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소망

 

1984. 9. 25. 화새

 

본문: 시편 91편 14절∼1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선지자선교회  우리는 하루 사이에도 어떤 일이 생길런지 모릅니다.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이요, 또 하나님께서는 미리 모든 것을 말씀하시고, 미리 우리에게  선포하시고 교훈하시고 또 준비시키시는 그 일을 하시고 그다음에는 주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에 준해서 준비한 사람, 또 그 교훈에 따른 사람 이 사람들만  승리를 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구원은 꼭 당신을 인정하는 고 인정을 통해서 구원 얻도록  하고 당신의 그 말씀을 내가 신실히 백 퍼센트를 인정하든지 오십 퍼센트를  인정하든지 하나를 인정하든지 당신의 선포하신 그 말씀을 인정 하는 고 인정의  양 또 인정의 종류 고 인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당신을 인정을 하느냐 자기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다른 어떤 사람을 인정하느냐? 크게 말하면 사람을 인정하느냐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둘 중에 하나인데, 자기를 인정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데에  정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인정함이 없을 때에 하나님을 인정할 수가 있고 자기를  부정할 때에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에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거, 믿는 거, 사실이 그렇다 하는 것을 요 믿는  믿음을 방해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의 주시는 구원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늘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마는 이번에는 뜻밖에 이북에서 남한의 이  수해당한 데 대해서 거기에서 이 수재민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서 그렇게  선포를 하고 또 그렇게 서로 대화도 하고 또 여기에서는 갖다 달라고 이렇게도  하고 이랬는데, 그것을 이제 마지막에는 서울에 갖다 준다 하다가 이제  판문점에서 거기서 서로 주고 받자 이렇게 말을 서로 하고서 의논이 됐는데,  어제 내가 뭐 신문에 보니까 판문점에 그 기갑군들이 뭐 얼마? 삼 명? 삼 뭐  얼마지? 예? 삼 개 뭐? 삼개사단이라? 사단이 아니지. 삼 개 사단이든가? 거기에  와서 있는데 전부 그것이 다 탱크 장갑차 모두 이런 것들인데 뭐 그만하면 그만  남한을 당장에 쏵 밀어낼 수 있는 그런 아주 많은 소련 기계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갖다 놓고서.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도 보고 위험하다 위험하다 모두 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는데, 그렇지.

 또 이거는 사소한 일이지마는 제 생각으로서 우리 남한에, 다른 데는  모르겠습니다. 마는 제가 고신에 있을 때에 고신에 여자 중에, 여성도 중에 제일  좀 잘 믿는다고 생각한 그 박 인순 선생이 미국을 갔었는데 요번에 여기 와  있을라고 왔는지 어쨌는지 미국에 갔다가 이번에 돌아왔다는 말 들었습니다.

왔다 말을 듣고. 또 오고 난 다음에 모든 성도들의 마음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니까 고신에 있는 그 목사님들이 오후 예배에 몇 사람 와서  참석하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다 원로 목사들인데. 그러고 또 서로 서로 이렇게  전화로 연락이 돼서 그 신앙이 이렇게 다 흩어지더니마는 이 신앙이 차차 차차  이렇게 모여지는 것을 봤습니다. 어제도 마산 인애원에 있는 그 조 수옥  권사님은 내나 감옥에서 신사 참배 때문에 있다가 8월 l7일날 해방 돼서 나온  분인데, 그분도 깨끗하게 신앙생활 하고 참 순교를 원하는 분인데, 그분이 또  전화가 저한테 왔었습니다. 와서 한번 가서 뵈옵겠다고 어쩌든지 일찍 전화를  해도 안 돼서 그랬는데 그렇다고 말을 하고 또 주 남선 목사님 따님이 또 전화를  해서 몇 번이나 전화를 하고 이래도 그렇고 와서 찾아가 뵈온다는 게 도로  괴로움이 될까 해서 그렇다고 말을 하고, 또 그 재건 교회 최 덕지 선생을  수종하고 있던 그 사모님이 저한테 직접 찾아와서 이렇게 보고 자꾸 그래서 내가  답을 하기를 '이제 모두 막혔던 것이 개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좀 개통을  합시다. 개통을 하고 문을 열어 놓고 서로 이 신앙 교류가 돼야 되지 이래  가지고는 이거 다 손해 가는 일이니까 그리 하자' 하는 그런 말을 제가 하니까  그들도 좋아서 대단히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금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준비를 한다고 기도도 하고 매일 삼십  분씩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이렇게 준비한다 하지마는 지금이라도 왈칵 밀고  내려오는 그런 일이 되면 우리 교인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며 마음 가짐을  가지겠느냐 하는 그것을 생각하고 물론 일시에 다 준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래도 오늘 아침에는 이 말씀을 증거해야 되겠다 해서 내가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여기에 14절에 보면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이 건짐 받는 것  건짐은 사지나 무슨 환난이나 무슨 비참한 데에, 어쨌든지 빠진데서 건지는 거  아닙니까? 어쨌든지 사망과 불행에서 건지는 것이라 그 말이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러면, 우리가 건짐을 받는데에는 주님을  사랑해야 된다  또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또 우리가 낮은 자리에서 차차 차차  높아지는 것 존귀해지는 거, 차차 차차 영광스러워지는 거 이런 것은 다 주님을  아는데서만 된다 그거요. 주님을 아는데서만.

 이러니까 늘 그전에도 많이 말했지마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주님을 아는 것이 어떤 것이 주님을 아는 것인가?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으로 인해서만 우리가 구출함을 받고. 또 주님을 아는 이  앎으로 인해서만 우리가 천해지지 안하고 점점 존귀해 지고 패전하지 안하고  승리하게 되는 것이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아는 것을 이것을 잘 알아야  되겠다 해서 다시 한번 여러분들에게 증거합니다.

 사랑은 인간의 사랑 다시 말하면 배암의 사랑, 인간의 사랑 곧 배암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제 사랑과 사랑을 잘 구별해야 되겠는데 이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않는데에서 말세의 실패는 많이 당하게 됩니다. 왜?  인류 시조 아담 해와의 에덴동산에서도 이 사랑을 인해서 죽였습니다. 사랑으로  인해서, 사랑으로 인해서 해와가 아담을 죽였고 아담이 그 사랑을 인해서 해와를  죽였고 서로 죽여서, 둘 다 서로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죽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또 둘째 아담 예수님은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를 살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랑의 구별을 잘 해야 되지 사랑의 구별을 잘 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요새 모두 뭐 교회들이 바짝 서둘러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서부  교회에서도 말하기를 '서부 교회는 사랑이 없다. 사랑이 없다' 이렇게 하는 말을  다 그것을 '참 과연 그렇다.' 물론 사랑이 모자라는 것도 있기는 있지마는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그 사랑관이 잘못된 것입니다. 사랑을 잘못 알고 하는  것인데,  사랑은 두 가지 사랑이 있습니다. 배암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두  가지 사랑이 있으니까, 배암의 사랑은 타락한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또 기뻐하고  이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배암의 사랑을 이것을 항상 싸워서 대적해서 용납지  안하려고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이  사랑과 사랑을 잘 구별해서 첫째는 우리를 죽이는 그 사랑을 물리쳐야만 합니다.

또 우리를 살린 사랑을 우리가 영접해야만 합니다.

 여기 '저가 나를 사랑한즉' 하는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지 딴것은 사랑을 가지지 못합니다. 왜 못  가지느냐? 못 가지는 이유는 아무리 자기의 사랑하는 상대방을 사랑하기 위해서  만반의 연구를 해 가지고 복되게 하려고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자기의 지혜가  모자라니까, 지혜가 모자라니 자기 지혜 있는 대로 다 해서 상대방을 복되게  연구했지마는 그 지혜가 모자라서 어리석음이 됐기 때문에 제가 아는 지식  범위에는 유익되게 했다는 것이고 범위를 넘어서 보니까 유익되게 한 게 아니라  그것을 죽이게 한 것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사랑은 전지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입니다. 전지한  자만이 그가 전지한 지혜를 가지고 알아서 행복되도록, 평강이 되도록. 생명이  되도록 그렇게 전지한 지혜의 흠이 없는 전지의 지혜대로의 된 거라야 되기  때문에 그거는 전지자가 아니면 이 사랑을 가질 수가 없는 사랑이요, 또  전능자가 아니면 아무리 자기가 사랑하고 싶지마는 힘이 모자라 사랑 못 하는 거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어데까지는 자기가 사랑하지마는 그 한계를  넘어서는 자기가 사랑할 수가 없다 말이오.

 저기에 ○○에서 온 분 졸면 패전해요. 졸면 마귀의 것에, 졸면 가정만 깨져  버렸지 구원은 헛일입니다. 졸지 안하고 꼭 들어야 자기도 승리하고 가정도 구원  얻고 행복이 되어지지. 이럴 때 하나님 말씀 듣지 못하면 헛일이라 그거요. 내가  보니까 늘 예배 볼 때에 조는데, 일이 되서 그런지 모르지마는 졸면 안 됩니다.

이 도리를 알아야 자기가 살고 자기가 살아야 그 가족이 삽니다. '지금 가족이,  나는 살아서 잘 믿는데 가족이 들어 방해한다' 그런 소리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내가 살아서, 구루마를 끌고 갈 건데 이 앞에 그는 소가 힘이 약해서 구루마를  못 끌고 갑니다. 또 말이 약해서 구루마를 끌고 가지 못합니다. 내 힘이 약해서  그걸 끌고 가지 못하는 것이니까 내가 힘을 얻어야 되는데는 하나님의 진리를  듣고 진리와 영감의 피의 그 능력을 받아야 되지 그래 안 하면 됩니까?  이렇게, 사랑으로 인해서 죽기 때문에 사랑과 사랑을 우리가 잘 구별해야  됩니다. 그러면, 땅에 있는 배암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배암의 사랑은 첫째가  혈통의 사랑입니다. 피의 사랑. 자기 혈통에, 자기 몸에서 났다, 또 자기  동족이다. 여기 모두 이래서 세상에서 말하기를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래  가지고서 모든 땅위에 있는 역사보다 피는 강하다 이래 가지고서 피 놀음을 많이  또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의 사랑이 그것이 배암의 사랑입니다. 피의  사랑이 배암의 사랑이요, 또 남녀나 또 암수, 암컷과 수컷이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내나 배암의 사랑입니다. 또 자주 만나고 이렇게 가까이 친근히 있으니까  차차 생겨진 그 동류의 사랑 그것이 다 배암의 사랑입니다.

 그런고로, 사람들이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고 혼합시켜 가지고서 죽이는, 이  말세에 지금 죽이는 것이 사랑으로 죽입니다. 사랑으로 죽이기 때문에 그 사랑은  무슨 일을 범해 나가느냐 하면은 그 사랑은 이제 음행도 범해 나가게 되고. 또  이 모든 물질 범죄도 하게 되고, 왜? 그 사랑을 가질라 하니까 물질 범죄도  되고. 물질로 인해서 범죄하고 또 자기의 그 애정을 인해서 육적 범죄로써  범죄하게 되고 모든 것이 일어 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가? 이 하나님의 사랑만이  사랑이지,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진 것인데, 전지자라야 이 사랑은 가지고 있고,  만일 자기가 지혜가 한계가 돼 있으면 고 한계 안에서는 사랑의 계획을 했지마는  그 자기 지식 밖의 것은 벌써 사랑을 계획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한계 밖에는  사망이 되고, 자기의 능력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자기 힘 있는 대로는 사랑해서  뭘 할 수 있지마는 자기 힘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 못 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그 모든 것은 다 결말이 사망을 이루고야 마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전지전능 전재,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안해서 내가 물에  빠져도 하나님이 거기에 오셔야 되겠고 또 불에 들어가도 그래야 되겠고  어디든지 나와 제한을,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안하고 나와 동거 동행 할 수 있는  분이라야 우리를 사랑할 수가 있지 아무리 사랑한다 하지마는, 사랑한다고  하지마는 자기는 사랑하는데 덜컥 그만 차사고를 만나 버렸습니다. 차사고를  만나서 그만 죽었어. 이렇지만 자기가 공간적인 그런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같이  있었으면 차사고 나는데, 교통 위반. 위험한 데 들어가지 말라고 이래 붙들어  줬을 터인데 그만 자기가 같이 함께 있지 못 하기 때문에 그래 된다 그거요.

자기가 교통사고라 해도 능력이 전능 같으면 차를 휘뜩 내던지더란대도 딱  중단시켜도 괜찮을 것인데 능력이 없으니까 할 수 없다 그거요.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참사랑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그 사랑이 어떤 것이냐? 요한 l서에  말씀하시기를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인간의 가진 사랑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다. 아버지가 독생자를  뭐하려고 보냈는가? 독생자를 보낸 거는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보냈는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어떻게 하신 것인가? 그 사랑은  당신이 대속의 제물이 되셔 가지고서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구출하셨다 또  우리를 불의에서 완전히 구출해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다, 또 우리를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거기에서 화친을 이루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상호 내주하는 이런 화친을 이루어서 우리에게 영생을 가지도록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신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가 이제 배웠고, 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을 배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에게 대형으로 사죄의  공로를 베푸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요, 대행으로써 칭의의 공로를 베푸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요, 대화목으로써 우리에게 화친의 공로를 베푸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사랑이 없으니까 당신이  주시는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 그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를 어머니가 기를 때에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위해서 모든 은혜를 베풉니다.

은혜를 베풀 때에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의 베푸시는 그  은혜를 잘 받는 것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그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그 어머니가 베푸시는 그 사랑을 받아 가지고서 그 사랑으로 인해서 제가  잘 자라고 잘 됨으로써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는 그것이 이제 어머니를 섬기는  것이 되어지는 것이요 효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효성에  대해서 그 순서를 가르친 것이 있는데 그 가르침이 옳고 바르고 참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 사랑을 우리가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그분은 완전자시요, 완전자시기 때문에  완전에다가 내가 무엇을 줘 봤자 내것이 가면은 그분에게 더러워지기 때문에,  완전이. 완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불완전한 것은 완전에게 가서 붙지를  못합니다. 완전에게 붙지를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에게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제사를 하나님에게 드린다, 생명을 바친다, 생명을  바친다는 것이 인간 말로서 생명을 바치는 것이지, 생명을 바치는 그것은  하나님에게 자기의 생명을 영영히 존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고귀한 것으로  보존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보를 하는 것도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을  부요케 하는 것 같지마는 하나님이. 다 당신이 만드셨고 당신의 것인데 우리가  무슨 물질을 당신에게 드릴 것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연보하는 그것은 당신에게  드려서 당신을 가지도록 주는 게 아니고 내가 잠깐 보관되어 있는 그것을 영원히  내것으로 하나님 앞에 허락받는 것입니다. 허락받는 거. 그러니까, 연보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영원히 그 물질을 내가 받는 것이요 또 내가 몸을 드리는 것도  내가 하나님에게 몸을 바쳐서 일한다는 것은 그 몸을 하나님께 드려서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바쳐 일한 것은 하나님에게 자기 몸을 영원히 쇠해지지 안하고  낡아지지 안 하고 더러워지지 안하도록 신령한 영영한 기능으로 만들어 주심을  받는 것이라 말이오. 만들어 주심을 받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 없습니다. 드린다는 그것이, 드린다는 것이 우리의 성의  인데 드린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에게 얻는 결과가 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 하신  그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 받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요걸 잘 알고 있어야 되지, 주님을 내가 사랑하는 것이 모든  궁지에서 건짐을 받는다, 모든 멸망에서 건짐을 받는다 하는 그 유일한 법칙으로  삼아주셨는데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에게 있는 하나뿐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그 사랑,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사랑하신 그 사랑이 뭐이냐? 독생자가 땅위에 도성인신  해서 오신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요. 또 독생자가 또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당신이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요,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 세 가지 대속을 받는 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요.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 세 가지 대속을 받아서 이 대속을  누리는 거 이 대속을 누리는 그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사죄를 사죄를 입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요, 사죄를 벗지 않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 사죄 안에서 사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가 나를 사랑한즉'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구출이  되는데 사랑하는 거는 뭐이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떤  현실에서든지 사죄를 벗지 않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오. 사죄를 내가  입고 사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 사죄를 내가 잘 활용하는 것이  그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자기의 아내에게 어떤 귀한  선물을 사다 주면은 그 선물을, 그것을 그만 다른 데에 줘 버렸든지 선물을  천대했으면 그것은 남편을 사랑치 않는 것이오. 그러면, 그 선물을 귀중히  여겨서 남편이 어데 가고 없으면 남편 올 때까지 그 선물 준 그 선물을 보면서,  선물을 남편 보듯이 이렇게 보고 있는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런  것은 조금 이렇게 아주 빈약한 부부이지마는 그와 같이 주님이 나에게 사죄를  주셨으니 이 사죄를 내가 입고 있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 사죄의  은총을 누리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죄의 은총을 누리다니? 어디서든지 죄에 대해서 주님이 사죄해 주셨으니까  내가 이 사죄의 공로를 힘입어서 죄를 대항하면 죄가 물러가게 됩니다. '나는,  주님의 대속으로써 사죄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죄를 지을 수가 없다' 할 때에 그  죄가 물러가고 나에게는 패전을 당하고 가는데 이것을 잊어버리고 '나는, 인간의  의지로 한번 죄 안 짓기로 하고 했는데 죄를 지을 수가 있겠느냐? 또 내가 어찌  양심상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 오 만 것을 다 들이대도 죄는 호령치고  우리에게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 그 '주님이 나를 내 죄에서 구속하시려고  주님이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나를 여기에서, 죄를 다 대속 하셔 가지고 사죄를  주셨기 때문에 나는 다시 죄를 범할 수가 없다, 나는 범할 수가 없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나는 죄를 다시 범할 수가 없고 나는 그 있는 자가 다시는  될 수 없다! 예수님이 대형으로써 이 죄를 멸한 요 사실을 자기가 깨닫고 요  사랑에 감격하고 요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요 권위를 힘입어서, '이러기  때문에 죄는 나에게 상관하지 못한다. 죄가 이놈아 네가 나한테 와 가지고  어떻게 덤비고 있느냐? 주님께서 대속하심으로 죄와 나와는 상관이 없는데 죄가  내게 어떻게 와서 네가 상관을 하고 가까이 왔느냐? 죄야 물러가라' 하면은  그놈이 당장 물러갈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고 경험과 체험이 있는  사람들이 가리켜서 '피의 능력 피의 능력' '피의 능력 있도다. 죄를 이기는 것은  주님의 피의 능력으로 죄를 이긴다.' 하는 그건 자기네들의 그 신앙 체험에서  그것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 하는 것이오.

 또 주님이 나에게 대행해서 의를 입혀 주셨기 때문에 내가 칭의를 벗지 않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칭의를, 칭의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니, 칭의라는 것은 어떤 것인고 하니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이  그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 하나님에게 움직임 받는 거,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것이 칭의입니다. 칭의니까, 그러면, '주님이  나를 대행해서 칭의를 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아무 것에게도 피동될 수가 없다.

이제는 과거에 내가 돈에도 피동됐고, 권세에도 피동됐고. 죽음에도 피동됐다.

죽인다 하면 내가 꼼짝 못 하고 거기에 피동됐지만 나는 죽음에도 피동될 수가  없고 내가 죽음 가운데에 빠져 있어서 사형을 받을 때에 살려 준다 해도. 살려  준다 해도 그 살려 주는 거기에 내가 피동될 수가 없다. 나는 주님에게만 이제  피동이지 딴 데는 피동될 수가 없다' 하는 요것을 자기가 믿고 요대로 요 공로를  모시고 요 공로 안에 있을 때에 자기는 아무것에게도 피동되지 안하고  주님에게만 피동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에게만 피동되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그러면, 주께서 화목의 제물이 되신, 주님이 화목의 제물이 되셔 가지고서  십자가의 그 불목을 사하기 위해서 저주받아 가지고 그와 같이 십자가에서  화목의 제물로 죽으심으로써 우리와 하나님이 화친케 됐습니다. 화친케 됐으니까  요 화친케 된 요 공로를 힘입어서 '이제는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요 죄로 영원히 멸망받은 요 배반을 주님이 대신 배반의  형벌을 받아 가지고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나에게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주셨기 때문에 다시 나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가 없다. 주님의 공로로 인해서  대화친으로 인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다시 불목할 수 없다. 하나님을 다시 떠날  수 없다. 하나님을 두고서 뭐 딴것을 모실 수가 없다' 요렇게 해서 하나님을  자기 마음속에 모시고 주를 사랑하고 주를 사모하고, 요렇게 주만 사모하고 주를  생각하고 주를 높이고 섬기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요 일을 다시는 내가 버릴  수가 없다' 하는 주님 모시고 사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생명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사는, 모시게 된 그것이 생명이니, 중생 그것이 생명, 중생은 주님을  모신 것이요. 중생으로 말미암아 영생한다 하는 것은 생명이 생명 생활을 할  때에 그 생활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영생입니다. 그러면, 생명이라  하는 것은 원체고 종자고 영생이라 하는 것은 생명이 생명 활동하는 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제는 화친의 대속을 줬기 때문에 나는  다시는 주님을 배반할 수가 없다. 내가 주님을 내가 제일 주로 모시고 내가 살지  주님 외에 뭐, 주님보다 딴것을 뭣을 앞세워서 높이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한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아무것도 앞세우지 못하고 주님 한 분만  모시고 살지, 주님 모시고. 일호로 주님 모시고 이호로 딴거 모시고 그렇게 할  수 없다. 주님 한 분밖에는 나는 모시지 못 한다.

 주님 한 분 모시면 그러면 뭐 딴 거는 어떻게 하고? 주님을 모심으로 인해서  주님을 모심으로 인해서 남편을 모시고, 주님을 모심으로 인해서 아내를 모시고  주님을 모심으로 인해서 자녀를 모시고, 주님을 모심으로 인해서 원수를 모시고  이래서 모두 다 모든 것을 다 주님을 모심을 인해서, 그로 인해서 모든 일을 해  가지 주님 모시는 이거 두고서 딴 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거.

 그러면 우리가 건짐을 받는다는 것은 어디서 건짐을 받는 것이 건짐을 받는  것인가? 우리가 죄에서 구출 받는 것이 그것이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출받는 거. 죄에서만 구출 받으면. 죄의 값이 사망인데 죄에서만 구출돼  놓으면 사망은 와 가지고 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출되는 것이  우리가 건짐을 받는 것이요, 모든 불의. 불의라 하는 것은 제 마음대로  움직이든지 어떤 피조물로 움직이든지, 어떤 인간으로 움직이든지 무슨 전쟁이  나면은 전쟁에게 피동이 되는 거, 전쟁으로 인해서 움직이는 거 전쟁을 닥쳤는데  전쟁 가운데서도 주님에게 피동되는 고 행위를 전쟁 속에서 합니다. 이렇게  주님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다른 피조물에게 피동될 거기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또 주님을 배반하는, 주님을 배반하는 거기에서 내가  구출함을 받는 그것이 내가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군데 건짐을  받으면 사망이 해할 수가 없고 사망은 근방에 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건진다는 것이,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돼요. 주님이  나를 건지신다 이랬는데.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건진다 말은 나를'  구출하신다는 말인데. 이렇게 주님이 구출하시는 것을 자기가. 그러면, 어떤 그  죽음 속에 있는데 육체 구출도 구출이지마는 구출은 육체의 구출이든지 모든  심령의 구출이든지 어떤 구출이든지 우리의 구출은 죄에서 구출된 그것이라야,  자기 몸덩이가 죽음에서 나와도 죄에서 구출됨으로써 몸이 구출되는 것이라야,  불의에서 구출됨으로 자기 목숨이 구출되는 것이라야, '하나님의 그 화친의  구출로써 하나님을 배반하는 거기에서 구출돼서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고  하나님을 모시는 것으로 구출이 돼야 그 구출이 바른 구출이지 딴 구출이면 안  된다 그 말이오. 잘못하면 마귀란 놈이, 하나님께서 나를 구출해 주시는 그 구출  아닌 것을 마귀란 놈이 이래 떡 줄 때에 그 구출을 받기 쉽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 구출을 받는 그것은 멸망에 빠지는 것인데, 그 구출도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받습니까? 그 구출도 받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면 구출 받습니다. 요거 아주  여러분들이 주님을 사랑함으로 이 세 가지에서 구출 받는다, 또 마귀란 놈이  이렇게 저렇게 꼬와 가지고서 우리를 멸망에 빠트리는 것을 구출이라고 하면서  줄 때도 주님을 사랑하면 고 유혹에 들어가지 안하고 우리는 고 유혹에 빠지지  안하고 우리는 바로 구출된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잘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고, '저가 나를 사랑함으로 내가 저를 건진다.' 꼭 요거 마지막인데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저가 나를 사랑함으로 내가 저를 건진다.'  우리가 앞으로 전쟁이 난다든지 또 이 전쟁이 안 나도 무슨 일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저녁으로 저는, 충혼탑이라고 저 위에 해 놨는데 거기 보면 불을 켜서  아주 보면 좀 엄위하게 보입니다. 밤으로 환하게 켰는데 가운데 시커멓이  어둠침침하이 뭐 있어서 그 안에 똑 신이 들었을 것같이 그렇게 보여질 만치  어둠침침한 그것을 보고서 제가 그때 한번 역부러 한번 갔습니다. 간 것은  '이것이 뒤에 우리를 시험할 그런 무슨 신사 참배와 같은 그런 것도 될는지  모른다. 내가 미리 한번 가 봐야 되겠다.' 오늘에는 자유로 들어갈 수 있지마는  언제는 강제로 '거기에다 절하지 안하면 너는 죽인다.' 하는 그런 일로도  하나님이 만들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저것이 언제 또 그런 일 안 되느냐?'  무슨, 무슨 일로써 우리를 시험하는 그런 일이 있을는지 모른다 그거요.

 이 전쟁이나 이런 환난 저런 환난의 모든 종류의 것에서, 어려운 멸망에서  우리를 구출할 때에는 요거 꼭 알아야 됩니다. 구출할 때에는 '저가 나를  사랑함으로 내가 저를 건지리라.' 다니엘이 사자 굴에. 다니엘이 그 모든 전국이  죽일라고 하는, 죽일라고 하는, 말하자면 학살이지요. 다니엘을 그렇게 모해해  가지고서 살해할라 하는 그 살해에서, 다니엘을 살해할라 하는 그 살해에서  다니엘이 어떻게 구출을 받았든가? 다니엘을 살해할라 하는 그 살해에서  다니엘이 어떻게 구출 받았던가? 구출 받은 것이 주님을 사랑함 그것 때문에  구출 받았습니다. 만일 주님을 사랑치 안했으면, 주님을 사랑하다니? 사랑하는  게 뭐이라 했지요? 첫째가 사죄를 입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 하지 안했오? 사죄를  입고 사죄를 누리는 거, 그러면, 나는 다시 범죄할 수가 없다 하는 고 사죄를  입은 거, 범죄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범죄하지 않겠다는  그것으로써 다니엘이 살아났습니다. 구출됐어. 또 자기주장대로 움직이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하나님에게 피동되고 진리와 영감에게 피동될라는 그것이  들어서 다리오 왕에게 말했으므로 구출됐습니다. 이러니까, 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고. 하나님을 모시는데 하나님을 배반하는, 하나님의  법칙을 떠나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거.

 그러면, 주님을 사랑함으로, 다니엘이 주님을 사랑함으로 정죄받아서 사자  구덩이에 들어갔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다리오 왕이 구출할라 할 때에 구출을 받지 못했고 정죄받아 사자  구덩이에 들어갔고, 사랑함으로 모든 백성들에게 매장이 됐고 사랑함으로 다리오  왕의 구출도 받지 못하고 사자 구덩이에 들어갔고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니엘을 거기에서 구출해 냈기 때문에 다니엘의 원수는 다 멸하게 되었고  다니엘은 다시 변동 없는 든든한 구출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어떤 개인 경우나 단체 경우나 시대 경우나 사회  경우나 국가적인 경우나 어떤 경우든지 고때에 꼭 주님을 사랑하는 고 사랑  주님을 사랑하면 구출되고 사랑 안 하면 거기에서 구출되지 못 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꼭 외통목으로 꼭 몰아넣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때에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만이가 나를 구출할 수가 있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는 무슨 일 있느냐 하면은 그럴 때는 주님을 사랑 하지  못하게 하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네가 죽는다. 주님을 사랑하지 안 해야만  사랑하지 않으면 산다.' 주님을 사랑하지 안하면 산다는 그것을 뭐 몇 십 가지를  주고서 자꾸 주님만 사랑만 안 하면 너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만 내놓으면 그만  산다, 그러면 그게 사죄 내놓으라 말이요, 칭의 내놓으라 말이요 화친을  내놓으라는 말인데, '요것만 내놓으면 산다.' 그럴 때에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고것을 내 놓음으로써 이제 희망 없이 죽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고때에 요 주님을 사랑하는 요 사랑을 놓지 안하고-주님을 사랑하면  죽어도 삽니다. 죽어도 삽니다. 죽어도 산다? 그러면, 죽었는데 뭐 살아? 죽어도  산다는 말은. 그 사람이 생명이 끝날 시간이 됐으면 끝이 납니다. 생명이 끝날  시기가 되면 끝이 나는데, 이미 늙어서 죽고. 병들어 죽고 쇠잔해 죽을 그 몸이  이미 죽을 시간이 돼서 죽는데 주님을 사랑함으로 죽음받기 때문에 그것은  순교기 때문에 죽으나 영광스러운 부활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구출은 꼭 주님을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그것을 똑 양쪽 귀로를 놓고서, 양쪽 귀로가 딱 우리 앞에 놓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느냐 주님을 이제 버리느냐? 사랑하느냐 버리느냐 요 두 가지가 귀로가  있을 때에 주님을 사랑하는 고 길은 온 세상 지식으로 볼 때에 자멸하는 길이  되고, 또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을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보면 그것은 전부 다  사는 길이 되고 요렇게, 그래 되니까 우리가 고때에 지식을, 세상 지식을  가지고서 그걸 비판하고 평가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를  해야 되지, 세상 지식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하면은 전부 사는 길은 그놈들은 다  죽는다 하고 죽는 길은 산다 하고 이렇게 세상 지식은 그래 가르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저 '어째야 될꼬? 이래야 옳을까 저래야 옳을까'  그렇게만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이렇게 해야 옳으냐? 저래야 옳으냐? 우리 그  비판과 평가를 하기 전에 뭐부터 비판해야 됩니까? 옳은가, 이 길로 가야 되나  저 길로 가야 되느냐 그거 비판하고 평가하기 전에 우리가 그보다도 먼저 해야  될 일이 있는데 먼저 해야 될 일이 뭐입니까? 먼저 해야 될 일이 뭐입니까? 자,  알고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알고 있는 사람. 먼저 해야 될 일이  뭐인가? 한번 대답해 봐. 뭐라 하노? 뭐라 하지? 뭐라고 해? 전달 좀 해 봐. 예?  아! 주님을 사랑하는 거? 그거 아무 데나 들어다 붙이면 또 안 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면 다 됐어요, 됐는데,  먼저 할 것은 뭐이냐 하면은 지식 선택입니다. 지식 선택이 중요하다 그  말이오. 내가 이 세상 인간 지식으로 이걸 한번 비판해 보나 하나님의 성경  지식으로 비판해 보나 지식 선택이 문제라. 인간 지식으로 선택하면 하나님이  산다는 것은 인간 지식은 죽는다 하고, 하나님이 죽는다 하는 것은 산다 하고  이렇다 그 말이오. 그 배암의 지식, 에덴동산에서 안 그랬습니까? 하나님은  죽는다 하는데 배암이 와서 그라면 네가 존영하게 된다 산 다 이렇게 말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지식 선택을 먼저 하지 안하고 인간 지식 가지고 자꾸 생각해  보면 생각할수록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죽는 길이 자꾸 답안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해야 되기 때문에 지식부터 '내가, 자 이 시간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살까? 어떻게 해야 내가 구원이 될까' 하는 걸 생각할  때에, '자, 한번, 이래야 될까 저래야 될까?' 그 사람은 벌써 마귀에게 빠져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게는 배암의 지식도 와서 있고 하나님의 지식도 와  있기 때문에 이 배암의 지식이냐 하나님의 지식이냐 두 가지 지식 가운데에 어느  지식을 내가 채택해 가지고서 어느 지식으로써 이것을 비판하겠느냐 이래 가지고  배암의 지식으로 비판하면 정반대의 답안이 나오기 때문에 배암의 지식은 물리쳐  버리고, 인간지식은 전부가 배암의 지식입니다. 신구약 성경 외에는 전부 배암의  지식입니다.

 이거 지금 말하면 막 욕을 하고 뒤에. 앞으로 이거 순교, 이것도 순교하는  하나, 재료가 될는지 몰라요. 뒤에 '네 이놈, 네가 임마 그 모든 인간. 신구약  성경 외의 것은 다 배암의 지식이라고 했지?' 이래 가지고서 '네가 이놈이라기  때문에 죽인다.' 할는지 몰라. 그래 죽으면, 그 말 하다가 죽어야 그 죽음이  가치가 있지. 안 그렇습니까? '인간 지식은 배암의 지식이다'-그렇게 바른 말  함으로써 죽임을 당한다면 그 사람은 모든 지식을 다 능가한 사람이고 모든  지식을 다 접견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모든 지식이 영원히 자기의 종이  되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하나님의 지식을,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이 뭐라고 말하노  보자. 내가 여기에 대해서 성경 말씀 가지고 따져 보자.' 성경 말씀 가지고 따져  보니까 십자가가 분명히 사는 것이요 영광인데 인간 지식으로 생각해 보니까  미련하고 어리석은 길이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때에 성경 지식을 가지고서 비판을 하면서 내가 이 어려움에서  구출당할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구출당하는 길은 딴것 아무것도 없다. 주님을  사랑하는 거 외에는 구출 안 된다. 왜? 내 힘으로 내가 구출할 것 같으면 말 할  거 없지마는 내 힘으로는 구출될 수가 없기 때문에 전지전능자가 구출할  수밖에는 없는 일인데 전지전능자의 구출을 받으려고 하면은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당신을 사랑해야 된다.

 당신을 사랑하면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냐?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당신은 크시고 나는  작기 때문에 작은 내가 당신을 사랑, 당신이 날 사랑하듯이 그래 사랑할 수는  없다. 나는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신은 나를 죄에서 구출해 나를  깨끗케 했지마는 나는 하나님을 깨끗케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깨끗케 하는  것이 사랑인데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깨끗케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지 안해요?  당신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이요, 우리는 받는 것이 사랑이고 당신은  주시는 것이 사랑이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내가 당신의 구출을 받을려고 하면 당신을 사랑하는 이 외에는  법칙이 없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날 사랑하는 그 사랑을 내가 받고 그  사랑을 버리지 않는 거, 그거 받아 가지고 간직하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당신이 날 사랑하는 그 사랑을 내가 받아 가지고 간직 하고 버리지 않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이 날 사랑하시는 것을 내가 받아 가지고 버리지 않는 것이 뭐이냐?  받은 게 뭐이냐?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내가 받고 요것을 버리지 않고 입고 있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을 사랑하면 당신이 날 구출한다  했는데 구출하면 당신이 구출하는 것은 어떻게 구출하는 것인가? 다니엘을  다리오 왕이 사자 구덩이에 집어넣을라 할 때에 '네가 기도를 한 달 동안만  기도하지 말아라. 그 라면 내가 너를 살려 준다' 할 때에. 다리오 왕이  '기도하지 말아라. 그라면 내가, 이놈들이 모두 다 모해한 그것을 내가 다  복수하겠고 너를 구출 하겠다' 그래서 다리오 왕이 구출하는 그 구출, 그 구출을  받는 것이 구출인가, 다니엘이 이 세 가지를 벗지 않기 위해서 사자굴에  들어갔으니까 다니엘은 죄에서 구출 받았고, 불의에서 구출 받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배신하는 거기에서 구출받은 그 구출이니까, 구출이니까 다니엘은 어느  구출 받았는가? 다리오 왕의 구출을 받았는가 하나님의 구출을 받았는가? 어느  구출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구출을 받았다 말이오. 하나님의 구출.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출하시면 구출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가? 이  구원을 잘 몰라 놓으면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는데 멸망이라고 생각을 하고서  마귀란 놈이 구원이라 하는 그리 기어 들어가기 쉽다 그말이요. 하나님이  구출하는 것은 어데서 구출합니까? 세 군데서 구출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우리를  구출하는 것이요, 불의에서 구출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배신하는, 하나님을  배반하는데에서 우리를 구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배반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또 불의에서 구출해서 내가 하나님으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고, 또  하나님의 법칙을 내가 어기지 안하고 하나님의 법칙은 진리인데 진리 안에 있고  이라면 누가 죽이겠습니까?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믿는 자는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속에도 죽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죽지 않는 자가 있고 죽는  자 있는데 죽지 않는 자 있는데 죽지 않는 자로 사는 사람도 있고. 매일 죽지  않는 자로 사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다 같이 밭에서 일을 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했습니다. 이러니까, 다 같이 밭에서 농사  짓지마는 농사 지은 그 모든 것이 다 하늘의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면류관의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그거요.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주님이 우리를  구출하는데에 어떻게 구출하는 것인가 그것을 말했고, 우리가 여러 가지 앞으로  어떤 일이 오든지 그 모든 멸망에서 구출을 받는데는, 원수에게서 구출을  받는데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거 외에는 다른 구출을 받는 길이 없다 하는 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요라면 잡아서. 이제는 핑계는 못 해. 이만하면 다 알았기 때문에 요래 알면.

알고 하면 돼요.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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