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믿음


선지자선교회 1981년 2월 15일 주일오전

 

본문: 베드로후서 1장 1절 - 5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편집한 자료)  오늘은 이 말씀 중에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가 같이 받았다' 하는 보배로운  믿음과 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하신 말씀 중에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 지어다' 하는 말씀과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하신 말씀 중에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셨다' 하는 이 세 가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를  하려 합니다.

 이 말씀은 영감이 더욱 필요합니다. 영감이 없는 사람은 만 번 들어도 모릅니다.

영감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외우고 날마다 수십 번 중복해서 외운다 해도 자기는  그것을 모르고 자기 구원을 주는 복음이 되지를 못합니다. 성신의 감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로운 믿음을 받게 된 것은 그 자본이 무엇인가? 보배로운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가?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과 구주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신 이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삼위 일체께서 우리를 대속하시려고 우리의 모든 잘못을  대형하셨고, 또 우리가 해야 될 의무를 대행하셨고, 또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과  영원한 화친을 이룬 것이 의입니다.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이 대속의 공로 때문에 우리에게 이 보배로운 믿음이 온 것입니다. 이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이 보배로운 믿음은 우리에게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셨고, 하나님이신 성자는 피조물 되어 오셔서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을 다 대신 감당하셔서 율법의 만족을 이룬 이 지극히 큰 사랑,  지극히 큰 희생, 지극히 큰 순종으로 이루어진 이 의입니다. 이 의 때문에 이  보배로운 믿음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 의가 아니면 인간은 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하는 보배라는 말은 가치가 지극히 크다는 것을 말하고 또  이것의 결과가 지극히 크기 때문에 보배라 했습니다. 가치가 지극히 큰 것이라,  지극히 높은 것이라, 그 결과가 지극히 큰 것이라 그런 것을 표시해서 보배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보배는 자체가 아니고 자체가 가진 것을 가치 있게 말할 때에 보배라 그렇게  말하는데, 이것은 인간 자체가 아니고, 인간 자체는 가치 없는데 인간에게 지극히  귀한 것이 부여되어서 가지게 되었다 하는 그런 뜻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보배라는 말을 여기에다가 쓴 것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가 같이 받았다"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말은  첫째, 하나님과 사람이 간접 연결이 아니고 직접 연결이 되어지는 것을 가리켰고,  인간은 가치 없는 것이며, 또 모든 것에 제한되어 있는 것이요, 한없는 타락을  가진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대속하시는 공로를 베풀어서 사람과 하나님이 직접  연결을 가지게 된 이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보배로운 믿음'이라 말했습니다.

 둘째, 움직일 때에, 활동을 할 때에 자기 것으로나 어떤 피조물, 왕의 것으로도,  대통령의 것으로도, 20세기의 과학 만능을 말하고 있는데 과학의 것으로도, 어떤  세력의 것으로도, 전 인류의 것으로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만유의 대주재시며  창조주시며 주권자이신 그분의 것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가리켜서 보배로운  믿음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 그분의 모든 것,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것, 영계의 것이나 물질계의 것이나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크고 작은 것, 귀하고 천한 것, 천군 천사, 인류, 모든 자연  만물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자기 것으로 삼아 영원히 일하게 된 이것을 가리켜서  보배로운 믿음이라 말씀한 것입니다.

 이는 양심이 없고 영감이 없는 자는 거짓말 중에 허무한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는 없어져도 이 계약은 없어지지 아니하는 계약입니다. 이 계약을  믿는 것은 성신의 감화가 아니면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이는 다 무한성에  속했고, 영원성, 완전성, 불변성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런 요소가  없습니다. 인간 자체에게는 이런 요소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 아닌 좋은  소유를 가진 것을 표현해서 보배라 표현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인간 제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인간이 받아 가진  소유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위대한 학자를, 도덕가를, 정치가를, 재벌가를, 과학자를 통해서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 아니고, 이런 것 다 치워 버리고 하나님과 자기와 직접 관련되는  이것을 가리켜서 보배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이 안 믿어지는 사람은  안 믿어질 것이고, 믿어지는 사람은 천하 사람이 다 부인해도 그는 이를 믿어서  그의 여생은 여기 준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인정되게 해 주시면 인정되게 해  주시는 것만큼 인정이 됩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를 인해서 이것이 왔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만족하시고 지공법이 만족하고 지성법이 만족하는 의를  완전히 이루신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택한 자들에게 온 보배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우리에게 입혀서 이 공로로 인해서 이 세 가지를 내포한, 이 세 가지의  요소로 된 믿음을 우리들이 받은 것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 자체가 아니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가 받아 가진  것입니다. 이것은 피와 권위와 소유인데, 피와 권위와 소유 이 세 가지를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 중생된 사람들이 받아서 자기 것으로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가진 것을 행사하는 자도 있고 가진 것을 하나도 행사하지 않는 자가  있어서, 나그네 세상을 지나 부활할 때에 이 행사를 한 그 경험의 힘과 체험의  힘과 실천의 힘을 가지고 부활하는 자도 있고, 이것을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부활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것을 가진 것이 차이가 얼마나 많으냐? 천 층 만  층으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형체라는 이름은 다 같이 가졌고 형체는 가졌지마는 형체와  형체의 차이는 땅 위에 있는 수많은 바닷가의 모래알도 한 형체요, 하늘에 있는  해도 달도 한 형체다, 그 가치와 권위를 비교해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으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의 공로로 이 세 가지 보배인 믿음을  가졌지마는 이 믿음의 소행을, 세상에서 쓴 믿음의 행위를 한 그대로 그의  무궁세계의 믿음의 실력은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것을 어떤 자는 하나도 이루지 못했고 어떤 자는 다 이루어, 이루지 못한 자와  다 이룬 자와 적게 이룬 자와 많이 이룬 자의 그 차이는 마치 형체라는 이름은  다 가지고 제각각 형체는 가지고 있으나 그것의 가치와 권위는 측량 못할 만큼  큰 것처럼 이렇게 차이 있다 하는 것을 고린도전서 15장에 말씀했습니다.

 땅에 있는 형체도 있고 하늘에 있는 형체도 있으니, 별과 별의 형체도 있고, 해의  형체도 있고 달의 형체도 있는데 해와 달의 영광과 땅에 있는 하나의 어떤 천한  것의 형체와 영광과 권위가 얼마나 차이 있느냐, 부활한 자의 영광도 이와  같으니라 똑똑히 말씀해 놓았습니다.

 이 말씀이 안 들리는 자는 안 들립니다. 들리는 자는 천하의 어떤 인간이  부러워하는 것이 이 가치에 비교될 것이 없고 견줄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땅 위에 모든 귀중하게 여겼던, 그것 아니면 못살겠다 했던 것을 이  말씀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다 배설물로 인정하게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첫째 이것입니다. 신랑인 하나님과 인간이 간접적인 연결이 아니고 직접  연결된 이 연결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왕이십니다. 모든 소유적으로 우리의 남편입니다.

우리의 목자입니다. 움직임의 연결로서는 그분은 머리였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믿는 내가 직접 연결된 이것을 아는 것이 천 층 만 층입니다.

땅에 있는 형체와 하늘에 있는 형체와 영광과 권위와 크고 차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차이 있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도 있을 것이고, 어떤 자는 '저것이  예수 믿는 사람을 꾀는 진원술이라 하는 자도 있을 것이고, 어떤 자는 그저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자도 있을 것이고, 어떤 자는 이것을 참되다 인정하되  자기의 모든 소유의 가치만큼은 인정 안 하는 자도 있을 것이고, 어떤 자는  자기의 소유 가치만큼만 아니라 소유와 몸과 생명보다 이 가치를 크게 인정해서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들여서 이것을 감당하고 가려고 항상 소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이 보배로운 직위를 우리는 가졌습니다. 하나님과  직접적인 결합을 우리는 가졌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만큼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우리의 움직임은 물질의 힘이나 어떤 정권자의 권세나 과학의 힘이나  어떤 학자의 학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이러기에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가난한 데도 처할 줄  안다. 내가 지족하는 비결을 배웠다. 어떤 것의 빈부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 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을 내가 알았다' 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연구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연구한 것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합니다. 하나님의 것 가지고 일할 때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이 거기에 이용되어서 이것이 잘 발휘되고 잘 전파될지언정 믿는  자는 순전히 자존자, 창조주, 주권자, 주재자, 이분의 것을 가지고 움직이도록 된  이것이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만 합니다. 어떤 자의 뜻으로도 어떤 자의 지혜로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내 지혜 삼고 여러분들의 지혜 삼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지식으로 우리 개인들의 지식을 삼기를 원하시고, 당신의 목적을  우리의 목적으로, 당신의 방편을 우리의 방편으로, 당신의 사상을 우리의  사상으로, 당신의 속성을 우리의 속성으로, 당신의 능력을 우리의 능력으로 삼아서  살아라 하십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셋째는, 영계 것과 물질계의 모든 것은 우리 주가 되신 하나님의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무의 것도 아닙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제것인 줄 알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물 한 방울도 그의 것이  없었습니다. 아무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것을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택한 자의 것으로 완전히 상속시켜 주셨습니다마는  이것을 누리지를 못합니다. 이것을 상속을 하지 못합니다.

 제것으로 가지지도 못하고, 제것으로 관리도 못하고, 제것으로 치리도 못하고,  제것으로 보존도 못하고, 제것으로 충만케 하지도 못하는 이것이 택한 자들이  믿음을 떠난 행위입니다.

 믿는 자들이 명령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그 모든 움직임은 하늘의 것과 땅의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 된 것으로 그에 대해서 관망하는 것이며, 그를 보존하는  것이며, 그를 충만케 하는 것이며, 영원 무궁세계에서 그와 어느 정도의 어느  부분에 관련되는 영원 관련을 지금 맺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의 것이 될 때에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모든 것이 너의 것이 된다'고  고린도전서 3장 21절 이하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자에게야 그런 하나님이 없다고까지 하고 있으니까 말할 수  없지만 성경을 믿는 자라면 성경에 말하는 것을 찾아보면 알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끝에 보면 택한 자들은 어떤 자이냐? 하나님의 창조하신 그 만물  안에 만물의 제일 높은 위치에 있어 모든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그들에게  충만케 해주는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자기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능력과 권세와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이것이 교회의 무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소유입니다. 영원히 자기의 일터요 자기의 나라요,  자기의 농장이요, 자기가 봉사해야 할 자기의 봉사의 대상인 것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함께 받았다"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것은 이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직접 연결  둘째, 하나님의 것으로 움직이는   셋째,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아 영원히 그에게 봉사하는 것, 그의 주가  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는  자는 이 일이 되는 믿음의 생활을 하고, 이것을 부정하는 자는 믿음의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 움직임은, 첩첩산중에서 움직여도 그  움직임은 하나님과 직접 연결의 움직임이요, 하나님의 지능과 사랑으로 움직이는  움직임이요, 그 움직임은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봉사를 하고 사귐이 있는 움직임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2절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하나님이 도성인신으로 인간 되어 오셔서  우리를 대속하신 이 예수를 앎으로, 이분이 어떠한 분인지 이분이 우리와 어떻게  관련이 되어 있는지?   이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 되어 있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영원히 대리 주인으로, 영원히 대리 시은자로, 대리 봉사자로 영원히  그들의 복의 기관과 생명과 평강의 기관으로서 그들의 소망의 한 대상의  중보자로 이렇게 되어 있는 이 사실을 아는 것만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  이 사실을 아는 것만큼 은혜가 더해진다, 아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공짜로 주시는  것이 자기에게 충만해집니다. 이것으로 부해집니다.

 이것도 못 알아듣습니다. 영감이 아니고 못 알아듣습니다. 아무리 외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대속하신 이 공로를 우리에게 입혀주고 이  공로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되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하나님과 간접  연결이 아니고 직접 연결..., 하! 세상에 잠깐 있다가 없어질 한 나라의 일시  정권을 잡아도 그분으로 더불어 직접 연결도 아니고 간접 연결, 간간접 연결,  간간간간접 연결 그것도 가지고 막 기를 떨칩니다. 여러분들, 하나님과 직접  연결입니다. 이것이 믿어집니까! 이것이 믿어집니까? 영원히 변동 안 됩니다.

양심으로 인정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것을 직접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성경 전체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의 뜻은 단일체요, 단일성이요, 단일 성취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통일 통치입니다. 이는 단일성으로, 단일 통치의 단일 목적을 달성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움직였으면 모든 존재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모든 존재에게 할 일을 했습니다. 모든 존재에게 영원토록  요만큼의 양으로 그에게 영원한 상대를 맺었고, 봉사를 해야 되고, 그는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몸에 헬 수 없는 많은 세포들이 있지만 한 세포가 몸과 올바르게  관계를 가지고 움직이면 양은 적지만 그 한 세포의 움직임은 수많은 세포 우리  몸 전체에 혜택을 입혔습니다. 그 하나가 바로 이루었습니다. 그 하나가 잘못되면  수많은 세포와 지체가 피해를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라고 성경에 말해  놓았습니다.

 이 세 가지를 알면 하나님께서 공으로 주시는 것을 많이 받게 됩니다. 공으로  주시는 무엇이 많아지고 커지는가?   하나님과 직접 연결이 점점 더 커집니다. 직접 연결해 가지고 연결된 그 연결이  효력을 내서, 직접 연결의 감당을 일년 이태, 한 가지 두 가지 하면 연결이 자꾸  튼튼해집니다.

 그의 것 가지고 활용하는 그 활용이 효력 있게 바로 활용했으면, 바로  활동했으면 그의 것을 가지고 활동하는 세력이 점점 튼튼해집니다.

 그의 소유에게 대리 행사를 점점 잘했으면 그의 된 모든 것이 튼튼하게  맺어집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은혜가 더하여진다 한 것입니다. 은혜, 공짜로 얻는  수입입니다.

 이 세 가지 은혜, 하나님과 결합, 하나님의 것으로 움직이는 이 능력을 받는 것,  하나님의 소유를 내 무대로 삼는 이 활동을 더 받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는 제일  큰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는 이 세 가지 은혜가 제일 큰  것입니다.

 한 예를 들면 동회에 동장과 직접 관련된 동 직원이 있는데, 그 직원이 동장과  직접 관련된 그 관련 가지고 한 가지 하니까 관련이 더 튼튼해집니다. 동장이  권세를 맡겨 줬는데 그 권세 가지고 잘 쓰면 자꾸 맡겨 주지요.

 그러나 직접 관련이 있었는데 관련된 그것 가지고 관련 행사를 안 하면  나중에는 옮겨야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권세 줬더니 술 먹고 돌아다니고 놀기만  하고 하나도 이행을 안 했습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뺏어야지요.

 맡은 면으로 잘 합니다. 호적 면으로, 경제면으로, 조달 면으로 모든 면으로  활동을 하는데 잘 합니다. 그러면 그 하는 모든 면으로는 튼튼해지지요. 안 하면  없어지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세 가지의 큰 은혜, 큰 믿음, 보배로운 믿음을 받았지만 이 행사를 안  하면 빈약해집니다. 하는 데 따라서 권위는 커지고 튼튼해지고 가치는  더해집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앎으로 은혜가 더해질 것이다, 앎으로 네가  공짜적으로 받는 것이 많을 것이다 하신 것입니다.

 이 수입이 우리 수입니다. 이 수입을 발견한 자는 세계를 인하여 욕심 내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가 어떤 도시에서 제일 갑부가 되겠다고 그것을  욕망하겠습니까? 우리는 이것만을 수입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를 알면 이런 것 욕망하지 않습니다. 보배로운 믿음.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었는데 이 연결된 연결이 튼튼해지는 것,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리로  사용하는 사용권이 튼튼해지는 것, 그의 모든 무대에게 내가 그의 대리로 할 때에  내가 그 모든 것에게 필요성이 튼튼해지는 것. 이것이 얼마나... '평강이  더할찌어다, 평강이 더할찌어다'  이 세 가지를 앎으로 인하여 평안함이 더합니다.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은 이  세 가지를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땅위의 모든 운동은 이 세 가지를  튼튼히 하라고, 이 세 가지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모두 다 조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하면 그에게는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이 없습니다. 평안해집니다. 이분과 연결된 자가 무슨 염려가 있을 것입니까?  그의 나라에서, 그의 정권 안에서, 그의 소유 안에서, 그의 무대 안에서 이분과  연결된 자에게 무슨 염려가 있을 것입니까? 이분을 가지고, 이분의 것을 가지고  행사하는데 어디 제재를 받을 것입니까? 이분의 것을 자기가 상속받아 가지고  하는데 자기 것에게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며칠 전에 루마니아에서 젊은 청년들이 성경 2만 권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전하다가 맞아서 직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고통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직접 연결의 소원을 이상 없이 튼튼히 했고, 하나님의  것 가지고 쓰는 데에 조금도 제재 받지 아니하고 다 썼고, 하나님의 소유에게  자기의 사명과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 감당했기 때문에 다 이루었으니 이제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면류관뿐입니다. 부활할 때에 영광으로 부활할 것뿐인  것입니다.

 지금도 중공이니 소련이니 하는 곳에서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성경을  전하는 것으로 바쳐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소유와 몸과 생명을  한꺼번에 다 쓰든지 여러 번에 쓰든지 다 바쳐서 이 세 가지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는 것이, 문명 부요한 자기의 본국을 떠나 미개 야만 가난한 나라에 가서  상주하면서 자기가 죽고 나면 자기 자손을, 다시 2대를 두고, 3대를 두고라도  기어코 그곳을 복음화시키고 마는 그것이 이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엿새 동안에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것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신 이 능력이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믿는 자 안에 있습니다. 믿는 자는 이 능력이 접선됐습니다.

접선됐으나 부인하기 때문에 누리고 살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1장 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능력이' 예수님 안에서 역사해서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점령했고 완전히  구출하신 그 능력이 우리 믿는 사람 안에 와서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생명과 경건에 속한' 생명은 조물주와 연결이 끊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조물주와 연결된 것이 생명입니다. 조물주는 조물주시요, 창조해 놓은 것을  보존하는 보존자시요, 보존된 그것을 양육하는 양육자시요, 시은자십니다.

 이러니까 죽는 것도 그분이 근원, 보존하는 것도 그분이 근원, 기르는 것도  그분이 근원 모든 행복을 주는 것도 그분이 근원입니다. 그런데 이분과 연결이  됐으니, '생명과 경건에 속한' 생명, 참 생명에 속한 것이라, 이분과 연결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연결을 가리켜 생명이라 합니다. 연결이 생명입니다.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을 베풀어 놓으시고, 이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연결된 연결  소용을 하도록, 연결 노릇을 하도록, 연결 이것을 발휘하도록, 연결된 이것을  타나내도록, 연결된 이 연결이 역사하도록, 신기한 능력이 이 연결을 역사하도록  하여서,  '경건에 속한' 경건은 대주재자 유일자이신, 창조주요 자존주요 주권자요  주재자이신 유일하신 이분을 위해서 옳은 행위 한 것이 경건입니다. 이분을  위해서 옳은 행위 한 것이 경건입니다.

 세상에서 가치는 영원히 가고 가도 정죄받을 것이 없는 온전, 그것이 보배입니다.

옳은 것이 보배인데 옳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자존자요 주재자 그분만을 위하는  자 된 것이 보배입니다. 그분만을 위하는 자 된 것. 왜 인생이 좋은 자를 위하지  않고 나쁜 자를 위하게 되는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산다고 사는데 그  위하는 것이 가치 없는 것을 위하니까 그 가치대로 위한 생활이 다 절단 나고  마는 것입니다. 위하는 자가 큰 것만큼 그의 위하는 것의 효력은 클 것이요, 위한  자의 큼이 보존되는 동안 그의 위한 것은 효력이 날 것입니다. 위한다는 것이  제일 허망한 자를 위하면 그 위하는 것이 불쌍한 것이요, 그 기한이 짧은 자를  위하는 것이 불쌍한 자입니다. 위하는 것이 3등을 위하면 2등 위하는 것만 못하고  2등 위하면 1등 위하는 것보다 못한 것인데, 우리에게는 완전자 이분을 위하는  이것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입니다.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요거는 더 어렵습니다.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불렀다.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것 가지고 살게 하셨고,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우리의 소유 삼아서 봉사하고, 그게 우리의 일거리로, 우리의 무대로,  우리의 농장으로 이래 삼게 하시고,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된 이  연결 소행을 하도록 지극히 큰 능력이 배경이 되고, 또 절대자인 이분을 위해서,  이분이 만족하는, 이분을 섬기며 잘되도록 지극히 큰 능력을 줘서 이루게  하셨는데,  이렇게 예수님이 피 흘려 구속하시고, 이렇게 큰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구원은 그 성질이 어떠냐? 하나님과 직접 연결의 성질이 어떠냐?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직접 활동하는 그 활동의 성질이 어떠냐? 하나님의 것을 내것으로  상속받아 그들에게 대해서 내 농장처럼 내 일거리 삼아서 일하게 된 성질이  어떠냐? 그 성질이 영광과 덕이라, 영광과 덕이라.

 영광과 덕이라니? 영광은 자기가 아무리 위대해도 영광된 것 아닙니다. 영광은  자기로 말미암아 잘된 자들이 많을 때 그들의 입에서, 그들의 마음에서 나를  존귀하게 여기면 그것이 내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나도 영광  되는 것 아닙니다. 자기가 아무리 갑부라도 영광 되는 것 아닙니다. 갑부라도  다른 사람이 '아, 그 돼지 같은 놈! 아, 그 도적 같은 놈!' 이럴 수가 있습니다.

 영광은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 동리에 있다는데 그 집을  말씀해 줄 수 있습니까?' 하니까, 저 동구 밖에서 말하는데 '아이구, 그렇습니까?  제가 안내하지요.' 중간에 가다가 사람들을 만나서 '어디 가는가?' 물으니까 '예,  이 어른이 우리 동네 아무 어른 찾아 달라고 하는데 제가 지금 안내하고  있습니다.' 가면서 보니까 동리 밖에서부터 열 사람 스무 사람이 똘똘 뭉쳐서  '아이구, 어째 오셨습니까?' 마구 환영을 합니다. 그것을 볼 때에 '이분이 이  동리에서 인심을 잃지 않았구나. 이분이 이 동리에서 덕을 끼쳤구나.' 알 수가  있습니다.

 묻기를 '그 사람이 나이가 얼마입니까?' '연세가 많습니다.' '그러면 영감인데  그런 영감한테 모두들 뭐 그렇게 존대를 해 쌓습니까?' 하니까 '무슨 소리입니까?  그분은 우리 생명보다 귀한 분입니다. 우리 전 동리의 생명을 챙기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살린 분입니다. 우리를 구원한 분입니다.' 이럴 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영광으로 우리를 불렀다' 우리를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게 해서 무엇했는데?  영광된 일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 가지고 무슨 일 했는데? 영광된 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우리에게 맡겨 주셨는데 무슨 일 하라고? 영광된 일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 시켜서 이루되 그것이 잔인한 일이 됐다든지, 화가  됐다든지, 또 모든 역사가 사치가 되었다든지 불의가 되었다든지 했으면 좋은  것이 뭐 있겠습니까? 어떤 권세가 연결되었는데 그 연결 가지고 인심 잃고  저주받고 조물주에게서 심판 받을 일만 한다면 복될 게 뭐 있습니까?   '영광과 덕으로 불렀다.' 영광될 것으로 불렀고, 덕으로 불렀다. 자기의 손해된  것이 그들에게 덕이 되고 유익이 되었고, 모든 받은 상속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향한 것이 다 그것들에게 유익을 주니까,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악한 자를 옳게 바르게 이래서 모두가 그들에게 덕이 되어지는, 다른 것들에게  덕을 끼치는, 유익을 끼치는, 유익만 끼치니 그들이 감격해서 견디지 못해서  찬양할 수 있는 영광, 이 결과를 이루도록, 이런 성질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그 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집하는데 뭐 하려고 모집하지?' '기술로 불렀다, 기술자  만들려고 불렀다. 거기는 노래 잘 부르는 음악가로 불렀다.' 하는 것처럼,  '영광과 덕으로 불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직접 결합시키시고, 그의  것으로, 그의 무대에 일하게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 무궁토록 영광 되는  그 일 하라고, 모든 존재에게 덕을 끼치는 그 일 하라고 불렀다 하는 말씀입니다.

 "영광과 덕으로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정욕을 인하여" 네 욕심, 네 개인 욕심, 네 사욕, 네  더러운 욕심, 네 모든 땅위의 불의한 욕심을 인하여 네가 썩어져 가고, 네가  시간이 갈수록 천해지고 악해지고 심판 받을 썩어져 갈 너희 정욕을 인하여,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였으니"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의 신성과 같은 네 인격성이 되어, 그의 활동과 같은 너의  활동이 되어, 하나님이 너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그 일 하신 그 공로로  살아난 네가 너도 그 공로와 같은 일을 하여, 영광과 덕의 일, 영광과 덕의 결과가  맺혀져 너는 피조물 안 보면 살지 못하고 피조물도 너 안 보면 살지 못하고, 너는  피조물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살지 못하고 피조물은 너에게 은혜 받지  못하면 살지 못하고, 하나님은 너에게 주지 않으면 살지 못하고 너는 하나님에게  받지 못하면 살지 못하는 이 삼각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세상에서 썩어질 정욕을 것을  피하여' 이 썩어질 생활만 하고 있을 우리들을 여기서 옮겨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이제는 이 일을  위해서 소유도 아낌없이, 몸도 아낌없이, 생명도 아낌없이 전심전력 일절을  기울이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일학교 반사들이 주일학생들을 인도할 때에 자는 아이들을 깨운다고  어른들이 나무라면 나와 피해서 숨어 앉았다가 또 가서 말하고, 그래 가지고  땀흘리며 엎고 지고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 시간 되면 가  가지고 토큰 줄 사람 토큰 주고 가르치고 이러니까 '이상하다. 이것들이 우리  아이를 무슨 욕심을 내서 이래 할까?' 합니다.

 하나님 모르니까 하나님 알려 주고, 인간 모르니 인간 알려 주고, 세상 모르니  세상을 알려 주고, 인생이 세상살이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알려 주어서, 점점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해져 가도록 하는 이 일을 돈도 받지 않고 욕 얻어먹고  억울한 소리 들으면서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아이 하나 데려오기 위해서 백 배 사례를 하고 오만 종노릇하고 오만 속을 다  썩이는 것이 무엇 때문에 하는 것입니까? 요 도리를 안 자는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우리들의 생애가 무엇이며 우리들의 욕망이 무엇이며 우리들의 성공이  어디 있는지? 우리가 어떤 것을 욕심을 내야 되는지? 어떤 데 주력을 해야  될는지?  우리는 깨야 합니다. 세상은 잠깐 머무는 나그네 세상입니다. 우리의 영주처는  무궁세계에 있습니다. 반드시 자기 생애의 기간이 차면 잘했든지 못했든지 생애한  그것을 가지고 일단 영과 혼은 낙원에 가서 대기하고 안 믿으면 음부에 가서  대기하고, 몸은 원소에 두었다가 예수님 재림하시면 부활합니다.

 자기의 유업이 다 그대로 부활해 가지고, 살아서 어떻게 생애 했든지 생애 한  그대로, 길러 놓은 기능 그대로, 하나님의 정한 그 기능으로 길렀으면 그것이  부활의 기능이요, 땅위에 있는 죄악으로 기른 것은 심판하고 제거해서 서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다 살든지 죽든지 부활의 능력을 위해서 달음질  쳤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가치가 적습니까? 우리의 심령이 어두운  연고지 가치가 적은 것이 아닙니다. 이 이상 큰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읍시다.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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