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영광의 차이-복음의 밭에

 

1988. 11. 30. 수밤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40절∼44절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여게 부활에 대한 영광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우리 택한 사람들은 다 부활은 받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부활은 받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끝나는 게 아니고 한번 죽었다가 다시 부활은 어떤 사람이든지 다  부활은 합니다.

그러면 부활을 하는데, 불택자들은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공심판을 거쳐서  지옥을 가게 되고 또 택한 자들은 사심판 그리스도의 심판을 거쳐서 영원 무궁한  하나님의 대우 곧 보응을 받게 됩니다.

이래서 영이 구원 얻어서 하늘나라 가는 것은 꼭 같습니다. 영이 구원 얻는  것이나 영생 얻은 것이나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된 것이나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는 것이나 이런 것은 다 같지마는 부활해서 하늘나라 간 사람으로서 영광은  크게 차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가기는 꼭 가지마는 그 영광은 말할 수 없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영광은 그 사람의 신앙 행위대로 영광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 행위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대우인 부활의 영광도  실력도 존귀도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40절에 약간 말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는데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는데  하늘에 속한 자로 말해도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했습니다."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그러면 여러 종류의 형체가 있는데 형체마다, 여러 종류의 형체가 있는데 그  형체마다 다 가치도 능력도 영광도 각각 다른 거와같이 이렇게 부활한 자의  영광도 다르다 그렇게 여게 말씀을 했습니다. 말씀하면서 땅에 속한 수많은  형체가 있는데 그 형체의 가치가 각각 다릅니다.

 조그만한 뭐 모래알 하나 같은 거는 그거야 있거나 없거나 사람의 발로 밟아서  뭐 지나가 버리고 그렇게 가치가 그렇지마는 형체라도 뭐 백두산 그것도 한  형체입니다. 또 지리산도 한 형체입니다. 또 제주도라면 제주도라는 섬 하나  그것도 형체입니다. 반도로 되어 있는 이 한국으로 말해도 이것도 하나의  형체입니다. 또 바다에 있는 모래알 하나도 한 형체입니다 또 하늘에도 해도  하나의 형체요 달도 하나의 형체요 모두 별마다 그 하나의 형체입니다. 형체라  말은, 형체. 모양의 모든 그 본체를 다 가지고 있으니까 형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땅덩어리도 우리가 보는 저 별 한 개와 같은  그런 형체입니다. 그러면 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땅덩어리보다도 몇 배나  몇십 배 몇백 배 큰 것도 있습니다. 하늘에도 우리가 보는 대로의 태양이라는  저것도 한 형체입니다. 태양, 해. 그것도 한 형체고 달 저것도 한 형체인데,  그러면 해 한 개의 형체의 그 영광과 땅에 있는 조그만한 자갈 한 개의 형체의  영광과 또 해변가 그 모래알 한 개 있는 한 개의 형체, 그것도 형체인데 그  영광이나 가치가 얼마나 차이 있는가?  권위도 차이 있고 가치도 차이 있고 영광도 차이 있고, 영광이라는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덕을 많이 봤을 때에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영광을 돌립니다. 해의 혜택을 많이 입기 때문에.

그렇지마는 뭐 냇가에 많은 그 자갈, 조그만한 자갈 한 개 거게 대해서야 누가 그  영광을 돌리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부활한 자의 영광이 이렇게  크게 차이 있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다른 발로 발하면 예수님의 대속을 다 받아 가지고 예수님을  믿기는 믿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의 행위는 이렇게 차이가 많다 하는 그것을  말하는 거와 같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래알, 땅에 있는 모래알 그거 전부를  다 합해 봤자 그것이 하늘에 별 하나를 당하겠습니까 해 하나를 당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사람의 억억만 명이 아니라 뭐 억억억억억만 명의  많은 사람들의 행위 한 그 행위의 가치를 다 전부 총합해도 한 사람의 행위의  가치를 당하지 못할 만한 그런 차이가 있다 하는 것을 여게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해의 영광도 다르며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 형체가 각각 있는데 땅에 속한  형체의 영광도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의 영광도 각각 다르다. 그러면 땅에 속한  형체에 우리가 크나 작으나 수많은 형체들이 있는데 그 형체와 형체의 그 가치는  심히 차이 있다 하는 것을 여게서 예를 들어서 몇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이 다 같이 예수 믿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의 그 행위가, 행위의  가치라든지, 행위의 권위라든지, 또 그 행위로 다른 것들이 유익을 보는  것이라든지, 영광이라는 것은 그것으로 유익 본 것이 많으면 유익 본 것들이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해를 봤으면 해본 것들이 다 욕질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영광과 욕은 대조의 것인데 그 혜택을 본 것들은 영광을 돌렸고 감사를  돌릴 것이고 혜택을 보지 못하고 아주 손해를 봤으면 욕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각각 이렇게 저렇게 살고 있는데 산  생활에 털끝만한 것도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요한계시 20장에 보면  행동록이 있는데 행동록에 다 기록된다. 행동록에 기록이 된 그대로 심판을  받아서 영원 무궁의 보응을 받게 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고 이 말씀의 권위를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의 이 사실을 인정치  아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오늘은 자유가 있습니다.

 마음대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일도 하고 그러하나 그 하나의 생각  하나까지도 뜻 하나까지도 잠깐 자기 마음에 지나간 그 모든 흔적까지도 다  하나님의 행동록에 촬영이 되든지 녹음이 되든지 전부 행동록에 다 기록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기록이 되는 줄 알고 말도 하고 행동도 해야 되지 이것도 모르고 말도  하고 행동도 하는 그 사람은 자살 행위를 하는 사람이요 그 사람은 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 대해서는 우리가 불쌍히 여기고 가련히  여겨서 위해서 기도하고 어짜든지 그 사람을 구출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우리가  기도할 것뿐이지 어떠한 무슨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서 그를 미워하거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 망할 줄 모르고 하는 것이고 저 완전히 영원히 멸하고 대대손손이 멸할 줄도  모르고 하는 것 그것을, 저 망할 줄 모르고 대대손손이 망할 줄도 모르고 말하고  있는 그것을 갋으면 갋은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땅위에 있는 동안에는 어짜든지 부활한 그 부활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말도 하고 행함도 하고 모든 마음도 생각도 움직여야 되지  이것을 생각지 않고 마구 사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게 똑똑히 기록해 놓지 안했습니까? "하늘에 속한" 형체라 말은 내나 모양이라  말이오. 이것도 요것도 형체요, 또 요 종이 요것도 요대로 형체요, 또 요것도  형체요, 뭐 요것도 형체요 다 이거 형체 아닙니까?  그러면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하늘에 속한 것은 더 달 해 그런 것이 하늘에  속한 형체 아닙니까?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땅에  속한 형체는 바위도 형체, 이 집도 형체 또 냇물도 형체, 돌도 형체, 모래도 형체,  세밀히 보면 흙 그것도 조그만한 형체들이 주 모여 가지고 흙이 된 것입니다.

전체는 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그러면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우리도 지금 볼 때에 다 영광이 각각 따로 있지 않습니까? 달은 우리에게 밝은  빛을 보여 주기 때문에 달을 보고 다 기뻐하고 달을 보고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달을 보고 절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또 달보다는 해가 우리에게 베푼 혜택이 더  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달보다는 해를 더 우리가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뭐 운무성이라고 '칠월 칠석에 은하수 내려간다' 하는 그게  다 별인데, 운무성이라는 별들인데 그런 별이야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뭣 압니까?  그러나 별 가운데도 새벽별이라고 장경성이라고 새벽에 새벽별 나오는 그런 별은  우리가 그 혜택을 봅니다.

 시골에서는 어두울 때에 샛별이 떠오르면은 훤하게 밝아서 많은 도움을 봅니다.

또 그때는 시계가 없으니까 시간도 그걸로써 짐작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두  자기에게 유익했으면 영광을 돌립니다.

 이래서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영광이라 말은 그것이 다른 것에게 얼마나 필요가 있었으며 얼마나  유익을 끼쳤으며 얼마나 다른 것에 도움을 줬으며 다른 것을 유리되게 했는가  하는 그런 것으로써 영광이 됩니다.

 여기, '영광이 따로 있다' 영광이라고 말하지 않고 싸우는 힘, '독이 얼마나  있었으며' 하면 그것은 다른 것을 해하는 독인데, 독침 같은. 다른 것을 해하는  독인데 여게는 독이라고 하지 않고 영광이라고 이렇게 모두 자꾸 말했습니다.

땅에 속한 자의 영광,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

 우리가 이런 나무도 보면 아주 과실나무가 있어서 과실이 많이 열면 그 과실을  모든 사람이 따먹게 되면은 과실나무를 욕하지 않고 '그 과실 참 좋다. 그 과실  많이 연다. 잘 가꿔야 되겠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꾹꾹 찌르는 가시나무 같은  이런 거는 보고 '아이구 이 가시 이거 흉악하다. 아주 가시 그것 참 흉악하게  생겼다 가시가 오부당하게 근방에 가지도 못하겠다.' 욕을 합니다. 누가 영광  돌리겠습니까?  여게 영광이라고 말하는 이것을 우리가 깊이 하나 좀 깨달을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부활의, 부활이 되는 그 부활에 대해서 말할 때에 영광으로만 꼭  말했습니다. 이거는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 중생된 사람이라면 벌써 땅위에 사는  동안은 뭐 하려고 살고 있느냐? 다른 것에게 유익을 끼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보임으로 다른 것들이 다 좋아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그런 혜택을 입혀서  제야 알든지 모르든지 다른 것들에게 혜택을 입혀서 유익을 끼치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기독자들이 땅위에 사는 생애라 하는 것을 여게서 또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예를 들어서 말하면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이러니까 영광이 다르다 그 말은 가치가 다르다는 말과 같은 말이요 권위가  다르다는 말과 같은 말이요, 그것이 다른 것들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유익해서  필요로 도움을 주고 유익을 준 것이 다르다 그런 말과 같은 말입니다.

 42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우리가 죽었다가 뒤에 다 살아나기는 살아나는데  살아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죽은 자의 부활도' 다 살아나기는 살아납니다.

우리가 살아나 가지고 다 천국은 갑니다.

 우리는 다 택한 자기 때문에 누구든지 택함을 입고 중생된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가지고 다 하늘나라 가기는 갑니다. 안 가는 사람 하나도 없고,  자기가 암만 하늘나라 싫어서 지옥을 갈라 해도 못 갑니다. 하늘나라 다 가기는  갑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우리 기독자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에  살아나기는 다 살아났는데 살아난 자도 이와 같다. 이와 같다. 뭐와 같다  말입니까? 이렇게 영광이 차이 있는 거와같이 죽어 가지고 살아나기는 같이  살아나는데 살아난 자의 그 영광이 이렇게 차이 있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자기가 땅위에서 뭐 육십 년이고 칠십 년이고 이렇게 백  년이고 이래 살아도 다른 사람에게 혜택은 보이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친 사람이 있고,  또 혜택을 보이기는 보인다 할지라도 그 혜택 보인 것이 한 시간 있다가  없어지는 혜택도 있고, 일 년 있다가 없어지는 혜택도 있고, 세상에 늙을 때까지  있다가 늙어 죽을 때는 그만 없어지는 혜택도 있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혜택도  있기 때문에 그 혜택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도 그것도 세상에서 없어질 그 혜택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감사하지마는 세상을 떠나서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그  혜택에 대해서 감사를 안 한다 그말이오.

 왜 안 하느냐,? 세상에 있을 때에는 감사할 만한 그런 혜택이었지마는 그것이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일단 딱 숨 끊어지고 보니까 아무 소용없어. 아무 소용없는  혜택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감사하지마는 부활할 때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할 때에 감사하는 그 혜택이라면 그것은 없어지지 아니할  혜택이니까 그 혜택의 영광은 영원한 영광이고 또 세상에서 혜택을 입혀서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덕을 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감사했지마는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 혜택 본 것이 하나도 효력이 없고 그까짓 거 다 없어지고 마니까 그  혜택 본 것이 없어지니까 감사의 영광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땅위에서 사는 동안에 남에게 혜택을 보이고 사는 것도 있고  피해를 가해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사는 것도 있고, 또 혜택을  끼치고 사는 데도 이 세상에 있다가 없어질 그런 혜택을 끼치고 사는 것도 있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그에게 유익되고 좋은 그런 혜택을 끼치는 것도  있으니까 영광도 일시 영광도 있고 영원한 영광도 있다 그거요.

 대통령되면 뭐 영광이라고 많이 그래 쌓지마는 OOO대통령도 영광이 있지만 그  영광이 얼마 안 가서 나중에는 그 영광이 다 없어져 버리고 O대통령도 그  영광이 없어져 버리고 또 O대통령도 영광이 다 없어져 버리고, 우리나라는  어쩐지 권세 있는 사람들이면 다 영광이 없어지고 말로가 비참하고 불쌍합니다.

이것을 지금 모든 사람이 분석할 것입니다. 분석을 해서, 그러면 이거 분석하니까  처음에는 몰랐지마는 세월이 지나면 나중에 다 알고 난 다음에는 '어라 이거  무가치한 일이다. 이거는 무가치하다 이거 가치 있다.' 거게서 인제 가치 평가를  사람들이 점점 바로 하게 됩니다.

 이래서 성경이 이게 있기 때문에 말하기를, '만일 네가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골로새서 3장 1절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랬습니다. 땅의 것을 표준해서 암만 해 봤자 그것이 소용이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땅에서 없어질 일을 해도 없어질 일이라도 우리는 하는 목적과  욕망이 어데 있는고 하니 없어질 그것이 없어질 것이지마는 없어질 그것이  없어지기 전에 없어질 그것 가지고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기 때문에 그 공적이 그것이 남아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계산을 하고 살아야 됩니다 '사람이 그렇게 자꾸  따져서 계산하고 살면 너무 그거 참 아주 째째하다 인색하다' 그렇지만 그거  아니오. 우리는 꼭 계산으로 살아야 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재에 독재를 당해  가지고 그분에게 절대 독재 당해서 자유가 하나도 없는 자로서 그분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그분에게 독재 당해서 그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고 이렇게  사는 자이면서, 그분의 명령을 따라 사는 자이면서, 그분의 명령은 둘이 있는데  신구약 성경의 특별 명령인 이 명령이 있고 또 자연 명령 일반 명령인, 이 자연  명령이라고 하면 이 모든 물리, 물리, 물리 그게 자연 명령입니다.

 이래서 그것을 가리켜서 보통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자연 명령이라 말은 곧  하나님이 물리를 주셨으니 곧 과학입니다. 그러기에 이 모든 자연법이라는 그것이  하나님이 보통 계시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그 법에 맞춰 가지고 우리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의 이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살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눈이 좁습니다. 너무 보는 면적이 좁습니다. 좁아서,  좁을수록 그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요 좁을수록 실수를 많이 범하게 됩니다.

 이래서 마귀란 놈은 어쩌든지 우리를 좁게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시간으로  말해도 좁게 만들려고, 이 사람이 그래도 '나만 볼 게 아니라 내가 늙을 때 어찌  되나?' 이 시간을, 젊어 있으면서 늙어 때까지를 이렇게 생각하려 하면 마귀란  놈이 와서 '늙어 어찌 될지 아나? 우선이지. 우선 보고 있지.' 이래 가지고 자꾸  현실만 보라고,  '하, 내가 그전에 어릴 때에 이렇게 저렇게 자랐고 어떤 사람과 인연을 가졌고  그런 혜택을 입었는데,' '그거는 뒤에 하지 우선 현실에 맞춰야 될 것 아니가?'  자꾸 마귀란 놈은 시간으로도 좁게 말합니다. 이거 이해가 돼요? 시간으로도  어쩌든지 마귀란 놈은 우리를 좁혀서 넓은 많은 시간을 보지 못하게 하고,  또 공간도 넓은 걸 보지 못하고 자꾸 좁힙니다. 그만 방밖이야 어찌 됐든지  방안에서, 방안에서. 또 방안에 우리 마당에도 보지 않고 마당에서는 우리  집안에야 어찌 됐든지 집안보다 널찍한 이 사회에서, 사회보다 더 넓은 이거 모든  국민들의 여론, 또 이 세계, 그거 넓혀 볼 줄을 모르고 자꾸 좁아지게 되면 굉장히  좁아지는 것입니다.

 나중에, 좁아지게 되면 다른 것 다 잊어버려요. 다른 것 다 잊어버리고 인간의  낯짜구만 딱 봅니다. 여인의 아름다운 낯짜구만 보고 '하, 쌍꺼풀이 졌다, 코가  어째 생겼다.' 낯짜구만 봅니다. 남자도 다 낯짜구 몸뚱이 고것만 봅니다. 또 그거  보다가는 더 좁게 보요. 더 좁게 봐 가지고 그 좁아지고 좁아지고 그래 가지고  범죄 가운데 빠지고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우리는 넓게 좀 봐서 '나는 살고 있지마는 죽는다', '나는 살고 있지만  죽는다.' 살고 있으면 죽음이라는 것도 좀 봐야 되겠어. '죽으면 어찌 되느냐?' 또  죽음만 볼 게 아니라 죽고 난 다음에 반드시 부활합니다. 반드시 살아납니다. 또  부활도 봐야 됩니다. 부활도 봐야 되고 그러면 부활을 하면 어찌 되느냐? 부활한  자의 영광은 이렇게 크게 차이가 있다고 말씀을 했는데 모래알 한 개의 영광이나  가치와 해 한 개의 영광이나 가치가 차이가 얼마나 차이 있는가? 억억억억…만  배라 하면 될까요? 아직 멀었어. 뭐 하루 종일 억억억억억… 이래도 모자라.

 이렇게 차이 있는 것처럼 다 같은 사람으로 한 토막 세상을 살고 가는데 산  자치 그 생애 가치가 부활할 때에 이렇게 차이가 있다 하는 이것을 생각을  하면서 또 살아야 되겠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경거망동을 하지를 아니합니다.

 이래서 42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어째야 된다 말이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이제 정신 차려 산다 그말이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어쩌라 말이요?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인제 심고 추수하는 것 말합니다. 심고 추수하는 것.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추수하고 또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추수하고, 또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사나니" 강한 것으로 추수하고,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사 사나니"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추수한다 그말이오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우리가 육신의 이 형편이 육신의 이  형편이 있는 거와같이 육신의 형편이 있는 거와같이 신령한 사람의 형편도 꼭  같이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여게서 심는 것을 몇 가지로 심습니까? 손가락으로? 심는 거를 몇  가지로 심는다 했습니다. 저 뒤에는 손도 없습니까? 모르기도 모르고 손도 없어?  한번 손 들어 봐요. 뒤에 온 사람들 점잖해도 소용 없어! 무슨 점잖이야 점잖이!  그까짓 거 똥 같은 놈의 점잖! 송장 같은 놈의 점잖! 무슨 점잖이야, 점잖이?  하나님 말씀에서 알기 위해서 가르치기 위해 그러면 겸손히 알려고 애를 써서  이렇게 알려고 배우려고 애를 써 가지고 이래야 되는 것이지 교만해 가지고 뭐,  몇 가지로 심는다, 몇 가지로 심는다 알아요? 몰라. 너는 아는 체 해도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심는 데 대해서 한번도 '심어 보자' 하는 그런 생각 없이 지냈어.

나이가 삼사십, 사오 십이 돼도 한번도 심은 일이 없어. 그렇게 비참해. 뭘 아는  체 해 가지고 손가락 안 들어. 자, 한번 헤아려 봅시다.

 이래 놓으니까 이래 놓으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알고 주님을 크게 알고  하는 사람들은 왕 앞에는 떨지 않고 죽음 앞에는 떨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는  벌벌 떨면서 이래 하지마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하는 격으로 인간의  거석은 뻘뻘 떨어도 하나님은 뭐 '하나님이야 그거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 그까짓  거야.' 이렇게 만홀히 여기는 자들.

 이러니까 이 말씀하면서 자, 한번 손 한번 들어서 한번 표시해 봐라 이러니까 ,꼭  어린 아이들 모양으로, 모욕스럽고 아니꼬와서 서부교회 못 나온다.' 나오기  .싫거든 말아라! 가! 필요 없어. 그런 교만한 자는 필요 없어. 교만한 자는 여기 와  있어 봤자 구원이 안 돼! 뭐 저는 죽는 날까지 바른 말하고 외치고 갈 것입니다.

 오늘 내가 좋은 소식 들었어. 누가 떡 투표지에다가 구멍은 똑 쌀내끼 구멍만치  뚫고 그거는 찬동한다고 뚫고 거게다가 쓰기를 '십일조를 종이에 배껴서 다  반포해라.! 또, 또 뭐더라? 또 '찬송가를 단독 편집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단이라고 발목 잡히기 쉽다' 또 하나는 '저 사택 지은 것 저거 좀 밝혀라.' 이래  놨어요.

 그래도 그거 요거 내가 청문회 연 거 보고 이거 뒤에 가서 나도 내가 죽고  나든지 하면 뒤에 인제 이런 일이 있을 터이니까 이걸 요번 공동의회 때는 꼭  밝혀 가지고 온 교인들에게 여게서 결의를 지워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울구접자치기로 그런 말 하나 했으니까 그 말 가지고 이런 말이 있으니 이거  결의 안 할 수가 없다. 여기 결의해서 아니라면 아니라 하고 그거라면 그거라  하고 결정을 지워라.'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런 거는 좋아요. 밝히는 것 좋아요. 자꾸 밝히는 사람은 돕는 사람이오. 왜?  그거 잘못된 것 있으면 자꾸 고치면 좋지 안해요? 그러나 잘못된 것도 설설  덮어서 이렇게 덮어두는 그것이 속이게 하는 것이라 그게 딱 함정 놓은 것이기  때문에 푹 빠지면 죽지 안해요? 그거 좋은 건데 어쩌든지 우리가 교만하지 말고  겸손히 배워야 돼요. 여기 서부교회 교만한 사람은 서부교회 와서 못 있습니다.

속에 아니 꼬와서 구역질이 나서 못 있어요, 구역질이 나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자면 구역질이 안 나지! 하나님을 똥같이 알기 때문에 구역질이 나지!  하나님을 그렇게 업신여기기 때문에 구역질이 나! 세상에 대통령이 말하면  구역질이 안 나지마는 하나님 말씀이니까 구역질이 나거든. 고쳐야 돼요. 안  고치면 망해. 망하지 말라 하는 거라. 망하라고 저주하는 게 아니고. 망하지  말라고 하는 거라. 진작 망하지 말고, 그까짓 거 몇 닢푼치 안 돼, 뭐. 건강하다고?  건강이 무슨 소용 있어? 자녀가 주렁주렁하다고? 소용없어 돈이 있다고?  소용없어. 팩 틀면 그만 병신도 되고 미치괭이도 되고 오만 것 다 돼. 무슨  가치가 있어? 그런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큰소리 뻥뻥 치지. 뭐 여게서 들어  내면 뭐 들어내면, 들어내면 들어내는 대로 들어내면 하나님이 가라 하는 대로  가지. 뭐 서부교회서 들어내면 뭐 어데 세상 것 모양으로 그만 떨어질까 싶어? 안  떨어져. 하나님은 계시기 때문에, 그까짓 거 목사노릇이야 하든지 안 하든지  하나님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면 족하지 꼭 목사를 해야 되는 것 아니야.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말지. 이러니까 이거 좀 겸손해야 돼요.

 자, 봅시다. "부활도 이와 같으니" 손가락 꼽아요.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자, 손가락으로 몇 가지? 저 뒤에도 한번 들어  봐요. 여게 오면 일 학년 모양으로 그래 해요. 하나님 앞에 우리 일 학년이라.

요렇게 해야 돼져요. 그래, 네 가지 심고 추수한다. 요게 우리 할 일이라. 네 가지  심고 추수할 것.

 네가 교만하고 뭐 돈푼이나 있다고 건강하고 권세나 지위가 있다고 하는데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가련하다. 너 심은 게 뭐꼬? 썩을 것으로 심어야 되고, 욕된  것으로 심어야 되고, 약한 것으로 심어야 되고, 혈육의 몸으로 심어야 되고,  이래야 추수가 있지. 그러면 심는 것이 어떤 게 심는 것이며 추수가 어떤 게  추수하는 것인가 고것만 여러분들에게 그저 알려 주면 여러분들이 가서 자꾸  깨닫고 이래 해야 되지 뭐 여게서 말한다고 안 돼요.

 그러면 썩을 것, 또 욕된 것, 약한 것 그거는 다 이 세상에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그런 거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게 썩을 것들이오. 세상을  떠날 때에 가져가지 못하고 세상에서 죽을 때에 다 없어질 그런 것은 다 썩을  것이요 또 욕된 것이요 약한 것이요 혈육의 것들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몸뚱이도 썩을 것. 명예도 썩을 것, 기술도 썩을 것, 권세도 썩을 것, 예술도 썩을  것, 지혜와 총명도 썩을 것, 돈도 썩을 것. 건강도 썩을 것 아름다운 미남 미인도  썩을 것, 좋은 스타일도 썩을 것, 자기 지혜 총명도 썩을 것, 기술도 썩을 것, 또  -욕된 것이라- 욕된 것은 뭣이 욕된 것인가? 욕된 것은, 욕된 것은 무엇이 욕된  것인가? 가진 저는 좋다 하지마는 다른 사람은 싫어합니다. 욕된 것이라 말은  자기에게 영광되지 못하는 것들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다 이 세상에서 있다가  세상 떠날 때는 다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에 그거는 다, 욕된 것이요 수치스러운  것들입니다.

 욕 안 얻어먹는 게 하나도 없어. 욕 안 얻어 먹는 게 하나도 없어. 노벨상을  받았으니까 그 사람들 칭찬하는 줄 알지요? 노벨상 받는 그것도 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벨상 받는 것도 욕하는 사람이 있어요. 칭찬 사람이 있는 동시에  욕하는 사람이, 욕 안 얻어먹는 게 하나도 없어. 다 욕거리라. 욕거리 아닌 게  하나도 없어.

 또 약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어. 그게 뭐 죽음을 이기나요, 늙음을 이겼나요?  그만 다 없어지니 그거 아무 세력이 없어. 죽음 너머도 못 가지 백 년도 못 가지,  천 년도 못 가지, 그까짓 기 약한 것 아닙니까? 다 약한 거라.

 혈육의 것 혈육의 것이라는 것은 이 고깃덩어리, 고깃덩어리 여게 속한 것들이라.

 이런 것들을 심어라. 심어라. 요 심고 추수하는 요것을 잘 알아야 돼요. 어데다가  심을까? 밭에다 심지. 어데다가 심어요? 밭에다 심지. 무슨 밭에다가? 하나님이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계약의 복음 밭이오.

하나님의 계약의 복음 밭. 복음 밭. 복음 밭이라 발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서 인간이 멸망에서 구원해 가지고 영생을 이루어가는, 멸망할 것이  성화돼서 하나님처럼 온전해 살 수 있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으로, 행위가 온전한  행위로, 지식이 온전한 지식으로, 모든 희망이 온전한 희망으로, 그의 모든 관련이  온전한 것으로 이렇게 갈 수 있는 게 우리들인데, 이제 이 밭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의 밭이라. 하나님의 약속의 농장이 있어요 약속의 농장. 이  세상에는 약속의 농장이 있어. 약속의 농장 그게 무슨 농장인데? 그 농장은 복음  농장이라. 예수님의 피 농장이라, 성신의 감화 감동의 농장이라, 진리의 농장이라  멸망할 인간을 구출해서 살리는 농장이라, 독사와 시랑이 같은 그런 악인을  의인으로 성자로 만드는 농장이라, 인간을 구원하는 농장이라 복음 농장이라.

하나님이 계약으로 해 놓은 계약 농장이라. 이 농장에다가 심어요. 이 농장에다가  심어. 뭘 심어? 네 가지를 심어. 심는 게 어떤 게 심는 것입니까?. 심는 것은 심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더 큰 추수하기 위해서 내놓는 것이 그것이 심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어데다 심어? 복음밭에다 심어. 복음밭에다 심어.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이 하나님의 계약 농장에다 심어. 계약 농장 복음  농장 이 농장. 계약으로 선포해 놓으신 복음 농장이라. 여게 심어. 심는 것은 어떤  게 심는 것인데? 내 것인 줄 알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심는 것은 내놓는  것이라. 가지고 있으면 심어지지 안해요. 그렇지 안해요? 가지고 있으면 심겨지지  안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던져야 되지. 가지고 있는 걸 던져야 움이 나오지.

 던지는 것도 길가 던지는 것은 새가 주 먹어 버리고 없어져 버리요. 꼭 하나를  심으면 백 배도, 육십 배도, 삼십 배도, 천 배도 돼. 나 농사 좀 지어 봤는데, 이  서숙은 한 알을 심어 놓으면 그게 몇 배나 되느냐? 삼천 배도 더 됩니다. 걸궈  놓으면 한 대궁이 나 가지고 여섯 대궁 일곱 대궁 나와요. 한 개에서 나와요.

나오는데 서숙 이삭이 얼마나 되느냐? 커다란 건 이만해요. 조그만치도 붇지 않고  이만해요. 이만한 데 그 서숙 자잔한게 이래 붙으니까 그 하나만 해도 몇천 개  돼.

 이제 작은 것 적은 것 이것을 내가 큰 추수를 위해서, 큰 추수를 위해서 바윗돌  위에 던지면 안 돼. 옥토에 던져야 돼. 하나님의 계약의 복음의 밭에 던져!  하나님이 피흘려 구속하시고 성령과 진리로 해 놓은 이 참 아주 아주 옥토야!  던져 놓으면 냉수 한 그릇만한 그만한 씨도 던져 놓으면 그 추수가 영원  무궁세계에 영광의 하나님에게 상급을 나오는 그 추수가 나와요. 내게 있는 것을  심어.

 그러기 때문에 일생 동안 뭐 수천 명 있어도 다 사기 협잡해서 다 홀켜  털어먹을 수 있고 또 그까짓 거 이리저리 하면 그거 다 어느 구멍에 모둘때기로  다 몰살시킬 수 있고, 다 할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자도,  요새 세상에 뭐 그거 요렇게 조렇게 얼마 하면 다 제 바람에 지금 날뛰어  가지고 똘똘 뭉쳐 가지고 몰살도 시킬 수 있고 다 점령도 할 수 있고 다 할 수  있어도 그런 사람들도 그거 다 안 하고, 바울 같은 사람도 '과거에 귀하게 여겼던  것을, 과거에 이제 가치로 여겼던 것을 다 똥오줌같이 여기고, 다, 여기고 그런  것을 배설물같이 여기고,'  너는 뭐하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이 농장에서, 농장에서 이거  발아해 가지고 장성해서 그 추수, 이 농장에서 추수하는 이 추수하기 위해서  과거에 귀하게 여겼던 것 학벌. 문벌, 로마의 시민권 베냐민 족속, 문벌, 이거 다  똥오줌같이 버리고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가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 같이 나는  그 부활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고난에 나도 참여하려  함이라' 이러니까 일편단심이 주님 따라서 주님과 같이 이 농장에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도 다 심기를 원한 것이 사도 바울이요.

 오늘도 이런 사람들이라. 주남선 목사님도 있는 것 다 심으려고 해서 6·25 때  다른 사람들은 피난 가고 야단인데, 어떻게 주의 이름으로 행여나 좀 생명 다  심을까 해서 꼭 오면, 공습 오는 거게 떡 와 가지고, 그 읍에 와서 있는데, 공습이  오면 주를 위해서 어떻게 될까, 또 그리 안 하면 공산주의자한테 저놈 예수  믿는다고 어떻게 할까 싶어서 공습이 오면 떡 서서 떡 서서 이래 가지고 이래  쳐다보고 이래 섰으면 인민군들이 '저놈의 자식 저놈의 자식, 안 오나 안 오나?'  사람인 줄 알면 쏘는데 저놈 때문에 우리 죽겠다고 고함을 질러 쌓아도 이래 떡  거게 섰어, 이래 가지고. 행여나 어째 그래 가지고 예수 믿는다고 이래 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순교나 당할까 싶어서. 그래도 하나님이 안 죽게 하시니까 안 죽는다  그말이오.

 손양원 목사님도 밤낮 노래가 순교 제물이오. 자기 소유 다 바쳤소. 자기 건강  다 바쳤소. 청춘 다 바쳤어 몸 다 바쳤어. 생명 마저 바치려고 죽자 껏 애를  쓰다가 마지막에 소원대로 됐어.

 그러니까 감옥에 있으면서, 그때 뭐 인민군들이 밥 조금 주는 것, 갇힌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 거게서 심으려고, 거게서라도 '이거 내가 먹는 것보다도 요걸  다문 얼마라도 이 사람들에게 주면 이거는 복음 농장에 사랑의 복음 농장,  하나님의 계약 농장,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결단코 상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대로 요래 가지고 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서  이들로 하여금 예수 믿어 구원 얻게 할까?' 해서 거게서도 남은 그것을 나눠주고  이렇게 했었는데,  그분이 마지막에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죽으려 할 때에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좀  기운이 있지마는 손양원 목사님은 다 그래 버리니까 기운이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는데도 가면서 '예수 믿고 구원 얻으십시오. 예수 믿으면 다 천국 가고 지옥 안  갑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 후면 다 부활해 가지고 영생합니다.' 자꾸 이래  외치니까 인민군이 밉상이라고 총부리로 입을 뚜드려 줘서 입이 터졌다 말이오.

입이 터지니까 또 이분은 또 속으로 좋으네. 복음 위해서 이가 빠졌으니까 또  심었다 그말이오. 복음 위해서 피가 줄줄 흐르니까 또 심었다 그말이오.

 그래 인제 그러니까 밥 얻어먹은 사람이 옆에다 끼고 이래 가는데, 가면서 자꾸  복음을 외치고 이러니까, 저거는 밉다고 때렸는데 또 손양원 목사님은 비밀  세계를 알거든. '썩을 것으로 심어라, 혈육의 것으로 심어라.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산다.' 이러니까 이거 복음을 위해서 피가 흐르니까 좋고 이가 빠지니까 좋고,  매를 맞으니까 좋고, 그게 심는 것이요 그게 손해 본 것이요? 뭐이야? 알고  살아요, 알고 살아.

 아주 욕심쟁이 꾀쟁이 수지 계산 단단히 맞춰 가지고 땅위에 없어질 것 네가  쌓아 놓은 게 보자. 네가 오늘 죽으면 뉘 것이 되겠느냐? 어리석은 부자야  오늘밤에 네 영혼을 내가 찾으면 너의 가진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으로  부요하지 못하고 땅에 있는 물질로 부요한 자들은 다 이와같이 어리석은  자들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제 오늘밤에, 우리가 죽으면 다 부활하는 것, 믿는 사람은 다 부활해서  하늘나라 가기는 갑니다. 가는데 영광 차이가 있어. 그 영광은 지금 우리가  마련해야 돼. 마련하는 데에는 심어야 돼. 심어야 돼. 그러기에 썩을 것으로 심고  또 욕된 것으로 심고 약한 것으로 심고 혈육의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무한한 전능의 것으로 신령한 것으로, 신령한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제한받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참 좋은 겁니다. 이것으로  추수하기 위해서 심어요.

 어데다 심어? 복음의 밭에 심어.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약의 복음밭 복음  농장 여게다가 심어요. 심는 거는 쉬워. 심는 거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추수를  위해서 내놓는 거라. 저 들에 던지는 게 아니라 어찌 됐든 간에 심으면 심은 것이  그 결실이 많이 될 수 있도록 옥토에다 심어야 돼. 옥토에다가. 벌로 딴 데  심으면 소용없어. 딴 데 심으면 암만 심어 봤자 소용없어요. 복음의 밭에 심어야  되지 일생을 박애주의로서 자기 일생을 박애주의로 인간 위해서 인간의 사회  위해서 바쳤다 해도 아무 소용없어 그 밭에는 들어가면 썩어. 죽어. 없어. 사는  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 피 복음의 밭이라야 돼. 이 복음의  바쳐야 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속지 말아요. 어리석지 말아요. 썩은 것 가지고 자랑하지 말아요. 썩은 것 그런  것 보고 부러워하지 말아요, 그까짓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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