라면 성공이 오고 잘못 알고 잘못 행하면 실패가 옵니다. 요건 틀릴 수 없어.

그러면 사람의 가치를 어데다 둬요? 그 아이들을 보고 학생들 이래 보고 청년들을 봅니다. 이 사람들이 좀 많이 교제해요. 함께 많이 사는데 눈이 깜작깜작하면서 ‘보자, 사람을 저 사람을 내가 대우할까?’ 사람을 가치대로 대우해야 되지 않습니까? 사람 대우를 할라 할 때에 뭘 보고 대우해요? 뭘 보고 그 사람의 가치를 알아요, ○○○? 알려고 하는 ‘이 바로 알아야 되겠다’ 알려고 하는 것 가지고서 ‘조거는 희망이 있다' 그 가치로 봅니다.

알려고 하는데 또 그다음에는 뭐이요? 알라고 하는데, 알라고 하는데 그 가짜 가치 진짜 가치, 가짜 가치 진짜 가치 있는데 가짜 가치는 뭘로 알아요? 가짜 가치는 뭘로 알아요? 자, 저 한번 ○집사, 가짜 가치는 뭘로 알아요? 뭐라 하노? 뭐라 해? 그거 누가 말 좀 가까운 데, ○○○이 뭐라 해? 뭐 엉뚱한 소리 하고 있노? 그 사람이 가치를 그 사람이 무엇이든지 바로 알아야 된다 하고서 바로 알라고 눈이 똥그래 가지고 달라들면은 그 사람 가치 있는 사람으로 봐야 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이 사람이 진짜 가치가 있나 가짜 가치가 있나 그거 가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것을 알라면 또 뭘 보고 알아요? 뭘 봐 알아, 저 ○○씨? 고함 질러 봐, 내게 안 들려? 결과를 봐서 알아야 돼? 또 너는, 그 옆에 ○선생은? 결과를 봐야 알아? ○○○씨? 뭐라 하노? 뭐라 해? 행함 보고 안다. 다 낙제라. ○○○권사님? 모르겠다. 이래 놨으니 마귀란 놈이 막 돈내기 할 거라.

자, 너는? ○선생은? 너는? 이거야. 행함이 아니고 보니까 그 사람이 바로 알아야 된다고 이래 쌓는데 ‘바로 알라고 애를 쓰니 이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했는데 보니까 그 사람이 이 죽은 지식 가지고서 자꾸 바로 알라고 막 머리를 싸 짜매고 일류 학교 올라가고 또 가고 자꾸 이리 올라갑니다. 이런데 그래 볼 때에 ‘너는 가치를 가져도 희망을 가져도 가짜 희망을 가진 사람이라’ 딱 그렇게 가치를 정해 놓는다 말이오.

이거는 또 보니까 바로 알라고 애를 쓰는데 ‘모든 지식 가지고 안 된다.

하나님의 지식만이 참된 지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서 이거 바로 알아야 되겠다.’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다른 것 다 무시하고서 신구약 성경 지식 가지고 바로 알라고 애를 쓰고 또 자기 지식 가지고, 자기가 연구해 가지고 자기 지식 가지고 바로 알라고 애를 쓰고, 하나님의 성경 지식 가지고 바로 알라고 애를 쓰면은 자, 그 사람 가치가, ‘희망 있다. 바로 알라 하는 것 보니까 희망 있다.’ 또 둘째로 둘째 계단에 ‘하나님 지식 가지고서 바로 알라 한다.’ 그러면 가치가 변했소 가치가 지금 따라 올라옵니까? 가치가 따라 올라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또 바로 행할라고 합니다. 그라면 가치가 자꾸 따라 올라와. 그라면 나중에 가 성공하고 말아.

여러분들 이것을 깨달아야 할 터인데 이거 뭐 다른 데 이런 강의를 제가 할라고 들면 그뭐 월급 많이 주고 막 일류 대학에, 일류 대학 아니라 세계 일류 대학에 암만 돌아다녀도 별로이 없어.

이 경영학과, 경영학과라 하는 것은 한국에는 경제 경영학과밖에는, 경제 경영학과가 들어온 지가 얼마 안 됐어요. ‘그게 있으면 좋겠다’ 이랬는데 그때, 들어온 지 그거는 한 십 년 됐는가 모르겠어. 한 십 년 됐거나 아마 십 년 그게 그랬어요.

지금 이거 한국에는 경제 경영학과가 들어왔는데 그게 아니고 경제 경영학과가 아니고, 경제 경영에도 인간이 들었기 때문에 인간 경영이 좀 있지마는 이 사회 경영학과, 사회 경영학과라 말은 인간끼리 인인 관계에 대한 것을 경영하는 그 경영학과가 사회 경영학과라 그렇게 이름 지을 수 있는데 나는 안 가 봤지마는 아마 선진국에는 그게 지금 있으리라 생각을 해요.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분들이 있기는 있지마는, 있기는 있지마는 이 사망 수평선 이하에서 날뛰고 있지 사망 수평선을 넘어서, 사망을 넘어서 이 생명 세계 가 가지고서 그런 걸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암만 배워봤자 그까짓 거 그거라. 그들이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다가 근거해 가지고 연구해야 된다 하는 그걸 몰라. ○○, ○의사 알겠어? 맞아? 맞아요.

이런데 이런 이 보배를 산 지식을 얼마든지 가르치고 있는데 공짜배기로 배우라 해도 새벽으로 못 나와. 손을 들고도 못 나와. 손을 들고 못 나왔는데 아침 안 굶었으면 또 거짓말 했으니까 또 죄 지었지. 아침을 굶었으면 죄는 안 지었는데 죄 안 지었으면은 그날 아침에 못 나왔으면 그 이튿날 아침에는 나오게 됩니다.

그거 붇지 안하거든.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배워야 될란지? 자꾸 이 배워야 되는데 안 배우면 몰라요.

모르면 신앙 생활 못 해요, 별수 없이.

삼십 분 기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또 반사들은 회개 스무 가지를 꼭 외우도록 하십시오. 또 지하철 공사.

어짜든지 가치를 말이요 가치로 말하면 뭐이 가치 있느냐? 가치 있는 것은 오늘 아침에 인간 가치를 이걸로 보라 했지요? 인간 가치 이걸로 보라 했는데 이 어리석게 인간 가치를 거게다 두지 안하고 뭐 머리를 요래 꼬부리면 가치가 있는 줄 알아. 요리도 꼬부리고 또 요리도 꼬부리고 요래도 해 보고 그게 가치 있는 줄 알고. 또 요 색깔 칠했다가 조 색깔 칠했다가 그걸 또 가치로 보고. 또 공연히 눈을 요래 그려 가지고서 쌍꺼풀 또 이래 하고.

내가 어제 어떤 사람 보고서 ‘쌍꺼풀이 돼 가지고 있는데 쌍꺼풀’ 내가 물었어.

‘쌍꺼풀 했습니까?' 이라니까 내가 그라니까 ‘나는 이거 본야부터 이렇게 쌍꺼풀이 됐습니다. 나는 쌍꺼풀 만든 사람은 아닙니다.’ 이래.

가치를 ‘요래 볼까? 쌍꺼풀 해 볼까? 머리를 요래 볼까? 요렇게 해 볼까?’ 그거는 가치를 그런 데 두기 때문에 그 사람은, 바로 아는 그것을 가치로. 바로 알되 바른 지식에 토대해 가지고서, 또 행동하되 바로 행동해 가지고서, 무한한 완전 성공, 영원 성공, 무궁 성공, 영생 성공, 완전 성공 이것을 자기 성공으로 알고 목표로 알고 노력하는 그 사람이 제일 가치 있는 사람이라.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 다음에는 그 사람이 가치 있어. 예수님이 왜 가치 있어? 이 길 걸었기 때문에 가치 있어.

엉뚱한 짓 하지 말아요, 엉뚱한 짓. 엉뚱하게 ‘그러면 저거, 저거는 정신 없이 마귀에게 홀켰다.’ 마귀에게 홀켰다 하는 그말을, 마귀에게 홀킨 것은 보면 알아요, 마귀에게 홀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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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두가지 처소/ 빌립보서 2장 5절-11절/ 890301수새 선지자 201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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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두 종류의 짐승/ 요한계시록 13장 10절-18절/ 821013수야 선지자 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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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두 종류의 증인들을 보고 온전을/ 히브리서 12장 2절/ 880711월새 선지자 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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