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신앙

 

1989. 3. 10. 금밤

 

본문: 시편 1편 1절∼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은 길은 망하리로다

 

 {묵상 기도}  이렇게 이 시간을 주셔서 주님 앞에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참 우리는  심히 어리석습니다. 주님이 순간이라도 놓으시면 악령에게 끌려서 자멸하는  걸음을 걷는 우리들입니다. 긍휼이 여겨 주사 이 시간도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다 주님의 피로 구속하셔서 주의 것 삼으신 중생된 저희들이오니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의 피공로의 이 능력과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이 우리  각자들을 감동시켜 우리를 죽이는, 또 계속 죽이고 있는 악령 악성 악습 이놈을  주님이 다 멸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깨끗한 저희들이 되어 주님을 진심으로 예배드리며 주님의 말씀을  들어 하나도 에누리하지말고 그대로 견고히 지킴으로 주의 주시는 지극히 큰  구원을 날로 이루어가는 슬기 있는 저희들되게 하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우리가 복이라고 하면 그저 재산이나 넉넉하고 몸이나 건강하고 또 자손이나  흥성하고 모든 출세나 하고 그러면 그런 것만을 복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좁은  범위에서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게 복있다는 이 말씀은 매우 복있다는  말씀인데 금생과 내세, 영과 육 전부가 다 복있다는 것을 가르쳐서 복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좁은 범위에서 복을 말하는 것은 과거에 유교로써 도덕 시대에는 이  복이라는 말을 자주 하면 좀 너무 비신사적인 그런 추접한 말같이 그렇게 생각을  가졌습니다. 뭐 그떡하면 복 복 그저, 말할 때에 이익이냐 해냐 하는 이해 따지는  것 모양으로 복이라는 이런 말할 때에 그렇게 좀 참 인격답지 못하다 그렇게들  생각을 가진 것이 동양 이 유교에서 가진 관념입니다. 그러나 여게 복은 금생  내세, 영과 육 전부가 복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복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다 복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또 이 복 반대로 화가 있는 사람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복과 화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화있다고 말하고 또 저주를 하고 이렇게 하면 우리가 거게 대해서  잘못 깨닫기가 쉽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나를 저주하고 화가 있다고 이렇게 뭐 어떻게 훼방을 한다 해도  그것이 그 말에 따라서 우리에게 오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우리에게 올 만한  그런 원인이 있으면 그런 말 안 해도 오고 또 원인이 없으면 아무리 그런 말  해도 안 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를 해치는 그런 무슨 저주의 말이나 그 해치는 그런 말을  우리가 들을 때에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내게 참으로 그렇게 화를  받을 만한 그런 원인이 있나 하는 것을 그것을 먼저 생각해서 그 일을  정리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자비 있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화받을 원인을 정리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선생님이요 선지자요 은인입니다.

 또 고칠 게 있어서 고치면 그 사람은 나에게 선지자요 선생님이요 원인을  고치게 했기 때문에 아주 은인이 되겠고 만일 자기에게는 그런 일이 없는데 거짓  걸로 그와같이 욕하고 핍박하면 그때는 가만히 참고만 있으면 복이 됩니다. 이런  처세술을 우리가 가져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 어떻게 훼방을 하고, 어떻게 저주를 하고, 어떻게 욕을 한다고  해도 거게 대해서 내가 공연히 노여워하고 섭섭해하고 저 사람이 나에게  저러니까 나도 그 사람하고 그래야 되겠다고 적대시하고 원수시하고 이와같이  하면 그거는 원인이 있든지 없든지 손해입니다. 그만한 저주받을 만한 원인이  있든지 없든지 손해가는 것입니다.

 그거는 손해가지마는, 자기가 거게 대해서 '저렇게 말하니 지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갈 내인데 가기 전에 뭐 틀렸다고 말하니까 여게 대해서 틀렸는가 조사해  가지고 고치자' 이렇세 생각을 하고 고치기를 노력하면 그 사람은 아무리 어떤  사람이 욕하고 뭐 해하고 저주한다 해도 그 자람은 그 저주로 해로 말미암아  손해보지 않습니다. 또 자기에게 그런 것이 있으면 고쳐 유익이고 그런 것이  없으면 거짓 걸로 핍박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상이 있어 유익이고 해되는  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거게 대해서 '저 사람이 나에게 저렇게 하니 나도 그 사람, 그 사람이 내  적이고 하기 때문에 나도 그 사람을 저주해야 되겠다. 또 욕해야 되겠다.' 하면  욕을 해도 자기도 손해갔고 저주해도 손해갔고 전부가 손해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해하는 말을 할 때에는 꼭 조심을  가져야 됩니다.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 아니면 말할 필요 없습니다. 상대방을  위하도록 고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할지라도 아주 상관 없으면 그만 거기  대해서 말할 필요 없습니다.

 어느 정도 고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을 하다가, 설교를 하든지 뭐 또  지나간 말로 이래 하든지 대면해서 말하든지 이래 해서 안 들을 때에는 그 후는  더 말을 하면 그것이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 거짓 걸로 말하면 내게 참으면 복되고 그말이 참으로 있어서  말하면 내가 고치면 복되고 만일 그런 것이 없어서 거짓 걸로 말했을지라도  상대방에게 피동돼서 '저 사람이 나를 욕하니까 나도 저 사람 욕해야 되겠다' 하면  벌써 손해갔습니다. 그 죄악에게 삼켜져 죄악의 종이 됐습니다.

 그리하면 적대시하면 있어도 손해요, 화받을 만한 일이 있어도 손해요 없어도  손해입니다. 적대시하지말고 그 말을 가지고 내 구원을 이룰라고 애를 쓰면  있어도 유익이고 없어도 유익입니다. 우리가 자기 천국을 자기가 만들어서 이  세상 살아갈 때에 이렇게 슬기롭게 살아가야 복이 있지 슬기롭게 살아가지  못하면 이래도 해 저래도 해, 해되기 쉽습니다.

 여게 복있는 사람은 매우 복있는 사람인데 이것은 대략 듣고 집에 가서 잘  새김질해서 우리 구원을 잘 이루어 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요 1절, 1절은 요것이 둘째 순서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이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못 합니다.

이것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도리를 들었든지 읽었든지 한 그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요게 이호요.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도를 듣든지 읽든지 할 때에 그전에도 많이 공부했는데  자기가 들을 때는 들을 데 갔기 때문에 들었다, 들을 수 있는 데 참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들었다, 자기 노력으로써 듣기도 하고 또 성경 말씀을 읽기도 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하지마는 자기가 성경 말씀을 읽게 되는 것이나 또 듣게  되는 것이나, 읽게 되는 것이나 듣게 되는 것이 그것이 제 힘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벌써 하나님께서 그 속에, 중생된 사람 속에 중생된 영이 들어서 성경을 읽도록  듣도록 속에서 역사를 하고, 또 하나님의 성신의 감화가 역사를 하고, 하나님이  환경 주위에 모든 섭리를 가지고 역사를 하고, 또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가지고  역사를 하고, 또 자기 마음을 일깨워서 성경 말씀을 들을 마음을 가지도록,  '집회에 가 참석하고 싶다' 들을 마음을 가지도록, 성경을 읽을 마음을 가지도록,  그렇게 여러 면으로 역사해 가지고 우리가 성경을 듣고 읽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읽고 싶어서 읽었고 듣고 싶어서 들었다고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 방편대로 알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성경을 벌써 읽을 때는 하나님이 무한한 은혜로 역사해 가지고  나에게 성경을 읽게 한 것이고 나에게 성경을 듣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읽고 듣고 한 것입니다.

 요 사실을 자기가 깨달으면, 성경을 읽을 때에 들을 때에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섭리하셔 가지고 읽도록 하셨고 듣도록 하셔 가지고 내가 읽고  들었다 하는 이 사실을 깨달으면 자기에게 더 은혜가 되지마는 제 마음으로 듣고  싶어서 들었고 읽고 싶어서 읽었다 이러면 인본이 돼 버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없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읽게 하시고 또 설교를 듣게 하시고 이래서 이 구원  얻는 도리의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알려 주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을 이루도록 기르기 위해서 반드시 듣고 배운 말씀을  써먹을 수 있도록 그런 환경과 주위를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읽게 하는 것 듣게 하는 것도 당신의 참 주권의  능력의 은혜로 나로 하여금 듣게도 하셨고 읽게도 하시고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내가 알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 구원 도리를 써먹을 수 있는, 이  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실행할 수 있는 그런 순서를 또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만들어 주시는데 어떤 순서를 만들어 주느냐? 여게 말하기를 악 인의 꾀를 좇지  않으면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는 요  세 가지로 말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그 말씀을 다 그대로 네가  한번 실행해 봐라 하는 그 실행할 모든, 조건이 요 속에 다 포함됐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알려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 알려 주셨고 알려  주시고 난 다음에는 알려 주신 대로 요대로 네가 지켜 행하나 안 행하나 하는  것을 또 우리를 하나님이 시험하시려고 지켜 행할 수 있는 그런 형편과 사정을  또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두 가지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두 가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도리의 이 진리를  알게 하실 때에 내가 순종으로 알았고, 그게 순종이고, 하나님의 도를 내가 아는  것이, 하나님이 알게 할 때 내가 아는 것이 그게 순종이고,  또 내가 알고 난 다음에 이 말씀대로 실행 하나 안 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려고 이 세 가지 종류 면으로 우리 환경을 만들어서 네가 이 가르친  말씀대로 실행 하나 안 하나 이렇게 하나님이 시험 하시는데 요 세 가지를  허하면 하나님에게 두 번 순종 한 것이 됩니다.

 악인의 꾀 좇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으로 나 가자, 피조물  중심 또 자기 중심 그걸 따라서 가자 이렇게 할 때에 거게 따라가지 않는 것이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것입니다.

 또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어긴 그 행동, 하나님에게  거리끼는 행동을 하자 할 때에 거리끼는 행동을 거게 서지 않고 거리끼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것도 하나님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하다 말하는 것은 '이제  내가 이만치 믿었으면 됐다' 하교 자기가 교만을 가지는 것이, 자만을 가지고  교만을 가지고 '이제는 됐다' 하고 게을을 부리고 주저앉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오만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요 세 가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 하지 않았으니까 세 가지 하지  아니한 요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자기가 지켜 허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하나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그 다음에는 그대로 하나 안 하나 하나님이  보시려고 '요렇게 해라' 시키실 때에 하고 그러면 두 가지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이제 그 다음에는,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제 셋째로는, 그러고 난 다음에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  즐거워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또, 묵상한다 말은 하나님 말씀을 자꾸  명상하고 눈감아 가지고 또 생각하고 생각해서 이렇게 명상하는 거.

 이 명상의 시간이 제일 많이 갑니다. 하나님 말씀을 우리 교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보면 요 말씀은 똑 가져야 되겠다 해 가지고 그 말씀은 녹음도 하고  요래 가지고 단단히 이렇게 하고 말씀 딱 떨어지고 나면 그만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면 그만 일어나 버립니다. 일어나 가지고 갑니다. 그 사람은 그  말씀이 자기애게 양식되지 않고 복음이 되지 않고 그 말씀이 자기에게 지식이  되기 때문에 점점 그 사람은 교만해지지 은혜의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요 말씀을 듣고 나면 그 말씀대로 새김질하면, 아침이든지  저녁이든지 하나님이 말씀 주시면 그 말씀을 가지고 요 말씀대로 내가 내 생활과  내 자체와 비교를 해 봐서 요 말씀과 나와 내 생활이 다르나 같으나 그걸 봐서  다르면 그걸 기어코라도 이 말씀과 갈도록 자꾸 휘어대서 이 말씀과 자기 행위와  자기 생활이 같도록 이렇게 하려고 애를 또 써야 됩니다.

 그러고 또 그 다음에는 이 말씀대로 내가 모자란 게 있으니까 잘못된 거 있으면  하나님께 사과도 하고 또 자기가 부족한 거는 하나님께 간구도 하고 그날  아침에는 그날 밤에는 그 말씀 가지고 새김질을 해서 이렇게 기도를 하면 그  사람이 자꾸 때를 따라 양식 주는 그 양식을 먹고 자꾸 자라가고 이래 되는데,  어떤 사람은 주문 신앙 생활 하고 있어. 이거 이 돌팔이들 점쟁이 이런 사람불은  항상 주문 그것만 외웁니다. 외우는 것 모양으로 그저 이 설교를 해도 그전에  자기 기도하던 거 그거 주문 기도 그전에 기 도하던 거 항상 그거 또 낮에도  밤에도 항상 그 기도, 이것만 하는 사람은 그때에 하나님 말씀을, 주시면서 그  말씀으로 자기를 변화시키려 하는 그 변화를 받지 못하고 항상 한 가지만 입에  익은 거 그것만 자꾸 기도하고 그것만 큰소리로 기도하고 이러면 그것이야 뭐  입에 줄줄줄 익었기 때문에 할 수 있지. 거게는 자라지 않습니다.

 요 말씀을 들어 가지고 다시 새김질하면 요 뜻을 깨달아 보고 또 자기와 대조해  보고 자꾸 요러면 자기에게 이제까지 모르던 새 진리를 깨달아 가지고 자기에게  새로운 부분을 하수해 가지고 그것을 자꾸 변화시키고 구원시키는 그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요거  셋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알았고 듣든지 배우든지 알았고, 하나님  말씀을 알았고 또 둘째로는 안 대로 실행을 했고 둘째로는 안 대로 실행. 알았고  안 대로 지금 실행을 하고,  안 대로 실행하는 것을 여게 "악인의 꾀를 쫓지 않으며 쬐인의 길에 서지  아니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하는 요것이 지금 말씀대로 실행한  것이라 말이오. 요 안에 다 들었어요. 모든 신앙 생활이 요 안에 다 들었어요.

 이 세상 우리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이 자기 중심의 가족, 자기 중심의 친구,  자기 중심의 동역자, 자기 중심의 이웃, 피조물 중심, 이 세상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요, 민족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요, 국가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라. 어쨌든지  피조물 중심, 하나님 중심 외의 것은 전부 악입니다.

 요 악에 내가 끌려가지 않고, 나도 악을 안 할 뿐 아니라 악에 끌려가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이탈된 비에는 내가 거게 같이 서지를 많고 또 내가 교만해서  '이만하면 됐다' 하고 허리끈 풀어 놓고 그렇게 오만 하지도 않고 요 세 가지  하면, 하나님 말씀을 알고 난 다음에는 제가 그대로 실행을 했습니다.

 실행하고 난 다음에 또 뭣 하느냐 하면 실행하고 난 다음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또 실행하고 난 다음에는 또  하나님 말씀 또 지금 읽고 듣고 또 그 말씀을, 묵상한다 말은 그 말씀을 눈감고  자꾸 생각한다 말이오.

 이 말씀을 생각할 때는 그 말씀의 이치대로, 그 말씀대로 이치를 생각해 보고 그  말씀과 이제 다 생각해서 이치를 알고 난 다음에는 그 말씀과 자기 과거 생활이  어찌 됐느냐 대조해 봐서 잘못된 거 있으면 고치고 자기가 현재 경영하고 있는  거는 어찌 됐느냐? 이제 경영하고 있는 것도 이 말씀과 대조해 볼 때에 틀렸으면  그거 또 고치고 또 자기 자신이 이 말씀과 대조해 볼 때에 틀렸으면 고치고  이래서 그 하는 것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러면 여게 지금 몇 가지 순서 했습니까? 자, 여게 몇 가지 순서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순서 했는지? 몇 가지 순서했습니까?  뻐뜩 들어 해 봐. 손가락으로, 몇 가지 순서? 네, 이 세 가지. 요거 단단히. 요거  안에 있는 뭐 단절적인 해석은 여러분들이 여러번 들었기 때문에 알기 아문에  요거 이제까지 전체적인 요 뜻을 깨닫도록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제 셋째 순서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어데 하나님 말씀 알았다 말이 어데  있느냐? 일호는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알았다 하는 것이 여기 기록이 있습니까?  알았다 하는 거는 기록이 없습니다. 기록이 없으나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저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그것이 하나님의 도를 자기가  들었기 때문에 그렇지 듣지 않았으면 지금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말이오. 자기가  그 둘째 행위를 하는 것이 그게 벌써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는 증거라 그말이오.

 하나님 말씀 먼저 알았고, 알고 난 다음에 실행했고, 실행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또 뭐입니까? 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 돌아가서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읽고 또 묵상하고 요러면 셋 순서 아닙니까? 이래 순서 했어.

 요 세 순서를 하면 이제, 요 세 순서를 하면, 그러면 요 세 순서가, 세 순서를  했는데 요 세 순서가 자기 혼자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게 할  때에 요 순종이 서입니까 제가 한 것이 명이고 순종은 몇 이고, 그러면 순종은 몇  개입니까?  이 서이 했는데 순종은 몇 가지고 자기가 한 거는 몇 가지입니까? 자 순종이  뭐이냐? 순종이, 자기가 한 것이 하나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순종한 것이 하나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순종한 것이  둘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순종한 것이 둘.

 세번째 그러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는  그거는 자기가 행한 건가 하나님에게 피동된 건가요? 피동입니까 능동으로  자기가 행한 것입니까? 피동이라, 피동. 그러면 하나님에게 순종을 몇 개  했습니까? 내나 세 개 했어. 이게 순종이라요.

 사람들은 이걸 모르고 이 세 가지가 제 힘으로 한 것같이 생각하면 인본주의요  그만 하나님과는 끊어져 버립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 세 가지 한 행동이 제가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벌써 넘어질 터인까  함부레 네가 넘어질 거나 조심해라. 넘어진다 그말이오. 네가 넘어지는 걸 네가  볼 것이다 그말이오.

 세 가지 하면 어떻게 하느냐? 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이 나무가, 요 시냇가라 말은, 요 시냇가라고 요랬는데 시냇가라 말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관수의 언덕이라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봇도랑, 이런 데서는 봇도랑을 잘 모르는데 저 시골 가면 봇도랑 있어요. 봇도랑  있는 것은 보를 막을 때 도랑을 해서 둑이 이래 높으단합니다. 둑이 높으단하니까  아무리 가물어도 도랑둑에는 항상 수분이. 풍족합니다. 또 수분이 충족하니까  장마가 질 때는 어찌 됩니까? 장마가 질 때에는 보를 딱 에워 버리기 때문에  물이 없으니까 또 아주 건조해집니다. 장마 질 때는 물이 건조하니까 좋고 또  가물 때는 물이 있으니까 좋고 그래서 요 시냇가라 하는 요것은 관수의 언덕이라  하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게다가 심은 나무라. 거게다 나무를 심어 놓으니까 이 나무는 "때를 따라  과실을 맺으며" 열매를 맺는다. 여기 과실이라는 것은 뭣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요한복음 15장에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이를  깨끗게 하시고 하는 말 있는데 그 과실은 뭣을 과실이라 하는고 하니 과실은  자체가 그리스도화되는 걸 말합니다. 알겠습니까?  "과실을 맺는다" 과실 맺는다. 요한복음 15장에도 "과실을 맺었다" 하는 과실  맺었다 그런 것을 선한 행위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선한 행위는 과실이  아닙니다. 선한 행위로서 자신이 하나님의 상대로 변화되는 거 성화되는 그것을  과실이라고 합니다.

 시냇가에심어 놓으니까 "때를 따라 과실을 맺으며"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과실  맺을 시기는 하나도 떨구지 않고 과실 맺을 시기는 과실이 딱딱 맺어진다.

 "과실을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도다" 요 비유인데 그 잎사귀는 뭣을  가리켜 한 것인고 하니 그 사람의 그 생활이 항상 청청하다. 그 사람의 생활이  항상 산 생활 한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그말은 산 생활 한다  말이오. 그사람이 항상 산 생활 한다. 산 생활이 뭐입니까? 영감과 진리와 피의  은혜대로 사는 것이 산 생활 아닙니까?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산  생활한다. 마르지 아니함 같도다"  「그러므로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 사람의  하는 모은 일이 다 형통하다. 그 사람의 하는 일이 모두가 다 형통하다.

형통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 그 죄를 지을 때 그만 이 탄로가 나  가지고 죄를 지을 수 없으면 그게 형통한 것입니까 죄를 지으려고 할 때에 죄를  잘 짓게 되면 형통한 것입니까? 어떤 게 형통한 것이오?  그 사람이 예수 안 믿을 때는 사기 협잡도 하고 하면 척척 다 되는데 요 꼭  사기나 협잡이나 횡령이나 그런 걸 하려 하니까 그거 그만 탄로가 나 가지고 딱  딱 걸려서 일이 안 됩니다. 조그만한 죄를 지어도 그만 죄를 지을 수가 없도록  되어집니다.

 그러면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하니까 죄 지으려고 하니까 죄를, 죄짓는 일이  잘 되어지면 그게 형통입니까 죄를 지으려 하니까 죄짓는 일을 지을 수가 없도록  자꾸 이렇게 되어지면 형통입니까? 어떤 게 형통입니까?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이  의의 길로 형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네, 맞았어.

 여게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하는 이 말은 이 믿음 생활 의인의 생활을  하는 그것이 의인의 생활 하려 하니까 그 일이 척척 잘 돼 나가고 죄 지으려  하니까 죄를 짓지 못하도록 딱딱 막히고 방해가 돼 가지고 죄를 못 짓게 된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 그 사람의 행사가 형통하게 된다. 이해가 됩니까?  그러면 이제 이만치 됐으면, 세 가지 하면,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이 알려 주실  때에 알았고, 듣고 읽고 해서 알았고, 안 대로 실행을 했고, 실행 몇  가지했습니까? 예, 세 가지. 실행을 했고 또 그러고 난 다음에 셋째 가 가지고는  뭣 했습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거 했다  말이오. 그러면 삼호 하지 않았습니까? 삼호.

 삼호 했는데 삼호를 순종 생활 삼호를 하고 나니까 「저는 시냇가에심은  나무가」 "저는" 하는 것은 이것은 이거 누구를 말합니까? 하나님을 말합니까  "저는"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순종한 사람을 말합니까 누구를 말합니까 저는 하는  건 누구지요? 저 수위 하던 O집사님? 순종하는 사람 말하지요. 저는 순종하는  사람이라 말이지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러면 시냇가, 그 사람을 가리켜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말한 겁니다. 그 사람을. 그러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제가 제  힘으로 심겨집니까 주인이 심습니까? 주인이 심습니다. 제가 심은 게 아니라  주인이 심어.

 그런데 시냇가에 심는다 했는데 시냇가에 심어 놓으니까 이거는 가물어도 좋고  장마들어도 좋고 이제 그 시냇가에다 딱 심어 놓으니까, 심어 놓으니까 이거는  전쟁이 나도 좋고, 평안해도 좋고, 흉년이 들어도 좋고, 또 병이 들어도 좋고,  이래도 저래도 뭐입니까? 뭐합니까? 과실 맺어. 이래도 저래도 과실 맺어. 과실은  뭐이라 했지요? 뭐이 과실이라 했지요? 예? 자기가 하나님의 형상화되는  성화되는 것을 가리켜서 과실이라 그럽니다. "과실을 맺으며"  그러면 그 시냇가에 심었는데 참 시냇가는 제일 좋은 데인데, 도랑 둑이라  말이오. 도랑둑에 심어 놨으니까 이거 나무에 대해서는 제일 좋은 곳인데 그  도랑둑이 뭐이겠습니까? 도랑둑에다 심었는데 그 나무 제가 심겨졌습니까 주인이  심었습니까? 주인이 심었습니까 제가 심어졌습니까? 주인이 심었습니다. 주인이  심다니? 어떤 주인이 심었습니까? 어떤 주인이 심었습니까? 예? 이 사람이 세  차례 순종했음으로써 순종하니까 이제 순종케 한 그분이 심었다 말이오. 순종케  한 분이 누굽니까? 순종케 한 분이 누구요? OOO조사님? 하나님이시라. 일호  순종 이호 순종 삼호 순종 하면 사호에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시냇가에  심어. 시냇가에 심으니까 이거는 뭐 가물수록 좋고 또 장마가 올수록 좋아.

장마가 질수록 좋아. 장마가 질수록 왜 좋아? 물을 매 놔서 언덕이 높으단 하이  이래 놓으니까 암만 비가 와 봤자 쭉쭉 빠지니까 다른 데는 모두 다 물이 모여  가지고 물손이 들어서 안 되는데 이거는 쪽쭉 빠지니까 비가 와도 좋고 가물어도  좋고 좋다 그말이오.

 그러다가 이 세 번 순종하고 나면, 세 번 명령 한 거, '성경 봐라' 할 때에 성경  보고, '그대로 지키라' 할 때에 지켰고, 또 '성경 보라' 할 때에 성경 보고, 일차  이차 세 차례를 순종하니까 그분이 시냇가에다가 심었습니다. 누구를 심었습니까?  누구를 심었습니까? 세 번 순종한 사람을 심었습니다. 심었는데 심으니까 자꾸  열매 맺지, 잎사귀가 청청하지, 행사가 다 형통해지지, 어데다가 심어 놓으면  그렇습니까? 그 시냇가가 뭐이 시냇가라? 그 시냇가가 뭐인지? 시냇가가 그거  환난이 와도 결실, 평안이 와도 결실, 병이 와도 결실, 전부가 이래도 성화 저래도  성화 자꾸 성화만 됩니다.

 그 시냇가가 뭐인가? 시냇가 그것이 곧 주님이 십니다. 주님이시라. 시냇가에  심었다 말은 그렇게 세 가지 함으로 주님하고 자기하고 딱 들어붙었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제 뿌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이랬어. 이제 그러면  시냇가에 심은 것은 하나님이 그거 그 시냇가, 가장 나무에 대해서는 가물든지  비오든지 해서 열매 잘 맺게 하는 것 마찬가지로 세상에 이런 저런 형편 사정 뭐  천 가지 만 가지 별별 형편이 있었는데 무슨 형편이든지 다 좋습니다. 무슨  형편이든지 그 형편을 통해서 자신이 성화됩니다.

 그러면 자신이 무슨 형편을 당하든지 자신이 성화되니까 어데다가, 심어서  그렇겠소? 하나님과 딱 연결이 돼 버렸습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과 연결됐어.

연결이 되니까 그리 돼.

 자, 하나님과 연결되는데 몇 가지 하니까 하나님과 연결시켜 줍니까? 세 가지  하니까 하나님과 연결시켜 줍니다. 이런 진리를 우리가 깨달으면 우리 구원을 다  이룰 수 있어. 이룰 수가 있어.

 세 가지 순종하니까 넷째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연결을 시켜 줍니다.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니까 '때를 따라 열매맺는다' '때를 따라서 열매를 맺는다'  '시절을 따라서' 그말은 시절이라 말은 때라 말이나 한가지라. '시절 따라서 열매  맺는다 이러나 저러나 무슨 일이든지 자꾸 성화입니다. 이래도 성화 저래도 성화  이래도 성화 저래도 성화 성화입니다. 하나님하고 연결이 딱 돼 놨으니까.

 또 성화만 됩니까?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도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하는 그말은 그러면 그 모든 생활이 청청한, 청청한 생활,  청청하다니? 산 생활이라 말이오. 전부 산 생활 해.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전부 산 생활 해. 이러니까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요거 지금 잘못 하면 안 돼.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예수 믿으니까 자꾸 일이 낭파가 돼. 이거 다른 때는 막  거짓말만 해 가지고 모두 해도 괜찮았는데 이거 거짓말 한 마디가 들어 놓으니까  그놈이 꼭 탄로가 나 가지고 일이 안 되어진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제 자기가  털끝만한 죄라도 범하려니까 그 죄가 자꾸 탄로가 나고 해서 폭로가 돼서 일이  안 되고 지장되면 그것이 그 행사가 형통한 것입니까 불통입니까? 형통입니까  불통입니까? 죄는 불통이요 의는 형통입니다. 맞습니까? 그래 하니까 죄는  불통이요 의는 형통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거라! 요거 모르면  안 돼요!  자,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에게 몇 가지 하면 시냇가에 심어 주십니까? 나무 제가  심길 수 없어. 하나님이 주인이 심었어. 우리가 자신을 아무리 행복되게 하려  해도 안 돼요. 요 세 가지 순서를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하고 딱 조리 끼고 볼끈  거머쥐고 딱 이래 하나가 딱 결합이 됐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게,  하나님하고 딱 하나가 된 게 요게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그러고 난 다음에는 몇  가지 좋은 결실이 맺었습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가 좋은 계실이 맺었소? 몇  가지 맺었습니까? 그만 또 몰라? 이거 참. 시절을 따라서 과실 맺지, 또?  잎사귀가 청청하지, 또? 그 행사가 형통하지. 이 세 가지 열매 맺었어. 세 가지  열매.

 이러니까 처음에 세 가지 순종하니까 시냇가 심었고 시냇가 심으니까 세 가지  좋은 결과를 맺었고 이러면 오늘 저녁에 배운 것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입니까? 몇 가지? 처음에 자, 그러면? 처음에? 세 가지. 또  나중에 열매? 세 가지. 그러면 여섯 개. 또? 가운데 시냇가에 심은 거 하나.

그러면 얼마입니까? 이래야 돼, 이래. 이래 일곱이 돼야 돼, 이래. 오늘밤에 일곱  배웠어요, 일곱 가지.

 뭐 뉘야 뭐라 하든지 남이 정죄하든지 말든지 상관 없어. 내가 또 오늘까지 주홍  같고 진흥같이 붉은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죄인이라도 오늘밤부터 이거 그만  일곱 가지 하면 그만 돼요! 아무도 못 따라와요, 일곱 가자 하면! 이러니까 이  세상에서는 유명하거나 말거나 주님 앞에 설 때 이것만 되면 그만 성공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살 길이 이거라.

 그래 내가 한번 읽어 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몇 가지 했습니까? 세 가지.

 이제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러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몇 가지 결실했습니까? 세 가지 결실. 그러면 세 가지 순종에 세 가지 결실인데  가운데 시냇가에 심은 그거 하나, 그러면 전부 통틀어서 몇 가지 배웠습니까?  일곱 가지. 요걸 단단히 기억해요.

 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요 방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실행 합시다.

누구든지 실행하는 사람이 제일 위인이라. 뭐 세계 암만 유명해도 소용 없어. 이  세 가지 실행하는 사람이 제일 유력한 사람 영광스러운 사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막 욕을 하고 너는 뭐 어떻다 어떻다 하든지 말든지 상관 없어! 요 일곱 가지만  구비하면 그만 대가리 돼요. 머리 돼요. 누가 하든지 뭐라 하든지. 이 일곱 가지  하면 뭐 죽어도 살아도 좋아요.

 광고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우고 실행 실천하고 경험과 체험의  지식을 가지고 가르치도록 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마시고, 또 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부장 선생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반사 선생님들이나 은사 교권에  있는 분들은 자기에게 맡겨 주신 양떼를 자기 마음에 품어놓고 항상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과 함께 길러야 합니다. 남구역장님께서는 보고서를 다 내시기  바랍니다. 십 분 기도 후에 지난 주일 설교 말씀 재독이 있습니다.

 지난 달 단체로 기도한 것은 이천칠백 육십칠 명이고 또 이번 주일은 단체로  치도한 것은 삼백십이 명인데 요 기도록에 등록한 분에게 하나 더 부탁할 것  있습니다. 요겨 한 달에 월계를 낼 때에 전체 월계를 내는데도 월계에 어느  구역은 얼마 어느 구역은 얼마라 구역별, 우리 교회 전체의 통계는  이천칠백육십칠 명인데 어느 구역에는 몇 명 어느 구역에는 몇 명 우리 교회  전부에는 이번 달에는 얼마 그렇게 좀 세밀히 내 주시면 수고가 돼도,  그러면 인제, 그게 뭐이냐? 누가 말하기를 '아따 그렇게 자꾸 서로 경쟁을 시켜  가지고 한다.' 경쟁시키면 나쁩니까? 이 기도 경쟁시켜 가지고 기도 많이 하게  하면 이게 성경에 위반입니까 성경대로입니까? 자, 어째요? 성경대로요. 성경에  '선을 격발케 해라' 했어. 선을 격발케 하라 말은 선에 대해서 옳은 일에 대해서  자꾸 이제 경쟁심을 붙여 가지고 하도록 해라, 그거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어요? 있습니다. 네. 이러니까 그래 하나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목회 설교록이,  나 목회설교록 안 나온다고 독촉을 합니다. 이런데 요번에 두 권이 나왔습니다.

편집실에 혼이 났어, 막. 열심히 안 한다고 이래서 밤에 늦게까지 뭐 잠도 못 자고  이래 해 가지고 이제 두 권을 해 냈어. 왜? 속히 해야 돼요. 속히 해서 사야지  앞으로는 설교록을 내지 못할건지 몰라요, 지금. 지금은 이렇지만 이 설교록을  이거 알면 원수로 삼아 이거 그만 어느 때면 집집마다 다 추어 가지고 불로 사를  것이라.

 이래서 이 설교록과 이 원고를 어데 한 부를 두나? 미국에 한 부를 갖다 두나  일본에 갖다 두나 어데든지 좀 여러 군데 흩쳐 놔야 되지 한 군데 놓으면 이거다  태워 버릴 거라 말이오. 왜? 원수들이 얼마나 이걸, 알고 보면 저거 원수로서  절대 원수요. 절대 원수.

 그래서 140호가 나왔고 169호가 나왔으니까 회원되신 분들은 다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마 집이 솔아서 이거 재 놓을 데 없겠지만 어쨌든지 재 놓으십시오.

재 놓고 그러면 나중에 가 이 설교록을 뭐 한 권에 암만 줄라 해도 못 사요, 뒤에  가서. 또 인제 다 태워 버리고 없어. 다 태워 버릴 거라. 원수들이 다 태워요.

 하나님의 말씀이면 해결 다 봬요. 어쨌든지 이 말씀으로 해결 다 하고 믿음에  굳게 서 염려 없이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신앙 생활 뿍뿍 해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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