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비유 요약

 

1983. 5. 4. 수새집회

 

본문 : 마태복음 13장 3절∼9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이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여러 시간 걸쳐서 이모저모의 그 각도들을 들어서  대략 말했습니다. 그것을 말하지 아니하면 모를 것이기 때문에 이제 각도를  들어서 말하느라고, 여러분들도 듣느라고 진액을 뺏었고 저도 또 증거하느니라고  진액을 빼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오늘 아침에는 그런 부분은 말하지 아니하고 종합적으로  결론적으로만 말을 하고 씨뿌리는 비유는 끝입니다.

 길바닥에 뿌리웠다고 하는 길바닥은, 악령과 악령에게 속한 사람들과 세상과  타락한 모든 인간들의 그 원죄 그런 것이 뚤뚤 뭉쳐 가지고 우리 심령을  짓밟았습니다. 우리 심령을 짓밟아서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질 대로 둔하여졌고  또 강퍅해질 대로 강퍅해져서 하나님의 도를 들으나 그 도에 대해서 진상을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배울 때에 이 말씀이 천국 말씀이요 곧  천국을 건설하는 말씀이요, 또 이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가 어데까지 파고 들어가는고 하니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말하는 세상 지식, 세상 사상, 세상의 모든 주의들 그런 것들을,  그것이 다 길바닥과 같이 그것들로 인해서 우리 심령이 굳어졌는데, 그런 것을  꿰뚫고 들어가는 이런 깨달음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길바닥을 면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세상에 많은 말이 있지마는 이 모든 말은 우리에게 전해 주 신 이  복음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 그 능력의 말씀 이 말씀이 창조하셔서 이  말씀에게 창조를 받은 것들이 이 말씀을 배반하고 타락해서 잠깐 마귀에게 받아  가지고, 지음을 받은 그 위치에도 있지를 못하고 그 위치에서 떨어져서 권위  없이 떨어진 그런 인간들이 말해 놓은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은 유혹의 말이요, 음행의 포도주의 말이요, 배암의 지식의  말이요, 배암에게 유혹받은 후의 말이기 때문에 이 말은 그 자체가, 이 말의  총발원자, 이 말의, 이 세상 지식의 그 발원자, 그 발원자가 배암이요 그  발원자의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과 달리 되어 있는 그 목적의 자요, 또 그것은 이  말씀에게 지음을 받은 것들이 말 해 놓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바의 이 말씀은 세상 모든 지식과 사상과 또 말과 모든  이런 저런 단체 그 단체들을 만드신 말씀이요, 또 만들음을 받은 그것들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 말씀과 세상에 있는 모든 수많은  말과 가치 차이가 있고 또 근본이 차이 있는 것을 깨달아서, 아무리 세상의  수많은 인격 존재들이 말하지만 그 인격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자존하신,  영존하시고 완전하신 이분과의 그 말한 자의 인격과 인격을 비교해 보는 이  깨달음을 가지게 되고 또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의 능력과 세상에 있는 그 모든  지식과 말의 그 능력과 근원을 깨닫는 이 깨달음을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은 이  말씀을 깨닫는 데에 그 세상에게 갇혀서 그 말씀에 대해서 바로 깊이 깨닫지를  못한 사람이 아니고 깊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은 자존하신 대주재이신, 창조주이신,  주권자이신, 주재자이신 이분이 말씀하신 말씀이요, 땅 위에 있는 여러 수백만  권이 되는 책들을 다 합해 봐도 그것은 이분이 말씀 한 마디 가지고 지을 때에  지음을 받은 그것들이 다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는 그 인격자와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 신격자의 어떠함을 깨달은 것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요.

 이 말씀과 또 모든 세상이 말하는 그 말과 말의 비교도 해서, 말씀은 없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모든 걸 창조하실 때에 이 말씀을 사용해서 창조하신  창조의 능력을 가진 말씀이요, 세상 있는 말은 이 말씀에게 지음을 받은  그것들이, 지음을 받은 것들의 말인데 이것조차도 배암에게 유혹받아 가지고  인간이 타락해서 지음받은 그것이 그대로 있지 아니하고 변질되어 있는, 썩어  있는, 죽어 있는 그것들이 말 한 말이다.

 말과 말을 비교하는 이 깨달음, 또 말한 자와 말한 자를 비교해서 깨닫는 이  깨달음 이것을 가지면, 길바닥이라 하는 것 단단해서, 인간의 강퍅을 뚫고  들어갔고, 인간의, 어두워진 인간의 심령에 둔한 그것을 면해서 심령이 영감받아  예민해 가지고 바로 깨달은 그 자리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이렇게 받는, 그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도를 길바닥으로 되어 가지고 받지 아니 하고 옥토로 되어  가지고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의 도를 받은 사람이 앞으로 주의할 것 두 가지는  뭐이냐? 해를 주는 자는 둘이 해를 주는데, 하나는 새떼가 해를 주고 하나는  악한 자가 해를 줍니다. 그러면 해를 주는 그자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의 신분이  무엇이며, 또 그의 장래가 어떻게 될 자이며, 그의 행동이 어떤 행동인가 하는  것을 살펴서 그 행동이 곧 새의 행동이요, 악한 자의 행동이요, 또 그 신분은  벌써, 말하자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둥치에서 떨어진 것처럼, 끈 떨어진  두레박과 같이, 이렇게 모든 존재의 근본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서  아무 데도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조물주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에게서,  하나님의 이 모든 보존에서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형편이 가련하고 불쌍한  자요.

 그러기 때문에 그 행동은 이리 구불고 저리 구불고 바람 부는 대로 그 물결치는  대로 세상 되는 대로 아무 정처없이 이렇게 움직여 나가는 새떼로 비유한 새떼  같은 자이기 때문에 그자의 근본 정체와 근원과 신분과 장래의 그 결과를 보면  비참하고 가련해서 동정이나 되고 할 일이지 그것에게 위협이나 유혹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살펴 보면 그게 무엇이냐? 자기 중심인,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그것이 영생인데, 조물주를 내놓고 제가 스스로 있는 자존자 처럼, 또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 다 없으면 홍포입은 부자가 주님의 것을 거두니까 물 한방울을  청해도 이루지를 못하고 비참하게 되는 것처럼 그분의 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이분에게 속해서 이분 중심으로 살아야 될 것이 이분을 떠나서 자존자처럼 홀로  사는, 독존할 수 있는 독존자처럼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해서 자기 중심으로  날뛰는 인간을 사망케 한 그 근본인 원죄 뭉텅이가, 원죄들이 주 모여서,  본죄들이 주 모여 가지고 징얼거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악한 자 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자에게 미혹받을 것도 없고 부러울 것도 없고 그에게 이제 침노를  받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길가밭에 뿌리운 씨는 네 가지를 깨달으면 됩니다. 말씀과 또  우리에게 주신 이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과 말씀을 비교하는 이 비교에 대해서  정평한 깨달음을 가지고, 또 세상이 말하고, 세상이 말한 그 모든 인격 존재인  것들과 우리에게 말씀하신 신격이신 자 존자이신 그분과를 비교해서 정평 정가를  하는 깨달음을 갖는 이 두 가지와 또 우리가 받은 바의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방해하고 빼앗 아 가려고 하는 그자의 정체, 그자의 정체는 곧 새요 그자의  정체는 악한 자입니다.

 그러면 악한 자의 그 신세가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하고, 얼마나, 말 마디 행동  행동이 자기를 멸망시켜서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으로 세상을 끝을 내는 그자요.

 또 아무데 속한 데가 없어 가지고 무소속이니까 좋은 줄 알아도, 절대자에게  지음 받은 것이기 때문에 위협을 받거나 절대자가 사랑하고 절대자가 좋아하고  귀하게 여겨서 보존해야 되는 것이지, 창조하신 절대자요 시은자이신 그분이  내어 팽개쳐 버린 것이면 그보다 비참한 것이 없는데 이제 그것에게, 무소속된  그것에게 우리가 미혹을 받거나 두려워하거나 또 협박을 받거나 위협을 받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네 가지만 바로 깨달으면 그 사람은 길가에 뿌린 씨를 면하게  됩니다.

 또, 돌밭에 뿌리운 씨는 자기가 들어서 하나님 말씀을, 받은 말씀 대로 살지  못하게 반해를 해서 그와 같이 성공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인데, 핍박하는  자가,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핍박하는 자가 어떤 자인고 하니 핍박하는 자가  넷입니다. 그 넷이 우리를 주관했던 것인데 그 넷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는  악령이 우리를 주관했고, 또 세상이 주관했고, 죄가 주관했고, 사망이 주관해서  그것의 것으로 우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의 것으로 있다가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것의 것이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대로 사는 생활,  영생하는 생활, 마귀를 벗어나고 하나님에게 속한 생활, 또 죄를 벗어나서 의로  사는 생활, 사망을 벗어나서 영생으로 사는 생활, 세상을 벗어나서 천국으로  사는 생활을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그것들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렇게 분발해  가지고 우리를 박해하는 그것이 환난이요 핍박인 것입니다.

 핍박은 어떤 게 핍박인고 하니, 내가 근본은 하나님에게, 이제 중생함으로써,  속죄 중생을 함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자인데,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이 이것이 미혹을 받아 가지고 아직까지도 마귀에게 붙들려  가지고 있다가, 마귀의 그 보자기 속에 쌓여 가지고 있다가, 마귀의 결박 속에  쌓여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마귀의 그 결박을 벗어나서  하나님에게 속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자유하려고 이렇게 하니까 우리를  자유 하지 못하게, 하나님에게 속한 산 자로 살라고 하니까 하나님에게 빼앗기지  안하려고, 마귀가 하나님에게 빼앗기지 안하려고, 이 세상이 천국에게 빼앗기지  안하려고, 죄가 의에게 빼앗기지 안하려고, 또 이 사망이 영생에게 빼앗기지  안하려고, 그것들 이 네 단체가 들어 가지고 우리를 하나님께 가지 못하게  이렇게 방해하고 붙드는 그것을 가리켜서 핍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핍박은 모두 거게 생긴 것입니다. 핍박은 내가 마귀에게, 하나님의 것이  됐는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것이 됐는데, 마귀의 것으로 종전 있던  그대로, 내가 알지 못하고 마귀에게 속해서 마귀의 것으로 있던 자가 하나님에게  돌아와서 하나님에게 속하여 살려고 하니까 마귀가 그렇게 핍박하는 것이요,  세상이 핍박하는 것이요, 죄가 핍박하는 것이요, 이제 사망의 것들이  핍박해서-살려고 하니까 사망의 대적입니다.-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핍박하는 것은, 그 핍박 하는 그것은 무슨 연고이냐?  마귀에게서 하나님께로 바로 옮겨 서고, 또 세상에서 천국의 백성으로 옮겨  서고, 죄에서 의로 옮겨 서고,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겨 선다고 지금 모든 것에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니까 우리는 그 유혹을 받지 말고, 협박도 받지 말고  옮겨만 서면 그만입니다. 옮겨만 서면 그것들이 뒤에는 손을 떼고 맙니다.

 또 환난이 오는 것은 왜 환난이 오느냐? 환난 오는 것은, 이 세상은 전부가 다  악령, 세상, 죄, 사망, 이 네 뭉텅이가 지옥을 향해서 자꾸 타락해 가고, 부패해  가고, 범죄해 가고, 썩어져 가고 이렇게 돼 내려가는 이 세상에서, 자기는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여기에서 역류해서 마귀에게서 하나님을 향하여  가고 있고, 또 사망에서 생명을 향하여 가고 있고, 또 죄에서 의를 향하여 가고  있고, 이렇게 이 네 가지로 점점 타락해 내려가는 이 세상에서 이 네 가지로  바로 살아서 역류해서 하나님과 천국과 의와 영생을 향하여 이것으로 사니까  자연히 마찰이 있는 것입니다.

 물이 내려갈 때에 위로 올라가려 하면 거슬려지는 마찰이 있는 것처럼 환난이  있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그것은, 환난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사망과 함께 내려가면 그만이지마는 사망과 함께 내려가지 아니하고 사망을  거슬려서 영생으로 올라가니까 거기에는 마찰이 있는 것은 필연한 것입니다.

 마찰있는 그것이 벌써 생명으로 올라가는 증거이니까, 마찰이 있어서, 지금  마찰이 있는 그 어려움과 이 마찰을 하면서 생명으로, 하나님께로, 또 의로,  천국으로 이렇게 향하여 가는 그 걸음은 세상의 마찰보다도 그 속에서 이렇게 네  가지로 살아나 가지고 완전화 되어져 가는 그것의 가치와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고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돌짝밭은, 그 돌은 무엇인고 하니, 악령에게 쌓여 있는,  악령에게 미혹받아 있는 자기, 또 죄에게 미혹받아 있는 자기, 세상에 미혹받아  있는 자기, 사망에게 미혹받아 있는 자기가 이것을 꺼풀을 벗는 것이니까, 벗는  것이니까, 그때에 핍박이 있는 것은 못 벗게 하려고 자꾸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니까 못 벗게 하든지. 말든지 그것을 상관하지 말고 나는 훌떡 벗을 수  있으면, 벗으면, 마치 시커먼 보자기 속에, 속에는 금덩이가 들어 있기는 있는데  보자기 속에 들어 있으니까 시커먼 보자기만 보이지 금덩이로 보지 않던 것이 이  보자기를 끌르니까 보자기 뺏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나 보자기를 획 벗어 버리면  속의 금덩이가 나오고, 또 수건으로 동여 놓은 이 나사가 수건 벗겨 놓으니까  보기는 흉측한 송장 같지마는 그것만 벗어 버리니까 그 사랑하는 살아난 오빠가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이 됐고, 영생을 이미 가졌고,  또 의를 가졌고, 이렇게 천국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우리들인데, 이런 것이  덮어 가리워 가지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핍박이 있는 것은 못 벗게 하는 것이요, 못 벗게 해도 활딱 벗어 버리면  이제 그들은 근방에 오지를 못하는 것이니까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대로  계속해서 말씀 대로만 그대로만 살면 확 벗겨져 버려. 껍데기가 확 벗겨져  버리면 이제 천국이요, 벗겨지면 영생이요, 벗겨지면 하나님에게 속한 자요,  벗겨지면 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또 우리가 이렇게 살려고 할 때에 환난이 오는 그것은 없을 수  없습니다. 환난은, 세상은 사망으로 자꾸 내려가는 세상에, 타락하는 세상에서  내가 같이 타락하면 울렁거리면서 저희 동무기 때문에 아무 일 없지마는  타락하지 아니하고 나는 하나님을 향하여서 역류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이 있는 것은 그것은 아무리 조그만한 고기 새끼라도 물에 따라서  내려가지 아니하고 그는 제 마음대로 자유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가  자유하니까 사망으로, 악령으로, 죄로, 세상으로 타락해 내려가는 그와 마찰이  있는 것은 필연한 것이니까 그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고, 핍박이  있으나 그것은 벗는 것입니다. 핍박이 있으나 사망을 벗고 영생을 얻는 것이요,  죄를 벗고 의를 얻는 것이요, 마귀를 벗고 하나님과 연결된 그 사실이 나타나는  것이요, 지옥을 벗고, 사망을 벗고, 세상을 벗고 천국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핍박이 있으나 참고 견디면, 그 몹쓸 더러운  껍데기를 확 벗어 버리면 속에 예수님의 구속으로 구속된 그 알맹이, 완전한  것이, 완전한 내가 나옵니다.

 그런데 얽매여 있는, 그걸로 덮여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 덮여 가지고,  그런 내가 돼 가지고 있는 내가, 하나님 말씀을 자꾸 받아 가지고 그대로 지켜  행하게 되면 그는, 악령적인, 악성적인, 악습적 인 그 나를 훌떡 벗어 버리고  나면 이제는 진리와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완전한 내가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참된 완전한 자기는 속에 들어 있는데 마귀들이 덮어 가리워 나오 지 못하도록  자꾸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니까, 말씀을 받아 가지고 고대로 계속해서 지켜  행하게 되면 이제 그 파묻혀 있던 속사람 자기가 나타나 가지고, 그 사람이  환하게 나타나게 될 때에 그들은 침노도 못하게 되고, 나타나고 나면 자기가  자기를 바로 깨닫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돌밭에 뿌리는 데 대해서 고 네 가지를 바로 깨달으면  됩니다. 자기를 세상, 사망, 악령, 죄, 이 보자기를 씌워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  말씀을 듣고 고대로 지금 내가 실행해서 살려고 하는 고것은 보자기 벗는 그  노력입니다. 보자기 벗는 노력이니까 보자기를 벗으면 악령과 세상과 죄와  사망과는 완전히 관계가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못 벗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이  이런 저런 그 반대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핍박이라, 핍박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때에 핍박이 오면 내가 이제 이런 것들을 벗으려고 하니까 이렇게  오는 것이니까 이제는 벗을 그런, 하나님이 벗겨줄 시기 가 오는가 보다 하고  담대히 참고 견뎌서 계속하면 확 벗겨지고, 또 내가 환난을 당하는 것은 내가  사망에 속한 것이 사망과 움직이지 아니하고 사망에 거슬려서, 또 마귀에게  거슬려서, 죄에 거슬려서, 세상에 거슬려서 천국으로, 하나님으로 이렇게 살려고  하니까 거슬려 가지고 이와 같이 마찰이 되는 환난이로구나!  이러니까 환난없이 그것들과 함께 움직여서, 그만 한 번만 받은 이 귀한 시간을  그것과 움직여 가지고 역류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밀려서 타락으로 내려가면  기본구원은 있지마는 구원 얻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과 같이 자기 공적  없는 비참한 자가 될 터인데, 거기에서 역류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다는  것을 깨닫고 참고 견뎌 계속 역류를 하면 이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갈 수 있는  그런 자가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혹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덤불 밑에 뿌린 씨는 그 씨는, 그 덤불을 가리켜서 세상 염려와 물질 그것을  말했는데, 물질과 세상은 알맹이에 들어 있고, 물질과 세상은 알맹이에 들어  있고,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껍데기로 듣는 것. 그 물질보다도 물질만 못한  말씀으로 듣고 또 이 세상만 못한 말씀으로 들은 그것이 뭐이냐? 덤불 위에  뿌리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이, 이 말씀이 세상을 지은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 또 이 말씀이 모든 물질을 다 지은 말씀이며, 주관하고  있는 말씀이며, 또 이 말씀하신 분은 자존 자 조물주인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말씀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은 덤불 위에 뿌리운 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세상 염려들 이 와서  여러 가지로 우리를 괴롭게 하고 우리를 누르고 붙들고 얽매이고, 그러나 내가  이제는 세상을 만든 그 능력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 이 말씀을 받아서 말씀과  사는 것입니다. 그 능력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고, 또 이 물질을 만든 그  능력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물질과 세상을 만든 이 능력을 사용하신 능력의  주인공인, 이 능력을 가진 이 능력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 말씀과 하나되는  것이요. 이 말씀대로 행하고 하는 이것은 이 능력인 이 말씀을 가지신 그분하고  나하고 친교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세상이나 물질이나 그런 것은 문제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받아 가지고 연결된 이 말씀만 해도, 이 말씀은 세상을 만든 그 실력을  가진 이 능력하고 나하고 하나가 되니까, 이 능력에게 지음받은 그까짓 것이야,  이 능력하고 나하고 하나가 되니까 그것은 그 자유자재로 다 내것 아닙니까?   또 이 말씀을 가지고 모든 세상과 물질을 만드신, 이제 이 능력과 나와 하나  되어서 그 능력을 내가 가지게 되고, 그 능력을 내가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이  능력을 가지시고 세상과 재물을 만드신 그분하고 나하고 친교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내가 그대로 실행하는 것은 이 세상을 만든  그분과 나와 친교의 이제 결합을 가지는 것이고, 그 능력을 내가 가져서 그  능력과 나와 하나가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모든 물질의 주인공이 되어지기 때문에, 물질과 세상은 다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만드신 능력과 나와 하나가 되기 때문에, 그 세상을 만든 그 능력과 나와  하나가 되기 때문에, 세상을 내가 만든 자, 내가 만들지 아니했는데 내가 만든  자요, 또 세상을 이 능력을 가지고 만드신 그 분과 나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세상을 만드는 그런 능력을 가진 그분과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은 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염려를 하지 말고 그저 견디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고 깨달음에서 세상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는가?  이제 주님이 지으신 것인데, 나한테 말씀하신 이는 주님이시요, 주님이 세상을  뭘로 지었는가? 말씀으로 지었는데, 그 말씀과 내가 하나가 되어서 그 말씀을  내가 소유하는 것은 이 능력을 내가 받아서 가진 것이 되어지니까 세상을 만든  능력을 내가 가졌고, 세상을 만드신 그분과 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서 그분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그분의 것이 되어진 것이니까 세상은 내 것이니 요것을  깨닫고 잡고 견디게 되면 우리는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가진다.

 그러면 백 배는 사람의 수인데, 사람에게 대해서 후회할 것이 없이 만족이  된다. 이제 바울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말했는데 이 빚진 것을,  다 청산하고, 사람에게 대해서 바울이 나중에 세상을 떠날 때에는 '내가  너희에게는 하나도, 이제 내가 하나도 거기에서 빼놓은 것이 없이 너희에게  유익한 것은 내가 다 말했다." 사도 행전 20장에 보면 ''너희에게 할 일은 내가  다 했다."  인간에게 대해서, 자기에게 오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길 가의 문제를  해결하고, 돌밭의 문제를 해결하고, 덤불의 문제를 해곁하고 이 세 문제만 바로  깨달아서 해결하고 나면 자기가 아는 사람에게나 모르는 사람에게나 모든  인간이라면 인간에게 대해서 자기는 원만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영원 무궁  세계의 심판에 가도 인간이라면 인간에게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고 그이에게  반대될 것이 없고 환영받지 못할 것이 없다 이 인간에게 대해서는 완전한 행위를  할 수가 있다.

 또 마귀에게 대해서도 완전한 행위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이 없다. 내가 지금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계명을 어떻게 지키는 것을 저희들에게 보여 줄 것밖에 없다. 예수님이  그와 같이 한 것은 마귀에게 대해서도 완전한 행위를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도 마귀에게 대해서도 후회할 것이나 미혹받는 것이 나 침노받는  것이나 해받는 그런 것이 없고 완전한 행위를 할 수가 있고, 또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흠이 없이,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네가 내 앞에 행위가 완전하다. 내  앞에 네 행위는 완전하다."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완전을 행할 수가 있고,  인류에게도 완전을 행할 수가 있고, 마귀에게 완전을 행할 수가 있으니까 그외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완전 행위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받는 이 복음은 세 가지, 이 길바닥 문제, 돌밭 문제, 덤불 문제  이것을, 무식해서 마귀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이런 것이지 환하게 깨닫고 보면  백지 그런 미혹도 받을 것도 없고 꼬임받을 것도 없는데, 그것만 획 벗어 버리면  되는 것인데, 우리가 벗지 못해서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까 요것은  깨달음으로 다 이길 수가 있다.

 전부 거기에 말하기를 깨달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옥토에 뿌린 것도  깨달음이라고 말했고, 덤불도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고, 돌밭도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고, 길바닥도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깨닫기 만 완전히 깨달으면  이기는 것 문제가 없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영감받아서 깨달으면, 우리가 웃을 때에는 울고  또 울 때는 웃고, 좋아할 때는 싫어하고 싫어할 때는 좋아하고, 담대할 때는  벌벌 떨고 벌벌 떨어야 할 때는 담대하고, 이 꺼꾸로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꺼꾸로 되어 가지고 있으니까 깨닫기만 바로 깨달으면 다  이제 바로 되어지면 우리는 사람에게 대해서, 또 악령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완전한 행위, 창조주에게 대해서나 피조물에게  대해서 완전 행위를, 이제 십은 인간으로서의 만수인데 인간으로서의 만점 만점,  더 흠점이 없고 더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행위를 할 수가 없는 것이 이 복음이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오늘 아침으로써 씨 뿌리는 비유는 결론을 지웠습니다. 이러니까 어제 두  시간에 걸쳐서 장시간 말했으니까 그 말을 구역 구역에 이제 들어가서 그것을  하나 하나 깨달아지면 이제 오늘 종합한 이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어제 그것을  듣지 못한 사람은 오늘 아침에 이말 해도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해서 잘 모를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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