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을 구별하라

 

1988. 1. 9. 토새벽

 

본문:로마서 6장 5절∼7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듣기만 하십시오.

누가복음 10장 27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우리가 영생을 이루는 데에는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해야 영생을 이룹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해야 영생을 이룬다고 말씀했습니다. 영생은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사랑해야 영생이 됩니다. 그러기에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에는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 못 박혀 죽였다, 또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 이렇게 한 이 말씀들이 잘못 생각하면 곡해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곳이요 살리는 곳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곳이요 사람을 미워하는 곳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사랑할 사람과 미워할  사람을 구별하는 거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라 명령하셨고 사람을 미워하라 명령하셨고 또 사람을 살리라  명령하셨고 사람을 죽이라 명령했으니 우리는 이것을 잘 구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논리적으로는 아는 사람들도 실상은 우리가 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어제 아침에도 말했거니와, 우리는 사람을 당할 때에 그저 껍데기로만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람들은 대개가 사람의 겉사람만 이렇게 보고 그  속사람은 보지 아니하고 그렇게 상대합니다. 사람을 상대할 때에 저 사람의  겉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속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렇게 구별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실패합니다.

그러기에, 사람과 사람을 구별할 것은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된 것이 사람인데 또  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것이 또 사람입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그 사람은 옛사람인데 미워해야 되고 또 죽여야 합니다. 영육으로 된 사람은  그것은 참 사람이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대할 때에 이 사람은 새사람인지 옛사람인지 그것을 먼저  구별해야 되겠고 또 영육의 사람인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사람인지를  구별해야 됩니다.

사람이 옳은 행위를 할 때에 우리는 그 사람을 존대합니다. 옳은 행위를 할  때에는 그 사람을 존대합니다. 또 삐뚤어진 행위를 할 때에는 멸시합니다. 또  악한 행위를 할 때에는 미워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성경에 미워하라 하기도 했고 죽이라 하기도 했고 사랑하라  하기도 했고 미워하지 말라고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상대할 때에  언제든지 이렇게 구분해서 상대하지 안하면 안 되겠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선행을 할 때에는 그 사람이, 피와 성령과 진리가 그  영육을 붙들고, 이래서 그 영과 육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하나되어 있는 그 사람으로 선행을 할 때에 그 사람은 우리가 존대해야 되고  사랑해야 합니다.

또, 그 사람이 악을 행할 때에 우리는 그 사람을, 악을 행할 때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악을 행할 때에는 그 영과 육과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이렇게 합해 가지고  악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상대할 때 우리는 구별해서  미워하고 사랑하고 둘을 해야 하겠습니다. 미워하고 사랑하고, 그러면, 미워하기는 뭣을 미워할 건가?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악령을 미워해야  되겠고 악성을 미워해야 되겠고 악습을 미워해야 되겠고 그 사람의 영과 육은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미워하고 사랑하고 둘을 겸해야 하겠습니다.

또, 그 사람이 선을 행할 때에 그때에는 그 사람은 피와 성령과 진리와 영육으로  된 사람의 행동이기 때문에 영육은 자기 이웃같이 사랑하고 함께 하는 대속의  공로 피와 성령과 진리는 존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대할 때에 존대하고 내몸같이 사랑해야 하는데 또 어떤 사람을  대할 때에는 내몸같이 사랑하고 미워서 죽이기까지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합해서 여섯이 된 사람도 있고 또 악령과 합해서 여섯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서로 바꾸어지는 것은 잘 구별하기 어려울 만치  그렇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행동이 미울 때에 잘못하면 구별하지 아니하고 고만 그  사람 전체를 미워하는 사람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든지 영과 육으로  된 사람은 미워하면 영생이 없습니다. 또 그러면 그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데 그  사람이 악을 행하는 그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하나되어 사는 그 사람을  사랑하면은 죄가 됩니다.

이러니까, 악을 행하는 어떤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미워하기 쉽습니다. 그 행동을 볼 때에, 마음을 볼 때에. 마음도 미운 마음,  마음도 미워해야 할 아주 악한 마음이요, 행동도 악한 행동이요, 몸도 악한  행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을 미워하기 쉽습니다. 그 사람은  분해를 하면은 영과 마음과 몸과 이 셋과 악령과 악성과 악습 이 셋과 여섯이  합해서 된 사람이기 때문에 셋은 미워하고 셋은 사랑해야 됩니다.

셋은 미워하고 셋은 사랑하는데, 셋을 사랑하여 구원하기 위해서 셋이 미워하되  죽이기까지 노력해 가지고서 셋 그놈은 미워하여 죽이고 셋을 사로잡고 있는  사랑하는 셋을 구출하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구별을 참  계속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선행이나 악행에 대해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한사람이 악을 행할 때도 있고 선을 행할 때도 있습니다. 선을 행할 때는 우리가  존대하기 쉽고 악을 행할 때에는 멸시하고 미워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통틀어서 도매금으로 이랄 것이 아니라 잘 구별해 가지고서 하지 안하면 안  되겠습니다.

다 여섯이 합해 가지고서 행동하기는 행동하는데, 피공로와 하나님이신 성령과  진리와 셋 이 셋과 그 영과 혼과 몸이 합해 가지고 움직일 때도 있고 악령 악성  악습하고 영 혼꿔 합해 가지고 움직일 때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람을  구별하지 안하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 미워할 것은 악령 고놈을  미워해야 됩니다. 고놈이 들어서 그 사람의 심신을 사로잡아 가지고서 그놈  시키는 대로 해서 그 사람의 심신이 마귀적인 행동과 자기 중심인 원죄 행동과  본죄 행동을 합니다. 그러니 악령과 원죄와 본죄는 미워하고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은 사랑해야 합니다. 또 영과 혼과 몸은 사랑해도 그 배후에 조절하고 있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은 미워해야 합니다.

이래서, 우리는 어떻게 악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악령  그놈을 미워해서 그놈을 어짜든지 쫓아내도록 노력하고, 악성인 그 속에 악인  자기 중심으로 날뛰고 있는 고 악, 또 자기 중심으로 하는 그런 못된 버릇 이  셋은 죽이도록 노력하고 거게 사로잡혀 있는 마음과 몸은 구원하도록 노력을  해야 하겠고, 그러면, 한 사람을 대할 때는 셋은 미워서 죽여야 되겠고 셋은 사랑해서 구원해야  되겠고, 한 사람을 대할 때에는 셋은 네 위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심히  존대해야 되겠고, 셋은 자기와 같은 동등으로 자기 몸과같이 사랑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사람을 대할 때에 우리는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무척 미운 거  많습니다. 미운 거 많아서 잘못하면 ‘네가 오 리를 억지로 가자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해라. 억지로 송사해 속옷을 가지고자 하거든 더 귀한 겉옷까지 주어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향하라. ’ 그말은 사람을 구별해서 그 사람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그의 영과 혼과 몸이 그와같이 행동하고 있으니 구별해서  세 놈은 죽이고 셋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몸같이 하라는 말씀대로 사랑해서  네가 몸이 어떻게 그에게 피해를 당한다 할지라도 악령 그놈에게 네가 종되지  말고 악성 악습 그놈에게 종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놈이 그 사람을 붙들고 와 가지고 나를 상대할 때에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그  사람을 붙들고 나한테 덤벼들 때에 여러 모양으로 덤벼듭니다. 별별 모양으로,  별별 말로, 별별 모양으로 달라들어도 너는 잘못하면은 사람을 구별하지 안하고  거게는 죽여야 할 놈이 세 놈 있고 사랑하여야 할 것이 셋이 있는 이것을 구별  못 하면 너도 모르게 그것을 도매금으로 미워하다가 너도 악령 악성 악습에게  감염돼 가지고서 그놈의 종이 되기 쉽다.

그러기 때문에, 오른뺨을 치면 왼뺨까지 준비하고 속옷을 송사하거든 겉옷까지  준비하고 오 리 가자면 십 리를 동행할지라도 너는 상대방을 사로잡고 있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 그놈에게 네가 잘못하면 사람을 구별하지 안하고 한꺼번에  그 사람을 미워하다가는 세 놈은 미워서 죽여기까지 해야 되지마는서도 네몸같이  사랑해야 될 셋을 도매금으로 같이 미워하게 될 때에 너는 그 악령 악성  악습에게 벌써 피동되어서 그의 종되어서 죽는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고, 그걸 말을 해도 잘 못 듣는지 습성이 돼 그런지 모르겠는데, 새벽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면 그 말씀에 대해서 그날 아침 내내 기도해도 모자라는데  그만 그 말씀은 다 던져 버리고 자기가 이제 익혀 가지고 있는 그것만 가지고서  이렇게 날뛰니까 그날 모처럼 하나님 앞에서 ‘이것을 증거해야 되느냐 저거  증거해야 되느냐?’ 성경을 가르치는 거는 쉽고 무슨 말씀을 증거해야 되는가 그  제목을 선택하기는 심히 힘드는 것입니다.

어느 성경이든지 성경 가르치는 거는 쉽고, 아는 성경에 쉽고, 그런데 어느 말을  해야 지금 대야 되느냐? 아무나따나 말할라면 그게 쉽지마는서도 말을 해서는 안  될 말도 있고 될 말도 있고 그 말을 해야 될 그 장소도 있고 시기도 있는데,  이러기 때문에 그때에 할 말 하기가 어려운 것과같이 오늘 아침에는 무엇을  가르쳐야 될 건가 하는 데에 그 가르칠 제목을 선택하기에는 힘이 듭니다.

이런데, 그래 힘들여서 가르쳐 놨으면 오늘 아침에는 사람에 대해서 이것을  가르칠라고 이 제목을 또 하나님이 주셨고 이렇게 가르치기가 힘이 드는데 들여  놓으면, 설교하고 나면은 기도하면서 고함을 질러 가지고서 제 과거에 익었던 거,  늘 습관되어 있는 거 그걸 막 고함을 지르니까 그 사람이 나중에 가서 재벌  설교하는 것 되고 맙니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그말 듣다 보면은 먼저 새벽기도에, 강단에 설교한 거는  다 잊어버려 버리고 그말로 기울어집니다. 그말로 기울어지고 그래 가지고 그만  그날 아침에 하나님이 주시는 그 말씀은 생각하고 새김질할 그런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것도 자꾸 골고루 하면 하지마는서도 그저 무슨 설교를 하든지  자기가 열 가지면 열 가지 다섯 가지면 다섯 가지 기억하고 이거 주문하는 거  그것만 고함을 지르니까 아침마다 그 사람이 재벌 설교를 다 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재벌 설교를 다 해서 사람들은 그말만 듣고 고만 그대로 돼 버렸기  때문에, 아침마다 재벌 설교를 다 언제든지 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때를 따라서  당신이 당신의 말씀을 넣어 준 것은 헛일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일을  안 해야 됩니다.

이래서, 그 신고함에 늘 써 나옵니다. 신고함에 어떤 사람이라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 있고 이름을 적어내는 것도 있고 그냥 적어내는 것도 늘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기도할 것은 자기가 반 시간 하든지 한 시간 하든지 두  시간을 하든지 하는 데는 주로 사람을 상대할 때에 내가 어떻게 되나 하는 거게  대해서 기도를 하고 그 기도를 할라 하면은 모자랍니다. 그 기도만 하고, 또 이제  그 장소를 옮기든지 그리 아니면 그 기도를 다 했으면 다 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의 사정을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자기 사정을 기도하면은, 자기 사정을  기도하면서 큰 소리 하는 것은 실은 외식 기도 되기 쉽습니다.

왜? 자기 사정을 기도하면은 다 그 사람도 자기 사정은 남이 알기를 싫어합니다.

진정한 자기 사정을 기도할 때에는 그 소리를, 기도할 때에 소리를 내서 기도하지  안하고 은하게 기도합니다. 왜? 자기 사정과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기를  싫어하고 알리기를 싫어합니다.

이런데, 왜 그라면 자기 사정 기도를 할 때에 고함을 지릅니까? 고함을 지르며  기도하는 것은 이 기도는 할 만하고 자랑할 만하고 다른 사람에게 참 칭찬받을  만하고 하기 때문에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고함질러 기도할 때는 광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 기도하다 보면은 나중에 가서 다른  사람에게 들으라 하는 기도가 되고 말고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안 되고 맙니다.

누가 자기가 ‘내가 언제 도둑질을 했습니다’ 하는 그것을 누가 큰 소리 내  기도하는 사람 없습니다. 기도는 하기는 해야 되지마는서도 그 소리는 자연히  ‘네가 도둑질했으면 나는 누구 것을 도둑질해 왔다고 고함을 질러라’ 아무리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기도하라면은 소리를 내지 안하고 기도해서 다른  사람이 모르도록 기도하는데, 또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을 만한 그런 무슨 뭣이  있으면은 그런 것은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을 만한 그런 것은 광고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정죄받고 수치스러운 그런 것은 자꾸 숨기고 가루기 마련입니다. 인간이 그것이  자기를 보호하는 처세의 지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대한 사정을 기도할 때에는 그 사람이 조용히 속으로  기도하지 말라 해도 기도합니다. 속으로 기도할 때는 자기 진정한 사정을  기도하는 기도가 되고 떠들면서 고함을 지른 그 광고 기도는 자기 사정 기도가  아니라 자기가 설교하는 것이든지 나는 이렇게 지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합니다 바리새 교인과 같은 그런 외식하는 기도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책망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리 내 하는 기도는 대개는 남에게 들어라 봐라 하는 기도이고  또 자기 자랑하는 기도고, ‘나는 이렇게 알고 있다. 이렇게 신앙 사상 가지고  있다. ’ 광고하는 기도고 자랑하는 기도고 다른 사람에게 들어라 봐라 하는  기도고 그 설교가 될지라도, 설교는 기도가 아닙니다.

설교가 되든지 자랑하는 말이 되든지 광고하는 것이 되든지 다른 사람에게  들어라 봐라 하는 기도든지 소리 내서 하는 고함질러 하는 기도는 대개는 그  기도입니다.

자기 혼자 산에 가서 기도하는 기도는 고함을 질러 하는 거는 그때는 다른 사람  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 기도는 주님 앞에 할 수 있는 기도가  되지마는서도 이래 여럿 있는 데에는 그거 조심해야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증거하고 난 다음에, 자기 주문을 가지고서 고함을  쳐 항상 하던 소리, 이 소리 고함을 지르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그만 그리 돌아가  버리니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그날 아침에 설교하는 설교는 될지라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많이 말하는데 그걸  안 하고 있으니까, 그러면, 그 기도가 효력 있느냐? 그 기도가 절대 효력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  듣는데 그 기도가 무슨 효력 있습니까? 소용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기도할 때에,  또 소리를 안 내고 기도해서 안 되면 소리를 내 기도하는 데도, 소리를 내도  자기를 소리를 내지마는서도 다른 사람이 무슨 소리인지 구별하지 못할 만치  그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응응응응?? 이래 해서 무슨 말은 하기는 해도 무슨  말인지 다른 사람이 모르면 그 말에 대해서, 사람이 콩이라 팥이라 뭣이라 이래  엮어대야 다른 사람이 귀에 들리지 같은 웅웅웅 하는 그런 소리에게는 사람이  미혹받지를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렇게, 소리를 낼라면 그렇게, 소리는 내되 말에 대한 그 내용의  어음은 그거는 말하지 발표하지 안하도록, 다른 사람이 무슨 소리하면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저 무슨 소리하나?’ 하는 그 소리를 들을라고 애를 씁니다.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면 소리라고만 알고 있고 거게서 미혹은 안 받지마는서도  낱낱이 그 조목과 모든 어음이 똑똑해서 이렇게 되면은 자연히 그말을 듣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배우고 고만 그 말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리 따라가  가지고 그말 듣다 보면은 다 잊어버려서 남의 기도를 전부이 전멸을 시키는  기도가 됩니다.

전멸을 시키는 기도가 돼 버리고 말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 놓은 설교를  완전히 철거해 버리고 다시 자기 것으로 이렇게 선포하는 게 되고 말기 때문에  그 기도하는 사람들 소리내서 하는 분들 조심해야 됩니다.

그래 하는 분들은 예배당이 너르니까 저 끝에 가 가지고서 기도하면 또 그  소리를 머니까 들을라고 사람들이 애를 쓰지 않습니다. 옆에서 딱 하니까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 없고, 그 들으니까 그게 내나 설교라 말이오. 설교니까 잘한  설교를 하면은 그거 또 그리 듣는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때 그때에 가르쳐  주시는 그런 하나님의 지도는 다 뺏기게 되니까 그것은 설교에 방해요, 기도에  방해요, 그거는 구원에 방해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의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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