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전과 대외전

 

1989. 5. 24. 수야.

 

본문: 빌립보서 2장 1절∼4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그 안에 빌립보서 1장 29절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해 주신 이 구원을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요, 또 얻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대속과 온갖 은혜 주시는 것을 믿는 이 일도  잘합니다. 우리가 믿는 일을 해야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대속을 주신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하고 또 주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도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하는데, 믿는 것만이 일로 알고 이  믿는 일을 바로 하려고 하면 여러가지 우리에게 고난이 오는 일도 있고 또  그뿐만 아니라 주님이 우리 위해서 대속의 큰 사랑의 어려움을 당하신 그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그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으니까 주님이 베풀어 주신 그  구원을 우리가 바라보고 믿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주님을 본받아서 주님을  위하고 형제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이 일도 우리가 해야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주님을 위하고 또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어려움  당하는, 고난 받을 줄을 모르고 항상 평안하기만 원하는 그런 사람들은 신앙이  자라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참 깊은 맛을 모르고 신앙 안에 있는 큰  능력을 제가 체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또 듣는 바니라' 그러면 바울이  어떤 고난 당한 것을 너희들이 아는 대로 너희들에게도 이 싸움이 있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러면 29절과 30절에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고난 받아야 되는  이 고난을 말씀하셨고 또 싸움 있는 싸움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난과 싸움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2장 1절에 '그러므로' 해, '그러므로' 너희들도 주님의  대속을 믿는 자니 믿어서 구원 얻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고난도 받아야  되고 또 주님으로 인하여 싸우는 그 싸움도 있어야 한다 그러면 바울이 신앙의  싸움을 많이 싸우고 그 신앙을 양보하지 안하고 그대로 깨끗이 지켜 나갈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사회와 대립이 될 때도 있고 국가와 대립이 될 때도 있고, 또  모든 이종교가들과 대립이 될 때도 있고, 또 자기 동족 유태교와 대립이 될 그럴  때도 많이 있는 것을 너희들이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에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2장 1절 이하에 있는 말씀은 너희들이 권면이든지, 권면이든지  사랑이든지, 또 위로든지 교제든지, 긍휼히 여기는 것이라든지, 자비히 여기는  것이라든지 그런 것을 마음을 같이 해 가지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서 하라 하는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다 어려운 고난을 겪으니까 너희들도  고난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그것이 너거의 당연한 본분이니까 예수 믿는 데에  고난 받는 그런 고난도 너희들이 받을 각오도 해야 되고, 또 내가 지금 싸우는  싸움을 들었는데 나만 싸울 게 아니라 너거들도 너거에게 대한 싸움이 있으니까  너거들에게 대한 싸움을 싸우도록 힘을 써라 그렇게 고난과 싸움을 둘을  말씀하고, 그 다음에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들에게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2장 1절 이하에 있는,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데에는 권면하는  일도 있고, 우리가 권면하는 일도 있고, 또 사랑하는 일도 있고, 위로하는 일도  있고, 교제하는 일도 있고, 긍휼히 여기는 일도 있고, 자비히 여기는 일도 있고  이라는데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요것을 하라는 요것이 아주 어려운 싸움입니다. 요 싸움을 싸우라 말입니다.

이것은 대내전을 가리켜 말합니다. 외부를 향해서 싸우는 싸움을 말하는 게  아니고 자기 속에서 지금 싸우는 싸움을 싸워라. 나는 지금 외부에 이 사회로  싸우고, 국가로 더불어, 모든 정치로 더불어 싸우고, 또 교계로 더불어 싸우고,  이종교로 더불어 싸우고 이렇게 싸워서 내가 감옥에도 갇히고 매도 맞고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너희들이 보지 않느냐? 이랬는데, 나는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대적으로 더불어 싸워서 싸움의 고난을 지금 겪고 있는데 너희들은 지금 이  대외전을 하기 전에 대내전, 네 안에서 싸우는 싸움을 싸워 가지고 어려움을  네가 겪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네 안에서 싸우는 그 싸움을 싸우도록 해서  그 싸움에 지지 말고 싸움에 승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자기 안에서 싸우는 싸움이 뭐인가? 사람이 열이면 열, 스물이면 스물  사람들은 각각 다 자기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자기 생각을 가지고 살고, 또 자기  판단을 가지고 살고, 자기 성격을 가지고 살고, 자기 욕심을 가지고 이렇게  삽니다. 모든 사람이 뭐 권면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위로라든지 교제라든지  긍휼이라든지 자비라든지 이런 것을 안 하는 사람 없습니다 다 합니다. 제대로는  다 사람 생활을 하려고 애를 써서 사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있는데,  너희들에게도 싸움이 있으니까 너희들이 싸워야 된다 그래 놓고 난 다음에  '그러므로 너희들에게 무슨 권면이나 무슨 사랑이나 무슨 위로나 무슨 교제나  무슨 긍휼이나 무슨 자비나 또 뭐 이런 것을 할 때에 너희들이 한 마음 가지고  하고 한 뜻 가지고 하고 한 사랑 가지고 하도록 하라. 하는 이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제 생각대로, 제 마음대로, 제 뜻대로, 제 성질대로, 제  지식대로, 제 기분대로, 이제 자기 마음을, 뭐 악한 마음은 물론이고 선한  마음이라도, 어떤 선한 마음이라도, 악한 마음 그런, 악하게 마음을 쓰고 하는  그런 거는 쓰면 안될 줄로 사람들이 알지마는, 공연히 나를 미워하든지  훼방하든지 또 남이 잘 안되고 잘못되기를 원한다든지 이런 일은 으례히 안 해야  될 줄로 알고 그라면서도 그런 일들도 가끔 잘 합니다 이러는데, 그것보다도  이제 여기에 말씀하시를 서로 권면하는 것, 이 권면하는 거 이거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권면하는 것, 사랑하는 것, 또 위로하는 것, 서로 교제하는 것,  불쌍히 여기는 것, 자비히 여기는 것, 이런 거야 아주 좋은 것 아닙니까? 좋은  것이니까, 세상에서 자기 마음을 악하게 써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아주  자기 욕심대로 자기 주관대로, 자기 성질대로, 자기중심대로, 자기 위주대로 해  가지고 다른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해치는 그런 입술을 놀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는 그런 것을 안 할 뿐 아니라 그거는 으례히 안 해야 되겠고, 아주 이런  좋은 마음 이런 것을 가지고 하면, 뭐 권면함 이거야 참 남을 잘되라고 권면하는  일이니까 이런 일은 착한 일이다, 위로하는 일은 착한 일이다, 긍휼히 여기는  일은 착한 일이다, 자비히 여기는 일은 착한 일이다, 그 사람으로 더불어 또  서로 사귀는 일은 착한 일이다, 사랑하는 일은 착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합니다.

 어떤 교인이 하나 만일 병석에 있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째 참  심방을 간다고, 장로가 심방 가고 목사 심방 가고, 큰 교회는 장로도 뭐 수십 명  되니까 수십 명 장로들이 심방 가고 이렇게 심방을 가면 전부 제 각각대로 다  권면합니다. 위로도 제 각각 제 마음대로 위로하고 권면도 제 마음대로  권면하고, 자비도 제 마음대로 해서 전부 거기에서 열 명이 가면 열 명에 속에  들어 있는 마귀를 막 털어 놓습니다. 또 만일 두 명이 가면 두 명 속에 들어  있는 마귀를 털어 놔서 마귀 그놈이 말하라 하는 대로 다 해 가지고, 물론  권면이요 위로요, 사랑이요, 자비요, 긍휼이요, 봉사요, 뭐 교제요 이런  것이지마는 그것을 열 명이 가면은 열 명 다 각각 것 합니다. 열명 다 각각 것  해 가지고,  그러니까 우리는 중생되기를 예수님의 한 피로 중생됐고, 또 한 성령으로  중생됐고, 또 한 진리로 중생됐고, 한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우리가 중생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로 살아났고, 하나로 났고, 출생했고 하나로  살아났으니까 하나에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아무리 천인  만인이라도 네 성질도 다 버리고 한 성질 따라가고 한 마음 따라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단일성의, 단일성의 하나님의 이 마음으로, 우리 천 명이고 만  명이고 다 그 마음 가지고 우리가 살아야 되겠고 그 생명 가지고 살아야 되겠고,  그 뜻 가지고 살아야 되겠고, 그 지능 가지고 살아야 되겠고, 그 판단 가지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그러면 몇이 가든지, 몇이 가든지 성령이 위로하는 위로라면은 열 명이  가서 성령 위로 한다면 열 명이 가도 같은 위로일 것이요 백 명이 가도 같은  위로일 것인데, 이제 이거는 사람마다 제 생각나는 대로 마구 뿜어대는 이런  일을 하니까 이거는 보면은 목사가 말하는 것과 장로가 말하는 것과 그런데 장로  말과 목사 말이 틀렸으니까 둘 중에 어느 것이든지 하나가 틀렸다 그 말이오, 꼭  같은 말 해야 되는테. 같은 마음 가지고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권면이나 위로나  사랑을 해야 될 터인데 두 사람이 다르니까 어느 사람인가 하나는 틀린 것은  틀림없는 것이고, 또 두 사람이 각각 다른데 두 사람 다 틀릴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도 싸움이 있다는 그 싸움은 무슨 싸움이냐? 네 속에 네가  중심이 돼 가지고, 네가 위주가 돼 가지고, 네가 모든 원동이 되고 능동이 돼  가지고 네 생각, 네 마음, 네 뜻, 네 주장, 네 성질 네 지식, 네 판단, 네  평가대로 이와 같이 하는 그놈을, 그놈이 옛사람이기 때문에 그놈으로 더불어  싸워 가지고 그놈을 죽이고, 하나인 하나님의 단일성의 그 마음과 그 뜻과 그  사랑을 네가 가지고 형제에게 대하는 모든 대하는 것이나 또 네가 네 단독의 일  하는 것이나 할 때에 네가 너와 싸워 가지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네 중심  네 위주의 그자로 더불어 싸우고 오직 한 성령, 한 피, 한 진리, 한 소망으로  중생됐기 때문에 천하의 만민이 다 가도 하나입니다.

 이래서, 단일 교회라 하는 것은, 하늘나라는 가면은 생명이 여럿 아니고 한  생명 가지고 살고, 한 뜻 가지고 살고, 한 지식 가지고 삽니다. 이러니까, 만  가지 사건을 닥쳐도 억만 명이 닥쳐도 그 사건에 대해서 판단도 꼭 같고 평가도  꼭 같고 소용도 꼭 같고 하나님 한 분의 뜻과 꼭 같이 되어져서 행하는 그것이  하늘나라요 그것이 우리의 성화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싸움을  싸우라고 여기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 뭐 권면하는 것, 사랑하는 것, 위로하는 것  교제하는 것, 또 긍휼이나 자비 이런 몇 가지를 말해 놨지마는 대표적으로  이것을 말했는데 이런 유들이라 말이오. 이런 종류들이니까 네가 언행심사를 할  때에 말하는 것이나, 또 행동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또 네 마음 쓰는  것이나 그런 것을 마구잡이로 되는 대로 네가 쓸라고 쓰지 말고 이제 네가 네  속에 악이 들어서, 악령과 악성, 악성은 인간이 자기중심 위주가 악성인데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원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인간이 원죄로 죽었는데 원죄가 뭐이냐 하면은 자기중심의 원죄 그거,  자기중심 그것이 원죄입니다. 자기중심 그것이 어데서 들어왔는고 하니  악령에게서 들어와 가지고 자기중심이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사람들은 행동하는  것이 전부 악습입니다. 자기중심의 행동 하나 하고 둘 하면 그것이 습관인데  그것이 못된 버르징이 아주 구습이라 하는 그런 것이 되고 맙니다.

 이래서, 자기가 자기중심 자기 위주, 그렇지 않으면 어떤 피조물 중심 위주,  어떤 잘난 사람의 중심이나 위주나 또 어떤 자기가 뭐 유력한 사람의 중심이나  위주나 그런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로 인해서 네가 움직이는 그 움직이는  행동을 네가 하는 것이 안 믿는 사람 전체가 그 행동하고 있으니까 이것이 네  싸움이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랍니다. 이 싸움을 싸울려고 하면은 고난이 있다.

그러기에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권면이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꼭 하나님 한 분의 그분의 그 의사, 그분의 뜻, 범사에 그분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 그분 한 분에게 피동되는 움직임 이것을 하는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요, 주님을 믿는 것이요, 주님을 따르는 것이요, 이것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는데, 전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마는 이름만  예수 믿는다고 하지 그 언행심사의 행동은 백 명이면 백 명 열 명이면 열 명  전부 제각각 내나 안 믿는 사람이 제 중심 제 위주로 사는 거와 같은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너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네가 이것으로 더불어  싸워라. 나는 대내전을 다 했고 대외전에서 지금 이와 같이 싸우고 있으니까  너는 지금 대내 전으로써 네 안에 있는 옛사람과 새사람, 중생된 성령의 소욕의  사람과 육체의 소욕의 사람이 있으니까 육체의 소욕의 사람과 성령의 소욕의  사람이 둘이 싸워 가지고 육체의 소욕의 사람을 다 꺾어서 멸하고 성령의 소욕의  사람으로 사는 너와 네가 싸워서, 네게 예수님 밖에 있는 자가 있고 예수님 안에  있는 자가 있으니까 예수 밖에 있는 자와 예수 안에 있는 자로 더불어 둘이 싸워  가지고 예수 안에 있는 네가 살도록, 네가 살도록 하는 이 싸움을 네가 싸워라  하는 것을 여기에 가리켜서 말합니다. 사람이 열 명이 가 가지고도, 같은 입장과  처지에 있는 사람을 심방할 때에 열 명이 가서 권면해도 꼭 같은 권면이라야  됩니다; 또 뭐 백 명이 가도 꼭 같은 권면이라야 됩니다.

 왜! 하나님의 권면은 하나입니다 하나니까 같은 권면 해야 될 터인데, 하나님이  하시는 권면은 한 권 면이요 하나님이 위로하시는 위로는 한 위로지마는 그 외의  거는 백이고 천이고 그거는 전부 마귀가 하는 것이지 성령님이 하시는 것 아니요  그건 마귀의 운동이지 하나님의 운동이 아니라는 요것을 여기에 가리켜  말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잔번에 그렇게 다 완성되는 거는 아니지마는  그래도 무슨 인인 관계 대할 때는 여기에 이제 주님의 뜻이 무엇이냐? 주님은  여기에 대해서 말을 어떻게 하겠느냐? 여기에 대해서 책망을 하겠느냐? 권면을  하겠느냐? 칭찬하겠느냐? 위로를 하겠느냐? 긍휼을 베풀겠느냐? 그러면, 베풀면  어떻게 하겠느냐? 주님이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하시는지, 내가 여기에 왔으니까  주님이 나를 통해서 그에게 상대해서 말이든지 무엇이든지 행동을 하도록 할  터인데 주님이 나를 붙들고 이 사람에게 하는 행동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찾을려고 네가 애를 써야 되고, 찾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하려고 하면은 주위  환경에 마귀떼들이 다 반대하기 때문에 아주 그 사람이 듣기 싫어하기도 하고  옆에 사람이 반대하기도 하는데 그때에 네가 주님이 하시는 위로로, 주님이  하시는 권면으로, 주님이 하시는 책망으로, 주님이 하시는 사랑으로 긍휼로  하려고 하면 네가 거기에 대립이 되고 싸움이 있고 거기에 고독해지니까 먼저 네  안에서 싸워 가지고 네 밖에까지 싸우는 이 싸움이 너거에게 있으니까 이 싸움을  싸워야 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언제 한번 어떤 권찰하고 둘이 가면서, 둘이 가는데 그  사람이 관리하는 구역 식구를 하나 만났는데, 그 사람을 만나니까 뭐 한참 말을  합디다. 말을 하는데 뭐 이래 구역장이라고 만나놓으니까 그래도 무슨 말을 해야  되겠다고 싶은지 말을 이 말 저 말을 해 대는데 그 말이 마구잡이로  씨부렁거리는 말이지 그 말이 그 사람에게는 하나도 해당되지 안하는 말이요,  순전히 귀신의 말이요, 마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하도 답답 하니까 암말도 안 하고 예예 이래 대답만 하고 서로 내가 그 앞에서는  말을 할 수 없고 지나가고 난 다음에 말을 했어.

 '여보시오. 자기가 지금 그이에게 말하는데 그 말을 생각해 가지고 하요, 그냥  나오는 대로 하요? 구역장이니까 식구에게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된다 싶어서  그래 하는 말이오? 그 말 하면 그 결과가 어쩌 되며 또 그 말이 뒤에 가서  사실대로 들어맞아야 권위가 있는 것이지 말에는 이렇게 된다 하는데 뒤에 가서  이렇게 안 돼 버리면은 그 권위가 없어지지 않는가? 내가 보니까 사람 죽이는  말만 하지 사는 말 한 마디 안 했고 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한 마디도 안  했으니까 열매가 맺어지지 안할 터이니까 그거 다 헛일 아니요? 그러면서 내가  좀 나무래준 일이 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인인 관계를 할 때에 꼭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서 그 사람에게 관계하라 하는 대로 그대로의 관계를 가질라고 우리가  애를 써서 노력하는 이게, 적어도 이거는 있어야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지금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하라 하시는고 보자 이걸 찾아 가지고 그 뜻에 맞춰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애를 써야 되지 그분을 생각지도 안하고 그 사람 만나니까 그  사람하고 저하고 단둘이 만나 가지고 그만 제 생각나는 대로, 제 기분나는 대로,  제 좋아하는 대로, 제 성질에 맞도록 들이 갖다 퍼부어 재끼니까 이거 전부  사람에게 마구 폭탄으로 내리 때려 가지고 그만 죽이는 그런 역사가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렇게 하지 말고, 네 안에서 너를 방해하는 옛사람도 있고  새사람도 있기 때문에 네 안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네가 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소욕도 있고 육체의 소욕도 있습니다. 또 육신의 생각도 있고  영의 생각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다 있는 것이오.

 이러니 우리 안에서 이거 싸워 가지고 자기 옛사람을 꺾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나와 일치가 돼 가지고 내가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일치가 되도록 깨달아 가지고 요걸 작정을 하고 요걸 내 몸 밖에  내어 보내 가지고 옆에 있는 사람한테 이것이 전달이 될라고 하면은 그 사람도  잘 안 받아들이지, 옆에서 또 그같다고 방해하는 것이 있지, 이게 또 대외전이라  말이오. 대내전을 하고 나면은 대외전이 됩니다. 이 세상은 마귀톄가 가득 찼기  때문에 하는 일이 대내전을 해서, 대내전을 하지 안하는 인간은 이 세상과  하나이기 때문에 마찰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하는 것은  너희들이 세상에서 나와서 저희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요 너희들이  세상에 속헤 있었으면 세상이 저거 것이라서 너를 사랑하였으리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에 꼭 하나님이 하시는  것, 열 명이 해도 같은 말 같은 뜻. 같은 정신, 책망도 같은 책망, 위로도 같은  위로, 사랑도 같은 사랑, 권면도 같은 권면, 요것은 그러면 누구 따라가라  말이오? 백목사 따라가라 말이요, 어느 권찰 따라가라 말이요, 어느 장로  따라가라 말이오? 아무도 따라가지 말고 한 분이신 주님의 뜻을 따라서 가야  되기 때문에 요것이 겨자씨 믿음이요, 요것이 생명 있는 믿음이요, 생명 있는  순종인 것입니다. 이 싸움이 너거들에게 있기 때문에 너거들도 이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러면, 싸우는 것은, 바울은 지금 대외전을 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대외전을 하고 있는데 대외전 한 것이 바울이 대내 전, 자기 안에서  싸워 가지고 옳고 그른 것,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 아닌 것은 전부 마귀의  뜻인데 마귀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요대로 행하려고 하니까 자기 속에서 싸움이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이제 요대로 단정을 짓고 단행을 하려고 하니까 자기 밖에 어떨 때는 사회와  마찰이 되고, 국가와 마찰이 되고, 모든 동역자와 마찰이 되고, 교계와 마찰이  되고, 가족과 마찰이 되고 이 마찰이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 마찰이 되면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당부하기를  29절에 '너희들이 주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서 고난도 받아야 된다. 또  너희들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까 싸워야 된다 그러면 싸울라면 고난받는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한 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대로 동하고  정할려고 애를 쓰는 이 대내전이 있어야 되지 이것이 없이 뭐 제 생각나는 대로  이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래서, 오늘 아침에도 우리가 기도하러 가는데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지 안 들으시는지 모르겠다 하면서 거기에 대해서 하나 좀 참고를  삼으라고 말한 것은, 우리가 기도하러 가 가지고 자기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자기보다 진리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 말이오. 자기보다 이웃을 더  사랑하는 요것부터 만들어 가지고 해야 시험에 안 들지 이것 냅두면 전부  하나님도 제가 이용하고, 진리도 제가 이용하고, 사람도 제가 이용하고 제가  왕입니다. 이라면 가장 악이 자라기 때문에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악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악이 견고해 가지고 이거는 뭐 죽어도  놓지도, 안하요, 얼마나 강한지.

 오늘 아침에 그 말씀을 했는데, 이 2장 1절 이하에서는 어짜든지 한 마음을  우리가 따라가야 됩니다. 한 성질을 따라가야 됩니다. 또 한 생각을 따라가야  됩니다. 한 목적을 따라가야 됩니다. 천 명이고 만 명이고 네것도 내것도 다  내버리고, 우리가 다 전부 자기를 다 부인해 버리고 예수님 한 분을 따라서  동하고 정하는 이 연습을 해 가지고 인인 관계를 가지고 자기에게 대해서도 모든  것을 계획해야 되지 이렇게 하지 안하고 자기를 바꾸지 안하고 자기중심으로  가지고 이렇게 하는 이것은 다 결국은 사망이 되고 맙니다.

 이래서 '같은 사랑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이거, 같은 사랑이면 뭐  누구 사랑 말이오? 누구 사랑을 가져야 되겠소? 하나님의 사랑 이거,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뿐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다 뱀 사랑이라 거짓부리라. 이  세상은 지금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안하는 통에, 사랑에 독이 제일 많은 것이  뱀 사랑이오, 생명이 제일 풍성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오. 그러면 뱀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니까 마구 사랑이 들어서 사람을 몰살을 시키고  있다 그 말이오.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이게 우리 싸움이라 이게  우리 싸움. 하나, 하나인 그걸 찾을라고 하니까 싸움이 되지 하나인 그대로 내가  살라고 하니까 싸움이 되지, 그대로 실행할라 하니까 대외전이 일어나지 하는  이런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다툼이나'요 싸움도 그 싸움입니다. 네것 내것  네것 내것, 다툼이라는 거는 네것 내것을 가지고 하면 안 된다 그 말이오. 너도  주님의 것, 나도 주님의 것. 네것도 말고 내것도 말고. 인간의 네것 내것이 없고  그거는 다 버려버려야 되어지고, 버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것  하나 이것을 하면은 다투어지지 않습니다. 백 명이 해도 하나님의 것을 할려고  하면은 딱 뜻이 맞고 마음이 맞고 생각이 맞고 계획이 맞고 맞습니다.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이 다툼이라 말은 허영이란 말과 같은 말이라. 허영으로  하지 말라 말은 허영은 헛된 영광을 위하는데 헛된 영광은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참 영광된 이 하나님의 영광 말고  저 좋게 하고, 저 기쁘게 하고, 저 나타나게 하고, 저 올라가게 하고, 저를  위하는 이게 다 허영이기 때문에 이게 다 망하는 것입니다. 자살하는 행위요.

허영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해야 되지, 하나님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 아니고 다른 거는 다 허영입니다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이란 말은  자기를 똑똑히 아는 마음이라. 겸손한 마음이란 자기를 똑똑히 아는 마음이라.

자기를 똑똑히 아는 마음이라면은 자기는 아무것도 없는 거라. 네가 하나님께  받지 안한 것 하나도 없고 네가 남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것은 낫게 받아 낫지  네까짓 게 나은 것은 하나도 없다 말이오. 자기의 근본 밑천을 똑똑히 알라 그  말이오.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밑천을 똑똑히, 근본을 똑똑히 알고,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하는  요것이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 그 말이오. 또 자기보다 남을 더 많이  위하라 그말입니다. 요 성구가 참 지키기 어렵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요걸, 그게 이치에 맞지 안해 가지고 사람들이 요 성구는 하려고  달라들지도 안해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이유가 뭐인가? 첫째 이유는, 첫째 이유는, 다 천하  사람이 자기 위주로 사는데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라 하면은 그 일은 전부  낭파가 다 되는 것입니다. 보기에 전부 낭파되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살지 안하고 남을 낫게 여겨서 자기가 남을 위해서 살고 자기는  위하지 안하고 이럴라 하면은 낭파되겠다 그렇게 결산이 나오는 것이 그것이  매사입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이런데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그 이유가 첫째는 뭐이냐? 만복의 근원이 되신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그래 하라 했기 때문에 하라 그 말이오 이해를 따지지  말고. 하나님이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기 때문에 하라 그 말이오.

그러면 하라 한 그분이, 내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다가 깨지면 하나님이  책임질 것이요, 무너지면 하나님이 책임질 것이요, 허물어지면 하나님이 책임질  것이요, 없어지면 하나님이 책임질 것이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해야 되는  것. 우리가 성경 말씀에 보면은 우리가 이치를 따지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으나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분을  믿으므로, 그분이 말씀했기 때문에 그분이 책임지시고 그분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믿으므로, 그분이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키는 것이오. 우리가  보기에 뭐 이치에 맞아 지키는 것 아닙니다.

 그러고 또.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하는 것은, 요것은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위할 때에 기이한 일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때에,  자기보다 남을 더 아끼고 더 위하고 더 잘되기를 원할 때에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위할 때에, 더 잘되기를 원할 때에, 먼저 생각할 때에 요게서 기이한  지혜가 나옵니다. 여기서 지혜가 나와요. 요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인데  그 지혜가 나와 가지고 모든 경영이 다 잘됩니다. 모든 사업이 잘돼 그러니까  회사 하는 사람들이 자기 회사 잘될라고만 생각하고, 내 이 회사 차려 가지고  우리 백성들에게,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유익하도록 먼저 생각하는 그것보다도  국제 모든 외국인까지 먼저 생각하면은, 자꾸 남을 넓이 생각할수록 지혜와  총명이 나옵니다. 나오니까 경영을, 지혜와 총명이 나오니까 자꾸 성공이 되는  거라. 이거는 해 봐야 알지 해 보지 않으면 몰라요.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 놓고 둘 놓고 수학적으로 맞춰  보면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면 실패이지마는 명령하신 그분이 수학 수에 맞은  그것보다도 더 크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지켜야  되고, 또 이래 지키면 하나님이 그 지키는 데에 자기보다 남을 위하는 그 일을  하게 되면은 지혜와 총명이 나와서 그거는 어찌 지혜와 총명이 나오는가 그걸  따질라 하면 많은데 그저 지혜와 총명이 나와요. 해 봐요, 지혜와 총명이  나와요.

 또 셋째로는 뭐이냐? 자기는 단독이요 자기 아닌 남은 전체입니다. 자기  개체라는, 개체라는 자체의 그 단일과 그 외의 모든 거는 남입니다. 이러니까  남은 자기의 억억만 배도 더 크요. 남은 자기의 억억만 배도 더 큽니다.

이러니까 조그만한 자기가 자기의 억억만 배도 더 큰 그것을 대적하고 자기를  위주해 그 모든 것을 자기에게 다 굴복시켜 자기 유익하도록 이래 할라 하니까,  어린 아이가 큰 대장한테 달라들고 말이요 개미새끼 한 마리가 큰 아주 장사한테  달라들면 싹 뭉캐버리면 뭉캐지지 뭐 어째요? 자기보다 남이 많고 크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를 위하면, 그를 위하면 나는 혼자 그거 위했는데 그 많은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 위해 주고 자기 억억만 배도 더 되는  것하고 품앗이하기 때문에 그게 나를 위하도록 요렇게 하나님이 법칙을 내놓고  요게 다 필연적으로 필연성으로 요렇게 되어져요.

 이래서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말은 바울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말이 아니오. 이거는 바울이 성경 기자가 아니고 성경 기자는  성령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그말은 성령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그 말이요,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하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말이오. 그분이 기뻐하시면 다 안돼요? 그분이 기뻐하시면, 그분이  좋아 놓으면 우리에게 뭐 못 주겠소?  이러니까, 이제 1절로부터 4절까지에 있는 요 말씀을 자꾸 읽으면서 요  명령대로 요대로 실행을 하려고 애를 써요. 하려고도 애를 쓰지도 안하고 그만  전부 사람 만나 놓으면 그만 제 생각대로 내 늘어놓소 그 말을 대항하지도 못해.

왜? 자꾸 입에 나오는 대로 막 솰솰솰 내놓는데 제 속에 있는 마귀 있는 대로 다  털어놓으니까 부득이 그거 다 털어놓도록 그걸 듣고 있을 수밖에. 다 털어놓도록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귀신만 다 나오고 아무것도 쓸 거는 하나도 안 나와.

이러니까 사람이 성화가 안 됩니다. 오늘 요 말씀을 시간이 있으면 좀 넉넉히 할  건데 시간 없어 이라니까 그저 어짜든지 대내전을 싸워서, 대내전을 싸워서, 온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 대립입니다. 내가 대내전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작정을 하고 출발하면은 내 밖의 거는 전부 적이 되기 때문에 모든 밖의 것과  전부로 더불어 싸우면은, 싸워 가지고, 싸워 가지고 그것에게 내가 지면은 내가  그 종이 되고 싸워서 그것에게 이기면 그것이 내 종 됩니다. 이기는 것은 내가  그래 그것을 굴복을 시키는 게 아니라 그로 싸울 때에 내가 죄의 종만 되지  안하면 나는 승리하는 것이라. 이러니까 완전 승리는 그 싸우다가 내가 싸우는  그 싸움으로 끝이 나버렸으면 나는 완전 승리라. 예수님의 승리가 그랬거든.

이러니까 하나님이 오든 주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우리에게 상속 주시는 상속  방법이 그렇소.

 광고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다 외우고 실행, 실천해서 경험과 체험의  지식을 가지고 말씀을 합해서 가르치도록 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기도록에 등록할 사람은 나갈 때 등록하고, 또 기도록에 등록된 수는  팔천육백오십사 명이 등록됐는데 하루 삼십 분 기도 잊으면 앞으로 환란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루 삼십 분 기도를 작정하고 매일 광고하고 이 기도하는 것이  팔년째 납니다. 팔 년 계속했는데 그 팔 년 동안 하루 삼십 분 기도 했으면  굉장한 기도의 그릇이 꽉 차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넘칠 것이오. 그러면 앞으로  승리해요.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나오도록 하고, 또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준 모든 후배, 양떼, 제자는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길러야  됩니다. 육신의 자손은 뱃속에 넣어놓고 기르면 되지마는 믿음의 자녀는 자기  마음 속에 넣고 길러야 돼요. 이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떠난 것은  몸이요 마음은 아니라 했거든 마음은 떠나지 안하고 마음은 항상 품고 있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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