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인과 두 길

 

1989. 1. 12. 목새

 

본문: 마 6:24-3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두 주인은 여게 하나님을 말했고 또 물질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물질 둘을 같이 섬길 수도 없고 언제든지 하나밖에는 섬길  수 없다 그렇게 말했어. 하나님을 섬기든지 물질을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만  섬기지 둘은 섬기지 못한다.

 왜 둘은 섬기지 못하느냐? 그것은 둘을 꼭 같이 섬길 수가 없고 어느 것을  중하게 여기면 하나는 천하게 여기는 것이 되고 또 하나를 사랑하며 하나는  미워하는 일이 되지 둘 다 같이 할 수는 없다 그것을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둘 다  섬긴다고 그렇게 잘못된 판단을 가지고 자기는 둘 다 섬기는 줄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둘은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고 하니 하나님은 제일 크신 분이요, 하나님은 제일 크신  분이요 또 하나님은 대주재시요 또 창조주시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모든 물질계나  영계나 하나님 외의 것들은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입니다. 지음을 받은  것들과 지으신 분은 조금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무한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분은 지으셨고 다른 것들은 다 지음을 받은 것들인데 사람들이 벌써  창조주와 피조물을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벌써 틀렸습니다. 사람들이  피조물을 하나님같이 필요하고 자기에게 요긴하다고 자기에게 있어서 필요성이나  중요성이나 또 효력 있는 그 유효성이나 그런 것을 같이 생각한다는 그것이 벌써  망하는 것이요 틀린 것입니다. 이러기에 사람들이 벌써 하나님도 섬기고 피조물도  섬긴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필요하고 피조물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  가지면 벌써 그것이 망하는 생각입니다. 피조물도 필요하지 않느냐? 하나님도  필요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필요하고 피조물은 피조물로 필요하지  않느냐 이래서, 하나님 한 분에다가 모든 일을 귀정을 시키고 귀속을 시키지 않고  하나님과 피조물이 다 필요하다 하나님은 많이 필요하고 피조물은 적게  필요할지라도 하나님과 피조물이 다 같이 필요하지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꾸 이래 나가기 쉽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많이 필요하고 피조물은 적게 필요하고 그러면 하나님과  피조물이 다 필요하기는 필요한데 그 필요성에 있어서 가치성에 있어서 차이가,  차이가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해석을 하게 됩니다. 차이가 있지, 크고 작은 데  차이 있고 필요한 데에 차이가 있지 필요 없는 건 아니다. 다 필요하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그 차이를 둔다고 하면 얼마나 두면 차이를 그것을 바로  두는 일이 되겠느냐? 아무리 차이를 두어도 하나님은 하나님만치 크고 많고,  필요성이 크고 많고 피조물은 피조물만치 필요성이 적다고 어데까지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필요성의 그 차이가 그게 바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필요하고 피조물도 필요하다 생각만 가져도 그거는 벌써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이 필요하고 피조물은 적게 필요해 그렇지 필요하기는  필요하지 않느냐 이리 되면 그만 하나님하고 피조물이 필요하고 우리에게 효력  있는 가치에 대해서 차이가 있지 다 없는 거는 아니다.

 그러면 차이가 있다 하면 차이를 그걸 바로 되야 될 터인데 차이가 얼마나  차이가 있겠느냐? 벌써 없는 가운데서 그분이 창조하셨고 누가 그것을 요구해서  창조하지 않으셨고 또 그것을 우리가 무슨 필요성을 느껴서 느끼고 난 다음에  우리가 구하기라도 하고 난 다음에 그런 것들이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는  것이고 구하기 전에 다 하나님이 사람보다 먼저 지어 놓으시고 그 다음에 사람을  지었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지어 놓으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지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필요해서 요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벌써 사람  내기 전에 인생에게 필요한 것을 다 당신이 지어 놓으시고, 그게 없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지어 놓으시고 그러고 난 다음에 그 필요한 것들을 구비하고 난  다음에 사람을 그 다음에 지으신 것이 하나님이 십니다.

 그러면 계획적으로 보는 것이나 또 모든 계산적으로 보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을  사람은 거기에 있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다 예산하시고  계획하시고 다 창조해서 존재케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면 처음에는 하나님  혼자 계셨고 그러고 난 다음에 인생을 지으려고 당신이 영원 전에 목적을 하시고  창조하시기는 피조물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인생을 다음에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랬는데 그분이 우리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든지 또 구비해야 될  것이라든지 그런 것을 당신이 혼자 계획하셨고 지식하셨고 그것을 만드신  그분인데 이제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참 하나님은 많이  필요하고 피조물은 하나님에다 비해서 적게 필요하지 피조물도 필요하다  피조물도 없어서는 안 되겠다 필요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많이 필요하고  피조물은 적게 필요해 그렇지, 차이가 있지 하나님만으로는 안 되겠다 피조물도  있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그것이 망령입니다.

 하나님 한 분 있어 가지고 모든 것이 다 되어졌고 우리가 생각하기 전에, '이게  필요한데 이거 없으면 큰일나겠네' 생각하기 전에 당신이 다 아셔서 하신  그분이기 때문에 그분 한 분 가지고 모자랄 게 뭐 있겠는가? 그분 한 분 가지고  계산이 모자라겠는가 계획이 모자라겠는가? 필요한 것에 거게 대해서 계산하는  지혜가 모자라겠는가? 또 그분이 무엇을 지혜는 있지마는 그것을 구비하는 데는  힘드니까 구비시키기가 그거 힘드니 그 면에 대해서 어려움이 있겠는가 모자람이  있겠는가? 그분 한 분으로 모두 다 됐기 때문에 그분 한 분으로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마귀란 놈이 와서 자꾸 사람들이 자꾸 타락해서 그분 한 분 가지고는 안  되겠고 이런 거 저런 게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 하나님 한 분에게 모든 설계를 다  맡겨 놨다가는 낭패된다, 그 계획에, 내 혼자의 내 한 사람에게 계획이나 설계나  모든 계산이나 그런 거 그분 한 분에게 맡겨 놨다가는 낭패된다, 우리가 가담을  해 가지고 우리도 그거 좀 이런 거 저런 거 좀 우리 의견을 첨부해야 되지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망령이고 얼마나 교만인지 모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지으신 인생에게 자연 계시로 이렇게 모든 만물들을 줘  가지고 하나님이 없었으면 그 만물이 그까짓 거 소용 없다 하는 것을 얼마든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아니니까 빠짝 말라서 겨울에는 다 푸른 풀이  없습니다. 또 여름에는 누가 뭐 힘을 써 그런 게 아니라 그분이 돋우니까 전체가  다 산천이 다 푸른 식물로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분 한 분에게 모든 것이 주권이 있어 그분만 있으면 다 되고 그분  없으면 모든 것이 헛일이다 하는 이것을 이 자연 계시의 만물로 알게 하셨고, 또  이러다가 안 되니까 특별 계시인 신구약 성경 이 도리를 가지고 얼마든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신 그 지식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연 계시 자연  계시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모든 만물들과 또 하나님의 섭리와 모든  인간들의 그 참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들의 심리 상태의 모든  구조들 이런 것들을 보아서 알 수 있도록 다 이렇게 내 준 것이 그것이 자연이나  일반이나 이런 걸 가지고 우리에게 보여 주신 지식입니다. 이것으로 안 되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서 그걸 가리켜서 계시라 그래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 특별 계시요, 하나님의 창조  모든 만물 하나님의 섭리 인간들의 그 천태만상의 심리 상태와 변해 나가는 거  이런 것이 다 일반물 피조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자연 계시인데 이런  것을 가지고 넉넉히 알 수가 있도록 해 주십니다.

 이런데도 마귀의 꾀임을 받은 것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허약한 것과 그래도  저거 소견을 뭐 첨부해야 되지 내게 대해서는, '내게 대해서는 내 의견을 첨부해야  되고 내가 거기 가담해야 되지 하나님 한 분에게 맡겨 놨다가 낭패되려고' 하는  것은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인간이 있기 전에 그분이 다 하셨는데 언제 네가  걱정해서 있었느냐? 네가 필요성을 느껴서 있었느냐? 네 존재가 있는 것도  그분으로 인하여 있었고 또 네게 필요한 모든 것도 네가 지금 필요한 것을 알고  있느냐? 네가 필요한 것을 네가 아는 그거는 만분의 일도 안 된다. 네가 모르는  너에게 필요한 것이 더 많다. 네가 아는 대로의 필요한 것은 그것은 그렇게 많이  중요하지를 못하고 네게, 네가 알지 못하는 그런 것들은 네게 중요하기를 많이  중요하다.

 이러기 때문에 많이 중요할수록 너희들이 재를 저지르고 사람들이 방해하기  쉽기 때문에 너희에게 많은 필요한 것들은 사람들이 아주 보지 못하도록  생각지도 못하도록 그 은밀한 가운데 둬 가지고 너희들에게 필요한 그 효력을  내도록 그렇게 한다. 조금 덜 중요한 것은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그런 정도로  껍데기 나와 있고 또 너희들이 필요한 것이 너희 눈에 보이고 너희 생각에  보이고 너희 눈에 보이고 벌써 너희 주관에게 뜨일 수 있는 그런 것은  필요하지마는 그렇게 보배가 아니고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껍데기로  돼 가지고 있다, 나와 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는 것들보다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필요한 것이다. 이런데 너희들이 뭐 보이는 것, 이런 것 이거 몇 가지를 알아 놓고  난 다음에 '아이고, 이것은 우리가 참관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걸 우리가 구비해야  되지 그분 한 분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그분 한 분만 바라고 있다가는 큰 일  나겠다.'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이냐? 이것이 벌써 교만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의심한다 하는 그것이 사람이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필요하다고 겸하여  자기에게 요긴하다고 중요성을 느끼는 그것이 벌써 무한히 타락해 가지고  가증스러운 것이며 망령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누가 하나님에게 먼저 드려서 받는 자가 있으며 또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을 구해 가지고 얻는 자가 누가 있느냐? 너희들이 필요성을  느끼기 전 오래 전 너희들에게 있어야 될 것을 아시고 다 하나님이 예비하셨고  또 지금도 너희들이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너희들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끈 많다. 왜? 아는 것은, 아는 것은 인간들의 악으로 인해서 방해할까 싶어서  아는 것은 인간들이 방해하지 못하게 해 놨다.

 제일 급하게 죽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일 급하게 죽는 것이 이제 생명인데 그  생명을 인간들이 보도록 해 놓으면 그 용심쟁이가 생명 전부, 인간들이 남의  생명을 제맘대로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하면, 이 생명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살아야 되지만 남은 다 죽어야 되는, 요자는 조자가 죽여야 되겠고 조자는 조자가  죽여야 되겠고 이러니까 생명을 가질 수가 없어. 또 공기 이런 것도 이게 다른 옷  밥 물 그런 것 뭐 그런 것보다는 공기가 더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이것은 밥은 안  먹고 여드레도 살 수 있어도 물도 안 먹고 여드레도 살 수 있고 뭐 열흘도 살 수  있어. 그러나 공기 이거는 몇 분만 안 먹어도 죽어. 이런데 이런 것을 사람들이  만일 손을 대 가지고 어떻게 조그만치라도 거기 간섭하고 자유할 수 있다고 하면  용심쟁이들이 전부 이거 공기를 못 먹구로 해서 다 죽일 거라. 이러니까 이 좀  강한 놈이 약한 놈을 못 먹게 하고 이런 것을 조금 중요한 것은 강한 놈이 약한  놈을 해하지 못하도록 이래 놓은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의 힘으로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는, 조그마치라도 거기  사람들이 손을 댈 수 있는 그런 것은 그뭐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서,  인간들이 방해한다고 해도 거게 대해서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큰 낭패되지 아니할  그런 것들이오. 인간들이 손을 대서 낭패될 것들, 강한 자가 저 혼자 먹어 버리고  약한 자는 먹일 수 없는 그런 것들은 전부 하나님께서 손을 못 대게 해 놨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오히려 강한 자 제일 권세 잡은 자는, 제일 권세 잡은 자, 제일  실력 있는 자, 뭐 지식적으로나 체력으로나 무엇으로든지 실력 있는 자는 거기서  하나님께서 많이 먹지 못하도록 좋은 거 먹지 못 하도록 해 놓고 제일 거지  가난한 그런 것들은 좋은 것 먹도록 해 놨어.

 이래 놓으니까 공기는 제일 무능하고 못난 자 그런 자가 좋은 공기 먹소. 아주  잘난 사람 그런 사람들은 좋은 공기를 먹을 수가 없어.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것을 하후하박하지 않고 이것을 공평되게 이거 좋으면 저거 안 좋고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공평하고 평균되게 이렇게 해 놓으신 지극히 크시고 세밀하시고 풀 한  포기에도 하나님의 그 관리와 섭리가 천도 만도 넘도록 이렇게 세밀하게 하시는  이분이신데 아무것도 억억억억억만분의 일도 모르는 그것이 짤막한 그 지식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가증스러운 것이오.

 이래서 아무리 하나님을 배워도 하나님 가지고는 안 된다, 하나님만 가지고는 안  되니까 이제 이 배암의 지식을 배워야 되겠다, 배암의 지식을 배우는 데에는  하나님의 설교를 듣지 못하고 진리를 듣지 못해도 일류 대학에 가야 되겠다.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을 못 해도 일류 대학 보내기 위해서 먹을 것 마실 것 딸딸  긁어서 다 들여도 그게 제일 보배이기 때문에 거기다가 온 식구가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일류 대학을 가야 되겠다, 대학가야 되겠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천대하는 것이요 박대하는 것이요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와 가지고 달리 생각하면 그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그걸 하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면 하나님보다 그걸 다 중요하게 여겨서 그걸  일호로 두고 하나님은 그 다음에 부속물로 두지 하나님을 주로 두지 않는다  말이오. 말로만 그렇지 실상 제 마음이나 생각이나 정신이나 모든 노력이나  정력이나 모든 것이 그러면 귀중한 데다가 많이 기울여야 되는데 어데다가  기울이느냐? 다 기울인 거 거게 기울이고 하나님께 기울이는 거는 뭐 십분지  일도 안 기울입니다. 일류 대학이나 대학 공부하는 학생놈들 모두 다 보면, 다른  사람 말 안 해요. 예수 믿는 놈들 말해요. 예수 믿는 진 자식들 모두 말하요.

거게는 정력을 기울이기를 십분지 구 이상 기울이고 성경 말씀을 뭐 듣는 것이나  또 깨달으려고 하는 거게는 십분지 일이 뭐이요? 십분지 일이나 기울일까, 그  계산이? 여기 공부하는 학생들 좀 한번 말해 봐.

 저 우리 OOO선생 OO대학에서 의대에 공부했으니까 열심히 아마 싸 짜매고  공부했을 거라. 공부하는 데에 하나님의 지식을 알려고 기울이는 데와 그 배암의  지식 알려고 기울이는 데에 만일 서로 뭐꼬 분수로 이래 할당을 한다면 하나님의  지식에 기울인 것이 인간 지식을 배우려고 기울인 데에 명분지 몇이나 되겠어?  한 몇 분이나 되겠어? 한번 양심상으로 한번 계산 한번 해 봐. 대략, 꼭이야 안  맞지. 시간적으로는 내 정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그걸 얻으려고 기울일 때에 그  하나님의 지식을 얻으려고 기울이고 그분의 능력을 얻으려고 기울이는 데에 내가  기울이는 것과 세상 지식과 세상의 권위를 얻으려고 기울이는 것과 반반이나  됐을까 혹은 십분지 일이나 십분지 구가 됐을까? 어찌 된다고 생각해? 양심대로  한번 말해 봐. 십분지 일? 이십분지 일?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 얻으려 하는 건  이십분지 일이고 그것은 이 십분지 십구가 되고, 그 말이 맞습니다. 그래도 엔간히  애를 썼구만. 다른 거는 쌔카많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하나도 없소. 전체가  세상 것과 세상 지식 얻기에 기울였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이오?  그자에게 하나님이 축복 주십니까?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네 맘대로 살아라, 네 맘대로 평가해라 하나님은  똥으로 평가하든지 하나님을 제일로 평가하든지 평가하는 것만치 너는 그를  대우할 것이요 거게 들어붙을 것이요 그를 귀중히 여겼을 것이고 취급할  것이니까 네 자유로 해라. 그러나 영원 무궁세계에 짤막한 이 세상에서 '나를  어떻게 대우한 그대로 내가 영원히 대우할 것이요, 나를 무시한 그대로 영원히  내가 그를 무시하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요 하룻밤 나그네의  보응으로 오는 영원 무궁한 세계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세상이 볼 때에  어리석다고 생각하지요. 그거 내가 조사들에게 말했어. 전화할 때에 '너희는  양심에 가책 받고 아이 많이 낳으면, 이거 거석하다 싶어서 그렇게 가책 받지  말고 아이 많이 낳아라. 너도 여섯은 낳아야 되고 여섯이나 일곱은 낳아야 되고  또 열여섯 낳은 사람이 그 사람이 구십두 살에 죽었다. 지금 열여섯 낳은 사람이  지금도 칠십 좀 못 됐는데 젊은 청년같이 팔팔하다. 왜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데  왜 뭣 때문에 어기는 자에게 건강 주시고, 어겨서 제 위생으로 저거 주의로 하는  자에게 건강 주시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약함을 줍니까? 그러는  데에는 너희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된다. 너희들이 욕심을 부렸으면 욕심의  댓가를 내야 될 것이고.' '그러면 낳거들랑 아예 국민학교는 할 것이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네가 그저 교역자로 다니면 중학은 가까운 이웃에 있기 때문에' 다닐 수  있을 것이고 아예 중학 이상을 네가 하려 하면 네가 허욕이고 허영이 되니까  중학교만 시키고 그래 가지고 그저 이래 어데든지 취직시키고 하면 거게서  지식이 가뜩 찼다. 이러면 나중에 가서 성공은 다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했어. 이런데 '적게 낳고 많이 하자' 이거는 뭐이냐 하면 그래 가지고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을 죽여서, 자꾸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이 사람 죽이는  거라. 그게 하나님 외에 딴 데 허영과 허욕이 있어 그런 거라.

 여러분들이 자기로서 또 모든 공부를 할 수 있는데, 재산이 할 수 있는데 안  하려 하는 그런 것은 또 좀 생각할 점이 있지마는 할 수 있는 데에는 돈 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과 비교할 때에 하나님의  지식이 왕이 되고 주체가 되고 세상 지식이 거게 종이 될 때는, 그 종은 많이  마련해야 편리하고 좋습니다. 이러나 상전은 마련하면 어찌 됩니까? 상전 하나  마련하면 그놈 그 종이 돼 가지고 평생 제 맘대로 못 합니다. 그놈 시키는 대로  해야 되지.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식이 상전이 되고 세상 지식이 종이 될 때에는 세상  지식을 자꾸 마련하면 종을 많이 마련하기 때문에 편리하고 유익한 것이고,  하나님의 지식이 차차 떨어지고 세상 지식이 올라가서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의 권세가 동등이 되면 어떻게 하라 했습니까? 동등이 되면 어떻게 하라  했어? 자, 학생들 한번 말해 봐. 어떻게 하라 했어? 여기 대학생들 없나?  대학생들 손 들어 봐.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 손 들어 봐. 옳지. 자, 그러면? 그만  둬야 된다고 그래 가르쳤지? 그러면 세상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과 동둥이 되면  조금 있으면 세상 지식이 왕이 되고 하나님 지식이 종이 될 터이니까 그만  망하기 시작한다 말이오. 그만 둬야 돼.

 그만 뒀다가, 또 하나님의 지식이 앞서 가면 그 다음에는 세상 지식을 종으로는  자꾸 마련해야 돼. 하나님의 지식이 왕된 사람은 그거는 세상 지식이 그 밑에  종으로 있을 때는 많이 마련할수록이 필요하고 요긴하고 심부름시키기가 좋고  아주 편리하고 유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이 어느 것이  주체가 되어 있느냐 이것을 비교해 줄 모르는 것은 그게 막바로 하나님과 피조물  중에 어느 것이 더 필요하냐 동등이 필요하냐 차이가 있느냐 하는 그것입니다.

내나 그게 그거요. 한 진리요.

 그런데 내가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봉독한 의도는 어데 있느냐? 우리에게는 두  길이 있다. 두 길이 있으니까 두 길 중에 어느 길을 택할 것이냐 하는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본 것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는 반드시 둘로  갈라집니다.

 요한계시 2장으로부터 3장까지에는 일곱 교회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일곱  교회는 곧 신약 시대의 교회의 전부를 대표해서 표준으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일곱 교회의 내용을 연구하면 신약 시대의 교회의 내용을 다 연구한 것이 됩니다.

일곱 교회를 바로 알았으면 신약 시대의 교회는 어떻다 하는 것을 바로 안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일곱 교회의 내용을 안 사람들은 이 세상 교회를 보는 데에 바로  봅니다. 저거는 몇 장 몇 절의 그거다, 저거다, 저리 있는 저거는 저리 뻐드러져  나간다, 저거는 바로 나간다 이런게 다 알 수가 있는 것이라 그거요. 거게 보면 두  쪽 안 된 교회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난 밤에 공과를 외운 데도 거게 보니까 아담 해와는 전부 두 쪽으로  갈라지지 않고 한 쪽으로 다 몰아쳐 버렸어. 몰아 쳤어. 변질돼서 몰아쳤어 그게  뭐입니까? 사망이오.

 그 다음에 거게서 하나님이 또 자손을 낸 가인과 아벨이 있었는데 가인은 어찌  됐으며 아벨은 어찌 됐습니까? 가인이 세도가 있었소 아벨이 세도가 있었소?  가인이 세도가 있었어. 세상적 세도는 가인이 있었고 하나님 앞에서 뜻대로 사는  의의 세도는 아벨이 있었어. 아벨은 죽어도 하나님의 도를 버리지 않았어. 가인은  하나님의 도를 버릴 뿐만 아니라 전력을 기울여서 살인까지 해서 하나님의 도를  버리고 말았어. 그러면 이게 멸망의 조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또 보면 5장에 보면 에녹이 있고 일반 사람들었는데 일반 사람들은  어쨌든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녀 낳고 내나 같이 살면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하나님 배반하고 나서 나머지 그런 거는 다  멸망이요 에녹은 영생을 얻었다 그거요.

 그 다음에 또 보면 6장에 가 보면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고 노아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전부 어떻게 했어? 하나님의 아들들은 어쩌다가  멸망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은 어쩌다가 멸망 받았지? 저 조사님? 노아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은 어쩌다가 멸망받았어? 홍수에 멸망받았어? 자기  좋아하는 대로 했지? 자기 욕심대로 했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좋아하는 대로 행하여서 아내 삼다가 홍수에 멸망받고 말았지. 노아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다가 홍수에서 구원얻어 가지고 천하 인류의 조상이 되었지.

 이 두 갈래로 장 그래. 두 갈래. 언제든지 두 갈래 두 종류라 하는 것은  어데든지 두 갈래가 있다, 두 길이 있다, 요것을 깨닫고 거기다가 딱 정신을 차려  가지고 요 길 조 길 두 길이 있으니까 어느 길이 좋으냐 요렇게 선택하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들이 세 아들인데 그 세 아들들도 두 갈래입니다. 가운데 아들 함은  그는 강퍅하고 불효하고 두 아들은 겸손하고 슬기 있고 효도 있는 사람들이오. 그  둘로 갈라져 가지고 하나는 멸망 하나는 구원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전부 다  그래. 그 다음에 아브라함도 보니까 같이 신앙 생활하다가 하나는 롯은 멸망으로  걸어갔고 아브라함은 구원의 조상의 길을 걸어갔어. 그러면 그 사람들을 이래 쭉  어제 하는 그런 것도 자꾸 읽으면 환하게 보여요.

 그러면 이 세상이 이런데 제직회도 열어 놓으면 두 쪽이오. 당회도 열면 두  쪽이오. 교역자회도 열면 두 쪽이오. 권찰 구역에서 권찰 구역도 하면 두 쪽이오.

두 쪽이라고 조심할 것은 하나님 편에 선 것은 감사하고 겸손히 자꾸 하나님  편으로 달아나야 되지 하나님의 편으로 선 것이 하나님 편에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있는 저 맞은 편에 섰는 그런 거를 멸시하면 하나님께서 이걸 버려  버립니다. 내가 옳은 편에 선 것은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옳은 편에  섰지 내가 잘나 선 것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옳은 편에 선 사람이 감사하면서 '만일 나를 버리면 어찌되느냐?'  두려워 떨면서 삐뚤어진 세상 따라서 나가는 그 편을 보고 위해서 기도하고  안타깝게 여기면 하나님의 노가 임하자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다 같이 만들면  그만 의인되고 마는 건데 제가 스스로 잘나 가지고 그런 줄로 알고 그를  무시하고 훼방하면 성경에 말했어. '네가 누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하나님의 종을 훼방하느냐?'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종이라 말은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시켜서 하나님의 것인데 네가 인간을 네가 보고 네 마음대로  훼방하느냐 하나님이 진노하셔.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지 두 쪽으로 나눠진다는 이것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어데든지 두 쪽이오. 성경을 보십시오. 두 쪽 아닌 것이 어데 있는고? 두 쪽으로  다 갈라져. 요한계시 2장으로부터 3장까지의 일곱 교회는 신약 교회 전체를  가리킨 건데 신약 교회 전체는 다 두 쪽이오. 두 쪽 아닌 교회가 하나 있었어. 두  쪽 아닌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그 교회는 뭐이요? 라오디게아 교회야. 그거는  어쨌어? 그거는 다 죽었어. 다 죽었기 때문에 하나가 됐어.

 그런고로 산 자와 죽은 자와 둘이 하나 일 수가 없어. 그러면 지금 그것이 어찌  되느냐? 산 자가 바로 살면 죽은 자가 차차 차차 살아나와. 제철소에는 가면 못쓸  고철이 있고 아주 새로 나온 신철 좋은 철 있고 신철 고철 둘이 없으면 그  제철소는 망하는 거라. 이러면 자꾸 신철은 신철로 자꾸 좋은 철이 돼 나오고  이러면 고철 그것이 자꾸 들어가 가지고 굽혀 나오면은 신철된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이 없으면 고철이 없으면 그 제철소가 망해 버려. 자꾸 그거  들어오면 그거 인제 개조를 해야지.

 이와 마찬가지로 두 쪽이 있는 것이니까 아예 두 쪽 있으니 오른쪽에 섰는 거는  자꾸 오른쪽으로 달려야 돼. 오른쪽으로 달리고 그러면 왼 쪽에 있는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어쨌든지 그걸  하나님 앞에, 그냥 달려들면 자꾸 도망가요.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옳은 데로  돌아오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노를 푸는 것이라 그거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아침에는 다 두 쪽이다. 두 쪽이다. 두 쪽인데 우리가  어째야 될 것이냐? 두 쪽이니까 어느 게 하나님 편에 속했는고 봐서 하나님 편에  속한 오른쪽으로 빨리 옮겨 서라. 이게 중요하고 그러면 옮겨 서 있는 자에게는  둘째로 주의가 뭐인가? 제가 스스로 제가 저 된 것처럼 교만하지 말고 망령되지  말고 오만하지 말고, 오만은 앉아 주저 앉았는 거라, '이제 됐다' 하고. 오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버림당할까 조심해서 하나님 앞으로 달리고, 달리고 건너편에  있는 자들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긍휼이 여겨서 구원해 달라고 이렇게  하면 차차 차차 구원돼 가지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 요 두 가지  지식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꼭 요대로 살아봐요. 살면 맛이 있고, 여게 와  가지고 배우는 데에 지식으로만 가지려 하는 자는 맛이 없습니다. 왜?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장 하니까 맛이 없어. 실지로 제가 이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여게 외에는 딴 데를 못 가. 여기 오면 내가 자꾸 말하니까 어제 못  한 거 오늘 말해 주니까 또 하게 되겠고 또 못 한 걸 또 하게 되고 자꾸  이러니까 실행을 해 보니까 그 속에서 오만 게 다 나와. 믿음에서 다 나와.

 하나님의 도의 축복은 믿음에서 다 나와요. 알고 바로 실행하는 데서 다 나와.

믿음이 뭐인가? 바로 알고, 하나님 뜻을 바로 알고 행하는 그것이 믿음인데  기독자의 기쁨이나 평강이나 심신의 금생 내세의 모든 행복은 믿음이라는 그  알고 행하는 그 구멍에서 졸졸 다 솟아나옵니다. 그 구멍 없는 자는 예수 믿어도  그는 멸망이야.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계속하고 또 믿음의 자녀는 꼭 믿음의 자녀는  어데다가, 어떻게 길러야 돼요? OOO권사님? 자꾸 쩔뚝쩔뚝 절며 돌아다니며  길러야 되지 않아요? 돌아다니면서 길러야 되지 않아요? 마음에다 넣고 또  기르면 됩니까? OOO권사님 어데 있어? 손 들어 봐요. OOO권사님. 그래.

어데다가 길러야 돼요? 마음 안에 길러야 돼요 자꾸 작대기 짚고 쩔룩쩔룩하고  돌아다니며 길러야 돼요? 돌아다니며 기르면 안 돼. 인제 그런 때는 지나갔고  벌써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래 다니며 기르는 것보다도 내가 마음 안에서 마음에  생각을 가지고 자꾸 이러면 멸망받을 그런 길이 있고 구원 길이 있기 때문에,  그저 가끔 가다 있지 장 있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런 거 있으면 깨달아 가지고  전화로 하면 돼, 전화로써 '야, 이런 거 이런 거 주의해라' 그말 하면 됐어. 고  대해서만 그 이상 할 게 없어. 그 말 하면 네가 이런 이런 일 위험하니 그 일일랑  하지 말고 이해 해라.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만 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내가 갈라 하면 힘들지 않아요? 내게 힘이 없어. 힘이 있어 돌아다닐  때는, 속에 능력으로 일할 때가 있고 발로 다니며 일해야 될 때도 있어. 처음에는  발로 다니며 일하다가 자꾸 많이 하면 능력이 생겨지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  하기 때문에 안 가고 기도하면 돼. '주님이여,' 내가 급한 데 뭘 어찌 갈 거라?  급한 데 날아가도 모자랄 건데. 이럴 때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 이거 내가 부탁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거 이렇게 이렇게 해 주십시오' 부탁하면 그분이 신실히 잘  들어 줘.

 젊을 때부터 평생 그분도, 그분도 주님 시키는 것을 신실히 했고 그러니까  주님도 그분에게 또 시키는 것을 신실히 해 줘. 평소의 주님의 심부름 잘 한 자는  주님도 심부름 잘 해 주십니다. '주여, 이거 어쩝니까 이거 지금 이거 부탁하는데  이거는 어째야 됩니까?' '내가 해 줄께' 덜렁 해 줘. 해 줬는가 안 해 줬는가 보지.

그 뒤에 가 보지. 그 일이 됐는가 안 됐는가? 그런고로, 어쨌든지 듣고 실천하는  데서 모든 구원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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