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판 준비

 

1987. 7. 24. 새벽(금)

 

본문:베드로후서 3장 9절∼13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나님께서 불심판으로 우주를 심판하실 이 약속을 선포하시고 선포한 지 오랫 동안 그 기간이 있는 이것을 사람들은 너무 짧기 때문에, 사람은 무슨 약속을 하면은 그게 그저 하루 이틀, 일 년 몇 해, 십 년, 백 년 미만에서 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래 선포해 놓으시고 나서 벌써 몇천 년이 지내가니까 ‘그 더디다’ 혹은 `말로 그렇지 그런 것이 아니다’ 별별 마귀 유혹을 들어 가지고 재림에 대해서 자꾸 흐리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회개할 수 있도록 그 기간을 주셔서 할 수 있는 대로 다 회개해서 이 멸망을 면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래 참으시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고 빨리빨리 회개하는 것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은 갑자기 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이 말은 주인이 도적 오는 걸 누가 압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하시는 그 날이 갑자기 닥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도적같이 오시는 게 아니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이, 주의 날이, 재림하시는 그 날이 뜻밖에 갑자기 닥쳐서 사람들이 다 후회하고 낭파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지 미래에 있는 것, 앞에 있는 그 예고라든지, 미리 알려주는 예고라든지, 또 지혜라든지, 지혜라 하는 것은 미래에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미리 예고해 주시는, 예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는 어누리하지 않고 실상으로 들었기 때문에 노아의 일백이십 년 동안 전생활이 다 방주 준비하는 생활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그 짧게 ‘네가 공부할 때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은 이다음에 앞으로 중학을 가든지, 고등학교를 가든지, 대학을 가든지, 또 대학에서 그 후에 어떤 그 사회에 진출하든지 할 때에 그것이 그 때에 가면 네가 준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하는 그 느낌을 사람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이 정상인가? ‘그렇단다’ 하고 그 사실을 닥쳤을 때에, 사실을 닥쳤을 때에 자기의 마음의 느낌 그 느낌과 꼭 양이 같은 것을 그래 미리 느끼는 사람이 정상이고, 그것을 닥쳤을 때에는 ‘내가 공부 못해 가지고 지금 그 진학이 되지 못하고 보니 이거 기찬다’ 그 때에 느끼는 사람은 다 후회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느낌이 그 때 실상으로 당하는 그것보다 강하게 느끼는 사람은 준비가 그 실상을 통과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준비가 될 것이고, 거게 대해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준비가 없을 것이고, 조금 느끼는 사람은 조금 준비할 것이고, 정상적인 느낌을 가진 사람은 정상적인 준비를 해서 정상적인 그 어려움을 다 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어렸을 때에 내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진학을 한다든지, 또 이 세상에 앞으로 출세 진출을 한다든지 그 장래 일을 자기가 미리 닥쳤을 때에 어떻다 하는 것을 느끼는 것만치 준비될 것이고 그거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다 낭파를 당하고 실패합니다.

이래서 내일 준비는ㅡ우리가 간단하게ㅡ내일 준비는 오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일 일을 만일 준비 안 해 놓으면 큰일되겠다’ 이래서 내일 준비까지 미리 느끼는 것만치 오늘 준비하면은 내일 닥쳤을 때에 어려움을 닥치지 않습니다.

이러기에 내일 준비는 오늘에 있고, 또 농사 짓는 사람들은 명년 준비는 금년에 있습니다. 금년에 명년 준비를 해야 되지 명년에 그 때 닥쳐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사람이 늙어서 준비는 젊을 때 있습니다. 젊을 때 늙어서 준비를 하는 사람은 늙어서 평안하고 즐겁고 잘 살 수 있고 그것을 준비하지 안한 사람은 실패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는 우주가 다 불탈 터인데 그 때에 불탄다는 이 사실을 지금 느끼는 정도가 다 다릅니다. 그 때에 불탈 때에 실상으로 불이 탈 때 자기가 닥쳐서 느껴지는 거 어려워지는 거 그것을 지금 그만치 느끼는 사람은 거게 대해서 통과할 수 있는 준비가 될 것이고 거기 대한 느낌이 없는 사람은 그 준비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번 주간은 우리가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실 이 불심판을 어떻게 하면 내가 통과할 수 있느냐? 이거는 불심판만 통과하는 게 아니고 이것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리스도의 심판을 통과하고 그리스도의 심판을 통과한 사람이라야 무궁세계에서 살지 그렇지 안하면 살지 못합니다.

그러면 ‘무궁세계는 그렇게 살기가 힘드는 곳이로구나’ 녜, 살기가 힘드는 곳이 아니라 아주 평안하고 못 사는 그런 어려운 곳입니다. 노아가 홍수 심판이 났을 때에 그때 온 전인류가 다 멸망받는데 자기만은 구원 얻으니까 그뭐 얼마나 감사하며 또 모든 인류가 멸망받는 거는 안 됐지마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경고해서 그 준비한 데 대한 것은 한없이 다행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래서 며칠 전에도 늘 말했는데 “그 때는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른다. 그러면 이 동일한 말씀이 우리에게 지금 있는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불이 돼서 사르는 게 아니고 이 말씀의 능력이 다 멸망을 시킵니다.

이러니까 지금은 영감이나 이 말씀인 진리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거기에 합당하도록 회개하면은 우리를 붙들어서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반역하고 반동하면은 같이 있으면 죽을 터이니까 이제 피공로도 영감도 진리도 피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항상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것을 그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진리와 동질이 아니면 그 때는 견디지 못하고, 영감과 동질이 아니면 견디지 못하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동질이 아니면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자기의 공로가 돼 가지고 이 공로로 자기가 되어 가지고 사는 사람만이 견디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볼 때에는 그 맹수, 아주 산에 있는 맹수 같은 그런 맹수 그거 닥치면 우리는 겁을 내지마는, 동질이 아니기 때문에. 저거 동질인 저기 새끼끼리는 좋아합니다.

혹 어떤 때 보면은 우리는 독사를 보면 놀라지마는 독사와 동질되는 독사는, 독사들이 어떤 데는 가 보면은 한 스무남은 마리 이래 뭉쳐 가지고 있습니다.

스무남은 마리 이래 뚤뚤 한테 뭉쳐 가지고 그래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거는 딴데는 재미가 없고 그 한테 모여야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거 무서워합니다. 저거끼리는 거기 있는 그것이 좋기 때문에 뭉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거, 이 공원에 가면은 사자 그것이 맹수라 우리는 겁이 나지마는 그 새끼는 가장 좋은 곳이 그 에미 있는 곳이요. 왜? 그 동질이기 때문에.

이와 마찬가지로 이 진리와 영감으로 화해져서 진리화 영감화된 자는 가장 기쁜 곳이 진리의 세계요 영감의 세계요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의 세계지마는 여게 이질되는 거는 다 멸망하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로 모든 만물을 태우는 것은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과 이질되는 것은 다 타버립니다. 이질되는 건 다 타버리고 일단 태우는 것은 이질되는 것을 태워 가지고 동질로 다시 새로 재창조하기 위해서 그와같이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이 다 새로와진다” 새로와진다 말은 다시 갱신된다 말인데 갱신된다 말은 다시 갱조된다 그말입니다. 다시 재창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불심판이 올 때도 그러고 하늘나라도 하늘나라와 이질되는 것은 그 자리에 있으면 녹아버리고 못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자들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그곳이 좋지 하늘나라보다는 그곳이 좋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더 강하게 비추는 곳이고 저 제일 약하게 비추는 곳이 어데냐?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유황불 구렁텅이 거기가 그들은 거기가 제일 낫기 때문에 그리 몰립니다. 하늘나라는 그보다 더 강하고 진리와 영감과 그리스도의 대속이 더 깨끗이 강하기 때문에, 깨끗이 강하기 때문에 자기는 깨끗과 이질이기 때문에 깨끗을 자꾸 피하게 됩니다.

물에 있는 고기도 맑은 물을 좋아하고 탁수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제 자꾸 맑은 물로 찾아오고 꾸중물은 싫어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의 대속과 동질된 것은 자꾸 그 세계를 향하고 그와 이질되는 것은 자꾸 피해서 달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떤 사람이 입신했는데 자기가 입신해 하늘나라에 입신을 해 가지고 보니까 거게는 모두 다 깜깜 어두운데, 어두운데 그 모두 다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는데 ‘여게는 천국이라’ 하기 때문에 천국이라는 데 문을 열어 보니까 그 문을 여니까 어떻게 밝은지 환하게 밝으니까 자기의 모든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얼른 문을 닫고 도망쳐 가지고 그 어두움으로 자기는 갈 수밖에 없다는 그런 말을 써놓은 걸 내가 읽어 봤습니다. 그런 것도 뭐 믿을 수는 없지마는 성경같이 믿어서는 안 되지마는 그런 것도 하나의 그저 참고로 삼을 것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번 주간에는 우리가 요것을 자꾸 힘을 써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불심판으로서 이거 지금 부산이 탄다. 또 영도 앞바다가 탄다. 저 모든 천마산이니 저런 산들이 다 불탄다. 그러면 어찌 될 건가? 그걸 자꾸 느껴보는 게 좋습니다, 자꾸 느껴보는 거.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이걸 자꾸 느끼는 사람은 이 세상의 무슨 환난이 뭐 전쟁 환난이다, 또 무슨 환난이다, 데모 환난이다, 뭐 무슨 지진 환난이다, 태풍 환난이다, 뭐 환난이라 해 봤자 그런 것은 예수님의 불심판의 이 어려움을 느끼고 느끼고 한 사람은 그런 느낌은 그것이 그것이 느끼지지 않습니다. 그까짓 거야 무슨 느낌이 됩니까? 또 전쟁이 나 가지고 뭐 폭탄으로 막 내리 떨어진다 할지라도 그런 거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까짓 거야 무슨 큰 거석이 있습니까? 갈 때 되면 가는 것이고 문제가 없는데 그런 느낌을 가져본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어떤 데에서 놀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발견한 사람은,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발견하고 두려우심을 자꾸 느껴보고 실감으로 이래 접해본 사람들은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움을 느껴본 사람은 세상이 뭐 다 달라들어 가지고 두렵게 할라 해도 그까짓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본 사람은 어떤 땅의 뭐 김일성이고 뭐 하는 거 그까짓 거야 뭐 두려움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 큰 두려움을 다 겪어봤기 때문에.

또 예수님의 이 불심판을 자꾸 자기가 깨닫고 깨닫고 해 가지고, 거짓말로 깨닫는 게 아니고, 거짓이 아니라 실상인데 자기가 심령이 어두워서 느끼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거 자꾸 느끼고 느끼고 한 사람은 땅위에 어떤 것이라도 불심판같이 그렇게 우리에게 혹독하고 어려움이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래서 자꾸 그걸 느껴봐요. 이 땅위에 있어서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은 ‘이 어려움이’ 이 어려움과 그만 이 불심판을 또 비교해 보고, 이러니까 자꾸 이렇게 자기가 어려움을 생각을, 실상 없는 것을 또 인제 ‘이런 어려움 있으면 어찌 되느냐?’ 그 어려움과 또 이 불심판과 비교하고 또 무슨 전쟁이 생겼으면 이 전쟁과 또 이 불심판과 비교하고, 땅위에 모든 어려움을 제가 이 불심판과 이렇게 비중을 달아서 이렇게 비교도 해 보면서 자꾸 이 불심판에 대한 느낌이 실감이 자기에게 강하게 될라고 역부러 애를 써야 됩니다.

애를 써 또 자기가 상상으로 자꾸 느껴봅니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이 우주가 불로 다 체질이 녹아지고 모든 이 형태가 다 없어질 터이니까 그 때에 어찌되나? 우리는 이 모든 어데 가다가도 자기가 아는 대로와 그 형체가 달라져 버리면 우리 마음이 달라집니다. 놀라집니다. 우리가 양산동 그 산에 기도하러 가는데 가 보니까 이제 두 기도실이 다 그만 파괴가 돼 버렸고 산에 가 보니까 산이 전부 다 산태가 나서 다 무너져 절단나 버렸으면 그 형태가 바꿔졌으니까 우리는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까짓 거 바꿔져 봤자 그거야 뭐 뭐이 된 겁니까? 찍해야 이 지구 땅덩어리도 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그까짓 게 없어지면 그런데 이 우주와 영계가 없어지면 어찌 되겠느냐? 모두 그런 데서 자꾸 예수님의 불심판이 오면은 그 때 어찌되나 하는 것을 이리 저리 자꾸 느껴서 그 불심판에 대한 실상으로 그 때 두려운 그 실상만치 자기가 실감을 가질 수 있도록 역부러 자꾸 애를 쓰고 노력을 해서 이 예수님의 불심판에 대한 이 두려움이, 무서움의 느끼는 것만치 뭐이 됩니까? 그 느낌이 없으면 무엇 되며 그 느낌이 있는 것만치 무엇이 되겠습니까? 느낌이 있는 것만치 그 느끼는 결과는 무엇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예? 구원이라 하는 그렇게 자꾸 뭐 그 넙덩이 하면 안 돼. 그 느껴지는 거, 불심판의 어려움의 느낌이 더해지는 것만치 뭐이 느껴지겠습니까? 두려움이 느껴지지요?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만치 뭐이 느껴집니까? 거게 대한 대비하는 준비하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이 자꾸, 자꾸 마련돼.

그러니까 불심판의 이 두려움의 실감이 있는 것만치 거룩과 경건의 이 준비가 될 것이고 그 실상 그 때 불로 당할 때에 그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 떨리는 것만치 그만치 실상만치, 실상만치 느끼는 거 있으면 실상만치 느끼는 것만치 그 실상을 통과할 수 있는 거룩과 경건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리 이 예수님의 재림의 심판을 뭐 입술로는 말한다 해도 그 실감이 하나도 없으면은 실은 거룩과 경건의 준비가 없습니다. 거룩과 경건 준비가 쉬운 것입니까? 아니오. 어려운 것이오. 거룩과 경건 준비가 쉬운 게 아니라. 거룩과 경건은 준비를 하면은 밤이나 낮이나 눈물 머금고 쓸쓸한 빈들판 그것을 자기가 느끼게 됩니다.

거룩 준비할라 하면은 이 모든 죄악으로 되어 있는 이 현실, 세상의 사회나 국가나 인류나 가족이나 전체가 다 이 느낌에는 반대입니다. 왜? 그는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멸망에 속했기 때문에 반대라 말이오.

그러니까 이 거룩 준비도 경건 준비도 쉬운 게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큰 어려움과 작은 어려움이 있으면은 그 큰 어려움은 피해서 작은 어려움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어려움 없는 곳이 없고 아주 큰 어려움과 작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은 큰 어려움 대신 작은 어려움으로 찾아가는 것이 인간이오. 어려움 없는 데 가면 좋지마는 없으니까.

그 작은 어려움, 뭐할라고 작은 어려움을 찾아가? 큰 어려움을 그걸 피해서 작은 어려움으로 찾아간다 그말이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어쨌든지 오늘에는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불심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제가 실지로 실감을 가지느냐? 실감 가진 것만치 그 사람의 행복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실감을 가진 것만치 그 사람은 거룩과 경건이 준비되고, 실감을 가진 사람은 그것만 두렵지 그외에 딴거는 두려움이 하나도 없어. 그까짓 거 두려울 게 뭐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무슨, 이 불심판을 예비하는 거룩과 경건을 준비할라 하면은 이거 뭐 가정의 어려움, 사회의 어려움, 경제 어려움, 또 사업 어려움, 어려움 그까짓 거는 원청 이 큰 어려움을 느낀 사람은 그까짓 어려움이야 상관도 없어. 그렇지 안하면 거룩과 경건이 준비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주간에 어느 정도 그걸 준비를 했는지 모르지마는 준비되는 것은 예수님의 이 불심판에 대한 그 실감이 어느 정도 되었느냐? 실감이 되어진 것만치 그 사람은 세상 것은 두렵지 안하고 예수님의 불심판만이 두렵게 될 것이고 두렵게 되는 것만치 무엇도 문제가 있지마는 그 문제보다도 이 불심판 면하는 문제가 제일 큰 문제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그 심신은 거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기울어지게 되면, 차차 기울어지게 되면은, 거룩과 경건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 심신이 기울어지게 되면은, 기울어지게 되면은 기울인 것만치 그 결과가 어찌 됩니까? 세상과 멀어지게 됩니다. 알겠습니까? 기울어진 것만치 세상과 멀어지고는 무엇과 가까와집니까? 주님의 이 재림, 하나님의 날이 임하는 거게 자꾸 가까와지게 그래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필연적으로 우리 소망이 다 거게 있어서 전생활이 그를 위해 중심하는 이게 아니면 구원이 안 됩니다. 어누리하면 손해입니다.

노아가 그 홍수의 예고를 듣고 나서 일백이십 년 동안 노아가 뭐 만일 먹는 거는 뭣 때문에 먹었겠습니까? 지금 배 준비하기 위해서 배고프면 먹고 또 배 준비하기 위해서 먹을 것 없으면은 먹을 것을 마련해 가지고, 그러면 전체에 농사 짓는 것이나 먹는 것 준비나 모두가 다 이 배를 어서 그 안에 다 만들어야 되는, 일백이십 년 동안 이거 다 만들어야 될 터인데 이걸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안 만들면 안 되니까 그거 만들기 위해서 먹고, 그거 만들기 위해서 자고, 그거 만들기 위해서 쉬고, 그거 만들기 위해서 뭐 농장이라도 농사도 짓고 전부가 그거 만들기 위한 데 다 기울어져 가지고 해서 만들어 가지고 일백이십 년 동안에 그것이 완성되자 이제 홍수가 내려 가지고 구원 얻은 그것을 우리에게 하나 예표로, 그것을 봐서 깨닫도록 그거 한 모형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번에 우리가 일주간 동안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 이 준비에 대해서 강조하는 이 주간으로 삼았는데 이제까지 다 지식으로 아는 사람, 또 만들기를 이제 시작한 사람 있을 터인데 우리가 다 만들기 시작해 가지고 후회 없는 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회개 20가지’를 이것을 잘 공부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또 지하철도 위해서 기도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를 놓지 맙시다. 내가 어제 들으니까 벌써 이 공과가 미국에도 가 가지고 미국에서 이 공과 공부를 했다고. 그래 두 번 하니까 어렵지 안하고 배웠다고 하는 말 들었습니다.

이랬는데 이 공과를 어짜든지 외워 가지고 반사들이 가르치십시오. 외우면, 이 ‘회개 20가지’를 외우면은 이것이 거룩 만들고 경건 만드는 데에 아주 그뭐 주요한 그런 능력이 됩니다.

그러고 오늘은 권찰회 모이는데 권찰회 때에 다 거창집회 갈 것에 대해서 의논도 하고 또 준비도 하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래 저는 지금 예배 마치고 나면 양산동으로 갈 겁니다. 그러니까 권찰회 참여 못 하고 ○○○목사님이 권찰회에 나서서 사회를 할 겁니다. 사회하는데 사회 딴거는 아무것도 없고 그저 찬송 하나 하고 그저 성경 오늘 아침에 본 요 성경 읽고 간단하게 기도하고 남은 시간은 전부 각 구역에서 이 집회 준비에 대한 의논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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