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경

 

1985. 2. 18. 월새벽

 

본문 : 시편 1편 1절-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아무래도 우리의 신앙 사상이 바꾸어져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이  바꾸어진다는 말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소원과 모든 비판과 평가가 다  바꾸어져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쉬운 우리 생활을 차차  고쳐서 옳은 대로 점점 바꾸어 가야 하겠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서 우리  사람도 완전히 바꾸어져야 합니다. 우리 생활이 먼저 바꾸어지지 안하면 사람은  바꾸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 생각이 바꾸어지지 안하면 우리 생활은 바꾸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생각이 바꾸어지는 데는 우리의 지식이 바꾸어져야 되지  지식이 바꾸어지지 안하면 안 됩니다. 지식이 바꾸어져야 되겠고, 지식이  바꾸어짐으로 생각이 바꿔져야 되겠고, 생각이 바꾸어짐으로 우리 행동이  바꾸어져야 되겠고, 행동이 바꾸어짐으로 우리 사람 자체가 점점 바꾸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바꾸어지는 데는, 세상에는 너무 말도 많고 길도 많고 주장도  많습니다. 어떻게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게 전부 다 유혹입니다. 은밀히  냉정스럽게 말을 한다면 세상에 있는 말은 전부 미혹의 말입니다. 미혹 아닌  말이 있는거 같으나 그것이 얼마 안 가서 살펴보면 그것이 결과가 미혹으로  이루어지고 맙니다. 우리가 무지해서 그것을 정확히 판단을 못 해서 마귀가  주는 그 유혹이 '이런 거는 쓸모 있다 저런 것은 그래도 괜찮다' 이런 것이  있지, 진리대로 보면.

 에덴동산에서 배암이 마귀 형상을 입고 들어와 가지고 인류 시조를  꾀웠습니다. 꾀우고 난 다음에는 그 유혹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었고 마귀와는 한 덩어리가 되었는데 마귀는 사람보다 훨끈 뛰어나게 모든  면이 능합니다. 이러기에,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는 그 언행 심사의  전부가 다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순전히 마귀가 넣어 주는 그 지식을 가지고 있지 마귀가 넣어 주지 않는 그  지식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지식 가운데는 물리라는, 과학이라는 것은 좀  낫지마는서도 과학을 넣어 준 것도 그것을 다 사람을 미혹시켜서 멸망시키기  위해서 과학을 악령이 넣어 준 것이지 사람에게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 넣어  준 것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그러면, 마귀가 사람을 해치도록 하는 이런 역사를 전적 하고 있는데,  그러면, 이 세력이 하나님의 세력과 마귀 세력과 둘이 있자 않는가 이렇게  잘못하면 오해하기 쉽겠습니다. 이 마귀가 앞장서서 그렇게 하고 있기는 있으나  그 마귀의 동기가 어디서 생겼으며 어떤 힘으로 하고 있느냐? 마귀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이 힘을 줘서 하고 있고 하나님이 시키셔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밀히 말하면 에덴 동산에 배암을 입고 와 가지고 해와를 꼬운  그것이 깊이 따지면 하나님이 그것을 시켜서 보낸 것이지 제 단독으로는 한  일이 아니요. 또 마귀가 스스로 단독으로 생겨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지은 천사가 타락해서 마귀 가 된 것인데, 타락, 천사 타락도  하나님의 작정이요 타락해서 인간계에와 가지고 인간을 타락시킨 것도 그것도  하나님이 하게 한 일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유가 뭐인가? 그 이유는, 이렇게 마귀가  가득 차도록 만들어서 그 피조물 된 사람들에게 실패의 그 모든 종류를 다  만드셨고 유혹의 종류를 다 만드셨고 악의 세력을 다 만드셔서, 이렇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그 존재를 종류가 남지 않게 전부 다  만들었습니다. 다 만드신 그 이유가 뭐이냐? 그 이유는 이런 모든 거,  유혹이라는, 영원 무궁토록, 무궁토록의 유혹이라는 모든 종류, 또 악의 세력,  또 의를 대적하는 거, 또 의를 이렇게 저렇게 간교하게 해서 밀고 당겨서  치우치게 해 가지고서 실패케 하는 것이런 것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실 대로  다 내셔 가지고 이런 것을 다 능가하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용으로 이런 것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이런 것을 다 능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  이길 수 있고. 이런 것을 다 이해할 수 있고, 분해할 수 있고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을 다 방어하고 배격하고 승리할 뿐만 아니라 이런 것을 다  얼마든지 활용하고 이용해서, 그런 것들을 이용을 해 가지고 영원히 하나님  다음의 위치에서 모든 피조물을 모든 면에 원만하게 충만하게 운영하고  지도하고 보존할 수 있는 이런, 하나님 대리 일을 할 수 있는 이런, 하나님  다음의 능한 자를 만들려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계획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이루시는 데에는, 이제 배암이  유혹시킨 에덴 동산 타락도, 그 후에 오늘까지의 마귀의 역사의 크고 작은, 또  은밀히. 표면적으로 되는 그 모든 것이 하나도 하나님의 예정 밖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예정하신 그 무한하신 지혜의 예정대로 그 순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며, 또 예정된 그것을 낱낱이 이루시는데 이루시는 그 힘은 무슨  힘이냐? 그 힘은 전부 다 하나님 한 분이 나타내신 힘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이 뭐인가?  하나님 목적이 곧 하나님의 교회요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광대한 것을 다 성경이 가르쳐 주셔서 상고하면  보고 알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크게 말한다는 것이 대국적으로 뭣을  사색한다. 대국적으로 사색하고 대국적으로 비판하고 대국적으로 모든 것을  계획한다 이러나 우리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모든 것을 사색하고  또 계획하고 모든 것을 다 조성하고 조립한다 그렇게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지식은 자존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모든 그 전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완전 지식이요 전체 지식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지식이 어데 있느냐? 이 지식이 곧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성경 말씀의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오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창조. 또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 또  인간들의 형형 색색의 참 측량 못 할 만한 인간들의 그 마음의 이런 구조 저런  구조 이런 모양의 마음 저런 뭐 삐쭉 빼쭉 별스러운 그 수 많은 인간의 마음의  모양들. 마음의 구조 이것이 자연 계시인데. 이 셋을 가리켜서 자연 계시라  하는데, 이 셋으로서 대충 알도록 이렇게 했으나, 범죄하기 전에는 이것 가지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배암이 들어온 유혹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거기다가  씨름을 붙이니까 다 패전해 버려서 이것 가지고는 안 됐습니다. 이러기에,  배암을 능가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아담은 배암을 능가하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제는 능가하지 못한 자들에게 신구약 성경 특별 계시의 이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은 능가 할 수 있도록 하시고, 또 이 말씀 안에  하나님께서 직접 친히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화를 허락해 주셔서 이 감화와 또  문서 계시 이 둘을 합해서 특별 계시라고 하는데, 이 계시로써 광대하신 이  전부에 대한 모든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아는 지식을 가지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전체에 대한 인식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이지식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왔지 인간이 가지고 싶다고 온 것  아닙니다.

 석가모니가 종교 창설자 중에는 위대하다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결국  철학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철학자가 되고 말았다 말은. 석가모니는 자기가  연구하고 생각하는 그것이 전부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자기를 주관하고 있는  약령을 연구하고 악령을 찾아서,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는  다른 짐을 지울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사탄의 깊은 그것이 사탄이 고등 술책을  가지고서 인간을 유혹시키는 사탄의 모든 그 넓고 깊고 높고 많은 그 지식을  찾아 들어간 것이 그것이 철학입니다. 그러면, 그 철학은 다시 말하면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러면 자기 들어 있는 것을 찾아 들어가는데 자기 속에 뭐 있었느냐? 자기  인간 속에 깊이 들어가서 자기 중의 자기, 깊은 속에 보좌를 차려 놓고 인간의  최고의 그 보좌를 자기의 왕의 보좌로 만들고 거게 왕으로 앉았는 자가 곧  사탄이요 마귀입니다. 그것을 찾아 들어가서 그것을 만나니까 이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니까 보는 것이 새것이요 듣는 말이 새것이요 생각하는 것이  새것이요 또 연구해서 발견한 것이 새 것이라. 새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 다 유혹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능가하지 못하는 그런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거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그 사 색한 최고의 지식이 뭐이냐?  그것이 곧 사탄의 지능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사탄은 불신자들 가운데에 주장하는 영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이 저질러 놓은 큰 난제를, 죄에 또  거역에, 하나님과 원수됨에, 간추려 말하면 이 세 가지인데, 그 난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그 모든 난제에 걸렸습니다. 그 모든 난제에 걸렸는데 왜 난제에  걸렸느냐? 난제에 걸린 것은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그 율법이 있기 때문에  그 율법을 어겼으니까 그 난제에 다 걸려 가지고 있습니다. 난제에 걸려서 다  정죄가 되었고, 전부 그 난제가 하나님의 율법에 걸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게서 다 붙들려 매여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뭐이냐?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하나님을 거슬리므로, 절대의 영원한 자유법을 어김으로 그 어긴  율법에 걸려 가지고서 사람은 그 법대로 처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모든 죽고 망하는 이것이 일은 마귀가 하는데 마귀가 무슨  권세를 잡고서 하느냐? 하나님의 율법을 의지해 가지고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이것이 어겨지지 안했습니까? 이거 하나님의 율법에 범하지 안했습니까?  하나님 율법은 이런데 이렇지 않습니까?' 이래 가지고 모든 정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배경으로 삼아 가지고서 정죄해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망의 권세는, '죄의 값은 사망이요' 또 뭐라 했습니까? 죄의 값은 사망이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전부가 다 사람을 타락케 멸망하게 실패하게  만드는 그것이 전 인류의 지식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도 뭣도 전부 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가리켜서 음행의 포도주라 이렇게 말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멸망받는 것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는다 해서  음행의 포도주라, 그 음행의 포도주를 가지고 있는 그자가 어떤 자냐? 그자를  가리켜서 음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음녀라고 말했느냐?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꼬와 가지고 미혹하기를 에덴 동산에 미혹 하던 그 방편 가지고서 다  미혹하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피공로를 인해서 그것들이 다 왕 노릇은 못  하니까 중생된 사람이 그것을 이길라고 하면은 이길 수 있도록 돼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기독교는 온갖 마귀의  역사를 다 배격해서 그런 것을 다 방어하고, 방어할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을 다  활용을 해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활용을 해서, 그것을 다 활용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 되고 그것에게 이용을 당하면 자기는 다 음녀 간부의 유혹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든 세상 살이에는 이 두  가지 지식이 가득 차 가지고서 역사하고 있는데, 이 악령의 지식은 불신자  전부를 다 주관하고 있고, 또 악령의 지식은, 믿는 사람도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되어 이 셋으로 사는 사람 고것은 새사람이고 고 사람 껍데기에 있는  사람은 옛사람이니, 우리 믿는 사람은 옛사람도 있고 새사람도 있고 두  사람입니다. 옛사람은 뭘로 생긴 사람이냐? 그 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사람입니다. 악령이라 말은 이 물질의 육체의 형체를 가진 것이 아니고  영체의 그 형체를 가진 영인데. 천사를 말합니다. 영인데 그 영이 악령이 됐다.

악령이 됐다 말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될 그 천사가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으로 타락돼 가지고, 또 악성이라 하는 것은 사람의 속성이 악성이 됐다.

사람의 속성이 악성됐다 말은 사람의 속성이 자기 중심의 인간성이 되고  말았다. 악습이라 말은 하나 둘 해서 자꾸 하나 둘 연습해 보고 하나 둘 자꾸  그 일을 되풀이 해서 자꾸 이렇게 해 나가는 그것이 그만 연습이 되는 것이요  고게 습성이 되는 것인데 그 모든 것이 다 악습이다. 자기 중심의 모든 습성이  되어 있다.

 이렇게 옛사람이 있고 새사람이 있으니 우리는 새사람으로 사는 때도 있고  옛사람으로 사는 때도 있으니까, 안 믿는 사람의 전부와 믿는 사람의  옛사람으로 사는 그 전부는 다 악령이 주관하고 있는 것이요, 새사람으로 살  때만 하나님과 진리와 또 뭐이 주관하고 있습니까? 하나, 피. 피, 이 셋이  주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 하나님이 주신 것은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고 또 하늘에 있는 모든 영계를 다스릴 수 있고, 하나님 다음으로의 실력가,  하나님 다음으로의 지혜가, 하나님 다음으로서의 봉사가, 하나님 다음으로의  통치가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이 모든 것을 다 이용하기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과 꼭 같은 자를 만들려는 것이 하나님  목적이요, 하나님과 꼭 같은 자를 만드는 데에는 두 가지를 만들어야 되는  것이니 하나는 하나님과 같은 자를 만들라고 할 때에 방해하는, 방해하는 악의  세력을 만들고. 이 모든 하나님이 만드실 수 있는 악의 세력을 다 만드시고.

만드신 이 악의 세력을 다 능가할 수 있는 이, 의의 세력을 만들어야 되겠고,  이것을 능가하면 그견 다 폐물이니까 능가할 뿐만아니라 그런 것을 다 이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이런 능력있는 자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그 능력있는 그자가  어떤 자냐 하면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다시 살려낸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다 능가하는 그 지혜를 얻는 것이 그 지혜가 어디  있느냐?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지혜를 얻는데 그 지혜가 어디 있는가? 그  지혜가 우리에게 주신 이 문서 계시에 있습니다. 이 문서속에 있습니다. 그러면  문서속에 있는 이 문서이면 다인가? 아닙니다. 문서라는 이 껍데기 속에,  문서라는 껍데기 속에 성령의 감화 영감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이 문서 속에  들어 있는 성신의 감화를 가리켜서 내재적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내재적  영감. 안 내(內) 자 있을 재(在) 자, 그 적(的) 영감이라, 내재, 안에 내재해  있는 영감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첫째로 이 모든 것을 바로  아는 지식을 가져야 되겠고, 또 바로 아는 지식 그 윤곽 안에, 그 지식. 지식  안에 성령의 감화가 있으니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야만 우리는 이 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히브리 11장에 보면은 거게는 다 믿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겼다  이겼다 말했는데, 그 믿음으로 이겼다는 그 말은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이겼다는  말이요 순종으로 이겼다는 말인데, 그때에 이 성경이 다 있는 때가 아닙니다.

성경 있는 때의 일들도 기록되어 있지마는 성경이 없을 때의 일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있기 시작한 때가 어느 때냐 하면은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하는 그때부터가 성경이 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다 외부의 것이요. 에덴 동산에서 '네가 이 모든 것을 다스리며 지키고  선악과는 억지 말고 모든 과실은 먹어라' 하는 그분이 누구냐 하면은 그분이 곧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영인데, 예수님의 영이신데, 예수님이라는 그  이름은 신인 양성 일위를 가지셨을 때에 예수님이라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되기  전에. 예수님으로 돼 가지고 오시기 전의 이름은 뭐이냐 하면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때에 에덴 동산에 이끌고 에덴 동산에서 말씀해  주신 그분이 어떤 분이냐 하면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곧 성령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성경 안에 성령 있는 이 성령을 받아서. 그러기에,  히브리서에 믿음으로 했다 하는 믿음은 대부분이 문서를 보고서, 문서를 보고  '아, 문서가 이러니까. 우리가 성경 말씀보고 성경 말씀이 리러니까 이 섯경  말씀대로 해야 되겠다.' 이 문서로 되어 있는 이 법을 복종하는 그런 순종이  아닙니다. 이 문서로 되어 있는 법을 복종한 것이 아니고, 그 복종이라 하는  것이 대부분으로 문서 속에 성신의 감화가 그들에게 감동시켜 준 그 성신의  감화에 복종한 그 복종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믿음이라 하는 데 대해서  성령의 감화의 복종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대부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외부적으로 이 성경을 알아야 되겠고, 또 이 성경에  복종해야 되겠고, 이러면, 성경안에 성신의 감화가 우리를 지도하는 거게  복종을 할 때에 그것이 다 초자연의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 돼 가지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말씀하는 것은 모든 것보다도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그러면, 여호와의 율법은 계약의 하나님의 계약서를 즐거워한 다 그 말입니다.

계약하신 하나님의. 하나님의 계약서를 즐거워한다. '즐거워하여' 그러면,  즐거워하니까, 이 계약서를 즐거워하니까. 이 계약서를 자꾸 보겠고 읽겠고 이  계약서를 외우겠고 해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그러면. 이 계약서를 자꾸 생각하고. 자꾸 이렇게 눈감고 생각하는  것을 가리켜서 '묵상한다' 묵상하는데 주야로 묵상한다. 그러면, 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말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되. 읽되,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되 읽는 사람 가운데에 여러 가지로 '내가 하루 얼마씩 성경을  읽기로 했으니까 읽어야 되겠다.' 또 '내가 이 성경에, 많이 읽은 사람들은  상을 받고 또 이 성경 읽는 것이 제일 복 되다고 하니까 상 받기 위해서 많이  읽어야 되겠다.' 또 '나는 몇 차례 양성원에서는 백 독을 읽어야 된다 하니까  이 백 독을 읽기 위해서 읽어야 되겠다.'  그러면. 성경을 이런 목적 저런 목적으로 읽는 사람, 또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읽어서 성경에 있는 지식을 가져야 되겠다, 또 지식을 성경에 있는 지식, 이  상식을 가지기 위해서 읽는 사람, 또 그 사람은 성경 읽는 것이 습성이 되서  마치 사람들이 뭐 테레비 보면은 취미 붙여 놓으면 자꾸 테레비 볼라 하고. 또  소설이나 잡지나 이런 것을 읽기 시작하면 거게 취미 붙여 놓으면, 순전히 이거  거짓말로 꾸며낸 것인데. 거짓말로 꾸며내고 이거 모두 다 작가들, 소설가들  이런 사람들은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미치괭이 같이 마음대로, 미치괭이 같이  말해 놓은 그 말이, 옛날 말한 것이 오늘 몇 십 년 후에 맞으면 그 말을 떡  이용해서 '소설에 써 놓은 이 말이 여게 대해서 예언한 말이라' 이래 가지고  아주 소설 저작한 자는 그는 아주 예언자요 모든 것을 멀리 넓게 본  사람들이라, 이거 사후에 그것이 끌어다 붙여 가지고 맞다 이렇게 해 가지고서.

마치 토정비결이 '이것은 참 이거 아주 의인이 한 말이다' 이래 가지고 그 말을  읽으면서 '여게 오만 게 다 들었다' 이래 가지고 그 말이 안 맞으면 다 집어  던져 버리고 지나 간 후에, 짜다라 씨부렁거려 쌓아 놨으니까 거게 맞는 것도  있다 말이오. 그러면 제가 알고 말한 게 아니라 아무나 따나 말해 놓으니까  그와 같은 게 있다 말이오. 같으면은 '봐라. 이거 예언이 아니냐? 맞다, 맞다,  이래 가지고서 유혹을 하는 이 악령의 유혹과 같이, 이 모든 소설가들 이들은  소설가들을 자꾸 높여서 '소설가가 제일이다' 이래야 되니까 지나간 소설에 뭐  있으면 '봐라. 이 사람이 그때 이런 예언을 했는데 이런 사상을 하고 벌써  이런데 대해서 선견자로 이렇게 보고서 말했다' 이래 가지고 또,  마귀 고놈이 꼬우는 것은 뭐 얼마나 꼬우는지 모릅니다. 소설에 취미를 붙여서  독서 독서 하는 것이 고만 어째 가면, 여기 독서실이라고 있어 가지고서 아주  독서 독서 하는 그것이 무슨 장기 모양으로 '아, 아무것이는 책을 몇 권  읽었다지? 나는 열 권 읽었다. 나는 스무 권 읽었다, 나는 서른 권 읽었다,  나는 마흔 권 읽었다, 나는 팔십 권 읽었다, 나는 얼마 읽었다.' 어떤 불교에  있는 사람 하나 보니까 그 사람이 거게 총장인데 글을 독서를 한 중에는 그  사람이 제일 독서를 많이 했다 이렇게 평가를 합디다.

 지금부터 한 이십 년 전에는 제가 한국에 독서를 제일 많이 한 사람, 그 사람  이름을 내가 하도 그만 말 안 하니까 잊어 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신신학의  대가리입니다. 여기 그때 그 ○○교회 집회할 때에 그때 와서 집회 인도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 이름이 뭐 이던가? ○○○ 아니오. 그때 여럿이  갔는데. 저 평양 신학교가 신신학 되고 난 다음에 제일 처음에 교장된  사람이오. 한국에서 독서 제일 많이 한 사람 있지 않아? 우리 ○○ 교회 그때  가서 참석했는데 ○○○ 권사님 갔을 건데, 그때 강사로 오지 안했어? 그  이름이 뭐 이지? 아따, 참. 나이가 많으면 머리가 활동을 잘 안 해서 이거 잘  아마 잊어 버리면 기억을 딱 못해요. 그 사람 이름이? 그분이 독서를 제일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우리 한국에서는 독서를 제일 많이 했는데, 그 사람이 독서를  얼마나 하느냐 내가 물어 보니까 요 손가 락 다섯 개 가지고서 요 다섯 개,  자잔한 책이라도 요 손가락 다섯 개면 벌써 한 페이지 다 안 됩니까? 이만하면  다 되지 안해요? 이렇게 해 가지고 이래 읽어. 이런데 그걸, 그러면 사람  읽는지 안 읽는지 뭐 알 수가 어찌 있을 것이고? 그 사람 뒤에 읽어놓고 난  다음에 뒤에 물으면은 쏵 다 알아요. 자꾸 이래 읽어요. 이래 읽으니까, 독서를  제일 많이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목사라서 아무짝도 못 쓰는 목사가 됐습니다.

아주 신신학목사,  그때 우리가 집회할 때에 그 사람이 가서, ○○○, 녜, ○○○. ○○○, 이제,  이제 나왔어. ○○○ 목사님. 그래 거기 집회한다고 해서 우리 교인들 다 내가  데리고 갔습니다. '가 보자. 그분이 유명한데 신신학자다. 가 보자.' 그래  가지고 가보니까, 새벽 기도에 가니 본교회 교인들 나와 있는 것이 그때 한 열  댓 나와 있던가 여나문 나와 있던가 나오고, 가니까 우리가 이배나 많았습니다.

많았는데, 뭐 설교하는데 보니까 그것은 참 그렇츰 많이 읽었는데, 그래  놓으니까 한 마디도 쓸 말이 없어. 한 마디도 쓸 말이 없어. 전부 못 쓸 말만  자꾸 하고 한 마디도 쓸 말이 없어. 또 쓸 말이 없는데 쓸 말 없는 것이  마귀당에 가서 섰으면 막 좔좔 나올 터인데 그래도 하나님의 교회 와서서  놓으니까 나오질 못하는 것 같아요. 나오질 못하고. 어찌 그리 말도 못 하는지.

어찌 그래 더듬기는 더듬는지, 뭐 떠듬 떠듬 떠듬 떠듬 거리면서 뭐 한 삼십 분  말하디마는서도 그만 들어갑디다.

 이렇게 독서에, 독서에 취미를 붙여 가지고 뭐이든지 책을 읽는다 이렇게  말하는 그런 습성에서 성경 읽는 그런 사람도 있고 상식을 얻기 위해서 그래  성경 읽는 사람 그런 사람도 있고. 또 얼마 성경을 많이 봐 가지고 상 타기  위해서 그래 읽는 사람도 있고, 내가 몇 독 하겠다 목적하고 그래 읽는 사람도  있고, '이 성경이 뭐라고 가르치는고 보자. 성경이 우리에게 사는 것을 뭐라고  가르쳤는가' 요래 읽는 사람도 있고. 이 성경은 이 세상 우리가 접촉하고 사는  모든 것 가운데에 하나님이든지 피조물이든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도  빠진 것이 없이 다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에 여게 기록한 그 모든 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 그렇게 성경을 읽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 성경 말씀은  다 조건부다. 이 성경 말씀은 전부 이것이 아무나따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이다.' 법칙으로 읽는 사람 있고, 또 어떠 사람은 하나님의 법칙 보다도,  법칙이면은, 법칙인데 이 법칙이 전부 다 계약적이다 전부 다 계약 법칙이다.

이 계약, 이것은 전부 법칙인데 이게 다 전부 계약으로 되어 있다. 이 법칙은  이 계약이고 저 법칙은 저 계약이고 전부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이니까 이  계약의 결과는 위약이라, 수약이라 이 계약을 어겼다 이 계약을 지켰다. 이  계약 가지고서 하나님이 영원을 심판하시기 때문에, 계약이니 보자. 계약에  뭐라고 했는고? 이 계약에 하나도 어기지 안하고 계약을 총총 다 지키겠다 해  가지고서, 계약이라는 것을 알고 계약이니 하나 그 계약을 지켜 보니까 고대로  맞습니다.

 그러면 이 계약대로 지켜 보니까 고대로 딱딱 들어맞습니다. 계약대로 지켜서  맞는 고것이 자기가 본 뭐입니까? 자기가 본 뭐이지요? 예? 표적 예 이적.

표적입니다. 계약대로 하니까 됐는데, 이건 사람이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했어. 계약대로 했는데 보니까 하나님이 와서 한 게 분명하다 말이오. 계약대로  하니까 표적 하나 보고 계약 둘 하니까 표적 둘 보고 계약 열 하니까 표적 열  보고, 하루 종일 계약대로. 계약대로 하고 보니까 전부 닥친 게 다 표적이오.

다 보니까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일이 없느냐' 이렇게 말하지마는  자기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아니까 자기는 계약대로 요대로 했는데  보니까 계약대로 맞아 들어갔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나온 것이 하나님의  이적으로 걷지 안한 것이 일보도 없습니다. 전부 걸은 것은 이적으로  걸었습니다. 고 한 번 한 발자욱 걷는 데도 구름 기둥 불 기둥이 인도해서  걸었고 또 걸을 수 없는데 전부가, 홍해 바다만 건너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넌 게 아니고 온 것이 전부가 다 이적입니다. 애굽에서 바로 왕을 꺾어서  바로 왕에게서 해방시킨 거까지 전체가 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이적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신령한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빠져서 하늘나라에  향하여 간다는 이 모든 것이 하나도 이적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한 사람은 '과연, 과연 과연. 아, 아멘 아멘 참  하나님의 계약이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계약을 발견해 가지고 이 계약 대로  하니까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모든 것은 역사해서 이루어 주시니까 요  취미를 가지고 보니까 자꾸 계약을 지금 파고 들어간다 말이오 요 취미를 보고  보니까 계약이 보고 싶고 또 계약에 뭐 있는 고 자꾸 상고하고 싶고 요렇게  해서 상고하는 것을 가리켜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즐거워하여'  이 즐거워 한다는 요 말은 나는 원어를 모르지마는서도 원어의 뜻에는 그런  말이 있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즐거워한다는 그 즐거워한다는  고 말을 어떤 때에 쓰는 말이냐 하면은. 뭐 원어야 말이 세밀히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원어는 옛날 야만의 고전어요. 고전어. 아주 옛날 말이기 때문에 지금  말은 거게 대해서 백 마디 말을 만든 거 같으면 그 때는 한마디 가지고 다 하는  거라. 이라니까 그건 뭐인지 압니까?  이런데 즐거워한다는 그 말을 어데도 쓰느냐 하면은, 벌이 꿀을 좋아해서 그저  죽을 줄도 모르고, 벌이 꿀을 좋아해서 꿀 냄새만 나면 죽을 줄도 모르고 자꾸  날아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즐거워 하는 그 즐거움에서 벌이 꿀을  즐거워하는 그 즐거움에도 쓰는 말이라. 그때는 벌이 꿀을 즐거워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것. 또 사람이 떡 즐거워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거 또 이 모든  여우가 썩은 것을 즐거워하는 것도 즐거워하는 것. 그 한 가지 말로 가지고 다  썼기 때문에, 벌이 꿀을 즐거워하는 데도 쓰는 즐거움이라.

 이래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그러면 여호와의  율법의 그 맛을 벌이 꿀맛을 보고 난 다음에는 고만 제가 본능적으로 못 견뎌서  그 즐거움에 끌려서 자꾸 꿀을 탐해서 다니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율법에  대한 그 계약에 대한 맛이 있고 계약의 효력이 있고 계약이 자기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요긴하다는 것을 맛을 본 사람들은 자꾸 계약을 파고 들어가고 계약을  자꾸 묵상해 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가는 고것을 가리켜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그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하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이래 읽거나 저래 읽거나 안 읽는 거 다른 거  읽는 거보다는 좋기는 좋지마는서도 성경을 읽는 데에 성경을 읽 어서 다른  것으로 읽으면 위험성이 하나 있습니다. 위험성이 뭐이 있는 고 하니 계약을  계약으로 알고서 계약대로 아는 대로 자꾸 지켜 나가며 요래 읽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과 꼭 같은 사람으로 자꾸 변화돼 나가지마는 서도 그렇지 않고  지식으로만 읽게 되면 이 지식은 그 사람을 어떻게 만듭니까? 예? 교만하게  만듭니다. 교만하게 만들어. 그 사람은 그 지식 때문에 교만해진 사람은 그거  고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 지식으로 교만해 졌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멸시하고 또 이 말씀 가지고, 아, 그렇다 그렇다' 다른 사람 정죄하는 데나  쓰고, 또 자기 삐뚤어진 길을 걸어가면서도 거게서 다 이렇게 합리화시켜  가지고 하는 그런 일에나 쓰고 이라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이것을 지식으로만 알기 위해서, 지식으로 알기 위해서 싶고,  요 지식이 행하는 데에서 겸손해집니다. 요 지식을 보고 요 지식대로 할라  하니까, 할라 하니까 만날 미달뿐이오. 이 지식대로 할라 하니까 만날  미달뿐이오. 이 지식대로 할라 하니까 만날 어긴 것뿐이오. 이러니까 한 것보다  어긴 게 많지, 또 달성한 것보다 미달이 많지 이래 놓으니까 항상이 지식이  많아 갈수록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죄인이 많고 또 이 지식이 자꾸 많아  갈수록이 '나는 무능한 자입니다. 나는 미완성품입니다.' 이라니까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만삭되지 안해서 낳은 자라' 이 말씀을 자꾸 알고 행하다기  보니까 전부 미완성뿐이라. 미완성뿐이니까 '나는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자와  같은 이런 자다. 나는 죄인중에 괴수다' 이렇게 말한 그것이 행할라 하는  데에서 필연적으로 그 사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내가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성경 말씀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으로 우리가 자구  읽어서, 계약의 말씀이니까 이 계약은 내가 어기면 벌이 있습니다. 계약의  위약자가 벌이 있지 않습니까? 문서를 써 놓고 난 다음에 위약 금이다, 그러기  때문에 문서 쓸 때마다 위약금을 걸지 않습니까? 위약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돼, 자기가. 그걸 계약금이라 해. 계약금을 걸어 가지고서 계약을 어기면 그  위약한 자가 그돈을 물어야 돼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을 어긴 데에는 반드시 계약을 어긴 값이 있으니 그 값이 뭐이냐? 그것이  다 심판이라.

 그러니까, 어짜든지 성경 말씀을 좀 많이 읽도록 합시다. 아마 성경 말씀을  읽어야 우리가 살지 앞으로는 이 성경 말씀이 아니고는 이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마귀를 다 이길 수 있고, 또 뭐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을, 마귀를 다 이길 수 있고 또 이용할 수 있고. 이기는 데에,  이기는 데에 충족하고 이용하는 데에 충족한데 이 성경 말씀이 아니면 우리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우리 생각에 맞지 안하고 우리 이치에 틀리는  그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이치에 틀리는데 성경 말씀이 아니면은 우리  이치에 틀리는 것을 할 리가 있습니까? 이치에 맞은 대로 해 나가지. 이치에  맞은 대로, 내 이치에 맞은 대로 해 나가면 성경 말씀에 정반대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안 읽으면 그 사람은 점점 마귀의 사람이 되어 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부터 성경을 읽고, 성경을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기도해서  글을 알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한글 하나도 몰랐는데 하나님께 기도해  가지고서. 누구한테 배우지도 안했는데 성경 읽은 사람 많이 봤습니다. 개명  교회 있는 ○○○집사도 아주 둔하고 무식하고 재주도 없고 참 그런 사람이오.

이랬는데 기도해 가지고서 처음에 성경을 기도하니까 찬송을 한 절씩 볼 수  있고 두 절씩 볼 수 있고, 찬송 볼 수 있고 찬송 그때 제가 있을 때에 몇십  장은 봤습니다. 몇십 장은 보고서 고대로라. 찬송 몇십 장 보디마는 그 다음에  또 성경을 조그매씩 이래 또빡 또빡 이렇게 몇 절씩 봅디다. 지금은 내가  얼마나 보는지 몰라도 그때 하나도 한글 사람에게 배우지 안했는데 찬송을  가지고서 기도로써 배워서 찬송 몇십 장 아는 거 봤습니다. 아는데, 그 찬송  외워요. 외우니까, 외우면서, 자꾸 외우며 보니까 그만 자꾸 가르쳐 준다  말이오. 자꾸 외우는데, '여호와' 외웠는데 보고 '여호와 어찌 써노?' '여호와  요 석자로 된 거, 아. 여호와라. 요게 여호와라' 요래 놓으니까 그만 고것 익혀  놓으니까 다른 성경도 알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애를 써 가지고 한글을 읽도록 하고, 이래 가지고 성경을 어짜든지  기회가 있는 대로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 연구의 제일 좋은 법을 세례 문답에  할 때 있는데, 학습 문답에. 성경을 연구하는 법 중에 제일 좋은 법이  뭐이지요? 예? 세례? 아, 녜. 제일 좋은 법을 가르쳐 놨어.

 내가 어떤 학생이 지금 제가 좀 채점해 달라고 와서 내가 채점을 해 보니까,  아주 잘 했는데, 답도 잘 썼고, 누가 세례 문답하는 공부하는 것을 작성을  했는지 아주 그거는 굉장한 높은 작성입니다. 아주 예수 믿는 데 아주 요령을  작성해 놨어요. 이러니까 얼마나 그거 보배인지 모릅니다. 거게 내가 보니까  성경 연구하는 데에는 자기가 읽고 아는 대로 아는 대로 실행하는 그게 제일  좋은 연구라. 그 외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 실행해 보면은, 자, 성경 말씀 보고 말씀대로 하나 실행하면 뭣  봅니까? 저 ○○○ 선생, 성경 말씀 보고 고 하나 실행하면 뭣 보요? 뭣 보지?  고 앞에 안경쟁이. 뭣 봅니까? 또 고 앞에, 고 앞에 용접쟁이. 뭣 봐요? 성경  말씀 하나 보고 하나 실행하면 뭣 봐? 고다음에 또 안경쓴 안경 쓴 조사님.

표적 봐, 표적 표적. 하나 보고 실행하니까 표적 보지. 표적이 뭐이야?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해 준 것 본다 그말이오. 표적 봐.

 어찌 됐든지 바로 깨닫고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좀 많이 나왔는데 다 나와야 돼.여기 안 나온 사람들 그 사람들  저거 딴에는 잘난척 하고 뭐 '바쁜 일이 있어 가지고' 이보다 더 바쁜 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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