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양식

 

1984. 2. 26. 주일오전

 

본문: 요한복음 6장 27절-35절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오늘은 학습 세례 성찬을 베풀려고 했는데 그 일이 연기됐습니다. 내 준비도  부족한 모양이고. 또 여러분들의 준비도 부족해서 하나님이 허락지 하시하시고  다시 좀더 준비케 하시는 것으로 그렇게 인식이 되어서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에서도 주일학교에 시찰하러 오신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계신다고 하는데  제가 어제 오후에도 만나지를 못했고 오늘도 새벽에도 새벽 설교를 인도를 못  했습니다. 오전 설교는 ○목사님에게 부탁을 하고, 오후 설교는 ○○○장로님에게  부탁을 하고 해서 도저히 나올 수 없었는데 한 삼십 분 전에 조금 나아서  간단하게 요령만 증거하고 가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오늘 나왔습니다.

 별로이 한 일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과로가 되어서 안 되겠으니까 아무래도  좀 주의해야 된다고 이랬는데도 예사로 여겼는데 좀 아마 노쇠한 몸이니까  과로가 됐던 모양입니다. 지난번에도 과로가 되어 가지고 고만 허리를 그냥 잠깐  앉았다 서는데 허리가 꿈뜩 거려 가지고 약 일 년 드러누웠었는데. 그래서 또  그렇게 절제 못 하는 일이 될까 해서 그래 서둘었는데 삼십 분전에 조금 나아서  증거를 하고 들어갈까 하고서 그래 나왔습니다.

 이것은 물론 과로도 있기는 있는 줄 압니다. 제가 요새 늘 좀 많이 과로를  하기는 했는데 그것보다도 일생에 한번 받는 학습과 세례인데 여기에 대해서  준비없이 베풀고 받고 하는 그런 점도 있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되고 또  더군다나 성찬은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잘못 먹으면 11장 26절로 30절까지에  보면 성찬을 잘못 먹으면 그 사람이 약해지기도 하고 병도 들고 죽기도 한다고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심을 해서 자기를 먼저 깨끗게 하고 난 다음에 성찬에  참예하라 그렇게 주의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함부로 자기를 살피지  안하고 성찬을 먹어서 거룩을 범하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먹고 마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 주님이 더 깨끗이 준비하라고 하시는 것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봉독한 말씀은. 사회자가 요한복음 6장 52절로부터  58절까지를 보니까 읽었습니다. 나하고는 아무 의논 안 했지마는 아마 오늘  성찬식이 있으니까 그 본문을 봉독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성찬을  베풀 때마다 이 성구들은 어느 진영 어느 교회나 대개는 이 성구들을 낭독을  하면서 성찬에 참예하는 준비를 그 시간이라도 부족한 것을 갖추도록 하는  그것이 상례가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 제가 6장 27절 이하를 봉독한 것도 역연 성찬식은 베풀지  안해도 여기에 대해서 좀 준비하는 그런 깨달음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다 해서 봉독한 것입니다.

 여기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구약에는 인자라는 말이  인간의 아주 미약성을 들어서 인자라 이렇게 여러 군데 말했지마는 신약에는  예수님만이 인자라고 기록을 하고 다른 일반인은 인자라고 그렇게 기록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인자라고 기록한 것은, 자존자 하나님 창조주, 대주재, 주권자,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데 이렇게 지극히 크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이신  주님이 아무것도 없는, 죄는 없으시지마는 인간 중에 제일 천하고 낮고 약한  사람으로 나타나신 것을 가리켜서 인자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자가 이 양식을 줄 터인데,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라 그 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난하게 아주 천하고 사람 중에 제일 약하고, 제일 천하고  제일 악하고 제일 죄인이고 이렇게, 주님은 완전자시요 하나님이시지마는 대속할  그 택한 자들의 모든 죄와 무지 무능과 그걸로 말미암아 온 저주와. 사망과 그런  것을 다 담당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이렇게 근본 부요하신 분이 가난한 자  되셨습니다. 창조주가 이렇게 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비뚤어진 그것을  다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가 행하지 못한 것을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완전자시요 하나님이시지마는,  예수님이 입으신 그 신성도 피조물로서는 제일 깨끗한 인성이지마는 대속으로  인해서 그렇게 천해지고 허무해지고 낮아지고 천해지고 이렇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은 우리를 대속해서 온전케 완전케 부요하게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인자인데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자라' 그  말은 이렇게 주님이 모든 택한자들의 죄와 불의와 사망과 원수됨을 대신  담당해서, 이렇게 인간 중에 제일 그 이상이 없는 천하고 낮은 자로 이렇게  희생되신 것은 영원 자존하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이분을 이렇게 대속의 재물로  삼으셔 가지고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영원히 구원하시기로 하나님이 작정하셨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인치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 외에는 역사에 천하에, 과거도  영원히 미래에도 피조물을 구원하는 구세주는 없습니다. 피조물을 구원하는  구주는 양성 일위 이신 예수님으로 하나님이 도장을 꼭 찍고 영원 결정을 했기  때문에 천하에 예수님의 이름 외에는 구원얻는 길은 절대 없습니다. 이종교들이  다 종교마다 떠들고 있지마는 그 종교마다 크면 클수록 심판이 크고 받을 형벌이  큽니다. 없는 가운데에서 자존하신 분이 모든 것을 창조했고 창조된 그것은 다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구주로 세우신 그 하나님이 전능자요 주재자이기  때문에 그분이 세우신 그분이 구주지 다른 것은 구주가 되지를 못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라 그 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딱 결정을 했다, 영원불변의  단일 구구로 결정하셨다 하는 것을 여기에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썩는 양식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원토록 있을 양식 위해서 일하라' 이떻게  주님이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하오리까 하는  이 말씀은 보면 중간에 연결이 없는 엉뚱스러운 그런 질문으로 보여집니다.

 성경에는 다 기록을 할라 하면 온 세상에도 둘 만한 곳이 없을 만한 그렇게  복잡하고 수다한 것을 간단명료하게 신구약 66권에다가 축소해서 제시해 주셨고  제시한 문서 계시 안에 성령의 감화가 내재하셔 가지고 이 말씀을 인정하고  알고저 원하는 자에게는 모든 은밀하고 세밀해서 무한한 그 내용은 내재적  영감으로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 말씀대로 행하면  된다 하는 그 말은 옳다 인정할 수 있습니다. 왜? 성경 말씀에는 문서로 제시된  이 법칙 안에 내재적 영감이 있으니까 영감을 받아서 영감과 진리는 문서 제시요,  영감은 진리가 되기 전 하나님에게서 직접 나올 그때가 진리요. 그것이 세상으로  나와서 사람이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성경대로 하는 건 그 속에 내재적 진리까지를 포함해서 말했기 때문에  성경대로 하면 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 명문되어 있는 이 문서 제시만  순종하고 다 이루면 된다는 말 아닙니다. 그는 은밀 계시. 신명한 제시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우리를 알려 주신 그대로 다하면 구원된다는 그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성신의 감화는 이 문서 계시를 통해서 들어가서 문서 계시 안에서  영감을 받는 것이지 문서 제시를 두고서 다른 무슨 이탈된 그런 다른 길로써  영감 도리를 받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서 계시를 초월한 것이 영감  계시입니다.

 여기에,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좀 순서가  맞지 않는 것같이 보여집니다. 그것은 성신의 감화를 받으면 문서로 표시되지  안한 그 내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영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기록하지 안하고,  이것을 기록하지 안해 놓으면 영감으로만은 알기 어렵다. 하는 것은 문서로  표시한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하라'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주님이 너희들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것이 다 영생이다 하는 그런 덧붙임의 해석을 주님이 한 것이  여기에 암시되어 있고 우리가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님이 설명하신 설명은 간추려서 기록하지 안하고 다만 영생토록  있을 양씩을 위해서 일하라 하는 말씀만 기록되어 있으니까 거기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하는 그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일은 인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그 안에 잔주의 해석을 해서 다리를  눙을라 하면 대단히 복잡하고 거리가 먼데 그저 영감받으면 알 수 있도록 그렇게  줄기만 인간이 알 수 있는 줄기만 표현해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썩는 양식은 무엇을 가리켜서 썩는 양식이라고 말하는가? 썩는 양식은  이 육체에 먹어서 보충되는 물질의 양식 그것과, 물질의 양식 그것과 또 우리의  그 심신의 기능 양식인데 심신의 기능 양식인데 심신의 기능 양식은 이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내놓은 수많은 모든 법칙. 제도. 이치. 지식. 지혜. 도덕. 사상.

주의. 그런 것들이 다 썩는 양식입니다. 그 양식은 취해서 아무리 배부르고  튼튼하게 자라도 양식도 없어지고 그 양식 가지고 길러 놓은 것도 다 불살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으로 먹어서 길러 놓은 자는 죽지도 안하고  영생합니다. 그러면, 먹으면 죽지 아니하고 영생하는 양식, 그 양식도 영원히 썩지  안하고 그 양식 먹고 자란자도 영원히 죽지도 썩지도 아니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에 그들이 아브라함 자손으로서 이천 년 동안  하나님의 도를 믿는 이 도인들로서, 하나님의 선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살면서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들에게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나를 먹지 안하면 아무도  생명을 얻지 못한다'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모든 유대인들의 그 성경학자들까지도  다 수군거리기를 '그가 그러면 자기의 피와 살을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서 먹게 할  것이며 또 그 피와 살을 준다고 해서 정말 먹는다 해도 그것이 몇 사람이나 먹고  양식이 되겠느냐' 그라면서 수군거렸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덧붙여서 다시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그 속에  영생이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내 피와 살을 먹지 않는 자에게는 그 속에  생명이 없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처럼 그들은  나로 인해서 살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수군거리면서 그말을  이해를 못 하고 '이 말도 아닌 흉측하고 징그러운 말한다.' 그라면서 많은  소동들이 있고 그때부터 예수님을 대항하고 배척하는 일이 또 더 심해졌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믿는 데에서 우리의 생활은  혼돈되고 또 여러 가지로 애로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알고 믿는 데에는 아무런 애로가 없습니다. 참 시온의 대로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험하고 그래 찾는 이가 적고,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평탄해서 찾는 이가 많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그것은 인간들 너거 보기에  그렇다는 것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지 하나님 보시기에 실상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다른 성경에 보면 시온의 대로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모든 피조물이 협조해 주고 웅호하고 만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영으로 진리로 양심으로  신앙으로 자유하는 자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면 그들이 삽니다. 그  사람이 현실 생활을 할 때에 그 사람 자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와 진리로  살면 그 때에 관련된 모든 만물은 다 불사뤄지지 안하고 영원히 새롭게 할 때에  새로와집니다. 그러나. 그 주인공인 그 사람이 범죄했으면 그 때에 관련되어서  이용된 만물들은 영원히 불사뤄지고 맙니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모든 만물이 다 녹아지고 불탈 것이 아니고 죄에  관련된 것은 다 불타서 다시 원소로 돌아가 가지고서 개조됩니다. 그러나 죄와  관련되지 않는 그런 것은 불타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때에 만물들을  다 새롭게 해서 그거는 다 새로와집니다. 그러기에 이 모든 것이 변형 변형  개조되는 그 역사를, 불로 사러 가지고 원소로 다시 복귀해 가지고 그것을 이제  이런 저런 만물로 재창조하십니다. 그러기에, 그 원소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땅은 영원히 있다 그 말은 한 번 지어 놓은 것은 영원히  있는데 다만 그것이 존재적으로 범죄했을 때에는 바꾸어지고 맙니다. 사람도  범죄하고 이 구원에 참예하지 못하는 것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영원히 머물게  되고 모든 만물은 다 원소로 돌아가 가지고 다시 썩지 안할 것으로 재제조가  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이 썩는 양식도 있고 썩지 안하는 양식도 있다. 여기에 양식은 무엇을  표준해서 말하는 것인가? 사람들은 그만 양식 하면 입으로 꾹꾹 썹어 먹고  배설물을 내놓고 양 채우는 그것만을 양식으로 이래 하는데 썩는 양식이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떡 먹고 배불렀기 때문에 왔었는고로 썩는 양식이라고  말하는데 이 썩는. 이것도 썩는 양식이요 또 그 외에도 썩는 양식이 있습니다.

 사람은 천사와도 같지 안하고 모든 동물과도 같지 안하고 사람이라는 것은  피조물 가운데에 제일 특수하게 지음을 받은 것이 사람입니다. 하늘에도 사람같이  지음받은 것은 하나도 없고. 땅에도 사람 외에 사람같이 지음 받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을 지으실 때에는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지으시면서 삼위일체인 그  하나님이 특별 회의를 열어 가지고 우리가 사람을 지을 터인데 사람을 어떻게  지을까 특별 의논이 있은 것이 사람에게 대한 특수성입니다. 의논한 결과가  우리의 형상대로 짓자 그렇게 말씀하신, 모든 피조물이 가지지 못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을 무엇을 가리켜서  말하는가? 사람의 영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짐승도 혼과 몸은 있지마는서도 영은  없습니다. 천군 천사도 영은 있지마는서도 몸은 없습니다. 영과 몸을 영. 혼. 몸  이 세 가지를 구비해서 지으신 것은 사람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 특수성이요, 지을 때에 삼위일체가 특수한 의논을 하신 그것이  인생의 특수성이요, 하나는 모든 피조물을 다 정복하고 다스리고 주관하는 이것이  특수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그리스도는  순전히 신성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예수님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의  본체시요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과 신성이 일위가 돼 가지고, 한  격위가 돼 가지고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특수 창조물로 피조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형상은 그 형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물질의 형체도 없고 영의 형체도 없습니다. 무형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무형의 존재인데 어떻게 해 가지고 그분을 형상이라고,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그렇게 말씀했는가? 네, 무형의 존재인데 하나님의 형체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속성이. 당신이 계시하신 신구약 성경 말씀에 그분의  속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볼 수 없는 그 본체는 우리가 못 보겠고 그분의  그 속성이 나타나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하신 그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가 성경  계시한 그 문서 제시를 보고 깨달아서 (저 학생 들어오라 해요. 안내원들은 못  나가도록 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본체는 우리가 보지 못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본 자도 없고 영원히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 가서도  못봅니다. 왜? 그 분은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이 형(形)을 가질 수 없습니다. 형을  가지면 그형 속에 들어야 되기 때문에 그 형을 가지고 형 안에 있을 수가 없는  완전입니다.

 모세가 그 등을 보았다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신 그 하나님의 역사의  나타난 그 속성, 하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움직이심의 그부의 속성, 또 그  속성이 이루어 놓은 모든 피조물. 섭리 이런 것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등을  보았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의 그 내면은 보지 못하고 외면을 보았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는 신성,--신성은 하나님의 속성이 신성인데-- 하나님의  신성대로 지음받은 사람에게는 인격성 이라는 그 인성이 있습니다. 인격성 이라는  인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신성같은 인성이 있는데 나타난 신성을 우리가  성경에서 분류해 보면 한 열 두 가지로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덟  가지 그 속성은 우리에게 이루어져 있고 네 가지 속성은 우리가 받아서 차차  생겨지고 자라가는데 회고적으로는 뒤로 돌아보면 이미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특수한 공통성이 없는 속성, 하나님의 자존성.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단일성은  회고적으로는 우리에게. 뒤로 돌아보면 만들어진 그것은 그렇게  만들어졌지마는서도 앞으로는 그것이 자꾸 변화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변하지  안하는 속성은 여덟 가지는 지혜. 지식. 선. 사랑. 진실. 거룩. 의. 주권 이것은 다  우리에게도 그런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 곧  하나님의 속성같은 그런 우리에게 속성이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속성은 원형  속성이라면 표현할 때에 우리 속성은 그 원형 속성을 닮은 모형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그 신성이 있는데 그 신성의 모형을 가리켜서 우리에게는  인격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성이 곧 속성이요 속성이 곧 인격성입니다.

 그러기에. 이 썩지 않는 영생토록 있을 양식이라 하는 이 말은 인격의 양식이라  그렇게 말을 하면 좀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다. 인격성의 양식이라 인격의  양식이라는 말이 뭐인가? 속성의 양식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2장 1절에 보면 이 속성이 죄와 허물로 죽었다 이랬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다. 죄와 허물로 죽은 것은 우리의 육체가 죽은 것 아니고, 우리의  마음이 죽은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하나님의 모형적  속성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죽었습니다. 곧 죽었다 말은 하나님의 형상이 죽었다  말이니 하나님 형상이 죽었다 말은 영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영이 죽었으면 영이  없어졌는가? 영은 없어지지 안했습니다. 저 잘 안 들으면 모릅니다. 이번에  강도사 시취에 성경 시험을 봤는데 그 뭐 모두 다 득점한 것이 허무합니다.

똑똑히 꽉 찔러서 알지 못하고 있어. 그저 벙벙하이 이래 가지고서,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마는 우리가 자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우리 속에 있으면은 진리가 지은 피조물 속에는 자기 소유인데  자유 못할 리가 뭐 있습니까? 자유를 못하기 때문에 신사 참배 오니까 다 머리를  꾹꾹 숙이고 신사 참배를 했지. 6·25때에 인민군 오니까 다 그 앞에 머리를 그  이고 다 그렇게 했지. 그건 자유하지 못한 것이라 말이오. 바로 들어야 되요.

 그래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형인, 하나님의 속성 모형인 모형  속성이 죽었다 하는 것입니다. 이 영은 특수 피조물로서 하나님과 연결이 될 때에  그 연결이 살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기능적으로는 죽습니다. 존재적으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기능적으로 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지 안할 때에는  였은 있으나 죽은 영합니다. 기능적으로 죽은 영이, 이 죽은 영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서 어떻게 살아났는가 살아난 것은 성령과 진리와 예수님의  공로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로를 믿는자가 예수님의 공로로 인한  성령과 진리로 다시 살아났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다시 살아났다.

 그러기에, 우리의 이 속성이 죽었던 것이 살아났습니다. 하나 실예를 들면은  우리에게는 지혜라는 형체가 있습니다. 지혜라는 지혜성, 지혜성이라는 그  하나님의 모형성이 있는데 이 지혜성이 이것이 죽은 것은. 그 지혜성에 하나님의  지혜가 연결이 되면 하나님의 지혜가 그 지혜성을 통해 가지고서 자기 온 마음에  몸에 이래 나타나 가지고 그 지혜성이 몸 밖에 있는 모든 사물까지도 그  지혜성대로 접촉을 해 가지고서 역사해서 모두가 다 죽지 안하고 사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성속에 하나님의 지혜의 연결이 선악과 먹음으로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버리니까, 마치 전구에 전선이 끊어지니까 광명이. 빛이라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빛이 꺼기는 것처럼 하나님께 연결이 끊어지니까 하나님의  모형성인 그 지혜성에 하나님의 지혜성이 연결이 되어 있어야 그 지혜성이  세상의 빛이라 이렇게 모든 피조물들에게 옳고 바르게 참되게 이렇게 행할 수  있는 것인데 끊어졌기 때문에 마치 전선 끊어진 전구와 같이 영이 죽은 영으로  있습니다. 죽은 지혜성, 죽은 지식성. 죽은 선성. 선성이라는 말은 중심성이라  말입니다. 죽은 중심성, 죽은 중심성. 또 죽은 사랑성, 죽은 진실성 죽은 의성,  죽은 구별성, 죽은 주권성 이것이 되어 있고, 그 위에 네 가지 있는 것은  더군다나 더 그거는 우리에게 옴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니까, 이 여덟 가지가 완전히 기능적으로는 죽었습니다. 죽고 그러면 죽었기  때문에, 그거는 죽었고 이제 우리의 형상이 아닌 마귀의 것이 와 가지고서,  마귀의 것이 와 가지고서 이 영은 죽어 있기 때문에 영예는 침범하지를 못하고  영의 것이 이 마음으로 건너와서, 마음은 영의 모형이 요 영은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음은 영같이는 안되어 있지마는 영과 비슷한 그런  모형적으로. 영의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마음 인데 이 마음 가운데에 이  지혜성에 하나님의 지혜성이 연결되어서 오지 못 하니까, 하나님의 지혜성이  연결되지 못하니 이 악령의 지혜성이 연결하고 지식성이 연결하고, 악령의 지혜와  지식과 악령의 중심과 악령의 그 사랑과 악령의 진실과 악령의 의와 악령의 거룩,  악령의 주권 이 모든 것이 인간들 마음에 있는 영의 모형 주머니 속에 가득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들어서 고기 덩어리의, 마음의 모형으로 되어  있는 고기 덩어리속에 이것들이 다 들어 있어 가지고서 사람들이 멸망을 받는  것인데 이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셔서 대속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적으로는 해결을 지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심판의 다 문제를 우리 대신해서 해결을 지우신 것이  예수님이 죽으실 때까지의 모두 이루신 일이요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심판, 이제 공심판 해결 지웠는데 그리스도의 심판  문제를 해결 지워서 그리스도의 심판에 온전하다 완전하다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이런 자로 육성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인성을 입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고 썩지도 쇠하지도 낡아지지도 안하는  이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썩은 양식은 어떤 것이 썩은 양식인가? 여러분들이 간단하게 기억을  하십시요. 그래 기억해 가지고 자꾸 기도 많이 하고 명상을 많이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실지로 자기가 실행을 하면 자체의 변화가 되니까 변화가 되어야 알지  변화되지 안한 자는 모릅니다. 자체가 변화된 것 만치 압니다.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믿는다 말은 주님 따라 다닌다 말이오.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말은 하나님 말씀을 들은 그대로 실행한다. 그말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말은 너희들이 나를 닮아 가지고 나를  닮게 되고, 나를 본받게 되고, 나와 같은 자가 되고 그 말이오, 참 제자된다 말은  제자는 선생 닮은 것이 제자 아니오? '참 제자가 되고'우리가 변화된다 말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같은 진리를.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 하지마는 그 사람 자체가  변화된 것 만침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정도의 그 도수와 강도는  그 사람 된 것 만치 다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겉옷을 팔아서도 환도를 사라. 이러니까 베드로가 있다가  '예' 말고가 왔을 때에 '주여, 이때 입니까? 환도를 쓰랍니까?' 환도를, 가지고서  말고의 귀를 깍았습니다. 이러니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 하리라' 금했습니다.

이러니까, 또 금방 칼을 얼마전에 준비하라 하더니마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하니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랬는데, 그들이 예수님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 그들이 오순절 성령의 감화를 받고 난 다음에 그 자체들이  변화되고 나서 아! 이 겉옷 팔아서 환도 사라는 것은 옷 그것 팔아 환도 사라는  말이 아니고 이 세상에 제일자기에게 필요한 물질 그런 것 모두 다 그 전부를 다  희생해도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을 네가 빼앗기지 말고 소유하라 하는 이  말씀이라는 것을 그들 이 그 후에 알았습니다.

 이렇게 썩는 양식은 무엇이냐? 우리는 인격성 이 속에 내재해 있고, 영이 내재해  있고, 또 안 믿는 사람들은 영은 죽었고 마음이 내재해 있고, 불신자는 마음과  고기 덩어리 이 두 가지 요소로만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생된 자는 영. 마음, 몸  이 세 가지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중생되어서 이 영은 이미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는데 다만 우리의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육이  지금, 이 마음은 영의 모형이요 몸은 마음의 모형이요 또 그 사람 밖에 있는 모든  사물은, 일 해 놓은 일이나 물건이나 모든 것은 그 사람의 심신의 모형입니다. 그  사람이 집 지어 놓은걸 봐서 그 사람의 몸을 알 수 있고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과 몸의 사상을 알 수 있고 욕심을 알 수 있고 성질을 알 수 있고, 그의  지능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을 모형한 것이 마음이요 마음을  모형한 것이 몸이 요 몸을 모형해 놓은 것이 그 사람의 일이요 일을 모형해 놓은  것이 그 사람의 모든 물건들이라 그렇게 우리가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예수님께서 썩는 앙식이라 영생토록 있는  양식이라 하는 것은 따라다니는 그들에게 중생된 영은 이미 중생되면 중생 됐기  때문에 그로서 중생돼 하나님과 연결됐으니까 다 됐고, 다만 그 심신의 이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인데 네게는 하나님의 신성의 모 형인 영이 있고 영의  모형인 혼.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고 혼 이라고도 할 숴 있고, 마음이 있고  마음의 모형인 몸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는 그 마음의 인격성, 그 마음의 인격성이  있고, 마음의 인격성이 있고 고기 덩어리에는 마음의 인격성의 모형, 마음의  인격성 같은 그런 것이 고기 덩어리 속에 있고 또 고기 덩어리가 있다. 이러기  때문에, 고기 덩어리 속에는 신비 한 마음와 인격성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악을 가졌는지 선을 가졌는지 그 사람의 모든 고기 덩어리를 보면 그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안심하고 있는지 놀래고 있는지 그 사람의 그  지체와 피 부를 보면 나타나고 있습시다. 그러기에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라 그 말은 네가 마음의 속성, 영의 속성을 지금 말하지 안합니다. 여러분들이  근본을 모르면 무슨 말인지 모르기 때문에 위에서 간추려 말했는데 마음의  속성의 양식을 네가 먹을 때에 썩는 양식 먹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먹어라 하는 그 말씀인데 마음의 양식은 어떤 것인가? 마음의 양식은 곧, 그  마음에는 지혜라는 지혜성이 있으니 지식성이 있으니, 선성이 있으니, 사랑성이  있으니, 이제 그거는 여러분들이 다 기억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면, 그 지혜라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지혜 요,  지식이라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지식입니다. 그러기에,  그 지혜는 떡이나 밥이나 고기나 이런 것을 먹고는 사는 것이 아니고, 지혜는  지혜를 먹고 산다 지혜는 지혜를 먹어서 지혜로 커진다. 지혜에는 썩는 지혜가  있고 산 지혜가 있다. 썩을 양식 위해서 일하지 말라 그 말은 네가 인간의 그  모든 온갖 인간의 그 지혜. 인간의 그 지혜는 다 죽음에 속한 지혜요 죽는 일을  만들어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죽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를 네가  공부를 하나 네 속에 인간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이놈을 믿고 의지하는 것  있으니 그것을 뽑아 버리기 위해서 인간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를 공부하는 것은  뽑기 위해서 인간의 지혜를 공부하고. 뽑을 걸로, 뽑기 위해서 공부하고, 산  지혜가 있으니 산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영감 지혜다. 하나님이 성신의  감동으로 너에게 감동 준 그 지혜가 산 지혜니 산 지혜를 네가 얻어서 산 지혜로.

산 지혜를 억고 자라도록 노력해라 산 지혜를 먹고 자라도록 노력하고. 썩은 지혜  그것은. 그것은, 그 썩은 지혜는 네가 취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지혜는  배암같이 하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그 말은 이거는 인간 지혜를 알아야 이거는  인간 지혜다 이거는 하나님의 지혜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 지혜 둘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지혜는 내가 취해서 내 지혜로 삼고 인간 지혜는 이것을 내 지혜로  삼지 않기 위해서 이것은 아는 것이다 좀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기에, 네가 만일 철학자라면 그 철학을 가지고서 네가 철학으로 널  구원하리라 생각하면 너는 죽는다. 그 철학의 많은 학자들이 이 철학을 말 했는데  이 철학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꼭 대조적인  철학이기 때문에 이것은 부인하고, 알아야 부인하지 '아 이거는 내가 먹으면 죽는  거로구나' 먹지 않기 위해서 알고 아는 것을 안 먹기 위해서, 그 지혜를 쓰지  않기 위해서 알아 그 지혜는 물리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지혜로 에 지혜를  채워서 지혜가 먹고 먹어서 지혜가 자꾸 자라서 하나님의 지혜로 네가 충만하여  이제 하나님의 모형으로 장성해 놓은 것. 하나님의 지혜가 네 지혜가 되어 네  지혜로 이제 장성한 사람 장성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지혜로 장성하기 때문에  피조물은 피조물이지마는서도 지혜로 말하면 하나님에게 피동된 모형적  지혜지마는서도 하나님의 지혜와 같은 지혜 한 지혜기 때문에 그는 모든 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식도 고 지식에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그 지식이 있으니 그 지식이 있고,  타락한 이후 배암이 인간들을 통해서 별별 만들어 놓은 지식이 있으니 그 지식은  네가 있는 줄 알고 네 인격이라는 인격은 그 자식을 따라서 사는 게 아니다. 그  지식을 따라서 사는게 아니고 그 지식은 네가 이용하고 그 지식은 네 종으로  이용하고 너는 하나님의 지식을 네 지식으로 삼아 너는 인간 지식은 이용하고  하나님의 지식에게는 네가 이용을 당해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그 하나님의 지식으로 채워서 그  지식에게 이용당하고 그 지혜에게 이용당해서 그것이 원형인 하나님의 그 원형을  받아 가지고서 모형된 자다,  이렇게 해서 지식에도 썩는 지식 지혜도 썩는 지혜, 영원히 죽지 안하고 썩지  안하는 지혜, 중심도, 중심도 죽는 중심 영생하는 중심 있다, 뭐 세상에 있는  중심은 무슨, 무슨 인류 중심 무슨 중심 하지마는 다 썩은 양식입니다. 썩은  양식입니다. 썩은 양식, 그 중심은 다 불타지고 맙니다. 영생토록 있을 양식은  영원 자존자 유일신 그분 중심인 그것이. 그 속성으로 네가 그 속성을 먹고  자라기 위해서 일해라, 사랑도, 사랑도 죽은 사랑이 있고 영원한 사랑이 있고.

진실도 죽은 진실 있고 영원한 진실이 있고, 구별도 죽은 구별 있고 영원한 구별  있고, 의도 죽은 의가 있고 영원한 의가 있고, 주권도 있는 것마다 제가 다  주권이라고 말하지마는서도 단일 영원한 주권이 있다. 그 단일 주권 그 주권 그  주권성으로 가지고서 네가 되어져라. 이라면 이루어지는 건 뭐이 이루어지느냐?  영원한 것이 이루어진다. 영원한 것이 이루어진다. 불변한 것이 이루어진다.

완전한 것이 이루어진다. 그런 것은 다 단일성의 것이 이루어진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인격의 양식도 썩은 양식과 영생토록 있을 양식이 있고, 또  이 몸은, 몸은, 이 몸은 썩을 양식 이 물질도 있고, 또 영생토록 있을 양식이  있다, 뭐이냐? 영생토록 있을 양식은 그 몸의 기능이 하늘로 부터 내려온 이  속성에서 나오는 그 속성적인 그 기능을 가지고서 네가 육체라 자꾸 육체로  살고서 연습을 할 때에 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네 육체의 기능이 숙달되고 네  육체의 기능 숙달 되는 것이 썩어질 기능으로도 숙달되고 또 썩어질 물질로도  성장되는데 그것은 다 썩어지고 다 없어질 것이요 영원한 것이 있다. 이래서 썩는  양식과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그 제자들이 묻기를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일 하오리까하는  것은 이렇게 너희들이 씩지 아니할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하오리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니? 하나님의 일을 하다니? 다시 말하면 영원 자존자이신  홀로 한 분이신 그분의, 한 분의 그분에게 피동되어서 그분의 속성 대로 움직이고  속성대로의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 한 분의 일이다. 하늘나라는  하나님 한 분의 일뿐입니다. 하늘나라에도 두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의 일  외의 거는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에 다 몰아 벌어뜨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자기를 죽여서 자기를 비워 부인하여 하나님 한 분으로  귀속하는 것이 이것이 영생이요 지혜요, 각각 제 잘났다고서 모두 다 저를  주장하고 있는 그것은 다 자멸하는 행위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넓게 로마서 11장에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모든  존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됐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요 삼 계단으로 딱 결론을 지워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썩는 양식,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그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너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는, 예수님의 피와 살은, 예수님 당신은 죄가 없지마는 그 피와 살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죄, 비뚤어진 속성이라 말이오. 죄라 말은 뭐이 죄냐? 죄는  하나님의 속성과 일치되지 안한 것이 전부 죄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일치되지  안한 것이 죄요,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되지 안 한 것이요 하나님 중심과 하나  되지 안한 것이요 전부 그게 다 죄이기 때문에 이 죄된 것 삐뚤어진 것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의 대속으로써 완전히 멸해 버렸다 삐뚤어진 걸 다  멸했다 하나님과 재연결을 시켰다 이것이 칭의다 우리가 하지 못한 것을 대신  행하셔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공심판에서. 지공 지성의 심판에서 이는 완전자다,  행위 완전자다, 행위 완 전자로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지마는 예수님이 대신  대행해서 행위 완전자 된 이것이 뭐이냐? 하나심의 속성에 삐뚤어진 것을 완전히  치료하고 하나님의 속성과 완전히 연결되게 한 것이 예수님의 피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대립된 것을 하나님과 영원한 완전한 그 화합을. 결합 친교를  가져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로 이렇게 완전한 영교를 가진 것이  예수님의 피와 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예수님의 피와 살은 하나님의 그 신성의 신성, 하나님의 모양인, 하나님의 형상인  하나님의 속성 그 하나님의 속성과 그 인간의 이 모든 죽은 속성을 완전히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속성으로써 인간의 속성이 되도록 이 일을 해결지운  이 일이 있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이 인격이 이 공로로서만  지혜와 지식과 선과 사랑과 지실과 거룩과 의를 주권을 얼마든지 받아 가지고서  충만하게 채워서 부요해질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먹는 자는 예수님이 그렇게 공로로 죄를  멸하신 피요 의를 건설하신 피요 하나님과 화평한 이 되이기 때문에 이 피가  설정한 이 공로, 이 피가 설정한 그 공로를 네가 힘입는 것이 참 너의 인격의  양식이요 그 공로를 힘입을 뿐만 아니라 그 공로를 힘입어 가지고는 네 가  중생됐으니 네 썩은 피가 이제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완성을 이룬 이 지극히  거룩한 피와 이 공로를 힘입어서 너는 이 피와 연결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피와 연결되어서 연결된 예수님의 남은 십자가를 네 몸에 채  워라 예수님의 하시던 그 일을 계속해서 네가 해서 예수님은 공적으로 했는데 네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이렇게 하라.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하는자는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아버지가 나를 보내서 아버지로 인하여 산 거와 같이 나를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오전에는 여러분들이 다 몰라도, 아 우리는 하나님의 그 형상인  신성의 모형인 인격성이 있다. 그 인격성을 분해하면 그는 속성이다! 어떤 속성이  있느냐? 여덟 가지 속성이요 열두 가지 속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인격의 양식이 있다. 이 세상이 그저 교회에서 나온 말을 받아  가지고서 마음의 양식이니 하는 것으로 비슷하게 자기의 깨달은 대로 그렇게  말하는 말들 하고 있습니다. 인격의 양식, 속성의 양식, 속성의 양식을  먹음으로써. 네 모형인 그 형상이 점점 창성해간다.

 그러면, 속성이라 하는 것은 물질을 먹는게 아니라 속성이라 하는 것은 인격이기  때문에 인격성을 먹는 것이다. 속성이라 하는 것은 모든지 속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능을 먹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있는 그 인격은 아무리 고양 진미를  옆에 갔다 놔도 그거 가지고는 양식이 안 된다. 그 인격은 차라리 어떤 사람이 말  한 마디를 의로운 말 할 때에, 어떤 그 옳은 행위를 할 때에 그때에 거기  대해서는 조그만 갈증이 면해지고 양식도 될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고기 덩어리로 전부만 생각지 말고 고기 덩어리 속에 인격이  있고 인격 속에 그 속에 하나님의 속성이 들어 있다. 그 하나님의 속성으로, 속성  몽텅이로 되어 있는 것은 영이다. 영인데, 영은 살았고 영이 산 그 영의 모형인  그 속성을 네가 길러라. 그러면. 그 속성의 양식을 네가 먹어라. 속성의 양식을  먹되 썩는 양식이 있고 썩지 않는 양식이 있으니까 썩는 양식은 먹으면 죽는다!  썩는 양식은 먹으면 죽는다! 천하에 학(學)을 네가 다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학(學)대로 하면 너는 죽는다! 그 학(學)이 있으나 그 학(學)과 하나님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그 학(學)은 고 학(學)대로 하지 않기 위해서, 그  학(學)은 안 먹기 위해서, 피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  지식대로 행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지식에 삐뚤어지지 않도록  보조학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에 삐뚤어지지 않도록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오전에는 우리는 옷 밥 이 고기덩어리 이거 외에 양식이 있구나,  그 양식이 있는 것은 속성의 양식이다. 인격의 양식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양식이다, 혹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마음의 양식이라 하지마는 그 말은 아주 거리  멀고 그저 모든 것을 하나 뚝 따 가지고서 그렇게 자기네들 생각대로 지어 놓은  말인데, 우리에게 이제 썩을 양식 영생토록 있을 양식. 영생토록 있을 양식은  하나님께로 오는 것이고 썩을 양식은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런데. 육체의  물질이라는 그것도 잘 먹으면 그게 신령한 양식도 되고 잘못 먹으면 썩는 양식도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는 그 주기도문의 해석을 하기를,  오늘 하루 밥 먹을 것만 있으면 족하다 하는 그 말이 아니고 하루 동 안 밥 먹은  것이 자기에게 참 양식이 되어서 그것이, 그것이 인격의 양식이 되어서 그것이  지혜의 양식이 되고 진리의 양식어 되고 사랑의 양식이 되고 의의 양식이 되고  진실의 양식이 되고 거룩의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말하기를 이것은 기름을 짜면 구름과 같은 이것이고  나머지기는 배설물이라. 깨묵과 같은 그런 것들이다 그렇게 구별을 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고기 덩어리로 위주해서 살지 말고 우리는 인격을 위주로 해서 삽시다.

인격을 위주로 해서 사는 것은 죽은 것 먹으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그 속성이  인격의 그 내부 조직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이 세상에 있는 그런 것으로써,  그걸 먹으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지혜성이 세상 지혜로 채우면 그 지혜는  죽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야 삽니다. 사랑이 좋지 마는서도 세상 사랑으로  채우면 그 사랑성은 죽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야 됩니다. 범죄한 이후에  해와가 아담을 사랑함으로 그 사랑 가지고 사랑했고 아담도 해와를 사랑함으로  선악과 먹은 것이 사랑으로 인해서 죽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잘  구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34 두 종류의 생활-가인과 아벨/ 창세기 4:1-8/ 800117목새 선지자 2015.10.28
133 두 종류의 사람/ 요한일서 4장 7절-11절/ 86112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8
132 두 자유/ 갈라디아서 5장 1절/ 880908목새 선지자 2015.10.28
131 두 인도/ 로마서 8장 4절-6절/ 840217금새 선지자 2015.10.28
130 두 운동-두 이치/ 사도행전 27장 22절-26절/ 860814목새 선지자 2015.10.28
129 두 여인/ 마태복음 24장 40절-44절/ 860203월새 선지자 2015.10.28
» 두 양식/ 요한복음 6장 27절-35절/ 840226주전 선지자 2015.10.28
127 두 신앙노선-하나님이냐 자기냐/ 이사야 49장 22절-23절/ 830331수새 선지자 2015.10.28
126 두 신앙노선-하나님이냐 자기냐/ 창세기13장 8절-13절/ 830502월밤집회 선지자 2015.10.28
125 두 신앙노선/ 창세기 13장 1절-18절/ 871018주후 선지자 2015.10.28
124 두 신앙 노선-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장 18절-23절/ 830503화전집회 선지자 2015.10.28
123 두 신앙 노선/ 마태복음 4장 17절/ 830321월새 선지자 2015.10.28
122 두 신앙 노선/ 창13장 8절-11절/ 830427수야 선지자 2015.10.28
121 두 신앙 노선/ 창세기 13장 1절-18절/ 830424주전 선지자 2015.10.28
120 두 신앙 노선/ 창세기 13장 14절-15절/ 890217금새 선지자 2015.10.28
119 두 신앙 노선/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30316수새 선지자 2015.10.28
118 두 신앙 노선/ 창세기 13장 8절-18절/ 830425월새 선지자 2015.10.28
117 두 생각/ 로마서 8장 32절/ 800804월새 선지자 2015.10.28
116 두 사랑/ 누가복음 10장 26절-28절/ 1988. 8. 11. 새벽집회 선지자 2015.10.28
115 두 사람을 구별하라/ 로마서 6장 5절-7절/ 880109토새 선지자 201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