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 생명

 

1981. 11. 8. 주후

 

본문 : 요한일서 5장 4절 - 9절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는 구원은 성령과 진리와 피가 구원합니다. 이 외에는  구원할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증거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증거한다고 했지 살린다는 말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키  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말씀으로 죽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도 말씀으로 살리고 모든 복도 줄 때에 말씀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완전자로써 무형의 하나님이 역사하시기를 무형의 당신이 마음  곧 감동으로 역사하시는데 그 감동의 역사가 나타날 때에는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역사가 하나님의 마음의 움직임  하나님의 감동이요. 그 감동이 나타날 때에 진리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 진리가 없는 가운데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이 진리로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의 한 집과 같고 영계도  그러합니다. 영계와 우주는 하나님의 한 집이요 한 나라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좋은 것도 하나님의 역사인 이 나타나는 진리, 진리보다 영감은 더 무형이요  영감보다 하나님은 더 무형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영감으로 감동으로 나타날 때에 피조물이 접촉할 수 있고 또  진리로 나타날 때에 더우기 접촉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집을  당신의 감동으로 다스리는데 감동이 사람에게 접할 때에 가장 보이기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 진리로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또 세우시고  파괴시키고 이렇게 하시는데 그러기에 진리가 역사하는 그 속에는 영감이 역사하고 영감이 역사하는 그  속에는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십니다. 이래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무엇이냐  사망 네가 무엇을 가지고 인간들을 다 죽이고 만물을 싫어하는 죽음을 이  죽이느냐 사망 네가 데체 무슨 힘을 가지고서 모든 것을 죽이느냐" 했습니다.

거기에되니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사망은 죄 이걸 가지고 사람을 죽입니다.

죄를 가지고 사람을 죽입니다. 만물을 죽입니다.

그러면 죄 그것이 무슨 힘이 있어서 죄 그까짓 게 무슨 힘이 있는가? 죄가  힘있는 것은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이렇게 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칙인데 하나님의 법칙이 이것이 모든 것을 만드셨고 창조된 것을 통치하시고  또 뽑고 심으고 파괴하고 건설하는 이것을 다 이 법칙이 하는데 이 법칙의  의지해서 그 사람이 죄가 있을 때는 이 죄를 가지고 하나님의 법에 가기 때문에  이 법이 죄있는 것을 죽이게 하는고로 피조물로서는 항거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죽이는 것이 율법이  죽입니다. 그러기에 죽이는 이 율법 안에는 생명이요 밖에는 율법인데 율법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 율법의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인고로  피조물이 항거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무엇 때문에 죽었느냐? 다 범죄했기 때문에 죄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법에 권세로 다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살리는  데에는 첫째가 이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안하면 살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안하면 하나님의 법이 죽이는 것 곧 하나님이 죽이기 때문에  그것을 아무도 살려내지 못합니다.

죄로 인하여 죽은 자가 죄가 없게 되면 죄 없는 자는 죽이는 만물도 없으려니와  법이 죽이지 안하고 하나님이 죽이지 안하는 것을 피조물들이 죽이려고 하면  제가 죽지 그것이 죽지를 안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대속했습니다.

또 죄가 없으면 죽지는 안하지마는 죄 없다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사는 것은  의가 있어야 삽니다. "만물이 다 뜨거운 불에 녹아져서 모든 체질이 다  드러나려니와 새하늘에는 의가 거하는 곳이라 의의 거하는바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도다." 했습니다. 의는 삽니다. 의는 모든 것이 죽어도 의는 죽이지  못합니다. 의는 삽니다.

노아 홍수 때에도 노아에게 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살았습니다. 의가 있으면  삽니다. 의가 있으면 죽이지도 못하고 그는 삽니다. 죄가 있으면 죽이고 죄가  없으면 죽이지는 못하지마는 살지는 못하나 의가 있으면 삽니다. 하나님이  연결되면 거기에서부터 이제는 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중생되는 것은 이 사죄 죄없앰을 받고 그 다음에 의로움을 받고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 결합이 되가지고 살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자를 살리는 데에는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살리지를 못합니다. 살리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비로서 이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의 나라에  거기에서 법적으로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이 단일 통일 단일 통치 이 통치하에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구출받아 가지고 산 자된 것이  택한 자들입니다. 택한 자들은 법적으로는 중생되기 전부터 벌써 주님의 공로가  설정된 그 이후에는 다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서는 산 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주님의 공로를 믿는 자를 정죄 못 합니다.

그렇지만은 법으로는 살아 났지마는 실질적으로는 살아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대신한 공로로 인해서 살아났지 이 실질로 살아난 것  아닙니다. 살 수 있고 살아났고 법적으로 예수님이 대속해서 살아났는데 이  법으로 살아난 것을 실질 적으로 살리는 일을 누가 책임 맡았는고 하니 보혜사  성령이 성령이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증자로 세워주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책임진 것은  "내가 가서 보혜사 성령을 너희들에게 보낼터인데 이 성령이 오시면 내것을  가지고 너히들에게 증거하리라." 그말은 내것을 너희들에게 입혀주리라  말입니다. '내것을 너희들에게 입혀주리라.'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를  실질적으로 영에게 입혀서 영이 사죄 받고, 칭의 받고, 사죄 받기 전에 그 자기  주격 위치에서 자기의 소유인 심신이 영원히 범죄하는 그 범죄를 단번에  끌어나가 정죄 사죄 받고 또 우리를 사죄 받고, 칭의를 받고, 하나님과 화친되어 있는 이 공로의 효력을  너희들에게 입혀 줄 것이다. "내것을 가지고 증거하리라 내것을 가지고  증거한다" 말은 준다 말입니다. 증거는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주실 때에는  반드시 증거로 주십니다. 증거를 주실 때에 그 증거를 받아서 하면 그게 실상이  됩니다. 또 "너희들을 그러고 난 다음에는 진리 안으로 인도하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예수님이 베푸신 공로로 일차 법적으로 구원얻은 자를 성령님이  책임을 지시고 진리의 법칙을 가지고 살려냅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그 물은 진리를 말합니다. 거기에는 물이라고 했지마는 베드로전서  1장 23절 이하에는 보면은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들이 살아났다." 이래놨습니다.

그 물은 진리를 가르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예수님의 공로를  입은 자들은 다시 살려냅니다. 그러므로 증거하는 성령으로 예수님의 공로를  입은 자들은 다시 살려냅니다.

그러므로 증거하는 이가 셋이 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이 셋이 있으니 뭐 뭐  셋이냐? 피와 물과 성령 이 셋은 하나인데 이것으로 살린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살리는 것은 영이라' 말은 그  성령을 가르쳐서 말씀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 그말은 육은  어떤 걸 가르친다고 하니 인간의 마음과 고기덩어리 이 둘이 합작해서 사는  사람을 가르쳐서 육이라, 이 사람의 생각을 육체의 생각이라, 이 사람의 욕심을  육체의 소욕이시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육체라는 것은 부패성을 말하는 게  아니고 이 심신이 중생된 영과 떨어지면 그건 죽는 것입니다.

또 영이 하나님과 떨어지면 죽은 것입니다. 영이 하나님과 결합이 돼야 살고,  심신은 중생된 영과 결합이 되어서 중생된 영을 자기 주격으로 모시고 거기에  소속했을 때에 비로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공로는 우리를  법적으로 해결을 주었고 또 성령님은 그 빗댓기 이 구원에 완성을 위해서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역사할 때에 진리를 가지고 역사해서 구출을 합니다.

그런데 구출할 때에 '그리스도의 평강이라.' '그리스도의 은혜라.' 하는 것은  그것은 성령이 곧 그리스도의 영인데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그렇게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는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이 세 가지 직책을 우리 인간들에게 피  흘려 줘서 인간으로 하여금 제사장의 선지자의 왕의 자격을 이루도록 이  성령님이 역사하는 그 영을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영이라, 그리스도의 은혜라,  그리스도적인 구원이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살려 가지고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제사장으로 또 하나님의  모든 것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해주는 선지자로 말씀이면 생명도 되고 권능도 되고  다 됩니다. 그러기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것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해주는 그  직책을 가르쳐서 선지자라 말하고 또 왕은 이렇게 은혜받아 산자를 통치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그대로 받아 가지고 만물을 그 통치로 통치하는 이것을  가르쳐서 왕권이라 그러는데 우리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 할자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리는 것은 영이라." 할 때에는 곧 예수님의 공로 진리다.

포함됐습니다. 왜 영이라 했는데 세 가지가 다 포함되었는가? 영이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우리에게 오지를 못 합니다. 또 영이 진리의 법칙이 아니면  우리를 살리지 못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라." 말은 그거 세 가지 공로가 다  성령과 진리와 피 이 세 가지는 하나이다. 이 세 가지는 곧 하나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해 가지고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고 오전에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죽고 어떻게 하면 산다는 요  지식을 확고히 가져야 됩니다. 사람이나, 물질이나, 사건이나, 영광이나,  존귀나, 권세나, 무엇이든지 살리는 것은 이 세 가지 뿐입니다. 이 세 가지로만  살리지 이 세 가지 외에는 살리는 것이 없습니다. 이 종교 그거는 다 이 세  가지가 만들어논 것 중에 하나요. 또 타락한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 산 것은  아닙니다. 아주 죽은 것 중에 죽은 송장가운데 있는 것 하나입니다. 그 산 것도  아닙니다. 아주 죽은 것 중에 죽은 송장가운데 있는 것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나, 다른 성자나, 무슨 이런 종교 창설자나 그런 자와 같은  자로 알지마는 주님은 창조주시요. 그런 것을 지은 자시요. 그것들은 영원히  통치할 자시요. 또 그들은 심판에서 영원히 죽일 권능을 가지신 자시요.

그것들은 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또 주님에게 가서 심판 받아야 되고 또 주님이  베푸시는 그대로의 영원한 보응을 받아야 되는 것 뿐이요.

그러기에 모든 종교를 창조하신 이가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이 종교나 마귀나  그런걸 뭐하려고 냈는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파괴하는 것도 냈고  넘어지는 것도 냈고 우리가 조그마한 이런 무슨 토건업을 하나 하려고 해도  오늘도 보니까 이 토건업에서도 있는 길을 부수기도 하고, 파기도 하고,  메우기도 하고, 들추기도 하고, 다두기도 하고 또 꺽기도 하고 펴기도 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 도로를 잘 수축하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이 다 당신의 구속 역사에 필요해서 만들어 제대로의 이런 직책 저런  직책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지 그게 생명의 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하나님이신 이 성령으로만 살고 또 진리로만 살아나는데  예수님의 이 공로가 있어야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진리가 살리는 역사를 할 수가  있지. 예수님의 공로가 없으면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이 성령과 진리는 오면  죽입니다. 죄가 있는 자는 성령과 진리가 오면 죽입니다. 또 의가 없는 자는  성령과 진리는 오면 죽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자는 성령과 진리가 오면 죽여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사죄를 받았고 칭의를 받았고 하나님과 화친을  받은 자는 성령과 진리가 오면은 그것을 살립니다. 우리는 자기의 가정이든지,  사업이든지, 자기 명예든지, 지위든지, 직장이든지, 자기 인격이든지, 자기  쾌락이든지, 행복이든지 자기의 육이든지, 영이든지, 금생이든지 내세든지  살리는 것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것으로만 살아나지 이것 외에는 살리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고히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이 지식이 혼돈 된 자는 죽자껀 해도 망하는 것 뿐입니다. 진리에게 구원을  받아야 되고, 또 성령에게 구원을 받아야 되고, 죄를 담당하는 사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되고, 칭의에서 구원 받아야 되고,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에 구원을  받아야 이래야 살지 그렇지 않은면 다 죽습니다. 하나님과 화친되어 의롭고 죄가  없어. 하나님과 화친되고 진리와 이렇게 화합되 있는 것은 죽이지를 못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혼돈되 가지고 진리를 떠나서도 사는 길이 혹 끼어 있는가?  생각하는 그것이 미혹입니다. 또 성령을 떠나서 사는 길이 있는가? 혹 생각하는  것도 미혹입니다. 하나님과 대립이 되고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길이 있는가?  하는 것도 미혹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입지 안하고 그것이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는가? 하는 것도 미혹입니다.

죄 문제 해결 안하면 죄값으로 죽습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의를 아무도  가질 자가 없어. 인간의 천하 인간이 다 행한 것이 다 행했다 할찌라도 그 의는  하나님 앞에는 세까만 죄입니다. 의가 못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피조물이 어떻게 그  화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죄 문제 칭의 문제 하나님과 화친의  이 문제를 피조물의 행동으로서는 도무지 이것이 안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로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공로 은혜로 이거는 댓가를 치르지 못합니다. 왜  댓가를 못 치르느냐? 너무 크고 값이 크니까 이 피조물로서는 그 댓가를  치를만한 그런것이 아무것도 없어. 제가 천만번 죽어도 이 댓가는 안돼. 왜  완전자 무한자가 고생을 당해도 베풀어논 것이기 때문에 제가 암만해봤자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안돼.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공로와 성령님과 진리 예수님의 공로를 첫째 입어야  우리에게 진리가 와서 일할 수가 있어. 또 성령이 와서 우리를 살리는 일을 할  수가 있어.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그 성령과 진리가 와 가지고 살리는 역사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를 다 입은 자들이요. 또 이 성령과 진리가 와  가지고 살리는 역사를 착수했는데 첫째 우리의 영을 살렸습니다. 우리 영은  성령과 진리가 살아났습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물과 성령으로 다시 거듭났다."  말은 '거듭났다' 하는 말은 없는 데서 새로 생겨졌다는 말이 아니요. 이것은  죽었던 것이 살아났다는 말을 재생됐다 말이오. 재생 그래서 살아났다 그말이오.

이렇게 살아났는데 지금 문제는 뭐이냐? 우리의 심신은 아직까지 죄 아래  있습니다. 영은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서 살아났지마는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니라. 이 마음과 몸 이 육이라 하는 이 육은 아직까지 죄 아래 그대로  있습니다. 그대로 있는데 영은 하나님이 직접 살렸지마는 이 심신이라는 이것은  심신의 주인이 되는 그 살아난 영, 살아난 영을 통해 가지고 우리의 심신을  살리는 역사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리켜서 중생된 영, 성령이 우리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말이오. 하나님의 아들된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말씀으로 알려서  자꾸 가르치고 타이르는데 그대로 인정하고 행하면 삽니다. 이래서 내 말을 듣는  자는 가르치고 타이르는데 그대로 인정하고 행하면 삽니다.

이래서 "내 말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지금이 곧 그때라 "주의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는 이것이 주의 말씀은 곧 진리요. 진리는 주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이라니 영감이 확 들어나고 보니까 그게 뭐이냐? 하나님의  뜻인데 곧 그게 진리라 그말이오.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은 곧  영감이요. 영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 지식이 확고 부동해야 됩니다. 이것이 흐리 멍텅하기 때문에  여 지금도 조는 사람 있는데 참 기가 찹니다. 이게 아니면 지금 그 죽는데  그래서 내가 오늘 점심 먹고 내가 누워서 가만히 생각 하기를 내가 이런게  아니다. 이거 내가 답답하게 속을 썩일게 아니고 이제 나한테 집회 해돌라 하는  사람 있으니까 그 교회 가서 내가 집회를 내가 돌아다니는게 낫겠다.

차라리 내가 여기에서 속 썩이는 것보다 그게 낫겠다. 아무리 말을 들으라해야  안 듣지, 걸어 가라 해야 걸어가지 안하지, 이거는 뭐 소 귀에 경이르기라. 소  귀에 경이르기, 이거는 참 아무 효력이 안나. 이러니 이걸 안 들으니 애 터지고  안 살아나니 기막히고 안 걸어가니 곧 자꾸 죽는데 바싹 바싹 자꾸 썩어  나가는데 하루 지나가면 썩고 하루 지나가면 썩고, 여러분들 사는 그게 영원히  죽은 것입니다.

인간이 났으면 나서 하루 이틀 지나가면 사는 줄 압니까? 하루 살았으면 그만침  죽었소. 일년 살면 그만침 죽었소. 살아 죽는 그 길에서 살고 있고 일이  하나님과 진리와 이 주님의 공로를 인해서 죽어 사는 이 길을 가지 않습니까?  죽으면 사는데 그것이 뭐이냐? 진리의 것이 되고 하나님 것만 되면 죽일자  아무도 없어.

그래서 내가 그걸 지금 생각하는 중에 있습니다. 왜 다른 데서 집회 해달라고  했는데 그것을 내가 거부를 하지 안하고 가만히 둬두고 어떻게 하나 그래서 내가  여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돌아다니면서 가서 거 말씀만 전하면 그 자리서  막 뛰고 굴리고 거석하는 사람 많을 터이니까 이래 살리는 게 낫지 뭣때문에  내가 여서만 이리 할 필요있나.

이러니까 내 밥해 줄 식모나 단단한 식모를 좀 그 가서 식사를 잘못하면 당장  절단나기 때문에 이러니까 누를 하나 구해 가지고 어라 여기에서도 전하고  미국서도 여러군데서 자꾸 애래 와서 하니까 거기에도 가든지 아직 미국갈 마음  없습니다. 그저 이 국내 돌아다니면서 그 한군데 전하면 뭐 계속 해서 지금 막  나올터이니까 그 마음에 힘만 주시면 그만 몇달 이든지 그만 계속해서 그 전하는  게 수월해 차라리 수월하지 애터지는 것보다 낫다 그말이오. 이래서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여러분들이 살리는 것은 살리는 것은 주님의 공로와 진리와 성령 주님의 공로는  이 공로로 인해서 진리가 우리에게 올 수 있고, 이 진리와 성령 주님의 공로는  이 공로로 인해서 진리가 우리에게 올 수 있고, 이 진리로 인해서 그 성령이  우리에게 착수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셋이 살립니다. 이 셋 외에는 살리는 게  없습니다. 재산도 이 셋이 들어 살리고, 인격도 살리고, 영도 살리고, 육도  살리고, 금생도 내세도 다 살리는 건 이 셋 뿐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공로를 떠나서 사업이 되겠다, 가정이 되겠다, 제가 출세를  하겠다, 성공을 하겠다, 살아나겠다, 뭐 좋아지겠다, 좋은 무슨 행복이 오겠다  어리석습니다. 주님의 공로를 떠난 데는 사망 뿐입니다. 주님의 진리를 떠나는  데는 사망 뿐입니다. 영감을 떠나는 데도 사망 뿐입니다. 주님의 공로와  연결되고, 진리와 연결되고, 영감과 연결되 있는 것은 죽일자가 없습니다.

죽이려고 건드리면 더 살아나 갑니다. 때리 깼으면 더 커집니다. 밟아 찰수록 더  높아집니다. 없앴으면 더 있습니다. 죽였으면 더 살아납니다.

왜? 진리와 영감과 주님의 공로로 이렇게 합작되어 있기 때문에 이거는 순전히  생명이라. 주님의 공로는 모든 사망을 둘러싸서 방어하고 이 법적으로 살리는 이  법의 완성을 구비를 완전히 구비한 이 공로요. 진리와 이 진리를 떠나면  죽습니다. 이런 풀 한 포기도 이것이 이 진리의 사는 진리에 합하면 이게 살고  무성하고 이 진리를 떠나면 바삭 썩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악령은 우리를 꼬아서 이 주님의 공로와 진리와 성령 이 셋을 떠나  가지고 사업이 되리라고, 이 셋을 떠나면 가정이 되리라고, 이 세 가지을 떠나면  저거 부부 재미가 있으리라고, 이 세 가지를 떠나면 저거가 출세하리라고, 이 세  가지를 떠나면 공부를 하리라고, 이 세 가지를 떠나면 제가 무슨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그거에게 좋은 날이 있으리라고, 뭐이 되리라고, 혹 만의  하나라도 좋은 게 섞여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마귀의 유혹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그것이 악령의 유혹이요. 마귀의 그 미혹의 욕심입니다.

또 이 세 가지가 연결된 연결을 끊지 아니하는 것을 끊지 안한 것을 끊으려고  해서 끊히면 죽지만은 끊히지 안하면 죽일 자 없습니다. 끊히지 아니하면 끊게  하려고 끊어지게 하려고 괴롭히는 그 세력이 없어져서 괴롭히게 하는 그 세력이  다시는 괴롭힐 수 없는 것으로 살아납니다. 다시는 괴롭힐 수 없는 것으로  살아납니다.

그러기에 이 죽은 것과 사망과 생명과 그 사이에 머뭇거리고서 중간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벙벙벙 섞인 것을, 이것을 이 세 가지에서 끊어지지 안하려고  연결되어 있다고 이것이 죽이려고 이렇게 해를 하면은 해할 때에 끊어지면  죽습니다. 끊어지면 죽습니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죽으면 살아났어. 죽으면 진리와 영원히 삽니다.

하나님으로 영원히 삽니다. 주님의 공로 안에서 영원히 삽니다. 이것이  살아나는데 살아나 가지고 세상에 있는 것도 있고 살아나 가지고 세상에서 떠난  것도 있습니다. 떠난 것은 세상이 없는 것은 살아 가지고 떠난 것이요. 그것은  세상에 있는 기한이 다 됐는데 자연 법칙으로 그대로 죽어 세상 끝날 것이 죽지  안하고 산 것로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면 죽을 것이 이 세 가지로 인하여 살아나 죽지 아니할 것으로써 세상  생활을 끝내버려서 다시는 세상이 침노하지 못할 것으로서 완전히 살아나는  그것도 좋고, 그거는 다시 이 세상에는 있지 안하는 것이요. 그 순교자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또 아직까지 이 세 가지로 인해서 살아났는데 세상을 떠나지  안하고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은 머물러 있는 것은 세상은 침노를 못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성령과 연결됐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 진리의 역사, 사죄의  역사, 칭의의 역사, 하나님과 화친 역사 이것이 살아 있는 그 사람을 통해서  그것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나타나면 나타날 때에 이것을 방해하지마는 살아난 자는 방해하지 못 합니다.

살아난 자는 방해할 수록 이게 더 커지고 더 존영해집니다. 왜 그것에게 침노를  받지 안하고 그 침노하지를 안 합니다. 아야 손을 데지 못합니다. 그런 살아난  것을 가진 사람인데 살아난 것을 가진 사람을 침노할 때에는 살아난 그것으로  살고 있는 그 사람을 침노할 때에는 살아난 그 사람을 침노하는 것이 아니고  침략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껍데기 늙어지고 쇠해지는 껍데기 그것을  침략합니다. 아직까지 살아나지 못한 걸 침략합니다. 살아나지 못한 걸  침략하는데 살아난 것을 이것은 침노하지 못하고 그대로 역사합니다.

그러면 살아나지 못한 이것을 침노할 때에 속에 살아난 것과 살아나지 못한  이것이 합작이 되 가지고 침노하는 그것이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의 이 공로 이  세 가지가 연결되어 그들에게 피해 받은 것은 피해를 받음으로 그것이 피해를  받음으로 사느냐? 피해를 받으므로 살아나 피해를 받음으로 그것에게 지든지  이기든지 하는데 피해를 받아 살아 나고 피해를 받을 때에 이 세 가지와  떨어져도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이 세 가지와 떨어지면 그때 살았으나  죽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살아 영원히 죽는 것이 있고 또 죽어 영원히 사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 아직까지 껍데기 살아나지 못한 그 부분은 그들에게 침노를 받습니다.

살아난 것은 침노를 받지 않습니다. 살아난 것 이 침노를 받을 때에는 그것이  어떻게 되느냐? 그들에게 침노를 받으면 받음으로써 진리와 영감과 공로로  살아난 그 살아난 삶의 능력의 역사가 그 폭발됩니다. 폭발되서 거는 제재가  없습니다. 살아난 자는 그들이 괴롭히지 못하고 와서 건드리면 좋아합니다.

방해하면 포발났기 때문에 더 좋아합니다.

마치 폭탄에 탄피가 그 속이 있는 탄력이 이것을 깨트리지 못할만한 그만침  두꺼우면 그거는 효력을 못 냅니다. 그러나 그 깨트릴 수 있는 정도로서는 이  꺼풀이 뚜꺼워야 폭발을 강하게 합니다. 이는 다이나마이트 하나 넣어놓고 것다  이걸 만일 쇠로 가지고 이 집채만침 이렇게 몽구쇠로 둥기놓으면 그것이 폭발을  못 합니다.

결국 폭발을 못하고 도화선으로 디 튀어나오지마는 그 꺼풀이 뜨거울 수록이  폭발력은 더 강해지는 것인것 모양으로 진리로 이렇게 살아난 이것은 세상이  건드리면 건드리는 것만침 방해가 많으면 많은 것만침 폭발력은 더 크고 그에게  기쁨은 더 크고 만족은 더 큰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는 그것이 어려움이였지마는  어려움이 였지마는 그에게는 어려움이 되지 안하고 더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후에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이든지 자기  현실을 만났을 때에 세상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저희 것이 아니고 저희에게서  나와서 저희 것이 되지 못했고 하나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그렇게 말씀해놨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주의 공로와 진리와 성령과 하나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핍박을  하고 방해를 합니다. 고문을 하고 고행을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확고  부동으로 가져야 될 지식이 뭐이냐? 살리는 것은 성령이요. 진리요. 주님의  공로인데 이와 나와의 손을 잡고 있다고 이것이 나를 방해하고, 박해하고,  고문하고, 또 사업을 깨트릴려고 흔들고 이렇게 야단을 지기는데 고 악령이 와 가지고  우리를 꼬우기를 '네가 이럴때는 살짝 이 세 가지를 좀 나았다가 뒤에 잡아라  잠깐 놓으면 이 모든 네 사업도 순조로울 것이고, 환란도 이것도 다 중단될  것이고, 모든 난제가 해결이 되지 않느냐?' 하니까 그때에 살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내놓습니다. 살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내 놓은 그것이 살아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죽어버렸습니다. 그럴 때에 이미 혹을 우리는 받지  안해야 됩니다.

살리는 것은 이 셋인데 이 셋과 떨어지면 나는 죽는다. 사업이면 사업이 죽고  자기 육체의 생명은 생명이 죽고 모든 것이 죽는데 떨어지면 죽는다는 걸 내가  지식하고 있는데, 이 세상은 와 가지고 너희가 손을 놓지 안하면 잡고 있는 손을  네가 떼지 안하면 죽는다. 떼지 안하면 실패한다 망한다. 이 두 갈레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럴때에 이 세 가지와 연결이 끊어지지 아니한 것을 죽일  정치가 없고, 죽일 피조물이 없고, 죽일 악령이 없고, 죽일 세력이 없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 요것을 여기에서 확고한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떨어지지  안하면 죽이지 못한다. 아무리 저희들이 어떻게 해서 만일 고문을 해서 이 세  가지가 떨어지지 안하고 죽었으면 그들은 다시 손델 수 없는 것으로 영원히  살았습니다.

영원히 죽여도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과 떨어지지 안한 결합이니까 이는 진리와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이요. 예수님의 공로와 동행입니다. 그는 영원히  살았습니다. 그는 패전했습니다. 위협을 영원히 되버렸습니다. 영원히  살았습니다. 또 그것이 사는 데는 없어진 것은 그리 안해도 세상에서 끝날  것이면 없어지는데 없어지면 이래나 저래나 이 자연법칙 가지고 무가치하게  없어질 것이 하나님과 진리 영감을 받음으로 없어졌기 때문에 없어진 그게  살았습니다. 그것이 순교입니다. 그 죽음을 살렸다 그말이오.

그때에 이런 싸움이 없이 그대로 죽은 사람은 그 죽음을 살리지 못하고 죽음  그것을 고 양은 자연 법칙에서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담대해야 됩니다. 네가 암만해도 그 셋과 떨어지면 나는  죽고 이 셋과 떨어지지 안하면 네가 어떻게 하든지 그로 인해서 셋과 떨어지지만  안하면, 그게 없이 이 셋과 네가 결합되 있는 것보다도 어려움에 결합되면 이  결합이 더 된다.

네가 박해하는 여기에서 이 결합되려면, 이 결합의 관계는 네가 박해를 줌으로  이 결합의 관계를 떨어지지 안하면 이 결합은 더 공로있게 되고 더 강하게 되고  더 밀접하게 된다. 네가 가만히 있는데 주님 사랑하는 것보다 널 내가 주님을  사랑치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박해가 심한데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은  뜨거워졌다.

이러므로 네가 떠나지 안하면 네 모든 것이 네 구원으로 하여금 더 이루어 지게  도움이 되는 것이지 네가 해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네가 나를 죽였다 할지라도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진리와 영감과 주님의 공로와 떨어지지 안했으니 나는  죽지 않는다. 요것을 확고히 가져야 됩니다. 떨어지면 아무리 죽음에서 감옥에서  척 나와도 죽었습니다. 그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왜? 진리와 요걸 확실히 들으라 말이오. 진리와 떨어져 가지고는 사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인데,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의 이 법칙 하나님이 이  사는 법칙을 떠나 죽는 법칙과 합해 가지고 사는 길이 없습니다. 이 진리와  떨어져 가지고는 사는 길이 없고, 이 진리와 떨어지지 않고는 죽이는 세력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가지고 있는 것은 죽이는 힘이 없고 하나님과 그 연결이  끊어지고는 사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로 안에는 죽이는 세력이 들어오지  못하고 예수님의 공로를 떠나서는 사는 길이 없습니다. 요것을 확고히 가져서  우리가 어떤 그 비상시를 만나고, 어떠한 위급 일을 만나고, 사소한 일이든지,  큰일이든지, 이 지식이 우리에게 확고해야 됩니다. 그래서 고걸 가르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 그러면 주님은 진리시요 주님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시요. 주님은 성령이시요.

주님은 세 가지 공로입니다. 나를 믿는다 말은 이 세 가지를 딸른다 그말입니다.

이 세 가지를 딸른다 말이요. 이 세 가지와 연결된다 말이오. 이 세 가지와  연결된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난다.' 그말은 이 세상 법대로 죽는다  그말이오. 세상 법대로 없어졌다 그말이오. 세상 법대로 깨졌다 그말이오.

깨졌으나 깨진 그것이 완전히 주님의 것이 되고 끝났습니다. 진리의 것이 되어  끝났습니다. 예수님의 공로 안에것이 되어 끝났습니다. 진리의 것이 되어  끝났습니다. 예수님의 공로 안에 것이 되어서 끝나서 세상에는 없으나 거기에서  옮겨져서 주님의 진리 안에 (것이 되어서 끝나서 세상에는 없으나 거기에서  옮겨져서 주님의 진리 안에) 주님의 공로 안에 하나님 안에 것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는 사망이 해하지 못하는 이것을 가리켜서 "죽어도 다시 살겠고" 요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살다니 우리 심신이 우리 심신이 이 세 가지로만 살아나느데 우리 심신은 죽어  있는 것입니다. 이 죽어있는 것이 죽어 있는 것이 이 세 가지로 인해서 세상에서  죽어야 이 세 가지와 결합이 됐습니다. 안 죽어도 이 세 가지를 인해 세상과  완전히 이것이 끊어져 버리야 세상에서는 십자가에 못박혀서 세상에는 끝이  나버리고 세상에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과 끊어졌어야 이 세 가지가 합해  가지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살아 믿는 자는 어떤 자가 살아 믿는 자냐? 살아 믿는 자는 죽어 있던  자가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공로로 살아난자 그자를 말합니다. 죽은 자가  예수님의 공로로 진리로 영감으로 살아난 그자를 가르쳐서 살아 믿는 자, 그자가  살아 가지고 믿는 자. 그러면 죽은 자가 예수님의 공로와 진리로 살아난 그자  죽었던 것이 살아난 그걸 말합니다.

그러면 죽은 자는 어떤 자인데 우리는 다 죽었습니다. 우리의 이 심신은 죽어  있습니다. 왜? 우리가 또 활동하고 있는데 성경에 보십시요. 죄와 허물로 죽은  자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다." 말은 우리의 심신은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공로로 알고만 있지 실지로 합하지를 못 했습니다. 합해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합해지는 것은 네가 거기에 합할래 세상과 합할래 이 세상과 합하면 그걸 버리야  되고 그와 합하려 하면 세상을 버리야 되고, 반드시 요런 시험을 통과해 가지고  거기에서 세상과는 인연이 끊어지고 이 세 가지와 합한 고때에 합해진 고것으로  살아납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죽은 것이 죽은 것으로 사는 사람 있고 죽은 것이 이 세 가지와  합해서 살아난 부분이 많은 사람 있고 살아나는 부분이 많은 사람은 그 사람은  세상에 살아 있지마는 그것이 세상이 해할 수 없는 자로 살아났기 때문에 세상이  달라들면은 잘 가라고 뒤에 밀어줘서 도로 빨리가기 뿐이지 가게 되는 것 뿐이지  해하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죽었다 살았다 하는 여러분들이 죄와 허물로 죽은자 우리 육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니라 이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이걸 똑똑히 인정이 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어데 있습니까 로마인서 8장 10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이 말은 이제 중생 됐으면 말입니다. 예수님으로 중생됐으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몸은 죄로 인해서 이 심신의 육이라는 것읒 죽어 있는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영은 의로 인해서 살아 있는 것입니다.

고 10절입니다. 또 23절 만물이 탄식하는데 이뿐 아니라 만물이 탄식하는데  만물만 탄식하는 게 아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다 말은 성령의 처음 목적  달성이라 그말이오. 열매라 말은 결과 아닙니까 결실아닙니까 목적달성 그러면  성령이 우리 영을 살려냈습니다. 우리 영이 살아난 것은 하나님의 그 성령  목적의 일차 달성입니다. 일차 성공이요.

고 다음에 이차 성공은 뭐이냐? 하면은 몸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탄식이라 말은 낙망적 탄식이 아니고 마음에 답답한 고민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내가 탄식하는 것은 낙망한다 말 아니요.

지금 안되서 지금 죽을 지경에 마음 고민 걱정을 가리켜서 요게 탄식이라고  번역이 됐는데 실은 요 탄식보다도 마음에 애탄다. 애탄다하는 그런 말로 번역이  됐으면 더 좋은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 나올지 몰라도 탄식하여 양자될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 하나님의 자녀될 것이면 미래 아닙니까 자녀가 안됐다 말  아니요. 양자될 것 곧 뭐이냐?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몸의 구속은  우리 몸은 구속을 안 받았기 때문에 양자가 안됐다 그말이오. 우리 몸의 구속 그러면 자 이것이 우리 현실에서 이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공로와 세상이  뗄수 없게 연결이 됐으면 그거는 살았는데 떨어졌으면 죽은 것인데 연결이  됐다고 해도 세상이 뗄 수 있는 우려성이 있으면 살았으나 죽을 우려성 있는  것이고, 또 떨어지면 죽기 때문에 연결되 있다고 하지마는 앞으로 세상이  뗄라하면 뚝 떨어질 것이면 그것은 살았다 하는 이름 뿐이지 실상은 아직까지  죽어 있는 자라.

세상이 뗄레야 뗄수 없는 연결을 가졌으면 그거는 산자라. 이 세상이 떼지  못하니까 붙어 있을 것 아닙니까 붙어 있지마는 세상이 뗄수 있는 것은 죽을 수  있는 것이지요. 연결만 떨어지면 죽고, 연결이 안 떨어지면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니까 세상이 떼도 떼질 수 없는 세상이 암만 달라 들어서 별별 수단 방법을  해도 진리와 떨어질 수 없고, 영감과 떨어질 수 없고, 예수님의 공로와 떨어질  수 없는 피와 성령과 물과 이 셋과 연결된 이 연결이 떨어질 수 없는 연결 되어  세상에 있는 요것이 뭐이냐 산자입니다.

산자 네 살아 있는 자는 요 살아 가지고 주님의 법도를 지키고 지금 주를 따라서  사는 요것이 살아 믿는 자입니다. 살아 믿는 자는 주었던 것이 살아난자입니다.

죽었던 것이 살아난자 그러면 죽었다니 왜? 우리가 죽었어. 하나님의 법적으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요. 실은 생명인 하나님과 끊어졌고 하나님의 생명법과  끊어졌기 때문에 정죄받아서 죽을 수 밖에 없는기라. 예수님의 공로와 끊어졌기  때문에 그는 죄 불의 하나님과 원수 그대로 있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람은 죽었다는 것을 아십시요. 모든 사람은 다 죽어 있는 것인데  죽다니 진리에서 떨어졌다 그말이오. 하나님과 떨어졌다 그말이오. 예수님의  공로와 떨어졌다 말이오. 떨어져 있는 이 죽은 것인데 죽은 것이 예수님의  공로와 진리와 영감과 떨어지지 안하려고 우리가 지금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노력을 해서 떨어지지 안하고 붙으면 세상은 뗄라고 하고 붙으면 세상은  뗄라하고 붙으니까 세상이 뗄라 하는데 조그만 됐으면 떨어지지 안하고 이래  달렸다가 바람이 데게 불으니까 그만 붙었던 것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거는  아직까지 살아나지를 못한 것입니다.

이제 차차 이래 붙어 가지고 결합이 되어서 세상에 고문 가지고 해도 떼지  못하지 또 세상에 잇는 모든 지위나 권세나 다 뺏들어도 떼지 못하지 마지막에  죽이려해도 아야 죽어도 떨어지지 안하니까 죽음 가지고 그 하나님이 죽게 하는  때가 되면 죽이지마는 때가 되지 전에는 죽이려고 협박만하고 위협만 주고 죽일  수 있는 그 고민만 하지 죽일 수 있는 고행을 하니까 안죽는다 그말이오. 죽일  수 있는 고행은 안죽어 이거는 안 죽는 것은 때가 안돼.

안죽지 그거는 죽일 방법을 다해도 죽이되 떨어지지 안했으면 이제 죽는게  최고인데 죽여도 떨어지지 안했으면 이것은 주님과 결합되어 산것입니다. 산 것  이것이 주를 믿는 것입니다. 살아 주를 믿는 것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할 마음의 기능이 많이 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할 몸의 기능이 많이 있습니다.

이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이 죽지 안할 영생을 가진 마음과 몸의 기능이 많은  사람은 육의 남은 구속 이것을 제가 자유하지 못하고 자꾸 얻기가 쉽습니다.

이루어 가기가 쉽고 이것이 산편히 약하고 죽은 편이 강하면 이 산편 이것이  두려움에 싸이 가지고 죽은 편 이것이 자꾸 말하니까 남은 심신의 기능이  미혹받아 가지고 살기위해서 죽는다.

그러나 살아난 기능이 많으면 이 기능이 이것을 자구 달래기도 하고 권면도 하고  또 타이르기도 하고 이래 막고 이 마음을 자꾸 이렇게 협동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이 힘이 강하기 때문에 이 산 부분이 많은 사람은 것사람이 부패하여  있는 남은 이것을 세상이 당겨도 참 그 비웃고 비웃고 너희들이 암만 괴롭히면  얼른 들어붙지 괴롭히면 들어 붙는 것 가지고 끝나버렸지 끝나버리고 그러지  그것이 들어서 주님과 더 결합을 시키는 운동이 되어지고 다시는 침노해서  못믿는 그런걸로 만들지 그게 떼지는 못한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다같은 일을 만나도 살아서 믿는 부분이 많어 사람은 그런 것을 쉽게  여기고 이기고 이것이 적은 사람들은 많은 사람은 웃으면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이겨나가는데 이게 작은 사람은 죽을 지경입니다. 그 다같은 입장을 당했는데  많이 어려운 사람 적게 어려운 사람 그게 뭐이냐? 이 산 부분이 많고 적은 그  관계로서 그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 중요한 것 요 세 가지와  떨어지지 안하면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고문과 고행을 합니다. 고문과 고행을 받으면서 요걸 기억해요. 고문과  고행 나는 진리와 영감과 주님의 공로와 떨어지지 안하면 죽이지 못한데 그들이  뗄라고 어떻게 해도 죽인다 해도 죽을만한 그런 경구가 있어도 이 떨어지지  안하면 그들이 떨어지지 안하면 그들이 죽이지 못하고 또 떨어졌다고 해서 살아  있는 것도 살 기한이 남았어야 살아 있지 떨어졌다고 산 것 아닙니다.

그 순전히 유혹이요. 보기만 떨어지면 살겠는데 그 사람 떨어져서 살았다  싶으지마는 떨어져 산게 아니라 붙어도 살겠는데 그 사람 떨어져서 살았다  싶으지마는 떨어져 산게 아니라 붙어도 살아있어. 기한이 있어. 죽고 사는  기한이 있습니다. 기한이 안 찾으면 죽을 기한이 안 찾으면 붙어 있어도 그들이  죽일래야 죽이지 못합니다. 또 붙어 있으면 배반해도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을 기한이 됐으면 배반하고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여 주님이 우리의  생명도 끝나는 기한이 있고 우리의 소유나 지위나 권세도 끝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딱 예정되 가지고 있어. 되 가지고 있는데 끝나는 시간이 있는데 고  끝난 시간이 됐으면 진리와 주님과 공로를 팔아도 끝나버리고 끝날 시간이  안됐으면 이 주님과 진리와 이 공로를 잡고 이것 때문에 저는 죽을 고행을  다하고 하지마는 때가 안됐으면 안 죽습니다.

이러니까 안 죽는 고것은 살아서 그 죽은 것이 살아나 가지고 지금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살아서 그 죽은 것이 살아나 가지고 지금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남아 있으면은 진리와 영감의 종이 되어서 그래서 의의  종, 의의 종이라 그 하나님 뜻을 이루려 함이라 남은 그것은 의의 종이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그거는 세상이 침노하지 못해. 암만 침노하면 그 일을  도와주는 것뿐이지 거 들어 주고 도와주는 것뿐이지 해는 못한다 그기요.

그러기에 우리가 어리석지를 말아야 됩니다. 죽기는 이 세 가지서 떨어지는 것  외에는 죽는 법이 없습니다. 해하는 것은 이 세 가지에 연결되는 것 외에는 사는  길이 없습니다. 떨어지지 안할 때에 그들이 죽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안해서  저들은 죽은 그 죽을 그런 고문과 고행을 다 하지요. 죽을 고문과 고행을 다해도  다해도 떨어지지 안하니까 그 이상은 못해. 벌써 죽음을 넘어 가버렸어.

이래도 죽지 안한 것은 그들이 안 죽어. 남아 있는 게 아니면 죽을 때가  안되어서 남아 있는데 죽을 때가 안되서 남아 있는 그것은 세상이 죽여도  떨어지지 안할 때에 그들이 죽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안해서 저들은 죽은 그 죽을  그런 고문과 고행을 다 하지요. 죽을 고문과 고행을 다해도 떨어지지 안하니까  그 이상은 못해. 벌써 죽음을 넘어가버렸어.

이래도 죽지 안한 것은 그들이 안죽어 남아 있는게 아니면 죽을 때가 안되어서  남아 있는데, 죽을 때가 안되서 남아 있는 그것은 세상이 죽여도 떨어지지  안하는 것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세상을 이긴자입니다. 사망을 이긴자입니다.

이것이 살아서 예수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하는 그 부분에 속한  것입니다.

외정 말년에 박해를 당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 참 죽어서 뭐 주남선 목사 같은  분들도 경찰서에 가 가지고 신사참배 안한다고서 그 뚜드리고 이래 가지고 그만  까물쳐 죽어버렸다 말이오. 죽어 버리니까 이 차우면 깨어난다고 이 어리석은  자들이 세멘트 바닥에 내어놓고 그만 그 물을 씨우면 좀 살아난다고 물을  쎄워놓으니까 그날밤에 나뒀으니까 깡깡 얼어서 그만 그 얼음 얼음 덩어리가  되버렸어.

얼음 덩어리가 되어도 이제 덩어리가 됐는데 그 이튼날 아침에는 땀이 폭 나게  자고 일어났다 말이오. 네 그거는 하나님이 살린 것이지 살린것 그들은 죽였는데  죽여도 떨어지지 안해. 죽어도 떨어지지 안하고 요 연결됐으니까 그들은 더  하지를 못했어. 더 하지를 못하고 살아 있는 거는 그것이 살아 믿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죽었다 말은 죽어도 산다  그말은 없어졌느냐 없어졌느냐? 없어진게 아니고 사망 세계에서 없어진거는 생명  세계로 옮겨졌다 세상에서 없어졌고 주와 지금 함께 살고 있다. 진리와 함께  살고있다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다. 예수님의 공로 안에서 죄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살고 있다 그러면 먼저 간 성도들은 다 박해와  순교자들은 다 이런자들입니다.

순교자가 아니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연결된 것만 같지  나머지기는 자연법으로 죽는 그 법에서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건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그 기능은 살아나지 못해요. 예수님이 부활할 때에, 재림할실 때에,  부활할 때에 그 형체는 부활하지마는 그 기능들은 다 죽어서 그대로 영원히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죽어 사는 것 죽어 사는 요것을 우리가 노리고 있어야 됩니다. 죽어  사는 요것을 노리고 있고 또 살아 믿는 이것을 주님이 주시는 대로 살아 믿는  이거는 우리가 원할 것은 아니지마는 죽어 사는 죽어 영원히 사는 요것이 우리가  첫째 소원할 길이요. 죽어 사는 것을 원했는데 죽어 살지 안하고 살아 살았으니  살아 가지고 살았으니 살아 가지고 살아 있는 것으로 주님 믿는 이자는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게 되고 일한 가치는 있어 영원히 죽지 안하는 것으로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것을 단단히 가져 자기에게 어려움이 달칠 때에 요 지식에 혼돈되면  안 됩니다. 어쩌든지 오후에 요것만 가지십시요. 예수님의 공로를 떠나지 않고,  진리를 떠나지 않고, 영감을 떠나지 안하면 죽일 자가 없다.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죽이지 못합니다. 죽이지 못합니다. 만일 땅위에서 죽인다고  없애버렸다면 없어진 게 아니라. 그것이 예수 때문에, 진리 때문에, 그 영감  때문에 영감과 진리와 주님의 공로와 세상 끝을 같이나고 같이 영원히  살았습니다.

네 주와함께 죽어 영원히 주와 같이 사는 진리와 함께 고난 받아 죽고 진리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 영감과 함께 고난 받고 죽어 영원히 사는 것, 요것을  우리가 원하고 그들이 죽이지 못한다는 것과 죽어 요 결합되면 다시는 침노 받지  못할 것을 결합되는 것 요것을 우리가 원하고 죽어 영원히 사는 요것을 첫째  우리가 원해서 담대해야 됩니다. 사업도 그렇습니다. 조그마한 것도 그렇습니다.

큰것도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어 주님과 같이 살려고 했는데 주님이 죽게하지 안하니까 그들은  죽였는데 나는 살아 세상에 있으면서 주님과 같이 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벌써 고난을 받은 자는 죄에서 끝쳐 죄에서 그쳐 하나님으로 더불어 함께 살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고난을 받은 자 이것을 통과해서 그 고나을 줘도  떨어지지 안한 자는 벌써 죄에서 끝나버렸습니다. 죄가 해하지를 못 합니다.

세상이 해하지 못하는 자로 이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살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살아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살아 예수 믿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죽어 예수 믿어 부활할 부분이 얼마나 있는지 죽어 있는데,  이것은 죽어 있는 이것은 죽음으로 부활하는데 죽음으로 살아나리요. 죽음으로  살아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또 살아나 가지고 예수님으로 더불어 같이 사는  이것이 얼마나 많은지, 자기에게는 어떤 사람은 죽어 다시 살아난 이런 요소만  가득 한보따리 사 가지고 있으면서 한보따리 싸고 있으면서 어서 죽어서 자꾸  진리와 영감 떨어지지 안하고 세상에 고난 올때에 죽음의 고난을 통과해야  살아날 터인데, 이 한보따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좀 살아날 기회 만나면 아이구  주님과 진리와 영감을 배반치 안했다면 주님과 진리와 영감을 배반치 안했으면  내가 죽을 터이니까 배반하고 살아야 되겠다 해 가지고 살기 위해서 이것을  배반하고 살아남은 이 뭉텅이로 있다가 나중에 바싹 다 죽어버려.

다 죽고 부활할 때에 아무 산 기능이 하나도 없어. 그런 자도 있을 것이고 그  시간 그 시간 죽어 있는 것이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되어 사는 것인데 이 살아  있는 것이 그들이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 됐다고 죽이는 이 모든 어려움을 고난을  이 고난을 통과해 가지고 살아난 산 부분이 많은 것 껍데기는 다같은 사람  같지마는 이 십자가를 짐에서 살아난 부분이 많은 사람 살아난 이 부분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잘 할 것이고 또 이 사람은 세상이 해하지 못할 것이고  세상이 모든 운동하는 것이 돕는 일 밖에 못해. 유업을 하나도 주지 못해.

그런고로 요 지식을 확고히 가집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작은 사업을 하든지, 큰 사업을 하든지, 가정에 작은 일이든지, 큰  일이든지, 개인 일이든지, 단체 일이든지 요것을 확고히 가져야 됩니다. 요  영감과 진리와 그의 공로를 떠나서는 사는 길이 없고 여기에서 끊혀지지 안하면  죽이는 역사가 없습니다. 떠날 자가 되어서 떠났으면 그는 영원히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연 법칙으로 없어진 것 있고 주님과 진리의 법칙으로 인하여  없어지는 것있고 그러나 없어지는 것도 자연 접칙으로 없어져 다른 데도 주님과  진리에게로 인해서 없어지는 것도 없어질 때가 되어서 없어지는 것인데 주님과  진리대로 없어지는 것을 없어지는 게 영원히 살아나는 것 있고 그걸 만나지  못하고 잘못해 죽은 것을 영원히 죽여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자에게 순교를 줍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어려움을 줍니다.

 


선지자선교회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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