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뿌리는 비유


선지자선교회 1989년 8월 4일 금저녁 

 

본문 : 마13:3-9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묵상기도)  이 시간을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땅의 운동이 아닌 영영하신 하나님의  이 계획 운동을 일으키시는 이 예배의 시간인 것을 저들이 믿습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에도 온 세계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곳마다 피로 구속한  성도들을 주님의 공로로 깨끗게 하시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이 모든 자기 아닌  자기를 완전히 벗어 버리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 자기로 주님의  사활의 은총을 깨달아 감사하며 이 새사람이 새로와질 수 있는 은혜를 받아서  새로와지고 강건함을 얻는 이 시간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이다. 아멘.


 광고 먼저 합니다.

 중간반 사층 예배에 참석지 아니하는 학생을 거느리고 있는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은 예배 후 나가시면서 수위실 앞에서 거창 집회 안내서라는 광고지를  자기 학생 수에 따라서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거게 안내되는 것이 기록돼  있기 때문에 자기 갈길을 서슴지 안하고 잘 갈 수 있습니다.

 중간반 학생을 거느리고 있는 반사 선생님으로서 그 학생이 사층 예배에 참석  안 하는 그런 학생들이 많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런 학생을 거느린 선생님은 예배  후 나갈 때에 수위실 앞에서 거창 집회에 단체로 행위할 안내의 조건들이 다  기록한 것을 내어 주고 있으니까 학생 한 명당 한 장씩 필요한 대로 받아 가셔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하루 삼십분 기도를 잃지 않도록 합시다. 또 남구역장님께서는 보고서를  다 내시기 바랍니다. 거창 집회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사람이 못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시니까 그분에게 기도해야 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지마는 사람이 못 할 거 하나님께 기도해서 도움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예배 후에 지낸 주 설교 재독이 있습니다.

 집회를 앞두고 이 말씀을 여러번 증거할라고 제가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없어서 증거를 못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자기가  실행하면 구원이 되고 실행을 안 하면 이 말씀이 우리를 정죄하게 된다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거는 이 말씀을 들었으니까 안 들었다 할 수도 없고 들었으니  핑계 못 하고 들은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또 듣고 실행을 하면 우리에게  구원이 됩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거창 집회를 위해서 모두 기도하고 또 여러면으로 준비를  하고 힘쓰는 그런 성도들이 많고 대개 우리는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외국에서도 이 집회에 참석할라고 많은 준비를 해 가지고 벌써 오는 중에 있고  또 온 사람들도 있고 그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뭐 다른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다른  면으로는 우리에게 유익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이 말씀을 들어서 잘되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을 가진다 하는 이것이 우리 소망입니다. 말씀을  들어서 잘 결실하게 되면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해 놨는데 이것이 우리 소망입니다.

 우리가 나그네 세상에서 영원을 향해서 준비하고 있는 것은 간추려 말하면  조물주이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바로 맺는 것과, 또 인류와 관계를 바로  맺는 것과, 또 악령으로 더불어 관계를 바로 맺는 거 이 세 가지가 우리들의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관계가 바로 되면 영원 무궁한 세계에는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고 이 관계가 잘못됐으면 잘못된 그 영향을 영원히 우리가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거게 백 배의 결실을 맺는다 하는 그 백 배라는 것은 인간은 만수가  열입니다. 열이 되면 또 열하나, 또 스물이 되면 스물 다음에는 하나 열이  만수인데 만수에 만수로 곱을 하면 백이 됩니다. 그러면 만만수가 되겠습니다.

 만수 만수 만만수라. 인인 관계에 만만수라.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잘 되면 인간과 인간 관계에 모든 일이  만만점으로 완전하게 맺어지게 된다. 그러면 인간과의 관계를 완전 관계를 맺게  된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거게 심판 문제가 세 가지  조건이 있는데 하나는 사람과의 내가 관계된 것이 다 들추어 올라옵니다. 내가  사람에게 언행심사로 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이 됐던지, 또 해침이  됐든지, 은혜 베품이 됐든지 어쨌든지 인인 관계의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래서 우리가 듣는 바의 이 말씀을 바로 듣고 이 말씀에 대한 혜택을 다 입게  되면 이 말씀에 대한 혜택을 다 입게 되면 우리가 인인 관계에 과거사 현재사  미래사 뭐 잘못된 것이나 잘된 것이나 모든 것을 다 완전히 해결짓고 원만한  완전한 인인 관계를 가지게 될 수 있는 것이 지금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자기가  은혜를 입고 못 입는 데에 기인되는 것입니다.

 또 둘째에 육십 배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 마귀의 수를 여섯수로 봤고 또  육백육십육이라, 암만해도 마귀 수는 육이라 이랬습니다. 육십 배라 말은 마귀수의  만수가 되는 것이 육십이 됩니다. 이래서 육십 배라 말은 마귀와의 관계를 완전  관계를 가지게 된다 하는 것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마귀에 대해 서 우리가 거절할 것은 거절하고, 또 파괴할 것은 파괴하고,  또 거게 대해서 우리가 대항할 것은 대항하고, 수많은 마귀의 미혹이 있는데 그  미혹에는 들지 안할 것은 들지 안하고, 이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이 마귀에게  완전 정복을 당해서 일생에 사는 생활이 전체가 다 마귀의 통치하에서, 마귀외  정복하에서, 마귀의 주권하에서 움직이는 생활들입니다. 안 믿는 생활은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할 것 없이 완전히 마귀에게  노예가 돼 가지고서 마귀의 미혹에, 마귀의 세력에, 마귀의 명령에, 마귀의 협박에,  또 마귀의 위협에 거기 걸려 가지고서 다 마귀로 인해서 움직이는 움직임이 되는  것이 인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육십 배라고 말하는 것은 마귀에 대해서 만점을 이룬다. 그 마귀와  관계되는 데에서 흠과 점이 없는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에  갈지라도 마귀의 관계점에 있어서는 하나도 실수함이 없고, 미달됨도 없고,  치우침도 없고, 또 불완전함도 없고. 미비됨도 없고 완전 관계를 가진다.

 우리가 과거에 범죄한 그 모든 것은 마귀와 관련된 일들입니다. 그러면 과거도  완전히 해결된다는 것은 마귀와 관련돼 가지고 한 것은 우리가 다 실수해서  범죄한 것들인데 육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 그말은 마귀와의 과거 관계, 현재 관계,  미래의 모든 관계를 완전 관계를 해 가지고서 마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흠과  점이 없이 완전 행위를 해 가지고서 완전 승리한 것처럼 우리들도 마귀에 대해서  완전 행위를 가질 수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육십 배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거게 삼십 배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수는 성경에 삼수로 나타나셨습니다.

 이래서 삼십 배라 말은 또 삼수의 만수가 삼십 배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  대해서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결과를 맺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함에 대해서도 흠없이 완전 두려워함을 가졌고, 하나님을  사랑함에도, 하나님을 믿음에도, 하나님을 바라봄에도, 하나님을 의지함에도,  하나님에게 순종함에도, 하나님을 사모함에도, 뭐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 관계를  맺어진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삼십 배라고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번 집회에 가서 참석할라고 하는 것이 다른 것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가지고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이루고 복된  자가 되려는 것입니다. 다른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평소에 아무데서든지 이러하지마는 우리가 일 년에 두 차례로  이렇게 집회에 가려고 모두 다 기도도 오랫 동안 하고 힘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들으러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우리가 옥토에 뿌린 씨가 돼  가지고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하면은 뭐 그 이상 더 없는  참 성공이요 행복이 되겠습니다. 영원 무궁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영계와 물질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그때에 그 나라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요 그 다음에  위치를 가질 자는 누군가? 그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어서 모든  면에 완전 해결을 짓고 완전 관계를 맺어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시은을, 은혜를 베푸시는 것인데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영계와 물질계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시키는 것이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교회인 하나님의 사람들로 인해서 영계나 물질계에 모든 것이  다 행복과 생명을 누리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런 중요한 시은의 중보 위치를  가지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한 사람들이 그 일을  수종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이번에 들으러 가는데 이 말씀을 들어서 어떤  사람은 옥토에 뿌린 씨가 돼 가지고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가지는  그런 사람도 있짓고, 또 어떤 사람은 여게 보니까 덤불 밑에 뿌펄 씨는 덤불이  자라서 기운을 막아 가지고 결실을 하나도 못 했습니다. 결실 못 했다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귀와의 관계도 사람과의 관계도 그 관계를 바로 맺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또 돌발에 뿌리운 씨도 싹이 일찍 나기는 났지마는 밑에 돌이 받쳐 있어 가지고  결실이 하나도 되지 안했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돌밭에 뿌리운 씨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렇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인인 관계나 악령과의 관계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하나도 올바른 성공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길가에 뿌리운 씨라고 말하는 것은 길가에 뿌린 씨는 벌써 새가 와서 주워  먹어서 움도 나지 못하고 싹도 나지 못하고 자라지도 못하고 아예 그것은 결실의  성공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번에 집회에 가는 데는 길가 뿌린 씨가 되든지, 돌밭에 뿌리운  씨가 되든지, 덤불 밑에 뿌리운 씨가 되든지, 옥토에 뿌리운 씨가 되든지 네 가지  중에 한 가지가 될 것입니다.

 또 이 네 가지 중에 다가 길바닥에 뿌린 씨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몇분지  일은 그리 되고 몇분지 일은 돌밭에 뿌린 씨, 몇분지 일은 덤불 밑에 뿌린 씨,  몇분지 얼마는 옥토에 뿌린 씨 이렇게 해 가지고서 각각 자기가 그 집회에서  하나님이 모든 은혜와 생명과 축복을 말씀으로 주실 때에 그 말씀을 같은  자리에서 받았지마는 각각 받은 것은 달라서, 자기 준비하는 데 따라 달라서 그런  결실을 맺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간단하게만 말합니다. 길바닥에 뿌린 씨라 하는 그 길바닥은 많은  사람들이 밟은 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내간 그런 것을 그런 상처를 받은 사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밟은 상처를 받은 그 심령을 가리켜서 말을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글거리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말에 많은  상해를 받아 가지고서 이거는 뭐 무슨 말도 암만 들어야 처음 들은 말도 없고  별스러운 말도 없고 이러니까 그 마음이 완패하고 강퍅해져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자기가 깨달음이 하나도 없는 자라 그렇게 주님이 해석을 했습니다. 그  밑에 '길바닥에 뿌렸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없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했어.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이번에 들을 때에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 말씀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내가 할 일이 뭐이냐?' 하는 것을, 자기 할 일을 발견하는  그 사람을 그걸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길바닥, 그런 길바닥과 같은 자기가 안 되는 사람은 거기에  깨달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달음이 있는 사람,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그것을 지식적으로 발견해 가지고서 아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지식에 대해서 '내가 할 일이 뭐이냐?' 하는 자기의  그 소행사를 발견하는 것을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번에 말씀을 들을 때에 '나는 여게서 나 할 일이 이거로구나. 이렇게  해야 되겠다.' 자기가 해야 되겠다는 그 깨달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도 되기  쉬우니까 이 길바닥도 개간을 해야 됩니다. 개간을 하면은 옥토가 되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가복음 9장에 보면은 '내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마는 먼저  가서 내 가족을 작별하게 하시옵소서. 그라면 가족 작별 인사하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주님이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 그렇게 말씀했어. 그러면 가족 작별이 그뭐 긴급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지마는 그 일로써 쟁기 잡고 개간하는 일을 둘째로 두고 그  일을 먼저 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에게 이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모든 자기의 경험 체험, 이 세상 지식  이런 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그런 말과 같은 말로 이렇게 들어서 자기에게는  곧 이 말씀은 죽고 사는 말씀이요, 또 성공하고 실패하는 말씀이라,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고 이대로 이루어질 이 권위 있는 말씀인데 이 말씀을 자기가 들을  때에 '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하는 깨달음이 없는 자기를 이 모든 지식들과  다른 탁월한 하나님의 말씀, 전지 전능자의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깨닫고 그런  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내게 있는 모든 지식을 다 부정하고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한 말씀 한 말씀 들을 때에 이 말씀에서 '나 할 일이 뭐인가?' 하는 이것을 내가  깨달아 잡고 요동치 않는 사람이 되어서 이 말씀대로 단행을 해야 되겠다 하는  요 사람이 되기까지 노력하는 것을 가리켜서 쟁기를 잡고 개간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기가 세상 지식 속에나 어떤 속에 들어 있을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그 말씀이 내게 명령하고 교훈하시는 내게 해당된,  내게 해당된 내 의무와 책임인, 이 말씀이 자기에게 참 자기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이 말씀대로 실행을 해야 될 터인데 이  말씀대로 실행해야 되겠다는 자기에 느껴진 깨달음이 없는 그 일을 자기가 자기  멸망하는 전부이기 때문에, 그거 없으면 멸망하니까. 그게 없으면 멸망이니까,  깨닫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세상에 많은 거짓말 들은 거와 같은 말로 이  하나님의 말씀, 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는데 이 말씀과 인간들의 말의 그  비중을 같이 여기는 이 강퍅하고 완패해서 낡아져 있는 이것을 자기가 돌이켜서  하나님 말씀은 절대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이  말씀대로 내가 안 행하면 사망하는 것이고 행하면 산다 하는 이 실상의 중요성을  느끼기까지 자기는 느껴지는 그런 심령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은, 이  노력하는 일은 이것은 '마지막에 가족을 내가 작별하고 주를 따르겠습니다.'  하니까 이제 가족의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의무와 책임을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  행동으로 다 정리할 수 있는 이래 중요한 그런 일이라도 그것을 이것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말이오. 그것이 이것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뭐 찰나도 순간도 자기의 강퍅한 마음,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강퍅한  마음 그것이 없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쉬지 않고 계속 노력 안  하면 안 된다는 그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게 대해서 별로이 관심을 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내가 이래, 나는 여기 이래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깨달아져서 자기에게 있는 전부를 다 기울여  가지고 그대로 단행할라고 해도 한 되는 것인데 이 마음조차도 없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좀 천국에서 대단히 먼 사람이요 강퍅한 사람입니다.

 그걸 우리가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을 때에  '여게 대해서는 내 사명은, 내 본분은, 내 외무는, 책임은, 하나님이 내게 명령한  것은 이거다.' 하는, 자기의 의무 책임 자기에 대한 명령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예사롭게 지내가게 하는 그 강퍅한 마음을 우리가 개간해서 일깨워서 자기의  강퍅한 마음을 슬기로운 마음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도 하고 단식도  하고 또 힘도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들으면 거게는 반드시 내게 대한  의무와 책임과 본분의 그 생사화복이 매여 있는 것인데 이것을 자기가 느껴지지  않고 깨달아지지 안하는 그 마음을 우리가 고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그러면  가기 전에 이 마음을 고쳐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집회에 가면 아무 마음 준비 안 하고 가 가지고서 거게서 한 시간  두 시간, 집회가 다 지내갈 때 되면은 '이 말씀대로 좀 살아야 되겠다'하는 그  마음이, 겨우 길바닥 같은 그 마음이 조금 개간이 돼서 돌이 모두 빼고 이래 좀  옥토같온 그런 예민한 심령, 예민한 심령이 되자 그만 집회는 끝나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그랬다가 또 다져집니다. 길바닥도 또  개간했다가 또 다져지고 또 다져지면 뒤에 더 점점 견고히 다져져서 더 파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래서 길바닥 같은 이런 자기 심령뿐만 아니라 자기의 인품, 인격,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말과 같이 여기는 그 심령과 그 모든 습성 인품 그런 것이 완전히  변화돼서 참 옥토와 같은 예민한 그런 심령과 자기가 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요것을 위해서 우리가 지금 노력을 해야 될 것이고, 그래서 길바닥을 이거  면제해서 길바닥이 옥토가 돼야 되지 옥토 안 되면 암만 거기 가 있어 봤자 그저  몸뚱이만 거기 가 있지 마음은 딴데 가 있고 하나도 자기에게는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은 천하에 있는 모든 인간의 지식을 다  똘똘 뭉친 거 그까짓 거 한 냥중이 된다 하면은 하나님 말씀은 무한합니다.

 거게는 산 게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과 이 세상 인간의  지식과는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점이 자기에게 느껴지지 안하고 그 말씀이나 그  말씀이나 어떤 철학이나 어떤 과학이나 어떤 무슨 도덕학이나 어떤 사상학이나  그런 거나 거의 같이 들려지고 이 말씀의 진상이 생사화복에 완전히 주권되어  있는 이 사실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심령을 우리가 다 고쳐 가지고 가야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순교자들이 어데 순교합니까? 순교자들이 뭐 사람 위해서 순교도  안하고 또 무슨 세상 위해서 순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말씀에게  붙들려서 다 순교하는 것입니다.

 또 돌짝밭에 뿌리운 씨라는 것은 싹이 나 가지고서 자라다가, 자라다가 해가  돋으니까, 뿌리가 내려가다가 돌에 걸려서 못 내려갑니다. 돌에 걸려 못  내려가니까 해가 찌우니까 그만 나중에 말라 버려서 타지 않습니까? 그 돌이  뭐입니까? 그 돌이 자기 주관입니다. 고거 자기요, 자기.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데,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데, 첫째 길바닥은 이 세상에 모든  인간의 지식이라는 문화를 부인해야 되고, 모든 문화를 부인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둘째로는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 말씀대로 아무리 살다가도 자기에게 거리끼면 그만 버립니다. 뭐  자기에게 손해가 안 갈 때는 잘 믿는다 하지마는 자기의 무슨 명예나 생명이나  지위나 자기의 무엇이나 그것이 절단날 때에는 말씀을 버리고 그걸 잡습니다.

 그것이 바로 돌짝밭에 뿌린 씨입니다. 거게 돌이 없어 자기라는 것을 완전히  부인했다고 하면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다가 뭐 이러나 저러나 할지라도 끝까지  지키지 변동되지 않지마는 자기가 들어 있으면 안 되니까 이번에는 꼭 자기를  부인하고 가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지킬라고 할 때에 자기에게 거리껴 가지고 지키지 못하게 되는  자기, 요 자기를 부인하고 가야 되지 부인하지 안하면 하나님 말씀 듣고 좋아서  그대로 실행하다가도 실행하다가 자기에게 거리끼면 그만 말씀 저버리고  자기에게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이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이 일을 다 준비해 가지고 가야 할 것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잘 믿는 사람들은 다 그것을 정리하고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또 덤불 밑에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해석하시기를 하나님 말씀을 들으나  세상 재리와 세상 염려로 인해서 이 말씀대로 실행하다가 실행하지 못하고  중단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덤불 밑에 뿌리운 씨라 이렇게 말했어.

 이제는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요 말씀대로 내가 실행을 할 때에는 내 세상이  다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내 자신이 어찌 된다 할지라도 세상 모든 이 문화라  하는 거, 모든 문화를 부인한 사람이라야 길바닥을 개간한 사람이고, 또 자기를  완전히 부인한 사람이라야 돌짝밭을 개간한 사람이고, 또 이 세상 모든 재리나  염려나 모든 자기의 온 세상을 다 부인해 버린 사람이라야 이제 덤불밭을 개간한  사람이고.

 그러면 옥토에 뿌린 씨는 하나님의 말씀의 도를 들었는데 그거는 돌에도  거리끼지 않아, 덤불에도 거리끼지 않아, 길바닥이라서 땐땐 야물어 거리끼지  않아, 그러니까 그 씨가, 뿌린 씨가 땅에 있는 지기를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빨아먹습니다. 다 빨아먹어.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이 도는 내 영육 심신 내라는 전부, 내 소유의 전부, 내  세상 전부 이 말씀이 솔빡 다 삼킬 수 있는, 이 말씀이라면 이 말씀에게 내가 그  모든 것이 따 삼키워질 수 있는.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요 말씀대로  실행하는, 이 말씀을 모든 그런 것보다 높이 평가하고 이 말씀에게 붙들려 그  모든 것이 다 이용이 될 수 있는 이것이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옥토에 뿌린 씨는  백 배, 인인 관계를 영원 무궁토록 무궁세계에 가 살 때에 인인 관계가 완전히  됐기 때문에 인간이 다 나를 보고서 찬성하고 칭찬하고 다 존경하고 존대하고  영광을 돌리고 나를 바라보지 나와의 배치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악령과의 관계가 그렇기 때문에 악령과의 관계에 잘못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하나도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마귀의 유혹에 하나도, 천하 사람들이 다  마귀의 유혹 때문에 다 실패했지마는 마귀로 인해서 손해본 게 하나도 없어.

 잘못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마귀에게 대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너는 완전히  마귀와의 관계를 완전히 가져서 마귀를 완전히 정복하고 승리했다, 예수님이 하신  거와 같이. 예수님은 이 관계를 가졌어. 예수님은 인인 관계를 완전히 가졌기  때문에 지옥에 있는 사람들도 주님을 주라 시인하면서 영광을 돌렸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무릎을 꿇고 주님에게 경배하면서 영광을 돌렸다. 했습니다.

 이게 내나 인인 관계를 완전히 관계 맺은 것입니다.

 또 악령도 완전히 예수님에게 정복을 완전히 당했기 때문에 모든 악령들도 주를  찬송했습니다. 완전 관계를 가졌습니다. 하나님과도 완전  관계를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맺은 것이 그것이 예수님이 완전 승리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제는 내가 가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 들은 요대로  내가, 요대로 실행을 할라 할 때에, 실행을 할라 할 때에 직장이 거리끼면 직장을  삼키고, 직장이 거리끼면 직장을 이 말씀에게 다 투자하고, 자기 생명이 거리끼면  생명을 투자하고, 자기의 가정이 거리끼면 가정을 투자하고, 자기 몸이 거리끼면  몸을 투자하고, 어쨌든지 이 말씀에게 내 소유와 몸과 생명과 내 온 세상을 이  말씀에게 완전히 바쳐진, 이 사람이 비로소 옥토에 뿌린 씨로서 인인 관계, 악령  관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를 맺는  것이니까 지금부터 옥토가 되도록 이것을 애를 써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에게  거리끼는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거리끼는 온 세상과 모든  물질을 부인해 버리고, 또 하나님 말씀에 거리끼는 온 세상 문화를 완전히 부인해  버리고 그저 이 말씀에만 나는 소유와 몸과 생명이 요 말씀에게 복종돼서 그대로  나는 순종해 나아가는 이 사람이 되는 이 심령을 또 자기라는 인품을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가는 사람이 아니면 거기 가서 녹 벗기다 맙니다. 녹 벗기다 마요.

끼인 녹 벗기다 말아요. 거기 가서 이 거리끼는 이런 거 좀 깨달아 회개할라 하다  오니까 뭐뭐 언제 됩니까? 이러니까 어짜든지 옥토에 뿌린 우리가 되어지도록,  내가 도를 받은 것은 받은, 도를 내가 받았을 때는 이 도에게 내라는 것이 완전히  먹어지는 것, 이 도가 나를 완전히 삼켜 버리고 나는 이 도에게 완전히 삼켜지는  것. 이래서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다고 내가 하나님과 진리에 완전히  삼켜지니까 삼켜지면 내가 하나님 됐고 내가 진리 된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옥토를 만들어 가지고 갑시다. 옥토를 만들어 가지고 가지 안하면은  유익이 없습니다. 옥토를 만들어 가지고 가면 뭐 누운뱅이도 낫고, 암병도 낫고,  무슨 병이라도 낫고, 사람병 다 낫고, 고기덩어리 병 다 낫습니다. 만일 옥토에  뿌린 심령이 되면 못 나을 병 없고 사람병 못 고칠 것 없고 다 완전히  고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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