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기도원- 양성원 건축 준비


선지자선교회 1989년 6월 5일 교역자회(월밤)

 

본문:  요한이서 611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사람이 사랑을 제일 귀하게 높게 평가합니다. 신불신자간에 다 사랑을 높이 평가하는데 사람들이 이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는 여기에서 큰 절단이 납니다.

 

우리가 늘 배운 대로 사랑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는 뱀의 사랑인데 우리가 늘 습성적으로 익혀 나오고 꽉 배 가지고 있는 것은 다 배암의 사랑이지 하나님의 사상은 우리와 거리가 참 멉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차라리 사랑을 모르는 사랑 없는 세계에서 살면 혹 깨어날 수가 있을지라도 잘못된 사랑 속에 파묻히면 깨어나지를 못합니다.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 가지시는 하나뿐입니다. 오늘 사랑이 내일 미움이 되면 그거 뭐 사랑이라 가치할 수 없고 오늘 기쁘고 즐겁게 만족케 하는 것이 내일 근심과 걱정과 사망으로 화해진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항상 있는 게 사랑이요 가장 귀한 것이 사랑인데 자기 소유나 몸까지 다 희생해 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는 그것이 거게도 나타났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서 우리를 사활의 대속하신 것이 사랑이라 그렇게 말씀을 요한일서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게도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그러면 우리가 인인 관계를 가질 때에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그것이 그만 둔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요, 또 그것이 사랑을 받는 것이요, 또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 이것이 사랑이라. 사죄를, 칭의를, 하나님과 화친을, 하늘에 소망을 그 사람에게 다문 얼마라도 두드러지게 북돋아 주는 이것이 사랑이지 그저 세상에 없어질 것 그런 것들 가지고 옛사람 심신을 기쁘게 하고 영을 탄식시키는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또 계명은 이것이니' 또 계명에 대해서 해석했습니다. '계명은 이것이니' 계명은 어떤 게 계명이냐?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그러면 사랑은 어떤 것이 사랑이냐? 하나님을 계명을 좇아 사는 것이 사랑이요 '그 가운데 행하라 하심이라' 그러면 그 가운데라는 것은 이것은 위에 계명 좇아 행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또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하는 이것은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을 말하지 안하고 곧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밝혀서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활의 대속 안에 사는 것이 이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사활의 대속 안에 사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요, 또 형제로 사활의 대속 안에 살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요, 이것이 곧 계명을 좇아 행하게 하는 것이라.

 

이런데 7절에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다. 지금 하나님의 이 사랑,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사람을 구원해야 되겠는데 이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다 이 말은 사랑의 반대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다 그말이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하는 말은 그 가운데 살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 많이 나왔다, 다시 말하면 계명을 좋아 살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기독이니라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니'. 적기독이라 말은 예수님의 적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대적. 무슨 적기독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교파를 물론 말도 하지만 천주교는 그들은 속에 내용은 몰라도 교리적으로는 적기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완전히 변질시켜 가지고 지금 완전히 딴것을 내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어느 교파에 어떤 사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역시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신 것을 미혹하는 그런 것도 있기는 있지만 이것은 아주 안 믿는 이종교에 대해서 말하니까 그런 것은 우리에게 해를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도 부인하고 또 십자가 못박혀 죽으심도 부인하고, 부활하신 것도 부인 하고 그런 것은 우리에게 미혹이 되지를 못합니다. 또 우리의 대적인 적기독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게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하는 말은, 위에 '그 가운데 행하라' '그 계명을 좇아 행하라' 사랑은 여게 있으니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셔서 대속의 역사를 베푸셨다 이라는데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부인하는 자가 곧 적기독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부인하는 자는 어떤 자인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말은 하기는 하지만 자기는 자기대로 있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도 제 것이고, 사활의 대속도 제것이고 저도 제것이고, 이렇게 완전히 주의 종이 되지를 못하고 주님의 것이 되지를 못하고 저는 제것으로 그대로 가지고 있고 예수님의 대속만 제것으로 믿는 이것이 곧 적기독입니다. 이것이 행위 이단이요 이것이 기독교인들을 아주 박멸시키는 역사입니다. 오늘 세계에 적기독이라 하는 무슨 이름을 가지고, 이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들은 기독자를 죽이지 못합니다. 기독자를 손해 보이지 못합니다. 다만 기독자를 죽이고 손해보이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그 이름도 전하고 그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의 것이, 예수님의 종이, 예수님의 참 성전이, 그의 지체와 몸이, 완전히 나는 주님의 것 되고 주님의 대속은 내것 되어 가지고 이 바꾸어 가지고 해야 하나님의 성령도 같이 하실 수 있고 진리도 같이 할 수 있지 예수님의 대속을 바꾸지 안하는 그자에게는 그 왕은 마귀요 그를 주 관하는 자는 마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입에서는 어떠한 그 능한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전부 실상에 기독교를 대적하는 적기독의 그 말이요 미혹입니다. 그래서 그걸 가리켜서 미혹이라 말했습니다. '너희는 너희를 삼가'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그말은 이렇게 참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것이. 돼 가지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전한 그것이 이 사도 요한이 일해 놓은 일입니다. 해 놓은 일입니다. 해 놓은 일인데 이 일을 잊어 버리고, 요한은 늘 전할 때에 그가 힘쓰는 것은 뭐 입으로 하나님의 도리에 합당한 말을 주 대지 못해서 걱정한 것 아니고 자기 혼자, 자체가 예수님의 대속을 받아 주의 것이 되지 못해 가지고 내나 제가 제대로의 제것돼 가지고 제가 주장돼 가지고 이렇게 전하는 이 적기독이 될까 하는 것이 항상 두려웠고, 그래서 하나님이 너거 안에 내주하셔 가지고 내나 너거가 주님의 것됐고 주님의 대속은 너희 것이 되고, 주님의 대속이 우리 것이 됐을 때 우리를 송사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되었을 때에 아무도 해하지 못하고 주의 일만, 주님의 구속의 역사만 이루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잃지 말고 하는 건 일한 것을 잃지 말라고 이랬으니까 무슨 그런 일 하는 그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한 것을 잃지 말고' 하지 안하고 '일한 것을 잃지 말고' 하는 그말은 곧 말에 있지 안하고 친히 권능의 역사하신, 하나님이 일하는 역사한 그 실상의 역사가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일한 것이라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온전한 상을 얻으라' 이걸 잃지 말고 이렇게 살면 너희들의 한 시간 한 시간 사는 것이 다 온전한 상급이 되어지지마늘 이게 아니면 안 된다 그러면 상급이 되어지는 그것은 완전의 힘으로 해야 상급이 됩니다.

 

영원 불변의 힘으로 해야 상급이 됩니다. 이거는 인간이 하나 인적 요소가 아니고 순전히 완전의, 인간을 초월하신, 자존하신 그분으로 말미암은 초인간의 요소의 그 능력으로 이루어서 영원히 멸하지 않은 다 영생을 이룬 것입니다. 영생을 이룬 것.

 

그 능력이라야 영생을 이루지 그 능력이 하지 안한 것은 다 불탑니다. 아무리 웅변가가 해도 그까짓 것도 불타고 아무리 뭐 세상에서 고귀하고 권위 있는 자가 해도 다 그거는 불탑니다. 완전자가 아니면 완전은 만들지 못합니다. 완전이 만들어, 만들어진 것도 완전이 만들어지는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상이요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이것이 구원 입니다.

 

이래서,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하는 이것은 곧 적기독의 유혹을 받지 말고 네가 곧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서 오는 완전과 영원과 불변에 속한 이것으로서 너희들에게 전해진 이것을 받아 가지고 그 일한 것이 뺏기지 말고 온전한 상을 얻도록 하라.

 

9절에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이거는 망라해서 하는 말인데 지내쳐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 우리가 이것을 많이 범합니다. 지내쳐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라 말은 자기는 행하지 안하고 그저 넘어가는 것, 행하지 안하고 그저 넘어가는 것 이것을 가리켜서 다른 데는 가만히 들어은 자라고 또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행하지 아니하고 말만 하는 그것이 지내친 것입니다. 그거 뭐 그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해 가지고 지내친 거 말하는 게 아니고 여게는 지내 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하나님을 그 안에 내주하시도록 그래 모시고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내쳐서 다, 교훈에 지내쳐서 그 안에 거하지 못한다.

 

그러면 말만 하면 되는 것으로 말만 하고 행하지 안하고 말만 이래 해 나가기 때문에 그거는 다 지내가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런 사람은 뭐이 되느냐?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다 말은 하나님이 자기 안에 내주하시도록 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우리가 하나님이 내주하시도록, 우리가 성전이 돼야 하나님이 와서 내주하시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라고 해도 하나님께 거리낌이 되면 당신이 들어오시면 우리는 전멸될 것이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피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가지고 아무리 하나님을 청해도 오시면 우리가 전멸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피하는 길밖에 없어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지내 치면, 교훈에 지내치면 못 들어온다. 그 교훈에 딱 명중해서 그 교훈대로 실행을 해서 교훈과 자기와 행함이 같이 되는 그것은 교훈이 행함이요 행함이 교훈이요 이리 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을 모시게 되는 것이지 자기가 하나님의 도를 말로 하는 것으로서 다 된 줄 알고, 말만 하면 그 도를 다 그것이 전하는 것이 되고, 또 도를 자기가 지키는 것이 되고, 도를 믿는 것이 되는 줄로 이렇게 아는 사람은 그것이 벌써 넘어가 버렸다. 교훈에 거게 명중하지 못하고 교훈을 밟고 넘어가 버렸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내주해 계시지 못한다. 교훈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 마음은 깨끗해지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우리 것이 되기 때문에 악령은 용납지 못하고 하나님이 들어 오시면 생명 역사를 이루시는데 우리가 교훈을 넘어서, 교훈에 있지 안하고 교훈을 넘어가 버리니까 거게는 악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 가지고 있으니까 예수님의 대속은 있을 수가 없고 예수님의 대속이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그 사람은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니라 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가 없다, 모시지 못한다 하는 건 들어오실 수가 없다. '그 안에 있으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실 수가 있다'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이거 자기는 못 봐도 몰라도 다른 사람은 겁니다. 보면 잘 아는데 사람들이 보면 서로 이렇게, 설교는 냅두고 대화하는 것이라도 그 대화하는데 그 대화가 실상에는 상관이 없고, 실상에는 상관이 없고 말만 주 대서 상대방의 귀에만 들리면 그것이 됐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외식하는 말들을 우리가 많이 접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말을 하면 말과 그래도 실상과는 하나가 돼야 되지 실상 없는 말만 자꾸 이래 주 대는 그것도 다 그것이 외식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말할 때에 하나님이 같이 계시지 않는, 하나님은 상관 없이 말만 이래 해 가지고 하는 그런 것은 이것은 다 지내친 것이며 외식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교훈 안에 거하는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을 오시니까 그는 성전이 됐고 그는 교훈 안에 있으니까 하나님이 들어와 계실 수 있는 그런 자가 됐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많고 너희에게 나아오거든'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오거든' 이 사상과 이 주의, 기독교는 도리인데 이 도리를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오거든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오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그 악한 일에, 자기 중심이라. 자기 중심하는 그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그러면 이 적기독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그 안에 하나님을 모시지 안하고, 대속을 말하면서도 대속의 이 공로를 자기 안에 모시지 못하고.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고 너거 집에 오거들랑은 인사도 말고 영접해 들이지도 말아라 이랬는데, 그러면 여기 어떤 사람이 오는 것을 용납지 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믿는 가운데에 온 교회를 봐도 참 그리스도의 대속을 확실히 믿어서 자기는 주님의 것이 됐고 주님의 대속은 자기 것이라. 자기 것이 주님의 것이 돼야 또 주님의 것이 자기 것 되지. 주님의 것이 자기 것 됐으면 자기 것은 주님의 것이 돼 버린 이것이 법리입니다. 이게 법리인데 저도 제것이고 주님도 제것으로 이렇게 아는 그것이 뭐 교인 들에게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데 그러면 그런 그 어린 교인들 오는 것을 전부 용납지도 안하고 다 물리치고 푸대접하라 말입니까? 요게 이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오거든' 이 교훈을 가졌으니까 그 사람이 가르치러 오는 사람이요 배우러 오는 사람이요? 뭐하러 오는 사람입니까? 가르치러 오는 사람입니다. 네가 가르치는 것은 뭐 적기독 아니라 어떤 그리스도 없는 상관 없는 사람도 네가 가르치고 이렇게 자꾸 이래 권고하고 찾아가서도 가르치고 이래 하지만 예수님의 대속으로서 완전히 주님의 것이 되고, 주의 종이 되고 참 주님의 지체가 되고, 이래서 주님의 것이 되지 안한 자가, 바꿔지지 않고, 저는 저대로 적기독인데, 적기독은 지금 그리스도를 전도를 받아 가지고 그리스도를 자기 구주로 영접할 수는 있지만 그게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이름 신자 말 신자를 만나 가지고 이렇게 권고해서 얼마든지 옳은 자리로 돌아오도록 이렇게는 하지만 제가 그리스도와 자기와의 바꿔서 자기도 자기 것 돼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의 대속도 자기 것 되어 있는, 자기를 바꾸지 안하고 내나 자기로 있으면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으로 되어 있는 그 사람을 네가 지도자로 영접해서 그게 뭐 받을라고 하면 결국은 너도 악한 자가 되고 만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개인으로 상대해서 교훈하든지, 단체로 두고 상대하든지 어짜든지 우리가 바꾸어지지 안하고 하나님의 도를 전하면 적기독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거게 배우는 사람들을 전부 악에 참여시켜 가지고 악한 자 다 만들어 버립니다. 또 우리가 다른 사람을 내가 스승으로 모석서 그래 배울라고 영접할 때도 그 사람 바꾸지 안한 거 옛사람 그 사람이 앵무새 모양으로 하나님의 도를 말하는 것은 그것은 인사도 말고 집에 영접해 들이지도 말아라 이렇게 냉정스럽게 말씀하신 요 말씀을 우리들이 깨닫고, 내가 나아갈 때에 적기독이 안 될라면 참 이것부터 먼저, 우리가 뭐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참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자체 들이요 연약한 우리들인데 하나님의 도를 전할 때는 꼭 바꾸어져 가지고 전해야 성령이 역사할 수가 있고 마귀 역사를 안 하게 되지 우리가 바꾸지 안하고 그대로 가지고 말만 하면 되고, 뭐 설교만 하면 되고, 그대로 전하기만 전하면 된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자기가 자기를 아는데. 이걸 바꾸지 안하고 하는 이 일을 우리가 예사롭게 생각하는 데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개적이로나 단체에게나 전할 때에는 꼭 내가 아니고 주님이 전하고, 나는 주님의 것이 돼서 내 이목구비 수족이 당신의 지체가 돼 가지고 당신이 거기서 전하고, 내것은 뭐? 내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완전 이것이 내 것입니다. 나만 당신의 것으로 맡겨 버리면, 당신의 완전은 아무 흠없는 완전이 우리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우리가 조심하는 것이 가하다 그렇게 생각이 돼서 이 말씀을 증거합니다.

 

잠깐 기도합시다.

 

우리가 몰라서 또 잊어버려서 조심하지 아니함으로 자주 넘어지고 쓰러져서 주님의 일꾼으로 일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도의 원수가 되는 악을 조장시키는 이런 참 어리석고 가증스러운 일을 할 때가 많은 저희들입니다. 이 사정을 아시고 오늘밤에도 말씀해 주신 주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시켜 주사 우리들이 완전히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대속을 내것 삼아 주님의 지체되어 이 귀중하고 존귀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옛사람 그대로 주의 도를 도적하고 주의 양떼를 악령에 맡겨 주는 도덕질 하는 이런 시험에 들지 안하도록 항상 깨어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고, 깨어 있어 사는 자에게 그 한 자욱 한 자욱, 한 때 한 때, 한 건 한 건에서 과연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과 계시지 않는 것과, 주님이 함께 역사하시는 것과 역사하지 안하고 악령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을 세밀히 구별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더하여 주셔서 모든 미로에서 신앙에 굳게 서서 주님이 동행할 할 수 있는 일꾼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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