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 젖을 사모

 

1986. 2. 14. 금새벽

 

본문:베드로전서 2장 1절∼2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모든 악독이라고 하는 이 악독은, 악은 자기 중심이나 어떤 피조물 중심을 가리켜서 악이라고 합니다. 모든 악, 자기 중심도 악이요 어떤 피조물 중심도 다 악입니다. 예를 들면, 전인류를 중심해도 악이요 또 뭐 문화를 중심해도, 국가를 중심해도, 민족을 중심해도, 가정을 중심해도 어떤 것을 중심으로 위주로 하든지 이것은 다 악입니다. 다만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위주로 해야만 이 악이 안 되고 선이 되는 것입니다.

독은 어떤 걸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자기만 피조물 중심으로 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피조물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신을 위해서 살아 달라고 하는 그것이 독입니다. 자신도 자신을 위해서 중심으로 위주로 살고 다른 사람도 내 자신을 위해서 살든지 내가 민족을 위해 살면은 그 사람도 민족을 위해서 살게 하든지 내가 국가 중심으로 살면 그 사람도 국가 중심으로 살게 한다든지 내가 전인류를 박애하는ㅡ박애라 말은 넓을 박자, 사랑 애자 박애라는 말인데ㅡ전인류를 박애하는 그 중심으로 내가 살면 그것이 악이 되고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전인류를 박애하는 박애 중심으로 살게 하면 그게 독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종교 창설자,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 창설자가 그게 다 악독입니다.

자신도 피조물을 중심해서 살고 모든 사람들을 끌여서 도인을 만들어 가지고서 자기와같이 그런 것들을 중심해서 위주로 살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다악독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악독과」 이 악독은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요, 이 마음에 있는 악독이 우리 몸을 다스려서 몸의 움직임을 악독하게 움직이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모든 궤휼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꾀우는 말 속이는 말, 속이고 꾀우는 말이나 행동 그것이 다 궤휼인데, 그러면 궤휼 아닌 말은 어떤 말인가? 궤휼 아닌 말은, 그 위에 보면은 22절에, 1장 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것이 궤휼입니다. 남을 꾀우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뭐이 사랑인가? 사랑은,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세 가지 대속, 이 세 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전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역사를 하는 일군이 몇이라 했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몇입니까? 일군이 몇입니까? 예수님의 피공로를 우리에게 실상으로 입도록 역사하는 일군이 몇이라 했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녜, 둘입니다. 서이가 아니고 둘, 진리와 영감입니다. 진리와 영감이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합니다.

그러기에, ‘피차에 뜨겁게 사랑하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네가 진리대로, 영감대로, 또 예수님의 피공로대로 이 세 가지로 사는 생활을 열심히 해라. 너만 이 세 가지 생활을 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 세 가지 생활대로 하기 위해서 네가 노력해라. 이것이 사랑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한다고 배암의 사랑 그 세 가지 사랑을, 정욕의 사랑 동류의 사랑 혈육의 사랑 이 사랑은 배암의 사랑인데, 이 배암의 사랑 이것을 사랑으로 하고 있는 이 세상에 ‘사랑은 여게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있으니 이 사랑을 우리가 받고 이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그러면, 형제를 사랑하므로 그 형제를 참 행복되고 구원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 형제를 위하여 이 세 가지를 힘쓰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대로 사는 것을 힘써서 그에게 보여 주고, 내가 영감대로 사는 것을 힘써서 그에게 보여 주고, 내가 또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입고 사는 것을, 그를 사랑함으로 내가 보여 주어서 그도 이와같이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이 아닌 것은 전부 사람들을 궤휼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꾀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에는 서로 속이고 속는다 그랬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은 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또 제가 스스로 자기가 자신에게 속는 일이라 이랬습니다.

「모든 궤휼을 버리고」 모든 궤휼을 버린다 말은 자기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도성 인신하셔 가지고서 십자가의 대속까지 베푸시기를 나를 사랑해서 나를 구원하실려고, 또 택한 자들을 구원하실려고 이렇게 주님이 하셨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자기를 사랑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게 사랑하는 것인가? 내가 이 세 가지 힘으로 사는 것, 세 가지 힘으로. 우리가 살아난 것은 몇 가지 힘으로 살아났습니까?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났습니다. 요걸 기억 하십시오.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났는데, 세 가지 힘으로 내가 열심히 뜨겁게 세 가지 힘으로 살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세 가지 힘으로 내가 사는 것을 보여 주고 또 세 가지 힘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영광되고 가치 있다는 것을 그들이 보고 부러워하고 좋아하도록 이 세 가지 힘으로 사는 것을 보여 주고, 또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므로 그 사람도 나와같이 이 세 가지 힘으로 살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그것이 피차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생활을 뜨겁게 하는 것이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이 아닌 것은 전부 궤휼입니다. 사랑이 아닌 것은 전부 궤휼.

이것을 기억 하십시오. 나도, 다른 사람도 이 세 가지 힘으로 살도록 하는 그것이 아닌 것은 전부 사람 꾀우는 것이요, 속이는 것이요, 사람 다 망치는 일들인 것입니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모든 궤휼과」 모든 궤휼은 우리가 모든 사는 생활 많은데 그 사는 생활이 진리에게 복종하는 이 생활, 영감대로 사는 생활, 예수님의 피공로를 입고 죄 없이 사는 생활, 의롭게 사는 생활, 하나님과 결합되어 사는 생활 이 생활이 아닌 것은 전부 사람 꾀우는 것이고 속이는 것이고, 자기 꾀우고 자기 속이는 것이다.

그러면, 궤휼이라 하는 것은 모든 궤휼은 다른 사람을 속이고 꾀우는 것만 아니라 자신을 속이고 꾀우는 그것도 다 여게 다 들었기 때문에 모든 궤휼이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타를 꾀우고 속이는 것은 어떤 건가? 자타를 꾀우고 속이는 것은 어떤 것이 자타를 꾀우고 속이는 것인가? 이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의 이 피 이 세가지 힘으로 살지 않는 것은 전부이 자기 속이는 것이요, 이 세 가지 힘으로 살지 않는 것은 다 자기 속이는 것이요, 또 이 세 가지 힘으로 살지 안한 것은 자기 몸을 주어서 불사르게 하는 어떤 희생을 한다 할지라도 상대방을 속이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이 세 가지 것을 보여 주고, 이 세 가지로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들고, 이 세 가지 힘으로 살고 싶은 동경과 소원과 소욕을 가질 수 있도록 고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참 사랑하는 것이지 그 외의 것은 다 사람들을 궤휼로 속이고 꾀우는 것들이라 그말입니다.

요것을 버리고, ‘외식을 버리고’ 외식이라는 이 외식은 어떤 것이 외식인고 하니 하늘나라가 있는데 이 세상만 보고 사는 것이 외식입니다. 또 창조주가 계시는데 창조주는 버리고 피조물만 상대해서 사는 것이, 그것이 외식입니다. 이 세 가지 큰 구원을 얻어서 세 가지 힘으로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났는데, 이 세 가지 생명의 힘으로 살아났는데 이 세 가지 영생하는 생명력으로 우리가 살아났는데 이 살아난 이 생명으로 살지 안하고 고기덩어리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고게 외식입니다.

외식이라 말은 바깥 외자, 꾸밀 식자 껍데기만 꾸몄다 그말이오. 껍데기만 꾸몄는데, 첫째는 뭐이냐? 창조주 버리고 피조물만 상대해 가지고 ‘피조물만 상대해서 잘하면 되지 않겠느냐?’ 무슨 사건이 있으면 피조물과만 의논하고 창조주와는 의논하지 안한 그게 다 외식이라 그말이오. 이 피조물 공산주의가 오니까 공산주의는 두려워하면서 이 창조주 전능하신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게 다 외식이라 말이오.

그러면 모든 외식, 그러면, 하나님을 버리고 이 껍데기 피조물만 상대하는 것이 외식이오. 영생하는 하늘나라가 있는데 하늘나라는 상관하지 안하고 오늘 이사 갈란지 내일 이사 갈란지 모르는 이 세상만 보고 사는 고것이 껍데기로 꾸민 외식이라. 요 모든 외식을 버리라. 그러면, 또 자기가 이 세 가지 생명력으로 살아났는데 이 세 가지 생명력은 버리고 고기덩어리의 생명 이것으로 사는 것이 외식이라. 그러면 외식을 몇 가지를 말했습니까? 지금 몇 가지를 말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요, 지금 몇 가지 말했는고? 세 가지 말했습니다. 세 가지.

하나는 창조주 버리고 피조물만 상대해 사는 것이 외식, 하나는 자기에게 영생하는 생명력이 자기 속에 있는데 이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지 안하고 지금 떨어질지 모르는 껍데기 고기덩어리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이것이 외식입니다. 또 한 외식은 뭐입니까? 영원 무궁한 우리나라가 있는데, 우리의 시민권은 거게 있는데, 우리의 영원한 나라가 있는데 그나라는 상대하지 안하고 이 세상에서 살 것만 준비하는 그것이 다 외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식을 버리고 시기와」 시기를 버리라. 시기라는 것은 어떤 것이 시기인고 하니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있는 좋은 것 보고, 다른 사람에게 있는 어떤 좋은 것이든지 보고 그것을 제가 가지고자 그것을 훼방하는 것, 다른 사람이 좋은 것을 가진 것을 좋아하지 안하고 제가 좋은 것 가진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 좋은 것 가진 그것을 좋은 것이라도 싫어하고 기뻐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시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기는 두 가지 시기가 있으니까 하나는 땅에 속한 시기요 하나는 하늘에 속한 시기입니다. 땅에 속한 시기는 그 사람들이 결혼해 가지고 부부간에 잘 살면 ‘고맙다. 그는 참 부부간에 잘 사니까 고맙다’ 그저 지나가는 말이라도 ‘그들에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래야 될 터인데, 다른 사람이 결혼해 가지고 부부간에 잘 살면 시기를 합니다. 좋아하지 안하고 기뻐하지 안하고, 그것을 기뻐하지 안하고 그것을 가꿔 주지 않는 것이라 말이오. 그것이 시기입니다.

그것이 땅에 속한 시기요.

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다든지 또 고 사람이 신앙 생활을 잘한다든지 이라면은 자기가 헛뻐서라도 찬성하고 이렇게, 칭찬하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한 마디라도 기도해서 북을 돋아 주고 위해야 될 터인데 그것을 기뻐하지 안하고 좋아하지 안하고, 제게 있는 것은 좋아할 줄 알면서 다른 사람에게 있는 거는 좋아하지 않는 고것이 시기입니다. 고 시기 고놈이 들어서 또 우리를 절단냅니다. 그러면, 이 시기는 한정 없이, 종류가 수가 한이 없는데, 땅에 속한 시기 하늘에 속한 시기 요 둘로만 여러분들이 구별해 가지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목사도 시기하기가 쉽습니다. 목사가 시기는 어떤 시기인고 하니, 그 목회를 하면서 다른 목사는 그 교인들이 다 좋아하고 마구 천사같이 받들고 참 눈이라도 빼달라 하면 빼 줄 만치 이렇게 섬기고 이라는데 자기 교인은 자기를 섬기지 안하고 반대를 하고 아주 업신여깁니다. 이러면, 목사가 고럴 때에 이제 시기가 나옵니다. 또 부흥사도 시기하는 것은 무슨 시기냐 하면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어떤 은혜 역사가 있었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안하고서 실쭉하고서 자기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어야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고것이 이 설교자의 시기입니다.

그러면, 설교자로 시기가 있으니까 뭐 시기라 하는 것은 없는 데가 없는 것입니다.

시기 이것도 안 따라다니는 데가 없습니다. 이 시기를 누가 주느냐? 마귀 요놈이 시기를 주기 때문에 우리를 요래 꾀우다 안 되면 조래 꾀우고, 여기 말한 대로 악독 가지고 꾀우다가 안 되면 궤휼 가지고 꾀우고, 궤휼 가지고 꾀우다가 안 되면 외식 가지고 꾀우고, 외식 가지고 안 되면은 시기 가지고 꾀우고 시기 가지고 꾀우다 안 되면은 모든 비방 가지고 꼬웁니다.


선지자선교회 비방이라 말은 다른 사람을 삣고 깎고 허는 것이 비방입니다. 훼방이나 비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비방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이렇게, 앉아서 논인 장단해, 다른 사람의 좋은 점도 그것도, 좋은 점 그것도 말한다고 다 좋은 것 아니오. 좋은 점 말한 것도 그 속에 악독이 들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좋은 점 말하는 것이, 그것이 비방하는 성질에 속해 가지고서 다른 사람 장점을 말하는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을 참 북돋우는 의미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그런 것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비방이라 말은 다른 사람을 헐어 깎고 삣고 하는 그것이 비방입니다. 이 비방 이것도, 이 죄도 회개할라면 어렵습니다.

왜 내가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을 같이 만나지 말고, 같이 가지도 말고, 미장원도 같이 다니지 말고, 목욕도 같이 가지 말아라. 너거는 같이 가면 피차죽인다. 그뭐 죽인다 하면은 비방으로 죽이는 것 많습니다. 또 시기가 나오도록, 누구는 어떻고 어떻고 이래 가지고 시기심이 나오도록, 이래 가지고 한창, 시기를 뭐 시기 하느냐 하면은 ‘그 사람은 지금 같은 돈 주고 아주 헐하게 뭣을 샀다. 무엇을 이걸 좋은 걸 이래 가지고서 하나 이 보여 가지고 인기를 끌까?’ 이래 가지고 뭣이든지 이상한 걸 이래 떡 사 가지고 거석하면 ‘아이, 그거 어데 났노? 그거 묘하네.’ 이라면 그만 거게 달아 가지고서 그걸 알라고 이래 가지고, 안 가르쳐 주면 저도 시장에 돌아다니며 이래 가지고서, ‘나는 또 그보다’ 돌아다니며 이래 가지고, 그런 것 경쟁하는 것이 얼마나 썩었습니까? 머리를 이래 가지고 하니까 머리를 잘 했으니까 ‘참 머리 그거 잘했다.’ 이 머리 한번 잘하기 위해서 사람을 후려다 넣어 줘 가지고서 그 사람은 그라니까 ‘이 사람을 친해 놓으면 이 손님들을 많이 끌어 주니까 이 사람을 특별히 이거 돈은 안 받고라도 잘해 줘야 되겠다 적게 받아도 잘해 주겠다.’ 더러운 그런 놈의 욕심! 그 썩은 거! 어찌 그리 사람이 못나 그렇게 칙칙합니까? 적어도 권찰이라든지 반사 선생님이라면 인격이 있어야 됩니다. 인격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이 중량이 있어야 됩니다. 자존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 칙칙하게 더러운 천한 그런 데에 끌려서, 어린 아이들도 다른 아이가 뭣을 별스러운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별스러운 걸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으면 그만 아이들이 보고 옷만 하나 별스러운 걸 하나 입어도 하, 좋다고 그만, 그 어린 아이 국민학교 가기 전 학생들은 막 줄줄 따릅니다. 옷만 하나 입어도 줄줄 따르요. 그러나, 고럴 때도 암만 아랫도리를 벗고 다니는 조매한 것 두서너 살 먹어도 뭐 좋은 것 있다고서 우 따르면은 그때부터 표리가 다릅니다. 있는 거는 안 따릅니다. ‘좋으면 저 좋지 나 줄 건가? 뭐한다고 쭐쭐 따라 그렇게 천하게 굴어?’ 세 살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두 살 먹는 것도 아예 그러면 대답 안 하요. 국민학교 다니는 것도 그렇고 나중에 이것은 어른이 돼 가지고도 이십, 삼십, 사십 세 돼도 그러고, 오십 세 되어도 그런 것 그 있습니다.

제가 사는 ○○교회는 별명이 더플개입니다. 더플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 어떤 사람이냐? 이웃에 생일이 닥치면, 생일이 닥치면 그만 사흘 일을 못 합니다.

거게 막 피동이 돼 가지고. 무슨 제사 닥치면 하루 일을 못 하고, 이웃에 무슨 장가 가는 사람이 있어서 무슨 혼일을 떡 날짜를 정해 놓으면 그만 한 달 동안 일을 못 해. 공연히 거기 충격 받아 가지고서. 그래서 벌로 덤빈다고 별명을 짓기를 더플개라 별명을 지어 버렸어. 우리는 말만 들었지, 나이가 많아서 말만 들었지, 못 봤는데 제 가친이 늘 그말을 해 줘요. 그말을 저희에게 해 주셔요.

우리를 앉혀 놓고서. ‘이 더플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런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식사할 때나 그런 얘기를 해 줘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 다른 사람을 헐고 삣고 깎고 하는 것, 그래서, 그 유교에서는 그렇게 말합니다. 논인 장단은 팔 악에 들었다. 여덟 가지 악한 가운데에 논인 장단이라는 죄가 들었다. 앉아서 사람을 기니 짜르니 하는 그런 것, 자기가 길면 그 사람 보고서 부러워서 모본을 삼아 가지고서 그 사람을 존경하고 축복하고 그 사람 따라갈 것이고, 만일 그 사람이 단점이 있으면 헐어 욕할 게 아니라, 저도 단점이 꽉 찼는데. 있으면 헐어 욕할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대해서 위해서 기도하고 걱정하고 나도 그런 데 빠지지 안하도로 조심하고 이랄 일이지 저는 보지도 안하고 이랬기 때문에 주님이 하도 안타까와서 ‘네가 남의 눈의 티는 보고 네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는 자야 네 눈에 들보를 먼저 뽑고 남의 눈에 있는 티를 자세히 보고 뽑으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허는 재미를, 이걸 아주 재미있게 여긴다 말이오.

그 재미는 마귀가 주는 재미입니까 성령이 주는 재미입니까? 마귀가 주는 재미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은 그냥 못 견딥니다. 저 시골은 사랑방이 있는데 사랑방에 가 가지고서 다른 사람 이렇게 저렇게 한번 헐뜯는 그런 말을 해야 시원하다 말이오. 시원하고 잠이 옵니다. 또 이런 도시에서라도, 남자들보다도 여자들이 더 많아요. 여인에 늙으면은 그 망령돼. 이래 가지고서 어데든지 가 가지고서 이런 말 저런 말 헐고 이라니까, 그게 무기입니다. 아주 이게 남을 헐고 욕을 잘하고 그라니까 그것 나이 많은 것 뚜드려 팰 수도 없고 갋으면 또 젊은 사람이 못됐다 할 것이고, 그런 여자는 갋지 안하고 멀리 떠날라 하지마는 또 거게 저를 대우 안해 주면 또 그게 야단이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그걸 어쨌든가 오면 자꾸 이래 추니까, 이 세상은 악한 것이 이렇게 존대를 받습니다. 악한 건 바짝 눌려서 깨버려야 되는데.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런 걸 보면은 다시 와 가지고 그것이 오면 ‘이 마귀 들어왔다’ 이래 보기 때문에 와 가지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나 가타 부타 말하지 안하고 암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자기는 이래 눈을 감고 있든지, 눈을 뜨고 있어도 속으로는 ‘주님이여, 이 귀신 들어왔으니까, 마귀 들어왔으니까 이걸 물리쳐 주시옵소서. 또 이 사람이 마귀에게 붙들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이 사람이악습이라는 이 남을 훼방하는 더러운 습성이 들어 가지고 있으니까 이것을 뽑아 주시옵소서.’ 자꾸 속으로 그 기도 하니까 그까짓 소리가 와 가지고 그게 꾀임이 됩니까? 그 궤휼에 피동되지 않는다 그말이오.

안 하면은 그 사람이 떡 생각하기를 뭐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나하고 뭣이 틀려서 지금, 나하고 삐뚤어져 가지고서 이렇고 호응을 하지 않는가?’ 이러니까 재미 없게 생각합니다. 재미 없게 생각하고 난 다음에는 그게 ‘내가 이런 말 저런 말 했으니까 그것을 아마 듣고 호응을 안 하고서 , 하, 그렇다고 이 소리 찬동 안 하는 거 보니까, 동의를 안 하는 것 보니까 이게 지금 그 사람한테 가서 말하겠다.’ 그 사람이 나한테 와 가지고서 훼방하는 말을 하는 것을 내가 ‘그렇다. 과연 그렇다.’ 이렇게 찬동을 안 하면 이것이 뭐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찬동 안 하는 것 보니까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와 가지고 이 말한 이것을 그 사람에게, 본인에게 가 가지고서 전하겠다’ 싶으니까, 그것이, 뭐 그 자리 떠나 가지고 바로 그 집으로 갑니다. 바로 그 집으로 가 가지고서 이제 이 사람이 한 것처럼 ‘그 사람이 뭐라고 뭐라고 뭐라 하더라’ 거짓말까지 해 가지고 ‘그 사람이 널 이렇게 훼방하더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은 의를 지키지 못합니다. 인제 압니다. ‘이게 이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또 간다. 거게 가 가지고서 이제 그런 말 할 것이다.’ 그걸 압니다. 하거나 말거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럴 때에 그런 데 빠지지 안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만 보고 깨끗이 살고, 하나님만 보고 곧게 살고, 하나님만 보고 조심하는 사람이 아니면ㅡ인간 보고, 인간의 눈을 보고, 인간의 입을 보고, 인간의 귀를 보고, 인간 보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절대 의라 하는 것은 할 수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이 서부교회 목사가 됐기 때문에 서부교회 교인이 와서 이라면은 그것을 바로 직방 그만 그 칼로 가지고 쳐 버립니다. 하나님의 성신의 칼로 탁 쳐서 쪼개 버리기 때문에 박살이 나 버리니까 다시는 와서 그런 소리를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 소리를 하지 안하지마는, 그래도 내 밑에 자라는 목사같으면 내가 즉시 그말을 하지마는 자라는 목사가 아니라면은 그런 소리 못 하니까 할 수 없어 눈 감고 이래 못 들은 척 하든지 속으로 기도하든지 합니다.

그전에, 전에는 제가 서울 자주 다녔는데, 서울 다니면 어데 가다 보면은 목사를 만났습니다. 목사를 만나면 ‘이거 오늘도 큰일났네’ 만나면 앉아 가지고서 어짜든지 교회에 대해서 누구 이렇게 훼방하는 것, 논인 장단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다 조그만한 데 다 앉아 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들 다 들을 터인데 그것도 생각도 안 하고 자꾸 이렇게 하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그만 철면피가 돼 가지고서, 낯짜구가 뚜껍다 말이오. 철판 모양으로 돼 가지고 있어서, 뭐 다방에 앉아 가지고 얘기한다고 얘기하는 상담소가 다방이라 하는데 나는 다방에서 얘기하는 사람들 나는 알기를 우습게 압니다. 다방에서 얘기하면 그거 전부 다 듣는데 거기서 무슨 얘기를 합니까? 이러니까, 할 수 없어서 얘기하면은, 그 사람 얘기하는데 다른 소리를 하면 안 될 거고 얘기하는 고 기회가 있으면 다른 제목을 내놓습니다. 다른 과제를 내 가지고 다른 얘기를 이래 설설 얘기하게 되면은 그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들어 주지요.

다른 얘기를 내가 하면은, 나는 딴 뜻을 가지고 다른 얘기를 내놓는데, 과제를 지금 딴걸로 바꾸는데, 이것도 모르고 또 그말 끝나면 얼른 또 시작합니다. 그럴 때는 할 수 없어 그거는 어짤 수 없으니까, 바람 쐬러 나간다고 바깥에 가서 바람 쐬면서 섰다가 가든지 그리 안 하면 안 되면 뭐 변소간에 앉았든지 그리 안 하면, 이래야 되지 그 사람하고 있으면 교회 수치 다 당하고 복음 다 가루고 폭로돼.

그렇게 체면 없는 사람들이 목사 중에도 있으니까 이 권찰들, 반사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말이오.

‘모든 비방과’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 젖은 무엇을 말했습니까? 진리의 말씀을 말했습니다. 말씀을 말했는데, 순전한 젖은 뭐입니까? 순전한 젖은? 우리에게 문서 계시로 나타나신,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이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또 신령한 젖은 뭐입니까? 진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영감입니다.

그러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하는 것은, 순전하다 말은 이거 거짓이 하나도 없고 잡것이 섞이지 안했다 그말이오. 순전이라 말은, 순전한 숯이라.

순전한 숯이라 말은 그 숯 속에 금이 들었다 말입니까? 숯 뿐이라 말입니까? 순전한 숯 ‘이는 순전한 숯이라’ 이라면 그 숯에 금 든 숯을 말합니까, 은이 든 숯을 말합니까? 그 속에 무슨 보석이 든 숯을 말합니까 어떤 숯을 말합니까? 잡것이 없는 순전한 숯뿐인 새카만 숯, 아주 잡것이 하나도 없는 순전한 숯, 이와 마찬가지로 순전하다 그말은 거게 잡것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다 그말입니다.

도의 젖이라고 해 놨는데 지금 여기 그걸 새 번역에도 도라는 것을 빼고 젖이라 했는데 젖이라 말이나 꼭 마찬가지입니다.

이랬는데, 신구약 성경의, 육십 육 권 도리의 진리의 말씀은 하나도 거짓부리가 섞여 있는 것이 없고, 이 말씀에 혹 과장이 섞여 있으면은 순전합니까 순전하지 못합니까? 순전하지 못합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보증, 이 말씀에 대한 성취되는 보증, 그 보증권이 없으면 이 말이 순전한 말이겠습니까 거짓말이겠습니까? 거짓말이지요. 이 말에는 거짓부리 하나도 없고 이 말에는 천지는 변해도 하나도 변하지 안하고 요대로 이루어지는 말씀이기 때문에 순전하다 하는 것은 요 말씀에 잡것이 없는 순결성을 가리키고 또 권위성을 가리키고 진실성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젖을 사모하라 말은, 왜 그걸 젖이라고 비유했는가? 젖이라는 것은 이것으로 우리가 자랍니다. 이것으로 자라지, 순전한 젖 신령한 젖, 이 진리와 영감을 우리가 먹음으로 자꾸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와 영감을 먹을라고 하면은 그 위에 몇 가지입니까? 모든 악독, 모든 궤휼, 외식, 시기, 모든 비방,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다섯 가지, 이 다섯 가지를 뽑아야 된다 그말은 이 다섯 가지가 우리 마음을 붙들고 있으면은 이놈이 우리 마음을 놔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을 붙들고 있으면 아무리 이렇게 순전한 도, 진리와 영감이 우리에게 와도 이놈이 내주지 않습니다. 이놈이 내주지 안하면은 진리와 영감이 강제로 뚫고 들어올 수 있습니까? 못 뚫고 들어옵니다. 왜? 우리 마음에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이놈이 나가거라’ 하면 당장 나갑니다. 이놈을 물리치고 이래 해야 영접 할 수가 있다 그말이오.

이런데 거게, 도의 지금 입문에 지금 가다가 말았는데, 시간이 돼서 이제 끝나는데, 자꾸 나와요. 나오면 이 도를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지, 도를 알아서 도인이 돼야 되지 구원이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새벽 기도 빠지지 말고, 텅 비고 저래가지고 안 나왔다 말이오.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그렇지 말귀를 알아들으면 죽어도 나옵니다. 말귀를 알아들으면 자기가 이 하나를 모르면은 제가 망하고 죽는데 어떻게 안 나올 수 있겠소? 알아들으면 나옵니다.

녜, 요다음에 계속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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