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뿌리는 비유

 

1981. 2. 19. 새벽 (목)

 

본문:마태복음 13장 3절∼9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과 성령님, 모든 선지 사도, 오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을 가리켜서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뿌리는 자 중에 들었고, 성령님도 선지자들도 사도들도, 이  성경을 기록해 준 영감도 또 기록한 사람들도 또 우리에게 전해 준 사람들도 다  씨를 뿌리는 사람으로 비유된 것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도를 말한 것입니다. 도는 문서로 기록한 문서의 도가 있고 또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영감 도가 있습니다. 성신의 감화도 이  씨요, 신구약 66권에 기록된 한 말씀 한 말씀도 씨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의할 것은 길가 뿌린 씨나 돌밭에 뿌린 씨나 가시떨기 위에  뿌린 씨가 되지 말고 옥토에 뿌린 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람마다 요절이 있는데, 제가 진주성경학원에 갔을 때 최상림목사님이 가르치는  시간이 중간에 있어서 한 달 후에 그분이 왔습니다. 그분이 한 시간도 가르치기  전인데, 학생들이 아주 많은 기대를 하면서 최상림목사님이 실력이 있고 믿음이  좋고 유력하다고 해서 나도 마음이 끌려서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연구실로  찾아갔습니다.

 만나보니까 뚱뚱하고 얼굴이 시커먼 분이 아주 힘이 세게 생겼는데, 그분과 잠깐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주 믿음 있는 말을 해주고, 또 내가 '목사님은 요절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참 기쁘게 '저는 모든 성경을 다 그대로 믿지마는 옥토에 뿌린 씨가  되고자 하는 것이 평생 소원입니다.'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이분은 옥토에 뿌린  씨라는 이 절수가 요절이로구나.' 그렇게 듣고 나왔습니다.

 그분의 신앙 사적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그 당시에 제일 은혜 있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각처에서 학생들이 모였는데 보니까 그분이 있는 지방 학생들이   살아보려고 애쓰는 것이나 열심이 제일 나았습니다. 다른 데서 온 학생들은 뭐  그래요. 그러나 실은 그 학생들이 질이 높은 게 아니라 그 목사님 교훈 때문에  당시에 제일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때 옥중에 들어간 이들도 그분의 교훈 받은  분들이 많았고 열심도 그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해방 직후에 최상림목사님에게 배우던 남해읍에 재건교회가 생겼는데  분위기에서 열심은 있었지만 진리를 배우는 진리가 앞서지 않고 열심이 앞섰기  때문에 그분들은 재건교회라는 조금 색다른 길을 가게 됐습니다.

 그때 그분이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 것을 평생 소원한다고 했었는데, 그때는  철이 없으니까 마음에 호기심은 가졌지마는 어떤 것이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지에 대해서 별로 깨닫지를 못했었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깊이 깨달아서 참으로 옥토에 뿌린 씨가 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옥토에 뿌린 씨가 되려면 세 가지를 배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첫째는  길가에 뿌린 씨가 안 되어야 하고, 둘째는 돌밭에 뿌린 씨가 안 되어야 하고,  셋째는 덤불 위에 뿌린 씨가 안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 가지 중에서 길가에 뿌린 씨가 제일 많습니다. 길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다져진 땅인데, 사람들은 사람들의 많은 말을 듣고 배우고  읽어 가지고 아무 책임 없이 제 생각나는 대로 막 글을 써 재낍니다. 그 말이  조물주에게 어떻게 거슬리며, 인간을 어떻게 망치며, 심판 때에 어떻게 되며,  사람을 어떻게 미끄러지게 하는지 전혀 모르니까 생각나는 대로 주 지껄입니다.

 이북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백성들이 지금 굶어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고, 한쪽머리는 이 추위에 연료가 없어서 얼어죽는데 전두환은 정권만  잡으려고 한다.' 그런 말을 합니다.

 지금 남한에 굶어죽는 사람은 없지요? 그래도 그런 말을 듣고 '배고픈 사람이  없는데 그럴 리야 있겠나? 그래도 굶어죽는 사람이 다소라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거기서 삭감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듣는다  말입니다.

 이 세상은 그와 같은 말로 가득합니다. 다 자기 주장, 자기 세력, 자기를  인정토록 하기 위해서 그저 무책임하게 뱉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물리에 대한 말 외에 옳은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전부 거짓말입니다.

이종교에서나 도덕가들이 하는 말이 옳은 것 같지만 전부 반거짓말이요 사람  죽이는 말이지 사람을 살리는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길가에 뿌린 씨로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서 아무리 배워도 참  성신의 감동이 아니면 아무도 길가밭, 돌밭, 가시덤불밭을 배제하고 해를 받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아버지의 성령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 됩니다, 어떻게 어려운지.

 안 믿는 사람들, 공산주의자들, 미신자들, 점쟁이, 이종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신학박사라고 하는 믿는 사람들이 하는 말도 그런 말이 태반입니다. 열 중에 아홉  이상이 그렇다고 봐도 좋습니다.

 어쨌든지 성경 하나만 믿고 성경 외에 것은 아무것도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믿어야 됩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 아니냐?' 하고  생각했다가는 손해보게 됩니다.

 요즘도 신학박사들 또 서울대학교 교수 이런 박사들이 모이면, 그 사람들이  화술에 능란하지, 수사로 딱딱 짜여있지, 또 아주 조리 있게 말을 잘하니까 그  사람들의 말은 신빙성 있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영생을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영생은 자기 독선주의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인간 세계의 모든 만물이나 과학 세계에  들어와서 모든 사람들과 화합해서 사는 것이라.' 이렇게 박사들이 해석을 합니다.

또 신학박사도, 목사도 다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들이 꾸며낸 말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정확무오하게 믿고 성경만이  참말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그 말에 다 떨어지고 맙니다.

 이러니까 공부를 많이 하면 더 믿음이 좋아야 하는데 공부 많이 한 사람으로  믿음 좋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니엘 같은 시험을 닥치면 '기도하고 나는 사자구덩이에 던짐을 받겠다.' 할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왜정 말년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6, 25 때도  없었습니다.

 혹 있는 사람은 지식이 많고 똑똑하니까 '야, 여기 있으면 안 되니까 만주로  도망치자, 일본으로 도망치자.' 그렇게 도망하거나 숨어서 예수 믿는 표도 내지  않고 신사참배 안 한 사람은 있었지만 신사참배로 더불어 싸워 이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도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주를 위해서 생명 바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왜 그렇게 됐을까? 그것은 길가 뿌린 씨의 해독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이 사람  말을 듣고 저 사람 말을 듣고, 자꾸 듣다 보니까 차차 차차 믿음이 흐려지고  사그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서 믿으려니까 그것 때문에 성경 말씀에 대해서  '죽어도 이 말씀을 어길 수 없다.' 하는 사람이 되지를 못한다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 말씀을 믿으면서 '천하에 박사든지 박박사든지 천 박사든지 만  박사든지, 어떤 이종교나 학자나 도덕가가 말해도 이 말씀에 어긋나면 전부  거짓말이라, 인간을 죽이는 말이라.' 하고 정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니까 교회가 자꾸 부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만 '성경 말씀 어기면 천인 만인이 말해도 그것 다 마귀 말이요  다 인간 죽이는 말이라.' 하고 딱 정죄하는데, 이 사람이 권위가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참 만나보기가 드뭅니다. '그래도?'  대개는 그만 '그래도...'를 갖다 붙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공부가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벌써 헛일입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이 말씀의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에  대한 권위성을 말씀한 그대로 확실히 믿어야 하는데, 믿어지지를 않습니다. 왜?  세상에서 비슷한 사이비한 그런 말을 해 놨기 때문에 그 말이 자기에게 벌써  감염이 됐다 그거요.

 한국교회를 조선교회라고 할 당시에 배은혜목사님이라는 아주 유명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자기 마음에는 자신이 있어서 앞으로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나와서 침노를 할 것이니 그 사상이 어떤지 책을 좀 읽어가지고 대항해야  되겠다고 해서 그 책을 읽었는데, 읽는 가운데 그만 감염이 됐습니다.

 번연히 무신론주의요 유물주의요 기독교 반대인 줄 알고 읽었지마는 그 책을  읽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차차 감염이 되니까 하나님께 대한 확신, 성경에 대한  확신이 차차 차차 흐려지고 줄어졌습니다.

 그 후에는 증거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서글프고 확신이 안 되니까 교인들이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교회서는 배척이 나오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자꾸 희미해지고 '정말로 이 성경 말씀이 정확무오한가, 이 말씀이 참으로  이대로인가?' 그만 확신이 없어집니다.

 과거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보듬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안에 내가  안겨 있다.' 하는 것이 인정이 되니까 세상이 두렵지 않았고 그러니까 또 권능이  나왔는데, '하나님 나를 아듬고 있다.' 하는 것을 알아도 믿어지지를 않으니까  평강이 없고, 담력이 없고, 박력이 없어졌습니다. 권능이 없다 말입니다.

 그러다가 못 견뎌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금강산에 가서 제일 큰 폭포에 뛰어  들었는데, 주님이 물 속에서 건져서 바깥에 내놓으면서 '나는 네가 의심하는  예수라' 하시고 살려냈는데, 나중에 깨어서 보니까 언덕 위에 얹혀져 있었습니다.

그때야 주님이 계시는 것을 알고 의심을 다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놈 배운 그것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은혜 있게 일은  했지마는 과거처럼 회복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해방 때까지 은혜 생활은  했지만 신사참배를 이기지를 못했습니다. 권능이 역사하지 않으니까.

 그 후에 해방이 되면서, 그때는 뭐 국회니 조정에서 회의를 모으면  배은혜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장관들이 은혜를 받고 했는데, 그분이 '신사참배를  했다, 안 했다, 신사참배는 죄다 아니다.' 하는 말이 자꾸 나오니까,  그분이 설교하기를 '몸에 상처가 나면 상처인 줄도 알고 아픈 줄도 아니까  기름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놔야 하는데 그걸 자꾸 파헤치면 덧이 나서 낫지를  않는다. 이와 같이 신사참배가 죄라고 알고 원통히 여기고 후회하고 있으니까  그만 두면 잘 아물어서 회개를 하지만 자꾸 신사참배는 죄라고 하면 도리어  역효과가 나서 아물지를 않는다.' 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설교요? 좋은 설교지만 실은 그것이 666이오. 신사참배는 그게 벌써  죽은 것이니까 살려내야지, 죽은 걸 그대로 감싸둬서는 안 된다 그거요. 그때 그  말을 듣고 환영한 사람들은 다 신신학자가 돼 버렸고, '그 말은 틀렸다. 우리가 한  달 금식을 하든지, 열흘 금식하든지, 닷새 금식하든지, 사흘 금식하든지 참 뜨겁게  회개해야 된다.' 하는 주장을 했던 사람들은 그걸 주장하다가 다 쫓겨나갔습니다.

이러니까 실은 그때에 한국 교회의 생명은 다 떠난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분이 그 후에 또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고등고시, 행정 사법  고시위원회 위원장이 됐습니다. 큰 감투 아니오? 판검사 세우는 시험관 중에서  제일 장자니까 참 높은 벼슬을 했습니다.

 그 벼슬 한 그것이 내나 그때 사회주의의 책을 읽은 그 해독이 또 재발됐다 그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 그만 속화가 되고 복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걸 치우고 목사 노릇은 했지만 그만 은혜 없는 배척 목사, 유명한 목사라서  배척은 못해도 은혜 받는 사람이 없으니까 교인들이 슬슬 떨어지고 그런 비참한  목회를 하다가 끝을 마쳤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 지식, 세상 인간 말의 해독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이 성경 말씀을 헐어서 흐리게 하는 세상 말 인간들의 말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언제든지 여기에 입각해서 대적하고 상대하면서 공부도 하고 학문을  연구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게 무슨 효력 있는 줄 생각하면,  간첩이 왔는데, 그  간첩이 우리 남한에 효력을 줄 자라고 생각하면 그 간첩이  간첩 노릇을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그 간첩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손해를  보겠습니까? 간첩인 줄 알고 대항을 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 보기  쉬운데 모르면 그 손해가 어떻겠습니까?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길가에 뿌린 씨를 단단히 느껴서 무슨 말이든지 글이든지 책이든지  성경 말씀을 조금이라도 흐리게 만들면 적으로 알고 대적해야 합니다. 이 말씀과  대립되는, 이 말씀에 배치가 되고 흐리게 하는 어떤 세상 지식이라도 대적으로  알고 아주 배격하고 던져버려야 길가 뿌린 씨의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돌밭에 뿌린 씨는 어떤 것인가? 이 말씀과 자기와 대립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자기가 대립이 될 때가 있습니다. 또 말씀과 자기 마음과 대립이 될 때, 자기  사상과 대립이 될 때, 자기 욕심과 대립이 될 때, 자기 감정과 대립이 될 때, 자기  형편과 대립이 될 때, 자기 사업과 대립이 될 때, 어쨌든지 이 말씀과 자기가  대립이 되면 사정없이 자기를 꺾어버리고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 사업이 이 말씀과 대립되면 사업이 당장에 부서져도 사업을 이 말씀 앞에  복종을 시키고, 자기 생명이 이 말씀과 대립이 될 때에 '아무래도 내 생명부터  살려놓고 믿어야 하지 않겠나?' 아니오. 죽어도 이 말씀을 영접해야 한다는  것으로 깨달아서 자기 생명을 말씀에 복종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돌밭에 뿌린  씨를 면하지 못합니다.

 덤불 위에 뿌린 씨는 무엇인가? 세상과 하나님 말씀과 대립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대로 살려고 하면 세상과 대립이 됩니다. 이 세상을 내가 환영하려 하면 진리  말씀을 버려야 되고, 진리 말씀대로 하려면 내 세상을 다 버려야 하는 이런  대립되는 때가 있다 말이오.

 세상이 대립되지 않고 하나님 말씀과 일치될 때도 있지만 내 세상과 이 말씀이  대립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온 세상을 던지지 않으면 덤불 밑에 뿌린 씨를  면하지 못합니다. 덤불 밑에 뿌린 씨를 면하지 못해요.

 이게 쉽습니까? 내가 진리대로 살 때 세상이 대립되면 세상을 던져버리고, 내가  대립되면 나를 던져버리고, 세상 지식이 대립되면 세상 지식을 던져버리는 이  일이 그렇게 쉽게 되리라 생각합니까? 쉽지 않습니다.

 참으로 여기에는 성신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내 결심으로도, 내 작정으로도, 내  의지로도 안 됩니다. 이는 참 아버지의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평소에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이런 것을 완전히 배격하고 부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쉬지 않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마음, 성품, 뜻, 목숨, 힘, 자기 전부를 말씀 실행에 다 기울여  바치는 이것이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말씀대로 인간에게 대해서도 이와 같이 실천할 수 있고,  세상에도 실천할 수 있고, 마귀에게도 실천할 수 있고, 세상 모든 지식들에게도  실천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실천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도 다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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