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열쇠

 

1981. 6. 5. 금야

 

본문:요한계시록 3장 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요즘 이 말씀을 거듭 증거하는데, 이 본문을 읽을 때부터 졸음이 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늘은 다른 말씀을 들을 줄 알고 왔는데  지난번에 했던 말씀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할 것인데 그 사람은 벌써 마귀에게  점령당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떠나고 성령이 와야 알 수 있지 성령이 오기  전에는 깨닫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치를 가르치는 진리이기 때문에 고함을 질러가면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세상 과학 이치도 좀 복잡하고 세밀한 것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차근차근 설명해 줘야 듣는 사람들이 알지 고함을 지르면서  발표한다면 세밀한 이치는 나타내지도 못하고 듣는 사람들도 알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큰 병이 들어 있습니다. 이번에 운동장에서 신명풀이를 했는데 거기  다녀온 사람은 이곳에 와서 좁니다. 지난 주일에도 보니까 거기 다녀온 몇  사람을 봤는데 그런 사람은 얼굴만 봐도 나타나요.

처음에는 아주 눈이 반짝 반짝하고 얼굴에 희색이 돌고 아주 아름다운 얼굴로  왔는데 찬송을 시작하니까 신명은 없어도 찬송은 합디다. 그 다음에 설교를  시작하니까 처음 몇 마디를 듣는 것 같더니마는 나중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습니다. 그곳에서는 마구 떠드는데 여기는 조용하니까 잠이 올 수밖에  없지요.

또 그곳에서는 자기 뜻에 맞는 세상에서 부자 되고, 병 낫고 잘 살고, 제 소원  성취하는 것을 말해 주니까 즐거웠는데 여기서는 ‘하나님 좋아하시도록 너를  희생해라, 하늘 나라에 좋도록 땅의 것을 투자해라, 네 소원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소원대로 하라’ 하니까 듣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슬슬 졸기 시작하는데 같이 온 사람이 옆에서 깨우기는 해도 나중에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가지고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잠만 푹 자고 갑디다.

여러분들이 정신차려도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비행기나  원자탄을 만드는 이치도 몇 해를 배워야 아는데 천국 가는 이치, 모든 것을  다스리는 하나님 같은 사람 되는 일이 쉬운 줄 압니까?  모두 미신이라. 도박 신앙, 노름꾼 신앙으로 힘은 하나도 쓰지 않으면서 구원  얻을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왜정말년에도 신사참배 다 했습니다. 신사참배  한 사람은 그때까지 믿은 것은 다 헛일입니다. 다시 믿어야 돼요.

신랑이 밤중에 오는데 등불 없으니까 다 쫓겨났습니다. 그러니까 신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보다도 도리어 못합니다. 밤중은 비유인데 무엇을 말합니까?  가장 예수 믿기 어려운 때, 진리 지키기 어려운 그때를 말한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아노라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너를 안다 할 것이고, 네가 사람 앞에서  나를 모른다 하면 나도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너를 모른다 하리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공연히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척하겠습니까? 얼마나 급했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를 내놨겠습니까?

왜정말년에 제가 고제면에 있었는데 예수 잘 믿는 집사들을 불러 놓고  주재소에서 부장하고 순경이 교적부를 앞에 놓고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예수  믿으면 잡아 가둘 것이고 마지막에는 당신들 생명도 어찌 될지 모른다’ 이렇게  위협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당신들이 집에 돌아가서 마음 속으로 믿는 것은 우리와  상관없는데, 이 조서에는 안 믿는 것으로 보고가 되어야 당신들이 괜찮지 그렇지  않으면 다 잡혀갑니다’ 하니까 그만 예수 안 믿는다고 손도장을 찍어 주고 풀려  나왔습니다. 그러면 예수 안 믿는다고 했는데 구원이 있습니까?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시무했던 개명교회 교인들이 여기도 많이 와 있지마는 그 사람들  중에는 일본 부장이 매일 올라와서 신사참배를 강요해도 굴복한 사람  없었습니다. 그런 게 밤중이오. 그러니까 예수를 모른다 하지 공연히 예수  이름을 모른다고 부인하겠습니까?

「네가 사람 앞에서 나를 아노라 하면 나도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너를  안다 할 것이고, 나를 모른다 하면 나도 너를 모른다 하겠다」 이런데도 여러분들은 웃고 뛰고 굴리는 것만 좋아하지 진리를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 가지고 무슨 구원을 이루겠다고 합니까? 배불리 살면서도 더 잘  살려는 욕심으로 야단을 부리는 사람들이 주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겠습니까?  예수님을 바로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많이 했습니다」 전도  많이 했다 말이오. 또 「주의 이름으로 능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권능 많이  베풀었다는 말입니다. 「귀신들을 많이 쫓아냈습니다」 하면서 구원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악한 자들아 나를 물러가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 말씀했습니다. 아버지의 뜻도 모르면서 무슨  뜻을 행하겠소? 아버지의 뜻을 알고도 행하려면 힘이 드는데…

이 빌라델비아교회는 아버지의 뜻대로 한 사람들입니다.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  말씀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히면 갇혔지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습니다. 가난으로 굶어 죽을 지경이 된다 해도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습니다. 이 신앙이 쉬운 줄 압니까?  사도행전에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고난을 많이 받아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면서 기쁘고 즐거운 것처럼 예수 믿으면서 기쁘고  즐겁기만 하면 됩니까?  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돌보지 마라 했는데도 평생 예수 믿으면서 자기  욕심만 차리고 있습니다. 그게 자기 부인입니까? 자기를 돌보지 않고, 자기를  생각지 않고, 자기 유익, 자기 소원, 자기 좋은 것, 자기 기쁜 것, 자기 형편을  생각하지 않는 자라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평안하고 즐거운 것이 아니오. 죽는 것이 십자가 아닙니까?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공연히 거짓부리 예수 믿으면서 야단입니다.

아주 정신이 없어요.

여기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3장 12절에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이 짐승은 세상입니다. 세상 권세를 쓴다 말이오.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세상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라」 이 세상이 하나님 말씀대로 심판을 받는  것 같았는데 조금 후에 보니까 다시 회복이 됩니다. 왜? 아주 없애 버리면 안  되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불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게 하더라도 미혹받지 않아야 됩니다. 마귀도  이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누가 이적을 행하느냐? 새끼 양이오.

기독교 도덕주의가 그렇게 합니다. 정신차리면 환하게 알 수 있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세상을 제일로 삼도록 만든다  말입니다. 하늘나라 제일주의가 아닌 세상 제일주의를 만들고, 하늘나라 가서 잘  사는 것보다 세상에서 잘 살도록 만들고, 하늘의 소원 성취가 아니라 세상의  소원 성취 하도록 합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말하는 우상이라 말이오. 이 세상을 등에 업고 배경을 삼아서 세상  권세로 교회를 일으켜 세우면 어리석은 인간들은 다 놀라면서 그리로 쫙  따라갑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 제일 칭찬 받은 깨끗한 교회인데 이 교회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10절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내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러분들, 하나님이 빌라델비아교회에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는 것, 신사참배 시험도 이기고 6·25 같은 시험도 이기고,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생명을 빼앗겼으면 빼앗겼지 죄 짓지 않고, 주님 내놓지 않고, 어떤  고문과 고형을 당하고, 거지가 되더라도 주님과 진리를 팔지 않은 이  빌라델비아교회와 같은 사람이 되려면 이미 가진 것을 굳게 잡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굳게 잡아야 할 알맹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양성원  학생들에게는 가르쳤는데, 혹 지금 시험을 치르면 정답을 써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 몇 사람이나 있을지… 성경은 그렇게 알기 쉬운 것 아닙니다.

광고할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연산동에 연일시장이라고 있는데, 그 시장 안에  순복음교회에 소속된 연일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서 6월 8일부터 집회가  있는데 강사가 말씀의 은혜뿐만 아니라 병 낫게 하는 큰 권능이 있으니까  서부교회에도 환자가 있으면 그 교회 집회에 참석시켜 달라는 내용의 엽서를  우리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혹 아픈 사람들은 가 보십시오. 그런데, 갈 때는 살며시 가지 말고  반드시 구역장에게 말하고 가십시오. 그래야 병이 나았는지 결과를 볼 수  있지요.

지금은 순복음교회를 말하지만 한때는 변  씨가 이적 행한다는 소문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최순복이라는 사람이 역 앞에 돌체 식당을  했는데 언제든지 그분들 식사를 도맡아서 했습니다. 서양 요리로 알아 주는 식당  주인인데, 자기 아들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 사람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또 돈도  내놨는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넘도록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꾀울 말은 있어서 ‘고쳐 주시기는 하는데 늦게 낫는 것이  좋아서 그런 것이니 낙심하지 말고 성의를 가지면 된다’ 하니까 계속 대접을  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우리 교회 집사라서 내가 그 사람에게 ‘너나 그 사람이나 예수  이름으로 구속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낫게 하실 병이라면 네가 기도해도 낫는데  지금 사욕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변권사가 기도해도 안  낫는다’고 말해 줬습니다.

그러니까 ‘예, 그래도 좀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하기 때문에, ‘네가 자꾸  그렇게 하면 그 아이가 일찍 죽을 것이다. 죽어야 네가 바로 할 것 아니냐’  했습니다. 결국 그 아이가 죽고 나서야 손 뗐습니다.

오래 전에 변  씨가 김천에서 집회할 때 제게 말씀을 증거해 달라고 부탁해서  증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지막 집회를 마치고 나서 그분이 내게 찾아와서  묻습디다. ‘조사님,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돈벌이하면 심판이 크다. 그렇게 한다고 정말로  낫더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나아야 될 것은 누가 기도해도 낫는다. 특별히 병  낫게 하는 권세를 받았더라도 때가 있고 해당되는 사람이 있는 것인데, 간판을  걸어 놓고 돈 모으는 짓을 하면 되겠느냐?’ 이러니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때는 은혜를 받으니까 그렇게 대답했는데, ‘그러면 앞으로는 이 진리를  배우겠느냐? 아들인지 양아들인지 네 뒤에 돈벌이하려고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던데 그 사람이 야단이 나더라도 견디겠느냐?’ 하니까, ‘예. 이제는 안  합니다’ 했는데, 안 하기는 뭘 안 해요? 어리석으면 안돼요.

이적은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요, 예언은 믿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 했는데  성경 말씀 배우는 것이 예언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배워서 구원 준비하면 되는 것이고, 안 믿는 사람은 예수가 있는지  하나님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낫는 걸 그  사람들이 보면 ‘아, 하나님 계시는구나’ 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런데 이미 믿는 사람들까지도 이적 행하는 것을 제일로 알고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내일 아침 권찰회할 때 자기 구역에서 서부교회 와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병 나은 사람들, 집회 참석해서 병 나은 사람들은 낱낱이 기록해서  내십시오. 나았는데도 보고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리어 더 큰 증세를 줄지도  모릅니다’ 하는 광고를 했습니다.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느냐? 여러분들이 서부교회에서 증거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증거하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닙니까? 이제는 여기에도 하나님의 이적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하겠습니다.

그동안은 열적고 부끄러워서 이런 광고를 못 하도록 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보지 않고도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믿는 사람은 복이 있고,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눈에 이적으로 된 것을 보고 믿는 사람은 복이  적다고 했습니다.

위장에 구멍이 나서 아무 희망도 없이 수술 날짜를 기다리던 사람이 ‘죽기는  죽는 것이니까 집회나 참석하자’ 하는 마음으로 메여 와서 참석했었습니다.

아프니까 예배 시간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하고 강변에 있는 숙소에 누워 가지고  마이크 소리로 한 마디씩 듣고 있었는데 마지막에는 조금 기운이 나서 두  시간인가 참석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마치고 갈 때는 걸어서 갔는데 닷새 동안에 나아 버렸습니다.

의사가 나은 걸 증명했으니까 이것 하나만 팔더라도 금을 몇 말은 모을 것이고  돈도 몇 억은 모을 것입니다. 일본에 어떤 사람이 병이 들었는데 자기 병을 낫게  해 주면 연보 1억원을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도 있답니다.

그 노인도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그저께 들었습니다. 이 노인은 귀가  들리지 않는데 집회 참석해 가지고 ‘아, 하나님이 내 귀나 뚫어 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뭐가 ‘딱!’ 하더랍니다.

그걸 옆에 사람이 보니까 노인이 깜짝 놀라 가지고 눈이 동그랗게 되더랍니다.

갑자기 귀가 열리면서 ‘와 와 와’ 하는 소리가 들리니까 놀라 가지고 ‘아,  하나님이 내 귀를 뚫어 줬는가 보다!’ 하더라고.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들이  손으로 귀를 막아 봐라 해서 꽉 막아 보니까 아무 소리도 안 들리거든요. 그만  귀가 뚫렸소.

장렬목사님도 창자 수술을 했는데 낫지 않고 고름이 계속 나와서 호스를  옆구리에다 꽂은 채로 몇 달이 지났는데 이번 대구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참석했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고마워서 찾아가서 ‘목사님, 견딜 수  있겠습니까?’ 하니까 ‘천막에 누워서라도 몇 말씀 들으려고 왔습니다’  하기에, ‘말씀을 들어서 깨달으면 낫습니다. 깨달으면 낫습니다.’ 뭐 기도할  것 없이 깨달으면 낫는다 하는 것을 말해 주고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집회 마친 다음에 다시 나를 찾아와서 ‘목사님,  나았습니다. 집회 중에 고름이 그쳤습니다. 그래서 감사 인사하러 왔습니다.’ 아마 병 나은 것을 말하자면 어느 집회나 어느 단체보다 많을 것입니다.

어리석지 마십시오. 미혹 받으면 안 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깨달은 대로  소망하게 하는 것이요, 그대로 행하게 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 받는 것을 무슨 불이 뜨끈뜨끈하게 오는 그런 걸로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삼각산 기도원 원장인데 그때 박신출조사님이라고 있었습니다. 내가 성경대로  설교하니까 그 당시에 ‘불 받아라 불 받아라’ 하는 말이 다 절단 난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분이 나한테 ‘아, 불이라고 해야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불이 절단  나면 기도원이 절단 나게 되니까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을 합디다.

그래서 ‘내가 당신 때문에 성경을 안 가르칠 수 있겠는가?’ 하면서 그분에게  물어 봤습니다.

‘조사님은 불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물어 보니까 ‘나는 배에 불을 받았는데  배가 어떻게 뜨거운지 허, 허, 허, 하면서 온 몸을 떨었다’고 그렇게 성령 받은  것을 말합디다. 성경에 그런 불이 어디 있습니까? 오순절에 성령이 바람으로 불로 갈라진 혀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성령의 역사를  형식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그 성령이 역사해서 3천명이나 회개했지마는  그분들이 불로 인해서 뜨거워 못 견딘 기록이 어디 있습니까? 다 허탄한  이야기요.

이런 저런 거짓말로 돈이나 모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박태선씨가 돈을  얼마나 모았습니까? 박태선씨는 ‘성경은 죄인들을 의인이라 한다. 예수가 죄인  중에는 제일 죄인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성경을 깨닫지 못하면 그렇게  탈선하고 맙니다. 박태선씨는 ‘예수는 죄인 중에 죄인이라’고 했으니까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제일 진리라고 해서 금덩이 다 모아들였고 돈 다 끌어들였는데, 거기에  꼬여서 천년성에 살림 다 팔아 넣고 월급도 없이 먹지도 못하면서 물건은 성의껏  만들어 내니까 천년성에서 나오는 물건이 제일 좋습니다. 참 인생이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또 문선명씨는 통일교를 말하는데 통일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세계 각국에서  굉장히 왕성하지마는 한국에서는 안 돼요. 무슨 종교든지 전부 하나로 뭉쳐야  된다고 하는데 그게 기독교요? 어리석지 말아요. 어리석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은혜가 성신의 은혜요, 깨달은 대로 믿어지는 것이  성신의 은혜요, 그대로 실행하게 하는 것이 성신의 은혜입니다.

이 빌라델비아교회에 하신 말씀도 여러분들이 듣고 가서 연구하면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가라사대」 이분은  예수님입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줬다」 열린 문을 주셨으니 아무도 닫지를 못합니다. 구원의 성공,  구원의 승리를 줬으니 아무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는 방편을 주셨는데 그 방편은 무엇입니까? 연약한  힘이지마는 그 힘을 다해서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방법도 천 가지 만 가지가 넘습니다. 불 받는 방법도 있고, 지시 받는  방법도 있고, 계시, 방언, 신유… 이런 많은 방법이 있으나 제일 좋은 방법은  예수님이 빌라델비아교회에 주신 것입니다.

곧 제게 있는 것 다 기울여서 주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이것은 세상뿐 아니라 영원 무궁토록 이보다 더 좋은 방편이 없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주신 열린 문이오. 이 외에 다른 꾀는 아무리 써 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러면 이 방편은 무슨 계통을 말하는 것인가? 하늘나라는 제사장 계통, 선지자  계통, 왕 계통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제사장 면도 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선지자의 면도 있고, 투쟁하는 면도  있습니다.

여기 다윗의 열쇠를 말한 것은 왕 계통을 말합니다. 왕 계통에서는 이 방편이  제일이라는 말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세상과 마귀와 죄로 더불어 투쟁하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이 계통 방편으로 다윗의 자손,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가 열린 문을 준다」 이  방편을 준다, 열쇠로 열어 주는 방편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열쇠를 가지고 계시는데, 열쇠는 문을 여는 데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이 방편을 썼습니다. 이 방편으로 승리했고 이 방편으로 정복했고, 이  방편으로 통치했습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에게 ‘내가 이 방편을  너희에게 준다’ 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죽도록 충성하는 이 방편을  얻어서 신약교회 중에 제일 잘 믿는 교회가 됐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이 방편, 이 왕통의 열쇠를 받았습니까? 「다윗의  열쇠」라 하신 다윗은 왕통을 말한 것입니다. 믿음으로는 아브라함이요, 왕  중에는 다윗을 대표 인물로 말합니다. 다윗도 완전하게는 못 했으나 왕통 중에는  다윗이 제일 바로 했기 때문에 다윗을 말한 것입니다. 이 왕통의 유일한 방편,  승리의 이 방편을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에게 받으셨습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여러분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를 말하니까  아삼아삼하게 따라오다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따라오다가 잊어버렸소.

잊어버리면 잠 오지요. 그저 쾅 쾅 쾅 쾅… 하면 잠에서 깰 거라. 그게  천국입니까?  성령의 충만으로 가르쳐도 못 알아듣는데 여러분들의 구원이 어찌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구원이 된다. 영광을 받는다. 하나님이 계시니까 복을  준다. 든든하다.’ 미가서에도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조건을 보면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든든하다 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밭같이 갊을 당하고 시온은  수풀 언덕이 되어지고 멸망받는다」 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18장에도 보면  「우리는 여황으로 앉은 자라 결코 애통하는 날이 이르지 않는다 하기 때문에  하루 동안에 멸망받는다」 했습니다.

어떻게 안심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금식기도에 대해서 찾아 봐요. 어떤 때  금식기도를 했는지? 금식기도는 나라가 망할 때나 자기에게 망할 큰 사정이 있을  때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금식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금식의 줄기는 기쁨의 금식이 아니라 두려움 근심 걱정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할 게 뭐 있느냐 신랑이 떠나고 슬프고  외로울 때가 금식할 때라」 했습니다. 뭐 알지도 모르고 금식기도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왕통으로서는 제일 좋은 방편을 예수님이 받아서 그 열쇠로 이겼는데 아무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열쇠를 어떤 방편으로 받았습니까?  또 이 빌라델비아교회도 예수님 같은 방편을 가졌기 때문에 이 열쇠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열쇠로 열어 줬으니까 열쇠 받은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열쇠를 받았는지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양성원  학생들에게 이 문제를 냈었는데 혹 90점 100점도 있지마는 60점 70점 80점이  많았습니다.

자, 이 열쇠를 받아야 성공하는데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른다면 무슨 승리와  성공이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뛰고 굴리고 흥분하는 것으로 될 줄  알지마는 그것 가지고 안 됩니다.

이러니까 이북에 선천 고을은 네 집만 남겨두고 다 예수 믿었지마는 신사참배가  오니까 예수 안 판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것 쭉정이 아닙니까?  왜 이북이 공산주의 나라가 됐습니까? 예수를 바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요,  유물주의라서 그렇습니다. 그곳에서는 말하기를 ‘10년 예수 믿고 부자 안 되면  예수 잘못 믿었다’ 합니다. 이남에서는 ‘예수 믿고 배 안 곯아 봤으면 잘못  믿었다. 욕 얻어먹고 매 안 맞아 봤으면 잘못 믿었다. 마지막에는 예수 믿어서  죽임을 당하지 않았으면 잘못 믿었다’ 합니다. 이게 쉬운 말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땅에 욕심을 채우려고 예수님까지 이용하기  때문에, 「내가 눈물 흘리면서 다시 말하노니 예수 믿으러 다니는 자 가운데  십자가의 원수가 많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다 저희의 하나님은 배요」 배를  제일로 안다는 말인데 곧 의식주를 제일로 안다는 말이요, 땅의 것만 생각하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오시면 만물을 복종시키는 능력으로 당신과 같이 우리들을 변화시켜서  영생하게 할 터이니까 그 나라 준비를 한다. 그들은 하나님 심판 앞에 가면  심판받을 것을 영광으로 삼고 있다」 이랬습니다.

자, 다윗도 이 열쇠를 받아서 승리를 했고, 빌라델비아교회도 예수님께서 이  열쇠로 열어 주시니까 승리했습니다. 이 열쇠만 받으면 다 승리합니다.

신사참배도 이기고, 인민군도 이기고, 공산주의도 이기고, 어떤 다급한 일에도  예수님을 팔지 않고, 죄짓지 않고 의롭게 살 수 있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습니다.

전라도 이리에 사는 어떤 집사님을 만나서 들은 말입니다. 그곳에서는 6·25 때  인민군들이 예배당을 점령하고 ‘예수 믿는다고 자수하면 살려 주고 자수하지  않으면 찾아서 죽이겠다’ 하니까 겁이 나서 모두 자수 다 했습니다. 자수한  사람들을 그들이 후퇴하면서 다 죽여서 운동장에 묻었는데, 학교 운동장을 파  보니까 시체가 몇 층으로 쌓여 있더랍니다. 그때 700명을 죽였다던가 뭐 얼마를  죽였다고 합디다.

그분 삼촌이 장로인데 그분을 찾는다고 인부 여럿을 데리고 찾아냈답니다. 옷을  보고 찾아냈는데 맨 밑층에 있더랍니다. 장로라고 먼저 죽인 모양이지요.

그래서 그분에게 내가 ‘집사님은 어떻게 해서 살았습니까?’ 하니까 그분이  대답하기를 ‘그렇지만 예수님을 팔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땅굴 속에서  숨어 지내다가 살아 나왔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성경을 보고 있으니까 그분도 내게 그걸 물어 보고 싶었는지 먼저  ‘목사님’ 하면서 이야기를 해서 시작이 됐었는데, ‘아, 나는 거창 사람인데  거창에서는 순교자 세 사람만 났습니다. 점령지에 있었지마는 예배당 안 내주고  하루 세 번씩 종치면서 예배 봤습니다’ 하니까 절을 하면서 ‘참 그게 예수  믿는 건데…’ 지금은 누구나 믿는다고 하지마는 하나님께서 타작마당에서 진가를 나타내는  키를 들고 쭉정이는 불에 사르고 알곡은 곡간으로 가져간다고 했습니다. 오늘  믿는 사람들이 성경대로 믿고, 진리 때문에 희생당하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믿는  이런 것은 없고 예수 믿는 것까지 자기의 세상 생활에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적은 여기가 제일 많을 것입니다. 저 서영준목사님도 썩는 냄새가 나고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니까 축농증 수술해야 한다고 하는데, 집회 참석한 뒤로 언제  나았는지도 모르게 나았대요.

진리 하나 깨닫는 것을 병 낫는 것보다도 몇 배나 나은 가치로 알고 그런 것은  사소하게 여기는데 믿음 없는 사람들은 그걸 제일로 알고 날뛰고 있습니다.

표적은 안 믿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예수를 바로 믿어서 앞으로 심판을 면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얻어야 주님 보기에 미안하지 않을 것이오. 만일 주님 팔았으면  부끄러워서 어떻게 주님을 대하겠습니까? 벌거벗은 자로 대하지 않으려면  예수님을 바로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부자가 됐다고 해도 두고 갈 것 아닙니까?  젊어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이러니까 살았을 때 예수 잘 믿어야 합니다.

내일은 김해 묘지에 전성수목사님 초상치러 갑니다. 그분은 누가 봐도 성자요.

거창에 있을 때도 있는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분이 누구를 만나서 욕심 차리는  걸 봤습니까? 누가 부탁하면 거부합디까? 있는 충성 다하고 갔지만 아쉬운 것은  주를 위해서 죽음까지 순교로 바쳤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죽음을 잘 이용하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 말이오.

우리들도 언제 갈지 모릅니다. 또 몸의 병도 나아 봤자 마지막에는 송장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젊음도 건강도 좋지마는 그런 것보다도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  다 절단나더라도 주님과 진리를 배반하지 않은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서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어디 뛰고 굴릴 데가 없어서 예수 믿으면서 뛰고 굴리고, 어디 욕심 차릴 데가  없어서 예수 믿는 것으로 욕심을 채우고 있습니까? 신문에 보니까 어느 곳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병 낫게 한다면서 모금 운동하고 있습디다. 어리석지 맙시다.

다윗의 열쇠를 받아야 승리할 터인데, 다윗의 열쇠는 뭘 주고 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무엇으로 다윗의 열쇠를 샀지요? 우리도 그 열쇠를 받아야 하는데 무엇  가지고 받을 수 있습니까?  위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이것 가지고 다윗의 열쇠를  받습니다. 나도 진실하기 때문에 이 왕통의 해결책, 인내의 해결책, 절대의  승리책을 받았는데 빌라델비아교회도 이 거룩과 진실을 가졌기 때문에 열쇠를  준다 말입니다.

거룩과 진실이 무엇입니까? 거룩은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게 콩이냐 팥이냐,  이게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천국주의냐 세상주의냐, 인본이냐 신본이냐, 이  권세는 성령의 권세냐 돈 권세냐 진리의 권세냐 세상 권세를 입은 권세냐?  요한계시록 13장에 짐승의 권세를 입었다고 했는데 세상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속일 수 없이 환하게 나옵니다. 그러기에 이런 것은 구별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 세상보다 천국을 좋아하는 자, 물건보다 일을  크게 여기는 자, 일보다 사람을 크게 여기는 자, 사람보다 진리를 크게 여기는  자, 진리보다 하나님을 크게 여기는 자. 이렇게 자꾸 찾아 들어가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오.

제가 아는 대로는 경북이나 서울에는 진동파가 없었고 경남에 진동파가 있었는데  진동파의 머리가 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닌 줄 알았기  때문에 버렸습니다.

문둥이도 깨끗하게 했고, 앉은뱅이도 일으켰고, 집회할 때에 어떤 사람이  훼방하는 말을 하기 때문에 ‘네가 그렇게 잘못 보면 안 된다’ 하니까 당장에  소경이 됐습니다. 집회 마친 다음에 불쌍해서 기도하니까 눈이 열렸습니다. 또  벙어리 되라 하면 벙어리가 되고, 말하라면 입이 열린 일을 제가 예수를 처음  믿을 때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진리 깨닫는 것이 더 나은 줄 알았습니다.

제가 가조교회로 집회 인도하러 갔었습니다. 여기 있는 서봉월씨 추순덕씨나, 또  김봉선씨는 지금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사람들이 그 집회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설교가 도무지 안 됐습니다. 병신들이 앞자리를 다 차지하고  성한 사람들은 뒤로 밀려나 있으니까 진리를 가르쳐서 사람을 성화시켜야 하는데  그 운동은 안 되고, 설교를 하려고 해도 설교가 되지를 않습니다.

설교할 사람이 입이 붙어 버리니까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말씀을 안 줍니다’ 하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데… 제가 있는 강단 위에도 강대상 주위로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는데 서봉월씨하고 김봉선씨가 내 옆에 가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말하기를 ‘어쨌든지 조사님을 위해서 기도할 터이니까 조사님도  저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평생 조사님 위해서 기도할 터이니까 기도해  주십시오’ 하는데, ‘예, 저도 기도하지요’ 하는 말을 슬쩍 했는데 그게  약속이 됐기 때문에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혹 지금은 제게  기도해 달라고 하면, 약속하면 해야 되니까 ‘예, 제가 생각나는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지 절대라고 할 만큼 약속을 안 합니다.

그때 제가 ‘병 고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말씀 증거하는 것을  기뻐하시면 오늘 밤에 이 사람들 앞에서 안수해서 병 고치는 것을 하지 않고,  설교 듣고 깨달아서 고쳐지도록 작정하고 선포하겠으니 말씀을 주시옵소서’  하고 엎드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말씀을 주시는데  확 열려요.

그래서 일어나서 ‘지금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것이고 여러분들이 은혜  받는 데 따라서 필요한 대로 하나님이 낫게 하실 것입니다’ 하고 선포했는데  그날 밤에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만 마디  방언보다 대여섯 마디 깨닫는 것이 낫습니다.

이 왕통 계통의 유일한 승리 방편은 죽도록 충성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방편이  없습니다. 이 방편은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영원토록 승리하는 방편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써도 모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계맡아서 채워  주시는데 이 일이 우리에게 안 되고 있습니다. 있는 대로 다 기울여서 주의  말씀과 주의 이름을 지키고 싶어도 잘 안 됩니다. 사람이 죽을 형편을 당하면  살고 싶은 마음이 진리나 주님에 대한 욕심보다 더 크니까 죽지 않으려고 주님과  진리를 버리는데 이 일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열쇠를 받아야지 안 받으면 안 됩니다. 이 열쇠가 뭐인데?  「거룩하고 진실하사」 열쇠 받는 방편은 거룩과 진실입니다.

거룩은 따지는 것입니다. 자꾸 따지다 보면 성령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저것보다는 이게 크다, 이것보다는 저게 낫다, 이게 옳다’ 얼마든지 자기  지능으로 더 이상 구별할 수 없는, 최종적으로 옳다고 인정되는 하나를 찾았을  때 구별하는 것을 중단합니다. 그러나 그 옳은 것이 자기 주관으로는 진실이  되지마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실인지 우리로서는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은 「사람의 책망이나 판단을 매우 작은 것으로 여긴다. 또  내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도록 판단하고 구별했지마는 그것으로도 안심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판단하실 것이니까 내가 혹시 잘못 구별하지는  않았을까, 잘못 판단하지 않았을까, 잘못 비판하지 않았을까 해서 항상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이 주시는 마음인데 그만 우리들은 구별에  대해서는 시작도 하기 싫어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좋은 것만 취하려고 합니다.

나는 운동장에서 여섯 가지로 구별했습니다. 거기에 어떤 은혜가 있는가? 성령의  은혜도 있습디다. 진리의 은혜도 있습디다. 금식의 은혜도 있습디다. 기도의  은혜도 있습니다. 열심의 은혜도 있습디다. 조직의 은혜도 있습디다. 찬송의  은혜도 있습디다. 악기의 힘도 있습디다. 그런데 어느 힘이 제일인지 그게  문제요.

어느 힘이 제일 커야 됩니까? 성령의 힘을 말하지마는 서로 성령이라고  주장합니다. 자기 주관도 성령이라고 합니다. 내가 원일교회 갔을 때 한 여인이  찾아왔는데 그 사람에게 오차를 마시라고 주니까 고맙다고 하면서 입으로  가져가더니 다시 내려놓으면서 ‘주님이 못 마시게 합니다’ 하고는 마시지  않아요. 벌써 그 사람이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입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님이 가라 합니다. 여기 앉아 있지 말라  합니다’ 하고 나가더니 잠시 후에 다시 돌아와요. 그래서 ‘왜 옵니까?’  하니까 ‘주님이 가라고 해서 왔습니다.’ 그래요. 그게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걸린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그 사람은 자기가 성령 충만한 것으로 압니다.

누가 성령에 충만한지? 다 그렇다고 주장하지마는 우리는 66권에 기록한 성경  진리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집회는 찬송하는 힘이나 금식보다도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바로 구별해서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이것이 주동이 되어야  합니다. 이 힘이 아닌 다른 힘으로 하면 이탈되기 쉽습니다.

내가 그날 밤에 가서 보니까 여러 가지 은혜가 있었지마는 그 단체는 금식기도가  제일 힘이 있었고 그 힘으로 유지하는 것을 봤습니다. 물론 금식기도도  좋지마는, 성경에 보면 바리새교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꼭 금식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어리석지 말아요. 금식도 좋고, 기도도 좋고, 찬송도 좋고, 열심도 좋고, 병  낫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방언이나 지시나 예언보다 성경 말씀을 바로 깨닫게  하는 성신이 제일 큰 성신이요, 좋은 성신이요, 참 성령입니다.

깨달은 대로 행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깨달음은 어디서 나옵니까? ‘이건가  저건가?’ 자꾸 구별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구별이 있고, 구별하면 진실해집니다.

다윗의 열쇠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승리를 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단단히 작정을 합시다. 진리를 깨달아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진리를 깨달은  대로 행해야 구원이 되는 것은 건설구원이오. 기본구원은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은혜를 받는다고 하지마는 여러분들은 진리 깨닫는  은혜를 받아야 될 터인데 이 은혜는 받지 않고 남의 은혜만 좋은 줄 알고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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